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전도자가 부를 찬양
2019-05-1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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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9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전도자가 부를 찬양”
(사26:1~7)


1.그 날에 유다 땅에서 이 노래를 부르리라 우리에게 견고한 성읍이 있음이여 여호와께서 구원을 성벽과 외벽으로 삼으시리로다
2.너희는 문들을 열고 신의를 지키는 의로운 나라가 들어오게 할지어다
3.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
4.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신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
5.높은 데에 거주하는 자를 낮추시며 솟은 성을 헐어 땅에 엎으시되 진토에 미치게 하셨도다
6.발이 그것을 밟으리니 곧 빈궁한 자의 발과 곤핍한 자의 걸음이리로다
7.의인의 길은 정직함이여 정직하신 주께서 의인의 첩경을 평탄하게 하시도다


 사26:1~7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만민을 위하여 기를 드십시다. 오늘 이 예배가 내가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가 내 안에 있음을 확인함으로 모든 흑암의 역사들이 무너져 내리고 새로운 하나님의 큰 응답의 역사들이 일어나는 그런 예배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제목을 “전도자가 부를 찬양”입니다. 지금 이 시대는 마지막 영적전쟁의 시대입니다. 그래서 갈수록 생명 가진 자와 없는 자가 분명히 구분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복음에 집중하고 그 속에서 힘을 얻고 그 속에 뿌리를 내리면서 그 복음의 역사들이 노래까지 될 정도로 회복되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노래라는 말이 왜 노래라는 말을 사용했을까? 오늘 제목이 전도자가 부를 찬양이예요. 오늘 본문이 그 찬양에 대한 부분들을 이야기 하고 있고요, 그래서 오늘 이 복음이 우리에게 있어서 노래가 되기까지 회복되어져야 된다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노래가 되어지기까지 된다라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최고의 복음을 누리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요. 어제 메시지 가운데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복음의 생활화가 되어져야 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알고 있기는 아는데, 복음의 생활화가 되어지지 않아서 능력있는 삶이 되지 않고 있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이 노래화 되어져야 된다는데, 이 말은 다른 말로 하면 복음이 바로 생활화 되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 속에서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날마다 성공하게 되어있는 것이고, 그 사실들이 반복되어지는 그 가운데서 참된 승리하는 전도자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이사야서를 계속해서 살펴보고 있지요. 지난주에도 말씀드렸습니다마는 이사야서13장부터 특별히 23장까지는 이스라엘 주변 강대국들의 멸망에 대한 내용들을 쭈욱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읽지는 않았습니다마는 24장에도 보면 강대국인 두로와 시돈에 멸망을 이야기하고 있고요, 또 땅의 형벌이 임하게 될 것을, 땅을 심판할 것을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25:1절에 보면 시작하는 부분이 찬송하는 성도들의 생활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데요, 25:1절에 보면 여호와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를 높이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오리니..... 여기에 내가 주를 높이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오리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찬송에 대한 말씀으로 시작하고 있는데요, 26:1절에 보면 “그날에 유다 땅에서 이 노래를 부르리라” 그 날에 유다 땅에서 이 노래를 부르리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특히 성도가 찬송해야 될 내용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 26:21절에 보면 그 날이라 할 때에 그 날은 어떤 날을 말할까요? 그것은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이 70년 동안에 바벨론에 포로 되어질 것이다. 그리고 70년이 지난 후에 그 바벨론에서 완전히 해방되어질 것이다. 포로에서 빠져나오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때에 그 해방된 기쁨과 감격을 찬양하게 될 것이다. 바로 그 날은 바벨론의 포로에서 빠져나와서 하나님께 찬양하는 기쁨과 감격으로 하나님께 서는 그 날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신앙적으로 본다면 구원받은 자의 노래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실은 우리 모든 인생들은 사탄의 올무와 함정과 틀 속에 갇힌 바 되어서 우리도 원치 않게 인생의 12가지 문제 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빠져나올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시고, 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재앙과 지옥배경과 사탄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우리를 건지셨습니다. 그 구원받은 자의 노래가 어떤 노래여야 될까 라는 부분들에 대한 내용이 오늘 본문에 나오고 있는 부분들입니다. 특별히 오늘 너무나 귀중한 말씀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 주심으로 말미암아 일어난 역사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는 것이고요, 그래서 이 말씀을 여러분 한 주간 몇 번이라도 읽어보시고 계속해서 묵상하는 가운데서 새 힘을 얻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기에 기록된 은혜의 역사가 바벨론에서 해방되어 나올 때에 한 번에 일어난 사건이지만 그러나 믿음으로 살아가는 자들에게 지속되어져야 될 부분인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에게 정말로 회복되어야 될 노래가 어떤 노래일까?

1. 나의 현장에서 복음으로 부르는 노래
먼저 첫 번째입니다. 나의 현장에서 복음으로 부르는 노래입니다. 나의 현장에서 복음으로 부르는 노래가 회복되어져야 합니다. 여기에 오늘 1~2절에 보면 날마다 우리가 누려야 될 축복이 무엇인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복음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고, 다른 말로 하면 구원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그 날이라는 말은 이미 말씀드렸던 것처럼 바벨론에서 해방된 그 날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지요. 우리에게는 이 그 날은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누려야 될 하나님의 나라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들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삶을 보면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가 있어요. 먼저는 하나님 없이 자기 기준과, 자기 계획과 자기 열심을 가지고 자기 의를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결국은 자기 성을 쌓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 성이 정말로 우리에게 완전한 보장이 되어지는 성일까요? 나름대로 열심을 내고, 몸부림쳐서 살아감에도 불구하고 결국 자신을 넘어서지 못해요. 세상을 넘어서지 못하고, 성공을 넘어서지 못해요. 그래서 결국은 성공해 놓고도 거기에 완전히 사로잡혀서 그것을 무너짐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놓치 못해요. 그것이 우리의 인생들 아닙니까? 왜 그렇습니까? 원래는 우리가 참된 행복과 만족을 누리며 살도록 지음 받았어요. 그것이 창세기1:27~28절에 나오는 내용이지요. 처음부터 우리는 참된 만족을 누리고 참된 행복을 누리며 살도록 지음 받았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다 참된 행복을 찾고 있고, 참된 만족을 찾고 있고, 성공을 찾는 것은 당연한 겁니다. 왜냐? 처음에 그렇게 지음 받았으니까 그런데 창세기3장 사건으로 말미암아 결국 이 모든 것들을 잃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인간이 참된 만족과 참된 성공과 참된 행복을 어디에서 찾느냐? 내가 잘 되는 것에서, 세상적으로, 육신적으로 잘 되는 것에서, 또 성공하는 것에서 참된 만족과 행복과 성공을 찾기 위해서 몸부림 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결국은 그것이 우리에게 영원한 보장이 되어지는 것은 아니예요. 결국 창세기11:4절에 있는 말씀처럼 바벨탑이 되어지는 겁니다. 그 어떤 것도 우리를 영원히 보장해 줄 수 있는 것이 안 되는 겁니다. 원래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 따라 지음 받아 그 안에서 참된 만족을 누리도록 지음 받았는데 그런데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근본적으로 불안이 있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날마다 사람들이 성을 쌓는데, 여러분 구약에도 보면 결국 동으로 동으로 쫓겨 가다가, 도망가다가 결국 에녹 성을 쌓게 되었지요. 무슨 말입니까? 자기 자신의 안전함을 위해서 에녹성을 쌓게 된 겁니다. 그게 우리 인생이예요. 그래서 날마다 우리가 나름대로 성을 쌓고 살고요, 나름대로 대를 쌓고 살고요, 망대를 짓고 살아가는 겁니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우리를 안전하게 보장해 줄 수 없는 것입니다. 또 한 부류의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냐?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살아가는 삷 입니다. 그 사람들에게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께서 견고한 성읍에 들어가게 하시겠다 말씀하셨어요. 오늘 2절에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지요. “너희는 문들을 열고 신의를 지키는 의로운 나라가 들어오게 할 지어다” 여기에 신의를 지키는 의로운 나라라고 나오는데 여기에 나라라는 말은 국가라는 말 보다도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의 백성을 일컫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축복으로 허락된 것이 바로 견고한 성읍이라 했어요. 그 성읍에 들어가게 하신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땅에 그 어떤 것도 견고한 성읍이 있을 수가 없어요. 그러나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자에게 오늘 본문에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견고한 성읍이 그들에게 주어진다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사실 솔직히 구원보다도 더 견고한 성읍이 있을 수 있나요? 구원보다도 우리에게 더 견고한 성읍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축복을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자들에게 허락하시겠다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오늘 본문에 보면 구원으로 성벽과 외벽을 삼으시리로다 했어요. 구원으로 성벽과 외벽을 삼으시리로다 가장 귀중한 무너지지 않는 견고한 성읍을 우리에게 허락하시는데 그 구원으로 말미암아 성벽과 외벽을 삼으시리로다. 여러분 여기에 성벽과 외벽은 무엇을 말합니까? 우리를 우리의 재산을 지키고 우리를 보호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게 바로 성벽과 외벽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으로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들을 오늘도 지키고 보호하시고 인도해 나가시는 것입니다. 이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축복이예요. 그리고 구원으로 말미암아 성벽과 외벽으로 삼으시리로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모든 것들을 완벽하게 구원이라는 사실을 가지고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시겠다라는 말이예요. 구원은 완전한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완전한 것이고, 모자람이 없는 것이고, 충분한 것입니다. 이 사실을 날마다 누려 가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서 여기에 구원으로 성벽과 외벽으로 삼으시겠다 말씀했는데 여러분 구원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나요? 구원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하심으로 말미암아 시작되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3:16절에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이 구원은 하나님의 사랑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시작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 받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어요. 왜냐? 로마서5:8절에 있는 말씀처럼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상태는 죄인 되었던 상태예요. 그리고 하나님을 떠난 우리의 상태는 어떤 상태입니까? 바로 죽었던 상태입니다. 에베소서2:1절에 죄와 허물로 죽었던 너희를 말씀하고 있지요. 그리고 또 하나님을 떠난 우리의 상태가 죽었을 뿐만 아니라 어떤 상태입니까? 바로 법적으로 죄와 사망의 법에 메여 있어서 거기서 아무도 빠져나올 수 없는 상태가 우리의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원죄와 자범죄 때문에 죽을 수밖에 없었던, 구원 받을 수 없었던 우리를 그리스도께서 대속물이 되어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죄를 다 해결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마가복음10:45절에 보면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요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기 위함이다”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죄로 인하여 사탄에게 완전히 장악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사탄의 머리를 깨트리신 것입니다. 요한일서3:8절에 보면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함이라”말씀하고 있습니다. 원죄와 자범죄가 없으신 의인이신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불의한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께로 나갈 수 있는 길이 열려진 것입니다. 벧전3:18절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예수 그리스도의 그의 죽으심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믿고 그 이름을 부르는 자에게 로마서10:13절에 보면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제대로 믿고 영접하게 될 때에, 그 이름을 부르게 될 때에 다시 말씀드리면 하나님과 한 가족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계시록3:20절에 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될 때에 하나님과 한 가족이 된다라는 사실, 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말씀했어요. 하나님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모든 것 다 가진 것입니다. 아예 우리를 하나님께서 고린도전서3:16절에 보면 성전 삼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 그리스도를 모신 자를 일컬어서 요한복음1:12절에 보면 하나님의 자녀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어마어마한 축복을 우리는 알 수 없기 때문에 우리에게 알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 안에 성령을 부어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2:12절에 보면 “너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께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기 위함이다”말씀하고 있어요.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 받고 그 안에 어마어마한 축복이 있음을 우리가 어떻게 알게 되느냐?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심으로 말미암아 그 축복의 역사들을 알도록 하신다라는 사실, 이 구원의 축복, 이 구원으로 성벽과 외벽을 삼으시고 우리를 완전히 오늘도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해 나가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문제는요 여러분 그것은 문제 거리가 아니예요. 그 모든 문제는 사실은 알고 보면 응답의 문이예요. 응답의 시작이예요. 갈라디아서2:20절에 말씀하고 있지요. 우리가 십자가에 못 박힌 바 되었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 지금 사시는 이는 그리스도라고 말씀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은 내가 주인 되어 있고, 내 계획과 내 생각과 내 기준으로 보기 때문에 문제예요. 그런데 성경에는 보면 우리가 십자가에 못 박힌 바 되었다 했어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바 되었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다 했어요. 그런데 우리는 내가 살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문제 아닌 것도 문제로 보고요, 염려하고 걱정하고 의심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사시는 이는 그리스도라 했는데 그 그리스도께서 살아나도록 해야 하는데 그게 안 되어지니까 날마다 문제 앞에, 그 문제를 문제로 보여지고, 아니 문제로 보여진다는 그 자체가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이예요. 여러분 하나님께서 출애굽의 역사 속에 출애굽기 3장에 보면 모세에게 나타나셔서 하나님이 하실 일들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모세는 안 된다 라고 했어요. 자기 기준이지요, 자기 생각이지요, 자기 계획이지요. 하나님은 이미 완벽한 계획을 가지고 모세를 부르셨는데, 모세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결국 그 후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결국 자기 자신의 모든 것 내려놓고, 내려놓는 순간에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되었어요.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기준과 우리의 계획과 우리의 모든 계산들을 내려놓게 될 때에, 거기에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여러분 문제라고 생각하는 그 문제, 염려라고 생각하는 그 모든 것들을 내려놓는 순간에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빌립보4:6~7절에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요.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우리는 모든 것들을 염려합니다마는 모든 것들 염려하지 말라 했습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오히려 기도와 간구로 그 구할 것을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아뢰라 말씀했습니다.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했어요. 여러분에게 있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마시고 복음을 누리는 그 누림 속에 들어가시길 바랍니다. 복음이 노래화 되어지기까지 그 축복 속에 들어가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원이라는 그 어마어마한 축복을 가지고 성벽과 외벽이 되어주시겠다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원 속으로 들어가면 되어요. 복음 속으로 들어가면 되어요. 이 복음은, 구원은 우리가 처음 믿을 때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오늘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구원의 축복이예요, 복음의 축복입니다. 이 비밀들이 모든 성도들에게 회복되는 그런 축복된 응답이 있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밤에 현장에서 중심으로 부르는 노래
두 번째입니다. 밤의 현장에서 중심으로 부르는 노래입니다. 우리가 회복해야 될 부분들이 있다면 밤의 현장에서 중심으로 부르는 노래가 회복되어져 됩니다. 오늘 9절에 보면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요. “밤에 내 영혼이 주를 사모하였은즉, 내 중심이 주를 간절히 구하오리니” 내 중심이 주를 간절히 사모한다 했어요. 여기서 말하는 밤은 시간상 낮과 밤, 물론 그 밤도 이야기 할 수 있겠습니다마는 여기에서 나오는 밤은 우리 인생에 살아가면서 일어나는 어려움들, 또 환란들, 힘들 때에 중심으로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우리에게 회복되어져야 함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잖아요. 사람들이 너무 어렵고 힘들다 보면 살아가는 동안에 무엇을 잃어버리기 쉽냐? 평강을 잃어버리고 살아갑니다. 너무 힘들다 보니까 삶이 너무 어렵다 보니까 평강을 잃어버리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이사야26:3절에 보면 심지가 견고한 자에게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겠다. 여기서 말하는 심지가 견고하다는 말은 무엇을 말합니까? 마음이 한결같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제대로 받지 못하면 어려움 오면, 문제를 당하면 마음이 갈리어집니다. 두 마음으로 나뉘어 져요. 그래서 많은 경우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 보면 교회 한 다리 걸쳐놓고 세상에 한 다리 걸쳐놓고 그렇게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늘 어렵고 힘든 거예요 사실은. 여러분 오늘 본문에 심지가 견고한 자는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겠다 말씀했습니다. 여기에서 심지가 견고하다는 말은 다른 말로 하면 복음의 터가 굳어진다는 말이예요. 복음의 터가 굳어지면 먼저 염려와 걱정을 내려놓게 되어집니다. 복음의 터가 굳어질수록 우리가 염려하는 것, 걱정하는 것들을 다 내려놓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염려가 무너지면 사탄과 흑암의 세력이 다 무너지게 되어 있어요. 베드로전서5:7~8절에 뭐라고 했습니까? 여러분 “너희 모든 염려를 주께 맡겨버리라” 했어요. 주께서 너희를 권고하심이라. 그러면서 5:8절에 뭐라 했습니까?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처럼 두루 삼킬 자를 찾는다 했습니다. 여러분 어떤 자를 찾아 심방합니까? 바로 7절에 말하고 있잖아요. “모든 염려를 주께 맡겨버려라 주께서 너희를 권고하시리라”말씀했는데 내가 염려하니까 그것을 가지고 악한 사탄이 우리를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염려가 무너지면 사탄과 흑암의 역사들이 다 무너지게 됩니다. 그때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찾아오는 답이 있습니다. 그게 뭡니까? 평강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최고의 축복 중에 축복이 있다면 평강이지요. 이것은 인간 스스로 노력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평강은 하나님께로부터 임하는 것입니다. 돈 있다고, 성공했다고 평강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만이 줄 수 있는 것이고, 주께서 주시는 것이 바로 평강입니다. 그래서 시편29:11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 말씀했어요. 여기서 말하는 평강은요, 내적인 마음의 평안도 말씀하시지만, 외적으로 육신적으로 우리의 모든 삶에 안전하게 지키는 모든 것을 말씀하고 있어요. 내적으로 외적으로 마음의 평안과 함께 외적인 안전함으로 지키시는 모든 것들을 말하고 있어요. 어디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이 평강을 우리에게 주신다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주는 평안, 평강은 일시적인 것이고, 잠깐의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참된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지는 평강을 알지 못하니까 명예와 지식과 권력과 물질에서 평강을 찾기 위해서 나가고 있고요, 또 어떤 사람들은 우상숭배로 평강을 찾기 위해서 우상숭배 절하고 있잖아요.그러나 일시적으로 잠깐의 평안은 있을지 모르지만 근본적인 평강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요한복음14:27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이 시대, 그 어느 시대보다도 하나님의 평강, 그리스도의 평강이 필요한 시대에 저와 여러분 살아가고 있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이 땅에 끊임없이 일어나는 재앙의 역사들, 그 속에서 고통과 실패들이 극대화 되어 있는 지금 이 세상을 저와 여러분이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참된 평안은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왜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인생의 모든 죄와 저주와 재앙의 문제를 단번에, 영원히 해결하신 분이 바로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참된 복음이신 그리스도, 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평안, 이것은 완전한 것이고, 모자람이 없는 것이고, 충분한 것입니다. 이 일에 증인되어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특별히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많은 환경들, 많은 어려움들 닥칠 때마다 우리가 기도하는 것이 뭡니까? 그 환경 없어졌으면 좋겠다. 그 어려움들, 그 환경들 좀 없어졌으면 좋겠다 그런 기도들을 하잖아요.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의 상황부터 바꾸시는 하나님이 아니예요. 우리는 기도하면 당장 상황이 변화되어지는 것을 원합니다마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먼저 평안 주시고, 평안 가진 사람들 통해서 그 환경들을 바꾸어 나가시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우선 순위를 제대로 아셔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들이 없어지길 원하고 있지만, 하나님은 평강의 사람들로 만드셔서 평강 가진 사람들 통해서 그 환경을 바꾸어 가는 믿음을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참된 평강이 저와 여러분 에게 넘치지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 환란이 있을 수 있잖아요.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환란의 문제들, 환란이라는 것은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어찌할 수 없는 것을 환란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진짜 구원과 함께 그 안에 축복을 누리는 자는 그 환란 통해서도 노래할 수 있어요. 오늘 16절에 보십시다. “여호와여 그들이 환란 중에 주를 앙모 하였사오며” 여기에 환란 중에 주를 앙모 하였다 무슨 말입니까? 환란 중에서도 노래하였다는 말이지요. 그렇습니다. 아무리 우리에게 환란이 온다 할지라도 우리에게 구원, 그 구원으로 성벽과 외벽을 삼고 있는 자들에게는 그 환란 속에서도 세상 사람들이 이해 할 수 없는 노래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91:1~10절에 보면 다윗이 고백한 시 인데요, 아무리 환란이 닥쳐온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고 있는 자들에게는 환란이 무너뜨리지 못한다는 사실을 고백한 내용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인데요, 특별히 7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천명이 내 왼쪽에, 만 명이 내 오른쪽에 엎드려지나 이 재앙이 내게 가까이 하지 못하겠고”할렐루야! 천만 만 명이 우리 주위에 엎드려지나 이 재앙이 내게 가까이 하지 못한다 했어요. 어떤 자에게? 구원이라는 견고한 성읍 속에서, 그 구원의 축복의 비밀을 누리는 자들에게 그 환란도 그들을 무너뜨릴 수 없다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0절에 보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하지 못하리니 ...그렇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에게 재앙이 여러분을 떠나가는 그런 역사가 여러분 걸음 속에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도행전4:29~31절에 보면 사도들이 복음 전하는 일에 핍박을 받았어요. 환란 되는 일들이 일어났어요. 그런데 그 사도들은 그 환란을 없애달라고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조금만 문제 있고 어려움 당하면 그 문제를 없애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잖아요. 그런데 사도들은 그 환란을 없애 달라고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기도했느냐? 사도행전4:29절에 보면 하나님이 이 환란을 굽어보시옵소서. 하나님 보시옵소서. 그러면서 우리의 입을 열어서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게 하옵소서 이야기 했어요. 기도가 다르잖아요. 환란이 환란이 아닌 것을 알았어요. 그래서 오히려 우리의 입을 열어서 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전하게 하옵소서. 기도하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어요. 구원과 구원 안에 있는 축복의 비밀을 누리는 자에게는 그 어떤 환란도 환란이 아닌 것입니다. 오히려 안디옥 교회는 환란이 일어났을 때에 정상적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순교하는 교회가 만들어지게 되었고요, 사도행전12:1~25절에도 보면 결국 초대교회 엄청난 핍박, 야고보가 칼에 베임을 당하고 순교당하고, 베드로조차도 옥에 갇혔을 때, 초대교회가 간절하게 기도할 때 그때 하나님께서 손을 들어서 헤롯을 꺾고 하나님의 일을 나타낸 사실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정말로 구원과 함께 그 안에 있는 축복의 비밀을 누리는 자에게는 그 어떤 환란도 무너뜨릴 수 없는 그런 축복된 역사가 우리 안에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여러분 모든 현장에서 복음의 능력으로 부르는 노래를 회복하시기를 바랍니다. 한번 받아 합시다. “모든 현장에서 복음의 능력으로 부르는 노래를 회복하자”좀 깁니까? 모든 현장에서 복음의 능력으로 부르는 노래를 회복하고 찾아내세요. 왜냐? 여러분은 전도자이기 때문에...그러면 어떻게 하면 되느냐?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신령한 젖이라고 말씀했지요. 날마다 그 말씀에 대한 사모함, 말씀의 흐름을 놓치지 않으면 어느 날 생명의 역사들이, 생명의 능력이 우리에게 체험되어지게 됩니다. 그렇게 될 때에 모든 경우에 승리하는 노래를 부르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여러분 모든 현장에서 복음의 능력을 누리는 노래를 회복해야 되는데 이 일을 위해서 신령한 젖인 말씀의 흐름을 놓치지 마시고 그렇게 생명의 능력이 체험되어지게 있어요. 그렇게 되어지면 모든 경우에 승리하는 노래를 부르게 됩니다. 바울이 빌립보4:12절에 그 어려운 핍박 가운데서도 나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했어요. 모든 환경 속에서 모든 조건 속에서도 승리할 수 있는 일체의 비결을 가졌다라고 이야기 하고 있어요. 이 축복이 우리 모든 하나교회 성도들에게 그대로 임하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9년 5월 19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전도자가 부를 찬양
(사26:1-7)

서론: 이 시대는 영적전쟁의 시대입니다. 갈수록 생명 가진 자와 없는 자가 구분 되어집니다. 그래서 오늘도 복음에 집중함으로 힘을 얻고, 복음에 깊이 뿌리 내려야 합니다. 노래까지 회복 되어야 합니다(복음 누림). 복음 누림의 최고 되는 것이 노래 되어 나오는 것입니다. 복음이 생활화 되어야 합니다.
사26:1절에 그 날(70년 동안 바벨론의 포로에서 해방 되는 날)에 유다 땅에서 이 노래를 부르리라(찬송 해야 할 내용). 모든 인생은 인생의 12가지 문제 속에서 살아갑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 받았습니다. 그 구원의 축복에 대한 감사와 감격을 찬송 하는 것입니다.
1. 나의 현장에서 복음으로 부르는 노래
가. 날마다 누려야 할 구원의 축복(사26:1-2)
1) 그 날 - 바벨론에서 해방 된 그 날(그리스도 안에서 누려야 할 하나님의 나라)
2) 세상의 자기의 열심히 행복과 만족을 누림(갈급) - 하나님을 떠난 사람은 불안(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성을 쌓음)
3) 그리스도 안에서 주시는 축복으로 행복과 만족을 누림 - 견고한 성읍에 들어감
나. 구원으로 성벽과 외벽을 삼으심
1) 구원(하나님의 사랑으로 시작 - 요3:16) - 우리를 보호, 지키심
2) 구원 받을 수 없는 상태 속에 살아감(롬5:8) - 허물로 죄로 죽음(엡2:1), 망할 수 밖에 없는 상태(롬8:2)
3) 대속물로 그리스도께서 죽으심(막10:45), 그리스도께서 사단의 권세를 깨뜨리심(요일3:8), 불의한 자를 대신해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하나님께 인도(벧전3:18),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인도하심(요14:6)
4)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롬10:13),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더불어 마시는 축복을 주심(계3:20), 하나님의 성전 삼으시고(고전3:16), 자녀로 삼으심(요1:12), 구원 받은 은혜와 축복을 알도록 성령을 보내심(고전2:12)
다. 문제 - 응답의 문
1) 문제 앞에서 해결하지 말고 생각, 판단, 계획을 버림(갈2:20)
2) 내 생각, 주장을 내려 놓음 -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출3:1-20)
3) 염려를 버리는 순간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됨(빌4:6-7)
4) 문제를 해결 하려고 하지 말고 복음 누리는 속으로 들어감
2. 밤(어려움, 환난)의 현장에서 중심으로 부르는 노래
가. 심지가 견고한 자 -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심
1) 하나님의 은혜를 제대로 받지 못 하면 어려움 앞에 두려움이 생김
2) 복음의 터가 굳어지면 걱정과 염려가 버려짐, 염려가 무너지면 사단이 무너짐(벧전5:7-8)
나. 평강의 복 - 내적, 외적으로 하나님이 보호, 안전하게 지키심
1)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축복은 평강 - 하나님이 평강의 복을 주심(시29:11)
2) 세상이 주는 평안은 일시적인 것(우상숭배를 통해) -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은 근원적인 것(요14:27)
3) 하나님의 평강이 필요한 시대(재앙과 흑암이 가득함) - 그리스도 안에 참된 평강(그리스도만으로 충분, 완전, 모든 것)
다. 환난속에서 부르는 노래(사26:16) - 그리스도를 피난처 삼음
1) 밤에 찾아오는 공포(시91:5),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시91:6) - 화가 미치지 못 하고 재앙이 오지 못 함(시91:10)
2) 핍박 가운데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 해 달라는 기도(행4:29-31)
3) 환난 가운데 안디옥교회가 세워짐(행11:19)
4) 핍박 속에서 기도함으로 헤롯을 꺾음(행12:1-25)

결론: 모든 현장에서 복음의 능력을 누리는 노래를 찾으시길 바랍니다. 신령한 젖인 말씀을 사모하면 됩니다. 말씀의 흐름을 놓치지 않으면 됩니다. 그러면 매순간 생명을 누리는 축복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어떤 경우에도 생명을 누리는 노래를 부르게 됩니다(빌4:12). 어떤 경우에도 여호와 한 분만으로 만족, 즐거워하게 됩니다(합3:17-19). 모든 경우에 하나님이 승리를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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