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에
2019-05-05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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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5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그 날에”
(사12:1~6)
1 그 날에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는 내게 노하셨사오나 이제는 주의 진노가 돌아섰고 또 주께서 나를 안위하시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겠나이다 할 것이니라
2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3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4 그 날에 너희가 또 말하기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의 이름을 부르며 그의 행하심을 만국 중에 선포하며 그의 이름이 높다 하라
5 여호와를 찬송할 것은 극히 아름다운 일을 하셨음이니 이를 온 땅에 알게 할지어다
6 시온의 주민아 소리 높여 부르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너희 중에서 크심이니라 할 것이니라
사12:1~6
■ 우리 옆의 분들과 축복을 선언합시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만민을 위하여 기를 듭시다! 오늘 이 한날 우리가 바른 언약을 확인하고 또 우리 후대에게 꼭 전달해 줄 언약이 다시 한 번 붙잡히는 축복의 시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실 어린이주일날 어린이 주일이 주님의 주일입니다. 그런데 왜 어린이주일을 우리에게 허락하셨느냐? 특별히 우리 후대에게 없어져가는 이 언약의 역사를 바르게 전달하라고 우리에게 어린이 주일을 특별히 정해서 예배하도록 하신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가 언약 중심으로 해서 다시 한번 더 굳건히 세워지는 응답의 시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너무 우리가 힘들게, 어렵게 살아가다 보니 사실 살아가는 삶이 빡빡하고 각박합니다. 그렇다 보니 우리도 모르게 가장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들이 있는데 놓치며 잊어버리고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감격입니다. 얼마나 바쁜지 모릅니다. 사람들이 바쁘고, 또 사람들만 바쁜 게 아니라 우리 아이들까지도 바쁩니다. 여러분,몰라서 그렇지 우리 아이들을 보면 주일학교, 중고등부, 대학, 가면 갈수록 더 바쁜 것 같습니다. 여유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이번 주에 제가 집에 들어가다 보니 우리 위층에 중학교 아이가 있는데 아이가 집에 들어오는 중이었습니다. 어디 갔다가 열심히 집에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어디 갔다 오느냐고 물었습니다. PC방에 갔다온답니다. 그래서 어떻게 부모님의 허락을 받았느냐 물어보니까 일주일 내내 꽉 짜인 틀 속에, 짜인 시간표 속에 살다가 그 시간만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서 PC방에 갔다온다면서 아주 자랑스러운 듯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무엇을 말씀드리고 싶으냐 하면 우리 아이들조차도 여유가 없고 너무나 각박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 장로님이 지난 주에 차를 몰고 가다가 상대편에서 사이드미러를 스치고, 부딪치고 지나가더랍니다. 골목을 가는데 약 시속 20km, 골목이라 속도를 낼 수도 없고 천천히 지나가는데 갑자기 옆에서 차가 빠르게 슥 지나가면서 사이드미러를 치고 가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치고 한참 가더니만 차를 세워 놓고 장로님한테로 오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장로님이 그냥 창문을 열고 이야기했다는 겁니다. 백미러에 스쳤는데 그냥 가시라고, 그냥 가시라고. 차도 좋은 차입니다. 백미러 고치는 데 꽤 돈 들 것인데 그냥 가시라고. 왜냐하면 요즘 너무 각박하다 보니 언제 어떤 사고가 일어날지 모르니까요. 모르지 않습니까? 요즘 보십시오. 많은 영적 문제 있는 사람들이 결국 칼을 가지고 찌르고. 이런 문제들이 우리 현장에 일어나니까 사실은 언제 어떤 일들이 우리에게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너무 어려운 시대를 우리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만 그러냐? 예전에도 그러했습니다. 그리고 가면 갈수록 더하고 아마 오늘보다는 내일, 미래에는 더 어렵고 힘든 시대가 올 것입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 우리가 반드시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이 있다면, 우리가 항상 가지고 있어야 할 부분이 있다면 구원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와 감격입니다. 절대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도 모르게 잊지 말아야 할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감격을 너무 바쁘다는 핑계 속에서 잊어버리고 살아가기 때문에 거기서 모든 환경에도 문제 오고 사람 간계에도 문제 오고 모든 문제가 다 문제로 보이면서 오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사야 12장을 저와 여러분이 1절에서 6절을 읽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감격을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특히 1장부터 11장까지 계속 죽 이어져 오면서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함께 구원의 역사를 계속 말씀하시다가 오늘 마지막 12장에서 한 장 전체, 그렇게 긴 말씀은 아닙니다만 한 장 전체를 통해서 결국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심판이 아니라 구원이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특별히 예배하는 가운데서 이사야 12장의 이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감격이 우리 모두에게 회복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넘쳐야 할 구원의 감격
여러분, 먼저 첫 번째로 넘쳐야 할 구원의 감격입니다. 넘쳐야 할 구원의 감격입니다. 1절부터 한번 보실까요? “그 날에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는 내게 노하셨사오나 이제는 주의 진노가 돌아섰고 또 주께서 나를 안위하시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겠나이다 할 것이니라.” 여기 주의 진노가 돌아섰다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성경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진노하셨다고 말씀하실 때 언제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에게 진노하셨는가?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고 우상숭배 속에 빠지게 될 때에, 그때그때마다 하나님은 진노하셨다는 사실을 성경 곳곳에서 계속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특별히 오늘 새벽에도 우리가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만 사사기 2:10에 보면 여호수아가 죽은 이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수아가 행한 일들을 알지 못하고, 또 하나님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했습니다. 후대에게 바르게 언약이 전달되지 않았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그러면서 11절부터 15절에 보면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이 전달되지 않으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어디에 빠지게 되느냐? 우상숭배에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심지어 주변에 있는 나라들이 믿고 있는 신들에게도 절을 하게 되는 우상숭배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니까 그에 따른 결과가 뭐냐? 하나님이 택한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을 그 대적들에게 노략질 당하게 하셨다, 또 대적들에게 팔리게 하셨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이스라엘 백성이 재앙 받게 되고 성경에 보면 결국은 그것이 진노하심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겨야 할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고 우상숭배에 빠지니까 하나님은 진노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이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그 노하심에서, 진노에서 돌아섰다 말씀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진노하심에서 돌아섰다는 말은 바로 회복되었다는 말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언제? 그 날에. 이 그 날, 1절에 “그 날에”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러면 이 그 날은 무엇을 말하느냐? 예수가 그리스도로 오시는 날.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그 은혜와 그 축복을 회복하는 그 날에 진노에서 돌아섰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붙잡는 순간에 우리의 모든 진노가 끝난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습니다. 창세기 1:27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다는 말은 하나님의 다스림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며 살도록 지음 받았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다스림과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누리게 될 때 거기서 오는 응답이 창세기 1:28에 보면 정복하고 다스리는 응답을 주신다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고 의지하고 순종하게 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만물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지난 주간에 우리가 살펴보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게 될 때, 하나님의 다스림 속에 들어가게 될 때,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안에 임하게 될 때, 우리는 그때 비로소 세상 현장을 정복하게 되어 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다스림 속에 내 인생이 들어가게 될 때 하나님이 내게 주신 축복은 만물을 향해서 정복하고 다스리도록 축복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결국은 인생이 타락하게 되어서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해서 하나님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창세기 2:17에 말씀을 주셨는데 결국은 인간이 이 말씀에 불순종해서 하나님을 떠나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2:17이 우리 인간 속에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반드시 죽으리라, 이 말씀이 우리에게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죽음이란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결국은 하나님과의 단절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니까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인생은 자기도 원치 않게 마귀의 종이 되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악한 사단 마귀가 우리 인생을 무엇을 가지고 장악하고 있느냐? 죄를 가지고 우리 인생을 장악하고 있고 사망, 죽음을 가지고 우리 인생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요한일서 3:8에 보면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악한 사단이 우리 인생을 장악하는 그것이 바로 죄를 가지고 장악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로마서 6:23에 보면 “죄의 삯은 사망이요.” 죄의 대가가 무엇이라 했습니까? 사망, 곧 죽음이요 고통인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악한 사단, 요한복음 16:11에 보면 “세상 임금”이라고 말씀하고 있고 또 고린도후서 4:4에 보면 “세상의 신”이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악한 사단이 죄를 가지고 우리 인생이 죄의 종노릇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도록 장악하고 있습니다. 또 한 가지는 사망을 가지고 우리 인생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2:14에 보면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했습니다. 여기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뭐라고요? 마귀를 멸하셨다 했습니다. 죽음의 권세 잡은 자가 누구라고요? 사단, 마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악한 사단, 세상 임금, 세상 신 사단이 우리 인생을 죄로 장악하고 있고 사망을 가지고 장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죄의 본질이 무엇이냐? 결국은 나 중심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죄의 본질이 뭐냐? 세상과 육신 중심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죄의 본질이 뭐냐? 결국 성공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게 죄의 본질입니다. 창세기 3장과 6장과 11장, 그게 죄의 본질입니다. 그 결과로 오는 것이, 결국 인생은 멸망 받고 진노가 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2:1~3에 하나님을 떠난 인생의 영적인 상태를 말씀하고 있는데 에베소서 2:1에 보면 “허물과 죄로 죽었던”이라고 말씀하고 있고 죄와 허물로 우리 인생이 죽게 되니까 살아가는 삶이 에베소서 2:2에 보면 “세상 풍조를 따르고” 했습니다. 세상 풍속은 결국 그 배경을 사단이 붙잡고 있는 것인데 점하고 굿하고 제사 지내고 고사 지내고 사주팔자, 운명에 매여 사는 삶입니다. 그게 세상 풍속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오는 것이 뭐냐? 에베소서 2:3에 보면 결국은 진노가 머리 위해 임하여 있는 것입니다. 여기 “본질상 진노의 자녀”란 말이 무슨 말이냐? 진노가 우리 각 사람 머리 위해 임하여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언제 진노가 떨어질지 모르는 것입니다. 언제 진노가 우리에게 임할지 모르는 그런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결국은 하나님을 떠난 데서 온 문제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악한 사단이 우리 인생을 붙잡고 있으니까, 죄와 사망으로 붙잡고 있으니까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 온갖 고생 다 하다가 결국은 진노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 저와 여러분, 우리 인생이라는 사실을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냥 여기에 우리 자신을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길을 여셨습니다. 로마서 5:8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할렐루야! 하나님이 우리에게 사랑한다는 그 사랑을 확증해주셨는데 우리를 위해서 그리스도를 주시고 그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다고 말씀했습니다. 그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요한복음 19:30에 “다 이루었다” 말씀했습니다. 저와 여러분, 죄로 인한 저주와 재앙, 이 땅에 반드시 임할 진노 가운데 살아가는데 살아가는 만큼 진노를 쌓고 있습니다. 그게 로마서 1장에,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모습을 로마서 1장에서 적나라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진노를 쌓는도다 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모든 인생은 진노를 쌓고 살아가는데 그 모든 죄로 인한 저주와 재앙, 진노를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다 끝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9:30에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으로 다 이루셨느냐? 히브리서 9:12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무슨 말입니까?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참 제사장으로서 우리의 모든 죄를 다 끝냈다는 말입니다.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다, 참 제사장이신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10:19~20에 보면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참 선지자가 되셔서 하나님을 떠난 우리 인생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없는데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새로운 살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참 선지자로서.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참 왕으로 오셔서 사단의 머리를 깨뜨려버리셨는데 히브리서 2:14에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마귀를 멸하시며. 사단의 머리를 깨뜨려버린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참 제사장으로, 참 선지자로, 참 왕으로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우리의 모든 죄로 인한 저주와 재앙, 진노의 문제를 다 끝내신 것입니다. 어느 누구든지 우리의 모습 그대로를 가지고 주님 앞으로 나아가면 됩니다. 우리에게 있는 모든 것들을 가지고 우리가 해결하려고 하면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 우리 자신들이 죄인이지 않습니까? 로마서 3:10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로마서 3:23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했습니다. 내가 죄가 없다면 내가 해결하면 되는데 우리 모두가 죄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또 주님께서 만약에 야, 너 그 모든 죄의 문제를 누구에게 맡기고 내게 오라 하면 아무도 하나님께 나아갈 자가 없습니다. 왜냐? 그 누구도 의인은 없기 때문에, 죄 없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모두가 죄인이기 때문에 누구에게 맡기고 오라 하면 아무도 나아갈 자가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냥 우리에게 오라고 얘기하고 계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말씀했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모습 그대로를 가지고 주님 앞에 나아오기를 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때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 여러분, 성경에 보면 시편 103:12에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할렐루야! 우리가 주님께 우리의 모습 그대로를 가지고 나아가면 우리의 모든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일서 1:9에도 보면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모든 죄를 사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가 우리에게 있는 모습 그대로를 가지고 주님 앞에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그리스도 보고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실 것입니다. 그리스도 보고 죄로 인한 저주와 재앙, 진노에서 우리를 벗어나게 하실 것입니다. 오늘 이 축복의 역사를 회복하는 축복된 응답이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가 그리스도 그 이름 불렀는데 내 마음에 참된 평안이 있고 쉼이 있다면 오늘 1절에서 말하는 그 날이 우리에게 성취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진노에서 돌아섰습니다. 구원 받은 자들은 진노에서 돌아섰습니다. 그리고 참된 쉼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참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여러분이 쉼을 누리는, 진노에서 해방되는 응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서 오늘 본문에 보면 그 정도가 아닙니다. 안위하신다고 말씀했습니다. “이제는 주의 진노가 돌아섰고 또 주께서 나를 안위하시오니.” 여기 안위라는 말이 무엇일까요? 사전적인 의미는 몸을 편하게 하고 마음을 위로하는 것을 가지고 안위라고 이야기합니다. 다시 말하면 안위라는 말은 위로하심입니다. 우리에게 주님께서 우리를 다스리시니까 쉼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여러 가지 문제와 사건을 당한다 할지라도 그 속에서 그때그때마다 하나님의 위로하심이 우리에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언제까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위로하시느냐? 마태복음 28:18~20에 보면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말씀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세상 끝날까지 우리의 위로자 되시는 성령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면서 문제와 사건과 어려움 속에서 또 우리에게 힘을 주시고 위로하시고 우리에게 승리토록 하신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안에 있는 옛것을 제해버리고 새것을 가지게 했다면 거기서 끝나면 안 됩니다. 늘 항상 새것으로 함께해야 합니다. 왜냐? 옛것을 제해버리고 새것으로 채우지 않으면 옛것이 더 심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게 마태복음 12:43~45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그 본문은 무엇을 말합니까? 종교인들이 나름대로 열심히 해서 수고하고 그래서 수리하고 청소하고 깨끗하게 한다고 나름대로 몸부림치는데 더 강한 귀신 일곱이 들어온다 했습니다. 옛것을 제거했는데 새것으로 채워지지 않으니까 옛것이 더 심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새것을 채워주셨습니다. 그게 뭐냐? 또 다른 보혜사를 주사. 우리 속에 우리와 함께 영원히 함께 하시겠다 약속했습니다. 그게 바로 성령으로 우리를 위로하심이십니다.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신 것입니다. 그게 바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성령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7:11에 보면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여러분, 부모가 자녀에게 좋은 것 주지 않습니까? 그러면 하물며 천국에, 하나님 나라에 계신 아버지께서, 보좌에 계신 그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지 않겠느냐,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그 본문을 똑같이 누가복음 11:13에서 똑같이 말씀하면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말씀했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이 뭐냐? 성령입니다.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시사 우리를 위로하시고 언제까지? 세상 끝날까지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위로하시는 것으로 우리에게 축복하시게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리스도를 붙잡았다, 그리스도를 우리 마음에 모셨다, 다 가진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성령께서 내 안에 거주하기 때문에. 왜 성령께서 내 안에 거주하시느냐? 나를 인도하시기 때문에, 나를 인도하시기 위해서. 왜 성령께서 내 안에 거하시느냐? 내가 기도할 때마다 역사하시기 위해서 내 안에 거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리스도를 모셨다는 것은 모든 것 다 가진 것입니다. 한번 따라합시다. 나는! 다 받았다! 로마서 8:32입니다.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그 아들과 함께 무엇을요? 모든 것을 주시기 않겠느냐?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우리 신앙 생활은 뭐냐? 그리스도와 함께 모든 것 가진 내가 그 축복을 누리는 것이 바로 신앙 생활입니다. 뭔가 달라 하고, 어렵고 힘들어서 뭔가 하나님 앞에 요구하고 달라 하고, 그게 아닙니다. 이미 주신 구원, 그 은혜에 대한 감사와 감격, 그 축복을 누리는 것이 바로 신앙 생활이라는 사실입니다. 종교인들은 내가 이렇게 하면 이런 복을 받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내가 뭔가 축복을 받겠지, 이런 마음을 가지고 종교 생활을 합니다. 그래서 열심히 선도 행하고 노력도 하고 착하게 살려고 몸부림도 칩니다. 그것은 바로 종교 생활하는 사람들의 삶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그 사실을 누리면 됩니다. 다 가진 것입니다, 사실은. 우리의 헌신은 뭐냐? 하나님께 뭔가 축복을 받아내기 위해서 헌신하는 것이 아니라 다 가졌기 때문에 그 은혜에 대해서 감사해서, 감격해서 교사도 하는 것이고 찬양대 대원으로 활동도 하는 것이고 교회를 위해서 헌신도 하는 것입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 하나님은 이미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가지고 우리 안에 들어오셨습니다. 그해서 우리에게 부족함이 없고 모자람이 없는 완벽한 축복 가운데 저와 여러분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특별히 그 하나님의 은혜가 날마다 날마다 우리의 현장에서 걸음걸음마다 안위하심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를 위로하시고 우리를 인도해나가시는 역사로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감격입니다. 그러면서 2절에 보십시오. 한 걸음 더 나아가 더 크게 기뻐하고 감사해야 할 것을 말하고 있는데 여기 2절에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여러분, 성령에서 “보라”라고 할 때는 강조하는 것입니다. 1절보다 2절을 강조하고 있는데 여기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 하나님의 이름이 구원의 이름입니다. 구원자라는 이름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그리스도도 이 땅에 왜 오셨느냐?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21에 보면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구원자의 이름으로 오셨는데, 바로 구원 때문에 이 땅에 오셨는데 왜? 모든 사람이 멸망 상태에 있기 때문에. 멸망 상태에 있다고 했을 때 그 멸망의 상태는 무엇을 말합니까? 세상 풍속을 좇아가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에서 말씀하는 것처럼. 그리고 결국은 사도행전 10:38에 있는 말씀처럼 모든 사람이 “마귀에게 눌린” 것입니다. 그게 바로 멸망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 구원자를 주시고 그 구원받은 자에게 주신 그 구원의 상태가 어떤 상태인가를 오늘 본문 2절에서 말씀하고 있는데 2절에 보면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여러분, 구원 받은 자의 상태는 무엇이냐? 두려움이 없는 것입니다. 왜냐? 멸망 받을 진노에서 빠져나왔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두려움이 없는 것입니다. 죄로 인한 멸망의 상태가 해결되었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두려움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일서 4:18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했습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했는데 그러면 그 사랑은 무엇을 말합니까? 바로 요한일서 4:16에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말씀했습니다. 그 사랑 안에 있을 때에 두려움이 없다 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증거 중의 증거는 마음의 평안함이지, 두려움이 아닙니다. 모든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두려움에서 내어 쫓는다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시편 3:6에 보면 다윗이 고백했습니다.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 진짜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모시는 자는,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아무리 우리를 악한 사단이 둘러 진친다 할지라도 그 속에서 누릴 수 있는 것이 바로 두려움이 없는 것입니다. 시편 23:4에도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참된 두려움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해결되는 그 축복을 누리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서 그 다음에 이어서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말씀했습니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했습니다. 여러분, 정말로 여러분 자신에게 진짜 무엇이 여러분의 힘입니까? 오늘 본문에 이사야 선지자는 주 여호와가 나의 힘이라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세상에서는 힘이 있어야 살아간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적자생존, 약육강식, 이런 말들이 나왔지 않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세상에서는 힘 있는 자가 살아간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게 아닙니다. 여호와가 나의 힘이 되어야 우리의 진정한 승리의 축복이 이루어집니다. 내게 있어서 진정한 힘이 무엇입니까? 여호와가 나의 힘이 되어야 합니다. 여호와가 나의 힘이 되기 위해서는 내 힘을 빼버려야 합니다. 내 힘을 빼버려야 합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4:13에 바울이 고백했습니다. 바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여기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여기에 대한 강조가 아닙니다. 그 앞에 나와 있는 우리의 현주소를 말하고 있는데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 있기 때문에. 능력이 진짜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힘을 빼버려야 한다는 것. 이사야 40:31에도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말씀했습니다. 우리 신앙 생활에 여호와가 나의 힘이 되는, 정말 우리 모든 것을 내어 놓는, 그런 축복이 우리에게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때 우리에게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감격이 늘 넘쳐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운동도 그렇지 않습니까? 운동의 가장 기본이 힘 빼는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골프 치는 사람들, 힘 빠지는데 3년 걸린다고 합니다. 여러분, 수영하는 사람들도 자기 힘을 빼야 몸이 뜬다고 이야기합니다. 저는 제가 교만해서 힘을 빼지 않아서 수영을 못합니다. 수영만 하면 물에 가라앉습니다. 이유를 알았습니다. 내가 힘을 내는구나, 힘 빼면 몸이 그냥 뜨게 되어 있는데 힘을 내기 때문에 빠진다고 이야기합니다. 모든 운동이 힘 빠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세상 적으로 말하는 그런 힘을 빼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나의 힘이기 때문에, 오늘 여호와가 나의 힘이기 때문에 우리의 힘이 없어도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힘을 내가 이용하려고 하지 마시고 정말로 여호와가 나의 힘 되심을 날마다 날마다 여러분의 삶 속에서 고백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 때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감격이 날마다 우리에게 넘쳐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서 마지막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감격을 말하면서 오늘 본문에 보면 3절에 바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성경에 우물에 대한, 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길을 가는 동안 가장 생명처럼 중요한 것이 물입니다. 생명처럼 여겼습니다. 그래서 구약에 물에 대한, 우물에 대한 부분이 나올 때 구원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롯이 갈라지게 되는데 아브라함의 종들과 조카 롯의 종들이 왜 싸우게 되었느냐? 우물 때문입니다. 또 이삭과 리브가, 맞이하게 될 때 우물과 관계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삭이 결국은 샘을 팠는데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샘의 근원을 얻었다 말씀했습니다. 또 모세와 십보라의 만남도 우물과 관계되어 있습니다. 이 우물은, 성경에 나오는 우물은 전부 다 구원과 관계되어 있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2:13에 보면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두 가지 죄가 있다고 이야기했는데 두 가지 죄악이 뭐냐 하면 첫 번째로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이라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이라 했습니다.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라 이야기하면서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이라 말했습니다. 이 두 가지 악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하나님 앞에서의 악이라 했습니다. 바로 생수의 근원 되는 나를 버린 것과.
그렇습니다. 여기 구원의 우물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사야 55:1에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했습니다. 오늘도 주님께서 우리에게 오라고 말씀했습니다. 돈 없는 자도 오라고 말씀했습니다. 그 어느 누구도 다 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4장에 보면 수가성 여인이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밤에 물을 길러 나갔습니다. 그때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그 여인을 만나서 그 인생의 영혼의 갈함을 해갈되게 하셨습니다. 우리 인생의 영혼의 갈함이 무엇입니까? 인생의 영혼의 해갈이 무엇입니까? 인생의 답을 얻었다는 말입니다. 그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이 수가성 여인이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달려 들어가서 그리스도를 이야기하면서 와 보라 이야기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바로 인생의 답을 얻었다는 말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수가성 여인,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씀하신 부분입니다. 요한복음 4:13에 보면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할렐루야! 그리스도는 완벽하게 우리 인생의 목마름을 다 해결하신 것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우리 인생의 목마름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결국은 더 목마를 뿐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는 완벽하게 우리 인생의 모든 목마름을 다 해결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리스도 만나고 누리면 방황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만나고 누리면 우리가 갈등하지 않고 우리가 헷갈리지 않고 우리가 목마르지 않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그리스도, 우리 속에서 영생하도록 샘물로 솟아나는 그 그리스도를 누리는 귀한 축복이 오늘부터 시작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전해야 할 구원의 감격
두 번째입니다. 반드시 전해야 할 구원의 감격입니다. 오늘 4절부터 6절에 말씀하고 있는데 4절에 보면 “그 날에 너희가 또 말하기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의 이름을 부르며 그의 행하심을 만국 중에 선포하며 그의 이름이 높다 하라.” 그의 이름을 부르며 그의 행하심을 만국 중에 선포하며 그의 이름이 높다 하라, 무슨 말입니까? 이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감격을 전하라는 말입니다. 쉽게 말하면 전도, 선교, 세계복음화, 여기에 방향을 맞추고 살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다, 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절대 문제, 인생의 열두 가지 문제를 해결 받은 그 이름 그리스도, 그 이름을 진짜 안다면 말하게 되어 있습니다. 진짜 체험해서 누린다면 말하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이사야 12장은 이것을 지식적으로, 형식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사실적으로 체험하고 감사와 감격을 회복하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진짜 안다면 말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보십시오. 우리 단체에서 지금 전 세계를 향해서 매주 목사님들이 40명, 50명씩 전 세계 현장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이게 그냥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매주 해외 현장에 나가는 목사님들의 보고가 올라옵니다. 목사님들과 또 성도들이 같이 팀이 되어서 나가기도 하고 거기 보면 전 세계를 향해서, 237 나라를 향해서 목사님들이 매주 나가고 있습니다. 또 우리 교회도 보십시오. 매주 전도캠프와 함께 모든 현장 속에, 또 선교 현장 속에 팀이 되어서 기도하면서 또 선교 현장에 들어가서 인도 받고 있고 지난 주에 다민족 헌신예배를 드렸습니다만 헌신예배 인도 받으면서도 교회 안에 다민족 사역자들이 많이 일어나야 하겠구나, 구석구석에 다민족 가운데 불신자들을 찾아서 제자 세우고 그들 가운데 중직자, 목회자를 세우기 위해서는 많은 제자들이 일어나야 하겠구나, 그 기도제목을 새롭게 붙잡았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오늘 본문에 나오는 것처럼 그 이름을 부르며 그의 행하심을 만국 중에 선포하며 그 이름을 높다 하라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전 세계 현장을 향해서 나가라 이 말입니다. 특별히 무엇보다도 우리의 선교 현장을 두고 기도해 주시고 더욱이 또 한 가지는 여러분, 정말로 우리 후대에게도 그의 이름이 높다 하라, 그리스도 그 이름의 비밀, 그 이름의 가치,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가치, 그것을 전달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해외현장도 해외 현장이지만 우리 자녀들에게도, 우리 후대들에게도 다른 것 이전에 가장 중요한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감격, 그리고 그의 이름을 높일 수밖에 없는 그 축복의 역사를 붙잡을 수 있도록 우리 후대들에게 전달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데 돌을 들어서도 소리를 지르게 하겠다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다른 사람을 통해서 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서 이 일에 쓰임 받도록 우리를 축복하셨습니다. 에스겔 36:22~23을 보십시오. 우리가 그의 이름을 높이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 하나님 당신이 그 이름을 친히 나타내시겠다 말씀하셨는데 에스겔 36:22 같이 한번 읽어볼까요?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니요 너희가 들어간 그 여러 나라에서 더럽힌 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함이라.” 나의 큰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할지라 나의 큰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하겠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신다는 사실이에요 여러분 우리가 이름을 말하지 않고 높이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하나님 이름을 높이실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로 말미암아 그 이름을 높일 수 있는 자리로 우리를 부르셨어요 높일 수 있는 남은자로 우리를 부르셨어요 입만 열면 그리스도 이름을 높이시길 바랍니다. 우리 후대들에게 이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감격 그의 이름을 높일 수 밖에 없도록 전달해야 합니다. 여러분 특별히 어린이 주일날 우리가 다른 것 붙잡지 마시고요 사사기서 2장 10절부터 15절에 나오는 부분들입니다만은 여호수아와 또 그 여호수아 후에 여호와를 아는 모든 사람이 죽게 되니깐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 숭배에 빠지고 재앙에 빠졌어요. 여호수아가 살아 있는 날 동안에는 하나님을 섬겼지만은 그렇다면은 저와 여러분이 정말 후대들이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감격 붙잡고 그의 이름을 높이는 자리로 설 수 있도록 우리가 이 언약을 바르게 전달해야 될 것입니다. 악한 사단이요 우리 후대들에게서 가장 먼저 무엇부터 빼앗아 갔느냐 복음부터 빼앗아 갔어요 그리고 또 예배와 기도를 다 빼앗아 갔어요 그리고 또 우리 후대들에게 있어서 교회당을 빼앗아 갔어요 그래서 자녀들 그래서 교회당 안오잖아요 주일학교 없는 교회가 50프로가 넘는다고 이야기해요 복음부터 사단이 먼저 빼앗아 갔고 예배와 기도를 빼앗아 갔고 예배당도 빼앗아 갔어요 그래서 가면 갈수록 이땅에 일어나는 일이 뭡니까? 어린 아이들이 여러분 우울증에 시달리고요 조울증에 시달리고요 어린아이들이 공황장애가 오고요 어린이들이 정신적인 병들을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어떤 일들이 일어납니까? 어린 아이들이 자살하고요 어린아이들이 마약에 빠지고요 어린아이들이 범죄에 들어가게 되고요 완전히 현장은 사단 시대가 되어진겁니다. 왜그렇습니까 현장에 우리 아이들이 복음 빼앗겨 버렸고 예배와 기도 빼앗겨 버렸고 교회당을 빼앗겨 버렸기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이 시대는 사단과의 영적 전쟁에 각인 시대입니다. 무엇을 우리 아이들에게 각인 하느냐 그게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 각인 시대에요. 그런데 보세요 지금 3단체는 틀린것들을 각인해가지고 우리 모든 후대들을 지금 멸망으로 후대들을 다 빼앗겨 버렸어요 회복해야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 우리가 우리 교회 우리 후대들이 237나라를 살리는 영적인 하나님의 사람들로 일어날 수 있는 그런 시스템들이 교회 안에 세워지도록 기도해야 될것입니다. 현장 나가기 전에 우리아이들이 먼저 영적 재앙을 이길 수 있는 복음부터 정리 되어지도록 그리고 세상 속에 나가서 세상을 이기고도 남을 수 있는 세상의 지식도 전문성있게 준비 되어질 수 있도록 그리고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뭔가 모르는 사상을 담을 수 있도록 우리 아이들에게 준비 시켜 나가도록 해야 될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여러분이 기도해야 해요 또 특별히 많은 우리 현장에 병든 사람들이 나돌아 다니고 있어요 그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지금 문제들 보고 있잖아요 그 질병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교회와서 치유받고 힘을 얻고 살아 날수 있도록 또 그 뿐만 아닙니다. 237 나라를 살리는 그런 우리 렘넌트들이 일어나고 우리 성도들이 일어날 수 있도록 그런 시스템들이 교회 안에 이루어져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 단순히 건물 이야기 하는 것이아닙니다. 우리 아이들이 후대들이 정말 언약 붙잡고 그것을 손에 붙잡고 현장을 향해서 나아갈 수 있도록 참 감사한건요 우리 장로님 한분이 우리 렘넌트들 대상으로 해가지고 하나 교회가 생각하는 하나 RUTC가 무엇일까 설문 조사를 했데요 그런데 그 설문 조사를 하고 나서 너무 기뻐하지고 장로님이 저한테 보고를 했어요 첫 번째가 뭐냐 우리 렘넌트들이 기도 할 수 있는 한 사람 한사람이 들어가서 기도할 수 있는 홀이 있었으면 좋겠다 제가 그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라면서 기쁘고 감사했어요. 아 우리 아이들이 바르게 메시지 흐름을 인도 받고 있구나 그러면서 여러 가지 있는데 그 중에 우리아이들이 마음껏 작품 활동 할 수 있는 연극장도 있고 뭔가 미디어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룸도 있고 이런 부분들을 이야기 했다고 이야기해요 가장 중요한 우리아이들이 기도할 수 있는 공간들이 교회 안에 우리 렘넌트들이 기도 할 수 있는 어른이 아니고 렘넌트들의 이야기입니다. 렘넌트들이 기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진짜 우리 아이들이 세상 나가기 전에 영적인 부분들에 힘을 가지고 나갈수 있도록 그리고 교회 와서 뒹굴고요 먹고 자고 하면서 진짜 그 무엇보다 복음부터 영적 재앙의 문제를 이길 수 있는 복음부터 정리되어지고 세상을 이길 수 있는 전문성과 뭔가 모르는 사상들이 담겨져서 세상 현장을 나갈수 있도록 그 일에 심부름 한다면 은 하나님 앞에서 가장 귀중한 것이 될 것이 아닌가 오늘 본문에 보세요 다시 읽습니다. “그의 이름을 부르며 그의 행하심을 만국중에 선포하며 그의 이름을 높다 하라” 우리 세계 열방 가운데도 증거해야 되지만은 우리 교회안에 후대들에게도 주의 이름을 높일 수 있는 우리 후대들이 일어날 수 있도록 이 일에 수고하고 헌신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에 5절에 보면 “여호와를 찬송할 것은 극히 아름다운 일을 행하셨음이라” 여기에 아름다운 일을 행하셨다 무슨말입니까? 일차적으로 유다가 앗수르에서 해방된 것을 말해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는데 앗수르왕 산헤림이 유다를 공격해 왔잖아요 18만 5천 군사를 데리고. 그때 히스기야 왕이 수단 방법 동원하다가 하나님 앞에 편지 내놓고 기도하기 시작했어요 그때 도저히 이해도 안되는 일이 일어났는데 18만 5천 군사가 그날 밤에 송장 되어 버렸어요 어려분 어렵고 여러분이 해결 할 수 없는 문제가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 기도함으로 나가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그러면서 또 여기에 아름다운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한시대 현장 237 나라를 살릴 수 있도록 그리스도, 하나님 나라, 오직 성령을 허락 하신 것입니다. 이게 아름다운 일이에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3저주를 해결하시고요 이땅에 흑암 나라기 때문에 승리 할 수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약속 하셨고요 악령의 역사가 모든 사람을 사로잡고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성령 충만함을 허락하셨어요 이것이 하나님 우리에게 행하신 아름다운 일입니다. 이 아름다운 일 그리스도 하나님나라 오직 성령의 역사를 누리면 누리는 만큼 말하게 되어 있어요. 체험하는 만큼 말하게 되어 있어요. 이 일에 증인 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상에 돈가진 사람은 돈이 다라고 얘기합니다. 정말로 돈이 모든 것입니까 돈이 우리 인생의 문제를 다 해결 할 수 있습니까 아무리 세상에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인생에 있어서 절대 해결 할수 없는 문제가 있어요 그것은 구원과 함께 구원의 감사와 감격함은 그 어느 누구도 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특빌히 이번 한주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의 감사와 감격 회복함으로 모든 삶에 현장에 승리하는 귀한 축복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9년 5월 5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그 날에
(사12:1-6)
서론: 이사야는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에 대한 심판과 구원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사1-11장). 결론적으로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을 말씀하고 있습니다(사12장).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심판이 아니라 구원입니다.
그 날은 예수가 그리스도로 오시는 날입니다. 주의 은혜와 능력이 나타나는 날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사12장에 나오는 은혜가 회복 되어야 합니다.
1. 넘쳐야 할 구원의 감격
가. 감사의 이유(사12:1) - 전에는 내게 노하셨으나 이제는 주의 진노가 돌아섰음
1) 당연히 하나님을 섬겨야 되는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숭배 함으로 하나님의 진노가 임함(삿2:10-15)
2)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창1:27),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림(창1:28) - 하나님을 의지, 순종, 섬기는 존재
3) 사단(요16:11, 고후4:4)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떠남(창2:17) - 하나님과 단절됨
4) 죄와 사망으로 통치(요일3:8), 죄의 댓가는 죽음(롬6:23), 사망으로 모든 사람을 붙잡고 있음(히2:14)
5) 죄의 본질 - 자기 주장(창3장), 육신, 물질 중심(창6장), 성공중심(창11장)
6) 그리스도를 보내주심(롬5:8) -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요19:30, 히9:12-15, 히10:19-20, 히2:14)
나. 그리스도를 통해 안위하심을 주심 - 마음을 편하게 하고 위로하심
1) 사랑하는 증표로 안위하심 - 성령께서 우리 속에 계셔서 안위하심
2)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심(마28:18-20), 옛 것을 버리고 새 것으로 채워 주어야 함(마12:43-45), 성령의 역사로 안위함을 주심(요14:16-17, 눅11:13)
3) 그리스도와 함께 모든 것을 다 주심(요5:24) - 받은 것이 감사하기 때문에 헌신, 봉사
다. 하나님은 나의 구원
1) 구원 때문에 그리스도를 보내주심(마1:21)
2) 구원 받은 자의 상태 - 두려움이 없음(요일4:18-19, 시23:4), 여호와는 나의 힘(능력과 은혜를 주심 - 빌4:13, 사40:31)
라. 구원의 감사와 기쁨이 날마다 항상 넘쳐야 함
1) 우물 - 생명, 구원
2) 구원의 우물 - 생수의 근원 되신 그리스도(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 인생의 목마름을 해결)
2. 전해야 할 구원의 감격
가. 이 사실을 온 땅에 알게 해야 함
1)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생의 문제를 해결 하심
2) 그리스도 이름을 높이지 않으면 내가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심(겔36:22-23) -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
3) 후대들에게 언약을 전달(구원의 감사와 감격) - 후대를 살리는 영적시스템, 각인전쟁시대(하나 RUTC)
나. 아름다운 일을 하셨으니(사12:5)
1) 유다가 앗수르에서 해방 되는 것 - 해결 할 수 없는 문제 앞에 하나님을 바라봄
2) 영원히 승리할 수 있는 언약을 주심 - 그리스도, 하나님 나라, 오직 성령
결론: 이 땅에는 그리스도가 필요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나라가 임해야 합니다. 악령의 역사가 세상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하나님 나라, 오직 성령을 약속 하셨습니다. 이 언약 붙잡고 구원의 감격 속에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그 날에”
(사12:1~6)
1 그 날에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는 내게 노하셨사오나 이제는 주의 진노가 돌아섰고 또 주께서 나를 안위하시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겠나이다 할 것이니라
2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3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4 그 날에 너희가 또 말하기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의 이름을 부르며 그의 행하심을 만국 중에 선포하며 그의 이름이 높다 하라
5 여호와를 찬송할 것은 극히 아름다운 일을 하셨음이니 이를 온 땅에 알게 할지어다
6 시온의 주민아 소리 높여 부르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너희 중에서 크심이니라 할 것이니라
사12:1~6
■ 우리 옆의 분들과 축복을 선언합시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만민을 위하여 기를 듭시다! 오늘 이 한날 우리가 바른 언약을 확인하고 또 우리 후대에게 꼭 전달해 줄 언약이 다시 한 번 붙잡히는 축복의 시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실 어린이주일날 어린이 주일이 주님의 주일입니다. 그런데 왜 어린이주일을 우리에게 허락하셨느냐? 특별히 우리 후대에게 없어져가는 이 언약의 역사를 바르게 전달하라고 우리에게 어린이 주일을 특별히 정해서 예배하도록 하신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가 언약 중심으로 해서 다시 한번 더 굳건히 세워지는 응답의 시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너무 우리가 힘들게, 어렵게 살아가다 보니 사실 살아가는 삶이 빡빡하고 각박합니다. 그렇다 보니 우리도 모르게 가장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들이 있는데 놓치며 잊어버리고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감격입니다. 얼마나 바쁜지 모릅니다. 사람들이 바쁘고, 또 사람들만 바쁜 게 아니라 우리 아이들까지도 바쁩니다. 여러분,몰라서 그렇지 우리 아이들을 보면 주일학교, 중고등부, 대학, 가면 갈수록 더 바쁜 것 같습니다. 여유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이번 주에 제가 집에 들어가다 보니 우리 위층에 중학교 아이가 있는데 아이가 집에 들어오는 중이었습니다. 어디 갔다가 열심히 집에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어디 갔다 오느냐고 물었습니다. PC방에 갔다온답니다. 그래서 어떻게 부모님의 허락을 받았느냐 물어보니까 일주일 내내 꽉 짜인 틀 속에, 짜인 시간표 속에 살다가 그 시간만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서 PC방에 갔다온다면서 아주 자랑스러운 듯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무엇을 말씀드리고 싶으냐 하면 우리 아이들조차도 여유가 없고 너무나 각박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 장로님이 지난 주에 차를 몰고 가다가 상대편에서 사이드미러를 스치고, 부딪치고 지나가더랍니다. 골목을 가는데 약 시속 20km, 골목이라 속도를 낼 수도 없고 천천히 지나가는데 갑자기 옆에서 차가 빠르게 슥 지나가면서 사이드미러를 치고 가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치고 한참 가더니만 차를 세워 놓고 장로님한테로 오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장로님이 그냥 창문을 열고 이야기했다는 겁니다. 백미러에 스쳤는데 그냥 가시라고, 그냥 가시라고. 차도 좋은 차입니다. 백미러 고치는 데 꽤 돈 들 것인데 그냥 가시라고. 왜냐하면 요즘 너무 각박하다 보니 언제 어떤 사고가 일어날지 모르니까요. 모르지 않습니까? 요즘 보십시오. 많은 영적 문제 있는 사람들이 결국 칼을 가지고 찌르고. 이런 문제들이 우리 현장에 일어나니까 사실은 언제 어떤 일들이 우리에게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너무 어려운 시대를 우리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만 그러냐? 예전에도 그러했습니다. 그리고 가면 갈수록 더하고 아마 오늘보다는 내일, 미래에는 더 어렵고 힘든 시대가 올 것입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 우리가 반드시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이 있다면, 우리가 항상 가지고 있어야 할 부분이 있다면 구원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와 감격입니다. 절대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도 모르게 잊지 말아야 할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감격을 너무 바쁘다는 핑계 속에서 잊어버리고 살아가기 때문에 거기서 모든 환경에도 문제 오고 사람 간계에도 문제 오고 모든 문제가 다 문제로 보이면서 오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사야 12장을 저와 여러분이 1절에서 6절을 읽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감격을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특히 1장부터 11장까지 계속 죽 이어져 오면서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함께 구원의 역사를 계속 말씀하시다가 오늘 마지막 12장에서 한 장 전체, 그렇게 긴 말씀은 아닙니다만 한 장 전체를 통해서 결국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심판이 아니라 구원이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특별히 예배하는 가운데서 이사야 12장의 이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감격이 우리 모두에게 회복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넘쳐야 할 구원의 감격
여러분, 먼저 첫 번째로 넘쳐야 할 구원의 감격입니다. 넘쳐야 할 구원의 감격입니다. 1절부터 한번 보실까요? “그 날에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는 내게 노하셨사오나 이제는 주의 진노가 돌아섰고 또 주께서 나를 안위하시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겠나이다 할 것이니라.” 여기 주의 진노가 돌아섰다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성경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진노하셨다고 말씀하실 때 언제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에게 진노하셨는가?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고 우상숭배 속에 빠지게 될 때에, 그때그때마다 하나님은 진노하셨다는 사실을 성경 곳곳에서 계속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특별히 오늘 새벽에도 우리가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만 사사기 2:10에 보면 여호수아가 죽은 이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수아가 행한 일들을 알지 못하고, 또 하나님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했습니다. 후대에게 바르게 언약이 전달되지 않았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그러면서 11절부터 15절에 보면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이 전달되지 않으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어디에 빠지게 되느냐? 우상숭배에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심지어 주변에 있는 나라들이 믿고 있는 신들에게도 절을 하게 되는 우상숭배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니까 그에 따른 결과가 뭐냐? 하나님이 택한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을 그 대적들에게 노략질 당하게 하셨다, 또 대적들에게 팔리게 하셨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이스라엘 백성이 재앙 받게 되고 성경에 보면 결국은 그것이 진노하심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겨야 할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고 우상숭배에 빠지니까 하나님은 진노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이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그 노하심에서, 진노에서 돌아섰다 말씀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진노하심에서 돌아섰다는 말은 바로 회복되었다는 말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언제? 그 날에. 이 그 날, 1절에 “그 날에”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러면 이 그 날은 무엇을 말하느냐? 예수가 그리스도로 오시는 날.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그 은혜와 그 축복을 회복하는 그 날에 진노에서 돌아섰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붙잡는 순간에 우리의 모든 진노가 끝난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습니다. 창세기 1:27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다는 말은 하나님의 다스림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며 살도록 지음 받았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다스림과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누리게 될 때 거기서 오는 응답이 창세기 1:28에 보면 정복하고 다스리는 응답을 주신다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고 의지하고 순종하게 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만물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지난 주간에 우리가 살펴보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게 될 때, 하나님의 다스림 속에 들어가게 될 때,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안에 임하게 될 때, 우리는 그때 비로소 세상 현장을 정복하게 되어 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다스림 속에 내 인생이 들어가게 될 때 하나님이 내게 주신 축복은 만물을 향해서 정복하고 다스리도록 축복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결국은 인생이 타락하게 되어서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해서 하나님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창세기 2:17에 말씀을 주셨는데 결국은 인간이 이 말씀에 불순종해서 하나님을 떠나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2:17이 우리 인간 속에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반드시 죽으리라, 이 말씀이 우리에게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죽음이란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결국은 하나님과의 단절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니까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인생은 자기도 원치 않게 마귀의 종이 되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악한 사단 마귀가 우리 인생을 무엇을 가지고 장악하고 있느냐? 죄를 가지고 우리 인생을 장악하고 있고 사망, 죽음을 가지고 우리 인생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요한일서 3:8에 보면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악한 사단이 우리 인생을 장악하는 그것이 바로 죄를 가지고 장악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로마서 6:23에 보면 “죄의 삯은 사망이요.” 죄의 대가가 무엇이라 했습니까? 사망, 곧 죽음이요 고통인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악한 사단, 요한복음 16:11에 보면 “세상 임금”이라고 말씀하고 있고 또 고린도후서 4:4에 보면 “세상의 신”이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악한 사단이 죄를 가지고 우리 인생이 죄의 종노릇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도록 장악하고 있습니다. 또 한 가지는 사망을 가지고 우리 인생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2:14에 보면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했습니다. 여기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뭐라고요? 마귀를 멸하셨다 했습니다. 죽음의 권세 잡은 자가 누구라고요? 사단, 마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악한 사단, 세상 임금, 세상 신 사단이 우리 인생을 죄로 장악하고 있고 사망을 가지고 장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죄의 본질이 무엇이냐? 결국은 나 중심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죄의 본질이 뭐냐? 세상과 육신 중심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죄의 본질이 뭐냐? 결국 성공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게 죄의 본질입니다. 창세기 3장과 6장과 11장, 그게 죄의 본질입니다. 그 결과로 오는 것이, 결국 인생은 멸망 받고 진노가 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2:1~3에 하나님을 떠난 인생의 영적인 상태를 말씀하고 있는데 에베소서 2:1에 보면 “허물과 죄로 죽었던”이라고 말씀하고 있고 죄와 허물로 우리 인생이 죽게 되니까 살아가는 삶이 에베소서 2:2에 보면 “세상 풍조를 따르고” 했습니다. 세상 풍속은 결국 그 배경을 사단이 붙잡고 있는 것인데 점하고 굿하고 제사 지내고 고사 지내고 사주팔자, 운명에 매여 사는 삶입니다. 그게 세상 풍속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오는 것이 뭐냐? 에베소서 2:3에 보면 결국은 진노가 머리 위해 임하여 있는 것입니다. 여기 “본질상 진노의 자녀”란 말이 무슨 말이냐? 진노가 우리 각 사람 머리 위해 임하여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언제 진노가 떨어질지 모르는 것입니다. 언제 진노가 우리에게 임할지 모르는 그런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결국은 하나님을 떠난 데서 온 문제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악한 사단이 우리 인생을 붙잡고 있으니까, 죄와 사망으로 붙잡고 있으니까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 온갖 고생 다 하다가 결국은 진노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 저와 여러분, 우리 인생이라는 사실을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냥 여기에 우리 자신을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길을 여셨습니다. 로마서 5:8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할렐루야! 하나님이 우리에게 사랑한다는 그 사랑을 확증해주셨는데 우리를 위해서 그리스도를 주시고 그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다고 말씀했습니다. 그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요한복음 19:30에 “다 이루었다” 말씀했습니다. 저와 여러분, 죄로 인한 저주와 재앙, 이 땅에 반드시 임할 진노 가운데 살아가는데 살아가는 만큼 진노를 쌓고 있습니다. 그게 로마서 1장에,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모습을 로마서 1장에서 적나라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진노를 쌓는도다 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모든 인생은 진노를 쌓고 살아가는데 그 모든 죄로 인한 저주와 재앙, 진노를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다 끝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9:30에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으로 다 이루셨느냐? 히브리서 9:12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무슨 말입니까?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참 제사장으로서 우리의 모든 죄를 다 끝냈다는 말입니다.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다, 참 제사장이신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10:19~20에 보면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참 선지자가 되셔서 하나님을 떠난 우리 인생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없는데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새로운 살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참 선지자로서.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참 왕으로 오셔서 사단의 머리를 깨뜨려버리셨는데 히브리서 2:14에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마귀를 멸하시며. 사단의 머리를 깨뜨려버린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참 제사장으로, 참 선지자로, 참 왕으로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우리의 모든 죄로 인한 저주와 재앙, 진노의 문제를 다 끝내신 것입니다. 어느 누구든지 우리의 모습 그대로를 가지고 주님 앞으로 나아가면 됩니다. 우리에게 있는 모든 것들을 가지고 우리가 해결하려고 하면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 우리 자신들이 죄인이지 않습니까? 로마서 3:10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로마서 3:23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했습니다. 내가 죄가 없다면 내가 해결하면 되는데 우리 모두가 죄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또 주님께서 만약에 야, 너 그 모든 죄의 문제를 누구에게 맡기고 내게 오라 하면 아무도 하나님께 나아갈 자가 없습니다. 왜냐? 그 누구도 의인은 없기 때문에, 죄 없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모두가 죄인이기 때문에 누구에게 맡기고 오라 하면 아무도 나아갈 자가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냥 우리에게 오라고 얘기하고 계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말씀했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모습 그대로를 가지고 주님 앞에 나아오기를 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때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 여러분, 성경에 보면 시편 103:12에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할렐루야! 우리가 주님께 우리의 모습 그대로를 가지고 나아가면 우리의 모든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일서 1:9에도 보면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모든 죄를 사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가 우리에게 있는 모습 그대로를 가지고 주님 앞에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그리스도 보고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실 것입니다. 그리스도 보고 죄로 인한 저주와 재앙, 진노에서 우리를 벗어나게 하실 것입니다. 오늘 이 축복의 역사를 회복하는 축복된 응답이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가 그리스도 그 이름 불렀는데 내 마음에 참된 평안이 있고 쉼이 있다면 오늘 1절에서 말하는 그 날이 우리에게 성취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진노에서 돌아섰습니다. 구원 받은 자들은 진노에서 돌아섰습니다. 그리고 참된 쉼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참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여러분이 쉼을 누리는, 진노에서 해방되는 응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서 오늘 본문에 보면 그 정도가 아닙니다. 안위하신다고 말씀했습니다. “이제는 주의 진노가 돌아섰고 또 주께서 나를 안위하시오니.” 여기 안위라는 말이 무엇일까요? 사전적인 의미는 몸을 편하게 하고 마음을 위로하는 것을 가지고 안위라고 이야기합니다. 다시 말하면 안위라는 말은 위로하심입니다. 우리에게 주님께서 우리를 다스리시니까 쉼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여러 가지 문제와 사건을 당한다 할지라도 그 속에서 그때그때마다 하나님의 위로하심이 우리에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언제까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위로하시느냐? 마태복음 28:18~20에 보면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말씀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세상 끝날까지 우리의 위로자 되시는 성령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면서 문제와 사건과 어려움 속에서 또 우리에게 힘을 주시고 위로하시고 우리에게 승리토록 하신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안에 있는 옛것을 제해버리고 새것을 가지게 했다면 거기서 끝나면 안 됩니다. 늘 항상 새것으로 함께해야 합니다. 왜냐? 옛것을 제해버리고 새것으로 채우지 않으면 옛것이 더 심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게 마태복음 12:43~45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그 본문은 무엇을 말합니까? 종교인들이 나름대로 열심히 해서 수고하고 그래서 수리하고 청소하고 깨끗하게 한다고 나름대로 몸부림치는데 더 강한 귀신 일곱이 들어온다 했습니다. 옛것을 제거했는데 새것으로 채워지지 않으니까 옛것이 더 심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새것을 채워주셨습니다. 그게 뭐냐? 또 다른 보혜사를 주사. 우리 속에 우리와 함께 영원히 함께 하시겠다 약속했습니다. 그게 바로 성령으로 우리를 위로하심이십니다.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신 것입니다. 그게 바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성령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7:11에 보면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여러분, 부모가 자녀에게 좋은 것 주지 않습니까? 그러면 하물며 천국에, 하나님 나라에 계신 아버지께서, 보좌에 계신 그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지 않겠느냐,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그 본문을 똑같이 누가복음 11:13에서 똑같이 말씀하면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말씀했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이 뭐냐? 성령입니다.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시사 우리를 위로하시고 언제까지? 세상 끝날까지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위로하시는 것으로 우리에게 축복하시게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리스도를 붙잡았다, 그리스도를 우리 마음에 모셨다, 다 가진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성령께서 내 안에 거주하기 때문에. 왜 성령께서 내 안에 거주하시느냐? 나를 인도하시기 때문에, 나를 인도하시기 위해서. 왜 성령께서 내 안에 거하시느냐? 내가 기도할 때마다 역사하시기 위해서 내 안에 거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리스도를 모셨다는 것은 모든 것 다 가진 것입니다. 한번 따라합시다. 나는! 다 받았다! 로마서 8:32입니다.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그 아들과 함께 무엇을요? 모든 것을 주시기 않겠느냐?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우리 신앙 생활은 뭐냐? 그리스도와 함께 모든 것 가진 내가 그 축복을 누리는 것이 바로 신앙 생활입니다. 뭔가 달라 하고, 어렵고 힘들어서 뭔가 하나님 앞에 요구하고 달라 하고, 그게 아닙니다. 이미 주신 구원, 그 은혜에 대한 감사와 감격, 그 축복을 누리는 것이 바로 신앙 생활이라는 사실입니다. 종교인들은 내가 이렇게 하면 이런 복을 받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내가 뭔가 축복을 받겠지, 이런 마음을 가지고 종교 생활을 합니다. 그래서 열심히 선도 행하고 노력도 하고 착하게 살려고 몸부림도 칩니다. 그것은 바로 종교 생활하는 사람들의 삶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그 사실을 누리면 됩니다. 다 가진 것입니다, 사실은. 우리의 헌신은 뭐냐? 하나님께 뭔가 축복을 받아내기 위해서 헌신하는 것이 아니라 다 가졌기 때문에 그 은혜에 대해서 감사해서, 감격해서 교사도 하는 것이고 찬양대 대원으로 활동도 하는 것이고 교회를 위해서 헌신도 하는 것입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 하나님은 이미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가지고 우리 안에 들어오셨습니다. 그해서 우리에게 부족함이 없고 모자람이 없는 완벽한 축복 가운데 저와 여러분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특별히 그 하나님의 은혜가 날마다 날마다 우리의 현장에서 걸음걸음마다 안위하심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를 위로하시고 우리를 인도해나가시는 역사로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감격입니다. 그러면서 2절에 보십시오. 한 걸음 더 나아가 더 크게 기뻐하고 감사해야 할 것을 말하고 있는데 여기 2절에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여러분, 성령에서 “보라”라고 할 때는 강조하는 것입니다. 1절보다 2절을 강조하고 있는데 여기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 하나님의 이름이 구원의 이름입니다. 구원자라는 이름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그리스도도 이 땅에 왜 오셨느냐?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21에 보면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구원자의 이름으로 오셨는데, 바로 구원 때문에 이 땅에 오셨는데 왜? 모든 사람이 멸망 상태에 있기 때문에. 멸망 상태에 있다고 했을 때 그 멸망의 상태는 무엇을 말합니까? 세상 풍속을 좇아가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에서 말씀하는 것처럼. 그리고 결국은 사도행전 10:38에 있는 말씀처럼 모든 사람이 “마귀에게 눌린” 것입니다. 그게 바로 멸망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 구원자를 주시고 그 구원받은 자에게 주신 그 구원의 상태가 어떤 상태인가를 오늘 본문 2절에서 말씀하고 있는데 2절에 보면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여러분, 구원 받은 자의 상태는 무엇이냐? 두려움이 없는 것입니다. 왜냐? 멸망 받을 진노에서 빠져나왔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두려움이 없는 것입니다. 죄로 인한 멸망의 상태가 해결되었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두려움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일서 4:18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했습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했는데 그러면 그 사랑은 무엇을 말합니까? 바로 요한일서 4:16에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말씀했습니다. 그 사랑 안에 있을 때에 두려움이 없다 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증거 중의 증거는 마음의 평안함이지, 두려움이 아닙니다. 모든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두려움에서 내어 쫓는다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시편 3:6에 보면 다윗이 고백했습니다.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 진짜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모시는 자는,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아무리 우리를 악한 사단이 둘러 진친다 할지라도 그 속에서 누릴 수 있는 것이 바로 두려움이 없는 것입니다. 시편 23:4에도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참된 두려움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해결되는 그 축복을 누리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서 그 다음에 이어서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말씀했습니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했습니다. 여러분, 정말로 여러분 자신에게 진짜 무엇이 여러분의 힘입니까? 오늘 본문에 이사야 선지자는 주 여호와가 나의 힘이라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세상에서는 힘이 있어야 살아간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적자생존, 약육강식, 이런 말들이 나왔지 않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세상에서는 힘 있는 자가 살아간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게 아닙니다. 여호와가 나의 힘이 되어야 우리의 진정한 승리의 축복이 이루어집니다. 내게 있어서 진정한 힘이 무엇입니까? 여호와가 나의 힘이 되어야 합니다. 여호와가 나의 힘이 되기 위해서는 내 힘을 빼버려야 합니다. 내 힘을 빼버려야 합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4:13에 바울이 고백했습니다. 바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여기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여기에 대한 강조가 아닙니다. 그 앞에 나와 있는 우리의 현주소를 말하고 있는데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 있기 때문에. 능력이 진짜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힘을 빼버려야 한다는 것. 이사야 40:31에도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말씀했습니다. 우리 신앙 생활에 여호와가 나의 힘이 되는, 정말 우리 모든 것을 내어 놓는, 그런 축복이 우리에게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때 우리에게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감격이 늘 넘쳐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운동도 그렇지 않습니까? 운동의 가장 기본이 힘 빼는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골프 치는 사람들, 힘 빠지는데 3년 걸린다고 합니다. 여러분, 수영하는 사람들도 자기 힘을 빼야 몸이 뜬다고 이야기합니다. 저는 제가 교만해서 힘을 빼지 않아서 수영을 못합니다. 수영만 하면 물에 가라앉습니다. 이유를 알았습니다. 내가 힘을 내는구나, 힘 빼면 몸이 그냥 뜨게 되어 있는데 힘을 내기 때문에 빠진다고 이야기합니다. 모든 운동이 힘 빠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세상 적으로 말하는 그런 힘을 빼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나의 힘이기 때문에, 오늘 여호와가 나의 힘이기 때문에 우리의 힘이 없어도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힘을 내가 이용하려고 하지 마시고 정말로 여호와가 나의 힘 되심을 날마다 날마다 여러분의 삶 속에서 고백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 때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감격이 날마다 우리에게 넘쳐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서 마지막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감격을 말하면서 오늘 본문에 보면 3절에 바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성경에 우물에 대한, 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길을 가는 동안 가장 생명처럼 중요한 것이 물입니다. 생명처럼 여겼습니다. 그래서 구약에 물에 대한, 우물에 대한 부분이 나올 때 구원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롯이 갈라지게 되는데 아브라함의 종들과 조카 롯의 종들이 왜 싸우게 되었느냐? 우물 때문입니다. 또 이삭과 리브가, 맞이하게 될 때 우물과 관계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삭이 결국은 샘을 팠는데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샘의 근원을 얻었다 말씀했습니다. 또 모세와 십보라의 만남도 우물과 관계되어 있습니다. 이 우물은, 성경에 나오는 우물은 전부 다 구원과 관계되어 있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2:13에 보면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두 가지 죄가 있다고 이야기했는데 두 가지 죄악이 뭐냐 하면 첫 번째로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이라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이라 했습니다.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라 이야기하면서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이라 말했습니다. 이 두 가지 악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하나님 앞에서의 악이라 했습니다. 바로 생수의 근원 되는 나를 버린 것과.
그렇습니다. 여기 구원의 우물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사야 55:1에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했습니다. 오늘도 주님께서 우리에게 오라고 말씀했습니다. 돈 없는 자도 오라고 말씀했습니다. 그 어느 누구도 다 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4장에 보면 수가성 여인이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밤에 물을 길러 나갔습니다. 그때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그 여인을 만나서 그 인생의 영혼의 갈함을 해갈되게 하셨습니다. 우리 인생의 영혼의 갈함이 무엇입니까? 인생의 영혼의 해갈이 무엇입니까? 인생의 답을 얻었다는 말입니다. 그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이 수가성 여인이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달려 들어가서 그리스도를 이야기하면서 와 보라 이야기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바로 인생의 답을 얻었다는 말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수가성 여인,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씀하신 부분입니다. 요한복음 4:13에 보면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할렐루야! 그리스도는 완벽하게 우리 인생의 목마름을 다 해결하신 것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우리 인생의 목마름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결국은 더 목마를 뿐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는 완벽하게 우리 인생의 모든 목마름을 다 해결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리스도 만나고 누리면 방황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만나고 누리면 우리가 갈등하지 않고 우리가 헷갈리지 않고 우리가 목마르지 않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그리스도, 우리 속에서 영생하도록 샘물로 솟아나는 그 그리스도를 누리는 귀한 축복이 오늘부터 시작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전해야 할 구원의 감격
두 번째입니다. 반드시 전해야 할 구원의 감격입니다. 오늘 4절부터 6절에 말씀하고 있는데 4절에 보면 “그 날에 너희가 또 말하기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의 이름을 부르며 그의 행하심을 만국 중에 선포하며 그의 이름이 높다 하라.” 그의 이름을 부르며 그의 행하심을 만국 중에 선포하며 그의 이름이 높다 하라, 무슨 말입니까? 이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감격을 전하라는 말입니다. 쉽게 말하면 전도, 선교, 세계복음화, 여기에 방향을 맞추고 살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다, 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절대 문제, 인생의 열두 가지 문제를 해결 받은 그 이름 그리스도, 그 이름을 진짜 안다면 말하게 되어 있습니다. 진짜 체험해서 누린다면 말하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이사야 12장은 이것을 지식적으로, 형식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사실적으로 체험하고 감사와 감격을 회복하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진짜 안다면 말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보십시오. 우리 단체에서 지금 전 세계를 향해서 매주 목사님들이 40명, 50명씩 전 세계 현장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이게 그냥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매주 해외 현장에 나가는 목사님들의 보고가 올라옵니다. 목사님들과 또 성도들이 같이 팀이 되어서 나가기도 하고 거기 보면 전 세계를 향해서, 237 나라를 향해서 목사님들이 매주 나가고 있습니다. 또 우리 교회도 보십시오. 매주 전도캠프와 함께 모든 현장 속에, 또 선교 현장 속에 팀이 되어서 기도하면서 또 선교 현장에 들어가서 인도 받고 있고 지난 주에 다민족 헌신예배를 드렸습니다만 헌신예배 인도 받으면서도 교회 안에 다민족 사역자들이 많이 일어나야 하겠구나, 구석구석에 다민족 가운데 불신자들을 찾아서 제자 세우고 그들 가운데 중직자, 목회자를 세우기 위해서는 많은 제자들이 일어나야 하겠구나, 그 기도제목을 새롭게 붙잡았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오늘 본문에 나오는 것처럼 그 이름을 부르며 그의 행하심을 만국 중에 선포하며 그 이름을 높다 하라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전 세계 현장을 향해서 나가라 이 말입니다. 특별히 무엇보다도 우리의 선교 현장을 두고 기도해 주시고 더욱이 또 한 가지는 여러분, 정말로 우리 후대에게도 그의 이름이 높다 하라, 그리스도 그 이름의 비밀, 그 이름의 가치,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가치, 그것을 전달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해외현장도 해외 현장이지만 우리 자녀들에게도, 우리 후대들에게도 다른 것 이전에 가장 중요한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감격, 그리고 그의 이름을 높일 수밖에 없는 그 축복의 역사를 붙잡을 수 있도록 우리 후대들에게 전달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데 돌을 들어서도 소리를 지르게 하겠다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다른 사람을 통해서 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서 이 일에 쓰임 받도록 우리를 축복하셨습니다. 에스겔 36:22~23을 보십시오. 우리가 그의 이름을 높이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 하나님 당신이 그 이름을 친히 나타내시겠다 말씀하셨는데 에스겔 36:22 같이 한번 읽어볼까요?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니요 너희가 들어간 그 여러 나라에서 더럽힌 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함이라.” 나의 큰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할지라 나의 큰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하겠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신다는 사실이에요 여러분 우리가 이름을 말하지 않고 높이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하나님 이름을 높이실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로 말미암아 그 이름을 높일 수 있는 자리로 우리를 부르셨어요 높일 수 있는 남은자로 우리를 부르셨어요 입만 열면 그리스도 이름을 높이시길 바랍니다. 우리 후대들에게 이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감격 그의 이름을 높일 수 밖에 없도록 전달해야 합니다. 여러분 특별히 어린이 주일날 우리가 다른 것 붙잡지 마시고요 사사기서 2장 10절부터 15절에 나오는 부분들입니다만은 여호수아와 또 그 여호수아 후에 여호와를 아는 모든 사람이 죽게 되니깐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 숭배에 빠지고 재앙에 빠졌어요. 여호수아가 살아 있는 날 동안에는 하나님을 섬겼지만은 그렇다면은 저와 여러분이 정말 후대들이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감격 붙잡고 그의 이름을 높이는 자리로 설 수 있도록 우리가 이 언약을 바르게 전달해야 될 것입니다. 악한 사단이요 우리 후대들에게서 가장 먼저 무엇부터 빼앗아 갔느냐 복음부터 빼앗아 갔어요 그리고 또 예배와 기도를 다 빼앗아 갔어요 그리고 또 우리 후대들에게 있어서 교회당을 빼앗아 갔어요 그래서 자녀들 그래서 교회당 안오잖아요 주일학교 없는 교회가 50프로가 넘는다고 이야기해요 복음부터 사단이 먼저 빼앗아 갔고 예배와 기도를 빼앗아 갔고 예배당도 빼앗아 갔어요 그래서 가면 갈수록 이땅에 일어나는 일이 뭡니까? 어린 아이들이 여러분 우울증에 시달리고요 조울증에 시달리고요 어린아이들이 공황장애가 오고요 어린이들이 정신적인 병들을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어떤 일들이 일어납니까? 어린 아이들이 자살하고요 어린아이들이 마약에 빠지고요 어린아이들이 범죄에 들어가게 되고요 완전히 현장은 사단 시대가 되어진겁니다. 왜그렇습니까 현장에 우리 아이들이 복음 빼앗겨 버렸고 예배와 기도 빼앗겨 버렸고 교회당을 빼앗겨 버렸기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이 시대는 사단과의 영적 전쟁에 각인 시대입니다. 무엇을 우리 아이들에게 각인 하느냐 그게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 각인 시대에요. 그런데 보세요 지금 3단체는 틀린것들을 각인해가지고 우리 모든 후대들을 지금 멸망으로 후대들을 다 빼앗겨 버렸어요 회복해야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 우리가 우리 교회 우리 후대들이 237나라를 살리는 영적인 하나님의 사람들로 일어날 수 있는 그런 시스템들이 교회 안에 세워지도록 기도해야 될것입니다. 현장 나가기 전에 우리아이들이 먼저 영적 재앙을 이길 수 있는 복음부터 정리 되어지도록 그리고 세상 속에 나가서 세상을 이기고도 남을 수 있는 세상의 지식도 전문성있게 준비 되어질 수 있도록 그리고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뭔가 모르는 사상을 담을 수 있도록 우리 아이들에게 준비 시켜 나가도록 해야 될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여러분이 기도해야 해요 또 특별히 많은 우리 현장에 병든 사람들이 나돌아 다니고 있어요 그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지금 문제들 보고 있잖아요 그 질병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교회와서 치유받고 힘을 얻고 살아 날수 있도록 또 그 뿐만 아닙니다. 237 나라를 살리는 그런 우리 렘넌트들이 일어나고 우리 성도들이 일어날 수 있도록 그런 시스템들이 교회 안에 이루어져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 단순히 건물 이야기 하는 것이아닙니다. 우리 아이들이 후대들이 정말 언약 붙잡고 그것을 손에 붙잡고 현장을 향해서 나아갈 수 있도록 참 감사한건요 우리 장로님 한분이 우리 렘넌트들 대상으로 해가지고 하나 교회가 생각하는 하나 RUTC가 무엇일까 설문 조사를 했데요 그런데 그 설문 조사를 하고 나서 너무 기뻐하지고 장로님이 저한테 보고를 했어요 첫 번째가 뭐냐 우리 렘넌트들이 기도 할 수 있는 한 사람 한사람이 들어가서 기도할 수 있는 홀이 있었으면 좋겠다 제가 그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라면서 기쁘고 감사했어요. 아 우리 아이들이 바르게 메시지 흐름을 인도 받고 있구나 그러면서 여러 가지 있는데 그 중에 우리아이들이 마음껏 작품 활동 할 수 있는 연극장도 있고 뭔가 미디어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룸도 있고 이런 부분들을 이야기 했다고 이야기해요 가장 중요한 우리아이들이 기도할 수 있는 공간들이 교회 안에 우리 렘넌트들이 기도 할 수 있는 어른이 아니고 렘넌트들의 이야기입니다. 렘넌트들이 기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진짜 우리 아이들이 세상 나가기 전에 영적인 부분들에 힘을 가지고 나갈수 있도록 그리고 교회 와서 뒹굴고요 먹고 자고 하면서 진짜 그 무엇보다 복음부터 영적 재앙의 문제를 이길 수 있는 복음부터 정리되어지고 세상을 이길 수 있는 전문성과 뭔가 모르는 사상들이 담겨져서 세상 현장을 나갈수 있도록 그 일에 심부름 한다면 은 하나님 앞에서 가장 귀중한 것이 될 것이 아닌가 오늘 본문에 보세요 다시 읽습니다. “그의 이름을 부르며 그의 행하심을 만국중에 선포하며 그의 이름을 높다 하라” 우리 세계 열방 가운데도 증거해야 되지만은 우리 교회안에 후대들에게도 주의 이름을 높일 수 있는 우리 후대들이 일어날 수 있도록 이 일에 수고하고 헌신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에 5절에 보면 “여호와를 찬송할 것은 극히 아름다운 일을 행하셨음이라” 여기에 아름다운 일을 행하셨다 무슨말입니까? 일차적으로 유다가 앗수르에서 해방된 것을 말해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는데 앗수르왕 산헤림이 유다를 공격해 왔잖아요 18만 5천 군사를 데리고. 그때 히스기야 왕이 수단 방법 동원하다가 하나님 앞에 편지 내놓고 기도하기 시작했어요 그때 도저히 이해도 안되는 일이 일어났는데 18만 5천 군사가 그날 밤에 송장 되어 버렸어요 어려분 어렵고 여러분이 해결 할 수 없는 문제가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 기도함으로 나가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그러면서 또 여기에 아름다운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한시대 현장 237 나라를 살릴 수 있도록 그리스도, 하나님 나라, 오직 성령을 허락 하신 것입니다. 이게 아름다운 일이에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3저주를 해결하시고요 이땅에 흑암 나라기 때문에 승리 할 수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약속 하셨고요 악령의 역사가 모든 사람을 사로잡고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성령 충만함을 허락하셨어요 이것이 하나님 우리에게 행하신 아름다운 일입니다. 이 아름다운 일 그리스도 하나님나라 오직 성령의 역사를 누리면 누리는 만큼 말하게 되어 있어요. 체험하는 만큼 말하게 되어 있어요. 이 일에 증인 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상에 돈가진 사람은 돈이 다라고 얘기합니다. 정말로 돈이 모든 것입니까 돈이 우리 인생의 문제를 다 해결 할 수 있습니까 아무리 세상에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인생에 있어서 절대 해결 할수 없는 문제가 있어요 그것은 구원과 함께 구원의 감사와 감격함은 그 어느 누구도 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특빌히 이번 한주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의 감사와 감격 회복함으로 모든 삶에 현장에 승리하는 귀한 축복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9년 5월 5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그 날에
(사12:1-6)
서론: 이사야는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에 대한 심판과 구원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사1-11장). 결론적으로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을 말씀하고 있습니다(사12장).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심판이 아니라 구원입니다.
그 날은 예수가 그리스도로 오시는 날입니다. 주의 은혜와 능력이 나타나는 날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사12장에 나오는 은혜가 회복 되어야 합니다.
1. 넘쳐야 할 구원의 감격
가. 감사의 이유(사12:1) - 전에는 내게 노하셨으나 이제는 주의 진노가 돌아섰음
1) 당연히 하나님을 섬겨야 되는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숭배 함으로 하나님의 진노가 임함(삿2:10-15)
2)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창1:27),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림(창1:28) - 하나님을 의지, 순종, 섬기는 존재
3) 사단(요16:11, 고후4:4)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떠남(창2:17) - 하나님과 단절됨
4) 죄와 사망으로 통치(요일3:8), 죄의 댓가는 죽음(롬6:23), 사망으로 모든 사람을 붙잡고 있음(히2:14)
5) 죄의 본질 - 자기 주장(창3장), 육신, 물질 중심(창6장), 성공중심(창11장)
6) 그리스도를 보내주심(롬5:8) -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요19:30, 히9:12-15, 히10:19-20, 히2:14)
나. 그리스도를 통해 안위하심을 주심 - 마음을 편하게 하고 위로하심
1) 사랑하는 증표로 안위하심 - 성령께서 우리 속에 계셔서 안위하심
2)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심(마28:18-20), 옛 것을 버리고 새 것으로 채워 주어야 함(마12:43-45), 성령의 역사로 안위함을 주심(요14:16-17, 눅11:13)
3) 그리스도와 함께 모든 것을 다 주심(요5:24) - 받은 것이 감사하기 때문에 헌신, 봉사
다. 하나님은 나의 구원
1) 구원 때문에 그리스도를 보내주심(마1:21)
2) 구원 받은 자의 상태 - 두려움이 없음(요일4:18-19, 시23:4), 여호와는 나의 힘(능력과 은혜를 주심 - 빌4:13, 사40:31)
라. 구원의 감사와 기쁨이 날마다 항상 넘쳐야 함
1) 우물 - 생명, 구원
2) 구원의 우물 - 생수의 근원 되신 그리스도(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 인생의 목마름을 해결)
2. 전해야 할 구원의 감격
가. 이 사실을 온 땅에 알게 해야 함
1)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생의 문제를 해결 하심
2) 그리스도 이름을 높이지 않으면 내가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심(겔36:22-23) -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
3) 후대들에게 언약을 전달(구원의 감사와 감격) - 후대를 살리는 영적시스템, 각인전쟁시대(하나 RUTC)
나. 아름다운 일을 하셨으니(사12:5)
1) 유다가 앗수르에서 해방 되는 것 - 해결 할 수 없는 문제 앞에 하나님을 바라봄
2) 영원히 승리할 수 있는 언약을 주심 - 그리스도, 하나님 나라, 오직 성령
결론: 이 땅에는 그리스도가 필요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나라가 임해야 합니다. 악령의 역사가 세상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하나님 나라, 오직 성령을 약속 하셨습니다. 이 언약 붙잡고 구원의 감격 속에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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