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예수께로 나아가자
2018-06-1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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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7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예수께로 나아가자”
(히13:11~13)


11 이는 죄를 위한 짐승의 피는 대제사장이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고 그 육체는 영문 밖에서 불사름이라
12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13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 히13:11~13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예수를 바라보십시다. 우리가 영원히 부를 이름이 무엇이라고요? 예수는 그리스도! 그렇습니다. 오늘도 그리스도 이름으로 하나님의 성령께서 역사하실 줄 믿습니다. 오늘도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하늘 군대가 동원되어지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오늘 이 자리에 앉았지만 우리가 관계된 모든 현장에 흑암의 저주와 재앙과 실패의 역사들이 무너질 줄로 믿습니다. 영원히 부를 이름, 예수는 그리스도! 오늘도 그 그리스도 이름으로 승리하는 그런 예배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히브리서 지금 계속해서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가운데서 히브리서의 전체 주제는 예수가 그리스도 되시는 사건인데, 그리스도의 우월성과 또 그리스도의 유일성에 대한 부분들을 계속해서 매장 마다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에도 보면 13절에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요. “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그리스도의 유일성에 대한 부분들을 이야기하고 있는 부분들입니다. 특별히 이 본문과 연결되어지는 찬송이 있습니다. 제가 그 찬송을 함께 부르려고 생각 하다가 보니까 곡이 너무 어려워요 가사는 참 은혜 되는데, 곡이 너무 어려워요 그래서 모두가 헷갈리고 헤멜 것 같아서 그 곡을 정하지 않았습니다마는 158장입니다. 주기철 목사님이 작사한 것인데요, 일사각오의 정신이 담겨져 있는 내용입니다. 사실 우리 한국교회 많은 순교의 피가 흘려졌었지요. 우리 선진들이 순교의 피를 흘림으로 말미암아 교회를 지켜왔는데 그 선진들이 믿음의 영적인 싸움을 싸우면서 그들이 계속해서 불렀던 찬송 중에 한 부분입니다. 이게 지금 우리 찬송가 안에 들어와 있는데 사실 아마 신앙생활 오래 하신 분들은 이 곡을 아실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는 그 곡이 아니예요. 가사는 같은데 곡은 그게 아니예요. 그래서 제가 찬송가 반주기에 들어가서 한번 불러야 되겠다 싶어서 몇 번 틀어 봐도 제가 못 따라하겠어요. 그래서 그것을 부르지 않았는데 가사를 한번 보십시다. 158장인데요, 1. 서쪽 하늘 붉은 노을 언덕위에 비치누나 연약하신 두 어깨에 십자가를 생각하니 머리에 쓴 가시관과 몸에 걸친 붉은 옷에 피 흘리며 걸어가신 영문 밖의 길이라네. 아마 보시면 오래 신앙생활 하신 분들은 아!~~하며 생각 나겠지요. 한 절 한 절이 참 중요한 것인데, 3절에도 보십시오. 눈물 없이 못 가는 길 피 없이는 못가는 길 영문 밖의 좁은 길이 골고다의 길이라네 영생의 복 얻으려면 이 길만을 걸어야해 배고파도 올라가고 죽더라도 올라가세. 아멘.
가사들 한 구절 한 구절들을 보면 참 우리의 선진들이 얼마만큼 십자가의 그 길을 걸어가면서 믿음의 싸움을 싸웠던 것인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지요. 오늘 13절 다시 읽습니다. 이번 주 주제라고 생각하시고 여러분 암송하시기 바랍니다. 같이 한번 읽어보십시다. “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무슨 말입니까?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서 골고다 언덕에서 지금 말하면 갈보리산입니다. 해골이라는 뜻을 가진 골고다 언덕에서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그 예수께로 나아가자 이 말입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을 보면 구약시대의 제사제도를 이야기 하면서 결국은 그 제사 제도의 성취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사실들을 말씀하고 있는데요. 히13:11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지요. “이는 죄를 위한 짐승의 피는 대제사장이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고 그 육체는 영문 밖에서 불사름이라”제사를 지내기 위해 짐승을 잡아서 피를 내고 그 피는 성막 안에 지성소 안에 뿌리고요, 그 육체는 영문 밖에서 불사르는 것입니다. 이게 구약의 제사에서 나온 부분들인데, 그래서 구약의 제사에 대해서 성경에서 잘 말하고 있는 부분들이 레위기서에 나오는데 레16:27~28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속죄제 수송아지와 속죄제 염소의 피를 성소로 들여다가 속죄하였은즉 그 가죽과 고기와 똥을 밖으로 내다가 불사를 것이요 불사른 자는 그의 옷을 빨고 물로 그의 몸을 씻은 후에 진영에 들어갈지니라”말씀했습니다. 성소에 피를 뿌리고 모든 가죽, 고기, 심지어 똥 모든 이런 부분들은 밖에다가 성문 밖에 가서 불사를지라 그리고 다시 불사른자는 그 몸을 깨끗게 하기 위해서 물로 그의 몸을 씻은 후에 진영 안으로 들어갈 지니라 말씀했습니다.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 부분들이 레4:11~12절인데요 제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그 수송아지의 가죽과 그 모든 고기와 그것의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과 똥 곧 그 송아지의 전체를 진영 바깥 재 버리는 곳인 정결한 곳으로 가져다가 불로 나무 위에서 사르되 곧 재 버리는 곳에서 불사를지니라”피는 성소안에 뿌리고 모든 고기들은 가죽들, 내장들, 심지어 똥 조차도 부산물들은 성문 밖에서 불사르라 지금 말로 하면 쓰레기 소각장이 따로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여기 보면 재 버리는 곳이라 이야기 하고 있지요. 그러면 이 성소에 피를 가지고 들어가고 그 육체는 영문 밖에서 불사르라고 했는데, 결국 누구를 말하느냐? 12절에 거기에 대한 답을 말씀하고 있어요.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무슨 말입니까?예수그리스도의 죽음을 예표하고 있는 것이지요. 구약에 사실 피를 뿌리고 성문 밖에서 불사르는 이 모든 것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예표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육체가 진영 밖에서 불살라진 것은 장차 골고다 언덕에서 예수그리스도의 죽음을 예표함이 성취됨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성문 밖에서 골고다 언덕에서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육체의 고난을 당하시고, 찢기시고, 죽으신 것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그 고난에 대한 부분들을 어떻게 표현했느냐 13절에 보면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그렇게 표현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모든 문제를 골고다 언덕에서 피 흘리시고 살 찢기심으로 말미암아 다 해결했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께 나아가자, 그에게로 나아가자 이 말은 예수께로 나아가자 이 말입니다. 오늘 이 한날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골고다 언덕에서 다 해결하신 예수께로 정말로 저와 여러분이 나아가는 그런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영원히 동일하신 그리스도
그러면 먼저 예수께로 왜 나가야 되느냐 이 땅에 영원히 동일하신 분은 오직 그리스도 밖에 없는 것입니다. 지난 주 우리가 말씀을 살펴 보았습니다마는 지난 주에는 평생, 영원히 붙잡을 언약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그렇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다 변합니다. 그리고 변해야 되고요, 직장도, 사업장도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합니다. 다 변합니다. 그런데 그런 변화되는 세상을 따라가지 말라 라고 오늘 읽지는 않았습니다마는 세상을 따라가지 말고 영원히 동일하신 그리스도를 붙잡으라고 오늘 성경에 말씀하고 있는데요, 세상은 어떤 세상인가를 말씀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세상은 다 변하고 그 세상을 따라가지 말고, 거기에 속지 말고 결국은 그 속에서 승리할 것을 말씀하고 있는데 4~5절을 한번 보십니다. 세상을 따라가지 말라는 부분들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가 하면 히13:4~5“모든 사람은 결혼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요. 무슨 말입니까? 사실은 사람들이 결혼들이 귀하게 여겨지지 아니하고 그래서 결국은 침소를 더럽히게 되고 음행하는 자들이 일어나고, 간음하는 자들이 일어나고 그게 지금 세상이 움직이는 부분들 아닙니까? 그리고 돈을 사랑하게 되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지 못하고 소유의 욕심에 따라서 우리가 할 짓 못할 짓 다 하면서 살아가는 이런 세상 아닙니까? 이런 세상을 따라가지 말라는 거예요. 영원히 동일하신 그리스도를 붙잡지 이런 세상을 따라가지 말라고 오늘 4~5절에 말씀하고 있는 부분들입니다. 성도들의 어려움이 어디 있느냐? 성도들의 실패가 어디에 있느냐? 세상에 속한 자이지만 우리는 하늘의 배경을 가지고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며 살아가야 되는데, 세상에 속한 자로서 세상 따라가는데 우리 성도들의 실패가 있어요. 세상 따라가는데, 결국은 성도들이 세상 따라가면 세상의 종노릇 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결과적으로 실패하는 인생이 되어지는 거예요. 그런데 오늘 분명한 것은 오늘 세상에지지 말고 세상에서 승리하라고 이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중요한 것은 우리가 우리에게 주신 엄청난 축복이, 그리스도 안에 어마어마한 영적인 축복이 주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확인하지 못하고, 그 사실을 체험하지 못하고 맛보지 못하니까 우리도 모르게 세상 안 따라가려고 해도 세상이 너무 커 보이니까 따라갈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래서 세상 따라가다가 다 실패하는 인생이 되어지는 겁니다. 우리 렘런트들이 이 자리에 많이 참여했습니다. 부모님들이 렘런트들에게 말씀 전달할 때도 이것 하지 말라 저것 하지 말라, 어떤 면에서 그런 부분들보다도 우리 아이들이 먼저 문화상으로 세상 따라갈 수밖에 없는 그런 문화들 아닙니까? 그러면 앞으로 결과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많은 영적인 문제를 가져올 수밖에 없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왜 우리 렘런트들이 어릴 때는 나름대로 부모님 말씀 잘 듣고 신앙생활 제대로 하다가 시간 가면 갈수록 교회를 등지게 되느냐? 결국 교회 다녀 봐도 별 스럽지 않다라는 거예요. 오히려 세상 것이 더 재미있고, 그래서 세상 따라가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어느 정도 대학, 청년들 되면 교회를 다 떠나게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진짜 어릴 때부터 가장 중요한 것이 부모인 저와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이고 우리 렘런트들도 마찬가지이고, 복음 그리스도 안에 세상 것보다 더 축복된 하나님의 영적인 축복이 있음을 진짜 맛을 보면 세상 따라가라 해도 따라가지 않게 되어요. 정말 이 눈이 열려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모두가 세상을 따라갈 수밖에 없어요. 렘런트들도 따라갈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실컷 고생하고 나중에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이 되어지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분명히 그리스도 안에는 어마어마한 영적인 축복이 있잖아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신 엄청난 영적인 축복이 세상을 살리고도 남을 수 있는, 세상에서 맛보지 못하는 그런 엄청난 축복과 감사와 희열과 기쁨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데 그 사실에 대한 체험이 확인 안 되어지니까 우리 신앙생활이 늘 세상 따라가는 신앙생활이예요.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래서 실컷 고생하고 죽어라고 고생하고, 나중에 가서 실패하는 인생이 되어지는 거예요. 이런 억울한 일을 우리가 당해야 되겠습니까? 그러면 오늘 본문에 보면 세상을 따라가지 않고 승리할 수 있는, 세상을 따라가지 말라하는 그 이유를 말씀하고 있는데 왜 세상을 따라가지 말라 하느냐? 우리에게 주어진 축복이 더 크다 라는 거예요. 세상에서 주어진 것보다 더 크다 라는 겁니다. 그게 바로 5~6절입니다. 5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지요.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할렐루야! 여러분 이것이 어떻게 여러분에게 들려집니까? 어떻게 여러분에게 붙잡혀 집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끝까지 책임지시기 위해서, 또 다른 보혜사 요한복음14:16절이지요. “성령을 우리에게 주사 우리와 함께 우리 속에 영원히 함께 하시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결코 너희를 떠나지 않고 버리지 않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그 이름 안에 어마어마한 축복이 담겨져 있는데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나갈 때마다 성령께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성령의 역사가 능력으로 나타나는 삶이 되게 되어 있어요.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나가는 곳마다 성령께서 지금 함께 하시는 일들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1:8절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무슨 말입니까? 진짜 우리가 성령충만함 속에 들어가면 땅 끝까지 살릴 수 있을 정도로 그런 어마어마한 축복과 능력이 우리에게 주어진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다 놓치고 살아가니까 세상에서 영적인 거지로, 세상을 정복해야 될 하나님의 사람들이 세상을 따라가며 세상의 종노릇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따라가지 말라 하면서, 세상에 지지 말라 하시면서,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비밀, 세상을 따라가지 않아도 될 이유들을 말씀하고 있는데 6절입니다. 6절 보십시오.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 믿습니까? 사람이 우리를 어찌할 수 없다라는 거예요. 왜냐?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그 창조주 하나님이 나를 돕는 자 중에 계시다 말씀하고 있어요. 이런 어마어마한 축복이 누구 안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거예요. 영원히 동일하신 그리스도 안에 이런 어마어마한 영적인 축복이 있는데 이 축복을 다 놓치고 살아가니까 세상이 좋아라 하고, 세상 따라가고, 세상에 지고, 세상에 속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께서, 하나님께서 나를 돕는 자 중에 계시다. 성경에 보면 요한복음 10:28~29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할렐루야! 만물보다 크신 하나님이 나를 돕는 자 중에 계시기 때문에 아무도 나를 빼앗아갈 자가 없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롬8:31~39절에 중요한 말씀을 하고 있지요. 특별히 그 가운데 35절~39절에 보면 다 말씀 드릴 수는 없고 35절에 보면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37절에 보면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9절에 보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아가면서 세상을 이길 자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우셨고 하나님의 사랑에서 아무도 끊을 자 없는 자들로 저와 여러분을 세우셨습니다. 이런 어마어마한 축복이 그리스도 안에, 영원히 동일하신 그리스도 그 이름 안에 있다는 사실, 이 축복의 비밀을 회복하고 누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특별히 요한복음 16:33에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세상을 이기신 그 주님이 나를 돕는 자 중에 계십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찬양대 찬양 드린 것처럼 영원히 부를 그 이름, 그리스도. 그렇습니다. 오늘도 내가 진짜 그리스도 그 이름의 비밀을 알고 부를 때에 오늘 내가 이 자리에 앉아서 그리스도 이름을 부르지만 시공간을 초월한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는 나와 관계된 모든 현장에 역사함을 믿습니다. 모든 막힌 문들이, 하늘 군대가 동원되어서 하나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열릴 줄로 믿습니다. 내가 이 자리에 은혜 받는 이 시간에, 내가 성령 충만함 속에 들어가는 이 시간에, 나와 관계된 모든 현장에 흑암과 저주와 재앙과 실패의 역사가 무너지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게 영적인 축복입니다. 오늘 여기 나를 돕는 자 중에 계시다, 무엇으로 돕는 자 중에? 성령으로 돕는 자 중에 계시고 하늘 군대를 동원하시고 우리의 걸음들을 돕고 계시고 이 어마어마한 영적인 축복 가운데 저와 여러분을 세우셨다는 사실. 저는 지난 주간에 우리 교사 세미나, 교사 사역자 훈련에 참여하고 또 어제 핵심에 참여하면서 제 마음에 정말 회복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던 부분이 아, 내가 놓치고 있었구나 하는 부분이 뭐냐 하면 우리가 이 자리에 앉아서 기도하지만, 이 자리에 앉아서 기도하지만, 한국이라는 이 땅에, 하나교회라는 이 땅에, 여기서 기도하지만 하나님은 미국에 역사하신다는 것. 여러분, 우리에게 주신 축복입니다. 우리에게 축복이예요. 이것 없이 어떻게 우리가 세상을 이길 수 있을 것입니까? 이것 없이 우리가 어떻게 세계복음화할 수 있을 것입니까? 이 어마어마한 축복의 역사를 그리스도 이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셨는데 이것들 다 놓치고 살아가니까 보이는 세상을 따라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 따라가면 따라갈수록 우리가 승리하느냐? 아닙니다. 아무리 애쓰고 힘써도 세상 못 이깁니다. 세상 못 이겨요. 그래서 세상 종노릇하고 마귀의 종노릇하고 실컷 얻어터져서 실패하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아니, 망하지는 않습니다. 결국 실컷 고생하고 어렵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세상을 따라가지 마십시오. 왜냐? 영원히 동일하신 그리스도가 저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 때문에. 그러면서 중요한 것은, 사실 성경은 영원히 동일하신 이 그리스도, 변하지 않는, 여러분, 영원히 동일하신 그리스도라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어제도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오늘도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미래도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우리에게 역사하신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복음은, 그리스도 복음은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다른 것 이야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성경 66권은 오직 변하지 않는, 영원히 동일하신 그리스도, 이것만을 성경에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구약 성경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가 오실 것이라는 것. 신약은 무엇입니까? 그 그리스도가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신앙 생활은 무엇입니까? 그 그리스도를 알고 체험하고 확인하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게 신앙 생활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요한복음 5:39에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누구에 대해서?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여기 내게 대해서 증언한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한다는 말입니다. 요한복음 20:31에 보면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왜 성경을 기록했느냐?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기 위해서. 여러분, 우리가 아무리 성경을 많이 읽고 성경을 많이 알고 있다 할지라도 그리스도 모르면 성경책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알고 성경을 읽으면 그 성경이 전부 다 우리에게 생명과 능력으로 역사하는 것입니다. 영원히 동일하신 그리스도, 그 그리스도를 설명한 것이 성경입니다. 다른 것을 설명한 것이 아닙니다. 성경 66권, 결국 그리스도를 설명하기 위해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이 성경을 많이 읽고 많이 알아야 합니다만 다섯 가지 성경 구절만 제대로 알아도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고 구원 받습니다. 그게 뭐냐? 창세기 3:15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우리 인생이 갖고 있는 근본문제, 그 문제를 해결할 오직 유일한 이름, 여자의 후손 그리스도라는 것. 그러면서 우리가 인격이 훌륭해서 구원 받는 것이 아니고 내가 많은 선한 업적을 쌓아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창세기 6:14에 방주 안에 들어가면 산다 했습니다. 이렇고 저렇고 그 어떤 사람이라도 방주 안에 들어가는 자는 다 산다 했습니다. 그게 창세기 6:14입니다. 그리고 힘 있고 능력 있어서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한 것이 아닙니다. 애굽에서 빠져나온 것이 아닙니다. 400년 노예살이하던 그 애굽에서 언제 빠져나왔습니까? 힘 있고 능력 있어서가 아닙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이 바로 왕 앞에서 열 가지 능력을 행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능력 앞에 바로 왕이 이스라엘 백성을 내어 놓았습니까? 아닙니다. 언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을 빠져나왔습니까? 출애굽기 3:18 유월절 어린양의 피 바를 때에. 아니, 포로로 되어 있으면 너희가 힘 길러 가지고 전쟁해라, 이렇게 이렇게 힘을 길러서 전쟁해라, 그렇게 해야 할 것인데 전혀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했습니다. 그게 뭐냐? 이사야 7:14에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사야 선지자는 이 말을 알아들었습니다. 아, 이 말이 창세기 3:15 이 말이구나.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한다는 이 말이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다, 이 말이구나 하고 깨달은 것입니다. 그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이 이 일을 감당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이 완성되었습니다. 마태복음 16:16에 베드로의 고백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여러분, 이 다섯 가지 성경 구절을 설명하기 위해서 성경 66권을 연결했습니다. 이 다섯 가지 성경 구절을 이스라엘 백성이 놓쳐 버리고 모르니까 그때그때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노예 되고 포로 되고 속국 되고. 역사 속에서 일곱 번의 큰 재앙을 맞았습니다. 어떤 분들은 성경 그것 읽을 필요가 뭐 있냐? 이스라엘의 역사인데. 맞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인데 그것도 특히 실패한 역사를 기록한 것이 성경입니다. 왜 실패했느냐?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바로 그리스도, 유일한, 영원히 동일하신 이 그리스도를 놓침으로 말미암아 실패했다는 것을 기록한 것이 바로 성경입니다. 그게 이스라엘의 역사입니다. 그러면 언제 회복되었느냐? 이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영원히 동일하신 그리스도, 이 비밀을 붙잡은 사람 한 사람이 나왔을 그 한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이 모든 역사를 회복시켜나간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게 바로 렘넌트 7명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진짜 알아야 할 부분이 있다면 영원히 동일하신 그리스도. 그 비밀 속에 들어가야 합니다. 여러분, 역사 속에 보십시오. 결국 역사는 이 비밀을 놓쳐 버릴 때 시대의 재앙을 당했습니다. 온 인류가 저주 가운데 빠졌고 전세계에 재앙이 일어났고 인간 개개인, 사람들 개개인은 사단으로 인한 실패 가운데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하나님께서 빠져나올 수 있는 유일한 이름을 주셨는데 그것은 바로 다른 이름이 없습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적이 없음이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어제도 예수 그리스도로 구원받고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로 구원 받고 내일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 받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영원히 동일하신 분이 바로 그리스도, 그 이름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래서 정말 우리 하나교회 성도들, 다른 것 몰라도 좋습니다. 진짜 이 그리스도 알고 누리고 확인하고 이 그리스도 누리는 데는 최고로 전문가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영원한 것을 선택하는 최고의 방법
두 번째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정말로 영원한 것을 선택하는 최고의 방법이 나오는데 오늘 14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에는 영구한 도성이 없으므로 장차 올 것을 찾나니.” 우리가 여기에는 영구한 도성이 없다고 말씀했는데 그러면 결국은 이 본문의 말씀은 무엇을 말씀하느냐? 영원한 부분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그 영원한 것을 선택하는 가장 최고의 방법이 뭐냐? 그게 먼저 12절에 나옵니다, 12절. 봅시다. 영원한 것을 선택하는 최고의 방법. 12절에 보면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무슨 말입니까? 십자가에 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의지하는 것, 이게 영원한 것을 선택하는 최고의 방법입니다. 다시 말해서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그 예수 그리스도. 여러분, 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골고다 십자가에서 피 흘리셨습니까? 여러분, 우리 인간은 신자든 불신자든 반드시 죽기 전에 해결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신자도 불신자도 반드시 죽기 전에 해결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원죄 사건입니다. 원죄 사건. 사람이 이 땅에 살아가면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부분인데 여러분, 내가 살아가면서 짓는 자범죄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와 상관 없이 일어나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게 뭡니까? 그게 원죄입니다. 이 자범죄는 내가 안 지을 수도 있습니다. 또 내가 용서 받을 수도 있고 용서할 수도 있습니다. 자범죄는. 그러나 그 어떤 인생도 자범죄를 짓지 않는 인생이 없습니다. 설령 자범죄를 짓지 않는 사람이 있다 할지라도 그 사람 또한 멸망 받습니다. 왜인줄 아십니까? 원죄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원죄는 무엇을 말합니까? 하나님 떠난 죄입니다. 여러분, 물고기가 물을 떠나면 죽는 것처럼 하나님의 형상 가진 우리 인생이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결국 영적인 사망이 온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만날 수 있는 길이 막힌 것입니다. 그 어떤 인격으로도, 그 어떤 노력으로도, 그 어떤 선행으로도,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지는 못합니다. 다시 말하면 원죄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 십자가의 피의 사건을 가지고 우리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원죄 문제를 완전히 끝낸 사건이 뭐냐? 십자가의 피 사건입니다. 인류가 갖고 있는 최대의 문제, 원죄를 끝낸 문제가 십자가의 피로 말미암아 끝난 것입니다. 믿습니까? 저와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원죄는 끝난 것입니다. 골고다 산에서 피 흘린 것은 그냥 피 흘린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절대 해결할 수 없는, 인류의 최고의 문제, 원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아담의 후손으로 오는 모든 문제는 이 원죄 가운데 태어납니다. 그 어떤 인생도 원죄를 가지고 있지 않은 인생이 없습니다. 이 땅에 태어나는 모든 아담 이후의 인생은 원죄를 가지고 태어난다니까요. 천주교에서 말하는 마리아가 원죄가 없다? 여러분, 교황이 원죄가 없다? 아닙니다. 다 아담 이후에 태어난 모든 인생은 원죄를 가지고 태어납니다. 그 원죄의 저주를 해결할 수 있는 다른 길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골고다에서 십자가에 피 흘리심으로 말미암아 원죄를 끝낸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이 십자가의 피는 무엇을 말합니까? 저와 여러분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원죄가 끝났지만 그러나 살아가는 삶 속에서 많은 갈등들, 많은 문제들, 많은 어려움들을 당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왜냐? 인간은 연약하기 때문에. 연약하기 때문에. 그런데 보십시오. 여러분, 로마에서 십자가는 가장 무서운 사형 형틀입니다. 가장 부끄러운 것이고 가장 수치스러운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초대교회 성도들을 핍박하고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이는 자리에 있었지 않습니까? 이유가 뭡니까? 도저히 말도 안 되는 사형틀, 그걸 붙잡고 살아가니까. 그러니까 사실은 바울이 초대교회를,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기 위해서 돌아다닌 거 아닙니까? 바울은 잘 압니다. 율법에 대해서 그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입니다. 왜냐?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기 때문에. 그런데 율법에 의하면 나무에 달린 자는, 십자가에 달린, 나무에 달린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말도 안 되는 부분을 초대교회가 붙잡고 예수 믿는다고 이야기하니까 그러니까 초대교회를 죽이기 위해서 바울을 도장 찍어서 돌아다닌 것 아닙니까? 죽이기 위해서. 그런데 이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십자가의 능력을 체험한 것입니다. 십자가의 능력이 부활 사건 아닙니까? 그 십자가의 능력을 체험한 것입니다. 그 때부터 바울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은 그 때부터 바뀌어서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의 능력만 바울은 이야기했지 않습니까? 그래서 고린도전서 2:2에 보면 바울이 나중에 그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힌 것 외에는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했다 했습니다. 더 나아가 갈라디아서 6:14에 보면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에 못 박힌 것, 십자가 그것만 자랑한다 했습니다. 결코 다른 것을 자랑하지 아니하고 그리스도 십자가에 못 박힌 것 그것만, 십자가 사건 그것만 자랑한다 했습니다. 이런 바울에게도 많은 인간 관계의 갈등들, 살아가면서 삶의 많은 자기 안에 있는 문제들 때문에 갈등이 있었던 것을 성경을 통해서 보게 되는데 대표적으로 로마서 7장에도 나오지 않습니까?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늪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자기 안에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성령의 인도를 따라가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반면에 한편으로는 자기도 모르게 죄의 저주 아래 끌려가는 부분들, 그것들 때문에 갈등들이 있었습니다. 또 많은 인간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갈등들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바울이 고백한 것이 무엇입니까? 많은 문제 속에서, 인간 관계 속에서, 어려움들 속에서 일어나는 갈등들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부분에서 고백한 내용이 고린도전서 15장에 있는 말씀처럼 나는 날마다 죽노라 했습니다. 그러면서 갈라디아 2:20 은 바울이 베드로와의 관계 속에서 인간 관계 때문에 오는 많은 갈등들 속에서 터져 나온 고백이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많은 인간 관계, 갈등 가운데 나는 죽었는데, 나도 모르게 내가 살아 있어가지고 이런 갈등을 겪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여러분, 지금 하고 있는 갈등들, 지금 일어나는 문제들, 지금 여러분이 갖고 있는 어려움들, 다 십자가에 못 박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 우리도 모르게 자꾸 옛날로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우리 가정에 흐르는 영적인 흐름이 있지 않습니까? 오래 된 문제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게 우리 개인의 영적 문제로 드러날 수 있습니다. 괜찮습니다. 여러분 개인에게 있는 모든 영적인 문제를 그리스도 십자가에 오늘 이후로 못 박기를 바랍니다. 바로 십자가에서 우리 인생에,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일어나는 모든 갈등들, 어려움과 문제들, 십자가에서 다 끝냈습니다. 그냥 원죄 문제만 해결한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삶에 있어서 일어나는 여러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참된 축복의 역사들이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피의 능력에 있다는 사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찬송 불렀지 않습니까? 십자가 그늘 아래 나 쉬기 원하네. 십자가 그늘 아래 나 쉬기 원하네.
그렇습니다. 세상 그 어느 누구도 알아주지 못한다 할지라도 우리가 십자가 그늘 아래 있으면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참된 평안과 축복과 응답이 나타날 줄로 믿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이 십자가는 바로 능력입니다. 어떤 능력이냐? 우리는 연약하지 않습니까? 누구나 다 연약합니다. 그래서 영적인 무능함 상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로마서 5:6에 보면 우리의 연약함을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다 해결했다고 말씀했습니다. 또 우리는 죄 가운데 살아갑니다. 그런데 사실 로마서 5:8을 보면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했습니다. 우리는 죄인으로서 죄 가운데서 살아가는데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 말씀하시면서 그 죄에서 우리를 해방했습니다. 로마서 8:2에 보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로마서 5:10에 뭐라 했습니까? 우리가 원수 되어 있었는데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십자가의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삼으셨습니다. 그게 로마서 5:10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연약함 가지고, 우리의 죄됨 가지고, 우리의 원수된 부분들 가지고 여러분, 그 속에서 실망하지 마시고 그리스도 십자가의 피로 다 끝냈다는 사실을 아십시오. 그게 능력입니다, 사실은. 그것이 어떤 능력이냐? 우리의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는 능력이고 어떤 능력이냐? 세상 풍속을 쫓아가지 않습니까? 그래서 복음에 전혀 관심 없이 살아가지 않습니까? 그 모든 것들을 회복할 수 있는 능력이고 어떤 능력이냐? 본질상 진노의 자녀로서 많은 영적인 문제가 올 수밖에 없는데 그 문제를 해결하는 참된 능력이 십자가 보혈의 피입니다. 그 십자가를 붙잡는, 오늘도 그 십자가 그늘 아래 저와 여러분이 들어가는 그런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를 누리는 영원한 것을 선택하는 최고의 방법이 마지막으로 바로 13절에 나옵니다. 13절에 보면 “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주님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나아가자 했습니다. 그에게 나아가자, 무슨 말입니까? 갈보리 산으로 나아가자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것은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로 나아가자, 이것은 제자의 삶, 전도자의 삶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주신 전도자의 삶, 제자의 삶은 어떤 삶입니까? 누가복음 9:23에 보면 제자의 삶이 무엇인지를 말씀하고 있는데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했습니다. 서론 부분에 말씀드렸습니다만 십자가는 그 시대에 가장 흉측한 사형 형틀이었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유대인들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었습니다. 이방인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었다 했습니다. 그게 고린도전서 1:23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구원 받은 우리에게는 그 십자가가 뭐라고요? 능력이라 말씀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저와 여러분이 이 십자가의 복음이 너무 가치 있고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내가 십자가에 달린다 할지라도 나는 이 복음의 길을 가겠습니다, 이게 제자의 길이요 이게 전도자의 길입니다. 다시 말하면 진짜 복음의 가치가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내 모든 걸음걸음, 이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일에, 실제로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 예수 믿는다는 그 자체가 어려운 시대 아닙니까? 어려운 시대 아닙니까? 그런데 이 어려운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만을 자랑하고 예수 그리스도만을 높이고 살아가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이게 제자의 삶이고 전도자의 삶인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고린도전서 2:2입니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바울의 고백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다른 것은 필요 없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로 충분하다는 말입니다. 이 비밀을 붙잡은 히브리서 11장의 일꾼들, 어떤 응답을 받았습니까? 이 비밀을 붙잡은 로마서 16장의 일꾼들, 어떤 응답을 받았습니까? 여러분, 오늘 저와 여러분이 진짜 그리스도, 충분하고 완전하고 모든 것 되심을 드러내는, 자랑하는, 그래서 이 그리스도의 비밀 가지고 현장으로 나아가는. 여기 성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이 말은 현장으로 나아가라는 말입니다.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이 일을 위해서 현장으로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에게 이 로마서 16장의 일꾼들이 받았던 그런 응답, 히브리서 11장에서 받았던 그런 응답의 축복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8년 6월 17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예수께로 나아가자
(히13:11-13)

서론: 히브리서는 그리스도의 유일성과 우월성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야 합니다(히13:13). 예수님이 골고다 언덕에서 모든 문제를 해결 했기 때문에 예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1. 영원히 동일하신 그리스도
가. 세상을 따라가지 말라는 것(히13:4-5)
1) 성도들의 실패 - 세상을 따라가는 것(세상의 종노릇)
2) 세상을 따라가지 말라는 이유(5-6) - 결코 버리지 않고 떠나지 않음, 성령께서 우리를 도우심(요10:28-29, 롬8:31-39, 요16:33)
나. 과거, 현재, 미래에도 그리스도는 변하지 않음(히13:8)
1) 성경 66권 - 변하지 않는 복음을 이야기
2) 구약성경(그리스도를 보내겠다고 약속), 신약성경(약속한 그리스도를 보냈다고 말씀) - 성경은 그리스도를 말씀(요5:39)
3) 창3:15, 창6:14, 출3:18, 사7:14, 마16:16 - 붙잡을 때 회복 되고, 놓치게 될 때 재앙
2. 영원한 것을 선택하는 최고의 방법
가. 십자가의 피(12)
1) 반드시 해결 해야 될 문제 - 원죄(하나님을 떠난 죄)
2) 바울(고전2:2, 갈6:14) - 십자가의 능력을 체험(부활 하신 그리스도를 만남)
3) 지금 일어나는 문제, 어려움 - 십자가 앞에 못 박음, 이미 다 끝내심
나. 십자가는 능력
1) 우리의 연약함을 해결(롬5:6)
2) 죄인 된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으로 해방(롬5:8)
3)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 능력(롬5:10)
4)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심(엡2:1-3)
다.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나아감 - 제자의 삶, 전도자의 삶(그리스도만을 높이며 살아가는 삶 - 눅9:23)

결론: 고전2:2절은 바울의 고백입니다. 그리스도는 충분하고 다른 것이 필요 없을 만큼 완전한 이름입니다. 이것을 붙잡은 히11장 인물, 롬16장의 일꾼은 하나님이 주신 응답을 받았습니다. 충분하고 모든 것이고, 완전한 그리스도 이름을 드러내는 현장으로 나아가는 응답 누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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