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것을 붙잡아야 합니다.
2017-08-27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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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7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소중한 것을 붙잡아야 합니다”
(창25:27~34)
27 그 아이들이 장성하매 에서는 익숙한 사냥꾼이었으므로 들사람이 되고 야곱은 조용한 사람이었으므로 장막에 거주하니
28 이삭은 에서가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더라
29 야곱이 죽을 쑤었더니 에서가 들에서 돌아와서 심히 피곤하여
30 야곱에게 이르되 내가 피곤하니 그 붉은 것을 내가 먹게 하라 한지라 그러므로 에서의 별명은 에돔이더라
31 야곱이 이르되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 내게 팔라
32 에서가 이르되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33 야곱이 이르되 오늘 내게 맹세하라 에서가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판지라
34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
창25:27~34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십시다. 오늘 자리변동이 많이 되었습니다. 저도 이 분위기가 좀 어색한대요, 오늘 많은 렘런트들 앞자리에 자리했는데 정말 렘런트 시대를 여는 그런 주역의 축복을 우리 렘런트들이 누리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제 오후5시에 우리 교회에서 좀 의미 있는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다민족 가정을 이루는 결혼식이 있었는데요, 베트남 듀앤군과 디앤양이 결혼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우리 다민족부에서 하나같이 우리 일처럼 감당해 주셨고 또 봉사국에서도 식사를 출장뷔페를 불러서 준비하려고 했는데 봉사국에서 친히 헌신하겠다고 해서 직접 우리교회에서 준비를 해서 음식 식사를 준비했는데 봉사부원 한분 한분이 너무 감사하면서 피곤하지가 않다는 거예요. 왜냐고 물으니까 다민족이 우리 교회에서 결혼하고 또 237개 나라를 살리는 그 시작의 문들을 여는 그 축복된 일에 헌신하게 되어서 너무나 감사하다는 그런 고백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저도 주례를 하면서 참 감사한 것은 교회 안에 사실 다민족들이 들어와서 복음 받고 또 제자로 세워지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다시한번 더 감사함을 느꼈고요, 사실 다민족들이 한국에 돈 벌러 들어와서 돈 벌러 들어왔는데 알고 보니 복음을 받은 거예요. 그리고 복음 받고 또 만남의 축복 가운데 가정이 복음 안에서 이루어지고, 그것이 축복 아닙니까?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그냥 단순히 돈 벌러 들어와서 복음 알게 되고, 복음 안 그 축복 속에서 만남, 복음 가운데서 가정을 이루었다 그게 아니고 하나님께서 이 사람에게 복음을 주셔가지고 그 나라를 살리기 위한, 한 나라를 살리게 하기 위한 계획 속에 이 사람을 한국으로 보내셨구나! 그런 부분들이 보여지면서 그래서 어제 메시지 가운데서 세계 237개 나라를 살리는 일에 언약으로 붙잡고 주역이 되라 그렇게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또 감사한 것은요 그 메시지를 나누는 가운데 제가 이렇게 보니까 신랑신부도 은혜를 받지만 또 함께 참여했던 성도님들 중에도 눈물을 흘리는 분들이 있었어요. 제가 주례를 하면서 아 저 제자의 마음속에는 237개의 나라가 있구나! 이런 부분들이 생각되어지면서 너무나 은혜로운 그런 축복된 결혼식을 진행하게 되는 그런 시간들이었습니다. 특별히 오늘 우리 다민족들이 뒤쪽에 있다가 앞 자리로 위치 이동을 했는데 진짜 다민족 한 사람 한 사람이 은혜 받음으로 말미암아 이 한 사람 배후에 한 나라가 있습니다. 그런 축복된 그 응답을 누리는 주역들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민족들 최고로 은혜 받기 바랍니다. 그리고 또 앞자리에 우리 렘런트들 자리했는데 사실 우리 원로 장로님들 저 뒤편에 가 계시고요, 이게 무슨 꼬라지인가 이런 생각이 나요. 자리를 잃어버렸어요. 안정된 자리를 잃어 버렸는데 우리 교회가 이런 분위기를 이용해서 사실 은혜 받기 위해서 앞자리부터 앉는 그런 문화가 되어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드네요. 정말 은혜받기 위해서 앞자리부터 자리를 잡고 그래서 진짜 은혜를 사모하면서 하나님 말씀 받는, 억지로 우리 렘런트들을 앞자리에 앉히는 것이 아니라, 그런데 사실 힘이 되어요. 렘런트들이 앞자리에 앉아 있으니까...그런데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저 뒷자리로 구석에 앞자리에 못 온 아이들이 많이 있는데 또 보면 저 중층에도 보면 우리 유아 아이들을 앉고 말씀 듣는 부모님들이 계세요. 저런 분들이 너무 귀하신 분들인데 진짜 바르게 언약이 전달되는 그런 축복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읽지는 않았습니다. 19절,20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았고 이삭은 40세에 리브가를 맞이하여 아내를 삼았으니”사실 그냥 이삭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라고 나가면 되어요. 왜냐? 지금 이 창세기는 가나안 땅 정복을 앞두고 광야에서 태어난 2세들을 향해서 메시지를 주는 것이 창세기였는데 그러면 이 사람들이 이미 아브라함이 누구이고, 이삭이 누구이고를 다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여기에 보면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았고~”여기에 중요한 부분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우리 당대에 오직 복음으로 진짜 이 일에 생을 걸고 헌신한 분들이 우리 원로 목사님들이나 원로 장로님들이나 우리 앞에 선 장로님들입니다. 우리 어르신네들입니다. 그런데 분명 이 복음의 역사들은 당대에서 머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전달되게 되어 있어요. 다음 세대에 그 다음에 오는 세대에 그리고 그 복음의 역사들이 오늘까지, 우리에게 까지 전달 되었잖아요. 그렇다면 우리 여기 계시는 모든 어르신 분들은 진짜 복음의 비밀, 우리가 생명 걸고 지켰던 이 복음의 역사들, 이 역사들을 가지고 우리 후대들에게 당연히 전달해야 될 막중한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결국 그래서 하나님이 은혜로 아브라함이 선택함을 입었고, 하나님의 은혜로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 선택함을 입었고, 하나님의 은혜로 에서가 아니라 야곱이 선택함을 입었고, 그 은혜로 오늘 우리에게 까지 왔구나! 그 사실들을 오늘 광야 2세대들이 깨닫고 감사함으로 말씀을 받았거든요. 그런데 오늘 본문에 왜 여기에 우리에게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았고 ” 이렇게 말씀을 했느냐하면 여러분 갖고 계시는 그 언약의 역사들이 진짜 우리 후대들에게 바르게 전달되어져야 된다 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있었던 언약이 이삭에게, 이삭에게 전달되었던 언약이 야곱에게, 그 언약이 우리 후대에게 이렇게 전달되어지는 그런 축복이 우리 교회에 일어나길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올림픽 경기를 보게 되면 개막식을 하잖아요. 개막식의 제일 하이라이트는 성화 점화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성화를 점화하기 위해서 사실은 미리 불을 붙여서 수십 키로를 달려오잖아요. 올림픽 시작할 때까지 그 성화 점화를 바톤을 이어서 계속해서 달려와서 마지막 개막식 때에 성화에 불을 붙이잖아요. 그런데 알고 보면 그 자리에 오기까지 그 불이 몇 번 꺼진다는 거예요. 꺼지기는 몇 번 꺼지는데 어떠하든 그 불을 꺼트리지 않기 위해서 성화 봉송을 들고 계속해서 달려와서 개막식 때에 성화 점화에 불을 붙이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언약의 축복, 세계 복음화의 언약을 가지고 이 언약의 전달자로서 우리 후대들에게 그 언약을 전달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후대들 그러한 차원에서 보면 우리 후대들 하나하나 보면 너무나 귀한 것이고 또 여러분이 그냥 앞자리에 앉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이 귀중하기 때문에 우리 어르신들이 여러분이 은혜 입고 이 시대에 당대에 끝나지 않는 복음의 역사들을 여러분을 통해서 이어나가고자 하는 그런 마음의 중심의 기도를 가지고 여러분에게 자리를 양보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억지로 이 자리에 앉지 마시고, 우리 렘런트들 부장 장로님, 교사들이 막 강제로 안내해서 억지로 앉지 마시고요, 이 자리에 사실 그렇게 편한 자리는 아니예요. 졸지도 못하지요, 사실 제가 앞자리에 앉아 보니까 당장 고개를 쳐들어서 보니까 고개가 아파요. 좋은 자리가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 어르신네들이 여러분에게 어떻게 하든지 우리가 붙잡은 이 복음의 역사들이 우리 후대들에게 전달되어야겠다는 이런 간절한 마음이 있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자리를 양보한 거예요. 그러니까 이 자리에 앉았다는 그 부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진짜 한 시대의 언약의 바톤을 제대로 이어받아서 이 한 시대를 살려내는 그런 미래 지도자로 쓰임 받는 그런 축복이 우리 렘런트들에게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브라함에게 있었던 언약이 이삭에게, 이삭에게 있었던 그 언약이 오늘 야곱에게, 그래서 오늘 본문에 특별히 야곱에 대한 이야기 너무나 잘 아는 이야기입니다. 에서는 팥죽 한 그릇에 자기 장자권을 팔아버리고요, 야곱은 그냥 그냥 팥죽 주어도 되잖아요. 그런데 자기 형을 속여서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빼앗아버리고, 그런데 오늘 본문에 가만히 보면 사실은 우리가 이 본분을 너무나 잘 아시는 부분들이기 때문에 우리가 야곱처럼 언약에 대해서는 욕심을 내야지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 이 본문은 그렇게 생각하고 주신 말씀이 아니예요. 또 에서처럼 또 가장 귀중한 언약을 소홀히 함으로 말미암아 영적인 축복을 놓쳐버리는 그런 부분들 통해서 이 언약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사실은 가장 중요한 것들을 모두가 놓치고 있다는 것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어요. 그래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가르쳐주시기 위해서 오늘 본문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이지요. 에서처럼 우리가 어리석게도 영적인 축복을 놓쳐버리자 그 말이 아니고요, 또 야곱처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영적인 축복을 쟁취하자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이 말씀을 주신 것이 아니고,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붙잡을 수 있도록,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알도록 하나님께서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내용들입니다. 사실 무엇보다도 여러분 이 야곱, 에서 마찬가지이고, 이삭과 리브가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선택된 은혜를 입었었기 때문에 괜찮지. 인간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기준에 안 맞는 사람들이예요. 모두가 다... 하나님의 선택된 은혜를 입어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나와서 그렇지 하나님이 벌하신다면 이 사람들 하나님께 되게 혼날 사람들입니다. 이삭도 리브가도 야곱도 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만히 성경을 살펴보면 이삭과 에서는 같은 부류입니다. 다시 말하면 요즘 젊은이들처럼 말하면 같은 과예요. 또 리브가와 야곱도 같은 과에요. 서로 통합니다. 그런데 이 본문을 통해서 오늘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언약이 무엇인가?
1.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멸망의 뿌리(12가지)
먼저 첫 번째입니다.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멸망의 뿌리, 이 사실을 우리에게 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계속해서 메세지를 듣는 가운데 인생의 12가지 문제들를 기도도 하고 계속해서 이야기도 하고 있습니다. 그 인생의 12가지 문제가 사실 오늘 본문에 이삭과 에서, 리브가와 야곱을 통해서도 동일하게 있었음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는 내용들입니다. 먼저 여러분 보십시오. 이삭이라고 하면 어떻게 생각합니까? 믿음의 사람이다. 순종의 사람이다. 아브라함의 아들이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요. 사실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 앞에 번제로 드릴 때에 이삭이 그대로 순종함으로 나갔잖아요. 10살 정도, 10세 정도 되는 나이였습니다. 그런 나이라면 아버지의 결박 앞에 뿌리치고 도망칠 수 있었는데 그러나 이삭은 순종함으로 그대로 제단위에 드려지게 되었어요. 어떤 면에서 순종의 사람으로 볼 수 있어요. 믿음의 사람으로 볼 수 있어요. 아브라함의 자녀로,,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도 마찬가지이고, 다음에 이삭에 대한 부분도 살펴보면 마찬가지입니다마는 이삭도 별 우리와 다름없는 사람인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어요. 다시 말하면 이삭 또한 결국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 그리스도가 필요한 사람인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라는 사실입니다. 왜냐? 사실 이삭조차도 형편없는 사람인 것을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에게 이야기 하고 있어요. 오늘 본문에 이삭이 에서를 사랑했다 했는데 자녀를 편애했지요. 그런데 에서를 사랑한 이유가 뭐냐? 28절에 보면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삭은 에서가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고..”이삭조차도 하나님의 언약, 하나님의 약속보다도 육신적인 것들을 더 좋아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자식을 편애했는데 여러분 그 당시에 에서는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오늘 본문에도 나옵니다. 익숙한 사냥꾼이다. 어떤 면에서 남자답고 우락부락하고 영웅기질이 있는 그런 사람이 에서가 아닌가 그렇게 보여집니다. 그래서 그 에서가 날마다 잡아주는 사냥한 고기를 이삭이 좋아했다, 그 이유 때문에 에서를 사랑했다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성경에 보면 이삭이 에서를 눈이 멀어서까지도 끝까지 에서를 축복하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왜냐? 그 이유가 뭐냐 하면 육신적인 것들 때문입니다. 영적인 것이 아닙니다. 어떤 면에서 진짜 이삭은 영적인 부분을 알아들어야 하는 사람입니다. 왜냐 하면 오늘 본문에서 읽진 않았습니다만 이 앞에 보면 리브가가 임신했을 때, 그것도 늦게, 결혼한 지 20년 만에 임신을 했지 않습니까? 그런데 임신했을 때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서 리브가에게 이야기했습니다. 네 태중에 두 민족이 있다, 그래서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게 될 것이다, 이 족속이 저 족속을 섬기는데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게 될 것이다, 언약을 주었습니다. 리브가에게. 그렇다면 그 언약을 리브가만 듣고 있었습니까? 아니지 않았습니까? 이삭도 반드시 그 언약에 대해서 알았을 것이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삭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언약의 말씀에 대해서 들었으면서도 이삭은 그 영적인 사실을 제쳐버리고 에서가 사냥한 고기를 좋아했다, 다시 말하면 내 자녀가 이렇습니다, 내 자녀가 사냥꾼으로서 내 자녀가 이렇게 자랑스럽습니다, 이런 것을 좋아했다는 말입니다. 달리 말하면 나 중심하고 세상 중심하고 성공 중심한 것이 바로 이 이삭의 마음에 있었던 사실을, 드러내서 자기 자녀를 자랑하는 이런 부분이 이삭 속에 있었음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진짜 언약에 대해서 그 누구보다도 더 하나님의 선택하심에 대해서 그 누구보다도 더 잘 알아들어야 할 사람이 이삭입니다. 왜냐 하면 여러분, 하나님께서 선택에 대한 부분을 놓고 보면 사실 이삭에게도 그러한 것을 체험하게 했지 않습니까? 먼저 이스마엘을 주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이스마엘이 선택된 사람이 아님으로 말미암아 결국 집에서 쫓겨나는 상황을 이삭이 분명히 보았습니다. 아, 하나님의 선택하심은 이런 것이구나! 이 사실을 분명히 이스마엘이 집에서 쫓겨나는 것을 보고 알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언약에 대해서 그냥 귀흘려 들었지, 그래서 하나님의 언약,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육신적인 것, 다시 말해서 에서가 사냥해 바친 그 고기를 더 좋아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이삭의 중심은 나 중심한 것, 버리지 못했습니다. 세상 중심한 것, 그대로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 오늘 에서는 어떠합니까? 여러분, 에서는 아브라함의 손자이고 또 이삭과 리브가 가운데 장자로 태어났습니다. 그렇다면 믿음의 거장 아브라함의 손자로서, 또 이삭과 리브가의 장자로 태어났다면 그 자리, 축복된 자리, 그 축복된 위치가 있을 것 아닙니까? 그런데 에서는 그런 축복된 자리, 축복된 위치인 장자의 자리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 별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사실은. 그 당시에 장자권에 대한 부분은 모든 형제들의 두 배를 주는 것이 장자권의 축복입니다. 언약의 씨를 이어야 할 것이 장자에 있습니다, 사실. 그래서 장자권의 축복은 다른 말로 하면 진짜 중요한 양의 새끼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고, 언약의 씨, 양의 새끼를 이야기하는 것이고 또 그리스도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에서는 그 중요한 장자권의 축복의 역사를, 그 위치에 대한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자기가 배고프니까, 당장 배고프니까 그 장자권을 소홀히 여겼다고 오늘 본문의 마지막 34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32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서가 이르되 내가 죽게 되었으니.”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냥하고 돌아와 보니까 배가 고픈데 마침 야곱이 죽을 쑤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죽을 한 그릇 달라 합니다. 그런데 그 죽을 달라는 요청 앞에 야곱은 기회가 이 때다 싶어서 그러면 형, 좋습니다, 장자권을 내게 주면 이 죽 한 그릇을 주겠습니다, 그러니까 한 이야기가 내가 죽게 되었는데 장자권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 무슨 말입니까? 내가 죽게 되었으니. 나 중심한 것입니다. 세상 중심한 것입니다. 육신 중심한 것입니다. 내가 죽게 되었으니. 장자권의 이 엄청난 영적인 축복을 전혀 알지 못하고 육신적인 것, 세상 중심한 것에 빠져 있는 에서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또 그 다음에 리브가와 야곱이 나옵니다. 똑같은 사람입니다, 사실. 리브가, 태중에 있을 때 이 자녀들이 어떻게 될 것이라는 언약을 하나님으로부터 들었지 않습니까? 그러면 이 언약이 어떻게 나를 통해서 이루어지느냐, 우리 야곱과 에서를 통해서 어떻게 이루어지느냐 지켜봐야 합니다. 그리고 야곱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머니를 통해서 반드시 들었을 것입니다.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반드시 네가 결국은 언약을 이어갈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야곱조차도 하나님의 언약이 내게 있다는데, 나를 하나님이 선택했다는데, 그러면 이 언약의 역사가 어떻게 나를 통해 이어질 것인가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고 기다려야 하는데 문제는, 하나님의 언약에 대해서 알았지만 그 언약을 이루는 방법에 대해서 자신이 개입한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 같은 경우에는 안 해도 될 고생을, 오늘 본문 이후로 보면 안 해도 될 고생이 시작되지 않습니까? 걸음걸음 앞에 결국 에서가 야곱을 죽이러 나오고, 집에 있을 수 없어서 도망쳐 나오고, 또 야곱이 도망쳐 나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에서가 한이 되어서 내가 야곱을 반드시 죽이겠다, 그러면서 나중에 추격까지 해왔지 않습니까? 고생이 시작된 것입니다. 안 해도 될 고생을 시작했습니다. 왜냐? 자, 리브가가 야곱으로 말미암아 속여서 복을 가로채도록 만든 장본인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사실을 그냥 지켜보면 될 것인데 자기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야곱을 준비하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이렇게 해서, 이렇게 이렇게 해 가지고 네가 복을 가로채라. 그러면서 야곱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말을 듣고 결국은 하나님의 언약을 믿기보다 결국 가만히 보면 하나님의 언약에 대해서 못 믿었다는 말이고, 하나님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언약을 이루는 일에 대해서 리브가도, 야곱도 동일하게 자신의 모든 것을 들고 나온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한 마디로 말하면 나를 중심한 것이고 세상 중심한 것이고 성공 중심한 부분들 속에서 예외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교회 다니면서 어떤 면에서 야곱처럼 신앙 생활할 수 있습니다. 믿기는 믿는데 내가 무엇인가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피해를 보든 말든 나만 잘 되면, 잘 먹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나에게 이익이 된다면 끝이라는 것, 이런 마음을 가지고 신앙 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여러분, 내 머리를 쓰고 내 방법을 쓰고 수단을 쓰고, 그게 하나님의 복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그래서 여러분, 결국은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밤새도록 계획하고 안 좋은 머리를 굴려가며 염려하고 걱정하고. 아니,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든 맡기면 될 것인데, 분명히 야곱과 리브가,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언약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들 아닙니까? 그렇다면 맡기면 될 것인데 자기 방법을 동원해서 이루려고 하는, 이게 어떤 면에서 야곱과 리브가의 문제일 뿐 아니라 오늘 신앙 생활하고 있는 저와 여러분의 모습이 아닌가? 그래서 저는 오늘 본문을 죽 준비를 하면서 결국은 이삭과 에서, 같은 과이고 리브가와 야곱이 같은 과이지만 동일하게 이 사람들이 갖고 있는 나 중심한 것, 세상 중심한 것, 또 성공 중심한 것, 그게 전부 다 내 속에 가득 차 있다는 것. 내 속에 가득 차 있다는 것. 무엇이 소중한 것인가를 알지 못하니까 나 중심하고 세상 중심하고 성공 중심한 삶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 사실은 한 가정의 역사에 대한 부분들, 이게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이야기입니다. 내 속에 이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히브리서 12장 16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 했습니다.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 우리 가운데에도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그 일들을 살피라는 것입니다. 아니, 내가 그 가운데 빠져 있기 때문에 내 자신을 살피라는 사실을 오늘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모두 다 아담의 자녀로서 태어날 때부터 로마서 3장 10절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했습니다. 로마서 3장 23절에 보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그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영이 죽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죄와 허물로 죽었던 너희라 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내 안에 하나님이 없기 때문에 틀린 주인인 사단이 내 인생의 주인 되어서 내 중심으로, 세상 중심으로, 성공 중심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왜냐? 내 영이 죽었기 때문에. 죄와 허물로 죽었기 때문에. 그래서 죄와 허물로 죽은 우리의 삶이 어떤 삶인가를 요한일서 2장 15절, 16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나 중심, 세상 중심, 성공 중심. 같은 말 아닙니까? 보이는 육신 중심으로 살아가는 것, 같은 말 아닙니까? 이것은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만나지 못하고 악한 사단의 손에 붙잡혀 있으면 결국은 나 중심하고 세상 중심하고 성공 중심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보이는 것대로 살아가고 안목의 정욕, 세상 것 취하고 살아가고 우리의 자랑, 나를 자랑하고 내 자녀들 자랑하고 가문을 자랑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아무도 여기서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우리에게 참된, 나 중심하지 말고 세상 중심하지 말고 성공 중심하지 말고, 그러한 삶은 반드시 실패하는 삶이니까 올바른 성공의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그 그리스도를 보내시사 우리의 영을 살리신 것입니다. 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영이 살아나는데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영을 부어주셨는데 지난날까지는 로마서 8장 15절에 보면
세상의 무서워하는 영의 인도를 받았지만 그러나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순간 양자의 영, 성령, 아버지의 영을 주셔서 바로 성령께서 우리를 인도해 가시도록 하나님의 축복된 걸음으로 우리를 인도해 가시도록 하나님께서 우리를 바꾸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구원받는 순간 우리 안에 하나님의 영이 들어오셔서 영원히 하나님 앞에 아버지라 부르며 나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영은 우리에게 들어오심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영원히 함께하시고 영원히 우리를 인도하시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령의 인도 받으면 우리 안에 우리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를 우리 안에서 바꾸어 나가시는 것입니다. 나를 중심한 것, 세상 중심한 것, 성공 중심한 삶을 살아가는 내 인생의 모든 기준을 바꾸어서 오직 그리스도, 오직 하나님 나라, 오직 성령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셔서 우리를 바꾸어 가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체질을 바꾸어 가시고 우리의 각인을 바꾸어 가시고 우리의 모든 뿌리들을 바꾸어 가십니다. 누가? 하나님의 성령께서. 여러분, 우리 자신이 나를 중심하고 세상을 중심하고 성공 중심하지 말아야 한다, 다 알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됩니까? 안 됩니다. 우리 자신들이 나를 없앨 수 있나요? 세상 따라가는 것, 물론 세상이 나쁘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게 중심되어 있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여러분, 내가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게 중심되어 있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여러분, 성공도 누구나 성공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그게 나쁜 게 아닙니다. 그게 중심되어 있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모든 삶의 중심이 성공이고 물질이고 나이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그런데 더욱이 나를, 세상을, 성공을 우리가 모른다 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모른다 할 수 있나요? 안되잖아요, 우리가 우리 자신들을 바꾸어 나갈 수 있습니까? 우리의 뿌리들을 바꾸어 나갈 수 있습니까? 안됩니다. 우리 스스로 할 수 없어요. 여러분 명상하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이 초월적인 나, 네가 하나님처럼 된다. 이야기하잖아요. 네가 하나님처럼 된다는 것. 네가 바뀌어져서 하나님처럼 된다는 거예요 네가 그렇게 살 인생이 아니다. 잠재의식, 무의식을 개발해서 네가 하나님처럼 된다. 초월적인 나, 네가 하나님 된다는 말 아닙니까? 진짜 우리가 하나님처럼 될 수 있습니까? 다 사단의 거짓말에 속는 거예요. 나를 바꿔갈 수 없어요. 인간은 나를 바꾸지 못해요. 거짓말해서 그래요. 내가 누구인가를 알고 나를 붙잡고 있는 존재가 무엇인가를 안다면 나를 내가 못 바꾸는 겁니다. 지난 주 1부 본부설교에서 “무문관”이라는 절에서 하는 수행부분들을 류목사님 메시지 가운데 하신 적이 있죠. 말씀 들으셨죠? 무문관 그게 불교에서 일어나는 수행 방법 중에 하나입니다. 여러분, 장좌불 아시죠? 누워서 자는 것이 아니라 앉아서 잠을 잘 때도 앉아서 잡니다. 그래서 수행하는 것이 장자부입니다. 성철스님 같은 경우에는 10년 동안에 밖을 안 나왔다 하잖아요. 그게 수행방법중 하나예요 무문관도 수행 방법 중에 하나인데 요즘 7일, 8일 이렇게 무문관해가지고 가로 세로 1.5 밖에 안 되는 작은 방에 들어가서 밖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매일 밥을 한 끼만 주고 거기서 나를 없앤다는 거예요. 그래서 얼마 전에 다큐멘터리로 나왔다는데, 거기에 천일 동안에 그냥 아예 밖에서 문을 잠그고, 그들의 최고의 수행방법인데, 결국은 밥 한 끼씩 주고 문을 잠그고 수행하는데 거기에 못 견뎌서 300일 만에 나오는 사람이 있고, 500일 만에 나오는 사람이 있어요. 여러분 말이 천일이죠. 그러면 얼마입니까? 3년 정도입니다. 사실 그 안에 천일 동안 앉아 있으면 돌겁니다. 정신문제 올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그런 수행방법을 통해서 한 여성이 일반인들이 하는 수행이 아니고 진짜 절에 중으로 입문한 사람들이 그런 수행을 하는 것인데 한 여성이 천일 수행하고 나와서 기자가 물었습니다. 그런데 류목사님 메시지 가운데에는 그 사람이 겸손함으로 그렇게 이야기 했는지 모르지만 이렇게 이야기 했데요 들어가기 전에나 지금이나 똑같다는 겁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우리 자신은 우리 자신을 바꿀 수 없어요. 변화시킬 수 없어요.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문제를 가지고 우리 자신을 바꾸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래서 그리스도를 주신 거예요. 오직 그리스도 속에 들어가면 되요 오직 하나님 나라 그 속에 들어가면 되요 오직 성령하면 되요 나는 나 자신을 바꿀 수 없지만 우리에게 있는 고질적인 문제들 말 못할 고질적인 문제들, 습관화 되어있는 문제들, 나는 나를 바꿀 수 없지만은 오직 그리스도, 오직 하나님 나라, 오직 성령 안에 들어가면 은 누가 하시느냐 하나님이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이 가지고 있는 나, 세상, 성공 중심한 것 내가 어떻게 바꿉니까? 내가 그걸 더 좋아하는데요. 우리 체질이 그런데요 그래서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것 아닙니까? 내가 바꿀 수 있다면 그리스도 필요 없어요. 내가 바꿀 수 없기 때문에 그래서 그리스도를 보내 주신 거예요 여러분이 갖고 있는 문제를 여러분이 해결하려고 하지 마시고요 오직 그리스도 속에 들어가기를 바랍니다. 오직 하나님 나라 이 언약 붙잡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거기에 성령께서 역사하십니다. 그러면 나도 모르게 내 자신이 바뀌고 변화되게 되어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이삭과 에서, 또 리브가와 야곱을 통해서 우리 자신이 갖고 있는 문제가 바로 이 사람들 갖고 있는 문제고 이것을 통해서 나를 보기를 원하시는 거예요 어느 누구나 갖고 있는 인생의 문제, 바꿀 수 없는 인생의 12가지 문제 이 부분들이 오늘 이 시간에 오직 그리스도 오직 하나님 나라, 오직 성령 이 속에 들어감으로 말미암아 변화되어지는 그런 축복된 응답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오직 그리스도
두 번째입니다. 여러분, 우린 오늘도 다른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의 문제들, 특별히 편안할 때는 내가 오직 그리스도 붙잡았는지 아니면 은, 육신의 것을 쫓아가는지 모릅니다. 평안할 때는, 아무 일 없을 때는 모릅니다. 그러나 진짜 문제 만나면 은 오직 그리스도, 그리스도가 내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했다. 그 사실 가진 사람인지 아니면 은 오직 그리스도, 그 그리스도가 내 인생에 모든 문제 해결 아지 않으셨으니깐 자연적으로 육신의 것을 따라 갈 수밖에 없죠. 육신의 것을 따라가는 사람인지 언제 결정되어지고, 분별되어지느냐? 문제와 사건을 만나면 은 진짜 그리스도가 그리스도 된 사람인지 아니면 그리스도 말은 하지만 육신의 것을 따라가는 사람인지 분별이 되어져요 오늘 본문에 에서가 배고프지 않았다면 은 장자의 명분을 팔 이유가 없어요. 그렇잖아요. 그런데 배고픔의 육신의 문제를 당하니깐, 문제 당하니깐 그 문제 앞에 결국은 드러나는 것이 뭐냐? 내가 배고파 죽겠는데, 이 장자권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 결국 육신의 사람으로 드러나게 되요 내가 영의 사람인지 육신의 사람인지 잘될 때는 모른다니까요 그런데 진짜 중요한 문제와 사건을 당하면 은 내가 영의 사람인지 육신의 사람인지 드러나게 되고 내가 믿음의 사람인지 그렇지 않는 사람인지 내가 정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인지 믿는다 하면서 육신의 것을 쫓아하는 사람인지 드러나게 되어있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영적인 부분들은 그게 실상이에요. 육신적인 것은 진짜 같지만은 그것은 허상이고 속이는 겁니다. 그런데 영적인 부분들, 야곱이 중요하게 여겼잖아요. 그래서 장자의 축복, 일단은 언약에 대한 그 이루실 일들을 모르고 자기 방법을 썼지만은 한 가지 야곱에게는 영적인 부분을 중요하게 여기는 그 장자의 축복을 중요하게 여기는 그 마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에서는 영적인 부분들, 전혀 중요치 않게 내가 배고파 죽겠는데 이 장자의 명분이 무슨 필요 있느냐? 전혀 중요치 않게 육신적인 것을 쫓았어요. 우리에게 있는 육신적인 것은 허상이에요. 진짜 중요한 것은 영적인 것인데 영적인 것들을 붙잡게 되면 은 육신적인 것들도 뛰어넘게 됩니다. 육신적인 것들을 소홀히 여기라 그 말이 아닙니다. 육신적인 것들을 멸시하라 그 말이 아닙니다. 육신적인 것 너무 중요합니다. 그런데 진짜 영적인 것들을 붙잡게 되면 문제와 사건 통해서 영적인 부분들 선택하고 붙잡게 되면 육신적인 것도 뛰어넘게 되요 사도행전 5장 41절에 보면 사도들이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핍박받는, 능욕 받는 일에 쓰임 받음을 기뻐했다 했어요. 아니 누가 핍박 받는 것에 기뻐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여러분 말이 핍박이죠. 그 핍박 받는 사람을 좋아할 사람 아무도 없어요. 그런데 사도들은 예수그리스도 그 이름 때문에 핍박받는 일에, 그 자리에 서게 된 것을 감사하며 기뻐했다란 말은 무슨 말입니까?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 그분이 나를 알고 나를 인도하신다는 이 사실에 신뢰를 보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깐 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어떤 일이 주어진다 할지라도 나는 감사하다는 사실입니다. 영적인 것들 붙잡은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육신의 것을 바라봄으로 말미암아 실패하는 인생이 되지 말고요. 여러분 문제와 사건 있다면 그 문제와 사건 앞에서 여러분 선언하세요. 그래도 예수는 그리스도시다 그 그리스도는 나의 모든 문제 해결하셨다. 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나는 모든 것 끝났다. 선업하세요. 문제와 사건 있을 때 마다 그래도 예수는 그리스도시다 이 믿음 고백하세요. 문제와 사건 있으면 은 육신의 것 생각하고 오늘 본문에 에서가 내가 배고파 죽겠는데 장자권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 이것이 아니라 이 문제를 당할 때 에서는 육신적인 것을 선택했죠. 육신적인 것을 선택하고 육신적인 것을 따라가면 결국 육신적인 실패를 당하게 되요 문제와 사건 당할 때 믿음 고백하시는데 어떤 믿음을 고백하느냐? 그래도 예수는 그리스도시다. 다 이루었다 하신 그 그리스도의 언약이 내게 성취된 것이다. 나는 모든 문제 끝났다. 이 믿음 가지고 나가게 될 때 하나님이 여러분 생애를 책임져 주시게 되어있습니다. 여러분 가장 큰 교만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분명히 주님께서 다 이루었다 했는데, 나는 아니라는 겁니다. 분명히 주님은 다 해결했다 했는데 다 이루었다 말씀했는데 나는 아니라는 겁니다. 이게 교만 중에 교만이에요 혹시나 내 삶이 그 속에 있지 않는지 살펴보시면서 문제와 사건다음에는 오직 그리스도! 그래도 예수는 그리스도 시다! 나의 모든 문제 끝! 이 믿음의 역사 앞에 승리하는 그런 축복된 걸음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의 인생의 문제 나를 중심하고 세상중심하고 성공 중심하는 것 결국 나를 중심해서 살아가는 것 같았지만 결국은 사단이 충만해있고 거기에 무너질 수밖에 없는 그것이 바벨탑이었던 것을 알게 하여주시고 나의 문제, 또 세상을 바라보며 성공 바라보며 살아가는 나의 모든 문제들을 오직 그리스도, 오직 하나님나라, 오직 성령으로 바꾸는 축복의 은혜를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우리의 모든 문제와 사건 속에서 그래도 예수는 그리스도시다 이 믿음 고백함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걸음들을 책임지시는 이 사실들을 체험하는 증인들 되도록 주님 역사하여 주옵소서. 살아계신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2017년 8월 27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소중한 것을 붙잡아야 합니다
(창25:27-34)
서론: 오늘 본문에 보면 에서가 야곱에게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판 내용이 나옵니다. 가장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에서처럼 영적인 축복을 놓치고, 야곱처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영적인 축복을 쟁취 하자는 것이 아니라 가장 소중한 것을 붙잡아야 됩니다.
1.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멸망의 뿌리(12가지)
가. 이삭 - 순종,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의 아들(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사람)
1) 이삭이 에서를 편애하여 사랑함(28절 사냥한 고기를 좋아함으로 그를 사랑함)
2) 이삭에게 소중한 것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아니였음(육신적인 것)
3) 나 중심, 세상적인 것을 버리지 못 함
나. 에서
1) 아브라함의 손주, 이삭과 리브가의 장자 - 축복된 자리인 것을 모름
2) 장자권을 소홀하게 여김(34절 죽게 되었는데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다. 리브가와 야곱
1) 언약의 약속을 이루어 가는 과정 속에서 자신들이 개입
2) 리브가 - 자신의 생각으로 야곱에게 복을 가로채도록 함
3) 야곱 - 하나님의 약속을 온전하게 깨닫지 못하고 장자권에만 관심이 있음
라. 내 속에 가득 차 있음(나 중심, 세상 중심, 성공 중심) - 히12:16(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펴라)
1)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남(롬3:10 의인이 없음 / 롬3:23 모든 사람은 죄인)
2) 사단이 주인 된 삶 - 요일2:15-16(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 세상으로부터 온 것)
3) 양자의 영을 주시고(롬8:15-17), 오직 그리스도, 오직 하나님 나라, 오직 성령 속으로 들어갈 때 나를 바꾸심
2. 오직 그리스도
가. 육의 사람과 영의 사람으로 나누어짐 - 문제, 사건이 왔을 때
나. 영적인 것이 기준
1) 육신적인 것은 허상 / 영적인 것은 실상
2) 영적인 것을 붙잡으면 육신적인 것을 뛰어 넘게 됨 - 초대교회 사도들이 죽음의 위기를 당한 것도 감사(행5장)
결론: 문제와 사건 앞에서 그리스도를 고백 하시길 바랍니다. 어떤 문제가 오든지 간에 그래도 예수는 그리스도시고, 나의 모든 문제를 끝났다는 것을 고백 해야 합니다. 이 고백 속에서 믿음의 사람들로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 기도제목
● 말씀실현(실천사항)
● 전도대상자
“소중한 것을 붙잡아야 합니다”
(창25:27~34)
27 그 아이들이 장성하매 에서는 익숙한 사냥꾼이었으므로 들사람이 되고 야곱은 조용한 사람이었으므로 장막에 거주하니
28 이삭은 에서가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더라
29 야곱이 죽을 쑤었더니 에서가 들에서 돌아와서 심히 피곤하여
30 야곱에게 이르되 내가 피곤하니 그 붉은 것을 내가 먹게 하라 한지라 그러므로 에서의 별명은 에돔이더라
31 야곱이 이르되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 내게 팔라
32 에서가 이르되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33 야곱이 이르되 오늘 내게 맹세하라 에서가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판지라
34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
창25:27~34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십시다. 오늘 자리변동이 많이 되었습니다. 저도 이 분위기가 좀 어색한대요, 오늘 많은 렘런트들 앞자리에 자리했는데 정말 렘런트 시대를 여는 그런 주역의 축복을 우리 렘런트들이 누리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제 오후5시에 우리 교회에서 좀 의미 있는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다민족 가정을 이루는 결혼식이 있었는데요, 베트남 듀앤군과 디앤양이 결혼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우리 다민족부에서 하나같이 우리 일처럼 감당해 주셨고 또 봉사국에서도 식사를 출장뷔페를 불러서 준비하려고 했는데 봉사국에서 친히 헌신하겠다고 해서 직접 우리교회에서 준비를 해서 음식 식사를 준비했는데 봉사부원 한분 한분이 너무 감사하면서 피곤하지가 않다는 거예요. 왜냐고 물으니까 다민족이 우리 교회에서 결혼하고 또 237개 나라를 살리는 그 시작의 문들을 여는 그 축복된 일에 헌신하게 되어서 너무나 감사하다는 그런 고백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저도 주례를 하면서 참 감사한 것은 교회 안에 사실 다민족들이 들어와서 복음 받고 또 제자로 세워지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다시한번 더 감사함을 느꼈고요, 사실 다민족들이 한국에 돈 벌러 들어와서 돈 벌러 들어왔는데 알고 보니 복음을 받은 거예요. 그리고 복음 받고 또 만남의 축복 가운데 가정이 복음 안에서 이루어지고, 그것이 축복 아닙니까?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그냥 단순히 돈 벌러 들어와서 복음 알게 되고, 복음 안 그 축복 속에서 만남, 복음 가운데서 가정을 이루었다 그게 아니고 하나님께서 이 사람에게 복음을 주셔가지고 그 나라를 살리기 위한, 한 나라를 살리게 하기 위한 계획 속에 이 사람을 한국으로 보내셨구나! 그런 부분들이 보여지면서 그래서 어제 메시지 가운데서 세계 237개 나라를 살리는 일에 언약으로 붙잡고 주역이 되라 그렇게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또 감사한 것은요 그 메시지를 나누는 가운데 제가 이렇게 보니까 신랑신부도 은혜를 받지만 또 함께 참여했던 성도님들 중에도 눈물을 흘리는 분들이 있었어요. 제가 주례를 하면서 아 저 제자의 마음속에는 237개의 나라가 있구나! 이런 부분들이 생각되어지면서 너무나 은혜로운 그런 축복된 결혼식을 진행하게 되는 그런 시간들이었습니다. 특별히 오늘 우리 다민족들이 뒤쪽에 있다가 앞 자리로 위치 이동을 했는데 진짜 다민족 한 사람 한 사람이 은혜 받음으로 말미암아 이 한 사람 배후에 한 나라가 있습니다. 그런 축복된 그 응답을 누리는 주역들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민족들 최고로 은혜 받기 바랍니다. 그리고 또 앞자리에 우리 렘런트들 자리했는데 사실 우리 원로 장로님들 저 뒤편에 가 계시고요, 이게 무슨 꼬라지인가 이런 생각이 나요. 자리를 잃어버렸어요. 안정된 자리를 잃어 버렸는데 우리 교회가 이런 분위기를 이용해서 사실 은혜 받기 위해서 앞자리부터 앉는 그런 문화가 되어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드네요. 정말 은혜받기 위해서 앞자리부터 자리를 잡고 그래서 진짜 은혜를 사모하면서 하나님 말씀 받는, 억지로 우리 렘런트들을 앞자리에 앉히는 것이 아니라, 그런데 사실 힘이 되어요. 렘런트들이 앞자리에 앉아 있으니까...그런데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저 뒷자리로 구석에 앞자리에 못 온 아이들이 많이 있는데 또 보면 저 중층에도 보면 우리 유아 아이들을 앉고 말씀 듣는 부모님들이 계세요. 저런 분들이 너무 귀하신 분들인데 진짜 바르게 언약이 전달되는 그런 축복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읽지는 않았습니다. 19절,20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았고 이삭은 40세에 리브가를 맞이하여 아내를 삼았으니”사실 그냥 이삭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라고 나가면 되어요. 왜냐? 지금 이 창세기는 가나안 땅 정복을 앞두고 광야에서 태어난 2세들을 향해서 메시지를 주는 것이 창세기였는데 그러면 이 사람들이 이미 아브라함이 누구이고, 이삭이 누구이고를 다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여기에 보면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았고~”여기에 중요한 부분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우리 당대에 오직 복음으로 진짜 이 일에 생을 걸고 헌신한 분들이 우리 원로 목사님들이나 원로 장로님들이나 우리 앞에 선 장로님들입니다. 우리 어르신네들입니다. 그런데 분명 이 복음의 역사들은 당대에서 머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전달되게 되어 있어요. 다음 세대에 그 다음에 오는 세대에 그리고 그 복음의 역사들이 오늘까지, 우리에게 까지 전달 되었잖아요. 그렇다면 우리 여기 계시는 모든 어르신 분들은 진짜 복음의 비밀, 우리가 생명 걸고 지켰던 이 복음의 역사들, 이 역사들을 가지고 우리 후대들에게 당연히 전달해야 될 막중한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결국 그래서 하나님이 은혜로 아브라함이 선택함을 입었고, 하나님의 은혜로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 선택함을 입었고, 하나님의 은혜로 에서가 아니라 야곱이 선택함을 입었고, 그 은혜로 오늘 우리에게 까지 왔구나! 그 사실들을 오늘 광야 2세대들이 깨닫고 감사함으로 말씀을 받았거든요. 그런데 오늘 본문에 왜 여기에 우리에게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았고 ” 이렇게 말씀을 했느냐하면 여러분 갖고 계시는 그 언약의 역사들이 진짜 우리 후대들에게 바르게 전달되어져야 된다 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있었던 언약이 이삭에게, 이삭에게 전달되었던 언약이 야곱에게, 그 언약이 우리 후대에게 이렇게 전달되어지는 그런 축복이 우리 교회에 일어나길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올림픽 경기를 보게 되면 개막식을 하잖아요. 개막식의 제일 하이라이트는 성화 점화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성화를 점화하기 위해서 사실은 미리 불을 붙여서 수십 키로를 달려오잖아요. 올림픽 시작할 때까지 그 성화 점화를 바톤을 이어서 계속해서 달려와서 마지막 개막식 때에 성화에 불을 붙이잖아요. 그런데 알고 보면 그 자리에 오기까지 그 불이 몇 번 꺼진다는 거예요. 꺼지기는 몇 번 꺼지는데 어떠하든 그 불을 꺼트리지 않기 위해서 성화 봉송을 들고 계속해서 달려와서 개막식 때에 성화 점화에 불을 붙이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언약의 축복, 세계 복음화의 언약을 가지고 이 언약의 전달자로서 우리 후대들에게 그 언약을 전달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후대들 그러한 차원에서 보면 우리 후대들 하나하나 보면 너무나 귀한 것이고 또 여러분이 그냥 앞자리에 앉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이 귀중하기 때문에 우리 어르신들이 여러분이 은혜 입고 이 시대에 당대에 끝나지 않는 복음의 역사들을 여러분을 통해서 이어나가고자 하는 그런 마음의 중심의 기도를 가지고 여러분에게 자리를 양보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억지로 이 자리에 앉지 마시고, 우리 렘런트들 부장 장로님, 교사들이 막 강제로 안내해서 억지로 앉지 마시고요, 이 자리에 사실 그렇게 편한 자리는 아니예요. 졸지도 못하지요, 사실 제가 앞자리에 앉아 보니까 당장 고개를 쳐들어서 보니까 고개가 아파요. 좋은 자리가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 어르신네들이 여러분에게 어떻게 하든지 우리가 붙잡은 이 복음의 역사들이 우리 후대들에게 전달되어야겠다는 이런 간절한 마음이 있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자리를 양보한 거예요. 그러니까 이 자리에 앉았다는 그 부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진짜 한 시대의 언약의 바톤을 제대로 이어받아서 이 한 시대를 살려내는 그런 미래 지도자로 쓰임 받는 그런 축복이 우리 렘런트들에게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브라함에게 있었던 언약이 이삭에게, 이삭에게 있었던 그 언약이 오늘 야곱에게, 그래서 오늘 본문에 특별히 야곱에 대한 이야기 너무나 잘 아는 이야기입니다. 에서는 팥죽 한 그릇에 자기 장자권을 팔아버리고요, 야곱은 그냥 그냥 팥죽 주어도 되잖아요. 그런데 자기 형을 속여서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빼앗아버리고, 그런데 오늘 본문에 가만히 보면 사실은 우리가 이 본분을 너무나 잘 아시는 부분들이기 때문에 우리가 야곱처럼 언약에 대해서는 욕심을 내야지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 이 본문은 그렇게 생각하고 주신 말씀이 아니예요. 또 에서처럼 또 가장 귀중한 언약을 소홀히 함으로 말미암아 영적인 축복을 놓쳐버리는 그런 부분들 통해서 이 언약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사실은 가장 중요한 것들을 모두가 놓치고 있다는 것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어요. 그래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가르쳐주시기 위해서 오늘 본문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이지요. 에서처럼 우리가 어리석게도 영적인 축복을 놓쳐버리자 그 말이 아니고요, 또 야곱처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영적인 축복을 쟁취하자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이 말씀을 주신 것이 아니고,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붙잡을 수 있도록,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알도록 하나님께서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내용들입니다. 사실 무엇보다도 여러분 이 야곱, 에서 마찬가지이고, 이삭과 리브가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선택된 은혜를 입었었기 때문에 괜찮지. 인간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기준에 안 맞는 사람들이예요. 모두가 다... 하나님의 선택된 은혜를 입어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나와서 그렇지 하나님이 벌하신다면 이 사람들 하나님께 되게 혼날 사람들입니다. 이삭도 리브가도 야곱도 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만히 성경을 살펴보면 이삭과 에서는 같은 부류입니다. 다시 말하면 요즘 젊은이들처럼 말하면 같은 과예요. 또 리브가와 야곱도 같은 과에요. 서로 통합니다. 그런데 이 본문을 통해서 오늘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언약이 무엇인가?
1.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멸망의 뿌리(12가지)
먼저 첫 번째입니다.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멸망의 뿌리, 이 사실을 우리에게 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계속해서 메세지를 듣는 가운데 인생의 12가지 문제들를 기도도 하고 계속해서 이야기도 하고 있습니다. 그 인생의 12가지 문제가 사실 오늘 본문에 이삭과 에서, 리브가와 야곱을 통해서도 동일하게 있었음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는 내용들입니다. 먼저 여러분 보십시오. 이삭이라고 하면 어떻게 생각합니까? 믿음의 사람이다. 순종의 사람이다. 아브라함의 아들이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요. 사실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 앞에 번제로 드릴 때에 이삭이 그대로 순종함으로 나갔잖아요. 10살 정도, 10세 정도 되는 나이였습니다. 그런 나이라면 아버지의 결박 앞에 뿌리치고 도망칠 수 있었는데 그러나 이삭은 순종함으로 그대로 제단위에 드려지게 되었어요. 어떤 면에서 순종의 사람으로 볼 수 있어요. 믿음의 사람으로 볼 수 있어요. 아브라함의 자녀로,,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도 마찬가지이고, 다음에 이삭에 대한 부분도 살펴보면 마찬가지입니다마는 이삭도 별 우리와 다름없는 사람인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어요. 다시 말하면 이삭 또한 결국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 그리스도가 필요한 사람인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라는 사실입니다. 왜냐? 사실 이삭조차도 형편없는 사람인 것을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에게 이야기 하고 있어요. 오늘 본문에 이삭이 에서를 사랑했다 했는데 자녀를 편애했지요. 그런데 에서를 사랑한 이유가 뭐냐? 28절에 보면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삭은 에서가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고..”이삭조차도 하나님의 언약, 하나님의 약속보다도 육신적인 것들을 더 좋아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자식을 편애했는데 여러분 그 당시에 에서는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오늘 본문에도 나옵니다. 익숙한 사냥꾼이다. 어떤 면에서 남자답고 우락부락하고 영웅기질이 있는 그런 사람이 에서가 아닌가 그렇게 보여집니다. 그래서 그 에서가 날마다 잡아주는 사냥한 고기를 이삭이 좋아했다, 그 이유 때문에 에서를 사랑했다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성경에 보면 이삭이 에서를 눈이 멀어서까지도 끝까지 에서를 축복하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왜냐? 그 이유가 뭐냐 하면 육신적인 것들 때문입니다. 영적인 것이 아닙니다. 어떤 면에서 진짜 이삭은 영적인 부분을 알아들어야 하는 사람입니다. 왜냐 하면 오늘 본문에서 읽진 않았습니다만 이 앞에 보면 리브가가 임신했을 때, 그것도 늦게, 결혼한 지 20년 만에 임신을 했지 않습니까? 그런데 임신했을 때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서 리브가에게 이야기했습니다. 네 태중에 두 민족이 있다, 그래서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게 될 것이다, 이 족속이 저 족속을 섬기는데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게 될 것이다, 언약을 주었습니다. 리브가에게. 그렇다면 그 언약을 리브가만 듣고 있었습니까? 아니지 않았습니까? 이삭도 반드시 그 언약에 대해서 알았을 것이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삭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언약의 말씀에 대해서 들었으면서도 이삭은 그 영적인 사실을 제쳐버리고 에서가 사냥한 고기를 좋아했다, 다시 말하면 내 자녀가 이렇습니다, 내 자녀가 사냥꾼으로서 내 자녀가 이렇게 자랑스럽습니다, 이런 것을 좋아했다는 말입니다. 달리 말하면 나 중심하고 세상 중심하고 성공 중심한 것이 바로 이 이삭의 마음에 있었던 사실을, 드러내서 자기 자녀를 자랑하는 이런 부분이 이삭 속에 있었음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진짜 언약에 대해서 그 누구보다도 더 하나님의 선택하심에 대해서 그 누구보다도 더 잘 알아들어야 할 사람이 이삭입니다. 왜냐 하면 여러분, 하나님께서 선택에 대한 부분을 놓고 보면 사실 이삭에게도 그러한 것을 체험하게 했지 않습니까? 먼저 이스마엘을 주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이스마엘이 선택된 사람이 아님으로 말미암아 결국 집에서 쫓겨나는 상황을 이삭이 분명히 보았습니다. 아, 하나님의 선택하심은 이런 것이구나! 이 사실을 분명히 이스마엘이 집에서 쫓겨나는 것을 보고 알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언약에 대해서 그냥 귀흘려 들었지, 그래서 하나님의 언약,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육신적인 것, 다시 말해서 에서가 사냥해 바친 그 고기를 더 좋아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이삭의 중심은 나 중심한 것, 버리지 못했습니다. 세상 중심한 것, 그대로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 오늘 에서는 어떠합니까? 여러분, 에서는 아브라함의 손자이고 또 이삭과 리브가 가운데 장자로 태어났습니다. 그렇다면 믿음의 거장 아브라함의 손자로서, 또 이삭과 리브가의 장자로 태어났다면 그 자리, 축복된 자리, 그 축복된 위치가 있을 것 아닙니까? 그런데 에서는 그런 축복된 자리, 축복된 위치인 장자의 자리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 별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사실은. 그 당시에 장자권에 대한 부분은 모든 형제들의 두 배를 주는 것이 장자권의 축복입니다. 언약의 씨를 이어야 할 것이 장자에 있습니다, 사실. 그래서 장자권의 축복은 다른 말로 하면 진짜 중요한 양의 새끼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고, 언약의 씨, 양의 새끼를 이야기하는 것이고 또 그리스도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에서는 그 중요한 장자권의 축복의 역사를, 그 위치에 대한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자기가 배고프니까, 당장 배고프니까 그 장자권을 소홀히 여겼다고 오늘 본문의 마지막 34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32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서가 이르되 내가 죽게 되었으니.”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냥하고 돌아와 보니까 배가 고픈데 마침 야곱이 죽을 쑤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죽을 한 그릇 달라 합니다. 그런데 그 죽을 달라는 요청 앞에 야곱은 기회가 이 때다 싶어서 그러면 형, 좋습니다, 장자권을 내게 주면 이 죽 한 그릇을 주겠습니다, 그러니까 한 이야기가 내가 죽게 되었는데 장자권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 무슨 말입니까? 내가 죽게 되었으니. 나 중심한 것입니다. 세상 중심한 것입니다. 육신 중심한 것입니다. 내가 죽게 되었으니. 장자권의 이 엄청난 영적인 축복을 전혀 알지 못하고 육신적인 것, 세상 중심한 것에 빠져 있는 에서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또 그 다음에 리브가와 야곱이 나옵니다. 똑같은 사람입니다, 사실. 리브가, 태중에 있을 때 이 자녀들이 어떻게 될 것이라는 언약을 하나님으로부터 들었지 않습니까? 그러면 이 언약이 어떻게 나를 통해서 이루어지느냐, 우리 야곱과 에서를 통해서 어떻게 이루어지느냐 지켜봐야 합니다. 그리고 야곱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머니를 통해서 반드시 들었을 것입니다.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반드시 네가 결국은 언약을 이어갈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야곱조차도 하나님의 언약이 내게 있다는데, 나를 하나님이 선택했다는데, 그러면 이 언약의 역사가 어떻게 나를 통해 이어질 것인가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고 기다려야 하는데 문제는, 하나님의 언약에 대해서 알았지만 그 언약을 이루는 방법에 대해서 자신이 개입한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 같은 경우에는 안 해도 될 고생을, 오늘 본문 이후로 보면 안 해도 될 고생이 시작되지 않습니까? 걸음걸음 앞에 결국 에서가 야곱을 죽이러 나오고, 집에 있을 수 없어서 도망쳐 나오고, 또 야곱이 도망쳐 나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에서가 한이 되어서 내가 야곱을 반드시 죽이겠다, 그러면서 나중에 추격까지 해왔지 않습니까? 고생이 시작된 것입니다. 안 해도 될 고생을 시작했습니다. 왜냐? 자, 리브가가 야곱으로 말미암아 속여서 복을 가로채도록 만든 장본인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사실을 그냥 지켜보면 될 것인데 자기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야곱을 준비하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이렇게 해서, 이렇게 이렇게 해 가지고 네가 복을 가로채라. 그러면서 야곱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말을 듣고 결국은 하나님의 언약을 믿기보다 결국 가만히 보면 하나님의 언약에 대해서 못 믿었다는 말이고, 하나님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언약을 이루는 일에 대해서 리브가도, 야곱도 동일하게 자신의 모든 것을 들고 나온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한 마디로 말하면 나를 중심한 것이고 세상 중심한 것이고 성공 중심한 부분들 속에서 예외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교회 다니면서 어떤 면에서 야곱처럼 신앙 생활할 수 있습니다. 믿기는 믿는데 내가 무엇인가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피해를 보든 말든 나만 잘 되면, 잘 먹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나에게 이익이 된다면 끝이라는 것, 이런 마음을 가지고 신앙 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여러분, 내 머리를 쓰고 내 방법을 쓰고 수단을 쓰고, 그게 하나님의 복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그래서 여러분, 결국은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밤새도록 계획하고 안 좋은 머리를 굴려가며 염려하고 걱정하고. 아니,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든 맡기면 될 것인데, 분명히 야곱과 리브가,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언약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들 아닙니까? 그렇다면 맡기면 될 것인데 자기 방법을 동원해서 이루려고 하는, 이게 어떤 면에서 야곱과 리브가의 문제일 뿐 아니라 오늘 신앙 생활하고 있는 저와 여러분의 모습이 아닌가? 그래서 저는 오늘 본문을 죽 준비를 하면서 결국은 이삭과 에서, 같은 과이고 리브가와 야곱이 같은 과이지만 동일하게 이 사람들이 갖고 있는 나 중심한 것, 세상 중심한 것, 또 성공 중심한 것, 그게 전부 다 내 속에 가득 차 있다는 것. 내 속에 가득 차 있다는 것. 무엇이 소중한 것인가를 알지 못하니까 나 중심하고 세상 중심하고 성공 중심한 삶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 사실은 한 가정의 역사에 대한 부분들, 이게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이야기입니다. 내 속에 이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히브리서 12장 16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 했습니다.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 우리 가운데에도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그 일들을 살피라는 것입니다. 아니, 내가 그 가운데 빠져 있기 때문에 내 자신을 살피라는 사실을 오늘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모두 다 아담의 자녀로서 태어날 때부터 로마서 3장 10절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했습니다. 로마서 3장 23절에 보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그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영이 죽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죄와 허물로 죽었던 너희라 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내 안에 하나님이 없기 때문에 틀린 주인인 사단이 내 인생의 주인 되어서 내 중심으로, 세상 중심으로, 성공 중심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왜냐? 내 영이 죽었기 때문에. 죄와 허물로 죽었기 때문에. 그래서 죄와 허물로 죽은 우리의 삶이 어떤 삶인가를 요한일서 2장 15절, 16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나 중심, 세상 중심, 성공 중심. 같은 말 아닙니까? 보이는 육신 중심으로 살아가는 것, 같은 말 아닙니까? 이것은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만나지 못하고 악한 사단의 손에 붙잡혀 있으면 결국은 나 중심하고 세상 중심하고 성공 중심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보이는 것대로 살아가고 안목의 정욕, 세상 것 취하고 살아가고 우리의 자랑, 나를 자랑하고 내 자녀들 자랑하고 가문을 자랑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아무도 여기서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우리에게 참된, 나 중심하지 말고 세상 중심하지 말고 성공 중심하지 말고, 그러한 삶은 반드시 실패하는 삶이니까 올바른 성공의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그 그리스도를 보내시사 우리의 영을 살리신 것입니다. 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영이 살아나는데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영을 부어주셨는데 지난날까지는 로마서 8장 15절에 보면
세상의 무서워하는 영의 인도를 받았지만 그러나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순간 양자의 영, 성령, 아버지의 영을 주셔서 바로 성령께서 우리를 인도해 가시도록 하나님의 축복된 걸음으로 우리를 인도해 가시도록 하나님께서 우리를 바꾸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구원받는 순간 우리 안에 하나님의 영이 들어오셔서 영원히 하나님 앞에 아버지라 부르며 나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영은 우리에게 들어오심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영원히 함께하시고 영원히 우리를 인도하시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령의 인도 받으면 우리 안에 우리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를 우리 안에서 바꾸어 나가시는 것입니다. 나를 중심한 것, 세상 중심한 것, 성공 중심한 삶을 살아가는 내 인생의 모든 기준을 바꾸어서 오직 그리스도, 오직 하나님 나라, 오직 성령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셔서 우리를 바꾸어 가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체질을 바꾸어 가시고 우리의 각인을 바꾸어 가시고 우리의 모든 뿌리들을 바꾸어 가십니다. 누가? 하나님의 성령께서. 여러분, 우리 자신이 나를 중심하고 세상을 중심하고 성공 중심하지 말아야 한다, 다 알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됩니까? 안 됩니다. 우리 자신들이 나를 없앨 수 있나요? 세상 따라가는 것, 물론 세상이 나쁘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게 중심되어 있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여러분, 내가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게 중심되어 있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여러분, 성공도 누구나 성공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그게 나쁜 게 아닙니다. 그게 중심되어 있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모든 삶의 중심이 성공이고 물질이고 나이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그런데 더욱이 나를, 세상을, 성공을 우리가 모른다 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모른다 할 수 있나요? 안되잖아요, 우리가 우리 자신들을 바꾸어 나갈 수 있습니까? 우리의 뿌리들을 바꾸어 나갈 수 있습니까? 안됩니다. 우리 스스로 할 수 없어요. 여러분 명상하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이 초월적인 나, 네가 하나님처럼 된다. 이야기하잖아요. 네가 하나님처럼 된다는 것. 네가 바뀌어져서 하나님처럼 된다는 거예요 네가 그렇게 살 인생이 아니다. 잠재의식, 무의식을 개발해서 네가 하나님처럼 된다. 초월적인 나, 네가 하나님 된다는 말 아닙니까? 진짜 우리가 하나님처럼 될 수 있습니까? 다 사단의 거짓말에 속는 거예요. 나를 바꿔갈 수 없어요. 인간은 나를 바꾸지 못해요. 거짓말해서 그래요. 내가 누구인가를 알고 나를 붙잡고 있는 존재가 무엇인가를 안다면 나를 내가 못 바꾸는 겁니다. 지난 주 1부 본부설교에서 “무문관”이라는 절에서 하는 수행부분들을 류목사님 메시지 가운데 하신 적이 있죠. 말씀 들으셨죠? 무문관 그게 불교에서 일어나는 수행 방법 중에 하나입니다. 여러분, 장좌불 아시죠? 누워서 자는 것이 아니라 앉아서 잠을 잘 때도 앉아서 잡니다. 그래서 수행하는 것이 장자부입니다. 성철스님 같은 경우에는 10년 동안에 밖을 안 나왔다 하잖아요. 그게 수행방법중 하나예요 무문관도 수행 방법 중에 하나인데 요즘 7일, 8일 이렇게 무문관해가지고 가로 세로 1.5 밖에 안 되는 작은 방에 들어가서 밖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매일 밥을 한 끼만 주고 거기서 나를 없앤다는 거예요. 그래서 얼마 전에 다큐멘터리로 나왔다는데, 거기에 천일 동안에 그냥 아예 밖에서 문을 잠그고, 그들의 최고의 수행방법인데, 결국은 밥 한 끼씩 주고 문을 잠그고 수행하는데 거기에 못 견뎌서 300일 만에 나오는 사람이 있고, 500일 만에 나오는 사람이 있어요. 여러분 말이 천일이죠. 그러면 얼마입니까? 3년 정도입니다. 사실 그 안에 천일 동안 앉아 있으면 돌겁니다. 정신문제 올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그런 수행방법을 통해서 한 여성이 일반인들이 하는 수행이 아니고 진짜 절에 중으로 입문한 사람들이 그런 수행을 하는 것인데 한 여성이 천일 수행하고 나와서 기자가 물었습니다. 그런데 류목사님 메시지 가운데에는 그 사람이 겸손함으로 그렇게 이야기 했는지 모르지만 이렇게 이야기 했데요 들어가기 전에나 지금이나 똑같다는 겁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우리 자신은 우리 자신을 바꿀 수 없어요. 변화시킬 수 없어요.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문제를 가지고 우리 자신을 바꾸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래서 그리스도를 주신 거예요. 오직 그리스도 속에 들어가면 되요 오직 하나님 나라 그 속에 들어가면 되요 오직 성령하면 되요 나는 나 자신을 바꿀 수 없지만 우리에게 있는 고질적인 문제들 말 못할 고질적인 문제들, 습관화 되어있는 문제들, 나는 나를 바꿀 수 없지만은 오직 그리스도, 오직 하나님 나라, 오직 성령 안에 들어가면 은 누가 하시느냐 하나님이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이 가지고 있는 나, 세상, 성공 중심한 것 내가 어떻게 바꿉니까? 내가 그걸 더 좋아하는데요. 우리 체질이 그런데요 그래서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것 아닙니까? 내가 바꿀 수 있다면 그리스도 필요 없어요. 내가 바꿀 수 없기 때문에 그래서 그리스도를 보내 주신 거예요 여러분이 갖고 있는 문제를 여러분이 해결하려고 하지 마시고요 오직 그리스도 속에 들어가기를 바랍니다. 오직 하나님 나라 이 언약 붙잡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거기에 성령께서 역사하십니다. 그러면 나도 모르게 내 자신이 바뀌고 변화되게 되어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이삭과 에서, 또 리브가와 야곱을 통해서 우리 자신이 갖고 있는 문제가 바로 이 사람들 갖고 있는 문제고 이것을 통해서 나를 보기를 원하시는 거예요 어느 누구나 갖고 있는 인생의 문제, 바꿀 수 없는 인생의 12가지 문제 이 부분들이 오늘 이 시간에 오직 그리스도 오직 하나님 나라, 오직 성령 이 속에 들어감으로 말미암아 변화되어지는 그런 축복된 응답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오직 그리스도
두 번째입니다. 여러분, 우린 오늘도 다른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의 문제들, 특별히 편안할 때는 내가 오직 그리스도 붙잡았는지 아니면 은, 육신의 것을 쫓아가는지 모릅니다. 평안할 때는, 아무 일 없을 때는 모릅니다. 그러나 진짜 문제 만나면 은 오직 그리스도, 그리스도가 내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했다. 그 사실 가진 사람인지 아니면 은 오직 그리스도, 그 그리스도가 내 인생에 모든 문제 해결 아지 않으셨으니깐 자연적으로 육신의 것을 따라 갈 수밖에 없죠. 육신의 것을 따라가는 사람인지 언제 결정되어지고, 분별되어지느냐? 문제와 사건을 만나면 은 진짜 그리스도가 그리스도 된 사람인지 아니면 그리스도 말은 하지만 육신의 것을 따라가는 사람인지 분별이 되어져요 오늘 본문에 에서가 배고프지 않았다면 은 장자의 명분을 팔 이유가 없어요. 그렇잖아요. 그런데 배고픔의 육신의 문제를 당하니깐, 문제 당하니깐 그 문제 앞에 결국은 드러나는 것이 뭐냐? 내가 배고파 죽겠는데, 이 장자권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 결국 육신의 사람으로 드러나게 되요 내가 영의 사람인지 육신의 사람인지 잘될 때는 모른다니까요 그런데 진짜 중요한 문제와 사건을 당하면 은 내가 영의 사람인지 육신의 사람인지 드러나게 되고 내가 믿음의 사람인지 그렇지 않는 사람인지 내가 정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인지 믿는다 하면서 육신의 것을 쫓아하는 사람인지 드러나게 되어있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영적인 부분들은 그게 실상이에요. 육신적인 것은 진짜 같지만은 그것은 허상이고 속이는 겁니다. 그런데 영적인 부분들, 야곱이 중요하게 여겼잖아요. 그래서 장자의 축복, 일단은 언약에 대한 그 이루실 일들을 모르고 자기 방법을 썼지만은 한 가지 야곱에게는 영적인 부분을 중요하게 여기는 그 장자의 축복을 중요하게 여기는 그 마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에서는 영적인 부분들, 전혀 중요치 않게 내가 배고파 죽겠는데 이 장자의 명분이 무슨 필요 있느냐? 전혀 중요치 않게 육신적인 것을 쫓았어요. 우리에게 있는 육신적인 것은 허상이에요. 진짜 중요한 것은 영적인 것인데 영적인 것들을 붙잡게 되면 은 육신적인 것들도 뛰어넘게 됩니다. 육신적인 것들을 소홀히 여기라 그 말이 아닙니다. 육신적인 것들을 멸시하라 그 말이 아닙니다. 육신적인 것 너무 중요합니다. 그런데 진짜 영적인 것들을 붙잡게 되면 문제와 사건 통해서 영적인 부분들 선택하고 붙잡게 되면 육신적인 것도 뛰어넘게 되요 사도행전 5장 41절에 보면 사도들이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핍박받는, 능욕 받는 일에 쓰임 받음을 기뻐했다 했어요. 아니 누가 핍박 받는 것에 기뻐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여러분 말이 핍박이죠. 그 핍박 받는 사람을 좋아할 사람 아무도 없어요. 그런데 사도들은 예수그리스도 그 이름 때문에 핍박받는 일에, 그 자리에 서게 된 것을 감사하며 기뻐했다란 말은 무슨 말입니까?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 그분이 나를 알고 나를 인도하신다는 이 사실에 신뢰를 보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깐 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어떤 일이 주어진다 할지라도 나는 감사하다는 사실입니다. 영적인 것들 붙잡은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육신의 것을 바라봄으로 말미암아 실패하는 인생이 되지 말고요. 여러분 문제와 사건 있다면 그 문제와 사건 앞에서 여러분 선언하세요. 그래도 예수는 그리스도시다 그 그리스도는 나의 모든 문제 해결하셨다. 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나는 모든 것 끝났다. 선업하세요. 문제와 사건 있을 때 마다 그래도 예수는 그리스도시다 이 믿음 고백하세요. 문제와 사건 있으면 은 육신의 것 생각하고 오늘 본문에 에서가 내가 배고파 죽겠는데 장자권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 이것이 아니라 이 문제를 당할 때 에서는 육신적인 것을 선택했죠. 육신적인 것을 선택하고 육신적인 것을 따라가면 결국 육신적인 실패를 당하게 되요 문제와 사건 당할 때 믿음 고백하시는데 어떤 믿음을 고백하느냐? 그래도 예수는 그리스도시다. 다 이루었다 하신 그 그리스도의 언약이 내게 성취된 것이다. 나는 모든 문제 끝났다. 이 믿음 가지고 나가게 될 때 하나님이 여러분 생애를 책임져 주시게 되어있습니다. 여러분 가장 큰 교만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분명히 주님께서 다 이루었다 했는데, 나는 아니라는 겁니다. 분명히 주님은 다 해결했다 했는데 다 이루었다 말씀했는데 나는 아니라는 겁니다. 이게 교만 중에 교만이에요 혹시나 내 삶이 그 속에 있지 않는지 살펴보시면서 문제와 사건다음에는 오직 그리스도! 그래도 예수는 그리스도 시다! 나의 모든 문제 끝! 이 믿음의 역사 앞에 승리하는 그런 축복된 걸음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의 인생의 문제 나를 중심하고 세상중심하고 성공 중심하는 것 결국 나를 중심해서 살아가는 것 같았지만 결국은 사단이 충만해있고 거기에 무너질 수밖에 없는 그것이 바벨탑이었던 것을 알게 하여주시고 나의 문제, 또 세상을 바라보며 성공 바라보며 살아가는 나의 모든 문제들을 오직 그리스도, 오직 하나님나라, 오직 성령으로 바꾸는 축복의 은혜를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우리의 모든 문제와 사건 속에서 그래도 예수는 그리스도시다 이 믿음 고백함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걸음들을 책임지시는 이 사실들을 체험하는 증인들 되도록 주님 역사하여 주옵소서. 살아계신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2017년 8월 27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소중한 것을 붙잡아야 합니다
(창25:27-34)
서론: 오늘 본문에 보면 에서가 야곱에게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판 내용이 나옵니다. 가장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에서처럼 영적인 축복을 놓치고, 야곱처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영적인 축복을 쟁취 하자는 것이 아니라 가장 소중한 것을 붙잡아야 됩니다.
1.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멸망의 뿌리(12가지)
가. 이삭 - 순종,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의 아들(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사람)
1) 이삭이 에서를 편애하여 사랑함(28절 사냥한 고기를 좋아함으로 그를 사랑함)
2) 이삭에게 소중한 것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아니였음(육신적인 것)
3) 나 중심, 세상적인 것을 버리지 못 함
나. 에서
1) 아브라함의 손주, 이삭과 리브가의 장자 - 축복된 자리인 것을 모름
2) 장자권을 소홀하게 여김(34절 죽게 되었는데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다. 리브가와 야곱
1) 언약의 약속을 이루어 가는 과정 속에서 자신들이 개입
2) 리브가 - 자신의 생각으로 야곱에게 복을 가로채도록 함
3) 야곱 - 하나님의 약속을 온전하게 깨닫지 못하고 장자권에만 관심이 있음
라. 내 속에 가득 차 있음(나 중심, 세상 중심, 성공 중심) - 히12:16(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펴라)
1)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남(롬3:10 의인이 없음 / 롬3:23 모든 사람은 죄인)
2) 사단이 주인 된 삶 - 요일2:15-16(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 세상으로부터 온 것)
3) 양자의 영을 주시고(롬8:15-17), 오직 그리스도, 오직 하나님 나라, 오직 성령 속으로 들어갈 때 나를 바꾸심
2. 오직 그리스도
가. 육의 사람과 영의 사람으로 나누어짐 - 문제, 사건이 왔을 때
나. 영적인 것이 기준
1) 육신적인 것은 허상 / 영적인 것은 실상
2) 영적인 것을 붙잡으면 육신적인 것을 뛰어 넘게 됨 - 초대교회 사도들이 죽음의 위기를 당한 것도 감사(행5장)
결론: 문제와 사건 앞에서 그리스도를 고백 하시길 바랍니다. 어떤 문제가 오든지 간에 그래도 예수는 그리스도시고, 나의 모든 문제를 끝났다는 것을 고백 해야 합니다. 이 고백 속에서 믿음의 사람들로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 기도제목
● 말씀실현(실천사항)
● 전도대상자
번호 | 제목 | 본문 | 설교일 | 첨부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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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7 |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 삿2:6-10 | 2025-03-09 | |
1476 |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 삿1:1-7 | 2025-03-02 | |
1475 |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 단12:1-4 | 2025-02-23 | |
1474 |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 단11:28-39 | 2025-02-16 | |
1473 |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 단10:10-21 | 2025-02-09 | |
1472 |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 단9:20-24 | 2025-02-02 | |
1471 |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 단8:15-27 | 2025-01-26 | |
1470 |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 단7:9-14 | 2025-01-19 | |
1469 | 자기의 하나님을 믿음이었더라 | 단6:16-28 | 2025-01-12 | |
1468 |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 단5:17-31 | 2025-01-05 | |
1467 | [2025 송구영신예배] 하나님의 유업을 이을 자 | 갈4:4-7 | 2024-12-31 | |
1466 | 땅의 모든 사람을 다스리시는 하나님 | 단4:28-37 | 2024-12-29 | |
1465 | 완전한 승리를 내 것으로 누리는 성탄 | 눅2:8-14 | 2024-12-22 | |
1464 | 언약의 역사를 계속 이어가고 계시는 하나님 | 단3:8-18 | 2024-12-15 | |
1463 | 손대지 아니한 돌 | 단2:25-35 | 2024-12-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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