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손을 내밀라
2004-05-07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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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12:9) 거기를 떠나 저희 회당에 들어가시니
(마 12:10) 한편 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를 송사하려 하여 물어 가로되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마 12:11)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붙잡아 내지 않겠느냐
(마 12:12)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것이 옳으니라 하시고
(마 12:13) 이에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손을 내밀라 하시니 저가 내밀매 다른 손과 같이 회복되어 성하더라
(마 12:14)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꼬 의논하거늘
(마 12:15) 예수께서 아시고 거기를 떠나가시니 사람이 많이 좇는지라 예수께서 저희 병을 다 고치시고
(마 12:16)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 경계하셨으니
(마 12:17)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말씀하신 바
(마 12:18) ㄹ보라 나의 택한 종 곧 내 마음에 기뻐하는 바 나의 사랑하는 자로다 내가 내 성령을 줄터이니 그가 심판을 이방에 알게 하리라
(마 12:19) 그가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마 12:20)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마 12:21) 또한 이방들이 그 이름을 바라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오늘 제목을 "네 손을 내밀라" 말씀을 삼았습니다. 사람들은 환경에 따라서 생각도 바꾸어 질 수 있고, 또 모양도 바꾸어 질 수 있습니다. 태도도 바꾸어 질 수 있고, 또 환경 따라서, 여건 따라서 실수할 수도 있고, 또 때에 따라서는 칭찬 받을만할 수도 있는 이런 어떤 문제들이 우리 삶에 계속 연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이 변화무쌍한 우리의 삶에서 한가지 변화되지 말아야 될 것이 있다! 그러면 이 복음입니다. 그래서 그 복음이 변화되지 않을 수 있기 위해서는 '뿌리를 내려라!' 그렇게 계속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뿌리를 내려라!
그래서 우리 시편 1편을 강해 하면서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무성할 수 있는 것은, 가뭄이 와도 무성할 수 있는 것은, 그 뿌리가 깊은 땅속에 내려가서 지하수에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에, 가문과 상관없이 계속해서 열매를 맺고, 계속해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시절을 쫓아 때가 되는 데로, 시간표 따라서 열매가 맺혀지고 그렇게 할겁니다. 뭐 그것은 사막 속에 서있다! 그래도 상관이 없다! 그렇게 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좀 붙잡아야 될 것이 바로 이것을 가지고 우리는 생명이라 그랬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우리는 구호를, '예수 생명, 예수 능력!' 그러니까 그 생명 속에 서 있으면 그 다음에 나타나는 것은, 자발적으로, 자생적으로, 저절로 능력이 증거 될 수밖에 없고, 이것을 우리는 증거라! 그래서 이 증거를 통해서 세계를 정복할겁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뭔가 예수 믿고 세계 복음화다! 그럴 때에 아무런 힘이 없고, 역사를 억지로 한다는 게 아닙니다. 우리와 상관없이 하나님이 여러분과 제게 증거주실 것이고, 그 증거를 통해서 세계를 정복해 나가고, 세계 복음화 할 것이다!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가치는 다른 어떤 일이나, 고집이나 감정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여러분들이 이건 뭐 너무 잘 알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생명이 끊어지면 오늘부터 끝입니다. 아무리 사랑하고, 아무리 뭔가 가까워도 생명 끊어지는 순간 묻어버립니다. 어제 같이 손잡고 웃고 뽀뽀해도 생명 끊어졌다! 오늘로 끝입니다. 중요한 것이 바로 생명의 문제죠. 생명이 없으면 저주가 시작됩니다. 그게 성경에 원칙이요. 원리입니다. 그래서 이 생명의 역사를 우리에게 주신 것을 가지고 우리는 은혜라 그랬습니다.
여러분들이 생명 받았고 이 시간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렸다! 생명이 있기에 귀가 열린 것 아닙니까! 그것은 은혜 중에 은혜다! 그래서 우리가 은혜를 자꾸 다른 것으로 자꾸 생각을 합니다. 육신 것으로, 인간적인 것으로 생각합니다. 은혜의 본질은 바로 생명입니다. 구원 이 축복을 은혜의 본질로 성경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좋아도 생명이 없으면, 지금 저주는 진행이 됩니다. 아무리 기쁘고 기분 좋아도 생명이 없으면, 자기도 모르게 저주를 향해서 다름 박질 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에 메시지입니다.
그래서 시간이 갈수록 그 사람에게는 저주가 점점 더 심각해지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다 놓쳐도 생명만은 놓치지 마라! 아무리 기분 나빠도 생명만은 놓치지 마라!' 왜 그러느냐? 여러분들이 10년 후에, 생명 가진 자와 생명 없는 자는 엄청난 차이가 나게 됩니다. 예를 들어서 여러분 아이가 참 생명으로 이 아이가 잘 자란다. 10년 후에는 엄청나게 달라집니다. 제가 이 아이들을 보면서 뭘 느끼느냐 하면, 너무 달라진다! 뭐 어끄제 같이 그런 아이가 한 10년 지났다! 엄청나게 달라지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죽어버리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달라질 수가 없어요.
그래서 여러분 복음 붙들고 그리스도의 생명을 갖고 살아갈 때에, 바로 그 순간에 어려움이 오고 힘드는 것 같아도 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여러분 아이가 오줌싸고, 똥 싼다! 10년 후에는 달라져 버립니다. 성도들이 생명 가지고 있으면, 지금은 고통스럽다! 뭐 어렵다! 괴롭다! 갈등나온다! 상관없어요. 생명 있으면 5년, 10년 엄청난 차이가 나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 축복과 은혜가 바로 오늘 여러분과 제게 약속하신 그리스도의 약속이요, 그리스도의 축복이요, 역사가 됩니다.
이 생명을 받은 증거가 무엇이냐? 오늘 지난주에 이어서 좀 설명이 되고 있습니다. 그것이 뭐냐하면, 먼저 이 생명을 받았다는 것이, 제일 먼저 예배가 회복된다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생명 받았다는 증거가 뭐냐? 주일날 말씀 듣고 싶어지는 것이 아니라, 말씀 듣도록 인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살았다는 증거가 뭡니까? 여러 가지 증거를 말할 수 있지만 밥 먹는다는 증거 아닙니까! 죽은 사람 입에 아무리 갖다가 퍼 넣어도 이 되는 게 아닙니다. 뭐 저는 보니까, 그 죽음을 아주 많이 봤죠.
그래서 제가 혹시, 불신자들이나 이런 가정에서 임종을 하고 나면, 딱 죽고 난 후에 제일 먼저 뭘 퍼 넣느냐? 입에다가 쌀을 퍼 넣더라 구요. 아무리 퍼 넣어도 안 먹어요. 줄줄 넘치지 소용이 없어요. 여러분 살았다는 첫 번째가 뭐 간단합니다. 밥 먹습니다. 말씀을 먹습니다. 예배가 회복됩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죠. 여러분 주일날 예배가 기다려지고, 주일날이 정말 기다려진다. 생명의 첫 번째 증거입니다. 다른 것이 없어요. 주일날 싫다! 주일날에 잘 뭔가 참 좋아하지 않는다! 괴롭다! 그래서 뭐 말씀 중에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 구요. 성도들 중에서 두 가지가 있는데, 주일날이 다가왔다! 굉장히 놀라는 사람이 있답니다. '벌써 주일이냐!' 이러는 사람, 주일날 다가왔다! '아, 주일날 너무 감사하다!' 이런 사람이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정말 말씀 듣고 참 생명의 주인이신 주님! 그리고 안식일에 주인이신 바로 주님 그분을 만나는 기쁨과 감사가 있느냐? 생명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생명이 건강하다, 안 하다! 바로 여기에 바로 나타납니다. 그 말씀 받고 그 말씀 듣는 그 순간 그 시간이 참 감사하다, 기쁘다! 그리고 말씀들을 때에 힘 얻고, 용기 얻고, 말씀들을 때에 그 다음에 뒤틀렸던 마음과 생각들이 치료받고, 그건 건강한 증거입니다. 여러분들이 이것이 자연스러운 일 중에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생명의 참 된 증거요. 축복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에 바로 이 문제를 다루었잖아요.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의 법도와 규례로, 생명으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법도와 규례를 통해서 안식일을 지키려고 원했습니다. 그러니 자연적으로 의식과 율법이 주가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자연적으로 자기들의 판단과 자기들의 기준이, 예배드리는 기준이 되었다는 것을 오늘 성경에 말씀을 하시고 있습니다. 요한 일서 5장 10절 보면,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 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문제는 뭐냐하면 생명이 없으면, 말씀을 못 믿어요. 믿을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는 이 주일날이, 믿음이 없으니까, 주일날 말씀 듣는 것이 지루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일단 여러분 주일날 은혜 받았다! 하는 것은 말씀이 깨달아 졌다. 이것이 상당히 중요한 그런 축복이죠. 그래서 여러분과 제게 이 축복이 있다는 사실은 바로 11절 말씀 보면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생명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고, 이 축복과 역사가 누려지는 이 사실이 바로 생명의 참된 증거요, 축복이라는 것을 말씀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몇 주전에 아마 제 설교 제목 중에서 볼 것을 보라, '네가 무엇을 보느냐!' 그렇게 메시지를 전한 기억이 납니다. 그러니까 볼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참 중요한데, 주로 보면 그 볼 것을 볼 수 있는 기준이 뭐냐하면, 내 안에 뭘 통해서 오느냐? 누구를 통해서 오느냐? 이것이 중요합니다. 다시 말해서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누려야 성도들은 볼 것이 보입니다. 볼 것을 보고 판단할 것을 판단하게 되죠. 이것이 안되면 전혀 다른 것으로 나옵니다. 워낙 다른 것이 가득했던 우리의 과거이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우리가 한순간도 부주의하게 되고 마음을 붙잡지 못하면 이걸 놓치게 되죠.
그런 것이 있잖아요. 사람의 마음이 슬픔이 가득하면, 새소리가 뭐로 들려요? 울음소리로 들립니다. 그러나 기쁨이 가득하면, 새 소리가 무슨 소리로? 노래 소리로 들립니다. 여러분 안에 그리스도를 누리고 살아갈 때에, 여러분 눈을 통해서 보이는 것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전혀 다른 시각으로 보여지게됩니다. 이것이 내게 그리스도보다도 다른 것이 너무 체질이 되어있기 때문에, 생각과 마음이 우리가 보고 사건이 생길 때에 나도 모르는 순간에 어디로 가느냐? 다른 것에 의해서, 다른 것으로 빠져갑니다. 축복과 은혜로 인도 받는 것이 아니고, 저주와 죽음으로 빠질 때가 너무 많은 것이 우리 삶에서 실제로 지켜 볼 수가 있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내 안에 그리스도가 있으면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게 되고, 그리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있으면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 생명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에 사는 삶에 생각과 마음이 이루어지게 되니까, 보는 것이나 느낌이나 전혀 다르게 와 닿게 되고, 역사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때부터 그들의 가는 발걸음이 성령의 인도 받게 되고, 참 삶에 축복으로 인도 받는 것을 우리가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을 만나게 되느냐? 예배라는 것이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은, 이미 여러분 설명되어져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심히 이것을 생각하죠. 그래서 주보에도 계속해서, 교회를 개척한 이후에 지금까지 '예배에 성공!' 우리 표어입니다. 바꾸지 않았습니다. 왜? 이게 철칙이니까! 여러분 개인이 성공 안되면 승리 할 수가 없습니다. 왜 예배 성공이 안되면 뭐로 인도 받습니까? 다른 것으로 인도 받는데, 예배에 성공되어야 누구의 인도 받습니까? 하나님이 여러분과 제게 축복하신 그 역사로 성령이 인도해 주십니다. 이것이 안되면 잘되는 것 같다! 소용없어요. 순간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요나처럼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는 것, 여러분 예배의 성공이 안되면, 많은 경우 문 열자마자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갈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결국 뭡니까? 물고기 배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이런 고통과 괴로움이 너무 많은 것을 우리가 사실적으로 볼 수가 있죠.
그래서 본래 예배라는 것은 번제에서 나왔습니다. 여러분 지금 현재 드리는 것은, 번제에서부터 예배가 나왔습니다. 구약의 번제! 번제라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이냐 하면, 양을 잡아서, 그러니까 그 사람이 죄를 범했다 그러면 양을 잡아서, 양을 잡기 전에 제사장이 그 죄에 대해서, 그 사람의 죄가 양에게 이완되는 것을 선언을 하고, 제사장이 양을 그 자리에서 잡아서 껍질을 벗기고 각을 다 뜹니다. 팔다리를 다 뜨죠. 사람 팔다리를 뜨는 게 아니고, 양의 팔다리를 각을 다 뜹니다. 그 내장은 다 내어 가지고 그 다음에 밖에 버리고 이 양의 각을 뜨고서는 그것을 재단에 올려놓고 불을 살라서 바싹 태웁니다. 이것을 가지고 번제라! 이 말이 뭐냐하면, 전부를 바친다! 이겁니다. 전부를 바친다! 그래서 번제라는 것은, 전부를 바친다는 이런 어떤 뜻이죠. 몸을 드린다! 마음을 드린다! 이게 전부 예배의식에서 나온 배경의 단어들입니다.
로마서 12장 1절 보면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그랬습니다. 여러분 지금 현재 산 제사로 여기에 왔어요. 하나님 앞에 그 예배드릴 때에 뭘 말하느냐 하면, 여러분 생각과 마음과 뜻을 완전히 하나님 앞에 다 드린다! 그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생각과 마음은 하나도 안 드리고, 자기 주장과, 자기 고집과, 자기 그 생각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서 이 시간에 예배드린다! 그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이죠.
그래서 가장 복음으로 뿌리를 내리고, 가장 복음으로 예배에 승리할 수 있는 길이 뭐냐하면, 갈라디아서 2장 20절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데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여러분들이 예수 믿는다고 그러는 것은 다른 게 아닙니다. 예수 믿는다! 자기 확신을 믿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이미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신 그 영광스러운 그 역사를 하나님이 이루실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사단에 속아서 생각과 마음과 체질들이 저주로 빠져 들어가던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게 되고, 이제는 그 모든 것들을 다 버리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살아가겠습니다! 그 하나님의 음성이라는 것은 뭡니까? 하나님이 직접 '아무개야!' 밤중에 임하는 것이 아니고 뭡니까? 말씀입니다. 그 말씀을 들고 살아가겠습니다. 이것이 맨 정신으로 이루어 져야 됩니다. 이걸 뭔가 신비적으로 기도하다가 막 음성이 들려진다! 그런 기분이 아닙니다.
내 생각과 사고가 평범하게, 자연스럽게 이제는 내 감정과 고집이나 느낌이 다 버려지게 되고, 이제는 내 주장이나 내 계획이 다 버려지게 되고, 먼저 하나님 앞에 하나님이 '오늘 내게 뭘 원하십니까! 하나님의 뜻이 오늘 뭘 원하십니까?' 그래서 하나님 앞에 나왔을 때에 예배시간이 중요하다는 것은, 오늘 말씀을 통해서, 그리고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을 통해서 그 말씀이 임하게 될 때에, 내 생각과 마음이 어떻든 다 던져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그리고 그 말씀을 가지고 돌아가는 것이 우리 신앙에 생활입니다.
그 말씀가지고 살아가게 될 때에 뭐가 성취됩니까? 말씀이 성취되는 현장을 보게 됩니다. 이것을 가지고 우리가 '누린다!' 그랬습니다. 누림이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래서 구약시대 때는 안식일만 예배를 드리지만, 신약시대에는 이 일이 성령으로 항상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 일이 이루어지는 그것을 가지고 안식일이, 주일이, 주일, 오늘만이 아니고 언제입니까? 일주일 모두가 다 주일입니다. 내가 주인이 아니고 누가 주인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 나의 의지와 생각과 전부를 인도하시는 모든 인도 받는 순간, 순간들이 다 주일입니다. 그러면 오늘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한 주간 내내 다 안식일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에서 가르쳐 주시는 이 축복과 역사가 되는 겁니다.
그러면 이때부터 일어나게 되는 것이 뭡니까? 말씀이 나를 지배하게 되고, 이때부터 자연적으로 내가 죽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것이 여러분이 하나님을 만나는 길 아닙니까! 그 하나님의 말씀을 누구를 통해서? 그리스도를 통해서해야 하나님의 말씀이 열리고, 이해가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럴 때에 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내가 죽고, 내 감정이 죽고, 나의 느낌이 죽고 날 때에 비로소 말씀이 전부로 보여지기 시작합니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말씀이 저 구석에 있는 것이죠. 아무리 말씀을 들어도 말씀이 주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자연적으로 따라오는 것이 뭐냐? 여러분 '말씀 순종, 말씀 순종!' 백 번 외쳐보세요. 그들에게 말씀순종이 안됩니다. 다른 것으로 가득 차 있는데, 내가 죽고, 내 감정이 죽고, 내 의지가 죽고 오직 하나님의 계획이 다 보여지게 될 때에, 그때부터 성경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구체적으로 말씀했기 때문에, 그 말씀이 전부로 보여지게 됩니다. 그때부터 순종이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기적이라는 사실은 이 속에서 기적이 나오는 것이죠. 다른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여러분 기적이라는 것은, 뭐 흔히 아픈 사람이 막 기적으로 치료가 되었다! 죽음을 선고받았는데 기적으로 치료가 되었다! 그것은 간단합니다. 죽음을 선고받았을 때에 간단하거든요. 사람이 보통 때는 자기를 던지지 못해요. 죽었다! 당신은 죽음 선고다! 당신은 죽는다! 이럴 때는 어차피 죽을 거니까, 그때에 정신이 바짝 들어 가지고 하나님 알았습니다. 이제 내가 죽던지, 살던지 이제는 내 생각, 내 고집 다 던져 버리겠습니다. 하나님의 뜻만 기다리겠습니다. 그때부터 비로소 완전하게 맡길 수 있는 믿음이 생기더라 구요.
그래서 여러분 꼭 이렇게 해 가지고 믿음이 생기지 않도록, 나는 워낙 잘 못 믿으니까, 이런 식으로 잘 인도를 받은 것 같아요. 그래서 뭔가 고집을 피울 때는 하나님께서 가만히 안 두어요. 어떤 면에서 지금까지 생애를 살아오면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중요한 일을 이룰 때마다 먼저 뭐부터 꺾고 들어오느냐 하면, 내 의지와 생각부터 꺾어 놓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중요한 계획과 뜻을 붙잡도록 만들어 놓고, 기적을 일으키는 겁니다. 그렇게 성취시켜 나가는 거죠. 왜? 그게 순서였습니다. 그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살아가면서 뭐 일과 사건이 생겼다! 어떤 면에서 여러분 고집 꺾는 겁니다. 자기 고집대로 해 가지고, 자기 생각대로 해서 일이 잘된다, 안 된다! 이게 상관없이 거기서 뭘 깨닫게 만드느냐? 하나님의 뜻을 찾도록!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전부라는 사실이 보여지도록, 오늘 성경에서 중요한 것이 말씀되죠.
저는 그 몇 일 전에 제가 늘 등산하는 코스가 있어요. 등산도 별 등산도 아니고, 걷는 것이지만, 그런데 어떤 처녀들이 둘이 앉았다가 저를 따라와요. 저는 아침이니까 머리도 이상하게 해 가지고 옷도 이상한 옷을 입고 하니까 사람들이 좀 만나는 것이 좀 부끄럽기도 하고 그래서 될 수 있으면 사람을 잘 안 만나죠. 그런데 따라 와 가지고 뭐라고 그러느냐 하면, 박지온 목사님이 아니십니까 이러더라 구요. 송현 교회 체면도 있지 덥수룩하게 해 가지고 만나니까, 앞으로 등산 갈 때도 머리를 해 가지고 가야 되겠나? 그런 생각도 나고...
그러니까 그렇다고 해서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까? '맞습니다!' 이러니까 뭐라 그러느냐 하면, 10년 전에 우리 교회에 학생으로 잠깐 있었데요. 자기 집은 시골이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때에 누가 있느냐 물어요? 보니까 목사가 되어 있어요. 웃으면서 그렇다고 그러니까,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자기가 도저히 해결될 수 없는 고민이 있다고 그래요. 해결될 수 없는 고민이 있다고 그러는데, 처녀가 해결될 수 없는 고민이 있다고 그러는 것은 뭡니까? 남녀관계 밖에 더 있습니까? 거의 다 그러니까! 그래서 제가 남녀관계냐? 그러니까 그렇데요. 뭐 간단한 것 아닙니까, 남녀관계 잘 되면 고민이 나올 수 있습니까? 애인이 떠났거나 죽었거나 그런 건데! '애인이 떠났냐?' 그러니까 떠났데요.
그래서 뭔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그렇게 교회에 중직자의 가정인데도 부모는 아직까지 시골에 있고, 자기는 여기 나와있는데, 교회에 모든 일을 그렇게 열심히 했습니다. 그렇게 충성을 했고, 그런데 이 문제가 딱 닥치니까 해결이 안 되는 겁니다. 밤에 잠도 잘 안 오고, 그렇지 않아도 처녀 마음에 밤에 잠도 잘 안 오잖아요. 그러니까 고민이 되니까 점점 우울해지게 되고, 거기에 따라서 문제가 자꾸 심각하게 오게 되는 거죠.
그래서 간단히 복음을 전하고 제가 그랬습니다. 당신은 지금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생명을 중심으로 신앙생활 한 것이 아니고, 종교 생활한 것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갖다 맡겨버리면 되는데, 그게 안 된다는 겁니다. 말씀이 안 된다 그래요. 말씀대로 안 된다 그래요. 그러니까 말씀대로 안 된다는 것은 간단합니다. 생명이 없으면 안 믿어지는 겁니다. 그러니 지금까지도 그저 노력하고 애쓰고 습관적으로 중직자의 가정에 자랐기 때문에, 교회만 다녔지 생명이 안 들어간 겁니다. 문제는...
그래서 설명을 하고 내가 영접 시켰다 그러면 본 교회 목사가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니까 영접시키는 것은 안 하겠다! 그러면서 기도는 해주고 내가 약할 때에, 그리고 이게 안 믿어질 때에, 그리고 진심으로 평안이 안 올 때에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해라! 생명 얻는 길은 다른 게 없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이 사실을 영접하고, 그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전부가 되어지게 될 때에, 그때부터 성령이 인도 받는 것이다. 성령 인도하심을 긴 시간 못하니까, 잠깐 말씀하고 기도하고 나왔습니다.
내가 거기서 뭘 느꼈느냐 하면, 늘 중직자 가정은, 늘 오랜 신앙생활들, 믿음 생활하는 사람들, 뭔가 이 생명 없다! 말하자면 종교로 빠졌다. 우리가 다 이야기 듣는 것이고 그렇지만, 우리는 벌써 이 생명 속에 들어왔다는 몇 년 시간에 그걸 벌써 잊어버렸어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축복된 역사가 없기 때문에 문제가 터지게 되면 흑암 세력의 통로가 됩니다. 마음대로 왔다갔다하는 겁니다. 그러니 밤잠도 못 자고 죽을 지경입니다. 여러분 불 신앙이 얼마나 무섭다는 것이 문제가 터지면 너무 절실하게 됩니다.
여러분 지금 현재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이것이 얼마나 확신과 담력을 가졌다! 축복이냐! 문제가 터지면 '아, 하나님 계획이구나!' 감정이 나올 이유가 없죠. 그래서 뭐 눈물 막 흘리고 하는 걸 한마디로 그냥 말했습니다. 눈물 흘린다 그 자체가 말씀을 안 믿고, 생명의 역사에 사실이 없으니까 눈물이... 이게 눈물 흘릴 것이냐? 사람이면 왔다가 가는 것이고, 기분 나쁘면 떠나게 되는 것이고 그런 것이지, 그로 통해서, 하나님께서 지금 이 사건을 통해서 내게 뭘 원하시느냐? 내게 무슨 계획이 있느냐? 이게 안 들어오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계획을 향한 그 방향이 안되니까,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모르는 겁니다. 남의 이야기들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 "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늘 말씀을 듣고, 말씀을 말하지 만은 안 믿어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질 때마다 더 짊어집니다. 맡기기는커녕 맡겼다가 두 배, 세배로 더 짊어집니다. 아침에 맡겼다가 저녁에 짊어지고, 저녁에 맡겼다가 아침에 새로 찾아서 또 짊어지고, 이게 안되게 되어 있어요. 왜? 무슨 사건과 일들이, 내 안에 생명, 예수 그리스도 모든 문제 해결되었다! 그럴 때에 뭐가 오느냐? 말씀이 전부로 보입니다.
그렇게 될 수 있기 위해서는 갈라디아서 2장 20절, 여러분 감정과 느낌과 생각과 모든 것이 어떻게 합니까? 다 바쳐 버렸습니다. 다 드려졌습니다. 이제는 내 것이, 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이니 내게 일어나는 모든 역사는 누가 인도하십니까? 하나님의 성령이 인도하십니다. 그 성령의 인도를 붙잡는 즉시 여러분과 저는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혹시 어렵다 1년 후, 2년 후 달라집니다. 왜? 이 생명을 붙잡고 있으면 여러분 성장하게 됩니다. 어려움 통해서도 성장하고, 괴로움 통해서도 성장하고, 때에 따라서는 실패 속에서도 성장하게 됩니다. 5년 후의 모습은 엄청나게 달라져 있습니다.
생명이 없다! 그걸로 끝인 겁니다. 그 저주와 고통에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닙니까! 바로 여기에 뭐가 나옵니까? 기적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내 손을 내 밀라!' 말씀했습니다. 지금까지 한번도 밀어본적이 없어요. 왜? 손이 바짝 말라서 얼어붙었으니까! 자기 힘으로 내어 밀어 본 적이 없습니다. 한번도 이것이 성공해 본적도 없습니다. 자기 의지로는, 생각으로는, 감정으로는 손을 내 밀어 볼 수 없습니다.
베드로는 '깊은 곳에 그물을 던져라!' 그럴 때에, 전혀 한번도 그래가지고는 고기 잡는 법이 없으니까, 뭐라 그랬습니까? 말씀에 의지해서 내 감정과 느낌과 생각은 전혀 그렇게 의지가 없지만 예수께서 말씀했으니까, 말씀 의지해서 '던져 보겠습니다!' 던졌더니 엄청난 축복의 역사가 현장으로 나왔습니다. 한번도 손을 내밀어 보지 못했지 만은, 말씀했기 때문에 내 느낌과 생각과 의지와 계획과 상관없이 말씀 따라서 해보겠습니다. 손을 내밀어 보았습니다. 어떤 기적이 나왔어요? 지금까지 한번도 써보지 못한 손이, 완전히 회복되었더라! 기적이었습니다.
여러분 생활과 삶에서 기적이라는 것이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조금 전에 말씀한 것처럼 말씀으로 따라갈 수 있는 생각과 마음을 바꾸어 놓고, 그 말씀 따라서 기적을 일으키는 것이지, 하늘에서 뭔가 돈 보따리가 떨어지고, 하늘에서 뭔가 이상한 기적이 나오고, 그런 것은 무속에서나 미신들이 하는 생각이지, 귀신의 역사이지,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과 생각을 분명히 말씀 안에 다 포용될 수 있도록, 그리고 여러분과 생각 모든 생각을 넘어 말씀이 전부가 될 수 있도록, 예배를 회복하시고, 말씀을 회복 하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모든 역사와 축복이 약속이 되어져 있는 것을 보여 주시고있습니다.
성경은 이때에 여러분이 그렇게도 같이 가자고, 함께 하자고, 역사 해 달라고 기도하던 성령의 역사가 사실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에 오늘 12장 8절에 보면, "보라 나의 택한 종 곧 내 마음에 기뻐하는바 나의 사랑하는 자로라 내가 내 성령을 줄 터이니 그가 심판을 이방에게 알게 하리라" 그리스도께서 나의 주인이 되시고, 자신이 아니라, 자기가 아니라, 말씀이 내 주인이 되고, 말씀이 주인이 되는 정도가 아니고, 말씀에 내 인생을 비로소 걸때에, 그때에 모든 사건과 일들이 해결이 된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모든 문제 해결된다! 여기서 나오는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에서 달리신 사진에 있는 예수가 내 모든 문제 해결되느냐? 이게 자칫하면 우상화되거든요.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못 박힌 예수 사진 앞에 가서 손을 모으고, 이게 지금 잘못된 것 아닙니까! 바로 그 분이 못 박히시고, 여러분과 저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모든 문제 해결하시고, 죽었다가 살아나셔서 성령으로 우리 안에 오시고, 그 성령께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이 깨달아지게 만든 그 말씀이 여러분과 삶에 전부가 될 때에 모든 것 보다 우선이 되고, 그 말씀을 따라갈 수 있는 의지가 되어지게 될 때에부터 뭐가 나옵니까? 기적이 나옵니다. 여기에 역사가 나오는 겁니다. 우리 생각과 뜻으로 다하는데 무슨 역사가 나옵니까! 점점 더 어려움과 흑암으로 빠져 가는 그런 배경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을 말씀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때부터 성령의 인도 받는...
그래서 성령의 인도는, '성령이여 인도해 주옵소서!' 기도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 참 생명을 붙잡고, 여러분 의지와 생각과 모든 것을 다 주께 맡기고, '이제는 주님이 나를 향하신 그 계획과 역사를 주님이 이루어 주시옵소서!' 성령의 인도입니다. 이를 위해서 내가 하나님이 내게 주신, 오늘 강단에 주신, 그리고 지금 오늘 내게 말씀을 주신 말씀 붙잡고, '하나님 앞에 나가겠습니다!' 그러면 거기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이 뭐냐하면, 모든 일을 가지고 기도로 나옵니다. 하나님이 지금 내게 뭘 말하시는가! 지금 내게 무엇을 원하십니까? 그러면 좋던지, 나쁘던지, 크던지, 좋던지, 모든 사건가지고 기도로 나옵니다. 기도 속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그러면 그 기도 속에서 말씀의 인도를 받고 있다는 증거가 뭐냐? '평안을 너희에게 주리라!' 내 안에 진짜 하나님의 평안과 안식으로, 참 감사로, 참 찬송으로 이게 안되면 반대로 뭡니까? 내 생각과 뜻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범사에 불평과 불만으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에 뭐 좋던지, 나쁘던지, 일이 크던지, 안 크던지, 이것이 교회다, 아니다! 상관없이 불평스러운 마음으로 내 안에, 내가 지금 서 있다고 생각할 때는 여러분 말씀의 인도 못 받고 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뭐든지...
지금 말하자면 불평이 생기고, 막 마음에 뭔가 생겼다 할지라도, 여러분 뭔가 내 안에 참 평화와 안식이 안 오면, 이것은 다른 것으로 인도 받게 된다는 겁니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너무나 다른 것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입만 열면, 생각하면 내가 다른 사람 앞에 욕먹던지, 안 먹던지 간에 뭐든지 '주여 감사합니다!' 불평이 사라지고, 감사로 내 안에 왔다! 이것이 성령의 인도 받는 하나님의 사실된 증거, 그리고 이 사실이 1년, 2년, 3년, 5년, 10년 엄청난 축복과 은혜의 변화가 여러분 가정과 후손들에게 사실로 임하게 됩니다.
이 축복을 우리가 받고 누린다는 것이 미신에서 속기 쉽고, 우리가 믿음에서 우리가 속기 쉬운 것이 뭐냐하면, 신앙생활의 축복은 황홀하게 뭔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맨 정신으로, 그리고 합리성을 가지고, 논리적으로 정확하게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대게 어떤 경우를 보느냐하면, 점차적인 역사! 그래서 여러분 계시도 점진적인 계시라 말하는데, 신앙생활은 점차적으로 하나님의 축복과 역사 위해서, 그런데 이 사단의 흑암 권세 인도 받는 경우에는 뭐냐하면, 점차적으로 아니고 한꺼번에 뭔가 이렇게... 그래서 뭐 재수 좋은날이 있고, 재수 없는 날이 있고 이런 식입니다.
아닙니다. 우리는 재수 좋은날 있고, 없고 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인도! 논리적으로 맨 정신 가지고 점차적으로 인도를 받습니다. 인도 받는 사실이 사실로 내게 이루어지는 이 축복이 현실로 나와 직접 연결되어지게 되는 그 순간, 순간을 우리는 누림이라 그랬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축복과 은혜를 누리는 시간이, 이어지는 시간이 한 주간, 두 주간, 한달, 두 달, 1년, 2년 얼마나 엄청난 축복과 은혜로 우리를 변화시키고 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 은혜가 오늘 작은 시작일지 모릅니다. 어떤 면에서 지금쯤 '아, 맞구나!' 말씀 붙잡고 가야 되겠다. 적은 시작이지만 이 축복의 적은 시작이 한 주간 후에 여러분 얼굴을 달라지게 할겁니다. 이 적은 시작이 한달 후에 여러분 삶을 달라지게 할겁니다. 이 적은 시작이 1년 후에 인생을 달라지게 만들 것입니다. 이 적은 시작이 2년 후에 여러분 가정과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 예배에 성공하시고 구체적으로 내가 나의 삶을 내 스스로 죽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하나님의 판단과 하나님의 역사가 전부구나! 말씀이 사실로 이루어지게 되는 구나!' 깨닫게 되는 만큼, 내 것이라든가 내 주변에 있는 것은 적게 보이게 되어 있습니다. 말씀이 더 커져 보이게 되어 있어요. 말씀을 따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평생을 예수 믿었습니다 만은, 이 축복과 은혜를 모르고 무심히 살아 왔습니다. 종교에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 적은 결단하나 하세요. '아, 말씀이 전부구나! 말씀은 귀한 금과 같아서 우리 골수와 관절을 찔러 쪼개고, 내 모든 마음과 생각을 친히 감찰하시고, 인도하시는 사실적인 역사가 있구나! 내 뜻과 내 생각을 하나님께 다 맡깁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 지이다!' 우리는 진실한 고백으로 주님 앞에 서고, 내가 고통받는 것, 어려움 받는 모든 사실조차도 주님의 손에 맡깁니다. 생명 붙잡게 해 주옵소서. 1년 후, 2년 후 여러분의 모습이 엄청나게 달라진 사실을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변하지 않는 복음에 뿌리내려야 합니다.
☞ 사람들은 환경에 따라서 생각이나 태도가 바꾸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이 우리 안에 뿌리내려져야 합니다. 그래서 이 복음의 생명 속에 서있게 되면, 자라나서 열매를 맺게 되고, 세계를 복음으로 정복해 나갈 수 있습니다.
☞ 생명이 없으면 저주가 시작됩니다. 따라서 생명을 받은 것은 은혜입니다. 다른 것은 다 놓쳐도 생명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지금 현재의 모습이 어떠하든지 10년이 지나고 나면, 생명을 가진 사람은 달라집니다. 이러한 축복을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약속해 주셨습니다.
▣ 생명을 가진 자는 예배가 회복됩니다.
☞ 이 생명을 받은 증거로, 제일 먼저 예배가 회복되어집니다.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만나는 시간을 기뻐하고, 말씀을 들을 때 치료받고 힘을 얻게 됩니다.
☞ 우리 안에 생명의 그리스도를 누리고 살아갈 때, 그리스도를 통해서 전혀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고, 하나님의 나라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도 깨닫게 됩니다.
▣ 예배에 성공하는 자세
☞ 예배에 성공해야, 성령의 인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 예배는 번제에서부터 나왔습니다. 번제는 죄를 지은 사람이 양에게 죄를 돌리는 의식을 하고, 그 양을 갈라서 완전히 불태우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번제는 전부를 바치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을 온전히 바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를 드릴 때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완전히 다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자 결단합시다.
☞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을 믿으며, 이제는 나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살아가겠다고 온전한 정신으로 다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생활 현장 속으로 들어갈 때 말씀이 성취되는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지배하게 되고 내가 그 말씀에 순종할 수 있게 되면, 한 번도 내밀어 보지 않았던 오그라든 손도 내밀 수 있게 됩니다. 즉, 하
나님께 기도할 수 있게 되고, 기적이 일어납니다.
☞ 이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말씀 안에 완전히 담글 수 있는 예배 회복이 이루어져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우선으로 하여 그 말씀을 따라갈 때, 기도가 되어지게 됩니다. 그 속에서 참된 평안과 안식을 얻을 수 있으며, 성령이 이루시는 기적과 역사가 일어납니다.
(마 12:10) 한편 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를 송사하려 하여 물어 가로되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마 12:11)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붙잡아 내지 않겠느냐
(마 12:12)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것이 옳으니라 하시고
(마 12:13) 이에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손을 내밀라 하시니 저가 내밀매 다른 손과 같이 회복되어 성하더라
(마 12:14)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꼬 의논하거늘
(마 12:15) 예수께서 아시고 거기를 떠나가시니 사람이 많이 좇는지라 예수께서 저희 병을 다 고치시고
(마 12:16)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 경계하셨으니
(마 12:17)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말씀하신 바
(마 12:18) ㄹ보라 나의 택한 종 곧 내 마음에 기뻐하는 바 나의 사랑하는 자로다 내가 내 성령을 줄터이니 그가 심판을 이방에 알게 하리라
(마 12:19) 그가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마 12:20)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마 12:21) 또한 이방들이 그 이름을 바라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오늘 제목을 "네 손을 내밀라" 말씀을 삼았습니다. 사람들은 환경에 따라서 생각도 바꾸어 질 수 있고, 또 모양도 바꾸어 질 수 있습니다. 태도도 바꾸어 질 수 있고, 또 환경 따라서, 여건 따라서 실수할 수도 있고, 또 때에 따라서는 칭찬 받을만할 수도 있는 이런 어떤 문제들이 우리 삶에 계속 연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이 변화무쌍한 우리의 삶에서 한가지 변화되지 말아야 될 것이 있다! 그러면 이 복음입니다. 그래서 그 복음이 변화되지 않을 수 있기 위해서는 '뿌리를 내려라!' 그렇게 계속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뿌리를 내려라!
그래서 우리 시편 1편을 강해 하면서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무성할 수 있는 것은, 가뭄이 와도 무성할 수 있는 것은, 그 뿌리가 깊은 땅속에 내려가서 지하수에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에, 가문과 상관없이 계속해서 열매를 맺고, 계속해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시절을 쫓아 때가 되는 데로, 시간표 따라서 열매가 맺혀지고 그렇게 할겁니다. 뭐 그것은 사막 속에 서있다! 그래도 상관이 없다! 그렇게 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좀 붙잡아야 될 것이 바로 이것을 가지고 우리는 생명이라 그랬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우리는 구호를, '예수 생명, 예수 능력!' 그러니까 그 생명 속에 서 있으면 그 다음에 나타나는 것은, 자발적으로, 자생적으로, 저절로 능력이 증거 될 수밖에 없고, 이것을 우리는 증거라! 그래서 이 증거를 통해서 세계를 정복할겁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뭔가 예수 믿고 세계 복음화다! 그럴 때에 아무런 힘이 없고, 역사를 억지로 한다는 게 아닙니다. 우리와 상관없이 하나님이 여러분과 제게 증거주실 것이고, 그 증거를 통해서 세계를 정복해 나가고, 세계 복음화 할 것이다!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가치는 다른 어떤 일이나, 고집이나 감정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여러분들이 이건 뭐 너무 잘 알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생명이 끊어지면 오늘부터 끝입니다. 아무리 사랑하고, 아무리 뭔가 가까워도 생명 끊어지는 순간 묻어버립니다. 어제 같이 손잡고 웃고 뽀뽀해도 생명 끊어졌다! 오늘로 끝입니다. 중요한 것이 바로 생명의 문제죠. 생명이 없으면 저주가 시작됩니다. 그게 성경에 원칙이요. 원리입니다. 그래서 이 생명의 역사를 우리에게 주신 것을 가지고 우리는 은혜라 그랬습니다.
여러분들이 생명 받았고 이 시간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렸다! 생명이 있기에 귀가 열린 것 아닙니까! 그것은 은혜 중에 은혜다! 그래서 우리가 은혜를 자꾸 다른 것으로 자꾸 생각을 합니다. 육신 것으로, 인간적인 것으로 생각합니다. 은혜의 본질은 바로 생명입니다. 구원 이 축복을 은혜의 본질로 성경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좋아도 생명이 없으면, 지금 저주는 진행이 됩니다. 아무리 기쁘고 기분 좋아도 생명이 없으면, 자기도 모르게 저주를 향해서 다름 박질 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에 메시지입니다.
그래서 시간이 갈수록 그 사람에게는 저주가 점점 더 심각해지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다 놓쳐도 생명만은 놓치지 마라! 아무리 기분 나빠도 생명만은 놓치지 마라!' 왜 그러느냐? 여러분들이 10년 후에, 생명 가진 자와 생명 없는 자는 엄청난 차이가 나게 됩니다. 예를 들어서 여러분 아이가 참 생명으로 이 아이가 잘 자란다. 10년 후에는 엄청나게 달라집니다. 제가 이 아이들을 보면서 뭘 느끼느냐 하면, 너무 달라진다! 뭐 어끄제 같이 그런 아이가 한 10년 지났다! 엄청나게 달라지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죽어버리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달라질 수가 없어요.
그래서 여러분 복음 붙들고 그리스도의 생명을 갖고 살아갈 때에, 바로 그 순간에 어려움이 오고 힘드는 것 같아도 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여러분 아이가 오줌싸고, 똥 싼다! 10년 후에는 달라져 버립니다. 성도들이 생명 가지고 있으면, 지금은 고통스럽다! 뭐 어렵다! 괴롭다! 갈등나온다! 상관없어요. 생명 있으면 5년, 10년 엄청난 차이가 나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 축복과 은혜가 바로 오늘 여러분과 제게 약속하신 그리스도의 약속이요, 그리스도의 축복이요, 역사가 됩니다.
이 생명을 받은 증거가 무엇이냐? 오늘 지난주에 이어서 좀 설명이 되고 있습니다. 그것이 뭐냐하면, 먼저 이 생명을 받았다는 것이, 제일 먼저 예배가 회복된다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생명 받았다는 증거가 뭐냐? 주일날 말씀 듣고 싶어지는 것이 아니라, 말씀 듣도록 인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살았다는 증거가 뭡니까? 여러 가지 증거를 말할 수 있지만 밥 먹는다는 증거 아닙니까! 죽은 사람 입에 아무리 갖다가 퍼 넣어도 이 되는 게 아닙니다. 뭐 저는 보니까, 그 죽음을 아주 많이 봤죠.
그래서 제가 혹시, 불신자들이나 이런 가정에서 임종을 하고 나면, 딱 죽고 난 후에 제일 먼저 뭘 퍼 넣느냐? 입에다가 쌀을 퍼 넣더라 구요. 아무리 퍼 넣어도 안 먹어요. 줄줄 넘치지 소용이 없어요. 여러분 살았다는 첫 번째가 뭐 간단합니다. 밥 먹습니다. 말씀을 먹습니다. 예배가 회복됩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죠. 여러분 주일날 예배가 기다려지고, 주일날이 정말 기다려진다. 생명의 첫 번째 증거입니다. 다른 것이 없어요. 주일날 싫다! 주일날에 잘 뭔가 참 좋아하지 않는다! 괴롭다! 그래서 뭐 말씀 중에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 구요. 성도들 중에서 두 가지가 있는데, 주일날이 다가왔다! 굉장히 놀라는 사람이 있답니다. '벌써 주일이냐!' 이러는 사람, 주일날 다가왔다! '아, 주일날 너무 감사하다!' 이런 사람이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정말 말씀 듣고 참 생명의 주인이신 주님! 그리고 안식일에 주인이신 바로 주님 그분을 만나는 기쁨과 감사가 있느냐? 생명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생명이 건강하다, 안 하다! 바로 여기에 바로 나타납니다. 그 말씀 받고 그 말씀 듣는 그 순간 그 시간이 참 감사하다, 기쁘다! 그리고 말씀들을 때에 힘 얻고, 용기 얻고, 말씀들을 때에 그 다음에 뒤틀렸던 마음과 생각들이 치료받고, 그건 건강한 증거입니다. 여러분들이 이것이 자연스러운 일 중에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생명의 참 된 증거요. 축복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에 바로 이 문제를 다루었잖아요.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의 법도와 규례로, 생명으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법도와 규례를 통해서 안식일을 지키려고 원했습니다. 그러니 자연적으로 의식과 율법이 주가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자연적으로 자기들의 판단과 자기들의 기준이, 예배드리는 기준이 되었다는 것을 오늘 성경에 말씀을 하시고 있습니다. 요한 일서 5장 10절 보면,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 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문제는 뭐냐하면 생명이 없으면, 말씀을 못 믿어요. 믿을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는 이 주일날이, 믿음이 없으니까, 주일날 말씀 듣는 것이 지루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일단 여러분 주일날 은혜 받았다! 하는 것은 말씀이 깨달아 졌다. 이것이 상당히 중요한 그런 축복이죠. 그래서 여러분과 제게 이 축복이 있다는 사실은 바로 11절 말씀 보면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생명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고, 이 축복과 역사가 누려지는 이 사실이 바로 생명의 참된 증거요, 축복이라는 것을 말씀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몇 주전에 아마 제 설교 제목 중에서 볼 것을 보라, '네가 무엇을 보느냐!' 그렇게 메시지를 전한 기억이 납니다. 그러니까 볼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참 중요한데, 주로 보면 그 볼 것을 볼 수 있는 기준이 뭐냐하면, 내 안에 뭘 통해서 오느냐? 누구를 통해서 오느냐? 이것이 중요합니다. 다시 말해서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누려야 성도들은 볼 것이 보입니다. 볼 것을 보고 판단할 것을 판단하게 되죠. 이것이 안되면 전혀 다른 것으로 나옵니다. 워낙 다른 것이 가득했던 우리의 과거이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우리가 한순간도 부주의하게 되고 마음을 붙잡지 못하면 이걸 놓치게 되죠.
그런 것이 있잖아요. 사람의 마음이 슬픔이 가득하면, 새소리가 뭐로 들려요? 울음소리로 들립니다. 그러나 기쁨이 가득하면, 새 소리가 무슨 소리로? 노래 소리로 들립니다. 여러분 안에 그리스도를 누리고 살아갈 때에, 여러분 눈을 통해서 보이는 것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전혀 다른 시각으로 보여지게됩니다. 이것이 내게 그리스도보다도 다른 것이 너무 체질이 되어있기 때문에, 생각과 마음이 우리가 보고 사건이 생길 때에 나도 모르는 순간에 어디로 가느냐? 다른 것에 의해서, 다른 것으로 빠져갑니다. 축복과 은혜로 인도 받는 것이 아니고, 저주와 죽음으로 빠질 때가 너무 많은 것이 우리 삶에서 실제로 지켜 볼 수가 있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내 안에 그리스도가 있으면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게 되고, 그리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있으면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 생명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에 사는 삶에 생각과 마음이 이루어지게 되니까, 보는 것이나 느낌이나 전혀 다르게 와 닿게 되고, 역사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때부터 그들의 가는 발걸음이 성령의 인도 받게 되고, 참 삶에 축복으로 인도 받는 것을 우리가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을 만나게 되느냐? 예배라는 것이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은, 이미 여러분 설명되어져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심히 이것을 생각하죠. 그래서 주보에도 계속해서, 교회를 개척한 이후에 지금까지 '예배에 성공!' 우리 표어입니다. 바꾸지 않았습니다. 왜? 이게 철칙이니까! 여러분 개인이 성공 안되면 승리 할 수가 없습니다. 왜 예배 성공이 안되면 뭐로 인도 받습니까? 다른 것으로 인도 받는데, 예배에 성공되어야 누구의 인도 받습니까? 하나님이 여러분과 제게 축복하신 그 역사로 성령이 인도해 주십니다. 이것이 안되면 잘되는 것 같다! 소용없어요. 순간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요나처럼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는 것, 여러분 예배의 성공이 안되면, 많은 경우 문 열자마자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갈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결국 뭡니까? 물고기 배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이런 고통과 괴로움이 너무 많은 것을 우리가 사실적으로 볼 수가 있죠.
그래서 본래 예배라는 것은 번제에서 나왔습니다. 여러분 지금 현재 드리는 것은, 번제에서부터 예배가 나왔습니다. 구약의 번제! 번제라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이냐 하면, 양을 잡아서, 그러니까 그 사람이 죄를 범했다 그러면 양을 잡아서, 양을 잡기 전에 제사장이 그 죄에 대해서, 그 사람의 죄가 양에게 이완되는 것을 선언을 하고, 제사장이 양을 그 자리에서 잡아서 껍질을 벗기고 각을 다 뜹니다. 팔다리를 다 뜨죠. 사람 팔다리를 뜨는 게 아니고, 양의 팔다리를 각을 다 뜹니다. 그 내장은 다 내어 가지고 그 다음에 밖에 버리고 이 양의 각을 뜨고서는 그것을 재단에 올려놓고 불을 살라서 바싹 태웁니다. 이것을 가지고 번제라! 이 말이 뭐냐하면, 전부를 바친다! 이겁니다. 전부를 바친다! 그래서 번제라는 것은, 전부를 바친다는 이런 어떤 뜻이죠. 몸을 드린다! 마음을 드린다! 이게 전부 예배의식에서 나온 배경의 단어들입니다.
로마서 12장 1절 보면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그랬습니다. 여러분 지금 현재 산 제사로 여기에 왔어요. 하나님 앞에 그 예배드릴 때에 뭘 말하느냐 하면, 여러분 생각과 마음과 뜻을 완전히 하나님 앞에 다 드린다! 그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생각과 마음은 하나도 안 드리고, 자기 주장과, 자기 고집과, 자기 그 생각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서 이 시간에 예배드린다! 그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이죠.
그래서 가장 복음으로 뿌리를 내리고, 가장 복음으로 예배에 승리할 수 있는 길이 뭐냐하면, 갈라디아서 2장 20절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데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여러분들이 예수 믿는다고 그러는 것은 다른 게 아닙니다. 예수 믿는다! 자기 확신을 믿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이미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신 그 영광스러운 그 역사를 하나님이 이루실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사단에 속아서 생각과 마음과 체질들이 저주로 빠져 들어가던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게 되고, 이제는 그 모든 것들을 다 버리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살아가겠습니다! 그 하나님의 음성이라는 것은 뭡니까? 하나님이 직접 '아무개야!' 밤중에 임하는 것이 아니고 뭡니까? 말씀입니다. 그 말씀을 들고 살아가겠습니다. 이것이 맨 정신으로 이루어 져야 됩니다. 이걸 뭔가 신비적으로 기도하다가 막 음성이 들려진다! 그런 기분이 아닙니다.
내 생각과 사고가 평범하게, 자연스럽게 이제는 내 감정과 고집이나 느낌이 다 버려지게 되고, 이제는 내 주장이나 내 계획이 다 버려지게 되고, 먼저 하나님 앞에 하나님이 '오늘 내게 뭘 원하십니까! 하나님의 뜻이 오늘 뭘 원하십니까?' 그래서 하나님 앞에 나왔을 때에 예배시간이 중요하다는 것은, 오늘 말씀을 통해서, 그리고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을 통해서 그 말씀이 임하게 될 때에, 내 생각과 마음이 어떻든 다 던져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그리고 그 말씀을 가지고 돌아가는 것이 우리 신앙에 생활입니다.
그 말씀가지고 살아가게 될 때에 뭐가 성취됩니까? 말씀이 성취되는 현장을 보게 됩니다. 이것을 가지고 우리가 '누린다!' 그랬습니다. 누림이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래서 구약시대 때는 안식일만 예배를 드리지만, 신약시대에는 이 일이 성령으로 항상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 일이 이루어지는 그것을 가지고 안식일이, 주일이, 주일, 오늘만이 아니고 언제입니까? 일주일 모두가 다 주일입니다. 내가 주인이 아니고 누가 주인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 나의 의지와 생각과 전부를 인도하시는 모든 인도 받는 순간, 순간들이 다 주일입니다. 그러면 오늘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한 주간 내내 다 안식일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에서 가르쳐 주시는 이 축복과 역사가 되는 겁니다.
그러면 이때부터 일어나게 되는 것이 뭡니까? 말씀이 나를 지배하게 되고, 이때부터 자연적으로 내가 죽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것이 여러분이 하나님을 만나는 길 아닙니까! 그 하나님의 말씀을 누구를 통해서? 그리스도를 통해서해야 하나님의 말씀이 열리고, 이해가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럴 때에 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내가 죽고, 내 감정이 죽고, 나의 느낌이 죽고 날 때에 비로소 말씀이 전부로 보여지기 시작합니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말씀이 저 구석에 있는 것이죠. 아무리 말씀을 들어도 말씀이 주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자연적으로 따라오는 것이 뭐냐? 여러분 '말씀 순종, 말씀 순종!' 백 번 외쳐보세요. 그들에게 말씀순종이 안됩니다. 다른 것으로 가득 차 있는데, 내가 죽고, 내 감정이 죽고, 내 의지가 죽고 오직 하나님의 계획이 다 보여지게 될 때에, 그때부터 성경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구체적으로 말씀했기 때문에, 그 말씀이 전부로 보여지게 됩니다. 그때부터 순종이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기적이라는 사실은 이 속에서 기적이 나오는 것이죠. 다른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여러분 기적이라는 것은, 뭐 흔히 아픈 사람이 막 기적으로 치료가 되었다! 죽음을 선고받았는데 기적으로 치료가 되었다! 그것은 간단합니다. 죽음을 선고받았을 때에 간단하거든요. 사람이 보통 때는 자기를 던지지 못해요. 죽었다! 당신은 죽음 선고다! 당신은 죽는다! 이럴 때는 어차피 죽을 거니까, 그때에 정신이 바짝 들어 가지고 하나님 알았습니다. 이제 내가 죽던지, 살던지 이제는 내 생각, 내 고집 다 던져 버리겠습니다. 하나님의 뜻만 기다리겠습니다. 그때부터 비로소 완전하게 맡길 수 있는 믿음이 생기더라 구요.
그래서 여러분 꼭 이렇게 해 가지고 믿음이 생기지 않도록, 나는 워낙 잘 못 믿으니까, 이런 식으로 잘 인도를 받은 것 같아요. 그래서 뭔가 고집을 피울 때는 하나님께서 가만히 안 두어요. 어떤 면에서 지금까지 생애를 살아오면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중요한 일을 이룰 때마다 먼저 뭐부터 꺾고 들어오느냐 하면, 내 의지와 생각부터 꺾어 놓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중요한 계획과 뜻을 붙잡도록 만들어 놓고, 기적을 일으키는 겁니다. 그렇게 성취시켜 나가는 거죠. 왜? 그게 순서였습니다. 그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살아가면서 뭐 일과 사건이 생겼다! 어떤 면에서 여러분 고집 꺾는 겁니다. 자기 고집대로 해 가지고, 자기 생각대로 해서 일이 잘된다, 안 된다! 이게 상관없이 거기서 뭘 깨닫게 만드느냐? 하나님의 뜻을 찾도록!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전부라는 사실이 보여지도록, 오늘 성경에서 중요한 것이 말씀되죠.
저는 그 몇 일 전에 제가 늘 등산하는 코스가 있어요. 등산도 별 등산도 아니고, 걷는 것이지만, 그런데 어떤 처녀들이 둘이 앉았다가 저를 따라와요. 저는 아침이니까 머리도 이상하게 해 가지고 옷도 이상한 옷을 입고 하니까 사람들이 좀 만나는 것이 좀 부끄럽기도 하고 그래서 될 수 있으면 사람을 잘 안 만나죠. 그런데 따라 와 가지고 뭐라고 그러느냐 하면, 박지온 목사님이 아니십니까 이러더라 구요. 송현 교회 체면도 있지 덥수룩하게 해 가지고 만나니까, 앞으로 등산 갈 때도 머리를 해 가지고 가야 되겠나? 그런 생각도 나고...
그러니까 그렇다고 해서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까? '맞습니다!' 이러니까 뭐라 그러느냐 하면, 10년 전에 우리 교회에 학생으로 잠깐 있었데요. 자기 집은 시골이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때에 누가 있느냐 물어요? 보니까 목사가 되어 있어요. 웃으면서 그렇다고 그러니까,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자기가 도저히 해결될 수 없는 고민이 있다고 그래요. 해결될 수 없는 고민이 있다고 그러는데, 처녀가 해결될 수 없는 고민이 있다고 그러는 것은 뭡니까? 남녀관계 밖에 더 있습니까? 거의 다 그러니까! 그래서 제가 남녀관계냐? 그러니까 그렇데요. 뭐 간단한 것 아닙니까, 남녀관계 잘 되면 고민이 나올 수 있습니까? 애인이 떠났거나 죽었거나 그런 건데! '애인이 떠났냐?' 그러니까 떠났데요.
그래서 뭔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그렇게 교회에 중직자의 가정인데도 부모는 아직까지 시골에 있고, 자기는 여기 나와있는데, 교회에 모든 일을 그렇게 열심히 했습니다. 그렇게 충성을 했고, 그런데 이 문제가 딱 닥치니까 해결이 안 되는 겁니다. 밤에 잠도 잘 안 오고, 그렇지 않아도 처녀 마음에 밤에 잠도 잘 안 오잖아요. 그러니까 고민이 되니까 점점 우울해지게 되고, 거기에 따라서 문제가 자꾸 심각하게 오게 되는 거죠.
그래서 간단히 복음을 전하고 제가 그랬습니다. 당신은 지금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생명을 중심으로 신앙생활 한 것이 아니고, 종교 생활한 것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갖다 맡겨버리면 되는데, 그게 안 된다는 겁니다. 말씀이 안 된다 그래요. 말씀대로 안 된다 그래요. 그러니까 말씀대로 안 된다는 것은 간단합니다. 생명이 없으면 안 믿어지는 겁니다. 그러니 지금까지도 그저 노력하고 애쓰고 습관적으로 중직자의 가정에 자랐기 때문에, 교회만 다녔지 생명이 안 들어간 겁니다. 문제는...
그래서 설명을 하고 내가 영접 시켰다 그러면 본 교회 목사가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니까 영접시키는 것은 안 하겠다! 그러면서 기도는 해주고 내가 약할 때에, 그리고 이게 안 믿어질 때에, 그리고 진심으로 평안이 안 올 때에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해라! 생명 얻는 길은 다른 게 없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이 사실을 영접하고, 그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전부가 되어지게 될 때에, 그때부터 성령이 인도 받는 것이다. 성령 인도하심을 긴 시간 못하니까, 잠깐 말씀하고 기도하고 나왔습니다.
내가 거기서 뭘 느꼈느냐 하면, 늘 중직자 가정은, 늘 오랜 신앙생활들, 믿음 생활하는 사람들, 뭔가 이 생명 없다! 말하자면 종교로 빠졌다. 우리가 다 이야기 듣는 것이고 그렇지만, 우리는 벌써 이 생명 속에 들어왔다는 몇 년 시간에 그걸 벌써 잊어버렸어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축복된 역사가 없기 때문에 문제가 터지게 되면 흑암 세력의 통로가 됩니다. 마음대로 왔다갔다하는 겁니다. 그러니 밤잠도 못 자고 죽을 지경입니다. 여러분 불 신앙이 얼마나 무섭다는 것이 문제가 터지면 너무 절실하게 됩니다.
여러분 지금 현재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이것이 얼마나 확신과 담력을 가졌다! 축복이냐! 문제가 터지면 '아, 하나님 계획이구나!' 감정이 나올 이유가 없죠. 그래서 뭐 눈물 막 흘리고 하는 걸 한마디로 그냥 말했습니다. 눈물 흘린다 그 자체가 말씀을 안 믿고, 생명의 역사에 사실이 없으니까 눈물이... 이게 눈물 흘릴 것이냐? 사람이면 왔다가 가는 것이고, 기분 나쁘면 떠나게 되는 것이고 그런 것이지, 그로 통해서, 하나님께서 지금 이 사건을 통해서 내게 뭘 원하시느냐? 내게 무슨 계획이 있느냐? 이게 안 들어오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계획을 향한 그 방향이 안되니까,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모르는 겁니다. 남의 이야기들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 "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늘 말씀을 듣고, 말씀을 말하지 만은 안 믿어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질 때마다 더 짊어집니다. 맡기기는커녕 맡겼다가 두 배, 세배로 더 짊어집니다. 아침에 맡겼다가 저녁에 짊어지고, 저녁에 맡겼다가 아침에 새로 찾아서 또 짊어지고, 이게 안되게 되어 있어요. 왜? 무슨 사건과 일들이, 내 안에 생명, 예수 그리스도 모든 문제 해결되었다! 그럴 때에 뭐가 오느냐? 말씀이 전부로 보입니다.
그렇게 될 수 있기 위해서는 갈라디아서 2장 20절, 여러분 감정과 느낌과 생각과 모든 것이 어떻게 합니까? 다 바쳐 버렸습니다. 다 드려졌습니다. 이제는 내 것이, 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이니 내게 일어나는 모든 역사는 누가 인도하십니까? 하나님의 성령이 인도하십니다. 그 성령의 인도를 붙잡는 즉시 여러분과 저는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혹시 어렵다 1년 후, 2년 후 달라집니다. 왜? 이 생명을 붙잡고 있으면 여러분 성장하게 됩니다. 어려움 통해서도 성장하고, 괴로움 통해서도 성장하고, 때에 따라서는 실패 속에서도 성장하게 됩니다. 5년 후의 모습은 엄청나게 달라져 있습니다.
생명이 없다! 그걸로 끝인 겁니다. 그 저주와 고통에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닙니까! 바로 여기에 뭐가 나옵니까? 기적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내 손을 내 밀라!' 말씀했습니다. 지금까지 한번도 밀어본적이 없어요. 왜? 손이 바짝 말라서 얼어붙었으니까! 자기 힘으로 내어 밀어 본 적이 없습니다. 한번도 이것이 성공해 본적도 없습니다. 자기 의지로는, 생각으로는, 감정으로는 손을 내 밀어 볼 수 없습니다.
베드로는 '깊은 곳에 그물을 던져라!' 그럴 때에, 전혀 한번도 그래가지고는 고기 잡는 법이 없으니까, 뭐라 그랬습니까? 말씀에 의지해서 내 감정과 느낌과 생각은 전혀 그렇게 의지가 없지만 예수께서 말씀했으니까, 말씀 의지해서 '던져 보겠습니다!' 던졌더니 엄청난 축복의 역사가 현장으로 나왔습니다. 한번도 손을 내밀어 보지 못했지 만은, 말씀했기 때문에 내 느낌과 생각과 의지와 계획과 상관없이 말씀 따라서 해보겠습니다. 손을 내밀어 보았습니다. 어떤 기적이 나왔어요? 지금까지 한번도 써보지 못한 손이, 완전히 회복되었더라! 기적이었습니다.
여러분 생활과 삶에서 기적이라는 것이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조금 전에 말씀한 것처럼 말씀으로 따라갈 수 있는 생각과 마음을 바꾸어 놓고, 그 말씀 따라서 기적을 일으키는 것이지, 하늘에서 뭔가 돈 보따리가 떨어지고, 하늘에서 뭔가 이상한 기적이 나오고, 그런 것은 무속에서나 미신들이 하는 생각이지, 귀신의 역사이지,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과 생각을 분명히 말씀 안에 다 포용될 수 있도록, 그리고 여러분과 생각 모든 생각을 넘어 말씀이 전부가 될 수 있도록, 예배를 회복하시고, 말씀을 회복 하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모든 역사와 축복이 약속이 되어져 있는 것을 보여 주시고있습니다.
성경은 이때에 여러분이 그렇게도 같이 가자고, 함께 하자고, 역사 해 달라고 기도하던 성령의 역사가 사실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에 오늘 12장 8절에 보면, "보라 나의 택한 종 곧 내 마음에 기뻐하는바 나의 사랑하는 자로라 내가 내 성령을 줄 터이니 그가 심판을 이방에게 알게 하리라" 그리스도께서 나의 주인이 되시고, 자신이 아니라, 자기가 아니라, 말씀이 내 주인이 되고, 말씀이 주인이 되는 정도가 아니고, 말씀에 내 인생을 비로소 걸때에, 그때에 모든 사건과 일들이 해결이 된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모든 문제 해결된다! 여기서 나오는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에서 달리신 사진에 있는 예수가 내 모든 문제 해결되느냐? 이게 자칫하면 우상화되거든요.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못 박힌 예수 사진 앞에 가서 손을 모으고, 이게 지금 잘못된 것 아닙니까! 바로 그 분이 못 박히시고, 여러분과 저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모든 문제 해결하시고, 죽었다가 살아나셔서 성령으로 우리 안에 오시고, 그 성령께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이 깨달아지게 만든 그 말씀이 여러분과 삶에 전부가 될 때에 모든 것 보다 우선이 되고, 그 말씀을 따라갈 수 있는 의지가 되어지게 될 때에부터 뭐가 나옵니까? 기적이 나옵니다. 여기에 역사가 나오는 겁니다. 우리 생각과 뜻으로 다하는데 무슨 역사가 나옵니까! 점점 더 어려움과 흑암으로 빠져 가는 그런 배경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을 말씀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때부터 성령의 인도 받는...
그래서 성령의 인도는, '성령이여 인도해 주옵소서!' 기도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 참 생명을 붙잡고, 여러분 의지와 생각과 모든 것을 다 주께 맡기고, '이제는 주님이 나를 향하신 그 계획과 역사를 주님이 이루어 주시옵소서!' 성령의 인도입니다. 이를 위해서 내가 하나님이 내게 주신, 오늘 강단에 주신, 그리고 지금 오늘 내게 말씀을 주신 말씀 붙잡고, '하나님 앞에 나가겠습니다!' 그러면 거기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이 뭐냐하면, 모든 일을 가지고 기도로 나옵니다. 하나님이 지금 내게 뭘 말하시는가! 지금 내게 무엇을 원하십니까? 그러면 좋던지, 나쁘던지, 크던지, 좋던지, 모든 사건가지고 기도로 나옵니다. 기도 속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그러면 그 기도 속에서 말씀의 인도를 받고 있다는 증거가 뭐냐? '평안을 너희에게 주리라!' 내 안에 진짜 하나님의 평안과 안식으로, 참 감사로, 참 찬송으로 이게 안되면 반대로 뭡니까? 내 생각과 뜻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범사에 불평과 불만으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에 뭐 좋던지, 나쁘던지, 일이 크던지, 안 크던지, 이것이 교회다, 아니다! 상관없이 불평스러운 마음으로 내 안에, 내가 지금 서 있다고 생각할 때는 여러분 말씀의 인도 못 받고 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뭐든지...
지금 말하자면 불평이 생기고, 막 마음에 뭔가 생겼다 할지라도, 여러분 뭔가 내 안에 참 평화와 안식이 안 오면, 이것은 다른 것으로 인도 받게 된다는 겁니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너무나 다른 것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입만 열면, 생각하면 내가 다른 사람 앞에 욕먹던지, 안 먹던지 간에 뭐든지 '주여 감사합니다!' 불평이 사라지고, 감사로 내 안에 왔다! 이것이 성령의 인도 받는 하나님의 사실된 증거, 그리고 이 사실이 1년, 2년, 3년, 5년, 10년 엄청난 축복과 은혜의 변화가 여러분 가정과 후손들에게 사실로 임하게 됩니다.
이 축복을 우리가 받고 누린다는 것이 미신에서 속기 쉽고, 우리가 믿음에서 우리가 속기 쉬운 것이 뭐냐하면, 신앙생활의 축복은 황홀하게 뭔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맨 정신으로, 그리고 합리성을 가지고, 논리적으로 정확하게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대게 어떤 경우를 보느냐하면, 점차적인 역사! 그래서 여러분 계시도 점진적인 계시라 말하는데, 신앙생활은 점차적으로 하나님의 축복과 역사 위해서, 그런데 이 사단의 흑암 권세 인도 받는 경우에는 뭐냐하면, 점차적으로 아니고 한꺼번에 뭔가 이렇게... 그래서 뭐 재수 좋은날이 있고, 재수 없는 날이 있고 이런 식입니다.
아닙니다. 우리는 재수 좋은날 있고, 없고 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인도! 논리적으로 맨 정신 가지고 점차적으로 인도를 받습니다. 인도 받는 사실이 사실로 내게 이루어지는 이 축복이 현실로 나와 직접 연결되어지게 되는 그 순간, 순간을 우리는 누림이라 그랬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축복과 은혜를 누리는 시간이, 이어지는 시간이 한 주간, 두 주간, 한달, 두 달, 1년, 2년 얼마나 엄청난 축복과 은혜로 우리를 변화시키고 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 은혜가 오늘 작은 시작일지 모릅니다. 어떤 면에서 지금쯤 '아, 맞구나!' 말씀 붙잡고 가야 되겠다. 적은 시작이지만 이 축복의 적은 시작이 한 주간 후에 여러분 얼굴을 달라지게 할겁니다. 이 적은 시작이 한달 후에 여러분 삶을 달라지게 할겁니다. 이 적은 시작이 1년 후에 인생을 달라지게 만들 것입니다. 이 적은 시작이 2년 후에 여러분 가정과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 예배에 성공하시고 구체적으로 내가 나의 삶을 내 스스로 죽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하나님의 판단과 하나님의 역사가 전부구나! 말씀이 사실로 이루어지게 되는 구나!' 깨닫게 되는 만큼, 내 것이라든가 내 주변에 있는 것은 적게 보이게 되어 있습니다. 말씀이 더 커져 보이게 되어 있어요. 말씀을 따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평생을 예수 믿었습니다 만은, 이 축복과 은혜를 모르고 무심히 살아 왔습니다. 종교에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 적은 결단하나 하세요. '아, 말씀이 전부구나! 말씀은 귀한 금과 같아서 우리 골수와 관절을 찔러 쪼개고, 내 모든 마음과 생각을 친히 감찰하시고, 인도하시는 사실적인 역사가 있구나! 내 뜻과 내 생각을 하나님께 다 맡깁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 지이다!' 우리는 진실한 고백으로 주님 앞에 서고, 내가 고통받는 것, 어려움 받는 모든 사실조차도 주님의 손에 맡깁니다. 생명 붙잡게 해 주옵소서. 1년 후, 2년 후 여러분의 모습이 엄청나게 달라진 사실을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변하지 않는 복음에 뿌리내려야 합니다.
☞ 사람들은 환경에 따라서 생각이나 태도가 바꾸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이 우리 안에 뿌리내려져야 합니다. 그래서 이 복음의 생명 속에 서있게 되면, 자라나서 열매를 맺게 되고, 세계를 복음으로 정복해 나갈 수 있습니다.
☞ 생명이 없으면 저주가 시작됩니다. 따라서 생명을 받은 것은 은혜입니다. 다른 것은 다 놓쳐도 생명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지금 현재의 모습이 어떠하든지 10년이 지나고 나면, 생명을 가진 사람은 달라집니다. 이러한 축복을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약속해 주셨습니다.
▣ 생명을 가진 자는 예배가 회복됩니다.
☞ 이 생명을 받은 증거로, 제일 먼저 예배가 회복되어집니다.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만나는 시간을 기뻐하고, 말씀을 들을 때 치료받고 힘을 얻게 됩니다.
☞ 우리 안에 생명의 그리스도를 누리고 살아갈 때, 그리스도를 통해서 전혀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고, 하나님의 나라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도 깨닫게 됩니다.
▣ 예배에 성공하는 자세
☞ 예배에 성공해야, 성령의 인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 예배는 번제에서부터 나왔습니다. 번제는 죄를 지은 사람이 양에게 죄를 돌리는 의식을 하고, 그 양을 갈라서 완전히 불태우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번제는 전부를 바치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을 온전히 바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를 드릴 때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완전히 다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자 결단합시다.
☞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을 믿으며, 이제는 나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살아가겠다고 온전한 정신으로 다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생활 현장 속으로 들어갈 때 말씀이 성취되는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지배하게 되고 내가 그 말씀에 순종할 수 있게 되면, 한 번도 내밀어 보지 않았던 오그라든 손도 내밀 수 있게 됩니다. 즉, 하
나님께 기도할 수 있게 되고, 기적이 일어납니다.
☞ 이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말씀 안에 완전히 담글 수 있는 예배 회복이 이루어져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우선으로 하여 그 말씀을 따라갈 때, 기도가 되어지게 됩니다. 그 속에서 참된 평안과 안식을 얻을 수 있으며, 성령이 이루시는 기적과 역사가 일어납니다.
번호 | 제목 | 본문 | 설교일 | 첨부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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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7 |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 삿2:6-10 | 2025-03-09 | |
1476 |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 삿1:1-7 | 2025-03-02 | |
1475 |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 단12:1-4 | 2025-02-23 | |
1474 |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 단11:28-39 | 2025-02-16 | |
1473 |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 단10:10-21 | 2025-02-09 | |
1472 |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 단9:20-24 | 2025-02-02 | |
1471 |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 단8:15-27 | 2025-01-26 | |
1470 |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 단7:9-14 | 2025-01-19 | |
1469 | 자기의 하나님을 믿음이었더라 | 단6:16-28 | 2025-01-12 | |
1468 |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 단5:17-31 | 2025-01-05 | |
1467 | [2025 송구영신예배] 하나님의 유업을 이을 자 | 갈4:4-7 | 2024-12-31 | |
1466 | 땅의 모든 사람을 다스리시는 하나님 | 단4:28-37 | 2024-12-29 | |
1465 | 완전한 승리를 내 것으로 누리는 성탄 | 눅2:8-14 | 2024-12-22 | |
1464 | 언약의 역사를 계속 이어가고 계시는 하나님 | 단3:8-18 | 2024-12-15 | |
1463 | 손대지 아니한 돌 | 단2:25-35 | 2024-12-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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