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역자를 위한 치유
2004-05-06 00:00:00
관리자
조회수 27
유튜브 저화질 다운 MP3 녹취 요약 |
어떤 사람을 사역자라고 합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불러서 이 자리에 오게 하셨다는 것으로 이미 우리들은 사역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냥 우리를 부르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실 뿐만 아니라 치유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정신병자나 육신이 나약한 자는 일을 하기가 곤란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치유하십니다. 물론, 건강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즉, 치유되어져서 자신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믿을 때에 우리의 수준과 상관없이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실로,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으면 우리로서는 감당할 힘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여 치유하시고 우리를 통해 세계를 살리실 것을 작정하셨다면 산업과 가정과 자녀는 당연히 하나님께서 책임지시고 축복하실 것입니다. 교회 건축에 관한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서면 됩니다. 주님께서 성전 지으라고 돈을 주시면 성전 짓는데 돈을 드리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아무리 바치려고 해도 바칠 돈이 없으면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시간표가 있습니다. 또한, 좋은 건물을 지어놓고 텅텅 빈다면 더 큰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건물을 짓기 전에 우리로 하여금 그 건물을 채울 수 있는 가슴과 눈을 먼저 여실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전도에 대한 인식입니다.
얼마 전,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무덤에 쇠말뚝과 칼 등을 꽂아 놓은 자가 점쟁이라고 밝혀졌습니다. 진상을 조사해 보니 그 점쟁이가 꿈만 꾸면 이순신 장군이 나타나서 가위가 눌리게 되자 그런 짓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말도 안 되는 짓입니다. 즉, 사단의 역사입니다. 이런 일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박 대통령이 국민 의식을 바꾸기 위해 '새마을 운동'을 일으켰습니다. 새마을 운동의 노래 중에 '새벽종이 울렸네'라는 가사가 있는데 이것은 다름 아닌 교회에서 새벽 기도회를 알리는 종소리입니다. 이것은 그가 어려서 교회에 다녔던 영향입니다. 이와 같은 국민 의식을 바꾸는 일도 복음의 영향을 입었을 때에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진실로, 복음이 아니고서는 의식이 바뀌지 않습니다. 그런데, 복음을 전해야 할 교회가 전도에 대한 인식이 없습니다. 정말로, 우리 자신이 치료되어야 됩니다. 복음을 전할 거리가 없으면 말을 꺼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먼저 사역자가 치유되어야 합니다.
1. 사역자의 자세
'내가 먼저 치유되어야 되겠다'는 자세가 되어야 합니다. 자신이 치유받아야 할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진짜 정신병입니다. 조금만이라도 '내가 치유되어야 되겠다'는 의식이 있으면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메시지를 받으면서 하나님께 치유를 구할 때 역사가 나옵니다. 이러한 인식이 바로 치유의 문입니다.
(1) 동기
동기부터 치유받아야 합니다. 왜 예수를 믿습니까? 솔직히 천국 가기 위해서 예수를 믿습니다. 천국 간다는 말은 바로 구원받았다는 것입니다. 또, 구원받았다는 것은 치유받았다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 믿고 천국 간다는 것은 전도를 받았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하나님의 계획은, 나를 전도 받게 하여 구원하시고, 구원받은 나로 하여금 다른 사람을 전도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 중의 계획입니다. 이러한 동기로 교회에 나오는 자가 거의 없습니다. 교회에 나오는 동기들이 대부분 건강을 위해서, 혹은 돈을 벌기 위해서 등에 있는 것입니다. 솔직히 주님 앞에 자신의 동기를 털어놓아 보십시오. 정말 예수 믿는 동기가 고통받고 지옥 갈 자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저들도 나와 같이 구원받게 하려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이 눈이 열리지 않으면 별의 별 것이 다 나옵니다. 건강하게 살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건강을 위해서 뱀이나 굼뱅이 등을 먹는 엉뚱한 곳으로 빠지게 됩니다.
(2) 염려와 걱정
전도에 대한 동기가 안되어 있으면 예수 믿는 것이 염려와 걱정을 더하게 만들고, 결국은 인본주의가 나오게 됩니다. 전도의 동기가 안되면 이상하게 이러한 곳으로 빠지게 됩니다. 교회 생활을 통해서 자존심만 배우게 되어 조금만 무시하는 소리를 들어도 잡아먹을 듯이 됩니다.
(3) 인격
그렇게 좋던 사람도 점점 인격적으로 문제가 생깁니다. 부드럽고 폭넓게 되는 것이 아니라 좁아지고 다투게 됩니다. 전에 같으면 웃고 넘어갈 것을 싸우게 됩니다. 왜 사회에서 기독교인들을 못 받아들입니까? 초대교회의 인격들이 세워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싸움을 모르고 생활했기 때문에 이런 말들이 잘 이해되지 않을 것입니다만, 엄청난 인격적인 문제가 교회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인격에 문제가 생겨서 치유받을 수 없는 방향으로 자꾸 흘러갑니다.
2. 인격 치유
초대 교회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칭송을 받았고, 이로 말미암아 믿는 자들의 수가 늘어났습니다. 이러한 인격으로 치유받는 것이 교회의 급선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것이 필요 없습니다. '대구시의 송현교회 교인들처럼 되어라'라는 말만 듣게 되면 다 끝나는 것입니다.
인격은 그냥 얌전하다는 것을 말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의 손이 함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적과 역사가 나오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인격이 먼저 되어야 합니다. 이 사실이 먼저 되어야 하는데, 이것은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되어지는 것이므로 조용히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인격이 되어지기 위해서 먼저 생각의 순서부터 바꾸어야 합니다. 순서만 바로 놓으면 다 된 것입니다. 인격적인 사람은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 할 것과 하지 않을 것, 설 때와 서면 안될 때를 분별할 줄 압니다.
(1) 하나님의 입장
하나님의 배경에 서야 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했는데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를 빼버리면 완전히 엉뚱한 곳으로 빠집니다. 그러므로, 우선 주 안에 서야 합니다. 즉, 우선 해야 할 것이 기도 스케쥴입니다. 여기에서 전도도 건축도 다 되어집니다. 바울은 어디를 가든지 기도하기 위해서 옥상부터 올라갔습니다. 그 때에 멀리 있던 고넬료와도 연결되었습니다. 우리 교회가 개인과 가정과 다락방에서 기도 회복이 이루어져야 하겠습니다. 기도가 회복되어지면 다 회복되어지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입장이 우선 순위가 되면 다 된 것입니다. 즉, 나의 판단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 우선 순위가 되어야 합니다. '저 사람 되겠나?'와 '저 사람도 하나님이 역사하면 된다'는 것 사이는 엄청난 차이입니다. 나의 기준에서 보면 아무 것도 안됩니다. 그러나, 말세에 하나님을 믿는 눈으로 본다면 달라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이 때에 우리의 인격이 치유되어집니다.
(2) 상대방의 입장
상대방의 입장에 서 보아야 합니다. 상대방의 입장에 서 보지 않으면 치유가 안됩니다. 이 땅에는 별의 별 사람들이 다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이해하지 않으면 속이 터져 죽습니다. '사단이 역사하면 무슨 짓을 못하겠는가?'라고 생각하며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보면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인격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안되면 도와줄려고 해도 역반응만 일으키게 됩니다. '우리는 복음을 받고 안식과 평안이 있는데, 저들은 왜 저렇게 고생을 할까'라고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하면, 인격이 바로 될 수 없습니다.
(3) 갈라디아 2장 20절
많이 알고 있는데 열매가 나오지 않습니다. 자기가 죽어야 되는데, 이것이 안되고 자기가 시퍼렇게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문제가 생기면 자기의 감정이 시퍼렇게 나옵니다. 바울은 이에 대해 '날마다 죽는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정말 자기가 잘 안 죽습니다. 사건과 문제가 나오면 시퍼렇게 자기가 나옵니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사는 삶이 안되면 인격이 안됩니다. 어쩌면 그렇게도 기독교인들이 안 죽는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열매가 나올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진짜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야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말한 것처럼 여호와를 앙망할 때에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은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온전히 의지할 때에 달려도 피곤치 않고 걸어도 곤비치 않게 됩니다. 나는 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앙망하여 은혜를 주시면 할 수 있다는 고백이 철저히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안주시면 안됩니다. 인간의 한계로서는 안됩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볼 때에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가 나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약할 때에 나옵니다. 바울이 삼층천에 가보았으나 자부하지 않도록 몸에 가시를 주었습니다. 이런 약한 것들을 통해 하나님은 은혜와 능력이 머물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계속 역사가 나오고 잘 되면 정말 기고만장해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약한 곳에 머문다는 사실에 눈이 열려야 합니다. 지금 어려운 중에 있습니까? 이 사실이 되어지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사업도, 건강도 때에 따라 여려움이 오는 것입니다. 교만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머물게 하시고자 함입니다. 내가 약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머물게 하시고자 함이라고 바울이 고백했습니다. 어려울수록 오직 성령이 임하실 때에 땅 끝까지 이르러 주님의 증인이 되게 해주시는 사도행전 1장 8절의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3. 사단의 통로
이러한 인격이 안되면 모든 것이 사단의 통로가 됩니다.
(1) 열심, 종교, 신비
이러한 사실이 안되면 모두 열심에 빠지고, 안 믿는 자는 종교에 빠집니다. 혹은 신비주의에 빠지게 됩니다. 정말 그리스도의 인격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열심히 할수록 이상한 곳에 빠지게 됩니다. 전도의 인격이 되어지면 기도를 많이 해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생명 살리는 역사를 위한 인격이 안되면 헌신할수록 자만해지고 교만해집니다. 그래서 교회가 어려워집니다.
(2) 염려, 걱정
베드로전서 5장의 말씀처럼 정말 어떤 염려와 걱정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붙잡혀 있습니다.
(3) 공포, 불안(두려움)
요한일서 4장 18-19절 말씀처럼 사랑 안에서 두려움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두려움에 싸여있습니다. 병든다고 사람이 불안해지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 병 때문에 점점 겸손해지고 평안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이상하게도 병 때문에 공포심에 빠집니다. 이것은 사단의 배경입니다.
(4) 타락
성도들조차도 이상한 곳으로 가고 있습니다
(5) 의식주 문제, 명예, 경배의 대상
이러한 모든 것들이 사단의 통로가 됩니다.
4. 바울
이러한 사단의 통로를 차단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내 안에 둘이 있어 하나는 선하려고 하고 하나는 악하려고 한다'라고 고백했으며, 결국 바울은 악에게 져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라고 탄식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바울은 위대한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게 되고, 더 나아가 '누가 나를 정죄할 것이냐?'라고 담대해집니다. '생명의 법이 사망의 법에서 해방하였다'는 진리를 깨닫게 되고 '그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합니다. 드디어 바울은 '아들을 주신 하나님께서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주신다'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고, 이 때부터 궁극적인 자유함을 얻게 되었습니다.
바울이 이렇게 될 수 있었던 배경은 삼층천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바울이 장가를 가지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바울은 열 네 편의 서신 중에 부인 이야기를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하늘 영광을 본 후로 이 땅의 것은 안중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혼자만 그 곳에 들어간다면 나쁜 자라'는 간증을 하게 됩니다. '그 큰 축복을 알고도 말하지 않으면 내게 화가 있으리로다'고 고백을 합니다. 바울이 하늘 나라의 영광을 본 후 '이 땅의 것은 하늘 나라의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라고 고백한 배경에서 참 인격의 치유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영광을 말할 수밖에 없어서 그 영광을 누릴 수 있는 길인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전도에 생을 걸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땅에서 '하늘 나라의 영광을 말하지 않으면 화로다!'라고 고백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연세가 많으실수록 하늘 나라 영광에 들어가기 전에 전도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오늘 죽어도 행복하지만, 남은 생애를 하늘 나라의 영광을 말하다가 그 영광으로 올라가게 해주십시오!'라고 기도할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늘 영광을 보고 당장이라도 올라가는 것이 좋으나 이 땅에서 내가 전하지 않으면 내게 화로다!'라고 고백하며 나아갈 때 현재 우리가 사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으며 다툴 일이 없어집니다.
정말 전도할 사람을 만들려면, 1분만 지옥 불에 구웠다가 내놓으면 될 것입니다. 만약 그 곳에 내 형제와 자매가 간다고 하면 기를 쓰고 복음을 전할 것입니다. 한편, 5분만 천국에 갔다 오면 사람들에게 하늘 영광을 전하기 위해 돌아다닐 것입니다. 이러한 일이 벌어지면 모두들 돌아다닌다고 가정과 사회의 질서가 깨어질 것이니까 실제를 숨겨두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 나라의 영광을 맛볼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소원인 전도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위대한 인격의 역사를 이루실 때에 새롭게 세상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 때에 돈을 맡겨야 제대로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정말 전도자로 섰다면, 모든 문제를 해결하실 것입니다. 인격을 치유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를 교회와 가정과 개인이 합시다. 정말 생애가 끝나는 날까지 전도의 문을 열어달라고 기도하며 이를 위해 내게 있는 것을 바칩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여 치유하시고 우리를 통해 세계를 살리실 것을 작정하셨다면 산업과 가정과 자녀는 당연히 하나님께서 책임지시고 축복하실 것입니다. 교회 건축에 관한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서면 됩니다. 주님께서 성전 지으라고 돈을 주시면 성전 짓는데 돈을 드리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아무리 바치려고 해도 바칠 돈이 없으면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시간표가 있습니다. 또한, 좋은 건물을 지어놓고 텅텅 빈다면 더 큰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건물을 짓기 전에 우리로 하여금 그 건물을 채울 수 있는 가슴과 눈을 먼저 여실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전도에 대한 인식입니다.
얼마 전,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무덤에 쇠말뚝과 칼 등을 꽂아 놓은 자가 점쟁이라고 밝혀졌습니다. 진상을 조사해 보니 그 점쟁이가 꿈만 꾸면 이순신 장군이 나타나서 가위가 눌리게 되자 그런 짓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말도 안 되는 짓입니다. 즉, 사단의 역사입니다. 이런 일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박 대통령이 국민 의식을 바꾸기 위해 '새마을 운동'을 일으켰습니다. 새마을 운동의 노래 중에 '새벽종이 울렸네'라는 가사가 있는데 이것은 다름 아닌 교회에서 새벽 기도회를 알리는 종소리입니다. 이것은 그가 어려서 교회에 다녔던 영향입니다. 이와 같은 국민 의식을 바꾸는 일도 복음의 영향을 입었을 때에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진실로, 복음이 아니고서는 의식이 바뀌지 않습니다. 그런데, 복음을 전해야 할 교회가 전도에 대한 인식이 없습니다. 정말로, 우리 자신이 치료되어야 됩니다. 복음을 전할 거리가 없으면 말을 꺼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먼저 사역자가 치유되어야 합니다.
1. 사역자의 자세
'내가 먼저 치유되어야 되겠다'는 자세가 되어야 합니다. 자신이 치유받아야 할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진짜 정신병입니다. 조금만이라도 '내가 치유되어야 되겠다'는 의식이 있으면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메시지를 받으면서 하나님께 치유를 구할 때 역사가 나옵니다. 이러한 인식이 바로 치유의 문입니다.
(1) 동기
동기부터 치유받아야 합니다. 왜 예수를 믿습니까? 솔직히 천국 가기 위해서 예수를 믿습니다. 천국 간다는 말은 바로 구원받았다는 것입니다. 또, 구원받았다는 것은 치유받았다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 믿고 천국 간다는 것은 전도를 받았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하나님의 계획은, 나를 전도 받게 하여 구원하시고, 구원받은 나로 하여금 다른 사람을 전도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 중의 계획입니다. 이러한 동기로 교회에 나오는 자가 거의 없습니다. 교회에 나오는 동기들이 대부분 건강을 위해서, 혹은 돈을 벌기 위해서 등에 있는 것입니다. 솔직히 주님 앞에 자신의 동기를 털어놓아 보십시오. 정말 예수 믿는 동기가 고통받고 지옥 갈 자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저들도 나와 같이 구원받게 하려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이 눈이 열리지 않으면 별의 별 것이 다 나옵니다. 건강하게 살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건강을 위해서 뱀이나 굼뱅이 등을 먹는 엉뚱한 곳으로 빠지게 됩니다.
(2) 염려와 걱정
전도에 대한 동기가 안되어 있으면 예수 믿는 것이 염려와 걱정을 더하게 만들고, 결국은 인본주의가 나오게 됩니다. 전도의 동기가 안되면 이상하게 이러한 곳으로 빠지게 됩니다. 교회 생활을 통해서 자존심만 배우게 되어 조금만 무시하는 소리를 들어도 잡아먹을 듯이 됩니다.
(3) 인격
그렇게 좋던 사람도 점점 인격적으로 문제가 생깁니다. 부드럽고 폭넓게 되는 것이 아니라 좁아지고 다투게 됩니다. 전에 같으면 웃고 넘어갈 것을 싸우게 됩니다. 왜 사회에서 기독교인들을 못 받아들입니까? 초대교회의 인격들이 세워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싸움을 모르고 생활했기 때문에 이런 말들이 잘 이해되지 않을 것입니다만, 엄청난 인격적인 문제가 교회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인격에 문제가 생겨서 치유받을 수 없는 방향으로 자꾸 흘러갑니다.
2. 인격 치유
초대 교회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칭송을 받았고, 이로 말미암아 믿는 자들의 수가 늘어났습니다. 이러한 인격으로 치유받는 것이 교회의 급선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것이 필요 없습니다. '대구시의 송현교회 교인들처럼 되어라'라는 말만 듣게 되면 다 끝나는 것입니다.
인격은 그냥 얌전하다는 것을 말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의 손이 함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적과 역사가 나오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인격이 먼저 되어야 합니다. 이 사실이 먼저 되어야 하는데, 이것은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되어지는 것이므로 조용히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인격이 되어지기 위해서 먼저 생각의 순서부터 바꾸어야 합니다. 순서만 바로 놓으면 다 된 것입니다. 인격적인 사람은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 할 것과 하지 않을 것, 설 때와 서면 안될 때를 분별할 줄 압니다.
(1) 하나님의 입장
하나님의 배경에 서야 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했는데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를 빼버리면 완전히 엉뚱한 곳으로 빠집니다. 그러므로, 우선 주 안에 서야 합니다. 즉, 우선 해야 할 것이 기도 스케쥴입니다. 여기에서 전도도 건축도 다 되어집니다. 바울은 어디를 가든지 기도하기 위해서 옥상부터 올라갔습니다. 그 때에 멀리 있던 고넬료와도 연결되었습니다. 우리 교회가 개인과 가정과 다락방에서 기도 회복이 이루어져야 하겠습니다. 기도가 회복되어지면 다 회복되어지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입장이 우선 순위가 되면 다 된 것입니다. 즉, 나의 판단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 우선 순위가 되어야 합니다. '저 사람 되겠나?'와 '저 사람도 하나님이 역사하면 된다'는 것 사이는 엄청난 차이입니다. 나의 기준에서 보면 아무 것도 안됩니다. 그러나, 말세에 하나님을 믿는 눈으로 본다면 달라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이 때에 우리의 인격이 치유되어집니다.
(2) 상대방의 입장
상대방의 입장에 서 보아야 합니다. 상대방의 입장에 서 보지 않으면 치유가 안됩니다. 이 땅에는 별의 별 사람들이 다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이해하지 않으면 속이 터져 죽습니다. '사단이 역사하면 무슨 짓을 못하겠는가?'라고 생각하며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보면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인격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안되면 도와줄려고 해도 역반응만 일으키게 됩니다. '우리는 복음을 받고 안식과 평안이 있는데, 저들은 왜 저렇게 고생을 할까'라고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하면, 인격이 바로 될 수 없습니다.
(3) 갈라디아 2장 20절
많이 알고 있는데 열매가 나오지 않습니다. 자기가 죽어야 되는데, 이것이 안되고 자기가 시퍼렇게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문제가 생기면 자기의 감정이 시퍼렇게 나옵니다. 바울은 이에 대해 '날마다 죽는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정말 자기가 잘 안 죽습니다. 사건과 문제가 나오면 시퍼렇게 자기가 나옵니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사는 삶이 안되면 인격이 안됩니다. 어쩌면 그렇게도 기독교인들이 안 죽는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열매가 나올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진짜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야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말한 것처럼 여호와를 앙망할 때에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은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온전히 의지할 때에 달려도 피곤치 않고 걸어도 곤비치 않게 됩니다. 나는 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앙망하여 은혜를 주시면 할 수 있다는 고백이 철저히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안주시면 안됩니다. 인간의 한계로서는 안됩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볼 때에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가 나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약할 때에 나옵니다. 바울이 삼층천에 가보았으나 자부하지 않도록 몸에 가시를 주었습니다. 이런 약한 것들을 통해 하나님은 은혜와 능력이 머물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계속 역사가 나오고 잘 되면 정말 기고만장해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약한 곳에 머문다는 사실에 눈이 열려야 합니다. 지금 어려운 중에 있습니까? 이 사실이 되어지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사업도, 건강도 때에 따라 여려움이 오는 것입니다. 교만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머물게 하시고자 함입니다. 내가 약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머물게 하시고자 함이라고 바울이 고백했습니다. 어려울수록 오직 성령이 임하실 때에 땅 끝까지 이르러 주님의 증인이 되게 해주시는 사도행전 1장 8절의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3. 사단의 통로
이러한 인격이 안되면 모든 것이 사단의 통로가 됩니다.
(1) 열심, 종교, 신비
이러한 사실이 안되면 모두 열심에 빠지고, 안 믿는 자는 종교에 빠집니다. 혹은 신비주의에 빠지게 됩니다. 정말 그리스도의 인격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열심히 할수록 이상한 곳에 빠지게 됩니다. 전도의 인격이 되어지면 기도를 많이 해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생명 살리는 역사를 위한 인격이 안되면 헌신할수록 자만해지고 교만해집니다. 그래서 교회가 어려워집니다.
(2) 염려, 걱정
베드로전서 5장의 말씀처럼 정말 어떤 염려와 걱정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붙잡혀 있습니다.
(3) 공포, 불안(두려움)
요한일서 4장 18-19절 말씀처럼 사랑 안에서 두려움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두려움에 싸여있습니다. 병든다고 사람이 불안해지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 병 때문에 점점 겸손해지고 평안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이상하게도 병 때문에 공포심에 빠집니다. 이것은 사단의 배경입니다.
(4) 타락
성도들조차도 이상한 곳으로 가고 있습니다
(5) 의식주 문제, 명예, 경배의 대상
이러한 모든 것들이 사단의 통로가 됩니다.
4. 바울
이러한 사단의 통로를 차단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내 안에 둘이 있어 하나는 선하려고 하고 하나는 악하려고 한다'라고 고백했으며, 결국 바울은 악에게 져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라고 탄식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바울은 위대한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게 되고, 더 나아가 '누가 나를 정죄할 것이냐?'라고 담대해집니다. '생명의 법이 사망의 법에서 해방하였다'는 진리를 깨닫게 되고 '그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합니다. 드디어 바울은 '아들을 주신 하나님께서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주신다'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고, 이 때부터 궁극적인 자유함을 얻게 되었습니다.
바울이 이렇게 될 수 있었던 배경은 삼층천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바울이 장가를 가지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바울은 열 네 편의 서신 중에 부인 이야기를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하늘 영광을 본 후로 이 땅의 것은 안중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혼자만 그 곳에 들어간다면 나쁜 자라'는 간증을 하게 됩니다. '그 큰 축복을 알고도 말하지 않으면 내게 화가 있으리로다'고 고백을 합니다. 바울이 하늘 나라의 영광을 본 후 '이 땅의 것은 하늘 나라의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라고 고백한 배경에서 참 인격의 치유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영광을 말할 수밖에 없어서 그 영광을 누릴 수 있는 길인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전도에 생을 걸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땅에서 '하늘 나라의 영광을 말하지 않으면 화로다!'라고 고백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연세가 많으실수록 하늘 나라 영광에 들어가기 전에 전도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오늘 죽어도 행복하지만, 남은 생애를 하늘 나라의 영광을 말하다가 그 영광으로 올라가게 해주십시오!'라고 기도할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늘 영광을 보고 당장이라도 올라가는 것이 좋으나 이 땅에서 내가 전하지 않으면 내게 화로다!'라고 고백하며 나아갈 때 현재 우리가 사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으며 다툴 일이 없어집니다.
정말 전도할 사람을 만들려면, 1분만 지옥 불에 구웠다가 내놓으면 될 것입니다. 만약 그 곳에 내 형제와 자매가 간다고 하면 기를 쓰고 복음을 전할 것입니다. 한편, 5분만 천국에 갔다 오면 사람들에게 하늘 영광을 전하기 위해 돌아다닐 것입니다. 이러한 일이 벌어지면 모두들 돌아다닌다고 가정과 사회의 질서가 깨어질 것이니까 실제를 숨겨두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 나라의 영광을 맛볼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소원인 전도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위대한 인격의 역사를 이루실 때에 새롭게 세상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 때에 돈을 맡겨야 제대로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정말 전도자로 섰다면, 모든 문제를 해결하실 것입니다. 인격을 치유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를 교회와 가정과 개인이 합시다. 정말 생애가 끝나는 날까지 전도의 문을 열어달라고 기도하며 이를 위해 내게 있는 것을 바칩시다.
번호 | 제목 | 본문 | 설교일 | 첨부파일 |
---|---|---|---|---|
1477 |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 삿2:6-10 | 2025-03-09 | |
1476 |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 삿1:1-7 | 2025-03-02 | |
1475 |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 단12:1-4 | 2025-02-23 | |
1474 |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 단11:28-39 | 2025-02-16 | |
1473 |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 단10:10-21 | 2025-02-09 | |
1472 |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 단9:20-24 | 2025-02-02 | |
1471 |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 단8:15-27 | 2025-01-26 | |
1470 |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 단7:9-14 | 2025-01-19 | |
1469 | 자기의 하나님을 믿음이었더라 | 단6:16-28 | 2025-01-12 | |
1468 |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 단5:17-31 | 2025-01-05 | |
1467 | [2025 송구영신예배] 하나님의 유업을 이을 자 | 갈4:4-7 | 2024-12-31 | |
1466 | 땅의 모든 사람을 다스리시는 하나님 | 단4:28-37 | 2024-12-29 | |
1465 | 완전한 승리를 내 것으로 누리는 성탄 | 눅2:8-14 | 2024-12-22 | |
1464 | 언약의 역사를 계속 이어가고 계시는 하나님 | 단3:8-18 | 2024-12-15 | |
1463 | 손대지 아니한 돌 | 단2:25-35 | 2024-12-08 |
1
2
3
4
5
6
7
8
9
10
...
99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