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안식-예수를 바라보라
2018-02-04 00:00:00
관리자
조회수 54
유튜브 저화질 다운 MP3 녹취 요약 |
2월 4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참된 안식 – 예수를 바라보라”
(히4:1~11)
1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2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3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그가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나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어졌느니라
4 제칠일에 관하여는 어딘가에 이렇게 일렀으되 하나님은 제칠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였으며
5 또 다시 거기에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6 그러면 거기에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
7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하였나니
8 만일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더라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9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10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
11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히4:1~11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예수를 바라보십시다. 오늘도 그리스도이신 예수를 바라봄으로 주님 주시는 참된 평안이 여러분과 여러분 가정과 산업 모든 현장에 넘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특별히 이번 주는 어디에 계시든지 간에 여러분이 집중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세계선교대회를 앞두고 먼저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 선교사 합숙이 58개국에 850여명이 모인 자리에서 진행되어집니다. 여기에 우리 선교위원장님 이하 우리교회에서도 나라 담당하는 분 몇이 참여하게 되고요 또 그 대회를 마치게 되면 금요일 날 저녁에 내려와서 토요일에는 우리 노회 주관으로 우리교회 본당에서 선교축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 주일에는 제5차 하나선교대회가 모든 민족을 치유하는 선교운동이라는 주제로 우리교회 파송된 선교사님들 모시고 함께 예배가 진행되어집니다. 그리고 마치고 나면 또 그 다음 주이지요. 화요일에 세계 선교대회가 예원교회에서 진행되어집니다. 그때는 우리 선교사님들 비롯해서 선교사님들 파송한 교회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예측으로는 한 5천명정도 지금 계획하고 있습니다. 선교대회가 하루 동안 진행되어집니다. 그리고 내려와서 구정연휴 주간부터 시작해서 우리교회에서 다민족 수련회와 함께 중남미 집중훈련이 3월 12일까지 계속되어집니다. 우리가 선교를 위해서 마음에 담고 기도하면서 많은 응답들을 또 새롭게 확인하는 그런 자리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 무시로, 정시로 늘 항상 선교를 놓고 기도해 주시고, 특별히 이번 선교사합숙과 하나 선교대회와 또 세계 선교대회, 이 모든 세계대회들을 통해서 우리 선교사님들이 선교현장을 치유하는 그런 선교운동의 시작이 되어지는 축복을 누릴 수 있도록 여러분 위해서 기도해 주시고, 또 함께 기도하게 될 때에 여러분 또한 동일하게 여러분 개인과 삶 속에도 같은 축복의 역사가 임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이번 한 주간부터 시작해서 또 중남미 집중훈련 40일 훈련 끝나는 시간까지 계속적인 여러분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오늘 ‘참된 안식 – 예수를 바라보라’입니다. 지금 우리가 히브리서를 2018년 들어오면서 계속해서 말씀을 가지고 인도를 받고 있는데요, 왜 옛날로 돌아가는가? 돌아갈 이유가 없다라는 겁니다. 왜냐? 완전한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에 그래서 옛적부터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여러 부분, 여러 모양으로 말씀으로 나타나시고 마지막 날에 무엇으로요? 아들로 나타나신 바 된 그 예수를 바라보라.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복음 속에 견고히 세워져야 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으면 우리도 모르게 흘러 떠내려가기 때문에 복음 안에 깊은 뿌리를 내리지 못하면 그 복음을 등한히 여길 수 있기 때문에 큰 구원을 주신 예수를 바라보라. 히브리서 2장이지요. 그리고 지난주에는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왜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하느냐? 우리는 우리의 신분 자체가, 우리 소속 자체가 하늘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자이기 때문입니다. 아멘입니까? 그리고 또 모세도 신실했지만 모세는 피조물이고 그리스도는 창조주이고 모세는 종으로서 신실했고, 그리스도는 아들로서 신실하였기 때문에 그래서 유일하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라. 유일하신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하라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4장에 넘어가서 이어서 우리에게 참된 안식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라. 여러분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모든 사람에게 안식이 필요합니다. 당장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육신적인 안식이 있지요. 특별히 얼마 전에 여러분 호주 테니스 경기에서 정현 선수가 준결승에 올랐잖아요. 저도 너무나 원래 저는 테니스는 못합니다. 원래 잘 안 보는 프로그램인데 그 날 만큼은 봐야 되겠다는 생각에, 워낙 광고에도 나오고 하니까 봐야 되겠다 싶어 잠시 봤습니다. 그런데 결국 기권했잖아요. 그러고 나서 그 이튿날 신문에 인터뷰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기자가 물었습니다.
무엇을 제일 먹고 싶으냐? 돼지고기가 들어간 김치찌개가 제일 먹고 싶다고 했어요. 지금 제일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 눈이 뜨여지기 까지 계속 자고 싶다고 했어요. 우리 인간은 육신적이 쉼이 필요하지요. 그래서 휴가가 있는 거고요. 경쟁시대 속에 특별히 실용주의 그 배경 가운데서 지금 스피드시대 아닙니까? 그런 가운데서 살아남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그런 경쟁시대 속에서 육신적인 어떤 휴가가 또 쉼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제가 프랑스에 캠프를 갔을 때에 그 프랑스에 있는 선교사님 한 분이 그 이야기를 해요. 가만히 선교현장에서 선교하다 보니까 유럽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놀기 위해서 돈 버는 것 같다고 했어요. 무슨 말인가 하니까 이들은 죽자 살자 돈 벌어가지고 한 달 두 달 캠핑카 이용해서 휴가를 간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때에는 텅텅 빈다는 거예요. 아! 그렇구나. 사실 육신을 입고 있는 인간이기 때문에 육신적인 쉼이 필요합니다. 저는 저 자신을 보면서 한 번씩 그런 것을 느껴요. 뭐냐 하면 분명히 주어지는 시간이 있는데 쉬는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내가 쉬 줄을 모르구나. 노는 법을 몰라요. 그래서 아! 내가 노는 방법을 만들어 가지고 연구해서 놀기를 잘해야 하는데 놀지를 못하고 있는 이 부분들을 보면서 어떻게 하면 잘 놀까 이런 생각들도 한 번씩 해요. 여러분 우리 인간은 육신을 입고 있기 때문에 사실은 쉼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열심히 살아온 만큼 또 공식적으로 쉬라고 정년퇴임도 있고 명퇴도 있잖아요. 그것은 여러분들이 노력해서 열심히 일했기 때문에 쉬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육신적인 쉼도 있지만 특별히 율법적인 쉼, 안식이 있습니다. 특별히 이 부분들은 우리 옛날에 어르신들이 신앙생활 제대로 하려고, 인도받으려고 몸부림 쳤던 사람들은 거의 이 율법적인 안식들에 기준들을 갖고 있는 것을 봐요. 그래서 주일날 되면 아예 공부도 못하고요, 아니 공부를 못하도록 했지요. 일도 못하고... 특별히 보수적인 신학을 갖고 있는 교단일수록 공부나 일 하는 이 모든 것들, 움직이는 모든 것들을 금했잖아요. 그런데 유대인들 가운데서도 사실은 율법적인 안식에 대한 기준을 가지고 철저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특별히 정통적인 유대인들 가운데는 안식일에는 불을 피우지 말라는 율법이 있어요. 그 말씀을 그대로 순종한다라고 여러분 전기도 금요일 되면 아예 켜놓고 토요일 날 아예 꺼지를 않아요. 왜냐? 불켜는 거니까... 그리고 또 음식도 금요일 날 풍성히 준비해 놓고 아예 금요일 날 저녁에 가스렌지에 불을 은은하게 올려놓고 토요일 날은 하루 종일 그 음식을 먹는 거예요. 왜 그러느냐? 여러분 가스렌지를 누르면 스파크 일어나면서 불이 켜지잖아요. 그래서 그런 안식일에 대한 부분들 가지고 그런 율법 속에 빠져있는 부분들을 봐요. 그래서 성지순례에 다녀왔던 분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유대인들 가운데 천재들이 만들어낸 기술이 있는데 그것이 뭐냐 하면 안식일 엘리베이터가 있다는 거예요. 뭐냐 여러분 안식일에 엘리베이터 이용하는 엘리베이터가 따로 있는데 그것은 층층마다 다 눌려져 있어요. 여러분 우리는 필요한 층을 가기 위해서 내가 눌러놓고 가고자 하는 층을 누르잖아요. 그러면 그 누르는게 전기 들어오는 거예요. 그것이 안식일을 범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예 층층마다 다 눌러놓아요. 그날 만큼은,,,사실 그러면 한 18층에 사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층층마다 서니까...어떤 면에서 그게 안식일을 지키는 유대인들의 율법적인 안식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오늘 히브리서 4장에 보면 1~11절을 저와 여러분 읽었습니다마는 안식에 대한 단어가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가 4장에 나와요. 2절과 7절에 안식에 대한 단어가 안 나오고, 각 절마다 안식이라는 단어가 한 번이상 나와요. 여러분 대충 읽었잖아요. 그런데 가만히 보면 안식이라는 단어가 절절마다 나오는데 거의 한번 이상 나와서 총 11번이 나오는데 여기서 말하는 안식이라는 부분들은 그런 육신적인 안식과 율법적인 안식에 대한 부분들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인 안식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학교 교육에서 없는 것이 안식에 대한 내용입니다. 학교 교육에서 가르치지 않는 것이 이 안식에 대한 내용인데 분명히 안식에 대한 부분들이 그냥 영적인 안식은 어떤 것이냐? 육신적인 안식과 율법적인 안식을 뛰어 넘어서서 우리에게 굉장한 신앙적인 중요한 것들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 영적인 안식인 것입니다. 우리가 대부분 안식 하면 우리가 죽어서 천국 가는 것, 그게 우리가 안식에 들어간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 하고 있잖아요. 그리고 우리 어르신들, 신앙생활 해 오신 분들도 이 땅에서는 고생하더라고 죽으면 천국 가는데 그런 어떤 내세에 대한 안식에 대한 그런 부분들이 있기 때문에 이 땅의 모든 어려움들을 뛰어넘은 것도 있습니다. 그런데 죽어서 천국가는 그것은 죽음과 어떤 안식에 대한 부분들을 동일시 한 것이지요. 그런데 성경에 보면 죽음 이후에 안식에 들어가는 그 안식들도 있지만 더 강조하는 것이 현실 속에서, 지금 이 땅에서 안식의 축복을 누리는 그 비밀들이 있다라는 사실을 성경에서는 더 강조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 그 안식의 축복을 누리다가 천국 가는 것, 안식이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는 것 그게 성경에서 말씀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 중의 한 부분입니다. 사실 그게 내게 확신 있고 없고 엄청난 신앙생활의 많은 부분에 영향을 주어요. 그래서 10가지 발판 가운데서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것이 내세에 대한 확신 아닙니까? 내세가 우리가 결정되었다는 이 부분들이 얼마나 신앙생활에 많은 확신을 주는지 모릅니다. 응답을 주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물론 그런 부분들도 성경에 말씀하고 있지만, 그러나 이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안식은 그런 세계만 아니라 이 땅에서 현실적으로, 죽어서 안식에 들어가기 이전에 현실적으로 이 땅에서 누려야 될 새로운 세계, 안식이 있다는 사실들을 성경 곳곳에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개혁성경에 180여 곳에 안식이라는 단어가 나오고요, 그런 가운데 특별히 성경 곳곳에서 안식에 대한 부분들 쭉 설명하면서 안식에 대한 단어가 제일 많이 나오는 곳이 히브리서 4장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제목처럼 참된 안식 - 예수를 바라보라 했는데 오늘 이 한날 참된 안식의 의미를 붙잡으므로 말미암아 오늘 우리가 찬송을 불렀잖아요. 이 세상에 근심된 일이 많고 죄악된 일이 많고 이런 세상 속에서 우리가 참된 안식의 비밀을 누림으로 말미암아 저와 여러분이 승리하고 또 많은 현장에 참 안식을 알지 못해서 살아가는 자들에게 이 안식을 증거하는 전도자로 귀한 축복의 역사가 시작되어지는 그런 응답이 있기를 먼저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모든 인간은 안식을 갈망해하고 있다.
그럼 먼저 첫 번째입니다. 모든 인간은 안식을 갈망해 하고 있습니다. 왜냐? 여러분 창세기1:27~28절, 우리 인간을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셨다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에게 복을 주시며 가라사대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 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형상대로 우리를 만드셨다는 말 그 자체 안에 하나님과 영적인 교제 속에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존재로 저와 여러분을 만드셨다는 말입니다. 그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 속에 예배하는 존재로 만드셨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안에 있는 참된 안식과 평안과 축복을 누리는 존재로 우리를 만드셨다는 말입니다. 그게 창세기1:27~28절의 축복이예요. 원래 우리가 하나님 안에 살면서 하나님이 주어진 안식의 축복을 누리며 살도록 지은 바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요 제일 처음 만든 제도가 있다면 가정의 제도와 함께 안식의 제도를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창세기2장에 보면 안식에 대한 부분들 이야기하고 있는데, 창세기3:2~3절에 보면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매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원래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안식하시는 것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안식이 필요해서 안식을 만드신 것이 아니고요, 하나님이 피곤하셔서 안식을 만드신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그 부분들을 축하하고 또 영광 돌리는 그 축복을 위해서 하나님과 사람이 소통하는 그날로 만들기 위해서 인간을 위해서 만드신 것이 바로 안식일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안식일에 창세기1:27~28절에 모든 축복의 역사들을 공급해 주시기 위해서 만드신 것이 바로 안식일입니다. 하나님 당신이 안식이 필요해서 안식일을 만드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예요. 하나님이 피곤해서 안식일을 만드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예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은 바 된 인간에게 안식일을 통해서 진정한 축복인 창세기1:27~28절 그 축복의 역사들을 공급해 주시기 위해서 안식일을 만드신 것입니다. 특별히 히브리서에 보면 3~4장을 살펴보면 히브리서에 나오는 하나님 나라의 안식의 대한 부분들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크게 4가지로 나와요. 3장에 보면 가나안 땅의 안식이 나옵니다. 3:11절에 보면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요.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그리고 18절에도 보면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냐? 곧 순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에게가 아니냐 이 배경은 무슨 말이냐 하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켰잖아요. 광야 길을 가는 동안에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 안식의 축복을 누리게 될 것을 약속으로 주셨어요. 이때에는 장소의 개념을 가지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이 안식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길을 가는 동안에 원망, 불평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어요. 불순종 했어요. 그래서 시편 95편에 보면 전부다 그 안식에 못 들어간다 했어요. 장소적인 개념의 안식을 이야기하고 있지요. 가나안 땅의 안식은..이것이 히브리서 3장에 나오고요, 히브리서 4장에 보면 바로 창조의 안식이 있습니다. 4:3절 마지막 부분에 보면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어졌느니라. 창조의 안시이 있고 그 다음에 또 제 칠일의 안식이 있습니다. 4절이지요. 제 칠일에 관하여는 어딘가에 이렇게 일렀으되 하나님은 제 칠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셨으며, 또 히브리서 전체를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천상의 안식이 있습니다. 천상의 안식. 네 가지 큰 흐름을 보여주고 있는데, 안식에 대한 부분을 히브리서에서. 첫 번째 장소적인 개념을 갖고 있는 가나안 안식,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순종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불순종함으로 말미암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였다, 아예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나님이 막으셨다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또 창조의 안식이 있고 제 칠일의 안식이 있고 그 다음에 천상의 안식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3장 1절에서 지난주에 우리가 살펴보았습니다. 하늘로부터 우리가 부름을 받았다 이 말은 우리의 소속이 천상의 안식을 가진 자라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곳곳에서 이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히브리서 12장 22절에도 보면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 했습니다. 여기 하늘의 도성, 하늘의 예루살렘, 천상의 안식을 이야기하고 있는 부분들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이렇게 안식에 대한 여러 가지 부분들을 이야기하면서 4장에 본격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이 들어가야 할 안식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하는데 그것은 장소적인 개념보다도 상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언제 이 안식에 우리가 들어가느냐? 상태에 대한 부분인데 1절에 보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새로운 안식이 그리스도인들을 기다리고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다고 했습니다. 8절, 9절에도 보면, 특히 9절에 보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이야기했습니다. 이 말은 무슨 말입니까? 천상의 안식이 아니라 지금 현실적으로도 그 안식의 축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무엇으로 누릴 수 있느냐? 바로 히브리서 4장 2절을 이야기하면서 우리에게 믿음으로 그 안식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애굽에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불순종함으로 말미암아 이 안식에 들어오지 못했지 않느냐? 히브리서 4장 2절입니다. 그러나 너희들에게 남아 있는 이 안식은, 현실적으로 누릴 수 있는 이 안식은, 너희들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 안식의 축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 믿음으로 말미암아 현실적인 이 안식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믿는 믿음이냐? 오늘 읽진 않았습니다만 4장 14절에 보면 대제사장을 믿는 믿음, 여기서 대제사장은 누구를 말합니까? 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현실적인 이 안식의 축복을 지금 우리가 누릴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모든 인간은 안식에 대해서 갈망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안식에 대한 답을 여러분이 찾게 되는 귀한 축복된 응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참된 안식에 대한 답 – 예수 그리스도가 참 안식이다.
두 번째입니다. 그렇다면 참된 안식에 대한 답이 무엇인가? 참된 안식에 대한 답이 무엇입니까? 안식은 주님께만 있습니다. 안식은 주님께만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세상의 많은 것들을 가지기 위해서 몸부림칩니다. 그리고 소유하기도 합니다. 그게 우리에게 참된 평안과 안식을 줍니까? 여러분, 노력해서 물질을 모으고 애써서 어떤 자리에 오르고 순간적인 기쁨과 쾌락은 주어질지 모르지만 그것이 우리에게 참된 안식을 줍니까? 안식은 주님께만 있습니다. 안식에 대한 이 답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먼저 아실 것은 모든 인간은 안식을 상실해 버렸다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안식을 상실해 버렸습니다. 그게 바로 창세기 3장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형상 따라 지은 바 된 인간에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 바로 안식의 축복이었습니다. 그래서 원래 하나님께서 노동과 일, 그것이 즐거움이었고 행복이었습니다. 타락하기 이전에는. 성경에 보면 창세기 2장 15절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했습니다. 여기서 경작한다는 말은, 만물을 경작한다는 말은 일하다, 또 보존하다, 지킨다는 말인데 이것은 수고하고 일하고 땀 흘리는 것을 말합니다. 타락 전에도 인간이 수고하고 일하고 땀 흘리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즐거움이었고 행복이었습니다. 타락 전에는. 그러나 타락 후에는 우리의 수고와 땀 흘림과 일하는 이 모든 것들이 사실 행복과 즐거움이 아니라 결국은 그것을 통해서 인간은 탐욕을 가지고 서로가 서로를 짓밟고 이기려고 하고 몸부림치는 그런 결과로 오는 수고의 고난과 고통만이 오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이 창세기 3장 사건, 그리고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우리 인간이 범죄함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 죄의 결과가, 탐욕의 결과가 죄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실은 하나님을 떠난 모든 인간은 자기가 자기를 책임져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 왕국을 세우기 위해서 노력하고 자기 왕국을 자기가 경영해야 하고 자기의 왕국을 자기가 지켜나가기 위해서 몸부림칩니다. 탐욕의 결과입니다. 죄의 결과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인간이 자기가 자기를 책임져야 하니까 살아남아야 하고 힘들고 어렵지 않습니까? 그래서 열심히 남들보다 더 뛰어야 하고 더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탐욕을 갖게 되니까 자기 자신을 자기가 지켜야 하니까 다른 사람의 안식과 다른 사람의 모든 탐욕을 착취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안식과 다른 사람의 모든 것들을 오히려 착취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땅의 인류의 역사는 정복의 역사이고 힘 있는 자가 전쟁을 일으킨 역사가 이 땅의 역사입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결국 하나님 떠난 탐욕의 결과로 죄 가운데 빠져서 모든 인생은 자기가 자기 인생을 책임져야 하고 자기 왕국을 자기가 지키고 자기가 건설해야 하고 자기가 만들어가야 합니다.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창세기 3장과 6장과 11장 그대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남의 것을 빼앗아야 하고 쟁취해야 하고 남을 짓밟아야 하고, 그것이 이 땅의 모든 삶의 원리들 아닙니까? 그게 창세기 3장과 6장과 11장. 그래서 결국 인간은 미신을 따라가고 점술가의 말을 듣고 우상숭배하고, 무엇 때문에 그렇습니까? 한 마디로 자기를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자기가 잘 살기 위해서입니다. 자기가 복 받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미신과 점술과 우상에 빠지고, 그런 가운데서 자기도 모르게 점점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결국은 자기가 자기 인생을 살아가는 것 같지만 그러나 악한 사단이 우리 인생의 주인 되어 버렸습니다. 요한복음 8장 44절에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했습니다. 악한 사단이 우리 인생을 붙잡고 있으니까 인생 속에 영적인 문제가 계속 일어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20장 3절~5절의 말씀처럼 영적인 문제가 계속 일어납니다. 왜냐? 사단이 우리를 붙잡고 있으니까 영적 문제가 일어날 수밖에요. 그래서 어떤 면에서 대만이나 일본이나 우리 한국 같은 경우에는 영적 문제가 우상숭배로 드러나고 또 미국이나 유럽 이런 곳은 이 영적인 문제가 마약이나 타락, 정신병으로 드러나고, 가면 갈수록 이런 영적인 문제가 계속 일어나고 그런 가운데 마태복음 11장 28절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계속 지고 마가복음 5장에 있는 말씀처럼 아예 통제 안 되는 부분까지도 들어갑니다. 그러면서 사도행전 8장 4절~8절에 있는 말씀처럼 온갖 가정의 문제, 육신의 문제, 자녀의 문제, 온갖 사회 문제들이 다 일어나게 되고 그리고 나도 잘못한 것 없고 자녀들도 잘못한 것이 없는데 이상하게 내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자녀들에게 모든 것들이 그대로 전달됩니다. 마태복음 27장 25절에 영적인 유산으로 자녀들에게 전달되는 것입니다. 나는 안 하려고 하는데 자녀들에게 그것이 전달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옥 같은 삶을 살다가 결국은 누가복음 16장 19절~30절에 나오는 말씀처럼 지옥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 속에서 빠져나오지 않는 이상은 그 어느 누구도 참된 안식, 오늘 주님 주시는 평안, 찬양을 했는데 그 평안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우리가 알지 못하면 신앙 생활도 되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결국은 가장 결정적인 부분이 뭐냐? 모든 인간은 안식을 상실해 버렸는데 내가 주인된 자리, 그래서 내가 주인된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는 이상은 참된 안식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것, 그것을 내려놓지 않는 이상은, 내가 내 자신을 내려놓지 않는 이상은, 내가 주인됨을 내려놓지 않는 이상은 참된 인생의 안식이 없는 것입니다. 모두가 사실 자기 이익 중심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 아닙니까? 한비자가 왕에게 이야기한 것이 그것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결국은 모든 인간은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참된 안식을 상실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안식을 주시기 위해서 바로 우리에게 찾아오셨습니다. 그 분이 바로 그리스도이십니다. 사실은 여러분, 우리가 참 안식이라는 말은 우리가 그냥 피곤해서 쉰다는 말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회복하는 것이 참된 안식입니다. 참된 안식은 그냥 피곤하니까 쉰다, 그런 수준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회복하는 것이 참된 안식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입니다. 당연히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 그게 참된 안식 속에 들어가는 것이고 또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창조의 원리대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참된 안식 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물고기는 물 속에 있어야 하고 나무는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야 하는 것처럼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 따라 지음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 안에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대로 살아가는 것이, 그것이 참된 안식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 일을 위해서 우리에게 주신 안식, 보십시오. 창세기 1장 2절에 보면 흑암과 혼돈과 공허함이 인간 세상 속에 올 것을 아시고 하나님이 미리 예비하신 것이 안식입니다. 창조하시고 안식하셨다 했습니다. 흑암과 혼돈과 공허함이 올 것을 미리 아시고 안식하셨다 했습니다. 영적인 심각한 문제들로 말미암아 시대의 어려움이 올 것을 알고 모세로 말미암아 안식일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그 안식일의 완성이 누구로 말미암아 이루어졌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안식일의 완성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안식일, 어느 단체에서 이야기하기를 너희는 왜 안식일을 안 지키느냐 하는데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안식일의 그림자, 그것이 완성된 것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우리는 안식일이 지나고 나서 안식 후 첫날, 주님이 부활하신 날에, 우리는 주일을 안식일로 지내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그래서 주일이 어떤 날이냐? 여러분, 주일은 영적인 힘을 얻음으로 말미암아 6일 동안 모든 영혼을 살릴 수 있는 그 힘을 얻는 날이 주일입니다. 여러분, 주일날 예배 때마다 참된 안식의 축복 속에 들어가는 시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왜 주일 성수를 하라고 하느냐? 육신적인 것에 빠져서 거기에 걸림돌이 되어서 영적인 축복을 놓치지 말라고 주일성수를 하라는 것입니다. 영적인 축복을 놓치지 말라고. 그래서 예배를 회복하면 그게 모든 것 회복되는 그 축복이, 예배에 성공하게 되면 모든 것 회복되는 그 축복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안식은 복음을 누림으로 말미암아 가능한 것입니다. 복음을 누리면 누릴수록 영안이 열립니다. 못 보는 것을 봅니다. 그러니까 현장에 문제가 생기면 문제 해결 이전에 해답을 알게 됩니다. 문제의 해결 이전에 해답을 알게 되고 현장 가기 전에 이미 응답이 보입니다. 그러니까 여유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여유가 있게 되면 아무리 어려움을 당해도 멋있는 사람이 되고 답을 줄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여유가 있게 되면 그 속에서 말씀 붙잡고 기도하면서 미래가 보이고 아주 많은 부분을 속에서 답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세워지게 됩니다. 이게 복음을 누림 속에서 주어지는 안식입니다. 이 축복의 비밀을 누려야 합니다. 그러면 언제 누리느냐? 어떻게 누리느냐? 언제 누리느냐? 히브리서 3장, 4장에 보면 강조하고 있는 부분이 ‘오늘’이라는 부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오늘, 다시 말하면 매일매일 말씀을 주시고 계십니다. 믿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할 때 모세를 통해서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러면 지금 이 시대는 하나님이 그리스도 복음을 통해서 우리에게 오늘 말씀을 주고 계십니다. 히브리서에 보면 여러분, 특히 4장에 보면 이 안식에 대한 부분이 미래적인 부분이 있고 현실적인 부분을 이야기하는 가운데서 강조하는 것이 현실의 오늘이라는 부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오늘.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오늘 말씀을 주십니다. 다시 말하면 매일매일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말씀을 주고 계십니다. 출애굽 광야 시대에 모세를 통해서 말씀을 주셨다면 지금 이 시대는 그리스도 복음을 통해서 우리에게 매일매일 말씀을 주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붙잡는 것이 참 안식 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4장 16절에 대제사장으로서 그리스도를 붙잡는 것, 다시 말하면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키시고 죄로 말미암아 올 수밖에 없는 사망, 모든 인생이 그 문제 해결되지 못해서 사망의 법에 매여서 벌벌 떨고 종노릇하는데 거기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해방시키시고 그 그리스도 붙잡는 순간 우리에게 참된 자유함과 안식의 축복이 누려지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마태복음 11장 28절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쉬게 하리라 말씀했습니다. 마태복음 4장 19절에도 말씀했습니다.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그렇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와 저주와 재앙의 모든 문제, 지옥 배경의 모든 문제, 사단의 문제, 모든 것을 끝냈습니다. 이 사실을 믿는 믿음 고백하면 모든 흑암이 꺾이고 참된 안식이 찾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 8장 32절에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할렐루야! 여러분, 근심되는 일이 많고 죄악된 일이 많고 가면 갈수록 어려워지는 이 세상 속에서 참된 안식이 어디 있습니까?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그 축복을 오늘 누리기를 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세상에서 당하는 일들은,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 축복의 역사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이 축복의 역사는 여러분이 세상에서 당하는 일들보다 더 강하고 더 힘 있고 더 축복되고 더 큰 응답입니다. 잘 기억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이 축복, 이것은 여러분이 세상에서 당하는 일들보다 더 강하고 더 힘 있고 더 큰 축복이요 더 큰 응답입니다. 다윗이 시편 23편에 보면 4절에서 이야기합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그만큼 어려움 가운데 빠졌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느끼지 않았습니다. 다윗의 고백입니다. 푸른 초장으로, 쉴 만한 물가으로,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시는 하나님.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그 축복의 역사들, 더 강하고 더 크고 더 축복되고 더 응답으로 역사하시는 그 사실을 다윗은 누렸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고백한 것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그 다윗이 모셨던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기 때문에 이 목자이신 하나님이 지금 우리 안에 계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평안을 놓친다, 바보 중의 바보입니다. 바보 중의 바보입니다. 여러분, 너무나 어렵고 힘든 세상 속에서 주님만이 줄 수 있는 참된 평안, 이 평안을 누리심으로 말미암아 여러분 자신을 살리시고 우리 자녀들에게 이 평안을 전달하고 평안이 없어서, 안식이 없어서 죽어가는 세상 속에 이 사실을 전달하는 전도자로 쓰임 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8년 2월 4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참된 안식 - 예수를 바라보라
(히4:1-11)
서론: 말씀으로 나타나시고 아들로 나타나심 바 된 예수를 바라봐야 합니다(히1장). 복음 안에 견고히 세워지지 않으면 흘러 떠내려가게 됩니다(히2장).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자이기 때문에 예수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히3장).
모든 사람들에게 안식이 필요합니다. 사람들에게는 육신적인 쉼이 필요합니다(육신적 안식). 그리고 율법적인 쉼도 있습니다(주일에 아무 것도 하지 말 것 / 유대인 - 안식일에 불을 피우지 말 것). 더 중요한 것은 영적인 안식입니다. 대부분 죽어서 천국에 가는 것을 안식으로 생각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땅에서 누려야 되는 안식이 있음을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180여번 기록).
1. 모든 인간은 안식을 갈망
가. 안식의 궁극적인 원형 - 하나님의 안식
1) 하나님 안에서 참된 안식을 누리는 존재로 창조(창1:27-28)
2) 천지를 창조 하신 후 안식 하신 것을 가르킴(창2:2-3)
나. 히브리서에 나타난 안식
1) 가나안 안식(히3:11, 18) 2) 창조의 안식(히4:3) 3) 제칠일 안식(히4:4, 9) 4) 천상적 안식(히3:1, 12:22)
다. 그리스도인이 들어가야 할 안식 - 현실에서 믿음으로 안식을 누릴 수 있음
2. 참된 안식에 대한 답 - 예수 그리스도가 참 안식
가. 모든 인간 - 안식을 상실
1) 원래 인간 - 하나님의 노동과 일은 즐거움과 행복(창2:15)
2) 하나님을 떠난 창3장사건 - 탐욕의 결과(죄)
자기 인생을 자기가 책임, 자기 왕국을 자기가 지켜야 되고 경영(창3, 6, 11장)
미신, 점술, 우상문화 - 자기를 지키기 위한 방법
사단이 주인(요8:44), 영적문제(출20:3-5), 마음의 병(마11:28), 육신문제(행8:4-8), 자녀문제(마27:25), 지옥(눅16:19-31)
나. 하나님이 참된 안식을 만드심 - 모든 것 회복
1)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하나님 안에 살아감
2) 그리스도의 부활로 안식을 완성
3) 복음 누림으로 안식 - 문제에 대한 해답이 보임, 미리 응답이 보임, 미래가 보여짐, 답을 전달 할 수 있음
다. 어떻게 누릴 것인가?
1) 매일 말씀을 주고 계심(히3장)
2) 그리스도 속으로 들어가는 것(마11:28, 마4:19, 요8:32)
결론: 세상에서 당하는 일보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역사가 더 큰 응답, 축복입니다.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시기 때문에 어려움 가운데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습니다(시23편). 평안을 놓치게 되면 다 놓치는 것입니다. 어렵고 힘든 세상 속에서 하나님만이 주시는 평안을 누리며, 세상에 전달 하는 전도자 되시길 바랍니다.
● 기도제목
● 말씀실현(실천사항)
● 전도대상자
“참된 안식 – 예수를 바라보라”
(히4:1~11)
1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2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3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그가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나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어졌느니라
4 제칠일에 관하여는 어딘가에 이렇게 일렀으되 하나님은 제칠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였으며
5 또 다시 거기에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6 그러면 거기에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
7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하였나니
8 만일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더라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9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10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
11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히4:1~11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예수를 바라보십시다. 오늘도 그리스도이신 예수를 바라봄으로 주님 주시는 참된 평안이 여러분과 여러분 가정과 산업 모든 현장에 넘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특별히 이번 주는 어디에 계시든지 간에 여러분이 집중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세계선교대회를 앞두고 먼저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 선교사 합숙이 58개국에 850여명이 모인 자리에서 진행되어집니다. 여기에 우리 선교위원장님 이하 우리교회에서도 나라 담당하는 분 몇이 참여하게 되고요 또 그 대회를 마치게 되면 금요일 날 저녁에 내려와서 토요일에는 우리 노회 주관으로 우리교회 본당에서 선교축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 주일에는 제5차 하나선교대회가 모든 민족을 치유하는 선교운동이라는 주제로 우리교회 파송된 선교사님들 모시고 함께 예배가 진행되어집니다. 그리고 마치고 나면 또 그 다음 주이지요. 화요일에 세계 선교대회가 예원교회에서 진행되어집니다. 그때는 우리 선교사님들 비롯해서 선교사님들 파송한 교회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예측으로는 한 5천명정도 지금 계획하고 있습니다. 선교대회가 하루 동안 진행되어집니다. 그리고 내려와서 구정연휴 주간부터 시작해서 우리교회에서 다민족 수련회와 함께 중남미 집중훈련이 3월 12일까지 계속되어집니다. 우리가 선교를 위해서 마음에 담고 기도하면서 많은 응답들을 또 새롭게 확인하는 그런 자리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 무시로, 정시로 늘 항상 선교를 놓고 기도해 주시고, 특별히 이번 선교사합숙과 하나 선교대회와 또 세계 선교대회, 이 모든 세계대회들을 통해서 우리 선교사님들이 선교현장을 치유하는 그런 선교운동의 시작이 되어지는 축복을 누릴 수 있도록 여러분 위해서 기도해 주시고, 또 함께 기도하게 될 때에 여러분 또한 동일하게 여러분 개인과 삶 속에도 같은 축복의 역사가 임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이번 한 주간부터 시작해서 또 중남미 집중훈련 40일 훈련 끝나는 시간까지 계속적인 여러분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오늘 ‘참된 안식 – 예수를 바라보라’입니다. 지금 우리가 히브리서를 2018년 들어오면서 계속해서 말씀을 가지고 인도를 받고 있는데요, 왜 옛날로 돌아가는가? 돌아갈 이유가 없다라는 겁니다. 왜냐? 완전한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에 그래서 옛적부터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여러 부분, 여러 모양으로 말씀으로 나타나시고 마지막 날에 무엇으로요? 아들로 나타나신 바 된 그 예수를 바라보라.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복음 속에 견고히 세워져야 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으면 우리도 모르게 흘러 떠내려가기 때문에 복음 안에 깊은 뿌리를 내리지 못하면 그 복음을 등한히 여길 수 있기 때문에 큰 구원을 주신 예수를 바라보라. 히브리서 2장이지요. 그리고 지난주에는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왜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하느냐? 우리는 우리의 신분 자체가, 우리 소속 자체가 하늘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자이기 때문입니다. 아멘입니까? 그리고 또 모세도 신실했지만 모세는 피조물이고 그리스도는 창조주이고 모세는 종으로서 신실했고, 그리스도는 아들로서 신실하였기 때문에 그래서 유일하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라. 유일하신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하라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4장에 넘어가서 이어서 우리에게 참된 안식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라. 여러분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모든 사람에게 안식이 필요합니다. 당장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육신적인 안식이 있지요. 특별히 얼마 전에 여러분 호주 테니스 경기에서 정현 선수가 준결승에 올랐잖아요. 저도 너무나 원래 저는 테니스는 못합니다. 원래 잘 안 보는 프로그램인데 그 날 만큼은 봐야 되겠다는 생각에, 워낙 광고에도 나오고 하니까 봐야 되겠다 싶어 잠시 봤습니다. 그런데 결국 기권했잖아요. 그러고 나서 그 이튿날 신문에 인터뷰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기자가 물었습니다.
무엇을 제일 먹고 싶으냐? 돼지고기가 들어간 김치찌개가 제일 먹고 싶다고 했어요. 지금 제일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 눈이 뜨여지기 까지 계속 자고 싶다고 했어요. 우리 인간은 육신적이 쉼이 필요하지요. 그래서 휴가가 있는 거고요. 경쟁시대 속에 특별히 실용주의 그 배경 가운데서 지금 스피드시대 아닙니까? 그런 가운데서 살아남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그런 경쟁시대 속에서 육신적인 어떤 휴가가 또 쉼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제가 프랑스에 캠프를 갔을 때에 그 프랑스에 있는 선교사님 한 분이 그 이야기를 해요. 가만히 선교현장에서 선교하다 보니까 유럽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놀기 위해서 돈 버는 것 같다고 했어요. 무슨 말인가 하니까 이들은 죽자 살자 돈 벌어가지고 한 달 두 달 캠핑카 이용해서 휴가를 간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때에는 텅텅 빈다는 거예요. 아! 그렇구나. 사실 육신을 입고 있는 인간이기 때문에 육신적인 쉼이 필요합니다. 저는 저 자신을 보면서 한 번씩 그런 것을 느껴요. 뭐냐 하면 분명히 주어지는 시간이 있는데 쉬는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내가 쉬 줄을 모르구나. 노는 법을 몰라요. 그래서 아! 내가 노는 방법을 만들어 가지고 연구해서 놀기를 잘해야 하는데 놀지를 못하고 있는 이 부분들을 보면서 어떻게 하면 잘 놀까 이런 생각들도 한 번씩 해요. 여러분 우리 인간은 육신을 입고 있기 때문에 사실은 쉼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열심히 살아온 만큼 또 공식적으로 쉬라고 정년퇴임도 있고 명퇴도 있잖아요. 그것은 여러분들이 노력해서 열심히 일했기 때문에 쉬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육신적인 쉼도 있지만 특별히 율법적인 쉼, 안식이 있습니다. 특별히 이 부분들은 우리 옛날에 어르신들이 신앙생활 제대로 하려고, 인도받으려고 몸부림 쳤던 사람들은 거의 이 율법적인 안식들에 기준들을 갖고 있는 것을 봐요. 그래서 주일날 되면 아예 공부도 못하고요, 아니 공부를 못하도록 했지요. 일도 못하고... 특별히 보수적인 신학을 갖고 있는 교단일수록 공부나 일 하는 이 모든 것들, 움직이는 모든 것들을 금했잖아요. 그런데 유대인들 가운데서도 사실은 율법적인 안식에 대한 기준을 가지고 철저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특별히 정통적인 유대인들 가운데는 안식일에는 불을 피우지 말라는 율법이 있어요. 그 말씀을 그대로 순종한다라고 여러분 전기도 금요일 되면 아예 켜놓고 토요일 날 아예 꺼지를 않아요. 왜냐? 불켜는 거니까... 그리고 또 음식도 금요일 날 풍성히 준비해 놓고 아예 금요일 날 저녁에 가스렌지에 불을 은은하게 올려놓고 토요일 날은 하루 종일 그 음식을 먹는 거예요. 왜 그러느냐? 여러분 가스렌지를 누르면 스파크 일어나면서 불이 켜지잖아요. 그래서 그런 안식일에 대한 부분들 가지고 그런 율법 속에 빠져있는 부분들을 봐요. 그래서 성지순례에 다녀왔던 분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유대인들 가운데 천재들이 만들어낸 기술이 있는데 그것이 뭐냐 하면 안식일 엘리베이터가 있다는 거예요. 뭐냐 여러분 안식일에 엘리베이터 이용하는 엘리베이터가 따로 있는데 그것은 층층마다 다 눌려져 있어요. 여러분 우리는 필요한 층을 가기 위해서 내가 눌러놓고 가고자 하는 층을 누르잖아요. 그러면 그 누르는게 전기 들어오는 거예요. 그것이 안식일을 범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예 층층마다 다 눌러놓아요. 그날 만큼은,,,사실 그러면 한 18층에 사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층층마다 서니까...어떤 면에서 그게 안식일을 지키는 유대인들의 율법적인 안식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오늘 히브리서 4장에 보면 1~11절을 저와 여러분 읽었습니다마는 안식에 대한 단어가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가 4장에 나와요. 2절과 7절에 안식에 대한 단어가 안 나오고, 각 절마다 안식이라는 단어가 한 번이상 나와요. 여러분 대충 읽었잖아요. 그런데 가만히 보면 안식이라는 단어가 절절마다 나오는데 거의 한번 이상 나와서 총 11번이 나오는데 여기서 말하는 안식이라는 부분들은 그런 육신적인 안식과 율법적인 안식에 대한 부분들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인 안식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학교 교육에서 없는 것이 안식에 대한 내용입니다. 학교 교육에서 가르치지 않는 것이 이 안식에 대한 내용인데 분명히 안식에 대한 부분들이 그냥 영적인 안식은 어떤 것이냐? 육신적인 안식과 율법적인 안식을 뛰어 넘어서서 우리에게 굉장한 신앙적인 중요한 것들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 영적인 안식인 것입니다. 우리가 대부분 안식 하면 우리가 죽어서 천국 가는 것, 그게 우리가 안식에 들어간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 하고 있잖아요. 그리고 우리 어르신들, 신앙생활 해 오신 분들도 이 땅에서는 고생하더라고 죽으면 천국 가는데 그런 어떤 내세에 대한 안식에 대한 그런 부분들이 있기 때문에 이 땅의 모든 어려움들을 뛰어넘은 것도 있습니다. 그런데 죽어서 천국가는 그것은 죽음과 어떤 안식에 대한 부분들을 동일시 한 것이지요. 그런데 성경에 보면 죽음 이후에 안식에 들어가는 그 안식들도 있지만 더 강조하는 것이 현실 속에서, 지금 이 땅에서 안식의 축복을 누리는 그 비밀들이 있다라는 사실을 성경에서는 더 강조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 그 안식의 축복을 누리다가 천국 가는 것, 안식이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는 것 그게 성경에서 말씀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 중의 한 부분입니다. 사실 그게 내게 확신 있고 없고 엄청난 신앙생활의 많은 부분에 영향을 주어요. 그래서 10가지 발판 가운데서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것이 내세에 대한 확신 아닙니까? 내세가 우리가 결정되었다는 이 부분들이 얼마나 신앙생활에 많은 확신을 주는지 모릅니다. 응답을 주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물론 그런 부분들도 성경에 말씀하고 있지만, 그러나 이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안식은 그런 세계만 아니라 이 땅에서 현실적으로, 죽어서 안식에 들어가기 이전에 현실적으로 이 땅에서 누려야 될 새로운 세계, 안식이 있다는 사실들을 성경 곳곳에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개혁성경에 180여 곳에 안식이라는 단어가 나오고요, 그런 가운데 특별히 성경 곳곳에서 안식에 대한 부분들 쭉 설명하면서 안식에 대한 단어가 제일 많이 나오는 곳이 히브리서 4장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제목처럼 참된 안식 - 예수를 바라보라 했는데 오늘 이 한날 참된 안식의 의미를 붙잡으므로 말미암아 오늘 우리가 찬송을 불렀잖아요. 이 세상에 근심된 일이 많고 죄악된 일이 많고 이런 세상 속에서 우리가 참된 안식의 비밀을 누림으로 말미암아 저와 여러분이 승리하고 또 많은 현장에 참 안식을 알지 못해서 살아가는 자들에게 이 안식을 증거하는 전도자로 귀한 축복의 역사가 시작되어지는 그런 응답이 있기를 먼저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모든 인간은 안식을 갈망해하고 있다.
그럼 먼저 첫 번째입니다. 모든 인간은 안식을 갈망해 하고 있습니다. 왜냐? 여러분 창세기1:27~28절, 우리 인간을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셨다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에게 복을 주시며 가라사대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 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형상대로 우리를 만드셨다는 말 그 자체 안에 하나님과 영적인 교제 속에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존재로 저와 여러분을 만드셨다는 말입니다. 그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 속에 예배하는 존재로 만드셨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안에 있는 참된 안식과 평안과 축복을 누리는 존재로 우리를 만드셨다는 말입니다. 그게 창세기1:27~28절의 축복이예요. 원래 우리가 하나님 안에 살면서 하나님이 주어진 안식의 축복을 누리며 살도록 지은 바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요 제일 처음 만든 제도가 있다면 가정의 제도와 함께 안식의 제도를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창세기2장에 보면 안식에 대한 부분들 이야기하고 있는데, 창세기3:2~3절에 보면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매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원래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안식하시는 것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안식이 필요해서 안식을 만드신 것이 아니고요, 하나님이 피곤하셔서 안식을 만드신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그 부분들을 축하하고 또 영광 돌리는 그 축복을 위해서 하나님과 사람이 소통하는 그날로 만들기 위해서 인간을 위해서 만드신 것이 바로 안식일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안식일에 창세기1:27~28절에 모든 축복의 역사들을 공급해 주시기 위해서 만드신 것이 바로 안식일입니다. 하나님 당신이 안식이 필요해서 안식일을 만드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예요. 하나님이 피곤해서 안식일을 만드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예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은 바 된 인간에게 안식일을 통해서 진정한 축복인 창세기1:27~28절 그 축복의 역사들을 공급해 주시기 위해서 안식일을 만드신 것입니다. 특별히 히브리서에 보면 3~4장을 살펴보면 히브리서에 나오는 하나님 나라의 안식의 대한 부분들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크게 4가지로 나와요. 3장에 보면 가나안 땅의 안식이 나옵니다. 3:11절에 보면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요.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그리고 18절에도 보면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냐? 곧 순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에게가 아니냐 이 배경은 무슨 말이냐 하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켰잖아요. 광야 길을 가는 동안에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 안식의 축복을 누리게 될 것을 약속으로 주셨어요. 이때에는 장소의 개념을 가지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이 안식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길을 가는 동안에 원망, 불평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어요. 불순종 했어요. 그래서 시편 95편에 보면 전부다 그 안식에 못 들어간다 했어요. 장소적인 개념의 안식을 이야기하고 있지요. 가나안 땅의 안식은..이것이 히브리서 3장에 나오고요, 히브리서 4장에 보면 바로 창조의 안식이 있습니다. 4:3절 마지막 부분에 보면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어졌느니라. 창조의 안시이 있고 그 다음에 또 제 칠일의 안식이 있습니다. 4절이지요. 제 칠일에 관하여는 어딘가에 이렇게 일렀으되 하나님은 제 칠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셨으며, 또 히브리서 전체를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천상의 안식이 있습니다. 천상의 안식. 네 가지 큰 흐름을 보여주고 있는데, 안식에 대한 부분을 히브리서에서. 첫 번째 장소적인 개념을 갖고 있는 가나안 안식,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순종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불순종함으로 말미암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였다, 아예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나님이 막으셨다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또 창조의 안식이 있고 제 칠일의 안식이 있고 그 다음에 천상의 안식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3장 1절에서 지난주에 우리가 살펴보았습니다. 하늘로부터 우리가 부름을 받았다 이 말은 우리의 소속이 천상의 안식을 가진 자라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곳곳에서 이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히브리서 12장 22절에도 보면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 했습니다. 여기 하늘의 도성, 하늘의 예루살렘, 천상의 안식을 이야기하고 있는 부분들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이렇게 안식에 대한 여러 가지 부분들을 이야기하면서 4장에 본격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이 들어가야 할 안식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하는데 그것은 장소적인 개념보다도 상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언제 이 안식에 우리가 들어가느냐? 상태에 대한 부분인데 1절에 보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새로운 안식이 그리스도인들을 기다리고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다고 했습니다. 8절, 9절에도 보면, 특히 9절에 보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이야기했습니다. 이 말은 무슨 말입니까? 천상의 안식이 아니라 지금 현실적으로도 그 안식의 축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무엇으로 누릴 수 있느냐? 바로 히브리서 4장 2절을 이야기하면서 우리에게 믿음으로 그 안식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애굽에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불순종함으로 말미암아 이 안식에 들어오지 못했지 않느냐? 히브리서 4장 2절입니다. 그러나 너희들에게 남아 있는 이 안식은, 현실적으로 누릴 수 있는 이 안식은, 너희들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 안식의 축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 믿음으로 말미암아 현실적인 이 안식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믿는 믿음이냐? 오늘 읽진 않았습니다만 4장 14절에 보면 대제사장을 믿는 믿음, 여기서 대제사장은 누구를 말합니까? 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현실적인 이 안식의 축복을 지금 우리가 누릴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모든 인간은 안식에 대해서 갈망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안식에 대한 답을 여러분이 찾게 되는 귀한 축복된 응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참된 안식에 대한 답 – 예수 그리스도가 참 안식이다.
두 번째입니다. 그렇다면 참된 안식에 대한 답이 무엇인가? 참된 안식에 대한 답이 무엇입니까? 안식은 주님께만 있습니다. 안식은 주님께만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세상의 많은 것들을 가지기 위해서 몸부림칩니다. 그리고 소유하기도 합니다. 그게 우리에게 참된 평안과 안식을 줍니까? 여러분, 노력해서 물질을 모으고 애써서 어떤 자리에 오르고 순간적인 기쁨과 쾌락은 주어질지 모르지만 그것이 우리에게 참된 안식을 줍니까? 안식은 주님께만 있습니다. 안식에 대한 이 답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먼저 아실 것은 모든 인간은 안식을 상실해 버렸다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안식을 상실해 버렸습니다. 그게 바로 창세기 3장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형상 따라 지은 바 된 인간에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 바로 안식의 축복이었습니다. 그래서 원래 하나님께서 노동과 일, 그것이 즐거움이었고 행복이었습니다. 타락하기 이전에는. 성경에 보면 창세기 2장 15절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했습니다. 여기서 경작한다는 말은, 만물을 경작한다는 말은 일하다, 또 보존하다, 지킨다는 말인데 이것은 수고하고 일하고 땀 흘리는 것을 말합니다. 타락 전에도 인간이 수고하고 일하고 땀 흘리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즐거움이었고 행복이었습니다. 타락 전에는. 그러나 타락 후에는 우리의 수고와 땀 흘림과 일하는 이 모든 것들이 사실 행복과 즐거움이 아니라 결국은 그것을 통해서 인간은 탐욕을 가지고 서로가 서로를 짓밟고 이기려고 하고 몸부림치는 그런 결과로 오는 수고의 고난과 고통만이 오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이 창세기 3장 사건, 그리고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우리 인간이 범죄함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 죄의 결과가, 탐욕의 결과가 죄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실은 하나님을 떠난 모든 인간은 자기가 자기를 책임져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 왕국을 세우기 위해서 노력하고 자기 왕국을 자기가 경영해야 하고 자기의 왕국을 자기가 지켜나가기 위해서 몸부림칩니다. 탐욕의 결과입니다. 죄의 결과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인간이 자기가 자기를 책임져야 하니까 살아남아야 하고 힘들고 어렵지 않습니까? 그래서 열심히 남들보다 더 뛰어야 하고 더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탐욕을 갖게 되니까 자기 자신을 자기가 지켜야 하니까 다른 사람의 안식과 다른 사람의 모든 탐욕을 착취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안식과 다른 사람의 모든 것들을 오히려 착취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땅의 인류의 역사는 정복의 역사이고 힘 있는 자가 전쟁을 일으킨 역사가 이 땅의 역사입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결국 하나님 떠난 탐욕의 결과로 죄 가운데 빠져서 모든 인생은 자기가 자기 인생을 책임져야 하고 자기 왕국을 자기가 지키고 자기가 건설해야 하고 자기가 만들어가야 합니다.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창세기 3장과 6장과 11장 그대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남의 것을 빼앗아야 하고 쟁취해야 하고 남을 짓밟아야 하고, 그것이 이 땅의 모든 삶의 원리들 아닙니까? 그게 창세기 3장과 6장과 11장. 그래서 결국 인간은 미신을 따라가고 점술가의 말을 듣고 우상숭배하고, 무엇 때문에 그렇습니까? 한 마디로 자기를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자기가 잘 살기 위해서입니다. 자기가 복 받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미신과 점술과 우상에 빠지고, 그런 가운데서 자기도 모르게 점점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결국은 자기가 자기 인생을 살아가는 것 같지만 그러나 악한 사단이 우리 인생의 주인 되어 버렸습니다. 요한복음 8장 44절에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했습니다. 악한 사단이 우리 인생을 붙잡고 있으니까 인생 속에 영적인 문제가 계속 일어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20장 3절~5절의 말씀처럼 영적인 문제가 계속 일어납니다. 왜냐? 사단이 우리를 붙잡고 있으니까 영적 문제가 일어날 수밖에요. 그래서 어떤 면에서 대만이나 일본이나 우리 한국 같은 경우에는 영적 문제가 우상숭배로 드러나고 또 미국이나 유럽 이런 곳은 이 영적인 문제가 마약이나 타락, 정신병으로 드러나고, 가면 갈수록 이런 영적인 문제가 계속 일어나고 그런 가운데 마태복음 11장 28절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계속 지고 마가복음 5장에 있는 말씀처럼 아예 통제 안 되는 부분까지도 들어갑니다. 그러면서 사도행전 8장 4절~8절에 있는 말씀처럼 온갖 가정의 문제, 육신의 문제, 자녀의 문제, 온갖 사회 문제들이 다 일어나게 되고 그리고 나도 잘못한 것 없고 자녀들도 잘못한 것이 없는데 이상하게 내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자녀들에게 모든 것들이 그대로 전달됩니다. 마태복음 27장 25절에 영적인 유산으로 자녀들에게 전달되는 것입니다. 나는 안 하려고 하는데 자녀들에게 그것이 전달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옥 같은 삶을 살다가 결국은 누가복음 16장 19절~30절에 나오는 말씀처럼 지옥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 속에서 빠져나오지 않는 이상은 그 어느 누구도 참된 안식, 오늘 주님 주시는 평안, 찬양을 했는데 그 평안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우리가 알지 못하면 신앙 생활도 되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결국은 가장 결정적인 부분이 뭐냐? 모든 인간은 안식을 상실해 버렸는데 내가 주인된 자리, 그래서 내가 주인된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는 이상은 참된 안식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것, 그것을 내려놓지 않는 이상은, 내가 내 자신을 내려놓지 않는 이상은, 내가 주인됨을 내려놓지 않는 이상은 참된 인생의 안식이 없는 것입니다. 모두가 사실 자기 이익 중심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 아닙니까? 한비자가 왕에게 이야기한 것이 그것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결국은 모든 인간은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참된 안식을 상실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안식을 주시기 위해서 바로 우리에게 찾아오셨습니다. 그 분이 바로 그리스도이십니다. 사실은 여러분, 우리가 참 안식이라는 말은 우리가 그냥 피곤해서 쉰다는 말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회복하는 것이 참된 안식입니다. 참된 안식은 그냥 피곤하니까 쉰다, 그런 수준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회복하는 것이 참된 안식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입니다. 당연히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 그게 참된 안식 속에 들어가는 것이고 또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창조의 원리대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참된 안식 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물고기는 물 속에 있어야 하고 나무는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야 하는 것처럼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 따라 지음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 안에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대로 살아가는 것이, 그것이 참된 안식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 일을 위해서 우리에게 주신 안식, 보십시오. 창세기 1장 2절에 보면 흑암과 혼돈과 공허함이 인간 세상 속에 올 것을 아시고 하나님이 미리 예비하신 것이 안식입니다. 창조하시고 안식하셨다 했습니다. 흑암과 혼돈과 공허함이 올 것을 미리 아시고 안식하셨다 했습니다. 영적인 심각한 문제들로 말미암아 시대의 어려움이 올 것을 알고 모세로 말미암아 안식일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그 안식일의 완성이 누구로 말미암아 이루어졌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안식일의 완성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안식일, 어느 단체에서 이야기하기를 너희는 왜 안식일을 안 지키느냐 하는데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안식일의 그림자, 그것이 완성된 것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우리는 안식일이 지나고 나서 안식 후 첫날, 주님이 부활하신 날에, 우리는 주일을 안식일로 지내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그래서 주일이 어떤 날이냐? 여러분, 주일은 영적인 힘을 얻음으로 말미암아 6일 동안 모든 영혼을 살릴 수 있는 그 힘을 얻는 날이 주일입니다. 여러분, 주일날 예배 때마다 참된 안식의 축복 속에 들어가는 시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왜 주일 성수를 하라고 하느냐? 육신적인 것에 빠져서 거기에 걸림돌이 되어서 영적인 축복을 놓치지 말라고 주일성수를 하라는 것입니다. 영적인 축복을 놓치지 말라고. 그래서 예배를 회복하면 그게 모든 것 회복되는 그 축복이, 예배에 성공하게 되면 모든 것 회복되는 그 축복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안식은 복음을 누림으로 말미암아 가능한 것입니다. 복음을 누리면 누릴수록 영안이 열립니다. 못 보는 것을 봅니다. 그러니까 현장에 문제가 생기면 문제 해결 이전에 해답을 알게 됩니다. 문제의 해결 이전에 해답을 알게 되고 현장 가기 전에 이미 응답이 보입니다. 그러니까 여유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여유가 있게 되면 아무리 어려움을 당해도 멋있는 사람이 되고 답을 줄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여유가 있게 되면 그 속에서 말씀 붙잡고 기도하면서 미래가 보이고 아주 많은 부분을 속에서 답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세워지게 됩니다. 이게 복음을 누림 속에서 주어지는 안식입니다. 이 축복의 비밀을 누려야 합니다. 그러면 언제 누리느냐? 어떻게 누리느냐? 언제 누리느냐? 히브리서 3장, 4장에 보면 강조하고 있는 부분이 ‘오늘’이라는 부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오늘, 다시 말하면 매일매일 말씀을 주시고 계십니다. 믿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할 때 모세를 통해서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러면 지금 이 시대는 하나님이 그리스도 복음을 통해서 우리에게 오늘 말씀을 주고 계십니다. 히브리서에 보면 여러분, 특히 4장에 보면 이 안식에 대한 부분이 미래적인 부분이 있고 현실적인 부분을 이야기하는 가운데서 강조하는 것이 현실의 오늘이라는 부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오늘.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오늘 말씀을 주십니다. 다시 말하면 매일매일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말씀을 주고 계십니다. 출애굽 광야 시대에 모세를 통해서 말씀을 주셨다면 지금 이 시대는 그리스도 복음을 통해서 우리에게 매일매일 말씀을 주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붙잡는 것이 참 안식 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4장 16절에 대제사장으로서 그리스도를 붙잡는 것, 다시 말하면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키시고 죄로 말미암아 올 수밖에 없는 사망, 모든 인생이 그 문제 해결되지 못해서 사망의 법에 매여서 벌벌 떨고 종노릇하는데 거기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해방시키시고 그 그리스도 붙잡는 순간 우리에게 참된 자유함과 안식의 축복이 누려지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마태복음 11장 28절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쉬게 하리라 말씀했습니다. 마태복음 4장 19절에도 말씀했습니다.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그렇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와 저주와 재앙의 모든 문제, 지옥 배경의 모든 문제, 사단의 문제, 모든 것을 끝냈습니다. 이 사실을 믿는 믿음 고백하면 모든 흑암이 꺾이고 참된 안식이 찾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 8장 32절에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할렐루야! 여러분, 근심되는 일이 많고 죄악된 일이 많고 가면 갈수록 어려워지는 이 세상 속에서 참된 안식이 어디 있습니까?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그 축복을 오늘 누리기를 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세상에서 당하는 일들은,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 축복의 역사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이 축복의 역사는 여러분이 세상에서 당하는 일들보다 더 강하고 더 힘 있고 더 축복되고 더 큰 응답입니다. 잘 기억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이 축복, 이것은 여러분이 세상에서 당하는 일들보다 더 강하고 더 힘 있고 더 큰 축복이요 더 큰 응답입니다. 다윗이 시편 23편에 보면 4절에서 이야기합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그만큼 어려움 가운데 빠졌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느끼지 않았습니다. 다윗의 고백입니다. 푸른 초장으로, 쉴 만한 물가으로,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시는 하나님.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그 축복의 역사들, 더 강하고 더 크고 더 축복되고 더 응답으로 역사하시는 그 사실을 다윗은 누렸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고백한 것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그 다윗이 모셨던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기 때문에 이 목자이신 하나님이 지금 우리 안에 계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평안을 놓친다, 바보 중의 바보입니다. 바보 중의 바보입니다. 여러분, 너무나 어렵고 힘든 세상 속에서 주님만이 줄 수 있는 참된 평안, 이 평안을 누리심으로 말미암아 여러분 자신을 살리시고 우리 자녀들에게 이 평안을 전달하고 평안이 없어서, 안식이 없어서 죽어가는 세상 속에 이 사실을 전달하는 전도자로 쓰임 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8년 2월 4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참된 안식 - 예수를 바라보라
(히4:1-11)
서론: 말씀으로 나타나시고 아들로 나타나심 바 된 예수를 바라봐야 합니다(히1장). 복음 안에 견고히 세워지지 않으면 흘러 떠내려가게 됩니다(히2장).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자이기 때문에 예수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히3장).
모든 사람들에게 안식이 필요합니다. 사람들에게는 육신적인 쉼이 필요합니다(육신적 안식). 그리고 율법적인 쉼도 있습니다(주일에 아무 것도 하지 말 것 / 유대인 - 안식일에 불을 피우지 말 것). 더 중요한 것은 영적인 안식입니다. 대부분 죽어서 천국에 가는 것을 안식으로 생각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땅에서 누려야 되는 안식이 있음을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180여번 기록).
1. 모든 인간은 안식을 갈망
가. 안식의 궁극적인 원형 - 하나님의 안식
1) 하나님 안에서 참된 안식을 누리는 존재로 창조(창1:27-28)
2) 천지를 창조 하신 후 안식 하신 것을 가르킴(창2:2-3)
나. 히브리서에 나타난 안식
1) 가나안 안식(히3:11, 18) 2) 창조의 안식(히4:3) 3) 제칠일 안식(히4:4, 9) 4) 천상적 안식(히3:1, 12:22)
다. 그리스도인이 들어가야 할 안식 - 현실에서 믿음으로 안식을 누릴 수 있음
2. 참된 안식에 대한 답 - 예수 그리스도가 참 안식
가. 모든 인간 - 안식을 상실
1) 원래 인간 - 하나님의 노동과 일은 즐거움과 행복(창2:15)
2) 하나님을 떠난 창3장사건 - 탐욕의 결과(죄)
자기 인생을 자기가 책임, 자기 왕국을 자기가 지켜야 되고 경영(창3, 6, 11장)
미신, 점술, 우상문화 - 자기를 지키기 위한 방법
사단이 주인(요8:44), 영적문제(출20:3-5), 마음의 병(마11:28), 육신문제(행8:4-8), 자녀문제(마27:25), 지옥(눅16:19-31)
나. 하나님이 참된 안식을 만드심 - 모든 것 회복
1)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하나님 안에 살아감
2) 그리스도의 부활로 안식을 완성
3) 복음 누림으로 안식 - 문제에 대한 해답이 보임, 미리 응답이 보임, 미래가 보여짐, 답을 전달 할 수 있음
다. 어떻게 누릴 것인가?
1) 매일 말씀을 주고 계심(히3장)
2) 그리스도 속으로 들어가는 것(마11:28, 마4:19, 요8:32)
결론: 세상에서 당하는 일보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역사가 더 큰 응답, 축복입니다.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시기 때문에 어려움 가운데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습니다(시23편). 평안을 놓치게 되면 다 놓치는 것입니다. 어렵고 힘든 세상 속에서 하나님만이 주시는 평안을 누리며, 세상에 전달 하는 전도자 되시길 바랍니다.
● 기도제목
● 말씀실현(실천사항)
● 전도대상자
번호 | 제목 | 본문 | 설교일 | 첨부파일 |
---|---|---|---|---|
1477 |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 삿2:6-10 | 2025-03-09 | |
1476 |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 삿1:1-7 | 2025-03-02 | |
1475 |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 단12:1-4 | 2025-02-23 | |
1474 |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 단11:28-39 | 2025-02-16 | |
1473 |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 단10:10-21 | 2025-02-09 | |
1472 |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 단9:20-24 | 2025-02-02 | |
1471 |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 단8:15-27 | 2025-01-26 | |
1470 |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 단7:9-14 | 2025-01-19 | |
1469 | 자기의 하나님을 믿음이었더라 | 단6:16-28 | 2025-01-12 | |
1468 |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 단5:17-31 | 2025-01-05 | |
1467 | [2025 송구영신예배] 하나님의 유업을 이을 자 | 갈4:4-7 | 2024-12-31 | |
1466 | 땅의 모든 사람을 다스리시는 하나님 | 단4:28-37 | 2024-12-29 | |
1465 | 완전한 승리를 내 것으로 누리는 성탄 | 눅2:8-14 | 2024-12-22 | |
1464 | 언약의 역사를 계속 이어가고 계시는 하나님 | 단3:8-18 | 2024-12-15 | |
1463 | 손대지 아니한 돌 | 단2:25-35 | 2024-12-08 |
1
2
3
4
5
6
7
8
9
10
...
99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