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충만
2004-05-06 00:00:00
관리자
조회수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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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1부 예배도 인도하게 된 것은 기도의 열매입니다. 학생 중 하나가 1부 예배 때도 설교를 해달라고 편지를 두 번이나 보내왔었습니다. 특히 휴대폰으로까지 전화를 해왔었습니다. 전화를 해서는 '목사님 지금 뭐하십니까?'라고 물어보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우리 개개인이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느냐?'라는 질문만 하고 살아도 하나님의 인도를 받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과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을 때가 있습니다. 1부 예배를 드리면서 참으로 감격스러웠습니다. 찬송이 은혜가 되었습니다.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참으로 귀한 것입니다. 특별히 예배를 많이 드리게 되는 교역자, 중직자, 오래된 신자들이 진정으로 예배 회복이 되어야 합니다. 예배 시간에 말씀을 통해서 은혜를 입는 것은 참으로 귀중합니다.
'성령의 충만을 입으라' 이 말은 곧 '은혜 받는 삶을 살아라'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제가 5월부터 6개월 정도 장기간 아프다 보니까, 아픈 사람에게 상처가 될 수 있는 말이 참으로 많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아픈 사람들을 치유하는 사역을 하려면 아파 보아야 되겠다는 심정까지 들었습니다. 아픈 사람의 심정을 헤아리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다 아파 보아야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예수를 몰라서 아픈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몰라서 아픈 것이 아닙니다. 기도를 안 해서 아픈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사실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안 믿고 안 부르니까 그렇다'고 말해버립니다.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러한 것을 몰라서 아픈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정말로 아픈 사람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은혜를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은혜를 입어 하나님의 역사를 깨닫게 되면 아프든 안 아프든 관계없이 가장 합당한 말씀이 나가게 됩니다.
1. 하나님의 역사는 예측이 안 된다.
기도하고 안하고와 상관없습니다. 은혜를 입어야 됩니다. 아프면서 여러 병원을 다녀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은혜 주시지 않으면 병원에 가보아도 소용이 없습니다. 오직 은혜를 입어야 됩니다. 왜냐하면, 언제 하나님의 역사가 터져나올지 예측이 안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아프니까 가정까지도 함께 여러 가지로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 같습니다. 거의 하지 않던 감기까지도 온 식구들이 하게 되었습니다. 2, 3주 전부터 사모가 갑자기 등이 아프다고 해서 힘들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르는 가운데 부지불식간에 고통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렇게 치유되리라고 예측했던 것이 아닙니다. 고통이 사라지자 안 아플 때보다 더 기분 좋아했습니다. 우리는 아픈 가운데 먼저 은혜를 입어야 합니다. '왜 안 낫습니까?'라고 대어들면 스트레스만 받습니다. 아파도 하나님의 약속은 이루어집니다. 가족들까지 어려움을 겪자 깊은 터널 속에 있는 것 같았지만, 이런 치유의 사실이 이루어질 때 너무 기뻐서 밤에 잠도 잘 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예측 불허입니다.
(1) 창세기 1장 3절
전 우주가 혼돈과 흑암에 싸여 있었습니다. 그 때에 주님이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시자 순식간에 환해졌습니다. 말슴이 성취되는 것은 우리의 예측과 상관없습니다.
(2) 이사야 40장 29-31절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각각 그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사40:26)" 이와 같이 엄청난 하나님을 믿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이르기를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하느냐(사40:27)"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응답이 없다는 불신앙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렇게 전능하신 하나님을 알고 있으면서도 불신아에 빠진 자들에게 해답이 어떻게 주어졌습니까?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즉,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에게 예측할 수 없는 새 힘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어렵고 힘들 때 여호와를 앙망하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 기도하라는 말입니다. 그 때에 우리의 수준과 상관없이 예측할 수 없는 힘이 임하게 됩니다.
(3) 이사야 43장 18-20절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 장차 들짐승 곧 시랑과 및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들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나의 택한 자로 마시게 할 것임이라"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고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전 일과 옛적 일은 실패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를 앙망할 때에 그러한 것들을 기억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믿는 자에게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새 일을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상상하지 못할 일을 약속하십니다. 사막에 물이 난다는 것은 기적입니다. 사막 가운데서 먹고 마시는데 부족함이 없도록 역사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창조주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원하시기만 하면 예측할 수 없는 엄청난 새 일을 이루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새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시간표가 되면 되어진다.
하나님은 일을 이루실 때 하나님께서 정한 시간표를 따라서 이루십니다. 사도행전 2장에서 '오순절'에 성령이 임했습니다. 바로 새 일을 이루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일을 이루시면서 도저히 복음이 전해질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복음이 증거되게 하셨습니다. 오순절 절기를 지키기 위해 여러 나라에서 살던 교포들이 모여들었던 곳은 성전이 아니라 마가 요한의 다락방이었습니다. 즉, 1절에서는 '오순절 날에', 5절에서는 '그 때에', 18절에서도 '그 때에', 41절에는 '이 날에'라고 나오는 모든 것이 바로 하나님의 시간표였습니다. 정말로 복음이 전해지는 것이 불가능한 환경 속에서 인간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3,000명이나 더해졌던 것입니다. 인간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치유를 하는 것이나 복음을 전하는 것에 있어서 이 사실을 알지 못하면 엄청난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하나님의 시간표에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것을 놓치고 내가 한다는 교만에 빠지게 됩니다. 이 사실을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 때로 성도들을 연단하시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시간표를 따라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이 될 때에 교만이나 낙심이 필요 없습니다. 아픈 것도, 슬픈 것도, 실패하는 것도 상관없습니다. 아프다는 것이 하나님의 복음 역사에 이르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시간표에 따라서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입니다. 일평생 하나님의 일을 해왔다고 자부해 왔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라 거역할 수 없는 하나님이 이루셨습니다. 이것이 되면 가정이 어렵다는 것도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의 시간표대로 인도해 가시기 때문입니다.
3.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이루어 가신다.
우리의 약함이나 우리의 계획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집니다.
(1) 사도행전 3장 1절
어떤 때에 내 계획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집니까?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사용하셨는데, 예측할 수 없는 큰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교회 밖에서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 때에 베드로가 한 중요한 말이 있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행3;6)" 베드로가 앉은뱅이에게 복음을 정확하게 전달했습니다. 이와 같이 복음이 정확하게 깨달아지는 순간에 성령이 역사하십니다. 치유라는 것이 다른 것이 아닙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이 정확하게 전달되는 순간에 치유는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정신적인 문제로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이 깨달아지는 순간에 정신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깨달아집니다. 또한 이것이 정확하게 전달될 때에 치유가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안되니까 자꾸 다른 방향으로 나갑니다. 성령의 역사를 무엇인가 불이 내려오거나, 이상한 말을 하거나, 이상한 것을 보는 것으로 자꾸 기대하게 됩니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아무런 느낌이 없어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에 응답으로 성령의 역사가 나오는 것입니다.
(2) 사도행전 16장 16-18절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점치는 여종에게 있는 귀신을 나가라고 명령했습니다. 이러한 치유의 역사가 일어날 때 잘못하면 교만에 빠집니다. 그러한 사람은 하나님이 사용하실 수가 없습니다. 왜 예수를 믿고 복음 생활을 하려고 하는데 어려움이 옵니까? 바울을 보면서, 정말로 전도할 수 있는 인격이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예측할 수 없는 은혜가 나올 때, 겸손할 수 있는 인격이 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바울은 몸에 질병이 있었는데, 그것이 얼마나 심한지 사단의 가시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 질병을 신경염이라고도 하는데, 신경이 따갑고 눌리는 것은 다른 질병과는 비교도 안될만큼 어마어마한 고통입니다. 바울은 이것 때문에 세 번이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그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네 은혜가 네게 족하다"라는 것이었으며, "자고하지(스스로 높아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제가 어려움에 빠져보니까 은혜를 입을 일이지, 무엇을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되면서 겸손한 마음이 왔습니다. 그러므로, 질병을 가지고 있는 우리는 먼저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세우셨으니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십니다. 다만 우리가 지금 처한 상황은 그 과정일 뿐입니다.
'성령의 충만을 입으라' 이 말은 곧 '은혜 받는 삶을 살아라'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제가 5월부터 6개월 정도 장기간 아프다 보니까, 아픈 사람에게 상처가 될 수 있는 말이 참으로 많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아픈 사람들을 치유하는 사역을 하려면 아파 보아야 되겠다는 심정까지 들었습니다. 아픈 사람의 심정을 헤아리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다 아파 보아야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예수를 몰라서 아픈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몰라서 아픈 것이 아닙니다. 기도를 안 해서 아픈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사실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안 믿고 안 부르니까 그렇다'고 말해버립니다.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러한 것을 몰라서 아픈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정말로 아픈 사람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은혜를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은혜를 입어 하나님의 역사를 깨닫게 되면 아프든 안 아프든 관계없이 가장 합당한 말씀이 나가게 됩니다.
1. 하나님의 역사는 예측이 안 된다.
기도하고 안하고와 상관없습니다. 은혜를 입어야 됩니다. 아프면서 여러 병원을 다녀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은혜 주시지 않으면 병원에 가보아도 소용이 없습니다. 오직 은혜를 입어야 됩니다. 왜냐하면, 언제 하나님의 역사가 터져나올지 예측이 안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아프니까 가정까지도 함께 여러 가지로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 같습니다. 거의 하지 않던 감기까지도 온 식구들이 하게 되었습니다. 2, 3주 전부터 사모가 갑자기 등이 아프다고 해서 힘들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르는 가운데 부지불식간에 고통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렇게 치유되리라고 예측했던 것이 아닙니다. 고통이 사라지자 안 아플 때보다 더 기분 좋아했습니다. 우리는 아픈 가운데 먼저 은혜를 입어야 합니다. '왜 안 낫습니까?'라고 대어들면 스트레스만 받습니다. 아파도 하나님의 약속은 이루어집니다. 가족들까지 어려움을 겪자 깊은 터널 속에 있는 것 같았지만, 이런 치유의 사실이 이루어질 때 너무 기뻐서 밤에 잠도 잘 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예측 불허입니다.
(1) 창세기 1장 3절
전 우주가 혼돈과 흑암에 싸여 있었습니다. 그 때에 주님이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시자 순식간에 환해졌습니다. 말슴이 성취되는 것은 우리의 예측과 상관없습니다.
(2) 이사야 40장 29-31절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각각 그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사40:26)" 이와 같이 엄청난 하나님을 믿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이르기를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하느냐(사40:27)"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응답이 없다는 불신앙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렇게 전능하신 하나님을 알고 있으면서도 불신아에 빠진 자들에게 해답이 어떻게 주어졌습니까?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즉,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에게 예측할 수 없는 새 힘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어렵고 힘들 때 여호와를 앙망하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 기도하라는 말입니다. 그 때에 우리의 수준과 상관없이 예측할 수 없는 힘이 임하게 됩니다.
(3) 이사야 43장 18-20절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 장차 들짐승 곧 시랑과 및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들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나의 택한 자로 마시게 할 것임이라"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고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전 일과 옛적 일은 실패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를 앙망할 때에 그러한 것들을 기억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믿는 자에게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새 일을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상상하지 못할 일을 약속하십니다. 사막에 물이 난다는 것은 기적입니다. 사막 가운데서 먹고 마시는데 부족함이 없도록 역사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창조주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원하시기만 하면 예측할 수 없는 엄청난 새 일을 이루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새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시간표가 되면 되어진다.
하나님은 일을 이루실 때 하나님께서 정한 시간표를 따라서 이루십니다. 사도행전 2장에서 '오순절'에 성령이 임했습니다. 바로 새 일을 이루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일을 이루시면서 도저히 복음이 전해질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복음이 증거되게 하셨습니다. 오순절 절기를 지키기 위해 여러 나라에서 살던 교포들이 모여들었던 곳은 성전이 아니라 마가 요한의 다락방이었습니다. 즉, 1절에서는 '오순절 날에', 5절에서는 '그 때에', 18절에서도 '그 때에', 41절에는 '이 날에'라고 나오는 모든 것이 바로 하나님의 시간표였습니다. 정말로 복음이 전해지는 것이 불가능한 환경 속에서 인간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3,000명이나 더해졌던 것입니다. 인간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치유를 하는 것이나 복음을 전하는 것에 있어서 이 사실을 알지 못하면 엄청난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하나님의 시간표에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것을 놓치고 내가 한다는 교만에 빠지게 됩니다. 이 사실을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 때로 성도들을 연단하시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시간표를 따라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이 될 때에 교만이나 낙심이 필요 없습니다. 아픈 것도, 슬픈 것도, 실패하는 것도 상관없습니다. 아프다는 것이 하나님의 복음 역사에 이르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시간표에 따라서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입니다. 일평생 하나님의 일을 해왔다고 자부해 왔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라 거역할 수 없는 하나님이 이루셨습니다. 이것이 되면 가정이 어렵다는 것도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의 시간표대로 인도해 가시기 때문입니다.
3.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이루어 가신다.
우리의 약함이나 우리의 계획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집니다.
(1) 사도행전 3장 1절
어떤 때에 내 계획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집니까?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사용하셨는데, 예측할 수 없는 큰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교회 밖에서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 때에 베드로가 한 중요한 말이 있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행3;6)" 베드로가 앉은뱅이에게 복음을 정확하게 전달했습니다. 이와 같이 복음이 정확하게 깨달아지는 순간에 성령이 역사하십니다. 치유라는 것이 다른 것이 아닙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이 정확하게 전달되는 순간에 치유는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정신적인 문제로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이 깨달아지는 순간에 정신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깨달아집니다. 또한 이것이 정확하게 전달될 때에 치유가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안되니까 자꾸 다른 방향으로 나갑니다. 성령의 역사를 무엇인가 불이 내려오거나, 이상한 말을 하거나, 이상한 것을 보는 것으로 자꾸 기대하게 됩니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아무런 느낌이 없어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에 응답으로 성령의 역사가 나오는 것입니다.
(2) 사도행전 16장 16-18절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점치는 여종에게 있는 귀신을 나가라고 명령했습니다. 이러한 치유의 역사가 일어날 때 잘못하면 교만에 빠집니다. 그러한 사람은 하나님이 사용하실 수가 없습니다. 왜 예수를 믿고 복음 생활을 하려고 하는데 어려움이 옵니까? 바울을 보면서, 정말로 전도할 수 있는 인격이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예측할 수 없는 은혜가 나올 때, 겸손할 수 있는 인격이 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바울은 몸에 질병이 있었는데, 그것이 얼마나 심한지 사단의 가시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 질병을 신경염이라고도 하는데, 신경이 따갑고 눌리는 것은 다른 질병과는 비교도 안될만큼 어마어마한 고통입니다. 바울은 이것 때문에 세 번이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그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네 은혜가 네게 족하다"라는 것이었으며, "자고하지(스스로 높아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제가 어려움에 빠져보니까 은혜를 입을 일이지, 무엇을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되면서 겸손한 마음이 왔습니다. 그러므로, 질병을 가지고 있는 우리는 먼저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세우셨으니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십니다. 다만 우리가 지금 처한 상황은 그 과정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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