브엘세바에서 에셀나무를 심다
2017-07-23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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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3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브엘세바에서 에셀나무를 심다”
(창21:22~34)
22 그 때에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이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23 그런즉 너는 나와 내 아들과 내 손자에게 거짓되이 행하지 아니하기를 이제 여기서 하나님을 가리켜 내게 맹세하라 내가 네게 후대한 대로 너도 나와 네가 머무는 이 땅에 행할 것이니라
24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맹세하리라 하고
25 아비멜렉의 종들이 아브라함의 우물을 빼앗은 일에 관하여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을 책망하매
26 아비멜렉이 이르되 누가 그리하였는지 내가 알지 못하노라 너도 내게 알리지 아니하였고 나도 듣지 못하였더니 오늘에야 들었노라
27 아브라함이 양과 소를 가져다가 아비멜렉에게 주고 두 사람이 서로 언약을 세우니라
28 아브라함이 일곱 암양 새끼를 따로 놓으니
29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일곱 암양 새끼를 따로 놓음은 어찜이냐
30 아브라함이 이르되 너는 내 손에서 이 암양 새끼 일곱을 받아 내가 이 우물 판 증거를 삼으라 하고
31 두 사람이 거기서 서로 맹세하였으므로 그 곳을 브엘세바라 이름하였더라
32 그들이 브엘세바에서 언약을 세우매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은 떠나 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돌아갔고
33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 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원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34 그가 블레셋 사람의 땅에서 여러 날을 지냈더라
창21:22~34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십시다. 오늘도 우리 안에 생명으로 충만한 시간이 됨으로 말미암아 온 땅이 저와 여러분을 바라보면서 주를 보는 그런 축복의 증거의 시간들 될 것입니다. 이 축복을 누리는 귀한 시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많은 성도들이 갈등들을 하고 있는 것들 가운데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하는 갈등들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세상 속에 들어가서 살려고 하니까 세상과 동화되어 버리고 또 세상과 친화되어 지는 그런 부분들 속에서 오는 갈등들이 있고요, 또 경건하게 살고자 하면 할수록 뭔가 세상을 등져야 하고 그와 더불어 세상 속에서, 현장 속에서 바보 취급을 당하는 그런 부분들을 보니까 거기서 오는 이중적인 생활들을 할 수 밖에 없는 이런 부분들을 보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그 이전에 중요한 것이 내가 누구인가입니다. 내가 누구인가를 알게 되면 그 속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답이 나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먼저 결론적으로 말씀 드린다면 여러분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내가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 거기에 대한 축복의 답을 오늘 제목을 가지고 붙잡으면 됩니다. “브엘세바에서 에셀나무를 심다”이것이 우리의 현장을 정복하는 비밀입니다. 이 축복의 비밀을 가지면 모든 현장들을 살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지금 보십시오. 어떤 면에서 웰빙 역풍의 시대를 당하고 있는데 웰빙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이 말은 그 만큼 사람들이 가면 갈수록 병들어 가고 있다는 것이고, 또한 반면에 먹고 살만하니까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 무엇을 하며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 거기에 대한 관심들을 다 가지고 있다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시대마다 사람들마다 제일 인기 있는 책들이 있다면 자기계발서, 처세술 이런 것들입니다. 어떻게 살아가야 될 것인가 그런 내용들을 담고 있는 내용들이지요. 그런데 우리에게는 분명한 것은 내가 어떻게 살고, 무엇을 하면서 살아야 되는가 그 이전에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부분에 답을 먼저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불러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5:13~16절에 보면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여러분 이것은 우리의 신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신 말씀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않고 등경 위에 둔다 했습니다. 그래서 온 집안에 비친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않잖아요. 여기서 말하는 말은 우리가 곡식을 잴 때에 되로 재고 말로 재잖아요. 그 말입니다. 그러니까 곡식을 측량할 때 쓰임 받는 말입니다. 어느 누가 등불을 그 말 아래에 둡니까? 그러면 캄캄해서 빛이 비추어지지 않지요. 그 등불은 당연히 등잔위에 둡니다. 다시 말해서 등불을 등 받침대 위에 두게 됩니다. 그로 말미암아 온 집안이 환하게 비추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합니까? 결국 이 땅의 모든 문제들은 저와 여러분으로 말미암아 해결되어지는 그 축복을 주신다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겠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해서 이 땅의 모든 문제 해결자로 세우셨습니다. 그래서 그 모든 문제 해결자로 세우신 그 부분들을 하나하나 확인시켜 나가는 것이 지금 창세기의 아브라함의 사건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구원받은 저와 여러분을 통해서 우리의 가정과 지역과 민족, 세계를 살리시겠고 이 땅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언약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사명을 가지고 하나님의 축복을 누려야 됩니다. 또 당연히 여러분을 하나님이 축복하시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 여러분이 살아나야 여러분의 가정이 살아나고 여러분이 몸담고 있는 지역이 살아나고, 이 땅과 이 민족이 살아나기 때문에 하나님이 여러분을 축복하시게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이 사실들을 예배하는 가운데서 확인케 되어지는 그런 축복의 시간들 되시기를 다시 한번 더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성도가 축복받는 것을 불신자가 보게 됨.
그러면 먼저 첫 번째입니다. 성도가 축복받는 것을 불신자들이 보게 됩니다. 분명한 것은 이 축복의 역사들을 먼저 누리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먼저 하나님께서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약속하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서밋의 축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가장먼저, 동일하게 누구에게나 주신 축복입니다. 그것은 바로 영적 서밋의 축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약속하신 것이고요, 예수님께서도 마지막에 말씀하셨습니다. 행1:8절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영적 서밋의 축복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하나님 앞에 쓰임 받았던 사람들 하나하나 전부다 동일하게 영적 서밋의 축복의 응답을 누렸던 사실들을 보게 됩니다. 요셉, 불신자왕인 바로 왕이 요셉을 바라보면서 창세기41:38절에 보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얻을 수 있느냐 이처럼 하나님의 신에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얻을 수 있느냐”정치적으로 가장 높은 왕의 자리에 있는 바로 왕이, 노예 되고 포로 되어서 감옥에 있던 사람 요셉을 바라보면서, 형들에게 팔려서 감옥에 있는 사람 이 요셉을 바라보면서 바로 왕이 한 이야기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요셉은 영적인 서밋의 자리에 섰던 사실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지요. 신명기34장에 마지막 마무리를 하면서 이 땅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없었더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모세조차도 영적 서밋의 자리에 있었던 사실들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지요. 모세의 뒤를 이은 여호수아, 여호수아1:5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했습니다.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이 하겠다”말씀했습니다. 영적 서밋의 축복을 여호수아에게 허락하셨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다윗이 이 영적 축복의 누렸고요, 사무엘의 말 한마디 땅에 떨어지지 않는 축복, 영적 서밋의 축복을 누렸고요, 엘리야를 따르는 엘리사 선지자가 마지막까지 제대로 구했습니다. 자기에게 필요한 것은 영적 서밋의 축복인 것을 알았어요. 그래서 엘리사가 엘리야에게 요구한 것은 열왕기하2:9~11절에 보면 “당신에게 있는 성령의 갑절이 내게 있길 원하나이다”영적 서밋의 축복을 원했던 사실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먼저 영적인 정상에 서는 영적 서밋의 축복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하시고 당연히 하나님의 자녀에게 이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권한이 있다 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특별히 이 영적 서밋의 축복은 무엇입니까? 이것은 한마디로 말하면 성령충만함 속에 내가 들어가는 겁니다. 성령의 역사들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 하셨잖아요. 그 성령의 약속을 따라서 성령충만함을 누리게 되면 우리의 삶 속에 임마누엘이 나타나게 됩니다. 지식적인 임마누엘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통해서 임마누엘 하는 것이 보여지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찬양대 찬양처럼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보고 주를 보는 역사가 나타나게 된다라는 사실이예요. 그게 우리의 삶 속에 나타나는 임마누엘입니다. 영적 서밋에 서게 되면 이 축복이 나오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요셉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요셉이 어려움을 당하고 문제를 당했을 때 그 어려움과 문제를 참고 인내했기 때문에 복을 받았다가 아니라 창세기39:2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으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3절에 보면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함께 하심을 보았더라”말씀했습니다. 삶 속에 나타난 임마누엘이지요. 그냥 단순히 지식적인 성령충만함, 지식적인 임마누엘이 아니라 내가 영적인 서밋의 자리에 섬으로 말미암아 내 삶을 통해서 나타나는 임마누엘, 바로 보디발이 요셉을 보면서 여호와께서 함께 하심을 보았더라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현장에 지금 필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그래서 기어코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이 축복을 주실 것입니다. 조금만 영적인 사실들 가지고 기도하면 됩니다. 특별히 정말 우리가 영적 서밋에 서게 되면 그를 통해서 모든 사람을 살리게 되는데 먼저 영적 서밋에서 모든 사람을 살리기 전에 나를 살리는 축복과 함께 그 속에서 형통함의 비밀들이 보여져야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우리 자신을 어떻게 살립니까? 여러분 조금만 하루하루 삶 속에서 집중하는 시간들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말하는 집중은 뭐냐? 하나님을 향하여 내 마음의 중심을 세워나가는 것을 가지고 집중이라고 합니다. 지금 이 시대는 집중할 수 없는 시대예요.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분열되어지는데 마음도, 생각도, 영도 분열되고 있어요. 그래서 가면 갈수록 정신 분열증들이 늘어나고 있고요, 집중이 안 되어지니까 사람들이 어디에 빠지느냐? 집착에 빠져가지고 집착의 결과로 결국은 가면 갈수록 모든 사람들이 중독에 빠지지 않으면 안 되는, 한마디로 말하면, 세상적인 말로 말하면 어느 곳에나 하나 미치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시대를 당했어요. 이런 시대 속에서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을 향해서 내 마음의 중심을 세워나가는 이 집중의 시간, 이게 조금만 되어지게 될 때에 여기에 나를 살리는 축복이 먼저 있게 될 것입니다. 나를 살리는 축복과 함께 그게 나타나는 응답의 결과가 형통함의 비밀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여 내 마음의 중심을 세워나가는 집중, 이 일을 위해서는 여러분 아침에 일어나서요 눈 뜨자 마자 여러분 자신을 축복하세요. 여러분 자신을 고백하시고요, 나는 하나님의 자녀요, 성령이 나와 함께 하시고 나는 세계복음화 할 사람이고, 오늘도 내 현장을 하나님이 축복하실 것이다고 고백하세요. 자기 자신을 축복하세요. 자기 자신을 놓고 고백하시고요, 시5:3절에 보면 다윗이 아침에 주께 기도한다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자말자 우리 자신들이 우리 자신을 놓고 오늘도 하루를 또 시작해야 하나 그렇게 짜증내지 마시고 새로운 날을 허락하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새 응답을 약속해 놓았기 때문에 새로운 날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오늘 이 한날 내게 주실 축복이 무엇입니까? 나는 하나님의 축복 받은 사람인데, 하나님의 성령이 나와 함께 하는 사람이고, 나는 세계복음화 할 사람인데 오늘도 내 모든 걸음 속에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아침에 하루를 시작하면서 5분이라도 축복의 역사들을 가지고 고백하고 축복을 선언하세요. 그리고 잠자리에 들기전에 시편 17편3절에 보면 다윗이 “밤에 여호와께서 나를 감찰하시나이다”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루의 일과를 마무리하면서 여러분 삶을 놓고 정리하고요 감사하면서 하나님의 계획을 찾고 뿌리내릴 수 있는 그 시간들 가지고요, 그리고 낮에는 시편23편에 나오는 말씀처럼 낮에는 순간 순간 하나님의 계획을 붙잡고 그것이 우리의 체질되어지도록 그러면 아침과 밤 시간을 이용하고 낮 시간에 순간 순간 하나님의 언약을 붙잡게 될 때 그게 이루어지고 그게 연결되어 하나님께 집중되어지는 24시의 응답 속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게 25시 하나님의 역사가 내 삶 속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형통함의 축복이 누가 봐도 아 ! 이게 하나님의 역사구나 이것들이 보여지는 형통함의 축복이 나타나게 되어 있어요. 분명히 하나님은 불신자들이 볼 수 있게끔 저와 여러분을 축복하실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먼저 나를 살리세요. 무엇을 가지고? 영적인 부분에 조금만 집중해서 나감으로 말미암아 나를 살려야 합니다. 오늘 읽지는 않았습니다마는 요셉에게 주었던 축복이 이 부분입니다. 보디발이 요셉을 바라보면서 요셉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봤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면 22절에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보면서 고백한 내용입니다. 한번 보십시다. 오늘 21:22절에 보면 “그 때에 아비멜렉과 군대장관 비골이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이것을 불신자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봤다는 거예요. 그런데 사실은 아브라함의 삶을 아비멜렉이 이미 잘 알고 있잖아요. 그런데 그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에게 이런 고백을 했어요.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26장에도 보면 이삭에게도, 사실 이삭도 보면, 그 본문에 보면 제 아비를 꼭 닮았습니다. 닮지 말아야 할 부분을 꼭 닮았습니다. 부전자전일까요? 아버지가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삭조차도 또 아버지처럼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런데 거기에서도 또 아비멜렉과 그 친구 아훗삿과 비골이 이 이삭에게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똑같은 고백을 하는 것을 봅니다. 26장 29절에 보면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을 봅니다. 오늘 사실 아브라함도 아비멜렉을 통해서 그렇게 고백을 듣게 됩니다. 바로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사실은 아브라함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아비멜렉이 알고 있었습니다, 사실은.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의 아내를 취하려 하다 벌을 받게 됩니다. 아비멜렉의 집안의 모든 여자의 태가 닫히는 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비멜렉에게 미리 나타나서 대신 이야기를 해 주십니다. 아브라함이 이야기한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직접 아비멜렉에게 이야기하는데 창세기 20장, 지난주에ㅔ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7절에 보면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아브라함에 대한 이야기를 아비멜렉에게 하나님이 가르쳐줍니다. 그는 선지자다. 그러면서 결국은 또 아비멜렉에게 이야기하기를 반드시 그 아브라함의 기도를 통해서 네가 복 받게 될 것이다, 이야기합니다. 아비멜렉이 보면 도저히 이해가 안 됩니다. 계속해서 실수만 하는데. 그런데 사실은 그 실수와 상관 없이 하나님은 누구를 축복하셨느냐? 아브라함을 축복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모든 삶을 통해서 아비멜렉에 본 것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조금만 누리고 우리의 삶이 복음 중심으로 선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삶을 축복하시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이 복음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니까 불쌍한 것은, 믿지 못하는 사람들, 불신자들이 어려움을 당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어마어마한 복음의 축복, 이 사실을 누리지 못하니까 오늘 본문에 있는 아비멜렉, 우리에게 대표적으로 보여준 것 아닙니까? 믿지 않는 불신자들이 오히려 어려움을 당합니다. 아브라함의 실수를 통해서도 하나님은 오히려 그것을 통해서 축복하시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 실수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그런데 어떻든 하나님의 언약 가진 백성은 하나님이 끝까지 지키시고 보호하신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건 속에서 결국 아비멜렉과 아브라함이 언약을 맺는데 아브라함이 자기 암양 새끼 일곱 마리를 갖다 줍니다. 그리고 땅과 우물을 취하게 됩니다. 그 지역 이름을 가지고 오늘 성경에 보면 ‘브엘세바’라 이야기합니다. 브엘세바. 약속을 맺게 됩니다. 아브라함과 아비멜렉이 약속을 맺게 되는데 아비멜렉이 제안합니다. 네 우물을 내가 줄 테니까 네가 나와 우리 후대들을 잘 봐 달라고 23절에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아브라함과 아비멜렉 가운데 언약이 세워지는데 그 언약의, 맹세의 우물이라는 뜻을 가진 브엘세바, 그 지역에서 언약이 이루어집니다. 브엘세바. 맹세의 우물이라는 사실. 여기 ‘세바’라는 말이 맹세라는 말이고 ‘브엘’이라는 말은 우물입니다. 바로 아브라함이 자기 암양 새끼 일곱 마리를 주면서 그 땅을 취하게 되고 그 우물을 취하게 되는데 거기에 약속이 맺어집니다. 그 땅에서 결국, 브엘세바 거기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삼대가 정착하게 되면서 정착의 주거지가 브엘세바가 됩니다. 저는 이 본문을 준비하면서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바로 이 브엘세바의 축복을 주시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붙잡았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아브라함은 나그네로서 돌아다녔는데 브엘세바에서 주인 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또, 브엘세바에서 결국 아브라함은 그 지역에서 주도적인 사람이 된 것입니다. 오늘 읽은 마지막 34절에 보면 “그가 블레셋 사람의 땅에서 여러 날을 지냈더라.” 사실은 블레셋 사람의 땅에서 여러 날을 지냈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그 블레셋 지역에 아브라함 때문에 분열이 없고 시비가 없고 전쟁이 없어지는, 재앙의 문제가 해결되는, 아브라함이 그 지역을 주도하는 역사를 감당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우리 현장에서 받아야 할 응답이 이 응답입니다. 여러분에게 있는 현장이 어떤 현장입니까? 어떤 현장입니까? 그 현장이 브엘세바의 현장이 되기를 바랍니다. 심지어 여러분, 나그네로 들어갔다 할지라도 거기 주인 되는 역사를 감당하는, 그 지역의 주도적인 사람이 되는 그 축복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시기를 원하시는 브엘세바의 축복, 이게 오늘 우리가 받아 누려야 할 축복입니다. 여러분, 왜세상에서 믿는 사람들, 성도들이 살아가기 힘듭니까? 아닙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그 현장이 브엘세바의 현장이 되도록 하면 되는 것입니다. 거기 또한, 오늘 다음에 보면 나오는데 에셀 나무를 심었다 했습니다. 그 에셀 나무는 믿음의 증표를 붙잡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내가 브엘세바의 현장이 되게 하고 거기서 믿음의 증표를 붙잡게 되면 그 현장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축복의 현장인 것을 알게 됩니다. 어렵게 살아가는 현장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고민하는 현장이 아니라 오히려 그 축복을 누리는 현장이 될 것입니다. 사실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서 오늘 본문에 에셀 나무를 심었다고 33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셀 나무를 심고.” 무슨 말입니까? 아브라함은 실수하고 연약하고 모자라고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계속해서 축복하셨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나무를 심었는데 그게 에셀 나무입니다. 자기는 여지없이 모자라고 부족한데, 너무나 연약한데, 가는 곳마다 실수만 하는데 하나님이 자기에게 은혜 주셨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 말해서 지금 말로 하면 기념식수를 한 것입니다. 그게 에셀 나무를 심은 것입니다. 그 에셀 나무를 심어서 약속을 맺는데 거기 보면 아비멜렉 왕과 군대 장관이 와서 항복하게 되고 그리고 자기 자신들과 자기 후대들을 선대해 줄 것을 이야기하면서 아브라함이 그 말을 듣고 약속을 맺게 됩니다. 그런 가운데서 아브라함이 깨달은 것이 무엇입니까? 아, 나는 전혀 힘이 없지만 힘이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결국은 원수조차도 우리의 발 앞에 무릎 꿇게 만들고 굴복시키는 것이구나, 이 사실을 깨닫고 에셀 나무를 심은 것입니다. 여러분, 힘을 내지 않아도 언약 가진 저와 여러분이 가는 걸음 속에 원수들이 굴복하는 역사가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이 사실을 알고 브엘세바에서 아브라함이 에셀 나무를 심은 것입니다. 여러분, 에셀 나무는 그 당시에 생명력이 가장 왕성하고 풍성한 것이 에셀 나무입니다. 1년 내내 시들지 않고 마르지 않는 나무가 에셀 나무라고 합니다. 이 에셀 나무는 뿌리를 30미터 땅 밑으로 두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가뭄이 들고 땅이 마른다 할지라도 그 근본 뿌리에 물이 차고 넘치기 때문에 나무는 마르지 않는, 죽지 않는 나무가 에셀 나무라 이야기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하나님의 언약이 계속되는 사실을 에셀 나무를 심음으로 말미암아 증표로 붙잡은 것입니다. 비록 아브라함은 모자라고 연약하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계속되고 있다는 것, 그 하나님의 은혜 앞에 원수조차도 굴복하는, 그 축복의 역사를 기념하기 위해서 이 에셀 나무를 심은 사실을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너무나 빨리 잊어버리지 않습니까? 아브라함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자, 그 증표로 삼기 위해서 에셀 나무를 심은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모든 현장이 브엘세바의 현장이 되기를 바라고 그 브엘세바에서 여러분, 믿음의 증표를 남기는 축복된 응답이 여러분의 삶 속에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특히 여러분, 우리가 믿음의 증표, 에셀 나무를 심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얼마만큼 이 복음의 가치를 내가 알고 있는가 한 번쯤은 고민해봐야 합니다. 정말로 내 후대에까지도 이 믿음의 증표를 남길 수 있도록 그 복음의 가치를 내가 알고 있는가, 이 사실에 대한 고민을 한 번 해 봐야 합니다. 내가 정말로 복음의 가치를 어느 정도 알고 있는가? 오늘 아브라함은 실수와 연약함과 상관 없이 하나님의 은혜로 이끌어진 사실을 깨달으면서, 또 원수조차도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 앞에 굴복하는 역사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너무나 쉽게 그 은혜를 잊어버리는데 그 은혜를 잊지 않고자 에셀 나무를 심음으로 말미암아 그 언약이 계속되도록, 그 사실을 바라봄으로 말미암아 그 언약을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에셀 나무를 심었다는 것. 여러분, 특히 이번 여름 현장, 우리 후대들, 렘넌트 현장에 이 믿음의 증표, 에셀 나무를 심는, 그런 축복된 역사가 저와 여러분을 통해서 현장에 이루어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성도를 축복 하시는 기준
두 번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분명히 불신자들이 보도록 축복하시는데 어느 정도로 축복하시느냐, 그 축복의 기준입니다. 성도를 축복하시는 기준입니다. 분명히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시는데 먼저 하나님의 축복하심을 누리기 전에 여러분, 먼저 복음을 이해해야 합니다. 여러분, 복음을 이해해야 합니다. 복음을 이해한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여러분, 우리가 그냥 기도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주일날 강단을 통해서 하나님이 말씀을 주시지 않습니까? 그 말씀을 받을 때에 그냥 말씀을 받지 마시고 그 말씀을 가지고 한 주간 여러분 현장에서 기도할 수 있는 제목으로 잡을 수 있는 말씀을 잡아야 합니다. 6일 동안 여러분이 있는 현장에서 강단 말씀 가지고 기도할 수 있는 제목을 붙잡아야 합니다. 이것을 가지고 복음 깨달은, 복음 붙잡은 기도 속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이렇게 될 때 성령충만함이 임하게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 그냥 예배드릴 것이 아니라 예배 시간시간, 모든 모임모임, 시간시간마다 말씀이 주어질 때 그 말씀을 통해서 내가 한 주간 현장에서 기도할 수 있는 제목들을 붙잡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 붙잡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복음 깨달은 기도입니다. 복음 붙잡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한주간의 삶의 현장에서 어떤 응답이 오느냐? 정확하게 말씀대로 나의 삶을 인도해나가시는 사실이 체험되게 되어 있습니다. 이걸 가지고 성령의 인도라 이야기합니다. 여러분, 성령의 인도는 뭐냐? 말씀대로 내 삶을 하나님이 인도해나가시는구나, 이 사실을 현장을 통해서 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의 인도입니다. 우리의 마음도, 생각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끌어 가십니다. 현장에 가니까 정확하게 맞아떨어집니다. 이게 성령의 인도입니다. 그러니까 내 마음과 생각을 하나님 말씀대로 인도해나가시면서 현장을 통해서 그게 확인되니까 우리에게 뭐가 생깁니까? 힘이 생깁니다. 그 힘이 생기게 되면 결국은 우리의 환경과 조건, 상관 없게 됩니다. 어떤 환경과 조건이라도 상관 없게 됩니다. 왜냐? 내게 힘이 있으니까요. 그걸 넘어설 수 있는, 환경과 조건을 넘어설 수 있는 축복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힘 속에서 나옵니다. 그리고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아무도 무너뜨릴 수 없는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가 내 삶에 나타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고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보이고 나타나게 됩니다. 이것을 가지고 성령의 교통함이라 이야기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말씀을 통해서 깨닫게 되고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무너뜨릴 수 없는, 아무도 막을 수 없는 하나님의 역사가 내 삶에 나타나고, 그로 말미암아 만나는 사람 가운데 내가 현장에 들어가니까 하나님이 성령의 교통함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그 축복의 역사들이 다른 사람에게 전달됩니다. 이 상태를 가지고 복음에 뿌리를 내렸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먼저 복음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 복음을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시작이 강단의 말씀을 붙잡고 한 주간 기도할 수 있는 제목들 잡으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말씀대로 인도하시는 사실이 보이고 그 속에서 힘을 얻게 되면 사람과 환경이 상관 없게 됩니다. 그리고 내 모든 삶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남과 더불어 모든 만남 속에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그 관계를 누리게 됩니다. 그게 복음에 깊이 뿌리를 내린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뿌리내리면 열매는 저절로 맺히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 생활은 복음에 뿌리를 내림으로 말미암아 되어지는 것이 신앙 생활입니다. 내가 몸부림치면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요한복음 15장 7절에 보면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했습니다. 우리가 깊이 뿌리내리면 그 속에서 열매는 나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복음에 뿌리를 내리면 내릴수록 가장 중요한 응답은 내가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살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악한 사단이 우리를 건드리지 못하게 됩니다. 왜냐? 하나님이 우리를 붙잡고 있기 때문에. 믿습니까? 하나님의 손에서 누가 우리를 빼앗아갈 것입니까? 내가 복음을 이해하고 복음에 뿌리를 내리면 내릴수록 먼저 내게 주신 축복이 임하게 되는데, 내가 살아남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살리게 되는데 내게 임한 축복이 무엇이냐? 아무도 악한 사단이 우리를 망하게 할 수 없는, 우리를 실패시킬 수 없는, 왜냐?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붙잡고 있기 때문에 분명히 말씀하고 있잖아요. 누가 주의 손에서 우리를 빼앗을 자 있느냐 말씀하고 있잖아요. 그 어떤 것도, 주님의 손에서 우리를 빼앗을 자가 없는 겁니다. 그리고 여러분, 우리는 환경이 좋아야 한다. 환경이 좋아야 한다. 그렇게 얘기합니다만 틀린 말입니다. 정말로 하나님이 우리를 붙잡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로 말미암아 우리가 들어가는 현장에 조건과 환경이 만들어지게 되어있습니다. 아무리 안 좋은 조건과 환경이라 할지라도 이제부터는 원망하지 말고 핑계하지 마세요. 하나님은 여러분을 통해서 환경과 조건을 만들어 가시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그 축복을 주시길 위해서 우리에게 복음을 주신 거예요 사실은. 그래서 어떤 환경과 조건도 상관없다라는 것 왜냐, 나로부터 세상이 복 받게 되어있기 때문에, 나로부터 모든 환경이 살아날 것이기 때문에 나로부터 모든 사람이 살아날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나를 살리는 축복을 누리게 되고요 그다음에 내가 살아난 만큼 내가 가장 가까이 있는 우리 가정이 복을 받게 됩니다. 사도행전 16장 31절에, “주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했어요. 여러분이 복음 가지고 여러분 가정에 들어가게 될 때에 가정에 영향을 주게 되어있어요. 복음 가진 사람이 가정에 있다, 가만히 있어도 복음의 영향력을 나타나게 되어있다는 사실이에요.
여러분, 지난주일 까지 금요일 날 두 주간에 걸쳐서 산업인 중심으로 산격중학교에 들어갔잖아요. 그런데 구체적으로 복음 전한다. 복음 설명한다. 보다도, 어떤 전문 사역을 가지고 그들을 돕는 자리에 들어갔어요. 밤에, 근데 그게 응답으로 오는데, 많은 교사 분들이 학생들이 너무 좋아하고 교사 분들이 이것 계속 해 줄 수 없느냐? 다른 학교까지 연결해서 계속 해 줄 수 없느냐 제가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당연한 것 아닌가? 말을 해서 전달된 것이 아니라 말을 해서 전달된 것이 아니라 말 하지 않아도 복음 가진 사람이 현장에 들어가면 그 영향은 나타나게 되어있거든요 여러분, 복음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정에 들어가면 가정이 바뀝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아, 하나님이 나를 축복하셔서 결국, 나를 이 가정에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처럼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셨구나, 이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혹여나 여러분 가정이 다 믿는 사람입니까? 그렇다면 은 여러분을 통해서 그 가정 속에 요셉처럼 복음화가 이루어지는 그런 축복된 응답을 주실 것입니다. 이게 가정을 통해 주시는 응답이에요 그뿐만 아닙니다. 나로 말미암아 가정이 살아날 뿐만 아니라, 내가 몸담고 있는 지역과, 이 땅과 이 민족이 살아나는 축복을 주시게 되어있어요. 그래서 여러분 사람관계, 하나님이 여러분 때문에, 인간관계도 축복하시게 되어있어요 한 가지, 기도 속에서 인간관계를 유지하시기를 바랍니다. 분명히 사람관계 사람과 사람관계, 하나님이 여러분 때문에 그 사람도 축복하시게 되어있다는 사실. 그래서 내가 속한 지역이 나로 말미암아 복을 받아야 되는 것이고요 이 땅과 이 민족이 복음 가진 우리로 말미암아 살아나야 됩니다. 그게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의 기준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결국은 나를 축복해서 가정과 이 땅과 이 민족을 살릴 뿐만 아니라, 열방을 살리는 축복을 주실 겁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땅 끝까지 이르라 내 증인이 되리라” 열방이 나로 말미암아 살아난다는 사실입니다. 세계 복음화 그 축복의 응답을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이 축복을 누리기 위해서 빨리 회복해야 될 것이 있어요. 지금 당장 회복해야 될 것이 있는데 그게 뭡니까? 우리에게 주신 신분과 권세가 무엇인지 알고 누리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주신 신분은 뭡니까? 성령께서 우리와 동행 하십니다. 믿습니까? 분명히 구원받은 내게 성령께서 내주하고 계시고요. 구원받은 나의 삶을 성령께서 인도 하시고 내가기도 할 때마다 성령께서 역사하십니다. 그 성령의 내주 인도 역사하심을 가지고 한단어로 말하면, 성령의 동행하심이다 이야기 합니다. 이게 우리에게 주신 신분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동행하시는 사람들이 나가는 걸음에 하늘 군대가 동원되게 되어있어요. 거기에 악한 사탄, 흑암의 세력들이 결박되게 되어있고 성경에 보면 은 누가복음 10장 19절에 “뱀과 전갈을 밟으며 모든 원수의 능력을 제할 권세를 주었다” 말씀했잖아요. 그리고 우리의 나가는 모든 걸음에 하늘 보좌의 축복이 임하게 됩니다. 왜냐, 우리의 배경이 하늘 보좌기 때문에 하늘 시민권이기 때문에, 반드시 전도로 말미암아 우리나가는 모든 걸음에 모든 문제를 해결 하도록 되게 되어있어요. 이 땅에 모든 문제는 전도운동이 일어나야 해결됩니다. 다실 말하면 진짜 문제는 전도가 되게 되면 은 이 땅에 문제는 해결됩니다. 그 축복의 사람으로 저와 여러분을 부르시고, 그 축복가운데 우리를 세우셨어요. 그래서 우리가 진짜 성도에게 주신 축복의 기준, 나를 살리고, 가정을 살리고, 지역과 민족 살리고 세계 살리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 이 일을 위해서 우리에게 주신 신분과 권세를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신분과 권세를 우리가 알고 있는데 잘 안 돼요. 왜 안 되느냐? 확신이 없어서 그래요 그래서 여러분, 정말로 확신 가져야 될 것은 뭐냐? 그 어떤 문제와 사건 있다 할지라도 나는 망할 수 없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구원받은 구원의 확신 축복 누리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어떤 자리에 있던지 간에 여러분 그것은 상관없어요. 나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 이 사실 깨달으시고 이 사실 누리면 되고요 구원받은 하나님 자녀, 반드시 하나님은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기도에 응답받으면 능력이 생기잖아요. 그리고 그 뿐만 아닙니다. 구원받은 하나님 자녀는 반드시 멸망의 세력이 우리를 이기지 못하는 승리의 역사를 보장하고 있어요. 그래서 승리의 확신을 가져야 되고요. 우리가 육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연약해서 죄 가운데 자꾸 빠지는데 상관없어요. 우리의 모든 죄조차도 이미 그리스도 깨서 십자가에서 다 끝냈어요. 사죄의 확신가운데 들어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그리스도께서 지금도 나를 도와주신 것이 아니라, 직접 나를 인도 하십니다. 그냥 도우 시는 분이 아니라요 직접 나의 삶을 인도하시는데 내 안에 들어오셔서 나를 인도하시는데 그것도 앞서서 나를 인도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인본주의 쓰지 말라는 거예요. 왜냐? 나를 그냥 도우 시는 것이 아니라 분명히 주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기 때문에, 직접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기 때문에 그것도 앞서서 인도하시기 때문에 여러분 인본주의 쓰면 쓸수록 손해에요 여러분 인본주의 쓰면 잘되는 것 같죠 물론 인본주의 쓰면 어느 정도 됩니다. 응답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런데 인본주의 쓰면 쓸수록 결국은 다른 것이 각인됩니다. 다른 것이. 그리고 하나님이 인도하심과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는 그 지름길이 하나님의 축복 속에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것인데 그 길을 잃어버리게 되요. 그런 가운데, 결국은 나 중심에서 세상 중심에서 물질 중심으로 나가기 때문에 그 것 속에서 나오는 결과는 반드시 망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인본주의를 쓰지 말라는 겁니다. 왜 인본주의 쓰느냐? 몰라서 그래요 하나님 직접 우리의 삶속에 인도하시는 그것도 앞서서 인도 하시는 그 사실을 몰라서 그래요. 구약성경에 미가서 2장에 보면요 12절, 13절 중요한 말씀을 하고 있는데 13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선두로 나가리라”했어요 우리의 모든 삶 속에서 하나님이 선두로 나가시는 그 축복의 역사들을 우리에게 주신다. 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직접적인 우리의 삶속에 인도 하시는 이 축복 가운데 저와 여러분들이 들어가기를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아브라함이 브엘세바에서 에셀 나무를 심었다 했습니다. 여기에 에셀 나무를 심었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바로 여생에 모든 삶속에서 결국은 믿음의 증표를 보인 것입니다. 내가 믿음으로 살겠습니다. 그 증표를 보이는 그게 바로 에셀 나무를 심은 겁니다. 여러분 우리의 현장이 어떤 현장입니까? 그 현장이 여러분 때문에 여러분이 그 지역 현장을 장악하는 브엘세바의 현장이 되기를 바라고요. 그 브엘세바의 현장에서 여러분 후대들에게 믿음의 증표를 보이길 바랍니다. 지역에 믿음의 증표가 필요합니다. 이 세계에 믿음의 증표가 필요합니다. 그래야 후대들이 살아나고 지역이 살아나고 세계가 살아나요. 특별히 이번 여름에 많은 수련회들이 있고, 또 이번 주부터 리더수련회와 세계 렘넌트 대회가 있습니다. 우리 어른들이 뭐냐? 믿음의 증표를 심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에셀 나무를 심는 겁니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 후대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이 축복 가운데 쓰임 받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와 영광을 주앞에 드립니다. 언약의 백성으로 하나님이 우리 속에 언약을 담아 주시고 우리의 모든 삶의 현장을 브엘세바의 축복을 누리는 귀한 역사가운데 세워주심을 감사함을 드립니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걸음걸음 마다 정말 믿음의 증표를 보이는 정말로 에셀나무를 심는 역사들이 오늘부터 시작되어질 수 있도록 주께서 역사하여 주옵소서. 그로 말미암아 우리 후대들이 살아나고 이 땅과 이민족이 살아나는 귀한 증거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살아계신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2017년 7월 23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브엘세바에서 에셀나무를 심다
(창21:22-34)
서론: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갈등을 합니다(세상 사람들과 어울림, 경건하게 사는 삶). 그래서 이중적인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 이 전에 내가 누구인가?를 알게 되면 무엇을 할 것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이 나오게 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세상의 빛, 세상의 소금, 나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복을 받도록 부르셨습니다(세상 문제를 해결 하는 자). 우리를 당연히 축복 하실 수 밖에 없고 주신 축복을 누려야 합니다.
1. 성도가 축복 받는 것을 불신자가 보게 됨
가.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음 - 영적서밋의 축복(행1:8)
요셉(창41:38 하나님의 영에 감동 된 자), 모세(신34:10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 함), 여호수아(수1:5 너를 대적할 자가 없음),
사무엘(삼상3:19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음), 엘리사(왕하2:9-11 갑절의 영감)
나. 성령충만을 누림 - 삶 속에서 임마누엘이 충만해 지는 것
1) 나를 살리는 축복 - 집중의 시간(시5:3 - 아침에 나를 축복, 시17:3 - 밤에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
시23편 - 낮에 하나님의 계획이 체질 되도록), 24, 여유
2)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함께 함을 봄(창21:22) - 아비멜렉, 군대장관 비골
3) 복음의 축복을 조금만 누림
다. 약속을 맺은 아비멜렉과 아브라함 - 브엘세바(맹세의 우물)에서 언약을 세움
1) 에셀나무를 심음(믿음의 증표) -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음
2) 복음의 가치를 고민
2. 성도를 축복 하시는 기준
가. 복음을 이해 - 예배를 통해 말씀을 가지고 기도할 수 있는 제목들을 잡음, 말씀따라 성령의 인도(체험), 모든 사건과 사람이 상관 없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됨,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 보여짐(성령의 교통)
나. 하나님이 주신 축복
1) 개인이 살아나게 됨 - 하나님이 멸망 하지 않도록 우리를 붙잡고 계심(환경, 조건과 상관 없음)
2) 복음 가진 한 사람 때문에 가정에 복(행16:31)
3) 지역, 민족이 살아남 - 기도속에서 인간관계를 지속
4) 열방을 살리는 축복(행1:8) - 나를 통해 세계 민족이 복
다. 회복 할 것
1) 신분과 권세(성령 동행, 하늘 군대, 사단 결박, 하늘 보좌, 전도의 축복)
2) 가져야 할 확신(구원, 기도응답, 승리, 사죄, 인도)
3) 인본주의(다른 것 각인, 하나님의 인도와 역사를 모르게 됨, 나름대로 응답이 오지만 망함)를 버림
결론: 아브라함이 브엘세바에서 에셀나무를 심었습니다. 에셀나무를 심은 것은 믿음의 증표를 보인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지역 속에 에셀나무를 심고 후대들이 볼 수 있도록 믿음의 증표를 보여주시길 바랍니다. 이 축복 속에 쓰임 받으시길 바랍니다.
● 기도제목
● 말씀실현(실천사항)
● 전도대상자
“브엘세바에서 에셀나무를 심다”
(창21:22~34)
22 그 때에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이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23 그런즉 너는 나와 내 아들과 내 손자에게 거짓되이 행하지 아니하기를 이제 여기서 하나님을 가리켜 내게 맹세하라 내가 네게 후대한 대로 너도 나와 네가 머무는 이 땅에 행할 것이니라
24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맹세하리라 하고
25 아비멜렉의 종들이 아브라함의 우물을 빼앗은 일에 관하여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을 책망하매
26 아비멜렉이 이르되 누가 그리하였는지 내가 알지 못하노라 너도 내게 알리지 아니하였고 나도 듣지 못하였더니 오늘에야 들었노라
27 아브라함이 양과 소를 가져다가 아비멜렉에게 주고 두 사람이 서로 언약을 세우니라
28 아브라함이 일곱 암양 새끼를 따로 놓으니
29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일곱 암양 새끼를 따로 놓음은 어찜이냐
30 아브라함이 이르되 너는 내 손에서 이 암양 새끼 일곱을 받아 내가 이 우물 판 증거를 삼으라 하고
31 두 사람이 거기서 서로 맹세하였으므로 그 곳을 브엘세바라 이름하였더라
32 그들이 브엘세바에서 언약을 세우매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은 떠나 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돌아갔고
33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 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원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34 그가 블레셋 사람의 땅에서 여러 날을 지냈더라
창21:22~34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십시다. 오늘도 우리 안에 생명으로 충만한 시간이 됨으로 말미암아 온 땅이 저와 여러분을 바라보면서 주를 보는 그런 축복의 증거의 시간들 될 것입니다. 이 축복을 누리는 귀한 시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많은 성도들이 갈등들을 하고 있는 것들 가운데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하는 갈등들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세상 속에 들어가서 살려고 하니까 세상과 동화되어 버리고 또 세상과 친화되어 지는 그런 부분들 속에서 오는 갈등들이 있고요, 또 경건하게 살고자 하면 할수록 뭔가 세상을 등져야 하고 그와 더불어 세상 속에서, 현장 속에서 바보 취급을 당하는 그런 부분들을 보니까 거기서 오는 이중적인 생활들을 할 수 밖에 없는 이런 부분들을 보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그 이전에 중요한 것이 내가 누구인가입니다. 내가 누구인가를 알게 되면 그 속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답이 나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먼저 결론적으로 말씀 드린다면 여러분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내가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 거기에 대한 축복의 답을 오늘 제목을 가지고 붙잡으면 됩니다. “브엘세바에서 에셀나무를 심다”이것이 우리의 현장을 정복하는 비밀입니다. 이 축복의 비밀을 가지면 모든 현장들을 살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지금 보십시오. 어떤 면에서 웰빙 역풍의 시대를 당하고 있는데 웰빙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이 말은 그 만큼 사람들이 가면 갈수록 병들어 가고 있다는 것이고, 또한 반면에 먹고 살만하니까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 무엇을 하며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 거기에 대한 관심들을 다 가지고 있다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시대마다 사람들마다 제일 인기 있는 책들이 있다면 자기계발서, 처세술 이런 것들입니다. 어떻게 살아가야 될 것인가 그런 내용들을 담고 있는 내용들이지요. 그런데 우리에게는 분명한 것은 내가 어떻게 살고, 무엇을 하면서 살아야 되는가 그 이전에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부분에 답을 먼저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불러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5:13~16절에 보면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여러분 이것은 우리의 신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신 말씀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않고 등경 위에 둔다 했습니다. 그래서 온 집안에 비친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않잖아요. 여기서 말하는 말은 우리가 곡식을 잴 때에 되로 재고 말로 재잖아요. 그 말입니다. 그러니까 곡식을 측량할 때 쓰임 받는 말입니다. 어느 누가 등불을 그 말 아래에 둡니까? 그러면 캄캄해서 빛이 비추어지지 않지요. 그 등불은 당연히 등잔위에 둡니다. 다시 말해서 등불을 등 받침대 위에 두게 됩니다. 그로 말미암아 온 집안이 환하게 비추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합니까? 결국 이 땅의 모든 문제들은 저와 여러분으로 말미암아 해결되어지는 그 축복을 주신다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겠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해서 이 땅의 모든 문제 해결자로 세우셨습니다. 그래서 그 모든 문제 해결자로 세우신 그 부분들을 하나하나 확인시켜 나가는 것이 지금 창세기의 아브라함의 사건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구원받은 저와 여러분을 통해서 우리의 가정과 지역과 민족, 세계를 살리시겠고 이 땅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언약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사명을 가지고 하나님의 축복을 누려야 됩니다. 또 당연히 여러분을 하나님이 축복하시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 여러분이 살아나야 여러분의 가정이 살아나고 여러분이 몸담고 있는 지역이 살아나고, 이 땅과 이 민족이 살아나기 때문에 하나님이 여러분을 축복하시게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이 사실들을 예배하는 가운데서 확인케 되어지는 그런 축복의 시간들 되시기를 다시 한번 더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성도가 축복받는 것을 불신자가 보게 됨.
그러면 먼저 첫 번째입니다. 성도가 축복받는 것을 불신자들이 보게 됩니다. 분명한 것은 이 축복의 역사들을 먼저 누리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먼저 하나님께서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약속하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서밋의 축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가장먼저, 동일하게 누구에게나 주신 축복입니다. 그것은 바로 영적 서밋의 축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약속하신 것이고요, 예수님께서도 마지막에 말씀하셨습니다. 행1:8절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영적 서밋의 축복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하나님 앞에 쓰임 받았던 사람들 하나하나 전부다 동일하게 영적 서밋의 축복의 응답을 누렸던 사실들을 보게 됩니다. 요셉, 불신자왕인 바로 왕이 요셉을 바라보면서 창세기41:38절에 보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얻을 수 있느냐 이처럼 하나님의 신에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얻을 수 있느냐”정치적으로 가장 높은 왕의 자리에 있는 바로 왕이, 노예 되고 포로 되어서 감옥에 있던 사람 요셉을 바라보면서, 형들에게 팔려서 감옥에 있는 사람 이 요셉을 바라보면서 바로 왕이 한 이야기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요셉은 영적인 서밋의 자리에 섰던 사실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지요. 신명기34장에 마지막 마무리를 하면서 이 땅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없었더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모세조차도 영적 서밋의 자리에 있었던 사실들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지요. 모세의 뒤를 이은 여호수아, 여호수아1:5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했습니다.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이 하겠다”말씀했습니다. 영적 서밋의 축복을 여호수아에게 허락하셨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다윗이 이 영적 축복의 누렸고요, 사무엘의 말 한마디 땅에 떨어지지 않는 축복, 영적 서밋의 축복을 누렸고요, 엘리야를 따르는 엘리사 선지자가 마지막까지 제대로 구했습니다. 자기에게 필요한 것은 영적 서밋의 축복인 것을 알았어요. 그래서 엘리사가 엘리야에게 요구한 것은 열왕기하2:9~11절에 보면 “당신에게 있는 성령의 갑절이 내게 있길 원하나이다”영적 서밋의 축복을 원했던 사실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먼저 영적인 정상에 서는 영적 서밋의 축복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하시고 당연히 하나님의 자녀에게 이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권한이 있다 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특별히 이 영적 서밋의 축복은 무엇입니까? 이것은 한마디로 말하면 성령충만함 속에 내가 들어가는 겁니다. 성령의 역사들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 하셨잖아요. 그 성령의 약속을 따라서 성령충만함을 누리게 되면 우리의 삶 속에 임마누엘이 나타나게 됩니다. 지식적인 임마누엘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통해서 임마누엘 하는 것이 보여지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찬양대 찬양처럼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보고 주를 보는 역사가 나타나게 된다라는 사실이예요. 그게 우리의 삶 속에 나타나는 임마누엘입니다. 영적 서밋에 서게 되면 이 축복이 나오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요셉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요셉이 어려움을 당하고 문제를 당했을 때 그 어려움과 문제를 참고 인내했기 때문에 복을 받았다가 아니라 창세기39:2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으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3절에 보면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함께 하심을 보았더라”말씀했습니다. 삶 속에 나타난 임마누엘이지요. 그냥 단순히 지식적인 성령충만함, 지식적인 임마누엘이 아니라 내가 영적인 서밋의 자리에 섬으로 말미암아 내 삶을 통해서 나타나는 임마누엘, 바로 보디발이 요셉을 보면서 여호와께서 함께 하심을 보았더라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현장에 지금 필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그래서 기어코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이 축복을 주실 것입니다. 조금만 영적인 사실들 가지고 기도하면 됩니다. 특별히 정말 우리가 영적 서밋에 서게 되면 그를 통해서 모든 사람을 살리게 되는데 먼저 영적 서밋에서 모든 사람을 살리기 전에 나를 살리는 축복과 함께 그 속에서 형통함의 비밀들이 보여져야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우리 자신을 어떻게 살립니까? 여러분 조금만 하루하루 삶 속에서 집중하는 시간들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말하는 집중은 뭐냐? 하나님을 향하여 내 마음의 중심을 세워나가는 것을 가지고 집중이라고 합니다. 지금 이 시대는 집중할 수 없는 시대예요.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분열되어지는데 마음도, 생각도, 영도 분열되고 있어요. 그래서 가면 갈수록 정신 분열증들이 늘어나고 있고요, 집중이 안 되어지니까 사람들이 어디에 빠지느냐? 집착에 빠져가지고 집착의 결과로 결국은 가면 갈수록 모든 사람들이 중독에 빠지지 않으면 안 되는, 한마디로 말하면, 세상적인 말로 말하면 어느 곳에나 하나 미치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시대를 당했어요. 이런 시대 속에서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을 향해서 내 마음의 중심을 세워나가는 이 집중의 시간, 이게 조금만 되어지게 될 때에 여기에 나를 살리는 축복이 먼저 있게 될 것입니다. 나를 살리는 축복과 함께 그게 나타나는 응답의 결과가 형통함의 비밀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여 내 마음의 중심을 세워나가는 집중, 이 일을 위해서는 여러분 아침에 일어나서요 눈 뜨자 마자 여러분 자신을 축복하세요. 여러분 자신을 고백하시고요, 나는 하나님의 자녀요, 성령이 나와 함께 하시고 나는 세계복음화 할 사람이고, 오늘도 내 현장을 하나님이 축복하실 것이다고 고백하세요. 자기 자신을 축복하세요. 자기 자신을 놓고 고백하시고요, 시5:3절에 보면 다윗이 아침에 주께 기도한다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자말자 우리 자신들이 우리 자신을 놓고 오늘도 하루를 또 시작해야 하나 그렇게 짜증내지 마시고 새로운 날을 허락하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새 응답을 약속해 놓았기 때문에 새로운 날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오늘 이 한날 내게 주실 축복이 무엇입니까? 나는 하나님의 축복 받은 사람인데, 하나님의 성령이 나와 함께 하는 사람이고, 나는 세계복음화 할 사람인데 오늘도 내 모든 걸음 속에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아침에 하루를 시작하면서 5분이라도 축복의 역사들을 가지고 고백하고 축복을 선언하세요. 그리고 잠자리에 들기전에 시편 17편3절에 보면 다윗이 “밤에 여호와께서 나를 감찰하시나이다”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루의 일과를 마무리하면서 여러분 삶을 놓고 정리하고요 감사하면서 하나님의 계획을 찾고 뿌리내릴 수 있는 그 시간들 가지고요, 그리고 낮에는 시편23편에 나오는 말씀처럼 낮에는 순간 순간 하나님의 계획을 붙잡고 그것이 우리의 체질되어지도록 그러면 아침과 밤 시간을 이용하고 낮 시간에 순간 순간 하나님의 언약을 붙잡게 될 때 그게 이루어지고 그게 연결되어 하나님께 집중되어지는 24시의 응답 속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게 25시 하나님의 역사가 내 삶 속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형통함의 축복이 누가 봐도 아 ! 이게 하나님의 역사구나 이것들이 보여지는 형통함의 축복이 나타나게 되어 있어요. 분명히 하나님은 불신자들이 볼 수 있게끔 저와 여러분을 축복하실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먼저 나를 살리세요. 무엇을 가지고? 영적인 부분에 조금만 집중해서 나감으로 말미암아 나를 살려야 합니다. 오늘 읽지는 않았습니다마는 요셉에게 주었던 축복이 이 부분입니다. 보디발이 요셉을 바라보면서 요셉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봤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면 22절에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보면서 고백한 내용입니다. 한번 보십시다. 오늘 21:22절에 보면 “그 때에 아비멜렉과 군대장관 비골이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이것을 불신자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봤다는 거예요. 그런데 사실은 아브라함의 삶을 아비멜렉이 이미 잘 알고 있잖아요. 그런데 그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에게 이런 고백을 했어요.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26장에도 보면 이삭에게도, 사실 이삭도 보면, 그 본문에 보면 제 아비를 꼭 닮았습니다. 닮지 말아야 할 부분을 꼭 닮았습니다. 부전자전일까요? 아버지가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삭조차도 또 아버지처럼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런데 거기에서도 또 아비멜렉과 그 친구 아훗삿과 비골이 이 이삭에게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똑같은 고백을 하는 것을 봅니다. 26장 29절에 보면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을 봅니다. 오늘 사실 아브라함도 아비멜렉을 통해서 그렇게 고백을 듣게 됩니다. 바로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사실은 아브라함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아비멜렉이 알고 있었습니다, 사실은.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의 아내를 취하려 하다 벌을 받게 됩니다. 아비멜렉의 집안의 모든 여자의 태가 닫히는 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비멜렉에게 미리 나타나서 대신 이야기를 해 주십니다. 아브라함이 이야기한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직접 아비멜렉에게 이야기하는데 창세기 20장, 지난주에ㅔ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7절에 보면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아브라함에 대한 이야기를 아비멜렉에게 하나님이 가르쳐줍니다. 그는 선지자다. 그러면서 결국은 또 아비멜렉에게 이야기하기를 반드시 그 아브라함의 기도를 통해서 네가 복 받게 될 것이다, 이야기합니다. 아비멜렉이 보면 도저히 이해가 안 됩니다. 계속해서 실수만 하는데. 그런데 사실은 그 실수와 상관 없이 하나님은 누구를 축복하셨느냐? 아브라함을 축복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모든 삶을 통해서 아비멜렉에 본 것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조금만 누리고 우리의 삶이 복음 중심으로 선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삶을 축복하시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이 복음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니까 불쌍한 것은, 믿지 못하는 사람들, 불신자들이 어려움을 당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어마어마한 복음의 축복, 이 사실을 누리지 못하니까 오늘 본문에 있는 아비멜렉, 우리에게 대표적으로 보여준 것 아닙니까? 믿지 않는 불신자들이 오히려 어려움을 당합니다. 아브라함의 실수를 통해서도 하나님은 오히려 그것을 통해서 축복하시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 실수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그런데 어떻든 하나님의 언약 가진 백성은 하나님이 끝까지 지키시고 보호하신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건 속에서 결국 아비멜렉과 아브라함이 언약을 맺는데 아브라함이 자기 암양 새끼 일곱 마리를 갖다 줍니다. 그리고 땅과 우물을 취하게 됩니다. 그 지역 이름을 가지고 오늘 성경에 보면 ‘브엘세바’라 이야기합니다. 브엘세바. 약속을 맺게 됩니다. 아브라함과 아비멜렉이 약속을 맺게 되는데 아비멜렉이 제안합니다. 네 우물을 내가 줄 테니까 네가 나와 우리 후대들을 잘 봐 달라고 23절에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아브라함과 아비멜렉 가운데 언약이 세워지는데 그 언약의, 맹세의 우물이라는 뜻을 가진 브엘세바, 그 지역에서 언약이 이루어집니다. 브엘세바. 맹세의 우물이라는 사실. 여기 ‘세바’라는 말이 맹세라는 말이고 ‘브엘’이라는 말은 우물입니다. 바로 아브라함이 자기 암양 새끼 일곱 마리를 주면서 그 땅을 취하게 되고 그 우물을 취하게 되는데 거기에 약속이 맺어집니다. 그 땅에서 결국, 브엘세바 거기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삼대가 정착하게 되면서 정착의 주거지가 브엘세바가 됩니다. 저는 이 본문을 준비하면서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바로 이 브엘세바의 축복을 주시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붙잡았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아브라함은 나그네로서 돌아다녔는데 브엘세바에서 주인 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또, 브엘세바에서 결국 아브라함은 그 지역에서 주도적인 사람이 된 것입니다. 오늘 읽은 마지막 34절에 보면 “그가 블레셋 사람의 땅에서 여러 날을 지냈더라.” 사실은 블레셋 사람의 땅에서 여러 날을 지냈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그 블레셋 지역에 아브라함 때문에 분열이 없고 시비가 없고 전쟁이 없어지는, 재앙의 문제가 해결되는, 아브라함이 그 지역을 주도하는 역사를 감당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우리 현장에서 받아야 할 응답이 이 응답입니다. 여러분에게 있는 현장이 어떤 현장입니까? 어떤 현장입니까? 그 현장이 브엘세바의 현장이 되기를 바랍니다. 심지어 여러분, 나그네로 들어갔다 할지라도 거기 주인 되는 역사를 감당하는, 그 지역의 주도적인 사람이 되는 그 축복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시기를 원하시는 브엘세바의 축복, 이게 오늘 우리가 받아 누려야 할 축복입니다. 여러분, 왜세상에서 믿는 사람들, 성도들이 살아가기 힘듭니까? 아닙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그 현장이 브엘세바의 현장이 되도록 하면 되는 것입니다. 거기 또한, 오늘 다음에 보면 나오는데 에셀 나무를 심었다 했습니다. 그 에셀 나무는 믿음의 증표를 붙잡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내가 브엘세바의 현장이 되게 하고 거기서 믿음의 증표를 붙잡게 되면 그 현장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축복의 현장인 것을 알게 됩니다. 어렵게 살아가는 현장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고민하는 현장이 아니라 오히려 그 축복을 누리는 현장이 될 것입니다. 사실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서 오늘 본문에 에셀 나무를 심었다고 33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셀 나무를 심고.” 무슨 말입니까? 아브라함은 실수하고 연약하고 모자라고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계속해서 축복하셨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나무를 심었는데 그게 에셀 나무입니다. 자기는 여지없이 모자라고 부족한데, 너무나 연약한데, 가는 곳마다 실수만 하는데 하나님이 자기에게 은혜 주셨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 말해서 지금 말로 하면 기념식수를 한 것입니다. 그게 에셀 나무를 심은 것입니다. 그 에셀 나무를 심어서 약속을 맺는데 거기 보면 아비멜렉 왕과 군대 장관이 와서 항복하게 되고 그리고 자기 자신들과 자기 후대들을 선대해 줄 것을 이야기하면서 아브라함이 그 말을 듣고 약속을 맺게 됩니다. 그런 가운데서 아브라함이 깨달은 것이 무엇입니까? 아, 나는 전혀 힘이 없지만 힘이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결국은 원수조차도 우리의 발 앞에 무릎 꿇게 만들고 굴복시키는 것이구나, 이 사실을 깨닫고 에셀 나무를 심은 것입니다. 여러분, 힘을 내지 않아도 언약 가진 저와 여러분이 가는 걸음 속에 원수들이 굴복하는 역사가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이 사실을 알고 브엘세바에서 아브라함이 에셀 나무를 심은 것입니다. 여러분, 에셀 나무는 그 당시에 생명력이 가장 왕성하고 풍성한 것이 에셀 나무입니다. 1년 내내 시들지 않고 마르지 않는 나무가 에셀 나무라고 합니다. 이 에셀 나무는 뿌리를 30미터 땅 밑으로 두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가뭄이 들고 땅이 마른다 할지라도 그 근본 뿌리에 물이 차고 넘치기 때문에 나무는 마르지 않는, 죽지 않는 나무가 에셀 나무라 이야기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하나님의 언약이 계속되는 사실을 에셀 나무를 심음으로 말미암아 증표로 붙잡은 것입니다. 비록 아브라함은 모자라고 연약하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계속되고 있다는 것, 그 하나님의 은혜 앞에 원수조차도 굴복하는, 그 축복의 역사를 기념하기 위해서 이 에셀 나무를 심은 사실을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너무나 빨리 잊어버리지 않습니까? 아브라함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자, 그 증표로 삼기 위해서 에셀 나무를 심은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모든 현장이 브엘세바의 현장이 되기를 바라고 그 브엘세바에서 여러분, 믿음의 증표를 남기는 축복된 응답이 여러분의 삶 속에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특히 여러분, 우리가 믿음의 증표, 에셀 나무를 심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얼마만큼 이 복음의 가치를 내가 알고 있는가 한 번쯤은 고민해봐야 합니다. 정말로 내 후대에까지도 이 믿음의 증표를 남길 수 있도록 그 복음의 가치를 내가 알고 있는가, 이 사실에 대한 고민을 한 번 해 봐야 합니다. 내가 정말로 복음의 가치를 어느 정도 알고 있는가? 오늘 아브라함은 실수와 연약함과 상관 없이 하나님의 은혜로 이끌어진 사실을 깨달으면서, 또 원수조차도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 앞에 굴복하는 역사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너무나 쉽게 그 은혜를 잊어버리는데 그 은혜를 잊지 않고자 에셀 나무를 심음으로 말미암아 그 언약이 계속되도록, 그 사실을 바라봄으로 말미암아 그 언약을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에셀 나무를 심었다는 것. 여러분, 특히 이번 여름 현장, 우리 후대들, 렘넌트 현장에 이 믿음의 증표, 에셀 나무를 심는, 그런 축복된 역사가 저와 여러분을 통해서 현장에 이루어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성도를 축복 하시는 기준
두 번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분명히 불신자들이 보도록 축복하시는데 어느 정도로 축복하시느냐, 그 축복의 기준입니다. 성도를 축복하시는 기준입니다. 분명히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시는데 먼저 하나님의 축복하심을 누리기 전에 여러분, 먼저 복음을 이해해야 합니다. 여러분, 복음을 이해해야 합니다. 복음을 이해한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여러분, 우리가 그냥 기도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주일날 강단을 통해서 하나님이 말씀을 주시지 않습니까? 그 말씀을 받을 때에 그냥 말씀을 받지 마시고 그 말씀을 가지고 한 주간 여러분 현장에서 기도할 수 있는 제목으로 잡을 수 있는 말씀을 잡아야 합니다. 6일 동안 여러분이 있는 현장에서 강단 말씀 가지고 기도할 수 있는 제목을 붙잡아야 합니다. 이것을 가지고 복음 깨달은, 복음 붙잡은 기도 속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이렇게 될 때 성령충만함이 임하게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 그냥 예배드릴 것이 아니라 예배 시간시간, 모든 모임모임, 시간시간마다 말씀이 주어질 때 그 말씀을 통해서 내가 한 주간 현장에서 기도할 수 있는 제목들을 붙잡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 붙잡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복음 깨달은 기도입니다. 복음 붙잡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한주간의 삶의 현장에서 어떤 응답이 오느냐? 정확하게 말씀대로 나의 삶을 인도해나가시는 사실이 체험되게 되어 있습니다. 이걸 가지고 성령의 인도라 이야기합니다. 여러분, 성령의 인도는 뭐냐? 말씀대로 내 삶을 하나님이 인도해나가시는구나, 이 사실을 현장을 통해서 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의 인도입니다. 우리의 마음도, 생각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끌어 가십니다. 현장에 가니까 정확하게 맞아떨어집니다. 이게 성령의 인도입니다. 그러니까 내 마음과 생각을 하나님 말씀대로 인도해나가시면서 현장을 통해서 그게 확인되니까 우리에게 뭐가 생깁니까? 힘이 생깁니다. 그 힘이 생기게 되면 결국은 우리의 환경과 조건, 상관 없게 됩니다. 어떤 환경과 조건이라도 상관 없게 됩니다. 왜냐? 내게 힘이 있으니까요. 그걸 넘어설 수 있는, 환경과 조건을 넘어설 수 있는 축복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힘 속에서 나옵니다. 그리고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아무도 무너뜨릴 수 없는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가 내 삶에 나타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고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보이고 나타나게 됩니다. 이것을 가지고 성령의 교통함이라 이야기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말씀을 통해서 깨닫게 되고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무너뜨릴 수 없는, 아무도 막을 수 없는 하나님의 역사가 내 삶에 나타나고, 그로 말미암아 만나는 사람 가운데 내가 현장에 들어가니까 하나님이 성령의 교통함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그 축복의 역사들이 다른 사람에게 전달됩니다. 이 상태를 가지고 복음에 뿌리를 내렸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먼저 복음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 복음을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시작이 강단의 말씀을 붙잡고 한 주간 기도할 수 있는 제목들 잡으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말씀대로 인도하시는 사실이 보이고 그 속에서 힘을 얻게 되면 사람과 환경이 상관 없게 됩니다. 그리고 내 모든 삶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남과 더불어 모든 만남 속에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그 관계를 누리게 됩니다. 그게 복음에 깊이 뿌리를 내린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뿌리내리면 열매는 저절로 맺히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 생활은 복음에 뿌리를 내림으로 말미암아 되어지는 것이 신앙 생활입니다. 내가 몸부림치면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요한복음 15장 7절에 보면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했습니다. 우리가 깊이 뿌리내리면 그 속에서 열매는 나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복음에 뿌리를 내리면 내릴수록 가장 중요한 응답은 내가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살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악한 사단이 우리를 건드리지 못하게 됩니다. 왜냐? 하나님이 우리를 붙잡고 있기 때문에. 믿습니까? 하나님의 손에서 누가 우리를 빼앗아갈 것입니까? 내가 복음을 이해하고 복음에 뿌리를 내리면 내릴수록 먼저 내게 주신 축복이 임하게 되는데, 내가 살아남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살리게 되는데 내게 임한 축복이 무엇이냐? 아무도 악한 사단이 우리를 망하게 할 수 없는, 우리를 실패시킬 수 없는, 왜냐?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붙잡고 있기 때문에 분명히 말씀하고 있잖아요. 누가 주의 손에서 우리를 빼앗을 자 있느냐 말씀하고 있잖아요. 그 어떤 것도, 주님의 손에서 우리를 빼앗을 자가 없는 겁니다. 그리고 여러분, 우리는 환경이 좋아야 한다. 환경이 좋아야 한다. 그렇게 얘기합니다만 틀린 말입니다. 정말로 하나님이 우리를 붙잡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로 말미암아 우리가 들어가는 현장에 조건과 환경이 만들어지게 되어있습니다. 아무리 안 좋은 조건과 환경이라 할지라도 이제부터는 원망하지 말고 핑계하지 마세요. 하나님은 여러분을 통해서 환경과 조건을 만들어 가시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그 축복을 주시길 위해서 우리에게 복음을 주신 거예요 사실은. 그래서 어떤 환경과 조건도 상관없다라는 것 왜냐, 나로부터 세상이 복 받게 되어있기 때문에, 나로부터 모든 환경이 살아날 것이기 때문에 나로부터 모든 사람이 살아날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나를 살리는 축복을 누리게 되고요 그다음에 내가 살아난 만큼 내가 가장 가까이 있는 우리 가정이 복을 받게 됩니다. 사도행전 16장 31절에, “주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했어요. 여러분이 복음 가지고 여러분 가정에 들어가게 될 때에 가정에 영향을 주게 되어있어요. 복음 가진 사람이 가정에 있다, 가만히 있어도 복음의 영향력을 나타나게 되어있다는 사실이에요.
여러분, 지난주일 까지 금요일 날 두 주간에 걸쳐서 산업인 중심으로 산격중학교에 들어갔잖아요. 그런데 구체적으로 복음 전한다. 복음 설명한다. 보다도, 어떤 전문 사역을 가지고 그들을 돕는 자리에 들어갔어요. 밤에, 근데 그게 응답으로 오는데, 많은 교사 분들이 학생들이 너무 좋아하고 교사 분들이 이것 계속 해 줄 수 없느냐? 다른 학교까지 연결해서 계속 해 줄 수 없느냐 제가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당연한 것 아닌가? 말을 해서 전달된 것이 아니라 말을 해서 전달된 것이 아니라 말 하지 않아도 복음 가진 사람이 현장에 들어가면 그 영향은 나타나게 되어있거든요 여러분, 복음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정에 들어가면 가정이 바뀝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아, 하나님이 나를 축복하셔서 결국, 나를 이 가정에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처럼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셨구나, 이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혹여나 여러분 가정이 다 믿는 사람입니까? 그렇다면 은 여러분을 통해서 그 가정 속에 요셉처럼 복음화가 이루어지는 그런 축복된 응답을 주실 것입니다. 이게 가정을 통해 주시는 응답이에요 그뿐만 아닙니다. 나로 말미암아 가정이 살아날 뿐만 아니라, 내가 몸담고 있는 지역과, 이 땅과 이 민족이 살아나는 축복을 주시게 되어있어요. 그래서 여러분 사람관계, 하나님이 여러분 때문에, 인간관계도 축복하시게 되어있어요 한 가지, 기도 속에서 인간관계를 유지하시기를 바랍니다. 분명히 사람관계 사람과 사람관계, 하나님이 여러분 때문에 그 사람도 축복하시게 되어있다는 사실. 그래서 내가 속한 지역이 나로 말미암아 복을 받아야 되는 것이고요 이 땅과 이 민족이 복음 가진 우리로 말미암아 살아나야 됩니다. 그게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의 기준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결국은 나를 축복해서 가정과 이 땅과 이 민족을 살릴 뿐만 아니라, 열방을 살리는 축복을 주실 겁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땅 끝까지 이르라 내 증인이 되리라” 열방이 나로 말미암아 살아난다는 사실입니다. 세계 복음화 그 축복의 응답을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이 축복을 누리기 위해서 빨리 회복해야 될 것이 있어요. 지금 당장 회복해야 될 것이 있는데 그게 뭡니까? 우리에게 주신 신분과 권세가 무엇인지 알고 누리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주신 신분은 뭡니까? 성령께서 우리와 동행 하십니다. 믿습니까? 분명히 구원받은 내게 성령께서 내주하고 계시고요. 구원받은 나의 삶을 성령께서 인도 하시고 내가기도 할 때마다 성령께서 역사하십니다. 그 성령의 내주 인도 역사하심을 가지고 한단어로 말하면, 성령의 동행하심이다 이야기 합니다. 이게 우리에게 주신 신분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동행하시는 사람들이 나가는 걸음에 하늘 군대가 동원되게 되어있어요. 거기에 악한 사탄, 흑암의 세력들이 결박되게 되어있고 성경에 보면 은 누가복음 10장 19절에 “뱀과 전갈을 밟으며 모든 원수의 능력을 제할 권세를 주었다” 말씀했잖아요. 그리고 우리의 나가는 모든 걸음에 하늘 보좌의 축복이 임하게 됩니다. 왜냐, 우리의 배경이 하늘 보좌기 때문에 하늘 시민권이기 때문에, 반드시 전도로 말미암아 우리나가는 모든 걸음에 모든 문제를 해결 하도록 되게 되어있어요. 이 땅에 모든 문제는 전도운동이 일어나야 해결됩니다. 다실 말하면 진짜 문제는 전도가 되게 되면 은 이 땅에 문제는 해결됩니다. 그 축복의 사람으로 저와 여러분을 부르시고, 그 축복가운데 우리를 세우셨어요. 그래서 우리가 진짜 성도에게 주신 축복의 기준, 나를 살리고, 가정을 살리고, 지역과 민족 살리고 세계 살리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 이 일을 위해서 우리에게 주신 신분과 권세를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신분과 권세를 우리가 알고 있는데 잘 안 돼요. 왜 안 되느냐? 확신이 없어서 그래요 그래서 여러분, 정말로 확신 가져야 될 것은 뭐냐? 그 어떤 문제와 사건 있다 할지라도 나는 망할 수 없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구원받은 구원의 확신 축복 누리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어떤 자리에 있던지 간에 여러분 그것은 상관없어요. 나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 이 사실 깨달으시고 이 사실 누리면 되고요 구원받은 하나님 자녀, 반드시 하나님은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기도에 응답받으면 능력이 생기잖아요. 그리고 그 뿐만 아닙니다. 구원받은 하나님 자녀는 반드시 멸망의 세력이 우리를 이기지 못하는 승리의 역사를 보장하고 있어요. 그래서 승리의 확신을 가져야 되고요. 우리가 육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연약해서 죄 가운데 자꾸 빠지는데 상관없어요. 우리의 모든 죄조차도 이미 그리스도 깨서 십자가에서 다 끝냈어요. 사죄의 확신가운데 들어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그리스도께서 지금도 나를 도와주신 것이 아니라, 직접 나를 인도 하십니다. 그냥 도우 시는 분이 아니라요 직접 나의 삶을 인도하시는데 내 안에 들어오셔서 나를 인도하시는데 그것도 앞서서 나를 인도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인본주의 쓰지 말라는 거예요. 왜냐? 나를 그냥 도우 시는 것이 아니라 분명히 주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기 때문에, 직접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기 때문에 그것도 앞서서 인도하시기 때문에 여러분 인본주의 쓰면 쓸수록 손해에요 여러분 인본주의 쓰면 잘되는 것 같죠 물론 인본주의 쓰면 어느 정도 됩니다. 응답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런데 인본주의 쓰면 쓸수록 결국은 다른 것이 각인됩니다. 다른 것이. 그리고 하나님이 인도하심과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는 그 지름길이 하나님의 축복 속에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것인데 그 길을 잃어버리게 되요. 그런 가운데, 결국은 나 중심에서 세상 중심에서 물질 중심으로 나가기 때문에 그 것 속에서 나오는 결과는 반드시 망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인본주의를 쓰지 말라는 겁니다. 왜 인본주의 쓰느냐? 몰라서 그래요 하나님 직접 우리의 삶속에 인도하시는 그것도 앞서서 인도 하시는 그 사실을 몰라서 그래요. 구약성경에 미가서 2장에 보면요 12절, 13절 중요한 말씀을 하고 있는데 13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선두로 나가리라”했어요 우리의 모든 삶 속에서 하나님이 선두로 나가시는 그 축복의 역사들을 우리에게 주신다. 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직접적인 우리의 삶속에 인도 하시는 이 축복 가운데 저와 여러분들이 들어가기를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아브라함이 브엘세바에서 에셀 나무를 심었다 했습니다. 여기에 에셀 나무를 심었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바로 여생에 모든 삶속에서 결국은 믿음의 증표를 보인 것입니다. 내가 믿음으로 살겠습니다. 그 증표를 보이는 그게 바로 에셀 나무를 심은 겁니다. 여러분 우리의 현장이 어떤 현장입니까? 그 현장이 여러분 때문에 여러분이 그 지역 현장을 장악하는 브엘세바의 현장이 되기를 바라고요. 그 브엘세바의 현장에서 여러분 후대들에게 믿음의 증표를 보이길 바랍니다. 지역에 믿음의 증표가 필요합니다. 이 세계에 믿음의 증표가 필요합니다. 그래야 후대들이 살아나고 지역이 살아나고 세계가 살아나요. 특별히 이번 여름에 많은 수련회들이 있고, 또 이번 주부터 리더수련회와 세계 렘넌트 대회가 있습니다. 우리 어른들이 뭐냐? 믿음의 증표를 심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에셀 나무를 심는 겁니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 후대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이 축복 가운데 쓰임 받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와 영광을 주앞에 드립니다. 언약의 백성으로 하나님이 우리 속에 언약을 담아 주시고 우리의 모든 삶의 현장을 브엘세바의 축복을 누리는 귀한 역사가운데 세워주심을 감사함을 드립니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걸음걸음 마다 정말 믿음의 증표를 보이는 정말로 에셀나무를 심는 역사들이 오늘부터 시작되어질 수 있도록 주께서 역사하여 주옵소서. 그로 말미암아 우리 후대들이 살아나고 이 땅과 이민족이 살아나는 귀한 증거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살아계신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2017년 7월 23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브엘세바에서 에셀나무를 심다
(창21:22-34)
서론: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갈등을 합니다(세상 사람들과 어울림, 경건하게 사는 삶). 그래서 이중적인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 이 전에 내가 누구인가?를 알게 되면 무엇을 할 것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이 나오게 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세상의 빛, 세상의 소금, 나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복을 받도록 부르셨습니다(세상 문제를 해결 하는 자). 우리를 당연히 축복 하실 수 밖에 없고 주신 축복을 누려야 합니다.
1. 성도가 축복 받는 것을 불신자가 보게 됨
가.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음 - 영적서밋의 축복(행1:8)
요셉(창41:38 하나님의 영에 감동 된 자), 모세(신34:10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 함), 여호수아(수1:5 너를 대적할 자가 없음),
사무엘(삼상3:19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음), 엘리사(왕하2:9-11 갑절의 영감)
나. 성령충만을 누림 - 삶 속에서 임마누엘이 충만해 지는 것
1) 나를 살리는 축복 - 집중의 시간(시5:3 - 아침에 나를 축복, 시17:3 - 밤에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
시23편 - 낮에 하나님의 계획이 체질 되도록), 24, 여유
2)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함께 함을 봄(창21:22) - 아비멜렉, 군대장관 비골
3) 복음의 축복을 조금만 누림
다. 약속을 맺은 아비멜렉과 아브라함 - 브엘세바(맹세의 우물)에서 언약을 세움
1) 에셀나무를 심음(믿음의 증표) -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음
2) 복음의 가치를 고민
2. 성도를 축복 하시는 기준
가. 복음을 이해 - 예배를 통해 말씀을 가지고 기도할 수 있는 제목들을 잡음, 말씀따라 성령의 인도(체험), 모든 사건과 사람이 상관 없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됨,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 보여짐(성령의 교통)
나. 하나님이 주신 축복
1) 개인이 살아나게 됨 - 하나님이 멸망 하지 않도록 우리를 붙잡고 계심(환경, 조건과 상관 없음)
2) 복음 가진 한 사람 때문에 가정에 복(행16:31)
3) 지역, 민족이 살아남 - 기도속에서 인간관계를 지속
4) 열방을 살리는 축복(행1:8) - 나를 통해 세계 민족이 복
다. 회복 할 것
1) 신분과 권세(성령 동행, 하늘 군대, 사단 결박, 하늘 보좌, 전도의 축복)
2) 가져야 할 확신(구원, 기도응답, 승리, 사죄, 인도)
3) 인본주의(다른 것 각인, 하나님의 인도와 역사를 모르게 됨, 나름대로 응답이 오지만 망함)를 버림
결론: 아브라함이 브엘세바에서 에셀나무를 심었습니다. 에셀나무를 심은 것은 믿음의 증표를 보인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지역 속에 에셀나무를 심고 후대들이 볼 수 있도록 믿음의 증표를 보여주시길 바랍니다. 이 축복 속에 쓰임 받으시길 바랍니다.
● 기도제목
● 말씀실현(실천사항)
● 전도대상자
번호 | 제목 | 본문 | 설교일 | 첨부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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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4 | 전환점을 이룬 안디옥 선교 | 행11:19-30 | 2025-04-27 | |
1483 | 우리에게 주시는 영원한 메시지 | 고전15:1-11 | 2025-04-2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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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1 | 날마다 영적싸움에 승리하라 | 삿7:1-8 | 2025-04-06 | |
1480 | 이 시대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해답 | 삿4:1-10 | 2025-03-30 | |
1479 | 하나님이 쓰시는 기준 | 삿3:12-23 | 2025-03-23 | |
1478 |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 삿3:7-11 | 2025-03-16 | |
1477 |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 삿2:6-10 | 2025-03-09 | |
1476 |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 삿1:1-7 | 2025-03-02 | |
1475 |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 단12:1-4 | 2025-02-23 | |
1474 |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 단11:28-39 | 2025-02-16 | |
1473 |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 단10:10-21 | 2025-02-09 | |
1472 |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 단9:20-24 | 2025-02-02 | |
1471 |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 단8:15-27 | 2025-01-26 | |
1470 |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 단7:9-14 | 2025-0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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