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의뢰할 자-임마누엘 그리스도
2019-03-10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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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0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오직 의뢰할 자
– 임마누엘 그리스도”
(사7:1~14)
1 웃시야의 손자요 요담의 아들인 유다의 아하스 왕 때에 아람의 르신 왕과 르말리야의 아들 이스라엘의 베가 왕이 올라와서 예루살렘을 쳤으나 능히 이기지 못하니라
2 어떤 사람이 다윗의 집에 알려 이르되 아람이 에브라임과 동맹하였다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과 그의 백성의 마음이 숲이 바람에 흔들림 같이 흔들렸더라
3 그 때에 여호와께서 이사야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아들 스알야숩은 윗못 수도 끝 세탁자의 밭 큰 길에 나가서 아하스를 만나
4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삼가며 조용하라 르신과 아람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심히 노할지라도 이들은 연기 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하니 두려워하지 말며 낙심하지 말라
5 아람과 에브라임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악한 꾀로 너를 대적하여 이르기를
6 우리가 올라가 유다를 쳐서 그것을 쓰러뜨리고 우리를 위하여 그것을 무너뜨리고 다브엘의 아들을 그 중에 세워 왕으로 삼자 하였으나
7 주 여호와의 말씀이 그 일은 서지 못하며 이루어지지 못하리라
8 대저 아람의 머리는 다메섹이요 다메섹의 머리는 르신이며 육십오년 내에 에브라임이 패망하여 다시는 나라를 이루지 못할 것이며
9 에브라임의 머리는 사마리아요 사마리아의 머리는 르말리야의 아들이니라 만일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너희는 굳게 서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10 여호와께서 또 아하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1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한 징조를 구하되 깊은 데에서든지 높은 데에서든지 구하라 하시니
12 아하스가 이르되 나는 구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나는 여호와를 시험하지 아니하겠나이다 한지라
13 이사야가 이르되 다윗의 집이여 원하건대 들을지어다 너희가 사람을 괴롭히고서 그것을 작은 일로 여겨 또 나의 하나님을 괴롭히려 하느냐
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사7:1~14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만민을 위하여 기를 드십시다.
교회 전체 분위기가 훨씬 밝아진 것 같아요. 조명시설을 바꾸고 나니까, 원래 여러분 얼굴 한 분 한 분 얼굴이 제게 다 들어왔는데 더 상세하게 잘 보입니다. 또 우리 찬양대도 보니까 더 밝아지니까 더 예뻐진 것 같아요. 사실 우리 RUTC방송을 보면 우리교회 메시지가 찬양부터 시작되어져요. 그리고 메시지가 나가는데, 그 말은 무슨 말입니까? 여러분의 얼굴이 세계 속으로 나가고 있다 라는 사실이예요. 그래서 더 예쁘게 최고의 것으로 준비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그런 우리 찬양대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제목은 “오직 의뢰할 자 임마누엘 그리스도” 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가 똑같이 이 세상에 발을 디디고 살아가고 있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과 믿는 사람들은 분명히 차이가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과 하나님의 사람들은 분명히 구분이 되어집니다. 세상 방식과 하나님 나라의 방식은 분명히 다른 것입니다.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은 사실은 보이는 것을 위해서 보이지 않는 모든 것들을 잃어버리는 사람들이고요, 그러면 믿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것을 위해서 보이는 모든 것들을 투자하는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의 사람인 저와 여러분인 것입니다. 특별히 세상 사람들은 보이는 것 밖에 몰라요. 그래서 육신적인 것 밖에 몰라요. 그래서 여러 가지 상황과 환경 속에서 흔들리고 낙심하게 되는 부분들을 봅니다. 왜냐? 보이는 것이 전부이고, 육신적인 것이 전부이기 때문에, 그러나 믿음의 사람, 하나님의 사람들은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예요. 보이는 것 도 중요합니다마는 보이는 것 그 너머의 것이 영적인 것이 있는 것이고요, 또 보이는 것 그 너머의 모든 상황들을, 환경들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음을 우리는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우리는 육신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축복들을 먼저 누려야 되는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영적인 축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거예요. 구원받은 저와 여러분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성삼위 하나님이 지금도 나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분명히 성부하나님께서 지금도 말씀을 성취시키고 계시고요, 성자 하나님께서 지금도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가고 계시고, 성령하나님께서 지금도 우리의 모든 현장에, 관계된 곳에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성부성자성령하나님 이 성삼위 하나님의 비밀을 우리가 가진 것이고요, 또 이 성삼위 하나님의 비밀을 가진 우리에게 배경이 있습니다. 바로 그것은 하늘보좌의 배경이 우리의 배경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나가는 모든 걸음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게 되어 있고, 우리가 나가는 모든 현장에 하늘 군대를 하나님께서 동원하시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오는 것이 무엇입니까? 걸음 걸음 속에서 결국은 흑암과 사탄의 세력이 무너져 내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영적인 축복인데, 이 사실이 보여지지 않고 누려지지 않게 되면 우리의 신앙생활은 하면 할수록 힘든 겁니다. 그러나 이 사실이 보여지고 누려지면 신앙생활은 하면 할수록 기쁜 것이고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감사거리가 더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실이 보여지지 않으면 신앙생활이 힘들게 되고, 어렵게 되고 그래서 결국은 신앙생활을 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문제들 가운데 그대로 살아가게 되는 부분들을 보게 됩니다. 우리의 모든 것의 축복의 시작이 무엇이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축복을 먼저 누리는 것이고 이를 위해서 우리의 모든 것들을 투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인 영적인 누려야 될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이 영적인 축복을 놓쳐버림으로 말미암아 보이는 것, 육신적인 것에 빠져서 어려움을 당하는 한사람이 나옵니다. 그 사람이 바로 아하스라는 사람입니다. 오늘 1절에 아하스왕, 유다왕 아하스에 대한 부분들이 나옵니다. 그 사람이 언약의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보이는 상황들 바라보면서 두려움에 빠지고, 두려움에 빠지니까 결국은 대책까지 세우게 되는 이런 부분들을 오늘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지요. 오늘 특별히 성경본문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본문입니다. 특별히 이사야7:14절에 보면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시니라”여러분 이사야 서를 지금 우리가 계속해서 쭈욱 살펴보고 있는데요, 이사야 성경말씀을 쭈욱 살펴보면 그 어느 성경보다도 복음에 대해서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는 곳이 바로 이사야서입니다. 그래서 이사야서를 구약의 복음서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 중에 특별히 오늘 본문에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주신 말씀인데,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어떤 배경 속에서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주셨는가? 이 당시에 사실 북이스라엘이 있었고요, 또 남 유다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두 나라는 오래된 갈등들 가운데 늘 대치하고 있는 민족들이었습니다. 우리나라가 남북으로 갈려져서 남한과 북한이 대치되어 있는 가운데 갈등 가운데 있는 것 같이 오랜 동안에 북이스라엘과 남 유다가 솔로몬 이후로 갈라져서 지금까지 계속되어져 왔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오늘 본문에 보면 북이스라엘 10개지파가 아람 나라와 결탁을 해 가지고 남 유다를 공격해 온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전쟁 속에서 하나님께서 승리할 수 있는 징조를 주셨는데, 승리할 수 있는 약속을 주셨는데, 그게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7:14절입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여러분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음에 대한 핵심적인 부분들을 곳곳에서 말씀하고 계시는데, 특별히 창세기3:15절에 여자의 후손이 뱀의 후손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너무 중요한 말씀이지요. 원 복음이라고 할 수 있는 너무 중요한 말씀입니다. “여자의 후손이 뱀의 후손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또 어떤 면에서 획을 긋는 말씀들을 시대의 획을 긋는 말씀들을 주셨는데 바로 출애굽기3:18절에 희생제사의 피, 그 피 언약 붙잡게 될 때에 노예에서 빠져나오게 될 것이다. 출애굽기3:18절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또 시간이 흐르면서 결국 오늘 본문에 나오는 말씀을 주셨는데, 결국은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 언약 붙잡게 될 때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이 언약 붙잡게 될 때에 너희들이 포로로 끌려가지 않게 될 것이다. 그 언약을 주신 거예요. 그게 이사야7:14절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성취되었는데 그게 마태복음 16:16절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이십니다”예수님께서 이 땅에 왜 오셨느냐? 그리스도의 일을 하러 오셨어요. 그래서 이 땅에 오셔서 당신께서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친히 선언하신 것이지요. 바로 그리스도 그 언약 붙잡게 될 때에 뱀에서 건진 바 되어질 것이고, 다시 말하면 사탄의 머리가 깨뜨려질 것이고, 그리스도 그 언약 붙잡게 되면 노예에서 해방될 것이고, 그리스도 그 언약 붙잡게 될 때에 너희들이 전쟁에서 승리하게 될 것이고, 포로에서 포로로 끌려가지 않게 될 것이다. 그 언약을 완성하신 것이 바로 그리스도 언약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예 되고 포로 되어진 것 같이 이런저런 많은 일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 승리할 수 있는 답을 주었어요. 성공할 수 있는 답을 주었어요. 그 모든 현장을 정복할 수 있는 답을 주었어요. 그 답이 무엇이냐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그게 바로 오늘 본문에 징조다 이야기 하고 있어요.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약속으로 주신 단어예요. 언약으로 주신 단어예요. 그런데 언약의 백성인 오늘 아하스 왕이 이 언약을 당연히 붙잡아야 되지요. 그런데 이 언약을 놓쳐버림으로 말미암아 아하스왕 뿐만 아니라 온 백성들이 두려움에 사로잡혔던 사실들이 오늘 본문에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으로 언약을 붙잡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맛보면서 나아가면 하나님이 역사하실 것인데 이 언약을 놓쳐버리니까 결국은 두려움이 오게 되고, 상황들 바라보면서 그 상황들 속에서 두려움을 가지게 되고, 그 두려움 속에서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자신이 대책을 세워야 되고, 그래서 언약을 잃어버림으로 말미암아 실패하는 이런 부분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아하스왕은 한마디로 말하면 언약의 백성이지만, 그 언약의 역사들을 놓친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었어요. 그러면 오늘 본문에 아하스왕의 영적인 상태가 어떠한 상태였는가를 한번 살펴봐야 합니다.
1. 육신만 의지하는 허망한 상태
먼저 첫 번째로 육신만 의지하는 허망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육신만 의지하는 허망한 상태에 빠져있었던 것이 바로 아하스왕 이었습니다. 여러분 세상과 신앙의 변절자들이 합치게 되면 그게 큰 문제를 가져오게 되지요.
사실 오늘 본문의 1절에 보면 북이스라엘의10지파, 사실은 하나님의 언약 있는 백성들은 남 유다의 백성들이었어요. 북이스라엘은 신앙의 변절자라고 할 수 있어요. 이런 사람과 아람나라가 결탁했어요. 무슨 말입니까? 세상과 결탁한 거예요. 신앙의 변절자와 세상과 결탁하게 되니까 결국 큰 문제를 가져왔는데 전쟁을 일으키게 되지요. 이게 어떤 면에서 지금 세계사의 역사이고, 지금 지구상의 문제인 것입니다. 늘 항상 있어 왔어요. 종교와 복음과의 싸움, 불신앙과 믿음과의 싸움, 늘 항상 있어왔어요. 그러나 여러분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종교가 힘 있는 것처럼 보이고, 뭔가를 해 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복음 앞에 무너지게 된 것이 바로 종교의 역사입니다. 불신앙이 그럴 듯해 보입니다. 가장 합리적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설득력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 앞에 무너지는 것이 바로 불신앙의 역사입니다. 늘 항상 싸움은 이 싸움입니다. 지구상의 싸움은 이 싸움입니다. 결국 여러분, 오늘 이 시간에 진짜 언약 붙잡는 귀한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믿음을 선택하는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언약의 백성인 아하스, 남유다가 언약을 놓쳐 버리니까 이 백성에게 어떤 문제들이 왔느냐? 먼저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버렸습니다. 2절을 봅시다. 오늘 2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다윗의 집에 알려 이르되 아람이 에브라임과 동맹하였다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과 그의 백성의 마음이 숲이 바람에 흔들림 같이 흔들렸더라.” 숲이 바람에 흔들림 같이 흔들렸더라.
여러분, 바람이 불면 나무가 흔들리게 됩니다. 그런데 그냥 단순히 한 나무가 흔들리는 그 정도가 아니라 숲이 흔들렸다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모든 백성들이 두려움에, 위기의식 속에 사로잡혔다는 사실. 마치 태풍이 불면 여러분, 숲 전체가 흔들리지 않습니까? 온 백성이 두려움 가운데, 언약의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두려움 가운데 빠진 사실을 오늘 성경에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왕이 당연히 왕궁이 있어야 하는데 오늘 아하스 왕이 어디에 있느냐? 3절을 한번 보십시오. “그 때에 여호와께서 이사야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아들 스알야숩은 윗못 수도 끝 세탁자의 밭 큰 길에 나가서 아하스를 만나.” 왜 이곳에 갔는지는 모르지만 왕이라면 당연히 왕궁에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윗못 수도 끝 세탁자의 밭이라 했습니다. 여러분, 왕궁을 피해서, 두려움에 사로잡히니까 뭔가 숨어 있었던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여러분, 언약을 놓치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역사하실 것인데 아하스는 위기 속에서 낙심하고 흔들렸습니다. 왜 그런가? 언약의 백성임을 알지 못해서, 언약의 가치를 깨닫지 못해서. 언약을 놓치게 되니까 상황 보고 위기 속에서 흔들리고 낙심에 빠진 부분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평상시에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따르지 아니하면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놓치게 됩니다. 반대로 지금도 하나님은 3오늘을 이루고 계시는데 우리가 3오늘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3오늘을 이루고 계십니다. 무슨 말이냐? 구원의 역사를 하나님이 이루어가시고 말씀의 성취를 하나님이 이루어가시고 또 성령의 역사, 전도의 역사를 하나님께서 이루어가시지 않습니까? 그래서 진짜 우리가 말씀의 흐름 속에 있게 되면 문제와 사건과 일들을 당하게 되면 말씀을 놓치는 것이 아니라 더욱더 말씀을 붙잡게 되고 그 말씀 속에 하나님의 계획이 어디 있는지가 찾아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평상시에 말씀의 흐름을 놓치게 되니까 문제가 오니 아예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게 되는 것입니다. 언약의 말씀을 모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오늘 아하스 왕과 더불어 남유다 백성들이 빠져 있던 부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에게 아들을 데려가도록 합니다. 그런 상황 속에 있는 아하스 왕에게 이사야 선지자가 아들을 데리고 갔는데 아들 이름이 스알야숩입니다. 그 이름의 뜻이 주에 나옵니다. 3절에 1번 해서 그 아래 주가 나와 있는데 주에 보면 뭐라고 나와 있습니까? ‘남는 자가 돌아오리라’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아들을 데리고 왔는데 그 아들 이름이 스알야숩, 그 뜻이 남는 자가 돌아오리라, 하나님의 메시지를 가지고 그 아들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하스 왕이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남은 자가 돌아오리라, 무슨 말입니까?
여러분, 모든 것, 보이는 것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인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반드시 그것을 이어갈 자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게 바로 남은 자가 돌아오리라는 말입니다. 약속을 지킬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따로 있다는 사실을, 그 약속을 이어갈 남은 자가 있다는 사실을 아들을 통해서 보여주는데 그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언약의 사람인 아하스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합니다. 더 나아가 아하스의 마음에 어떤 불신아이 자리 잡혀 있었느냐? 10절~12절에 나옵니다. 10절~12절, 한번 봅시다. 아하스의 마음 깊숙한 곳에 있는 불신앙입니다. 10절~12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또 아하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한 징조를 구하되 깊은 데에서든지 높은 데에서든지 구하라 하시니 아하스가 이르되 나는 구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나는 여호와를 시험하지 아니하겠나이다 한지라.” 여기 하나님께서 아하스에게 징조를 구하라, 시험해 보라 했습니다. 그런데 아하스는 나는 징조를 구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여호와를 시험하지 않겠습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자칫 잘못 보면 이 아하스 왕은 대단히 믿음 있는 사람같이 보입니다. 어떻게 내가 하나님을 시험해? 믿은 있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아닙니다. 그건 잘못 본 것입니다. 믿음을 가장한 불신이 아하스 왕의 마음속에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여러분, 하나님께 구하라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말입니다. 사실은 그들이 살아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것밖에 없지 않습니까? 사실, 이스라엘 백성 주변의 나라들은 전부 강대국입니다. 그래서 강대국인 그 나라들 속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들여보내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말미암아 주변의 모든 나라를 정복하는 그 축복을 누리도록 하셨는데 사방을 바라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이 점점 멀어진 것입니다. 사방이 보임으로 하나님을 바라봐야 할 하나님의 백성인, 언약의 백성인 유다 백성들이 결국은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사방이 보임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이 점점 멀어진 것입니다. 여기 하나님께 구하라 하신 것, 또 하나님을 시험하라는 이 말씀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위로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말씀인데 아하스는 거의 다 안 하겠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아하스의 마음에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한 가지는, 첫 번째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안 믿는다는 것. 두 번째는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무언가가 아하스에게 있다는 것. 그래서 당연히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 신앙생활 아닙니까? 우리가 구할 때마다 말씀을 통해서 역사하시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때마다 당연히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께 구해야 하는 것인데 아하스는 무언가 자기 마음에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다른 것이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그러니까 징조를 구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시험하지 않겠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좋은 말이 아닙니다. 대단한 믿음 있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그 말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믿음을 가장한 불신앙의 말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가 얼마나 안타까웠던지 13절~14절에서 이야기합니다. 13절~14절을 한번 봅시다. 같이 한번 읽어 봅시다. “이사야가 이르되 다윗의 집이여 원하건대 들을지어다 너희가 사람을 괴롭히고서 그것을 작은 일로 여겨 또 나의 하나님을 괴롭히려 하느냐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할렐루야! 여기 이사야 선지자가 너무나 안타까워서 아하스 왕에게 이야기합니다. 아하스 왕이여,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다윗의 집이여’ 했습니다. 아하스 왕이여 해야 하는데 이사야 선지자가 아하스를 바라보면서 다윗의 집이여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과 다윗과의 언약의 관계 속에 있는, 그 언약을 왜 잊어버리고 있습니까, 이 말입니다.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 속에 있는 그 하나님의 축복된 역사들을 왜 놓치고 왜 잊어버리고 있습니까, 너무나 안타까운 나머지 당연히 아하스 왕이여 해야 하는데 그 언약을 기억하도록 다윗의 집이여,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들,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이 아닙니까, 이 사실을 잊지 않도록 이사야 선지자가 아하스 왕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그러면서 그때에 중요한 메시야의 메시지를 선포하고 있는데 그 속에서 나온 것이 바로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포기하신 적이 없으시다는 사실을 여기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약속이 임마누엘입니다. 아하스 왕은 다른 것을 더 의지한다 할지라도 징조를 구하지 않고 하나님께, 여호와께 시험하지 않겠다 할지라도, 그러나 하나님은 약속하신 바대로 구원자를 보내주시겠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하시겠다, 하나님은 약속을 한 번도 버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들은 하나님보다 더 세상을 의지하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보이는 세상의 모든 것들에 더 기준을 두고 거기에 마음을 담고 살아가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지으신 백성을 끝까지 동행하고 지켜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아멘입니까? 그게 오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했습니다. 이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끝까지 너희와 동행하면서 지키시고 보호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이게 복음입니다. 이게 하나님께서 이 시대 우리에게 주신 언약입니다. 성경 66권을 신학자 칼빈이 아주 잘 정리한 것이 다섯 가지가 있습니다. 아마 여러분, 잘 아실 것입니다. 성경 66권 전체를 신학자 칼빈이 너무나 잘 정리했는데 크게 다섯 가지로 정리했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우리 인간은 창세기 3장 이후로 모든 사람이 다, 전적으로 타락했다는 것. 그래서 전적 부패요, 전적 무능력 속에 빠졌다는 사실. 그게 첫 번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는 그 어떤 조건도 없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무조건적으로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것, 이것이 무조건적인 선택입니다. 그렇게 구원하신 하나님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는데 하나님이 주신 은혜는 그 어떤 것도 막을 수가 없다는 것, 그게 무엇입니까? 불가항력적인 은혜입니다. 불가항력적인 능력입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신 것이 아니라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신다는 것, 그것을 가지고 제한적 속죄라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승리하도록 하신다는 것, 그것을 가지고 성도의 견인이라 했습니다. 너무나 잘 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조건 없이 구원하시고, 아니, 우리에게서는 그 어떤 것도 우리 스스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우리를 위해서 그리스도를 보내주시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조건 없이 우리를 구원하시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 주시고 믿는 믿음 주셔서 그 믿음 가운데에 서 있는 하나님의 백성을 끝까지 하나님 나라에 가는 그날까지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동행하시고 끝까지 책임져 주시게 되어 있습니다. 그 축복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입니다. 이 축복을 회복하고 누리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언약 안에서 주어진 축복입니다. 내게 이미 주어진 언약 있지 않습니까? 그 축복 가운데 우리에게 주어진 복입니다. 그런데 아하스는 이 사실을 놓쳐 버리고 눈앞에 보이는 환경에 속아서, 두려움에 빠져서 결국 대책을 세우는데 어디까지 빠지게 되느냐? 강대국, 그 당시에 최고 가는 앗수르를 끌어들이게 됩니다. 성경을 한번 찾아봅시다. 열왕기하 16장입니다. 열왕기하 16장. 590면입니다. 7절~8절, 아하스가 언약을 놓쳐 버림으로 결국은 두려움 속에서 대책을 세우는데 그 대책이 어떤 대책이냐? 언약의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도 또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부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7절, 8절 같이 봅시다. “아하스가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에게 사자를 보내 이르되 나는 왕의 신복이요 왕의 아들이라 이제 아람 왕과 이스라엘 왕이 나를 치니 청하건대 올라와 그 손에서 나를 구원하소서 하고 아하스가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금을 내어다가 앗수르 왕에게 예물로 보냈더니.” 여러분, 보십시오. 결국은 아람 나라 왕과 북이스라엘이 연합해서 공격해 오니까 그게 두려운 나머지 결국은 버티다가 대책을 세우는데 앗수르 왕에게 손을 내밉니다. 그러면서 아하스 왕이 뭐라고 이야기하느냐, 앗수르 왕에게? “나는 왕의 신복이요 왕의 아들이라.” 이게 도대체 될 말입니까? 왕의 종이요 왕의 아들이라. 하나님의 자녀이지 뭐가 왕의 아들입니까? 언약을 놓치면 이렇게 부끄러움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8절에 보면 뭐라고 합니까? “아하스가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금을 내어다가 앗수르 왕에게.” 모든 성전에 있는 것, 왕궁에 있는 것, 모든 은금들을 앗수르 왕에게 갖다 바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언약의 백성임을 모르게 될 때 이런 비참한 일을 당하게 되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한번 따라합시다. 나는 언약의 백성이다! 이 축복을 회복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하스 왕은 이 언약의 백성임을 깨닫지 못하고 누리지 못하니까 결국은 세상에 보이는 환경들만 바라보면서 두려움 가운데 빠지다 나중에 대책을 세우는데 인간적인 대책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망할 대로 망하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세상이 뭔가 힘 있어 보여서 그것을 붙잡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여러분, 세상이 힘 있습니까? 정말 세상이 우리가 의지할 바 됩니까? 오늘 본문 4절에 보면 ‘연기 나는 두 부지깽이’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거창해 보이고 대단해 보인다 할지라도 연기 나는 두 부지깽이. 여러분, 부지깽이를 아십니까? 부지깽이. 여러분, 집의 아궁이에 나무를 넣고 불을 피우지 않습니까? 어르신들은 다 알지 않습니까? 아궁이에 나무를 넣고 불을 피우면 그 불이 살아납니다. 그러면 조금 지나면 그 불이 사그라들고 죽어갑니다. 그러면 옆에 있는 부지깽이를 가지고 불구덩이를 쑤십니다. 쑤시면 불이 다시 활활 타오르지 않습니까? 쑤시면은 불이 다시 활활 타오르잖아요. 근데 자칫 잘못 하면 자꾸 쑤시다보면 그 부지깽이에 불이 붙습니다. 그러면 깜짝 놀라가지고 사람들이 그 부지깽이를 바닥에 치잫아요 기억나십니까? 부지깽이를 바닥에 치면 은 불꽃이 튀어서 불도 나고 해요 그 연기나는 부지깽이는 아무 힘도 없고 사실 아무것도 아니란 사실을 말하고 있어요. 세상의 그 어떤 여러분 뭔가 모르게 힘 있어 보이다 할지라도 결국은 그것이 허세요 허영이란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도 모르게 언약의 가치를 놓쳐 버리니깐 그 힘없는 세상의 것에 우리 마음들 다 빼앗겨 버리고 우리가 진짜 의뢰해야 할 하나님을 의뢰하지 아니하고 붙잡아야 될 언약을 붙잡지 않고 세상 것을 붙잡고 실패하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들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진짜 언약 회복하는 축복의 시간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오직 의뢰할 자 – 임마누엘 그리스도
그러면 두 번째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오직 의뢰할 자는 누구냐 임마누엘 그리스도입니다. 여러분 왜 하나님의 사람임에도 실패 하는 줄 아십니까? 환경 때문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환경을 이야기해요 정말 환경 때문일까요? 또 내가 잘 못 해서 그렇다 정말 내가 잘못해서 그럴까요? 그럴 수 있겠죠 그러나 아닙니다. 답을 드리겠습니다. 복음으로 시작해야 되는 겁니다. 복음으로 시작해야 됩니다. 그냥 복음을 듣고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모든 것들을 복음으로 시작해야 되요 근데 많은 경우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흉내 내고 있어요. 그러면 결국 어떻게 되느냐 사도행전 19장에 우리에게 구체적인 한 예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엄청난 하나님의 능력들이 바울의 몸에서 나가기 시작했어요. 그러니깐 어느 정도로 능력이 나타나느냐 사도행전 19장에 보면 은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을 가져다가 사람들에게 얹으면 은 병이 낫게 되고 악귀도 떠나는 그런 역사가 일어났어요. 그런데 그걸 딱 보니깐 뭔가 괜찮거든요 그래서 흉내 내는 사람이 나왔어요. 누구지요? 스게아의 일곱 아들입니다. 스게아의 일곱 아들이 흉내를 냈는데 귀신들린 자가 스게아의 일곱 아들에게 뭐라 했느냐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아는데 너는 누구냐 그러면서 그 스게아와 일곱 아들에게 덮쳐가지고 스게아의 일곱 아들이 홀랑 벗고 도망친 모습이 사도행전 19장에 나와요 무슨 말입니까? 언약의 백성들이 언약으로 시작하지 아니하고 복음의 백성들이 복음으로 시작하지 아니하고 복음을 그냥 듣고 안다고 생각할 때 복음을 체험하지 않고 그냥 듣고 안다고 생각할 때 결국은 부끄러움을 다하게 된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듣고 아는 게 아니고요 실제로 복음을 체험하고 누려야 합니다. 어느 정도 누려야 하느냐 빌립보서 1장 20절 21절에 보면 은 바울이 내 안에 사는 것은 그리스도기 때문에 나는 죽어도 좋고 살아도 좋다하는 것 끝난 것이죠. 이정도로 바울은 복음을 누렸습니다. 더 나아가서 빌립보서 3장 1절에서 21절에 중요한 말씀을 하고 있죠. 바울이 지난날은 예수 믿는 일에 앞섰던 그 사람들 잡아 죽이는 일에 앞섰던 바울이었지만은 그러나 그리스도를 만나고 난 이후에 완전히 그리스도를 알고 체험하고 누리다 보니까 어느 정도 그의 가치관이 바꿔졌느냐 그리스도를 내가 당연히 누려야 되는데 알아야 되는데 내게 있는 이 모든 것들이 그리스도를 모르게 했구나. 그래서 자기가 가진 모든 것들을 배설물로 여긴다 하면서 고백한 것이 그리스도 아는 것이 최고의 지식임을 고백했어요. 그다음에 뭐라 했습니까? 지난날에는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원했지만 은 그러나 이제는 내가 하나님께 발견되기를 원한다. 이야기 했어요 하나님께 발견되기를 원한다. 그만큼 복음의 역사를 누리는 것이죠. 그리고 지난날 내 모든 부분들을 악한 사단이 나를 붙잡고 있었지만은 그러나 지금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간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의 자랑이 로마 시민권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지라 말씀하고요 그러면서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푯대를 향하여 달려간다 말씀하면서 마지막에 21절에 보면 뭐라 했습니까? 그 그리스도 이름 앞에 만물이 무릎 꿇고 복종하는 것이구나. 그만큼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누렸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골로새서 2장 2절 3절에 보면 은 하나님의 비밀이 그리스도다 이야기하면서 그 그리스도 안에 모든 지혜와 지식과 보화가 감추어져있다 했어요. 이거는 그냥 말이 아닙니다 그만큼 바울은 복음을 체험하고 누렸던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복음을 알고 그냥 듣는 것에 끝나지 마시고 여러분 복음이 여러분에게 체험되어지고 복음을 누리는 그 누림 속에 들어가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게 되어지면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 모든 현장에 그리스도가 발견되어져요 사도행전 1장 1절에 그리스도 다 있잖아요. 세상에 다 있잖아요. 그런데 진짜 현장에 필요한 것은 그리스도라는 사실들이 보여져요 그리고 진짜 현장에 필요한 것은 하나님 나를 위해서 준비하신 하나님의 나라가 보여지고 누려지게 되어 있고요 나와 여러분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으로 된다는 사실들이 보여지게 되어있어요 그걸 가지고 누림이라는 겁니다. 그렇게 될 때에 결국은 현장에 역사가 일어나는데 사도행전 2장 1절에서 47절에 현장에 능력의 역사가 일어나면서 결국 그 속에서 아 나는 그리스도 안에 죽은 것이구나. 내 안에 그리스도가 나타나는 것이 그게 진짜 축복이구나. 갈라디아서 2장 20절이 고백 되게 되어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게 임마누엘 아닙니까? 이게 성령 충만 아닙니까? 이렇게 되어지면 여러분 모든 것들을 끝나는 것입니다. 오직 의뢰할 자는 임마누엘 그리스도 밖에 없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여러분 살아가는 생애동안 이런 저런 많은 일들이 있겠죠. 그 현상 속에 그 문제 속에 속지 마시길 바랍니다. 오직 복음 될 수 있는 기회로 붙잡길 바랍니다. 마태복음 14장에 보면 은 베드로가 물위를 걸어갑니다. 14장 보면 은 예수님께서 물위를 걸어오는 것을 보면서 두려워 떨다가 내니 두려워 말라 하면서 결국 제자들을 안심시켜 주시면서 기적을 행하신 부분들을 보여줘요 그러니깐 베드로가 용기 있는 베드로가 주시거든 나를 뛰어내려서 물위로 걸어라 명령하라 했잖아요. 그 때에 베드로가 호수를 건넙니다. 주님을 바라보고 그런데 주변을 바라보면서 결국은 빠져 들어갔어요. 주님을 바라봐야 되는데 주변을 바라봄으로 문제 바라보지 마시고 문제를 너머서 그 문제를 주관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오직 여호와를 바라보는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영안이 열려지길 바랍니다. 여러분 문제 있다면은 그 문제 오직 복음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기회로 붙잡게 되기를 바랍니다. 열왕기하 6장에도 마찬가지죠 아람 나라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공격해 왔어요. 아람나라 왕이 계속해서 이스라엘 백성들 공격해 왔는데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엘리사가 아람 나라 군대가 어디에 공격해 올 것을 알고 늘 대비를 한 겁니다. 그러니깐 이 왕이 화가 난겁니다. 도대체 어떻게 자꾸 우리는 가면 갈수록 전쟁에 지느냐 우리 안에 스파이가 있지 않느냐 그때 왕을 모신 신하가 얘기했잖아요. 저 이스라엘에는 왕의 침실에서 말하는 것 까지 다 알아 듣는 엘리사 선지자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에게 지혜를 줘서 그 선지자로 말미암아 모든 부분들에서 미리 막을 수 있도록 그렇게 하십니다. 그러니깐 아람나라 왕이 화가 나가지고 모든 군사를 동원해가지고 결국 도단성을 공격해 왔잖아요. 그 도단성을 둘러 진 치고 있을 때에 아침에 일어나서 보니깐 사환이 종이 그 둘러진 아람나라 군대를 보면서 엘리사에게 얘기했습니다. 이제 우리가 죽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그때에 엘리사가 뭐라 했습니까?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저들과 함께 하는 자보다 많으니라. 우리가 진짜 어디에 눈이 열려져야 될 것인가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어진 현실 상황을 바라보지 마시고 그 너머에 하나님의 역사들을 바라보는 그런 축복 있기를 바랍니다. 주어진 현실과 상황은 우리에게 오직 복음 되게 하는 그 방법으로 주신 거예요 그리고 또한 모든 것들을 진짜 복음으로 시작하세요. 복음으로 시작하시고 특별히 복음으로 시작하란 말은 무슨 말입니까? 모든 것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인도를 받으세요. 그 속에서 임마누엘의 축복이 누려지게 되어 있고 그러면 은 우리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서 날마다 날마다 걸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복음의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계획들을 붙잡고 승리하는 그런 축복된 응답이 우리 모두에게 일어나게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9년 3월 10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오직 의뢰할 자 - 임마누엘 그리스도
(사7:1-14)
서론: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다른 점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보이는 것을 위해서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을 잃어버립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것을 위해 보이는 모든 것을 투자하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언약의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보이는 현장을 보며 대책을 세운 사람(아하스왕)이 나옵니다. 아하스왕은 언약 속에 있는 사람인데, 언약을 믿지 못 하고, 누리지 못 함으로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북이스라엘 10개 지파와 아람나라가 연합해서 남유다를 공격 해 왔습니다. 이 전쟁에서 이길 답을 말씀 하셨습니다(사7:14). 우리에게 많은 일이 있지만 승리하고 정복할 수 있는 비밀이 그리스도입니다. 이것을 징조, 약속, 언약으로 주셨습니다.
1. 육신만 의지하는 허망한 상태
가. 세상(아람나라)과 신앙의 변절자(북이스라엘 10지파)가 남유다를 공격함
1) 세상 역사 - 종교와 복음의 싸움(항상 복음이 승리)
2) 남유다 아하스왕이 두려움에 사로 잡힘(사7:2) - 온 백성이 두려움에 잡힘
3) 윗못 수도 끝 세탁자의 밭 큰 길에서 이사야와 아하스왕이 만남(사7:3)
나. 언약을 놓치지 않으면 하나님이 역사하시는데 아하스왕이 언약을 놓침
1) 3오늘 속에 있지 않으면 문제 앞에서 언약을 붙잡지 못 하고 흔들리게 됨
2) 이사야 선지자가 아들을 데리고 만남 - 스알야숩(남은자가 돌아옴)
3) 아하스왕에게 있는 불신앙(사7:10-12) - 징조를 구하지 않고(하나님을 믿지 않음 /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것이 있음) 하나님을 시험(하나님을 의지, 바라봄) 하지 않음(믿음을 가장한 불신앙)
4) 다윗의 집이여(사7:13) - 언약을 상기시킴
5) 임마누엘(사7:14) - 하나님이 함께하시며 동행, 지켜주심
다. 끝까지 불신앙함으로 앗수르를 의지(왕하16:7-8) - 세상에 보이는 것은 연기나는 부지깽이(사7:4)
2. 오직 의뢰할 자 - 임마누엘 그리스도
가. 성도가 왜 실패하는가?
1) 복음으로 시작하지 않기 때문에
2) 복음을 흉내내기 때문에(행19:10-16)
나. 그리스도를 체험, 누림
1) 내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사시기 때문에 죽는 것도 유익(빌1:20)
2) 그리스도를 깨달음(빌3:1-21) - 최고의 지식, 그리스도께 발견, 잡힌 바 된 것을 쫓아감,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해 달려감, 하늘의 시민권, 만물이 복종하는 이름
3) 하나님의 비밀은 그리스도(골2:2-3)
다. 오직 임마누엘이 누려짐
1) 모든 곳에 그리스도가 보여짐(행1:1), 현장에 필요한 것(행1:3)이 보여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하나님의 능력(행1:8)
2) 갈2:20절이 되어짐
결론: 문제가 있다면 오직 복음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기회입니다. 방법, 대책을 내려 놓고 복음으로 시작하고 복음을 누려야 합니다. 날마다 말씀 속에 있는 것은 복음을 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임마누엘입니다. 이 때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을 책임지십니다.
“오직 의뢰할 자
– 임마누엘 그리스도”
(사7:1~14)
1 웃시야의 손자요 요담의 아들인 유다의 아하스 왕 때에 아람의 르신 왕과 르말리야의 아들 이스라엘의 베가 왕이 올라와서 예루살렘을 쳤으나 능히 이기지 못하니라
2 어떤 사람이 다윗의 집에 알려 이르되 아람이 에브라임과 동맹하였다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과 그의 백성의 마음이 숲이 바람에 흔들림 같이 흔들렸더라
3 그 때에 여호와께서 이사야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아들 스알야숩은 윗못 수도 끝 세탁자의 밭 큰 길에 나가서 아하스를 만나
4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삼가며 조용하라 르신과 아람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심히 노할지라도 이들은 연기 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하니 두려워하지 말며 낙심하지 말라
5 아람과 에브라임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악한 꾀로 너를 대적하여 이르기를
6 우리가 올라가 유다를 쳐서 그것을 쓰러뜨리고 우리를 위하여 그것을 무너뜨리고 다브엘의 아들을 그 중에 세워 왕으로 삼자 하였으나
7 주 여호와의 말씀이 그 일은 서지 못하며 이루어지지 못하리라
8 대저 아람의 머리는 다메섹이요 다메섹의 머리는 르신이며 육십오년 내에 에브라임이 패망하여 다시는 나라를 이루지 못할 것이며
9 에브라임의 머리는 사마리아요 사마리아의 머리는 르말리야의 아들이니라 만일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너희는 굳게 서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10 여호와께서 또 아하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1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한 징조를 구하되 깊은 데에서든지 높은 데에서든지 구하라 하시니
12 아하스가 이르되 나는 구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나는 여호와를 시험하지 아니하겠나이다 한지라
13 이사야가 이르되 다윗의 집이여 원하건대 들을지어다 너희가 사람을 괴롭히고서 그것을 작은 일로 여겨 또 나의 하나님을 괴롭히려 하느냐
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사7:1~14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만민을 위하여 기를 드십시다.
교회 전체 분위기가 훨씬 밝아진 것 같아요. 조명시설을 바꾸고 나니까, 원래 여러분 얼굴 한 분 한 분 얼굴이 제게 다 들어왔는데 더 상세하게 잘 보입니다. 또 우리 찬양대도 보니까 더 밝아지니까 더 예뻐진 것 같아요. 사실 우리 RUTC방송을 보면 우리교회 메시지가 찬양부터 시작되어져요. 그리고 메시지가 나가는데, 그 말은 무슨 말입니까? 여러분의 얼굴이 세계 속으로 나가고 있다 라는 사실이예요. 그래서 더 예쁘게 최고의 것으로 준비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그런 우리 찬양대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제목은 “오직 의뢰할 자 임마누엘 그리스도” 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가 똑같이 이 세상에 발을 디디고 살아가고 있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과 믿는 사람들은 분명히 차이가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과 하나님의 사람들은 분명히 구분이 되어집니다. 세상 방식과 하나님 나라의 방식은 분명히 다른 것입니다.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은 사실은 보이는 것을 위해서 보이지 않는 모든 것들을 잃어버리는 사람들이고요, 그러면 믿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것을 위해서 보이는 모든 것들을 투자하는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의 사람인 저와 여러분인 것입니다. 특별히 세상 사람들은 보이는 것 밖에 몰라요. 그래서 육신적인 것 밖에 몰라요. 그래서 여러 가지 상황과 환경 속에서 흔들리고 낙심하게 되는 부분들을 봅니다. 왜냐? 보이는 것이 전부이고, 육신적인 것이 전부이기 때문에, 그러나 믿음의 사람, 하나님의 사람들은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예요. 보이는 것 도 중요합니다마는 보이는 것 그 너머의 것이 영적인 것이 있는 것이고요, 또 보이는 것 그 너머의 모든 상황들을, 환경들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음을 우리는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우리는 육신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축복들을 먼저 누려야 되는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영적인 축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거예요. 구원받은 저와 여러분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성삼위 하나님이 지금도 나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분명히 성부하나님께서 지금도 말씀을 성취시키고 계시고요, 성자 하나님께서 지금도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가고 계시고, 성령하나님께서 지금도 우리의 모든 현장에, 관계된 곳에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성부성자성령하나님 이 성삼위 하나님의 비밀을 우리가 가진 것이고요, 또 이 성삼위 하나님의 비밀을 가진 우리에게 배경이 있습니다. 바로 그것은 하늘보좌의 배경이 우리의 배경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나가는 모든 걸음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게 되어 있고, 우리가 나가는 모든 현장에 하늘 군대를 하나님께서 동원하시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오는 것이 무엇입니까? 걸음 걸음 속에서 결국은 흑암과 사탄의 세력이 무너져 내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영적인 축복인데, 이 사실이 보여지지 않고 누려지지 않게 되면 우리의 신앙생활은 하면 할수록 힘든 겁니다. 그러나 이 사실이 보여지고 누려지면 신앙생활은 하면 할수록 기쁜 것이고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감사거리가 더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실이 보여지지 않으면 신앙생활이 힘들게 되고, 어렵게 되고 그래서 결국은 신앙생활을 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문제들 가운데 그대로 살아가게 되는 부분들을 보게 됩니다. 우리의 모든 것의 축복의 시작이 무엇이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축복을 먼저 누리는 것이고 이를 위해서 우리의 모든 것들을 투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인 영적인 누려야 될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이 영적인 축복을 놓쳐버림으로 말미암아 보이는 것, 육신적인 것에 빠져서 어려움을 당하는 한사람이 나옵니다. 그 사람이 바로 아하스라는 사람입니다. 오늘 1절에 아하스왕, 유다왕 아하스에 대한 부분들이 나옵니다. 그 사람이 언약의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보이는 상황들 바라보면서 두려움에 빠지고, 두려움에 빠지니까 결국은 대책까지 세우게 되는 이런 부분들을 오늘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지요. 오늘 특별히 성경본문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본문입니다. 특별히 이사야7:14절에 보면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시니라”여러분 이사야 서를 지금 우리가 계속해서 쭈욱 살펴보고 있는데요, 이사야 성경말씀을 쭈욱 살펴보면 그 어느 성경보다도 복음에 대해서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는 곳이 바로 이사야서입니다. 그래서 이사야서를 구약의 복음서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 중에 특별히 오늘 본문에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주신 말씀인데,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어떤 배경 속에서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주셨는가? 이 당시에 사실 북이스라엘이 있었고요, 또 남 유다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두 나라는 오래된 갈등들 가운데 늘 대치하고 있는 민족들이었습니다. 우리나라가 남북으로 갈려져서 남한과 북한이 대치되어 있는 가운데 갈등 가운데 있는 것 같이 오랜 동안에 북이스라엘과 남 유다가 솔로몬 이후로 갈라져서 지금까지 계속되어져 왔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오늘 본문에 보면 북이스라엘 10개지파가 아람 나라와 결탁을 해 가지고 남 유다를 공격해 온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전쟁 속에서 하나님께서 승리할 수 있는 징조를 주셨는데, 승리할 수 있는 약속을 주셨는데, 그게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7:14절입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여러분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음에 대한 핵심적인 부분들을 곳곳에서 말씀하고 계시는데, 특별히 창세기3:15절에 여자의 후손이 뱀의 후손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너무 중요한 말씀이지요. 원 복음이라고 할 수 있는 너무 중요한 말씀입니다. “여자의 후손이 뱀의 후손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또 어떤 면에서 획을 긋는 말씀들을 시대의 획을 긋는 말씀들을 주셨는데 바로 출애굽기3:18절에 희생제사의 피, 그 피 언약 붙잡게 될 때에 노예에서 빠져나오게 될 것이다. 출애굽기3:18절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또 시간이 흐르면서 결국 오늘 본문에 나오는 말씀을 주셨는데, 결국은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 언약 붙잡게 될 때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이 언약 붙잡게 될 때에 너희들이 포로로 끌려가지 않게 될 것이다. 그 언약을 주신 거예요. 그게 이사야7:14절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성취되었는데 그게 마태복음 16:16절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이십니다”예수님께서 이 땅에 왜 오셨느냐? 그리스도의 일을 하러 오셨어요. 그래서 이 땅에 오셔서 당신께서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친히 선언하신 것이지요. 바로 그리스도 그 언약 붙잡게 될 때에 뱀에서 건진 바 되어질 것이고, 다시 말하면 사탄의 머리가 깨뜨려질 것이고, 그리스도 그 언약 붙잡게 되면 노예에서 해방될 것이고, 그리스도 그 언약 붙잡게 될 때에 너희들이 전쟁에서 승리하게 될 것이고, 포로에서 포로로 끌려가지 않게 될 것이다. 그 언약을 완성하신 것이 바로 그리스도 언약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예 되고 포로 되어진 것 같이 이런저런 많은 일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 승리할 수 있는 답을 주었어요. 성공할 수 있는 답을 주었어요. 그 모든 현장을 정복할 수 있는 답을 주었어요. 그 답이 무엇이냐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그게 바로 오늘 본문에 징조다 이야기 하고 있어요.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약속으로 주신 단어예요. 언약으로 주신 단어예요. 그런데 언약의 백성인 오늘 아하스 왕이 이 언약을 당연히 붙잡아야 되지요. 그런데 이 언약을 놓쳐버림으로 말미암아 아하스왕 뿐만 아니라 온 백성들이 두려움에 사로잡혔던 사실들이 오늘 본문에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으로 언약을 붙잡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맛보면서 나아가면 하나님이 역사하실 것인데 이 언약을 놓쳐버리니까 결국은 두려움이 오게 되고, 상황들 바라보면서 그 상황들 속에서 두려움을 가지게 되고, 그 두려움 속에서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자신이 대책을 세워야 되고, 그래서 언약을 잃어버림으로 말미암아 실패하는 이런 부분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아하스왕은 한마디로 말하면 언약의 백성이지만, 그 언약의 역사들을 놓친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었어요. 그러면 오늘 본문에 아하스왕의 영적인 상태가 어떠한 상태였는가를 한번 살펴봐야 합니다.
1. 육신만 의지하는 허망한 상태
먼저 첫 번째로 육신만 의지하는 허망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육신만 의지하는 허망한 상태에 빠져있었던 것이 바로 아하스왕 이었습니다. 여러분 세상과 신앙의 변절자들이 합치게 되면 그게 큰 문제를 가져오게 되지요.
사실 오늘 본문의 1절에 보면 북이스라엘의10지파, 사실은 하나님의 언약 있는 백성들은 남 유다의 백성들이었어요. 북이스라엘은 신앙의 변절자라고 할 수 있어요. 이런 사람과 아람나라가 결탁했어요. 무슨 말입니까? 세상과 결탁한 거예요. 신앙의 변절자와 세상과 결탁하게 되니까 결국 큰 문제를 가져왔는데 전쟁을 일으키게 되지요. 이게 어떤 면에서 지금 세계사의 역사이고, 지금 지구상의 문제인 것입니다. 늘 항상 있어 왔어요. 종교와 복음과의 싸움, 불신앙과 믿음과의 싸움, 늘 항상 있어왔어요. 그러나 여러분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종교가 힘 있는 것처럼 보이고, 뭔가를 해 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복음 앞에 무너지게 된 것이 바로 종교의 역사입니다. 불신앙이 그럴 듯해 보입니다. 가장 합리적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설득력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 앞에 무너지는 것이 바로 불신앙의 역사입니다. 늘 항상 싸움은 이 싸움입니다. 지구상의 싸움은 이 싸움입니다. 결국 여러분, 오늘 이 시간에 진짜 언약 붙잡는 귀한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믿음을 선택하는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언약의 백성인 아하스, 남유다가 언약을 놓쳐 버리니까 이 백성에게 어떤 문제들이 왔느냐? 먼저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버렸습니다. 2절을 봅시다. 오늘 2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다윗의 집에 알려 이르되 아람이 에브라임과 동맹하였다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과 그의 백성의 마음이 숲이 바람에 흔들림 같이 흔들렸더라.” 숲이 바람에 흔들림 같이 흔들렸더라.
여러분, 바람이 불면 나무가 흔들리게 됩니다. 그런데 그냥 단순히 한 나무가 흔들리는 그 정도가 아니라 숲이 흔들렸다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모든 백성들이 두려움에, 위기의식 속에 사로잡혔다는 사실. 마치 태풍이 불면 여러분, 숲 전체가 흔들리지 않습니까? 온 백성이 두려움 가운데, 언약의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두려움 가운데 빠진 사실을 오늘 성경에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왕이 당연히 왕궁이 있어야 하는데 오늘 아하스 왕이 어디에 있느냐? 3절을 한번 보십시오. “그 때에 여호와께서 이사야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아들 스알야숩은 윗못 수도 끝 세탁자의 밭 큰 길에 나가서 아하스를 만나.” 왜 이곳에 갔는지는 모르지만 왕이라면 당연히 왕궁에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윗못 수도 끝 세탁자의 밭이라 했습니다. 여러분, 왕궁을 피해서, 두려움에 사로잡히니까 뭔가 숨어 있었던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여러분, 언약을 놓치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역사하실 것인데 아하스는 위기 속에서 낙심하고 흔들렸습니다. 왜 그런가? 언약의 백성임을 알지 못해서, 언약의 가치를 깨닫지 못해서. 언약을 놓치게 되니까 상황 보고 위기 속에서 흔들리고 낙심에 빠진 부분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평상시에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따르지 아니하면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놓치게 됩니다. 반대로 지금도 하나님은 3오늘을 이루고 계시는데 우리가 3오늘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3오늘을 이루고 계십니다. 무슨 말이냐? 구원의 역사를 하나님이 이루어가시고 말씀의 성취를 하나님이 이루어가시고 또 성령의 역사, 전도의 역사를 하나님께서 이루어가시지 않습니까? 그래서 진짜 우리가 말씀의 흐름 속에 있게 되면 문제와 사건과 일들을 당하게 되면 말씀을 놓치는 것이 아니라 더욱더 말씀을 붙잡게 되고 그 말씀 속에 하나님의 계획이 어디 있는지가 찾아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평상시에 말씀의 흐름을 놓치게 되니까 문제가 오니 아예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게 되는 것입니다. 언약의 말씀을 모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오늘 아하스 왕과 더불어 남유다 백성들이 빠져 있던 부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에게 아들을 데려가도록 합니다. 그런 상황 속에 있는 아하스 왕에게 이사야 선지자가 아들을 데리고 갔는데 아들 이름이 스알야숩입니다. 그 이름의 뜻이 주에 나옵니다. 3절에 1번 해서 그 아래 주가 나와 있는데 주에 보면 뭐라고 나와 있습니까? ‘남는 자가 돌아오리라’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아들을 데리고 왔는데 그 아들 이름이 스알야숩, 그 뜻이 남는 자가 돌아오리라, 하나님의 메시지를 가지고 그 아들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하스 왕이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남은 자가 돌아오리라, 무슨 말입니까?
여러분, 모든 것, 보이는 것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인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반드시 그것을 이어갈 자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게 바로 남은 자가 돌아오리라는 말입니다. 약속을 지킬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따로 있다는 사실을, 그 약속을 이어갈 남은 자가 있다는 사실을 아들을 통해서 보여주는데 그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언약의 사람인 아하스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합니다. 더 나아가 아하스의 마음에 어떤 불신아이 자리 잡혀 있었느냐? 10절~12절에 나옵니다. 10절~12절, 한번 봅시다. 아하스의 마음 깊숙한 곳에 있는 불신앙입니다. 10절~12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또 아하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한 징조를 구하되 깊은 데에서든지 높은 데에서든지 구하라 하시니 아하스가 이르되 나는 구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나는 여호와를 시험하지 아니하겠나이다 한지라.” 여기 하나님께서 아하스에게 징조를 구하라, 시험해 보라 했습니다. 그런데 아하스는 나는 징조를 구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여호와를 시험하지 않겠습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자칫 잘못 보면 이 아하스 왕은 대단히 믿음 있는 사람같이 보입니다. 어떻게 내가 하나님을 시험해? 믿은 있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아닙니다. 그건 잘못 본 것입니다. 믿음을 가장한 불신이 아하스 왕의 마음속에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여러분, 하나님께 구하라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말입니다. 사실은 그들이 살아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것밖에 없지 않습니까? 사실, 이스라엘 백성 주변의 나라들은 전부 강대국입니다. 그래서 강대국인 그 나라들 속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들여보내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말미암아 주변의 모든 나라를 정복하는 그 축복을 누리도록 하셨는데 사방을 바라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이 점점 멀어진 것입니다. 사방이 보임으로 하나님을 바라봐야 할 하나님의 백성인, 언약의 백성인 유다 백성들이 결국은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사방이 보임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이 점점 멀어진 것입니다. 여기 하나님께 구하라 하신 것, 또 하나님을 시험하라는 이 말씀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위로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말씀인데 아하스는 거의 다 안 하겠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아하스의 마음에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한 가지는, 첫 번째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안 믿는다는 것. 두 번째는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무언가가 아하스에게 있다는 것. 그래서 당연히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 신앙생활 아닙니까? 우리가 구할 때마다 말씀을 통해서 역사하시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때마다 당연히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께 구해야 하는 것인데 아하스는 무언가 자기 마음에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다른 것이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그러니까 징조를 구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시험하지 않겠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좋은 말이 아닙니다. 대단한 믿음 있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그 말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믿음을 가장한 불신앙의 말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가 얼마나 안타까웠던지 13절~14절에서 이야기합니다. 13절~14절을 한번 봅시다. 같이 한번 읽어 봅시다. “이사야가 이르되 다윗의 집이여 원하건대 들을지어다 너희가 사람을 괴롭히고서 그것을 작은 일로 여겨 또 나의 하나님을 괴롭히려 하느냐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할렐루야! 여기 이사야 선지자가 너무나 안타까워서 아하스 왕에게 이야기합니다. 아하스 왕이여,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다윗의 집이여’ 했습니다. 아하스 왕이여 해야 하는데 이사야 선지자가 아하스를 바라보면서 다윗의 집이여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과 다윗과의 언약의 관계 속에 있는, 그 언약을 왜 잊어버리고 있습니까, 이 말입니다.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 속에 있는 그 하나님의 축복된 역사들을 왜 놓치고 왜 잊어버리고 있습니까, 너무나 안타까운 나머지 당연히 아하스 왕이여 해야 하는데 그 언약을 기억하도록 다윗의 집이여,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들,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이 아닙니까, 이 사실을 잊지 않도록 이사야 선지자가 아하스 왕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그러면서 그때에 중요한 메시야의 메시지를 선포하고 있는데 그 속에서 나온 것이 바로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포기하신 적이 없으시다는 사실을 여기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약속이 임마누엘입니다. 아하스 왕은 다른 것을 더 의지한다 할지라도 징조를 구하지 않고 하나님께, 여호와께 시험하지 않겠다 할지라도, 그러나 하나님은 약속하신 바대로 구원자를 보내주시겠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하시겠다, 하나님은 약속을 한 번도 버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들은 하나님보다 더 세상을 의지하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보이는 세상의 모든 것들에 더 기준을 두고 거기에 마음을 담고 살아가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지으신 백성을 끝까지 동행하고 지켜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아멘입니까? 그게 오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했습니다. 이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끝까지 너희와 동행하면서 지키시고 보호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이게 복음입니다. 이게 하나님께서 이 시대 우리에게 주신 언약입니다. 성경 66권을 신학자 칼빈이 아주 잘 정리한 것이 다섯 가지가 있습니다. 아마 여러분, 잘 아실 것입니다. 성경 66권 전체를 신학자 칼빈이 너무나 잘 정리했는데 크게 다섯 가지로 정리했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우리 인간은 창세기 3장 이후로 모든 사람이 다, 전적으로 타락했다는 것. 그래서 전적 부패요, 전적 무능력 속에 빠졌다는 사실. 그게 첫 번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는 그 어떤 조건도 없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무조건적으로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것, 이것이 무조건적인 선택입니다. 그렇게 구원하신 하나님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는데 하나님이 주신 은혜는 그 어떤 것도 막을 수가 없다는 것, 그게 무엇입니까? 불가항력적인 은혜입니다. 불가항력적인 능력입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신 것이 아니라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신다는 것, 그것을 가지고 제한적 속죄라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승리하도록 하신다는 것, 그것을 가지고 성도의 견인이라 했습니다. 너무나 잘 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조건 없이 구원하시고, 아니, 우리에게서는 그 어떤 것도 우리 스스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우리를 위해서 그리스도를 보내주시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조건 없이 우리를 구원하시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 주시고 믿는 믿음 주셔서 그 믿음 가운데에 서 있는 하나님의 백성을 끝까지 하나님 나라에 가는 그날까지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동행하시고 끝까지 책임져 주시게 되어 있습니다. 그 축복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입니다. 이 축복을 회복하고 누리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언약 안에서 주어진 축복입니다. 내게 이미 주어진 언약 있지 않습니까? 그 축복 가운데 우리에게 주어진 복입니다. 그런데 아하스는 이 사실을 놓쳐 버리고 눈앞에 보이는 환경에 속아서, 두려움에 빠져서 결국 대책을 세우는데 어디까지 빠지게 되느냐? 강대국, 그 당시에 최고 가는 앗수르를 끌어들이게 됩니다. 성경을 한번 찾아봅시다. 열왕기하 16장입니다. 열왕기하 16장. 590면입니다. 7절~8절, 아하스가 언약을 놓쳐 버림으로 결국은 두려움 속에서 대책을 세우는데 그 대책이 어떤 대책이냐? 언약의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도 또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부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7절, 8절 같이 봅시다. “아하스가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에게 사자를 보내 이르되 나는 왕의 신복이요 왕의 아들이라 이제 아람 왕과 이스라엘 왕이 나를 치니 청하건대 올라와 그 손에서 나를 구원하소서 하고 아하스가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금을 내어다가 앗수르 왕에게 예물로 보냈더니.” 여러분, 보십시오. 결국은 아람 나라 왕과 북이스라엘이 연합해서 공격해 오니까 그게 두려운 나머지 결국은 버티다가 대책을 세우는데 앗수르 왕에게 손을 내밉니다. 그러면서 아하스 왕이 뭐라고 이야기하느냐, 앗수르 왕에게? “나는 왕의 신복이요 왕의 아들이라.” 이게 도대체 될 말입니까? 왕의 종이요 왕의 아들이라. 하나님의 자녀이지 뭐가 왕의 아들입니까? 언약을 놓치면 이렇게 부끄러움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8절에 보면 뭐라고 합니까? “아하스가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금을 내어다가 앗수르 왕에게.” 모든 성전에 있는 것, 왕궁에 있는 것, 모든 은금들을 앗수르 왕에게 갖다 바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언약의 백성임을 모르게 될 때 이런 비참한 일을 당하게 되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한번 따라합시다. 나는 언약의 백성이다! 이 축복을 회복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하스 왕은 이 언약의 백성임을 깨닫지 못하고 누리지 못하니까 결국은 세상에 보이는 환경들만 바라보면서 두려움 가운데 빠지다 나중에 대책을 세우는데 인간적인 대책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망할 대로 망하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세상이 뭔가 힘 있어 보여서 그것을 붙잡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여러분, 세상이 힘 있습니까? 정말 세상이 우리가 의지할 바 됩니까? 오늘 본문 4절에 보면 ‘연기 나는 두 부지깽이’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거창해 보이고 대단해 보인다 할지라도 연기 나는 두 부지깽이. 여러분, 부지깽이를 아십니까? 부지깽이. 여러분, 집의 아궁이에 나무를 넣고 불을 피우지 않습니까? 어르신들은 다 알지 않습니까? 아궁이에 나무를 넣고 불을 피우면 그 불이 살아납니다. 그러면 조금 지나면 그 불이 사그라들고 죽어갑니다. 그러면 옆에 있는 부지깽이를 가지고 불구덩이를 쑤십니다. 쑤시면 불이 다시 활활 타오르지 않습니까? 쑤시면은 불이 다시 활활 타오르잖아요. 근데 자칫 잘못 하면 자꾸 쑤시다보면 그 부지깽이에 불이 붙습니다. 그러면 깜짝 놀라가지고 사람들이 그 부지깽이를 바닥에 치잫아요 기억나십니까? 부지깽이를 바닥에 치면 은 불꽃이 튀어서 불도 나고 해요 그 연기나는 부지깽이는 아무 힘도 없고 사실 아무것도 아니란 사실을 말하고 있어요. 세상의 그 어떤 여러분 뭔가 모르게 힘 있어 보이다 할지라도 결국은 그것이 허세요 허영이란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도 모르게 언약의 가치를 놓쳐 버리니깐 그 힘없는 세상의 것에 우리 마음들 다 빼앗겨 버리고 우리가 진짜 의뢰해야 할 하나님을 의뢰하지 아니하고 붙잡아야 될 언약을 붙잡지 않고 세상 것을 붙잡고 실패하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들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진짜 언약 회복하는 축복의 시간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오직 의뢰할 자 – 임마누엘 그리스도
그러면 두 번째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오직 의뢰할 자는 누구냐 임마누엘 그리스도입니다. 여러분 왜 하나님의 사람임에도 실패 하는 줄 아십니까? 환경 때문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환경을 이야기해요 정말 환경 때문일까요? 또 내가 잘 못 해서 그렇다 정말 내가 잘못해서 그럴까요? 그럴 수 있겠죠 그러나 아닙니다. 답을 드리겠습니다. 복음으로 시작해야 되는 겁니다. 복음으로 시작해야 됩니다. 그냥 복음을 듣고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모든 것들을 복음으로 시작해야 되요 근데 많은 경우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흉내 내고 있어요. 그러면 결국 어떻게 되느냐 사도행전 19장에 우리에게 구체적인 한 예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엄청난 하나님의 능력들이 바울의 몸에서 나가기 시작했어요. 그러니깐 어느 정도로 능력이 나타나느냐 사도행전 19장에 보면 은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을 가져다가 사람들에게 얹으면 은 병이 낫게 되고 악귀도 떠나는 그런 역사가 일어났어요. 그런데 그걸 딱 보니깐 뭔가 괜찮거든요 그래서 흉내 내는 사람이 나왔어요. 누구지요? 스게아의 일곱 아들입니다. 스게아의 일곱 아들이 흉내를 냈는데 귀신들린 자가 스게아의 일곱 아들에게 뭐라 했느냐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아는데 너는 누구냐 그러면서 그 스게아와 일곱 아들에게 덮쳐가지고 스게아의 일곱 아들이 홀랑 벗고 도망친 모습이 사도행전 19장에 나와요 무슨 말입니까? 언약의 백성들이 언약으로 시작하지 아니하고 복음의 백성들이 복음으로 시작하지 아니하고 복음을 그냥 듣고 안다고 생각할 때 복음을 체험하지 않고 그냥 듣고 안다고 생각할 때 결국은 부끄러움을 다하게 된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듣고 아는 게 아니고요 실제로 복음을 체험하고 누려야 합니다. 어느 정도 누려야 하느냐 빌립보서 1장 20절 21절에 보면 은 바울이 내 안에 사는 것은 그리스도기 때문에 나는 죽어도 좋고 살아도 좋다하는 것 끝난 것이죠. 이정도로 바울은 복음을 누렸습니다. 더 나아가서 빌립보서 3장 1절에서 21절에 중요한 말씀을 하고 있죠. 바울이 지난날은 예수 믿는 일에 앞섰던 그 사람들 잡아 죽이는 일에 앞섰던 바울이었지만은 그러나 그리스도를 만나고 난 이후에 완전히 그리스도를 알고 체험하고 누리다 보니까 어느 정도 그의 가치관이 바꿔졌느냐 그리스도를 내가 당연히 누려야 되는데 알아야 되는데 내게 있는 이 모든 것들이 그리스도를 모르게 했구나. 그래서 자기가 가진 모든 것들을 배설물로 여긴다 하면서 고백한 것이 그리스도 아는 것이 최고의 지식임을 고백했어요. 그다음에 뭐라 했습니까? 지난날에는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원했지만 은 그러나 이제는 내가 하나님께 발견되기를 원한다. 이야기 했어요 하나님께 발견되기를 원한다. 그만큼 복음의 역사를 누리는 것이죠. 그리고 지난날 내 모든 부분들을 악한 사단이 나를 붙잡고 있었지만은 그러나 지금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간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의 자랑이 로마 시민권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지라 말씀하고요 그러면서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푯대를 향하여 달려간다 말씀하면서 마지막에 21절에 보면 뭐라 했습니까? 그 그리스도 이름 앞에 만물이 무릎 꿇고 복종하는 것이구나. 그만큼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누렸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골로새서 2장 2절 3절에 보면 은 하나님의 비밀이 그리스도다 이야기하면서 그 그리스도 안에 모든 지혜와 지식과 보화가 감추어져있다 했어요. 이거는 그냥 말이 아닙니다 그만큼 바울은 복음을 체험하고 누렸던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복음을 알고 그냥 듣는 것에 끝나지 마시고 여러분 복음이 여러분에게 체험되어지고 복음을 누리는 그 누림 속에 들어가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게 되어지면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 모든 현장에 그리스도가 발견되어져요 사도행전 1장 1절에 그리스도 다 있잖아요. 세상에 다 있잖아요. 그런데 진짜 현장에 필요한 것은 그리스도라는 사실들이 보여져요 그리고 진짜 현장에 필요한 것은 하나님 나를 위해서 준비하신 하나님의 나라가 보여지고 누려지게 되어 있고요 나와 여러분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으로 된다는 사실들이 보여지게 되어있어요 그걸 가지고 누림이라는 겁니다. 그렇게 될 때에 결국은 현장에 역사가 일어나는데 사도행전 2장 1절에서 47절에 현장에 능력의 역사가 일어나면서 결국 그 속에서 아 나는 그리스도 안에 죽은 것이구나. 내 안에 그리스도가 나타나는 것이 그게 진짜 축복이구나. 갈라디아서 2장 20절이 고백 되게 되어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게 임마누엘 아닙니까? 이게 성령 충만 아닙니까? 이렇게 되어지면 여러분 모든 것들을 끝나는 것입니다. 오직 의뢰할 자는 임마누엘 그리스도 밖에 없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여러분 살아가는 생애동안 이런 저런 많은 일들이 있겠죠. 그 현상 속에 그 문제 속에 속지 마시길 바랍니다. 오직 복음 될 수 있는 기회로 붙잡길 바랍니다. 마태복음 14장에 보면 은 베드로가 물위를 걸어갑니다. 14장 보면 은 예수님께서 물위를 걸어오는 것을 보면서 두려워 떨다가 내니 두려워 말라 하면서 결국 제자들을 안심시켜 주시면서 기적을 행하신 부분들을 보여줘요 그러니깐 베드로가 용기 있는 베드로가 주시거든 나를 뛰어내려서 물위로 걸어라 명령하라 했잖아요. 그 때에 베드로가 호수를 건넙니다. 주님을 바라보고 그런데 주변을 바라보면서 결국은 빠져 들어갔어요. 주님을 바라봐야 되는데 주변을 바라봄으로 문제 바라보지 마시고 문제를 너머서 그 문제를 주관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오직 여호와를 바라보는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영안이 열려지길 바랍니다. 여러분 문제 있다면은 그 문제 오직 복음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기회로 붙잡게 되기를 바랍니다. 열왕기하 6장에도 마찬가지죠 아람 나라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공격해 왔어요. 아람나라 왕이 계속해서 이스라엘 백성들 공격해 왔는데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엘리사가 아람 나라 군대가 어디에 공격해 올 것을 알고 늘 대비를 한 겁니다. 그러니깐 이 왕이 화가 난겁니다. 도대체 어떻게 자꾸 우리는 가면 갈수록 전쟁에 지느냐 우리 안에 스파이가 있지 않느냐 그때 왕을 모신 신하가 얘기했잖아요. 저 이스라엘에는 왕의 침실에서 말하는 것 까지 다 알아 듣는 엘리사 선지자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에게 지혜를 줘서 그 선지자로 말미암아 모든 부분들에서 미리 막을 수 있도록 그렇게 하십니다. 그러니깐 아람나라 왕이 화가 나가지고 모든 군사를 동원해가지고 결국 도단성을 공격해 왔잖아요. 그 도단성을 둘러 진 치고 있을 때에 아침에 일어나서 보니깐 사환이 종이 그 둘러진 아람나라 군대를 보면서 엘리사에게 얘기했습니다. 이제 우리가 죽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그때에 엘리사가 뭐라 했습니까?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저들과 함께 하는 자보다 많으니라. 우리가 진짜 어디에 눈이 열려져야 될 것인가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어진 현실 상황을 바라보지 마시고 그 너머에 하나님의 역사들을 바라보는 그런 축복 있기를 바랍니다. 주어진 현실과 상황은 우리에게 오직 복음 되게 하는 그 방법으로 주신 거예요 그리고 또한 모든 것들을 진짜 복음으로 시작하세요. 복음으로 시작하시고 특별히 복음으로 시작하란 말은 무슨 말입니까? 모든 것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인도를 받으세요. 그 속에서 임마누엘의 축복이 누려지게 되어 있고 그러면 은 우리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서 날마다 날마다 걸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복음의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계획들을 붙잡고 승리하는 그런 축복된 응답이 우리 모두에게 일어나게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9년 3월 10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오직 의뢰할 자 - 임마누엘 그리스도
(사7:1-14)
서론: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다른 점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보이는 것을 위해서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을 잃어버립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것을 위해 보이는 모든 것을 투자하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언약의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보이는 현장을 보며 대책을 세운 사람(아하스왕)이 나옵니다. 아하스왕은 언약 속에 있는 사람인데, 언약을 믿지 못 하고, 누리지 못 함으로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북이스라엘 10개 지파와 아람나라가 연합해서 남유다를 공격 해 왔습니다. 이 전쟁에서 이길 답을 말씀 하셨습니다(사7:14). 우리에게 많은 일이 있지만 승리하고 정복할 수 있는 비밀이 그리스도입니다. 이것을 징조, 약속, 언약으로 주셨습니다.
1. 육신만 의지하는 허망한 상태
가. 세상(아람나라)과 신앙의 변절자(북이스라엘 10지파)가 남유다를 공격함
1) 세상 역사 - 종교와 복음의 싸움(항상 복음이 승리)
2) 남유다 아하스왕이 두려움에 사로 잡힘(사7:2) - 온 백성이 두려움에 잡힘
3) 윗못 수도 끝 세탁자의 밭 큰 길에서 이사야와 아하스왕이 만남(사7:3)
나. 언약을 놓치지 않으면 하나님이 역사하시는데 아하스왕이 언약을 놓침
1) 3오늘 속에 있지 않으면 문제 앞에서 언약을 붙잡지 못 하고 흔들리게 됨
2) 이사야 선지자가 아들을 데리고 만남 - 스알야숩(남은자가 돌아옴)
3) 아하스왕에게 있는 불신앙(사7:10-12) - 징조를 구하지 않고(하나님을 믿지 않음 /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것이 있음) 하나님을 시험(하나님을 의지, 바라봄) 하지 않음(믿음을 가장한 불신앙)
4) 다윗의 집이여(사7:13) - 언약을 상기시킴
5) 임마누엘(사7:14) - 하나님이 함께하시며 동행, 지켜주심
다. 끝까지 불신앙함으로 앗수르를 의지(왕하16:7-8) - 세상에 보이는 것은 연기나는 부지깽이(사7:4)
2. 오직 의뢰할 자 - 임마누엘 그리스도
가. 성도가 왜 실패하는가?
1) 복음으로 시작하지 않기 때문에
2) 복음을 흉내내기 때문에(행19:10-16)
나. 그리스도를 체험, 누림
1) 내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사시기 때문에 죽는 것도 유익(빌1:20)
2) 그리스도를 깨달음(빌3:1-21) - 최고의 지식, 그리스도께 발견, 잡힌 바 된 것을 쫓아감,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해 달려감, 하늘의 시민권, 만물이 복종하는 이름
3) 하나님의 비밀은 그리스도(골2:2-3)
다. 오직 임마누엘이 누려짐
1) 모든 곳에 그리스도가 보여짐(행1:1), 현장에 필요한 것(행1:3)이 보여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하나님의 능력(행1:8)
2) 갈2:20절이 되어짐
결론: 문제가 있다면 오직 복음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기회입니다. 방법, 대책을 내려 놓고 복음으로 시작하고 복음을 누려야 합니다. 날마다 말씀 속에 있는 것은 복음을 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임마누엘입니다. 이 때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을 책임지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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