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네 종류의 신자
2004-05-0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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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마 13:1) 그 날에 예수께서 집에서 나가사 바닷가에 앉으시매
(마 13:2)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여 들거늘 예수께서 배에 올라가 앉으시고 온 무리는 해변에 섰더니
(마 13:3)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가지를 저희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마 13:4) 뿌릴쌔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마 13:5) 더러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마 13:6) 해가 돋은 후에 타져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마 13:7)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마 13: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혹 백배, 혹 육십배, 혹 삼십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마 13:9)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오늘 "네 종류의 신자라" 그렇게 제목을 삼았습니다. 지난주에 12장 마지막 부분에서, '누가 내 형들이냐?' 말씀을 하시고 중요한 것은 "(마 12:50)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특별히 성도들은 육신의 혈육보다도 육신의 관계보다도 더 사실적이고 진한 관계가 하나님의 뜻으로 그리스도의 피로 맺어진 관계입니다. 왜? 세상의 관계는 잠시후면 다 흩어집니다. 다 끝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맺어진 관계는 영원한 관계입니다. 여러분 한번 옆에 사람 얼굴을 한번 쳐다보세요. 쳐다봐요. 받아합시다. "밉지만 영원한 형제다!" 싸워도 미워도 그래도 예수는 그리스도입니다. 영원한 형제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알게되면 아마 여러분 얼굴 색깔이 달라지고, 또 우리 가족들 대하는 마음이 달라질 것입니다.

우리가 잠시잠깐 삶이 감정이나 또 사람이 감정을 갖고 있기 때문에, 다툴 수도 있고, 분낼 수도 있고, 이런 실수 할 수도 있고 그렇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영원한 형제입니다. 뭐 싫든 좋든 어디까지 가야돼요? 천국까지 가야 돼요. 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이 사실을 좀 바로 알게 되고, 또 이런 자리에 세운 사실을 하나님 앞에 우리가 감사 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뭐냐하면, '내 육신의 형제요, 모친이요, 자매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결국 하나님의 뜻에 여러분과 저를 불러서 그리스도의 피로 한 형제 삼으신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요.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고, 하나님의 뜻 안에 세운 이 축복과 은혜가 귀중한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지난주에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배경가지고, 첫 번째 하나님의 뜻을 먼저 이해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배경을 이해해야 된다! 그래서 믿음이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다스림, 하나님의 뜻 속에 들어오게 될 때에, 그때부터 내가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하나님의 완벽하신 주권 속에 서게 됩니다. 그때부터 우리가 어떻게 되느냐? 내 뜻대로 마옵시고 누구 뜻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그러면서 자기 뜻대로 다하지만 결국은, 그래도 기도라도 그렇게 하게 된 배경이 뭡니까? 이 배경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그래서 그때부터 자기 마음대로 하고 있으면서도 하나님께 맡깁니다! 그렇게 된 배경이 이 배경입니다. 결국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계획이다! 이것이 바로 이해가 되어야 되죠. 여러분의 생사화복! 내가 서 있고, 앉고 일어서는 모든 문제도, 하나님이 여러분을 계획하시고 인도하심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믿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의 손에 있게 되는 그 순간부터, 하나님이 여러분과 저를 축복하시기 위해서, 세계 복음화에 귀한 일꾼으로 세우시기 위해서, 지금 이끌어 가신다는 사실이 이해가 될 때에, 예수 그리스도 모든 문제 해결되었다! 그때부터 이 사실이 적용이 되고, 이것이 구체적으로 이해가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본질적으로 그런 자리에 서 있지 못하다는 것이 인식이 좀 되어야 될 것 같아요. 본질상... 에베소서 2장 3절에 '본질상 진노의 자녀다!' 그랬어요.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다른 이들은 안 믿는 다른 형제들이나 다른 사람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그랬습니다.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진노와 죽음과 저주에서부터 완전히 해방 받았다! '생명과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했느니라!' 그래서 여러분과 제가 지금 죄를 짓고 있다, 이게 문제가 아닙니다. 결코 근원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정죄 받을 수 없는 자리에 왔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우리는 축복이다! 은혜다! 이것을 가지고 우리는 해방이다! 그렇게 말하잖아요.

원래 여러분과 저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다! 그래서 칼빈은 이 사실을 말하기를 완전 타락이다! 완전 죽었다! 그랬습니다. 전혀 생명이라는 것이 전혀 없어요. 그래서 성경은 뭐냐? 들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도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알지도 못하고, 하나님을 볼 수도 없고, 봐도 알지 못하는, 완전 어두워진 상태를 우리 인간의 본래의 모습이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대로 둘 수 없어서 무조건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여러분과 저를 선택을 했다! 그랬습니다. 무조건 이것을 가지고 우리는 은혜라 그러죠. 무조건 선택을 했다! 여러분과 제가 조건이 있는 게 아닙니다. 잘났다, 못났다! 이 상관이 없어요. 무조건 선택을 하고, 선택한 사람을 위해서 제한 속죄라 그랬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주었습니다. 예수님이 피 흘리신 것은 피 한 방울도 헛되이 가지 않습니다. 왜? 선택한 백성을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그 사람들이, 선택한 그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버리지 않습니다. 곁길로 가는 것 같고, 이상한 길로 가는 것 같아도, 개개인을 하나님께서 기어코 은혜를 주십니다. 불가항력적 은혜! 은혜를 받지 않고는 견딜 수 없도록 해주십니다. 그래서 안 되는 사람은 기어코 어떤 모양으로든지 불러서 은혜를 주십니다. 여러분들이 이 자리에 온 것은 여러분 힘으로 왔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은혜로 왔습니다. 은혜를 안 받으려고 발버둥치고, 뺑소니 쳤던 자들이 바로 여기 다 앉았어요. 하나님께서 은혜 주실 때에 은혜를 안 받을 수 없어요.

이 은혜를 주신 여러분들을, 끝까지 영원한 천국에 이르는, 영원한 축복과 은혜 속에 세워지는, 그 끝까지 하나님께서 보장해 주십니다. 이것을 성도의 견인이라! 좀 어려운 말로 그렇게 말하죠. 이 모든 것을 합쳐서 한마디로 하나님의 은혜로다! 그랬습니다. 받아합시다. "하나님의 은혜로다!" 여러분 이 자리에 앉은 것은 이 배경가지고 왔습니다. 이것이 이해가 안되면 은혜라는 말이 이해가 안 되어요. 은혜라는 것은 공짜로 얻은 것이고, 공짜로 얻는다는 것은, 공짜로 얻을 수밖에 없는 그 성격이기 때문에 얻는 것이다! 그런 배경입니다. 이 은혜 속에 여러분을 세웠습니다.

그래서 여러분과 저는 원래 이 은혜를 받기 전에 본질적으로 우리의 체질이나 우리의 모든 것이 사단의 노예로, 사단에 의해서 살아가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로 살았다! 그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살아오지 않았던 그 배경들이 체질이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아셔야 될 것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왔지만, 행동과 사실은 얼마나 지난날에 성질 그대로, 노예로 살던, 사단의 노예로 살던, 그 체질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거의 안 믿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그러면서도 안 믿습니다. 내가 지금도 하나님이 그 계획과 하나님의 인도 속에서 살아간다! 이게 안 믿고 또 우리 자신을 맡기지도 않아요. 거의 지가 다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통계를 보면 교인 99%가 이걸 안 믿는다! 그랬어요. 여러분 이 자리에 앉아 가지고 오늘 메시지 듣고 맞다 싶어도, 결국 이걸 거의 안 믿습니다. 왜? 체질이 안되어 있어요. 체질이!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시고, 하나님께 내 모든 것을 맡기고, 이제는 내 인생을 하나님이 축복을 하신다! 이걸 말은 하면서도 실제로 안 믿어요. 믿고 있다! 그러면서 실제로 맡기지를 못해요. 그래서 지가 다 주인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우리는 근원적으로 불 신앙이다! 그렇게 합니다. 그런데 이걸 조금만 믿어도 기적이 나오더라 구요. 조금만 믿어도...

제가 하도 그때 그 극적인 상황이고 그런 것이 되어서, 이 말씀을 쓰면서 좀 준비를 하면서 그런 생각이 나오더라 구요. 세광이가 간 경화로 끝났다! 그럴 때에, 그것도 뭐 이렇게 사진을 보면서, 중견 의사들이 가르쳐 주면서, 끝났다! 그럴 때에... 그 날 밤에 수요일입니다. 예배 마치고 돌아가서 완전히 하나님께 사는 것도 죽는 것도 하나님의 손에 있으니까, 그래서 우리 네 식구가, 시집간 딸아이하고 가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이 오라 그러면 가야 됩니다! 하나님이 전도하기에 필요하다 그러면 살아야 됩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결정하신 일에 우리가 순종하고 하나님께 맡긴다!

그리고 막 말로 해 가지고 네가 일찍 간다? 나는 유익이 많다! 왜? 우선 돈이 안 든다! 아마 그때에 이 말해도 우리 가족은 안 웃었어요. 왜? 워낙 심각하니까! 그래서 잠깐 예배를 드리고 돌아왔습니다. 다음에 또 한번, 그 다음 이튿날인가 또 한번 조사를 하자! 그래서 또 사진 찍으러 갔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어제 검은 것이 없어져 버렸어요. 완전히 해결되어 버렸어요. 지금까지 살아서 돌아다닙니다. 뭐 오늘 도 교회 가 가지고 지금 중고등부 맡아서 있다고 그럽니다. 왜 제가 이런 말씀하느냐? 조금만 믿어도 하나님이 역사 하십니다.

저는 종종 어떤 것을 느끼느냐 하면, 복잡한 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가서 하나님 이렇게 해 주시고, 저렇게 해 주시고 하다가 답이 안 나오거든요, 그때에 '하나님 마음 때로 하이소! 삶아 잡수든지, 구워 잡수든지, 마음대로 하이소!' 그래놓고 나면 해결 다되는 수가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중요한 것이 뭐냐? 안 맡깁니다. 전부 지가 다 하려고 합니다. 지가 들고 하려고 합니다. 5일 후에 일을 모르는 자신이 주인이 되어 가지고 전부 하려고 그러면, 또 그렇게 살수 없는 여러분과 저를 하나님이 백성으로서 세웠는데도 이게 바꾸어지지 않습니다. 이걸 안 믿어요. 오늘 여러분 조그만 이 말씀 듣고, 한번 기도하시고 한번 맡겨 보세요. 하나님이 엄청난 역사와 축복으로 여러분 인도하실 것입니다.

오늘 보니까, 전도캠프 한다고 많이 말씀 나오는데, 여러분 이 믿음 가지고 안 나가면 캠프가 답답해서 힘들어요. 조금만 잘 되어지면 교만해지고, 조금만 안 되면 낙심이 되어 가지고 한숨 푹푹 쉬고 돌아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도 예비하고 계획된 자를 만나게 해 주십니다. 계획된 자를 찾을 뿐이지, 여러분과 제가 생명 주는 게 아닙니다. 이 축복과 역사에 우리가 확실히 세워져야겠습니다. 불 신앙은 마치 암과 같다 그랬어요. 왜냐하면 암이란 것은 금방 되는 게 아닙니다. 암이 퍼질 수 있는, 암이 살수 있는 체질이 되어야 암이지, 이처럼 암세포가 자랄 수 있는 체질이 되는 것이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암이 자랄 수 없는 체질은 암이 붙을 수가 없어요.

여러분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완전 주권에 맡겨 버리면 불 신앙이 붙을 수가 없어요. 그게 안되니까, 내가 믿지 못했던 그 체질이, 아직까지 사단의 노예로 살았던 그 체질이 나와 여러분을 지배하고 있고, 이런 데서 빠져 나오지 못한 부분들이 계속해서 우리를 불 신앙으로 빠지게 합니다. 그래서 이 불 신앙을 뽑아내지 못하면 알게 모르게 엄청난 문제들이 스며들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면 첫 번째로 들어오는 것이 뭐냐하면, 우리가 계속 속습니다. 현재에 예수 믿는다 그러면서 계속 속습니다. 뭐로 속느냐? 금방 의식적으로, 무의식 적으로 불 신앙하면서도 불 신앙하는지 몰라요. 자기가 주인 되어서 자기가 다 결단하고, 하나님의 인도와 역사를 안 믿고 있으면서도 믿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특별히 다락방하고 전도라는 것에 지금 기준하고 있는 이런 삶에서 보면, 뭐냐하면 교회는 나와 있으나 다락방이라는, 전도라는 이상한 이런 이름만 뒤집어쓰고, 체질은 완전히 불 신앙 가지고 그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결국은 뭐냐? 이걸 못 빼내고, 이걸 해결하지 못하면, 결국 속아서 영원한 멸망과 죽음으로 끝을 맺게 되는, 이런 문제로 빠지게 됩니다. 만약에 이것이 해결이 안되면, 이 불 신앙이 해결이 안되면 어디로 빠지느냐? 자기도 모르게 말씀, 말씀 강조하면 율법으로 빠집니다. 쉽게 말해서 참 생명이 깔려지면 신앙은 저절로 오는 것이죠. 이게 안 깔려지게 되면, 이 불 신앙이 바로 안되면, 말씀을 강조하면 율법으로 빠지게 되고, 자기도 모르게 어디로 빠지느냐? 체험 쪽으로 빠집니다. 자꾸 이렇게 빠집니다.

그래서 결국은 예수를 열심히 믿으려고 그러면 이상한 환상을 봐야되고 신비적인 그런 신앙으로 빠지게 되어져서 맨 정신이 사라지게 만듭니다. 지난 시간에도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 확실히 붙잡고, 하나님의 주권 속에 바로 서서 맨 정신만 찾아도 축복 받는 다니까요. 이게 안되니까 자꾸 엉뚱한 생각, 판단과 생각들이 결국은 흐려져서 이상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는 모습들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진노의 체질, 이 불 신앙의 근본적인 체질을 벗겨 내지 아니하면 결국 다음 세 가지에 양상에 문제가 나오게 됩니다. 신앙생활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교회 앉아 있으면서도 이 세 가지 양상에 문제가 생깁니다. 오늘 네 가지 신자라 그러면 네 종류의 신자라 그랬는데, 사실은 안 되는 세 종류의 신자를 먼저 한번 짚어 보겠습니다. 제일 먼저 보면 길가 밭이라 그랬어요. 여기에 길가 밭이라 그랬을 때에 말씀을 전혀 듣지 못한다는 문제입니다. 여러분 교회 앉아 있지만 말씀을 전혀 듣지 못해요.

누가복음 8장 11절에 보면 "이 비유는 이러하니라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그랬습니다. 똑같이 누가복음 서에도 씨뿌리는 비유를 하면서 그 풀이를 하면서 뭐라 그러느냐 하면, 씨를 하나님의 말씀이요!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사단이 다 가지고 가 버려요. 이 말씀을 듣는 시간에 온갖 다른 생각을 다합니다. 혹시 여기 앉아서 지금 묵상하고 있는 것 같아도 다른 생각하고있는 사람 많이 있어요. 돈이 왔다 갔다 하는 사람도 있고, 아니면 뭐 염려가 왔다, 갔다 하는 사람도 있고, 아니면 어떤 사람이 왔다 갔다 하구요. 그것도 좋은 사람보다 미운 사람이 왔다갔다하고, 뭐 별 형태로 사단이 말씀을 전혀 못 듣게 만듭니다. 말씀이 임하는 족족 다 가져가 버립니다. 이런 상황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제일 불행한 것이, 제일 먼저 사단의 공격이 뭐냐하면, 예배시간에, 그리고 내가 개인적으로든지 말씀이 들어가지 못하게 합니다. 말씀을 받지 못하게 만듭니다. 믿음이 바로 깔려 있지 않으면, 이 사실이 제일 먼저 바로 안 되게 되어 있다는 것을 먼저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간단히 여러분 아셔야 합니다. 말씀만 듣게 되어도, 예배시간에 와서 말씀만 듣게 되어도 축복을 받습니다. 류 목사님이 늘 '록펠러' 이야기를 많이 하죠. 지금까지 미국에서든지, 세계적으로 그렇게 오래도록 부를 누리고, 부가 무너지지 않는 그런 부가 계속 이루어지는 것이 록펠러 이상 더 없어요.

그 사람이 그 부를 이루게 될 때에 자기 부모로부터 교육을 받은 것이, '예배시간에 꼭 40분전에 가라!' 40분전에 가 있으라는 것은 다른 게 아니거든요. 예배 시간 40분전에 뭐합니까? 말씀을 받을 준비를 하라! 그 이야기입니다. 그것만 지켰는데도 지금까지 더 이상 이 땅에 부한 자가 없어요. 그리고 그 부가 더 이상 지켜지지를 않습니다. 한국에서는 뭐 부가 3대가 안 내려간다! 그러잖아요. 지금까지 벌써 수십 년 내려오면서 그의 명성이 지금도 엄청납니다. 제가 록펠러 제단에, 한번 그 뉴욕에 가 봤습니다 만은, 엄청나게, 전부 타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이 일을 위해서 조금만 준비를 해도 이런 엄청난 은혜와 축복으로 하나님이 역사 해 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계속해서 예배에 성공! 예배에 성공한다는 것이 다른 게 아니잖아요. 말씀 듣는 일에 성공해야 됩니다. 예배성공! 하나님 만난다, 말씀 받는 것이 하나님 만나는 겁니다. 이것이 지금 되어야 되요. 그리고 이 말씀 가지고 구체적으로 한 주간 동안 산다! 계속해서 성공하는 겁니다. 이것에 전부 실패합니다. 거의 실패해요. 오늘 이 말씀 듣고 문 딱 잡고 나가면 잊어버립니다. 심지어는 지난주 성경말씀이 뭐냐? 몰라요. 제목이 뭐냐? 몰라요. 다 잊어버립니다. 거의 이것이 안 되어요.

그래도 계속해서 우리 교회에서는 이것을 많이 강조하고, 또 이 사실들이 훈련이 되고 있으니까, 말씀 붙잡고 기도하고, 말씀을 기억하고 묵상하고, 이것이 어느 정도 한 주간 동한 기도의 제목이 되고 있습니다 만은, 거의 지난날 우리 신앙 생활하는 것을 보면 이 사실들이 안 되고 있습니다. 길가 밭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말씀 붙잡고 조금만 예배에 성공하면 하나님께서 말씀이 구체적으로 성취된 역사가 체험이 되게 될 것입니다.

두 번째로 뭐라고 그랬느냐 하면, 돌밭에 떨어진 씨앗입니다. 이 돌밭에 떨어진 씨앗! 그런데 이 돌밭이라 그럴 때에 오늘 여기 성경에서는, 마태복음 서에는 돌밭이라! 그래서 흙이 얇아서 씨가 말라 버린다! 그렇게 말씀했는데, 누가복음 8장 6절에 똑같은 비유를 말하면서 "더러는 바위 위에 떨어지매 났다가 습기가 없으므로 말랐고" 그랬습니다. 바위 위에 떨어졌다! 그랬어요. 원래 이 돌밭이라는 말을 보니까, 밑에는 큰 바위인데, 그 위에 조금 그저 흙이 조금 덥혔던 이런 밭이라! 돌밭이라고 해서 자갈밭이다! 이런 뜻이 아닙니다. 바위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가지고 조금 생각을 해 봤습니다. 도대체 이 돌이라는, 바위라는 개념이 뭐냐? 제가 조금 전에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믿음이라 그럴 때에, 내가 없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역사 속에 들어가 버리면 됩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모든 것에 전부입니다. 그 속에 들어갔을 때에 그 속에서 뿌리를 내리고, 그 속에 있을 때에 모든 열매가 맺혀지게 되는데, 그것이 안되고 돌밭이라 그러는 것은 뭐냐하면, 바위라는 것이 뭐냐하면, 이것은 자기입니다. 반대로 자기입니다. 자기고집, 자기 욕심, 자기 중심, 자기 전부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여러분 이 말씀 바로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의지와 하나님의 뜻에 자기를 맡기지 못할 때 남는 것이 뭐냐? 자기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계획이 세워지고, 그 속에 설 때에 하나님의 자녀라면 흔히 자기 중심! 그러면 그렇게 생각합니다. 자기가 자기를 주관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단은 자기를 내세워 가지고, 말하자면 여러분 자신들을 내세워서 사단이 사로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단이 인간을 실패하게 만들 때에 자기라는 것, 교만이라는 것을 내 세워서 인간을 실패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 잘 붙드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의지와 하나님의 뜻을 떠났다, 그럴 때에 이건 완전히 자기 중심입니다. 자기 욕심, 자기 것을...

그래서 도리라는 것은 자기 중심으로 뭉쳐진, 자기 고집들, 이것을 가지고 완전히 돌이다! 여기에는 뿌리를 내릴 수 없어요. 여기는 씨가 떨어져도, 말씀이 떨어져도, 뿌리를 내릴 수 없습니다. 왜? 여기는 말씀이 뿌리를 내릴 수 있는 토양이 안 되어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 중심 속에 말씀이 떨어져야 뿌리를 내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라는 돌밭 위에 떨어졌습니다. 말라 버립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은혜 주시면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실 비를 내려도 비를 맞지 못합니다. 다 씻겨 내려가 버립니다. 무서운 것이 이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내에서 모든 이런 분쟁과 모든 이런 사건, 전부 이 위에서 이루어집니다. 여기서 다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 자신들을 한번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최고의 기도가 뭐냐하면, 내 자신을 다 비우고,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실 것을 바라보면서 뭐냐하면, 말씀을 묵상할 때에 깊이 말씀이 뿌리를 내리게 됩니다. 여기서 출발하고, 여기서 모든 축복과 은혜가, 열매가 맺혀지게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4장 26절에 보면 "또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막 4:27) 저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그 어떻게 된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여러분 말씀을 받고, 말씀을 받는 것이 어떻게 표가 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받고, 말씀을 통해서 살아가게 되고, 그 축복을 누리게 될 때는 자기도 모른다 그랬습니다. 씨가 땅에 딱 떨어져서 싹이 나고, 그 다음에 잎이 피고, 열매가 맺혀 지는 것은 금방 되는 게 아닙니다. 언제 그렇게 되는지 모릅니다. 자고 일어나고, 자고 일어나고 하는 동안에 언제 나무가 성장하게됩니다. 여러분 나무를 보세요.

그래서 저는 그 지금도 기억하는 것은 감자를 심어놓고, 이 감자를 심어 놓았는데, 어릴 때에 그 감자가 막 싹이 돋고 막 올라와야 되는데, 이 참 안 올라오더라 구요. 그래서 몇 번 제가 감자를 파보고 이랬습니다. 그랬던 그 어릴 때의 기억이 나요. 뒷밭에 그랬던 기억이 나는데, 그런데 언제인지 싹이 올라와요. 그 다음에 또 싹이 올라와서 많은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말씀의 능력이 위대합니다. 언제 열매가 나오는지 모릅니다. 언제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이게 말씀이, 여러분 말씀을 받게 되고, 말씀을 받는 순간, 순간 벌써 하나님의 기적이 시작되는 겁니다.

그런데 이 사실들이 어디에서? 믿음이라는 바탕입니다. 자기라는 바탕입니다. 믿음이라는 바탕 속에 이 사실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바로 아셔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도 자기라는 돌멩이를 깨야 됩니다. 자기라는 욕심과 이기심을 깨야 됩니다. 자기주장이라는 고집과 이기심을 깨야 됩니다. 그리고 완전히 하나님이 여러분과 저를 지배하시고 인도하시게 됩니다. 맡겨 보세요. 하나님의 역사 속에 우리 자신을 맡겨 보세요. 여기에서 하나님은 놀라운 평안과 은혜로 인도하시고 뭐 전도가 된다 안 된다. 자기 자신이 깨지도 못하는데 그래서 갈라디아서 2장 20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과 내가 믿는 그 믿음 속에서 비로소 하나님의 축복과 역사라 이루어지게 되는 것을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세 번째로 보여 주시는 것은 뭐냐하면, 가시밭에 떨어진 씨앗이죠. 말씀을 받았으나 다른 것으로는 말씀이 막히게 됩니다. 다른 어떤, 다른 이상한 것으로 막힌다 그랬는데, 누가? 8장 14절에 똑같은 그런 메시지를 가지면서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리와 일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치 못하는 자요" 한 마디로 말해서 이 세 종류는 구원받지 못한 자들입니다. 구원이 안 되요. 구체적으로 생명이 없어요. 결실치 못하는 자다! 그랬습니다. 여기에 중요한 것은 지내는 중, 사는 중이라는 말입니다. 삶을 이루어 가는 중입니다. 그 중에 무엇 때문에 생명이 막히느냐? 말씀이 구체적으로 내 안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느냐? 뭐 때문에, 축복과 은혜의 역사 속에 시작조차도 할 수 없느냐! 그 이야기...

제일 첫 번째로 말씀한 것이 이생에 염려라 그랬습니다. 사는 동안에 염려하는 겁니다. 받아합시다. "염려는 독이다!" 그런데도 염려는 혼자하고 앉았거든요. 걸핏하면 염려하고, 염려를 팔자로 하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뭐 별걸 다 가지고 염려합니다. 뭐 거의 여기에 빠진 사람들이 많아요. 염려! 그런데 염려는 전혀 축복과 은혜가 임할 수 있는 통로가 아닙니다. 완전히 죽음과 멸망에 통로일 뿐입니다. 베드로 전서 5장 7절에 보면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벧전 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사단이 누구만 찾아 돌아 다녀요? 염려하는 사람만 찾아 심방한다! 그랬어요. 목사님 심방은 좋다 그러지 만은, 심방 받으면서 염려하면 사단이 먼저 심방합니다.

염려라는 것이 그렇게 무서운 데도 염려할 수밖에 없어요. 그것이 뭡니까? 내가 주인이 되니까!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의지하지도 못합니다. 믿는다! 그러면서도 자기가 다 합니다. 그러니까 모든 문제를 자기가 다 쥐고 있습니다. 빌립보서 4장 6절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빌 4: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모든 것을 하나님! 벌써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붙잡으셔서, 하나님의 자녀 만드시고 이제는 너는 내 아들이다! 그때부터 우리 주님께서 완전히 맡겨 주셨습니다. 뭘 그렇게 자꾸 염려합니까?

만약에 이런 경우에 염려가 맡겨지지 못한다! 그럴 때에 오는 것은 사단밖에 안 와요. 오는 것은 사단의 역사, 죽음과 멸망의 역사밖에 안 온다 그랬습니다. 여기에 더 나가면 별별 것이 다 생깁니다. 그래서 정신병의 시초는 염려입니다. 이미 염려가 시작되었다 정신병이 들었다 그 말입니다. 그러니까 증상만 안 나타나서 조용할 뿐이지, 전부 정신병으로 다 앉아 있는 게, 염려하고 앉아 있습니다. 그래놓고는 '나는 말짱하다!' 이건 더 정신병입니다. 그렇잖아요. 염려하면서도 정신이 말짱하다고 생각하는 게 이게 문제거든요.

여러분 술 취한 사람보세요. 되게 취해 버리면 '절대로 안 취했다!' 그럽니다. 구불러 지면서 '안 취했다!' 그럽니다. 염려는 혼자하고 있으면서도, 정신병이 들어도 지독하게 들었어요. 그러면서도 말짱한 줄 압니다. 사단에 속고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잘 붙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총과 역사 속에 여러분과 저를 세웠는데도 이것이 바로 이해가 안되고 있습니다. 저는 그 여기에 조금만 문제 오면, 이 문제만 조금만 해결되어도 평안하다! 정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신 사실을 보게 되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 다음에, 염려 다음에 나오는 것이 뭐냐하면 재리입니다. 여러분 교회에 나온다! 교회에 모든 행하는 것, 자기 이익과 결부시키면 망해 버립니다. 전혀 이게, 여러분 돈을 내가 따라 다니면 안됩니다. 돈이 나에게 붙여야지, 교회 안에 오면서요 이익이 엄연히 신앙생활하면서 내 이익과 결부시키면, 그러면 신앙생활이 안 되어요. 그런데 안 된다는 경우보다 이 출발은 구원받지 못한 백성의 출발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이 점을 잘 알아야 합니다. 십일조도 여기에만, 조금만 이것과 연결해 버리면 안되게 되어 있어요.

왜냐하면, 여러분 십 만원 벌었다면 만원을 십일조로 내어야 됩니다. 우리 교회는 2만원을 십 이조로 선교헌금까지 또 내어야 됩니다. 이렇게 되면 재리, 이익과 조금만 연결된 마음이 생기면 죽어도 못 내어요. 안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처음 십만 원에서 만원 떼면 조금 괜찮아요. 천만 원에서 얼마 떼어야 되요? 100만원! 죽었다 깨도 못 뗍니다. 이익만 조금 붙으면, 축복주시면 주실 수록 안 되게 되어 있어요. 여러분 이익을 중심한 신앙 생활은 절대로, 실제로 신앙이 안되게 되어 있습니다. 이점을 여러분 잘 알아야 됩니다.

저는 십일조, 십 이조, 제가 이 주일헌금까지 십에 삼조에 대한 돈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로 그렇게 해놓고, 때에 따라서 조금만 이익문제가 부닥치면, 나도 모르게 언제 돌아갔는지 돌아가 버립니다. 떼었다 넣었다 하죠. 떼어놓았다가 '하나님 봐 주세요, 이번에는 안되겠습니다' 하고 십일조는 확실히 되는데, 십 이조, 십 삼조 가지고는 갈등할 때가 이만 저만이 아닙니다. 그리고 공식적으로 교회에서 받는 돈도 십 이조를 선교헌금으로 딱 내어놓아도, 그 다음에는 십 이조, 제가 다른 게 들어 올 때는 신학생들이나 다른 바쁜 좀 이것은 꼭 도와야 되겠다 싶을 때는 따로 또 기도하고 그렇게 하죠.

문제는 뭐냐하면, 당장 보는 이익과 결부되면 아무것도 못합니다. 축복 주실 이 아버지시오. 내가 조금 돈을 내고 못 내고 상관없습니다. 먹고살고, 죽음과 삶과 영육 간에 복을 주시는 이 주님이 시다! 이것이 본격적으로 안되면 하나님께 맡길 수가 없어요. 마태복음 6장 30절 보면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여러분과 제가 이미 하나님의 축복 속에 들어가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저를 책임지실 것입니다. 축복하실 것입니다. 안 된다, 된다! 본인과 상관없습니다.

그래서 6장 31절에 보면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여러분 하나님의 손에 맡길 때에 먹고, 마시고, 입고, 잠자고, 활동하는 것 다 맡겨 보세요. 그래서 흔히 그런 말 안 합니까? 교회 가면 밥 주나? 밥 줍니다! 하나님이 손에 맡기면 하나님이 하십니다. 오늘 본문에 말씀했잖아요. "(마 6:33)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마 6:33) 이는 다" 누가 구합니까?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있어야 될 것, 없어야 될 것 더 잘 압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필요를 더 잘 아십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6장 33절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여러분 이 축복된 아버지 하나님께 그렇게 맡기고 의지하라! 그래도 왜 그렇게 의지 안 합니까? 지가 뭐 잘났다고, 5분 후의 일도 모르고, 아니 5초 후에 일도 모르는 게, 지 마음대로 한다고, 그냥 맡겼다가 당겼다가, 맡겼다가 당겼다가, 하나님 열 받히게 만드는 것이 이 신앙생활이에요.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조금만 하나님께 맡겨보아라! 하나님의 손에,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보아라! 모든 것이 거기에 다 있다고 성경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축복과 역사를 약속하시면서 마지막 축복된 밭을 비유로 말씀했습니다. 옥토에 떨어졌다!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부드럽습니다. 완전히 하나님의 손에 맡겨 버렸습니다. 비옥한 땅입니다. 떨어지는 그때부터 뭐가 되느냐? 생명이 싹이 나기 시작합니다. 생명의 역사가 이루어지기 시작합니다. 구원받았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여기에서 모든 하나님의 축복과 역사 속에 30배, 60배, 100배로 결실 한다!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혹시 오늘 나는 구원받지 못했을까, 나는 택함 받지 못했을까, 나는 하나님의 계획 속에 들었을까, 염려하고 걱정이 되는 사람은 이미 구원받았습니다. 택함 받지 못한 사람은 염려가 안 나와요. 이 말이 들어가지를 않습니다. 이 말이 귀에 들어가지도 않습니다. 귀 구멍에 안 들어가요.

그래서 성경이 뭐라 그러느냐? 9절에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이 말이 들립니까? 이미 구원받았습니다. 이제는 자신을 다 내어놓고 하나님의 손에 맡기라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계획 속에 맡겨 보세요. 하나님이 인도하실 것입니다. 염려할 것이 태산같아도 무엇이든지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맡깁니다. 그리하면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뭐가? 나보다도, 여러분보다도 평강의 주인이신 주님께서 모든 것을 맡아 주실 것입니다. 먼저 우리에게 평안을 주실 것입니다. 안식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저를 맡으실 때에 하나님이 성취하실 것입니다. 말씀을 묵상하시고, 그 말씀 가지고 조금만 기도하시고, 그 말씀이 내 중심에 자기 중심에 뿌리내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주권의 중심에 뿌리를 조금만 내리면, 그 뿌리로 그 생명이 뿌리가 싹이 나고, 움이 돋고, 열매 맺혀서 여러분 생활과 삶에 30배, 60배, 100배로 엄청난 축복으로 임하실 것입니다.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본질상 진노받을 수밖에 없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결코 정죄받을 수 없는 자리에 왔습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전에 사단의 노예로 살았었던 것이 체질화되어 지금도 여전히 그러한 불신앙의 체질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이 하나님께서 자신의 인생을 주관하실 것을 믿지 못하여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지 못합니다.

☞ 우리가 하나님을 조금만 믿어도 하나님은 놀랍게 역사하십니다. 우리가 정말로 하나님께 맡기지 아니하고 우리 스스로가 주인이 되어 자기의 고집대로 살아가려는 마음을 버리고, 조금만이라도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일들을 맡겨봅시다.

☞ 우리가 참으로 불신앙을 버리지 못하면, 우리는 계속해서 속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불신앙하면서도 불신앙하는 것을 모릅니다. 자기의 마음대로 다 해나가면서도 믿음을 가진 것처럼 착각하게 됩니다. 이것이 해결되지 않으면서 말씀을 강조하다 보면 '율법주의'로 빠지게 되고, 더 나아가 '신비주의'로 빠지게 됩니다.

☞ 이 진노의 불신앙의 체질을 벗겨내지 아니하면, 구체적으로 세 가지 종류의 문제가 생겨나게 됩니다.


(1) 길가

☞ 말씀을 전혀 듣지 못하는 문제입니다. 사단은 무엇보다도 말씀이 들어가지 못
하게 만듭니다. 한편, 예배 시간에 와서 말씀만 듣게 되어도 축복을 받게 됩니다. 예배에서 무엇보다도 말씀을 듣는 일에 성공해야 합니다.


(2) 돌밭(바위)

☞ 바위는 '자기'입니다. 자기 중심이나 자기 고집은 교만으로 말미암아 완전히 실패하는 길에 이릅니다. 자기 중심으로 뭉쳐진 자기 고집에는 말씀이 뿌리를 내릴 수가 없으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오직 하나님 중심 속에 말씀이 떨어져야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게 됩니다.

☞ 우리는 날마다 '자기'라는 돌맹이를 깨뜨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역사 속에 자신을 맡겨보십시오. 하나님께서 평안으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3) 가시밭

☞ 살아가는 중에 이생의 염려, 재리, 일락에 빠지면 열매를 제대로 맺지 못합니다.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지 못하고 자기가 다 짊어지고 날마다 염려하며 살아가거나, 모든 것을 자기의 이익과 연결시켜서 살아가려고 하면 제대로 신앙 생활이 될 수가 없습니다.

☞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며, 오직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자신의 삶을 맡기고 살아갈 때,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러한 사람이 바로 옥토와 같이 30배, 60배, 100배로 결실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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