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복음에 완전 답을 가진 자
2018-10-0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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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7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복음에 완전 답을 가진 자”
(골1:24~29)


24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25 내가 교회의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26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27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28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29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 골1:24~29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예수를 바라보십시다. 은혜로운 찬양 감사합니다. 저는 찬양대 찬양을 들을 때마다 정말 우리 중심에 기도가 되어 졌으면 좋겠다라는 마음들이 늘 듭니다. 오늘도 우리의 일생이 전도 속에 있게 하시고, 우리의 자녀들이 선교 속에 있게 하소서. 진짜 복음에 완전 답을 낸 자들로 저와 여러분이, 또 우리 후대가 쓰임 받는 귀한 축복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난 주 제목이 “복음의 소망으로 흔들리지 않는 자”라는 제목입니다. 그리고 오늘 제목은 “복음에 완전 답을 가진 자”입니다. 우리 모두가 복음의 소망으로 흔들리지 않으며 복음에 완전 답을 가진 자로 이 한 시대를 살리는 전도자들로 귀하게 쓰임 받는 축복이 있기를 다시 한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프랑스에 병사 한 사람이 가슴에 총알이 박혔어요. 그래서 그 총알을 제거하는 수술을 하는데 의사에게 ‘가슴을 깊이 깊이 더 깊이 파 내십시오’라고 이야기 했어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내 가슴 속 깊은 곳에 나의 조국이 들어 있습니다.’1800년대에 영국의 시인으로 활동했던 프라임 링이라는 사람이 있는데요, 이 사람이 나의 가슴을 열면 그 가슴 속 깊은 곳에 한 가지 이름이 있다. 그 한 가지 이름이 뭐냐 나의 조국이다. 사실 제가 글을 보면서 이분들에게 조국이 어떤 의미일까? 제가 글을 읽는 가운데서 참 많은 것들을 생각했어요. 어느 집에 여 집사님이 자기 시댁이 우상숭배하고 종가 집으로 복음을 전혀 듣지 못했습니다. 한 가지 마음에 소원이 있었는데 어떻게 하든지 간에 우리 시댁에 복음이 전달되었으면 좋겠다 하는 그런 마음들을 가지고 계속 기도로 인도받아 왔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참 감사한 것은 시어머니께서 복음을 받게 되었어요. 그래서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어요. 너무 기쁘고 감사한 일이지요. 그래서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말씀했습니다. 교회 열심히 신앙생활 잘 해서 세례 받고, 함께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면 좋겠습니다 하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리고 세례 받을 때에 반드시 목사님이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가 물을 것이니까 이렇게 대답하십시오. ‘나의 주님이십니다’ 그렇게 부탁을 드렸습니다. 그러면서 노인이니까 잊어버릴까 싶어서 계속 따라하도록 했습니다. 나의 주님이십니다. 나의 주님이십니다. 세례 받는 날이 왔어요. 목사님이 아니나 다를까 문답을 시작했는데 그 문답의 내용이 예수님이 누구십니까? 물었습니다. 그때에 그 시어머니가 뭐라고 대답했느냐 하면은 우리 며느리의 주님이십니다. 나의 주님입니다. 나의 주님입니다. 잊어버리지 않도록 시어머니에게 가르쳤는데 그래서 그게 생각이 나서 이 시어머니께서 ‘나의 주님이십니다’ 라고 하지 않고 우리 며느리의 주님이십니다. 여러분 예수그리스도가 여러분에게는 어떤 의미입니까? 정말 복음이 여러분에게는 어떤 의미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안다고 이야기 합니다. 또 복음을 들었다고 이야기 합니다. 과연 예수 그리스도가, 그 복음이 여러분 개개인에게 어떤 의미입니까? 그냥 성경에 많이 나오는 이름이다. 그렇게 여러분 생각하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아니면 목사님이니까 늘 강단을 통해서 설교하는 메시지 아닙니까? 예수 그리스도! 말하는 것 아닙니까? 그렇게 여러분에게 의미로 자리 잡혀 있지는 않은지, 우리 교회 어떤 분은 복음 이야기만 하면 눈물을 글썽이는 사람이 있어요. 그냥 다른 것 없고 복음 하면 그 복음이라는 단어 앞에 눈물을 글썽이는 분이 있어요. 과연 그분에게는 예수가 그리스도 되시는 사실들이 어떤 의미로 자리 잡혀 있을까요? 오늘 이 날에 여러분 개개인이 복음으로 완전 답을 내는 참된 전도자로 세워지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제자들이 생각한 예수
그러면 먼저 첫 번째로, 제자들이 생각한 예수님에 대한 부분들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어떤 의미로 받아 들였을까요? 베드로와 그의 제자들이 생각한 예수님에 대한 부분들은 사실은 그들은 인정받지 못하고, 또 실패했던 사람들이니까 예수 따라 가면 뭔가 출세할 것으로, 성공할 것으로, 줄을 잘 서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제자들의 관심이 세상 사람들의 관심과 전혀 별다름 없었던 것을 제자들의 삶을 보면, 그들의 중심을 보면 처음부터 우리가 보게 되어져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었지요.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때에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고백을 했어요. 그러고 나서 마태복음16:21절부터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고난당하시고, 죽임 당하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실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겁니다. 그때 그 이야기를 듣고 제자 중 한 사람인 베드로가 ‘주여 그런 일이 절대로 주님 앞에 일어나지 않게 하겠습니다. 내가 오히려 죽는 한이 있더라도 주님께 그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내가 막겠습니다.’그렇게 들고 나왔어요. 거기에는 베드로의 마음 깊숙한 곳에 숨은 계산이 있는 것이지요. 아니 출세할 줄로 알고, 뭔가 한 자리를 차지할 줄로 알고 따라왔는데 이 자리에서 죽는다면, 십자가에서 죽는다면 죽도 밥도 안 되는 겁니다. 그런 계산이 깔려 있으니까 절대 예수님 앞에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내가 앞서서 그런 일을 막겠습니다 이야기 했어요. 그때에 예수님께서 뭐라고 했습니까?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도다.’여기에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이 말은 무슨 말이예요? 베드로가 사탄이다 그 말이 아닙니다. 중요한 십자가의 비밀, 그 비밀을 깨달아야 되는데 그것을 못 깨닫도록 막고 있는 사탄이 있다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제자들이 생각했던 사람의 일이 어떤 일입니까? 네, 한자리 차지하는 겁니다. 어떻게 하면 내가 한 자리 차지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내가 출세할 것인가? 또 그 당시에 사실은 이스라엘 백성들, 유대백성들이 로마의 속국 되어 있었기 때문에, 사실은 로마 속국에서 어떻게 해방 받을 것인가 그게 사람의 일들이었어요. 예수님의 제자들이 생각하는 사람들의 일들이었어요. 여러분, 사람들의 일인 내가 어떻게 출세하고, 내가 어떻게 성공할 것인가? 내가 어떻게 해방 받을 것인가? 그런 것으로는 우리에게 있는 진정한 문제인 원죄문제, 영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한 가지 길을 주셨어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한 가지 길을 주셨어요. 지옥의 권세에서 천국의 축복된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되어지는 한 가지 길을 주셨어요. 흑암의 권세에서 하나님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지는 한 가지 길을 주셨는데, 그 한 가지가 바로 그리스도입니다. 그 일이 바로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러니까 육신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십자가는 인정할 수가 없는 거예요. 하나님은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예수가 그리스도 되게 하시고, 우리 인류를 구원하시려고 작정하셨는데, 오늘 성경 읽지는 않았습니다마는 한번 보십시다. 지난주에 살펴보았던 골1:20절에 보면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하나님이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하나님과 화목케 하기를 기뻐하셨다 말씀했어요. 하나님은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바로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알게 하시고, 그리스도이심을 성취시키시고, 그를 통해서 우리와 하나님과의 화목케 하시는 화평을 이루시기를 원하시는데, 육신의 일을 생각하는 자는 그 십자가를 인정할 수가 없는 것이지요. 그리고 어떻게 되었습니까? 결국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는데 까지 가게 되었어요. 그러니까 사실은 제자들이 예수님이 당장 십자가에 못 박히는 그 사건이 오니까 마태복음26장에 보면 어려움을 당하게 되어 있거든요. 그러니까 예수님과 관련이 없어야 되니까 제자들이 그 위기 앞에서 뭐라고 이야기 했습니까? 내가 저 사람을 알지 못 한다 부인하고 맹세하면서 부인했다고 했어요. 심지어 마지막에는 저주까지 하면서 모른다 했어요. 왜냐? 예수님과 관련 없어야 하니까... 그게 제자들의 영적인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리스도 이시다는 증거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먼저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요한복음에 보면 너희에게 평안이 있을지어다 했어요.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을 모으사 40일동안에 사도행전1:3절에 보면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다 했어요. 이때에 제자들의 모든 영적인 상태, 제자들의 관심, 제자들의 인생 자체가 바뀌어지게 된 겁니다. 그래서 그 결과가 어디에 있느냐? 사도행전1:14절에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겁니다. 사실 거기에 갈 수 없는 자리입니다. 왜냐? 거기에 가면 사회적인 단절이 되어지고, 심지어 핍박 받으며 죽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과 상관없이 제자들이 마가다락방에 1:14절에 보면 모여진 겁니다. 거기에 120여명이 모여지게 된 것이지요. 이미 답을 냈다는 말이예요. 그리고 거기에 모인 제자들이 오로지 기도에 힘쓰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고 그 자리에 복음의 비밀이 깨달아지는 이 엄청난 역사가 일어났어요. 그로 말미암아 제자들이 그 다음부터 어려움이 올 때 어떻게 그들이 나가야 되느냐? 사도행전2:36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완전히 제자들이 바뀌어지게 된 것이지요. 너희들이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신 것이다. 그러면서 사도행전3장에 보니까 나면서부터 못 걷게 된 앉은뱅이를, 유대인들, 늘 성전에 드나드는 유대인들은 누구나 다 알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관심 없던 사람이예요. 왜냐? 늘 그 자리에 있으니까, 성전 미문에 앉아 있으니까 늘 그 자리에 있으니까 그냥 유대인들이 제일 잘하는 구제, 동전 몇 푼 던져 주었겠지요. 거기에 제자들 또한 동일하게 동전 던져 주면서 성전에 드나 들었겠지요. 그런데 복음을 알고 보니까 복음을 깨닫고 나니까 보는 것이 달라졌어요. 베드로와 요한이 앉은뱅이를 바라보면서 뭐라 했습니까?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했어요. 운명에 빠진 자들을 건져낸, 운명의 문제를 끝낼 이름, 오직 그리스도! 그 이름을 선포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앉은뱅이에게 빛이 들어오니까 저주와 재앙과 운명과 사탄의 역사들이 꺽여진 것입니다. 그 증거가 무엇이냐 그 사람이 발목이 힘을 얻고요, 성전에 뛰어 들어가면서 하나님을 찬송했다고 했어요. 영적인 완전한 변화가 일어나게 된 것이지요. 그 이후에 제자들에게 엄청난 핍박들이 더욱더 가중되었습니다. 아니 온갖 누명을 덮어 씌워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면 끝날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 예수 믿는 사람들은 점점 더 늘어나고요, 그러니까 그냥 둘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베드로와 요한을 불러다가 종교 법정에 세웠습니다. ‘너희가 누구 이름으로 이런 일을 행하느냐?’그때에 베드로가 어떻게 말씀했습니까? 사도행전4:12절에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옛날 같으면 부인하고 도망가야 할 베드로가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천하 사람 중에 구원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이 없다, 그러면서 바로 사도행전 4:20에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했습니다. 예전 같으면 사실은 이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어떻게 줄 잘 서서 출세할 것인가, 왜냐? 예수님이 능력도 행하고 기적도 행하니까 많은 사람들이 따라붙었지 않습니까? 그래서 정말 줄 잘 서면 한 자리 차지하겠다, 이런 마음이 제자들에게도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 예수님이 기적과 능력을 행하니까 많은 유대인들에게는 한때 왕으로 세우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런 부분들을 제자들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해서 내가 진짜 줄 잘 서서 한 자리 차지해야지, 이런 마음이 있었습니다. 계속해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런 마음을 가지고 따라다니니까 복음에 대해서 예수님이 계속해서 말씀했는데도 불구하고 복음을 알아듣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난 이후에 완전히 그들이 답을 내린 것입니다. 아, 이 분이, 바로 예수가 그리스도구나, 그리스도 맞구나. 복음의 능력을 체험한 것이고 복음의 사실적인 역사를 붙잡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느 정도로 답이 났느냐? 그 어떤 핍박도 상관 없었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5:41~42에 보면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체험하고 복음의 능력이 체험되고 복음의 가치가 발견되니 핍박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무섭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예수 이름 때문에 핍박 받는 그 자리에 섰다는 그 자체를 기뻐했다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어떤 문제도 문제가 안 되었다는 것입니다. 복음에 완전 답을 내리니까 이런 축복된 응답을 받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교회사를 통해서 보게 됩니다. 로마 열 황제가 일어나서 얼마나 초대 교회를 핍박했습니까? 그러나 그 로마 열 황제가 복음 가진 초대교회를 이겼습니까? 아닙니다. 그 열 황제의 말로는 비참하게 돌아갔지만, 실패했지만 그러나 복음 가진 초대교회 앞에 무릎 꿇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엄청난 핍박, 그들이 당한 핍박을 우리가 교회사를 통해서 보지 않습니까? 원형 경기장에 집어넣어서 수일 동안 굶주린 사자의 밥으로 찢겨 죽게 만들고 나무에 높이 달아서 불을 질러서 화형하는 사건들, 그러면서도 찢겨 죽어가면서, 불에 타 죽어가면서도 진짜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웃음을 잃지 않았던 그것이 어디서 나오는 힘이냐? 복음의 능력을 아는, 복음에 완전 답을 내리니까 그 어떤 핍박도 문제가 안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5:41에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세워진 것을 기뻐했다 했습니다. 우리는 조금만 문제 있으면 불평하고 원망하지 않습니까? 조금만 기도 응답 안 되면 하나님, 살아계십니까, 왜 이러십니까, 이렇게 나오지 않습니까? 그런데 사도들은 완전 답이 내려지니까 오히려 그리스도 그 이름 때문에 핍박 받는 자리에, 내가 어떻게 이 자리에 섰는가, 그 일을 기뻐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사람에게는 사단이 역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그 어떤 것도 문제가 안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저와 여러분, 진짜 완전 복음에 답을 내림으로 말미암아 그 어떤 것도 문제 안 되는 축복된 응답 속으로 들어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복음에 완전 답이 나지 않을 때
복음에 답을 내리지 못하면 먼저 우리는 무능에 빠집니다. 이 무능이라는 말은 내가 배웠다, 못 배웠다와 상관 없는 것입니다. 능력 있다, 없다와 상관 없는 것이고 내 배경, 어떤 면에서 내 권력, 상관 없는 것입니다. 이 무능이라는 말은 한 마디로 말하면 다른 것이 아니라 진짜 중요한 것을 중요하게 보지 못하는 것이 무능이요 무지입니다. 여러분, 중요한 것들을 중요하게 알고 봐야 거기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떻게 말해야 하고 자녀들에게 어떻게 말해야 하고 사람들에게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가 나오는데 내가 중요한 것들을 알지 못하니까 사실은 무능에 빠진 것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여러분, 우리의 눈앞에 보이는 현실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현실은 거의 다 껍데기입니다. 그런데 그 현실 너머에는 뭐가 있느냐? 진실이 있습니다. 그 진실은 사실, 사람들을 보면 전부 어렵습니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어려움 가운데 살아갑니다. 그게 사람들의 진실입니다. 그런데 그 진실 너머에 실제적인, 뭐가 있느냐, 사실이 있습니다. 그 사실은 뭐냐? 모두가 병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 너머에 뭐가 있느냐 영적 사실이 있습니다. 알고 보면 모든 사람이 인생의 열두 가지 문제 속에 영적인 거지로, 영적인 빈곤함으로 육신의 것만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여러분, 진짜 현실과 현실 너머의 진실과 진실 너머의 사실과 사실 너머에 있는 영적 사실을 보면 내가 무엇을 하고 어떻게 행동하고 어떤 말을 하고, 답이 내려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부분을 모르니까, 놓쳐버리니까 하나님의 계획을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알아야 답을 줄 수 있는데 하나님의 계획을 알 수 없고, 그래서 결국은 방황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돈 가진 사람도 무능함 속에 빠집니다. 배운 사람도 무능함 속에 빠집니다. 무슨 말입니까? 진짜 무엇이 중요한가 하는 것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됩니까? 문제와 사건, 어려움을 당하면 결국은 염려하고 걱정하고 대책을 세웁니다. 그것을 가지고 인본주의라 이야기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문제 없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주님 앞에 가는 그 날까지 문제 가운데 살아갑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정말로 현실을 제대로 알고 현실 너머에 있는 진실을 알고 진실 너머에 있는 사실과 영적 사실을 알면 문제 앞에서도 답을 찾을 수 있는데 그걸 모르니까 문제, 어려움 당하면 염려하고 걱정하고 대책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걸 가지고 인본주의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인본주의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 무엇이냐? 인간의 의(義)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게 인본주의입니다. 여러분, 인간의 의를 가지고는, 아무리 인간의 의가 있다 할지라도 그것 가지고는 성령이 역사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의, 그 앞에는 성령이 역사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반대로 말하면 악한 사단, 흑암을 꺾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공해 놓고도 성공자들이 많은 영적인 문제를 당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성공 이후에 많은 영적인 문제를 당하게 됩니다. 시달리고 온갖 상처 속에 빠지고, 제대로 살아가지도 못하고. 사실은, 모든 것, 본론 인생을 살아보지도 못하고 서론 인생으로 끝을 내게 되는, 그렇게 되는. 복음에 답을 내리지 못하면. 그리고 그 정도가 아닙니다. 복음에 답을 내리지 못하면 결국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다른 것을 가지고, 붙잡고 살아갑니다. 눈에 보이는 좋은 것, 눈에 보이는 것. 여러분, 악한 사단은 우리를 속이는데 고린도후서 11:14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광명의 천사로.” 무슨 말입니까? 좋은 것들을 주면서, 화려한 것들을 주면서, 세상의 굉장한 것들을 주면서 틀린 것을 붙잡도록 만들고 다른 것을 붙잡도록 만들고, 그래서 결국은 열심히 살아왔는데 다른 것 붙잡고 살아오고 틀린 것 붙잡고 살아오고, 그래서 실패하는 인생이 됩니다. 여러분, 많은 사람들이 뭔가 굉장한 것, 대단한 것, 아름다운 것들을 찾습니다만 그게 복음은 아니지 않습니까? 특히 이번에 일본을 가 보니, 처음에 일본에 갔을 때도 그렇게 느껴졌는데 아, 참 깨끗하다, 시골도 너무 조용하고 너무 깨끗하고 정돈되어 있구나, 그런데 가면 갈수록 일본에서 느껴지는 것이, 이 사람들이 예의 바르고 진짜 질서 있고 매너 좋습니다. 여러분, 어느 정도로 예의 있느냐? 앞에 지나가면서 그냥 스미마셍, 죄송합니다, 잘 못하는 것이지만 제가 한 번 하겠습니다. 스미마셍, 스미마셍, 이야기합니다. 여러분, 뭐, 미안할 것도 없는데 우리로서는 당연하고 미안할 것도 없는데 앞에 지나가면서 그냥 스미마셍, 스미마셍, 이야기합니다. 제가 집회 장소에서 뒤에 의자가 있기 때문에 그쪽에 지나가면서 사람들이 워낙 많으니까 복도에 앉아 있거든요. 거기 지나가면서 의자에 앉으니까 우리 딸이 옆에 있다가 아빠, 스미마셍 하라고 자꾸 누릅니다. 왜 스미마셍 해야 하냐고 하니까 앞에 지나왔잖아, 미안한 거 아니냐. 여러분, 그만큼 일본 사람은 예의 있고 어떤 면에서 질서 있고, 줄 서는 데 보십시오. 우리는 그냥 줄이 어디 있습니까? 마구, 그냥, 지하철이 오면 후다닥 가서 타지 않습니까? 그렇게 딱 보면 줄 쳐 놓은 데 줄을 딱 서 있습니다. 질서 있고. 식당에 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들어와서 밥을 먹는지 안 먹는지도 모릅니다. 너무 조용해요.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제일 시끄러운 게 우리 한국 사람 아닙니까? 어디 가든지 시끌벅적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규모 있고 아무리 질서 있고 아무리 예의 있고 아무리 매너 있어도 그게 복음은 아닌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게 복음은 아닌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사람들을 봐도 그렇습니다. 뭔가 믿지 않는 불신자들을 봐도 아, 참 훌륭하다, 또 수준 있다, 이런 사람들 있지 않습니까? 또 생각도 들어보면 아, 생각도 참 우리하고 다르네, 이런 사람들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게 복음은 아니지 않습니까? 좀 부족하고 모자라고 말도 함부로 마구 하고 수준이 없다 할지라도 진짜 복음이 있으면 그 사람에게 복음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그렇다고 여러분, 수준 없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함부로 말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아셔야 할 것은 아무리 아름답고 훌륭하고 굉장하다 할지라도, 대단하게 보인다 할지라도 그게 복음은 아닌 것입니다. 비록 부족하고 모자라고 연약하다 할지라도, 비록 실수하고 그렇다 할지라도 내가 복음이 있으면 나의 모든 삶에, 모든 걸음걸음 속에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게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속지 마십시오.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여러분, 세상 앞에서 사람들이, 대부분 세상을 향해서 나아가게 될 때 대부분 다섯 가지 부분에 걸려 드는데 먼저 내가 능력 없고 응답 못 받으니까 세상의 것을 부러워합니다. 세상의 것이 좋아 보이니까. 세상의 것을 부러워합니다. 그 다음에 내가 능력 없으니까 반대로 세상 앞에 서면 두렵습니다. 마치 여리고 성의 견고한 성을 보면서. 또 여러분, 골리앗 같은 어마어마한 세상을 바라보면서 마음에 두려움이 딱 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벨탑처럼 굉장한 것을 바라보면서 마음에 두려움이 딱 섭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아예 세상을 무시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세상과 담 쌓고 세상과 단절되어 살아가는 사람이 있고, 반대로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세상 속에 들어가서 세상과 동화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세상을 앞서갈 수 없고 세상에 영향을 주지 못하고 세상에 답을 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는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세상을 살리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 말씀했지 않습니까? 세상 속에 들어가서 세상을 살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저와 여러분, 세상의 빛이라고, 세상의 소금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축복하기를 원하시느냐? 세상 속에서 빛으로, 어둠을 물리치는 빛으로, 부패와 모든 썩어지는 것을 막는 소금으로 우리를 세우셨는데 세상에 영향을 주지 못하고 세상을 이끌어가지 못하고 세상에 답을 주지 못합니다, 복음에 답을 내리지 못하면 그런 인생이 되어 버립니다. 늘 질질 끌려다니느라 실컷 사단에게 당하고 실패하는 인생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교회 성도들, 정말로 모두가 복음에 완전 답을 내리는 축복된 응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마지막 결론입니다. 복음에 완전 답을 내리면 여러분, 나 자신에게 주어진 복음을 내 것으로 누려야 합니다. 복음에 완전 답을 내리면 내게 주어진 복음을 내 것으로 누려야 합니다. 내 것으로 누릴 때 얼마나 엄청난 축복의 역사가 일어나느냐? 요한복음 14:12에 보면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너희가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부족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말미암아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셨는데 그 구원의 역사를 저와 여러분에게 권세를 위임하셔서 세계복음화의 축복된 역사 가운데 세우시겠다는 것,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예수님보다 더 큰 일을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복음을 내 것으로 누려야 되는데 복음을 내 것으로 누리는 축복의 비밀이 어디에 있느냐? 오늘 24절에 보세요.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어떤 면에서 잘못 보면 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러면 그리스도의 고난 받으심이 완전한 구원을 이루지 않은 것인가? 생각할 수 있어요 여러분 그런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우리의 모든 구원을 이루시는 충분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은 부족함이 없는 충분한 구원의 역사를 이루신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운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세계복음화를 위해서 나가는 걸음 속에 우리에게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서 영적인 싸움이 있죠? 그 영적 싸움 속에 때에 따라 우리에게 고난이 올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이 세계복음화의 생을 걸겠습니다 이겁니다. 이게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운다는 말이에요 이게 진정한 복음의 누림 아닐까요? 어떤 어려움이 있다 할지라도 여러분 교회사 속에 보면 은 늘 복음이 상실되었다가 복음을 회복하고 복음이 회복되어지는 그 과정 속에 한 번도 예외 없이 복음 회복하는 그 일에 중심에 섰던 소수의 사람들은 반드시 이단으로 정죄되었어요. 이단으로 정죄되었단 말은 그 때에 엄청난 고난과 핍박들이 있었다는 말이죠. 그런데 그들이 무너졌습니까? 아니에요 복음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세계복음화의 역사를 위해서 나가는 속에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이루기 위해서 사단과의 영적 싸움 속에서 고난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이에요 그러나 그 고난 속에서 나는 여전히 세계복음화의 생을 걸겠습니다. 이게 바로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운다는 말이에요 이게 진정한 복음의 누림입니다. 그러면서 정말 우리가 복음의 완전 답을 내릴 때 어떤 응답이 일어나느냐 여러분 요한복음 14장 16절에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너희와 영원토록 함께 있겠다. 했습니다. 복음을 진짜 누리면 내 안에 성령께서 함께 하는 사실이 누려지게 됩니다. 그 성령이 함께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나타나는 응답이 뭡니까? 로마서 8장 1절 2절 특별에 2절에 보면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 하였음이라 해방 되어지는 축복이 일어나요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요한복음 16장 30절에 보면 뭐라 합니까? 너희가 세상에서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면서 죄와 저주의 법에서 해방 시키시고 세상을 이기신 그리스도의 비밀이 우리 안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게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비밀입니다. 이 풍성한 비밀입니다. 그래서 27절에 보면 그렇게 말씀 하죠.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 비밀이라 했어요. 이 비밀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서 28절에 보면 은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무슨 말입니까? 복음의 완전함을 누리게 될 때 내 자신에게 있어서 일어나는 일이 사실은 권함 받고 가르침 받고 완전한 자로 세워진다 했습니다. 또 복음의 완전함 속에서 나가게 될 때 우리를 만나는 모든 사람이 권함 받고 가르침 받고 완전한 자로 세워지는 개인화가 되어지는 이런 응답들이 일어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마지막 29절에 보면 은, 복음의 완전 답을 내리는 자에게 어떤 축복을 주시느냐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내가 힘내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내 안에 능력으로 역사 하시는 이가 있습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힘을 주십니다. 그리고 힘을 내면 낼수록 세상의 것을 힘내면 낼수록 힘 빠지고 지치게 됩니다. 그런데 이미 내 안에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가 계시기 때문에 그분으로 말미암아 힘내면 낼수록 지치는 것이 아니라 더 힘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뿐만 아니라 생명을 걸게 되어있어요 생명에 대한 모든 축복이 따라 오게 되어있어요 이것이 어디 안에서? 우리 안에 계신 비밀인 그리스도 안에서 말씀을 맺겠습니다. 그리스도의 비밀 여기에 완전한 답을 내린 자로 이 한 시대에 세상 현장을 살리는 그런 전도자로 쓰임 받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8년 10월 7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복음에 완전 답을 가진 자
(골1:24-29)

서론: 예수 그리스도가 나에게 어떤 의미입니까? 복음이 나에게 어떤 의미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알고 들었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 복음이 개인에게 어떤 의미입니까? 복음을 성경에 많이 나오는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강단에서 매주 설교하는 그리스도가 아닙니까?
오늘 개인이 복음에 답을 낸 전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1. 제자들이 생각한 예수님
가. 실패하고 성공한 적 없는 인생에, 한 자리를 주고 성공을 가져다 주는 분으로 예수님을 생각
1)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해서 이야기 함(마16:21) - 베드로가 절대 죽을 일 없다는 이야기를 함(베드로의 숨은 계산)
2) 세상의 방법, 사람의 노력으로는 원죄 문제를 해결 할 수 없음
3) 하나님이 주신 한 가지 길 - 생명을 주심,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 천국백성으로 변화(하나님의 일)
4) 십자가 사건으로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성취, 화목케 하심(골1:20) - 예수님이 죽으셨을 때 제자들이 부인(제자들의 영적상태)
나.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찾아오심 - 40일 동안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
1) 제자들의 영적상태, 관심, 인생이 변화
2) 절대로 갈 수 없는 마가다락방에 모임(행1:14) - 생명 걸고 기도할 때 성령의 역사가 임함
3)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심(행2:36-37), 제자들의 보는 눈이 달라짐(행3장)
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됨 - 답을 얻음
1)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에 확신을 가짐, 복음의 능력을 체험
2) 핍박을 두려워하지 않음(행5:41-42)
2. 복음에 완전 답이 나지 않을 때
가. 무능에 빠지게 됨
1) 무능, 무지 -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모르는 것
2) 현실, 진실, 사실, 영적사실을 보면 하나님의 계획, 답이 나오게 됨
나. 문제가 왔을 때 염려, 대책을 세움 - 인본주의
1) 인본주의 - 인간의 의를 드러냄
2) 성령이 역사하지 못 함, 흑암이 꺾이지 못 함, 성공 이 후에 영적문제가 오게 됨, 서론 인생에 끝이 나오게 됨
다. 눈에 보이는 것을 쫓아감 - 다른 것, 틀린 것을 붙잡게 됨
라. 복음에 답 나지 않으면 세상을 향해서 5가지가 나타남
1) 세상의 것을 부러워 함 2) 세상 앞에 두려워 함 3) 세상을 무시함
4) 세상에 담을 쌓고 단절 5) 세상에 동화 되어 살아가게 됨

결론: 복음에 답을 내렸다면, 그 복음을 내 것으로 누려야 합니다. 복음을 내 것으로 누리게 될 때 주신 축복이 있습니다.
나보다 더 큰 일을 하게 됩니다(요14:12). 그리스도의 복음을 우리에게 위임해 주셨습니다. 세계복음화를 위해 나가는 걸음 속에 고난이 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일에 생을 걸어야 합니다(골1:24). 보혜사 성령으로 우리와 영원토록 함께 하십니다(요14:16). 죄와 저주에서 해방 된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롬8:1-2). 세상을 이기는 축복이 우리 안에 있게 됩니다(요16:23). 그리스도 비밀의 영광의 풍성함을 누리게 됩니다(골1:27). 각 사람에게 권함 받고 전하는, 개인화의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골1:28). 그리고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가 역사하십니다(골1:29). 생명을 누리며 그 안에 있는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비밀에 답을 내며 세상 살리는 전도자의 축복 누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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