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하나님의 방법으로 사는 자
2017-09-1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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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0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하나님의 방법으로 사는 자”
(창27:1~12)


1 이삭이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더니 맏아들 에서를 불러 이르되 내 아들아 하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2 이삭이 이르되 내가 이제 늙어 어느 날 죽을는지 알지 못하니
3 그런즉 네 기구 곧 화살통과 활을 가지고 들에 가서 나를 위하여 사냥하여
4 내가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와서 먹게 하여 내가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
5 이삭이 그의 아들 에서에게 말할 때에 리브가가 들었더니 에서가 사냥하여 오려고 들로 나가매
6 리브가가 그의 아들 야곱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아버지가 네 형 에서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내가 들으니 이르시기를
7 나를 위하여 사냥하여 가져다가 별미를 만들어 내가 먹게 하여 죽기 전에 여호와 앞에서 네게 축복하게 하라 하셨으니
8 그런즉 내 아들아 내 말을 따라 내가 네게 명하는 대로
9 염소 떼에 가서 거기서 좋은 염소 새끼 두 마리를 내게로 가져오면 내가 그것으로 네 아버지를 위하여 그가 즐기시는 별미를 만들리니
10 네가 그것을 네 아버지께 가져다 드려서 그가 죽기 전에 네게 축복하기 위하여 잡수시게 하라
11 야곱이 그 어머니 리브가에게 이르되 내 형 에서는 털이 많은 사람이요 나는 매끈매끈한 사람인즉
12 아버지께서 나를 만지실진대 내가 아버지의 눈에 속이는 자로 보일지라 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을까 하나이다
 창27:1~12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십시다. 오늘 “하나님의 사람들이 사는 방법”입니다. 오늘 찬양대를 통해서 고백했던 것처럼 우리가 사는 것은 모든 것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자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가운데 넘쳐남으로 말미암아 올바른 영적인 것들을 분별하고 또 시간표를 볼 수 있는 눈들이 열려지고 제대로 된 하나님의 축복된 응답을 받아 누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성도들이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서 살아가는 삶을 보면 세 종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상 속에 살면서 그냥 세상을 따라가면서 사는 삶이 있고요, 또 세상과 나는 세상은 세상이고 나는 나다 분리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기도원을 찾기도 하고요, 더럽고 추악된 세상속에서, 죄악 된 세상 속에서 세상은 세상이고 나는 나다 해서 분리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고요, 또 한편으로는 세상 속에 들어가서 그 세상의 모든 것들을 도전하고 세상의 모든 것들을 변화시키며 흐름을 바꾸어나가는 삶이 있습니다. 오늘 이 아침에 이 자리에 참석한 한 사람 한 사람이 우리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과연 어떠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인가? 그냥 세상이 좋다고 세상을 따라가는 삶인가? 세상은 세상이고 나는 나다 하는 분리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인가? 아니면 세상 속에 들어가서 세상 앞에 도전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며 세상의 흐름을 바꾸어나가는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인가? 여러분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은 어떤 삶일까요? 다른 것이 아닙니다. 세상 속에 들어가서 세상에 도전하고 세상의 흐름을 바꾸고 세상을 살리는 사람으로 저와 여러분 축복하시기 원해서 부르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우리를 빛과 소금이라고 할 때에 “너는 세상의 빛으로, 세상의 소금으로 부르셨다”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요. 그리고 마태복음28:18절에도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으라”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세상을 등지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요 너희는 세상 속에 들어가서 모든 민족으로 제자 삼을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연히 하나님의 자녀된 저와 여러분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이 드러나길 원하시고요, 하나님이 보여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세상 현장 불신자들이 저와 여러분을 보면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보게 되어 있어요.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리스도를 믿게 되어 있어요. 이 축복을 누릴 수 있도록 하나님은 우리에게 비록 발을 땅에 디디고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의 배경을 하늘 배경으로, 보좌의 어마어마한 축복 가운데 저와 여러분을 세우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 어마어마한 축복을 알지 못하니까 사실은 많은 성도들이 세상의 것들을 교회에 가지고 들어와서 그것이 교회의 기준인양 그것을 교회의 잣대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게 바로 교회의 타락입니다. 교회 안에 세상의 것들을 가지고 들어와서 그것을 세상의 것들이 교회의 기준처럼 되어버린 그러니까 교회는 전혀 현장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영적인 영향력을 줄 수 없는 그런 힘없는 존재로 되어버린 것이지요. 여러분 세상의 것이 교회에 들어와야 된다 그 자체가 사실은 틀린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 보좌의 축복으로 넉넉히 세상을 변화시키고 세상의 흐름을 바꾸는 그런 축복들을 우리에게 허락하셨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세상 속에 들어가서 세상을 변화시키고 세상의 흐름을 바꾸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떠해야 될까? 두 가지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 세상 방법에 각인되어 있는 모습
첫 번째입니다. 세상의 방법에 각인되어 있는 모습들을 보아야 합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 여러분이 잘 아시지요. 야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실 이삭이 먼저 그의 아들 에서를 불러서 조용히 이야기 합니다. 내가 너를 축복할 테니까 가서 고기를 잡아와라. 조용히 이삭이 에서를 불러서 이야기를 했어요. 그 이야기를 또 엿들은 사람이 리브가입니다. 그것을 엿듣고 야곱을 불러서 결국은 어떻게 음식을 어떻게 준비했고, 어떻게 속여서 어떻게 장자의 명분을 야곱이 가로챘는가 하는 부분들을 아주 자세하게 오늘 본문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어릴 때부터 이 본문을 들은 말씀들이기 때문에 잘 아시는 부분들입니다. 그런데 이 본문을 통해서 결국은 우리가 야곱처럼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하나님의 복을 쟁취해야 된다 그것을 말하려고 이 성경을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잘못 이해하고 있는 부분들이 있는데 그게 뭐냐 하면 우리가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야 하니까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야곱처럼 별미를 만들어서 하나님의 축복을 누려야 된다. 그게 맞는 말입니까? 그래서 어떤 분들은 그런 말을 해요. 성경말씀 전혀 상관없는 말씀, 엉뚱한 말씀인데 “천국은 침노하는 자들이 빼앗는 것이다”그러니까 사실 축복과 전혀 상관없는말이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천국은 침노하는 자들이 빼앗는 것이다, 차지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일반 생활에서도 적극적이어야 하고, 신앙생활의 삶도 적극적이어야 한다 그래서 야곱처럼 진짜 언약의 역사들을 쟁취해서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육신적안, 물질적인 축복들 우리가 받아 누려야된다 그렇게 말들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전부 다 틀린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어떻게 하면 우리가 복을 받는가 거기에 대한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사실입니다. 어떻게 하면 내가 이 땅에 살면서 복을 받는 가 그 사실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오늘 본문은 이삭과 또 리브가, 그의 아들 야곱을 통해서 진짜 그 중심에 각인된 것이 무엇이고 이미 각인되어서 뿌리내리고 체질된 것이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정확하게 보여지고 있는 부분들입니다. 여러분 그 어느 누구도 예외 될 수 없는 부분입니다. 믿는 사람이건, 믿지 않는 사람이건, 결국은 믿는 사람들조차도 정말 이 부분 속에서 중요한 답을 얻지 못하면 거기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데요 그게 뭐냐 하면 나도 모르게 되어진 나가 있어요. 그게 창세기3장과 6장과 11장입니다. 나도 모르게 되어진 나, 그리고 또 우리는 보고 배우는 모든 것 거기에 익숙해 져 있어요. 그 익숙해져 있는 것이 지금 어떤 면에서 문화화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익숙해 져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게 지금 문화라고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 문화의 배경은 미신과 점술과 우상의 배경들 아닙니까? 그리고 우리도 모르게 우리 속에 굳어져 있는 것이 있습니다. 개인멸망 6가지 굳어져 있습니다. 이것은 가지고 인생의 12가지 문제라고 하는데 이것은 불신자들 예외 없이 다 붙잡혀 있는 것이고요, 함정과 올무와 이 틀 속에 가두어져 있는 것이고요, 믿는 성도들도 오늘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의 방법대로 라고 이야기 했는데 하나님의 방법대로 사는 법을 알지 못하면 여기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어마어마한 영적인 축복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빠져나오지 못하니까 결국은 한계를 당하고 결국은 영적인 축복을 다 놓치고 실패하는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사실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먼저 오늘 본문의 주인공 이삭을 한번 보십시다. 이삭은 오늘 1절에 보면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요. 27:1절에 보면“이삭이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를 못하더니” 어느 정도로? 사실은 에서와 야곱을 분별하지 못할 정도로 눈이 어두웠어요. 그런데 단순히 육신의 눈만 어두워진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성경을 볼 때 눈이 어두워서 보지 못했다 할 때는 육의 눈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고요, 영적인 분별력이 없어진 것을 가지고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삭이 사실 신앙이 희미해지고 나이가 들면서 신앙이 희미해지고 세상 속에 살면서 세상 것에 익숙해져 있는 부분들 속에서 결국은 내 마음대로 모든 것 할 수 있다 라는 부분들을 오늘 이삭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특별히 눈이 어두워서 보지 못했다 여러분 잘 알고 있는 사무엘상에 보며 엘리제사장에 대한 부분이 기억나잖아요. 엘리제사장 조차도 눈이 어두워서 보지 못했다 했습니다. 그때 눈이 어두워 보지 못했다 할 때에 성경본문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계시가 엘리에게 임하지 않았어요. 영적으로 완전히 어두운 가운데 빠진 것을 말하지요. 그러니까 언약궤 옆에 자고 있는 사무엘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는 것 아닙니까? 제사장인 엘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어요.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수 없는 영적인 상태가 되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그만큼 영적인 눈이 어두워진 겁니다. 분별력이 없어진 겁니다. 그러면서 어느 정도로 또한 분별력이 없어졌느냐하면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이 있습니다. 홉니와 비느하스이지요. 그 두 아들이 완전히 타락해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그 타락의 역사들을 지적하지도 못하는 그래서 엘리 제사장도 알고 있는 엘리 제사장 가문이 망하는 그 이야기를 어린 사무엘에게 하나님께서 하신 내용들을 사무엘상에 보면 말씀이 나오고 있습니다. 엘리의 두 아들이 어떠했습니까? 성전에 드려지는 제물 고기를 오히려 다 가로채고요, 성전에 봉사하는 여자들을 취해서 동침하게 되고, 완전히 타락해 버린 것이지요. 그 사실을 제사장인 엘리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들을 바르게 바꾸어나가지 못하는 그만큼 영적인 힘이 없었던 엘리제사장의 상태를 이야기 하면서 눈이 어두워서 보지 못했다 했어요. 오늘 본문의 이삭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영적인 분별력이 완전히 사라져 버리고 결국은 내가 내 마음대로 모든 것 할 수 있다라는 것, 내가 원하면 모든 것 할 수 있다라는 것, 그 고백이 어디에서 나오느냐? 2~4절에 나옵니다. 제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이삭이 이르되 내가 이제 늙어 어느 날 죽을는지 알지 못하니 그런즉 네 기구 곧 화살통과 활을 가지고 들에 가서 나를 위하여 사냥하여 내가 즐기는 별미를 내게로 가져와서 먹게 하여 내가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 여기에 4절 특별히 보면 내가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와서 먹게 하여 내가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 한마디로 말하면 자기중심의 우선순위를 가지고 있는 창세기3장의 배경가운데 있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 마음대로 하겠다라는 거예요. 이게 창세기3장 문제 아닙니까?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을 때에 사실은 사탄의 말에 속은 것이지요. “네가 하나님처럼 되리라”네 마음대로, 네가 하나님 되리라 이 부분들이 이삭에게도 그대로 내 마음대로 하겠다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4절에 내가 내가 내가 내가...내 마음대로 하겠다라는 부분들을 우리에게 지적하고 있는 부분들이지요. 사실은 정상적인 하나님의 감동으로 에서에게 장자의 축복을 넘겨주려는 것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결국은 아무도 모르게 에서를 불러서 네가 고기를 잡아오면 내가 그것 먹고 내가 너를 축복해 줄 테니까 고기를 잡아오라 하는 그것을 리브가가 또 엿들은 것 아닙니까? 사실은 이삭의 부분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창세기 3장의 문제 속에 깊이 빠져 있는 모습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으면서, 결국은 이삭이 에서에게 축복하려고 하는 내용이 어떤 축복이냐 하면 아브라함에게 주신 축복이었고 아브라함이 받은 복이었습니다. 그게 자기에게 주어졌고, 그것을 다음 세대에 전달해야 할 굉장히 귀중한 축복인데 그냥 에서를 고기 받아먹고 축복하겠다는 이 자체가 틀린 것 아닙니까? 지금 자기가 갖고 있는 복이 어떤 복인지도 알지 못하는 경우였습니다, 사실. 이미 아브라함이 가졌던 복 아닙니까? 창세기 12장에, 또 창세기 15장에, 창세기 25장에도 아브라함이 가졌던 복이 자기에게 임한 사실을 말하고 있고, 또 야곱의 속임수에 속아서 이삭이 야곱의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 기도하지 않습니까? 그 기도하는 내용을 보면 이삭이 전달하려고 하는 복이 무엇인가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게 바로 아브라함이 받은 축복이었고, 그게 자기에게 전달되었고 다음 세대에 반드시 전달되어야 할 중요한 언약이거든요. 그런데 그게 비록 야곱이 속여서 그것을 자기가 취했지만 그 축복이 아브라함이 받은 복이라는 사실, 오늘 읽지 않은 27장 29절을 보면 나옵니다. 29절을 한번 봅시다. 29절에 이미 아브라함에게 주신 것이라는 부분이 나오고 있는데, 29절을 같이 한 번 읽어 봅시다.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머니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너를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 여기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너를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 어디서 많이 본 내용 아닙니까? 누구에게 주신 축복입니까?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입니다. 그게 자기에게 주어졌고 그 축복을, 이 어마어마한 축복을 다음 세대에 물려줘야 할, 전달해야 할 엄청난 귀중한 축복인데 이 축복된 복음의 가치를 제대로 이삭이 모르는, 이렇게 영적인 분별력이 어두워졌던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실은 이것이 성경적으로도 맞지 않습니다. 그냥 에서가 해 주는 고기를 얻어먹고 에서를 축복한다, 장자의 축복을 준다, 그게 그 당시에 문화적으로도 안 맞는 것입니다. 원래 장자의 축복을 선언할 때는 가족들 다 모인 자리에서, 친지들과 친척들 다 모아놓고 내게 주신 이 장자의 축복을 내가 이 아들에게 전달한다, 중요한 축제와 함께 전달하는 것이 장자의 축복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이삭은 뭐라 했습니까? 에서에게 네가 사냥해서 고기 가져오면 내가 그거 먹고 너를 축복할게. 도저히 말도 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결국 왜 그러냐? 영적으로 그만큼 분별력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결국 이삭은 시간표, 때를 볼 줄 몰랐습니다. 2절을 봅시다. 2절을 보면 “이삭이 이르되 내가 이제 늙어 어느 날 죽을는지 알지 못하니.” 내가 이제 늙었는데 내가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어느 날 내가 언제 죽을지 내가 모르니까, 그러니까 에서를 불러서 요구하지 않습니까? 고기 잡아 오너라. 그러면 내가 너를 축복할게. 사실 여기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이 말은 사실, 때와 시간표를, 시기를 이삭이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사실 이 고백한 이후에, 이 이후에 40년이 지난 후에 이삭이 죽게 되었습니다. 바로 죽은 게 아닙니다. 40년 지난 후에 이삭이 죽게 되었습니다. 그 말은 무슨 말입니까? 때를, 시간표를 잘 모르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영적으로 어두워지니까. 결국은 야곱을 축복하고 그 야곱이 도망가게 되고 결국은 라반의 집에 들어가서 섬기다가 라반의 집에서 나와서 에서와 화해하게 되고 그러면서 또 야곱의 자녀들이 세겜에 들어갔을 때에 딸 디나가 강간당하는 사건을 당해서 가정이 어려움을 당하고 그러면서 라헬이 먼저 죽고 그 다음에 이삭이 죽는, 이 일 후에 40년이나 지난 후에 이삭이 죽게 되는 그런 시간표가 왔습니다. 결국은 이 때와 시간표를 이삭이 제대로 알지 못하고 2절에 보면 “어느 날 죽을는지 알지 못하니.”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못하면, 영적인 사실들로 정말로 눈을 열지 못하면 영적인 분별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시간표도, 때도 보지 못하는, 그런 영적인 캄캄함 가운데 빠지게 되는 사실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누구에게 축복해야 하는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아무것도 바르게 분별할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반드시 이삭은 야곱에게 장자권을, 축복을 줘야 합니다. 다 불러 모아놓고, 그것도. 그냥 에서에게 고기 잡아 와라, 내가 너를 축복할게, 그럴 수준이 아닙니다. 다 불러놓고. 왜냐? 이미 창세기 25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리브가가 아이를 가졌을 때 두 민족이 네 태중에 있구나, 그러면서 뭐라 했습니까?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나님이 분명한 언약을 리브가에게 주었고 그 언약의 역사를 이삭도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모든 가족들을 다 불러놓고, 아니, 그냥 개인적으로 에서를 불러서 내가 네게 복 줄게, 그럴 것이 아니라 모든 가족들을 다 불러놓고 하나님이 주신 언약이 야곱이다, 그래서 나는 당연히 이 장자의 축복을 야곱에게 선언한다, 그렇게 되어야 하는데 누구를 축복할 지도 모르는, 그런 영적인 상태에 빠져있는 이삭의 모습을 오늘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여러분, 오늘 이삭은 무엇 때문에? 고기 때문에. 그래서 에서에게 오늘 끝까지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고기 사냥해서, 고기 잡아 와라. 그러면 내가 그거 먹고 축복해줄게. 고기 때문에. 여러분, 우리가 먹는 것 때문에. 여러분, 먹는 것 중요하냐, 그렇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중요합니다. 먹는 것 때문에 섭섭함에 빠지게 되고 먹는 것 때문에 시험에 들기도 하지 않습니까? 저도 건강 때문에 한 번씩 이렇게 체중을 좀 빼야겠다 싶으면 몸을 조절하기 위해서 운동도 하고, 또 식이요법도 합니다. 그런데 한 번씩 이렇게 배가 고르면 모든 만사가 귀찮습니다. 그러면서 느끼는 것이 먹는 재미도 없이 어떻게 사느냐? 먹는 재미도 없이 어떻게 살까? 여러분, 먹는 즐거움이 얼마나 굉장한 즐거움을 주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사람은 뭐 그렇게 먹는 것이 중요하냐? 중요합니다. 그것 때문에 섭섭하고 그것 때문에 시험에 들고 그것 때문에 상처 받고 하지 않습니까? 삐치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오늘 본문에 이삭은 고기 때문에. 그런데 이삭과 똑같은 형태가 나오는데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길을 가는 동안에 불평하고 원망한 것이 무엇 때문인지 아십니까? 먹는 것 때문에. 민수기 11장에 사건이 나오는데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길을 가는 동안에 하나님께서 무엇을 주었습니까? 만나를 주었습니다. 그 만나를 처음 받아들고 얼마나 기뻤던지 꿀 섞인 과자와 같다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계속 먹다 보니까 뭔가 이스라엘 백성들 진영 안에서 불평과 원망이 터져 나오는데 우리가 늘 이것 먹고 살아야 하느냐? 언제는 꿀 섞은 과자 같다고 이야기 해 놓고 우리가 늘 이것 먹고 살아야 하느냐, 이것 먹기 위해서 애굽에서 빠져나왔던가, 애굽에는 더 좋은 것, 더 먹을 것 많지 않느냐, 부추도 있고 우리가 솥에 죽을 끓이면서 거기 많은 것들을 먹고 사는 것이 아니냐, 굳이 만나 먹기 위해서 이 광야에 나왔던 것이냐? 불평하고 원망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그렇게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이 그냥이 아닙니다. 거기 보면 애굽에서 섞여서 나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애굽 사람들입니다. 애굽에서 출애굽할 때에 이스라엘 백성이 열 가지 기적을 행했지 않습니까? 그 기적을 행하고 나서 야, 우리도 이스라엘 백성을 따라가면 뭔가 있겠다, 그러면서 따라 나온 애굽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바로 섞여 있는 애굽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만나 먹으면서 불평하니까 그 만나 먹고 불평한 부분들이 결국 이스라엘 모든 벡성들에게 전염되어버렸습니다. 그리하여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나 통해서 원망하고, 먹는 것 때문에 원망하고 불평하고, 그렇게 빠졌던 사실을 보게 됩니다. 이삭이 고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길을 가는 동안에 먹는 문제 때문에 시험에 빠지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본문이 그냥 이삭과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주어지는 말이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 뭔가를 메시지를 던지고 있고 경고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우리 현장의 실제적인 문제가 무엇입니까? 먹고 마시고 하는 문제 아닙니까? 그래도 목사님, 그렇죠. 먹어야 살 것 아닙니까? 목구멍이 포도청입니다. 그렇게 이야기하고, 그래도 먹어야 할 것 아닙니까? 전부다 의식주에 갇혀 있어서 하나님의 어마어마한 영적인 축복을 다 놓쳐버리고 현장에서 영적인 영향력을 줄 수 없는 존재로 타락해버린 것이 우리들의 모습이 아닌가 살펴봐야 합니다. 왜 그러냐? 우리 속에 깊이 각인된 것, 세상의 방법입니다. 그게 뭐냐 하면 그래도 먹어야지. 여러분, 창세기 3장과 6장과 11장에서 빠져나오지 않는 이상은 그 어느 누구도 의식주의 테두리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결국은 거기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서 한계가 오게 되어 있고 결국은 영적인 문제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믿는 성도들이라 할지라도. 많은 성도들이 세상 살아가면서 결국은 나 중심으로 살아가지 않습니까? 내 기준, 내 모든 것, 내 계획이 다이지 않습니까? 세상 살아가며 영적인 축복을 다 놓쳐버리고 육신적인 부분들만 우리가 붙잡고 있지 않습니까, 사실은? 그래서 뭡니까, 또? 결국은 세상에 짓눌려 살아가고, 하나님의 자녀가. 왜 그런 줄 아십니까? 창세기 3장과 6장과 11장의 세상의 방법이,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법 이전에 우리 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는 부분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 해방되는 그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먹고 살기 위해 살아갑니까? 그렇다면 우리 인생은 비참한 인생입니다. 예전에 우리가 다락방 말씀 운동하기 전에 1년에 한 번씩 수련원을 빌려서, 기도원을 빌려서 수양회를 했습니다. 그 때 수련회할 때에 강사 목사님 모셔다가 수련회를 하는데 기억나는 것이 있습니다. 만 원짜리 딱 내어놓고, 우리는 배추이파리 인생이 아닙니다! 우리는 배추이파리 때문에 살아가는 배추이파리 인생이 아닙니다! 그러면서 막 메시지를 하시더라고요.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는 먹고 사는 것이 전부라면 그것은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사람입니다. 우리에게는 다른 삶이 있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6장 33절에 뭐라 했습니까?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다른 삶이 있습니다. 먹고 사는 것이 우리 인생의 목표가 아닙니다. 우리 삶의 존재 이유가 아닙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전도와 선교, 세계복음화, 이것이 우리의 이유요, 이것이 우리의 삶의 목적입니다. 우리의 삶의 방향입니다. 여러분, 이 사실을 붙잡을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모든 것, 세상의 모든 것 더하여 주시는 귀한 축복을 주신다고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많은 사람들이 결국은 창세기 3장, 6장, 11장, 그 배경 속에 있는, 의식주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거기 급급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본문에 오늘 보면 사실 이삭과 리브가의 모습을 통해서 또 무엇을 보여줍니까? 어떻게 하든지 간에 자기에게 있는 사람을 성공시키려고 하는, 어떠한 방법과 수단을 가리지 않고 성공하도록 만들려고 하는 부분을 보게 됩니다. 무슨 말입니까? 이삭은 에서를 축복하려고 하고 리브가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야곱을 성공시키려고 하고. 이게 뭡니까? 창세기 11장의 성공을 향해서 모든 인생이 달려가는 모습을 이삭과 리브가를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 아닙니까? 사실은 오늘 본문에 사실 원인 제공자는 이삭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삭이 정상적으로, 진짜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대로 장자의 축복을 야곱에게 선언하고 그 축복을 물려주면 될 것인데 그냥 가만히 에서를 불러서, 그것도 골방에 불러서. 그러니까 리브가는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자기 남편이 이렇게 이렇게 해서. 자기 남편에게 책임을 전가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세상 사람들의 삶이 그렇지 않습니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 그게 세상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 아닙니까? 쉽게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이 방법 아니면 안 된다는 사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 이게 세상 사람들이 쉽게 쉽게 터져 나오는 말들입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여러분,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의 목표가 중요하다면 방법도 중요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이삭과 또 리브가를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결국은 목적이 좋은 것이라면, 목적이 있다면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어떤 방법을 취해도 괜찮다는 것을 오늘 이삭과 리브가를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방법대로여야 합니다. 그걸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나서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시간표 속에서 결국은 창세기를 모세를 통해서 광야 2세대에게 읽어줄 때는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것은 다른 방법으로는 안 된다는 것,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이 주신 그 방법으로 가나안 땅을 정복해야 한다는 것, 그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방법이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리브가는 어떻게 나와야 하느냐? 결국 이삭이 그렇게 나오면 자기 남편에게 이야기해야 합니다. 이래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방법대로 정상적으로 야곱에게 축복해야 할 것이 아닙니까, 그러면서 리브가는 믿음으로 기도하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그런데 인본주의를 쓰잖아요. 또 야곱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머니가 야곱을 불러서 네 형이 이제 축복을 가로 채려고 하는데 아버지가 네 형에게 고기 가지고 오면 주겠다 하는데 잘못하면 큰일 날 것이다. 그러니깐, 네가 염소를 갖고 와가지고 위장해서 들어가서 복 받아야 될것아니냐 그렇다면 은 야곱은 진짜 언약에 대한 부분을 안다면, 어머니 왜 그러십니까? 정신 차리십시오 이렇게 나와야 됩니다. 뭐 잘못 드셨습니까? 이렇게 나와야 하는데 그런데 수단과 방법 동원해서 똑같이 하잖아요. 본문을 보면 은 이삭과 에서는 먹는 것 때문에 또, 리브가와 야곱은 속이는 것 때문에 유유상종이에요. 그래서 결국은 야곱이 축복을 가로채잖아요. 가로채는데 본문에 보면 은 읽지는 않았습니다만, 야곱이 사실은 자기 아버지 앞에 들어갔을 때 아버지가 뭔가 이상하거든요 어떻게 네가 고기를 빨리 잡았느냐 할 때에 뭐라했습니까? 야곱이 한말이, 하나님께서 나를 순적히 인도 하셔서 거기에 하나님까지 끌어들이고 있어요. 이게 인간의 모습이에요 결국은 온갖 인본주의를 다 쓴 야곱의 생애를 보세요 당하지 않아도 될 어려움들을 그 이후에 계속해서 시리즈로 당하잖아요. 자기 외삼촌에게도 겹으로 당하게 되고요 그렇잖아요. 당하지 않아도 될 어려움들을 계속 당하게 됩니다. 그래서 나중에 보면 바로왕 앞에 섰을 때, 야곱이 뭐라했습니까? 네가 몇 살이냐 할 때에 워낙 나이가 많아 늙어 보였겠죠, 험악한 인생을 많이 보냈습니다. 사실은 야곱이 결국 온갖 인본주의 써가지고 바로 왕 앞에 고백했던 그대로 험악한 생활을 많이 보낸 거예요 괜히 고생해요 언약 잡으면 될 것인데 하나님 방법대로 나가면 될 것인데 언약이 희미해지니깐 언약을 놓쳐 버리고, 결국 인본주의 쓰고 결국은 실컷 고생합니다. 언약은 이루어지거든요 그 언약의 역사를 고생해서 누리게 되는 이 사실들을 보여주고 있어요. 이게 우리 안에 깊이 각인된 부분, 세상의 방법들 때문에 우리에게 자리 잡고 있는 부분들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정말로 나에게 되진 나, 익숙해져있는 부분들, 굳어져 있는 부분들이 무엇인가, 눈이 열려지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사실이 보는 눈만 열려도요 하나님이 치유하시게 되어있습니다. 눈만 열려도 우리 자신들이 속지 않게 되어있습니다. 정말로 오늘 이 시간에 무엇보다도 우리 안에 깊이 세상방법으로 각인되어있는 부분들 정말 치유되어지는 그런 축복의 응답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방법대로
두 번째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나가야 된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에 이삭을 보고, 또 리브가를 보고 야곱을 보면서 뭐를 느낍니까? 이삭도 아니에요 리브가도 아니고요, 야곱도 아닙니다. 결국은 모든 인생은 하나님의 은혜 아니면 은 안 된다는 사실을 이야기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뭔가 의가 있어서, 내가 뭔가 잘나서, 내가 뭔가 하나님을 기뻐하실 내안에 뭔가가 있어서 아닙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내가 하나님이 기뻐하실 뭔가를 해서가 아니에요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왜냐, 우리는 그 어느 누구도 우리의 것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없어요. 왜냐, 모든 인생은 로마서3장 10절에 보면 의인은 없나니 한 사람도 없다 했습니다. 로마서 3장 23절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 했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길을 여셨습니다. 로마서5장 8절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이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으리라 할렐루야! 언제요, 우리가 죄인되었을때에, 하나님과 상관없을 때에, 우리가 연약할 때에, 우리가 죄인되었을때에 내가 뭔가가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우리를 선택하셨어요. 창세전에 영원 전에. 그래서 에베소서1장 3절부터 5절에 보면 뭐라했습니까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영세전부터 우리를 작정하시고 선택하시고 우리를 시간표 따라 부르셔서 우리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 되게 하셨는데 이 축복이 어디에서 완성되었느냐?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면서 다 이루었다 선언하신 겁니다. 하나님 떠난 인생 하나님 만날 수 없는데 하나님 만날 수 있는 길을 참 선지자이신 그리스도께서 여신 겁니다. 죄로 인한 저주와 재앙가운데서, 참 제사장이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해방 받게 하셨습니다. 참 왕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마귀의 일을 사탄의 머리를 깨뜨려 버리신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 되었습니다. 이 하나님의 자녀된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이 모든 것들을 책임지시게 되어있습니다. 믿습니까? 마태복음 6장 25절부터 33절에 보세요 예수님께서 실물적인 교육을 시켜가면서 제자들에게 이야기 했습니다. 들에 백합화를 보라 공중의 새를 보라 누가 먹이고 입히시느냐 누가 창고에 들이시고 기리시느냐 기리고 창고에 들인 것도 없는데 그러면서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먹이시고 입히고 지키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들에 백합화 보라 공중에 새를 보라 누가 지키고 누가 입히고 누가 키우느냐 그러면서, 아침에 피었다가 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먹이시고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무슨 말입니까? 우리의 모든 것들을 하나님이 책임지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만 바라보면 됩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걱정하지 말고 염려하지 말고 그것은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다 말씀하시면서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무슨 말입니까? 우리는 그리스도만 바라보면 된다는 사실이에요 하나님만 바라보며 살아가면 된다는 말이에요. 우리의 사는 삶의 방법은 오직 그리스도가 나의 인생에 주인 되어서 그리스도만 바라보며 살아가는 삶이 하나님의 자녀된 삶에 방법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세상 것에 익숙해가지고요 세상 생각과 세상 방법이 우리 안에 깊이 뿌리내려져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으로 바뀌어져야 됩니다. 우리가 세상에 익숙해서 세상방법 세상 생각이 우리 안에 각인되고 깊이 뿌리내려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오직 복음 만 강조 하는 겁니다. 여러분, 나를 중심하고 육신을 중심하고 세상에 짓눌려 살아가는 우리 삶에 부분들 거기서 빠져 나올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오직에 그리스도를 주셨고요. 오직 그리스도의 이 약속을 붙잡는 자에게 결국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유일성의 축복을 주셨고, 거기에 따라오는 가는 곳마다 오직 증인 되어지는 재창조의 축복을 허락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나가야될 길입니다. 붙잡을 길입니다. 거의 다 신앙생활하면서 틀린 길을 붙잡고 있어요. 그러니깐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어려움을 당하는 겁니다. 저와 여러분은 길이 달라요. 붙잡는 부분이 달라요 그게 뭡니까? 오직 그리스도를 붙잡아야 되요 오직 하나님의 나라를 붙잡아야 되요 오직 성령입니다. 그게 우리가 붙잡아야 될 길입니다. 틀린 길을 가지 마세요. 그 모든 것들은 틀린 길입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된 저와 여러분을 위해서 예비하신 올바른 길이 오직 그리스도, 오직 하나님 나라, 오직 성령입니다. 특별히 무엇보다도 여러분, 정말로 내안에 무엇이 각인되어 있느냐? 그게 행동으로 드러나잖아요. 세상의 것들이 각인되어가지고 드러나는 행동은 세상의 것들이 나오잖아요. 그러면, 하나님의 것으로 내 안에 각인되어야 하는데, 하나님의 것이 내안에 각인되어지면,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것이 내안에 각인되기 위해서는 여러분 무엇보다도 어제 핵심에서 주어진 메시지입니다만 정말로 실천해야 됩니다. 첫 번째로, 아침에 눈을 뜨면 기도로 복음의 말씀을 깊이 누리는 그 시간들을 가지세요. 어느 정도 되면 되느냐 아침에 눈을 뜨면 은 기도로 복음의 말씀을 누리는 그 시간을 통해서 힘을 얻을 정도로 되면 됩니다. 낮에는 뭐하느냐 그것 가지고 모든 현장에서 응답을 확인하면 됩니다. 밤에는 뭐하느냐? 모든 문제들에 대한 답을 얻는 집중의 시간들을 가지면 됩니다. 그게 하루하루 하루 쌓여지고 쌓여지면 은 하나님의 것, 말씀이 내 속에 각인되어지고, 거기에 나타는 열매는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게 되어있습니다. 이번주간부터 우리 모두가 이 실천 속에 들어가십니다. 안되면 또 하면 되요. 되는 그 자체를 기뻐하십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기도로 복음의 말씀을 누리는 그래서 힘을 얻을 정도로 깊은 기도가 있고, 낮에는 모든 현장에서 응답을 확인하는 겁니다. 밤에는 모든 문제 속에서 그 문제에 대한 답을 집중해서 우리가 정리하는 겁니다. 그게 하루 또 하루 또 하루 쌓여지고 쌓여질 때 우리 안에 각인됩니다. 그 각인된 것이 결국 하나님의 역사로 우리의 삶에 현장에 나타남으로 말미암아 세상 현장 속에서 세상에 도전하고 세상을 변화시키고, 세상의 흐름을 바꾸는 전도자의 삶이 되어질 것입니다. 이 축복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7년 9월 10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하나님의 방법으로 사는 자
(창27:1~12)

서론: 세상을 살아가면서 세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세상을 따라가는 삶 / 세상과 분리되어 살아가는 삶 / 세상을 변화 시키고, 도전, 흐름을 바꾸는 삶).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은 세상 속에서 세상에 도전하고, 흐름을 바꾸고, 세상을 살리는 삶을 위해 부르셨습니다(빛과 소금 / 마28:18~20). 우리에게 주신 축복을 모르기 때문에 세상의 것을 교회에 가지고 들어와서 잣대로 삼고 살아갑니다(교회의 타락). 우리에게 주신 보좌의 축복으로 세상을 변화 시키는 응답을 누려야 됩니다.

1. 세상 방법에 각인 되어 있는 모습
가. 이삭 - 눈이 잘 안 보임(영적 분별력이 없어짐)
1) 내 생각과 마음대로 장자의 축복을 넘겨줌(2~4) - 창3장의 배경
2) 아브라함에게 받은 축복을 가치를 모르고 전달(29)
3) 시간표를 볼 줄 모름 - 이 일이 있은 후 40년을 더 살게 됨
4) 누구에게 축복하여야 되는지를 못 봄
5) 먹는 것(고기) 때문에(이삭 / 민11장) - 오늘 세상의 문제(의식주 때문에 영적인 축복을 놓침)
나. 리브가의 모습
1) 인간적인 방법으로 야곱을 성공 시키도록 만듬
2)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해야 됨
다. 야곱 - 인본주의를 사용
1) 유유상종(이삭과 에서 - 먹는 것 / 리브가와 야곱 - 속임)
2) 평생을 인본주의 쓰며 고생 하는 인생
2.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방법대로
가.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임
1) 롬3:10(의인은 없음), 23(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 함), 롬5:8(죄인 되었을 때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
2) 창세 전에 택하시고(엡1:3~6), 십자가에서 모든 것 해결(요19:30)
3) 그리스도만 바라볼 때 모든 것을 책임(마6:25~33)
나. 우리가 가야 되는 길 - 오직 그리스도(행1:1), 오직 하나님 나라(행1:3), 오직 성령(행1:8)

결론: 모든 사람들에게 각인 되어 있는대로 생각을 하고 행동을 합니다. 하나님의 것을 각인 시켜야 합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기도로 복음의 말씀을 누려야 합니다. 그러면 낮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통해 모든 응답을 확인 하게 됩니다. 밤에는 문제에 대한 답을 얻는 집중의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세 가지 실천을 통해 세상 현장 속에서 세상에 도전하고 세상의 흐름을 바꾸는 응답 누리시길 바랍니다.


● 기도제목






● 말씀실현(실천사항)






● 전도대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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