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그는 나보다 옳도다
2017-12-03 00:00:00
관리자
조회수   63

유튜브

저화질

다운

MP3

녹취

요약

12월 3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그는 나보다 옳도다”
(창38:12~26)


12 얼마 후에 유다의 아내 수아의 딸이 죽은지라 유다가 위로를 받은 후에 그의 친구 아둘람 사람 히라와 함께 딤나로 올라가서 자기의 양털 깎는 자에게 이르렀더니
13 어떤 사람이 다말에게 말하되 네 시아버지가 자기의 양털을 깎으려고 딤나에 올라왔다 한지라
14 그가 그 과부의 의복을 벗고 너울로 얼굴을 가리고 몸을 휩싸고 딤나 길 곁 에나임 문에 앉으니 이는 셀라가 장성함을 보았어도 자기를 그의 아내로 주지 않음으로 말미암음이라
15 그가 얼굴을 가리었으므로 유다가 그를 보고 창녀로 여겨
16 길 곁으로 그에게 나아가 이르되 청하건대 나로 네게 들어가게 하라 하니 그의 며느리인 줄을 알지 못하였음이라 그가 이르되 당신이 무엇을 주고 내게 들어오려느냐
17 유다가 이르되 내가 내 떼에서 염소 새끼를 주리라 그가 이르되 당신이 그것을 줄 때까지 담보물을 주겠느냐
18 유다가 이르되 무슨 담보물을 네게 주랴 그가 이르되 당신의 도장과 그 끈과 당신의 손에 있는 지팡이로 하라 유다가 그것들을 그에게 주고 그에게로 들어갔더니 그가 유다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더라
19 그가 일어나 떠나가서 그 너울을 벗고 과부의 의복을 도로 입으니라
20 유다가 그 친구 아둘람 사람의 손에 부탁하여 염소 새끼를 보내고 그 여인의 손에서 담보물을 찾으려 하였으나 그가 그 여인을 찾지 못한지라
21 그가 그 곳 사람에게 물어 이르되 길 곁 에나임에 있던 창녀가 어디 있느냐 그들이 이르되 여기는 창녀가 없느니라
22 그가 유다에게로 돌아와 이르되 내가 그를 찾지 못하였고 그 곳 사람도 이르기를 거기에는 창녀가 없다 하더이다 하더라
23 유다가 이르되 그로 그것을 가지게 두라 우리가 부끄러움을 당할까 하노라 내가 이 염소 새끼를 보냈으나 그대가 그를 찾지 못하였느니라
24 석 달쯤 후에 어떤 사람이 유다에게 일러 말하되 네 며느리 다말이 행음하였고 그 행음함으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느니라 유다가 이르되 그를 끌어내어 불사르라
25 여인이 끌려나갈 때에 사람을 보내어 시아버지에게 이르되 이 물건 임자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나이다 청하건대 보소서 이 도장과 그 끈과 지팡이가 누구의 것이니이까 한지라
26 유다가 그것들을 알아보고 이르되 그는 나보다 옳도다 내가 그를 내 아들 셀라에게 주지 아니하였음이로다 하고 다시는 그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 창38 :12~26

■ 할렐루야! 모든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올려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일어나 벧엘로 올라 가십시오.
오늘 예배가 영세 전부터 예비된 그 언약이 나타 내신 바 되었는데 그 나타내신바 된 언약 붙잡고 돌아가는 최고의 축복의 예배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모든 관심, 하나님의 모든 중심에는 언약에 있습니다. 그리고 언약의 사람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은 언약 외에는 시행치를 않습니다. 받아합시다. 하나님은 언약 외에는 시행치를 아니한다. 언약의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정말 우리가 언약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교회가 언약을 가진 교회라면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역사하시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언약을 주시고 그 언약을 성취하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그래서 사40:8 절에 보면“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지만 나 여호와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하라”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이 반드시 성취 되어짐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지요. 예레미야 33:1~2절에 보면 “예레미야가 아직 시위대 뜰에 갇혀 있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 임하니라”했습니다. 예레미야가 시위대 뜰에 갇혔다 라는 말은 예레미야의 형편과 환경들을 하나님이 알고 계신다 라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예레미야에게 임하였는데 2절에 보면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같이 이르시되, 여러분 그렇습니다. 일을 행하고 그것을 만들고 성취하시는 분이 누구시냐? 바로 하나님이신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형편과 환경을 모르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형편과 환경을 너무나 잘 아시고 우리에게 말씀으로 찾아오시고 말씀을 언약으로 주시고, 그 말씀의 언약을 하나님께서 이루신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약 붙잡고 날마다 우리의 모든 삶 속에서 응답받고 승리해 나가야 되겠습니다. 특별히 오늘 창세기38장, 우리가 계속해서 성경을 쭈욱 읽어보고 지금 창세기 37장 지난주에 살펴보았고요, 오늘 창세기 38장에 들어갑니다마는 특별히 이 창세기38장은 언약이라는 단어를 놓쳐버리면 도저히 이해가 될 수 없는 부분들입니다. 물론 다른 모든 성경도 마찬가지이지만 특별히 창세기38장 이 성경은 언약 이라는 그 단어를 놓치게 되면 이게 삼류소설보다 더한 오늘 청소년들이 많이 앉아있는데요 사실 청소년 관람불가의 내용들이 38장에 나오는 내용들입니다. 성경 창세기38장을 읽어보면 이것을 왜 하나님이 여기에 끼워놓았겠느냐 생각들을 하게 되어요. 사실은 가만히 보면 그냥 37장에서 39장으로 넘어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연결입니다. 한번 보세요. 36절 보십시다. “그 미디안 사람들은 그를 애굽에서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보디발에게 팔았더라” 그러면서 39장 1절에 보세요.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요셉을 사니라” 우리가 읽어보았던 것처럼 37장에서 바로 38장에 들어가면 되는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이상한 스토리, 정말 입에도 담기 어려운 이상한 스토리가 끼워있어요. 왜 하나님께서 이 스토리를 여기에 끼워 넣어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결국은 무엇을 말씀 하시려고 하는가 이 부분들을 우리가 생각을 해 보아야 합니다. 특별히 오늘 유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유다, 그 후손들 유다 지파를 이루고 유다 족속이 되었잖아요.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유대인이라는 것은 엄청난 자긍심이 있습니다. 대단한 중요한 의미가 유대인이라는 그 말속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실 것인데 유다지파를 통해서 오실 것이다. 그러면서 여호수아가 죽고 난 후에 사사기서 1장에 보면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을 침략하기 위해서 명령을 내립니다. 거기에 유다지파가 올라갈지라. 사사기1:1~2절에 보면 유다지파가 올라갈지라 그러면서 결국은 유다지파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모든 것들을 회복시킬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지파가 유다지파인데 그런데 이 유다지파의 가장 드러내기 싫은, 안 좋은 부분들을 그대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어요. 그러면 왜? 이 부분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전달하기를 원하시느냐?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 언약 붙잡고 돌아가는 그런 축복의 응답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실은 이 본문을 보면서 여러분 유다지파, 유다의 모습이 범죄 한 인류의 모습이고, 죄악 된 타락된 인간의 모습이고, 바로 나의 모습이라는 사실을 전제로 하면서 이 말씀을 정리해 나가야 될 것입니다.

1. 언약의 흐름을 떠나 세상흐름을 따라가는 유다
그러면 먼저 첫 번째입니다. 왜 유다에게 이런 엄청난 문제가 오게 된 것이냐? 사실은 언약의 흐름을 떠나서 세상 흐름을 따라가는 유다의 모습이 오늘 본문에 나오고 있습니다. 언약의 흐름 속에 있어야 되는데 그 언약의 흐름을 떠나가지고 세상 흐름을 따라가는 유다의 모습이 본문에 나오고 있는데요, 38장 1~2절 같이 한번 읽어보십시다. “그 후에 유다가 자기 형제들로부터 떠나 내려가서 아둘람 사람 히라와 가까이 하니라 유다가 거기서 가나안 사람 수아라 하는 자의 딸을 보고 그를 데리고 동침하니” 야곱의 아들들 12아들들 가운데서 자기 의지로 집 나온 첫 번째 아들이 유다입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팔려서 노예로 갔지만 유다는 자기 의지로 21살 정도 되는 나이에 아버지의 집을 떠나가지고 결국은 어디에? 가나안 땅에 들어오게 된 겁니다. 지금 이 당시의 이 배경의 가나안 땅은 아직 약속의 땅으로 완성된 것 아닙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먼저 가나안 땅을 정복할 것을 말씀했지요. 그리고 그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그 가나안 땅의 사람들 하나도 남겨놓지 말고 다 죽일 것을 말씀했잖아요. 왜 그렇습니까? 그 가나안 땅 안에는 그들이 믿고 있는 우상, 신상 그런 것들이 완전히 뒤범벅이 되어가지고 가나안 하면 우상 동네라고 할 정도로, 그 만큼 심각한 땅이 가나안 땅입니다. 그런데 이 유다가, 언약의 흐름에 있어야 될 유다가 언약을 제켜버리고 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가나안 땅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습관과 풍습과 그런 모든 것들이 이 유다에게 가까이함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에 보면 유다가 자기 형제들로부터 떠나 내려가서 아둘람 사람 히라와 가까이 하게 되니, 여러분 가나안의 문화와 문명들이 하나님의 사람 유다에게 그대로 스며들었던 사실을 이야기 하고 있어요. 그러면서 2절에 보면 유다가 거기에서 가나안 사람 수아 라는 자의 딸을 보고 그를 데리고 동침하니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언약의 사람인 유다에게 가나안의 이방신상과 이방 문화, 온갖 우상 숭배 하는 그런 가치관들이 이 하나님의 사람 유다에게 그대로 깊숙하게 들어 왔다는 사실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유다가 결국은 그 가나안 사람 가운데 수아라 하는 자의 딸을 아내로 들이게 됩니다. 그리고 또 수아라는 사람의 딸을 아내로 들이면서 그 사이 속에 아들을 낳게 되는데 그 아들 이름이 오늘 본문에 세 아들이 나오는데 엘과 오난과 셀라라는 아들을 낳게 됩니다. 그리고 아들을 낳고 자기 아들 엘을 위해서 며느리를 받아들이는데 그 며느리도 가나안 여인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 여인이 누구입니까? 다말이예요. 그런데 자기 아들 엘을 위해서 다말이라는 여자를 받아들이니까 집안이 이상하게 쑥대밭이 되어요. 이름 그대로 다 말아먹는 것처럼, 첫째 장자 엘이 죽게 되고요 두 번째 오난이 죽게 되고 그래서 첫째, 둘째 죽으니까 이 유다가 결국은 자기 며느리 다말을 어디에 보내느냐? 물론 셀라가 아직 성장하지 않아서 그렇지만 어디로 보내느냐 하면 어떤 면에서 떼어놓고자 집안을 다 말아먹는 여자이네 이런 생각이 들었겠지요. 옛날 우리 어르신네들도 여자가 시집을 잘못 오면 저 며느리 때문에 남자를 잡아먹는 뭐 하면서 그렇게 이야기하잖아요. 그런 것처럼 이 다말을 친정으로 잠시 친정으로 가 있거라 하면서 수절시켜 버립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바로 이 유다가 부지중에 자기도 몰랐지요. 그런데 결국은 임신을 하게 되고 그 임신한 아이가 자기 아이예요. 그런데 알고 보니까 그 임신한 여자가 누구이냐? 며느리 다말이예요. 이게 유다의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근친상간의 죄,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오늘 보면 관계를 해서 아이를 낳았어요.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진짜 어떤 면에서 오늘 여러분 이번 주간에 38장 1절부터 마지막까지 쭈욱 읽어보고 그것을 한번 깊이 한번 생각해 보세요. 소설도 진짜 이런 소설, 진짜 청소년들이 읽어서는 안 되는 소설처럼 보여지는 그런 내용들입니다. 그런데 유다에게서 무엇이 문제입니까? 결국은 1절에 답이 있습니다. 유다가 자기 형제들로부터 떠나 내려가서... 언약 안에 있어야 될 유다가 자기 형제들로부터 떠나내려갔다 무슨 말입니까? 언약을 놓쳐버렸다는 말이에요. 언약을 내 팽겨 쳤다는 이야기예요. 물론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유다에게는 진짜 우리 민족 언약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이게 무슨 소용이 있느냐? 이게 무슨 언약이냐? 그런 마음들이 있었겠지요. 언약에 대한 자긍심도 없었고, 언약에 대한 만족함도 없었겠지요. 왜냐? 자기도 그 속에 있었지만 형제들의 이 행동들을 보니까 여러분 우리가 야곱의 아들들을 성경에서 살펴봤잖아요. 거기 보면 어머니가 여러 분이어서 형제들 간에 시기하고 질투하고 반목하고 싸우고요, 어느 라인에 설 것인가 그런 것들이 이미 있었고요, 그러면서 이스라엘의 이름을 가지고 언약의 백성이라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 이름을 가지고 이 형제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사실은 세겜에 내려가서 세겜 남자들 다 죽이고, 그 모든 여자들 빼앗아오고, 재산들을 다 노략질 해 오고, 어떻게 하나님의 언약 가진 사람이라고 이렇게 할 수 있느냐 할 정도로... 자기도 그 속에 있었지만...그리고 또 형제들이 서로 합의해서 요셉을 팔아넘기고요..그러니까 아마 유다의 생각 속에는 도저히 진짜 자긍심도 다 놓쳐버리고 어떤 면에서는 만족감을 주지 못하는..그래서 이 언약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고, 그러니까 그 언약의 공동체를 떠나가지고 결국은 어디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히라 라는 사람과 가까이 하면서 가나안의 여인을 받아들이고 며느리조차도 가나안의 여인을 받아들이는 이런 부분들을 봐요. 다시 말하면 사실은 언약의 가치를 모르고 있었던 사람이지요. 그러니까 쉽게 자기 언약을 내팽개치고 결국은 가나안 땅에 들어간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현장에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보면 이런 사람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열 명을 만나보면 한 7~8명이 거의다 이런 사람들입니다. 무슨 말이냐? 자기도 예전에 교회 다녀봤다라는 겁니다. 여러분 전도현장에서 사람 만나서 복음 전해보면 나도 교회 다녀봤다, 교회 별거 없다라는 것, 교회 그 꼬라지 보기 싫다라는 것, 그러면서 자기는 교회 없이도 의롭게 살 수 있다 라는 것, 그래서 교회 모습도 보기 싫다고, 아니 교회를 다녔던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면 그렇게 나와요. 교회에 대해서 정죄해 버리고. 여러분, 물론 교회는, 아셔야 합니다, 완벽한 곳이 아닙니다. 목사도 완전할 수 없고 중직자들도 완벽할 수 없고 모든 성도들도 완전할 수 없습니다. 이 지상 교회는 완전한 곳이 아닙니다. 부족하고 모자라고 연약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아무리 그렇다 할지라도 언약 떠나면 안 됩니다. 그리스도 떠나면 안 됩니다. 다시 말해서 교회를 떠나면 안 됩니다. 이 말은 보이는 교회보다 언약을 떠나면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유다는 언약의 백성이면서 자기도 그 자리에 앉아서 그런 일을 했으면서도 언약을 싫다 하고 언약을 놓쳐 버리고 가나안 땅에 들어간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한국 교회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교회 다니던 사람들이 교회를 나가버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가지고 가나안 성도라 이야기합니다. 여러분, 가나안 성도 이야기 들어보셨습니까? 이것은 땅에 대한 가나안이 아니고 뒤로, 거꾸로 하면 ‘안 나가’ 성도입니다. 교회 나가기 싫다는 겁니다. 교회 진절머리 난다는 겁니다. 그 꼬라지 가진 교회. 아니, 나는 교회 없이도 잘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 교회의 너무나 안 좋은 모습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완벽함을 요구하고 또 뭔가 교회 나름대로 해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이건 제대로 알지 못해서 그런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할지라도 여러분, 교회를 떠나면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하면 언약을 떠나면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지금 대학교 현장에 참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우리 한국의 대학교 현장에 기독교 비율이 2%밖에 안 됩니다. 그리고 이미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주일학교 교회들 절반 이상이 주일학교가 운영이 안 됩니다. 주일학교가 없는 교회들이 한국교회의 절반 이상이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교회에 대한 매력을 못 느낀다는 말입니다. 진짜 그리스도 답 주면 될 것인데 그에 대한 그리스도 답이 없으니까, 교회에 뭔가 기대하고 왔는데, 여러분, 세상 속에 다른 것으로는 성도들의 마음을 채워줄 수가 없습니다. 성도, 사람들의 마음을 채워줄 수가 없습니다. 오직 우리 가진 유일한 답은 그리스도가 유일한 답이고 그 답으로만이 사람이 살 수 있는데 자꾸 교회들이 다른 것 하니까 오히려 가면 갈수록 나중에 교회 뭐 별 것 없네, 이렇게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 나가 성도들이 늘어나는 것입니다. 젊은이들은 교회를 떠나고 있고 주일학교조차도 교회에서 운영이 안 될 정도로 지금 심각한 가운데 빠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여러분, 그냥 단순히 하나교회를 떠나면 안 된다, 그 말이 아닙니다. 여러분, 언약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래도 그리스도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안 좋은 모습이 보여도 그리스도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그게 우리가 사는 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늘 메시지 가운데 한 번씩 그 이야기 들었지 않습니까? 유목사님이 교회 보니까 너무 그렇고 그런 사람만 교회 다니고 자기 어머니도 헌금 한다고 하는데 옛날 어르신들 그랬잖아요, 다리미 가지고 헌금 다려 가지고 교회 헌금한다고 하는데, 뭐 헌금 저거 뭐하러 할까, 그래서 결국은 교회를 떠났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를 떠난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고 뭐라 했습니까? 말 못할 정도로, 완전히, 간증하면 간증할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망했다는 사실을 이야기했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자칫 잘못하면 우리도 모르게 언약을 놓칠 수 있습니다. 정말로 언약을 놓치지 말고 그리스도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데 그리스도를 떠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이 사는 길입니다. 그리스도로 은혜 받는 것이 사는 갈입니다. 그런데 오늘 유다는 결국은 언약의 공동체를 떠나서 어디에? 가나안에 가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러니까 이미 이 유다의 마음에는 가나안의 깊은 가치관이 유다의 마음 속에 들어왔는데 한번 봅시다. 2절을 보십시오. 2절에 “유다가 거기서 가나안 사람 수아라 하는 자의 딸을 보고 그를 데리고 동침하니.” 여기 수아라 하는 사람의 딸을 보고 그를 데리고 동침하니, 여기 세 단어, 보고 데리고 동침했다, 보고 취하고 동침했다, 그냥 데리고 잤다는 것이 아닙니다. 보고 취하고 동침했다. 여러분, 창세기로부터 시작된 인간의 범죄한 타락한 모습이 그대로 이 유다에게 있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가나안의 문화 속에 들어가니까 이 유다의 가치관이 완전히 바뀌었는데 사실은 보고 취하고 동침했다, 이 내용은 처음부터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자마자 나왔던 범죄의 내용이 그대로 이 유다 속에 있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창세기 3장 6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보고 따먹고 또 먹고 했습니다. 보고 따고 먹고, 무슨 말입니까? 보고 취하고 동침하고, 같은 말입니다. 창세기 6장 2절에 보면 노아 시대죠,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보고 취하는 것,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보고 취하는 것. 바로도 사로를 보고 취했고 세겜도 야곱의 딸 디나를 욕보이고 취해 버렸고, 오늘 유다도 보고 취하고 동침하고, 같은 말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결국 인간은 창세기 3장에서 하나님을 떠나자마자 눈에 보이는 것 중심으로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결국 나 중심으로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결국 모든 것의 핑계를 나에게서 이유를 찾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 돌리는 것, 그게 창세기 3장 사건입니다. 범죄한 인간에게 찾아온 창세기 3장 사건. 오늘 유다의 범죄 모습을 보면서 이게 인류의 모습이고 이게 나의 모습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떠나게 되니까 눈에 보이는 것만을 위해서 살아가고, 그리고 눈에 보이는 것,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보고 취하고 동침하고, 그리고 모든 이유들을, 핑계들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고 자기는 의로운 양, 이것이 타락한 인간의 모습인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여기 보면 사실은 유다는 수아라는 자의 딸인 가나안 여인과 사랑해서 관계를 가진 것이 아니라 사실은 유다가 정욕적으로 보기에 좋은 여자를 취해서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열매들이 범죄의 열매들이 나타나는데 그 아들들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아들 엘, 오난, 또 셀라, 이름들은 좋은 뜻입니다. 엘은, 여러분, 성경에서 엘이라 할 때 하나님이라고 대부분 이야기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엘은 하나님이 아니라 감시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오난은 그 이름의 뜻이 힘이라는 뜻이고 셀라는 기도라는 뜻과 평화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름은 좋은 이름을 붙였을지 모르지만 그 열매들은 범죄의 열매들이 맺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엘이 죽게 됩니다. 그 죽은 이유를 길게 설명해 놓지 않고 여호와가 보시기에 악하였다 했습니다. 그리고 엘이 죽게 되니까 이 다말이 누구에게 들어가야 합니까? 엘을 위해서 다말이라는 여자를, 가나안 여자를 부부로 연결시켜 놓았는데 엘이 죽게 되니까 이제 이 다말이 누구에게 들어가야 하느냐? 오난에게 들어가야 합니다. 그 때 당시에 계대혼인법, 여러분, 우리나라도 고대 시대에 이런 일들이 있었고 또 고대 근동에, 이 당시에 고대 근동에서는 종족을 보존해야 하는 부분 때문에 이 계대혼인법이 허락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방인들로 나오는 풍습이었지만 성경 안에 들어온 내용이 바로 계대혼인법입니다. 그래서 신명기 25장에 나옵니다만 엘이 죽게 되니까 이제 이 다말이 누구에게? 오난에게 들어갔는데 이 오난이 고의적으로, 계획적으로 씨를 주지 않습니다. 왜냐? 성경에 보면 나오는데 결국 자기 재산이 안 될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자기 형님의 아이니까 자기 재산이 안 될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고의적으로 씨를 주지 않습니다. 그것도 그냥 성경을 읽어보면 모르는데 원문상으로 살펴보면 할 때마다 고의적으로 씨를 주지 않았다 했습니다. 때마다. 그러니까 그게 여호와의 보시기에 악하여 결국 오난도 죽게 되었다 했습니다. 엘에 대한 부분은 어떤 이유로 죽었는지 모르고 그 내용들은 알지 못하지만 그러나 오난의 경우를 살펴보면 결국 이 형제들이 성에 대한 부분들 때문에 죽었지 않나 이렇게 추측도 합니다. 그러니까 오난도 죽게 되니 그 다음에 누가? 셀라에게 줘야 하는데 셀라는 보니 아직 어립니다. 그리고 또 유다, 아버지 입장에서 보면 막내아들까지도 어려움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예 다말에게 친정에 가 있어라. 친정에 가 있어라, 내가 셀라가 성장하면 너를 다시 불러서 너에게 줄 테니까 친정에 가 있어라, 그렇게 돌려 보냅니다. 이 부분을 통해서 여러분, 무엇을 볼 수 있습니까? 모든 책임을 유다가 누구에게? 다말에게 전가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게 타락한 인생의 모습인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툭하면 남편 때문에, 아내 때문에, 자녀 때문에, 무엇 때문에, 핑계를 대지 않습니까? 책임을 전가하지 않습니까? 아담, 하와가, 아담이 저 여자 때문에. 언제는 내 살 중의 살이요 뼈 중의 뼈라 이야기해놓고 이제는 저 여자 때문에. 하와는 누구에게? 저 뱀 때문에. 책임전가 아닙니까? 이게 타락한 창세기 3장 속에 빠진 인생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 38장에서 이렇게 완전히 길이 없음을 통해서 하나님은 창세기 39장에 보면 하나님의 대책, 은혜 가운데 하나님이 길을 내신 한 사람, 요셉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에게는 구원의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희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그래서 우리에게 길을 내어주실 수 있는 분이라는 사실을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면서 그래서 요셉이라는 한 사람, 이 한 사람을 통해서 결국 하나님이 은혜의 길을 여시는 사실을 더욱더 강조하기 위해서 창세기 38장을 여기에 끼워 넣어서 우리에게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는 구원의 길이 없습니다. 그 어떤 것으로도 우리는 의롭다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결국 보이는 것 중심으로 살아가게 되어 있고 모든 것, 자기 중심으로 해서, 그래서 책임 전가하고 자기 욕심을 따라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 인생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그리스도를 보내시사 하나님의 은혜를 설명하신 것입니다. 이 그리스도를 붙잡음으로 말미암아 여러분, 참된 구원의 축복 가운데 들어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그러나 언약의 백성인 유다
그 다음에 두 번째입니다. 그러나 언약의 백성인 유다. 그러나 언약의 백성인 유다입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을 깊이 몇 번 읽어보셔야 하는데 다말이 이방여인으로서 믿음의 가정에 들어왔지 않습니까? 그런데 가만히 지켜보니까 대를 이어갈 수 없는, 단절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에 왔습니다. 그래서 다말이 머리를 쓴 것입니다. 마침 유다가 자기 아내를 잃어버리고, 자기 아내가 죽고 나니 외롭겠지요. 그러니까 딤나라는 지역에 내려온 이야기를 듣고 이 다말이 머리를 쓴 것입니다. 결국 창녀 모습을 하고, 변장을 한 것이지요, 창녀 모습을 하고 자기 시아버지가 나타나는 그 곳에 가서 앉아 있었습니다. 시아버지가 지나가다가 그 여자를 불러들여서 관계를 합니다. 관계를 하면서 당장 관계 속에서 화대라 합니까, 관계하면서 화대를 줘야 하는데 그 당시 화대가 염소 새끼 한 마리 정도 됩니다. 그런데 이 유다는 염소 새끼가 없으니까 당장 자기 몸에 있는 도장과 끈과 지팡이, 세 가지가 나옵니다만 두 가지입니다. 도장, 그 묶는 끈입니다. 그리고 지팡이. 그것을 대신 화대로 줍니다. 그리고 나중에 염소 새끼 주고 그 화대를 찾아오기 위해서, 물품을 찾아오기 위해서. 그래서 유다의 몸에 있는 도장과 지팡이를 줍니다. 사실 그 관계 속에서 유다가 결국은 자기 며느리 다말과 함께 관계한 것을 유다는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왜냐? 변장해가지고 창녀로 다말이 들어와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관계해서 임신하고 그 관계 이후에 이 다말은 자기 고향에 가서 마찬가지로 과부의 모습을 하고 앉아 있습니다. 유다가 친구에게 이야기합니다. 이제 이 염소 새끼를 갖다 주고 내 물품을 찾아오라 그래서 친구가 염소 새끼를 가지고 물품 찾아오기 위해서 가니깐 창녀가 없어요. 그 자리에 가니깐, 동네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여기 있던 창녀가 어디 있느냐? 원래 이곳은 창녀가 없는 곳이라고 이야기 했어요 그래서 결국은 물품을 찾지 못하고 돌아왔어요. 오늘 본문에 보면 석 달 지난 후에 어떤 사람이 유다에게 와가지고 다말의 소식을 전하는데 당신 며느리 다말이 행음해가지고 임신해 있더라 했어요. 유다가 그 이야기를 듣고 찬스다 기회다 안 그래도 걱정했는데, 셀라가 크면 은 반드시 다말에게 줘야 하는데 첫째 둘째 까지 말아먹은 그가 셋째까지도 어떻게 할까 걱정했는데 기회다 싶어가지고 그를 끌어내서 불사르라 했어요. 그 당시에 불사르라는 것은요 처형보다 더 극형에 처하는 겁니다. 그런데 다말이 끌려 나갑니다. 끌려 나가면서, 사실은 시아버지에게 받았던 도장과 지팡이를 내 높고 이 물건의 주인이 나에게 임신시켰다. 그걸 내 놓아요 그 물품을 보고 유다가 깨닫습니다. 그 깨달으면서 하는 말입니다. 26절입니다. 그는 나보다 옳도다! 여러분 여기서 옳다는 말은요 우리가 맞고 틀리고 그 개념이 아니에요 너는 맞고,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 그런 개념이 아닙니다. 사실은 이 다말은 이방 여인으로써 믿음의 가정에 시집와가지고 결국은 대를 이어서 예수그리스도 올 그 길을 예비해야 되는데 이 언약의 역사들이 끊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결국 시아버지까지 들어가서 그 언약을 전달하기 원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유다가 다말을 보면서 “그는 나보다 옳도다.” 여러분 성경에서 말씀하는 옳다는 것은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옳다는 그 개념이 아니에요. 여러분 성경에서 말씀하는 옳다는 정의는 그리스도를 붙잡은 것을 가지고 옳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붙잡고 그리스도를 소망하고 그리스도를 기대하는 것 그걸 가지고 옳다는 겁니다. 이 다말은 자기의 어떤 상황과 상관없이 오직 그리스도를 소망하면서 그리스도 그 그리스도 이름에 자기의 생명을 걸었습니다. 그러니깐 유다를 통해서 그는 나보다 옳도다. 이야기 했습니다. 사실은 자기의 모든 생을 그리스도 그 이름에 건겁니다. 이게 다말의 모습이에요 그는 나보다 옳도다. 인도받는 다말의 모습이에요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옳다는 것은 다른 것에 있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그리스도 그분만이 우리의 옳음입니다. 그래서 로마서에 보면 은 그리스도로 의의 옷을 입으라 했는데 바로 우리에게 의의 옷이 무엇입니까? 예수그리스도가 의의 옷이죠. 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죄 없다라고 인정받는 것이고요 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단의 머리가 깨뜨려 지는 것이고요 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 만나는 옳은 길입니다. 그리스도만이. 그래서 오늘 찬송 불렀잖아요. 257장 3절에 보면 은 나 같은 죄인이 용서함 받아서 주 앞에 옳다함 얻음은 우리가 어떻게 옳다함을 얻었습니까? 우리의 의로운 행위입니까? 우리가 잘 삶으로 착한 일을 행함으로 아니에요 그다음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확실히 믿기는 어린양 예수의 피로 속죄함 받았다는 것입니다. 어린양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그렇습니다. 우리인생의 모든 문제 해결 받은 그 그리스도 붙잡은 그게 옳은 겁니다. 여러 가지 이런 저런 많은 말들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만이 우리인생에 유일한 문제고 나의 모든 문제 해결하신 그리스도가 내 인생에 주인 되십니다. 그 사실을 고백하는 것이 그게 옳은 겁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인생의 12가지 문제 진짜 우리가 알고 보면 은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 문제인데 모든 인생이 거기에 빠져 있잖아요. 나 중심하고 물질중심하고 성공 중심에 살아가기 때문에 가면 갈수록 우상과 미신과 점술들이 더욱더 일어나게 되어있고요 그리고 개인이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인줄 알았는데 내 주인이 따로 있어요. 그러니깐 주인이 따로 있으니깐 영적으로 가면 갈수록 어려워 질수 밖에요 주인이 따로 있으니깐 우리가 종교 생활하는 것, 우상숭배 하는 것 그게 오히려 내게 맞는 것처럼 보입니다. 또 맞고요 주인이 따로 있으니깐. 그러면서 정신적인 상태는 마음도 어렵고 정신도 어려워지고, 육신의 상태도 온갖 질병과 함께 고통이 있고요 영원한 상태 결국 그렇게 살다가 지옥 가는 거고요 그리고 지속적인 상태가 있는데 우리 자녀들에게도 그 영적인 대물림을 그대로 전달하는 거예요. 이 인생에 문제 어떻게 무엇으로 해결할 것인가? 우리에게는 길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그리스도를 보내신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 만날 수 있도록 하셨고요 죄로 인한 저주와 재앙에서 해방 받도록 하셨고요 사단의 운명에서 빠져 나오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리스도를 붙잡는 것이 옳은 것입니다. 그 그리스도를 붙잡고 오늘까지 오셨습니다. 여러 가지 말들이 있었지만, 이런 저런 많은 말들이 여러분을 힘들게 하고 어렵게 했지만은 그러나 그리스도를 붙잡고 오늘 이 자리까지 온 거에요 그게 옳은 겁니다. 그는 나보다 옳도다. 유다가 다말에게 이야기한 부분이지만은 오늘 하나님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옳다 인정하시는 축복입니다. 이 사실 붙잡고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실패한 유다를 찾아가셔서 결국은 언약의 하나님께서 그 언약을 시키십니다. 가나안에 들어가서 완전히 실패한 유다 찾아가지고요 나중에 이 언약을 유다를 통해서 성취시키잖아요. 그래서 유다의 후손을 통해서 예수그리스도 오셨고 이게 복음 아닙니까? 그런데 창세기 38장에 유다의 사건이 나오는데요. 창세기 43장에 보면 은 유다가 완전히 깨닫게 되는 것이 나와요 38장에서 42장까지 하나님께서 유다를 완전히 바꾸었어요. 그래서 43장에 잃어보시면, 유다가 자기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를 합니다. 자기도 아들들을 아버지 야곱처럼 잃어봤으니깐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고요 아버지 앞에서 고백하고 내용하는 이야기들이 뭐냐, 사실은 유다가 완전히 바꾸어졌어요.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기어코 언약의 백성인 유다에게 찾아오셔서 결국은 유다를 통해서 하나님의 언약을 성취시켜 나가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이 언약만 잡고 있으면 됩니다. 마태복음 1장에 아브라함과 다윗 예수그리스도의 세계라 했잖아요. 그 예수그리스도의 족보 안에 보면 은 도저히 들어오려야 들어올 수 없는 네 사람의 여자가 나와요 바로 기생 라합, 다윗의 아내 밧세바, 그다음에 이방 여인으로써 복음을 선택한 룻, 그가 결국 보아스를 얻게 되죠 그리고 오늘 본문에 나오는 다말, 예수의 족보 가운데 아니 그 당시에 여자로써는 족보에 올리지도 않았어요. 그와 더불어 또 이 사람들 하나같이 그렇고 그런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족보 가운데 서게 되요 이게 뭡니까? 이게 우리에게 복음이 어떤 것인가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이 복음 아닙니까? 어떤 세상에 오셨습니까? 완전히 타락하고 하나님을 떠난 현장 속에 죄악 된 현장 속에 그리스도가 오신 겁니다. 이게 복음 중에 복음이에요 그래서 그 어느 인생도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은 기어코 그 그리스도를 영접한 자에게 찾아 오셔서 하나님 주신 언약을 성취시켜 나가신다 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언약이 뭡니까? 그리스도, 하나님 나라, 성령충만함입니다. 오직 성령입니다. 이 언약 붙잡고 있을 때, 하나님은 여러분 모든 걸음에 찾아 오셔서 하나님이 언약을 성취시켜 나가시는 것입니다. 이게 언약의 하나님의 특징이에요 언약을 주시고 언약 붙잡은 자에게 하나님이 찾아 오셔서 역사 하신다라는 것입니다. 마지막 이 시대에 영원한 언약, 오직 그리스도, 하나님 나라, 오직 성령 붙잡고 언약의 성취를 체험하는 전도자의 걸음들이 되길 주의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언약의 비밀들을 알게 하시고 이 언약 붙잡고 오늘 까지 우리가 승리하며 살아 올수 있도록 인도해 주심을 감사함을 드립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그리스도 언약 놓치지 않는 저들 되게 하시고 정말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영원한 언약, 오직 그리스도, 하나님 나라, 성령 충만함 이 언약 붙잡고 주님의 역사들을, 언약의 역사들을 성취됨을 보는 증인들 되도록 주님 축복하여 주옵소서
살아계신 우리구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2017년 12월 3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그는 나보다 옳도다
(창38:12-26)

서론: 하나님의 모든 관심, 모든 중심은 언약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언약 외에는 시행치 않으십니다. 언약을 가지고 있고, 언약 가진 교회라면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역사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약을 반드시 기억하고 성취하십니다(사40:8, 렘33:1-3).

1. 언약의 흐름을 떠나 세상 흐름을 따라가는 유다(창38:1-2)
가. 자기 의지로 아버지의 집을 나온 유다
1) 가나안 땅으로 가서 우상, 신화, 문화를 가까이 함
2) 가나안 여인과 결혼(창38:2) - 엘, 오난, 셀라를 낳음
3) 가나안 여인 다말을 며느리로 데리고 와서 유다의 자녀를 낳음
나. 무엇이 문제? - 언약을 놓침(창38:1)
1) 나름대로 분명한 이유(형제끼리 다툼, 시기, 질투) - 언약을 떠남
2) 세상의 모습 - 교회를 떠나고 있음(교회의 부족한 모습)
3) 그리스도 안에 머무는 것이 사는 길
다. 거기서 보고, 데리고, 동침(창38:2)
1) 창3:6(보고, 따고, 먹고 - 인간의 본성), 창6:2(보고, 취함)
2) 하나님의 대책 - 창39장(언약 가진 요셉을 택하심)
2. 그러나 언약의 백성인 유다
가. 언약 전달하는 대가 끊어져서는 안 되겠다는 일념 속에 시아버지를 속이고 임신
나. 그는 나보다 옳도다(창38:26)
1) 옳다 - 그리스도를 붙잡음
2) 그리스도만이 옳은 길, 그리스도의 피로 옳다함을 받음(죄, 사단, 지옥의 배경에서 해방)

결론: 실패한 유다를 찾아가셔서 언약을 성취 하셨습니다. 유다의 후손을 통해 그리스도가 오셨습니다. 언약은 반드시 성취 되어지기 때문에 언약만 붙잡으면 됩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한 자에게 언약을 성취 시켜 나가십니다(그리스도, 하나님 나라, 성령). 언약 붙잡고 언약 성취를 체험하는 축복 누리시길 바랍니다.


● 기도제목






● 말씀실현(실천사항)






● 전도대상자

댓글

댓글쓰기 권한이 없습니다.
번호 제목 본문 설교일
1484 전환점을 이룬 안디옥 선교 행11:19-30 2025-04-27
1483 우리에게 주시는 영원한 메시지 고전15:1-11 2025-04-20
1482 새로운 싸움을 위하여 삿7:9-18 2025-04-13
1481 날마다 영적싸움에 승리하라 삿7:1-8 2025-04-06
1480 이 시대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해답 삿4:1-10 2025-03-30
1479 하나님이 쓰시는 기준 삿3:12-23 2025-03-23
1478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삿3:7-11 2025-03-16
1477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삿2:6-10 2025-03-09
1476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삿1:1-7 2025-03-02
1475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단12:1-4 2025-02-23
1474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단11:28-39 2025-02-16
1473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단10:10-21 2025-02-09
1472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단9:20-24 2025-02-02
1471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단8:15-27 2025-01-26
1470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단7:9-14 2025-01-19
1 2 3 4 5 6 7 8 9 10 ... 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