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민의 기호이신 예수 그리스도
2019-04-28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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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8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만민의 기호이신 예수 그리스도”
(사11:10~16)
10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치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가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
11 그 날에 주께서 다시 그의 손을 펴사 그의 남은 백성을 앗수르와 애굽과 바드로스와 구스와 엘람과 시날과 하맛과 바다 섬들에서 돌아오게 하실 것이라
12 여호와께서 열방을 향하여 기치를 세우시고 이스라엘의 쫓긴 자들을 모으시며 땅 사방에서 유다의 흩어진 자들을 모으시리니
13 에브라임의 질투는 없어지고 유다를 괴롭게 하던 자들은 끊어지며 에브라임은 유다를 질투하지 아니하며 유다는 에브라임을 괴롭게 하지 아니할 것이요
14 그들이 서쪽으로 블레셋 사람들의 어깨에 날아 앉고 함께 동방 백성을 노략하며 에돔과 모압에 손을 대며 암몬 자손을 자기에게 복종시키리라
15 여호와께서 애굽 해만을 말리시고 그의 손을 유브라데 하수 위에 흔들어 뜨거운 바람을 일으켜 그 하수를 쳐 일곱 갈래로 나누어 신을 신고 건너가게 하실 것이라
16 그의 남아 있는 백성 곧 앗수르에서 남은 자들을 위하여 큰 길이 있게 하시되 이스라엘이 애굽 땅에서 나오던 날과 같게 하시리라
사11:10~16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만민을 위하여 기를 드십시다.
오늘 2부 찬양대 은혜롭고 또 힘 있는 찬양 감사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오직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오늘 이 한 날도 그 보혈의 힘을 의지해서 모든 것 회복되는 귀하고 복된 예배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여러분 기도해 주실 것은 특별히 1부 예배가 순차 통역으로 지금 진행이 되고 있습니다. 사실 익숙해지지 않으니까 아직까지 뭔가 불편함을 느낍니다. 기도해 주시고요, 또 지금 2부 예배 이 시간에는 통역하는 분들이 지금 영어로, 베트남어로, 또 중국어로, 일본어로 귀중한 메시지를 함께 통역하고 있습니다. 우리교회 통·번역부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고 정말 이 복음의 메시지가 전 세계 현장으로 나가서 237나라를 살리는 이 일에 귀하게 쓰임 받는 그런 축복이 있도록 통·번역부 제자들이 성령충만함 가운데서 귀중한 사역들을 감당해 나갈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제목을 “만민의 기호이신 예수그리스도” 본문에 10절에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요. 그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치로 설 것이요, 12절에도 보면 여호와께서 열방을 향하여 기치를 세우시고 이스라엘의 쫓긴 자들을 모으시며 말씀했습니다. 여기에 나와 있는 본문의 내용을 따라서 만민의 기호이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여러분 한 주간 한 주간 살아가면서 우리 자신들에게 한번 질문을 던져보세요. 내가 하나님 말씀을 듣는 시간들이 많은가 아니면 세상 이야기 듣는 시간들이 많은가? 우리가 가만히 우리 자신들을 돌이켜보면 쓸데없는 말들, 쓸데없는 그런 논란에 휩싸일 때가 많이 있습니다. 사소한 것인데 거기에 생명을 걸고, 그 말에 움직여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되는데,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저런 사람들을 만나게 되지요. 또 그 만남 속에서 이런 저런 말들을 듣게 되고 그 말들을 들으면 또 우리가 생각을 하게 되지요. 그런데 그 생각들이 결국은 같이 있을 때는 모르는데, 혼자 있을 때에 그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들어가서 많은 염려들, 많은 근심들, 많은 걱정들을 만들어 내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은 안 그러세요? 또 우리가 이런 저런 많은 만남들을 가지다 보니까 만나니까 사람들하고 이야기를 하게 되지요. 그런데 그런 이야기들 가운데서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보다도 사람에 대한 이야기들을 쉽게 많이 하잖아요. 이 사람이 어떻다 저 사람이 어떻다, 사람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많이 하게 됩니다. 그렇다 보니까 자주 우리도 모르게 남을 흉보는 그런 이야기들도 우리에게 많이 나와요. 그래서 그 말들을 아닌 것처럼 표현은 전혀 얼굴 모습은 위하는 것처럼 하면서 남을 흉봐요. 그래서 그것을 또 즐기고요, 그래서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보다도, 사람에 대한 이야기들이 우리들에게 많게 됨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서 그것 통해서 어떻게 됩니까? 그렇다보니까 결국은 많은 경우 우리도 모르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상처를 받기도 하고 그래서 낙심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요. 여러분 한 3일만이라도 하나님 말씀 안 듣고 또 사람들과 많이 이야기하고 계속 TV를 한번 보세요. 뭔가 모르게 짜증나고 신경질 나요. 혹시 그렇지 않던가요? 요즘 국회가 막 싸운다고 하던데 재미있더라고요. 보니까, 재미있으면서도 진짜 기도가 되어지고요, 그런데 자꾸 그것을 쳐다보니까 나도 모르게 내 마음에 괜한 신경질이, 괜한 짜증이 나요. 복음이 없어서 당연하게 저런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구나 라는 결론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불구하고, 그런 모습을 바라보면서 뭔가 모르게 신경질 나고 뭔가 모르게 짜증이 나요. 무슨 말입니까? 여러분 세상의 그 어느 곳에도 답이 없다 라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에게 가장 귀중한 답 중의 답 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하나님을 바라보라 했어요. 왜냐? 하나님 안에, 하나님의 눈에, 하나님의 손에 모든 것이 다 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여러분, 하나님의 손에 모든 것이 다 있기 때문에 오늘 이 시간 하나님을 바라보는 이 예배가 행복하다면 여러분 인생은 행복한 인생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한 주간 여러분 살아오면서 이런 저런 많은 세상의 이야기들, 세상의 말들 많이 하고 살았고, 듣고 살아왔잖아요. 오늘 이 시간만큼 만이라도 그 모든 것 내려놓고, 하나님의 음성 듣는 시간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교독문 할 때도 여호와의 소리가 힘 있다 했어요. 특별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하나님의 소리를 들어야 되고, 하나님의 이야기를 들어야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아야 되는 것입니다. 왜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우리의 모든 사람들이 살아날 수 있도록 만민의 기호로 예수 그리스도를 세우셨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그리스도를 바라봐야 되고, 그리스도를 붙잡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만민의 기호이다. 지금 제목을 만민의 기호로 잡았는데 지금 성경에는 만민의 기치라고 이야기를 해요. 같은 말이예요. 기치나 기호나 같은 말이고, 또 푯대도 같은 말이고 또 깃발도 같은 말이예요. 만민의 모든 사람의 푯대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여야 된다 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이사야 11장은 지금 이사야서를 살펴보면서 지난 주에 이어서 11장을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데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누리게 될 구원의 풍성함이 무엇인가를 너무나 잘 말씀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사야11장입니다. 우리가 지난주는 부활주일이었고, 그 전주에 이사야11:1~9절 말씀을 살펴보았잖아요. 이 이사야서 11장 전체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누려야 될 구원의 풍성함이 어떤 것인가를 가장 잘 설명하고 있는 성경 본문 중에 하나인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듣는 가운데서 만민의 기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음으로 말미암아 여러분 개개인에게 구원의 풍성함이 회복되어지는 그런 축복된 응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만민의 기호이신 그리스도
그렇다면 오늘 특별히 먼저 첫 번째로 살펴볼 것은 만민의 기호이신 그리스도입니다. 본문은 10:12절에 특별히 오늘 본문의 사11:10절에 보면 그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치로 설 것이다.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난다 말씀했습니다. 지난 두주 전에 우리가 살펴보았던 것처럼 11:1절에도 그렇게 나오지요.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이미 이 부분에 대한 말씀을 드렸습니다. 왜 다윗의 줄기, 다윗의 뿌리라고 이야기하지 아니하고 왜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난다고 이야기했겠습니까? 다시 말하면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 700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우리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메시야가 어떠한 모습으로 올 것을 예언하고 있는 부분들인데, 예언된 그 말씀이 바로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난다 했어요. 다시 말하면 육신적으로 비천한 자의 후손으로 오시게 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을 이야기하지 아니하고 이새의 줄기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서 가장 최고의 왕 중의 왕입니다. 그 다윗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난다라고 이야기 하지 아니하고,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난다 말씀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특별한 사람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일반인과 똑 같은 사람으로 온다 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여기에 한 싹이 난다. 싹은 무엇을 말합니까? 가장 연약하고 연약한 존재를 말하고 있어요.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에 그저 목수의 아들로서 태어난 곳도 외양간에서, 다시 말하면 말 구유에서 태어나게 된 것이지요. 정말로 보잘 것 없는 곳에서 태어난 것입니다. 왜 그렇게 태어났느냐? 어느 누구든지 다 나올 수 있도록, 특별히 예수님이 왕궁에서 태어났다면 왕궁에 있는 사람들만이 만날 수 있을 것이지요. 그런데 목수의 아들로서 외양간에서 태어났다 라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비천한 자도, 그 누구도 올 수 있는 자로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셨다 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당시에 가장 비천한 자 중의 한 사람들인 바로 양치는 자들이 예수님 앞에 경배하러 왔다는 사실입니다. 그 당시에 양치는 자들은 가장 비천한 사람들의 그룹들 중의 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양치는 사람들 조차도 이 예수님 앞에 경배하러 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보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났다 라는 말은 인류에게 크나큰 은혜를 전달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느 누구든지 있는 자나 없는 자나 상관 없어요.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했습니다.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말씀을 한 것이지요. 특별히 여러분 이새의 가문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때에는 완전히 몰락한 가문입니다. 왜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때가 그 시대적인 배경이 어떤 배경입니까? 로마에 속국 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나라를 잃어버리고 백성들이 전체 다 속국되어 있는데 거기에 명문 가문, 이름 있는 가문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새의 가문이라는 말은 예수님 당시에 완전히 몰락한 가문이었다 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 자신들이 그러한 자들 아닙니까? 우리 자신들이 그러한 자들 아닙니까? 하나님이 창세기1:27~28절에 보면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최고의 가치 있는 존재로 우리 인간을 창조하셨어요.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에게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귀중한 축복을 주셨어요. 창세기1:31절에 보면 우리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사탄의 유혹을 받아 가지고 창세기3:1~6절에 보면 결국은 하나님을 떠나게 된 것입니다. 악한 사탄이 네가 하나님처럼 되리라 라고 속인 것이지요. 여러분 사탄이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없다 라고 들고 나온 것이 아니예요. 네가 하나님처럼 되리라. 거기에 악한 사탄의 속임수에 속아서 하나님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로 에베소2:1절에 보면 죄와 허물로 우리 인생은 죽었다 말씀했습니다. 죄와 허물로 죽은 영적인 상태가 어떤 상태이냐? 영적인 모든 것들은 상실하고 육신적인 것만 남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창세기6:3절에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요.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했어요. 나의 영이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 하겠다. 왜? 이이 그들이 영적인 부분을 상실하고 사람이 육신이 되어 버렸기 때문에 그 결과로 완전히 사탄에게 장악되어 버린 겁니다. 요8:44절에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거기에 우리 인생을 내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죄로 말미암은 죄와 저주 가운데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우리, 아니, 완전히 베인바 된 우리이지요.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완전히 썩어서 베인 바 된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것도 한 싹으로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은 우리가 그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가 뭔가 한 일이 없는데, 그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로마서11:17~18절에 나오는 말씀처럼 돌 감람나무인 우리가 참 감람나무에게 접 붙임바 되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이지요. 내가 뭔가 해서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아예 우리에게 로마서8:15절에 있는 말씀처럼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두지 아니하시고 양자의 영을 두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도록 하셨다 라고 말씀했습니다. 이 은혜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예요. 하나님이 일방적인 은혜로 우리에게 양자의 영을 주셔서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도록 하시고 그 안에 있게 될 때에 우리는 열매를 맺게 되어 있습니다. 붙어만 있으면 되어요. 한번 받아 하십시다. 붙어있자. 붙어만 있으면 되어요. 그게 신앙생활이예요. 내가 뭔가 노력하고 열심히 해서 열매를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우리를 은혜로 부르신 그리스도 앞에 붙어 있으면 그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열매를 맺게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5:4~5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뭐라 했습니까? 내가 노력하고 애 쓰라는 말이 아닙니다. 내가 그 안에, 그가 내 안에 있으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는다 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만큼 어떻게 되느냐? 시편 1:3에 있는 말씀처럼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뿌리를 시냇가에 심어 두기만 하면 생명 되신 그리스도 안에 우리 자신이 있기만 하면 시절을 좇아서 과실을 맺게 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우리 모든 사람들이 바라보아야 할 영원한 푯대가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길을 가면서 원망하다가 불뱀에 물려 죽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민수기 21장입니다. 5절~9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길을 가다 보니 먹을 것도 없고 마실 물도 없으니까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불뱀을 보내시사 이스라엘 백성을 물려 죽게 했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이 정신이 번쩍 들어서 모세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여호와께 기도해서 이 불뱀을 떠나가도록. 그때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야기했습니다. 불뱀을 만들어서 장대 위에 높이 들리도록 해라, 그리고 그것을 쳐다보는 자는 살 것이다, 이야기했습니다. 민수기 21:9에 보면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 했습니다. 여기 놋뱀은 누구를 말합니까? 장대 위에 높이 들린 놋뱀은 누구를 말합니까? 우리가 영원히 바라보아야 할 푯대인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본문을 이용해서 요한복음 3:14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무슨 말입니까? 십자가에 못 박힐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15절에 보면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인자가 들리는데 그를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다는 사실. 그러면서 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말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얻고 새 생명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영원히 바라보아야 할 영원한 푯대가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사도행전 4:12에서 말씀했습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영원히 바라보아야 할 그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되면, 오늘 본문 11절을 보면 결국은 많은 사람이 돌아오게 된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성경 11절을 봅시다. 거기 보면 나라 이름들이 나옵니다. 이 이름들은 어떤 이름이냐? 이스라엘 백성들을 업신여기던 나라들입니다. 그런데 결국은 만민의 기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될 때 이스라엘 백성을 업신여기던 그 사람들에게서 빠져나와서 결국은 이스라엘 백성이 회복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세상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세상 따라가다가 세상 사람들에게 조롱당하고 세상의 종노릇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만민의 기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될 때 결국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 자녀의 축복을 회복하게 된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날마다 날마다 세상 바라보지 말고 다 지나가는 것이고 결국 세상의 종노릇하지 않습니까? 진짜 만민의 기호이신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에게 주신 하나님 자녀된 축복이 회복되는 응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왜 우리가 그리스도를 바라봐야 하느냐? 우리로 하여금 왕 노릇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왕 노릇하게 하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만민의 기호이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라고 하신 것입니다. 오늘 12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열방을 향하여 기치를 세우시고.” 열방을 향하여 기치를 세우신다, 그러면서 “이스라엘의 쫓긴 자들을 모으시며” 말씀했습니다. 열방을 향하여 기치를 세우신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 왕 노릇하게 하신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여기 또 이스라엘의 쫓긴 자들을 모으신다, 여기 이스라엘의 쫓긴 자들을 모으신다는 이 말의 원래 뜻은 하나님의 흩어진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교회로 불러 모으신다는 말입니다. 교회의 영광스러움이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로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될 때, 우리가 만민의 기호이신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될 때 먼저 회복되는 것이 있다면 교회의 축복이 회복되는데 여러분, 마태복음 16:18에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고백했을 때 바로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축복하셨지 않습니까? “내가 ...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교회의 영광스러움이 바로 여기 있습니다.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거기에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무슨 말입니까? 사실은 왕권을 가지고 오히려 그것을 다스린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말미암아 이 땅에 왕권의 역사를 누리는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마가복음 1:15에 보면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말씀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언제 임합니까 물을 때에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17:20~21에 보면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했습니다.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어디에 있다고요? “너희 안에 있느니라”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한 자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3:16에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하나님의 나라는 통치권을 말합니다. 왕으로서 우리가 세상을 다스린다는 말입니다. 이 어마어마한 축복이, 저와 여러분이 만민의 기호이신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 우리 안에 이루어지는 귀중한 축복된 응답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날마다 여러분이 현장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현장에 성령의 충만함과 권능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게 사도행전 1:3 아닙니까? 1:8 아닙니까? 우리가 날마다 현장에서 하나님 나라를 붙잡고 기도하고 누리면 거기 성령 충만과 함께 권능이 나타난다 했습니다. 그래서 진짜 우리가 만민의 기호이신 그리스도가 우리를 다스리도록 우리 자신을 내려놓게 될 때 그때 우리가 결국은 세상을 다스리게 된다는 것, 세상을 살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14절을 봅시다, 14절. 거기 여러 나라들이 나옵니다. 사실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원수 되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결국은 굴복한다는 말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만민의 기호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 그리스도가 나를 지배하면 세상을 지배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다시 말하면 내가 그리스도 앞에 내 자신을 내려놓고 그리스도가 나를 다스리도록 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사용하신다는 말입니다. 어떻게 사용하시느냐?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리도록. 여러분의 산업 현장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산업 현장을 하나님이 사용하시도록. 여러분, 학업 현장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학업을 하나님께서 정복케 하시도록. 그게 바로 우리가 만민의 기호이신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될 때, 다시 말하면 우리가 그리스도께 지배당하고 그리스도가 우리의 삶을 지배하면 우리는 세상을 살리고 세상을 정복한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축복된 응답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남은 자를 돌아오게 하시는 예수님
두 번째입니다. 남은 자를 돌아오게 하시는 예수입니다. 오늘 10절에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또 12절에 보면 특별히 “이스라엘의 쫓긴 자들을 모으시며 땅 사방에서 유다의 흩어진 자들을 모으시리니,”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16절에도 보면 “그의 남아 있는 백성 곧 앗수르에서 남은 자들을 위하여 큰 길이 있게 하시되,”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로 남은 자를 돌아오게 하시는 이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여러분,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계속 싸웠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그게 나옵니다. 13절을 보십시오. “에브라임의 질투는 없어지고.” 에브라임은 북이스라엘에 속한 것입니다. 그 다음에 “유다를 괴롭게 하던 자들은 끊어지며 에브라임은 유다를 질투하지 아니하며 유다는 에브라임을 괴롭게 하지 아니할 것이요.” 역사 속에서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는 항상 싸웠습니다. 마치 우리나라가 남북이 대치되어 있는 상황과 똑같은 상황입니다. 그런데 여기 여러분, 계속 싸웠는데 계속 싸운다는 말은 여러분, 뭔가 다른 것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사람 관계 속에서 뭔가 모르게 해주는 것 없이 밉다는 사람 있지 않습니까? 한 번 두 번 미운 건 미운 건데 계속 미워진다, 사람이. 꼴이 보기 싫고, 그 사람 보기만 하면 꼴 보기 싫고 그 사람이 계속 미워진다, 그것은 그냥 단순히 미워지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영적인 상태입니다. 여러분, 내가 다른 사람을 볼 때 그 사람이 계속 미워진다, 꼬라지가 보기 싫다, 죄송합니다. 그러면 그것은 나의 인격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영적인 상태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를 자꾸 누리게 되면 이 부분이 해결되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 13절이 그 부분입니다. 왜 사람에 대해서 질투가 일어납니까? 그것은 내가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은 마음에서 질투가 일어나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시기가 가득 차게 되니까 질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유다와 에브라임이 질투가 일어나고 시기가 일어났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결국은 다른 이유가 아닙니다. 그런데 여기 진짜 만민의 기호이신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될 때 먼저 우리에게, 내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되고 그로 말미암아 사람을 이해하게 되고 사람을 수용할 수 있고, 만민의 기호이신 그리스도가 내 삶을 지배하게 될 때 결국은 시기했던, 질투했던 마음들이 사라지게 되고, 이기주의가 사라지게 되고 형제를 높이고 귀하게 여기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내가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그리스도가 내 마음을 다스리게 될 때. 여러분,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자기 몸을 우리에게 주심으로 말미암아 원수된 우리를 화목하게 하셨지 않습니까? 그러면 하나님과 원수된 우리, 하나님과 화목케 된 자들이 바로 저와 여러분인데 그렇다면 우리 마음에 하나님과 평화를 누림으로 말미암아 이웃과 저절로 화목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3:10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진짜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화평한 축복의 역사 가운데 들어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성도들을 귀하게 보고 성도들을 존중하게 되어 있고 성도들을 높이게 되어 있습니다. 성도들을 귀하게 보지 말라 해도 내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이 확인되는 만큼 저 사람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 받은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사실이 보이고 인정되고 이해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속에 이루어지는 것이 무엇입니까? 교회 안에 성도의 교제가 이루어집니다. 그 안에 참된 말씀의 포럼이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하나교회 모든 성도들, 정말로 그리스도 앞에 여러분 자신이 지배당함으로 그리스도에 다스림 받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화평을 누리고 여러분 모든 성도들간의 축복된 만남이 회복되는 역사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사야 53:5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말씀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여러분, 우리가 복음을 정말로 알고 복음을 누리면 사람 관계에 관대해지게 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성도의 진정한 교제가 그 속에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때부터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에게 남은 자들을 오게 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남은 자들을 붙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사야 60:1에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말씀했습니다. 그러한 빛을 발하라 할 때 빛이 임한 그 사람들에게 이사야 60:3에 보면 뭐라 했습니까? “나라들은 네 빛으로, 왕들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했습니다. 남은 자들을 온 세상에서 불러서 우리에게 붙이시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보면 결국 남은 자가 돌아오게 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고 하나님이 나라를 지배하시도록 우리가 그 속에 들어가게 될 때 하나님이 세계 열방 가운데 남은 자들을 저와 여러분에게 붙이신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문과 길을 하나님이 그때 여시는 것입니다. 16절입니다. “남은 자들을 위하여 큰 길이 있게 하시되”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과 만민의 기호이신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될 때,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나를 지배하시도록, 나를 다스리도록 내가 그 속에 들어가게 될 때 모든 길을 하나님이 여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가 길입니다. 한번 따라합시다. 예수가! 길이다! 모든 길을 그리스도께서 여시게 되어 있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만민의 기호이신 예수 그리스도, 무슨 말입니까? 주님께서 나를 다스려 주옵소서, 기도하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다스리심이 이 땅에서 가장 능력 중의 최고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다스림이 이 땅에서 능력 중의 최고의 능력입니다. 혹여나 연약해서 질병 가운데 있는 분들 있습니까? 이 시간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하나님이 나를 다스려 주옵소서. 내가 그리스도의 지배 앞에, 그리스도의 다스림 속에 들어가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나를 다스려 주옵소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때 어떤 결과가 일어나느냐? 16절 마지막을 봅시다. 하나님이 나를 다스리실 때 일어나는 역사입니다. 16절 마지막에 “이스라엘이 애굽 땅에서 나오던 날과 같게 하시리라.” 한번 같이 읽어 봅시다. 이스라엘이! 애굽 땅에서 나오던 날과 같게 하시리라!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사백 년 노예 생활을 하다가 열 가지 재앙, 마지막 장자 재앙에서 바로 왕이 두 손 두 발 다 들고 이스라엘 백성을 급하게 쫓아 보냈습니다. 어느 정도로 급하게 나왔느냐? 아예 이스라엘 백성은 먹을 것도 준비 못하고 나왔습니다. 반죽해 놓은 발효되지 않은 그 밀가루를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것 가지고 광야에서 무교병으로 먹었지 않습니까? 무슨 말입니까? 그렇게 급하게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쫓아 보냈습니다. 왜냐? 애굽의 바로 왕이 감당치 못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그러면서 이스라엘 백성이 나올 때 애굽 사람들로 말미암아 모든 재물들, 모든 짐승들, 다 요구하는 대로 가지고 나왔습니다. 오늘 본문에 “이스라엘이 애굽 땅에서 나오던 날과 같게 하시리라.” 만민의 기호이신 그리스도, 그 그리스도가 나를 다스리게 될 때 이스라엘이 애굽 땅에서 나오던 날과 같이 하시리라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세상이 감당치 못할 사람으로 여러분을 축복하신다는 말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다스림 속에 있는, 하나님의 지배 속에 있는 부분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했는데 그게 성경에 보면 로마서 14:7~8입니다. 거기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하나님의 지배하심을 받는 가장 정확한 정의를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로다. 여러분, 이런 사람은 악한 사단이 건드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나를 다스리느냐? 여러분, 이번 주간부터 시작하십시오. 말씀 들으십시오. 말씀 듣고 말씀 읽고 계속 반복해서 말씀 들으십시오. 그래서 말씀이 내게 세뇌되도록. 여러분, 동네에서 무당이 계속 푸닥거리하면, 계속 하다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동네 전체가 흑암에 완전히 사로잡히고 완전히 정신적인 문제, 영적인 문제 다 드러나고 창녀촌이 되어 버립니다. 우리가 그러면 반대로 말하면 말씀을 계속 듣게 될 때 어떤 역사가 일어날 것인가? 빌립보서 4:13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 응답이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서 11:38입니다.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이런 응답이 우리에게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이 한 주간 만민의 기호이신 예수 그리스도,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께서 나를 다스려 주옵소서, 나를 지배해 주시옵소서, 그 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의 모든 관계된 현장에 하나님께서 마음과 생각을 변화시키고 현장을 변화시키는 역사로 나타내실 것입니다. 이 한 주간에도 여러분의 모든 현장에서 승리하는, 그리고 만민의 교회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높이는 축복된 한 주간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9년 4월 28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만민의 기호이신 예수 그리스도
(사11:10-16)
서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보다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그래서 중요하지 않은 사소한 것에 결정을 하고 인생을 걸게 됩니다. 사람이기 때문에 이런저런 많은 생각(염려, 근심)을 하게 됩니다. 많은 만남 속에서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보다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것에 대한 답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예배가 행복하면 행복한 인생이 되어집니다.
만민의 기호(기치, 깃발)이신 그리스도로 새로운 힘을 얻어야 합니다.
1. 만민의 기호이신 그리스도
가.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게 됨(사11:11)
1) 비천한 자의 후손으로 오심(일반인생과 똑같은 모습으로 오심) - 모든 사람들이 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
2) 이새의 가문 - 예수님이 태어날 당시에 완전히 몰락한 집안
3)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창1:27-28), 보시기에 심히 좋았음(창1:31)
4) 하나님 떠남으로(창3:1-6), 죄, 허물로 죽은 상태(엡2:1), 영적인 부분은 상실하고 육체가 됨(창6:3), 사단의 손에 잡힘(요8:44)
나. 한 싹으로 오신 예수님
1)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죄와 저주 가득한 가지를 베어 버리고 새로운 싹이 나도록 하심(롬11:17-18)
2) 양자의 영을 주셔서 아바 아버지라 부르는 은혜를 주심(롬8:15)
3) 열매 맺기 위해 붙어 있기만 하면 됨(요15:4-5)
4) 시냇가에 심은 나무는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게 됨(시1:3)
다. 모든 사람들이 바라 봐야 할 푯대가 예수 그리스도
1) 광야길을 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불뱀에 물려 죽게 됨(민21:5-9) - 놋뱀(그리스도)을 바라보게 될 때 살게 됨
2) 만민의 기호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3) 새생명, 구원을 얻을 유일한 비밀은 예수 그리스도(행4:12)
4) 그리스도께 돌아옴으로 회복 될 것을 약속하심(사11:11)
라. 왜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시는가? - 왕 노릇 하게 하심(사11:12)
1) 교회의 축복(마16:18) - 교회 속에 하나님 나라가 임함
2)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워 옴(막1:15), 우리 안에 하나님 나라가 임함(눅17:20-21), 우리 안에 오셔서 다스리심(요1:12), 하나님의 성전(고전3:16), 모든 나라에서 하나님 나라를 누려야 함(행1:3, 8)
3) 먼저 할 것 - 하나님의 다스림, 인도를 받아야 함(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으면 다스리는 자가 되어짐)
2. 남은 자를 돌아오게 하시는 예수님
가. 평화의 나라를 누리는 삶(사11:13)
1)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는 항상 싸움 - 복음을 누리게 될 때 미워하는 사람도 이해하게 됨
2) 예수님을 바르게 믿을 때 이기주의가 사라짐, 형제를 높이고 귀하게 여겨짐
3) 하나님과의 화평이 이루어질 때 이웃과도 화목하게 됨
4) 하나님과 화평하게 될 때 눈이 달라지게 됨(사53:5) - 복음을 누릴 때 인간관계 회복
나. 이 때부터 남은 자를 보내 주심 - 하나님이 붙이심(사60:1, 3)
다. 모든 문, 길을 열어 오게 하심(사11:16)
결론: 예수가 오늘도 길입니다. 만민의 기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나를 다스릴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다스려 주시는 능력이 최고의 능력입니다. 어려움과 질병 가운데 있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하나님이 다스릴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사11:16). 만민의 기호이신 그리스도를 붙잡게 될 때 세상이 감당 하지 못 할 사람으로 우리를 세우십니다. 이 일을 위해 말씀을 계속 들어야 됩니다.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될 때 내게 능력이 나타나게 됩니다(빌4:13).
“만민의 기호이신 예수 그리스도”
(사11:10~16)
10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치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가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
11 그 날에 주께서 다시 그의 손을 펴사 그의 남은 백성을 앗수르와 애굽과 바드로스와 구스와 엘람과 시날과 하맛과 바다 섬들에서 돌아오게 하실 것이라
12 여호와께서 열방을 향하여 기치를 세우시고 이스라엘의 쫓긴 자들을 모으시며 땅 사방에서 유다의 흩어진 자들을 모으시리니
13 에브라임의 질투는 없어지고 유다를 괴롭게 하던 자들은 끊어지며 에브라임은 유다를 질투하지 아니하며 유다는 에브라임을 괴롭게 하지 아니할 것이요
14 그들이 서쪽으로 블레셋 사람들의 어깨에 날아 앉고 함께 동방 백성을 노략하며 에돔과 모압에 손을 대며 암몬 자손을 자기에게 복종시키리라
15 여호와께서 애굽 해만을 말리시고 그의 손을 유브라데 하수 위에 흔들어 뜨거운 바람을 일으켜 그 하수를 쳐 일곱 갈래로 나누어 신을 신고 건너가게 하실 것이라
16 그의 남아 있는 백성 곧 앗수르에서 남은 자들을 위하여 큰 길이 있게 하시되 이스라엘이 애굽 땅에서 나오던 날과 같게 하시리라
사11:10~16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만민을 위하여 기를 드십시다.
오늘 2부 찬양대 은혜롭고 또 힘 있는 찬양 감사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오직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오늘 이 한 날도 그 보혈의 힘을 의지해서 모든 것 회복되는 귀하고 복된 예배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여러분 기도해 주실 것은 특별히 1부 예배가 순차 통역으로 지금 진행이 되고 있습니다. 사실 익숙해지지 않으니까 아직까지 뭔가 불편함을 느낍니다. 기도해 주시고요, 또 지금 2부 예배 이 시간에는 통역하는 분들이 지금 영어로, 베트남어로, 또 중국어로, 일본어로 귀중한 메시지를 함께 통역하고 있습니다. 우리교회 통·번역부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고 정말 이 복음의 메시지가 전 세계 현장으로 나가서 237나라를 살리는 이 일에 귀하게 쓰임 받는 그런 축복이 있도록 통·번역부 제자들이 성령충만함 가운데서 귀중한 사역들을 감당해 나갈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제목을 “만민의 기호이신 예수그리스도” 본문에 10절에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요. 그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치로 설 것이요, 12절에도 보면 여호와께서 열방을 향하여 기치를 세우시고 이스라엘의 쫓긴 자들을 모으시며 말씀했습니다. 여기에 나와 있는 본문의 내용을 따라서 만민의 기호이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여러분 한 주간 한 주간 살아가면서 우리 자신들에게 한번 질문을 던져보세요. 내가 하나님 말씀을 듣는 시간들이 많은가 아니면 세상 이야기 듣는 시간들이 많은가? 우리가 가만히 우리 자신들을 돌이켜보면 쓸데없는 말들, 쓸데없는 그런 논란에 휩싸일 때가 많이 있습니다. 사소한 것인데 거기에 생명을 걸고, 그 말에 움직여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되는데,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저런 사람들을 만나게 되지요. 또 그 만남 속에서 이런 저런 말들을 듣게 되고 그 말들을 들으면 또 우리가 생각을 하게 되지요. 그런데 그 생각들이 결국은 같이 있을 때는 모르는데, 혼자 있을 때에 그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들어가서 많은 염려들, 많은 근심들, 많은 걱정들을 만들어 내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은 안 그러세요? 또 우리가 이런 저런 많은 만남들을 가지다 보니까 만나니까 사람들하고 이야기를 하게 되지요. 그런데 그런 이야기들 가운데서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보다도 사람에 대한 이야기들을 쉽게 많이 하잖아요. 이 사람이 어떻다 저 사람이 어떻다, 사람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많이 하게 됩니다. 그렇다 보니까 자주 우리도 모르게 남을 흉보는 그런 이야기들도 우리에게 많이 나와요. 그래서 그 말들을 아닌 것처럼 표현은 전혀 얼굴 모습은 위하는 것처럼 하면서 남을 흉봐요. 그래서 그것을 또 즐기고요, 그래서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보다도, 사람에 대한 이야기들이 우리들에게 많게 됨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서 그것 통해서 어떻게 됩니까? 그렇다보니까 결국은 많은 경우 우리도 모르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상처를 받기도 하고 그래서 낙심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요. 여러분 한 3일만이라도 하나님 말씀 안 듣고 또 사람들과 많이 이야기하고 계속 TV를 한번 보세요. 뭔가 모르게 짜증나고 신경질 나요. 혹시 그렇지 않던가요? 요즘 국회가 막 싸운다고 하던데 재미있더라고요. 보니까, 재미있으면서도 진짜 기도가 되어지고요, 그런데 자꾸 그것을 쳐다보니까 나도 모르게 내 마음에 괜한 신경질이, 괜한 짜증이 나요. 복음이 없어서 당연하게 저런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구나 라는 결론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불구하고, 그런 모습을 바라보면서 뭔가 모르게 신경질 나고 뭔가 모르게 짜증이 나요. 무슨 말입니까? 여러분 세상의 그 어느 곳에도 답이 없다 라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에게 가장 귀중한 답 중의 답 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하나님을 바라보라 했어요. 왜냐? 하나님 안에, 하나님의 눈에, 하나님의 손에 모든 것이 다 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여러분, 하나님의 손에 모든 것이 다 있기 때문에 오늘 이 시간 하나님을 바라보는 이 예배가 행복하다면 여러분 인생은 행복한 인생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한 주간 여러분 살아오면서 이런 저런 많은 세상의 이야기들, 세상의 말들 많이 하고 살았고, 듣고 살아왔잖아요. 오늘 이 시간만큼 만이라도 그 모든 것 내려놓고, 하나님의 음성 듣는 시간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교독문 할 때도 여호와의 소리가 힘 있다 했어요. 특별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하나님의 소리를 들어야 되고, 하나님의 이야기를 들어야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아야 되는 것입니다. 왜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우리의 모든 사람들이 살아날 수 있도록 만민의 기호로 예수 그리스도를 세우셨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그리스도를 바라봐야 되고, 그리스도를 붙잡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만민의 기호이다. 지금 제목을 만민의 기호로 잡았는데 지금 성경에는 만민의 기치라고 이야기를 해요. 같은 말이예요. 기치나 기호나 같은 말이고, 또 푯대도 같은 말이고 또 깃발도 같은 말이예요. 만민의 모든 사람의 푯대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여야 된다 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이사야 11장은 지금 이사야서를 살펴보면서 지난 주에 이어서 11장을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데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누리게 될 구원의 풍성함이 무엇인가를 너무나 잘 말씀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사야11장입니다. 우리가 지난주는 부활주일이었고, 그 전주에 이사야11:1~9절 말씀을 살펴보았잖아요. 이 이사야서 11장 전체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누려야 될 구원의 풍성함이 어떤 것인가를 가장 잘 설명하고 있는 성경 본문 중에 하나인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듣는 가운데서 만민의 기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음으로 말미암아 여러분 개개인에게 구원의 풍성함이 회복되어지는 그런 축복된 응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만민의 기호이신 그리스도
그렇다면 오늘 특별히 먼저 첫 번째로 살펴볼 것은 만민의 기호이신 그리스도입니다. 본문은 10:12절에 특별히 오늘 본문의 사11:10절에 보면 그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치로 설 것이다.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난다 말씀했습니다. 지난 두주 전에 우리가 살펴보았던 것처럼 11:1절에도 그렇게 나오지요.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이미 이 부분에 대한 말씀을 드렸습니다. 왜 다윗의 줄기, 다윗의 뿌리라고 이야기하지 아니하고 왜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난다고 이야기했겠습니까? 다시 말하면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 700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우리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메시야가 어떠한 모습으로 올 것을 예언하고 있는 부분들인데, 예언된 그 말씀이 바로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난다 했어요. 다시 말하면 육신적으로 비천한 자의 후손으로 오시게 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을 이야기하지 아니하고 이새의 줄기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서 가장 최고의 왕 중의 왕입니다. 그 다윗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난다라고 이야기 하지 아니하고,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난다 말씀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특별한 사람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일반인과 똑 같은 사람으로 온다 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여기에 한 싹이 난다. 싹은 무엇을 말합니까? 가장 연약하고 연약한 존재를 말하고 있어요.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에 그저 목수의 아들로서 태어난 곳도 외양간에서, 다시 말하면 말 구유에서 태어나게 된 것이지요. 정말로 보잘 것 없는 곳에서 태어난 것입니다. 왜 그렇게 태어났느냐? 어느 누구든지 다 나올 수 있도록, 특별히 예수님이 왕궁에서 태어났다면 왕궁에 있는 사람들만이 만날 수 있을 것이지요. 그런데 목수의 아들로서 외양간에서 태어났다 라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비천한 자도, 그 누구도 올 수 있는 자로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셨다 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당시에 가장 비천한 자 중의 한 사람들인 바로 양치는 자들이 예수님 앞에 경배하러 왔다는 사실입니다. 그 당시에 양치는 자들은 가장 비천한 사람들의 그룹들 중의 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양치는 사람들 조차도 이 예수님 앞에 경배하러 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보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났다 라는 말은 인류에게 크나큰 은혜를 전달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느 누구든지 있는 자나 없는 자나 상관 없어요.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했습니다.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말씀을 한 것이지요. 특별히 여러분 이새의 가문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때에는 완전히 몰락한 가문입니다. 왜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때가 그 시대적인 배경이 어떤 배경입니까? 로마에 속국 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나라를 잃어버리고 백성들이 전체 다 속국되어 있는데 거기에 명문 가문, 이름 있는 가문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새의 가문이라는 말은 예수님 당시에 완전히 몰락한 가문이었다 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 자신들이 그러한 자들 아닙니까? 우리 자신들이 그러한 자들 아닙니까? 하나님이 창세기1:27~28절에 보면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최고의 가치 있는 존재로 우리 인간을 창조하셨어요.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에게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귀중한 축복을 주셨어요. 창세기1:31절에 보면 우리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사탄의 유혹을 받아 가지고 창세기3:1~6절에 보면 결국은 하나님을 떠나게 된 것입니다. 악한 사탄이 네가 하나님처럼 되리라 라고 속인 것이지요. 여러분 사탄이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없다 라고 들고 나온 것이 아니예요. 네가 하나님처럼 되리라. 거기에 악한 사탄의 속임수에 속아서 하나님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로 에베소2:1절에 보면 죄와 허물로 우리 인생은 죽었다 말씀했습니다. 죄와 허물로 죽은 영적인 상태가 어떤 상태이냐? 영적인 모든 것들은 상실하고 육신적인 것만 남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창세기6:3절에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요.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했어요. 나의 영이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 하겠다. 왜? 이이 그들이 영적인 부분을 상실하고 사람이 육신이 되어 버렸기 때문에 그 결과로 완전히 사탄에게 장악되어 버린 겁니다. 요8:44절에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거기에 우리 인생을 내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죄로 말미암은 죄와 저주 가운데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우리, 아니, 완전히 베인바 된 우리이지요.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완전히 썩어서 베인 바 된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것도 한 싹으로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은 우리가 그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가 뭔가 한 일이 없는데, 그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로마서11:17~18절에 나오는 말씀처럼 돌 감람나무인 우리가 참 감람나무에게 접 붙임바 되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이지요. 내가 뭔가 해서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아예 우리에게 로마서8:15절에 있는 말씀처럼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두지 아니하시고 양자의 영을 두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도록 하셨다 라고 말씀했습니다. 이 은혜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예요. 하나님이 일방적인 은혜로 우리에게 양자의 영을 주셔서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도록 하시고 그 안에 있게 될 때에 우리는 열매를 맺게 되어 있습니다. 붙어만 있으면 되어요. 한번 받아 하십시다. 붙어있자. 붙어만 있으면 되어요. 그게 신앙생활이예요. 내가 뭔가 노력하고 열심히 해서 열매를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우리를 은혜로 부르신 그리스도 앞에 붙어 있으면 그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열매를 맺게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5:4~5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뭐라 했습니까? 내가 노력하고 애 쓰라는 말이 아닙니다. 내가 그 안에, 그가 내 안에 있으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는다 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만큼 어떻게 되느냐? 시편 1:3에 있는 말씀처럼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뿌리를 시냇가에 심어 두기만 하면 생명 되신 그리스도 안에 우리 자신이 있기만 하면 시절을 좇아서 과실을 맺게 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우리 모든 사람들이 바라보아야 할 영원한 푯대가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길을 가면서 원망하다가 불뱀에 물려 죽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민수기 21장입니다. 5절~9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길을 가다 보니 먹을 것도 없고 마실 물도 없으니까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불뱀을 보내시사 이스라엘 백성을 물려 죽게 했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이 정신이 번쩍 들어서 모세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여호와께 기도해서 이 불뱀을 떠나가도록. 그때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야기했습니다. 불뱀을 만들어서 장대 위에 높이 들리도록 해라, 그리고 그것을 쳐다보는 자는 살 것이다, 이야기했습니다. 민수기 21:9에 보면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 했습니다. 여기 놋뱀은 누구를 말합니까? 장대 위에 높이 들린 놋뱀은 누구를 말합니까? 우리가 영원히 바라보아야 할 푯대인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본문을 이용해서 요한복음 3:14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무슨 말입니까? 십자가에 못 박힐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15절에 보면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인자가 들리는데 그를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다는 사실. 그러면서 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말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얻고 새 생명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영원히 바라보아야 할 영원한 푯대가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사도행전 4:12에서 말씀했습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영원히 바라보아야 할 그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되면, 오늘 본문 11절을 보면 결국은 많은 사람이 돌아오게 된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성경 11절을 봅시다. 거기 보면 나라 이름들이 나옵니다. 이 이름들은 어떤 이름이냐? 이스라엘 백성들을 업신여기던 나라들입니다. 그런데 결국은 만민의 기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될 때 이스라엘 백성을 업신여기던 그 사람들에게서 빠져나와서 결국은 이스라엘 백성이 회복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세상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세상 따라가다가 세상 사람들에게 조롱당하고 세상의 종노릇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만민의 기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될 때 결국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 자녀의 축복을 회복하게 된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날마다 날마다 세상 바라보지 말고 다 지나가는 것이고 결국 세상의 종노릇하지 않습니까? 진짜 만민의 기호이신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에게 주신 하나님 자녀된 축복이 회복되는 응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왜 우리가 그리스도를 바라봐야 하느냐? 우리로 하여금 왕 노릇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왕 노릇하게 하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만민의 기호이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라고 하신 것입니다. 오늘 12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열방을 향하여 기치를 세우시고.” 열방을 향하여 기치를 세우신다, 그러면서 “이스라엘의 쫓긴 자들을 모으시며” 말씀했습니다. 열방을 향하여 기치를 세우신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 왕 노릇하게 하신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여기 또 이스라엘의 쫓긴 자들을 모으신다, 여기 이스라엘의 쫓긴 자들을 모으신다는 이 말의 원래 뜻은 하나님의 흩어진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교회로 불러 모으신다는 말입니다. 교회의 영광스러움이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로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될 때, 우리가 만민의 기호이신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될 때 먼저 회복되는 것이 있다면 교회의 축복이 회복되는데 여러분, 마태복음 16:18에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고백했을 때 바로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축복하셨지 않습니까? “내가 ...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교회의 영광스러움이 바로 여기 있습니다.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거기에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무슨 말입니까? 사실은 왕권을 가지고 오히려 그것을 다스린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말미암아 이 땅에 왕권의 역사를 누리는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마가복음 1:15에 보면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말씀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언제 임합니까 물을 때에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17:20~21에 보면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했습니다.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어디에 있다고요? “너희 안에 있느니라”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한 자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3:16에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하나님의 나라는 통치권을 말합니다. 왕으로서 우리가 세상을 다스린다는 말입니다. 이 어마어마한 축복이, 저와 여러분이 만민의 기호이신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 우리 안에 이루어지는 귀중한 축복된 응답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날마다 여러분이 현장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현장에 성령의 충만함과 권능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게 사도행전 1:3 아닙니까? 1:8 아닙니까? 우리가 날마다 현장에서 하나님 나라를 붙잡고 기도하고 누리면 거기 성령 충만과 함께 권능이 나타난다 했습니다. 그래서 진짜 우리가 만민의 기호이신 그리스도가 우리를 다스리도록 우리 자신을 내려놓게 될 때 그때 우리가 결국은 세상을 다스리게 된다는 것, 세상을 살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14절을 봅시다, 14절. 거기 여러 나라들이 나옵니다. 사실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원수 되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결국은 굴복한다는 말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만민의 기호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 그리스도가 나를 지배하면 세상을 지배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다시 말하면 내가 그리스도 앞에 내 자신을 내려놓고 그리스도가 나를 다스리도록 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사용하신다는 말입니다. 어떻게 사용하시느냐?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리도록. 여러분의 산업 현장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산업 현장을 하나님이 사용하시도록. 여러분, 학업 현장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학업을 하나님께서 정복케 하시도록. 그게 바로 우리가 만민의 기호이신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될 때, 다시 말하면 우리가 그리스도께 지배당하고 그리스도가 우리의 삶을 지배하면 우리는 세상을 살리고 세상을 정복한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축복된 응답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남은 자를 돌아오게 하시는 예수님
두 번째입니다. 남은 자를 돌아오게 하시는 예수입니다. 오늘 10절에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또 12절에 보면 특별히 “이스라엘의 쫓긴 자들을 모으시며 땅 사방에서 유다의 흩어진 자들을 모으시리니,”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16절에도 보면 “그의 남아 있는 백성 곧 앗수르에서 남은 자들을 위하여 큰 길이 있게 하시되,”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로 남은 자를 돌아오게 하시는 이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여러분,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계속 싸웠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그게 나옵니다. 13절을 보십시오. “에브라임의 질투는 없어지고.” 에브라임은 북이스라엘에 속한 것입니다. 그 다음에 “유다를 괴롭게 하던 자들은 끊어지며 에브라임은 유다를 질투하지 아니하며 유다는 에브라임을 괴롭게 하지 아니할 것이요.” 역사 속에서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는 항상 싸웠습니다. 마치 우리나라가 남북이 대치되어 있는 상황과 똑같은 상황입니다. 그런데 여기 여러분, 계속 싸웠는데 계속 싸운다는 말은 여러분, 뭔가 다른 것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사람 관계 속에서 뭔가 모르게 해주는 것 없이 밉다는 사람 있지 않습니까? 한 번 두 번 미운 건 미운 건데 계속 미워진다, 사람이. 꼴이 보기 싫고, 그 사람 보기만 하면 꼴 보기 싫고 그 사람이 계속 미워진다, 그것은 그냥 단순히 미워지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영적인 상태입니다. 여러분, 내가 다른 사람을 볼 때 그 사람이 계속 미워진다, 꼬라지가 보기 싫다, 죄송합니다. 그러면 그것은 나의 인격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영적인 상태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를 자꾸 누리게 되면 이 부분이 해결되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 13절이 그 부분입니다. 왜 사람에 대해서 질투가 일어납니까? 그것은 내가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은 마음에서 질투가 일어나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시기가 가득 차게 되니까 질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유다와 에브라임이 질투가 일어나고 시기가 일어났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결국은 다른 이유가 아닙니다. 그런데 여기 진짜 만민의 기호이신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될 때 먼저 우리에게, 내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되고 그로 말미암아 사람을 이해하게 되고 사람을 수용할 수 있고, 만민의 기호이신 그리스도가 내 삶을 지배하게 될 때 결국은 시기했던, 질투했던 마음들이 사라지게 되고, 이기주의가 사라지게 되고 형제를 높이고 귀하게 여기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내가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그리스도가 내 마음을 다스리게 될 때. 여러분,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자기 몸을 우리에게 주심으로 말미암아 원수된 우리를 화목하게 하셨지 않습니까? 그러면 하나님과 원수된 우리, 하나님과 화목케 된 자들이 바로 저와 여러분인데 그렇다면 우리 마음에 하나님과 평화를 누림으로 말미암아 이웃과 저절로 화목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3:10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진짜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화평한 축복의 역사 가운데 들어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성도들을 귀하게 보고 성도들을 존중하게 되어 있고 성도들을 높이게 되어 있습니다. 성도들을 귀하게 보지 말라 해도 내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이 확인되는 만큼 저 사람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 받은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사실이 보이고 인정되고 이해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속에 이루어지는 것이 무엇입니까? 교회 안에 성도의 교제가 이루어집니다. 그 안에 참된 말씀의 포럼이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하나교회 모든 성도들, 정말로 그리스도 앞에 여러분 자신이 지배당함으로 그리스도에 다스림 받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화평을 누리고 여러분 모든 성도들간의 축복된 만남이 회복되는 역사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사야 53:5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말씀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여러분, 우리가 복음을 정말로 알고 복음을 누리면 사람 관계에 관대해지게 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성도의 진정한 교제가 그 속에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때부터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에게 남은 자들을 오게 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남은 자들을 붙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사야 60:1에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말씀했습니다. 그러한 빛을 발하라 할 때 빛이 임한 그 사람들에게 이사야 60:3에 보면 뭐라 했습니까? “나라들은 네 빛으로, 왕들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했습니다. 남은 자들을 온 세상에서 불러서 우리에게 붙이시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보면 결국 남은 자가 돌아오게 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고 하나님이 나라를 지배하시도록 우리가 그 속에 들어가게 될 때 하나님이 세계 열방 가운데 남은 자들을 저와 여러분에게 붙이신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문과 길을 하나님이 그때 여시는 것입니다. 16절입니다. “남은 자들을 위하여 큰 길이 있게 하시되”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과 만민의 기호이신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될 때,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나를 지배하시도록, 나를 다스리도록 내가 그 속에 들어가게 될 때 모든 길을 하나님이 여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가 길입니다. 한번 따라합시다. 예수가! 길이다! 모든 길을 그리스도께서 여시게 되어 있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만민의 기호이신 예수 그리스도, 무슨 말입니까? 주님께서 나를 다스려 주옵소서, 기도하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다스리심이 이 땅에서 가장 능력 중의 최고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다스림이 이 땅에서 능력 중의 최고의 능력입니다. 혹여나 연약해서 질병 가운데 있는 분들 있습니까? 이 시간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하나님이 나를 다스려 주옵소서. 내가 그리스도의 지배 앞에, 그리스도의 다스림 속에 들어가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나를 다스려 주옵소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때 어떤 결과가 일어나느냐? 16절 마지막을 봅시다. 하나님이 나를 다스리실 때 일어나는 역사입니다. 16절 마지막에 “이스라엘이 애굽 땅에서 나오던 날과 같게 하시리라.” 한번 같이 읽어 봅시다. 이스라엘이! 애굽 땅에서 나오던 날과 같게 하시리라!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사백 년 노예 생활을 하다가 열 가지 재앙, 마지막 장자 재앙에서 바로 왕이 두 손 두 발 다 들고 이스라엘 백성을 급하게 쫓아 보냈습니다. 어느 정도로 급하게 나왔느냐? 아예 이스라엘 백성은 먹을 것도 준비 못하고 나왔습니다. 반죽해 놓은 발효되지 않은 그 밀가루를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것 가지고 광야에서 무교병으로 먹었지 않습니까? 무슨 말입니까? 그렇게 급하게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쫓아 보냈습니다. 왜냐? 애굽의 바로 왕이 감당치 못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그러면서 이스라엘 백성이 나올 때 애굽 사람들로 말미암아 모든 재물들, 모든 짐승들, 다 요구하는 대로 가지고 나왔습니다. 오늘 본문에 “이스라엘이 애굽 땅에서 나오던 날과 같게 하시리라.” 만민의 기호이신 그리스도, 그 그리스도가 나를 다스리게 될 때 이스라엘이 애굽 땅에서 나오던 날과 같이 하시리라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세상이 감당치 못할 사람으로 여러분을 축복하신다는 말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다스림 속에 있는, 하나님의 지배 속에 있는 부분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했는데 그게 성경에 보면 로마서 14:7~8입니다. 거기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하나님의 지배하심을 받는 가장 정확한 정의를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로다. 여러분, 이런 사람은 악한 사단이 건드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나를 다스리느냐? 여러분, 이번 주간부터 시작하십시오. 말씀 들으십시오. 말씀 듣고 말씀 읽고 계속 반복해서 말씀 들으십시오. 그래서 말씀이 내게 세뇌되도록. 여러분, 동네에서 무당이 계속 푸닥거리하면, 계속 하다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동네 전체가 흑암에 완전히 사로잡히고 완전히 정신적인 문제, 영적인 문제 다 드러나고 창녀촌이 되어 버립니다. 우리가 그러면 반대로 말하면 말씀을 계속 듣게 될 때 어떤 역사가 일어날 것인가? 빌립보서 4:13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 응답이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서 11:38입니다.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이런 응답이 우리에게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이 한 주간 만민의 기호이신 예수 그리스도,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께서 나를 다스려 주옵소서, 나를 지배해 주시옵소서, 그 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의 모든 관계된 현장에 하나님께서 마음과 생각을 변화시키고 현장을 변화시키는 역사로 나타내실 것입니다. 이 한 주간에도 여러분의 모든 현장에서 승리하는, 그리고 만민의 교회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높이는 축복된 한 주간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9년 4월 28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만민의 기호이신 예수 그리스도
(사11:10-16)
서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보다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그래서 중요하지 않은 사소한 것에 결정을 하고 인생을 걸게 됩니다. 사람이기 때문에 이런저런 많은 생각(염려, 근심)을 하게 됩니다. 많은 만남 속에서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보다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것에 대한 답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예배가 행복하면 행복한 인생이 되어집니다.
만민의 기호(기치, 깃발)이신 그리스도로 새로운 힘을 얻어야 합니다.
1. 만민의 기호이신 그리스도
가.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게 됨(사11:11)
1) 비천한 자의 후손으로 오심(일반인생과 똑같은 모습으로 오심) - 모든 사람들이 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
2) 이새의 가문 - 예수님이 태어날 당시에 완전히 몰락한 집안
3)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창1:27-28), 보시기에 심히 좋았음(창1:31)
4) 하나님 떠남으로(창3:1-6), 죄, 허물로 죽은 상태(엡2:1), 영적인 부분은 상실하고 육체가 됨(창6:3), 사단의 손에 잡힘(요8:44)
나. 한 싹으로 오신 예수님
1)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죄와 저주 가득한 가지를 베어 버리고 새로운 싹이 나도록 하심(롬11:17-18)
2) 양자의 영을 주셔서 아바 아버지라 부르는 은혜를 주심(롬8:15)
3) 열매 맺기 위해 붙어 있기만 하면 됨(요15:4-5)
4) 시냇가에 심은 나무는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게 됨(시1:3)
다. 모든 사람들이 바라 봐야 할 푯대가 예수 그리스도
1) 광야길을 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불뱀에 물려 죽게 됨(민21:5-9) - 놋뱀(그리스도)을 바라보게 될 때 살게 됨
2) 만민의 기호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3) 새생명, 구원을 얻을 유일한 비밀은 예수 그리스도(행4:12)
4) 그리스도께 돌아옴으로 회복 될 것을 약속하심(사11:11)
라. 왜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시는가? - 왕 노릇 하게 하심(사11:12)
1) 교회의 축복(마16:18) - 교회 속에 하나님 나라가 임함
2)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워 옴(막1:15), 우리 안에 하나님 나라가 임함(눅17:20-21), 우리 안에 오셔서 다스리심(요1:12), 하나님의 성전(고전3:16), 모든 나라에서 하나님 나라를 누려야 함(행1:3, 8)
3) 먼저 할 것 - 하나님의 다스림, 인도를 받아야 함(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으면 다스리는 자가 되어짐)
2. 남은 자를 돌아오게 하시는 예수님
가. 평화의 나라를 누리는 삶(사11:13)
1)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는 항상 싸움 - 복음을 누리게 될 때 미워하는 사람도 이해하게 됨
2) 예수님을 바르게 믿을 때 이기주의가 사라짐, 형제를 높이고 귀하게 여겨짐
3) 하나님과의 화평이 이루어질 때 이웃과도 화목하게 됨
4) 하나님과 화평하게 될 때 눈이 달라지게 됨(사53:5) - 복음을 누릴 때 인간관계 회복
나. 이 때부터 남은 자를 보내 주심 - 하나님이 붙이심(사60:1, 3)
다. 모든 문, 길을 열어 오게 하심(사11:16)
결론: 예수가 오늘도 길입니다. 만민의 기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나를 다스릴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다스려 주시는 능력이 최고의 능력입니다. 어려움과 질병 가운데 있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하나님이 다스릴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사11:16). 만민의 기호이신 그리스도를 붙잡게 될 때 세상이 감당 하지 못 할 사람으로 우리를 세우십니다. 이 일을 위해 말씀을 계속 들어야 됩니다.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될 때 내게 능력이 나타나게 됩니다(빌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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