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옮길 만한 믿음
2004-05-07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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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17:14) 저희가 무리에게 이르매 한 사람이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리어 가로되
(마 17:15)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저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
(마 17:16) 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마 17:1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다
(마 17:18) 이에 예수께서 꾸짖으시니 귀신이 나가고 아이가 그때부터 나으니라
(마 17:19) 이 때에 제자들이 종용히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마 17:20) 가라사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본문 마태복음 17장 20절에 보면 "가라사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할렐루야! 저는 이 말씀이 굉장히 기분 좋다기보다도 뭔가 이 첫 주, 청지기 주일, 2003년도를 시작하면서 하나님의 어떤 계획이 여러분과 저와 우리 교회를 향한 이런 축복의 계획이 뭔가 하는 마음에, 역사가 방향이 잡혀지고 있는 말씀이 되겠습니다. 할 수 없는 것은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성경에 그런 이야기죠.
그리고 성경은 굉장히 강조한 것이 뭐냐? 믿음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쭉 나가면서 성도들에게 믿어라! 믿으면 된다. 이것이 굉장히 강조가 되어 있습니다. 마가복음 9장 23절에도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믿음만 되면 된다! 그랬습니다. 결국 안 되는 것이 믿음이 없어서 그렇다! 그런 배경입니다. 마태복음 9장 29절에 "이에 예수께서 저희 눈을 만지시며 가라사대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신대" 한번 받아합시다. "너희 믿음대로 될찌어다!" 할렐루야! 믿음대로 된다! 그랬습니다.
나는 이 말씀을 말씀하면서 참 무서운 말이다. 왜? '너희 믿음대로' 그럴 때에, 과연 지금까지도 그랬지 만은, 믿음대로 된 것이거든요. 믿은 대로 된 것이지! 뭐 그렇다면 정말 내가 얼마나 믿느냐! 그럴 때에 이 말이 굉장히 두려운 말이에요. 믿음대로 될찌어다 그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주실 때에, 제 마음에 뭐냐? '주여,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 믿음 주옵소서' 이 기도가 저절로 나오게 되어 있어요. 왜? 내 믿음대로 놔두면 안되게 되어 있어요. 안 믿고 있으니까, 여러분 개인, 개인 한번 믿음을 점검하세요. 전부 불 신앙입니다. 그냥 안 믿고 살아가는 겁니다. 믿으면 된다! 그랬는데, 안 믿어요. 죽어라고 안 믿습니다.
고린도 전서 16장 13절에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여라" 왜? 믿으면 되기 때문에, 믿음은 남자처럼 담대하고 강건하도록 되라! 그렇게도 강조를 하고 있죠. 베드로 전서 1장 5절에 보면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아무리 말세에 구원받고, 축복 받는다! 그래도 여러분 말세에 어렵고 힘들고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도 믿음으로 구원이 이루어지고,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자들을 보호하시는, 말세에 어려움 속에서 보호하시는 능력이 나온다! 그랬습니다. 말세에 어렵다, 힘들다, 뭐 사건이 어떻다! 믿음으로 다 되도록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믿음이라는 배경 속에서 능력이라는 말이 따라서 나오도록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계속해서 믿음, 믿음 믿음회복하면 다 된다! 우리도 이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믿으려고 몹시 애를 쓰죠. 그러나 여러분이 믿는 것은 '믿는다!'라기 보다도 받아합시다. "믿어진다!" 이게 중요한 거죠. 여러분은 믿는 게 아니고 믿어지는 겁니다. 또 이제 한 말을 떼어버리고 다른 말만하면, 박 목사 이상하게 되니까! '믿는다!' 아니다 '믿어진다!' 뒤에 말을 떼어버리면, '믿는다!' 이렇게 되면 이단이 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뭐냐? 믿어지는 겁니다. 여기오신 여러분도 믿어져서 오는 것이지, '믿는다!' 그게 아니거든요.
그래서 '믿는다! 믿음이다!' 그러면 얼마만큼 믿어야 되느냐? 큰 믿음이 되어야 된다. 이런 생각을 많이 해요. 부피나 양으로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많이 믿으려고 애를 씁니다. 많이 믿으려고 밤새도록 믿으려고 기도하고, 밤새도록 기도하고 나면 뭔가 믿음이 이만큼 생긴 것 같아 가지고 자신이 생기고, 고만 기도 조금만 안 하면 믿음이 쪼그라져서 없어지는 것 같고, 그 다음에 이제 이 믿음이 뭐 큰 믿음 가진다! 많이 믿음 가진다는 생각을 가지고 믿으려고 금식도 하고, 밥 먹고 배부르면 믿음이 없어지는 것 같고, 뭔가 지금까지 믿으려고 애를 썼는데도, 뭔가 이 믿음이 잘 와지지를 않아요. 그래서 뭐 죽어도 안되니까! 믿으려고 몸부림치면서 믿습니다. 믿습니다. 그렇잖아요.
그런데 사실은 여러분 보세요. '믿습니다! 믿습니다!' 고함을 지르는 것은 안 믿기 때문에 고함을 지르는 겁니다. 진짜 믿으면 아무 말도 안 해요. 고함을 지를 것도 없어요. 그러니까 뭐, '믿습니다! 믿습니다!' 하다가 안되니까, '믿! 믿! 믿습니다!' 그러고, 이게 뭐냐? 믿으려고 몸부림치는 겁니다. 그냥 막 '많이 믿자! 크게 믿자!' 이런 것으로 자꾸 이해합니다. 믿음은 그런 것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오늘 성경으로 돌아가서 도대체 믿음을 얼마만큼 가져야 되느냐! 얼마만큼 믿어야 되느냐! 그 이야기를 성경에 오늘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산을 옮길만한 믿음 그러니까, 또 산만큼 믿음이 있어야 되는 줄 아는데, 그 믿음이 어느 믿음이냐! 전혀 생각밖에 이야기입니다. 얼마만큼 믿어야 됩니까? 겨자씨만큼, 겨자씨만큼! 저는 이 말씀을 가만히 보면서 더 붙여 가지고, 겨자씨는 뭐냐하면 씨 중에 제일 적은 씨가 겨자씨입니다. 제가 이스라엘에 가 가지고, 전에 성지순례 가서 겨자씨를 가지고 왔어요. 가지고 왔는데 이게 얼마나 적은지 책갈피 속에 넣어 왔는데, 어디 갔는지 흔적이 없어요. 지금까지 못 찾았습니다. 이 겨자씨! 씨 중에 제일 적은 씨입니다. 여러분 그 혹시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만은, 채송화 씨, 그것보다 훨씬 적어요. 농사짓는 사람 채송화 잘 모르면 담배 씨 있잖아요, 옛날에 안 믿을 때에 담배 심어 봤던 사람들은... 나는 초등학교 때에 학교에서 담배를 했어요. 나는 담배를 전혀 모르는데, 그때에 담배를 하고 담배를 이렇게 넣고 담배 찌고 하는 것, 한번 학교에서 체험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담배 씨도 그렇게 적더라 구요.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씨 중에 제일 적은 씨가 겨자씨입니다. 결국은 뭐냐하면, 믿음! 그럴 때에, 어떤 부피나 양으로 이게 측량이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나는 여기서 어떤 믿음이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냐! 우리 예수님께서는 여기 성경에서 겨자씨 믿음이다! 겨자씨처럼 적어도 된다! 그랬는데 저는 여기에 덧붙여 가지고 더 알기 쉽게 받아합시다. "보이지 않는 믿음!" 안 보이는 게 정상입니다. 믿음은 안 보여요. 부피나 크기로 보이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 보이지 않는 그 믿음이 뭐냐? 겨자씨 알만한 믿음이다. 그 말이 뭐냐? 이걸 가지고 주경을 했는데, 신학자들이 주경 하는데, 제가 주석을 참고해 보니까! 거의 많은 경우 '생명이다!' 싹이 트는 생명의 힘으로 자꾸 이야기를 해 놓았더라 구요. 그러니까 '씨앗은 바위를 뚫고 올라온다!' 이런 식으로... 여러분 뭐 흙을 뚫고 올라오는 것이, 또 돌을 뚫고 올라오는 것이 생명 아닙니까! 그러나 그런 것보다도 뭐냐하면, 이것은 생명 자체를 말하는데, 씨앗이 생명을 바위를 뚫고 올라오는 그런 어떤 힘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이 생명은 누구의 생명이냐! 어떤 생명이냐! 누구입니까? 그리스도의 생명이다. 이 말은 뭐냐? 하나님의 생명이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이 말은 모든 생명의 근원입니다.
여러분 지금 아셔야 될 것이 겨자씨 만한 믿음이다! 이 말은 아주 적다 그런 정도가 아니고, 그 믿음에 대한 본질을 말합니다. 무슨 믿음이냐? 하나님의 생명이다! 그러면 여러분 자연스럽게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문제 해결 자다! 이해가 되는 겁니다. 여러분 모든 문제 해결 자다!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다! 그럴 때에,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문제해결 자다! 그대로 연결되는 겁니다. 이 생명이 들어가 버리면 연결되는 것 아닙니까!
그 다음에 더욱 중요한 것은, 이 생명이 모든 문제 해결 자다! 그럴 때에 이 생명이 창세기 3장을 해결하셨고, 여러분과 저의 영원한 죽음과 멸망과 저주에 운명에서부터 완전히 해방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부르는 순간에 여러분의 운명과 여러분의 방향에 완전히 바꾸어 졌습니다. 그러면서 이 말씀 속에서 중요한 것은, 이 생명 받았다! 이 생명 얻었다! 그럴 때에 뭐가 되느냐? 하나님의 주권 속으로 들어왔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여러분과 제게 이 생명 주시면서 절대로 망하지 않게 하시는 축복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주권 속으로, 주인공이 되어 버렸습니다.
저는 그 드라마를 볼 때에 뭔가 이 감정을 유발하는, 특별히 애정 드라마라든가, 이런 것은 왠지 모르게 좀 뭔가 그래요. 제가 좋아하는 것은 액션 드라마, 액션 영화, 이런 것을 상당히 좋아합니다. 뭔가 시원하고 깨끗해요. 다른 것을 보면 뭔가 찌지 한 게 남아 있는 것 같고, 그런데 거기에 보면 뭐냐하면, 아무리 위태롭고 어려운 것이라도 주인공은 안 죽도록 되어 있더라 구요. 아무리 위태롭고, 희한한 위험이 있고, 폭탄이 터치고, 별 짓을 다해도 주인공은 안 죽어요. 안 죽도록 뭡니까? 작가가 계획을 해 놓았습니다. 기어코 안 죽는 것이 아니고 기어코 뭘 합니까? 승리하도록 만들어 놓아요. 거의...
지난 송구영신 예배 때 말씀했습니다. 야곱을 향해서 야곱 이름에 뜻이, '교활하다!' 뭐 이런 뜻이고, 야곱의 성질도 역시 그렇거든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무슨 이름을 주었습니까? '이제는 야곱이라 하지말고 이스라엘이라 하라!' 이스라엘이 뭐냐하면, 승리자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이름을 고쳐놓고, 야곱을 계속해서 승리로 이끌어 가시는 그 역사가 성경의 기록에 역사더라 구요.
그런데 여러분 아실 것은, 야곱이 승리의 이름을 받았지만, 받고 난 이후에 즉시 꽃방석 위에 올려놓았느냐? 아닙니다. 승리의 이름을 받아놓고 계속해서 어렵고, 힘들고, 고난받는 이런 일들이 연속이 되는 겁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든 고난이 연속이 되어져도 만나게 되는 것이 아니고, 그 과정을 통해서 결국 뭐합니까? 야곱이 승리하게 되고, 이스라엘에 족장이 되고, 족장이 된 정도가 아니고 이스라엘의 조상이 되는 이런 엄청난 승리의 자리에 올려놓았습니다. 예수의 생명이, 그리스도의 생명이 겨자씨 알보다 적다! 그런 말이 아니고, 그 생명이 얼마나 위대하냐? 하나님의 주권 속에 세워놓아 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과 저를 기어코 축복하실 이름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저를 축복의 주역으로 삼아 놓았습니다. 주인공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절대로 죽지 않습니다. 망하지 않습니다. 신기한 것은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넘어지고 쓰러지는 것 같아도, 그 모든 것이 합력해서 뭘 이루어요. 승리로 이루어 나갑니다. 여러분 2003년도 이 축복과 역사 속에 여러분과 저를 세웠습니다. 그러면서 성경이 말씀합니다. 이 믿음만 자리잡고 있으면, 여기에 '모든 문제 해결된다!' 그 말보다도 '산을 옮긴다!' 그랬습니다.
저는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모든 문제 해결 자다!' 보다도 '예수 그리스도 산을 옮긴다!' 금년도 '예수 그리스도 산을 옮길 수 있다!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 이 믿음이 오늘 청지기 주일 여러분과 제게 주시고 약속하신, 한해동안 이루실 역사입니다. 할렐루야!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사실을 구체적으로 이루어 나가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이 믿음을 어떻게 성취하며 이루어 나가느냐! 그럴 때에 성경은 뭐라 그랬느냐? 말씀을 믿는 믿음입니다. '겨자씨 알만한 믿음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다! 하나님의 생명이다!' 그럴 때에, 말씀입니다. 여러분 예수를 뭐라 그러느냐? 씨라 그랬습니다. 말씀을 또 씨라 그랬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 23절에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뭡니까? '말씀이다!' 그랬습니다. 말씀이다!
하나님의 생명이 들어가면 저절로 나오는 것이 뭐냐하면, 여러분 이상합니다. 말씀을 믿는 믿음이 생깁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생명이 들어갔다! 겨자씨 알만한 믿음이 있다! 그 말은 말씀을 믿는 믿음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생명이 들어가면요, 말씀이 믿어져요. 이 자리에 앉아있는 사실 자체가 뭘 믿기 때문에, 말씀을 믿기 때문에 말씀을 듣는 겁니다. 이 말씀을 들을 때에 이상하게 말씀을 듣는 동안에 말씀을 믿고, 말씀을 들을 때에 여기에 모든 것이 나오거든요. 힘이 나오고, 생명이 나오고, 여기에 응답이 나오고, 다 나오는 것 아닙니까! 말씀이 믿어지더라!
그래서 저는 그 신기한 것은, 신앙생활에서 제일 어려웠던 부분이, 말씀을 믿기까지가 제일 어려웠습니다. 아마 여기 교회 오신 여러분들이 말씀을 믿기까지가 제일 어렵습니다. 이게 힘들어요. 말씀을 믿는 그때부터 뭐냐? 당장 주일날이 기다려지고, 이 시간이 기다려지는 겁니다. 그러면 신앙생활은 뭐냐? '예배를 잘 드려라! 뭘 잘 드려라! 뭐, 예배에 승리하자!' 저절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따라오는 것이지, 신앙생활은 따라오는 것이지, 신앙 생활은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주일날 여기 오는 것도 따라 오는 거죠. 저절로... 이걸 억지로 만들려고 하면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좀더 쉽게 좀 이해를 좀 하고, 올 한해에 좀 붙잡아야 되겠습니다. 말씀을 믿고, 말씀을 붙잡고 행동해야 기적이 나옵니다. 그래서 그 어떤 그 신학자가 어떻게 이해를 했느냐 하면, '말씀을 붙잡고 행동하면 능력이 나온다! 기적이 나온다!' 그랬어요. 그런데 말씀을 붙잡고 행동하는 것을 뭐냐? '믿음!'이라 그랬습니다. 믿음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이 약속한 것을 딱 붙잡고, 위대한 승리라는 것이 성경 전체 내용이 아닙니까!
엘리야가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다가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는데, 하나님의 약속 붙잡고 기도하다가, 멀리 조그마한 구름이 오는 것을 보고서 그 구름! 하나님의 약속이거든요. 그걸 붙잡고 뭡니까? '이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비가 온다!' 그러면서 그냥 달려갔잖아요. 비가 3년 6개월 동안, 하늘이 막혔던 이 하늘에 큰비가 내렸다는 것이 성경에 기록입니다.
더군다나 구체적으로 신약에서 보여준 것은, 누가복음 17장 14절에 보면 "보시고 가라사대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저희가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열 문둥이에게 예수님께서 뭐라 그랬느냐?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라!' 그러니,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붙자고 이들이 안 나았습니다. 아무런 기미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붙잡고 행동하는 도중에 나아버렸어요. 이게 해결입니다.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신앙생활하면서 뭐가 안 되느냐? 말씀은 따로 있어요. 믿습니다. 그러는데 뭘 믿는지 모르겠어요. 자기 신념을 믿는지, 아니면 자기 생각을 믿는지, 맨 날 '믿습니다!' 그러고 '주여, 믿습니다!' 그러고 '믿음 주옵소서!' 무슨 믿음을 달라고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맨 날 그러는데 말씀은 따로, 여기에 플러스 행동이 안되어요. 아니 플러스 삶이 안 되어요. 쉽게 말해서 그러니까 뭐가 안 되느냐? 기적이라는, 능력이라는 연결이 안됩니다. 다 여기서 역사가 안 되는 겁니다. 교회 10년, 20년 믿어도, 백 번, 천 번 믿어도, 말씀 따로 내 삶이 따로, 이게 안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 이 한해를 붙잡아야 될 것이, 말씀! 약속 아닙니까! 약속잡고, 그 약속이 내 삶에 되도록 연결시키는 겁니다. 이게 믿음입니다. 그러니 산을 옮길만한 믿음! 바로 이겁니다. 여러분 말씀잡고, 조금만 행동하게 되면 바로 거기서 기적이라는 역사가 나오도록, 성경이 그렇게 약속했습니다. 이것이 지금 안되고 있습니다. 올해에 이것만 조금만 되면, 여러분 조금만 마음을 가지고 이 상황이, 사건이 이루어지게 되면,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이루어지게 되죠.
그래서 이것을 좀 공식으로 삼아 봐야 됩니다. 뭐냐하면, 한번 받아합시다. "말씀을 생활화하자!" 쉽게 말해서 오늘도 선교 헌금을 작정한다! 이래서 뭐 청지기 주일이다! 그렇게 말하고있는데, 사실 그 말보다도, 말씀을 생활화하기 위한 작정입니다. 다른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제정에 축복해 주시겠다! 절대로 너희 하는 일에 헛되지 않게 하시겠다!' 약속을 해 놓았습니다. 그 약속을 했는데, 약속의 배경에서, 재정 축복의 약속에 배경에서 뭘 우리에게 요구했습니까? 십일조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십일조라는 말은, '하나님 앞에 내 있는 것 드린다!' 그 말이 아니고 무슨 이야기냐 하면, '내가 일하고 내가 받은 것, 내 것이 아닙니다! 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았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다 드려야 되는데, 하나님께 다 드린다는 표로 열을 받아 가지고, 아홉은 내가 먹고, 하나만 드리자! 그것이 구약에 기본 개념입니다.
신약에 바울에 개념은, 십일조를 그렇게 강조 안 했습니다. 왜? 바울은 열 받았느냐? 열 다 드렸습니다. 생명까지 다 드려버렸습니다. 이게 신약에 하나님 앞에 드린다는 개념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믿음이 적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 그런 결단을 못하잖아요. 못하니까, 가장 기본적인 개념이라도 좀 바로 하자! 이래서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 제정 축복, 제정축복! 말로 하지말고, 하나님께서 얼마든지 축복해 주실 수 있는데, 축복을 담을 수 있는 말씀을, 재정에 말씀을 생활화해야 된다! 그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십일조 드린다! 그 개념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받는 것 다 드리면 좋죠. 다 드려도 삽니다.
저는 그 시골에 한번씩 다닐 때에, 옛날입니다. 아주 그 그때는 옛날 아닙니까! 가 가지고 뭐까지 선언해 봤느냐 하면요, 교회 들어가니까 아무것도 없어요. 전도사한테 줄 사례도 없고, 그래가지고 뭘 결단했느냐 하면, 하나님 내가 받은 것 다 드립니다. 하나님이 내 삶을 책임져 주세요. 그런데 다 드렸는데 하나도 어려운 것이 없더라 구요. 구체적으로... 그래가지고 차츰 차츰 제가 뭔가 이 규칙을 정한 것이 뭐냐하면, 십일조 드리는 것은 드리는 것이지만, 십 이조, 그 다음에 십 삼조, 그렇게 이제 생각했던 것이 그 전도사 때부터입니다. 그 어려울 때 아닙니까, 그게 지금까지 쭉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 교회에서는 공식적으로 제 생활에, 여러분들이 기도하면서 결정하세요. 그러나 저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 생활에 제가 사례비를 받으면 1/10은 십일조입니다. 그 다음에 2/10는 선교헌금입니다. 그 다음에 3/10은 주일헌금입니다. 주일 헌금은 제가 주일날 나올 때마다, 제 지갑에 미쳐, 헌금 봉투가 여기 있으니까, 제 지갑에 작년 같은 경우에는 11만원을 드립니다. 올해는 제가 계산을 해 보니까, 하나 더 드려서 12만원을 넣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보세요. 처음 아무 생각 없이 처음 아마 3/10조를 드린다! 그래가지고 주일날 마다 십 몇 만원을 드린다. 이러면 처음에는 굉장히 부담이 나올 겁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제가 느껴보니까 뭐냐하면요, 이게 오랜 습관이 되어 버렸어요. 당연한 습관이 되어 버렸어요. 그래서 토요일 날이 되면 응당히 뭐냐하면, 지갑에 나도 모르게 저절로 준비가 되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 집에 분위기가, 그래서 우리 집사람도 이렇게 지갑을 보고, '내일 헌금할게 없네요!' 왜? 몇 만원 있어도 그건 헌금이 아니거든, 그러니 응당히 뭔가 이게 생활이 되어 버렸습니다. 생활화! 그러면 드린다는 그런 개념에서, '뭔가, 내가 얼마 드렸다!' 그런 개념이 없어져 버려요. 그냥 그러면 그 이후에 문제는 뭐냐?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제가 이렇게 소개를 한 것은 다른 게 아닙니다. 첫 번에 이렇게 할 수 있기까지 몇 번, 몇 번 문제들이 있더라 구요. 그래서 뭐 넣어 놓았다가 떼어먹었다가, 또 넣어놓았다가, 뭐 '하나님 내가 바쁘니까 내가 먼저 씁니다!' 그러고 별 짓을 다했습니다 만은, 이게 시간이 가면서 뭐냐? 내 생활이 되어 버렸습니다. 내 생활이 되면서 생활할 때에, '이렇게 하면 복 받는다!' 이런 개념이 아닙니다. 성경에 약속하신 것이니까! 이걸 내가 그대로 생활화 해 버립니다. 축복 주시고 안 주시고 하나님이십니다! 나는 뭘 말하고 싶으냐 하면, 그래서 박 목사가 돈 많이 받는다! 그래서 박 목사에게 하나님이 경제의 축복 주셨다! 그런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일에, 제가 목회 한 여러분에게 뭐냐? 재정적으로 반드시 하나님이 은혜 주실 것입니다.
아울러 교회 건축 간단합니다. 그런데 교회 건축 그럴 때에, 건축헌금 그럴 때에 뭐냐? 생활이 나도 모르게 응당히 내가 이 일에 헌신한다! 생활이 되어 버리는 거니까! 이게 안되면 뭐가 오느냐? 조금만 돈 내어놓고, '하나님 돈 냅니다, 돈 이만큼 주십시오!' 이런 게 자꾸 들어오는 겁니다. 하나님께 드린다! 그게 생활이에요. 성경에 약속하고, 내가 싫으면 그만입니다. 그 다음에 역사는 하나님이 역사 하는 기적입니다. 하나님께 열매 맺는 것이죠. 이런 문제가 오늘 여러분 십에 이조, 선교헌금 작정! 그럴 때에 하나님 앞에 말씀을 생활화하는 것이다! 그렇게 이해를 하셔야 됩니다.
그러면 이게 주일성수! 주일날을 거룩하게 지킨다! 이걸 생활화 시켜야 합니다. 이게 안되면 약속을 했는데, 거룩한 주일! 하나님의 말씀가지고 예배드리고, 성수 하게 될 때에 반드시 축복해 준다! 약속했거든요. 그런데 여러분 주일성수라는 것이 말씀으로 생활화 안 되면, 이게 안되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 여러분 주일 성수 한다! 여러분 보세요. 안되게 되어 있어요. 참, 어렵습니다. 뭐 간단하게 주일날 가만히 앉았다고 됩니까? 주일날 교회 앉았다 가면 됩니까? 일 하나도 안 한다고 됩니까? 정말로 주일성수는 이것이 한 주간 내내 주일날을 위한 준비가 되어야 됩니다.
토요일 날 되었다! 여러분 주일날, 저녁에 일도 안하고 뭘 한다! 그런 개념이 아니거든요. 주일을 위한 계속한 준비가 되는 겁니다. 나도 모르게 이 주일 성수가 말씀에 생활화되면, 그러면 토요일 날도 그렇게 그게 인도가 되거든요. 그런데 토요일 날 뭐 다 모아 놓았다가 뭐 많이 한다고, 토요일 날 빨래한다고, 여자들 같은 경우에는 저녁에 1시, 2시 새벽 2시, 3시까지 하면 주일날 되면 1부 예배, 2부 예배 들어갔다! 혼돈이 옵니다. 어지간한 모든 문제는 토요일 날, 주일에 방해될 수 있는 문제다! 다 미루어 버립니다. 저절로 자기도 모르게...
이것이 쭉 생활화 되게 되면, 주일날 하나님 앞에 말씀 듣고 예배드리는 것이 맨 정신으로 저절로 준비가 되게 되어 있습니다. 어디 가는 모든 문제, 이런 모든 문제, 저절로 이게 생활화되어야 되는 것이지, 그러니 생활화되면 뭐가 되느냐 하면, 주일날 뭔가 손해 보는데, 이게 없어요. 이게 생활화되면 나도 모르게 주일 성수에 체질이 됩니다. 체질이 되면 뭐냐? 주일을 내가 일 안 한다, 조급하다! 이런 게 없습니다. 거룩한 주일에, 성수 하는 것에 체질이 되면 뭐냐? 진짜 거룩한 주일! 예배드리는 것에 체질이 되면, 누림이라는 말이 따라오게 됩니다.
여러분 누림이라는 것이, 뭐 내가 갑자기 뭘 어떻다! 예수 그리스도 누린다! 그 말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거룩하신 주일 성수, 말씀이 생활화되고 습관이 되면, 내게 체질화됩니다. 이러면 뭐냐? 누림이라는 것이 여기에 따라오게 됩니다. 이게 따라오게 됩니다. 누리는 것이 갑자기 뭐 하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나라 속담에, 세 살 버릇이 얼마까지 가요? 여든까지 갑니까! 세 살 버릇이 죽을 때까지 갑니다. 죽을 때까지 가는 정도가 아니고, 영원히 갑니다. 뭐냐? 습관은 제2의 천성이라는 그런 말이 있죠. 그래서 여러분 말씀에 약속을 잡고 습관화 시켜야 됩니다. 생활화 시켜라! 그 말입니다.
여기에 따라오는 것이 뭐냐? 누림이라는 말이 저절로 이해가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생명 말씀 붙잡고 습관화시킵니다. 여러분 재정, 경제, 하나님의 참 믿음으로 서게 될 때에 귀가 어둡습니까? 손이 없습니까? 축복하시겠다고 약속했는데, 뭐가 안 되느냐? 누림이 안되어요. 누림이 왜, 안 되느냐? 습관화가 안되어요. 말씀에 생활화가 안되어요. 말씀 따로, 돈 따로 입니다. 말씀 따로, 욕심 따로 입니다. 여기에 모든 게 나와있어요. 겨자씨 알만한 믿음, 참 생명이 있다면 말씀을 나의 습관으로 삼아야 됩니다.
여러분 올해에 청지기 주일, 간단하게 내가 얼마 작정했다! 그렇게 생각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삶이 되게 하옵소서!' 그러면 '하나님에 약속의 축복이, 경제의 축복이 내게 누림이 되게 해 주옵소서!' 구체적인 역사가 나오는 것 아닙니까! 우리 자신도 모르게 사람, 사람 사이에... 여러분 교회 생활하다 보면 제일 어려운 것이 뭐냐하면, 사람, 사람 사이에 감정 갈등입니다. 왜? 사람이 모여있는 단체이기 때문에, 그러면 여러 사람이 일하다보면 여러 가지 문제가 많지만, 제일 어려운 것이... 그래서 교회에서 시기, 다툼, 질투라는 문제가 그래서 나오는 것이거든요. 나올 수 없는 문제인데, 여러 사람이 모여 있다보니 그런 문제가 생깁니다.
그런데 우리의 체질들이 아주 저주의 체질이 되어 가지고, 이게 잘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내 생활이 성경 말씀대로의 생활이 아니고, 다른 것이 생활화되어 가지고 조금 말 들으면 남을 비판하고, 남을 정 죄하고 이런 게 되어 있거든요. 그런데 여러분 잘 아셔야 합니다. '비판하지 말라!' 말씀이 생활화되어야 됩니다. 남의 말을 딱 들었거나, 남을 비판하는 말을 들을 때에, 생활화되어야 됩니다. 어떻게 걱정과 근심으로, 염려로 생활화되는 게 아니고 그 말 딱 들으면 무슨 생각이 드느냐, '하나님 누가 내 말하네요, 하나님이 알아서 하십시오!' 나도 모르게 하나님께 모든 염려, 걱정, 근심을 어떻게 하느냐? 맡겨 버리는 것이 약속을 잡고, 이게 근거 없이 맡겨버리면 맡겨지지도 않지만, 맡겨 버리는 것이 생활화되어야 됩니다. 이게 습관화되어야 됩니다.
목사에게 가장 어려운 문제가 뭐냐하면요. 나는 그 요즘은 어떤 면에서 '생활화되었다!'라기보다도 뭐 조금 단련이 된 것 같죠. 누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간단합니다. '아버지 누가 무슨 말하네요!' 이러고는 맡깁니다. 잊어버립니다. 이 기억이 안 나요. 그런데 이것이 특별히 젊을 때는 뭐냐하면요, '네가 그런 말했지!' 이래가지고 기도하려고 그러면 그게 떠올라요. 그게 떠오르면 무슨 생각이 드느냐 하면, 그게 떠오르면 좋은 기도가 안 나오고, 나오 모르게 엉뚱한 게 나가다가, '이러면 안되지, 목사는 축복하기 위해서 세워 놓았는데...' 자꾸 다른 소리가 나가려고 해서, 그런 게 그게 참 어렵더라 구요.
뭐냐하면요. 나도 모르게 그런 것을 들을 때에, 하나님께 그들에게 축복하실 저들도, 복음 들어가고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가면 해결되는 것 아닙니까! 이런 어떤 생각들이 말씀 붙잡고 이게 한번하고, 두 번 하고, 세 번하면 나도 모르게 습관화됩니다. 나도 모르게 생활화되어 버리는 겁니다. 염려, 걱정, 근심 나올게 없어요. 여러분 혹시 무슨 문제가 있으면 팔자로 걱정하지 마시고, 무슨 문제 있으면 팔자로 걱정합니다. 하여튼 걱정을 생활화해요. 걱정을 체질화해요. 염려를 체질화해요. 이런 게 나오거든 당장 들어서 주님 앞에 맡기는, 말씀을 잡고 맡기는 사실을 습관화, 생활화! 이 사실이 되어져버려야 됩니다.
그러면 뭐가 오느냐? 따라서 누림이라는 말이 오게 되어있습니다. 뭐 누림, 누림! 그러면서 말씀은 전혀 안 붙들고, 전혀 말씀과 상관없이 걱정, 근심, 비판! 이것만 혼자하고 있는데, 뭐가 누려집니까? 안되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말씀 붙잡고, 말씀이 내게 생활화되면 모든 분야가 뭐가 되느냐? 누림이라는 엄청난 기적이 따라옵니다. 여러분 누림이라는 그게 기적의 역사입니다. 그게 보통 역사가 아니죠. 이런 배경에서 여러분 기도! 무슨 문제 생기면 기도가 습관화되어야 됩니다.
무슨 문제가 딱 생기면 뭐냐? 뭐 문제 생기자 말자, 오늘 저녁에 내가 기도해야 되겠지 그렇게 미룰 것도 없어요. 딱 문제 생기면 자기도 모르게 습관이 어떻게 되느냐? 탁 탁 탁 탁 행동해 놓고, 머리로 탁 탁 탁 탁 돌려 가지고 다 해놓고, 그래놓고는 행동을 다하고 난 후에, '내가 기도도 안하고 했네!' 이래가지고, '하나님, 이렇게 했습니다, 저렇게 했습니다!' 보고로 하는 기도이지, 거의... 이게 뭐냐? 무슨 문제 생기게 되면 딱 뭐냐? 습관이 되어야 됩니다. 아버지 문제 생겼네요, 어떻게 해야됩니까? 성령으로 인도해 주옵소서. 이게 뭐냐? 약속 붙잡고, 기도하는 것이 습관화되어야 됩니다.
그러니 문제 생기면 바로 연결되어야 되지, 문제 생기면 다른 데로 실컷 갔다가, 다했다가 늦게 가서 이렇게 되니까! 이 일이 안됩니다. 말씀 따로, 습관 따로, 생활 따로, 누림 따로, 누림은 자기 생각에 다! 늦게 자기 혼자 다 해놓고, 자기 생각과 마음을 누리는 것이지, 하나님의 말씀을 누리는 것이 안되더라 구요. 이러니까 어려운 문제입니다. 여러분 되도록 되어 있다! 이번에 조금 말씀합니다. 이것이 조금만 이루어지면,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다! 모든 문제 해결 자다!' 백 번, 천 번해도 이 말씀이 내게 연결되지 아니하면, 우리에게는 구체적인 축복이, 기적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 여러분 뭐, '선교 헌금을 결정한다!' 그러기보다도 내가 하나님 앞에서 선교하는 자세로, 선교하는 자세가 말씀화 되고, 생활화되고, 습관화 될 때에 뭐냐? 체질이 됩니다. 앉으면, 서면, 어디 가든지, 딱 나오는 것이 뭐냐? 전도 생활화! 기도 생활화! 그 다음에 헌금 생활화! 여러분 헌금 생활화 이게 정말 중요합니다. 딱 내게 되어 버려야 쉽습니다.
그래서 뭔가 제게 있어서 나도 모르게 뭐냐하면, 뭔가 딱 사례를 받는다! 안 그러면 뭐가 내게 딱 나온다! 그러면 돈이 좀 생긴다! 생기면 생기는 즉시 뭐냐? 주머니를 달리 하던지, 안 그러면 지갑을 달리 하던지, 당장 거기서 십일조, 십 이조 이게 생활화되는 겁니다. 그러면 거기에 대해서 전혀 생각이 없이 그냥 그렇게 돌아가 버립니다. 응당히 딱 문제가 닥치면 돈이 얼마 왔다! 그러면 그 돈에 십일조, 십 이조를 제한 것에 대한 계획이 나오지, 그걸 다 합쳐서 안 나오거든요. 생활화! 그러면, 습관 그 다음에 거기서 누림이라는 것이, 하나님의 기적으로 여기에 나오는 겁니다. 그 다음에 문제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여러분 세계를 살리겠다는 이 축복의 역사가 여러분 삶에 재정도 말씀으로 통해서, 기도도 전도도 말씀으로 통해서, 여러분과 제게 생활화되고 습관화되고, 이어서 누림이 되어지는 하나님의 엄청난 축복이 이 한해에 체험되고, 이 체험이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한해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서론
2003년에는 산을 옮길 만한 믿음으로 삽시다.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20절)'
● 본론
1. 성경은 믿음을 굉장히 강조합니다.
(1)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막9:23)
(2) 너희 믿음대로 되리라.(마9:29)
(3)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처럼 강건하라.(고전 16:13)
(4)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는다.(벧전1:5)
2. 믿음의 본질은 하나님의 생명입니다.
(1) 우리가 믿는 것은, 믿어지는 것입니다.
(2) 믿음은 양으로 따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진정으로 믿는다면 몸부림치지 않고 잠잠합니다.
(3) 겨자씨 만한 믿음은 보이지 않는 믿음이요, 하나님의 생명을 뜻합니다.
(4) 하나님의 생명에 모든 해답이 있습니다.
① 그 이름은 우리를 죽음과 저주와 멸망에서 완전히 해결하였습니다.
② 그 이름으로 생명을 얻을 때, 하나님의 주권 속으로 들어왔습니다.
③ 하나님은 생명 얻은 우리를 절대로 망하지 않는 축복의 주인공으로 세우셨습니다.
④ 생명 얻은 우리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승리하게 됩니다.
3. 믿음은 어떻게 성취하고 이루어집니까?
(1) 썩어지지 아니하는 말씀으로 되어집니다.(벧전1:23)
(2) 하나님의 생명이 들어가서 겨자씨 만한 믿음이 있으면 말씀이 믿어집니다.
(3) 말씀을 믿고, 붙잡고, 행동해야 기적이 나옵니다.
(4) 말씀을 붙잡고 행동하는 것이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5)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이란, 말씀을 붙잡고 행동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 결론
"말씀을 생활화합시다." 선교헌금을 바치는 것도, 건축헌금을 바치는 것도,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도, 문제와 사건 속에서 기도하는 것도 말씀을 생활화하기 위한 행동적 실천입니다. 습관은 제2의 천성입니다. 말씀을 붙잡고 행동하는 것이 우리의 삶에 생활화될 때, 기적과 누림이 따르게 됩니다.
● 기도제목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것이 나의 삶에 생활화되게 하여 주옵소서.
(마 17:15)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저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
(마 17:16) 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마 17:1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다
(마 17:18) 이에 예수께서 꾸짖으시니 귀신이 나가고 아이가 그때부터 나으니라
(마 17:19) 이 때에 제자들이 종용히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마 17:20) 가라사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본문 마태복음 17장 20절에 보면 "가라사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할렐루야! 저는 이 말씀이 굉장히 기분 좋다기보다도 뭔가 이 첫 주, 청지기 주일, 2003년도를 시작하면서 하나님의 어떤 계획이 여러분과 저와 우리 교회를 향한 이런 축복의 계획이 뭔가 하는 마음에, 역사가 방향이 잡혀지고 있는 말씀이 되겠습니다. 할 수 없는 것은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성경에 그런 이야기죠.
그리고 성경은 굉장히 강조한 것이 뭐냐? 믿음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쭉 나가면서 성도들에게 믿어라! 믿으면 된다. 이것이 굉장히 강조가 되어 있습니다. 마가복음 9장 23절에도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믿음만 되면 된다! 그랬습니다. 결국 안 되는 것이 믿음이 없어서 그렇다! 그런 배경입니다. 마태복음 9장 29절에 "이에 예수께서 저희 눈을 만지시며 가라사대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신대" 한번 받아합시다. "너희 믿음대로 될찌어다!" 할렐루야! 믿음대로 된다! 그랬습니다.
나는 이 말씀을 말씀하면서 참 무서운 말이다. 왜? '너희 믿음대로' 그럴 때에, 과연 지금까지도 그랬지 만은, 믿음대로 된 것이거든요. 믿은 대로 된 것이지! 뭐 그렇다면 정말 내가 얼마나 믿느냐! 그럴 때에 이 말이 굉장히 두려운 말이에요. 믿음대로 될찌어다 그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주실 때에, 제 마음에 뭐냐? '주여,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 믿음 주옵소서' 이 기도가 저절로 나오게 되어 있어요. 왜? 내 믿음대로 놔두면 안되게 되어 있어요. 안 믿고 있으니까, 여러분 개인, 개인 한번 믿음을 점검하세요. 전부 불 신앙입니다. 그냥 안 믿고 살아가는 겁니다. 믿으면 된다! 그랬는데, 안 믿어요. 죽어라고 안 믿습니다.
고린도 전서 16장 13절에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여라" 왜? 믿으면 되기 때문에, 믿음은 남자처럼 담대하고 강건하도록 되라! 그렇게도 강조를 하고 있죠. 베드로 전서 1장 5절에 보면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아무리 말세에 구원받고, 축복 받는다! 그래도 여러분 말세에 어렵고 힘들고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도 믿음으로 구원이 이루어지고,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자들을 보호하시는, 말세에 어려움 속에서 보호하시는 능력이 나온다! 그랬습니다. 말세에 어렵다, 힘들다, 뭐 사건이 어떻다! 믿음으로 다 되도록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믿음이라는 배경 속에서 능력이라는 말이 따라서 나오도록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계속해서 믿음, 믿음 믿음회복하면 다 된다! 우리도 이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믿으려고 몹시 애를 쓰죠. 그러나 여러분이 믿는 것은 '믿는다!'라기 보다도 받아합시다. "믿어진다!" 이게 중요한 거죠. 여러분은 믿는 게 아니고 믿어지는 겁니다. 또 이제 한 말을 떼어버리고 다른 말만하면, 박 목사 이상하게 되니까! '믿는다!' 아니다 '믿어진다!' 뒤에 말을 떼어버리면, '믿는다!' 이렇게 되면 이단이 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뭐냐? 믿어지는 겁니다. 여기오신 여러분도 믿어져서 오는 것이지, '믿는다!' 그게 아니거든요.
그래서 '믿는다! 믿음이다!' 그러면 얼마만큼 믿어야 되느냐? 큰 믿음이 되어야 된다. 이런 생각을 많이 해요. 부피나 양으로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많이 믿으려고 애를 씁니다. 많이 믿으려고 밤새도록 믿으려고 기도하고, 밤새도록 기도하고 나면 뭔가 믿음이 이만큼 생긴 것 같아 가지고 자신이 생기고, 고만 기도 조금만 안 하면 믿음이 쪼그라져서 없어지는 것 같고, 그 다음에 이제 이 믿음이 뭐 큰 믿음 가진다! 많이 믿음 가진다는 생각을 가지고 믿으려고 금식도 하고, 밥 먹고 배부르면 믿음이 없어지는 것 같고, 뭔가 지금까지 믿으려고 애를 썼는데도, 뭔가 이 믿음이 잘 와지지를 않아요. 그래서 뭐 죽어도 안되니까! 믿으려고 몸부림치면서 믿습니다. 믿습니다. 그렇잖아요.
그런데 사실은 여러분 보세요. '믿습니다! 믿습니다!' 고함을 지르는 것은 안 믿기 때문에 고함을 지르는 겁니다. 진짜 믿으면 아무 말도 안 해요. 고함을 지를 것도 없어요. 그러니까 뭐, '믿습니다! 믿습니다!' 하다가 안되니까, '믿! 믿! 믿습니다!' 그러고, 이게 뭐냐? 믿으려고 몸부림치는 겁니다. 그냥 막 '많이 믿자! 크게 믿자!' 이런 것으로 자꾸 이해합니다. 믿음은 그런 것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오늘 성경으로 돌아가서 도대체 믿음을 얼마만큼 가져야 되느냐! 얼마만큼 믿어야 되느냐! 그 이야기를 성경에 오늘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산을 옮길만한 믿음 그러니까, 또 산만큼 믿음이 있어야 되는 줄 아는데, 그 믿음이 어느 믿음이냐! 전혀 생각밖에 이야기입니다. 얼마만큼 믿어야 됩니까? 겨자씨만큼, 겨자씨만큼! 저는 이 말씀을 가만히 보면서 더 붙여 가지고, 겨자씨는 뭐냐하면 씨 중에 제일 적은 씨가 겨자씨입니다. 제가 이스라엘에 가 가지고, 전에 성지순례 가서 겨자씨를 가지고 왔어요. 가지고 왔는데 이게 얼마나 적은지 책갈피 속에 넣어 왔는데, 어디 갔는지 흔적이 없어요. 지금까지 못 찾았습니다. 이 겨자씨! 씨 중에 제일 적은 씨입니다. 여러분 그 혹시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만은, 채송화 씨, 그것보다 훨씬 적어요. 농사짓는 사람 채송화 잘 모르면 담배 씨 있잖아요, 옛날에 안 믿을 때에 담배 심어 봤던 사람들은... 나는 초등학교 때에 학교에서 담배를 했어요. 나는 담배를 전혀 모르는데, 그때에 담배를 하고 담배를 이렇게 넣고 담배 찌고 하는 것, 한번 학교에서 체험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담배 씨도 그렇게 적더라 구요.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씨 중에 제일 적은 씨가 겨자씨입니다. 결국은 뭐냐하면, 믿음! 그럴 때에, 어떤 부피나 양으로 이게 측량이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나는 여기서 어떤 믿음이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냐! 우리 예수님께서는 여기 성경에서 겨자씨 믿음이다! 겨자씨처럼 적어도 된다! 그랬는데 저는 여기에 덧붙여 가지고 더 알기 쉽게 받아합시다. "보이지 않는 믿음!" 안 보이는 게 정상입니다. 믿음은 안 보여요. 부피나 크기로 보이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 보이지 않는 그 믿음이 뭐냐? 겨자씨 알만한 믿음이다. 그 말이 뭐냐? 이걸 가지고 주경을 했는데, 신학자들이 주경 하는데, 제가 주석을 참고해 보니까! 거의 많은 경우 '생명이다!' 싹이 트는 생명의 힘으로 자꾸 이야기를 해 놓았더라 구요. 그러니까 '씨앗은 바위를 뚫고 올라온다!' 이런 식으로... 여러분 뭐 흙을 뚫고 올라오는 것이, 또 돌을 뚫고 올라오는 것이 생명 아닙니까! 그러나 그런 것보다도 뭐냐하면, 이것은 생명 자체를 말하는데, 씨앗이 생명을 바위를 뚫고 올라오는 그런 어떤 힘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이 생명은 누구의 생명이냐! 어떤 생명이냐! 누구입니까? 그리스도의 생명이다. 이 말은 뭐냐? 하나님의 생명이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이 말은 모든 생명의 근원입니다.
여러분 지금 아셔야 될 것이 겨자씨 만한 믿음이다! 이 말은 아주 적다 그런 정도가 아니고, 그 믿음에 대한 본질을 말합니다. 무슨 믿음이냐? 하나님의 생명이다! 그러면 여러분 자연스럽게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문제 해결 자다! 이해가 되는 겁니다. 여러분 모든 문제 해결 자다!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다! 그럴 때에,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문제해결 자다! 그대로 연결되는 겁니다. 이 생명이 들어가 버리면 연결되는 것 아닙니까!
그 다음에 더욱 중요한 것은, 이 생명이 모든 문제 해결 자다! 그럴 때에 이 생명이 창세기 3장을 해결하셨고, 여러분과 저의 영원한 죽음과 멸망과 저주에 운명에서부터 완전히 해방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부르는 순간에 여러분의 운명과 여러분의 방향에 완전히 바꾸어 졌습니다. 그러면서 이 말씀 속에서 중요한 것은, 이 생명 받았다! 이 생명 얻었다! 그럴 때에 뭐가 되느냐? 하나님의 주권 속으로 들어왔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여러분과 제게 이 생명 주시면서 절대로 망하지 않게 하시는 축복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주권 속으로, 주인공이 되어 버렸습니다.
저는 그 드라마를 볼 때에 뭔가 이 감정을 유발하는, 특별히 애정 드라마라든가, 이런 것은 왠지 모르게 좀 뭔가 그래요. 제가 좋아하는 것은 액션 드라마, 액션 영화, 이런 것을 상당히 좋아합니다. 뭔가 시원하고 깨끗해요. 다른 것을 보면 뭔가 찌지 한 게 남아 있는 것 같고, 그런데 거기에 보면 뭐냐하면, 아무리 위태롭고 어려운 것이라도 주인공은 안 죽도록 되어 있더라 구요. 아무리 위태롭고, 희한한 위험이 있고, 폭탄이 터치고, 별 짓을 다해도 주인공은 안 죽어요. 안 죽도록 뭡니까? 작가가 계획을 해 놓았습니다. 기어코 안 죽는 것이 아니고 기어코 뭘 합니까? 승리하도록 만들어 놓아요. 거의...
지난 송구영신 예배 때 말씀했습니다. 야곱을 향해서 야곱 이름에 뜻이, '교활하다!' 뭐 이런 뜻이고, 야곱의 성질도 역시 그렇거든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무슨 이름을 주었습니까? '이제는 야곱이라 하지말고 이스라엘이라 하라!' 이스라엘이 뭐냐하면, 승리자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이름을 고쳐놓고, 야곱을 계속해서 승리로 이끌어 가시는 그 역사가 성경의 기록에 역사더라 구요.
그런데 여러분 아실 것은, 야곱이 승리의 이름을 받았지만, 받고 난 이후에 즉시 꽃방석 위에 올려놓았느냐? 아닙니다. 승리의 이름을 받아놓고 계속해서 어렵고, 힘들고, 고난받는 이런 일들이 연속이 되는 겁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든 고난이 연속이 되어져도 만나게 되는 것이 아니고, 그 과정을 통해서 결국 뭐합니까? 야곱이 승리하게 되고, 이스라엘에 족장이 되고, 족장이 된 정도가 아니고 이스라엘의 조상이 되는 이런 엄청난 승리의 자리에 올려놓았습니다. 예수의 생명이, 그리스도의 생명이 겨자씨 알보다 적다! 그런 말이 아니고, 그 생명이 얼마나 위대하냐? 하나님의 주권 속에 세워놓아 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과 저를 기어코 축복하실 이름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저를 축복의 주역으로 삼아 놓았습니다. 주인공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절대로 죽지 않습니다. 망하지 않습니다. 신기한 것은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넘어지고 쓰러지는 것 같아도, 그 모든 것이 합력해서 뭘 이루어요. 승리로 이루어 나갑니다. 여러분 2003년도 이 축복과 역사 속에 여러분과 저를 세웠습니다. 그러면서 성경이 말씀합니다. 이 믿음만 자리잡고 있으면, 여기에 '모든 문제 해결된다!' 그 말보다도 '산을 옮긴다!' 그랬습니다.
저는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모든 문제 해결 자다!' 보다도 '예수 그리스도 산을 옮긴다!' 금년도 '예수 그리스도 산을 옮길 수 있다!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 이 믿음이 오늘 청지기 주일 여러분과 제게 주시고 약속하신, 한해동안 이루실 역사입니다. 할렐루야!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사실을 구체적으로 이루어 나가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이 믿음을 어떻게 성취하며 이루어 나가느냐! 그럴 때에 성경은 뭐라 그랬느냐? 말씀을 믿는 믿음입니다. '겨자씨 알만한 믿음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다! 하나님의 생명이다!' 그럴 때에, 말씀입니다. 여러분 예수를 뭐라 그러느냐? 씨라 그랬습니다. 말씀을 또 씨라 그랬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 23절에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뭡니까? '말씀이다!' 그랬습니다. 말씀이다!
하나님의 생명이 들어가면 저절로 나오는 것이 뭐냐하면, 여러분 이상합니다. 말씀을 믿는 믿음이 생깁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생명이 들어갔다! 겨자씨 알만한 믿음이 있다! 그 말은 말씀을 믿는 믿음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생명이 들어가면요, 말씀이 믿어져요. 이 자리에 앉아있는 사실 자체가 뭘 믿기 때문에, 말씀을 믿기 때문에 말씀을 듣는 겁니다. 이 말씀을 들을 때에 이상하게 말씀을 듣는 동안에 말씀을 믿고, 말씀을 들을 때에 여기에 모든 것이 나오거든요. 힘이 나오고, 생명이 나오고, 여기에 응답이 나오고, 다 나오는 것 아닙니까! 말씀이 믿어지더라!
그래서 저는 그 신기한 것은, 신앙생활에서 제일 어려웠던 부분이, 말씀을 믿기까지가 제일 어려웠습니다. 아마 여기 교회 오신 여러분들이 말씀을 믿기까지가 제일 어렵습니다. 이게 힘들어요. 말씀을 믿는 그때부터 뭐냐? 당장 주일날이 기다려지고, 이 시간이 기다려지는 겁니다. 그러면 신앙생활은 뭐냐? '예배를 잘 드려라! 뭘 잘 드려라! 뭐, 예배에 승리하자!' 저절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따라오는 것이지, 신앙생활은 따라오는 것이지, 신앙 생활은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주일날 여기 오는 것도 따라 오는 거죠. 저절로... 이걸 억지로 만들려고 하면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좀더 쉽게 좀 이해를 좀 하고, 올 한해에 좀 붙잡아야 되겠습니다. 말씀을 믿고, 말씀을 붙잡고 행동해야 기적이 나옵니다. 그래서 그 어떤 그 신학자가 어떻게 이해를 했느냐 하면, '말씀을 붙잡고 행동하면 능력이 나온다! 기적이 나온다!' 그랬어요. 그런데 말씀을 붙잡고 행동하는 것을 뭐냐? '믿음!'이라 그랬습니다. 믿음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이 약속한 것을 딱 붙잡고, 위대한 승리라는 것이 성경 전체 내용이 아닙니까!
엘리야가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다가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는데, 하나님의 약속 붙잡고 기도하다가, 멀리 조그마한 구름이 오는 것을 보고서 그 구름! 하나님의 약속이거든요. 그걸 붙잡고 뭡니까? '이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비가 온다!' 그러면서 그냥 달려갔잖아요. 비가 3년 6개월 동안, 하늘이 막혔던 이 하늘에 큰비가 내렸다는 것이 성경에 기록입니다.
더군다나 구체적으로 신약에서 보여준 것은, 누가복음 17장 14절에 보면 "보시고 가라사대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저희가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열 문둥이에게 예수님께서 뭐라 그랬느냐?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라!' 그러니,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붙자고 이들이 안 나았습니다. 아무런 기미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붙잡고 행동하는 도중에 나아버렸어요. 이게 해결입니다.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신앙생활하면서 뭐가 안 되느냐? 말씀은 따로 있어요. 믿습니다. 그러는데 뭘 믿는지 모르겠어요. 자기 신념을 믿는지, 아니면 자기 생각을 믿는지, 맨 날 '믿습니다!' 그러고 '주여, 믿습니다!' 그러고 '믿음 주옵소서!' 무슨 믿음을 달라고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맨 날 그러는데 말씀은 따로, 여기에 플러스 행동이 안되어요. 아니 플러스 삶이 안 되어요. 쉽게 말해서 그러니까 뭐가 안 되느냐? 기적이라는, 능력이라는 연결이 안됩니다. 다 여기서 역사가 안 되는 겁니다. 교회 10년, 20년 믿어도, 백 번, 천 번 믿어도, 말씀 따로 내 삶이 따로, 이게 안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 이 한해를 붙잡아야 될 것이, 말씀! 약속 아닙니까! 약속잡고, 그 약속이 내 삶에 되도록 연결시키는 겁니다. 이게 믿음입니다. 그러니 산을 옮길만한 믿음! 바로 이겁니다. 여러분 말씀잡고, 조금만 행동하게 되면 바로 거기서 기적이라는 역사가 나오도록, 성경이 그렇게 약속했습니다. 이것이 지금 안되고 있습니다. 올해에 이것만 조금만 되면, 여러분 조금만 마음을 가지고 이 상황이, 사건이 이루어지게 되면,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이루어지게 되죠.
그래서 이것을 좀 공식으로 삼아 봐야 됩니다. 뭐냐하면, 한번 받아합시다. "말씀을 생활화하자!" 쉽게 말해서 오늘도 선교 헌금을 작정한다! 이래서 뭐 청지기 주일이다! 그렇게 말하고있는데, 사실 그 말보다도, 말씀을 생활화하기 위한 작정입니다. 다른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제정에 축복해 주시겠다! 절대로 너희 하는 일에 헛되지 않게 하시겠다!' 약속을 해 놓았습니다. 그 약속을 했는데, 약속의 배경에서, 재정 축복의 약속에 배경에서 뭘 우리에게 요구했습니까? 십일조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십일조라는 말은, '하나님 앞에 내 있는 것 드린다!' 그 말이 아니고 무슨 이야기냐 하면, '내가 일하고 내가 받은 것, 내 것이 아닙니다! 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았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다 드려야 되는데, 하나님께 다 드린다는 표로 열을 받아 가지고, 아홉은 내가 먹고, 하나만 드리자! 그것이 구약에 기본 개념입니다.
신약에 바울에 개념은, 십일조를 그렇게 강조 안 했습니다. 왜? 바울은 열 받았느냐? 열 다 드렸습니다. 생명까지 다 드려버렸습니다. 이게 신약에 하나님 앞에 드린다는 개념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믿음이 적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 그런 결단을 못하잖아요. 못하니까, 가장 기본적인 개념이라도 좀 바로 하자! 이래서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 제정 축복, 제정축복! 말로 하지말고, 하나님께서 얼마든지 축복해 주실 수 있는데, 축복을 담을 수 있는 말씀을, 재정에 말씀을 생활화해야 된다! 그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십일조 드린다! 그 개념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받는 것 다 드리면 좋죠. 다 드려도 삽니다.
저는 그 시골에 한번씩 다닐 때에, 옛날입니다. 아주 그 그때는 옛날 아닙니까! 가 가지고 뭐까지 선언해 봤느냐 하면요, 교회 들어가니까 아무것도 없어요. 전도사한테 줄 사례도 없고, 그래가지고 뭘 결단했느냐 하면, 하나님 내가 받은 것 다 드립니다. 하나님이 내 삶을 책임져 주세요. 그런데 다 드렸는데 하나도 어려운 것이 없더라 구요. 구체적으로... 그래가지고 차츰 차츰 제가 뭔가 이 규칙을 정한 것이 뭐냐하면, 십일조 드리는 것은 드리는 것이지만, 십 이조, 그 다음에 십 삼조, 그렇게 이제 생각했던 것이 그 전도사 때부터입니다. 그 어려울 때 아닙니까, 그게 지금까지 쭉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 교회에서는 공식적으로 제 생활에, 여러분들이 기도하면서 결정하세요. 그러나 저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 생활에 제가 사례비를 받으면 1/10은 십일조입니다. 그 다음에 2/10는 선교헌금입니다. 그 다음에 3/10은 주일헌금입니다. 주일 헌금은 제가 주일날 나올 때마다, 제 지갑에 미쳐, 헌금 봉투가 여기 있으니까, 제 지갑에 작년 같은 경우에는 11만원을 드립니다. 올해는 제가 계산을 해 보니까, 하나 더 드려서 12만원을 넣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보세요. 처음 아무 생각 없이 처음 아마 3/10조를 드린다! 그래가지고 주일날 마다 십 몇 만원을 드린다. 이러면 처음에는 굉장히 부담이 나올 겁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제가 느껴보니까 뭐냐하면요, 이게 오랜 습관이 되어 버렸어요. 당연한 습관이 되어 버렸어요. 그래서 토요일 날이 되면 응당히 뭐냐하면, 지갑에 나도 모르게 저절로 준비가 되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 집에 분위기가, 그래서 우리 집사람도 이렇게 지갑을 보고, '내일 헌금할게 없네요!' 왜? 몇 만원 있어도 그건 헌금이 아니거든, 그러니 응당히 뭔가 이게 생활이 되어 버렸습니다. 생활화! 그러면 드린다는 그런 개념에서, '뭔가, 내가 얼마 드렸다!' 그런 개념이 없어져 버려요. 그냥 그러면 그 이후에 문제는 뭐냐?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제가 이렇게 소개를 한 것은 다른 게 아닙니다. 첫 번에 이렇게 할 수 있기까지 몇 번, 몇 번 문제들이 있더라 구요. 그래서 뭐 넣어 놓았다가 떼어먹었다가, 또 넣어놓았다가, 뭐 '하나님 내가 바쁘니까 내가 먼저 씁니다!' 그러고 별 짓을 다했습니다 만은, 이게 시간이 가면서 뭐냐? 내 생활이 되어 버렸습니다. 내 생활이 되면서 생활할 때에, '이렇게 하면 복 받는다!' 이런 개념이 아닙니다. 성경에 약속하신 것이니까! 이걸 내가 그대로 생활화 해 버립니다. 축복 주시고 안 주시고 하나님이십니다! 나는 뭘 말하고 싶으냐 하면, 그래서 박 목사가 돈 많이 받는다! 그래서 박 목사에게 하나님이 경제의 축복 주셨다! 그런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일에, 제가 목회 한 여러분에게 뭐냐? 재정적으로 반드시 하나님이 은혜 주실 것입니다.
아울러 교회 건축 간단합니다. 그런데 교회 건축 그럴 때에, 건축헌금 그럴 때에 뭐냐? 생활이 나도 모르게 응당히 내가 이 일에 헌신한다! 생활이 되어 버리는 거니까! 이게 안되면 뭐가 오느냐? 조금만 돈 내어놓고, '하나님 돈 냅니다, 돈 이만큼 주십시오!' 이런 게 자꾸 들어오는 겁니다. 하나님께 드린다! 그게 생활이에요. 성경에 약속하고, 내가 싫으면 그만입니다. 그 다음에 역사는 하나님이 역사 하는 기적입니다. 하나님께 열매 맺는 것이죠. 이런 문제가 오늘 여러분 십에 이조, 선교헌금 작정! 그럴 때에 하나님 앞에 말씀을 생활화하는 것이다! 그렇게 이해를 하셔야 됩니다.
그러면 이게 주일성수! 주일날을 거룩하게 지킨다! 이걸 생활화 시켜야 합니다. 이게 안되면 약속을 했는데, 거룩한 주일! 하나님의 말씀가지고 예배드리고, 성수 하게 될 때에 반드시 축복해 준다! 약속했거든요. 그런데 여러분 주일성수라는 것이 말씀으로 생활화 안 되면, 이게 안되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 여러분 주일 성수 한다! 여러분 보세요. 안되게 되어 있어요. 참, 어렵습니다. 뭐 간단하게 주일날 가만히 앉았다고 됩니까? 주일날 교회 앉았다 가면 됩니까? 일 하나도 안 한다고 됩니까? 정말로 주일성수는 이것이 한 주간 내내 주일날을 위한 준비가 되어야 됩니다.
토요일 날 되었다! 여러분 주일날, 저녁에 일도 안하고 뭘 한다! 그런 개념이 아니거든요. 주일을 위한 계속한 준비가 되는 겁니다. 나도 모르게 이 주일 성수가 말씀에 생활화되면, 그러면 토요일 날도 그렇게 그게 인도가 되거든요. 그런데 토요일 날 뭐 다 모아 놓았다가 뭐 많이 한다고, 토요일 날 빨래한다고, 여자들 같은 경우에는 저녁에 1시, 2시 새벽 2시, 3시까지 하면 주일날 되면 1부 예배, 2부 예배 들어갔다! 혼돈이 옵니다. 어지간한 모든 문제는 토요일 날, 주일에 방해될 수 있는 문제다! 다 미루어 버립니다. 저절로 자기도 모르게...
이것이 쭉 생활화 되게 되면, 주일날 하나님 앞에 말씀 듣고 예배드리는 것이 맨 정신으로 저절로 준비가 되게 되어 있습니다. 어디 가는 모든 문제, 이런 모든 문제, 저절로 이게 생활화되어야 되는 것이지, 그러니 생활화되면 뭐가 되느냐 하면, 주일날 뭔가 손해 보는데, 이게 없어요. 이게 생활화되면 나도 모르게 주일 성수에 체질이 됩니다. 체질이 되면 뭐냐? 주일을 내가 일 안 한다, 조급하다! 이런 게 없습니다. 거룩한 주일에, 성수 하는 것에 체질이 되면 뭐냐? 진짜 거룩한 주일! 예배드리는 것에 체질이 되면, 누림이라는 말이 따라오게 됩니다.
여러분 누림이라는 것이, 뭐 내가 갑자기 뭘 어떻다! 예수 그리스도 누린다! 그 말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거룩하신 주일 성수, 말씀이 생활화되고 습관이 되면, 내게 체질화됩니다. 이러면 뭐냐? 누림이라는 것이 여기에 따라오게 됩니다. 이게 따라오게 됩니다. 누리는 것이 갑자기 뭐 하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나라 속담에, 세 살 버릇이 얼마까지 가요? 여든까지 갑니까! 세 살 버릇이 죽을 때까지 갑니다. 죽을 때까지 가는 정도가 아니고, 영원히 갑니다. 뭐냐? 습관은 제2의 천성이라는 그런 말이 있죠. 그래서 여러분 말씀에 약속을 잡고 습관화 시켜야 됩니다. 생활화 시켜라! 그 말입니다.
여기에 따라오는 것이 뭐냐? 누림이라는 말이 저절로 이해가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생명 말씀 붙잡고 습관화시킵니다. 여러분 재정, 경제, 하나님의 참 믿음으로 서게 될 때에 귀가 어둡습니까? 손이 없습니까? 축복하시겠다고 약속했는데, 뭐가 안 되느냐? 누림이 안되어요. 누림이 왜, 안 되느냐? 습관화가 안되어요. 말씀에 생활화가 안되어요. 말씀 따로, 돈 따로 입니다. 말씀 따로, 욕심 따로 입니다. 여기에 모든 게 나와있어요. 겨자씨 알만한 믿음, 참 생명이 있다면 말씀을 나의 습관으로 삼아야 됩니다.
여러분 올해에 청지기 주일, 간단하게 내가 얼마 작정했다! 그렇게 생각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삶이 되게 하옵소서!' 그러면 '하나님에 약속의 축복이, 경제의 축복이 내게 누림이 되게 해 주옵소서!' 구체적인 역사가 나오는 것 아닙니까! 우리 자신도 모르게 사람, 사람 사이에... 여러분 교회 생활하다 보면 제일 어려운 것이 뭐냐하면, 사람, 사람 사이에 감정 갈등입니다. 왜? 사람이 모여있는 단체이기 때문에, 그러면 여러 사람이 일하다보면 여러 가지 문제가 많지만, 제일 어려운 것이... 그래서 교회에서 시기, 다툼, 질투라는 문제가 그래서 나오는 것이거든요. 나올 수 없는 문제인데, 여러 사람이 모여 있다보니 그런 문제가 생깁니다.
그런데 우리의 체질들이 아주 저주의 체질이 되어 가지고, 이게 잘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내 생활이 성경 말씀대로의 생활이 아니고, 다른 것이 생활화되어 가지고 조금 말 들으면 남을 비판하고, 남을 정 죄하고 이런 게 되어 있거든요. 그런데 여러분 잘 아셔야 합니다. '비판하지 말라!' 말씀이 생활화되어야 됩니다. 남의 말을 딱 들었거나, 남을 비판하는 말을 들을 때에, 생활화되어야 됩니다. 어떻게 걱정과 근심으로, 염려로 생활화되는 게 아니고 그 말 딱 들으면 무슨 생각이 드느냐, '하나님 누가 내 말하네요, 하나님이 알아서 하십시오!' 나도 모르게 하나님께 모든 염려, 걱정, 근심을 어떻게 하느냐? 맡겨 버리는 것이 약속을 잡고, 이게 근거 없이 맡겨버리면 맡겨지지도 않지만, 맡겨 버리는 것이 생활화되어야 됩니다. 이게 습관화되어야 됩니다.
목사에게 가장 어려운 문제가 뭐냐하면요. 나는 그 요즘은 어떤 면에서 '생활화되었다!'라기보다도 뭐 조금 단련이 된 것 같죠. 누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간단합니다. '아버지 누가 무슨 말하네요!' 이러고는 맡깁니다. 잊어버립니다. 이 기억이 안 나요. 그런데 이것이 특별히 젊을 때는 뭐냐하면요, '네가 그런 말했지!' 이래가지고 기도하려고 그러면 그게 떠올라요. 그게 떠오르면 무슨 생각이 드느냐 하면, 그게 떠오르면 좋은 기도가 안 나오고, 나오 모르게 엉뚱한 게 나가다가, '이러면 안되지, 목사는 축복하기 위해서 세워 놓았는데...' 자꾸 다른 소리가 나가려고 해서, 그런 게 그게 참 어렵더라 구요.
뭐냐하면요. 나도 모르게 그런 것을 들을 때에, 하나님께 그들에게 축복하실 저들도, 복음 들어가고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가면 해결되는 것 아닙니까! 이런 어떤 생각들이 말씀 붙잡고 이게 한번하고, 두 번 하고, 세 번하면 나도 모르게 습관화됩니다. 나도 모르게 생활화되어 버리는 겁니다. 염려, 걱정, 근심 나올게 없어요. 여러분 혹시 무슨 문제가 있으면 팔자로 걱정하지 마시고, 무슨 문제 있으면 팔자로 걱정합니다. 하여튼 걱정을 생활화해요. 걱정을 체질화해요. 염려를 체질화해요. 이런 게 나오거든 당장 들어서 주님 앞에 맡기는, 말씀을 잡고 맡기는 사실을 습관화, 생활화! 이 사실이 되어져버려야 됩니다.
그러면 뭐가 오느냐? 따라서 누림이라는 말이 오게 되어있습니다. 뭐 누림, 누림! 그러면서 말씀은 전혀 안 붙들고, 전혀 말씀과 상관없이 걱정, 근심, 비판! 이것만 혼자하고 있는데, 뭐가 누려집니까? 안되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말씀 붙잡고, 말씀이 내게 생활화되면 모든 분야가 뭐가 되느냐? 누림이라는 엄청난 기적이 따라옵니다. 여러분 누림이라는 그게 기적의 역사입니다. 그게 보통 역사가 아니죠. 이런 배경에서 여러분 기도! 무슨 문제 생기면 기도가 습관화되어야 됩니다.
무슨 문제가 딱 생기면 뭐냐? 뭐 문제 생기자 말자, 오늘 저녁에 내가 기도해야 되겠지 그렇게 미룰 것도 없어요. 딱 문제 생기면 자기도 모르게 습관이 어떻게 되느냐? 탁 탁 탁 탁 행동해 놓고, 머리로 탁 탁 탁 탁 돌려 가지고 다 해놓고, 그래놓고는 행동을 다하고 난 후에, '내가 기도도 안하고 했네!' 이래가지고, '하나님, 이렇게 했습니다, 저렇게 했습니다!' 보고로 하는 기도이지, 거의... 이게 뭐냐? 무슨 문제 생기게 되면 딱 뭐냐? 습관이 되어야 됩니다. 아버지 문제 생겼네요, 어떻게 해야됩니까? 성령으로 인도해 주옵소서. 이게 뭐냐? 약속 붙잡고, 기도하는 것이 습관화되어야 됩니다.
그러니 문제 생기면 바로 연결되어야 되지, 문제 생기면 다른 데로 실컷 갔다가, 다했다가 늦게 가서 이렇게 되니까! 이 일이 안됩니다. 말씀 따로, 습관 따로, 생활 따로, 누림 따로, 누림은 자기 생각에 다! 늦게 자기 혼자 다 해놓고, 자기 생각과 마음을 누리는 것이지, 하나님의 말씀을 누리는 것이 안되더라 구요. 이러니까 어려운 문제입니다. 여러분 되도록 되어 있다! 이번에 조금 말씀합니다. 이것이 조금만 이루어지면,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다! 모든 문제 해결 자다!' 백 번, 천 번해도 이 말씀이 내게 연결되지 아니하면, 우리에게는 구체적인 축복이, 기적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 여러분 뭐, '선교 헌금을 결정한다!' 그러기보다도 내가 하나님 앞에서 선교하는 자세로, 선교하는 자세가 말씀화 되고, 생활화되고, 습관화 될 때에 뭐냐? 체질이 됩니다. 앉으면, 서면, 어디 가든지, 딱 나오는 것이 뭐냐? 전도 생활화! 기도 생활화! 그 다음에 헌금 생활화! 여러분 헌금 생활화 이게 정말 중요합니다. 딱 내게 되어 버려야 쉽습니다.
그래서 뭔가 제게 있어서 나도 모르게 뭐냐하면, 뭔가 딱 사례를 받는다! 안 그러면 뭐가 내게 딱 나온다! 그러면 돈이 좀 생긴다! 생기면 생기는 즉시 뭐냐? 주머니를 달리 하던지, 안 그러면 지갑을 달리 하던지, 당장 거기서 십일조, 십 이조 이게 생활화되는 겁니다. 그러면 거기에 대해서 전혀 생각이 없이 그냥 그렇게 돌아가 버립니다. 응당히 딱 문제가 닥치면 돈이 얼마 왔다! 그러면 그 돈에 십일조, 십 이조를 제한 것에 대한 계획이 나오지, 그걸 다 합쳐서 안 나오거든요. 생활화! 그러면, 습관 그 다음에 거기서 누림이라는 것이, 하나님의 기적으로 여기에 나오는 겁니다. 그 다음에 문제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여러분 세계를 살리겠다는 이 축복의 역사가 여러분 삶에 재정도 말씀으로 통해서, 기도도 전도도 말씀으로 통해서, 여러분과 제게 생활화되고 습관화되고, 이어서 누림이 되어지는 하나님의 엄청난 축복이 이 한해에 체험되고, 이 체험이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한해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서론
2003년에는 산을 옮길 만한 믿음으로 삽시다.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20절)'
● 본론
1. 성경은 믿음을 굉장히 강조합니다.
(1)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막9:23)
(2) 너희 믿음대로 되리라.(마9:29)
(3)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처럼 강건하라.(고전 16:13)
(4)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는다.(벧전1:5)
2. 믿음의 본질은 하나님의 생명입니다.
(1) 우리가 믿는 것은, 믿어지는 것입니다.
(2) 믿음은 양으로 따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진정으로 믿는다면 몸부림치지 않고 잠잠합니다.
(3) 겨자씨 만한 믿음은 보이지 않는 믿음이요, 하나님의 생명을 뜻합니다.
(4) 하나님의 생명에 모든 해답이 있습니다.
① 그 이름은 우리를 죽음과 저주와 멸망에서 완전히 해결하였습니다.
② 그 이름으로 생명을 얻을 때, 하나님의 주권 속으로 들어왔습니다.
③ 하나님은 생명 얻은 우리를 절대로 망하지 않는 축복의 주인공으로 세우셨습니다.
④ 생명 얻은 우리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승리하게 됩니다.
3. 믿음은 어떻게 성취하고 이루어집니까?
(1) 썩어지지 아니하는 말씀으로 되어집니다.(벧전1:23)
(2) 하나님의 생명이 들어가서 겨자씨 만한 믿음이 있으면 말씀이 믿어집니다.
(3) 말씀을 믿고, 붙잡고, 행동해야 기적이 나옵니다.
(4) 말씀을 붙잡고 행동하는 것이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5)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이란, 말씀을 붙잡고 행동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 결론
"말씀을 생활화합시다." 선교헌금을 바치는 것도, 건축헌금을 바치는 것도,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도, 문제와 사건 속에서 기도하는 것도 말씀을 생활화하기 위한 행동적 실천입니다. 습관은 제2의 천성입니다. 말씀을 붙잡고 행동하는 것이 우리의 삶에 생활화될 때, 기적과 누림이 따르게 됩니다.
● 기도제목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것이 나의 삶에 생활화되게 하여 주옵소서.
번호 | 제목 | 본문 | 설교일 | 첨부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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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7 |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 삿2:6-10 | 2025-03-09 | |
1476 |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 삿1:1-7 | 2025-03-02 | |
1475 |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 단12:1-4 | 2025-02-23 | |
1474 |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 단11:28-39 | 2025-02-16 | |
1473 |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 단10:10-21 | 2025-02-09 | |
1472 |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 단9:20-24 | 2025-02-02 | |
1471 |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 단8:15-27 | 2025-01-26 | |
1470 |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 단7:9-14 | 2025-01-19 | |
1469 | 자기의 하나님을 믿음이었더라 | 단6:16-28 | 2025-01-12 | |
1468 |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 단5:17-31 | 2025-01-05 | |
1467 | [2025 송구영신예배] 하나님의 유업을 이을 자 | 갈4:4-7 | 2024-12-31 | |
1466 | 땅의 모든 사람을 다스리시는 하나님 | 단4:28-37 | 2024-12-29 | |
1465 | 완전한 승리를 내 것으로 누리는 성탄 | 눅2:8-14 | 2024-12-22 | |
1464 | 언약의 역사를 계속 이어가고 계시는 하나님 | 단3:8-18 | 2024-12-15 | |
1463 | 손대지 아니한 돌 | 단2:25-35 | 2024-12-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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