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을 향한 하나님의 뜻
2004-05-06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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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주간은 LA에서, 또 한 주간은 하와이에서 치유사명자대회를 인도하고 왔습니다. 이번 기간을 통해 하나님께서 어떻게 세계복음화를 위해 역사하시는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다락방에 대한 오해들이 이번 메시지를 통해 완전히 해결되었다는 반응도 나왔습니다. 한국에서는 얼마든지 들을 수 있는 치유 메시지를 미국에서는 거의 들을 수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치유를 받는 상황을 보았습니다. 치유사명자대회에 참석해서 말씀을 집중하여 들을 때에,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악한 사단이 꺾여지고 치유가 일어났습니다.
굳이 복음이 아니라도 어두운 과거를 들쳐보이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받는데, 우리는 들추어낼 때에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치유까지 되어졌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결심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 문제를 내놓는 순간에 성령의 역사로 해결되어 버리는 모습들을 보게되었습니다.
어떤 의사도 LA에 왔다가 하와이까지 참석했습니다. 그는 들쳐내는 것이 좋긴하지만 답을 주지못하는 것이 현재 정신과 의학의 형편이라고 말했습니다. 오히려 들쳐내어서 더 복잡해질 수 있다고 했습니다. 복잡해지는 것은 사단의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종류의 문제는 아예 들쳐내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한 종류의 문제를 들쳐내는 것은 사단의 통로를 여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러한 종류의 문제 때문에 눌리지도 마십시오. 하나님 앞에 나가면 다 해결됩니다. 이 사실을 알면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평안으로 역사하십니다.
메시지를 들은 이후에 치유 요원들 10여명이 조별로 실제적으로 개개인과 만나는 동안에 많은 사람들이 치유되고 해결되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문제를 들쳐내면서 '내가 문제인줄 알았는데 다른 사람은 문제가 더 심하구나!'라고 깨닫는 순간에 저절로 치유가 되어졌습니다. 이번에 치유받은 문제들이 너무나도 많았습니다. 나중에 간증 시간이 되어서는 너무 할 말들이 많아서 통제를 해야할 정도였습니다. 치유를 받지 못하면 아무리 해도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치유되면 말을 하고 싶어서 견디지 못합니다.
1. 치유의 근본
치유의 개념에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믿음이 없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몸은 교회에 나오는데 실제로는 믿지 않습니다. 따라서, 불신앙을 치유하는 것이 치유의 근본입니다. 정신병원 등의 특별한 시설에서 보호를 받으며 치유되어야 할 정신병자들은 10-30% 정도 밖에 안됩니다. 그러나, 70%는 겉으로는 멀쩡한데 지나친 열심, 시기, 경쟁, 부정 등의 정신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정상적인 정신병자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런 부분에 속한 사람들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문제들은 근본 하나님을 떠난 문제에서 오는 문제들입니다. 하나님을 떠나는 순간에 사단의 역사인 저주가 들어와서 시간이 갈수록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근본 불신앙에서 정신 문제가 왔기 때문에 불신앙의 치유가 치유의 시작입니다.
2. 믿음 회복이 무엇입니까?
(1)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믿음 회복은 전도와 관련해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전도 회복은 믿음이 회복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전도가 참 잘된다면 믿음이 회복된 것입니다. 전도에서 가장 처음 해결되어야 하는 것이 믿음 회복이며, 믿음 회복의 가장 근본적인 것이 "하나님이 나를 완벽하게 주관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안되면 자꾸 자기 생각이나 인본주의가 나오게 됩니다.
예전에 어릴적에 어려운 환경에서도 신앙생활을 지켰던 여인들이 즐겨 부르던 찬송이 바로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온 몸과 영혼을 다 주께 드리니, 이 세상 고락간 주 인도 하시고, 날 주관하셔서 뜻대로 하소서."였습니다. 이 찬송이 정말 실감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계획이 전부라는 결론이 나와야 합니다. 주님의 계획을 붙잡고 나가야 합니다.
그 여인들이 울면서 인생을 드리겠다던 신앙을 통하여 그들의 후손들이 대부분 승리해서 축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정말 가슴에 회복되어야 합니다. 내 생각과 내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계획을 붙잡아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에게는 "혹시 하나님이 나를 엉뚱한 데로 끌고 가면 어떻게 하느냐?"라는 공포심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선교사가 선교 지역을 선택할 때 '주여, 주께서 보내시는 데로 가겠습니다.'라고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혹시 나를 저 미개의 아프리카로 보내시면 어떻게 하나.'라고 고민해서 결국은 자기의 생각을 썪어서 미국이나 일본으로 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벌써 반은 자기 계획입니다. 완전히 하나님께 맡기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불신앙입니다.
왜 안됩니까?
다윗은, 하나님께서 절대로 손해보지 않게 하시고 선함과 인자하심으로 인도하실 것을 확실히 믿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즉, 다윗은 '나를 인도하시되 어떤 어려움과 문제 속에서도 하나님의 선을 이루시고 인자를 베푸신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망하게 하고 어렵게 하는 것 같으나 선하고 인자하신 인도하심이라는 확신을 가져야 됩니다. 하나님은 나를 불행하게 하기 위해 인도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저도 고등학교 때 부모님께서 모두 돌아가셨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많이 갈등하며 돌아다녔습니다. 그 때는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것이 저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가 그 사건은 저를 목사로 만드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와 제 동생은 부모님께서 돌아가시고 나서 목사가 되었습니다. 외로운 것 같은 가운데 하나님을 바라보는 축복을 허락하셨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자녀들이 목사가 되기를 원하셨지만 위로 장남부터 시작해서 형님들은 목사가 되지 않았습니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우리가 어려울 때, 하나님은 우리를 그냥 두지 않으시고 틀림없이 선하심과 인자하심으로 인도하십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바울은 확신했습니다. 이것이 사라지면 원망이 나오게 됩니다. 그 속에는 흑암 권세가 들어갑니다. 저주의 권세가 조용히 들어가서 그 열매를 맺게 됩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문제를 선하고 인자하심으로 완벽하게 인도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범사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감사와 감격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은 전능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이것을 믿어야 기도를 실제로 누리게 됩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것에 대한 확신이 생기게 됩니다. '구했더니 응답받았다'라고 하면 실수가 나오게 됩니다. 현장에 가면 하나님께서 모든 문을 여시고 모든 것을 준비해 두셨습니다. 이 사실이 이해되면, 응답되었다 안 되었다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했으면, 이미 들으신줄로 믿으십시오. 기도했으면, 하나님께서 모든 문을 다 여십니다. 무엇을 받았다 안 받았다가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요구와 상관없이 더 풍성한 것으로 준비하셔서 허락하십니다.
그 때부터 중요한 것이 '발견'입니다. 생애의 목적은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강단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합니다. 그 때에 개인적으로 성경을 읽게 되면 강단의 말씀을 통해 깨달은 하나님의 뜻과 연결되어지며, 문제를 당할 때에 자연스럽게 인도를 받게 됩니다.
LA와 하와이 집회에까지 참석한 이들이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조금은 느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으면 길이 나오게 됩니다. 수를 놓을 때 뒷면은 마구 엉켜서 뭐가 뭔지 잘 모르지만 돌려서 바로 놓고 보면 모양이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뜻을 잘 모를 듯하나 바로 보면 하나님의 뜻이 정확하게 나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것은 정확하게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열리지 않은 것입니다. 자신의 문제를 드러내는 도중에 문제를 발견하게 되면 하나님의 언약을 잡으십시오. 그 때에 성령이 역사하심으로 치유가 이루어집니다. 즉, 자신의 문제를 발견한 후 계속 메시지를 듣는 가운데 치유가 이루어집니다.
주일날 예배에 참석하여 메시지를 듣는 이 순간에 치유가 이루어집니다. 참석해서 메시지를 직접 받는 것과 테이프로 듣는 것과의 차이는 비교가 안됩니다. 문제를 발견하는 순간에 집중해서 메시지가 계속 나가면 문제 해결의 증거로 평안을 얻게 됩니다. 주로 많이 가진 문제가 부부간에 싸우는 것입니다. 서로의 문제를 참기만 하면 점점 서로 원수가 되어갑니다. 그러나, 서로 말하며 싸우기라도 하면, 문제도 발견하게 되고 기도도 하게 되어 그나마 다행일 수 있습니다. 한편, 부부간의 문제를 하나님 앞에 내어놓을 때는 이미 그 문제는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말씀으로 역사하셔서 해결하심으로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이렇게 될 때에 어떤 환경에 부닥쳐도 그 환경 때문에 요동하지 않게 됩니다. 풍부도, 가난도, 괴로움도, 아픔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줄을 알기 때문입니다. 심지어는 아픈 것조차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볼 때에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괴로운 환경이 올 때에 우리는 '이것이 아닌데...'라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의 계획은 그렇지 않습니다. '틀림없이 하나님의 계획은 확실하다'라는 것이 와닿게 됩니다.
복음을 전하는 단체마다 이단으로 정죄를 받은 것이 역사입니다. 그러나, 로만 캐톨릭 이후에 면직을 당하고도 우리들처럼 왕성하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역사상 없었을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구나'라고 믿어지면, 환경에 전혀 요동하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문제를 앞에 두고 어떻게 결단해야 할까 고민할 때는 잠도 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결단을 하고 나면 잠도 평안히 오게 됩니다. '내가 죽어도 하나님의 뜻임을 믿고 순종하겠습니다.'라는 결단이 있으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안식과 평안을 주니니까 어떤 환경과 문제에도 평안하게 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걱정, 근심, 염려 때문에 문제를 당하기도 전에 완전히 K.O.됩니다. 이것이 정신병이요, 사단의 통로입니다.
우리 나라에서 보험 영업 분야 1등 상을 여자가 받았다고 합니다. 그 여자분은 집사님입니다. 그 분은 보험 영업의 3단계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첫 단계는 무조건 현장으로 나가서 하루, 이틀 사이에 300명 정도를 만난다고 합니다. 두번째 단계는 그 중에 반드시 보험의 제자가 나오게 되는데, 그 사람에게 최선을 다해서 투자한다고 합니다. 세번째 단계는 어느 정도 확립이 되면, 그 때부터는 보험 이야기는 절대로 하지않고 전도만 한다고 합니다.
사단의 역사 속에 서면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없어집니다. 믿음이 안들어오면 사람을 만나는 것이 불안하게 됩니다. 사람을 만나는 것을 피한다면 이미 정신 문제에 깊이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이 되면 사람 만나는 것이 즐겁게 됩니다.
3. 신년을 향한 하나님의 뜻
99년도에도 반드시 말씀이 성취될 것입니다. 이것이 믿어질 때에 전도의 방향으로 눈이 열리게 됩니다. 이 때부터 기도가 나옵니다. 기도가 나올 때 실제적인 현장의 믿음이 나오게 됩니다. 안 믿는 사람에게는 모험처럼 보이겠지만, 이것이 안되면 기적이 나오지 않습니다. 홍해 앞에서 모세가 모험을 감행했습니다. 백성들에게 '떨지마라,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을 보라.'라고 말하고는 지팡이를 내밀 때에 홍해가 갈라졌습니다. 믿음의 모험을 가지고 현장에 들어갈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요단강의 역사가 그러했습니다. 전체가 보는 앞에서 발을 밟는 순간 요단강이 갈라졌습니다. 믿음으로 약속을 잡고 기도할 때에 현장에 기적이 나오게 됩니다. 여리고성을 믿음으로 도는 것은 엄청난 모험입니다.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왔는지를 들어서 아는 여리고성 주민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 주위를 돌 때에 간담이 녹아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붙잡은 백성이 성을 돌았습니다. 이것은 말씀 운동입니다. 말씀운동은 하면 할수록 많은 사람들이 알게되고, 사단이 꺾이게 됩니다. 마지막에는 일곱 바퀴를 돌고 "와"하고 외치는 순간에 그 성이 무너졌습니다. 전세계를 향한 복음의 외침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믿음은 어떤 면에서 모험입니다. 믿음으로 약속을 붙잡고 나아갈 때에 기적이 터져나옵니다. 역사가 구체적으로 나가게 됩니다. 예레미야 33장은 약속의 장입니다. 이 약속을 잡고 하나님께 부르짖게 될 때에 기적이 나오기에 기뻐할 수 밖에 없고, 감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약속을 잡고 나아갑시다.
이렇게 될 때에 죽음을 각오하는 믿음이 됩니다. 하나님께 맡기면 염려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돌에 맞아 죽게되어 버려졌으나 일어나자마자 한참 일꾼으로 세우고 있던 디모데를 기억하고 다시 성으로 들어가서 디모데를 세웠습니다. 또한, 감옥에 들어갈 때도 하나님의 계획을 보았기 때문에 맞아가면서 감옥에 들어가서 간수장의 가정을 일으켰습니다.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바울은 감옥에서 나오면서야 로마 시민임을 밝혔습니다. 이로 통해서 그 지역이 복음으로 역사되었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실을 인식할 때에 염려와 걱정이 사라집니다. 또한, 우리 자신이 후손에게 축복의 바톤을 이어주는 문이 됩니다. 우리의 후손들에게 이 축복이 이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역사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후손들은 약속의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축복하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세계를 살려야 할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약속을 잡고 나가면, 환경, 문제, 사건은 전혀 문제가 안됩니다. 사단이 속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아무런 문제도 없습니다. 사단이 우는 사자가 아니라 강아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아무런 문제도 없습니다. 오히려 실패가 더 큰 축복의 문이 될 수 있습니다. 승리하십시오!
굳이 복음이 아니라도 어두운 과거를 들쳐보이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받는데, 우리는 들추어낼 때에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치유까지 되어졌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결심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 문제를 내놓는 순간에 성령의 역사로 해결되어 버리는 모습들을 보게되었습니다.
어떤 의사도 LA에 왔다가 하와이까지 참석했습니다. 그는 들쳐내는 것이 좋긴하지만 답을 주지못하는 것이 현재 정신과 의학의 형편이라고 말했습니다. 오히려 들쳐내어서 더 복잡해질 수 있다고 했습니다. 복잡해지는 것은 사단의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종류의 문제는 아예 들쳐내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한 종류의 문제를 들쳐내는 것은 사단의 통로를 여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러한 종류의 문제 때문에 눌리지도 마십시오. 하나님 앞에 나가면 다 해결됩니다. 이 사실을 알면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평안으로 역사하십니다.
메시지를 들은 이후에 치유 요원들 10여명이 조별로 실제적으로 개개인과 만나는 동안에 많은 사람들이 치유되고 해결되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문제를 들쳐내면서 '내가 문제인줄 알았는데 다른 사람은 문제가 더 심하구나!'라고 깨닫는 순간에 저절로 치유가 되어졌습니다. 이번에 치유받은 문제들이 너무나도 많았습니다. 나중에 간증 시간이 되어서는 너무 할 말들이 많아서 통제를 해야할 정도였습니다. 치유를 받지 못하면 아무리 해도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치유되면 말을 하고 싶어서 견디지 못합니다.
1. 치유의 근본
치유의 개념에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믿음이 없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몸은 교회에 나오는데 실제로는 믿지 않습니다. 따라서, 불신앙을 치유하는 것이 치유의 근본입니다. 정신병원 등의 특별한 시설에서 보호를 받으며 치유되어야 할 정신병자들은 10-30% 정도 밖에 안됩니다. 그러나, 70%는 겉으로는 멀쩡한데 지나친 열심, 시기, 경쟁, 부정 등의 정신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정상적인 정신병자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런 부분에 속한 사람들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문제들은 근본 하나님을 떠난 문제에서 오는 문제들입니다. 하나님을 떠나는 순간에 사단의 역사인 저주가 들어와서 시간이 갈수록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근본 불신앙에서 정신 문제가 왔기 때문에 불신앙의 치유가 치유의 시작입니다.
2. 믿음 회복이 무엇입니까?
(1)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믿음 회복은 전도와 관련해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전도 회복은 믿음이 회복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전도가 참 잘된다면 믿음이 회복된 것입니다. 전도에서 가장 처음 해결되어야 하는 것이 믿음 회복이며, 믿음 회복의 가장 근본적인 것이 "하나님이 나를 완벽하게 주관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안되면 자꾸 자기 생각이나 인본주의가 나오게 됩니다.
예전에 어릴적에 어려운 환경에서도 신앙생활을 지켰던 여인들이 즐겨 부르던 찬송이 바로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온 몸과 영혼을 다 주께 드리니, 이 세상 고락간 주 인도 하시고, 날 주관하셔서 뜻대로 하소서."였습니다. 이 찬송이 정말 실감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계획이 전부라는 결론이 나와야 합니다. 주님의 계획을 붙잡고 나가야 합니다.
그 여인들이 울면서 인생을 드리겠다던 신앙을 통하여 그들의 후손들이 대부분 승리해서 축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정말 가슴에 회복되어야 합니다. 내 생각과 내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계획을 붙잡아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에게는 "혹시 하나님이 나를 엉뚱한 데로 끌고 가면 어떻게 하느냐?"라는 공포심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선교사가 선교 지역을 선택할 때 '주여, 주께서 보내시는 데로 가겠습니다.'라고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혹시 나를 저 미개의 아프리카로 보내시면 어떻게 하나.'라고 고민해서 결국은 자기의 생각을 썪어서 미국이나 일본으로 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벌써 반은 자기 계획입니다. 완전히 하나님께 맡기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불신앙입니다.
왜 안됩니까?
다윗은, 하나님께서 절대로 손해보지 않게 하시고 선함과 인자하심으로 인도하실 것을 확실히 믿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즉, 다윗은 '나를 인도하시되 어떤 어려움과 문제 속에서도 하나님의 선을 이루시고 인자를 베푸신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망하게 하고 어렵게 하는 것 같으나 선하고 인자하신 인도하심이라는 확신을 가져야 됩니다. 하나님은 나를 불행하게 하기 위해 인도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저도 고등학교 때 부모님께서 모두 돌아가셨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많이 갈등하며 돌아다녔습니다. 그 때는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것이 저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가 그 사건은 저를 목사로 만드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와 제 동생은 부모님께서 돌아가시고 나서 목사가 되었습니다. 외로운 것 같은 가운데 하나님을 바라보는 축복을 허락하셨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자녀들이 목사가 되기를 원하셨지만 위로 장남부터 시작해서 형님들은 목사가 되지 않았습니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우리가 어려울 때, 하나님은 우리를 그냥 두지 않으시고 틀림없이 선하심과 인자하심으로 인도하십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바울은 확신했습니다. 이것이 사라지면 원망이 나오게 됩니다. 그 속에는 흑암 권세가 들어갑니다. 저주의 권세가 조용히 들어가서 그 열매를 맺게 됩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문제를 선하고 인자하심으로 완벽하게 인도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범사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감사와 감격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은 전능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이것을 믿어야 기도를 실제로 누리게 됩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것에 대한 확신이 생기게 됩니다. '구했더니 응답받았다'라고 하면 실수가 나오게 됩니다. 현장에 가면 하나님께서 모든 문을 여시고 모든 것을 준비해 두셨습니다. 이 사실이 이해되면, 응답되었다 안 되었다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했으면, 이미 들으신줄로 믿으십시오. 기도했으면, 하나님께서 모든 문을 다 여십니다. 무엇을 받았다 안 받았다가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요구와 상관없이 더 풍성한 것으로 준비하셔서 허락하십니다.
그 때부터 중요한 것이 '발견'입니다. 생애의 목적은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강단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합니다. 그 때에 개인적으로 성경을 읽게 되면 강단의 말씀을 통해 깨달은 하나님의 뜻과 연결되어지며, 문제를 당할 때에 자연스럽게 인도를 받게 됩니다.
LA와 하와이 집회에까지 참석한 이들이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조금은 느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으면 길이 나오게 됩니다. 수를 놓을 때 뒷면은 마구 엉켜서 뭐가 뭔지 잘 모르지만 돌려서 바로 놓고 보면 모양이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뜻을 잘 모를 듯하나 바로 보면 하나님의 뜻이 정확하게 나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것은 정확하게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열리지 않은 것입니다. 자신의 문제를 드러내는 도중에 문제를 발견하게 되면 하나님의 언약을 잡으십시오. 그 때에 성령이 역사하심으로 치유가 이루어집니다. 즉, 자신의 문제를 발견한 후 계속 메시지를 듣는 가운데 치유가 이루어집니다.
주일날 예배에 참석하여 메시지를 듣는 이 순간에 치유가 이루어집니다. 참석해서 메시지를 직접 받는 것과 테이프로 듣는 것과의 차이는 비교가 안됩니다. 문제를 발견하는 순간에 집중해서 메시지가 계속 나가면 문제 해결의 증거로 평안을 얻게 됩니다. 주로 많이 가진 문제가 부부간에 싸우는 것입니다. 서로의 문제를 참기만 하면 점점 서로 원수가 되어갑니다. 그러나, 서로 말하며 싸우기라도 하면, 문제도 발견하게 되고 기도도 하게 되어 그나마 다행일 수 있습니다. 한편, 부부간의 문제를 하나님 앞에 내어놓을 때는 이미 그 문제는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말씀으로 역사하셔서 해결하심으로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이렇게 될 때에 어떤 환경에 부닥쳐도 그 환경 때문에 요동하지 않게 됩니다. 풍부도, 가난도, 괴로움도, 아픔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줄을 알기 때문입니다. 심지어는 아픈 것조차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볼 때에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괴로운 환경이 올 때에 우리는 '이것이 아닌데...'라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의 계획은 그렇지 않습니다. '틀림없이 하나님의 계획은 확실하다'라는 것이 와닿게 됩니다.
복음을 전하는 단체마다 이단으로 정죄를 받은 것이 역사입니다. 그러나, 로만 캐톨릭 이후에 면직을 당하고도 우리들처럼 왕성하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역사상 없었을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구나'라고 믿어지면, 환경에 전혀 요동하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문제를 앞에 두고 어떻게 결단해야 할까 고민할 때는 잠도 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결단을 하고 나면 잠도 평안히 오게 됩니다. '내가 죽어도 하나님의 뜻임을 믿고 순종하겠습니다.'라는 결단이 있으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안식과 평안을 주니니까 어떤 환경과 문제에도 평안하게 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걱정, 근심, 염려 때문에 문제를 당하기도 전에 완전히 K.O.됩니다. 이것이 정신병이요, 사단의 통로입니다.
우리 나라에서 보험 영업 분야 1등 상을 여자가 받았다고 합니다. 그 여자분은 집사님입니다. 그 분은 보험 영업의 3단계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첫 단계는 무조건 현장으로 나가서 하루, 이틀 사이에 300명 정도를 만난다고 합니다. 두번째 단계는 그 중에 반드시 보험의 제자가 나오게 되는데, 그 사람에게 최선을 다해서 투자한다고 합니다. 세번째 단계는 어느 정도 확립이 되면, 그 때부터는 보험 이야기는 절대로 하지않고 전도만 한다고 합니다.
사단의 역사 속에 서면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없어집니다. 믿음이 안들어오면 사람을 만나는 것이 불안하게 됩니다. 사람을 만나는 것을 피한다면 이미 정신 문제에 깊이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이 되면 사람 만나는 것이 즐겁게 됩니다.
3. 신년을 향한 하나님의 뜻
99년도에도 반드시 말씀이 성취될 것입니다. 이것이 믿어질 때에 전도의 방향으로 눈이 열리게 됩니다. 이 때부터 기도가 나옵니다. 기도가 나올 때 실제적인 현장의 믿음이 나오게 됩니다. 안 믿는 사람에게는 모험처럼 보이겠지만, 이것이 안되면 기적이 나오지 않습니다. 홍해 앞에서 모세가 모험을 감행했습니다. 백성들에게 '떨지마라,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을 보라.'라고 말하고는 지팡이를 내밀 때에 홍해가 갈라졌습니다. 믿음의 모험을 가지고 현장에 들어갈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요단강의 역사가 그러했습니다. 전체가 보는 앞에서 발을 밟는 순간 요단강이 갈라졌습니다. 믿음으로 약속을 잡고 기도할 때에 현장에 기적이 나오게 됩니다. 여리고성을 믿음으로 도는 것은 엄청난 모험입니다.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왔는지를 들어서 아는 여리고성 주민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 주위를 돌 때에 간담이 녹아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붙잡은 백성이 성을 돌았습니다. 이것은 말씀 운동입니다. 말씀운동은 하면 할수록 많은 사람들이 알게되고, 사단이 꺾이게 됩니다. 마지막에는 일곱 바퀴를 돌고 "와"하고 외치는 순간에 그 성이 무너졌습니다. 전세계를 향한 복음의 외침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믿음은 어떤 면에서 모험입니다. 믿음으로 약속을 붙잡고 나아갈 때에 기적이 터져나옵니다. 역사가 구체적으로 나가게 됩니다. 예레미야 33장은 약속의 장입니다. 이 약속을 잡고 하나님께 부르짖게 될 때에 기적이 나오기에 기뻐할 수 밖에 없고, 감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약속을 잡고 나아갑시다.
이렇게 될 때에 죽음을 각오하는 믿음이 됩니다. 하나님께 맡기면 염려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돌에 맞아 죽게되어 버려졌으나 일어나자마자 한참 일꾼으로 세우고 있던 디모데를 기억하고 다시 성으로 들어가서 디모데를 세웠습니다. 또한, 감옥에 들어갈 때도 하나님의 계획을 보았기 때문에 맞아가면서 감옥에 들어가서 간수장의 가정을 일으켰습니다.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바울은 감옥에서 나오면서야 로마 시민임을 밝혔습니다. 이로 통해서 그 지역이 복음으로 역사되었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실을 인식할 때에 염려와 걱정이 사라집니다. 또한, 우리 자신이 후손에게 축복의 바톤을 이어주는 문이 됩니다. 우리의 후손들에게 이 축복이 이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역사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후손들은 약속의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축복하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세계를 살려야 할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약속을 잡고 나가면, 환경, 문제, 사건은 전혀 문제가 안됩니다. 사단이 속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아무런 문제도 없습니다. 사단이 우는 사자가 아니라 강아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아무런 문제도 없습니다. 오히려 실패가 더 큰 축복의 문이 될 수 있습니다. 승리하십시오!
번호 | 제목 | 본문 | 설교일 | 첨부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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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7 |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 삿2:6-10 | 2025-03-09 | |
1476 |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 삿1:1-7 | 2025-03-02 | |
1475 |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 단12:1-4 | 2025-02-23 | |
1474 |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 단11:28-39 | 2025-02-16 | |
1473 |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 단10:10-21 | 2025-02-09 | |
1472 |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 단9:20-24 | 2025-02-02 | |
1471 |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 단8:15-27 | 2025-01-26 | |
1470 |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 단7:9-14 | 2025-01-19 | |
1469 | 자기의 하나님을 믿음이었더라 | 단6:16-28 | 2025-01-12 | |
1468 |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 단5:17-31 | 2025-01-05 | |
1467 | [2025 송구영신예배] 하나님의 유업을 이을 자 | 갈4:4-7 | 2024-12-31 | |
1466 | 땅의 모든 사람을 다스리시는 하나님 | 단4:28-37 | 2024-12-29 | |
1465 | 완전한 승리를 내 것으로 누리는 성탄 | 눅2:8-14 | 2024-12-22 | |
1464 | 언약의 역사를 계속 이어가고 계시는 하나님 | 단3:8-18 | 2024-12-15 | |
1463 | 손대지 아니한 돌 | 단2:25-35 | 2024-12-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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