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남은 자를 반드시 구원하시는 하나님
2019-04-0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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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7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남은 자를 반드시 구원하시는 하나님”
(사10:20~34)


20 그 날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야곱 족속의 피난한 자들이 다시는 자기를 친 자를 의지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여호와를 진실하게 의지하리니
21 남은 자 곧 야곱의 남은 자가 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
22 이스라엘이여 네 백성이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돌아오리니 넘치는 공의로 파멸이 작정되었음이라
23 이미 작정된 파멸을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온 세계 중에 끝까지 행하시리라
24 그러므로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시온에 거주하는 내 백성들아 앗수르가 애굽이 한 것처럼 막대기로 너를 때리며 몽둥이를 들어 너를 칠지라도 그를 두려워하지 말라
25 내가 오래지 아니하여 네게는 분을 그치고 그들은 내 진노로 멸하리라 하시도다
26 만군의 여호와께서 채찍을 들어 그를 치시되 오렙 바위에서 미디안을 쳐죽이신 것 같이 하실 것이며 막대기를 드시되 바다를 향하여 애굽에서 하신 것 같이 하실 것이라
27 그 날에 그의 무거운 짐이 네 어깨에서 떠나고 그의 멍에가 네 목에서 벗어지되 기름진 까닭에 멍에가 부러지리라
28 그가 아얏에 이르러 미그론을 지나 믹마스에 그의 장비를 두고
29 산을 넘어 게바에서 유숙하매 라마는 떨고 사울의 기브아는 도망하도다
30 딸 갈림아 큰 소리로 외칠지어다 라이사야 자세히 들을지어다 가련하다 너 아나돗이여
31 맛메나는 피난하며 게빔 주민은 도망하도다
32 아직 이 날에 그가 놉에서 쉬고 딸 시온 산 곧 예루살렘 산을 향하여 그 손을 흔들리로다
33 보라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혁혁한 위력으로 그 가지를 꺾으시리니 그 장대한 자가 찍힐 것이요 그 높은 자가 낮아질 것이며
34 쇠로 그 빽빽한 숲을 베시리니 레바논이 권능 있는 자에게 베임을 당하리라
 사10:20~34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만민을 위하여 기를 드십시다. 오늘 예배 드리는 가운데서 모두가 믿음 회복하는 귀한 축복의 시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한 가지 기도를 부탁드릴 것은 1부 예배와 금요 전도학교 시간의 메시지를 순차 통역으로 인도를 받게 되었습니다. 237나라를 놓고 만민을 위해서 기를 드는 귀중한 응답으로 오랜 동안에 기도해 왔던 부분들인데 오늘 1부 때부터는 순차 통역으로 함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우리교회 영어를 사용하는 나라하고, 중국어, 일어, 스페니쉬, 또 캄보디아 많은 통역자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특별히 위해서 기도해 주시고요, 교회 안에 또 통번역 시스템들이 세워져 있는데요, 특별히 이분들 위해서 기도해 주시고, 주신 귀중한 달란트들이 정말 237 나라를 돌아오게 하는 이 일에 귀하게 쓰임 바 되어질 수 있도록 여러분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제목은 “남은 자를 반드시 구원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점점 좋아지면요 우리의 인생이 점점 좋아지는 인생이 되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날마다, 주일마다, 하나님 앞에 나올 때마다 늘 예수님에 대해서 체험하고 누리고 새로운 은혜를 받는 그런 축복의 시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제 만난 하나님이 아니고, 어제 만난 신앙이 아니고, 어제 마신 물이 아니라, 오늘 생수로 우리는 오늘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지요. 어제 마신 물의 기억으로 오늘을 못 살 듯이, 어제 신앙으로 오늘 살려고 하니까 우리는 실족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통해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히브리서4:16절에 보면 때를 따라서 돕는 은혜를 우리에게 주시겠다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이 날마다 복음을 알고, 복음을 깊이 뿌리내리는 시간들이 되어져야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20절에 우리가 읽었습니다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문제가 어디에 있었느냐? 믿을 자를 믿지 아니하고 믿지 않아야 될 자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문제가 왔다 라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의지할 하나님은 의지하지 아니하고, 의지하지 말아야 될 사람을 의지함으로 말미암아 문제가 왔음을 오늘 성경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의지하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기대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게 또 오늘 기댈 수 있는 것입니까? 또, 오늘 의지할 수 있는 것입니까? 사실은 그것 때문에 오늘 기대는 그 부분들 때문에, 또 우리는 넘어지고 또 실수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잖아요. 사실 어제 믿었던 사람이 오늘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니잖아요. 우리 자신들조차도 우리 자신을 믿지 못하는 그런 상황들입니다. 하물며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믿는다, 의지한다. 사실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한 번도 사람을 의지하고 사람을 믿으라 말 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우리의 신앙생활에 사람을 의지하고 사람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실족하는 자리에 드는 것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성경에는 한 번도 사람을 의지하라, 사람을 믿으라 말한 것이 없고요, 사람을 사랑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진짜 다른 것이 아니라 복음을 알고 복음 속에 뿌리내리는 것이 다인 것입니다.

1. 그리스도께 뿌리 내리고 – 참된 응답을 누리자
그래서 먼저 우리가 첫 번째로 우리가 붙잡을 것은 그리스도께 뿌리내리고 참된 응답을 누리자입니다. 오늘 읽지는 않았습니다마는 10:1~4절에 보면 우리가 그리스도께 뿌리 내리지 아니하고 참된 응답을 받지 못하니까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살아가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러면 저와 여러분이 그리스도께 뿌리 내리고 참된 응답들을 받으면서 살아가야 되는데 그리스도께 뿌리 내린다 라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복음에 뿌리 내린다는 말이 무슨 말이예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속에 뿌리내리는 것을 가지고 복음에 뿌리내린다, 그리스도께 뿌리 내린다 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일컬어서 언약의 하나님이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고, 그 말씀을 이루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신 것을 말씀하고 있지요. 최초의 인간 아담 하와에게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찾아오셨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따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말씀을 가지고 찾아오셨습니다. 그런데 아담 하와가 그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할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고, 사탄의 말을 들은 것입니다. 너희가 먹는 그 순간에 하나님처럼 된다 라는 창세기3장에 나오는 악한 사탄의 말을 듣고 속은 것이지요. 그 결과로 말미암아 결국 인생은 하나님을 떠나게 되었고, 그 하나님 떠난 결과로 이 땅에는 모든 것에 저주와 재앙이 임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회복할 수 있는 답을 바로 말씀을 주셨는데, 창세기3:15절에 아담 하와에게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창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하나님을 떠난 아담 하와에게 바로 찾아오셔서 약속의 말씀으로 아담 하와에게 축복하셨어요. 아담 하와는 이 약속의 말씀 붙잡고 승리한 사실을 성경에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여자의 후손은 무엇을 말합니까? 이사야7:14절에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말씀했습니다. 이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자 말자 하신 말씀입니다. 마가복음3:14절에 보면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나가서 전도도 하며 똑같은 말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셨는데,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제자들을 부르시자 말자 하시는 말씀이 함께 있게 하시겠다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나가서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어 쫓는 권세도 있게 하기 위함이라 말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행동할 것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마태복음4:19절에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말씀 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무엇으로 따라갑니까? 말씀을 붙잡고 따라가는 것이 바로 주님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지면 우리의 모든 삶에 형통케 되는 축복이 임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정말 우리의 삶 속에 모든 것들이 형통한 복을 받기를 원하십니까? 복음에 뿌리 내리세요. 다시 말하면 약속의 말씀 붙잡고 나아가면 됩니다. 거기에 우리의 모든 삶에 형통의 복이 임하게 되어 있습니다. 시1:3절에 보면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말씀하고 있습니다. 복음에 뿌리내리면 모든 일에 형통함의 복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분명히 참된 응답이 그때부터 나오게 되는 것이지요. 복음에 뿌리 내리고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나가는 걸음 속에 참된 하나님의 응답이 찾아오게 되는데, 아브라함도 처음에는 이 사실을 깨닫지 못했어요. 그래서 자기의 방법과 자기의 노력과, 자기의 어떤 기준을 가지고 가나안 땅에 약속의 땅에 이른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해도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았어요. 뭔가 모르게 잘 되는 것 같았는데 집안이 계속적인 문제가 일어나게 되었고요, 그래서 아브라함이 가로 늦게 깨닫게 된 것이지요. 창세기13:14절에 보면 “롯이 아브라함을 떠난 후에 ...”자기의 방법과 자기의 기준과 자기의 모든 노력들을 내려놓은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제대로 붙잡은 것입니다. 그게 무엇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느냐? 창세기13:18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단을 쌓았다라고 말씀하고 있어요. 무슨 말입니까? 약속의 말씀을 붙잡았다는 말이지요. 그때에 비로소 아브라함에게 참된 응답이 시작되어진 사실을 창세기13장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게 되면 참된 응답이 우리의 모든 삶 속에서 나타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게 되면 참된 응답이 나타나는데 그 하나님이 주시는 응답 속에는 재앙이 상관없게 되어 있어요. 여러분 세상은 어떻습니까? 아무리 세상이 발전한다 할지라도, 세상이 번성한다 할지라도 그 발전과 번성 함께 그 안에는 재앙의 역사들이 같이 흐르고 있어요. 창세기6장에 노아시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말씀 아닙니까? 이 땅에 사람들이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 안에 사람들이 모든 사람들의 죄악이 번성했다 했습니다. 모든 생각하는 것들이 악하였다 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그 재앙 속에서 터져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 홍수로 말미암아 세상을 심판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세상이 번성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반드시 재앙이 같이 흐르고 있다 라는 거예요. 그래서 어느 날, 재앙이 임하게 되어 있어요. 그러나 복음에 뿌리 내리고, 약속의 말씀 붙잡고 하나님 주신 참된 응답을 누리면 여러분, 재앙이 여러분을 이기지 못하고 재앙과 상관없게 되어 있습니다. 아멘입니까? 출9:26 절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들이 있는 그 곳 고센 땅에는 우박이 없었더라”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빠져 나와서 광야 길을 가는 동안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애굽에 재앙을 내렸습니다. 10가지 재앙 여러분 아시지요? 그런 재앙을 내리는 가운데서 우박의 재앙이 내릴 때에 애굽에 있는 모든 사람과 짐승까지, 모든 밭에까지, 곡식까지에도 우박이 내렸다 했어요. 그게 바로 출애굽기9:25절에 말씀하고 있어요.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하는 땅 고센에는 우박이 내리지 않았다 했습니다. 여러분 재앙이 상관없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자에게? 하나님의 응답 속에 있는 자에게는 재앙이 그를 이기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응답 속에 있을 때에 하나님이 주시는 경제의 축복도 누리게 되어있습니다. 사도행전11장 보면 안디옥 교회가 세계 선교를 위해서 준비되어지지요. 그런데 그 안디옥교회에 세계 선교를 위해서 나가는 걸음 속에 아가보라는 선지자가 예언 했습니다. 천하에 크게 흉년이 들리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예언대로 글라우디오 때에 흉년이 들었다 했습니다. 그러나 세계 선교를 위해서 나가는 하나님의 응답 속에 있는 안디옥 교회는 그 흉년이 문제가 안 되었습니다. 오히려 그 흉년 속에 하나님이 주시는 선교적 기업의 축복을 누렸는데, 경제의 축복을 어느 정도로 누렸느냐? 초대교회 예루살렘 교회조차도 흉년 들어서 어려움 당하는 그러한 상황 속에서 이 안디옥교회가 의논해서 오히려 예루살렘 교회에 물질을 가지고 도왔던 사실을 보게 됩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하나님의 응답 속에 있을 때에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경제의 축복도 따라오게 되어있다 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고백했지요. 대상29:14절에 보면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 이니이다”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응답 속에 있으면 주님 주신 것으로 헌신하고, 주님 주신 것으로 헌금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속지 마세요. 분명히 하나님이 주신 응답 속에 있으면 하나님 주신 것들이 따로 있어요. 하나님이 예비하신 것들이 따로 있다 라는 것,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빌4:19절에 바울이 고백했지요.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쓸 것을 채우신다 했어요. 진짜 우리가 복음에 뿌리 내리고 하나님의 응답 속에 있으면 우리의 필요를 채우실 뿐 아니라, 물론 필요도 채우시겠지요. 그런데 필요는 내가 필요로 하는 것들을 필요로 하지요. 그런데 성경에 보면 필요를 채우신다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모든 쓸 것을 채우신다 말씀했습니다. 내게 무엇이 있어야 될 것을 아시는 그 하나님께서 내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내가 써야 될 모든 것들을 하나님께서 채우신다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복음에 깊이 뿌리내리고 응답 속에 있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복음에 깊이 뿌리 내리고 참된 응답 속에 있으면 바로 세상을 살리는,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세상을 살리는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것으로 세상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것으로 세상을 살리는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어떤 자에게? 복음에 뿌리내리고 응답 속에 있으면, 연합군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아브라함, 그 앞에 소돔 왕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창세기14장에 보면 전쟁에서 네가 승리했기 때문에 사람은 나의 사람이기 때문에 내게 돌려 보내고 물품은 네가 취하라 했습니다. 그때에 아브라함이 소돔 왕에게 뭐라고 이야기 했습니까? 바로 치부하였다 할까 하여 실오라기 하나도 내가 가져가지 않겠고, 들메 끝 한 가닥도 내가 취하지 않겠다 했어요. 무슨 말입니까? 내게 주시는 응답은, 하나님이 주시는 응답은 따로 있다 라는 사실을 이야기 했어요. 여러분 그렇습니다. 응답 속에 있는 자에게는 세상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것으로 세상을 살릴 수 있는 다른 응답이 준비되어 있어요. 이 축복을 진정 우리가 누려야 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 라는 것은요 세상 사람들의 삶의 방법으로 살아가는 삶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 라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 안에 주어진 새로운 삶의 방법이 있다 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데, 그 새로운 삶의 방법이 무엇이냐? 바로 하나님이 주시는 것으로 세상을 살리는 자리에 서 있는 것이 바로 저와 여러분의 자리인 것입니다. 히브리서11:24~26절에 보면 히11장의 구약의 승리한 성공자들, 영웅들을 이야기하면서 모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요, 거기에 보면 모세가 하나님의 응답과 축복을 받게 되니까 거절할 것과 선택해야 될 것을 분별할 수 있는 그런 은혜를 입은 사실을 보게 되어요. 거절할 것과 선택할 것, 버려야 될 것과 취해야 될 것이 무엇인가를 바르게 알게 되어지는 그 축복을 모세가 누린 사실을 보게 되는데요, 거기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더 좋아했다 했어요.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했다 말씀하면서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더 좋아했다 했어요. 무엇을 거절하고 무엇을 선택해야 될 것인지를 분별 되어지는 분명한 그런 응답을 모세가 누렸던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그리스도를 위해서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좋은 것으로 생각했다 했어요. 더 좋은 것이 무엇인가를 모세는 알았다라는 거예요. 복음에 뿌리 내리고 참된 응답을 받게 되면 그렇게 되어지는 것이지요. 내가 거절할 것은 무엇이고 내가 선택해야 될 것이 무엇인가 분별되게 되어 있고,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더 좋은 것으로 세상을 살리는 자리에 서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에 진정한 이 맛을 봐야 되잖아요.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세상이 크게 보이고, 세상이 부러워 보이고, 세상 따라갈 수밖에 없고, 그래서 성도들조차도 세상의 종노릇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왜냐? 예수 믿는 진정한 신앙생활의 즐거움과 더 좋은 것들을 예비해 놓고 우리를 부르셨는데 그 사실을 체험하지 못하니까 세상 따라가다가 세상의 종노릇 하는 겁니다. 우리 렘런트들 가운데 중등부, 고등부 아이들이, 특별히 대학부 아이들이 어떻든 말씀 중심으로 집중하면서 아름답게 일어나는 부분들을 봐요. 그런데 어떤 친구 하나가 그렇게 이야기를 했대요. 대학 들어간 친구를 보면서 지금 정신없이 MT하고 막 그들의 문화 속에서 같이 어울려서 돌아다니는 부분을 보면서 이 친구는 뚜렷한 자기의 분명한, 앞으로의 하나님이 주신 비전이 있기 때문에 그 일을 위해서 1년 동안 준비하면서 먼저 군문제부터 해결해야 하겠다 싶어서 군입대를 앞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군 갔다 와서 자기에게 주신 분명한 하나님의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 준비하는 친구인데 이 친구가 같은 대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을 보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저렇게 세상에 취해서 노는 즐거움보다 더 큰 즐거움이 신앙 안에, 복음 안에 있는데. 제가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에 그렇다, 우리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이 복음 안에 있는 참된 맛을 깨닫는다면, 복음이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것이라는 사실이 진짜 체험된다면 아무리 세상이 어렵다 할지라도 그 속에 빠지지 않습니다. 문제는 뭐냐? 복음이 너무 작아 보이고 세상이 커 보이니까 거기에 빠지는 것입니다. 성도들도 문제가 거기에 있지 않습니까? 분명히 우리 복음은 모든 것이고 모든 문제의 해결로 주신 것인데 이 복음 안에 있는 즐거움과 기쁨과 감사를 누리지 못하니까 세상 것이 부러워 보이고 세상 것이 커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 따라가다가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세상의 종노릇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더 좋은 것이 무엇인가에 눈이 열리는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모세는 그 사실에 대한 눈이 열렸습니다. 애굽의 모든 보화들보다도 그리스도를 위해 수모 당하고 고난 받는 것을 더 좋은 것으로 깨달았다 했습니다. 더 좋은 것으로 여겼다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거절할 것을 거절할 수 있는, 그리고 선택할 것을 바르게 선택할 수 있는 은혜가 어디에서 나오느냐? 다른 것에서 오지 않습니다. 복음에 뿌리 내리고 복음 속에 참된 응답을 받게 될 때 그 속에서 참된 축복의 역사를 바르게 누릴 수 있는 응답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분명한 것은 그리스도 없이도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없이도 뭔가 되어질 수 있고 도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도자 바울은 고백했습니다. 빌립보서 3:8에 그리스도 외의 모든 것들은 “배설물”로 여긴다 했습니다. 그리스도 외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긴다, 바울은 자기 나름대로 지식을 갖고 있었고 자기 나름대로 배경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자기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니까 빌립보서 3:8에 모든 것을 뭐로 여긴다고요? 배설물로 여긴다 했습니다. 진정한 축복이 무엇인가에 눈이 열리는 우리 하나교회 모든 성도들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정말 우리가 복음에 뿌리내리고 하나님이 주신 참된 응답들을 누리게 되면 무엇이 옳고 그른지가 보이게 되고 거절할 것과 선택할 것이 무엇인가가 분별되게 되어 있고 그 속에서 능력 있는 삶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읽지는 않았습니다만 본문에 보면 앗수르 나라가 나옵니다. 이 앗수르 나라가 얼마나 교만했느냐? 그리고 교만한 결과로 결국 패망했다는 사실을 오늘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데 한번 보십시오. 읽지 않은 사10:12~14 한번 봅시다. 앗수르가 얼마나 교만했는가를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제가 읽어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주의 일을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 다 행하신 후에 앗수르 왕의 완악한 마음의 열매와 높은 눈의 자랑을 벌하시리라 그의 말에,” 앗수르 왕의 말이지요, “나는 내 손의 힘과 내 지혜로 이 일을 행하였나니 나는 총명한 자라 열국의 경계선을 걷어치웠고 그들의 재물을 약탈하였으며 또 용감한 자처럼 위에 거주한 자들을 낮추었으며 내 손으로 열국의 재물을 얻은 것은 새의 보금자리를 얻음 같고 온 세계를 얻은 것은 내버린 알을 주움 같았으나 날개를 치거나 입을 벌리거나 지저귀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하는도다.” 오늘 앗수르 왕의 교만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결국 이 앗수르 왕의 교만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앗수르 왕을 패망시키시겠다 말씀하고 있는 것이 오늘 10장에 나옵니다. 그런데 앗수르 왕이 왜 교만했느냐? 사실은 하나님께서 앗수르 왕을 들어 쓰신 것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깨닫지 못하니까 깨닫도록 하기 위해서 막대기로, 또 깨닫도록 하기 위해서 회초리로 쓰셨다 합니다. 사명을 깨닫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들을 깨닫도록 하기 위해서 회초리로 징계하는 일에 앗수르를 들어서 징계하셨는데 앗수르 왕이 그만 자기가 잘나서 된 줄 알고 교만해서 결국 하나님의 백성을 조롱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리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니까 결국 하나님께서 앗수르 왕을 어떻게 멸하셨느냐? 여러분, 회초리를 꺾어버리고 불사르겠다 했습니다. 앗수르 왕을 완전히 멸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무엇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우리에게 주어진 분량대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롬12:3에도 보면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이 맡기신 자신들의 분량이 있는데 이 분량대로 나아가야 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앗수르 왕은 그것을 넘어선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면 우리에게 주어진 믿음의 분량대로 우리가 어떻게 일할 수 있습니까? 그게 바로 우리의 오늘의 말씀과 오늘의 기도와 오늘의 전도를 붙잡게 될 때 우리의 주어진 분량대로 일할 수 있는 축복이 그 속에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나에 대한 생각을 해야 합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무조건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나의 생각을 해야 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빌립보서 2:13에서 하고 있는 말씀처럼 하나님의 뜻이 내 마음에 담겨야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때 능력 있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내 마음에 담겨야 합니다. 빌립보서 2:13에 뭐라 했습니까?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신다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에 담아 주시고 하나님이 행하신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내 마음에 담길 때, 그때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되는데 우리는 대부분 내 유익함대로 나아갑니다. 내 유익함대로. 그래서 말씀 듣는 것이 필요하고 그래서 말씀 듣고 포럼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내가 들은 말씀과 상대방이 들은 말씀이 똑같은 시간, 똑같은 메시지를 듣고 앉아 있어도 다릅니다. 포럼이 중요한 것이, 내게 유익한 대로 내가 말씀을 듣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상대방이 붙잡은 말씀을 들으면서 아,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구나, 그렇게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우리의 유익함대로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처음에는 십자가 지실 것을 앞두고 당신의 유익함대로 기도했습니다. 마태복음 26장 겟세마네 동산에서 한 기도를 여러분, 아시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어떻게 기도를 하셨는가? 39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무슨 말입니까? 자신의 유익함을 두고 기도했습니다. 나는 이 고난, 내가 피하기를 원합니다. 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마지막에 보면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뭐요“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그런데 결국은 자기의 원대로 되었습니까? 아닙니다. 아버지의 뜻대로 되었습니다. 그게 오히려 유익한 것이었고 그게 영원한 축복이었습니다. 우리는 내게 유익한 것이 나에게 영원한 축복인 줄 생각하는데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을 주셨고 그 말씀을 받을 때마다 말씀을 통해서 그 말씀이 내 마음에 담길 때 하나님의 귀중한 뜻을 깨닫게 되고 그 속에 하나님의 능력 있는 삶이 내 삶의 현장에 나타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복음에 뿌리 내리고 복음 안에서 주신 참된 응답 가지고 모든 것들을 바르게 분별함으로 여러분의 삶이 말씀 붙잡고 말씀 속에 있는 삶으로 능력 있는 삶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하나님의 능력에 뿌리 내리고 참된 믿음으로 살아가야 한다.
두 번째입니다. 하나님은 남은 자를 반드시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누구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남은 자입니다. 아멘입니까? 그 남은 자를 하나님이 반드시 구원하신다, 그게 오늘 본문 19절~34절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내용입니다. 열왕기상 19장에 보면 엘리야가 낙심 가운데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나타나서 아직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칠천 제자가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 말을 전도자 바울이 그대로 인용을 하면서 로마서 11장 4절에 보면 은 바로 엘리야에게 나타나서 칠천 제자가 있음을 인용합니다. 그러면서 11장 5절에 보면 은 그러므로 지금도 은혜를 따라서 남은 자가 있다 했어요. 그러면 그 남은 자가 누구일까요? 그 남은자의 특징이 무엇일까요? 우리가 성경 이사야서를 남은자의 복음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곳곳에서 11장에서도 보면 남은 자가 나와요 그러면 그 남은 자가 누구고 남은자의 특징이 무엇일까요? 여러분 남은자라는 것은 그냥 단순히 생명을 유지하고 살아 남아있는 자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생존해 있는 그런 남은 자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지키는 자. 믿음을 지키는 자가 남은자인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타협하지 아니하고 세상의 그 어떤 환경 속에 빠진다 할지라도 그 속에서 믿음을 지키는 자 그가 바로 남은 자 인 것을 오늘 본문을 통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로부터 믿음을 받는 자가 바로 남은자라는 사실을 야고보서 2장 1절에 말씀하고 있죠.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말씀했죠. 보배로운 믿음을 하나님께서 주신다는 사실을 베드로후서 1장 1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이라 했습니다. 보배로운 믿음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다는 사실 그러면 그 믿음이 어떻게 우리에게 생겨지느냐 어떻게 믿음이 회복되어지느냐 로마서 10장 17절에 보면 은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우리의 믿음이 생긴다는 사실 그렇습니다. 남은자의 가장 확실한 증거는 뭐냐 그리스도를 믿는 자고 그리스도의 말씀을 붙잡는 자 세상과 타협하지 아니하고 원색 복음에 민감하게 반응 보이는 자 그가 바로 남은자요 렘넌트다 말씀했습니다. 어제 핵심에서도 말씀 주셨죠. 여러분 남은자라는 부분들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어요 먼저 그리스도 복음이 남은자고 렘넌트입니다. 복음 그 자체가 렘넌트고 남은 자에요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지만은 나무에 밑둥치 그루터기가 있잖아요. 그게 남은자요 렘넌트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그 그루터기에서 분명히 새 순이 돋아납니다. 그것도 남은자요 렘넌트입니다. 우리가 남은 자를 후대에 대해서 국한해서 이야기 하는데 아닙니다. 그리스도 복음이 남은자고 렘넌트고 또 그루터기 그게 남은 자 렘넌트고 그 그루터기에서 올라오는 순 이거는 후대를 말하죠. 올라오는 순 그 또한 남은자요 렘넌트를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렘넌트는 남은 자는 다른 것이 아니라 세상 그 어떤 환경 속에서도 세상과 타협하지 아니하고 믿음 지키면서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하나님께 향하여 바른 신앙을 가지고 나아가는 자를 일컬어 서 남은자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남은 자를 하나님이 격려하시는 겁니다. 24절에 보세요. 10장 24절입니다. 그 남은 자를 하나님이 격려하시는데 24절 같이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시온에 거주하는 내 백성들아 앗수르가 애굽이 한 것처럼 막대기로 너를 때리며 몽둥이를 들어 너를 칠지라도 그를 두려워하지 말라” 이게 왜 두려워하지 말라했습니까? 남은 자를 하나님께서 격려하고 계시기 때문에 사도행전 4장에 보면 은 베드로가 3장에 앉은뱅이 일으킨 사건 때문에 종교 법정에 서게 되죠. 거기 서서 그 제사장들 대 제사장들이 서 있는 자리 속에서 중요한 메시지를 던집니다. 사도행전 4장 12절에 보면 은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적이 없다” 그 이야기를 듣고 그 자리에 앉은 모든 대제사장들 사도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학문 없는 평범한 범인인줄 알았는데 평범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어떻게 저의 입에서 저런 메시지가 나온 것인가 놀랐어요. 그러면서 가만히 보니까 이미 이들의 전도를 통해서 그리스도 복음이 현장에 전파 되었어요 그러니까 그들 끼리 의논한 겁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 복음을 막을 것인가? 이 그리스도를 막을 것인가 그래서 그들을 다시 불러 들려가지고 위협하면서 다시는 그리스도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했어요. 그때 베드로가 사도행전 4장 19절에 보면 은 하나님 앞에서 사람의 말 듣는 것이 옳으냐. 하나님 말씀 듣는 것이 옳으냐. 여러분 어느 자리입니까? 대제사장들이 어떻게 하면 죽일 것인가 눈을 부라리고 그 자리에서 하나님 말씀 듣는 것이 옳으냐. 사람말 듣는 것이 옳으냐. 판단하라 했어요. 우리는 이 그리스도를 전하고 이 그리스도를 말하는 일에 쉬지 않겠다. 했어요. 그런데 그 힘이 어디서 주어 졌느냐 바로 남은 자를 격려 하시는 하나님 주시는 힘입니다. 사도행전 7장에 보면 은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게 되죠. 그러나 그 자리에서도 스데반은 웃으면서 보좌를 바라보면서 순고했습니다. 그 힘이 어디서 주어지는 힘이냐 남은 자를 도우 시는 격려 하시는 하나님 주시는 힘이십니다. 그 하나님은 어느 정도 힘이 있느냐 마태복음 10장 28절 31절에 보면 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현장에 내어 보내시면서 하신 말씀 이죠 몸은 죽여도 영혼을 죽이지 못하는 인생을 두려워하지 말고 몸과 영혼을 동시에 멸하실 수 있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라 했어요. 그러면서 29절에 보면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시리온에 팔리는 것도 하나님의 소관이다 얘기했어요. 그냥 팔리는 것이 아니다 했어요. 그리고 너희의 머리털 까지도 세심바 되었다 했어요. 그러니까 31절에 보면 은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어요. 남은 자를 하나님께서 힘을 주시고 하나님께서 격려하신다는 사실이에요.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 신앙생활은 바르게 하고 착하게 하는 것이 기준이 아닙니다. 우리 신앙생활의 기준이 바르게 하고 착하게 하는 것이 기준이 아니에요. 기준은 힘입니다. 그 힘은 어디서 옵니까? 사도행전 1장 8절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힘을 받고 했어요. 어느 정도로 힘이냐 땅 끝까지 살릴 수 있도록 힘을 주신다. 말씀했습니다. 그 힘을 갖게 될 때 모든 얽매인 곳에서 풀어지게 되고 묶인 곳에서 참된 자유 함이 있게 되어있습니다. 이 하나님 주신 힘 남은 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힘 이 힘을 가지고 세상 현장에서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이스라엘의 패망 속에서 남은 자를 통해서 회복시켰던 것처럼 지금 이 시대에 하나님은 남은자인 우리를 통해서 이 시대를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세상과 타협하며 세상 따라 가지 말고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언약으로 붙잡고 남은 자로써 세상 현장 속에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는 귀하고 복된 축복된 증인들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9년 4월 7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남은 자를 반드시 구원 하시는 하나님
(사10:20-34)

서론: 예수님이 점점 좋아지면 우리의 인생이 좋아지는 인생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배의 자리에 올 때마다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 해야 합니다. 어제의 신앙으로 오늘을 살려고 하니깐 실족하는 것입니다(히4:16). 복음을 알고 그 속에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1. 그리스도께 뿌리 내리고 참된 응답을 누리자
가. 복음에 뿌리 내리는 것 - 말씀에 뿌리 내리는 것
1) 하나님을 떠난 아담과 하와에게 여자의 후손을 약속(창3:15), 임마누엘(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약속(사7:14)
2) 제자들을 부르신 것은 함께 있기 위해(막3:14), 행동을 요구하신 것이 아니라 나를 따라 오너라 사람 낚는 어부(마4:19)
3) 복음에 뿌리 내릴 때 모든 것이 형통하게 됨(시1:3)
나. 말씀에 뿌리 내릴 때 하나님의 참된 응답을 누리게 됨
1) 아브라함이 단을 쌓는 순간에 모든 축복이 시작(창13:18)
2) 하나님의 응답 안에는 재앙이 들어올 수 없음(출9:26)
3) 하나님의 응답 안에는 경제의 응답이 따라오게 됨(행11:28-30)
4)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헌신, 헌금 하게 됨(대상29:14)
5)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것을 채우심(빌4:19)
다. 세상의 것을 거절하고 하나님의 것으로 세상을 살리게 됨
1) 아브라함이 전쟁에서 승리 후 전리품을 거절함(창14:21-23) - 하나님의 것으로 응답 받을 것을 고백
2) 하나님의 응답을 받으면 거절(공주의 아들)과 선택(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이 분명해짐(히11:24-26)
3) 그리스도 없이 받은 응답은 도움이 안 됨 - 바울이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김(빌3:8)
2. 하나님의 능력에 뿌리 내리고 참된 믿음으로 살아가야 한다
가. 앗수르의 교만과 패망
1) 앗수르 - 사명을 깨닫도록 하기 위한 도구로 쓰심
2) 앗수르가 스스로 교만, 하나님을 대적, 조롱함 - 하나님이 앗수르를 꺾으시고 불태우심
나. 하나님이 맡기신 자신의 분량대로 일해야 함(롬12:3)
1) 오늘의 말씀, 기도, 전도를 누려야 믿음의 분량대로 일할 수 있음
2) 날마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내 생각을 복종시켜야 함
3) 내 유익이 아닌 하나님의 뜻이 나의 소원이 되어야 함(빌2:13) - 이 때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
4) 말씀 포럼이 중요 -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제대로 깨닫는 시간
5) 예수님이 십자가를 앞두고 육신의 유익으로 기도(마26:39) - 결국 아버지의 뜻대로 순종하는 기도를 함(유익, 영원한 축복)
3. 하나님은 남은 자를 반드시 구원하신다
가. 남은 자의 특징
1) 은혜로 준비 된 자가 있음(롬11:4-5)
2)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바른 신앙, 믿음을 계속 지키고 있는 자
3) 하나님께로부터 믿음을 받은 자(약2:1), 보배로운 믿음을 하나님께 받은 자(벧후1:1) - 믿음은 말씀을 받을 때 생김(롬10:17)
나. 하나님이 남은 자를 격려(사10:24)
1) 하나님 앞에서 사람의 말을 듣는 것이 옳은가 판단(행4:19)
2) 몸과 영혼을 동시에 멸할 수 있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라(마10:28-33)
다. 하나님이 주시는 힘을 받아야 함
1) 오직 성령의 힘을 받으면 땅 끝까지 증인이 됨(행1:8)
2) 참된 자유를 누리고 얽매인 것을 푸는 힘

결론: 이스라엘의 패망 속에서 남은 자를 통해서 모든 것을 회복 하셨습니다. 남은 자인 나를 통해 시대를 바꾸십니다. 하나님이 시대를 바꿀 계획 가운데 나를 부르셨습니다. 세상을 따라가지 않고 말씀을 붙잡고 따라가는 축복 누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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