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가 주의 하라
2004-05-07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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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16:5) 제자들이 건너편으로 갈쌔 떡 가져가기를 잊었더니
(마 16:6)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신대
(마 16:7) 제자들이 서로 의논하여 가로되 우리가 떡을 가져 오지 아니하였도다 하거늘
(마 16:8) 예수께서 아시고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들아 어찌 떡이 없음으로 서로 의논하느냐
(마 16:9)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바구니며
(마 16:10) 떡 일곱 개로 사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광주리이던 것을 기억지 못하느냐
(마 16:11) 어찌 내 말한 것이 떡에 관함이 아닌 줄을 깨닫지 못하느냐 오직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마 16:12) 그제야 제자들이 떡의 누룩이 아니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을 삼가라고 말씀하신 줄을 깨달으니라
오늘 본문말씀에서 삼가 주의하라 그렇게 제목을 삼았습니다. 6절 말씀에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중간에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은 빼고, '삼가 주의하라!' 그렇게 제목을 잡았습니다. 주의하라는 배경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누룩입니다. 이것이 얼른 보면 간단하게 말할 수 있는 이야기일수 있으나, 굉장히 여러분과 제게 오늘 의미를 갖고 붙잡아야 되겠습니다. 쉽게 말해서 이 경우는 배를 타고 지금 건너편으로 가는 과정에서, 뭐 제자들이 건너편으로 가는 과정! 배를 타고 건너가면 가서 먹을 수 있는 양식들을 사전에 아마 준비도 하고, 그렇게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마 까마득히 너무 하나님의 역사를 보고, 또 그렇게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과 변론한 것에 정신을 팔다 보니까, 그런 것들을 몽땅 잊어버리고 빈손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막상 정신을 차리고 나니까, 양식 준비를 하나도 안 했습니다. 그러니 걱정이 될 수밖에 없죠. 그런 걱정을 하고 있는 차에, 예수님께서 '떡이 있느냐?' 물으시고, 이러니까! 우리가 떡을 가지고 오지 않고, 양식을 준비해 오지 않고, 가져오지 않았으므로 그걸 알고 예수님께서 책망을 하시는가 보다! 그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먹을 것이 없다! 그러면 걱정해 야죠. 내일 먹을 것이 없는데, 아무렇지도 않다! 그것은 이상하죠. 오히려 그것은 정신문제가 있던지, 바보든지, 축구든지, 그렇게 되어야 되는데...
그런데 이 성경에서는 오히려 반대예요. 내일 먹을 것이 없는데도 평안해야 돼요. 그게 성경에 지금 쭉, 지금 설교를 하고 있는 배경입니다. 이게 정상적으로는 보면 먹을 것이 없다! 염려를 하고 그래야 되는데, 이게 평안해야 되고, 또 아무렇지도 않아야 됩니다. 그래서 오늘 언뜻 보면 그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속에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 이런 문제를 보면서 아주 중요한 그런 신앙의 원리가 여기서 회복되고 있습니다. 이걸 바로 붙잡게 되면 정말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원하시는 바가 뭔가를 볼 수가 있습니다. 당연한 일인데도, 그렇게 당연한 걱정인데도, 그 걱정한다는 사실이 오히려 그 예수님께는 이상하게 보여지고 있다는 것을 여기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뭐냐하면, 그렇게 빠지게 될 때에 오는 큰 문제가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전혀 제자들이 이해가 안 되는 겁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내일 먹을 것이 없는데, '염려스럽다!' 그래야 정상인데, 오히려 그게, 그렇게 빠지게 된 순간에 예수님이 하신 이야기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예수님의 의도를 전혀 제자들이 이해를 못하게 되는 그런 문제가 생겨졌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이것을 가지고, '영적인 역사!'라 그랬습니다. 제자들은 육적인 것에 눈이 밝아 있고, 걸핏하면 육적으로 마음이, 생각이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육적으로 생각하고, 육적으로 눈이 돌아가고, 육적으로 마음이 돌아가고, 육적으로 생각이 돌아가는 그것을 오히려 책망했습니다. 그리고 육적으로 돌아가는 동안에는, 제자들에게서 예수님의 마음과, 뜻과, 예수님의 계획을 전혀 발견하지 못하는 그런 문제에 빠졌다는 사실을 오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단순히 먹고 마시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제자들이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알지 못했다는 것에 대해서 중요한 오늘 핵을 좀 붙잡아야 되겠습니다. 영적이라고 하는 것은, 한 마디로 말해서 비밀입니다.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계속해서 오는 말씀이 뭐냐? 비밀! 그 비밀은 누구입니까? 그리스도입니다. 받아합시다. "그리스도는 나의 생명이다!" 비밀입니다. '그리스도는 나의 힘이다!' 비밀입니다. 이것은 아무나 깨닫고, 아무나 느끼고, 아무나 붙잡을 수 없는 그런 내용입니다.
여러분들이 이것이 안되어 있다! 그러면 우리는 걸핏하면 어디로 빠지느냐? 육적으로 돌아갑니다. 걸핏하면 보이는 것으로 빠집니다. 걸핏하면 세상으로 빠집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생명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문제 해결 자다! 이 사실이 확인되는 만큼 뭐가 오느냐하면, 세상 적인, 육 적인, 이 정욕 적인 것에서부터 해방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 쉽게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내 모든 문제 해결 자다! 영적인 역사가 누려지는 만큼, 예수 그리스도 그 한 분으로 모든 문제 해결자라는 사실 속에 다 포함이 되어 있는 겁니다. 한번 받아합시다. "예수님은 모든 문제 해결자시다!" 믿습니까? 그런데 왜 해결이 안됩니까! 이 전혀 이게 안되거든요. 그리고 '그런데 왜 성령이 누려지지 않습니까!' 말은 그렇게 하고있지만, 여러분들 생각과 마음이 전혀 다른 반대 방향으로 나가고 있기 때문인 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6장 30절에 보면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한번 받아합시다. "사람이 영적인 역사에 눈이 열리게 되면 그 안에 다 있다!" 지난주에도 제가 말씀을 했죠. 예수 믿으면 믿음 회복한다는 것은 바로 이 부분입니다. 예수 믿으면 먹는 게 나오냐? 먹는 게 나온다! 그랬어요. 성경이 오늘 분명히 안 그랬습니까! 이 말씀 속에서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뭐가 없어요? 믿음이 없어요. 예수 믿는 사람들이 같이 육신적인 일에, 육신적인 역사와 육신적인 염려 속에, 안 믿는 사람과 별 다름없이 빠져들어 갑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계획을 성경을 백 번, 천 번 읽어도 와 닿지를 않습니다. 오늘 성경을 통해서 설교 말씀을 들어도, 그 설교가 내게 제목이 되어 한 주간에 기도제목이 나오지 않습니다. 왜? 전혀 뜻이 다른데 있는데... 예수님 말씀을 제자들이 전혀 이해를 못했습니다. 왜? 육적으로 있는 동안에는 말씀이 이해가 안 되는 겁니다. 방향이 안 되는 거죠. 그래서 류 목사님이 계속해서 강조하는 배경 속에서 뭐냐하면, 성경 말씀은 분명히 말씀입니다! 다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 말씀이 오늘 내게, 강단을 통해서 무슨 말씀으로 임했느냐? 이것을 붙잡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게 안 들려지면 말씀은 맨 날 말씀으로 따로 있고, 나와 말씀은 상관이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강단에서 말씀을 듣고, 말씀을 깨닫는다는 것! 이것은 엄청난 축복과 은혜입니다. 이게 안되면 신앙생활이라는 자체가 첫 번부터 안 되는 겁니다.
그게 왜 안 되느냐? 영적으로 눈이 안 열렸다! 이겁니다. 말하자면, '그리스도는 나의 생명이다!' 아닙니다. '그리스도는 나의 모든 문제 해결 자다!' 아닙니다. 해결 자는 무슨 해결 자야! 오히려 '그리스도 모든 문제 해결 자다!' 귀찮게 되거든요. 그래서 여기에 조금만이라도 체험이 필요하다! 왜? 너무 체험이 안 되니까! 사실로 믿어질 수 없어요. 그래서 하다 못해 '예수 그리스도!' 부르다가 감기라도 나아야 눈이 번쩍 뜨이는데, 이것조차도 안되니까! 전혀...
그러니까 뭐가 되느냐? 기도도 안되고, 뭐든지 그저 안 믿는 사람과 똑같은 그런 배경에서 살아가려고 하니까, 믿는다는 것이 점점,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붙잡아야 됩니다. 31절에 보면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 보세요. 우리가 보면요. 너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또 성경에 해 놓았어요. 아니 먹을 것이 없는데, 염려해야지! 아니 입을 것이 없는데, 얼마나 신경이 쓰입니까!
저는 그 아마 성격상 좀 소심한 것도 있고, 또 성격상 어떤 것이 있느냐 하면, 뭐랄까 까다로운 성격이 좀 있었는 것 같아요. 특별히 그 학교 다닐 때에 느끼는 것은, 뭔가 이 양말에 구멍이 나도 굉장히 신경이 쓰이더라 구요. 특별히 여학생들 앞에 있으면요. 아니, 딛고 있으면 발바닥 있는데 보입니까! 그런데도 신경이 그렇게 쓰이고, 어떻게 이제 스봉이... 스봉이라는 것은 옛날 많이 쓰던 이야기입니다. 바지가 뭐 조금 찢어지거나, 조금 뭐 이상하면 그때는 이것을 그냥 새것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막 박아서 섰어요. 그러면 괜히 다른 사람이 누가 봅니까! 그것만 쳐다보는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이 굉장히 신경이 쓰여지더라 구요.
무슨 말씀이냐? 여러분 적은 것도 조금만 내게 어떤 면에서 거리끼는 것이 있다 그러면 염려가 되는데, 당장 내일 굶는다! 염려가 안될 수가 없잖아요. 그런데 성경이 뭐라 그러느냐? '염려하지 마라!' 그랬습니다. 그래서 6장 30절 보면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왜, 염려를 하지 말아야 됩니까? 영적인 눈이 열려버리면 다 해결돼요. 누가 먹이고 입이십니까? 하나님이 먹이고 입히시는데, 하물며 뭐라 그랬어요. '너희일까 보냐! 하나님의 자녀들인 너희일까 보냐!' 이 말이 암만 말해도 이해가 안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은 하는데, 사실이 안 믿어지거든요.
여러분들이 지금현재 아무데나 던져놓아도 염려할 일이 없어요. 내일 먹을 것이 없다! 괜찮아요. 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뭐라 그랬느냐 하면요. '너희가 악할지라도 자녀에게' 뭘 줍니까? '좋은 것을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나님이 커다란 축복과 선물... 뭘 안 줍니까? 성령으로 여러분과 저를 인도하시는 사실적인 역사가 왜 안 믿어지느냐? 역설적으로 이렇게 성경은 많이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게 이해가 안되어요. 이해가 될 수 없어요. 주일날 한 주간 동안 열심히 일하고 오면, 이상하게 주일교회 문만 딱 열고 앉기만 해도 얼마나 포근한지, 그저 눈을 내리 감고 아무리 해도, '여기가 좋사오니...' 베개 같다 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영적인 메시지가 들어가지가 않습니다. 왜냐? 실제로 안 믿어요. 여러분 사실적으로, '지금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신다!' 이게 되면 한마디도 놓쳐지지가 않죠. 하나님께서 오늘도 여러분과 제게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구체적으로 들풀도 먹이고 입히시는 하나님이, 참새들도 먹이고 입히시는 하나님! 여러분과 이 사실을 구체적으로 오늘도 필요한 말씀을 주시고 이끌어 가실 것입니다. 붙잡으면 돼요. 믿음으로 이 사실을 바로 붙잡으라고 그랬습니다.
그리고 만약에 이런 것들로 염려하게 된 배경은 뭐냐? 6장 32절에 보면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이미 다 아신다! 그랬습니다. 늘 그런 말씀 안 합니까! 세 살배기가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엄마, 오늘 뭐로 밥하지, 쌀도 없는 것 같은데... 뭐로 밥하지!' 이러면 애는 정신병원에 가야 합니다. 부모가 다 알아서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 걱정할 일이 없는데도 찾아가며 합니다. 이것을 하지 마라! 그러면 팔자라고 합니다. 이 병이 안 고쳐져요. 백 번, 천 번해도 안 고쳐집니다.
그래서 6장 33절에 뭐라 그랬느냐 하면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할렐루야! 영적 문제가 해결되었다. '걱정하지 마라! 다 갖다 붙여주마! 그 위에 다 부어주마!' 그래서 다시 한번 오늘 받아합시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신 사실이 확인되는 만큼 먹고사는 것 걱정 없다!" 진짜입니까! 이게 믿어집니까! 이게 와져야 됩니다. 성경에 그렇게 말씀했어요. 내가 참 복음을 바로 깨닫고 나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에게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시리라!' 이 사실을 성경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염려해야 할 것을 가지고 있음에도 염려하지 않는 것이 영적인 삶에 눈입니다. 그것도 억지로 하려고 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왜? 저는 늘 그 그런 생각을 가끔해 봐요. 홍해 앞에서 애굽 군인들이 따라오고 홍해는 넘실거리고 있는데, 지금 죽음 직전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만히 있을 수가 있느냐? 절대로 없습니다. 영적 눈이 안 열려지면요, 염려 안하고 편안히 가만히 있으려고 그래도 안 되게 되어 있어요. 있다 하는 것은 기적입니다.
베드로가 내일 사형 틀에서 죽음 직전에, 그 날 밤에 아무런 염려 없이 너무 너무 깊이 잠들었다! 이건 이해가 안 되는 겁니다. 잠이 안 와 야죠. 여러분 걱정되면 잠 안 와요. 잠이 올 수가 있습니까! 그런데 얼마나 깊이 잠들었느냐 천사가 와서 흔들어도 못 일어나니까! 천사가 발길로 집어 차버렸어요. 그래서 너무 놀라 가지고 벌떡 일어나니까, 밑에 바지가 다 내려가 버렸어요. 왜 그러느냐? 혹시 감옥에 들어가면 목을 맨다든지 이런 게 있을까 싶어서 끈을 다 회수해 버립니다. 그런데 너무, 하도 안 일어나 나니까! 천사가 발길로 차버렸어요. 얼마나 깊이 잠이 들었습니까! 그 말이 무슨 말입니까? 걱정이 없어요. 염려가 없어요.
여러분들이 정말 말세가 될수록 참 하나님 앞에 참 복음 붙잡고 영적인 눈이 안 열리면 예수 믿는다는 것! 고통입니다. 점점, 점점 고통입니다. 그러나 참 복음 붙잡고 예수 그리스도 나의 생명이다! 나의 힘이시다! 사실적으로 붙잡고 있으면 고통은커녕 순간, 순간 힘이 됩니다. 기쁨이 됩니다. 받아합시다. "예수님은 나의 소망! 예수님은 나의 기쁨! 예수님은 나의 감격!" 믿습니까! 이렇게 되면 입술이 벌써 달라야 되는데, 멍청하게 '나의 감격...' 이 비밀을 깨달으면 다른 것은 따라온다고 하신 말씀! 성경은 그래서 이것을 가지고 '비밀이라!' 그랬습니다.
요즘 메시지 속에서도 '비밀을 깨닫는다!' 다입니다. 그 속에 모든 것이 다 들어 있습니다. 어떻게 이 비밀을 깨닫습니까? 성경은 간단히 말하고 있어요. 이게 안 되었으면, 요한 복음 1장 12절 한번 다시 여러분 마음에 새겨 보세요.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이미 여러분과 제게,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역사가 임하게 되었다! 이겁니다. 그때부터 영적이다! 영적이라는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 육신의 생각과 이성에 의해서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과 저를 누가 인도합니까? 성령으로 인도하십니다. 여러분은 성령의 인도 받는 영적인 사람입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에 말씀이죠. 이때부터 모든 바라보는 시각이 그리스도라는 말이 통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말로 아니고 바라보는 모든 사건들마다 뭐로 통해서? 그리스도로 통해서 보게 되어있습니다. 그리스도 통해서 이해가 되게 되어 있습니다. 이때부터 그리스도 통해서, 그리스도 통한 시각이 되는 그 순간부터 누구의 인도를 받습니까? 성령의 인도를 받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영이 있는 사람이요. 영적인 사람이요. 육신적인 사람과는 다르다! 그런 말입니다.
여러분이 육신을 갖고 땅에 발을 띧고 살지만 영의 사람이요, 영의 인도를 받는 사람이다. 그래서 영적인 사람이다! 하나님의 생명이 들어왔다! 영의 사람입니다. 여러분 똑같이 말하는 것 같아도, 똑같이 발을 땅에 딛고 살지만, 똑같이 밥 먹고살지만, 하나님께서 말씀합니다. '너는 내 아들이다!' 영의 사람입니다. 그 다음에 그때부터 여러분 한가지 다른 게 뭐? 순간 순간마다 기도합니다. '하나님 어떻게 이 일을 해결합니까! 어떻게 이 일을 처리해 나갑니까!'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이게 나오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안 되었을 때에 크게 다음에 보편적으로 떨어지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제자들도 떨어지는 부분이 바로 이런 부분이에요. 그것이 뭐냐하면 첫 번째로 떨어지는 것이 율법주의라는 말입니다. 늘 우리가 율법주의, 율법주의 안 그럽니까! 율법주의라고 하는 것은, 이것은 인간의 본성입니다. 타락의 본성입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떠나는 순간부터 뭔가 바르게 산 것 같고, 진실하게 사는 것 같아도, '진실하다! 바르다!' 그게 아닙니다. 그 배경이 다른 것이 나와버려요. 그래서 여러분들 늘 그런 말을 합니다. 정신문제에 빠지게 되면 아주 뭐가 되느냐? 율법적이 됩니다. 정신문제에 빠지게 되면요. '옛날에 누가 잘했다, 못했다!' 이게 잘 기억이 나고요. 뭔가 일이나 사건에 부닥쳤을 때에... 그래서 자꾸 눌립니다. 자기의 잘못을 자꾸 자책 하구요.
그래서 어떤 면에서 여러분들이 '내가 너무 잘못했다! 내가 잘못했다! 내가 잘못했다!' 이것도 영적 문제입니다. '잘못 한 것 어쩌란 말입니까! 원래 그렇게 생겨먹었는데 어쩌란 말입니까!'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될 것 아닙니까! 자기 잘못했다고 자꾸 자책하고, 이게 벌써 영적 문제거든요. 그래서 이런 면에서 나도 모르게 자기도 모르게...
그래서 성경이 뭐라 그랬느냐하면요. 고린도 후서 3장 6절에 보면, "저가 또 우리로 새 언약의 일군 되기에 만족케 하셨으니" 새 언약이 뭡니까? 새 언약이 누구입니까?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새 언약의 일군 되기에 만족케 하셨으니 의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의문은 뭡니까? 율법을 말합니다. "오직 영으로 함이니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 쉽게 말해서 율법주의, 율법 속에 있는 한 죽음입니다. 그것은 생명이 아니라 그랬습니다. 반드시 여기서 해방 받아 야죠.
그래서 고린도 후서 3장 7절에 보면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의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을 인하여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그런데 사람들이 참 이상한 것은, 율법적인 직분에 훨씬 비중을 더 두었습니다. 이게 교회의 역사입니다. 이게 바꾸어 져야 되거든요. 고린도 후서 3장 8절에 말합니다. "하물며 영의 직분이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할렐루야! 교회에서 임직 받고 교회에서 직분 받았다! 그것은 별것 아닌 것처럼 생각합니다. 옛날 제사장 직분이다! 엄청납니다.
지금 현재 바울이 뭐라고 말합니까? 제사장 직분과 비길 수 없는 영광의 직분 뭡니까? 여러분과 제가 받은, 복음을 통해서 받은 이 직분입니다. 이 직분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그래서 조금 마음에 아이구 목사님이 연말 되니까, 또 작정하셨구나! 싶을지 모르지만 이것은 이 나올 때에 한번도 생각을 안 했는데, 생각이 떠올라요. 집사 한번 받았다! 기도 당번 되면 기도를 왜 안하고 도망갑니까? 세상에 이 생각 자체가 벌써 영적인 것과는 너무 거리가 멉니다. 이 도저히 이해가 안되어요.
그래서 어떻게 했느냐? 수요일 날은 하도 일반 평신도들이 기도하러 안 오니까! '수요일 날은 권찰님들만 세우자!' 권찰들은 오니까! 그 다음에 '권사님들을 세우자!' 앞으로 여러분 집사들은 기도한번 못합니다. 잘하는 집사가 다 망쳐놓았어요. 한번 축복 받을 수 있는 귀중한 기회, 이 엄청난 역사인데, 영광의 직분인데 다 도망쳐버렸습니다. 상당히 재미있는 표현을 안 들었습니까! 주보를 딱 보고는, '다음 수요일 날 기도가 누구냐? 아이고 나구나! 오늘 주보 안 봤으면 큰일 날 뻔했네!' 안 되면 적어서라도 와서 읽어요. 이 영광의 축복이 아무나 돌아갑니까! 그래놓고는 송현 교회 집사가 아니라고 하면 속상하죠. 집사 안 불러주면, '집사 떨어졌다!' 그래가지고 삐쳐서 나오지도 않고... 물론 안 그런 사람은 안 그렇다고 치고라도, 우선 안 그렇다고 할 수 없는 이유가 거의 안 나와요. 어쨌든...
잘 알아 들어야합니다. 영광의 직분 엄청난 축복과 은혜의 직분 영적인 눈이 안 열리니까, 모르는 겁니다. 내가 왜 받았는지, 받은 게 귀중한 줄도 모르고, 그러니 여러분 예수 믿는다! 이 참 겁쟁이가 됩니다. '예수 믿고 복 안 준다!' 그러면, '성경은 전부 복 준다!' 그랬는데, 내게 은혜 주신다 그랬는데, 은혜 주실 수 있는 수준이 안되어 있는데, 은혜 주었다! 오히려 망칠 건데, 그러니까 한번 받아합시다. "망하는 것이 당연하다!" 싫지요. 이렇게 말하면 여러분 집에 가서 가만히 천장을 바라보고, '주여, 망하는 것이 당연하네요...' 이렇게 꼬락서니라도 알아야 안됩니까! 본인 꼬락서니라도...
그래서 주일날 저녁에는 어떻게 하느냐? 주일날 저녁에는 돌아가면 안되니까! 안수 집사님들만 주일날 저녁에 세워야 되겠다. 자꾸 빠지니까! 이건 이상하더라 구요. 아무 게 집사님 그러고 보면 사람이 없어요. 어디 갔는지 없어요. 그 다음에는 와도 기도시간 딱 지나고 난 후에 늦게 중간에 들어옵니다. 하여튼 사람 머리가 비상하게 돌아갑니다. 육적으로 돌아가는데는 감당을 못해요.
여러분 오늘 조금 붙들어야 됩니다. 의문에 죽은 직분도 영광스러운 직분입니다. 모세의 얼굴에 광채가 나고 그랬는데,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기 때문에 무시합니까? 영적인 직분 굉장히 큰 축복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성가대로 서울에 올라가니까, 참 모두 부러워하더라 구요. 왜 부러워하느냐? 노인들만 앉아도 부러워하더라 구요. 나이가 많거든, 비교적... 그런데 다른 데는 거의 뭐 결혼전이고, 젊은 사람이고 그렇더라 구요. 그러니까 뭐라 그러느냐 하면, '연세가 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으니까 뭔가 성가대가 아주 안정된 것 같고 든든하다!'
그러니 이제 연세 많은 사람들이 앉은 이유가 있어요. 젊은 사람 앉혀 놓으면 잘 나오지를 않아요. 뭐 노래는 잘 부를지 몰라도 왔다갔다하니까 아예 아마... 이래서 점점, 점점 성가대 자리를 잘 차지하는 이런 분들이 앉고 이러다 보니까! 우리 권사님도 계시고, 장로님도 계시고 안 그럽니까! 제가 그래도 나이가 많아요. 그렇지만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노래는 안 늙습니다. 제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 여러분이 지금 현재 하나님이 주신 교회의 직분이나 교회의 사명에 대해서 너무 무시를 합니다. 무시하는 그 자체가 뭐냐? 영적인 것이 안 열린다! 이겁니다.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과 마찬가지거든요.
연말 되니까! 그래서 우리가 주의해야 됩니다. 정말 여기에 조금만 우리가 눈이 열리면 하나님이 그 속에 모든 것 다 비밀로 감추어 놓았다. 그랬는데 이 상태가 안된 상황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비밀을 우리가 누리겠느냐? 이 사실을 좀 붙잡아야 되겠습니다. 물론 여러분 아셔야 합니다. 율법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율법도 하나님이 주신 선한 것이라 그랬습니다. 율법 속에 규모도 있습니다. 율법 속에 도덕도 있습니다. 율법 속에 예절도 있습니다. 당연합니다.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도 율법 속에 뭐가 나오느냐? 종교성도 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의 성공도, 혹은 많은 어떤 종교적인 단체가 성공하는 것도 역시 율법에 중요한 장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도 모르게 육 적으로 빠져 들어간 율법주의 속에서는 엄청난 단점이 있습니다. 그 말이 무슨 말이냐? 아무리 노력하고, 아무리 애를 써도 내 행위로, 내 노력으로 구원 못 받습니다. 여러분 아무리 지금, 아마 박 목사가 1년만 우리 교회에서, 매주 우리 교회에서 전체가 '국수 삶아 주자! 독고 노인들 국수 삶아 주자!' 1년만 했다! 당장 TV나옵니다. 아니 나 혼자 그냥 송현 교회 박 목사가 3년만, 3년까지 갈 것도 없어요. 1년만 담배꽁초 주으러 계속해서 왔다 갔다 했다! 대번 TV에 나옵니다. 담배꽁초 줍는 꼬락서니 찍고... 이게 세상입니다. 그러니 율법배경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무수한 사람이 평안과 안식을 얻게 했다. 이건 모릅니다. 왜? 영적인 것을 그들이 알 수가 없어요. 영적인 것은 모든 것이 담겨 있는데도 그게 이해가 안 되는 겁니다. 그런데도 교회조차도 이것이 이해가 안 된다. 우리 하나님이 답답해 할 것 아닙니까! 왜? 모든 것을 거기에 다 감추어 놓았는데 이게 이해가 안 되니까 메시지 들어도 이해가 안되니까 전혀 엉뚱한 대답을 합니다. 이 사실이 오늘 우리가 정말로 붙잡아야 됩니다.
이러니까 문제가 오는 것이 뭐냐하면 영적으로 오는, 여러 가지 이 영적으로 오는 여러 가지 문제가, 제일 문제가 산적해집니다. 점점, 점점 더 쌓여갑니다. 예를 들어서 개인적인 영적 문제기 해결이 안됩니다. 노력하고 애쓰고 아무리 한다해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왜? 여러분 영적 문제라는 것은 그 배경이 흑암에 배경 아닙니까! 다시 말해서 창세기 3장에 배경입니다. 창세기 3장에 문제가 전혀 그게 안되니까, 개인적인 문제가 전혀 해결이 안되죠. 개인적인 문제가 안되니, 뭐가 안 되느냐? 사회와 가정문제는 점점 문제가 옵니다. 여러분 교회 안에도 엄청난 가정문제가 오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그냥 넘겨버릴 수가 없습니다.
그 다음에 이런 과정에서 발전되고 좋은 세상이 오면 올수록 창11장입니다. 결국 사회가 점점 더 깨어집니다. 요즘 살기 나쁜 세상이라서 세상이 혼란스럽습니까? 안 그럽니다. 점점, 점점 세상은 살기 좋습니다. 그러나 점점 세상은 더 깨어집니다. 더 어려워 지게되고, 더 문제가 생기게 되죠. 이런 배경들은 아무리 애를 써도 율법주의 속에서는, 율법으로는, 인간의 행위로는, 노력으로는 애쓴 것을 통해서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해결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노력하고 애쓰면 애쓸수록 더 큰 문제가 올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율법주의가 성공을 하면 다음과 같은 문제가 오히려 더 생겨요. 그게 뭐냐하면 자기 자신의 의가 드러나니까, 자꾸 자기거든요. 그래서 여러분 전도를 많이 하고, 전도에 열심을 내고 하는 중에서 자기도 모르게 '내다!' 라는 마음이 나오면 죽는 줄 알아야 합니다. 전도 백 번, 천 번 한다! 그래도 벌써 열매가 나올 수 없어요. 왜? 그 배경이 영적인 배경이 안 되어요. 여러분 영적 배경이 된다는 것이 쉽습니다. 너무 쉽습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만 되면 되요. 그런데 이게 안됩니다.
내가 사는 것은 예수를 믿는 믿음! 그것 때문에 살고 있는데, 나는 벌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함께 죽어버렸는데, 그런데 시퍼런 시체가 자꾸 자꾸 일어납니다. 조금만 문제 생기면 벌떡 일어나고... 여러분 제가 늘 그런 표현 안 했습니까! 시체가 누웠다가 일어난다 다! 놀라합니다. 울고불고 앉아서, 뭐 남편, 아내, 혹은 자식들이, 앉았다가 벌떡 일어났다! 놀라 가지고 다시는 내 옆에 안 옵니다. 그런데 그런 광경을 한번 생각을 해 보세요. 시퍼렇게 죽어 있어야 되는 저희들이, 순간, 순간 혈기도 나오고, 순간, 순간 시기도 나오고, 순간, 순간... 그래서 누웠다가 벌떡벌떡 일어나도 안 놀랍니다. 왜? 워낙 자주 해 놓으니까!
율법주의가 육적인 것에 성공하고, 잘하면 할수록 자기 의가 자꾸 일어나게 됩니다. 자기 의가 자꾸 드러나게 됩니다. 그러면서 구원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집니다. 개인과 가정 영적인 문제 해결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집니다. 그래서 인간의 의나 인간의 것이 드러나면, 결국은 뭐에 빠집니까? 사단이 가장 좋아하는 교만에 홀딱 빠져 버립니다. 그러면 모든 했던 일들은 전부 수포로 다 돌아갑니다. 교회 안에서 아무리 잘했다! 그래도 교만에 빠져 버리면, 그것은 사단의 완전한 통로가 열러 버립니다. 이 사실을 참으로 바로 붙잡아야 됩니다.
그 다음에 중요한 것은 뭐냐하면, 하나 더 있습니다. 신비주의에 빠져버립니다! 신비가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있어요. 성경에 방언도 있고, 예언도 있고, 다 있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하고, 진실하고, 다 있습니다. 우리가 옛날에 다 안 겪어봤습니까! 어디 신비할 때에 정말 거짓말 한 게 있습니까! 얼마나 기도도 진실하게 했습니까! 암만 추워도 겨울에 산에 올라가 가지고... 겨울에 암만 추워도 안 추운 방법이 있어요. 어떻게? 옷을 몇 겹 입고 비닐포대 덮어 써버리면 돼요. 그러면 조금만 하면 땀납니다. 한번 넘어지면 일어나기 힘들어서 그렇지... 상거지가 되어서 안 다녔습니까! 진실하고, 정말 하나님 앞에 메어 달리고, 정말 기도하고 믿습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해결 안 되는 것이 있어요. 그게 뭡니까? 개인의 영적 문제와 가정에 영적 문제와 자신의 영적 문제는, 신비하면 할수록, 노력하면 할수록 점점 더 첨가됩니다. 그러니까 1시간 기도한 사람은 2시간 기도해야 되고, 2시간 기도한 사람은 3시간 해야되고, 여러분 기도하면 기도할수록 감사하고 만족해야 되는데 이상합니다. 옛날에 안 그래봤습니까! 기도하면 할수록 맨 날 기도가 부족해서 그럽니다. 저는 하루종일 기도하면서도 기도가 부족해 가지고 또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많이 봤어요. 영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왜, 그렇게 되느냐? 중요한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 정말 영적인 이 복음, 이 비밀이 확인되는 만큼 누릴 수 있는데, 이것이 확인이 안된 상황에서 진실하니까, 막 노력하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확인이 안된 상황에서 체험해 버렸어요.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누리는 것으로, 복음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체험 속으로 빠져 버립니다. 신비는 복음을 향해서 다름 박질 하다가 다른 데로 세어버렸어요. 그러니 이건 삼천포로 세어버렸습니다. 삼천포로 세는 것이 이게 신비주의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되면요. 점점 노력할수록 다른 것으로 빠지게 되는 이런 문제가 생기게 되어 있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여러분 정말 오늘 예수 그리스도 영적인 역사가 이해가 안된 제자들에게 별것 아닌 것처럼 보였는데, 엄청난 문제가 생겼습니다. 여러분 오늘 예수를 믿고 교회 앞에 앉았지만, 오늘 이 시간 강단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강단의 말씀으로 내게 사실로 부닥쳐 오지 않고, 내게 살아있는 말씀으로 오지 않는다! 여러분 영적인 병이 들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하나님의 뜻과 계획과는 떠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통해서 살아갈 수 있는 구체적인 힘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러니 간단합니다. 왜 그러냐? 한번 살펴봐야 합니다. 나도 모르게 내 생각과 의식이 율법에 체질이 되어 있습니다. 완전히 찌들려 있습니다. 사람만 보면 잘 잘못부터 먼저 따지고, 그리고 혹시 영적인 것으로 느껴졌는데도 신비는 영적인 것이 아닙니다. 신비에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육적으로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욕심과 정욕으로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예수 그리스도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정말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 왕으로, 제사장으로, 선지자로 오신 그 분이 나의 모든 것, 모든 문제를 해결하셨다! 진짜 그 말이 힘이 됩니다. 그 말이 정말 내게 생명과 능력이 됩니까! 그 순간부터 여러분에게는 영적인 역사가 열려지는데, 성령이 인도하십니다. 내 생각과 내 뜻이 다 접혀지게 되고, 어떤 사건과 일들을 만나든지 '그리스도! 그리스도!' 바로 그 그리스도 한마다 한마디 속에 나도 모르게 내 생각과 마음이 달라지게 됩니다. 성령이 여러분과 저를 인도하시는 구체적인 사실이 날마다 체험될 것입니다.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서론
제자들이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는 도중에 하나님의 역사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변론에 마음을 두다보니 먹을 것을 챙기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하시자, 제자들은 먹을 것에 대해서 걱정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먹을 것을 걱정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성경은 "평안"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신앙의 중요한 원리를 발견해야 합니다.
● 본론
1. 의식주에 대해서 걱정을 할 때 중요한 문제가 생깁니다.
(1)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
(2) 육적인 것에 매여서 영적인 것을 보지 못하게 됩니다.
(3)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생명이요, 모든 문제의 해결자라는 영적 비밀을 확인하는 만큼 세상적인 정욕으로부터 해방받을 수 있습니다.
(4) 영적인 역사에 눈이 열리게 되면, 그 안에 모든 것이 있습니다.(마6:30)
2. 믿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1) 성경을 읽고 설교를 들어도 육적인 것에 매여 있는 동안에는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2) 영적으로 눈이 열리기 위해서는 조금이라도 체험이 있으면 도움이 됩니다.
(3)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알고 계시며 허락해 주신다는 사실을 믿으십시오.
(4) 영적 문제가 해결되면 나머지 다른 모든 문제들은 그 안에서 해결됩니다.
(5)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에 대한 영적 눈이 열려야 염려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3. 모든 것을 '그리스도'를 통해서 바라보는 시각이 열릴 때 성령의 인도를 받습니다.
(1) 육신을 가지고 세상에서 살아가지만 성령의 인도를 받을 때 영의 사람이 됩니다.
(2) 영의 사람은 순간순간마다 아버지의 뜻대로 되어지기를 기도하게 됩니다.
(3) 이렇게 되지 않을 때,
① 율법주의로 떨어져서 영적인 것의 중요성을 놓치게 됩니다.
● 개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가정과 사회에 문제가 쌓여갑니다.
● 예수님이 뒤로 밀려나고 내가 일어나게 되어 교만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② 신비주의로 떨어져서 개인과 가정의 영적 문제가 더욱 쌓여갑니다.
● 예수 그리스도보다도 체험 속으로 빠져버리기 때문입니다.
● 결론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모든 문제들을 보고,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영적인 삶을 살아갑시다.
● 기도제목
나의 영적인 눈을 열어 주시고, 믿음을 허락해 주셔서,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살게 하옵소서.
(마 16:6)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신대
(마 16:7) 제자들이 서로 의논하여 가로되 우리가 떡을 가져 오지 아니하였도다 하거늘
(마 16:8) 예수께서 아시고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들아 어찌 떡이 없음으로 서로 의논하느냐
(마 16:9)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바구니며
(마 16:10) 떡 일곱 개로 사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광주리이던 것을 기억지 못하느냐
(마 16:11) 어찌 내 말한 것이 떡에 관함이 아닌 줄을 깨닫지 못하느냐 오직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마 16:12) 그제야 제자들이 떡의 누룩이 아니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을 삼가라고 말씀하신 줄을 깨달으니라
오늘 본문말씀에서 삼가 주의하라 그렇게 제목을 삼았습니다. 6절 말씀에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중간에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은 빼고, '삼가 주의하라!' 그렇게 제목을 잡았습니다. 주의하라는 배경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누룩입니다. 이것이 얼른 보면 간단하게 말할 수 있는 이야기일수 있으나, 굉장히 여러분과 제게 오늘 의미를 갖고 붙잡아야 되겠습니다. 쉽게 말해서 이 경우는 배를 타고 지금 건너편으로 가는 과정에서, 뭐 제자들이 건너편으로 가는 과정! 배를 타고 건너가면 가서 먹을 수 있는 양식들을 사전에 아마 준비도 하고, 그렇게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마 까마득히 너무 하나님의 역사를 보고, 또 그렇게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과 변론한 것에 정신을 팔다 보니까, 그런 것들을 몽땅 잊어버리고 빈손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막상 정신을 차리고 나니까, 양식 준비를 하나도 안 했습니다. 그러니 걱정이 될 수밖에 없죠. 그런 걱정을 하고 있는 차에, 예수님께서 '떡이 있느냐?' 물으시고, 이러니까! 우리가 떡을 가지고 오지 않고, 양식을 준비해 오지 않고, 가져오지 않았으므로 그걸 알고 예수님께서 책망을 하시는가 보다! 그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먹을 것이 없다! 그러면 걱정해 야죠. 내일 먹을 것이 없는데, 아무렇지도 않다! 그것은 이상하죠. 오히려 그것은 정신문제가 있던지, 바보든지, 축구든지, 그렇게 되어야 되는데...
그런데 이 성경에서는 오히려 반대예요. 내일 먹을 것이 없는데도 평안해야 돼요. 그게 성경에 지금 쭉, 지금 설교를 하고 있는 배경입니다. 이게 정상적으로는 보면 먹을 것이 없다! 염려를 하고 그래야 되는데, 이게 평안해야 되고, 또 아무렇지도 않아야 됩니다. 그래서 오늘 언뜻 보면 그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속에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 이런 문제를 보면서 아주 중요한 그런 신앙의 원리가 여기서 회복되고 있습니다. 이걸 바로 붙잡게 되면 정말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원하시는 바가 뭔가를 볼 수가 있습니다. 당연한 일인데도, 그렇게 당연한 걱정인데도, 그 걱정한다는 사실이 오히려 그 예수님께는 이상하게 보여지고 있다는 것을 여기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뭐냐하면, 그렇게 빠지게 될 때에 오는 큰 문제가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전혀 제자들이 이해가 안 되는 겁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내일 먹을 것이 없는데, '염려스럽다!' 그래야 정상인데, 오히려 그게, 그렇게 빠지게 된 순간에 예수님이 하신 이야기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예수님의 의도를 전혀 제자들이 이해를 못하게 되는 그런 문제가 생겨졌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이것을 가지고, '영적인 역사!'라 그랬습니다. 제자들은 육적인 것에 눈이 밝아 있고, 걸핏하면 육적으로 마음이, 생각이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육적으로 생각하고, 육적으로 눈이 돌아가고, 육적으로 마음이 돌아가고, 육적으로 생각이 돌아가는 그것을 오히려 책망했습니다. 그리고 육적으로 돌아가는 동안에는, 제자들에게서 예수님의 마음과, 뜻과, 예수님의 계획을 전혀 발견하지 못하는 그런 문제에 빠졌다는 사실을 오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단순히 먹고 마시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제자들이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알지 못했다는 것에 대해서 중요한 오늘 핵을 좀 붙잡아야 되겠습니다. 영적이라고 하는 것은, 한 마디로 말해서 비밀입니다.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계속해서 오는 말씀이 뭐냐? 비밀! 그 비밀은 누구입니까? 그리스도입니다. 받아합시다. "그리스도는 나의 생명이다!" 비밀입니다. '그리스도는 나의 힘이다!' 비밀입니다. 이것은 아무나 깨닫고, 아무나 느끼고, 아무나 붙잡을 수 없는 그런 내용입니다.
여러분들이 이것이 안되어 있다! 그러면 우리는 걸핏하면 어디로 빠지느냐? 육적으로 돌아갑니다. 걸핏하면 보이는 것으로 빠집니다. 걸핏하면 세상으로 빠집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생명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문제 해결 자다! 이 사실이 확인되는 만큼 뭐가 오느냐하면, 세상 적인, 육 적인, 이 정욕 적인 것에서부터 해방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 쉽게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내 모든 문제 해결 자다! 영적인 역사가 누려지는 만큼, 예수 그리스도 그 한 분으로 모든 문제 해결자라는 사실 속에 다 포함이 되어 있는 겁니다. 한번 받아합시다. "예수님은 모든 문제 해결자시다!" 믿습니까? 그런데 왜 해결이 안됩니까! 이 전혀 이게 안되거든요. 그리고 '그런데 왜 성령이 누려지지 않습니까!' 말은 그렇게 하고있지만, 여러분들 생각과 마음이 전혀 다른 반대 방향으로 나가고 있기 때문인 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6장 30절에 보면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한번 받아합시다. "사람이 영적인 역사에 눈이 열리게 되면 그 안에 다 있다!" 지난주에도 제가 말씀을 했죠. 예수 믿으면 믿음 회복한다는 것은 바로 이 부분입니다. 예수 믿으면 먹는 게 나오냐? 먹는 게 나온다! 그랬어요. 성경이 오늘 분명히 안 그랬습니까! 이 말씀 속에서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뭐가 없어요? 믿음이 없어요. 예수 믿는 사람들이 같이 육신적인 일에, 육신적인 역사와 육신적인 염려 속에, 안 믿는 사람과 별 다름없이 빠져들어 갑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계획을 성경을 백 번, 천 번 읽어도 와 닿지를 않습니다. 오늘 성경을 통해서 설교 말씀을 들어도, 그 설교가 내게 제목이 되어 한 주간에 기도제목이 나오지 않습니다. 왜? 전혀 뜻이 다른데 있는데... 예수님 말씀을 제자들이 전혀 이해를 못했습니다. 왜? 육적으로 있는 동안에는 말씀이 이해가 안 되는 겁니다. 방향이 안 되는 거죠. 그래서 류 목사님이 계속해서 강조하는 배경 속에서 뭐냐하면, 성경 말씀은 분명히 말씀입니다! 다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 말씀이 오늘 내게, 강단을 통해서 무슨 말씀으로 임했느냐? 이것을 붙잡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게 안 들려지면 말씀은 맨 날 말씀으로 따로 있고, 나와 말씀은 상관이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강단에서 말씀을 듣고, 말씀을 깨닫는다는 것! 이것은 엄청난 축복과 은혜입니다. 이게 안되면 신앙생활이라는 자체가 첫 번부터 안 되는 겁니다.
그게 왜 안 되느냐? 영적으로 눈이 안 열렸다! 이겁니다. 말하자면, '그리스도는 나의 생명이다!' 아닙니다. '그리스도는 나의 모든 문제 해결 자다!' 아닙니다. 해결 자는 무슨 해결 자야! 오히려 '그리스도 모든 문제 해결 자다!' 귀찮게 되거든요. 그래서 여기에 조금만이라도 체험이 필요하다! 왜? 너무 체험이 안 되니까! 사실로 믿어질 수 없어요. 그래서 하다 못해 '예수 그리스도!' 부르다가 감기라도 나아야 눈이 번쩍 뜨이는데, 이것조차도 안되니까! 전혀...
그러니까 뭐가 되느냐? 기도도 안되고, 뭐든지 그저 안 믿는 사람과 똑같은 그런 배경에서 살아가려고 하니까, 믿는다는 것이 점점,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붙잡아야 됩니다. 31절에 보면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 보세요. 우리가 보면요. 너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또 성경에 해 놓았어요. 아니 먹을 것이 없는데, 염려해야지! 아니 입을 것이 없는데, 얼마나 신경이 쓰입니까!
저는 그 아마 성격상 좀 소심한 것도 있고, 또 성격상 어떤 것이 있느냐 하면, 뭐랄까 까다로운 성격이 좀 있었는 것 같아요. 특별히 그 학교 다닐 때에 느끼는 것은, 뭔가 이 양말에 구멍이 나도 굉장히 신경이 쓰이더라 구요. 특별히 여학생들 앞에 있으면요. 아니, 딛고 있으면 발바닥 있는데 보입니까! 그런데도 신경이 그렇게 쓰이고, 어떻게 이제 스봉이... 스봉이라는 것은 옛날 많이 쓰던 이야기입니다. 바지가 뭐 조금 찢어지거나, 조금 뭐 이상하면 그때는 이것을 그냥 새것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막 박아서 섰어요. 그러면 괜히 다른 사람이 누가 봅니까! 그것만 쳐다보는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이 굉장히 신경이 쓰여지더라 구요.
무슨 말씀이냐? 여러분 적은 것도 조금만 내게 어떤 면에서 거리끼는 것이 있다 그러면 염려가 되는데, 당장 내일 굶는다! 염려가 안될 수가 없잖아요. 그런데 성경이 뭐라 그러느냐? '염려하지 마라!' 그랬습니다. 그래서 6장 30절 보면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왜, 염려를 하지 말아야 됩니까? 영적인 눈이 열려버리면 다 해결돼요. 누가 먹이고 입이십니까? 하나님이 먹이고 입히시는데, 하물며 뭐라 그랬어요. '너희일까 보냐! 하나님의 자녀들인 너희일까 보냐!' 이 말이 암만 말해도 이해가 안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은 하는데, 사실이 안 믿어지거든요.
여러분들이 지금현재 아무데나 던져놓아도 염려할 일이 없어요. 내일 먹을 것이 없다! 괜찮아요. 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뭐라 그랬느냐 하면요. '너희가 악할지라도 자녀에게' 뭘 줍니까? '좋은 것을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나님이 커다란 축복과 선물... 뭘 안 줍니까? 성령으로 여러분과 저를 인도하시는 사실적인 역사가 왜 안 믿어지느냐? 역설적으로 이렇게 성경은 많이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게 이해가 안되어요. 이해가 될 수 없어요. 주일날 한 주간 동안 열심히 일하고 오면, 이상하게 주일교회 문만 딱 열고 앉기만 해도 얼마나 포근한지, 그저 눈을 내리 감고 아무리 해도, '여기가 좋사오니...' 베개 같다 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영적인 메시지가 들어가지가 않습니다. 왜냐? 실제로 안 믿어요. 여러분 사실적으로, '지금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신다!' 이게 되면 한마디도 놓쳐지지가 않죠. 하나님께서 오늘도 여러분과 제게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구체적으로 들풀도 먹이고 입히시는 하나님이, 참새들도 먹이고 입히시는 하나님! 여러분과 이 사실을 구체적으로 오늘도 필요한 말씀을 주시고 이끌어 가실 것입니다. 붙잡으면 돼요. 믿음으로 이 사실을 바로 붙잡으라고 그랬습니다.
그리고 만약에 이런 것들로 염려하게 된 배경은 뭐냐? 6장 32절에 보면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이미 다 아신다! 그랬습니다. 늘 그런 말씀 안 합니까! 세 살배기가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엄마, 오늘 뭐로 밥하지, 쌀도 없는 것 같은데... 뭐로 밥하지!' 이러면 애는 정신병원에 가야 합니다. 부모가 다 알아서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 걱정할 일이 없는데도 찾아가며 합니다. 이것을 하지 마라! 그러면 팔자라고 합니다. 이 병이 안 고쳐져요. 백 번, 천 번해도 안 고쳐집니다.
그래서 6장 33절에 뭐라 그랬느냐 하면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할렐루야! 영적 문제가 해결되었다. '걱정하지 마라! 다 갖다 붙여주마! 그 위에 다 부어주마!' 그래서 다시 한번 오늘 받아합시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신 사실이 확인되는 만큼 먹고사는 것 걱정 없다!" 진짜입니까! 이게 믿어집니까! 이게 와져야 됩니다. 성경에 그렇게 말씀했어요. 내가 참 복음을 바로 깨닫고 나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에게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시리라!' 이 사실을 성경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염려해야 할 것을 가지고 있음에도 염려하지 않는 것이 영적인 삶에 눈입니다. 그것도 억지로 하려고 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왜? 저는 늘 그 그런 생각을 가끔해 봐요. 홍해 앞에서 애굽 군인들이 따라오고 홍해는 넘실거리고 있는데, 지금 죽음 직전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만히 있을 수가 있느냐? 절대로 없습니다. 영적 눈이 안 열려지면요, 염려 안하고 편안히 가만히 있으려고 그래도 안 되게 되어 있어요. 있다 하는 것은 기적입니다.
베드로가 내일 사형 틀에서 죽음 직전에, 그 날 밤에 아무런 염려 없이 너무 너무 깊이 잠들었다! 이건 이해가 안 되는 겁니다. 잠이 안 와 야죠. 여러분 걱정되면 잠 안 와요. 잠이 올 수가 있습니까! 그런데 얼마나 깊이 잠들었느냐 천사가 와서 흔들어도 못 일어나니까! 천사가 발길로 집어 차버렸어요. 그래서 너무 놀라 가지고 벌떡 일어나니까, 밑에 바지가 다 내려가 버렸어요. 왜 그러느냐? 혹시 감옥에 들어가면 목을 맨다든지 이런 게 있을까 싶어서 끈을 다 회수해 버립니다. 그런데 너무, 하도 안 일어나 나니까! 천사가 발길로 차버렸어요. 얼마나 깊이 잠이 들었습니까! 그 말이 무슨 말입니까? 걱정이 없어요. 염려가 없어요.
여러분들이 정말 말세가 될수록 참 하나님 앞에 참 복음 붙잡고 영적인 눈이 안 열리면 예수 믿는다는 것! 고통입니다. 점점, 점점 고통입니다. 그러나 참 복음 붙잡고 예수 그리스도 나의 생명이다! 나의 힘이시다! 사실적으로 붙잡고 있으면 고통은커녕 순간, 순간 힘이 됩니다. 기쁨이 됩니다. 받아합시다. "예수님은 나의 소망! 예수님은 나의 기쁨! 예수님은 나의 감격!" 믿습니까! 이렇게 되면 입술이 벌써 달라야 되는데, 멍청하게 '나의 감격...' 이 비밀을 깨달으면 다른 것은 따라온다고 하신 말씀! 성경은 그래서 이것을 가지고 '비밀이라!' 그랬습니다.
요즘 메시지 속에서도 '비밀을 깨닫는다!' 다입니다. 그 속에 모든 것이 다 들어 있습니다. 어떻게 이 비밀을 깨닫습니까? 성경은 간단히 말하고 있어요. 이게 안 되었으면, 요한 복음 1장 12절 한번 다시 여러분 마음에 새겨 보세요.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이미 여러분과 제게,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역사가 임하게 되었다! 이겁니다. 그때부터 영적이다! 영적이라는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 육신의 생각과 이성에 의해서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과 저를 누가 인도합니까? 성령으로 인도하십니다. 여러분은 성령의 인도 받는 영적인 사람입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에 말씀이죠. 이때부터 모든 바라보는 시각이 그리스도라는 말이 통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말로 아니고 바라보는 모든 사건들마다 뭐로 통해서? 그리스도로 통해서 보게 되어있습니다. 그리스도 통해서 이해가 되게 되어 있습니다. 이때부터 그리스도 통해서, 그리스도 통한 시각이 되는 그 순간부터 누구의 인도를 받습니까? 성령의 인도를 받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영이 있는 사람이요. 영적인 사람이요. 육신적인 사람과는 다르다! 그런 말입니다.
여러분이 육신을 갖고 땅에 발을 띧고 살지만 영의 사람이요, 영의 인도를 받는 사람이다. 그래서 영적인 사람이다! 하나님의 생명이 들어왔다! 영의 사람입니다. 여러분 똑같이 말하는 것 같아도, 똑같이 발을 땅에 딛고 살지만, 똑같이 밥 먹고살지만, 하나님께서 말씀합니다. '너는 내 아들이다!' 영의 사람입니다. 그 다음에 그때부터 여러분 한가지 다른 게 뭐? 순간 순간마다 기도합니다. '하나님 어떻게 이 일을 해결합니까! 어떻게 이 일을 처리해 나갑니까!'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이게 나오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안 되었을 때에 크게 다음에 보편적으로 떨어지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제자들도 떨어지는 부분이 바로 이런 부분이에요. 그것이 뭐냐하면 첫 번째로 떨어지는 것이 율법주의라는 말입니다. 늘 우리가 율법주의, 율법주의 안 그럽니까! 율법주의라고 하는 것은, 이것은 인간의 본성입니다. 타락의 본성입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떠나는 순간부터 뭔가 바르게 산 것 같고, 진실하게 사는 것 같아도, '진실하다! 바르다!' 그게 아닙니다. 그 배경이 다른 것이 나와버려요. 그래서 여러분들 늘 그런 말을 합니다. 정신문제에 빠지게 되면 아주 뭐가 되느냐? 율법적이 됩니다. 정신문제에 빠지게 되면요. '옛날에 누가 잘했다, 못했다!' 이게 잘 기억이 나고요. 뭔가 일이나 사건에 부닥쳤을 때에... 그래서 자꾸 눌립니다. 자기의 잘못을 자꾸 자책 하구요.
그래서 어떤 면에서 여러분들이 '내가 너무 잘못했다! 내가 잘못했다! 내가 잘못했다!' 이것도 영적 문제입니다. '잘못 한 것 어쩌란 말입니까! 원래 그렇게 생겨먹었는데 어쩌란 말입니까!'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될 것 아닙니까! 자기 잘못했다고 자꾸 자책하고, 이게 벌써 영적 문제거든요. 그래서 이런 면에서 나도 모르게 자기도 모르게...
그래서 성경이 뭐라 그랬느냐하면요. 고린도 후서 3장 6절에 보면, "저가 또 우리로 새 언약의 일군 되기에 만족케 하셨으니" 새 언약이 뭡니까? 새 언약이 누구입니까?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새 언약의 일군 되기에 만족케 하셨으니 의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의문은 뭡니까? 율법을 말합니다. "오직 영으로 함이니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 쉽게 말해서 율법주의, 율법 속에 있는 한 죽음입니다. 그것은 생명이 아니라 그랬습니다. 반드시 여기서 해방 받아 야죠.
그래서 고린도 후서 3장 7절에 보면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의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을 인하여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그런데 사람들이 참 이상한 것은, 율법적인 직분에 훨씬 비중을 더 두었습니다. 이게 교회의 역사입니다. 이게 바꾸어 져야 되거든요. 고린도 후서 3장 8절에 말합니다. "하물며 영의 직분이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할렐루야! 교회에서 임직 받고 교회에서 직분 받았다! 그것은 별것 아닌 것처럼 생각합니다. 옛날 제사장 직분이다! 엄청납니다.
지금 현재 바울이 뭐라고 말합니까? 제사장 직분과 비길 수 없는 영광의 직분 뭡니까? 여러분과 제가 받은, 복음을 통해서 받은 이 직분입니다. 이 직분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그래서 조금 마음에 아이구 목사님이 연말 되니까, 또 작정하셨구나! 싶을지 모르지만 이것은 이 나올 때에 한번도 생각을 안 했는데, 생각이 떠올라요. 집사 한번 받았다! 기도 당번 되면 기도를 왜 안하고 도망갑니까? 세상에 이 생각 자체가 벌써 영적인 것과는 너무 거리가 멉니다. 이 도저히 이해가 안되어요.
그래서 어떻게 했느냐? 수요일 날은 하도 일반 평신도들이 기도하러 안 오니까! '수요일 날은 권찰님들만 세우자!' 권찰들은 오니까! 그 다음에 '권사님들을 세우자!' 앞으로 여러분 집사들은 기도한번 못합니다. 잘하는 집사가 다 망쳐놓았어요. 한번 축복 받을 수 있는 귀중한 기회, 이 엄청난 역사인데, 영광의 직분인데 다 도망쳐버렸습니다. 상당히 재미있는 표현을 안 들었습니까! 주보를 딱 보고는, '다음 수요일 날 기도가 누구냐? 아이고 나구나! 오늘 주보 안 봤으면 큰일 날 뻔했네!' 안 되면 적어서라도 와서 읽어요. 이 영광의 축복이 아무나 돌아갑니까! 그래놓고는 송현 교회 집사가 아니라고 하면 속상하죠. 집사 안 불러주면, '집사 떨어졌다!' 그래가지고 삐쳐서 나오지도 않고... 물론 안 그런 사람은 안 그렇다고 치고라도, 우선 안 그렇다고 할 수 없는 이유가 거의 안 나와요. 어쨌든...
잘 알아 들어야합니다. 영광의 직분 엄청난 축복과 은혜의 직분 영적인 눈이 안 열리니까, 모르는 겁니다. 내가 왜 받았는지, 받은 게 귀중한 줄도 모르고, 그러니 여러분 예수 믿는다! 이 참 겁쟁이가 됩니다. '예수 믿고 복 안 준다!' 그러면, '성경은 전부 복 준다!' 그랬는데, 내게 은혜 주신다 그랬는데, 은혜 주실 수 있는 수준이 안되어 있는데, 은혜 주었다! 오히려 망칠 건데, 그러니까 한번 받아합시다. "망하는 것이 당연하다!" 싫지요. 이렇게 말하면 여러분 집에 가서 가만히 천장을 바라보고, '주여, 망하는 것이 당연하네요...' 이렇게 꼬락서니라도 알아야 안됩니까! 본인 꼬락서니라도...
그래서 주일날 저녁에는 어떻게 하느냐? 주일날 저녁에는 돌아가면 안되니까! 안수 집사님들만 주일날 저녁에 세워야 되겠다. 자꾸 빠지니까! 이건 이상하더라 구요. 아무 게 집사님 그러고 보면 사람이 없어요. 어디 갔는지 없어요. 그 다음에는 와도 기도시간 딱 지나고 난 후에 늦게 중간에 들어옵니다. 하여튼 사람 머리가 비상하게 돌아갑니다. 육적으로 돌아가는데는 감당을 못해요.
여러분 오늘 조금 붙들어야 됩니다. 의문에 죽은 직분도 영광스러운 직분입니다. 모세의 얼굴에 광채가 나고 그랬는데,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기 때문에 무시합니까? 영적인 직분 굉장히 큰 축복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성가대로 서울에 올라가니까, 참 모두 부러워하더라 구요. 왜 부러워하느냐? 노인들만 앉아도 부러워하더라 구요. 나이가 많거든, 비교적... 그런데 다른 데는 거의 뭐 결혼전이고, 젊은 사람이고 그렇더라 구요. 그러니까 뭐라 그러느냐 하면, '연세가 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으니까 뭔가 성가대가 아주 안정된 것 같고 든든하다!'
그러니 이제 연세 많은 사람들이 앉은 이유가 있어요. 젊은 사람 앉혀 놓으면 잘 나오지를 않아요. 뭐 노래는 잘 부를지 몰라도 왔다갔다하니까 아예 아마... 이래서 점점, 점점 성가대 자리를 잘 차지하는 이런 분들이 앉고 이러다 보니까! 우리 권사님도 계시고, 장로님도 계시고 안 그럽니까! 제가 그래도 나이가 많아요. 그렇지만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노래는 안 늙습니다. 제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 여러분이 지금 현재 하나님이 주신 교회의 직분이나 교회의 사명에 대해서 너무 무시를 합니다. 무시하는 그 자체가 뭐냐? 영적인 것이 안 열린다! 이겁니다.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과 마찬가지거든요.
연말 되니까! 그래서 우리가 주의해야 됩니다. 정말 여기에 조금만 우리가 눈이 열리면 하나님이 그 속에 모든 것 다 비밀로 감추어 놓았다. 그랬는데 이 상태가 안된 상황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비밀을 우리가 누리겠느냐? 이 사실을 좀 붙잡아야 되겠습니다. 물론 여러분 아셔야 합니다. 율법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율법도 하나님이 주신 선한 것이라 그랬습니다. 율법 속에 규모도 있습니다. 율법 속에 도덕도 있습니다. 율법 속에 예절도 있습니다. 당연합니다.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도 율법 속에 뭐가 나오느냐? 종교성도 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의 성공도, 혹은 많은 어떤 종교적인 단체가 성공하는 것도 역시 율법에 중요한 장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도 모르게 육 적으로 빠져 들어간 율법주의 속에서는 엄청난 단점이 있습니다. 그 말이 무슨 말이냐? 아무리 노력하고, 아무리 애를 써도 내 행위로, 내 노력으로 구원 못 받습니다. 여러분 아무리 지금, 아마 박 목사가 1년만 우리 교회에서, 매주 우리 교회에서 전체가 '국수 삶아 주자! 독고 노인들 국수 삶아 주자!' 1년만 했다! 당장 TV나옵니다. 아니 나 혼자 그냥 송현 교회 박 목사가 3년만, 3년까지 갈 것도 없어요. 1년만 담배꽁초 주으러 계속해서 왔다 갔다 했다! 대번 TV에 나옵니다. 담배꽁초 줍는 꼬락서니 찍고... 이게 세상입니다. 그러니 율법배경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무수한 사람이 평안과 안식을 얻게 했다. 이건 모릅니다. 왜? 영적인 것을 그들이 알 수가 없어요. 영적인 것은 모든 것이 담겨 있는데도 그게 이해가 안 되는 겁니다. 그런데도 교회조차도 이것이 이해가 안 된다. 우리 하나님이 답답해 할 것 아닙니까! 왜? 모든 것을 거기에 다 감추어 놓았는데 이게 이해가 안 되니까 메시지 들어도 이해가 안되니까 전혀 엉뚱한 대답을 합니다. 이 사실이 오늘 우리가 정말로 붙잡아야 됩니다.
이러니까 문제가 오는 것이 뭐냐하면 영적으로 오는, 여러 가지 이 영적으로 오는 여러 가지 문제가, 제일 문제가 산적해집니다. 점점, 점점 더 쌓여갑니다. 예를 들어서 개인적인 영적 문제기 해결이 안됩니다. 노력하고 애쓰고 아무리 한다해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왜? 여러분 영적 문제라는 것은 그 배경이 흑암에 배경 아닙니까! 다시 말해서 창세기 3장에 배경입니다. 창세기 3장에 문제가 전혀 그게 안되니까, 개인적인 문제가 전혀 해결이 안되죠. 개인적인 문제가 안되니, 뭐가 안 되느냐? 사회와 가정문제는 점점 문제가 옵니다. 여러분 교회 안에도 엄청난 가정문제가 오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그냥 넘겨버릴 수가 없습니다.
그 다음에 이런 과정에서 발전되고 좋은 세상이 오면 올수록 창11장입니다. 결국 사회가 점점 더 깨어집니다. 요즘 살기 나쁜 세상이라서 세상이 혼란스럽습니까? 안 그럽니다. 점점, 점점 세상은 살기 좋습니다. 그러나 점점 세상은 더 깨어집니다. 더 어려워 지게되고, 더 문제가 생기게 되죠. 이런 배경들은 아무리 애를 써도 율법주의 속에서는, 율법으로는, 인간의 행위로는, 노력으로는 애쓴 것을 통해서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해결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노력하고 애쓰면 애쓸수록 더 큰 문제가 올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율법주의가 성공을 하면 다음과 같은 문제가 오히려 더 생겨요. 그게 뭐냐하면 자기 자신의 의가 드러나니까, 자꾸 자기거든요. 그래서 여러분 전도를 많이 하고, 전도에 열심을 내고 하는 중에서 자기도 모르게 '내다!' 라는 마음이 나오면 죽는 줄 알아야 합니다. 전도 백 번, 천 번 한다! 그래도 벌써 열매가 나올 수 없어요. 왜? 그 배경이 영적인 배경이 안 되어요. 여러분 영적 배경이 된다는 것이 쉽습니다. 너무 쉽습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만 되면 되요. 그런데 이게 안됩니다.
내가 사는 것은 예수를 믿는 믿음! 그것 때문에 살고 있는데, 나는 벌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함께 죽어버렸는데, 그런데 시퍼런 시체가 자꾸 자꾸 일어납니다. 조금만 문제 생기면 벌떡 일어나고... 여러분 제가 늘 그런 표현 안 했습니까! 시체가 누웠다가 일어난다 다! 놀라합니다. 울고불고 앉아서, 뭐 남편, 아내, 혹은 자식들이, 앉았다가 벌떡 일어났다! 놀라 가지고 다시는 내 옆에 안 옵니다. 그런데 그런 광경을 한번 생각을 해 보세요. 시퍼렇게 죽어 있어야 되는 저희들이, 순간, 순간 혈기도 나오고, 순간, 순간 시기도 나오고, 순간, 순간... 그래서 누웠다가 벌떡벌떡 일어나도 안 놀랍니다. 왜? 워낙 자주 해 놓으니까!
율법주의가 육적인 것에 성공하고, 잘하면 할수록 자기 의가 자꾸 일어나게 됩니다. 자기 의가 자꾸 드러나게 됩니다. 그러면서 구원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집니다. 개인과 가정 영적인 문제 해결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집니다. 그래서 인간의 의나 인간의 것이 드러나면, 결국은 뭐에 빠집니까? 사단이 가장 좋아하는 교만에 홀딱 빠져 버립니다. 그러면 모든 했던 일들은 전부 수포로 다 돌아갑니다. 교회 안에서 아무리 잘했다! 그래도 교만에 빠져 버리면, 그것은 사단의 완전한 통로가 열러 버립니다. 이 사실을 참으로 바로 붙잡아야 됩니다.
그 다음에 중요한 것은 뭐냐하면, 하나 더 있습니다. 신비주의에 빠져버립니다! 신비가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있어요. 성경에 방언도 있고, 예언도 있고, 다 있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하고, 진실하고, 다 있습니다. 우리가 옛날에 다 안 겪어봤습니까! 어디 신비할 때에 정말 거짓말 한 게 있습니까! 얼마나 기도도 진실하게 했습니까! 암만 추워도 겨울에 산에 올라가 가지고... 겨울에 암만 추워도 안 추운 방법이 있어요. 어떻게? 옷을 몇 겹 입고 비닐포대 덮어 써버리면 돼요. 그러면 조금만 하면 땀납니다. 한번 넘어지면 일어나기 힘들어서 그렇지... 상거지가 되어서 안 다녔습니까! 진실하고, 정말 하나님 앞에 메어 달리고, 정말 기도하고 믿습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해결 안 되는 것이 있어요. 그게 뭡니까? 개인의 영적 문제와 가정에 영적 문제와 자신의 영적 문제는, 신비하면 할수록, 노력하면 할수록 점점 더 첨가됩니다. 그러니까 1시간 기도한 사람은 2시간 기도해야 되고, 2시간 기도한 사람은 3시간 해야되고, 여러분 기도하면 기도할수록 감사하고 만족해야 되는데 이상합니다. 옛날에 안 그래봤습니까! 기도하면 할수록 맨 날 기도가 부족해서 그럽니다. 저는 하루종일 기도하면서도 기도가 부족해 가지고 또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많이 봤어요. 영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왜, 그렇게 되느냐? 중요한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 정말 영적인 이 복음, 이 비밀이 확인되는 만큼 누릴 수 있는데, 이것이 확인이 안된 상황에서 진실하니까, 막 노력하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확인이 안된 상황에서 체험해 버렸어요.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누리는 것으로, 복음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체험 속으로 빠져 버립니다. 신비는 복음을 향해서 다름 박질 하다가 다른 데로 세어버렸어요. 그러니 이건 삼천포로 세어버렸습니다. 삼천포로 세는 것이 이게 신비주의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되면요. 점점 노력할수록 다른 것으로 빠지게 되는 이런 문제가 생기게 되어 있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여러분 정말 오늘 예수 그리스도 영적인 역사가 이해가 안된 제자들에게 별것 아닌 것처럼 보였는데, 엄청난 문제가 생겼습니다. 여러분 오늘 예수를 믿고 교회 앞에 앉았지만, 오늘 이 시간 강단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강단의 말씀으로 내게 사실로 부닥쳐 오지 않고, 내게 살아있는 말씀으로 오지 않는다! 여러분 영적인 병이 들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하나님의 뜻과 계획과는 떠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통해서 살아갈 수 있는 구체적인 힘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러니 간단합니다. 왜 그러냐? 한번 살펴봐야 합니다. 나도 모르게 내 생각과 의식이 율법에 체질이 되어 있습니다. 완전히 찌들려 있습니다. 사람만 보면 잘 잘못부터 먼저 따지고, 그리고 혹시 영적인 것으로 느껴졌는데도 신비는 영적인 것이 아닙니다. 신비에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육적으로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욕심과 정욕으로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예수 그리스도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정말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 왕으로, 제사장으로, 선지자로 오신 그 분이 나의 모든 것, 모든 문제를 해결하셨다! 진짜 그 말이 힘이 됩니다. 그 말이 정말 내게 생명과 능력이 됩니까! 그 순간부터 여러분에게는 영적인 역사가 열려지는데, 성령이 인도하십니다. 내 생각과 내 뜻이 다 접혀지게 되고, 어떤 사건과 일들을 만나든지 '그리스도! 그리스도!' 바로 그 그리스도 한마다 한마디 속에 나도 모르게 내 생각과 마음이 달라지게 됩니다. 성령이 여러분과 저를 인도하시는 구체적인 사실이 날마다 체험될 것입니다.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서론
제자들이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는 도중에 하나님의 역사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변론에 마음을 두다보니 먹을 것을 챙기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하시자, 제자들은 먹을 것에 대해서 걱정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먹을 것을 걱정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성경은 "평안"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신앙의 중요한 원리를 발견해야 합니다.
● 본론
1. 의식주에 대해서 걱정을 할 때 중요한 문제가 생깁니다.
(1)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
(2) 육적인 것에 매여서 영적인 것을 보지 못하게 됩니다.
(3)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생명이요, 모든 문제의 해결자라는 영적 비밀을 확인하는 만큼 세상적인 정욕으로부터 해방받을 수 있습니다.
(4) 영적인 역사에 눈이 열리게 되면, 그 안에 모든 것이 있습니다.(마6:30)
2. 믿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1) 성경을 읽고 설교를 들어도 육적인 것에 매여 있는 동안에는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2) 영적으로 눈이 열리기 위해서는 조금이라도 체험이 있으면 도움이 됩니다.
(3)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알고 계시며 허락해 주신다는 사실을 믿으십시오.
(4) 영적 문제가 해결되면 나머지 다른 모든 문제들은 그 안에서 해결됩니다.
(5)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에 대한 영적 눈이 열려야 염려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3. 모든 것을 '그리스도'를 통해서 바라보는 시각이 열릴 때 성령의 인도를 받습니다.
(1) 육신을 가지고 세상에서 살아가지만 성령의 인도를 받을 때 영의 사람이 됩니다.
(2) 영의 사람은 순간순간마다 아버지의 뜻대로 되어지기를 기도하게 됩니다.
(3) 이렇게 되지 않을 때,
① 율법주의로 떨어져서 영적인 것의 중요성을 놓치게 됩니다.
● 개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가정과 사회에 문제가 쌓여갑니다.
● 예수님이 뒤로 밀려나고 내가 일어나게 되어 교만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② 신비주의로 떨어져서 개인과 가정의 영적 문제가 더욱 쌓여갑니다.
● 예수 그리스도보다도 체험 속으로 빠져버리기 때문입니다.
● 결론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모든 문제들을 보고,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영적인 삶을 살아갑시다.
● 기도제목
나의 영적인 눈을 열어 주시고, 믿음을 허락해 주셔서,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살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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