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돌아서려는 자들에게(최상국 목사)
2018-09-0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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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일 주일 2부 예배 최상국 목사
“돌아서려는 자들에게”
(히10:32~39)


32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을 견디어 낸 것을 생각하라
33 혹은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은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과 사귀는 자가 되었으니
34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소유를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는 줄 앎이라
35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36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37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38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39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 히10:32~39

■ 할렐루야! 하나님께 영광의 박수를 올려 드리겠습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예수만 바라보는 믿음의 사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인사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예수만 바라보십시다. 아멘.
담임목사님께서는 지난주일 오후에 출국하셔서 네덜란드를 거쳐서 파나마에 도착하셨다가 이튿날 베네수엘라로 출국하셨습니다. 수요일 날 가셔서 금요일까지 사역을 하시고, 귀국하셔서 현지시각으로 토요일, 또 주일 파나마 전도집회 류광수 목사님을 강사로 모시고 파나마 전도집회가 지금 진행 중에 있습니다. 그리고 월, 화는 함께 간 단기 선교팀들과 성경학교 사역으로 인도받으시고, 그리고 페루에 가셨다가 아르헨티나를 거쳐서 귀국하실 예정입니다. 그 걸음걸음마다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충만케 하시고 오늘 우리 장로님이 기도하셨던 것처럼, 절대제자를 찾고 절대시스템을 남기는 그러한 복된 걸음, 정말 중남미 37개국을 살리는 그러한 걸음이 될 수 있도록 여러분 쉬지 않고 기도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 주신 본문을 가지고 “돌아서려는 자들에게”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이 되어지는 히브리서는 잘 아시다시피 유대교에서 개종한 그러한 히브리 기독교인들에게 쓴 편지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내가 다시 오겠다’라는 약속을 하셨지요. 재림의 약속을 주신 것입니다. 속히 오겠다고..그래서 그 예수님이 떠난 후의 제자들과 또 많은 전도자들이 예수님의 다시 오실 것을 고대하면서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생각만큼 빨리 오시지 않는 겁니다. 가셨다가 금방 오실 것처럼 이야기 하셨는데 기다리는데 1년이 지나도, 2년이 지나도, 5년이 지나도, 10년이 지나도 오시지 않는 겁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가면 지나갈수록 핍박과 박해는 더 심해지는 겁니다. 그러니까 오신다는 분은 안 오시고, 오셔야지 뭔가 힘이라도 날 텐데 오시지도 않고 박해는 더욱 더 심해지다 보니까 이 사람들의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것을 그 틈을 노려서 유대인들이 계속 유혹을 하는 거지요. 유대교로 돌아와라, 예수 믿는다고 달라지는 게 있냐? 너희 핍박만 당하고, 박해만 당하고, 목숨이 열 개냐?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돌아와라, 이렇게 계속 회유를 하는 겁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오늘 히브리서 기자는 그러한 유혹들 앞에 우리가 어떤 자로 서야 될 것인지, 오늘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 당시에 기독교인들 가운데 의외로 유대교로 돌아가려고 하는 자들이 꽤 많았던 같습니다. 히브리서에는 그 사람들에 대한 표현들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히브리스2:1절에 보면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 ”그러한 유혹에 신앙이 약해져서 그냥 흘러 떠내려가는 그러한 사람도 있었고요, 그리고 구원을 등한히 여기는 사람들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히2:3“우리가 이 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 구원을 받아 놓고도 이게 시일이 오래 지나가고, 오신다는 예수님은 오시지 않고 핍박과 박해는 더욱 더 심해지다 보니까 마음이 점점 약해지면서 그 처음에 예수 믿고 감격했던, 너무나 행복했던 그 기쁨이 세상에 그러한 위협과 핍박, 박해 앞에서 점점 사라져 가는 거지요. 그러다 보니까 어떤 일이 일어났느냐?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다른 데서 터를 닦으려는 사람들이 일어나는 겁니다. 히브리서6:1“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이 완전한 것을 주셨는데 이 십자가의 도를 저버리고 다른 데서 이 온전케 하는, 완전케 하는 것을 찾으려는 그러한 무리들이 일어난 겁니다. 그 가운데는 또한 마음이 연약하고 믿음이 약해져서 연약하여 실족하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히브리서12:12“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 그동안 신앙생활 해 오면서 손이 피곤하고 무릎이 연약해지고 그리고 다리가 어그러져서 바른 길을 가지 못할 정도로 신앙이 무너져버린 이러한 사람들이 그 당시에 그렇게 많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견디다 견디다 못해서 이제는 어떠하냐? 다른 교훈에 끌려 다닌다. 히브리서13:9절에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음식으로써 할 것이 아니니 음식으로 말미암아 행한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였느니라” 다시 오신다는 그리스도, 보이지 않는 그 그리스도, 오신다고 하는데 손에 잡히지가 않지요, 그래서 이들이 택한 것이 무엇이냐? 손에 잡히는 것, 율법으로 다시 돌아가고자 하는 이 다른 교훈에 끌려가는 그러한 사람들이 이 교회 안에, 히브리인들 가운데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은 히브리인들 가운데 자꾸 돌아가려는 사람들이 생기는 겁니다. 오늘날 21세기에도 이 히브리서에 나오는 히브리 기독교인들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한국교회와 세계교회를 보면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가고 있습니다. 많은 고민과 갈등 속에서 교회를 떠난 사람들과, 또 이곳에 있지만 용기가 없어서 아직 못 떠나고 있는 분들도 많이 계시지요. 교회와도 별것 없네, 눈에 보이는 어떠한 증거, 응답, 일이 술술술 풀려야 되는데, 술술술 풀리지는 않고 자꾸 술 마실 일들만 생기고, 그런 일들이 자꾸 생기는 거지요. 눈에 보이는 복도 없고, 갈등은 점점 많아져 가고 그런 가운데 예수 믿는데 왜 이런 많은 핍박이 있는지,,그러다 보니까 옛것을 찾아 떠나는 그러한 사람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기독교 역사를 보면, 한국 기독교의 역사를 보면 처음에는 회개운동이 일어났었지요, 그리고 그 이후에는 성령의 역사 일으켜서 오순절 성령, 신비, 또 방언, 이러한 역사들도 일어났었습니다. 그 이후 1990년대에는 찬양 사역이 활발하게 일어나면서 교계에 많은 영향을 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한 것들이 그전에 그러한 것들을 통해서 받았던 이러한 은혜들이 너무 커다보니까 그 은혜들이 오늘 받는 은혜보다 더 커다보니까 아~ 그때가 좋았는데, 아~ 그때 그 나무잡고 흔들 때가 좋았는데, 아~ 그때 그 강에 가서 땅 팔 때가 좋았는데, 이렇게 생각하면서 옛날로 돌아가려는 그러한 신앙인들이 많이 있다라는 거지요. 이런 가운데서 혹, 아직도 오늘 말씀 나누었던 것처럼 돌아서려는 그러한 분들이 계시다면 오늘 말씀을 통해서 정확한 답을 얻고 중요한 결단이 되어지는 은혜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온전케 하지 못하는 것들에 가치를 두지 말라.
첫 번째입니다. 온전케 하지 못하는 것들에 가치를 두지 말라입니다. 우리로 온전케 하지 못하는 것들에게 가치를 두고 그것을 쫓아가고, 그것으로 돌아가려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히브리서에 나오는 이 히브리인들, 갈등하고 흔들리는 히브리인들이 전부 다 이러한 모습들이었습니다. 히브리서1장부터10장까지의 내용을 보면 여러 가지 유대교 신앙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그것들을 하나하나 나열하면서 히브리서 기자가 설명하고 있는 그러한 내용들을 볼 수 있습니다. 선지자, 천사, 모세, 그리고 또 가나안 땅에서 주어지는 안식, 그리고 대제사장, 또 옛 언약, 율법이라고도 하지요. 그리고 성막, 피 제사 이런 것들을 쭉 나열하면서 히브리서 기자가 설명하고 있는데, 그 설명들에 대해서 한 마디로 계속 결론을 내리고 있는데 그 결론이 뭐냐 하니까 이것은 온전하게 하지 못한다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선지자가 그 당시에는 꼭 필요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왜냐? 하나님 앞에 우리가 나아갈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중보자로서 선지자가 꼭 필요했지요. 그런데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새 언약의 중보자가 오셨기 때문에 더 이상 선지자는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유대교에서는 천사숭배 사상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유대교의 역사를 보면 천사들의 활동들이 많이 나타나지요. 열왕기하19장에 보면 히스기야가 앗수르 군대 18만5천명에게 둘러싸였을 때, 이 히스기야가 기도할 때에 그 주의 천사들로 앗수르 군대 18만5천명을
그 천사들에 의해서 하루아침에 송장이 되어지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열왕기하6장에는 엘리사가 있던 도단성을 아람군대가 둘러 샀지요. 그때에 하늘의 불 말과 불 병거들이 동원되어지는 그러한 기사가 나옵니다. 그러다보니까 이들이 천사를 대단한 것인 양 숭배하는 그러한 사상도 있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여기에 대해서 히브리서1:14절에서는 모든 천사들은 섬기는 영으로서, 구원받은 상속자를 섬기라고 보내신 것이 아니냐? 온전치 못하다는 겁니다. 천사가 능력은 있지만 우리를 온전하게 할 수는 없다라고 이야기하고 있지요. 그리고 모세를 이야기합니다. 모세, 이스라엘의 역사에 있어서 비교 불가한 그러한 지도자였습니다. 애굽의 400년의 노예 되어져 있던 그 상황 속에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해 내었지요. 그리고 이 모세가 받은 율법이 그들이 섬기는 유대교의 중요한 경전이 되어졌습니다. 그러니까 이 모세의 위치가 얼마나 확고합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17장에 변화산에서 제자들에게, 베드로에게, 그 따라간 3명의 제자들에게 환상을 보이시는데 엘리야가 나타나고, 모세가 나타나지요. 베드로가 초막 셋을 짓겠다. 그런데 정신 차리고 보니까 다 떠나고 예수만 남았습니다. 신약시대에 그리스도가 오신 이후에는 엘리야도 필요 없고, 모세도 필요 없는 것이지요. 히브리서3:5절에 “또한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언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종으로서 신실하였고 ”말씀합니다. 종이었습니다. 종을 섬기는 자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모세가 아무리 인격적으로 훌륭하고 대단한 일을 했더라도 종입니다. 아들이 왔어요. 그러면 우리는 아들을 섬겨야 합니다. 더 이상 모세는 섬길 이유가 없는 것이지요. 온전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에서 주어지는 안식, 그것은 온전할 수 없는 안식이었습니다. 그 순간에는 안식을 주었을지 모르지만 영원한 안식은 되어질 수 없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른 날, 주의 날을 허락하신 겁니다. 히브리서4:8“만일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더라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안식을 주었더라면 주의 날이 필요가 없었겠지요. 그런데 그 안식이 영원하지 못한, 그냥 순간에, 그 시대의 안식일 뿐 이었다 라는 겁니다. 그리고 대제사장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를 히브리서7:11절에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백성이 그 아래에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따르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냐 ”레위계통의 제사장, 이 대제사장은 혈육적으로 아론의 후손들만 대제사장이 될 수 있습니다. 레위지파만이 제사장이 될 수가 있지요. 그런 가운데서 아론의 후예들만 대제사장이 될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 이들은 온전케 할 수 없다라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새로운 대제사장을 세우셨는데, 기원을 알 수 없는, 족보를 알 수 없는 그냥 성경에 튀어나온 대제사장, 멜기세덱, 창세기14장에 나오는 멜기세덱, 이 멜기세덱과 같이 혈육을 따라 오신, 한계 가진 대제사장이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세우신 대 제사장인 멜기세덱의 계보를 따라 온 예수 그리스도를 이야기 하고 있는 겁니다. 대제사장은 온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사를 드릴 때에 자기를 위해서 먼저 제사를 드리고, 그렇게 죄 사함을 받은 대제사장이 백성들의 죄를 위해서 제사를 드리게 되어 있습니다. 두 번을 드려야 되어요. 최소한 두 번은 드려야 됩니다. 온전하지 못한 것이지요. 그래서 히브리서에는 계속 우리가 말씀을 받았습니다마는, 자주 이야기하는 단어가 무엇입니까? 단번에, 한번에, 예수님은 두 번 드릴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왜? 죄 없이 오신 분이기 때문에,,, 그래서 단번에 자신을 드려서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속하셨습니다. 매년마다 제사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온전하지 못한 대제사장, 그리고 옛 언약, 율법이지요. 히브리서7:18~19절에 “전에 있던 계명은 연약하고 무익하므로 폐하고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하게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더 좋은 소망, 누구이겠습니까? 새 언약, 그리스도를 이야기 하는 것이지요. 히브리서10:1절에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온전하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히브리서2장 성막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이 유대교에 있어서의 성막, 얼마나 소중합니까? 그래서 헤롯이, 에돔 족속인 헤롯이 분봉 왕이 되면서 유다지파여야만 왕이 될 수 있는데 이 에돔 족속, 이방인이 왕이 되었지요. 그래서 자기의 명분을 어떻게든지 합리화시키기 위해서, 백성들의 여론을 사기 위해서 지은 것이 헤롯성전입니다. 40년 넘게 걸려서...왜? 그만큼 유대교에 있어서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그 전에는 스룹바벨이 지은 성전은 조그마한 보잘 것 없는 성전이었습니다. 이것을 크고, 화려하게, 대단하게 지어주니까 백성들이 확 넘어가는 겁니다. 그 정도로 성전, 이 성막에 대해서 유대교에서는 가치를 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성막조차도 온전하지 않다 라는 겁니다. 히브리서9:9“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따라 드리는 예물과 제사는 섬기는 자를 그 양심상 온전하게 할 수 없나니 ”뒤에 보면 개혁할 때 까지 맡겨둔 것이라 예수 그리스도가 오실 때까지 맡겨둔 것이지 온전한 게 아니라는 겁니다. 그리고 매년마다 죄를 지을 때마다 죄 문제를 해결하고 생명을 얻기 위해서 드렸던 피 제사, 그 피 제사도 온전하지 못한 겁니다. 히브리서10:11절에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언제든지 죄를 없이할 수 없어요. 온전하지 못한 겁니다. 그런데 구약에는요, 이 피 제사가 없으면 죽습니다. 이 피 제사가 없으면 저주 받습니다. 그런데 완성하신 그리스도가 오신 이후에는 더 이상 필요가 없다 라는 것이지요. 신앙생활 속에서요 반드시 경계해야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 은혜로 시작했다가 행위로 빠지는 겁니다. 은혜로 시작했다가 그것이 형식으로 빠지는 겁니다. 앞에서 열거했던 이러한 구약에 있었던 중요한 것들은 그 당시에는 백성들로 하여금 온전하게 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시한부예요. 그 이후에는 다른 은혜가 필요한 겁니다. 구약 시대는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을 받아야 하고 그 말씀을 따라가야 했습니다. 출애굽할 때는 모세를 따라가야지 모세 안 따라가고 고라자손 따라갔다가는 땅에 삼킨 바 됩니다. 피 제사를 안 드리고 그냥 곡식으로만 제사 드리면 저주가 임합니다. 성막에, 성전에 나아가지 않으면 저주가 임합니다. 구약 시대에는 온전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온전케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다 일시적인 것이라는 겁니다. 그게 그 당시에는 은혜의 방편이었고 하나님이 은혜 속에 완전케 되는 도구가 되었지만 그게 영원한 것은 아닌데 그 때 받았던 은혜가 지금보다 크다고 생각하니까 돌아가고 싶은 겁니다. 우리가 예전에 방언, 또 신비, 그런 것들을 통해서 많은 은혜를 누렸습니다. 그게 잘못된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 당시에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였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찬양사역으로 많은 교회에서 청소년들이 일어나고 화요찬양집회, 목요찬양집회, 이리하여 많은 청소년들이 일어났습니다. 그게 거짓입니까? 그게 잘못된 것입니까? 그때에 맞는 은혜입니다. 그런데 그때 받았던 은혜를, 그 추억을 생각하면서 그게 더 크다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그래서 돌아가려 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은혜를 받는 방편과 수단은 시대마다 바뀔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뭐냐? 행위와 어떤 형식, 제도가 아니라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믿음으로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을 잃어버리면 형식에 빠지게 됩니다. 지금 이 시대에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말씀으로 주시는 은혜가 너무나 큽니다. 그래서 우리가 말씀을 읽고 말씀을 듣고 말씀을 기록하고 말씀을 녹취하고 말씀을 암송하고 말씀을 묵상하고 그러면서 받는 은혜가 너무 큽니다. 그 은혜가 너무 크지요. 그런데 그 은혜가 은혜로 있어야 하는데 이것이 또 방법이 되어 버린다면. 하나님이 율법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구약시대에 은혜를 주셨는데 그 율법을 지금도 지켜야 한다고 하는 순간 그들에게는 문제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이사야 1장에 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더 이상 피 제사 드리지 말라고 합니다. 말이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구약 시대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피 제사 안 드리면 다 죽습니다. 하나님이 피 제사를 통해서 그들에게 살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다 피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이들이 형식에 빠지기 시작합니다. 제도에, 어떤 법에. 그러니까, 제사 드렸으니까 나는 이제 자유하다. 드림으로써 오는 위안과 안식, 그것을 찾기 시작합니다. 혹시 여러분들, 말씀 듣고 예배 드리는 그 속에서 예배 속에서 주어지는 은혜로 내가 위안을 얻고 평안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예배 드렸다는 사실로 위안을 얻고 있지 않습니까? 매일 100구절을 쓴 것 때문에 내가 위안을 받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했기 때문에? 아닙니다.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서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영과 혼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에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그 말씀이 사실이기 때문에 그 말씀을 믿는 믿음 가지고 쓰고 듣고 암송하고 묵상하는 것입니다. 썼기 때문에 되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꾸 그렇게 돌아가려는 우리의 모습. 거기에서 그것은 온전치 못한 것입니다. 거기에서 돌아서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지만 이 앞서 이야기한 이 모든 것들이 그리스도의 그림자로 필요한 것이지만 그리스도가 온 이상 더는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2. 온전케 하시는 이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그래서 두 번째로 온전케 하시는 이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분은 오직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히브리서 2:10에 “그러므로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서 온전하게 하셨습니다. 온전하신 분은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오늘 설교를 들으시고 집에 가서 이번 주는 히브리서 1장부터 13장까지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 말씀을 가지고 1장부터 13장까지, 하루에 두 장씩만 읽으면 다 읽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서는 편지입니다. 편지를 일곱 번 나누어 읽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편지가 너무 길다고 여러분, 일곱 번 나누어 읽습니까? 대하드라마도 아니고. 미니시리즈도 아니고. 영화는 시작했으면 끝까지 봐야 하지요. 편지도 시작했으면 끝까지 가야 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보는 것입니다. 이번 주에 처음부터 끝까지 죽 오늘 받았던 말씀을 생각하시면서 한번 읽어 보십시오. 히브리서 기자가 어떤 마음으로 쓴 것인지. 히브리서 5:8~9에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아들이시면서 받으신 그 고난.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앞에서 열거했던 구약의 유대교에서 중요하게 여겼던 그 어떤 것도 성경에 온전하다고 표현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히브리서를 보면. 그런데 그리스도는 계속 온전하다고 합니다. 히브리서 7:24~25입니다.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장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히브리서 7:28입니다. “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하게 되신 아들을 세우셨느니라.” 히브리서 9:11~12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눈에 보이는 성막이 아니라 손으로 짓지 아니한, 창조 때도 없었던 그 온전한 성막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세우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10:14입니다.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그리스도가 온전하고 그리스도를 믿는 자도 온전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온전케 하셨습니까? 우리 지지난주 말씀과 지난주 말씀. 하나님이 하신 일 두 가지, 십자가 사건과 부활의 사건. 그것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온전케 하신 사건입니다. 십자가 사건, 히브리서 13:20에 “양들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평강의 하나님이.” 양들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으셨습니다. 십자가 사건은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셔서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하신 사건입니다. 히브리서 2:17에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 히브리서 7:27에 “그는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두 번 드리지요. 자기 죄를 위해 드리고 다음에는 백성의 죄를 위해서. 날마다 이렇게 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라.” 히브리서 9:12입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자기의 피로 이루셨습니다. 히브리서 9:28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습니다. 히브리서 10:10에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그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우리가 거룩케 되었습니다. 그 예수님은 온전케 되셨습니다.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온전한 의인이라 칭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어떻게 우리를 온전하게 하셨습니까? 부활 사건을 통해서. 히브리서 13:20에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지난 주 말씀입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죽음 가운데서 이끌어 내셨습니다. 부활하셨다는 말입니다. 이 부활하신 그리스도, 왕 되신 그리스도. 히브리서 2:14에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마귀를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심으로 완전히 멸하셨습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 그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가 온전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 그리스도가 선지자가 되셔서 온전케 하셨습니다. 히브리서 9:15에 “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누가 얻을 수 있습니까? 온전한 자만이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온전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온전케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초월자이신 그 분이 제한된 세상 속에 들어오셔서. 창조주이신 그 분이 피조물에게 온갖 모욕과 희롱을 당하시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면서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사하셨습니다. 죽음에 묶여 있지 아니하시고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셔서 사단의 권세를 이기심으로 우리를 온전케 하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10:19~20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습니다.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죄 있는 인간이 휘장을 통해서 들어가면 죽습니다. 휘장을 그냥 들어가면 죽어요. 그래서 대제사장이, 죄인인 대제사장이 휘장 속에 들어가려고 자기를 위해서 제사를 드리고 들어갑니다. 매번 들어갈 때마다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한 번, 단번에 우리의 모든 것을 온전케 하시고 우리가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은 것입니다. 히브리서 10:22에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얻었습니다. 온전케 하시는 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 온전하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가 받는 축복이 무엇입니까? 온전케 되고. 히브리서 13:21에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하게 하사.” 우리가 온전케 되고 “자기 뜻을 행하게 하시고.”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실 때 우리 안에 두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 속에 두신 소월, 빌립보서 2:13 말씀에 나오는 그 소원을 하나님이 이루시고 그 앞에 즐거운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가운데 이루기를 원하십니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늘 즐거운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3. 예수를 바라보라(히12:1~2)
그렇게 때문에 우리가 세 번째로 할 것은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라. 예수를 바라보는 것 말고는 우리가 할 것이 없습니다. 히브리서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예수를 바라보는 것, 그게 우리의 할 일입니다. 히브리서 4:14에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우리가 할 것은 믿는 도리, 십자가의 도,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사건과 부활하심, 그 약속을 굳게 잡는 것 말고는 우리가 할 것이 없습니다. 히브리서 4:16에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하나님은 우리에게 늘 새로운 은혜를 주십니다. 믿음은 절대 뒤를 보고 가지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되어진 것을 가지고 믿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되어질 것 미래를 가지고 가지는 게 믿음입니다. 지나간 은혜가 크지요 여러분 받은 은혜가 큽니다. 여러 가지 많은 분들을 통해서 또 어떤 훈련을 통해서 받은 은혜가 큽니다. 근데 그것은 일시적인 겁니다. 하나님은 날마다 우리에게 새 은혜를 주십니다. 예수를 바라볼 때에 믿는 도리를 굳게 붙잡을 때에 고린도후서 6장 2절 말씀에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은혜는 오늘 이 시간입니다. 뭘 자꾸 뒤를 돌아봅니까? 옛날에 그래 했더니만 이런 은혜를 받았다? 은혜 받는 건 맞지만 또 받는다? 틀린 겁니다. 오늘 내게 주시는 은혜가 있습니다.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날마다 준비하시고 우리에게 부어 주시고 계십니다. 돌아서면 안 됩니다. 자꾸 뒤를 보면 안 됩니다. 우리는 앞만 보고 가는 겁니다. 빌립보서 3장 12절부터 14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이게 진짜 믿음이에요 나는 아직 잡은 게 아니다 왜 앞으로 받을게 더 많기 때문에 내가 뒤에 대단한 역사를 이루었다 할지라도 에베소에서 그렇게 큰 역사를 이루고 온 아시아 사람들이 다 복음을 듣게 되어지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지만 그게 다가 아니라는 거예요 내가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그래서 바울은 오직 한일 내가 했던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다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이게 우리의 신앙생활입니다. 자꾸 뒤를 볼 필요가 없어요. 하나님은 날마다 새 은혜를 주길 원하시고 하나님은 날마다 큰 은혜와 응답을 주시려고 준비해 놓으셨는데 왜 자꾸 지나간 것 쳐다보고 돌아가려고 하십니까?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우리에게 약속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매 예배 때마다 기대를 가지고 소망을 가지고 나아오는 겁니다. 생애의 중요한 응답을 받았던 사건들이 있겠죠. 근데 오늘 주신 은혜가 더 크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예수를 어떻게 바라봅니까? 예수를 바라본다 그 말은 우리와 영원토록 함께 하시는 그 예수 그리스도를 누리는 것입니다. 예수를 바라본다는 것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영원토록 함께 하시는 그 그리스도 함께 하시는 그 분을 누리는 게 예수를 바라보는 겁니다. 그냥 본다. 위를 쳐다 보는 게 아니에요 지금 나와 함께 하시는 분 그 함께 하시는 분이 지금 우리가운데 어떻게 역사 하십니까? 성삼위 하나님으로 역사하시는 겁니다. 오늘 새벽기도때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은 성삼위 하나님으로 성부하나님으로써 말씀으로 우리가운데 역사하시고 성자 예수님으로써 죄로 인한 저주 사탄으로 인한 저주 그리고 지옥의 저주를 완전히 해결하시고 지금 내안에 들어오시사 함께 하시는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나아갈 때에 모든 현장에 임했는 3저주 떠나가게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내 안에 함께 하시며 나를 가르치고 생각나게 하셔서 나를 인도 하셔서 내 한계를 뛰어넘는 능력을 주시는 성령 하나님 그걸 누리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의 신분 우리의 배경은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하나님 나라의 배경을 가지고 우리는 누리는 겁니다. 가는 곳마다 주의 천군천사들이 우리를 호위 할 것이고 우리의 가는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우리 안에 계신 예수그리스도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그리스도 하늘과 땅에 모든 권세를 가지신 그 그리스도가 내 안에 계시기 때문에 그 그리스도 이름으로 나아갈 때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되어 집니다. 그와 더불어 땅에 권세가 무너지는 것이죠. 흑암의 권세들이 그리스도 이름 앞에 떠나갑니다. 성삼위 하나님의 역사와 하늘 보좌의 축복과 땅의 흑암을 꺾는 권세를 누리는 것 그게 우리가 예수를 날마다 바라보는 겁니다. 그 땡에 주시는 은혜가 이전에 받았던 은혜보다도 더욱더 큰 겁니다. 돌아보지 마시길 바랍니다. 돌아서려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장차 올 지금 당한 우리의 고난은 장차 올 영광과 족히 비교 될 수 없도다. 오늘 말씀 통해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 바라보고 믿음의 도를 굳게 붙잡고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는 그러한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8년 9월 2일 주일 2부 예배 최상국 목사
돌아서려는 자들에게
(히10:32-39)

서론: 히브리서는 유대교에서 개종한 히브리 기독교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시면서 재림의 약속을 주셨습니다. 재림이 늦어지고 핍박과 박해가 심해지는 가운데, 유대인들이 유대교로 회유함으로 많은 기독교인들이 유대교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흘러 떠내려 가려 함, 구원을 등한히 여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림, 연약하여 실족함, 다른 교훈에 끌려 다님).
1. 온전케 하지 못 하는 것들에 가치를 두지 말라.
가. 히1-10장에 나타나 있는 중요한 것들 – 선지자, 천사, 모세, 가나안에서 주어지는 안식, 대제사장, 옛 언약(율법), 성막, 피 제사
나. 그 당시에는 온전하게 했지만 온전하게 하지 못 하는 것들
1) 선지자 – 구약시대에 선지자를 통해 말씀을 받았지만 그리스도가 오시기까지만 사용함
2) 천사 – 능력이 있지만 온전하게 하지 못 함(히1:14)
3) 모세 – 최고의 지도자, 모세를 통해 율법을 받았지만 하나님의 집에서 신실한 종(히3:5)
4) 가나안에서 주어지는 안식 – 온전한 안식이 아니기 때문에 주의 날을 주심(히4:8)
5) 대제사장 – 하나님이 선택하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그리스도를 주심(히7:11)
6) 옛 언약(율법) - 율법보다 더 좋은 소망 그리스도를 주심(히7:18), 늘 드리는 제사로 온전하게 할 수 없음(히10:11)
7) 성막 – 그리스도께서 올 때까지 맡겨 둔 것이지 온전하게 하지 못 함(히9:9)
8) 피 제사 – 그리스도가 오신 이 후로 필요가 없음(히10:11)
다. 신앙생활에서 경계해야 될 것
1) 행위, 도구가 온전한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온전하게 되어짐
2) 은혜를 주시는 많은 통로가 행위로 빠지게 됨
2. 온전케 하시는 이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가.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 히2:10, 5:8-9, 7:24-25, 7:28, 9:11-12, 10:14
나.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가 온전케 하셨는가?
1) 십자가 사건 – 제사장 되신 그리스도(히13:20, 2:17, 7:27, 9:12, 9:28, 10:10)
2) 부활 사건 – 왕 되신 그리스도(히2:14)
3) 온전하게 하신 그리스도 – 선지자 되신 그리스도(히9:15, 10:19-20, 10:22)
4) 그리스도를 통해 온전하여짐, 자기 뜻을 행하심, 즐거움을 주심(히13:21)
3. 예수를 바라보라(히12:1-2)
가. 예수를 바라봄(히12:1-2, 4:14, 4:16) - 새 은혜를 주시기 때문에 돌아서지 말고 앞만 향해 나아감
나. 예수를 바라보는 것? – 함께 하시는 그리스도를 누림
1) 성삼위 하나님의 역사 – 말씀으로 역사, 3저주를 해결하신 그리스도, 능력 주시는 성령
2) 하나님 나라의 배경, 흑암이 꺾임, 천사가 동원 되어짐

결론: 온전한 것, 영원한 것은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뒤돌아보지 말고 하나님이 오늘 주실 새 은혜를 기대하며 오직 그리스도만 붙잡고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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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5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단12:1-4 2025-02-23
1474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단11:28-39 2025-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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