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영원히 붙잡을 언약
2018-06-10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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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0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평생, 영원히 붙잡을 언약”
(히13:8)
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히13:8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예수를 바라보십시다. 오늘 2부 예배 참여한 여러분 모두가 정말로 전 세계가 살아날 언약, 하늘 보좌를 움직이는 그 비밀, 예수 그리스도로 충만한 시간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제목을 “평생, 영원히 붙잡을 언약”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여러분 삶에 있어서 중요한 응답이 있고 없고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응답이 있느냐 없느냐 그 차이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이 되어지십니까? 물론 우리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고 노력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 중요합니다. 그래서 세상적으로 성공할 수 있고요, 출세할 수 도 있고, 많은 명예들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참된 축복과 응답과 승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입니다. 아멘입니까? 그렇다면 참된 응답과 축복과 승리가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복음을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 가지고 있다면 이 복음을 얼마만큼 가치 있게 누리느냐 누리지 못하느냐 그 차이에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복음에 대해서 알고 있습니다. 복음은 우리의 모든 문제 해결하신 것이다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모든 문제 해결자, 늘 말씀 듣다 보니까 이 말씀 또한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우리의 인생을 살아가면서 그 복음이 나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 입니다. 얼마만큼 복음의 가치가 여러분에게 최고의 가치로 누려지고 최고의 가치로 느껴지고 있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참된 복음의 가치를 깨닫고 누리는 만큼 그 속에서 영적인 힘이 나오게 되고요, 영적인 힘을 얻게 되면 그 속에서 마음과 생각도 하나님의 다스림 속에 들어가게 되고, 그 속에서 결국 우리의 삶도, 우리의 육신조차도 하나님이 주시는 힘을 얻고 승리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 우리의 모든 육신조차도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축복된 증거의 역사들은 그냥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영혼에 힘을 얻게 되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마는 영혼에 하나님이 주시는 힘을 얻게 되면 나타나는 것입니다. 반대로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이 복음이 나와 얼마나 관계 있는가 그 사실 우리가 놓쳐버리고 내 마음대로, 내 욕심대로, 내 육신의 삶 따라 살아가다보면 나도 모르게 영적인 힘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영적인 힘을 잃어버리면 마음과 생각이 무너지게 되고, 마음과 생각이 무너질 뿐만 아니라 거기에 결국은 삶도 무너지게 되고, 육신조차도 병들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정말로 얼마만큼 하나님이 주신 이 복음의 역사들을, 이 복음의 가치들을 우리가 얼마만큼 누리고 있느냐 우리의 신앙생활이 되고 안 되고, 거기에 결론 내려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복음의 가치를 깨닫지 못하고, 누리지 못하면 시간가면 갈수록 이상하게 인생에 어려움들이 계속되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왜냐? 우리 인생은 하나님을 만나야 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 이 자리에 참여한 여러분 모두가 진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누리는 최고의 축복의 응답의 자리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실 우리에게 주신 복음이 모든 것인데요, 복음을 놓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속는 문제들이 우리에게 있어요. 무엇이 우리에게 이 어마어마한 복음의 가치를 놓쳐버리게 만드는가? 그 부분들을 우리가 점검을 해 봐야 합니다. 분명히 복음을 제대로 알고 누리는 만큼 영적인 힘을 얻게 되고 그 속에서 모든 마음과 생각도, 또 우리의 모든 육신도 삶도 승리하게 되어 있는데, 그렇다면 분명한 복음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 복음의 역사들을 왜 누리지 못하는가? 왜 놓치는가? 놓치는 이유가 무엇인가? 사실 속는 것이지요. 무엇인가 우리가 살펴 보아야 하는데 먼저 첫 번째입니다.
1. 복음을 놓칠 수밖에 없는 속는 문제.
복음을 누리지 못하고 놓치는 속는 이유입니다. 인간관계 통해서 오는 문제들입니다. 가장 많이 있지요. 교회를 다니면서 성도라는 사람들이 결국 인간관계 문제, 그 한계를 넘지 못해서 낙심하고, 좌절하고, 상처가운데, 실망 가운데 살아가는 부분들을 많이 봅니다. 그래서 지난 날 나도 교회 다녔다고 이야기 하는 사람들 보면 결국 인간관계 통에서 무너져서 지금 교회 안 다니는 사람들이 태반이나 되어짐을 우리가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한결 같이 하는 말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결국은 불신자나 신자나 별 차이가 없다 라는 것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나도 교회 다녀보니까 불신자나 신자가 별 차이가 없더라는 겁니다. 오히려 신자들이 말을 함부로 하고 또 생각도 수준이하의 생각들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결국은 교회 다닐 필요가 없다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교회를 안 나가게 되었다라고 담대하게 이야기 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실 인간관계를 뛰어넘지 못하는 그 한계에 부딪혀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축복된 복음의 역사들을 누리지 못하는 그런 부분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람관계를 통해서 상처들을 많이 갖고 있어요. 그래서 예수 믿었던 사람들이 하는 말들입니다. 교인들 상대하지 마라, 아니 불신자들이 하는 말이 아니예요. 예수 믿었던 사람들이 현장에서 만나보면 교인들 상대하지 말라고, 믿을 바 못 된다고, 입만 살아있다고 그런 말 많이 듣잖아요. 그게 전부 다 인간관계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고, 그것 통해서 복음의 역사들을 놓치고 있는 부분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도 제자들을 부르실 때에 한결같이 다 세상에서 실패한 사람들이었어요. 그렇잖아요. 저 갈릴리 어부 출신들, 무식한 사람들, 배우지 못한 사람들, 성격 급한 베드로, 또 많은 문제를 갖고 있는 제자들, 하나같이 사실은 실패한 제자들을 예수님이 부르심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공생애 3년 반 동안에 제자들을 데리고 다니셨는데 그러나 여전히 변화지 않는 제자들의 모습을 보게 되어요. 여러분 특별히 마가복음10장에 보면 제자들 중에 예수님 앞에 나와서 이야기 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 우리에게 응답해 달라고 이야기를 해요. 너희들이 원하는 게 무엇이냐고 주님이 물었어요. 그때 야고보와 요한이 손을 번쩍 들고, 여러분 손 들었다는 말은 여러분에게 표현하기 위해서입니다. 주님 좋습니다. 하나는 주님 우편에, 하나는 주님 좌편에 앉게 하옵소서. 다시 말하면 하나는 주님의 좌의정에, 하나는 주님의 우의정에 앉게 하옵소서. 그러나 그 말을 듣고요, 예수님께서 너희가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도다 그러면서 중요한 복음에 대한 내용들을 말씀하시면서 하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야기 했는데, 그 제자들이 알아 들을 리가 없지요. 그런데 반응을 보인 나머지 제자들입니다. 마가복음10:41절에 보면 야고보와 요한의 말을 듣고 제자들이 화를 냈다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똑 같은 사람들이라는 뜻이지요. 야고보와 요한이 좌의정, 우의정을 요구한 것과 똑같이 다른 제자들도 자기 동기로 충만했던 사실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게 예수님의 제자들의 모습이었어요. 또 가룟 유다, 여러분 아주 똑똑하다고 하는 가룟 유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회계 업무를 맡겼잖아요. 그런데 3년 반 동안 예수님을 따라 다녔는데 마지막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자기의 동기가 충족되지 않으니까 은 30에 예수님을 팔아넘겼어요. 예수님을 팔아넘기고 결국은 자책감이 들어서 죄책감 속에서 자살한 사람이 가룟 유다예요. 여러분 도마는 어떠했습니까? 요한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제자들이 보았어요. 그런데 마침 그 자리에 도마는 없었어요. 이 충격적인 부활의 모습을 제자들이 보고 들뜬 나머지 도마에게 와서 이야기 했잖아요. 우리가 부활하신 주님을 보았다. 그때 도마가 뭐라 했습니까? 부활하신 주님을 믿은 것이 아니예요. 그 주님의 손바닥에, 그 옆구리에 내가 손을 만져보고 확인하지 않고서야 내가 믿을 수 없다라고 했어요. 그때 예수님께서 안 보고 믿는 자가 더 복이 있다고 도마에게 나타나셔서 옆구리에 손을 넣어 보라고 말씀하시면서 보고 믿는 자보다 안 보고 믿는 자가 더 복이 있다라고 말씀하신 부분들을 봐요. 그게 도마의 모습이예요. 그리고 나머지 모든 제자들도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는 죽음 앞에는 모두가 다 도망가 버렸어요. 그러면 예수님께서 그런 제자들의 특성들을, 그런 숨은 부분들을 모르고 부르셨겠습니까? 아니지요. 다 아시는 겁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모인 곳이 교회예요. 어떤 분은 그런 이야기를 해요. 교회는 종합 병동이다. 무슨 말이냐? 영적으로, 육신적으로, 정신적으로 너무 많은 어려움 당하는 모든 사람이 모인 곳이 교회다. 맞습니다. 교회는 어떤 특정계층이 모인 곳이 아니고요, 어느 누구나 올 수 있는 곳이 교회입니다. 가난한 자도, 못 배운 자도, 무식한 사람도, 없는 사람도 올 수 있는 곳이 교회이고, 또 부자도, 배운 사람도 그래서 하나 되어지는 곳이 교회라는 사실입니다. 마태복음에 보면 22장이지요. 예수님께서 천국을 비유하면서 임금이 종을 내어보냈습니다. 혼인 잔치를 열어놓고 많은 먹을 것을 준비해 놓고 손님을 청했습니다. 그런데 손님이 하나도 안 왔어요. 다시 임금을 종을 보내면서 나가서 손님을 데려오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이 종들이 손님을 구하기 위해서 나갔는데 그 종들을 맞이하는 그 손님들의 반응이 어떠했느냐? 한 사람은 그냥 밭에 나가고, 한 사람은 상업 차 나가게 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이 종들을 잡아 죽였어요. 그러니까 임금이 화가 나서 그 종들을 잡아 죽인 사람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살라 버렸어요. 그러면서 또다시 종을 보내어서 마태복음22:9절에 보면 사거리에 가서 아무나 데려오라고 했어요. 그래서 그 종들이 임금의 명령을 받고 사거리에 가서 사람들을 데리고 왔는데, 손님들이 가득 찼는데 가만히 보니까 거기에 선한 사람도 있고, 악한 사람도 있는 거예요. 여러분 그게 교회입니다. 특별한 사람, 인격 좋고 훌륭한 사람들이 모인 것이 아니라, 물론 그런 사람도 모일 수 있는 것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와서 하나 되어지는 곳이 교회예요. 그런데 많은 경우 교회 와서 이런 인간관계, 갈등들을 넘지 못해서 가장 중요한 복음을 놓쳐버린다는 거예요. 여러분 사람들은 다 영적인 문제들을 가지고 있잖아요. 어려운 문제들을 가지고 있잖아요. 어려운 문제 가지고 있지 않는 사람 하나도 없어요. 나름대로 어릴 때부터 문제들을 가지고 있고요, 자라면서 받은 상처들도 있고요, 남에게 말 못할 숨은 문제들도 있고요, 많은 문제들다 가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여러분 목사인 저 조차도 사실 설교할 수 있다는 것은 제가 훌륭하고 제가 죄가 없고, 제가 남들 보다 선해서 그렇습니까? 아니예요. 진짜 속을 들여다 보면요 가까이 할 수 없는 사람이 저예요. 이것은 제 자신을 합리화 시키는 게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문제있다라는 말이예요. 어느 누구하나 문제 없는 사람이 없어요. 그것을 단지 안 그런척 하고 포장하고 있을 뿐이지, 사실은 알고 보면 가까이 할 수 없는 사람들이 모두 다 예요. 그런데 그런 부분들 통해서 우리가 상처받고, 그런 부분들 통해서 우리가 낙심하고, 그런 부분들 통해서 우리가 실망한다면 중요한 것은 그냥 단순히 인간관계 실망하고 상처 받았다 그게 아니고 복음을 놓쳐버린다는 겁니다. 이게 사탄이 속이는 겁니다. 여러분은 사람을 살릴 자로 하나님께서 부르셨습니다. 믿습니까? 그렇다면 인간관계의 한계를 그 속에 부딪혀서 우리가 복음을 놓칠 것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힘을 얻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 축복된 사람을 살리는, 인간관계를 통해서 모든 사람을 살리는 힘을 회복하는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 다음에 복음을 놓치는 속는 부분이 뭐냐 하면 주변 환경들 때문입니다. 이 주변 환경들 때문에 어떤 면에서 우리 자신들이 신앙생활 속에서도 낙심하고 지치고 힘이 듭니다. 그렇잖아요. 가정의 문제들, 자녀의 문제들, 또 사업의 문제들, 가난한 것, 질병들, 자기가 원하지 않는데, 가난한 부분들, 자기도 원치 않게 어느 날 찾아온 질병들, 이게 바로 주변의 문제들 아닙니까? 자기 주변에 일어나는 문제들 아닙니까? 그러면 이런 부분들 때문에 실망하고, 낙심하고, 지치고 힘이 드는데 내게 있는 문제들이 사실은 당장 해결될 것 같은 기미도 안 보이고, 하루 이틀 있다가 해결되면 다행인데, 어떤 때는 내게 있는 문제들이, 주변의 문제들이, 가정의 문제들이 10년 갈 수도 있고, 20년 갈 수도 있고, 또 평생 가는 문제도 있잖아요. 그게 하루 이틀이지 우리에게 있는 문제들이 계속되어지면 그것을 통해서 오는 실망함과 피곤하고 지치고 힘든 부분들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런데 중요한 것은요 렘런트 7명들은 하나같이 주변의 환경들이 다 좋았던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만약에 요셉에게 있어서 환경들 때문에 하나님을 평가한다면 하나님을 안 믿어야 합니다. 그렇잖아요. 요셉의 환경이 얼마나 어려웠습니까? 구약의 어려움 당한 사람들 중에 대표적인 사람이 요셉인데 엄마가 네 사람이고, 배 다른 형제들이 10명이예요. 얼마나 가정이 시끄러워겠습니까? 그런 많은 주변의 문제들 때문에 하나님에 대해서 평가한다면 하나님을 안 믿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그것이 상관이 없었어요. 왜냐? 주변의 그 환경들이 요셉을 무너뜨리지 못했다라는 사실입니다. 또 친 부모와 살 수 없을 만큼 국가적인 위기 가운데 처했습니다. 누구입니까? 그게 바로 모세입니다. 입양아로 가게 되고요, 부모가 어쩔 수 없이 자녀를 버릴 수 밖에 없는 그런 위기 가운데 처한 것이 바로 모세였습니다. 부모에게 버림받을 수밖에 없는 거기에 처한 것이 바로 모세였습니다. 만약에 그런 환경들 때문에 실망하고 낙심하고 지치고 피곤했다면 모세조차도 하나님께 쓰임 받지 못했을 겁니다. 그런데 그 모든 사람들 하나같이 그 환경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있었어요. 그 환경들을 변화 시킬 수 있는 힘이 있었다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서 불신앙이 어디에서 옵니까? 왜 불신앙이 찾아옵니까? 힘이 없어서 그래요. 우리에게 찾아오는 모든 환경들 통해서 오는 불신앙은 힘이 없어서 그래요. 힘 있으면 되는 겁니다. 또 속는 부분이 뭐냐? 문제는 사람 관계도 관계고, 주변의 환경도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의 문제들 때문에 속아요. 자기 자신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특별히 말씀에 대한 부분들을 놓고 우리가 말씀 받을 때에 은혜 받는 것 같은데, 말씀 받고 나가면 다 잊어버리게 되고 말씀이 내 삶의 현장에 성취되어지고 또 그것을 응답으로 누리면 힘이 날 것인데, 뭔가 모르게 말씀 들을 때는 알 것 같은데, 듣고 나면 잊어버리게 되고, 말씀과 현장이 나하고 안 맞아 지는 것처럼 보이고, 그래서 사실 신앙생활 하면서도 얼마나 답답한 가운데 신앙생활 하고 있는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그런 고백들을 해요. 분명히 말씀을 통해서 은혜는 받는데 내 삶과 안 맞는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거기에서 오는 갈등들, 그것 때문에 오는 답답함이 너무 힘들다 라는 거예요. 그럴 겁니다. 여러분 말씀이 성취되어지고, 응답되어지면 힘을 얻게 되는데, 그렇지 못한 부분들 때문에 오는 여러 가지 갈등들, 또 실제로 기도만 되어져도 되는데 우리도 모르게 기도할 수 있는 힘도 없잖아요. 왜 기도할 수 없습니까? 나도 모르게 어릴 때부터 있었던 상처들, 자라면서 받았던 상처들, 또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든 부분들 때문에 내 영혼의 상태가 기도할 수 없을 정도로 황폐해 있다라는 것, 기도만 해도 되는데, 기도할 수 없을 정도로 내 영적인 상태가 황폐해져 있는 부분들을 봐요. 그러면서 사람 관계를 통해서 만남의 축복을 회복해야 되는데 그것도 다 놓치고 살아가요. 그러니까 사람을 통해 상처받다 보니까, 시험들다 보니까 사람에 대한 마음이 닫혀지고 그 사람에 대한 마음이 닫히는 부분들이 전도하고자 하는 마음조차도 닫혀버리는 그렇게 되어지니까 결국은 어떻게 되느냐? 자기 자신의 신앙생활도 겨우 명목을 유지하며 신앙생활 하는, 어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신앙생활 조차도 지키지 못하는 그런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모든 인간 관계, 주변의 환경들, 자신의 문제들, 사실 이게 맞다고 생각하십니까? 이것 때문에 영적인 힘을 잃어버리고 이것 때문에 마음과 생각이 무너져내리고 이것 때문에 결국은 사실은 우리가 사단의 통로가 열리는 부분들인데 그렇다면 우리가 늘 사람 관계 때문에 시험 들어야 하겠습니까? 주변 환경들 때문에, 자기 자신들 때문에 힘 빠져야 하겠습니까? 그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사실은 모든 사람 관계에서 시험 드는 부분들 속에서 이길 수 있는 힘이 있으면 되는 것이고 여러분, 우리 자신의 모든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힘이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진짜 참된 모든 환경을 이길 수 있는, 사람 관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오히려 사람을 살릴 수 있는 힘들을 회복함으로 속지 않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진짜 복음이 가슴에 담겨져야 함
그러면 이 참된 힘은 어디에서 오느냐? 참된 힘은 어디서 오느냐? 여러분, 우리의 마음 속에 복음이 담기는 데서 참된 힘이 나옵니다. 다른 데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저와 여러분의 마음 중심에 복음이 가슴에 담기는 마음만큼 그 속에 사람들이 알 수 없는 힘들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다른 말로 하면 복음이 각인, 체질, 뿌리내리는 만큼. 복음이 각인, 채질, 뿌리내리는 만큼 사실은 그 속에서 참된 힘이 나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복음보다 능력 있는 것이 없고 복음보다 강한 것이 없고 복음보다 가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진짜 우리가 복음이 우리 마음에 담기고 그 마음에 담긴 복음이 누려지는 만큼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위로부터 하나님이 주시는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여러분, 시대가 바뀌고 역사가 바뀐다 할지라도 복음의 본질은 바뀌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3:8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아무리 역사가 바뀌고 시대가 바뀐다 할지라도 복음의 변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 그렇다면 변하지 않는 이 복음 안에 깊이 각인, 뿌리, 체질 되도록 우리의 마음과 중심이 복음 속에 담기도록 인도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복음이 각인, 뿌리, 체질 되기 이전에 먼저 우리가 이 복음이 각인 되고 체질 되고 뿌리내리기 전에 알아야 할 부분이 있는데 여러분, 인간의 근본 문제도, 시대가 달라져도 인간의 근본 문제도 바뀌지 않습니다. 그 인간의 근본 문제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을 떠난 원죄 문제입니다. 로마서 3:23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바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이 죄는 하나님을 떠난 원죄 문제입니다. 이것은 시대, 역사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바뀌지 않는 인간의 근본 문제입니다. 이 원죄 문제, 그래서 로마서 5:12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여러분, 하나님을 떠난 원죄 문제로 말미암아 우리 인간에게 찾아온 것이 바로 영적 사망 상태에 빠진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5:12에 하신 말씀이 그것입니다. 한 사람이 범죄함으로 죄가 들어오고 그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다. 영적인 사망이 온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다, 아담이 지은 죄인데 거기 바로 이어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다. 이 죄는 무엇을 말합니까? 하나님 떠난 원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에게 사망이 이르렀다. 모든 사람은 영적인 사망 가운데 빠져서 그 결과로 이 땅에 살아가는 인생이 결국은 사단의 노예 되어서 인생을 살아갑니다. 이것을 세상 사람들은 사주팔자, 운명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사주팔자, 운명 가운데서 살아갑니다. 사단의 노예됨으로 말미암아 거기서 나오는 것이 우리가 인생의 열두 가지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그게 뭡니까? 계속 우리가 말씀 듣습니다만 결국은 나를 중심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고 세상 물질 위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고 성공 위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러다 보니 나의 모든 중심은 우상 숭배에 있고 점하고 굿하는 데 있고. 왜냐? 잘 되어야 하니까. 그런 가운데 나도 모르게 사단의 손에 완전히 장악되어서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육신적으로, 내세에, 자녀에게, 후대문제, 온갖 문제들 다 안고 살아가는 겁니다. 그래서 지옥 가기 전에 지옥 같은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결국은 원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영적인 사망이 선포되었고 그 결과로 결국은 사단의 노예 되었기 때문에 그 속에서 일어나는 인생의 문제는 어느 누구도 해결할 수 없고 어느 누구도 빠져나올 수 없고 피할 수 없는 문제라는 것. 아무리 역사가 바뀌어도, 아무리 시대가 흘러간다 할지라도 인간이 갖고 있는 근본문제는 아담 때나 지금이나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유일한 복음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복음은 유일한 복음입니다. 아담이 이 영적인 문제 속에 빠져 있을 때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3:15에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무슨 말입니까? 아담에게 있는 영적 문제 해결하신 분이 그리스도밖에 없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적 사망에 빠진 사람이 거기서 빠져나올 수 있는 길이 그리스도밖에 없다는 사실, 그게 바로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한다는 말입니다. 아담이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두려움과 괴로움이 마음 속에 찾아 왔습니다. 그 두려움과 괴로움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이 바로 그리스도밖에 없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그것도 여자의 후손입니다. 아담의 후손이 아니라, 남자의 후손이 아니라 여자의 후손입니다. 왜냐? 남자의 후손은, 모든 인간은 결국 남자의 후손으로 태어나는데 그것은 바로 죄를 가지고, 원죄를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그래서 죄가 없으신 분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 죄를 위해서 죽으셨는데 죄가 없으신 분이 오신 그것이 바로 여자의 후손으로 오셨다 이 말입니다. 다른 것으로는 우리에게 있는 영적인 문제, 우리에게 있는 영적 사망의 문제, 그 결과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삶의 고통하는 문제들, 영적인 저주와 고통의 문제들, 해결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일한 이름, 여자의 후손, 오직 그 한 이름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착한 일을 한다고 해서, 선한 일을 한다고 해서, 여러분, 우리가 의로운 일을 한다고 해서, 우리가 업적을 많이 쌓는다고 해서,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원죄 문제, 영적 사망의 문제 속에서, 영적 사망 상태에 있는 고통과 저주 속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줄 아십니까?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겠다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신 그 이름을 우리는 붙잡아야 하는 것입니다. 홍수로 멸망 받는 노아 시대에 하나님은 네가 인격이 좋아서 내가 너를 구원하겠다, 아닙니다. 수영해서 홍수에서 빠져나와라, 아닙니다. 홍수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을 주셨는데 창세기 6:14에 방주 안에 들어가라 했습니다. 유일한 것입니다. 시대가 흐르지만 유일한 겁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실은 힘이 없어서 출애굽하지 못한 게 아닙니다. 출애굽이 1장, 2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서 사실은 이스라엘 백성이 번성했다 말씀했지 않습니까? 힘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굽에서 노예살이로부터 빠져나오지 못했습니다. 언제 빠져나왔습니까? 힘이 없어서 못 빠져나온 게 아닙니다. 언제 빠져나왔습니까? 출애굽기 3:18에 희생제사의 비밀을 알게 되었을 때. 유월절 어린양의 피의 비밀, 그 비밀을 알게 되었을 때 애굽에서 빠져나오게 된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7:14에 하나님이 이사야 선지자에게 말씀했습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라. 여러분, 처녀가 잉태해서 아들을 낳는다? 과학적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어떻게 처녀가 잉태해서 아들을 낳습니까? 여러분, 상식적으로도 안 맞는 말입니다. 종교적으로는 더합니다. 그 당시에 여러분, 어떤 면에서 여러분, 처녀가 아이를 가지면 돌에 맞아 죽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분명히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다, 이 언약을 이사야는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이 언약을 붙잡은 것입니다. 어떻게 확신했느냐? 아, 창세기 3:15에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 언약이 바로 이 언약이구나. 이 이사야 선지자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신앙 고백을 할 때마다 고백을 하지요.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같은 말입니다.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동정녀 탄생, 여자의 후손, 처녀가 잉태하여, 같은 말입니다. 우리에게는 유일한 복음, 오직 그리스도 그 이름을 주셨다는 것. 다른 것으로는 절대로 구원받지 못합니다. 우리가 멸망에서, 사망에서 생명을 얻는 이름이 그리스도요, 지옥의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 되는 그 이름을 그리스도요, 죄로 말미암아 저주, 재앙, 사주팔자, 운명에서 해방되는 이름이 그리스도입니다. 그 이름, 유일한 이름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우리에게 완성하셨는데 베드로가 고백했습니다. 마태복음 16:16에 보면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그 모든 구약에 예언된 그 이름을 완성하신 이름이 뭐냐? 그리스도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로마 시대, 중세 로마 시대 복음을 놓쳐 버리고 모든 교회들이 종교화되어 버렸습니다. 어느 정도냐? 여러분, 성경유오설을 주장했습니다. 성경에 오류가 있다! 또 한편으로 들고 나온 것이 뭡니까? 교황은 흠이 없다! 교황무오설을 주장하면서 중세 교회가 완전히 종교로 빠져들었습니다. 그 때에 마틴 루터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 언약 붙잡고 종교 개혁을 일으킨 사실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지금 시대는 어떻습니까? 정치도 문화도 사회도 경제도 발전합니다. 의술도 발전합니다. 지식도 발전합니다. 지금 어떤 면에서 의술이 어느 정도 발전하느냐? 여러분, 피를 가지고 모든 병들, 무엇이 왔는가를 알 수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가면 갈수록 의술이 발전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우리도 알지 못하는 불치병들이 더, 또 고질병들이 더 많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식도 하루가 다르게 빨리 성장합니다. 발전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식이 그렇게 발전함에도 불구하고 가면 갈수록 결국은 허무함과 공허함 속에 빠져드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실은 우리에게 유일한 복음을 주셨는데 이 복음의 역사를 놓쳐버려서 그렇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붙잡을 언약이 있다면 다른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주신 복음은 유일한 것입니다. 믿습니까?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적이 없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구원 받습니다.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죄 문제 해결 받고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하나님 만나게 되고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사단의 운명 가운데 빠져나옵니다. 유일한 이름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이 복음의 본질은 역사가 흐르고 시대가 바뀌어도 바뀌지 않습니다. 유일한 복음을 주셨는데 그 복음의 본질은 역사와 시대가 바뀌어도 바뀌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시 말씀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동일하시다. 복음의 본질은 바뀌지 않습니다. 복음의 본질이 뭐냐? 대표적으로 로마서 1:2~4입니다. 봅시다. 로마서 1:2~4 같이 한번 읽어 봅시다.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할렐루야! 무슨 말입니까? 복음의 본질이 무엇임을 말하고 있습니까? 여기에 바울이 복음의 본질에 대해서 정확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인데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리스도가 오셨다는 것, 그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능력으로 우리의 모든 문제 해결했다는 것, 그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지금 우리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을 주셨다는 것, 이게 복음의 본질입니다.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오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그 십자가의 능력으로 우리의 모든 문제를 그리스도께서 해결하셨고 그 그리스도께서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데 생명으로 함께 하신다는 것, 이것이 바로 복음의 본질입니다. 이 복음의 본질이 아담 때나 지금이나 바뀌지 않는다는 것, 변하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동일하시다 했습니다. 그 복음의 본질 그리스도 약속 붙잡고 나아가는 걸음걸음마다 분명한 것은 성령께서 역사하시고 흑암과 저주와 재앙의 세력들이 무너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복음의 본질은 바뀌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주시는 복음의 능력 또한 시간이 지나도, 시대가 흘러도, 바뀌지 않습니다. 변하지 않습니다. 예전에도 그리스도 믿고 구원 받고 하나님 자녀 되고 죄 문제 해결 받은 것처럼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 믿는 자에게 하나님 만나는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요한복음14:6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했습니다. 바로 하나님 만나는 능력이 되시는 이름이 그리스도 이름입니다. 죄의 권세 속에서 어떻게 빠져나옵니까? 여러분, 죄는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권세라 합니다. 그래서 모든 인간들이 죄의 권세 아래 사로잡혀 가지고 마귀의 종노릇하면서 살아가지 않습니까? 그 죄의 권세에서 어떻게 빠져나옵니까? 거기서 빠져나올 수 있는 능력이 바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단의 운명 가운데 어떻게 빠져나옵니까? 요한일서 3:8에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지금도 하나님 만나는 길은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죄 문제 해결 받을 수 있는 길은 지금도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사단의 세력이 꺾이는 것은 지금도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사람 관계의 문제들, 갈등할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 주변의 문제들, 갈등할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 이런저런 어려움들, 갈등들, 그 부분들 때문에 오는 문제들, 그 속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복음은 그 모든 것들을 뛰어넘을 수 있는 능력으로 지금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천 년 전에 죽은 그리스도라 아니라, 이천 년 전에 십자가에서 죽은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 그리스도는 부활하셔서 지금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능력으로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5장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5:7에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아무것도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 복음의 능력으로, 변하지 않는, 바뀌지 않는, 그 복음의 능력으로 지금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요셉은 이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노예로 가도 괜찮았습니다. 다니엘도 이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다니엘이 사자굴에 들어가도 괜찮았습니다. 여러분, 초대교회 성도들을 보십시오. 로마가 정치를 가지고 압박하고 유대 종교를 가지고 핍박하고 많은 어려움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초대교회가 그 어려움 가운데 무너졌습니까? 아닙니다. 복음의 능력 가진 초대교회가 결국은 로마를 살렸던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유일한 복음은 그 복음의 본질이 바뀌지 아니하고 복음의 능력도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마지막입니다. 복음의 가치 또한 변하지 않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여러분, 정말로 복음을 어느 정도 가치 있는 것으로 여러분, 붙잡고 있습니까? 특별히 여러분, 우리 자녀들, 우리의 필요를 위해서 자녀를 둔 것이 아니잖아요? 자녀들은 우리에게 있어서 절대 가치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자녀들은 우리에게 있어 절대 가치입니다. 내가 필요하기 때문에 자녀 낳아야 하겠다. 그래서 자녀 낳은 것이 아닙니다. 절대 가치로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절대 가치가 있습니다. 바로 그 하나님의 절대 가치가 무엇이냐? 저와 여러분입니다. 요3:16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나뿐인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시기까지 나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래서 나 자신은 하나님 앞에서 절대 가치 있는 자입니다. 믿습니까? 이 사실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절대 가치 있는 사람으로 부르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또한 복음을 절대 가치 있는 것으로 붙잡아야 합니다. 내가 필요해서 복음을 붙잡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외로워서, 힘 얻기 위해서 복음을 붙잡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쓸쓸해서, 내가 많은 문제들이 있어서 그 문제 해결을 위해서 마치 세상 사람들이 알라딘의 램프를 건드리는 것처럼 그런 식으로 복음이 필요해서 우리가 붙잡는 게 아닙니다. 복음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복음은 우리에게 모든 것입니다. 생명 걸 가치가 있습니다. 그 안에 참된 행복이 있고 그 안에 참된 힘이 있는 것입니다. 참된 유일한 복음을 가지고 그 복음의 본질과 복음의 능력과 복음의 가치가 변하지 않는 것을 아시고 이 복음 안에 주어지는 힘을 가지고 세상 현장에서 승리하는 축복된 응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히브리서 13:8에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했습니다. 유일한 복음을 우리에게 주셨고요. 그 복음의 본질과 복음의 능력과 복음의 가치는 변하지 않고 바뀌지 않아요. 그렇다면 우리가 누려야 될 부분이 있다면 하나님이 주신 이 복음을 누려야 합니다. 그리고 이 복음의 역사를 누리면 누릴수록 그다음에 보여지는 것이 있어요. 세상의 모든 것 있는데, 결국은 한 가지 이 복음 없어서 모든 개개인들이 죽어가고 있구나. 보여지게 됩니다. 교회조차도 복음만 선포해야 될 교회조차도 좋은 것 많이 하는데, 이 복음 한 가지 없어가지고 교회가 어려움을 당하고 문제 당하고 결국 교회조차도 문을 닫고 있구나. 여러분 유럽교회, 미국 교회 이미 문 다 닫았잖아요. 한국 교회도 멀지 않았어요 많은 교회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얘기합니다. 한국 교회도 멀지않았다고요 그나마 지금 복음의 역사들이 선포되고 있는 것이 참 다행이고 감사한 일입니다. 그런데 교회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이야기하고 있는 부분들이 한국 교회가 멀지 않았는데 한국교회는 미국과 유럽이 무너지는 것보다 더 빨리 더 급격하게 무너진다고 했어요. 정말로 복음에 본질과 능력과 복음의 가치를 깨닫고 누리면 누릴수록 세상의 문제는 다 가지고 있는데 단 한 가지 복음 없어서 멸망 받고 있고, 교회조차도 복음만을 선포해야 될 교회가 이 복음을 놓치고 있기 때문에 우상 시대 위기와 재앙을 맞이하고 있구나. 그래서 하나님 원하시는 소원이 있습니다. 그게 뭡니까? 이 복음의 역사를 계속할 우리의 후대들을, 이 복음의 역사들을 바르게 말할 지도자들을 주의 종들을 세워 나가는 겁니다. 이 복음 말하는 전도하고 선교하는 교회를 하나님께서 원하시고요 이 일을 위해서 정말 복음만을 말하는 주의 종들을 세우는 것, 복음만을 말하는 많은 지도자를 세우는 것 복음 운동 할 수 있는 우리 후대들을 세우는 것 그것 가지고 RUTC 운동이라 하고 그걸 가지고 그 일을 위해서 RU를 세웠습니다. Remnant University라 해서 RU를 세웠습니다. 오늘 우리가 RU주일로 하나님께 드려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과 통하는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통하는 길이 있어요 하나님과 통한다면 개인과 가정과 산업에 하나님이 책임지실 것 아닙니까? 하나님과 통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내가 복음 알고 누리고 체험함으로 말미암아 지금 복음이 없어서 멸망 받는 세상에 복음 전하기를 원하고 교회조차도 복음 없어서 위기시대, 재앙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이때에 올바른 복음을 전하기를 원하고 이일을 위해서 일꾼을 세워나가길 원하십니다. 이게 하나님과 통하는 길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6,13 선거를 앞두고 우리 시의원 후보 두 분이 오셨고요 구청장 후보 한분이 참여했습니다. 특별히 좋은 일들을 많이 해야 하고 하실 분들입니다. 중요한 것은 세상의 좋은 일들 훌륭한 일들 많은 업적을 남기지 못해서 세상이 어려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 다 있어요 세상은요 그런데 한 가지 복음 없어서 지금 무너지고 있습니다. 오늘 세분 참여한 분들을 한분은 어릴 때 감리교회에서 세례를 받으셨고, 한분은 목민교회 안수집사님으로 계시고 또 한분은 봉덕교회 장로님으로 이렇게 계시는데 신앙생활에 대한 것들을 아시잖아요 교회를 아시잖아요 중요한 것은 진짜 유일한 복음 가지고, 복음의 본질과 능력과 복음의 가치를 가지고 세상을 살리는 일에 쓰임 받도록 우리가 이 분들 위해서 기도해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이분들이 정말로 복음 가지고 복음 안에서 주시는 참된 힘을 가지도록 기도 하셔야 됩니다. 그래야 이 분들 통해서 결국은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일에 쓰임 받을 것 아닙니까? 이런 엄청난 축복들이 이 자리에 앉은 모두에게 함께 임하는 귀한 축복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8년 6월 10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평생, 영원히 붙잡을 언약
(히13:8)
서론: 응답을 받을 수 있는 차이가 있습니다. 참된 응답과 승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오게 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복음을 가지고, 누리는 것에 많은 부분이 좌우 됩니다. 복음의 가치를 누리고 깨닫는 만큼 영적인 힘이 있게 되고, 마음과 생각이 하나님의 다스림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육신조차도 힘을 얻게 됩니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누리는 응답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1. 복음을 놓칠 수 밖에 없는 속는 문제
가. 사람 때문에 겪는 문제, 실망(인간관계의 문제)
1)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실 때 실패자들을 부르심 - 개인의 동기로 충만, 부활 사건을 믿지 못 함
2) 누구나 영적문제를 가지고 있음 - 포장하고 숨기고 있음
3) 인간관계를 통해 복음을 놓치도록 만듬 - 사람을 살리는 힘을 얻어야 함
나. 주변 환경 때문에
1) 가정문제, 질병, 가난 - 낙심, 지치고 힘이 듬
2) 요셉(가정의 문제), 모세(국가적 위기 때문에 입양아) - 이길 수 있는 힘이 있었음
다. 더 큰 것 - 자기 자신임
1) 말씀은 맞는데 내 삶과 맞지 않음
2) 기도가 안 될 만큼 영적상태가 황폐해짐
3) 만남의 축복을 누리지 못 함 - 전도할 마음이 없이 자신의 신앙도 지키지 못 함
2. 진짜 복음이 가슴에 담겨져야 함 - 복음이 각인, 뿌리, 체질
가. 인간의 근본문제는 절대 바뀌지 않음
1) 하나님을 떠난 원죄(롬3:23)
2) 죄로 인해 영적인 사망(롬5:12)
3) 사단의 노예 되어 살아가는 삶(사주, 팔자, 운명) - 인생의 12가지 문제
나. 문제를 해결 하기 위해 유일한 복음을 주심
1) 여자의 후손을 약속(창3:15) 2) 방주의 언약(창6:14) 3) 희생제사, 유월절 어린양의 피(출3:18)
4) 임마누엘(사7:14) 5) 모든 것을 완성하신 그리스도(마16:16) 6) 복음이 종교가 된 중세시대에 종교개혁(롬1:16-17)
7) 의학인 발전하지만 불치병, 지식이 발전하지만 허무와 공허함이 오게 됨(유일한 그리스도)
다. 복음의 본질은 변하지 않음(히13:8)
1) 성경대로 그리스도가 오심, 십자가의 능력으로 모든 문제 해결, 생명으로 함께 하심(롬1:2-4)
2) 그리스도의 이름 붙잡을 때 성령 역사, 흑암이 무너짐
라. 복음의 능력이 변하지 않음
1) 하나님을 만나는 능력(요14:6)
2) 사단의 운명에서 빠져 나옴(요일3:8)
3) 죄 문제 해결(롬8:2)
마. 복음의 가치는 변하지 않음 - 복음은 우리에게 모든 것(생명 걸 가치, 최고의 행복과 힘)
결론: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십니다(히13:8). 복음의 본질, 능력, 가치는 변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복음만 누려야 합니다. 세계교회도 복음이 없어서 문을 닫고 재앙을 막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소원은 복음만을 말하는 후대들과 지도자, 주의 종을 세우는 것입니다. 복음의 본질과 능력, 가치를 가지고 세상 살리는 응답 누리시길 바랍니다.
“평생, 영원히 붙잡을 언약”
(히13:8)
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히13:8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예수를 바라보십시다. 오늘 2부 예배 참여한 여러분 모두가 정말로 전 세계가 살아날 언약, 하늘 보좌를 움직이는 그 비밀, 예수 그리스도로 충만한 시간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제목을 “평생, 영원히 붙잡을 언약”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여러분 삶에 있어서 중요한 응답이 있고 없고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응답이 있느냐 없느냐 그 차이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이 되어지십니까? 물론 우리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고 노력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 중요합니다. 그래서 세상적으로 성공할 수 있고요, 출세할 수 도 있고, 많은 명예들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참된 축복과 응답과 승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입니다. 아멘입니까? 그렇다면 참된 응답과 축복과 승리가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복음을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 가지고 있다면 이 복음을 얼마만큼 가치 있게 누리느냐 누리지 못하느냐 그 차이에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복음에 대해서 알고 있습니다. 복음은 우리의 모든 문제 해결하신 것이다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모든 문제 해결자, 늘 말씀 듣다 보니까 이 말씀 또한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우리의 인생을 살아가면서 그 복음이 나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 입니다. 얼마만큼 복음의 가치가 여러분에게 최고의 가치로 누려지고 최고의 가치로 느껴지고 있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참된 복음의 가치를 깨닫고 누리는 만큼 그 속에서 영적인 힘이 나오게 되고요, 영적인 힘을 얻게 되면 그 속에서 마음과 생각도 하나님의 다스림 속에 들어가게 되고, 그 속에서 결국 우리의 삶도, 우리의 육신조차도 하나님이 주시는 힘을 얻고 승리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 우리의 모든 육신조차도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축복된 증거의 역사들은 그냥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영혼에 힘을 얻게 되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마는 영혼에 하나님이 주시는 힘을 얻게 되면 나타나는 것입니다. 반대로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이 복음이 나와 얼마나 관계 있는가 그 사실 우리가 놓쳐버리고 내 마음대로, 내 욕심대로, 내 육신의 삶 따라 살아가다보면 나도 모르게 영적인 힘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영적인 힘을 잃어버리면 마음과 생각이 무너지게 되고, 마음과 생각이 무너질 뿐만 아니라 거기에 결국은 삶도 무너지게 되고, 육신조차도 병들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정말로 얼마만큼 하나님이 주신 이 복음의 역사들을, 이 복음의 가치들을 우리가 얼마만큼 누리고 있느냐 우리의 신앙생활이 되고 안 되고, 거기에 결론 내려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복음의 가치를 깨닫지 못하고, 누리지 못하면 시간가면 갈수록 이상하게 인생에 어려움들이 계속되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왜냐? 우리 인생은 하나님을 만나야 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 이 자리에 참여한 여러분 모두가 진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누리는 최고의 축복의 응답의 자리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실 우리에게 주신 복음이 모든 것인데요, 복음을 놓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속는 문제들이 우리에게 있어요. 무엇이 우리에게 이 어마어마한 복음의 가치를 놓쳐버리게 만드는가? 그 부분들을 우리가 점검을 해 봐야 합니다. 분명히 복음을 제대로 알고 누리는 만큼 영적인 힘을 얻게 되고 그 속에서 모든 마음과 생각도, 또 우리의 모든 육신도 삶도 승리하게 되어 있는데, 그렇다면 분명한 복음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 복음의 역사들을 왜 누리지 못하는가? 왜 놓치는가? 놓치는 이유가 무엇인가? 사실 속는 것이지요. 무엇인가 우리가 살펴 보아야 하는데 먼저 첫 번째입니다.
1. 복음을 놓칠 수밖에 없는 속는 문제.
복음을 누리지 못하고 놓치는 속는 이유입니다. 인간관계 통해서 오는 문제들입니다. 가장 많이 있지요. 교회를 다니면서 성도라는 사람들이 결국 인간관계 문제, 그 한계를 넘지 못해서 낙심하고, 좌절하고, 상처가운데, 실망 가운데 살아가는 부분들을 많이 봅니다. 그래서 지난 날 나도 교회 다녔다고 이야기 하는 사람들 보면 결국 인간관계 통에서 무너져서 지금 교회 안 다니는 사람들이 태반이나 되어짐을 우리가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한결 같이 하는 말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결국은 불신자나 신자나 별 차이가 없다 라는 것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나도 교회 다녀보니까 불신자나 신자가 별 차이가 없더라는 겁니다. 오히려 신자들이 말을 함부로 하고 또 생각도 수준이하의 생각들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결국은 교회 다닐 필요가 없다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교회를 안 나가게 되었다라고 담대하게 이야기 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실 인간관계를 뛰어넘지 못하는 그 한계에 부딪혀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축복된 복음의 역사들을 누리지 못하는 그런 부분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람관계를 통해서 상처들을 많이 갖고 있어요. 그래서 예수 믿었던 사람들이 하는 말들입니다. 교인들 상대하지 마라, 아니 불신자들이 하는 말이 아니예요. 예수 믿었던 사람들이 현장에서 만나보면 교인들 상대하지 말라고, 믿을 바 못 된다고, 입만 살아있다고 그런 말 많이 듣잖아요. 그게 전부 다 인간관계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고, 그것 통해서 복음의 역사들을 놓치고 있는 부분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도 제자들을 부르실 때에 한결같이 다 세상에서 실패한 사람들이었어요. 그렇잖아요. 저 갈릴리 어부 출신들, 무식한 사람들, 배우지 못한 사람들, 성격 급한 베드로, 또 많은 문제를 갖고 있는 제자들, 하나같이 사실은 실패한 제자들을 예수님이 부르심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공생애 3년 반 동안에 제자들을 데리고 다니셨는데 그러나 여전히 변화지 않는 제자들의 모습을 보게 되어요. 여러분 특별히 마가복음10장에 보면 제자들 중에 예수님 앞에 나와서 이야기 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 우리에게 응답해 달라고 이야기를 해요. 너희들이 원하는 게 무엇이냐고 주님이 물었어요. 그때 야고보와 요한이 손을 번쩍 들고, 여러분 손 들었다는 말은 여러분에게 표현하기 위해서입니다. 주님 좋습니다. 하나는 주님 우편에, 하나는 주님 좌편에 앉게 하옵소서. 다시 말하면 하나는 주님의 좌의정에, 하나는 주님의 우의정에 앉게 하옵소서. 그러나 그 말을 듣고요, 예수님께서 너희가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도다 그러면서 중요한 복음에 대한 내용들을 말씀하시면서 하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야기 했는데, 그 제자들이 알아 들을 리가 없지요. 그런데 반응을 보인 나머지 제자들입니다. 마가복음10:41절에 보면 야고보와 요한의 말을 듣고 제자들이 화를 냈다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똑 같은 사람들이라는 뜻이지요. 야고보와 요한이 좌의정, 우의정을 요구한 것과 똑같이 다른 제자들도 자기 동기로 충만했던 사실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게 예수님의 제자들의 모습이었어요. 또 가룟 유다, 여러분 아주 똑똑하다고 하는 가룟 유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회계 업무를 맡겼잖아요. 그런데 3년 반 동안 예수님을 따라 다녔는데 마지막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자기의 동기가 충족되지 않으니까 은 30에 예수님을 팔아넘겼어요. 예수님을 팔아넘기고 결국은 자책감이 들어서 죄책감 속에서 자살한 사람이 가룟 유다예요. 여러분 도마는 어떠했습니까? 요한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제자들이 보았어요. 그런데 마침 그 자리에 도마는 없었어요. 이 충격적인 부활의 모습을 제자들이 보고 들뜬 나머지 도마에게 와서 이야기 했잖아요. 우리가 부활하신 주님을 보았다. 그때 도마가 뭐라 했습니까? 부활하신 주님을 믿은 것이 아니예요. 그 주님의 손바닥에, 그 옆구리에 내가 손을 만져보고 확인하지 않고서야 내가 믿을 수 없다라고 했어요. 그때 예수님께서 안 보고 믿는 자가 더 복이 있다고 도마에게 나타나셔서 옆구리에 손을 넣어 보라고 말씀하시면서 보고 믿는 자보다 안 보고 믿는 자가 더 복이 있다라고 말씀하신 부분들을 봐요. 그게 도마의 모습이예요. 그리고 나머지 모든 제자들도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는 죽음 앞에는 모두가 다 도망가 버렸어요. 그러면 예수님께서 그런 제자들의 특성들을, 그런 숨은 부분들을 모르고 부르셨겠습니까? 아니지요. 다 아시는 겁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모인 곳이 교회예요. 어떤 분은 그런 이야기를 해요. 교회는 종합 병동이다. 무슨 말이냐? 영적으로, 육신적으로, 정신적으로 너무 많은 어려움 당하는 모든 사람이 모인 곳이 교회다. 맞습니다. 교회는 어떤 특정계층이 모인 곳이 아니고요, 어느 누구나 올 수 있는 곳이 교회입니다. 가난한 자도, 못 배운 자도, 무식한 사람도, 없는 사람도 올 수 있는 곳이 교회이고, 또 부자도, 배운 사람도 그래서 하나 되어지는 곳이 교회라는 사실입니다. 마태복음에 보면 22장이지요. 예수님께서 천국을 비유하면서 임금이 종을 내어보냈습니다. 혼인 잔치를 열어놓고 많은 먹을 것을 준비해 놓고 손님을 청했습니다. 그런데 손님이 하나도 안 왔어요. 다시 임금을 종을 보내면서 나가서 손님을 데려오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이 종들이 손님을 구하기 위해서 나갔는데 그 종들을 맞이하는 그 손님들의 반응이 어떠했느냐? 한 사람은 그냥 밭에 나가고, 한 사람은 상업 차 나가게 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이 종들을 잡아 죽였어요. 그러니까 임금이 화가 나서 그 종들을 잡아 죽인 사람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살라 버렸어요. 그러면서 또다시 종을 보내어서 마태복음22:9절에 보면 사거리에 가서 아무나 데려오라고 했어요. 그래서 그 종들이 임금의 명령을 받고 사거리에 가서 사람들을 데리고 왔는데, 손님들이 가득 찼는데 가만히 보니까 거기에 선한 사람도 있고, 악한 사람도 있는 거예요. 여러분 그게 교회입니다. 특별한 사람, 인격 좋고 훌륭한 사람들이 모인 것이 아니라, 물론 그런 사람도 모일 수 있는 것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와서 하나 되어지는 곳이 교회예요. 그런데 많은 경우 교회 와서 이런 인간관계, 갈등들을 넘지 못해서 가장 중요한 복음을 놓쳐버린다는 거예요. 여러분 사람들은 다 영적인 문제들을 가지고 있잖아요. 어려운 문제들을 가지고 있잖아요. 어려운 문제 가지고 있지 않는 사람 하나도 없어요. 나름대로 어릴 때부터 문제들을 가지고 있고요, 자라면서 받은 상처들도 있고요, 남에게 말 못할 숨은 문제들도 있고요, 많은 문제들다 가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여러분 목사인 저 조차도 사실 설교할 수 있다는 것은 제가 훌륭하고 제가 죄가 없고, 제가 남들 보다 선해서 그렇습니까? 아니예요. 진짜 속을 들여다 보면요 가까이 할 수 없는 사람이 저예요. 이것은 제 자신을 합리화 시키는 게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문제있다라는 말이예요. 어느 누구하나 문제 없는 사람이 없어요. 그것을 단지 안 그런척 하고 포장하고 있을 뿐이지, 사실은 알고 보면 가까이 할 수 없는 사람들이 모두 다 예요. 그런데 그런 부분들 통해서 우리가 상처받고, 그런 부분들 통해서 우리가 낙심하고, 그런 부분들 통해서 우리가 실망한다면 중요한 것은 그냥 단순히 인간관계 실망하고 상처 받았다 그게 아니고 복음을 놓쳐버린다는 겁니다. 이게 사탄이 속이는 겁니다. 여러분은 사람을 살릴 자로 하나님께서 부르셨습니다. 믿습니까? 그렇다면 인간관계의 한계를 그 속에 부딪혀서 우리가 복음을 놓칠 것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힘을 얻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 축복된 사람을 살리는, 인간관계를 통해서 모든 사람을 살리는 힘을 회복하는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 다음에 복음을 놓치는 속는 부분이 뭐냐 하면 주변 환경들 때문입니다. 이 주변 환경들 때문에 어떤 면에서 우리 자신들이 신앙생활 속에서도 낙심하고 지치고 힘이 듭니다. 그렇잖아요. 가정의 문제들, 자녀의 문제들, 또 사업의 문제들, 가난한 것, 질병들, 자기가 원하지 않는데, 가난한 부분들, 자기도 원치 않게 어느 날 찾아온 질병들, 이게 바로 주변의 문제들 아닙니까? 자기 주변에 일어나는 문제들 아닙니까? 그러면 이런 부분들 때문에 실망하고, 낙심하고, 지치고 힘이 드는데 내게 있는 문제들이 사실은 당장 해결될 것 같은 기미도 안 보이고, 하루 이틀 있다가 해결되면 다행인데, 어떤 때는 내게 있는 문제들이, 주변의 문제들이, 가정의 문제들이 10년 갈 수도 있고, 20년 갈 수도 있고, 또 평생 가는 문제도 있잖아요. 그게 하루 이틀이지 우리에게 있는 문제들이 계속되어지면 그것을 통해서 오는 실망함과 피곤하고 지치고 힘든 부분들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런데 중요한 것은요 렘런트 7명들은 하나같이 주변의 환경들이 다 좋았던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만약에 요셉에게 있어서 환경들 때문에 하나님을 평가한다면 하나님을 안 믿어야 합니다. 그렇잖아요. 요셉의 환경이 얼마나 어려웠습니까? 구약의 어려움 당한 사람들 중에 대표적인 사람이 요셉인데 엄마가 네 사람이고, 배 다른 형제들이 10명이예요. 얼마나 가정이 시끄러워겠습니까? 그런 많은 주변의 문제들 때문에 하나님에 대해서 평가한다면 하나님을 안 믿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그것이 상관이 없었어요. 왜냐? 주변의 그 환경들이 요셉을 무너뜨리지 못했다라는 사실입니다. 또 친 부모와 살 수 없을 만큼 국가적인 위기 가운데 처했습니다. 누구입니까? 그게 바로 모세입니다. 입양아로 가게 되고요, 부모가 어쩔 수 없이 자녀를 버릴 수 밖에 없는 그런 위기 가운데 처한 것이 바로 모세였습니다. 부모에게 버림받을 수밖에 없는 거기에 처한 것이 바로 모세였습니다. 만약에 그런 환경들 때문에 실망하고 낙심하고 지치고 피곤했다면 모세조차도 하나님께 쓰임 받지 못했을 겁니다. 그런데 그 모든 사람들 하나같이 그 환경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있었어요. 그 환경들을 변화 시킬 수 있는 힘이 있었다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서 불신앙이 어디에서 옵니까? 왜 불신앙이 찾아옵니까? 힘이 없어서 그래요. 우리에게 찾아오는 모든 환경들 통해서 오는 불신앙은 힘이 없어서 그래요. 힘 있으면 되는 겁니다. 또 속는 부분이 뭐냐? 문제는 사람 관계도 관계고, 주변의 환경도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의 문제들 때문에 속아요. 자기 자신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특별히 말씀에 대한 부분들을 놓고 우리가 말씀 받을 때에 은혜 받는 것 같은데, 말씀 받고 나가면 다 잊어버리게 되고 말씀이 내 삶의 현장에 성취되어지고 또 그것을 응답으로 누리면 힘이 날 것인데, 뭔가 모르게 말씀 들을 때는 알 것 같은데, 듣고 나면 잊어버리게 되고, 말씀과 현장이 나하고 안 맞아 지는 것처럼 보이고, 그래서 사실 신앙생활 하면서도 얼마나 답답한 가운데 신앙생활 하고 있는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그런 고백들을 해요. 분명히 말씀을 통해서 은혜는 받는데 내 삶과 안 맞는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거기에서 오는 갈등들, 그것 때문에 오는 답답함이 너무 힘들다 라는 거예요. 그럴 겁니다. 여러분 말씀이 성취되어지고, 응답되어지면 힘을 얻게 되는데, 그렇지 못한 부분들 때문에 오는 여러 가지 갈등들, 또 실제로 기도만 되어져도 되는데 우리도 모르게 기도할 수 있는 힘도 없잖아요. 왜 기도할 수 없습니까? 나도 모르게 어릴 때부터 있었던 상처들, 자라면서 받았던 상처들, 또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든 부분들 때문에 내 영혼의 상태가 기도할 수 없을 정도로 황폐해 있다라는 것, 기도만 해도 되는데, 기도할 수 없을 정도로 내 영적인 상태가 황폐해져 있는 부분들을 봐요. 그러면서 사람 관계를 통해서 만남의 축복을 회복해야 되는데 그것도 다 놓치고 살아가요. 그러니까 사람을 통해 상처받다 보니까, 시험들다 보니까 사람에 대한 마음이 닫혀지고 그 사람에 대한 마음이 닫히는 부분들이 전도하고자 하는 마음조차도 닫혀버리는 그렇게 되어지니까 결국은 어떻게 되느냐? 자기 자신의 신앙생활도 겨우 명목을 유지하며 신앙생활 하는, 어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신앙생활 조차도 지키지 못하는 그런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모든 인간 관계, 주변의 환경들, 자신의 문제들, 사실 이게 맞다고 생각하십니까? 이것 때문에 영적인 힘을 잃어버리고 이것 때문에 마음과 생각이 무너져내리고 이것 때문에 결국은 사실은 우리가 사단의 통로가 열리는 부분들인데 그렇다면 우리가 늘 사람 관계 때문에 시험 들어야 하겠습니까? 주변 환경들 때문에, 자기 자신들 때문에 힘 빠져야 하겠습니까? 그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사실은 모든 사람 관계에서 시험 드는 부분들 속에서 이길 수 있는 힘이 있으면 되는 것이고 여러분, 우리 자신의 모든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힘이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진짜 참된 모든 환경을 이길 수 있는, 사람 관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오히려 사람을 살릴 수 있는 힘들을 회복함으로 속지 않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진짜 복음이 가슴에 담겨져야 함
그러면 이 참된 힘은 어디에서 오느냐? 참된 힘은 어디서 오느냐? 여러분, 우리의 마음 속에 복음이 담기는 데서 참된 힘이 나옵니다. 다른 데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저와 여러분의 마음 중심에 복음이 가슴에 담기는 마음만큼 그 속에 사람들이 알 수 없는 힘들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다른 말로 하면 복음이 각인, 체질, 뿌리내리는 만큼. 복음이 각인, 채질, 뿌리내리는 만큼 사실은 그 속에서 참된 힘이 나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복음보다 능력 있는 것이 없고 복음보다 강한 것이 없고 복음보다 가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진짜 우리가 복음이 우리 마음에 담기고 그 마음에 담긴 복음이 누려지는 만큼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위로부터 하나님이 주시는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여러분, 시대가 바뀌고 역사가 바뀐다 할지라도 복음의 본질은 바뀌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3:8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아무리 역사가 바뀌고 시대가 바뀐다 할지라도 복음의 변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 그렇다면 변하지 않는 이 복음 안에 깊이 각인, 뿌리, 체질 되도록 우리의 마음과 중심이 복음 속에 담기도록 인도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복음이 각인, 뿌리, 체질 되기 이전에 먼저 우리가 이 복음이 각인 되고 체질 되고 뿌리내리기 전에 알아야 할 부분이 있는데 여러분, 인간의 근본 문제도, 시대가 달라져도 인간의 근본 문제도 바뀌지 않습니다. 그 인간의 근본 문제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을 떠난 원죄 문제입니다. 로마서 3:23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바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이 죄는 하나님을 떠난 원죄 문제입니다. 이것은 시대, 역사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바뀌지 않는 인간의 근본 문제입니다. 이 원죄 문제, 그래서 로마서 5:12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여러분, 하나님을 떠난 원죄 문제로 말미암아 우리 인간에게 찾아온 것이 바로 영적 사망 상태에 빠진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5:12에 하신 말씀이 그것입니다. 한 사람이 범죄함으로 죄가 들어오고 그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다. 영적인 사망이 온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다, 아담이 지은 죄인데 거기 바로 이어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다. 이 죄는 무엇을 말합니까? 하나님 떠난 원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에게 사망이 이르렀다. 모든 사람은 영적인 사망 가운데 빠져서 그 결과로 이 땅에 살아가는 인생이 결국은 사단의 노예 되어서 인생을 살아갑니다. 이것을 세상 사람들은 사주팔자, 운명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사주팔자, 운명 가운데서 살아갑니다. 사단의 노예됨으로 말미암아 거기서 나오는 것이 우리가 인생의 열두 가지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그게 뭡니까? 계속 우리가 말씀 듣습니다만 결국은 나를 중심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고 세상 물질 위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고 성공 위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러다 보니 나의 모든 중심은 우상 숭배에 있고 점하고 굿하는 데 있고. 왜냐? 잘 되어야 하니까. 그런 가운데 나도 모르게 사단의 손에 완전히 장악되어서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육신적으로, 내세에, 자녀에게, 후대문제, 온갖 문제들 다 안고 살아가는 겁니다. 그래서 지옥 가기 전에 지옥 같은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결국은 원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영적인 사망이 선포되었고 그 결과로 결국은 사단의 노예 되었기 때문에 그 속에서 일어나는 인생의 문제는 어느 누구도 해결할 수 없고 어느 누구도 빠져나올 수 없고 피할 수 없는 문제라는 것. 아무리 역사가 바뀌어도, 아무리 시대가 흘러간다 할지라도 인간이 갖고 있는 근본문제는 아담 때나 지금이나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유일한 복음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복음은 유일한 복음입니다. 아담이 이 영적인 문제 속에 빠져 있을 때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3:15에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무슨 말입니까? 아담에게 있는 영적 문제 해결하신 분이 그리스도밖에 없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적 사망에 빠진 사람이 거기서 빠져나올 수 있는 길이 그리스도밖에 없다는 사실, 그게 바로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한다는 말입니다. 아담이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두려움과 괴로움이 마음 속에 찾아 왔습니다. 그 두려움과 괴로움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이 바로 그리스도밖에 없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그것도 여자의 후손입니다. 아담의 후손이 아니라, 남자의 후손이 아니라 여자의 후손입니다. 왜냐? 남자의 후손은, 모든 인간은 결국 남자의 후손으로 태어나는데 그것은 바로 죄를 가지고, 원죄를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그래서 죄가 없으신 분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 죄를 위해서 죽으셨는데 죄가 없으신 분이 오신 그것이 바로 여자의 후손으로 오셨다 이 말입니다. 다른 것으로는 우리에게 있는 영적인 문제, 우리에게 있는 영적 사망의 문제, 그 결과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삶의 고통하는 문제들, 영적인 저주와 고통의 문제들, 해결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일한 이름, 여자의 후손, 오직 그 한 이름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착한 일을 한다고 해서, 선한 일을 한다고 해서, 여러분, 우리가 의로운 일을 한다고 해서, 우리가 업적을 많이 쌓는다고 해서,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원죄 문제, 영적 사망의 문제 속에서, 영적 사망 상태에 있는 고통과 저주 속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줄 아십니까?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겠다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신 그 이름을 우리는 붙잡아야 하는 것입니다. 홍수로 멸망 받는 노아 시대에 하나님은 네가 인격이 좋아서 내가 너를 구원하겠다, 아닙니다. 수영해서 홍수에서 빠져나와라, 아닙니다. 홍수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을 주셨는데 창세기 6:14에 방주 안에 들어가라 했습니다. 유일한 것입니다. 시대가 흐르지만 유일한 겁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실은 힘이 없어서 출애굽하지 못한 게 아닙니다. 출애굽이 1장, 2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서 사실은 이스라엘 백성이 번성했다 말씀했지 않습니까? 힘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굽에서 노예살이로부터 빠져나오지 못했습니다. 언제 빠져나왔습니까? 힘이 없어서 못 빠져나온 게 아닙니다. 언제 빠져나왔습니까? 출애굽기 3:18에 희생제사의 비밀을 알게 되었을 때. 유월절 어린양의 피의 비밀, 그 비밀을 알게 되었을 때 애굽에서 빠져나오게 된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7:14에 하나님이 이사야 선지자에게 말씀했습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라. 여러분, 처녀가 잉태해서 아들을 낳는다? 과학적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어떻게 처녀가 잉태해서 아들을 낳습니까? 여러분, 상식적으로도 안 맞는 말입니다. 종교적으로는 더합니다. 그 당시에 여러분, 어떤 면에서 여러분, 처녀가 아이를 가지면 돌에 맞아 죽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분명히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다, 이 언약을 이사야는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이 언약을 붙잡은 것입니다. 어떻게 확신했느냐? 아, 창세기 3:15에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 언약이 바로 이 언약이구나. 이 이사야 선지자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신앙 고백을 할 때마다 고백을 하지요.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같은 말입니다.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동정녀 탄생, 여자의 후손, 처녀가 잉태하여, 같은 말입니다. 우리에게는 유일한 복음, 오직 그리스도 그 이름을 주셨다는 것. 다른 것으로는 절대로 구원받지 못합니다. 우리가 멸망에서, 사망에서 생명을 얻는 이름이 그리스도요, 지옥의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 되는 그 이름을 그리스도요, 죄로 말미암아 저주, 재앙, 사주팔자, 운명에서 해방되는 이름이 그리스도입니다. 그 이름, 유일한 이름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우리에게 완성하셨는데 베드로가 고백했습니다. 마태복음 16:16에 보면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그 모든 구약에 예언된 그 이름을 완성하신 이름이 뭐냐? 그리스도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로마 시대, 중세 로마 시대 복음을 놓쳐 버리고 모든 교회들이 종교화되어 버렸습니다. 어느 정도냐? 여러분, 성경유오설을 주장했습니다. 성경에 오류가 있다! 또 한편으로 들고 나온 것이 뭡니까? 교황은 흠이 없다! 교황무오설을 주장하면서 중세 교회가 완전히 종교로 빠져들었습니다. 그 때에 마틴 루터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 언약 붙잡고 종교 개혁을 일으킨 사실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지금 시대는 어떻습니까? 정치도 문화도 사회도 경제도 발전합니다. 의술도 발전합니다. 지식도 발전합니다. 지금 어떤 면에서 의술이 어느 정도 발전하느냐? 여러분, 피를 가지고 모든 병들, 무엇이 왔는가를 알 수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가면 갈수록 의술이 발전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우리도 알지 못하는 불치병들이 더, 또 고질병들이 더 많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식도 하루가 다르게 빨리 성장합니다. 발전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식이 그렇게 발전함에도 불구하고 가면 갈수록 결국은 허무함과 공허함 속에 빠져드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실은 우리에게 유일한 복음을 주셨는데 이 복음의 역사를 놓쳐버려서 그렇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붙잡을 언약이 있다면 다른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주신 복음은 유일한 것입니다. 믿습니까?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적이 없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구원 받습니다.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죄 문제 해결 받고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하나님 만나게 되고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사단의 운명 가운데 빠져나옵니다. 유일한 이름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이 복음의 본질은 역사가 흐르고 시대가 바뀌어도 바뀌지 않습니다. 유일한 복음을 주셨는데 그 복음의 본질은 역사와 시대가 바뀌어도 바뀌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시 말씀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동일하시다. 복음의 본질은 바뀌지 않습니다. 복음의 본질이 뭐냐? 대표적으로 로마서 1:2~4입니다. 봅시다. 로마서 1:2~4 같이 한번 읽어 봅시다.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할렐루야! 무슨 말입니까? 복음의 본질이 무엇임을 말하고 있습니까? 여기에 바울이 복음의 본질에 대해서 정확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인데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리스도가 오셨다는 것, 그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능력으로 우리의 모든 문제 해결했다는 것, 그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지금 우리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을 주셨다는 것, 이게 복음의 본질입니다.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오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그 십자가의 능력으로 우리의 모든 문제를 그리스도께서 해결하셨고 그 그리스도께서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데 생명으로 함께 하신다는 것, 이것이 바로 복음의 본질입니다. 이 복음의 본질이 아담 때나 지금이나 바뀌지 않는다는 것, 변하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동일하시다 했습니다. 그 복음의 본질 그리스도 약속 붙잡고 나아가는 걸음걸음마다 분명한 것은 성령께서 역사하시고 흑암과 저주와 재앙의 세력들이 무너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복음의 본질은 바뀌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주시는 복음의 능력 또한 시간이 지나도, 시대가 흘러도, 바뀌지 않습니다. 변하지 않습니다. 예전에도 그리스도 믿고 구원 받고 하나님 자녀 되고 죄 문제 해결 받은 것처럼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 믿는 자에게 하나님 만나는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요한복음14:6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했습니다. 바로 하나님 만나는 능력이 되시는 이름이 그리스도 이름입니다. 죄의 권세 속에서 어떻게 빠져나옵니까? 여러분, 죄는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권세라 합니다. 그래서 모든 인간들이 죄의 권세 아래 사로잡혀 가지고 마귀의 종노릇하면서 살아가지 않습니까? 그 죄의 권세에서 어떻게 빠져나옵니까? 거기서 빠져나올 수 있는 능력이 바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단의 운명 가운데 어떻게 빠져나옵니까? 요한일서 3:8에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지금도 하나님 만나는 길은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죄 문제 해결 받을 수 있는 길은 지금도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사단의 세력이 꺾이는 것은 지금도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사람 관계의 문제들, 갈등할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 주변의 문제들, 갈등할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 이런저런 어려움들, 갈등들, 그 부분들 때문에 오는 문제들, 그 속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복음은 그 모든 것들을 뛰어넘을 수 있는 능력으로 지금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천 년 전에 죽은 그리스도라 아니라, 이천 년 전에 십자가에서 죽은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 그리스도는 부활하셔서 지금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능력으로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5장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5:7에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아무것도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 복음의 능력으로, 변하지 않는, 바뀌지 않는, 그 복음의 능력으로 지금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요셉은 이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노예로 가도 괜찮았습니다. 다니엘도 이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다니엘이 사자굴에 들어가도 괜찮았습니다. 여러분, 초대교회 성도들을 보십시오. 로마가 정치를 가지고 압박하고 유대 종교를 가지고 핍박하고 많은 어려움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초대교회가 그 어려움 가운데 무너졌습니까? 아닙니다. 복음의 능력 가진 초대교회가 결국은 로마를 살렸던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유일한 복음은 그 복음의 본질이 바뀌지 아니하고 복음의 능력도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마지막입니다. 복음의 가치 또한 변하지 않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여러분, 정말로 복음을 어느 정도 가치 있는 것으로 여러분, 붙잡고 있습니까? 특별히 여러분, 우리 자녀들, 우리의 필요를 위해서 자녀를 둔 것이 아니잖아요? 자녀들은 우리에게 있어서 절대 가치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자녀들은 우리에게 있어 절대 가치입니다. 내가 필요하기 때문에 자녀 낳아야 하겠다. 그래서 자녀 낳은 것이 아닙니다. 절대 가치로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절대 가치가 있습니다. 바로 그 하나님의 절대 가치가 무엇이냐? 저와 여러분입니다. 요3:16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나뿐인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시기까지 나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래서 나 자신은 하나님 앞에서 절대 가치 있는 자입니다. 믿습니까? 이 사실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절대 가치 있는 사람으로 부르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또한 복음을 절대 가치 있는 것으로 붙잡아야 합니다. 내가 필요해서 복음을 붙잡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외로워서, 힘 얻기 위해서 복음을 붙잡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쓸쓸해서, 내가 많은 문제들이 있어서 그 문제 해결을 위해서 마치 세상 사람들이 알라딘의 램프를 건드리는 것처럼 그런 식으로 복음이 필요해서 우리가 붙잡는 게 아닙니다. 복음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복음은 우리에게 모든 것입니다. 생명 걸 가치가 있습니다. 그 안에 참된 행복이 있고 그 안에 참된 힘이 있는 것입니다. 참된 유일한 복음을 가지고 그 복음의 본질과 복음의 능력과 복음의 가치가 변하지 않는 것을 아시고 이 복음 안에 주어지는 힘을 가지고 세상 현장에서 승리하는 축복된 응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히브리서 13:8에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했습니다. 유일한 복음을 우리에게 주셨고요. 그 복음의 본질과 복음의 능력과 복음의 가치는 변하지 않고 바뀌지 않아요. 그렇다면 우리가 누려야 될 부분이 있다면 하나님이 주신 이 복음을 누려야 합니다. 그리고 이 복음의 역사를 누리면 누릴수록 그다음에 보여지는 것이 있어요. 세상의 모든 것 있는데, 결국은 한 가지 이 복음 없어서 모든 개개인들이 죽어가고 있구나. 보여지게 됩니다. 교회조차도 복음만 선포해야 될 교회조차도 좋은 것 많이 하는데, 이 복음 한 가지 없어가지고 교회가 어려움을 당하고 문제 당하고 결국 교회조차도 문을 닫고 있구나. 여러분 유럽교회, 미국 교회 이미 문 다 닫았잖아요. 한국 교회도 멀지 않았어요 많은 교회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얘기합니다. 한국 교회도 멀지않았다고요 그나마 지금 복음의 역사들이 선포되고 있는 것이 참 다행이고 감사한 일입니다. 그런데 교회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이야기하고 있는 부분들이 한국 교회가 멀지 않았는데 한국교회는 미국과 유럽이 무너지는 것보다 더 빨리 더 급격하게 무너진다고 했어요. 정말로 복음에 본질과 능력과 복음의 가치를 깨닫고 누리면 누릴수록 세상의 문제는 다 가지고 있는데 단 한 가지 복음 없어서 멸망 받고 있고, 교회조차도 복음만을 선포해야 될 교회가 이 복음을 놓치고 있기 때문에 우상 시대 위기와 재앙을 맞이하고 있구나. 그래서 하나님 원하시는 소원이 있습니다. 그게 뭡니까? 이 복음의 역사를 계속할 우리의 후대들을, 이 복음의 역사들을 바르게 말할 지도자들을 주의 종들을 세워 나가는 겁니다. 이 복음 말하는 전도하고 선교하는 교회를 하나님께서 원하시고요 이 일을 위해서 정말 복음만을 말하는 주의 종들을 세우는 것, 복음만을 말하는 많은 지도자를 세우는 것 복음 운동 할 수 있는 우리 후대들을 세우는 것 그것 가지고 RUTC 운동이라 하고 그걸 가지고 그 일을 위해서 RU를 세웠습니다. Remnant University라 해서 RU를 세웠습니다. 오늘 우리가 RU주일로 하나님께 드려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과 통하는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통하는 길이 있어요 하나님과 통한다면 개인과 가정과 산업에 하나님이 책임지실 것 아닙니까? 하나님과 통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내가 복음 알고 누리고 체험함으로 말미암아 지금 복음이 없어서 멸망 받는 세상에 복음 전하기를 원하고 교회조차도 복음 없어서 위기시대, 재앙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이때에 올바른 복음을 전하기를 원하고 이일을 위해서 일꾼을 세워나가길 원하십니다. 이게 하나님과 통하는 길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6,13 선거를 앞두고 우리 시의원 후보 두 분이 오셨고요 구청장 후보 한분이 참여했습니다. 특별히 좋은 일들을 많이 해야 하고 하실 분들입니다. 중요한 것은 세상의 좋은 일들 훌륭한 일들 많은 업적을 남기지 못해서 세상이 어려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 다 있어요 세상은요 그런데 한 가지 복음 없어서 지금 무너지고 있습니다. 오늘 세분 참여한 분들을 한분은 어릴 때 감리교회에서 세례를 받으셨고, 한분은 목민교회 안수집사님으로 계시고 또 한분은 봉덕교회 장로님으로 이렇게 계시는데 신앙생활에 대한 것들을 아시잖아요 교회를 아시잖아요 중요한 것은 진짜 유일한 복음 가지고, 복음의 본질과 능력과 복음의 가치를 가지고 세상을 살리는 일에 쓰임 받도록 우리가 이 분들 위해서 기도해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이분들이 정말로 복음 가지고 복음 안에서 주시는 참된 힘을 가지도록 기도 하셔야 됩니다. 그래야 이 분들 통해서 결국은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일에 쓰임 받을 것 아닙니까? 이런 엄청난 축복들이 이 자리에 앉은 모두에게 함께 임하는 귀한 축복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8년 6월 10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평생, 영원히 붙잡을 언약
(히13:8)
서론: 응답을 받을 수 있는 차이가 있습니다. 참된 응답과 승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오게 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복음을 가지고, 누리는 것에 많은 부분이 좌우 됩니다. 복음의 가치를 누리고 깨닫는 만큼 영적인 힘이 있게 되고, 마음과 생각이 하나님의 다스림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육신조차도 힘을 얻게 됩니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누리는 응답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1. 복음을 놓칠 수 밖에 없는 속는 문제
가. 사람 때문에 겪는 문제, 실망(인간관계의 문제)
1)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실 때 실패자들을 부르심 - 개인의 동기로 충만, 부활 사건을 믿지 못 함
2) 누구나 영적문제를 가지고 있음 - 포장하고 숨기고 있음
3) 인간관계를 통해 복음을 놓치도록 만듬 - 사람을 살리는 힘을 얻어야 함
나. 주변 환경 때문에
1) 가정문제, 질병, 가난 - 낙심, 지치고 힘이 듬
2) 요셉(가정의 문제), 모세(국가적 위기 때문에 입양아) - 이길 수 있는 힘이 있었음
다. 더 큰 것 - 자기 자신임
1) 말씀은 맞는데 내 삶과 맞지 않음
2) 기도가 안 될 만큼 영적상태가 황폐해짐
3) 만남의 축복을 누리지 못 함 - 전도할 마음이 없이 자신의 신앙도 지키지 못 함
2. 진짜 복음이 가슴에 담겨져야 함 - 복음이 각인, 뿌리, 체질
가. 인간의 근본문제는 절대 바뀌지 않음
1) 하나님을 떠난 원죄(롬3:23)
2) 죄로 인해 영적인 사망(롬5:12)
3) 사단의 노예 되어 살아가는 삶(사주, 팔자, 운명) - 인생의 12가지 문제
나. 문제를 해결 하기 위해 유일한 복음을 주심
1) 여자의 후손을 약속(창3:15) 2) 방주의 언약(창6:14) 3) 희생제사, 유월절 어린양의 피(출3:18)
4) 임마누엘(사7:14) 5) 모든 것을 완성하신 그리스도(마16:16) 6) 복음이 종교가 된 중세시대에 종교개혁(롬1:16-17)
7) 의학인 발전하지만 불치병, 지식이 발전하지만 허무와 공허함이 오게 됨(유일한 그리스도)
다. 복음의 본질은 변하지 않음(히13:8)
1) 성경대로 그리스도가 오심, 십자가의 능력으로 모든 문제 해결, 생명으로 함께 하심(롬1:2-4)
2) 그리스도의 이름 붙잡을 때 성령 역사, 흑암이 무너짐
라. 복음의 능력이 변하지 않음
1) 하나님을 만나는 능력(요14:6)
2) 사단의 운명에서 빠져 나옴(요일3:8)
3) 죄 문제 해결(롬8:2)
마. 복음의 가치는 변하지 않음 - 복음은 우리에게 모든 것(생명 걸 가치, 최고의 행복과 힘)
결론: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십니다(히13:8). 복음의 본질, 능력, 가치는 변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복음만 누려야 합니다. 세계교회도 복음이 없어서 문을 닫고 재앙을 막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소원은 복음만을 말하는 후대들과 지도자, 주의 종을 세우는 것입니다. 복음의 본질과 능력, 가치를 가지고 세상 살리는 응답 누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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