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브니엘의 축복
2017-10-2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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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2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브니엘의 축복”
(창32:24~32)


24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25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26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27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28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29 야곱이 청하여 이르되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소서 그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30 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31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의 허벅다리로 말미암아 절었더라
32 그 사람이 야곱의 허벅지 관절에 있는 둔부의 힘줄을 쳤으므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금까지 허벅지 관절에 있는 둔부의 힘줄을 먹지 아니하더라
 창32:24~32

■ 할렐루야 !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올려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일어나 벧엘로 올라갑시다. 오늘 이 시간에도 그리스도 하나님이 주신 그 이름 때문에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흑암의 역사들이 떠나가는 줄로 믿습니다. 그 축복의 역사들을 확인하고 누리는 최고의 예배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에 보면 너무나 우리와 똑 같은 사람 한 사람을 들 수 있습니다. 나와 똑 같고 아마 나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와 똑같은 사람이 아닌가 생각될 수 있는 사람인데요, 그는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야곱이라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안 믿는 것은 아닌데 살아가는 삶이 늘 수단, 방법들을 동원하고 그래서 인본주의 쓰고 그래서 늘 고생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런 야곱의 모습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고요, 그 야곱의 모습이 나의 모습이 아닌가?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들을 해 보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다 라고 다 알고 있잖아요. 그리고 모든 문제 끝났다라고 다 이야기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살아가는 삶을 보면 온갖 염려와 걱정들을 가지고 살아가요. 사실은 그런 우리가 붙잡고 염려하고 걱정하는 그 부분을 통해서 악한 사탄이 우리를 공격하고 있는데 그것도 모르고 우리는 그 염려와 걱정들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부분들을 봅니다. 오늘 창세기32장은 야곱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신앙생활의, 인생의 전환점이 되어지는 그런 시간들입니다. 이름이 바뀌어지고, 삶 조차 바뀌어지는 그런 엄청난 축복의 시작이 되어지는 것이 바로 야곱에게 있어서 창세기 32장에 나오는 내용들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에게 야곱에게 주신 이 축복의 역사들을 우리는 어떻게 누릴 것인가?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붙잡고 한주간도 응답을 향해서 나가야 될 것입니다.

1. 신앙생활에 놓치지 말아야 할 것 3가지
먼저 첫 번째입니다. 우리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놓치지 말아야 될 것이 세 가지 있습니다. 이 사실들을 여러분 분명히 붙잡는다면 여러분 신앙생활이 즐거워지고, 신앙생활이 행복하게 되어 있고, 신앙생활을 하는 그 자체 속에서 참된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고, 참된 능력 있는 삶이 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놓치지 말아야 될 세 가지 그 첫 번째가 무엇이냐? 우리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지요. 복음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복음 안에 있는 그 사실을 누리는 복음의 누림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복음 안에 있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바로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끝냈다 라는 것이 바로 복음 안에 있다라는 축복입니다. 여러분 저는 어제도 그렇고, 오늘 아침에도 새벽기도를 인도하면서도 또 요즘 와서 제 마음에 진짜 그리스도면 모든 것 끝난 것인데 여기에 우리가 무엇을 보탤 필요가 없는데 우리가 이런 저런 말들을 한다는 것은 그리스도로 끝난 것이 아니지 않는가? 이런 생각들을 많이 하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정말로 사실적으로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알고,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게 되면 성령께서 내 안에 들어오십니다. 그리고 그 성령께서 나를 너무나 잘 알고 완벽하고 완전하게 우리의 모든 것들을 하나님이 친히 성령으로 말미암아 가르치시고 인도하시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성경에 보면 성령의 인도하심이 있게 되면 아무도 우리를 가르칠 필요가 없다 라고 말씀했습니다. 왜냐 그리스도 그 이름은 완전한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 다윗이 고백했지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렇습니다. 충분한 것이 그리스도안에 있고 완전한 것이 그리스도 그 이름 안에 있고, 그래서 로마서10:13절에 보면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여러분 예수 그리스도 이름 부르기만 하면 구원 얻는 완전한 축복이 그리스도 그 이름 안에 있고 그리스도 그 이름은 히브리서13:8절에 있는 말씀처럼 영원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동일하시다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예수가 바로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다 끝난 겁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다 끝났다라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우리에게 다른 것이 준비되어 있다라는 말이예요. 그리고 또한 시대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시대를 변화시킬 수 있는 그 축복이 그리스도 안에 있다 라는 사실을 믿는 것을 가지고 그리스도 안에서 다 끝났다라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복음을 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가 복음을 알고는 있는데 이 사실을 누리지 못해요. 여러분 다윗이 그 많은 어려움들 가운데서 인생의 3분의 2이상이 어려움 가운데 쫓겨 다니면서 그렇게 생활을 했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싸우지 않고도 이겼습니다. 그 비밀이 어디에 있는 줄 아십니까? 복음을 누린 거예요. 그냥 아는 것이 아니고...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는 사건이 사도행전 7장에 나옵니다. 그러나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웃으면서 오히려 전도하면서 죽었던 그 축복된 역사들이 어디에서 나오느냐? 복음을 누리는 누림 속에서 나와요. 바울이 전도자로서 엄청난 고생들을 많이 했지만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받는 그 핍박과 어려움과 고난과 고통들을 기뻐한다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감옥 안에 있는 바울이 감옥 밖에 있는 교인들을 위해서 오히려 위로하고 힘을 주고 격려하는 부분들이 나와요. 어떻게 그런 힘들이 나올 수 있느냐? 차이가 무엇입니까? 바울이 가진 복음과 내가 가진 복음이 다른 것입니까? 다윗이 가졌던 복음과 내가 붙잡은 복음이 다른 것입니까? 복음은 다르지 않습니다. 같은 것인데 그 차이는 어디 있느냐? 누리느냐 누리지 못하느냐 차이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모든 문제 해결로 주셨습니다. 분명히 그 안에서 다른 것이 있습니다. 시대를 변화시키는 축복이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을 알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누려야 합니다. 그런데 그 복음을 누리는 그 시작이, 언약을 누리는 그 시작이 어디에서 나오느냐? 갈라디아서 2:20절입니다. “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 말을 자칫 잘못 이해하면 일반 종교생활 하는 사람들처럼 나를 비워야 한다 나를 내려놓아야 한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종교생활 하는 사람들 전부 다 자기를 비우라 하잖아요. 너무 욕심 많은 자기를 비우라 하잖아요. 그래서 불교에서도 해탈을 이야기 하잖아요. 자기를 비우는 것만 해도 역사는 일어나요. 문제는 그 다음에 영적인 문제가 와서 문제이지요. 그런데 우리는 자기를 비우는 것이 아닙니다. 내 안에 다른 것으로 채우는 것인데 바로 그리스도, 하나님 나라, 성령의 충만함으로 채우는 것입니다. 그게바로 자기를 내려놓는 것입니다. 특별히 인생의 12가지 문제 속에서 빠져나오는 것을 가지고 결국은 내가 죽는 것이다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문제가 인생 12가지 문제입니다. 거기에서 해방 받는 것을 가지고 구원이라고 하고요, 그게 바로 내 자신을 비우는 것입니다. 내 자신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그리고 완전하신 그리스도로 충만해 지는 것, 그 게 바로 내가 죽는 것이고요, 그 속에서 나오는 것이 하나님이 만드신 “나”라는 부분들이 나오게 되어 있어요. 다시 말해서 인생의 12가지 문제에서 해방되어지고 완전하신 그리스도로 충만하게 내게 채워지게 될 때에 그 속에서 비로소 하나님이 만드신 나, 하나님이 주신 나의 것, 하나님이 예비하신 나의 현장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 사실을 발견하는 것을 가지고 갈라디아2:20절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러나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다”이 복음을 누리는 누림, 갈라디아2:20절 이 축복의 비밀들 속에, 복음을 누리는 누림 속에 들어가는 이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지면 이 속에서 참된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고요, 그 속에서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참된 행복이 나오게 되어 있고 모든 것에서 승리할 수 있는 비밀들이 그 속에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 다음에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될 가장 중요한 것, 복음과 함께 복음 누림이고요, 그 다음에 가장 누릴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알게 하시고, 복음 아는 자에게 그때부터 눈이 열려지는 것이 있는데 말씀 속에 있다라는 것이 어떤 것인가 눈이 열려지게 되어 있어요. 여러분 말씀 속에 있다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언약이라 이야기 합니다. 언약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언약은 반드시 여정이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된다 안 된다 그것 가지고 우리가 이렇다 저렇다 말하지 못해요. 왜냐? 언약은 반드시 과정이 있습니다. 반드시 여정이 있습니다. 그리고 언약이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이 언약의 여정들을 전달하는 자리에 선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성경에 보면 무조건 축복하셨음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누가라는 사람은 언약의 여정들을 데오빌로에게 전달했잖아요. 그런데 그게 지금까지 전도역사 속에 가장 귀하게 쓰임 받게 되어지는 사도행전이 되어진 사실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언약의 여정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면 이 사실을 전달하는 자리에 섰던 사람들, 무조건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다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 언약의 여정을 제대로 알게 되면 어떤 문제와 환경과 사건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그 어떤 문제와 사건들도 영향 주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로마서16장의 인물들이 그 언약의 여정 속에서 흔들리지 않았던 사람들이고요, 사도행전1:14절에 나오는 그 사람들이 언약의 여정 속에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 언약은 반드시 성취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서40:6~8절에 보면 중요한 말씀을 하고 있는데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이 말씀의 역사는 반드시 성취되게 되어있다 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과 우리의 모든 현장에 이 말씀이 흘러가도록 해야 되는 것이고요, 그게 말씀의 성취를 맛보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 안에 이 말씀이 흘러가도록 해야 하는 거고요, 그리고 교회 안만 아니라 교회 밖에도 이 말씀이 흘러가도록 해야 합니다. 이게 바로 RUTC 운동인 것입니다. 교회 안만 아니라 교회 밖에도 이 말씀의 성취를 이루는 말씀이 흘러가도록 하는 것이 바로 RUTC인 것입니다. 이 사실들을 우리가 가장 누려야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방황하지 않도록 우리 인생에 이정표로서 말씀을 주셨다라는 사실. 그래서 저는 신앙생활 하면서 또 신앙생활 하는 교회 성도들을 한 분 한 분을 섬기면서 보는 것이 있다면 말씀을 잡는 것은 전쟁입니다. 악한 사탄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복음 안에서 올바른 복음의 말씀을 붙잡기만 하면 살기 때문에 어떻게 하든지 공격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말씀을 놓쳐버리도록, 말씀을 기억하지 못하도록 그래서 예배를 똑같이 드리지만 예배 마치고 나가게 되면 오늘 강단을 통해서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주셨는가 까맣게 잊어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마태복음13:19절에 보면 이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빼앗아 간다 했어요. 말씀을 빼앗기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것을 봅니다. 그래서 저는 한마디로 말씀 받는 것은 전쟁이다는 결론을 가져요. 그러나 분명히 이 말씀을 받게 될 때에 이 말씀이 내 삶에, 교회에, 현장에 흘러가게 될 때에 그 말씀은 반드시 영영히 서리라 하라, 반드시 성취되게 되어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가장 누려야 될 부분들입니다. 그 다음에 신앙생활에서 가장 놓치지 말아야 될 부분들이 있다면, 가장 찾아야 될 것이 있는데 그게 바로 기도입니다. 여러분 기도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는 사실을 누리는 것이 기도이지요. 기도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시간표 속에 내가 들어가는 것을 가지고 기도라고 합니다. 그리고 기도는 무엇입니까? 유한한 우리 인생이 무한한 하나님의 능력 속에 들어가는 것을 가지고 기도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기도가 사실 잘 안 되어져요. 왜 그러느냐? 모두가 기도가 중요하다고 이야기 하지만 기도가 잘 안되어지는 것을 봅니다. 영적인 상태가 그렇기 때문입니다. 기도가 안 되어지는 것은 영저인 상태에 달려있어요. 그런데 어떠하든 우리가 기도하게 될 때에 오직을 발견할 수 있는 기도 속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고요, 그러면 그 다음에 오는 응답이 되어지는 기도가 되게 되어 있어요. 응답 중의 응답은 되어지는 기도 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이런 응답을 받았다, 저런 응답을 받았다, 그것도 중요합니다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되어지는 기도 속에 내가 서 있느냐, 그게 응답 중의 응답입니다. 그러면 반드시 미래가 보이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렘넌트 7명은, 한결같이 모든 렘넌트들이 어려움을 당했습니다만 어떻게 해서 그 어려움에서 승리했습니까? 되어지는 기도 속에서 미래가 보였습니다. 그러니까 승리할 수밖에요.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도저히 안 되는 것 같은데 되어지는 축복을 누렸습니다. 그러니까 싸우지 않고도 정복하는 그 축복된 비밀, 핍박 가운데서 승리할 수 있는 그 비밀을 렘넌트 7명은 기도 속에서 누렸습니다. 그래서 기도로 담대했다, 다 끝난 것입니다. 다 끝난 겁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 복음 속에 있는 것, 그 복음을 누리는 것이고 가장 누릴 것이 있다면 말씀 속에 있는 것이고 그 말씀의 성취를 내가 보는 것이고 가장 찾을 것이 있다면 기도 속에 있는 것이고 그 기도가 되어지는 기도 속에서 미래를 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진다면 여러분, 우리의 모든 걸음걸음마다 참된 승리가 오는데 참된 승리는 싸우지 않고도 이기는 축복입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는 싸우지 않고도 이기는 비밀입니다. 그리고 참된 성공이 찾아오는데 여러분, 우리 인생에 있어서 참된 성공이 무엇입니까? 돈 많이 버는 것이요? 좋은 자리에 앉는 것이요? 건강한 것이요? 물론 그것도 참된 성공이라 할 수 있습니다만 정말 우리 인생에서 참된 하나님 앞의 성공은 저와 여러분이 증인 되는 것, 전도자로 서는 것입니다. 이 축복된 응답이 찾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하나교회 모든 성도들이 놓치지 말아야 할 이 세 가지, 이 사실을 붙잡고 여러분, 참된 성공과 참된 승리의 축복이 여러분의 걸음 속에서 누려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 야곱은 이 축복의 비밀을 누리면 될 것인데 이 사실을 누리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엄청난 두려움 가운데 사로잡히게 되고, 두려움 가운데 사로잡힌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염려하고 걱정하게 되고, 염려하고 걱정하게 되니까 거기에 인본주의가 나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게 야곱의 생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 아닙니까? 이미 언약 가진 사람으로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온 인생 자체가 온갖 염려와 걱정에 사로잡혀서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고 있고 그래서 결국은 한다는 것이, 대책을 세워야 하니까 인본주의를 쓰는 것입니다. 그게 야곱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부분입니다. 여러분, 이미 야곱에게 있어서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실을 체험했지 않습니까? 태속에서부터 이미 언약 가진 자로 야곱을 하나님께서 선택하셨고 또 사실은 야곱이 벧엘에서, 위기 가운데 집에 있을 수 없어서 나왔을 때 벧엘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사닥다리를 통해서 체험했지 않습니까? 그리고 읽지는 않았습니다만 29장, 30장, 31장을 보면 야곱이 결국 벧엘에서 일어나서 어디로 가느냐? 약 800km쯤 되는 라반, 외삼촌 라반의 집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그 라반의 집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실을 야곱은 체험했습니다. 오늘 읽지 않고 그냥 20장, 30장, 31장을 넘어갔습니다만 지난 남미사역 가기 전에 28장까지 하고 29장, 30장, 31장을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거기 중요한 부분이 무엇이냐 하면 이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집에 들어가서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아내도 가지게 되고 또 많은 자녀들을 갖게 되고, 그리고 아내와 자녀들만 얻은 것이 아니라 많은 부도, 재산도 가지고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나오게 됩니다. 한번 봅시다. 성경 한번 찾아봅시다. 30장 43절에 보면 “이에 그 사람이,” 야곱입니다. “매우 번창하여 양 떼와 노비와 낙타와 나귀가 많았더라.” 외삼촌 라반의 집에 있었는데 이상한 방법을 취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야곱을 언약 가졌다는 그 이유 때문에,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 이상한 방법을 취해서 살아가라는 말이 아닙니다. 언약 가졌다는 그 이유 때문에 야곱을 무조건 축복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여기 30장 43절에 나오는 이 말씀은 지금 식으로 말하면 여러분 통장에 돈이 많이 생겼다는 말입니다. 그만큼 부자 돼서 나왔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증거 속에서. 그러면서 31장에 넘어가서 보면 결국은 라반에게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관심과 하나님의 모든 시선이 야곱에게 있었다는 사실을 라반을 통해서 알려주는데 31장 24절을 보십시오. “밤에 하나님이 아람 사람 라반에게 현몽하여 이르시되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간에 말하지 말라 하셨더라.”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모든 축복이 야곱에게 있음을 라반에게 알리신 사건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라반이 이 사건에 대해서 간증을 합니다. 그게 바로 29절에 나오는데, 한번 봅시다. 29절에 라반이 간증하고 있습니다. 같이 한번 읽어 볼까요? “너를 해할 만한 능력이 내 손에 있으나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이 어제 밤에 내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간에 말하지 말라 하셨느니라.” 하나님의 모든 축복이 야곱에게 있었습니다. 그 사실을 라반이 또 간증하고요. 그리고 또 야곱 자신도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에 대해서 믿음의 고백을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되는데, 42절입니다. 언약의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하셨음을 간증하는 야곱의 간증이 나오는데 42절에, 31장 42절입니다. 같이 한번 봅시다. “우리 아버지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곧 이삭이 경외하는 이가 나와 함께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외삼촌께서 이제 나를 빈손으로 돌려보내셨으리이다마는 하나님이 내 고난과 내 손의 수고를 보시고 어제 밤에 외삼촌을 책망하셨나이다.”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하셨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축복 받은 사람이기 때문에 어떤 사단의 계략 앞에서도 승리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이 신분을 잊어버리지 아니하고 확인하고 확신 가운데 살아가면 될 것인데, 야곱은 또 불안 가운데 빠지고 있는 것이 오늘 본문에 나옵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에도 보면 또 1절, 2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하나님의 사자를 동원하신 부분이 나옵니다. 그래서 야곱이 그 부분을 두고 신앙고백을 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군대, 뭐요? 마하나임이라고. 하나님의 사자가 동원되는 사실을 야곱이 신앙고백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군대, 마하나임. 하나님께서 용기를 주시고 힘을 주시고 위로하시는 부분이 나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오늘 본문에서 보면 또 깊은 절망 가운데, 염려 가운데 사로잡힌 야곱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우리와 똑같은 모습입니다. 안 해도 될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평안 가운데 확신 가지고 나아가면 될 것인데. 머리를 쓰지 아니하고 진짜 평안 가운데 확신 가지고 나아가면 될 것인데 이 확신과 평안이 없기 때문에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야 합니다. 그래서 결국은 결과적으로 하나님이 야곱을 축복하시지만 그 과정은 얼마나 엄청난 고난을 당했는지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치 야곱이 요셉을 따라서 바로 왕 앞에 섰을 때 야곱이 뭐라 했습니까? 나의 인생, 험악한 생을 많이 지냈나이다. 자신의 생을 두고 바르게 본 것입니다. 험악한 인생을 많이 보냈나이다. 안 해도 될 고생을 야곱이 한 것을 보게 됩니다. 왜냐? 확신이 없어서. 평안과 확신을 누리지 못해서 그런 결과를 가져온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보면 결국은 두려움 속에서, 사실은 모든 것을 둘로 나누어서 먼저 보냅니다. 그것도 머리 써 가지고 에서가 한 부분을 치면 한 부분 남아있지 않겠느냐, 이런 머리를 써서 두 떼로 나누어 가지고 먼저 한 떼를 보내고, 또 13절부터 20절에 보면 자기가 가진 모든 재물을 모아서 뇌물을 드리는데 그것도 세 번에 나누어서. 아니, 한 번에 드리면 될 것을 세 번에 나누어서. 얼마나 머리가 돌아갑니까, 이게? 이런 고생을 하는 것입니다, 사실. 똑똑한 것이 똑똑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똑똑하다고 하는 것이 똑똑한 것이 아닙니다. 어리석은 것입니다, 사실은. 그런 가운데 결국은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사실을 또 다시 본문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야곱처럼 많은 문제와 사건들을 당할 수 있습니다. 왜냐? 창세기 3장 사건 속에 있는 이상은 그 어느 누구도 문제와 사건들을 피할 수 없습니다. 마치 언약 가진 야곱에게도 한 가지 문제가 해결되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기고 해결되는 것 같으면 또 다른 문제가 생겼던 것처럼. 그렇지 않습니까? 사실 야곱은 외삼촌 집에 들어가서 외삼촌과의 문제가 해결되니까, 나오니까 또 자기 형과의, 형님과의 관계, 에서와의 관계에 문제가 오게 되고, 또 에서와의 관계도 나중에 보면 오늘 읽진 않았습니다만 33장에 보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에서가 발벗고 나서서 내가 너의 앞잡이가 되게 하리라 하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까? 그렇게 걱정했던 에서와의 관계도. 그 문제가 해결되니까 또 34장에 보면 자기 딸 디나가 세겜 사람에게 강간당하는 그런 문제를 당하게 되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 같은데 또 문제가 생기고, 또 생기고. 이게 바로 우리 인생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문제와 사건, 그 속에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백성에게 먼저 언약을 주시고 그 언약을 붙잡는 믿음 가지고 승리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축복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현장의 문제와 사건,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은 분명히 하나님의 백성에게 언약을 주시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야곱을 보면 하나님이 위기 가운데 몰고 가시면서 하나님만 바라보도록 훈련시키는 부분을 봅니다. 32장 전체를 보면 야곱이 사자들을 에서의 눈치를 살피기 위해서 먼저 보내는 부분이 나옵니다. 그에 대한 에서의 반응을 사자들이 이야기합니다. 그 말을 듣고 야곱이 두 떼를 나누고 또 뇌물도 세 편으로 나누어서 보내는 작업을 하고, 그리고 오늘 읽지 않았습니다만 22절~23절에 보면 자기 가족도 다 보냅니다. 그러면서 홀로 야곱이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을 보면 하나님이 위기 속에서 결국은 하나님의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을 붙잡을 수밖에 없도록 몰고 가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언약 가진 하나님의 백성들은 절대 하나님이 실어 버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언약 붙잡도록 하나님이 인도해나가십니다. 그렇다면 문제와 사건, 어려움이 있습니까? 그 문제와 사건, 어려움을 내 것으로 붙잡지 말고 그 속에서 주시는 하나님의 언약을 내 것으로 붙잡기 바랍니다. 내 것을 하나님의 언약으로 붙잡는 그것을 가지고 기도라 합니다. 내 것을 붙잡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을 내 것으로 붙잡는 것을 가지고 기도라 합니다. 그리고 내 것을 붙잡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을 내 것으로 붙잡게 될 때에 그 언약 붙잡는 그 속에서 그것을 이룰 수 있는 힘과 지혜와 은혜를 하나님이 주시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인본주의 쓰고 우리 자신의 경험을 가지고 나아가니까 어떤 면에서 보면 잘 된다고 착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것은 착각일 뿐입니다. 잘 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언약을 붙잡아야 합니다. 그 언약을 내 것으로 붙잡는 것, 내 것이 아니라 언약을 내 것으로 붙잡는 것, 언약을 내 생각이 되도록 하는 것, 그게 바로 기도입니다. 그렇게 될 때 하나님이 그 속에서 언약을 이룰 수 있는 힘도 주시고 지혜도 주시고 은혜도 주시게 되어 있습니다. 이 축복된 언약이 내 것으로 붙잡히는, 내 생각이 하나님의 언약으로 채워지는 그런 축복된 응답이 저와 여러분에게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야곱을 이스라엘로 바꾸신 하나님
두 번째입니다. 그러면 오늘, 결국은 하나님께서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십니다. 귀중한 축복입니다.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시는데 여기에 오늘 읽은 24절, 25절을 보면 야곱의 간절한 기도가 나옵니다. 결국은 하나님의 사람과 씨름하는 부분 속에서 허벅지 관절이 부러지는 사건을 통해서도 놓지 않는 간절한 기도가 나옵니다. 무슨 말입니까? 이제까지 나는 내 힘으로, 내 방법으로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지금 내 모든 것 내려놓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내게 필요합니다. 이 간절함입니다, 사실은. 여기, 이 간절함이 나올 수 있었던 힘의 근원이 어디에 있었느냐? 다시 야곱이 이 언약의 역사를 붙잡는 부분이 나오는데 그게 바로 26절입니다. 32장 26절, 한번 봅시다. 같이 한번 읽어 볼까요? 시작.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당신이 내게 가게 하지 아니하면 내가 가지 않겠습니다. 반드시 이 말은 무슨 말입니까? 내게 축복하신다 하지 않았습니까, 이 말입니다. 언약을 붙잡고 있었습니다. 내게 축복하신다 이야기하지 않았습니까, 이 언약 붙잡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야곱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창세기 12장 1절~3절, 그 언약을 기억했고, 또 야곱이 집을 떠나올 때에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했잖아요. 너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 받게 하겠다. 이 언약을 붙잡고 있고 또 벧엘에서도 하나님이 사닥다리를 통해서 나타나셔서 야곱에게 언약을 이야기했습니다. 내가 너를 정녕 떠나지 않겠다,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와 함께 하겠다, 그리고 반드시 돌아오게 될 것이다. 이 언약을 이야기했습니다. 이 언약을 붙잡고 야곱은 하나님의 사람에게 요구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문제와 환경과 사건이 어떻든 여러분, 그것을 붙잡지 마시고 여러분, 우리에게 주신 세계복음화의 언약, 그 언약 붙잡고 도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하는 모습을 보면 환경을 붙잡고 문제 속에 문제를 붙잡고 들어갑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주신 언약, 세계복음화의 언약, 그 언약 붙잡고 도전해야 하는데, 거기 하나님의 축복의 문들이 열리게 되는데 이 사실을 놓치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오늘 야곱은 내게 축복하지 않으면 나는 놓지 않겠습니다. 그냥 놓지 않는 것이 아니라 언약을 붙잡았다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여기, 그 다음 27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묻습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몰라서 물었습니까? 그때 야곱이 대답합니다. 내 이름은 야곱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비로소 자기의 모든 불신앙, 인본주의를 내려놓는 것입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내가 야곱입니다. 내가 야곱입니다, 나는 무식한 사람이고 나는 부족한 사람이고 나는 간사한 사람이고 나는 속임수 쓰는 사람이고 내가 야곱입니다. 나는 내 인생의 열두 가지 문제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열두 가지 문제가 내 문제인 것이 나의 모습입니다. 이것을 내려놓는 것을 말합니다. 그때 하나님이 네 이름을 이제는 야곱이라 하지 말고, 뭐요? 이스라엘이라 하라. 이름을 바꾸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이라 하라. 그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유대인들을 세계를 정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죗값으로 죽어 마땅한 저와 여러분이지만 하나님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저와 여러분의 이름을 바꾸셨습니다. 무엇으로? 의인으로 바꾸셨습니다. 믿습니까? 이제는 어둠의 아들이 아니라 빛의 자녀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기업으로, 유업으로 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로 우리의 이름을 바꾸셨습니다. 마귀의 자녀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우리의 이름을 바꾸셨습니다. 이 축복을 찾아 누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결국 하나님이 야곱을 왜 그 어려움 가운데로 몰고 가셨는가?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인가?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주시기 위해서.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문제와 사건과 어려움들, 알고 계실 것인데 왜 가만 두느냐? 세계복음화하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 그 축복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이 사실을 붙잡고 승리하는 귀한 축복된 응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그곳의 이름을 야곱은 브니엘이라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 브니엘이라는 말의 뜻은 하나님의 얼굴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했지만 망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만 그 브니엘의 뜻은 하나님의 얼굴이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성도의 기도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내 산업 현장에 하나님의 얼굴이 필요합니다. 우리 자녀들의 현장에 하나님의 얼굴이 필요합니다. 내 가정 현장에 하나님의 얼굴이 필요합니다. 전도 현장에 하나님의 얼굴이 필요합니다. 선교 현장에 하나님의 얼굴이 필요합니다. 문제 있습니까? 언약 붙잡고 기도하는 속에서 브니엘의 축복을 회복하는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요셉은 노예로 갔지만 거기 하나님의 얼굴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니까 총리가 되어서 애굽을 살렸습니다. 다니엘은 사자굴에 들어갔습니다만 거기 하나님의 얼굴이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이 더욱더 드러나게 되는 축복을 누렸습니다. 오늘 지금 나의 현장에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이 기도가 바로 성도들이 회복해야 할 기도인 것입니다. 이 축복 붙잡고 이번 한 주간에 여러분이 서는 모든 현장마다 여러분 때문에 브니엘의 축복이 임하는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언약 붙잡고 기도 속에서 우리의 모든 현장에 하나님이 나타나는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참된 축복된 응답이 있도록 역사하여 주옵소서.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2017년 10월 22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브니엘의 축복
(창32:24-32)

서론: 성경에서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 있다면 야곱입니다. 안 믿는 것은 아닌데 수단, 방법, 인본주의를 사용해서 고생과 고난 속에서 살아갑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문제를 해결 했는데, 삶을 보면 염려, 걱정 속에서 살아갑니다.
오늘 본문에 야곱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오게 됩니다(창32장). 야곱의 이름과 삶이 바뀌어지게 됩니다.

1. 신앙생활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3가지
가. 가장 중요한 것 - 복음 안에 있는 것, 복음을 누리는 것
1) 복음 안에 있는 것 - 그리스도가 모든 문제를 끝냄, 그리스도 안에서 준비 된 다른 것, 시대를 준비
2) 복음 누림의 시작 - 갈2:20(나는 죽고 그리스도, 하나님나라, 성령으로 채우는 것, 12가지에서 해방 되어
하나님이 만드신 나, 나의 것, 나의 현장을 발견)되어지는 것, 참된 치유, 행복이 나오게 됨
나. 가장 누릴 것 - 말씀 속에 있는 것
1) 말씀 속에 있는 것 - 언약의 여정(언약이 성취 되는 과정) 속에서 이루어짐, 언약을 전달하는 자는
축복, 문제와 사건 속에서 흔들리지 않음
2) 말씀성취(사40:6-8) - 교회 안, 밖에 말씀이 흐르도록 해야 됨(RUTC)
다. 가장 찾을 것 - 기도
1) 기도 - 하나님과 함께 하심을 누리는 것, 시간표 속에 들어가는 것, 하나님의 능력으로 들어가는 것
2) 오직을 발견하는 기도, 되어지는 기도(응답 중의 응답) - 미래가 보여짐
라. 3가지를 붙잡게 될 때 오는 응답
1) 참된 승리 - 싸우지 않고 이김(하나님 나라)
2) 참된 성공 - 증인 되는 삶(전도자)
2. 야곱을 이스라엘로 바꾸신 하나님
가. 간절한 기도(24-25) - 하나님의 은혜만이 필요하다는 것을 고백
나. 언약의 기도(26) - 언약 이루실 것을 확신(창12:1-3, 나를 통해 천하 만민이 복, 너와 함께)
다. 인본주의, 불신앙을 내어 놓은 기도(27) -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심

결론: 브니엘은 하나님의 얼굴이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산업, 자녀, 가정, 전도현장, 선교현장에 하나님의 얼굴이 필요합니다. 언약 붙잡고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기도를 회복 하시길 바랍니다.


● 기도제목





● 말씀실현(실천사항)





● 전도대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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