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근본(박지온 목사)
2019-06-02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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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일 2부 예배 박지온 목사
“신앙의 근본”
(행1:1~8, 14)
행1:1~8, 14
■ 기도하겠습니다. 전능하신 아버지여, 하나님의 은혜와 그 능력 속에, 그 축복의 계획 속에 오늘까지 인도하심을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이 시간 주실 말씀을 하나님의 계획 속에 인도받게 하셨습니다. 듣는 자마다 복음에 더 깊은 뿌리를 내리고 세계복음화에, 특별히 237 나라 살리는 일에 쓰임 받는 축복으로 역사해 주옵소서. 특히 남미에 가 계시는 우리 담임 목사님, 영육 간에 새 힘으로 인도하시고 독수리의 날개 침같이 하늘로 올라가는 그 힘으로 오늘도 하나님의 능력 속에서 말씀 잡고 인도 받는 축복으로 역사해 주옵소서. 가는 곳마다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상당히 오랜만에 서게 되었는데 저는 이 강단에 서는 것이 늘 힘듭니다. 달리 힘이 드는 게 아니라 늘 제 기준에, 제 기준인데 좋은지 맞는지 틀리는지 모르지만 일단은 옛날부터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강단 메시지를 잡고 원고가 준비 되어도 두 시간 동안의 기도 없이는 안 서는 버릇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데 어제 갑자기, 그 전에 준비를 한다고 해도 이리저리 잘 안 되고 어제 저녁에 갑자기 본격적으로 준비한다고 원고를 잡았는데 밤새도록 준비했습니다. 밤새도록 기도가 또 안 되었습니다. 그래서 새벽에 마무리를 해야 하는데 도저히 잠이 와서 안 되어서 누웠다가 또 깨어서, 1시 50분쯤에 깨어서 준비를 했습니다. 했는데 준비도 안 되고 기도도 안 되고. 그래서 제가 이 자리에 섰을 때 기도가 되고 또 마음에, 심령에 준비가 되면 힘 있게 서는데 잘 안 되어서, 강단에 서는 게 그래서 두렵습니다. 힘들고, 여러분들 보면 또 미안하고, 이상하게 죄 지은 것 같고. 여러분, 그래서 좀 힘드는데 여러분들이 지금이라도 합심해서 마음으로 들으시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제목을 잡으면서 느낀 것은 지난번에 어떤 목사님이 다락방 우상이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뭔가 말씀을 듣는 동안에 아, 이거 진짜 율법 중의 최고 율법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맞다, 안 맞다, 정죄하는 것만큼 무서운 것이 없고 특히 구원 받았다, 못 받았다는 것은 말할 수 없는 율법인데 그래서 내 마음에 우리 교인들은 절대 아니다,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 하면 오늘 본문에 죽 말씀했습니다만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고 마음에 영접하면 누가 임합니까? 누가 옵니까? 성령께서 오십니다. 성령께서 한 번 내 안에 오시면 떠납니까, 안 떠납니까? 옛날의 일이지 절대로 안 떠납니다. 여러분이 가라고 해도 안 갑니다. 기어코 내 안에 계십니다. 버티고 계십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떠나버리고 내 안에 우상이, 다른 것이 왔다, 그것은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특별히 한 번 영접하면 영원히 함께 거하시는 하나님의 영인데 내가 우상숭배를 함으로써 다른 영이 온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혹시 마음에 이것은 말을 하고 지나가야 하지, 우리 교인들도 안정이 되고 나도 마음이 시원해지지, 그냥 가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오늘 신앙의 기초라고 하여 말씀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말씀을 가만히 준비하다 보니 지난주에 최상국 목사님이 참 설교를 잘하셨습니다. 잘한다고 느낄 때는 뭐가 있느냐? 기도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도 없이는 그렇게 잘한다는 느낌이 안 듭니다. 기도가 있어야 마음에 감동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의 목사님들을 죽 보면 참 영적으로 깊은 분들이 많습니다. 거기다 메시지 흐름을 딱 잡고 깊이 성령의 인도를 받고 기도만 하면 우리 좋은 부교역자들이, 여러분이 깜짝 놀랄 만큼 성장한 모습으로 나타날 것을 저는 확실히 믿습니다. 그런데 다만 복음의 틀이, 그리고 예를 들어 이것이 옛날에는 조직신학이라고 했는데 우리는 류목사님 말씀을 통해서 복음의 틀이 확실하게 잡히면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만은, 어떤 분이 설교 속에서 영을 너무 강조하더라고요. 축복은 영이 받는 것이 확실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영을 강조하다 보면 다른 것으로 빠지기 쉽습니다. 그런데 그 성향이 굉장히 영적으로 깊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앞으로 잘 성장하면 누구보다도 영적 설교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요한삼서 1:2)” 했는데 범사는 육입니까, 영입니까? 범사가 육입니까, 영입니까? 영이 잘 됨같이 범사에 잘 된다 했는데 영이 잘 되면 범사, 육체의 모든 것도 풀리게 되어 있습니다.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축복은 영육 간의 축복이지 영만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영이 축복을 받을 때 무엇이? 육신도 함께 복을 받는 것이 우리 사람의 축복의 역사입니다. 여러분, 지금 건강해진다, 그것은 육입니까, 영입니까? 영이 건강하면 육신도 건강하다, 그 얘기입니다. 그런데 우리 삶에서 특히 영적인 눈이 열린 사람은 앞으로 더 깊이 영적인 눈이 열리면 그만큼 영적인 설교가 가능합니다. 옛날에 이것을 영지주의라고 했습니다. 영지주의가 한때 굉장히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 배경이 뭐냐 하면 너무 설교가 깊게 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영지주의 영향이 아주 많았습니다. 그 이유 중의 하나가 영적인 면만 강조했고 육은 악으로 취급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근래에 제가 개척하던 당시에 특별히 이것이 이상하게 젊은 사람들이 굉장히 영향을 받았습니다. 나이 많은 사람들은 감각이 둔해서 그런지 잘 영향을 안 받는데. 제가 개척하던 당시에 이쪽으로 교회를 옮기기 전에 저쪽 18평 블록 교회에 있을 때입니다. 그때에 젊은 성도가 참 성실하고 직장도 가지고 있고 그런 분이, 아주 인물도 있었습니다. 그런 분이 영지주의에, 그때 당시에 그런 흐름이 지방 교회를 통해서 많이 흘렀습니다. 그 흐름에 빠져서 어떤 상황이 벌어졌느냐 하면 육은 무익하다, 육은 유익이 없다, 육은 악이다 해서 육체적으로 마음대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과 상관이 없다, 이분설에 빠지는 것입니다. 영과 상관이 없다, 그래서 주일날 교회도 안 나오고 마음대로 놀러 다니고 이상하게 빠졌습니다. 결국 우리 교회를 떠나고 그 이후에 소식은 내가 못 들었는데 여러분, 영적인 축복을 받으면 반드시 따라오는 게 무엇입니까? 육체도 축복을 받습니다. 그리고 우리 몸은 영육으로 되어 있는 것이지 영으로만 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영으로만 다 되어 있다면 하나도 안 보여야 합니다. 영은 안 보이는 것입니다. 보이는 것은 뭡니까? 육체가 보이는 것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 버젓이 앉아서 얼굴을 맞대며 서로 웃고 눈짓하며 앉아 있는 것은 육체로 와 있기 때문입니다. 영적으로 와 있지만 내 육체로 여기 와 있기 때문에 우리가 보이고, 보고 웃고, 또 육체적인 것이기 때문에 슬퍼하고 기뻐하고 기분 나빠하고 오해하고, 또 별짓을 다 하는 것이 육체입니다. 영지주의에서 생각하는 것은 육체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것은 필요 없다, 이것은 죽은 것이다, 이것은 나와 상관이 없다, 이래 가지고 영적인 것에 깊이 들어가면서 육체를 버렸습니다. 육체는 나와 상관없다고 했습니다. 육체를 지닌 모든 일들은, 행위나 짓들은, 그것은 영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분설에 빠졌습니다. 깊이 영적으로 들어갈 때 상당히 타당한 내용이 됩니다. 그리고 젊은 사람들이 이것에 굉장히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한때 영지주의가 교회사를 흔들었습니다. 그러나 그게 결국 잘못된 것이, 성경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영육입니다. 영혼과 육체입니다. 영혼만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반드시 육체가 따라와야 한 인격체가 되는 것입니다. 한 인격체가 되어서 인격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으로 만나는 것입니다. 예수는 영만 있습니까, 육체도 있습니까? 예? 헷갈립니까? 예수님도 영육이 함께 이 땅에 하나님의 아들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이 이걸 부인하면서 뭐라 하는가 하면 예수님이 육체만 못에 박혔지, 영은 고통을 당하지 않았다, 이런 이상한 소리까지 하고 있습니다. 그게 다 다른 영향을 통해서, 바로 성령의 역사로 이해가 안 되어서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제가 지난번에 얘기를 통해서 너무 마음에 답답한 생각이 있어서 한 마디 좀 드렸습니다. 여러분, 한 번 예수를 영접하고 나면 누가 영혼에, 내 마음에 옵니까? 한 번 영접하면 누가 내 마음에 옵니까? 성령께서 한 번 오시면 떠납니까? 가라고 해도 안 간다니까요. 절대 안 갑니다. 여러분이 죄를 지었다 해도 안 갑니다. 죄를 지었다, 성령이 가 버리셨나? 아닙니다. 혹시 살인죄를 지었다 해도 안 갑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죄에 대한 값이 따라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사망, 무서운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절대로 죄를 안 짓기를 원하는 것은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모든 죄를 사함 받았기 때문에 또 죄를 지으면 누가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못 박혀야 한다는 이론이 성립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이 다시 못 박히기를 원합니까, 안 합니까? 절대 원하지 않습니다. 한 번 못 박힘으로 그 피로 완전히 우리는 구속, 죄 사함 받고 영원토록 속죄함 속에서 하나님 앞에서 의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여러분은 죄 없다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죄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습니까, 없습니까? 절대 없습니다. 왜? 하나님이 의롭다, 의인이다, 죄 없다, 인정하셨기 때문입니다. 다른 분이 그랬으면 의심도 하고 이상하게 생각하지만 절대자이신 하나님께서 죄 있다, 없다? 없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절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의인이라 칭함을 받았느니라. 성경에서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제가 부산에 한번 훈련을 받으러 갔지 않습니까? 그때 구호가 뭐냐 하면 서로 이렇게 손을 치면서 뭐라고 하느냐? “1, 3, 8, 1, 4!” 그럽니다. 지금도 그것이 기억이 납니다. 계속 만날 때마다, 서로 그걸로 또 친하게 되고 손바닥을 서로 부딪침으로 더, 뭔가 사람이 육체적으로 부딪치면 더 친해지고 그런 거 있지 않습니까? 요즘 너무 친하려고 해서 다른 짓을 하는 것이 문제이지, 이런 정도면 괜찮습니다. 그래서 ‘1, 3, 8, 1, 4.’ 1은 무엇입니까? 사도행전 1:1 오직 그리스도. 그리스도는 다른 말로 메시야. 메시야는 다른 말로 기름 부음을 받았다, 다른 말로 3직으로 오십니다, 3직. 어떤 3직입니까? 왕으로, 또 제사장으로, 또 선지자로. 그런데 이것은 왕으로, 제사장으로, 선지자로 아니고 참 왕으로. 왜? 이스라엘 백성에게 왕이 많았습니다. 그런 왕이 아니라 내게, 여러분에게 개인적으로, 또 여러분에게 참 왕으로. 그 다음에 또 참 제사장으로. 그 다음 또 뭡니까? 참 선지자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제사장이 참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제사장이 아닌, 한 번 제사장으로 영원히 죄를 해결하신 참 제사장. 그 다음에 또 참 선지자. 한 번 우리에게 하나님으로 가는 길을 인도하셨으며 여러분과 제게 영원히 인도하실 분이시다, 그런 의미입니다. 이것을, 이 사실을 여러분, 믿습니까? 믿어집니까? 믿습니까 해서 “믿~습니다!” 이게 아니라 여러분이 저절로 어떻게 되어야 됩니까? 믿어져야 합니다. 이것은 내가 믿는 게 아닙니다. 믿어진다는 것은 위로부터 힘이 와야 믿어지는 것이지, 내 힘으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 시간 설교 속에서 조금 전에 고백했습니다만 설교가 늘 짧다고 합니다. 오늘 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짧은 이유 중의 하나가 힘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좀 열을 내면 그 다음에 이어갈 힘이 없어서 중간에 흩어 버립니다. 그런데 오늘은 좀 힘이 있을 것 같은데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부터 주시는 힘! 성령의 힘! 이것이 여러분과 제게 언제까지? 영원토록. 하나님 앞에 가서도 계속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삼위의 하나님, 누구입니까? 성부 하나님, 또 성자 하나님, 또 성령 하나님. 성부 하나님은 뭐로 오셨습니까? 말씀으로. 성자 하나님은 구원으로, 의로. 그 다음에 성령 하나님은 지금 나와 함께 임재하십니다. 영원히 성부, 성자 성령. 이 세 분이 여러분과 항상 함께, 뭐라고요? 있을지어다! 네, 이것이 마지막에 우리 예수님께서 가시면서 여러분과 제게 약속하신 배경입니다. 내가 너희와 항상, 뭐라고요? 함께 하리라. 그 이후에 아무도 지금도, 지금까지도 변함이 없습니다. 계속 함께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러분이 함께가 아니라고 자꾸 다른 소리해서 문제지, 함께 합니다. 함께가 아니라고 하는 자도 예수 그리스도가 믿어지면 함께 하십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비나이다 비나이다 예수 그리스도 모든 문제 해결자다, 그랬을 때 이 소리 안 들어도 됩니다. 왜? 한 번 예수께서 내 마음에 오시면 그리스도로, 성령으로 오시면 영원히 나와 함께 하신 성령께서 우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넘어져도, 자빠져도 상관없습니다. 또 일으키십니다. 누가? 하나님이 함께 하신 그 성령의 능력으로. 이건 위로부터 주신 명령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직장에서나, 어느 곳에서나, 연약함 중에서나, 또 어떤 환경에서도 힘을 잃지 않는 배경이 이 배경입니다. 여러분, 환경 속에서 힘을 잃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조금만 뭔가 양심의 가책이 있으면 세상이 다 죽은 것처럼 해 가지고 얼굴이 죽상이 되어서 나는 아니다, 이제는 다 끝났다 하고 있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괜찮습니다. 그런 자도 누가 함께 합니까? 그래도 성령께서 함께 하십니다. 나는 아니라고 해도 성령께서는 함께 하십니다. 그래서 여기서 나온 배경이 아주 무서운 배경이 나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여러 가지 내가 준비를 한다고 많이 했는데 하나님이 하실 말씀은 또 다른 모양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여러분과 제게 함께 하실 때에 지금 계속해서 우리가 237 나라 살린다는 것이, 이것이 개인화가 안 되는, 그러니까 그리스도, 또 함께 하시는 성령의 능력이 개인화된다는 얘기가 어디서 나오느냐? 지난주 우리 최상국 목사님이 많이 강조했습니다. 어떻게 개인화가 됩니까? 개인화, 개인화, 외친다고 됩니까? 그 다음이 행1:14 구절입니다. 뭐로? 기도가 계속되면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게 잘 안 됩니다. 저는 부산에 가서 느낀 것이, 한 번 호흡기도하면 두 시간씩 새벽에 나가서 바닷가에서 하고 그럽니다. 그런데 아무리 기도를 지금 하려고 해도, 기도는 지금 제목 내놓고 하고 있는데 호흡 기도가 잘 안 되니까 호흡하는데 신경이 쓰여서 기도가 안 됩니다. 이것이 이해가 되는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제가 질문도 하고 그랬는데 호흡기도가 되어야 되는데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이냐? 그것이 메카니즘이 안 되어서 그래요. 이것이 영어로 나온 말인데, 메카니즘 그러면 내 몸이 기계적으로 저절로 움직일 수준까지 내 마음의 신이나 내 마음의 생각들이 이것이 생각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 반복 할 때에 기계적으로 내 몸이 저절로 움직여지는 것을 메카니즘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요즘 다락방 안에서 메시지 속에서 너무 영어가 많이 나와 가지고 이상할 때가 있어요. 어떨 땐 나도 모르게 영어가 나와요. 그럴 땐 집에 가서 찾아보면 영어로 모르겠더라고요, 여러분 그렇잖아요. 메카니즘 잘 모르잖아요. 그런데 별로 어려운 것이 아니예요. 계속 반복하면 되는 그 일입니다. 그런데 운동선수가 왜 승리할 수 있느냐 누구보다도 더 많이 연습을 해야 해요. 메카니즘이 되어야 돼. 그러면 운동선수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빨리 숙달되어서 나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 기도가 왜 류 목사님 말씀처럼 호흡기도가 안되느냐 나는 옛날에 나대로의 기도가 많이 메카니즘이 되어 있어요. 그런데 호흡기도는 메카니즘이 안 되어 있어요. 호흡하면 거기에 신경 쓴다고 기도가 더 안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안되는 겁니다. 요즘 류목사님 정시기도, 24시, 25시, 영원한 기도로 나누면서 24시전에, 무시기도 전에 정시기도 필요없다고 그래요? 왜? 너무 무시기도가 계속 되니까 정시기도할 시간이 없어요. 여러분과 저는 계속 무시기도가 안되니까 정시라도 잡아야 되는데 정시도 안하거든요. 이러면 기도가 안 된다는 정도가 아니고 전혀 기도를 안 해요. 그리고 무엇이 개인화가 안 되느냐? 참 세계복음화, 237나라, 이 복음을 전파하는 사실이 우리 가슴에 개인화가 되지 않습니다. 왜 안 되느냐? 기도가 없으니까 죽으라고 기도가 없으니까 죽으라고 237하려고 해도, 호흡기도를 하려고 그래도. 여러분 되는 분들도 있어요. 특별히 젊은 사람들 훨씬 더 빨리 됩니다. 그런데 대개 모든 사람들이 이것이 안 되고 있어요. 기도가 안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라는 것이 되어진다고 하던데, 여러분 되어집디까? 24시 기도하다보면, 24시 다른 생각 하고 있는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24시가 된다는 것은 처음에 삼위 하나님이 역사하신 그리스도의 능력이 개인화 되어야 합니다. 기도로 실제적으로 개인화 되어야 합니다. 기도가 계속되지 않으면 무시기도, 24시기도, 25시 기도, 영원의 기도 전혀 안 되게 되어 있어요. 저는 새삼스럽게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여러분 호흡기도 되는 분들은 얼마나 행복합니까? 안 되고 있다고 그러면 안 되는 것을 억지로 늙어가지고 되려고 애쓰지 말고 그러다가는 시간이 다 가버리고 그러다가 기도를 전혀 못해요. 그러지 말고 너무 허비하지 말고 그냥 기도를 하세요.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기도는 노력이 따릅니다. 24시 기도를 몰랐던 칼빈은 기도는 노력이라고 그랬어요. 맞아요. 기도가 안 되고 계속 24, 호흡기도가 안 되는 사람은 기도를 하세요. 노력하세요. 여러분 안하지요? 기도도 안하고 계속 24시 호흡 되어진다 백번 그래도 안 됩니다. 여러분 꼬라지를 알아야지. 호흡이 안 되는데 어떻게 24 기도가 됩니까? 여러분 기도를 호흡 속에 넣었기 때문에 되는 분은 진짜 됩니다. 호흡 안하면 죽거든요. 호흡을 계속 넣었으니까..인간의 메카니즘 호흡 안 되는 사람이 있습니까? 아무리 아파도 호흡은 됩니다. 안 되면 죽는 것이지요. 암만 세상이 어지러워도 호흡은 됩니다. 아무리 북한의 김정은이 죽었다 야단해도 호흡은 됩니다. 사실 김정은이 죽었는지 안 죽었는지 모르지만, 숨어있는 같은 그런 기분이 들더라고요. 참 우리나라가 기도를 해야 하는 배경 중에 특별히 여러분 생명과 관련이 있어요. 안하면 죽어요.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지금 모르는 아주 심각한 상황이 우리나라의 배경입니다. 전쟁, 일보직전입니다. 아무렇지도 않지요. 지금 모르니까 그러니까 호흡기도도 모르면 아무렇지도 않아요. 그리고 기도를 해야 되는 것을 조금이라도 알면 기도 안하면 답답해요. 그러니까 제가 강단에 서기가 무섭다고 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강단에 서는 것이 두려워요. 너무 힘들어요. 그래서 어제 하루 잠을 잘 못 자면 여기 당장 부풀어요. 여보 나 여기 부풀었다 하니까 코웃음을 웃더라고요. 여러분 기도가 안 되면 코웃음이 나옵니다. 정말 기도는 해야 합니다. 노력해야 됩니다. 호흡이 안 되는 이상, 기도를 해야 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안 되는 것을 억지로 된다하고 우두커니 서 있지 말고 해야지요. 되어야지요. 노력해야지요. 기도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새벽기도도 그렇고, 통성기도 할 때에 여러분 같이 힘을 모아서 주여 하고 부르는 것, 굉장한 힘입니다. 흑암세력이 싹 물러가는 능력이 나옵니다. 그런데 주여가 안 나와요 지금. 통성기도 하자고 하면 몇몇 사람들 소리만 들리고 지금 안 들려요. 왜? 기도가 안 되는 겁니다. 같이 통성 기도하자고 그럴 때에 여러 사람들이 함께 기도하는 힘이 엄청납니다. 지금 우리 남미에 우리 목사님 보내놓고 통성기도하자고 기도가 나와야 되어요. 가만히 앉아서..그건 기도가 아닙니다. 진짜 몸과 마음을 담아서 기도하는 것은 소리가 나와도 될지 말지인데, 기도가 소리를 안 나오고 있어요. 정말 응답 하시는 역사는, 축복하시는 진짜 실제 역사는 또 그리고 우리 몸과 여러분 개인의 사정과 일들과 몸이 완전히 치유 받는 역사가 언제 일어나느냐? 치유에 류 목사님이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우리 영혼과 마음과 생각과 몸이 하나 되는 때에 완전 치유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이것을 가지고 기도 속에서 깊이 무아지경에 되는 것입니다. 호흡기도도 거기에서 나오는 배경입니다. 그러나 저는 깊이 기도하면 무아지경이라고 하면 이상하지만, 나도 모르게 아무 생각 없이, 내 생각 니 생각도 없이 무아, 나라는 생각 없이 깊이 그런 것에 빠질 수 있어요. 그러면 편안합니다. 그러면 모든 세상의 근심 걱정 이런 것들이 다 사라지고 진짜 평안합니다. 밤새도록 앉아 있어도 지루한 줄을 모릅니다. 그런 순간이 있어요. 그런데 호흡기도하면 그것이 늘 일어나는 일이니까 그 재미가 행복하지 않습니까? 그 재미를 아는데 어떻게 기도가 안 나옵니까? 이것이 호흡기도예요. 그런데 우리는 그것이 잘 안되니까 자꾸 호흡기도, 호흡기도, 억지로 안 되거든요. 기도라도 제대로 해요. 억지로라도 기도하라고요, 힘써, 애써 노력해도 기도는 모자랍니다. 기도가 없으면 모든 것이 허탈합니다. 그래서 개인화가 안 되고, 237 나라에 마음이 안 담기고, 모든 것이 안 되는 이유는 기도가 되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도가 되면 사실화됩니다. 개인화 됩니다. 이것이 구체적으로 위로부터 힘을 얻는 능력이 됩니다. 이 사실이 필요합니다. 저는 강단에 서기 때문에 기도한다는 것과 안한다는 것과 차이는 엄청 난다는 것을 압니다. 기도 하고 섰다, 엄청난 힘이 생깁니다. 안하고 섰다. 힘들어요. 지금 기도를 좀 했는지 힘이 나는 것 같은데, 모르겠어요. 어젯밤의 영향인지 모르겠지만, 여러분 기도한 만큼 능력이 나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런 기도를 호흡기도를 하지도 않으면서 능력이 날 리가 없지요. 힘이 날 리가 없지요. 여러분 모든 일을, 복음의 일을 시작해 놓고는 중간에 다 무너집니다. 우리교회 약점이 그래요. 기도를 옛날에 할 때는 지속은 되는데, 그리고 힘이 있어 나가는데, 여러분 시작은 요란합니다. 많이 해요. 각 곳에서 뭔가 그런데 지속해서 이것이 계속 밀려나가는 힘이 없어요. 그것이 기도가 안 되어서 그래요.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백번 천 번 강조를 해도 기도 속에 모든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됩니다. 이루어집니다. 오늘 길게 말씀 하려고 작정했지만, 길게 할 힘이 없어져 버렸어요. 그런데 한 가지만 여러분 기도하고 또 그 속에 내가 설 때에 여러분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합니다. 3절 아닙니까? 나는 이것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내가 가는 곳에 먼저 내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임하면 무엇이 나옵니까? 그러면 평안이 옵니다. 여러 가지 말로 이야기할 것 없이 저는 그랬어요. 그 다음에 오는 것이 뭐냐 하면 내가 가는 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합니다. 이상하게 내가 가는 곳, 다른 사람도 편안하다고 그래요. 나와 이야기하면 편안하다고 해요. 이것이 보통 축복이 아닙니다. 여러분 만나서 이야기 하면 이상하게 불안하고, 이상하게 성나고, 이상하게 그런 일이 생기는데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예요.
여러분의 이야기를 당시에는 막 기분 좋아 하는데, 기분나빠합니다. 그게 아닙니다 조용하게 하고 뜨겁게 아니해도, 내가 가서 이야기할 때마다, 서로 대화할 때마다 그 사람에게 내가 가진 평안이 임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나와 함께 임하게 되어 있습니다. 힘입니다. 이것이요...그러면 여러분 가는 곳에 평안이 임하면 안 되는 일들도 되어요. 계약이 안 된다고요, 거짓말입니다. 왜? 저 사람하고 이야기하면 굉장히 편안해, 될 것 같아, 계약이 되는 것이지요. 이상하게 저 사람이 웃고 이야기 하는데, 나는 절대로 그렇게 보이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삐딱하게 보이고, 얼굴도 이상하게 보이고, 안되게 되어 있어요. 천사 같은 웃음을 가져도 안 되어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합니다. 다입니다. 모든 것이, 여기에 모든 사업도, 직장도, 학업도 다 되는 것입니다. 왜? 기도를 너무 안 해요. 사람을 만나러 갈 때에 기도를 안 하면 그 사람 볼 때에 기도도 안 나와요. 기도한 배경이 있으면 나도 모르게 기도가 나와요. 그 사람을 만났습니까. 하나님 이 사람에게 하나님이 역사해 주옵소서. 내가 하는 일에 하나님이 역사해 주옵소서. 저절로 사람을 보면 기도가 나오잖아요. 그것은 내가 말로 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말로 하면 곤란해요. 내 속에 다 나오잖아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합니다. 그 다음에 뭡니까? 이 성령의 역사가 그때부터 계속 말씀으로 임하는데, 저는 요즘 간증을 들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어요. 말씀을 듣는 동안에 이런 말씀이 들리더라 그리고 딱 잡고 그 다음에 내가 했대...자기 하는 일과 매치를 시키더라고요. 여러분 말씀이 임했다는 것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말씀은 흐름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요번 설교 제목이 무엇입니까? 기초이지요. 기본이지요. 여러분 제목을 붙잡고 그 제목을 따라 흐르는 말씀을 잡아야 되어요. 그것이 말씀을 잡는 것입니다. 뭐 메시지를 듣다가 내가 느끼고 의문을 가지고 잡았다고 하는 것은 점쟁이들이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잡을 때에 메시지의 제목을 통해서 흐르는 말씀을 잡아야 합니다. 그 흐르는 말씀은 다양합니다. 흐르는 말씀을 잡을 때에 여러분 전체가 다 잡을 수 있어요. 개개인이 말씀의 흐름 속에서 ... 그런데 어떤 많은 사람들은 부분만 딱 잡고 나는 되지만 너는 안 돼. 그것은 말씀을 잡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를 해요. 그리고 간증할 때에 그런 것으로 간증을 하더라고요. 그것은 말씀의 흐름이 아닙니다. 말씀을 잡는 것 아닙니다. 이상한 겁니다. 말씀은 성령의 역사로, 그 말씀의 흐름 속에 성령의 인도를 따라서 내가 잡히는 것이 있어요. 내가 잡히는 것과 잡는 것이 있어요. 그러면 그것을 딱 잡고 일주일 동안 계속 잡고 기도를 해요. 오늘 제가 이 말씀을 할 때에 어떤 말씀이 잡히는지 모르겠지만, 그러면서 또 중요한 것은 요 사도행전11:26절에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찾아봅시다. 중요하니까 다 같이 읽겠습니다.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할렐루야! 이게 엄청난 역사입니다. 크리스챤, 그리스도인, 기독교인의 인격입니다. 한번 두 번 말씀 들었다 되는 것 아닙니다. 성령으로 계속 말씀을 잡고 가다보면 내 안에 그리스도인, 그리스도인의 인격이 형성됩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배웠을 때 그때 이야기가 성화라고 했어요. 우리는 이것을 각인되고 뿌리내리면 뭐가 되어요? 체질이라고 그럽니다. 뿌리내린 대로 우리에게 열매라고 합니까 삶이 와요. 그런데 이 체질이 다른 좋은 말로 한다면 인격입니다. 다락방 인의, 다락방 맨의 인격입니다. 다락방 사역자의 인격입니다. 하나님 나라 내게 임한 자의 인격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안 되면 인격이라고 붙일 수가 없어요. 그래서 우리는 성화가 아니지만 우리 삶이 올 체인지가 됩니다. 무슨 말이냐? 올 인, 올 아웃, 올 체인지 많이 들었잖아요. 올 인은 무엇입니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 전념합니다. 그 다음에 올 아웃은 이 예수 그리스도를 내가 너무 감격 스러우니까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에게 전합니다. 나누어 줍니다. 그러면 올 아웃하면 그 사람들이 자기들도 모르게 가는 곳마다 치유가 나오고 변화게 됩니다. 이것이 올 체인지입니다. 쉽게 말해서 여러분 이 사실이 이루어지면 바로 그리스도인의, 다락방 맨의 인격이 성취됩니다. 저는 인격이라고 말할 때에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어요. 특별히 나는 개인적으로 교역자이기 때문에 저는 모태로부터 신앙생활을 했고, 어머니의 소원이 어릴 때부터 목사입니다. 저는 너무 목사하기 싫어서 고등학교 때부터 방황하기 시작하고 딴 길로 가기 시작해서, 영 다른 길로 갔다가 또 한번 그러다 보니 하나님 죽은 것 같아서 하나님 진짜 살았나 진짜 죽었나 확인하기 위해서 깊이 기도하고 이것이 안 되어졌을 때에는 죽고 싶더라고요, 여러분 자살 시도를 해 봤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요즘처럼 자살 시도가 아니고 자살 모임에서 서로 시도하는 것이 끊어지지 않도록 서로 격려 해 가면서 같이 죽는 것 이것이 문제이지. 자살 시도하는 것은 인간이라면 다 있습니다. 자기 삶에 회의도 오고, 이래서 내가 이렇게 살아서 뭐 하겠노 하는 생각에서 올 수 있지요. 그러나 자살을 생각을 한다고, 시도한다고 다 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왜? 복음의 역사 속에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그 인격 속에 말씀 잡고 나가다보면 우리 속에 그리스도인의 인격이 됩니다. 인격이 되면 어느 수준에 가서 나도 모르게 저절로 되어지는 것이 있어요. 모태로부터 되어지고, 오다가 되어지고, 말씀에 자극 받아 되어지고, 어떤 목사님의 설교의 영향에 의해 되어지고, 이런 것이 다 메시지를 듣다보면 자꾸 차곡차곡 쌓여집니다. 여러분 한 번 두 번 듣고 나오는 것 아닙니다. 계속 메시지를 듣다보면 우리 속에 이것이 쌓입니다. 그때부터 어느 순간 인격이 형성됩니다. 이게 너무 중요해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합니다. 가는 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합니다. 나는 이 말이 너무 좋아요. 그리고 너무 확신합니다. 성령이 오늘도 내가 가는 길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 누가 합니까? 성령께서 역사하십니다. 그러니까 두려울 것이 없어요. 그러니까 조급함이 없습니다. 편안합니다. 말하다보면 또 엉뚱한 소리 드러 합니다. 하나님 이건 잘못 말했네요. 그래도 괜찮다 싶은 생각을 해요.
하나님의 나라가 지금 성령으로 내 실태와 상관없이 역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목회생활에 필히 교역자들에게는 어떤 면으로든지 이것이 확실하게 인격이 이루어져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일반 성도와 달리 교역자들에게는 확실한 인격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어머니가 옛날에는 다 그렇잖아요. 청교적인 사상, 율법이 상당히 쎈 사상이지요. 그래서 그런 사상의 배경에서 우리 목사님들, 대 선배 목사님들의 가르침에 목사가 되려면 제일 주의해야 될 것이 돈, 제일 처음에 돈, 여러분 돈 좋아하지요. 돈 좋아하지 않는 사람 있다면 그것은 등신입니다. 애들이 만 원 짜리 가지고 푹 던지는 것은 바보라서 그렇지, 아직 아이큐가 안 돌아가서 그렇지, 돌아가면 절대로 안 놓습니다. 한번만 좋아하면 달라하면 절대로 안 주지요. 돈, 돈 다 좋아합니다. 그래서 돈의 노예가 되기 쉽습니다. 이런 인격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거기서 나오는 얘기 중의 하나가 뭐냐 하면 저는 교회 부임하자 말자 절대 내 사례에, 돈에 절대로 메이지 않기를 내가 그렇게 살아야 되겠다. 그래야 교인들이 따라오지 않습니까? 여러분 돈에 신뢰가 되면 자연적으로 그 목사에 대해서 신뢰가 갑니다. 저 사람 돈에 너무 신뢰가 없어, 돈에 땡보야...이러면요 그 목사가 아무리 메시지를 잘해도 그것은 바로 안 들립니다. 돈에 신뢰가 와야 되어요. 그래서 저는 나름대로 옛날에 초기에 그랬잖아요. 집회에 가면 돈 받았던 사례금을 전부 교회에 다 들였어요. 오히려 손해라, 가자면 와이셔츠도 사야 되고, 뭔가 차비도 들고 그러잖아요. 그러면 내 돈이 들잖아요. 받은 돈은 그대로 들려버리니까...그래서 집회 나가는 게 싫어요. 내가 손해인데, 여러분 그 자연적인 내 이야기 같이 들려도 쉽지 않습니다. 내가 수입할 수도 있는데 내가 버려요. 왜 교회에 들여요. 이것을 통해서 우리 부흥사들이 얼마나 돈을 많이 벌어서 집도 몇 채 사고 다 했는데, 나는 그것을 아무리 집회 나가도 집 살 돈이 없어요. 그것으로는 맨날 빚 지지요. 그러나 빚져도 좋습니다. 돈에 대해서 절대 신뢰를 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나도 모르게 실천이 된 것입니다. 돈에 대한 인격입니다. 사람들마다 그것에 너무 안 되어서 신뢰를 잃어버리고, 신임을 잃어버리고, 그 사람들 절대 돈거래 하지 말라고, 류 목사님이 뭐하지 말라고 했지요? 돈 빌려주지 말라. 복음이 안 된 사람은 절대 돈 절대 빌려주지 말라 했어요. 그리스도가 안 된 사람은 절대 빌려주지 말라고 했어요. 왜? 떼일 수 있다고. 여러분 복음이 안 된 사람에게는 신뢰가 안 가기 때문에 돈도 안 빌려주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절대로 나에게 돈 안 빌려 준다고 하면 스스로 생각해야 합니다. 아! 내가 그리스도가 안 되어있구나. 신뢰가 안 됐구나. 여러분, 돈 문제가 교회 안에 많습니다. 이 문제로 시험 드는 교회가 어마어마하게 많습니다. 그 다음에 두 번째가 뭐냐 하면 명예라는 것인데 명예는, 아예 이것도 좀 무리가 있더라고요. 제가 그런 것에 잡히다 보니까. 노회의 노회장이 되었는데 저는 그게 싫었습니다. 내가 싫어한다기보다도 전혀 그런 사상을 싫어하니까 노회장이 싫더라고요. 노회장이라면 서로 하려고 하는데. 돈까지 써가면서 하는데. 그래서 노회장이 되었을 때 저는 다른 사람에게 넘겼습니다. 부노회장이 되면 노회장 되는 것이 당연히 옵니다. 그래서 저는 이것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저는 임원에서 빠져나와 버렸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 앞에, 여러 사람들 앞에 절대로 잘했다 소리를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해야 합니다. 할 수 있는, 하는 사람이 있어야 노회가 됩니다. 우리 교회는 어느 노회 소속입니까? 어느 소속이요? 나도 잊어버렸습니다. 하도 노회에 대한 생각이 없어서. 남대구노회? 대구노회? 대구노회 소속입니다. 여러분, 이 대구노회도 노회장이 있어야 하고 부노회장이 있어야 하고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하기 싫어했습니다. 이것을 명예로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데 날 닮아서 우리 신목사님도 절대로 안 합니다, 지금. 그 나이에 전부 노회장 다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교회에서 노회를 연다고 해서 아, 이제는 노회장, 때가 되었으면 서기라도 하려나 싶었는데 아니더라고요. 여러분, 어쨌든 좋다 나쁘다 이전에 명예로 생각했기 때문에 싫어했습니다. 여러분, 그것도 나름대로 나의 인격입니다. 명예에 대한 인격입니다. 그뿐이 아니라 특별히 더 이제는, 제가 이 얘기를 여러분에게 길게 할 것은 없습니다. 목사가 제일 경계해야 할 계명이 뭐냐? 7계라 합니다. 간음하지 말라. 그런데 제가 이것은 어머니의 특별한 단속도 있지만 제 나름대로 제가 제일, 내가 약점이 아니라 내가 빠질 수 있는 통로였습니다, 이게 보니까.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나를 좋아한 여학생이 있었습니다. 절대 안 넘어갔습니다. 자제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내가 자제를 한 게 아니라 위로부터 온, 나를 키운 어머니의 교육에 의해서, 말하자면 어머니의 인격에 의해서 자제를 한 것입니다. 이게 계속해서 그때부터, 초등학교 3학년이 뭐 압니까? 계속해서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자꾸 생기더라고요. 여러분, 행복합니까? 절대로 행복한 것 아닙니다. 그런데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시간이 갈수록 이것이 쌓이는데 문제는, 여기서 해방되지 않으면 문제 생깁니다. 이 자제하는 능력, 이 자제하는 인격, 이것을 통해서 모든 일에 자제하는 힘이 생기더라고요. 모든 일에. 여러분, 저는 그렇게 지금까지 성격 자체로는, 생긴 대로 놀았고 고집이 세서 마음대로 하는 성격이 많은데 이런 도덕적인 문제, 이런 문제는 상당히 많은 자제를 한 것으로 이해가 됩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현장에, 현직에 있을 때는 성을 좀 안 냈습니다. 어지간해서는 성을 안 내는 것이 내 자제입니다, 일종의. 그런데 요즘 우리 집사람에게 걸핏하면 성을 내고 그럽니다. 하는 말이, 옛날에는 절대로 성을 안 냈는데 사람이 변해도 너무 변했다고 그러더라고요. 변했습니다, 내가 봐도. 왜? 자제력을 잃어버렸습니다. 내 마음대로 사니까. 왜? 자제할 사람은 한 사람뿐이니까. 가정에서 뭐 자제가 필요합니까? 마음대로 해야지. 이것조차 잘못된 생각입니다. 자제해야 합니다. 남편에게, 아내에게. 자식들에게, 상대방에게. 내가 하고 싶다고 하는 게 아닙니다. 자제하는 인격이 되면 모든 것에 다 연결이 되더라고요. 다 연결됩니다. 모르겠습니다. 제가 이 말을 하니 너는 얼마나 잘 했나 싶은 사람이 누가 있을지 모르겠는데 그런 분이 있으면 내게 얘기해 주십시오. 얘기를 해야 내가 알지요. 나는 그래도 내가 잘했다고 생각하니까. 그것은 여러분, 이것이 교역자의 인격이란 굉장히 중요합니다. 특히 그런 것이 너무 심하니까 우리 교회 부교역자들에게는 이런 남녀관계에 문제 있으면 그 자리에서 잘라버렸습니다. 두말 안했습니다. 왜? 영적으로 흐려지더라고요. 연애 감정이 평신도는 있습니다. 할 수 있습니다. 하고 있습니다. 내가 압니다. 그것을 다 덮어 놓았습니다. 교역자가 하게 되면 소문이 납니다. 그러면 영적인 분위기가 흐려집니다. 굉장히 싫어합니다, 내가. 그래서 교역자가 연애했다 뭐했다? 당장 잘라버립니다. 두 말 할 것도 없습니다. 너는 안 돼. 자제하는 정도가 아니라 벌써 도가 넘어버렸습니다. 왜? 그만큼 모든 성도들을 영적으로 흐리게 되어 있습니다. 잘못된 것입니다, 이것은. 자제해야 합니다.
이것을 그냥 들어 넘기지 마십시오. 그래서 특별히 우리 교회의 총각들, 교역자라면 여기 총각들이라면 다 차세대 선교사들인데 차세대 선교사들 진짜 조심하십시오. 자제해야 합니다. 연애한다는 소리 조금만 들려도 나같으면 다 잘라 버립니다. 다 보내 버리지, 인간이 덜 되어서 어디 교역자를 한다고. 차세대, 그것도 선교사한다면서.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 감정은 도저히 용납이 안 됩니다. 왜? 영적으로 흐려지게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여러분, 연애하면 오직 예수가 됩니까, 안 됩니까? 됩니까, 안 됩니까? 안 됩니다. 오직 예수 안 하니까 오직 그가 보이고 그 여자가 보이고 그 남자가 보이지, 오직 예수 안 보입니다. 예수 안 하니까 별게 다 보입니다. 그러면서 이런 소리, 저런 소리 다 들립니다. 오직 예수 하면은 연애에 대해서 다른 소리 들어도 안 들려요 그래서 우리 교회는 꼭 결혼해야 목사로 사용했고 정식 전도사로 올 때에 결혼한 사람만 받았고 결혼 안하면 가서 해오라고 합니다. 특별히 교역자들에게는 연애라는 소리 이만큼 들어도 절대로 치명타입니다. 안됩니다. 이 흐름이 전체 교인들에게 영적으로 흐려지게 됩니다. 조심하셔야 됩니다. 차세대 선교사들 조심하셔야 됩니다. 총각들 조심하세요. 일반 총각들을 다 못하게 하면 곤란하죠 해도 됩니다. 소리 없이 조용히 될 때까지 조용히 소리 없이 그러면 할 수가 있어요. 내가 이러면서 내 자신이 웃기는게 뭐냐면 세광이가 다 죽었다 끝이라 그래서 마지막 예배를 드리고 난 후에 병원에 3개월 동안 있었는데 미국 들어가기 전에 병원에 들어가서 있는데 웬 처녀 하나가 와서 수발 들고 도와주고 그러더라고요 이 만큼 벌써 소문이 났으면 바로 해라 퇴원 하자마자 결혼 시켰어요. 그게 지금 미국 가서 잘 살고 있어요. 여러분 나한테 이야기가 들어 올 정도면 굉장히 소문이 났습니다. 벌써 그런데 다행히 이놈은 나한테 까지 소문이 안 들어왔어요. 그래서 끝까지 올인을 했어요. 나한테 소문이 들어왔다 당장 노이다. 이따위 인간이 되가지고 교역자하고 신학교 다닌다 그래 벌써 끝내버렸다. 여러분 왜 그러냐? 연애를 하게 되면 절대로 오직 그리스도가 안 되더라 입니다. 영적으로 흐려지게 돼 버려요 두말할 것 없어요. 내가 이 말을 왜 하느냐 잘 이해를 하셔야 됩니다. 교역자가 된다. 오직 그리스도 이게 되기 위해서도요 내가 가고자 하는 나라에 하고자 하는 나라에 차세대 선교사로 가기 위한 훈련에 전념하세요. 여러분 차세대 선교사 훈련에 이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부산에 가보니깐 내가 지금 진짜 훈련을 받고 새벽기도 끌려 다니고 어려운데 바닷가에 절벽으로 끌려가고 그건 끌려가는 거지 내가 못가거든요 그 절대로 안합니다. 그 하기 힘들어서 지금도 안가요 오라 해도 절대로 안갑니다. 그게 신체적으로 안 돼요 나를 수발든 사람은 전부 암 환자로써 낮고 있는 과정이고 전부 청년들입니다. 그런데 다 환자라 알고 보니깐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남에 짐을 지는 것 남에 패를 끼치는 게 싫어요. 나도 남에게 패를 받지 않지만은 뭔가 고독한 인생입니다. 남에게 도움도 싫고 남에게 도움을 받는 것도 싫고 오직 하나님께로만 그런데 하나님께로 만이 맞는 말 같아요. 인간적으로는 인격이 틀렸어요. 사람이 도와줄 줄도 알고 도움을 받을 줄 알고 이렇게 너그러운 성격이 돼야 되는데 이런 게 전혀 없어요. 너무 고지식하니깐 어른들은요 나만 보면 피해 버려요. 그런데 하나 젊은 분들은요 처녀들이든지 유부녀들인지 눈 똑바로 뜨고 안녕하세요. 그럽니다. 상관없어요. 왜 내가 옛날에 그런 오직 하는 성격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좋은 성격은 아닙니다. 교역자라면 하나님 앞에서 내가 외롭게 살아도 좋습니다. 올인 할 수 있는 오직 이것이 이루어 질 수 있도록 내 주변에 모든 것을 자체해야 합니다. 이렇지 않으면 자꾸 헛된 욕심, 다른 생각이 나와요 여러분 기도할 때에 연애 할 때는 기도를 시작하면 첫 시간부터 마지막 까지 그 여자가 왔다갔다 그 남자가 왔다갔다 오직 예수 안보입니다. 그래서 영적으로 흐리다는 얘기입니다. 하나님께서 교역자로 세우시고 차세대 선교사로 세웠다 오직 하세요 다른 것 기도해도 안보이도록 그래도 내가 보이면 벌써 자세가 끝났다 생각하시고요 워낙 신 목사님이 부드러워 가지고 우리 박래휘 목사님이 그더라고요 내가 신 목사님의 너무 좋은걸 배웠다고 절대로 말씀하지 않는 걸 배웠다고 합니다. 말씀해야 합니다. 워낙 입이 무거워서 그렇지 왜 그걸 율법이라고 취급을 해요 어떤 나라 던지 법이 없는 나라가 있습니까? 법이 없는 교단이 있습니까? 법이 없는 전도회가 있습니까? 어떤 전도회? 규칙이 나옵니다. 여러분 이 법을 내가 운영하는 힘을 교단이 그 법을 교회에 적용하는 힘을 그걸 가지고 행정이라 그럽니다. 행정을 이렇게 한다고 해서 옛날에 대구 율법으로 소문이 났습니다. 나는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우리 교회를 지키기 위해서 행정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뭔가 행정이 바로 되면 편안합니다. 앞, 뒤 싸움 할 필요가 없어요. 왜 순서가 다 정해져 있기 때문에 이게 안 되면 니가 옳으니 내가 옳으니 순서와 규칙이 안 되어있으면 늘 싸움합니다. 장로들 모이면 내가 맞다 니가 맞다 규칙이 있으면 딱 되면 되거든요 규칙이 있으면 딱 해결 되잖아요 그런데 그걸 내가 뭔가 얘기 하고 강조했다고 대구 율법이라 하는데 그 율법 소리는 계속 해도 괜찮습니다. 있어도 됩니다. 행정이 있어야 교회가 편안합니다. 교회가 말이 없습니다. 교회 행정이 모든 일들이 돌아가게 되어있습니다. 젊으나 늙으나 돌아가게 되어있습니다. 어떤 기관들도 같이 돌아갈 수 있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행정이라 합니다. 어떤 법을 구체적으로 운영하는 단체 어떤 단체를 이끌어가는 힘을 행정이라 그럽니다. 행정을 알기 위해서 행정 관련 두꺼운 책이 있더라고요 독파 했어요 내가 알고 보니깐 우리 목사님들이 독파 한 사람이 없어요. 행정이 없어요. 그 속에 재정 편성이라던가. 모든 편성에 대해서 당회 운영에 대해서 행정 다 들어 있더라고요 근데 이것을 행정이라는 시간이 있어요. 그런데 가르치시는 않더라고요 행정이라는 시간은 있는데 책만 많이 소개해주고 안 가르쳐주더라고요 저는 생각에 반드시 묵사될 사람을 가르쳐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법을 가지고 구체적으로 내 교회에 내가 속한 단체에 적용시켜 나가야 되니깐 말이 없죠. 순서가 있고 앞뒤가 있고 그렇게 되는 것 아닙니다. 그래서 제가 이 시간에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 교회 여러분들이 이미 지어진 교회 신 목사님하고 대화를 많이 해봅니다. 신 목사님이 입을 다물고 있는 이유가 이미 행정이 다 정해져 있기 때문에 말이 필요 없기 때문입니다. 신 목사님 말없다 싶지만 진짜 지혜 있는 분입니다. 그러니깐 어느 부서든지 어느 누구든지 말이 필요 없어요. 저절로 돌라가니깐 그에 비해서 돌아갈 수 있는 힘을 가지기 위해서 기도입니다. 기도 많이 하십니다. 그러면 다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기도 많이 하세요. 노력하세요. 힘을 쓰세요. 다 성취되고도 남습니다. 오직 사도행전 1장 14절에 오로지 기도에 힘쓰니라.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9년 6월 2일 주일 2부 예배 박지온 목사
신앙의 근본
(행1:1-8, 14)
1.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고 마음에 영접하면 성령께서 내 안에 오신다 - 절대 떠나지 않음.
2.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1:2).
영적인 축복 받으면 반드시 육체적인 축복도 받게 된다.
※영지주의(이단) - 영적인 면만 강조하고, 육은 악으로 취급했다(이분설).
3.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서 의인이 되었다(칭의 – 죄 없다).
4. 오직 그리스도(행1:1) 메시야 – 기름 부음 받음.
참 왕(사탄을 이긴 참 왕), 참 제사장(한 번 제사로 영원히 죄 해결), 참 선지자(하나님께로 영원히 인도)
5. 성삼위하나님 - 성부하나님(말씀으로 역사), 성자하나님(구원하심 - 의), 성령하나님(지금 함께 계심).
언제 어디서나, 나의 연약함이나, 어떤 환경 속에서도 항상 함께 하신다. - 힘을 잃지 않는 배경.
6. 기도하고 그 속에 내가 설 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행1:3).
내가 가는 곳에 먼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평안이 나온다.
만남 속에 내가 가진 평안이 상대방에게 임한다. 나라가 임하는 것. 그게 힘이다.
7. 개인화(행1:14) - 기도가 계속되면 개인화가 된다.
호흡 - 연습을 통해 계속 반복하면 되는 것. 내 몸이 기계적으로 저절로 되는 수준까지 가야된다.
호흡기도 – 호흡을 억지로 애쓰지 말고 기도를 하라. 기도는 노력이 필요하다.
통성기도 – 성도가 다 같이 힘을 모아 “주여” 부르짖을 때 흑암세력이 물러가게 된다.
영혼, 마음, 생각과 몸이 하나 될 때 완전 치유가 일어나며 무아지경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억지로라도 기도하라. 힘써 애써 기도해도 기도는 모자란다. 기도가 없으면 허탕이다.
기도 속에 모든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가 된다.
8. 성령의 역사가 계속 말씀으로 임한다.
설교의 제목을 따라 흐르는 말씀을 잡아야 된다. 점쟁이 식으로 말씀 붙잡는 것은 잘못된 것.
9. 기독교인의 인격(행11:26)
말씀 붙잡고 계속 가다보면 내 안에 그리스도인의 인격이 형성된다(각인, 뿌리, 체질).
올인(오직 그리스도 전념), 올아웃(그리스도를 타인에게 전하고 나눔), 올체인지(가는 곳에 치유, 변화)
10. 교역자의 인격
가. 돈에 절대 매이지 않도록 기도하라(돈에 대한 인격 – 절대신뢰).
나. 명예심에 매이지 않도록 기도하라.
다. 간음하지 말라(교회가 영적으로 흐려짐). - 자제하는 인격(모든 일에 자제하는 힘이 나온다).
라. 외롭더라도 올인에 방해되는 주변의 것을 자제 하라. - 다른 마음먹지 말고 훈련에 전념하라.
마. 행정배우라 - 교회를 지키기 위한 것. 교회가 평안하다. 각 기관이 유기적으로 돌아가게 된다.
결론: 그리스도(1), 하나님나라(3), 오직성령(8) 이 언약 붙잡고 행1:14 오로지 기도에 힘쓰니라!
“신앙의 근본”
(행1:1~8, 14)
행1:1~8, 14
■ 기도하겠습니다. 전능하신 아버지여, 하나님의 은혜와 그 능력 속에, 그 축복의 계획 속에 오늘까지 인도하심을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이 시간 주실 말씀을 하나님의 계획 속에 인도받게 하셨습니다. 듣는 자마다 복음에 더 깊은 뿌리를 내리고 세계복음화에, 특별히 237 나라 살리는 일에 쓰임 받는 축복으로 역사해 주옵소서. 특히 남미에 가 계시는 우리 담임 목사님, 영육 간에 새 힘으로 인도하시고 독수리의 날개 침같이 하늘로 올라가는 그 힘으로 오늘도 하나님의 능력 속에서 말씀 잡고 인도 받는 축복으로 역사해 주옵소서. 가는 곳마다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상당히 오랜만에 서게 되었는데 저는 이 강단에 서는 것이 늘 힘듭니다. 달리 힘이 드는 게 아니라 늘 제 기준에, 제 기준인데 좋은지 맞는지 틀리는지 모르지만 일단은 옛날부터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강단 메시지를 잡고 원고가 준비 되어도 두 시간 동안의 기도 없이는 안 서는 버릇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데 어제 갑자기, 그 전에 준비를 한다고 해도 이리저리 잘 안 되고 어제 저녁에 갑자기 본격적으로 준비한다고 원고를 잡았는데 밤새도록 준비했습니다. 밤새도록 기도가 또 안 되었습니다. 그래서 새벽에 마무리를 해야 하는데 도저히 잠이 와서 안 되어서 누웠다가 또 깨어서, 1시 50분쯤에 깨어서 준비를 했습니다. 했는데 준비도 안 되고 기도도 안 되고. 그래서 제가 이 자리에 섰을 때 기도가 되고 또 마음에, 심령에 준비가 되면 힘 있게 서는데 잘 안 되어서, 강단에 서는 게 그래서 두렵습니다. 힘들고, 여러분들 보면 또 미안하고, 이상하게 죄 지은 것 같고. 여러분, 그래서 좀 힘드는데 여러분들이 지금이라도 합심해서 마음으로 들으시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제목을 잡으면서 느낀 것은 지난번에 어떤 목사님이 다락방 우상이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뭔가 말씀을 듣는 동안에 아, 이거 진짜 율법 중의 최고 율법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맞다, 안 맞다, 정죄하는 것만큼 무서운 것이 없고 특히 구원 받았다, 못 받았다는 것은 말할 수 없는 율법인데 그래서 내 마음에 우리 교인들은 절대 아니다,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 하면 오늘 본문에 죽 말씀했습니다만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고 마음에 영접하면 누가 임합니까? 누가 옵니까? 성령께서 오십니다. 성령께서 한 번 내 안에 오시면 떠납니까, 안 떠납니까? 옛날의 일이지 절대로 안 떠납니다. 여러분이 가라고 해도 안 갑니다. 기어코 내 안에 계십니다. 버티고 계십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떠나버리고 내 안에 우상이, 다른 것이 왔다, 그것은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특별히 한 번 영접하면 영원히 함께 거하시는 하나님의 영인데 내가 우상숭배를 함으로써 다른 영이 온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혹시 마음에 이것은 말을 하고 지나가야 하지, 우리 교인들도 안정이 되고 나도 마음이 시원해지지, 그냥 가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오늘 신앙의 기초라고 하여 말씀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말씀을 가만히 준비하다 보니 지난주에 최상국 목사님이 참 설교를 잘하셨습니다. 잘한다고 느낄 때는 뭐가 있느냐? 기도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도 없이는 그렇게 잘한다는 느낌이 안 듭니다. 기도가 있어야 마음에 감동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의 목사님들을 죽 보면 참 영적으로 깊은 분들이 많습니다. 거기다 메시지 흐름을 딱 잡고 깊이 성령의 인도를 받고 기도만 하면 우리 좋은 부교역자들이, 여러분이 깜짝 놀랄 만큼 성장한 모습으로 나타날 것을 저는 확실히 믿습니다. 그런데 다만 복음의 틀이, 그리고 예를 들어 이것이 옛날에는 조직신학이라고 했는데 우리는 류목사님 말씀을 통해서 복음의 틀이 확실하게 잡히면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만은, 어떤 분이 설교 속에서 영을 너무 강조하더라고요. 축복은 영이 받는 것이 확실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영을 강조하다 보면 다른 것으로 빠지기 쉽습니다. 그런데 그 성향이 굉장히 영적으로 깊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앞으로 잘 성장하면 누구보다도 영적 설교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요한삼서 1:2)” 했는데 범사는 육입니까, 영입니까? 범사가 육입니까, 영입니까? 영이 잘 됨같이 범사에 잘 된다 했는데 영이 잘 되면 범사, 육체의 모든 것도 풀리게 되어 있습니다.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축복은 영육 간의 축복이지 영만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영이 축복을 받을 때 무엇이? 육신도 함께 복을 받는 것이 우리 사람의 축복의 역사입니다. 여러분, 지금 건강해진다, 그것은 육입니까, 영입니까? 영이 건강하면 육신도 건강하다, 그 얘기입니다. 그런데 우리 삶에서 특히 영적인 눈이 열린 사람은 앞으로 더 깊이 영적인 눈이 열리면 그만큼 영적인 설교가 가능합니다. 옛날에 이것을 영지주의라고 했습니다. 영지주의가 한때 굉장히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 배경이 뭐냐 하면 너무 설교가 깊게 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영지주의 영향이 아주 많았습니다. 그 이유 중의 하나가 영적인 면만 강조했고 육은 악으로 취급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근래에 제가 개척하던 당시에 특별히 이것이 이상하게 젊은 사람들이 굉장히 영향을 받았습니다. 나이 많은 사람들은 감각이 둔해서 그런지 잘 영향을 안 받는데. 제가 개척하던 당시에 이쪽으로 교회를 옮기기 전에 저쪽 18평 블록 교회에 있을 때입니다. 그때에 젊은 성도가 참 성실하고 직장도 가지고 있고 그런 분이, 아주 인물도 있었습니다. 그런 분이 영지주의에, 그때 당시에 그런 흐름이 지방 교회를 통해서 많이 흘렀습니다. 그 흐름에 빠져서 어떤 상황이 벌어졌느냐 하면 육은 무익하다, 육은 유익이 없다, 육은 악이다 해서 육체적으로 마음대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과 상관이 없다, 이분설에 빠지는 것입니다. 영과 상관이 없다, 그래서 주일날 교회도 안 나오고 마음대로 놀러 다니고 이상하게 빠졌습니다. 결국 우리 교회를 떠나고 그 이후에 소식은 내가 못 들었는데 여러분, 영적인 축복을 받으면 반드시 따라오는 게 무엇입니까? 육체도 축복을 받습니다. 그리고 우리 몸은 영육으로 되어 있는 것이지 영으로만 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영으로만 다 되어 있다면 하나도 안 보여야 합니다. 영은 안 보이는 것입니다. 보이는 것은 뭡니까? 육체가 보이는 것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 버젓이 앉아서 얼굴을 맞대며 서로 웃고 눈짓하며 앉아 있는 것은 육체로 와 있기 때문입니다. 영적으로 와 있지만 내 육체로 여기 와 있기 때문에 우리가 보이고, 보고 웃고, 또 육체적인 것이기 때문에 슬퍼하고 기뻐하고 기분 나빠하고 오해하고, 또 별짓을 다 하는 것이 육체입니다. 영지주의에서 생각하는 것은 육체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것은 필요 없다, 이것은 죽은 것이다, 이것은 나와 상관이 없다, 이래 가지고 영적인 것에 깊이 들어가면서 육체를 버렸습니다. 육체는 나와 상관없다고 했습니다. 육체를 지닌 모든 일들은, 행위나 짓들은, 그것은 영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분설에 빠졌습니다. 깊이 영적으로 들어갈 때 상당히 타당한 내용이 됩니다. 그리고 젊은 사람들이 이것에 굉장히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한때 영지주의가 교회사를 흔들었습니다. 그러나 그게 결국 잘못된 것이, 성경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영육입니다. 영혼과 육체입니다. 영혼만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반드시 육체가 따라와야 한 인격체가 되는 것입니다. 한 인격체가 되어서 인격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으로 만나는 것입니다. 예수는 영만 있습니까, 육체도 있습니까? 예? 헷갈립니까? 예수님도 영육이 함께 이 땅에 하나님의 아들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이 이걸 부인하면서 뭐라 하는가 하면 예수님이 육체만 못에 박혔지, 영은 고통을 당하지 않았다, 이런 이상한 소리까지 하고 있습니다. 그게 다 다른 영향을 통해서, 바로 성령의 역사로 이해가 안 되어서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제가 지난번에 얘기를 통해서 너무 마음에 답답한 생각이 있어서 한 마디 좀 드렸습니다. 여러분, 한 번 예수를 영접하고 나면 누가 영혼에, 내 마음에 옵니까? 한 번 영접하면 누가 내 마음에 옵니까? 성령께서 한 번 오시면 떠납니까? 가라고 해도 안 간다니까요. 절대 안 갑니다. 여러분이 죄를 지었다 해도 안 갑니다. 죄를 지었다, 성령이 가 버리셨나? 아닙니다. 혹시 살인죄를 지었다 해도 안 갑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죄에 대한 값이 따라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사망, 무서운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절대로 죄를 안 짓기를 원하는 것은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모든 죄를 사함 받았기 때문에 또 죄를 지으면 누가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못 박혀야 한다는 이론이 성립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이 다시 못 박히기를 원합니까, 안 합니까? 절대 원하지 않습니다. 한 번 못 박힘으로 그 피로 완전히 우리는 구속, 죄 사함 받고 영원토록 속죄함 속에서 하나님 앞에서 의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여러분은 죄 없다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죄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습니까, 없습니까? 절대 없습니다. 왜? 하나님이 의롭다, 의인이다, 죄 없다, 인정하셨기 때문입니다. 다른 분이 그랬으면 의심도 하고 이상하게 생각하지만 절대자이신 하나님께서 죄 있다, 없다? 없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절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의인이라 칭함을 받았느니라. 성경에서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제가 부산에 한번 훈련을 받으러 갔지 않습니까? 그때 구호가 뭐냐 하면 서로 이렇게 손을 치면서 뭐라고 하느냐? “1, 3, 8, 1, 4!” 그럽니다. 지금도 그것이 기억이 납니다. 계속 만날 때마다, 서로 그걸로 또 친하게 되고 손바닥을 서로 부딪침으로 더, 뭔가 사람이 육체적으로 부딪치면 더 친해지고 그런 거 있지 않습니까? 요즘 너무 친하려고 해서 다른 짓을 하는 것이 문제이지, 이런 정도면 괜찮습니다. 그래서 ‘1, 3, 8, 1, 4.’ 1은 무엇입니까? 사도행전 1:1 오직 그리스도. 그리스도는 다른 말로 메시야. 메시야는 다른 말로 기름 부음을 받았다, 다른 말로 3직으로 오십니다, 3직. 어떤 3직입니까? 왕으로, 또 제사장으로, 또 선지자로. 그런데 이것은 왕으로, 제사장으로, 선지자로 아니고 참 왕으로. 왜? 이스라엘 백성에게 왕이 많았습니다. 그런 왕이 아니라 내게, 여러분에게 개인적으로, 또 여러분에게 참 왕으로. 그 다음에 또 참 제사장으로. 그 다음 또 뭡니까? 참 선지자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제사장이 참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제사장이 아닌, 한 번 제사장으로 영원히 죄를 해결하신 참 제사장. 그 다음에 또 참 선지자. 한 번 우리에게 하나님으로 가는 길을 인도하셨으며 여러분과 제게 영원히 인도하실 분이시다, 그런 의미입니다. 이것을, 이 사실을 여러분, 믿습니까? 믿어집니까? 믿습니까 해서 “믿~습니다!” 이게 아니라 여러분이 저절로 어떻게 되어야 됩니까? 믿어져야 합니다. 이것은 내가 믿는 게 아닙니다. 믿어진다는 것은 위로부터 힘이 와야 믿어지는 것이지, 내 힘으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 시간 설교 속에서 조금 전에 고백했습니다만 설교가 늘 짧다고 합니다. 오늘 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짧은 이유 중의 하나가 힘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좀 열을 내면 그 다음에 이어갈 힘이 없어서 중간에 흩어 버립니다. 그런데 오늘은 좀 힘이 있을 것 같은데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부터 주시는 힘! 성령의 힘! 이것이 여러분과 제게 언제까지? 영원토록. 하나님 앞에 가서도 계속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삼위의 하나님, 누구입니까? 성부 하나님, 또 성자 하나님, 또 성령 하나님. 성부 하나님은 뭐로 오셨습니까? 말씀으로. 성자 하나님은 구원으로, 의로. 그 다음에 성령 하나님은 지금 나와 함께 임재하십니다. 영원히 성부, 성자 성령. 이 세 분이 여러분과 항상 함께, 뭐라고요? 있을지어다! 네, 이것이 마지막에 우리 예수님께서 가시면서 여러분과 제게 약속하신 배경입니다. 내가 너희와 항상, 뭐라고요? 함께 하리라. 그 이후에 아무도 지금도, 지금까지도 변함이 없습니다. 계속 함께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러분이 함께가 아니라고 자꾸 다른 소리해서 문제지, 함께 합니다. 함께가 아니라고 하는 자도 예수 그리스도가 믿어지면 함께 하십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비나이다 비나이다 예수 그리스도 모든 문제 해결자다, 그랬을 때 이 소리 안 들어도 됩니다. 왜? 한 번 예수께서 내 마음에 오시면 그리스도로, 성령으로 오시면 영원히 나와 함께 하신 성령께서 우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넘어져도, 자빠져도 상관없습니다. 또 일으키십니다. 누가? 하나님이 함께 하신 그 성령의 능력으로. 이건 위로부터 주신 명령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직장에서나, 어느 곳에서나, 연약함 중에서나, 또 어떤 환경에서도 힘을 잃지 않는 배경이 이 배경입니다. 여러분, 환경 속에서 힘을 잃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조금만 뭔가 양심의 가책이 있으면 세상이 다 죽은 것처럼 해 가지고 얼굴이 죽상이 되어서 나는 아니다, 이제는 다 끝났다 하고 있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괜찮습니다. 그런 자도 누가 함께 합니까? 그래도 성령께서 함께 하십니다. 나는 아니라고 해도 성령께서는 함께 하십니다. 그래서 여기서 나온 배경이 아주 무서운 배경이 나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여러 가지 내가 준비를 한다고 많이 했는데 하나님이 하실 말씀은 또 다른 모양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여러분과 제게 함께 하실 때에 지금 계속해서 우리가 237 나라 살린다는 것이, 이것이 개인화가 안 되는, 그러니까 그리스도, 또 함께 하시는 성령의 능력이 개인화된다는 얘기가 어디서 나오느냐? 지난주 우리 최상국 목사님이 많이 강조했습니다. 어떻게 개인화가 됩니까? 개인화, 개인화, 외친다고 됩니까? 그 다음이 행1:14 구절입니다. 뭐로? 기도가 계속되면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게 잘 안 됩니다. 저는 부산에 가서 느낀 것이, 한 번 호흡기도하면 두 시간씩 새벽에 나가서 바닷가에서 하고 그럽니다. 그런데 아무리 기도를 지금 하려고 해도, 기도는 지금 제목 내놓고 하고 있는데 호흡 기도가 잘 안 되니까 호흡하는데 신경이 쓰여서 기도가 안 됩니다. 이것이 이해가 되는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제가 질문도 하고 그랬는데 호흡기도가 되어야 되는데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이냐? 그것이 메카니즘이 안 되어서 그래요. 이것이 영어로 나온 말인데, 메카니즘 그러면 내 몸이 기계적으로 저절로 움직일 수준까지 내 마음의 신이나 내 마음의 생각들이 이것이 생각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 반복 할 때에 기계적으로 내 몸이 저절로 움직여지는 것을 메카니즘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요즘 다락방 안에서 메시지 속에서 너무 영어가 많이 나와 가지고 이상할 때가 있어요. 어떨 땐 나도 모르게 영어가 나와요. 그럴 땐 집에 가서 찾아보면 영어로 모르겠더라고요, 여러분 그렇잖아요. 메카니즘 잘 모르잖아요. 그런데 별로 어려운 것이 아니예요. 계속 반복하면 되는 그 일입니다. 그런데 운동선수가 왜 승리할 수 있느냐 누구보다도 더 많이 연습을 해야 해요. 메카니즘이 되어야 돼. 그러면 운동선수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빨리 숙달되어서 나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 기도가 왜 류 목사님 말씀처럼 호흡기도가 안되느냐 나는 옛날에 나대로의 기도가 많이 메카니즘이 되어 있어요. 그런데 호흡기도는 메카니즘이 안 되어 있어요. 호흡하면 거기에 신경 쓴다고 기도가 더 안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안되는 겁니다. 요즘 류목사님 정시기도, 24시, 25시, 영원한 기도로 나누면서 24시전에, 무시기도 전에 정시기도 필요없다고 그래요? 왜? 너무 무시기도가 계속 되니까 정시기도할 시간이 없어요. 여러분과 저는 계속 무시기도가 안되니까 정시라도 잡아야 되는데 정시도 안하거든요. 이러면 기도가 안 된다는 정도가 아니고 전혀 기도를 안 해요. 그리고 무엇이 개인화가 안 되느냐? 참 세계복음화, 237나라, 이 복음을 전파하는 사실이 우리 가슴에 개인화가 되지 않습니다. 왜 안 되느냐? 기도가 없으니까 죽으라고 기도가 없으니까 죽으라고 237하려고 해도, 호흡기도를 하려고 그래도. 여러분 되는 분들도 있어요. 특별히 젊은 사람들 훨씬 더 빨리 됩니다. 그런데 대개 모든 사람들이 이것이 안 되고 있어요. 기도가 안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라는 것이 되어진다고 하던데, 여러분 되어집디까? 24시 기도하다보면, 24시 다른 생각 하고 있는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24시가 된다는 것은 처음에 삼위 하나님이 역사하신 그리스도의 능력이 개인화 되어야 합니다. 기도로 실제적으로 개인화 되어야 합니다. 기도가 계속되지 않으면 무시기도, 24시기도, 25시 기도, 영원의 기도 전혀 안 되게 되어 있어요. 저는 새삼스럽게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여러분 호흡기도 되는 분들은 얼마나 행복합니까? 안 되고 있다고 그러면 안 되는 것을 억지로 늙어가지고 되려고 애쓰지 말고 그러다가는 시간이 다 가버리고 그러다가 기도를 전혀 못해요. 그러지 말고 너무 허비하지 말고 그냥 기도를 하세요.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기도는 노력이 따릅니다. 24시 기도를 몰랐던 칼빈은 기도는 노력이라고 그랬어요. 맞아요. 기도가 안 되고 계속 24, 호흡기도가 안 되는 사람은 기도를 하세요. 노력하세요. 여러분 안하지요? 기도도 안하고 계속 24시 호흡 되어진다 백번 그래도 안 됩니다. 여러분 꼬라지를 알아야지. 호흡이 안 되는데 어떻게 24 기도가 됩니까? 여러분 기도를 호흡 속에 넣었기 때문에 되는 분은 진짜 됩니다. 호흡 안하면 죽거든요. 호흡을 계속 넣었으니까..인간의 메카니즘 호흡 안 되는 사람이 있습니까? 아무리 아파도 호흡은 됩니다. 안 되면 죽는 것이지요. 암만 세상이 어지러워도 호흡은 됩니다. 아무리 북한의 김정은이 죽었다 야단해도 호흡은 됩니다. 사실 김정은이 죽었는지 안 죽었는지 모르지만, 숨어있는 같은 그런 기분이 들더라고요. 참 우리나라가 기도를 해야 하는 배경 중에 특별히 여러분 생명과 관련이 있어요. 안하면 죽어요.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지금 모르는 아주 심각한 상황이 우리나라의 배경입니다. 전쟁, 일보직전입니다. 아무렇지도 않지요. 지금 모르니까 그러니까 호흡기도도 모르면 아무렇지도 않아요. 그리고 기도를 해야 되는 것을 조금이라도 알면 기도 안하면 답답해요. 그러니까 제가 강단에 서기가 무섭다고 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강단에 서는 것이 두려워요. 너무 힘들어요. 그래서 어제 하루 잠을 잘 못 자면 여기 당장 부풀어요. 여보 나 여기 부풀었다 하니까 코웃음을 웃더라고요. 여러분 기도가 안 되면 코웃음이 나옵니다. 정말 기도는 해야 합니다. 노력해야 됩니다. 호흡이 안 되는 이상, 기도를 해야 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안 되는 것을 억지로 된다하고 우두커니 서 있지 말고 해야지요. 되어야지요. 노력해야지요. 기도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새벽기도도 그렇고, 통성기도 할 때에 여러분 같이 힘을 모아서 주여 하고 부르는 것, 굉장한 힘입니다. 흑암세력이 싹 물러가는 능력이 나옵니다. 그런데 주여가 안 나와요 지금. 통성기도 하자고 하면 몇몇 사람들 소리만 들리고 지금 안 들려요. 왜? 기도가 안 되는 겁니다. 같이 통성 기도하자고 그럴 때에 여러 사람들이 함께 기도하는 힘이 엄청납니다. 지금 우리 남미에 우리 목사님 보내놓고 통성기도하자고 기도가 나와야 되어요. 가만히 앉아서..그건 기도가 아닙니다. 진짜 몸과 마음을 담아서 기도하는 것은 소리가 나와도 될지 말지인데, 기도가 소리를 안 나오고 있어요. 정말 응답 하시는 역사는, 축복하시는 진짜 실제 역사는 또 그리고 우리 몸과 여러분 개인의 사정과 일들과 몸이 완전히 치유 받는 역사가 언제 일어나느냐? 치유에 류 목사님이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우리 영혼과 마음과 생각과 몸이 하나 되는 때에 완전 치유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이것을 가지고 기도 속에서 깊이 무아지경에 되는 것입니다. 호흡기도도 거기에서 나오는 배경입니다. 그러나 저는 깊이 기도하면 무아지경이라고 하면 이상하지만, 나도 모르게 아무 생각 없이, 내 생각 니 생각도 없이 무아, 나라는 생각 없이 깊이 그런 것에 빠질 수 있어요. 그러면 편안합니다. 그러면 모든 세상의 근심 걱정 이런 것들이 다 사라지고 진짜 평안합니다. 밤새도록 앉아 있어도 지루한 줄을 모릅니다. 그런 순간이 있어요. 그런데 호흡기도하면 그것이 늘 일어나는 일이니까 그 재미가 행복하지 않습니까? 그 재미를 아는데 어떻게 기도가 안 나옵니까? 이것이 호흡기도예요. 그런데 우리는 그것이 잘 안되니까 자꾸 호흡기도, 호흡기도, 억지로 안 되거든요. 기도라도 제대로 해요. 억지로라도 기도하라고요, 힘써, 애써 노력해도 기도는 모자랍니다. 기도가 없으면 모든 것이 허탈합니다. 그래서 개인화가 안 되고, 237 나라에 마음이 안 담기고, 모든 것이 안 되는 이유는 기도가 되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도가 되면 사실화됩니다. 개인화 됩니다. 이것이 구체적으로 위로부터 힘을 얻는 능력이 됩니다. 이 사실이 필요합니다. 저는 강단에 서기 때문에 기도한다는 것과 안한다는 것과 차이는 엄청 난다는 것을 압니다. 기도 하고 섰다, 엄청난 힘이 생깁니다. 안하고 섰다. 힘들어요. 지금 기도를 좀 했는지 힘이 나는 것 같은데, 모르겠어요. 어젯밤의 영향인지 모르겠지만, 여러분 기도한 만큼 능력이 나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런 기도를 호흡기도를 하지도 않으면서 능력이 날 리가 없지요. 힘이 날 리가 없지요. 여러분 모든 일을, 복음의 일을 시작해 놓고는 중간에 다 무너집니다. 우리교회 약점이 그래요. 기도를 옛날에 할 때는 지속은 되는데, 그리고 힘이 있어 나가는데, 여러분 시작은 요란합니다. 많이 해요. 각 곳에서 뭔가 그런데 지속해서 이것이 계속 밀려나가는 힘이 없어요. 그것이 기도가 안 되어서 그래요.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백번 천 번 강조를 해도 기도 속에 모든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됩니다. 이루어집니다. 오늘 길게 말씀 하려고 작정했지만, 길게 할 힘이 없어져 버렸어요. 그런데 한 가지만 여러분 기도하고 또 그 속에 내가 설 때에 여러분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합니다. 3절 아닙니까? 나는 이것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내가 가는 곳에 먼저 내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임하면 무엇이 나옵니까? 그러면 평안이 옵니다. 여러 가지 말로 이야기할 것 없이 저는 그랬어요. 그 다음에 오는 것이 뭐냐 하면 내가 가는 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합니다. 이상하게 내가 가는 곳, 다른 사람도 편안하다고 그래요. 나와 이야기하면 편안하다고 해요. 이것이 보통 축복이 아닙니다. 여러분 만나서 이야기 하면 이상하게 불안하고, 이상하게 성나고, 이상하게 그런 일이 생기는데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예요.
여러분의 이야기를 당시에는 막 기분 좋아 하는데, 기분나빠합니다. 그게 아닙니다 조용하게 하고 뜨겁게 아니해도, 내가 가서 이야기할 때마다, 서로 대화할 때마다 그 사람에게 내가 가진 평안이 임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나와 함께 임하게 되어 있습니다. 힘입니다. 이것이요...그러면 여러분 가는 곳에 평안이 임하면 안 되는 일들도 되어요. 계약이 안 된다고요, 거짓말입니다. 왜? 저 사람하고 이야기하면 굉장히 편안해, 될 것 같아, 계약이 되는 것이지요. 이상하게 저 사람이 웃고 이야기 하는데, 나는 절대로 그렇게 보이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삐딱하게 보이고, 얼굴도 이상하게 보이고, 안되게 되어 있어요. 천사 같은 웃음을 가져도 안 되어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합니다. 다입니다. 모든 것이, 여기에 모든 사업도, 직장도, 학업도 다 되는 것입니다. 왜? 기도를 너무 안 해요. 사람을 만나러 갈 때에 기도를 안 하면 그 사람 볼 때에 기도도 안 나와요. 기도한 배경이 있으면 나도 모르게 기도가 나와요. 그 사람을 만났습니까. 하나님 이 사람에게 하나님이 역사해 주옵소서. 내가 하는 일에 하나님이 역사해 주옵소서. 저절로 사람을 보면 기도가 나오잖아요. 그것은 내가 말로 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말로 하면 곤란해요. 내 속에 다 나오잖아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합니다. 그 다음에 뭡니까? 이 성령의 역사가 그때부터 계속 말씀으로 임하는데, 저는 요즘 간증을 들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어요. 말씀을 듣는 동안에 이런 말씀이 들리더라 그리고 딱 잡고 그 다음에 내가 했대...자기 하는 일과 매치를 시키더라고요. 여러분 말씀이 임했다는 것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말씀은 흐름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요번 설교 제목이 무엇입니까? 기초이지요. 기본이지요. 여러분 제목을 붙잡고 그 제목을 따라 흐르는 말씀을 잡아야 되어요. 그것이 말씀을 잡는 것입니다. 뭐 메시지를 듣다가 내가 느끼고 의문을 가지고 잡았다고 하는 것은 점쟁이들이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잡을 때에 메시지의 제목을 통해서 흐르는 말씀을 잡아야 합니다. 그 흐르는 말씀은 다양합니다. 흐르는 말씀을 잡을 때에 여러분 전체가 다 잡을 수 있어요. 개개인이 말씀의 흐름 속에서 ... 그런데 어떤 많은 사람들은 부분만 딱 잡고 나는 되지만 너는 안 돼. 그것은 말씀을 잡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를 해요. 그리고 간증할 때에 그런 것으로 간증을 하더라고요. 그것은 말씀의 흐름이 아닙니다. 말씀을 잡는 것 아닙니다. 이상한 겁니다. 말씀은 성령의 역사로, 그 말씀의 흐름 속에 성령의 인도를 따라서 내가 잡히는 것이 있어요. 내가 잡히는 것과 잡는 것이 있어요. 그러면 그것을 딱 잡고 일주일 동안 계속 잡고 기도를 해요. 오늘 제가 이 말씀을 할 때에 어떤 말씀이 잡히는지 모르겠지만, 그러면서 또 중요한 것은 요 사도행전11:26절에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찾아봅시다. 중요하니까 다 같이 읽겠습니다.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할렐루야! 이게 엄청난 역사입니다. 크리스챤, 그리스도인, 기독교인의 인격입니다. 한번 두 번 말씀 들었다 되는 것 아닙니다. 성령으로 계속 말씀을 잡고 가다보면 내 안에 그리스도인, 그리스도인의 인격이 형성됩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배웠을 때 그때 이야기가 성화라고 했어요. 우리는 이것을 각인되고 뿌리내리면 뭐가 되어요? 체질이라고 그럽니다. 뿌리내린 대로 우리에게 열매라고 합니까 삶이 와요. 그런데 이 체질이 다른 좋은 말로 한다면 인격입니다. 다락방 인의, 다락방 맨의 인격입니다. 다락방 사역자의 인격입니다. 하나님 나라 내게 임한 자의 인격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안 되면 인격이라고 붙일 수가 없어요. 그래서 우리는 성화가 아니지만 우리 삶이 올 체인지가 됩니다. 무슨 말이냐? 올 인, 올 아웃, 올 체인지 많이 들었잖아요. 올 인은 무엇입니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 전념합니다. 그 다음에 올 아웃은 이 예수 그리스도를 내가 너무 감격 스러우니까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에게 전합니다. 나누어 줍니다. 그러면 올 아웃하면 그 사람들이 자기들도 모르게 가는 곳마다 치유가 나오고 변화게 됩니다. 이것이 올 체인지입니다. 쉽게 말해서 여러분 이 사실이 이루어지면 바로 그리스도인의, 다락방 맨의 인격이 성취됩니다. 저는 인격이라고 말할 때에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어요. 특별히 나는 개인적으로 교역자이기 때문에 저는 모태로부터 신앙생활을 했고, 어머니의 소원이 어릴 때부터 목사입니다. 저는 너무 목사하기 싫어서 고등학교 때부터 방황하기 시작하고 딴 길로 가기 시작해서, 영 다른 길로 갔다가 또 한번 그러다 보니 하나님 죽은 것 같아서 하나님 진짜 살았나 진짜 죽었나 확인하기 위해서 깊이 기도하고 이것이 안 되어졌을 때에는 죽고 싶더라고요, 여러분 자살 시도를 해 봤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요즘처럼 자살 시도가 아니고 자살 모임에서 서로 시도하는 것이 끊어지지 않도록 서로 격려 해 가면서 같이 죽는 것 이것이 문제이지. 자살 시도하는 것은 인간이라면 다 있습니다. 자기 삶에 회의도 오고, 이래서 내가 이렇게 살아서 뭐 하겠노 하는 생각에서 올 수 있지요. 그러나 자살을 생각을 한다고, 시도한다고 다 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왜? 복음의 역사 속에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그 인격 속에 말씀 잡고 나가다보면 우리 속에 그리스도인의 인격이 됩니다. 인격이 되면 어느 수준에 가서 나도 모르게 저절로 되어지는 것이 있어요. 모태로부터 되어지고, 오다가 되어지고, 말씀에 자극 받아 되어지고, 어떤 목사님의 설교의 영향에 의해 되어지고, 이런 것이 다 메시지를 듣다보면 자꾸 차곡차곡 쌓여집니다. 여러분 한 번 두 번 듣고 나오는 것 아닙니다. 계속 메시지를 듣다보면 우리 속에 이것이 쌓입니다. 그때부터 어느 순간 인격이 형성됩니다. 이게 너무 중요해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합니다. 가는 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합니다. 나는 이 말이 너무 좋아요. 그리고 너무 확신합니다. 성령이 오늘도 내가 가는 길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 누가 합니까? 성령께서 역사하십니다. 그러니까 두려울 것이 없어요. 그러니까 조급함이 없습니다. 편안합니다. 말하다보면 또 엉뚱한 소리 드러 합니다. 하나님 이건 잘못 말했네요. 그래도 괜찮다 싶은 생각을 해요.
하나님의 나라가 지금 성령으로 내 실태와 상관없이 역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목회생활에 필히 교역자들에게는 어떤 면으로든지 이것이 확실하게 인격이 이루어져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일반 성도와 달리 교역자들에게는 확실한 인격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어머니가 옛날에는 다 그렇잖아요. 청교적인 사상, 율법이 상당히 쎈 사상이지요. 그래서 그런 사상의 배경에서 우리 목사님들, 대 선배 목사님들의 가르침에 목사가 되려면 제일 주의해야 될 것이 돈, 제일 처음에 돈, 여러분 돈 좋아하지요. 돈 좋아하지 않는 사람 있다면 그것은 등신입니다. 애들이 만 원 짜리 가지고 푹 던지는 것은 바보라서 그렇지, 아직 아이큐가 안 돌아가서 그렇지, 돌아가면 절대로 안 놓습니다. 한번만 좋아하면 달라하면 절대로 안 주지요. 돈, 돈 다 좋아합니다. 그래서 돈의 노예가 되기 쉽습니다. 이런 인격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거기서 나오는 얘기 중의 하나가 뭐냐 하면 저는 교회 부임하자 말자 절대 내 사례에, 돈에 절대로 메이지 않기를 내가 그렇게 살아야 되겠다. 그래야 교인들이 따라오지 않습니까? 여러분 돈에 신뢰가 되면 자연적으로 그 목사에 대해서 신뢰가 갑니다. 저 사람 돈에 너무 신뢰가 없어, 돈에 땡보야...이러면요 그 목사가 아무리 메시지를 잘해도 그것은 바로 안 들립니다. 돈에 신뢰가 와야 되어요. 그래서 저는 나름대로 옛날에 초기에 그랬잖아요. 집회에 가면 돈 받았던 사례금을 전부 교회에 다 들였어요. 오히려 손해라, 가자면 와이셔츠도 사야 되고, 뭔가 차비도 들고 그러잖아요. 그러면 내 돈이 들잖아요. 받은 돈은 그대로 들려버리니까...그래서 집회 나가는 게 싫어요. 내가 손해인데, 여러분 그 자연적인 내 이야기 같이 들려도 쉽지 않습니다. 내가 수입할 수도 있는데 내가 버려요. 왜 교회에 들여요. 이것을 통해서 우리 부흥사들이 얼마나 돈을 많이 벌어서 집도 몇 채 사고 다 했는데, 나는 그것을 아무리 집회 나가도 집 살 돈이 없어요. 그것으로는 맨날 빚 지지요. 그러나 빚져도 좋습니다. 돈에 대해서 절대 신뢰를 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나도 모르게 실천이 된 것입니다. 돈에 대한 인격입니다. 사람들마다 그것에 너무 안 되어서 신뢰를 잃어버리고, 신임을 잃어버리고, 그 사람들 절대 돈거래 하지 말라고, 류 목사님이 뭐하지 말라고 했지요? 돈 빌려주지 말라. 복음이 안 된 사람은 절대 돈 절대 빌려주지 말라 했어요. 그리스도가 안 된 사람은 절대 빌려주지 말라고 했어요. 왜? 떼일 수 있다고. 여러분 복음이 안 된 사람에게는 신뢰가 안 가기 때문에 돈도 안 빌려주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절대로 나에게 돈 안 빌려 준다고 하면 스스로 생각해야 합니다. 아! 내가 그리스도가 안 되어있구나. 신뢰가 안 됐구나. 여러분, 돈 문제가 교회 안에 많습니다. 이 문제로 시험 드는 교회가 어마어마하게 많습니다. 그 다음에 두 번째가 뭐냐 하면 명예라는 것인데 명예는, 아예 이것도 좀 무리가 있더라고요. 제가 그런 것에 잡히다 보니까. 노회의 노회장이 되었는데 저는 그게 싫었습니다. 내가 싫어한다기보다도 전혀 그런 사상을 싫어하니까 노회장이 싫더라고요. 노회장이라면 서로 하려고 하는데. 돈까지 써가면서 하는데. 그래서 노회장이 되었을 때 저는 다른 사람에게 넘겼습니다. 부노회장이 되면 노회장 되는 것이 당연히 옵니다. 그래서 저는 이것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저는 임원에서 빠져나와 버렸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 앞에, 여러 사람들 앞에 절대로 잘했다 소리를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해야 합니다. 할 수 있는, 하는 사람이 있어야 노회가 됩니다. 우리 교회는 어느 노회 소속입니까? 어느 소속이요? 나도 잊어버렸습니다. 하도 노회에 대한 생각이 없어서. 남대구노회? 대구노회? 대구노회 소속입니다. 여러분, 이 대구노회도 노회장이 있어야 하고 부노회장이 있어야 하고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하기 싫어했습니다. 이것을 명예로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데 날 닮아서 우리 신목사님도 절대로 안 합니다, 지금. 그 나이에 전부 노회장 다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교회에서 노회를 연다고 해서 아, 이제는 노회장, 때가 되었으면 서기라도 하려나 싶었는데 아니더라고요. 여러분, 어쨌든 좋다 나쁘다 이전에 명예로 생각했기 때문에 싫어했습니다. 여러분, 그것도 나름대로 나의 인격입니다. 명예에 대한 인격입니다. 그뿐이 아니라 특별히 더 이제는, 제가 이 얘기를 여러분에게 길게 할 것은 없습니다. 목사가 제일 경계해야 할 계명이 뭐냐? 7계라 합니다. 간음하지 말라. 그런데 제가 이것은 어머니의 특별한 단속도 있지만 제 나름대로 제가 제일, 내가 약점이 아니라 내가 빠질 수 있는 통로였습니다, 이게 보니까.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나를 좋아한 여학생이 있었습니다. 절대 안 넘어갔습니다. 자제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내가 자제를 한 게 아니라 위로부터 온, 나를 키운 어머니의 교육에 의해서, 말하자면 어머니의 인격에 의해서 자제를 한 것입니다. 이게 계속해서 그때부터, 초등학교 3학년이 뭐 압니까? 계속해서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자꾸 생기더라고요. 여러분, 행복합니까? 절대로 행복한 것 아닙니다. 그런데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시간이 갈수록 이것이 쌓이는데 문제는, 여기서 해방되지 않으면 문제 생깁니다. 이 자제하는 능력, 이 자제하는 인격, 이것을 통해서 모든 일에 자제하는 힘이 생기더라고요. 모든 일에. 여러분, 저는 그렇게 지금까지 성격 자체로는, 생긴 대로 놀았고 고집이 세서 마음대로 하는 성격이 많은데 이런 도덕적인 문제, 이런 문제는 상당히 많은 자제를 한 것으로 이해가 됩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현장에, 현직에 있을 때는 성을 좀 안 냈습니다. 어지간해서는 성을 안 내는 것이 내 자제입니다, 일종의. 그런데 요즘 우리 집사람에게 걸핏하면 성을 내고 그럽니다. 하는 말이, 옛날에는 절대로 성을 안 냈는데 사람이 변해도 너무 변했다고 그러더라고요. 변했습니다, 내가 봐도. 왜? 자제력을 잃어버렸습니다. 내 마음대로 사니까. 왜? 자제할 사람은 한 사람뿐이니까. 가정에서 뭐 자제가 필요합니까? 마음대로 해야지. 이것조차 잘못된 생각입니다. 자제해야 합니다. 남편에게, 아내에게. 자식들에게, 상대방에게. 내가 하고 싶다고 하는 게 아닙니다. 자제하는 인격이 되면 모든 것에 다 연결이 되더라고요. 다 연결됩니다. 모르겠습니다. 제가 이 말을 하니 너는 얼마나 잘 했나 싶은 사람이 누가 있을지 모르겠는데 그런 분이 있으면 내게 얘기해 주십시오. 얘기를 해야 내가 알지요. 나는 그래도 내가 잘했다고 생각하니까. 그것은 여러분, 이것이 교역자의 인격이란 굉장히 중요합니다. 특히 그런 것이 너무 심하니까 우리 교회 부교역자들에게는 이런 남녀관계에 문제 있으면 그 자리에서 잘라버렸습니다. 두말 안했습니다. 왜? 영적으로 흐려지더라고요. 연애 감정이 평신도는 있습니다. 할 수 있습니다. 하고 있습니다. 내가 압니다. 그것을 다 덮어 놓았습니다. 교역자가 하게 되면 소문이 납니다. 그러면 영적인 분위기가 흐려집니다. 굉장히 싫어합니다, 내가. 그래서 교역자가 연애했다 뭐했다? 당장 잘라버립니다. 두 말 할 것도 없습니다. 너는 안 돼. 자제하는 정도가 아니라 벌써 도가 넘어버렸습니다. 왜? 그만큼 모든 성도들을 영적으로 흐리게 되어 있습니다. 잘못된 것입니다, 이것은. 자제해야 합니다.
이것을 그냥 들어 넘기지 마십시오. 그래서 특별히 우리 교회의 총각들, 교역자라면 여기 총각들이라면 다 차세대 선교사들인데 차세대 선교사들 진짜 조심하십시오. 자제해야 합니다. 연애한다는 소리 조금만 들려도 나같으면 다 잘라 버립니다. 다 보내 버리지, 인간이 덜 되어서 어디 교역자를 한다고. 차세대, 그것도 선교사한다면서.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 감정은 도저히 용납이 안 됩니다. 왜? 영적으로 흐려지게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여러분, 연애하면 오직 예수가 됩니까, 안 됩니까? 됩니까, 안 됩니까? 안 됩니다. 오직 예수 안 하니까 오직 그가 보이고 그 여자가 보이고 그 남자가 보이지, 오직 예수 안 보입니다. 예수 안 하니까 별게 다 보입니다. 그러면서 이런 소리, 저런 소리 다 들립니다. 오직 예수 하면은 연애에 대해서 다른 소리 들어도 안 들려요 그래서 우리 교회는 꼭 결혼해야 목사로 사용했고 정식 전도사로 올 때에 결혼한 사람만 받았고 결혼 안하면 가서 해오라고 합니다. 특별히 교역자들에게는 연애라는 소리 이만큼 들어도 절대로 치명타입니다. 안됩니다. 이 흐름이 전체 교인들에게 영적으로 흐려지게 됩니다. 조심하셔야 됩니다. 차세대 선교사들 조심하셔야 됩니다. 총각들 조심하세요. 일반 총각들을 다 못하게 하면 곤란하죠 해도 됩니다. 소리 없이 조용히 될 때까지 조용히 소리 없이 그러면 할 수가 있어요. 내가 이러면서 내 자신이 웃기는게 뭐냐면 세광이가 다 죽었다 끝이라 그래서 마지막 예배를 드리고 난 후에 병원에 3개월 동안 있었는데 미국 들어가기 전에 병원에 들어가서 있는데 웬 처녀 하나가 와서 수발 들고 도와주고 그러더라고요 이 만큼 벌써 소문이 났으면 바로 해라 퇴원 하자마자 결혼 시켰어요. 그게 지금 미국 가서 잘 살고 있어요. 여러분 나한테 이야기가 들어 올 정도면 굉장히 소문이 났습니다. 벌써 그런데 다행히 이놈은 나한테 까지 소문이 안 들어왔어요. 그래서 끝까지 올인을 했어요. 나한테 소문이 들어왔다 당장 노이다. 이따위 인간이 되가지고 교역자하고 신학교 다닌다 그래 벌써 끝내버렸다. 여러분 왜 그러냐? 연애를 하게 되면 절대로 오직 그리스도가 안 되더라 입니다. 영적으로 흐려지게 돼 버려요 두말할 것 없어요. 내가 이 말을 왜 하느냐 잘 이해를 하셔야 됩니다. 교역자가 된다. 오직 그리스도 이게 되기 위해서도요 내가 가고자 하는 나라에 하고자 하는 나라에 차세대 선교사로 가기 위한 훈련에 전념하세요. 여러분 차세대 선교사 훈련에 이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부산에 가보니깐 내가 지금 진짜 훈련을 받고 새벽기도 끌려 다니고 어려운데 바닷가에 절벽으로 끌려가고 그건 끌려가는 거지 내가 못가거든요 그 절대로 안합니다. 그 하기 힘들어서 지금도 안가요 오라 해도 절대로 안갑니다. 그게 신체적으로 안 돼요 나를 수발든 사람은 전부 암 환자로써 낮고 있는 과정이고 전부 청년들입니다. 그런데 다 환자라 알고 보니깐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남에 짐을 지는 것 남에 패를 끼치는 게 싫어요. 나도 남에게 패를 받지 않지만은 뭔가 고독한 인생입니다. 남에게 도움도 싫고 남에게 도움을 받는 것도 싫고 오직 하나님께로만 그런데 하나님께로 만이 맞는 말 같아요. 인간적으로는 인격이 틀렸어요. 사람이 도와줄 줄도 알고 도움을 받을 줄 알고 이렇게 너그러운 성격이 돼야 되는데 이런 게 전혀 없어요. 너무 고지식하니깐 어른들은요 나만 보면 피해 버려요. 그런데 하나 젊은 분들은요 처녀들이든지 유부녀들인지 눈 똑바로 뜨고 안녕하세요. 그럽니다. 상관없어요. 왜 내가 옛날에 그런 오직 하는 성격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좋은 성격은 아닙니다. 교역자라면 하나님 앞에서 내가 외롭게 살아도 좋습니다. 올인 할 수 있는 오직 이것이 이루어 질 수 있도록 내 주변에 모든 것을 자체해야 합니다. 이렇지 않으면 자꾸 헛된 욕심, 다른 생각이 나와요 여러분 기도할 때에 연애 할 때는 기도를 시작하면 첫 시간부터 마지막 까지 그 여자가 왔다갔다 그 남자가 왔다갔다 오직 예수 안보입니다. 그래서 영적으로 흐리다는 얘기입니다. 하나님께서 교역자로 세우시고 차세대 선교사로 세웠다 오직 하세요 다른 것 기도해도 안보이도록 그래도 내가 보이면 벌써 자세가 끝났다 생각하시고요 워낙 신 목사님이 부드러워 가지고 우리 박래휘 목사님이 그더라고요 내가 신 목사님의 너무 좋은걸 배웠다고 절대로 말씀하지 않는 걸 배웠다고 합니다. 말씀해야 합니다. 워낙 입이 무거워서 그렇지 왜 그걸 율법이라고 취급을 해요 어떤 나라 던지 법이 없는 나라가 있습니까? 법이 없는 교단이 있습니까? 법이 없는 전도회가 있습니까? 어떤 전도회? 규칙이 나옵니다. 여러분 이 법을 내가 운영하는 힘을 교단이 그 법을 교회에 적용하는 힘을 그걸 가지고 행정이라 그럽니다. 행정을 이렇게 한다고 해서 옛날에 대구 율법으로 소문이 났습니다. 나는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우리 교회를 지키기 위해서 행정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뭔가 행정이 바로 되면 편안합니다. 앞, 뒤 싸움 할 필요가 없어요. 왜 순서가 다 정해져 있기 때문에 이게 안 되면 니가 옳으니 내가 옳으니 순서와 규칙이 안 되어있으면 늘 싸움합니다. 장로들 모이면 내가 맞다 니가 맞다 규칙이 있으면 딱 되면 되거든요 규칙이 있으면 딱 해결 되잖아요 그런데 그걸 내가 뭔가 얘기 하고 강조했다고 대구 율법이라 하는데 그 율법 소리는 계속 해도 괜찮습니다. 있어도 됩니다. 행정이 있어야 교회가 편안합니다. 교회가 말이 없습니다. 교회 행정이 모든 일들이 돌아가게 되어있습니다. 젊으나 늙으나 돌아가게 되어있습니다. 어떤 기관들도 같이 돌아갈 수 있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행정이라 합니다. 어떤 법을 구체적으로 운영하는 단체 어떤 단체를 이끌어가는 힘을 행정이라 그럽니다. 행정을 알기 위해서 행정 관련 두꺼운 책이 있더라고요 독파 했어요 내가 알고 보니깐 우리 목사님들이 독파 한 사람이 없어요. 행정이 없어요. 그 속에 재정 편성이라던가. 모든 편성에 대해서 당회 운영에 대해서 행정 다 들어 있더라고요 근데 이것을 행정이라는 시간이 있어요. 그런데 가르치시는 않더라고요 행정이라는 시간은 있는데 책만 많이 소개해주고 안 가르쳐주더라고요 저는 생각에 반드시 묵사될 사람을 가르쳐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법을 가지고 구체적으로 내 교회에 내가 속한 단체에 적용시켜 나가야 되니깐 말이 없죠. 순서가 있고 앞뒤가 있고 그렇게 되는 것 아닙니다. 그래서 제가 이 시간에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 교회 여러분들이 이미 지어진 교회 신 목사님하고 대화를 많이 해봅니다. 신 목사님이 입을 다물고 있는 이유가 이미 행정이 다 정해져 있기 때문에 말이 필요 없기 때문입니다. 신 목사님 말없다 싶지만 진짜 지혜 있는 분입니다. 그러니깐 어느 부서든지 어느 누구든지 말이 필요 없어요. 저절로 돌라가니깐 그에 비해서 돌아갈 수 있는 힘을 가지기 위해서 기도입니다. 기도 많이 하십니다. 그러면 다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기도 많이 하세요. 노력하세요. 힘을 쓰세요. 다 성취되고도 남습니다. 오직 사도행전 1장 14절에 오로지 기도에 힘쓰니라.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9년 6월 2일 주일 2부 예배 박지온 목사
신앙의 근본
(행1:1-8, 14)
1.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고 마음에 영접하면 성령께서 내 안에 오신다 - 절대 떠나지 않음.
2.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1:2).
영적인 축복 받으면 반드시 육체적인 축복도 받게 된다.
※영지주의(이단) - 영적인 면만 강조하고, 육은 악으로 취급했다(이분설).
3.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서 의인이 되었다(칭의 – 죄 없다).
4. 오직 그리스도(행1:1) 메시야 – 기름 부음 받음.
참 왕(사탄을 이긴 참 왕), 참 제사장(한 번 제사로 영원히 죄 해결), 참 선지자(하나님께로 영원히 인도)
5. 성삼위하나님 - 성부하나님(말씀으로 역사), 성자하나님(구원하심 - 의), 성령하나님(지금 함께 계심).
언제 어디서나, 나의 연약함이나, 어떤 환경 속에서도 항상 함께 하신다. - 힘을 잃지 않는 배경.
6. 기도하고 그 속에 내가 설 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행1:3).
내가 가는 곳에 먼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평안이 나온다.
만남 속에 내가 가진 평안이 상대방에게 임한다. 나라가 임하는 것. 그게 힘이다.
7. 개인화(행1:14) - 기도가 계속되면 개인화가 된다.
호흡 - 연습을 통해 계속 반복하면 되는 것. 내 몸이 기계적으로 저절로 되는 수준까지 가야된다.
호흡기도 – 호흡을 억지로 애쓰지 말고 기도를 하라. 기도는 노력이 필요하다.
통성기도 – 성도가 다 같이 힘을 모아 “주여” 부르짖을 때 흑암세력이 물러가게 된다.
영혼, 마음, 생각과 몸이 하나 될 때 완전 치유가 일어나며 무아지경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억지로라도 기도하라. 힘써 애써 기도해도 기도는 모자란다. 기도가 없으면 허탕이다.
기도 속에 모든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가 된다.
8. 성령의 역사가 계속 말씀으로 임한다.
설교의 제목을 따라 흐르는 말씀을 잡아야 된다. 점쟁이 식으로 말씀 붙잡는 것은 잘못된 것.
9. 기독교인의 인격(행11:26)
말씀 붙잡고 계속 가다보면 내 안에 그리스도인의 인격이 형성된다(각인, 뿌리, 체질).
올인(오직 그리스도 전념), 올아웃(그리스도를 타인에게 전하고 나눔), 올체인지(가는 곳에 치유, 변화)
10. 교역자의 인격
가. 돈에 절대 매이지 않도록 기도하라(돈에 대한 인격 – 절대신뢰).
나. 명예심에 매이지 않도록 기도하라.
다. 간음하지 말라(교회가 영적으로 흐려짐). - 자제하는 인격(모든 일에 자제하는 힘이 나온다).
라. 외롭더라도 올인에 방해되는 주변의 것을 자제 하라. - 다른 마음먹지 말고 훈련에 전념하라.
마. 행정배우라 - 교회를 지키기 위한 것. 교회가 평안하다. 각 기관이 유기적으로 돌아가게 된다.
결론: 그리스도(1), 하나님나라(3), 오직성령(8) 이 언약 붙잡고 행1:14 오로지 기도에 힘쓰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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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5 |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 단12:1-4 | 2025-02-23 | |
1474 |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 단11:28-39 | 2025-02-16 | |
1473 |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 단10:10-21 | 2025-02-09 | |
1472 |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 단9:20-24 | 2025-02-02 | |
1471 |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 단8:15-27 | 2025-01-26 | |
1470 |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 단7:9-14 | 2025-01-19 | |
1469 | 자기의 하나님을 믿음이었더라 | 단6:16-28 | 2025-01-12 | |
1468 |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 단5:17-31 | 2025-01-05 | |
1467 | [2025 송구영신예배] 하나님의 유업을 이을 자 | 갈4:4-7 | 2024-12-31 | |
1466 | 땅의 모든 사람을 다스리시는 하나님 | 단4:28-37 | 2024-12-29 | |
1465 | 완전한 승리를 내 것으로 누리는 성탄 | 눅2:8-14 | 2024-12-22 | |
1464 | 언약의 역사를 계속 이어가고 계시는 하나님 | 단3:8-18 | 2024-12-15 | |
1463 | 손대지 아니한 돌 | 단2:25-35 | 2024-12-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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