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교회의 치유
2004-05-06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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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개인 치유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교회 치유는 능력이 나오기 때문에 더 중요합니다. 교회 전체가 치유될 때에 그 교회를 통해 능력이 나옵니다. 교회 치유라는 말은 어마어마한 말입니다. 초대 교회가 치유되었을 때 전세계가 살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교회가 치유될 때에 전세계가 살아날 수 있습니다. 지금도 송현교회가 치유될 때, 대구 지역과 전국과 세계가 살아날 수 있습니다.


1. 그렇게 복음을 깨닫고도 왜 초대교회가 여러 가지 문제를 가지게 되었습니까? 사도행전 11장 1-18절을 통해 그 이유를 살펴봅시다.

(1) 율법 의식
19절부터 흩어진 성도들을 통해 세계 선교가 이루어지기에 앞서 복음을 깨닫기는 하였지만 이미 가지고 있던 율법의식이 치유되지 않았던 모습이 있습니다. 예수로 말미암아 복음을 깨달은 유대인들 중에는 복음에 더하여 할례도 받아야 된다는 율법 의식에 잡혀있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무엇을 해야 된다.'라는 의식이 깨어지지 않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라고 말은 하지만,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율법 의식이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교회가 다투고 어려웠던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었습니다. 베드로는 환상을 보고도 그대로 순종하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이방인들에게 가서 말씀도 전하고 세례도 주었을 뿐이라고 말한 것이 사도행전 11장 1-18절에 나타납니다. 여전히 베드로에게 율법 의식이 남아있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만이 되어야 크고 작은 문제들이 풀려나가게 됩니다.

(2) 종교 의식
종교는 사람이 만든 것으로, 사람의 힘으로 신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반면, 복음은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오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개개인으로는 이것이 된 것 같은데 여럿이 모이면 또다시 돌아가서 정죄하고 비판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어떤 사람도 송현교회에 와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해결될 수 있습니다. 생명이 들어가면 행실은 그 다음에 따라오게 됩니다. 밖에서 이상하던 사람도 교회 안에 들어오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해결됩니다. 그런데, '저 사람이 되겠나?'라고 주시해서 보고,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역시 그렇지.'라고 빈정댄다면, 어떤 사람도 견디기 힘들 것입니다.

(3) 전통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는 것보다 전통에 매여서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가정과 교회와 교단의 전통이 하나님의 뜻과 비교될 수 없음에도 전통에 더욱 매여 있습니다. 복음을 받았지만 어려웠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4) 계획
자기 사상에서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지지 자기의 사상과 계획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에서 자기 사상이 앞서게 될 때에 다툼이 나오게 됩니다. 내가 일을 하지만 하나님의 계획이 성취될 뿐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성취된다고 말하면서도 내 생각과 계획을 성취시키기 위해서 생명까지 거는 것 같습니다. 이것이 교회에 있어서 사단의 큰 통로입니다. 이것이, 초대교회가 그렇게 확실한 해답을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다툼과 분쟁이 있었던 이유입니다.


2. 환난

복음을 위해서 사역하는데 이상하게 환란이 연속됩니다. 여기에 많은 사람이 걸려듭니다. 특히 저에게 대해서 '박목사가 복음을 위해서 그렇게도 열심히 뛰더니 왜 아프냐?'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초대교회 사도들이 복음을 위해 그렇게 뛰어다녔지만 결국은 순교했던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은 가장 큰 축복입니다. 왜냐하면, 복음 때문에 생명을 걸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복음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왜 자꾸 어려움이 오는지 그 이유를 확인해야 합니다. 기복 신앙에 빠져 있으면 이러한 환난에 대해서 올바르게 보지 못합니다. 하늘의 영광을 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안되면 이 땅에서의 어떤 복도 소용없습니다. 이 땅에서의 100년을 잘 사는 것을 양보하고, 영원한 하늘 영광을 보장 받는 것이 축복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금만 어려움을 겪어도 저주를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 먼저 하늘 영광이 보장된 후에 이 땅의 것은 따라오는 것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하늘 나라의 영광을 잊고 있는 자에게는 환난을 주어서라도 하늘 영광을 깨닫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왜 문제가 옵니까? 잘 깨닫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어려움이 올 때 자신도 모르게 사단에게 속한 것처럼 속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하나님의 자녀는 누가 뭐라고 해도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환난을 통해 우리가 깨달아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1) 환난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히브리서에서 이 사실을 잘 말해줍니다. 참 아버지라면 자식일 잘못할 때 채찍을 가하게 됩니다. 참 아버지는 자식이 잘못 가는 것을 보고 그냥 두지 않습니다. 참 아버지되신 하나님께서 자녀된 우리가 잘못 가는 것을 보고 그냥 두시지 않고 채찍을 드는 것은 당연합니다. 환난을 받을 때, 환난을 주신 분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2) 환난의 이유가 있습니다.
제가 이번에 이렇게 어려움을 겪은 이유가 있습니다. 반은 죽었다가 살아나야할 이유가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 천당 가기를 원합니다.'라고 간절히 기도했었습니다. 정말 천당 앞에까지 갔는데 아직 자격이 없다고 하여 다시 소생되었습니다. 왜 이런 어려움을 주셨습니까? 저도 모르게 파고들어온 불신앙 때문이었습니다. 워낙 제가 율법적 배경이어서 잘잘못을 잘 따지는 편이었습니다. 오래 믿은 성도들이 여기에 잘 속습니다. 가족을 보면서도 '저렇게 해서 신앙생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나?'라고 따집니다. 그러나, 그런 모습으로도 예수 그리스도만 붙잡고 있으면 됩니다. 문제를 당합니까? 이유가 있습니다. 그렇게 문제를 당하지 않으면 교만해져서 다른 곳으로 빠지게 됩니다. 교회나 가정 안에 반드시 이유가 있습니다.
류목사님은 대학에 떨어진 아이들을 위로할 때, '우리 나라의 대학은 모든 것을 잘 해야 들어갈 수 있도록 되어 있는데, 그것은 정상이 아니다.'라고 말한답니다. 전부다 잘하는 것은 비정상이고 정신병입니다. 미안하지만 서울대학교에 다니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 그렇다고 보아야 합니다. 기분 나쁘겠지만 그러한 사람들이 정치를 하고 있으니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조금 잘하는 것도 있고, 조금 못하는 것도 있는 것은 정상입니다. 그렇게 해서 복음을 제시하면 어려움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힘이 됩니다. 우리 나라 아이들은 말을 하면서부터 온갖 학원을 다니며 혹사당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다 잘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바르게 하면 됩니다. 고통과 어려움이 오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시고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3) 하나님의 계획을 붙잡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놓치면 환난이 와야 됩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놓쳤는데도 잘되고 있다는 것은 더 큰 문제입니다.


3. 어떻게 교회와 개개인이 진정한 치유가 됩니까?

(1) 사도행전 11장 19-30절에 치유가 나옵니다.

(2) 구성원이 어떠하냐에 따라 교회 치유가 나옵니다.
송현교회의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교회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는 하나 하나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이유 때문에 모든 것을 버린 사람들입니다. 이와는 달리, 진정한 개개인의 삶의 가치가 바로 깨달아지지 않으면, 진정한 치유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축복을 주셨고 잘한다고 했는데, 진정한 치유의 핵이 빠지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불신앙이 오고 난 후에 민수기 13장 마지막 절에 정탐꾼이 보고하는 내용을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가나안 땅의 거민들이 보기에도 보잘 것 없이 보였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 스스로도 보잘 것 없이 보였다고 정탐꾼들이 보고했습니다. 불신앙이 들어오고 나니 저 자신이 아무 소용없는 자가 되어 보였습니다. '나는 필요없는 자다.'라고 생각되니까 살 이유가 없고 데려가 달라고 간구했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하루는 시골 교회의 예배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할머니 한 분이 앉아있었는데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더 이상 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예배는 장로님 한 분이 설교를 하셨는데 마칠 때까지 한 번도 예수 그리스도나 전도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교회들의 현실을 실제로 접했던 순간이었습니다. 그 때,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이유만으로도 살아야 되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바로 그 주간 이후로 회복이 되어졌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하나님 앞에 가겠다는 기도를 하지 않고, 오히려 살아야 되겠다고 말했습니다.
구성원이 구원의 축복을 누려야 됩니다. 구원의 축복을 누리면 이 세상을 볼 때 전도에 대한 간절함이 생기게 됩니다. 바울이 삼층천을 보고나서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내게 화로다.'라고 말했습니다. 먼저,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구원받았다는 사실이 확신되어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눈이 열려야 합니다.

(3) 사명
'복음을 말해야 될 사명을 가졌구나.'라고 깨닫게 될 때에 언제, 어디서든 담대해집니다. '나는 천사보다 귀하다'라는 담대함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여기에서 모든 문제가 다 풀립니다.

(4) 하는 일
이 때부터 나오게 되는 것이 '하는 일'입니다. 이제는 전도와 기도 밖에 할 일이 없습니다.

(5) 결과
이 과정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문제의 해결자라는 사실적 결론이 나오게 됩니다. 이것이 될 때까지 치유의 과정이 나오게 됩니다.


4. 결론

(1) 율법의식
아무리 애를 써도 이 치유의 과정이 실제적으로 나오지 않으면, 율법의식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인과응보'라는 사상이 나오게 됩니다. 아무리 죽을 죄를 지어도 예수 그리스도를 깨달으면 은혜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은혜를 받으면 해결됩니다. 은혜를 받는다는 것은 꼭 물질적으로 잘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사는 것은 오직 은혜로 사는 것입니다.

(2) 죄의식
은혜에 대한 실제가 없을 때, 죄의식에 빠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흰눈같이 씻어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오직 은혜로 사는 것입니다. 복음을 위해 생명을 거는데도 쫒겨날 수도 있고 후손이 못살 수도 있습니다. 이 땅에서는 복을 받지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살든지 하나님 앞에 은혜로 서야 합니다. 이것이 안되면 자신도 모르게 불신앙에 빠지게 됩니다. 어떻게 되든지 언약의 바톤을 이어갈 때에 잘되든지 못되든지 은혜로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 송현교회 속에서 전도를 할 수 있게 된 것도 감사한 일입니다. 교회 치유가 자연스럽게 은혜 가운데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은혜의 약속을 붙잡고 한 주간을 승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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