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자의 온 것은
2004-05-07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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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20:20)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미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마 20:21)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엇을 원하느뇨 가로되 이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마 20:22)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나의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저희가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마 20:23) 가라사대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마 20:24) 열 제자가 듣고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마 20:25)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가라사대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마 20:26)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마 20:27)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마 20:28) 인자가 온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오늘 제목을 "인자의 온 것은" 그랬습니다. 예수님이 온 이유는 그런 내용이죠. 예수님께서 왜 오셨습니까? 여러분과 저를 위해서 죽으시기 위해 오셨어요. '죽으시기 위해 오셨다!' 그 정도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대속물로 오셨다!' 그랬습니다. 왜? 구원 주시기 위해서! 결론이 바로 이런 내용이 되겠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시죠. '사랑하는 자여 내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된다!' 그러면서 여러분과 저를 향해서 오늘도 주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가 신앙생활 잘 하는 것 보다, 그 소식 듣는 것 보다 더 기쁨이 없다!' 이것이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그런 말씀입니다.
어떤 면에서 우리 가정에 소원이 있다! 또 가정의 자녀에게 소원이 있다! 이랬으면 좋겠다! 저랬으면 좋겠다! 그러지만 진실한 성도의 기쁨과 또 우리 모두의 기쁨이 다른 게 아닙니다. 자식들에게 향한 기쁨이 하나 있다면 받아합시다. "네가 신앙생활 잘 하는 것이다!" 무슨 말입니까? '예수 잘 믿는 것이다!' 여러분 성도들이 뭐 '복 받았다!' 이번에 수입이 좋았다! 이번에 참 뭔가 기쁘다, 기분 좋다! 뭐 집을 샀다! 이런 것을 듣는 것도 참 교역자에게 기쁨이 되지만, 가장 기쁨이 되는 것은 한번 받아합시다. "내가 예수 잘 믿는 것이다!" 다른 게 없어요. 여러분들이 신앙생활 잘 하는 것, 예수 잘 믿는 것 보면 그 이상 더 기쁘다, 즐겁다! 더 이상이 없죠.
우리에게 참 신앙생활 바로 한다, 잘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기쁨이요, 여러분의 기쁨이요, 우리 모두의 기쁨입니다. 이것이상 다른 것이 없다.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잘 믿는다! 그것이 어떤 면에서 가장 한마디로 말한다면 갈라디아서 2장 20절이 되어야 되고, 또 오직 하나님만 신뢰할 수 있는 이런 어떤 배경이 되어야 되는데, 이 갈라디아서 2장 20절! 예수 잘 믿는 것보다도 거의 반대방향으로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괴로움이요, 교회의 고통이다!' 싶어요.
다시 말하면 무슨 말을 들수 있느냐 하면, '예수 잘 믿는다!' 그러면 '내 안에 내가 죽고, 예수님의 뜻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성취되는 것!' 이것 아닙니까! 그런데도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는 것보다도 내 뜻이 이루어지고, 내 욕심이 이루어지고, 이것이 이루어지는 것이 성도의 기쁨으로 살고 있으면 이것은 이제 큰 고통이죠. 그래서 우리 신앙생활에 가장 중심이 뭐냐하면, 내 소원이 이루어졌다! 그것보다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다!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었습니다. 나에게, 우리에게, 우리 가정을 통해서, 내 아들을 통해서, 우리 교회를 통해서 내 뜻이 이루어졌다! 그게 아니고, 하나님의 뜻이 성취됩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습니다. 이것이 가장 축복된 은혜요, 또 기쁨의 내용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신자들은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는 것보다도, 문제는 뭐냐하면, '내 욕심이 이루어지는 것!' 이게 모든 불신자들의 사는 중심입니다. 내 욕심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그러니까 내 이익이 안 되고, 내게 유익이 안되고, 내 욕심이 안 될 때는 거기에 시기가 있고, 다툼이 있고, 모든 게 나오잖아요. 그런데 여러분 이것을 똑같이 교회 안에 이렇게 보면, 어떤 것이냐 하면, 불신자들과 똑같은 양상을 보게 됩니다. 교회 안에 와서도 예수 믿는 것도 내 욕심이 이루어지고, 헌금하는 것도 내 욕심이 채워지고, 헌금 만원하면서 '하나님, 20만원 주실 줄 믿습니다!' 어떤 이런 기대! 내가 이제 예수 믿으면서도, 뭔가 어떤 그 내 나름대로의 욕망과 욕심이 채워지는 어떤 그런 배경들이 거의 깔려있다는 것을 우리가 보게 돼요.
그렇다 그러면 뭐와 같으냐? 그러면 예수 믿는 사람이나, 예수 안 믿는 사람이나 똑같은 삶으로 방법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개인의 욕심, 개인주의! 그 다음에 이것이 조금 더 나아가서 개 교회 욕심, 개 교회 주의! 이런 방향으로, 그 다음에 민족주의, 민족욕심! 국가주의, 국가욕심! 뭐 이라크나 미국이 전쟁이 일어나는 것도 똑같은 배경이에요. 이게 전부 세상 배경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살았다는 것은 이런 동기가 충만하다는 겁니다. 열심히 노력한다고, 동기가 충만한 겁니다. 이것은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안 없어져요. 이게 언제 없어지느냐? '죽었다!' 이래 되어야 되는 겁니다. '아무개 몇 일날 죽었다! 돌아가셨다!' 이게 몇 일날 없어지는 것이죠. 그전에는 뭐 안 없어지는 겁니다.
그러나 이것이 없어지는 때가 있습니다. 그게 뭐냐? 갈라디아서 2장 20절, '내 안에 내가 죽고, 내 욕심이 죽고,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사는...' 이 기쁨이 회복 될 때에 비로소 이루어집니다. 그 다음에 여기서 모든 기도의 응답이 나오게되어 있습니다. 모든 축복과 역사가 여기서 이루어집니다. 지속해서 오늘 성경에서 특별히 18, 19, 20장 보면서 계속 나온 것이 뭐냐? 생명 구원! 이것이 계속 나옵니다. 뭐 그냥 신앙생활의 어떤 한 부분이 아니라, 전부 다 나옵니다.
지난주에도 무슨 약속이라 구요? 한 달란트의 약속! 여기에 다 있는 겁니다. '한 달란트 구원, 하나님의 나라!' 여기에 우리 모든 신앙에 전부가 이 약속에 있는 겁니다. 어린아이에서 믿었던지, 죽기 직전에 믿었던지, 몇 달란트? 한 달란트! 죽기 직전에 믿어 가지고 한 달란트 받는 것도 이 구원의 축복의 역사! 그러니 이걸 가지고 은혜 중에 은혜라 안 그럽니까! '하나님의 선하심과 축복하심이...'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축복과 이 은혜가 어릴 때부터 믿어서 하나님의 나라에 축복과 영광을 누리는 이 기쁨을 모두가 잊어버리고, 그저 천당 가는 그것만 생각하니까 문제가 되는 거죠. 우리가 신앙생활이 하늘의 영광, 그 나라 영광이 오늘 지금 내게 누려지고 이루어지는 이 사실이 체험되는 것, 여기에서 모든 헌신과 참 된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말하자면 신앙 생활하는 삶이 나온다! 그렇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여기에 보면 문제는 뭐냐하면, 이게 안 된다! 말하자면 개인의 욕심과 개인의 어떤 이것이 하나님 앞에 고하여지고, 이 욕심가지고 나가는 이게 해결이 안 되는 겁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을 따라 다니면서 최고의 스승,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그 놀라운 언약, 본체이신 그 분에게 말씀을 듣고, 그분에게 은혜를 받으면서도 이 해결이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마태복음 20장 20절에 보면 뭐라고 그러느냐 하면,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미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마 20:21)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엇을 원하느뇨 가로되 이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앉게 명하소서' 여기 이 말씀이 우리나라의 어떤 이야기로 한다면, '주님, 왕이 될 때에 좌의정하고 우의정은 우리 형제 주옵소서!' 그런데 그것도 이 제자들이 직접 나가서 구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 어머니 통해 가지고, '엄마, 이것 좀 구해달라고...' 비겁하게, 진짜 딱 자기가 나가서 하면 모르는데, 이게 지금 바로 전부 교회 안에도 이게 문제입니다.
이렇게 했을 때에 응답이 오느냐? 응답이 안 와요. 그러면 이때에 응답이, 이런 구함이 있을 때에 다른 제자들의 반응입니다. 다른 제자들이 똑같이 뭐라 그러느냐 하면요. 24절이죠. "열 제자가 듣고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똑같이 같은 수준이에요. '나도 우의정하고 싶다! 좌의정하고 싶다!' 이게 안되니까 뭐냐? 시기합니다. 이게 안되니까 막 다툽니다. 이게 안되니까 뭐냐? 분노합니다. 여러분 예수 믿는 수준이 거의 이 수준에 있어요. 그러니 이 수준에서 있는 이상은 예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응답이 있어요, 없어요? 절대로 없어요.
이때에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뭐라 그랬느냐 하면요. 간단한 말씀입니다. 23절이죠. "가라사대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 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할렐루야! 네가 원한다고 주는 게 아니고, 너의 원하는 것을 이루어 주는 것이 아니고, 뭐라 그랬어요? 받아합시다. "하나님, 마음대로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 그랬습니다. 이게 기도응답이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밤새도록 구하고, 욕심으로 구하고, 정욕으로 구하고, 이게 안되면 막 성이 나고, 분노하고, 막 이게 안되면 그냥 하나님 앞에 대어 들고 이런 수준입니다. 누구나 할 것 없이... 그때마다 우리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뭐라고 그랬느냐? '하나님 뜻을 이루는 것이다!' 하나님 원하는 데로... 누구를 주든지, '하나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받아합시다. "기도 응답은 하나님의 계획대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면 누가? '하나님의 계획을 붙잡는 사람이 기도응답을 받는다!' 그랬습니다.
그러면 여기에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다스림 속에 들어가는 사람이 기도응답을 받는다!' 그 말과 같은 것이거든요. 늘 그렇게 말씀을 드려 왔습니다. 하나님의 다스림 속에, 하나님의 계획 속에 들어가는 방법이 뭐냐?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순간부터입니다. 하나님의 주권 속으로 들어가는 길이 뭐라 그랬어요? 예수가 그리스도다! 이 축복과 은혜 속에 들어가는 순간에, 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순간에, 이 일이 이루어진다! 그랬습니다.
이때부터 기도응답을 받는다가 아니고, 받아합시다. "모든 것 준비되어 있다!" '가는 곳에 이루어진다!' 그랬습니다. '너희가 무엇을 달라고 할 것이 아니다! 이미 다 아시느니라!' 이 사실이 안되어 있고, 하나님께 다 맡겨지고,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만 바라보는... 그래서 예수 잘 믿는 사람이 안 될 때에 나오는 것이 뭐냐? 내어놓으라는 겁니다. 막 내어놓아라 그럽니다. 여러분 내어놓으라고 할 것도 없어요. 다 주었는데 벌써 다 주었어요. 예비하고 다 손에 쥐어주었어요. 그렇다 그러면 내어놓으라고 할 것도 없잖아요. 이것을 가지고 여호와 이레! 가는 곳마다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기도응답이요. 기도의 축복이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이것을 조금 더 세분해서 알기 쉽게, 보다더 구체적으로 좀 분석한다면 이렇게 되는 구체적인 그런 첫 단계를 한번 보십시다. 어떻게 되느냐? 구원의 기쁨이 있어야 됩니다. 사람은 막연하게 누구든지 하나님을 믿고 있다고 그럽니다. 특별히 교회 나오는 사람들은 다 하나님을 만났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잘 안다고 생각하거든요. 로마서 1장 19절에 보면,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롬 1: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 그랬습니다.
뭔가 이 땅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하나님의 역사로 충만하거든요. 그래서 우리의 양심 속에서도 하나님을 믿습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들도 그렇거든요. 그래서 언제든지 뭔가, '내 주먹을 믿는다!' 그러고, 야단치는 사람도 결국은 하나님 믿고 있어요. 자기도 모르게 보편적으로 그렇게 믿는다고 생각하는 그런 배경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잘 아는 데로, 중이 얼음 위를 걸어가다가 얼음이 깨어지는 소리가 나니까, 물에 빠지면서 뭐라 그랬다 그럽니까? '아이고, 하나님!' 내 주먹을 믿는다고 고함을 지르다가도 물에 빠지면, '아이고, 하나님!' 이럽니다. 본성적으로 우리 속에 하나님을 믿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런 어떤 본성적인 것을 가지고 있어요.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구체적으로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그렇게 되는 게 아닙니다. 속는 거죠. 그저 양심으로 하나님을 알 수 있고, 그 다음에 도덕적으로 하나님을 알 수 있고, 세상 삼라만상을 통해서, '하나님, 있다!'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것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랬습니다. 하나님을 사실적으로 만나야 되는데, 그 사실적으로 만나는 것이 바로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해야 되는 겁니다.
요한복음 14장 8절에 "빌립이 가로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9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예수님이 친히 말씀했습니다. 지금까지 나와 함께 있으면서, '지금까지 나와 같이 있으면서 어찌 아버지를 보이라고 하느냐? 하나님을 보이라 하느냐?' 나를 본 자는 누구를 봤습니까? 아버지를 봤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으로 아버지를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길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을 만나게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직접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그 분이 예수입니다. 예수가 다른 사람이 아닙니다. 다른 어떤 분이 아닙니다. 바로 그 분이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뭐라 그랬어요? '아들이시니이다!' 그랬습니다. 예수를 만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만나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를 만났다!' 어떤 인간적으로 느낌으로 그게 아닙니다. 예수를 만난다는 말이 성경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깨달아야 됩니다. 이 일이 어디서 이루어지느냐? 예수가 그리스도 되는 어디에서? 십자가에서 일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뭐 '십자가의 피!' 바로 그런 이야기입니다. 누가 그러더라 구요. '다락방에서는 피 이야기를 안 한다!' 그러는데, 다락방에서는 피 이야기를 어느 사람보다도 더 말합니다. 그게 뭡니까? 그리스도입니다. 십자가에서 피 흘리지 않으면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메시아, 피 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을 얻을 수 없습니다. 피 흘림이 없이는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을 만나는 길이 안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이 하나님을 만나는 길입니다.
창세기 3장에 빠졌습니다. 도저히 인간의 본능으로, 인간의 기능으로, 인간의 능력으로 나올 수가 없습니다. 여기서 이 죽음과 저주와 고통에서부터 나올 수가 없습니다. 바로 이 고통에서부터 예수께서 오셨습니다. 오셨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오셔서 대속물로 여러분과 저를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이 일을 완성 시켰습니다. 십자가에서 여러분과 저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고, 뭐라 그랬습니까? 나는 날마다 말해도 듣기 좋은 말, '다 이루었다!' 남아 있는 게 아닙니다. '노력해라!?' 남아있는 게 아닙니다. '오직 믿어라! 영접만 해라!'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 어려운 것도 아니에요. 너무 쉬어요. 너무 쉬우니까 못하는 것인지...
여러분 이때부터 오는 것이 있습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순간에, 이때부터 오는 것이 나와 여러분에게 일어나는 가장 기본적인 증상이 있습니다. 그게 뭡니까? 받아합시다. "속죄의 기쁨, 사죄의 기쁨!" 베드로가 구원의 역사를 말하면서 그 구원의 역사 속에 처음 말한 것이 뭡니까? '죄를 회개하라! 그러면 성령을 선물로 주리라!' 구원의 축복과 역사 속에 속죄를 말하면서, 베드로가 성령을 선물로 주겠다는 언약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베드로가 한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같이 우리에게 분명히 주신 말씀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2장 38절에 보면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하나님의 다스림 속에 들어간다! 하나님 만나는 구체적인 사건을 말씀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요한일서 3장 8절에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마태복음 11장 28절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중요한 것은 내가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십자가의 크신 능력과 권세로 피를 통해서 여러분과 저의 모든 죄를 해결하는 순간, 죄 때문에 눌렸던 재앙과 고통과 재난들이 완전히 해결됩니다. 그 순간에 평안과 안식으로 가슴, 가슴속에 임하게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자신도 모르게 뭔가 조급한 것이 있습니까! 뭔가 눌려있습니까! 뭔가 불안하고 있습니까! 그래서 교회와도 불안하고, 불안한 것이 나도 모르게 오는 불안함이, 기도해도 그냥 기도가 안되어요. 오만 인상을 찡그려서 기도하고, 또 기도해도 그냥 기도하는 것이 아니고, 막 고함을 지르고 기도하고, 막 기성을 지르고 기도하고, 안 그랬습니까! 그건 분명히 영적 문제가 있기 때문에 그런 문제거든요. 뭔가 눌리고, 뭔가 이 마땅치 않아서 나오는 겁니다. 찬송을 하면 기쁨과 감사함으로 부드럽게 찬송이 되어야 되는데, 찬송하면 이상하게 고함을 지르고 막 소리내고 그러면, 얼른 생각하면, '저 사람 참 열심이다!' 열심히 아니라 죽을 지경이라서 그러는 겁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 여러분 혹시 오셔서 예배드릴 때에 예배드리면 편안해야되는데, 그래서 더러 졸기도 하고 이렇게 되어야 되는데, 예배드리는 것도 막 오만상을 찡그려 가지고 예배드린다! 이게 문제가 되거든요. '존다!' 그러니까 이상하게 생각하고, '아, 조는 게 정상인가 보다!' 정상입니다. 문제는 이 속죄의 은혜가, 속죄의 기쁨이 오게 되면 뭐가 옵니까? 말씀이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이 속죄해주신 은혜에 대한 기쁨과 감사가 오면서 하나님의 말씀도, 이 말씀이 들어오는 사실을 우리는 '하나님 만난다!' 그렇게 하는 것 아닙니까! 여러분 여기에 근본 적인 평안이 옵니다. 안식이 옵니다.
제가 늘 미국가면 느끼는 것이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만은, 일단 '미국 갔다!' 그러면 미국 가서 다니는 동안에 이상하게 뭔가 압력을 받아요. 뭔가에 꽉 눌려 있는 것 같고, 조금만 문제 있으면 신경이 바짝 쓰여지고, 공항에 딱 가면, 공항에서 내가 여기서 저쪽으로 옮겨지게 되면, 뭐 다 거기서 안내도 해주고 다 안 합니까! 공항에 딱 가면 그 공항에 내리는 순간에 바로 딱 나오면 또 사람이 기다리고 안 합니까! 그런데 딱 나오면, 사람이 딱 보이면 그런 데로 괜찮은데, 딱 나오는데 사람이 안 나온다! 불안한 겁니다. 돌아다니는 동안에 계속 뭔가에 눌립니다. 요만한 문제 있으면 신경 쓰입니다.
어떤 면에서 여러분 지금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을 잘 이해하셔야 합니다. 그러다가 집에 간다고 생각하면 그 날밤 편안합니다. 벌써... 그런데 언제 부지런히 아침에 일찍부터 일어나 가지고, 뛰어와 가지고 수속하고, 다른 비행기를 타 가지고는 잘 몰라요. 일단 KAL기를 딱 타면 안내원이 '안녕하십니까!' 편안해 집니다. 여러분 무슨 말인지 이해하셔야합니다. 근본 적으로, 속죄로 말미암아, 말하자면 사단의 역사를 통해서 죄 때문에 마태복음 11장 28절에 뭔가 눌려 있습니다. 뭔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 전부 짐입니다.
말 못하는 것도 짐이죠. 이상한 사람 보는 것도 짐이고, 전부 짐입니다. 그러다가 거기 다 해방 받고, 그리고 한국말을 드는 순간에 편안해 집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 말미암아 속죄함을 받았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구원의 축복을 받았다!' 여기에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여기서 기도 응답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비로소 여기서 다 나옵니다. '당신의 나라가 이루어지고, 당신의 계획 속에 들어왔습니다! 다스림 속에 들어왔습니다!' 인정할수록, 사실이 확인될수록, '평안과 안식이 온다!' 그 정도가 아니고, 여기서 모든 기도응답이 다 나옵니다.
그래서 여러분 기도응답이 나오고, 기도할 때에 뭐냐하면요? '이것을 이루어 주옵소서!' 그런 동안에는 기도하면 기도할수록 조급해집니다. 옛날에 우리가 기도 많이 안 했습니까! 기도 많이 할 때에, 기도 많이 하면 기도 많이 할수록 더 조급해집니다. 1시간 기도하면 1시간 조급해지고, 2시간 기도하면 2시간 조급해지고, 그런데 그 조급해 지는 배경이 뭐냐? 내어놓으라는 겁니다. 1시간쯤 기도해서 안 내어놓으면 조급해지는데, 2시간 기도해서 안 내어놓으면 더 조급해 지거든요. 그러다가 '주여, 마음대로 하옵소서!' 이렇게만 되어도 조금 편안해 집니다.
그래서 여러분 기도 응답이 언제 하는 줄 압니까? 달라고, 달라고 조르다가 안주니까, '에라, 마음대로 해버려라!' 이상하게 그렇게 돌아가면 다 이루어지더라 구요. 그게 하나님의 뜻에 맞게,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합니다. 기도는 '응답이 하나님의 주권 속에 있다!' 오늘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그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기도할 때에 무슨 기도입니까? '하나님, 이걸 이루어 주옵시고, 내 욕심을 이루어 주옵소서!' 그게 아니고, '내 뜻이 하나님이 뜻과 같이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계획처럼 내 마음과 생각을 바꾸어 주옵소서!' 이것이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기도가 되어져야 되죠.
그 다음에 두 번째로 좀 말하고 싶은 것은, 하나님이 나라가 이루어졌다는 것에 대한 기쁨입니다. 구원받으면 이게 먼저 와야되죠. 잠언서 14장 13절에, "웃을 때에도 마음에 슬픔이 있고 즐거움의 끝에도 근심이 있느니라" 사람이 진자 근심이 있으면 웃다가도 얼굴이 이상해집니다. 진짜 근심이 있으면 여러분 막 웃다가도 근심을 딱 깔고 있으면 그게 딱 튀어나옵니다. 이야기하다가도 딱 튀어나옵니다. 뭘 일하다가도 딱 튀어나옵니다. 늘 뭔가 그런 진짜 근심이 있다면 딱 튀어나옵니다.
저는 상담을 하거나 뭘 이야기 할 때에, 어렵다고 하고 고통스럽다고 하고, 이렇게 그냥 이야기하는 중에서, 눈물 흘리거나 이렇게 하면, 제가 이럽니다. 좀 경상도 말로, '울지 마라! 운 짐이 덜 따라서 울지, 진짜 어려워 봐라 눈물이 어디 나오느냐? 눈물 흘리는 것 보니 괜찮다! 가라!' 여러분 진짜 고통스러운 문제 있으면 눈물 안 나옵니다. 전 생각이 사로 잡혀 버립니다. 눈물나올 여유가 없어요.
전에 우리 대학부가 안개 쪽에 가서 대학 학생이 한 명 죽었죠. 물에 빠져 가지고, 그 가족들이 와서 야단 치고 그럴 때에, 완전히 우리 교회가 들어오지 못하니까, 윤번제로 해 가지고 밥도 해주고, 거기서 그 해결까지 해야 되니까! 시체도 못 찾고 있는 상황에, 큰비가 왔을 때인데, 그때에 지나가는 사람들 막 이야기하고, 웃고 지나가면, '내가 저런 때가 언제 오겠나...' 싶더라 구요. 온 생각이, 전체 생각도, 느낌도 전부 거기에 사로잡혀요. 그래서 내 얼굴이 완전히 죽상이 되더라 구요. 웃는 사람은, 한번도 웃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여러분 사망이라는, 지옥이라는 엄청난 이런 궁극적인 저주와 죽음에 공포가 내 안에 자리잡고 있으면, 이것이 순간, 순간 나온다! 아닙니다. 전 생애를 지배해 버립니다. 불신자의 삶이 전적으로 웃으면서도, 찡그려가면서 웃는 것이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성도들도 비슷하게 웃더라 구요. 웃으면서 찡그려가면서 웃는 사람이 있어요. 우리가 아직까지 이게 안되었다! 그러면 좀 근본 소속이 어디에 있는가? 한번 살펴봐야 할겁니다.
그런데 이 문제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이 암아,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순간에 사망에서 어디로? '생명으로 옮겼고...' 그랬습니다. 이것은 뭐 더 이상 성경이, 하나님이 말씀했습니다. 죽음과 멸망에서 옮겨버렸습니다. 누구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러면 근본적으로 뭐가 없어져 버립니까? 근심과 염려가 사라져 버립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이 근본적으로 사라져 버립니다. 여러분 간단한 말 같지만, 마태복음 11장 28절이 내 생애 속에 우리도 모르게 나오거든요. 그러니까 정신병이라든지, 아니면 모든 이런 병의 근원이 이 11장 28절입니다. 뭐 돌고 이게 문제가 아니거든요.
하나님의 나라가 내 안에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내 안에 이루어진 기쁨! 이것이 근본적으로 내 안에 있을 때에, 생각도 기쁘고, 이것을 기쁘다는 말보다도 생각 자체가 평안해지고, 무슨 일이 있어도 감사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찬송이 나오고, 전부 그렇게 이어지는 겁니다. 이것이 안되면 무슨 일이 조금만 있으면 신경질 나고 무슨 일 조금만 나오면 이상하게 성격이 괴팍해지고, 여러분 '성격이 더럽다! 괴팍하다!' 진짜 한번 신분을 밝혀봐야 돼요. 성격이 괴팍해질 이유가 없거든요. 그런데 괴팍한 사람 많더라 구요. 우리 하나님 앞에서 오늘 기도의 응답 받는다 안 받는다 역기서 다 나오는 겁니다.
그 다음에 중요한 것은 받아합시다. "변화 받은 존재로서 기쁨이다!" 여러분과 제가 변화 받은 존재로서 기뻐져야 합니다. 돼지는 먹이를 줄 때에 기뻐합니다. 기쁨이 오죠. 상인들은 이익을 남길 때에 많이 남으면 많이 남을수록 기쁨이 옵니다. 기뻐하죠.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탐욕이 이루어지면 기뻐합니다. 여러분 제가 이 말씀을 드릴 때에 잘 이해하셔야합니다. 여러분들이 교회 오면서 교회 다닌다고 하면서 뭔가 이익이 나올 때 기뻐하고 뭔가 먹을 것이 생기면 기뻐한다. 그러면 여러분 신분 확인해봐야 됩니다. 이상하게 밥 먹을 때만 기쁩니까! 신분 확인해봐야 됩니다. 그걸 꼭 굳이 내 입으로 내가 여기서 말해야 됩니까! 돼지입니다.
고린도 전서 15장 10절 말씀에 그랬습니다.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할렐루야! 나의 나된 것을 기뻐했습니다. 바울이 최고의 고통 속에서 이 말이 나왔거든요. 인간적인 고통과 괴로움이 바울에게 없었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 받은,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 변화된 나 자신을 보고, 변화된 나를 볼 때에 기뻐했다!' 그랬습니다.
여러분 아프기 때문에 슬픕니까! 가난하기 때문에 슬픕니까! 실패했기 때문에 슬픕니까! 바울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아프다, 실패했다, 가난하다!' 어떤 환경에도, 어떤 사건에도,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 그랬습니다. 다만 그가 뭐라 그랬습니까? '나의 나된 것 하나님의 은혜로다!' '내가 변하게 되고,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기뻐하게 되고, 내가 하늘에 그 영광스러운 역사로 말미암아, 하늘에 시민권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게 되고, 변화된 바울의 모습, 자신의 모습을 보고 기뻐했다!'고 그랬습니다.
받아합시다. "내가 진리로 기뻐하노라!" 여러분 기뻐할 것이, 진리로 기뻐했습니다. '변화된 자신을 보고, 변화된 그 인격 속에서 기뻐했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받아합시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때에 기뻐했다!" 나로 말미암아, 내 가정으로 말미암아, 내 자녀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때에... 바울은 다 잃었습니다. 이 일을 위해서, 그래서 '내 모든 자랑하고, 내 모든 옛날에 기뻐하던 것 이제는 배설물로 여겼다!' 그랬습니다.
여러분 지금 현재 기뻐하는 것이 뭡니까? 나의 나 된 것이 기쁩니까! 변화된 내가 기쁩니까! 정말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서, 모든 세상의 소망과 기쁨으로 가득 찼던 것이 배설물로 여겨진 인격이 기쁩니까! 이 축복이 기뻐야 돼요. 이것이 오기 시작하면, 여러분 응답이라는 것은 생각할 때마다, 느낄 때마다, 가는 곳마다 벌써 다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받아합시다. "다 받았다!" 엄청난 변화요, 여기에 모든 기쁨과 감사가 나오게 되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받아합시다. "내일이 보장될 때에 기쁘다!" 내 일이 아니고 내일입니다. 미래가 보장될 때에 기쁘다! 그랬습니다. 미래가 보장되지 못했기 때문에 세상은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뭐 '점을 친다!' 전부 이 문제 아닙니까! 여러분과 저는 너무 확실하게 미래가 보장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거듭거듭 요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만은, 마태복음 24장 14절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확실하게 미래를 약속해 놓고 있습니다. 그게 뭡니까? 세계 복음화입니다. 이 세상을 완전히 복음화 시키지 않고서는 우리 예수님이 안 오십니다. 복음화 시키기 위해서, 잘났던 못났던 상관없습니다. 어떻게 되었던지, 늙었던지 젊었던지, 아이든지 나이 적든지, 아이나 나이 적은 사람이나... 어떤 사람을 막론하고 여러분과 저를 뭐하기 위해서? 마태복음 24장 14절을 위해서 불러 주었습니다. 이 일을 위해서 뭐가 옵니까? 보장해 주십니다.
그래서 여러분 교회 적으로 '건축한다!' 그럴 때에 제가 그랬습니다. '부담이 옵니까? 기도하십시오!' 여러분 기도하실 때에, '하나님 교회를 건축하는 자들에게 성경대로 복을 주옵소서. 성경대로 하나님 보장해 주옵소서!' 저 교회가 세계 복음화 할 교회입니다. 이 교회가 이 나라와 민족과 세계를 살릴 교회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해 주셨습니다. 보장해 주실 것입니다. 이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이라크 전쟁 열 번 터져도 괜찮습니다. 하나님이 하실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에 하나님의 모든 보장이 약속이 되어 있는 것이죠.
빌립보서 3장 20절에, '시민권을 주신 하나님!' 기뻐하는 것이죠. 사도행전 2장 38절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뭐라 그랬습니까? '성령을 부어주마!' 미래를 완전히 약속하신 하나님의 다스림 속에, 오늘 성령으로 인도하심을 기뻐해야 됩니다. 감사해야 됩니다. 여기에 모든 것이 열리게 돼요, 여기 모든 축복과 역사가 약속이 되어져 있습니다. 혹시 마음에 불안할 수 있습니다. 염려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 시간을 통해서 확실히 붙잡기를 원합니다. 받아합시다. "세계 복음화 할 때까지 절대적으로 나를, 우리를, 너를 보장해 주마!" 할렐루야!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서론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대속물로 죽으시기 위해 오신 예수님은 우리가 신앙 생활 잘 하는 것을 가장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내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보다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는 것에 더욱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참된 축복입니다. 이를 위해 내가 죽어야 하는데, 나의 동기를 버리는 것이 곧 내가 죽는 것이고 예수님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갈2:2). 이렇게 되어지기 위한 과정을 하나씩 자세히 살펴 봅시다.
● 본론
1. 구원의 기쁨
(1) 대속물로 피흘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사람은 속죄의 기쁨을 얻게 되고, 죄 때문에 눌렸던 고통과 재앙들로부터도 완전히 해방되어 평안과 안식을 얻게 됩니다.
(2) 속죄의 기쁨 속에서 조급함이 사라지고 평안한 가운데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기도의 응답이 이루어집니다.
2.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짐에 대한 기쁨
(1) 눈물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극심한 근심이 있더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말미암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사람에게는 근본적으로 근심이 사라집니다.
(2) 하나님의 나라가 내 안에 이루어진 기쁨이 내게 근본적으로 있을 때, 생각이 평안을 누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감사하게 됩니다.
3. 변화받은 존재로서 기쁨
(1)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로 변화된 자신의 모습을 보고 기뻐했던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변화된 자신의 모습 때문에 기뻐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2) 나와 자녀와 가정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짐으로 기뻐할 수 있을 때 모든 일과 사건 속에서 기도 응답을 받습니다.
4. 내일이 보장된 기쁨
(1) 우리는 세계 복음화라는 보장된 미래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2) 하나님께서 세상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우리를 부르셨고, 이 일을 위해 우리를 보장해 주셨으므로 믿음으로 담대히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 결론
세계 복음화의 놀라운 역사 속에 우리를 세우셨으므로, 헛되이 욕심으로 구하지 않도록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야 되겠습니다.
● 기도제목
◎ 헛된 욕심으로 구하지 않도록
◎ 세계 복음화의 확실한 약속 위에서 살아가도록
(마 20:21)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엇을 원하느뇨 가로되 이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마 20:22)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나의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저희가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마 20:23) 가라사대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마 20:24) 열 제자가 듣고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마 20:25)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가라사대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마 20:26)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마 20:27)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마 20:28) 인자가 온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오늘 제목을 "인자의 온 것은" 그랬습니다. 예수님이 온 이유는 그런 내용이죠. 예수님께서 왜 오셨습니까? 여러분과 저를 위해서 죽으시기 위해 오셨어요. '죽으시기 위해 오셨다!' 그 정도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대속물로 오셨다!' 그랬습니다. 왜? 구원 주시기 위해서! 결론이 바로 이런 내용이 되겠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시죠. '사랑하는 자여 내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된다!' 그러면서 여러분과 저를 향해서 오늘도 주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가 신앙생활 잘 하는 것 보다, 그 소식 듣는 것 보다 더 기쁨이 없다!' 이것이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그런 말씀입니다.
어떤 면에서 우리 가정에 소원이 있다! 또 가정의 자녀에게 소원이 있다! 이랬으면 좋겠다! 저랬으면 좋겠다! 그러지만 진실한 성도의 기쁨과 또 우리 모두의 기쁨이 다른 게 아닙니다. 자식들에게 향한 기쁨이 하나 있다면 받아합시다. "네가 신앙생활 잘 하는 것이다!" 무슨 말입니까? '예수 잘 믿는 것이다!' 여러분 성도들이 뭐 '복 받았다!' 이번에 수입이 좋았다! 이번에 참 뭔가 기쁘다, 기분 좋다! 뭐 집을 샀다! 이런 것을 듣는 것도 참 교역자에게 기쁨이 되지만, 가장 기쁨이 되는 것은 한번 받아합시다. "내가 예수 잘 믿는 것이다!" 다른 게 없어요. 여러분들이 신앙생활 잘 하는 것, 예수 잘 믿는 것 보면 그 이상 더 기쁘다, 즐겁다! 더 이상이 없죠.
우리에게 참 신앙생활 바로 한다, 잘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기쁨이요, 여러분의 기쁨이요, 우리 모두의 기쁨입니다. 이것이상 다른 것이 없다.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잘 믿는다! 그것이 어떤 면에서 가장 한마디로 말한다면 갈라디아서 2장 20절이 되어야 되고, 또 오직 하나님만 신뢰할 수 있는 이런 어떤 배경이 되어야 되는데, 이 갈라디아서 2장 20절! 예수 잘 믿는 것보다도 거의 반대방향으로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괴로움이요, 교회의 고통이다!' 싶어요.
다시 말하면 무슨 말을 들수 있느냐 하면, '예수 잘 믿는다!' 그러면 '내 안에 내가 죽고, 예수님의 뜻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성취되는 것!' 이것 아닙니까! 그런데도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는 것보다도 내 뜻이 이루어지고, 내 욕심이 이루어지고, 이것이 이루어지는 것이 성도의 기쁨으로 살고 있으면 이것은 이제 큰 고통이죠. 그래서 우리 신앙생활에 가장 중심이 뭐냐하면, 내 소원이 이루어졌다! 그것보다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다!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었습니다. 나에게, 우리에게, 우리 가정을 통해서, 내 아들을 통해서, 우리 교회를 통해서 내 뜻이 이루어졌다! 그게 아니고, 하나님의 뜻이 성취됩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습니다. 이것이 가장 축복된 은혜요, 또 기쁨의 내용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신자들은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는 것보다도, 문제는 뭐냐하면, '내 욕심이 이루어지는 것!' 이게 모든 불신자들의 사는 중심입니다. 내 욕심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그러니까 내 이익이 안 되고, 내게 유익이 안되고, 내 욕심이 안 될 때는 거기에 시기가 있고, 다툼이 있고, 모든 게 나오잖아요. 그런데 여러분 이것을 똑같이 교회 안에 이렇게 보면, 어떤 것이냐 하면, 불신자들과 똑같은 양상을 보게 됩니다. 교회 안에 와서도 예수 믿는 것도 내 욕심이 이루어지고, 헌금하는 것도 내 욕심이 채워지고, 헌금 만원하면서 '하나님, 20만원 주실 줄 믿습니다!' 어떤 이런 기대! 내가 이제 예수 믿으면서도, 뭔가 어떤 그 내 나름대로의 욕망과 욕심이 채워지는 어떤 그런 배경들이 거의 깔려있다는 것을 우리가 보게 돼요.
그렇다 그러면 뭐와 같으냐? 그러면 예수 믿는 사람이나, 예수 안 믿는 사람이나 똑같은 삶으로 방법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개인의 욕심, 개인주의! 그 다음에 이것이 조금 더 나아가서 개 교회 욕심, 개 교회 주의! 이런 방향으로, 그 다음에 민족주의, 민족욕심! 국가주의, 국가욕심! 뭐 이라크나 미국이 전쟁이 일어나는 것도 똑같은 배경이에요. 이게 전부 세상 배경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살았다는 것은 이런 동기가 충만하다는 겁니다. 열심히 노력한다고, 동기가 충만한 겁니다. 이것은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안 없어져요. 이게 언제 없어지느냐? '죽었다!' 이래 되어야 되는 겁니다. '아무개 몇 일날 죽었다! 돌아가셨다!' 이게 몇 일날 없어지는 것이죠. 그전에는 뭐 안 없어지는 겁니다.
그러나 이것이 없어지는 때가 있습니다. 그게 뭐냐? 갈라디아서 2장 20절, '내 안에 내가 죽고, 내 욕심이 죽고,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사는...' 이 기쁨이 회복 될 때에 비로소 이루어집니다. 그 다음에 여기서 모든 기도의 응답이 나오게되어 있습니다. 모든 축복과 역사가 여기서 이루어집니다. 지속해서 오늘 성경에서 특별히 18, 19, 20장 보면서 계속 나온 것이 뭐냐? 생명 구원! 이것이 계속 나옵니다. 뭐 그냥 신앙생활의 어떤 한 부분이 아니라, 전부 다 나옵니다.
지난주에도 무슨 약속이라 구요? 한 달란트의 약속! 여기에 다 있는 겁니다. '한 달란트 구원, 하나님의 나라!' 여기에 우리 모든 신앙에 전부가 이 약속에 있는 겁니다. 어린아이에서 믿었던지, 죽기 직전에 믿었던지, 몇 달란트? 한 달란트! 죽기 직전에 믿어 가지고 한 달란트 받는 것도 이 구원의 축복의 역사! 그러니 이걸 가지고 은혜 중에 은혜라 안 그럽니까! '하나님의 선하심과 축복하심이...'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축복과 이 은혜가 어릴 때부터 믿어서 하나님의 나라에 축복과 영광을 누리는 이 기쁨을 모두가 잊어버리고, 그저 천당 가는 그것만 생각하니까 문제가 되는 거죠. 우리가 신앙생활이 하늘의 영광, 그 나라 영광이 오늘 지금 내게 누려지고 이루어지는 이 사실이 체험되는 것, 여기에서 모든 헌신과 참 된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말하자면 신앙 생활하는 삶이 나온다! 그렇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여기에 보면 문제는 뭐냐하면, 이게 안 된다! 말하자면 개인의 욕심과 개인의 어떤 이것이 하나님 앞에 고하여지고, 이 욕심가지고 나가는 이게 해결이 안 되는 겁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을 따라 다니면서 최고의 스승,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그 놀라운 언약, 본체이신 그 분에게 말씀을 듣고, 그분에게 은혜를 받으면서도 이 해결이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마태복음 20장 20절에 보면 뭐라고 그러느냐 하면,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미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마 20:21)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엇을 원하느뇨 가로되 이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앉게 명하소서' 여기 이 말씀이 우리나라의 어떤 이야기로 한다면, '주님, 왕이 될 때에 좌의정하고 우의정은 우리 형제 주옵소서!' 그런데 그것도 이 제자들이 직접 나가서 구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 어머니 통해 가지고, '엄마, 이것 좀 구해달라고...' 비겁하게, 진짜 딱 자기가 나가서 하면 모르는데, 이게 지금 바로 전부 교회 안에도 이게 문제입니다.
이렇게 했을 때에 응답이 오느냐? 응답이 안 와요. 그러면 이때에 응답이, 이런 구함이 있을 때에 다른 제자들의 반응입니다. 다른 제자들이 똑같이 뭐라 그러느냐 하면요. 24절이죠. "열 제자가 듣고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똑같이 같은 수준이에요. '나도 우의정하고 싶다! 좌의정하고 싶다!' 이게 안되니까 뭐냐? 시기합니다. 이게 안되니까 막 다툽니다. 이게 안되니까 뭐냐? 분노합니다. 여러분 예수 믿는 수준이 거의 이 수준에 있어요. 그러니 이 수준에서 있는 이상은 예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응답이 있어요, 없어요? 절대로 없어요.
이때에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뭐라 그랬느냐 하면요. 간단한 말씀입니다. 23절이죠. "가라사대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 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할렐루야! 네가 원한다고 주는 게 아니고, 너의 원하는 것을 이루어 주는 것이 아니고, 뭐라 그랬어요? 받아합시다. "하나님, 마음대로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 그랬습니다. 이게 기도응답이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밤새도록 구하고, 욕심으로 구하고, 정욕으로 구하고, 이게 안되면 막 성이 나고, 분노하고, 막 이게 안되면 그냥 하나님 앞에 대어 들고 이런 수준입니다. 누구나 할 것 없이... 그때마다 우리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뭐라고 그랬느냐? '하나님 뜻을 이루는 것이다!' 하나님 원하는 데로... 누구를 주든지, '하나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받아합시다. "기도 응답은 하나님의 계획대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면 누가? '하나님의 계획을 붙잡는 사람이 기도응답을 받는다!' 그랬습니다.
그러면 여기에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다스림 속에 들어가는 사람이 기도응답을 받는다!' 그 말과 같은 것이거든요. 늘 그렇게 말씀을 드려 왔습니다. 하나님의 다스림 속에, 하나님의 계획 속에 들어가는 방법이 뭐냐?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순간부터입니다. 하나님의 주권 속으로 들어가는 길이 뭐라 그랬어요? 예수가 그리스도다! 이 축복과 은혜 속에 들어가는 순간에, 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순간에, 이 일이 이루어진다! 그랬습니다.
이때부터 기도응답을 받는다가 아니고, 받아합시다. "모든 것 준비되어 있다!" '가는 곳에 이루어진다!' 그랬습니다. '너희가 무엇을 달라고 할 것이 아니다! 이미 다 아시느니라!' 이 사실이 안되어 있고, 하나님께 다 맡겨지고,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만 바라보는... 그래서 예수 잘 믿는 사람이 안 될 때에 나오는 것이 뭐냐? 내어놓으라는 겁니다. 막 내어놓아라 그럽니다. 여러분 내어놓으라고 할 것도 없어요. 다 주었는데 벌써 다 주었어요. 예비하고 다 손에 쥐어주었어요. 그렇다 그러면 내어놓으라고 할 것도 없잖아요. 이것을 가지고 여호와 이레! 가는 곳마다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기도응답이요. 기도의 축복이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이것을 조금 더 세분해서 알기 쉽게, 보다더 구체적으로 좀 분석한다면 이렇게 되는 구체적인 그런 첫 단계를 한번 보십시다. 어떻게 되느냐? 구원의 기쁨이 있어야 됩니다. 사람은 막연하게 누구든지 하나님을 믿고 있다고 그럽니다. 특별히 교회 나오는 사람들은 다 하나님을 만났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잘 안다고 생각하거든요. 로마서 1장 19절에 보면,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롬 1: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 그랬습니다.
뭔가 이 땅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하나님의 역사로 충만하거든요. 그래서 우리의 양심 속에서도 하나님을 믿습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들도 그렇거든요. 그래서 언제든지 뭔가, '내 주먹을 믿는다!' 그러고, 야단치는 사람도 결국은 하나님 믿고 있어요. 자기도 모르게 보편적으로 그렇게 믿는다고 생각하는 그런 배경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잘 아는 데로, 중이 얼음 위를 걸어가다가 얼음이 깨어지는 소리가 나니까, 물에 빠지면서 뭐라 그랬다 그럽니까? '아이고, 하나님!' 내 주먹을 믿는다고 고함을 지르다가도 물에 빠지면, '아이고, 하나님!' 이럽니다. 본성적으로 우리 속에 하나님을 믿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런 어떤 본성적인 것을 가지고 있어요.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구체적으로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그렇게 되는 게 아닙니다. 속는 거죠. 그저 양심으로 하나님을 알 수 있고, 그 다음에 도덕적으로 하나님을 알 수 있고, 세상 삼라만상을 통해서, '하나님, 있다!'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것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랬습니다. 하나님을 사실적으로 만나야 되는데, 그 사실적으로 만나는 것이 바로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해야 되는 겁니다.
요한복음 14장 8절에 "빌립이 가로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9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예수님이 친히 말씀했습니다. 지금까지 나와 함께 있으면서, '지금까지 나와 같이 있으면서 어찌 아버지를 보이라고 하느냐? 하나님을 보이라 하느냐?' 나를 본 자는 누구를 봤습니까? 아버지를 봤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으로 아버지를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길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을 만나게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직접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그 분이 예수입니다. 예수가 다른 사람이 아닙니다. 다른 어떤 분이 아닙니다. 바로 그 분이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뭐라 그랬어요? '아들이시니이다!' 그랬습니다. 예수를 만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만나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를 만났다!' 어떤 인간적으로 느낌으로 그게 아닙니다. 예수를 만난다는 말이 성경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깨달아야 됩니다. 이 일이 어디서 이루어지느냐? 예수가 그리스도 되는 어디에서? 십자가에서 일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뭐 '십자가의 피!' 바로 그런 이야기입니다. 누가 그러더라 구요. '다락방에서는 피 이야기를 안 한다!' 그러는데, 다락방에서는 피 이야기를 어느 사람보다도 더 말합니다. 그게 뭡니까? 그리스도입니다. 십자가에서 피 흘리지 않으면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메시아, 피 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을 얻을 수 없습니다. 피 흘림이 없이는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을 만나는 길이 안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이 하나님을 만나는 길입니다.
창세기 3장에 빠졌습니다. 도저히 인간의 본능으로, 인간의 기능으로, 인간의 능력으로 나올 수가 없습니다. 여기서 이 죽음과 저주와 고통에서부터 나올 수가 없습니다. 바로 이 고통에서부터 예수께서 오셨습니다. 오셨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오셔서 대속물로 여러분과 저를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이 일을 완성 시켰습니다. 십자가에서 여러분과 저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고, 뭐라 그랬습니까? 나는 날마다 말해도 듣기 좋은 말, '다 이루었다!' 남아 있는 게 아닙니다. '노력해라!?' 남아있는 게 아닙니다. '오직 믿어라! 영접만 해라!'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 어려운 것도 아니에요. 너무 쉬어요. 너무 쉬우니까 못하는 것인지...
여러분 이때부터 오는 것이 있습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순간에, 이때부터 오는 것이 나와 여러분에게 일어나는 가장 기본적인 증상이 있습니다. 그게 뭡니까? 받아합시다. "속죄의 기쁨, 사죄의 기쁨!" 베드로가 구원의 역사를 말하면서 그 구원의 역사 속에 처음 말한 것이 뭡니까? '죄를 회개하라! 그러면 성령을 선물로 주리라!' 구원의 축복과 역사 속에 속죄를 말하면서, 베드로가 성령을 선물로 주겠다는 언약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베드로가 한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같이 우리에게 분명히 주신 말씀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2장 38절에 보면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하나님의 다스림 속에 들어간다! 하나님 만나는 구체적인 사건을 말씀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요한일서 3장 8절에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마태복음 11장 28절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중요한 것은 내가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십자가의 크신 능력과 권세로 피를 통해서 여러분과 저의 모든 죄를 해결하는 순간, 죄 때문에 눌렸던 재앙과 고통과 재난들이 완전히 해결됩니다. 그 순간에 평안과 안식으로 가슴, 가슴속에 임하게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자신도 모르게 뭔가 조급한 것이 있습니까! 뭔가 눌려있습니까! 뭔가 불안하고 있습니까! 그래서 교회와도 불안하고, 불안한 것이 나도 모르게 오는 불안함이, 기도해도 그냥 기도가 안되어요. 오만 인상을 찡그려서 기도하고, 또 기도해도 그냥 기도하는 것이 아니고, 막 고함을 지르고 기도하고, 막 기성을 지르고 기도하고, 안 그랬습니까! 그건 분명히 영적 문제가 있기 때문에 그런 문제거든요. 뭔가 눌리고, 뭔가 이 마땅치 않아서 나오는 겁니다. 찬송을 하면 기쁨과 감사함으로 부드럽게 찬송이 되어야 되는데, 찬송하면 이상하게 고함을 지르고 막 소리내고 그러면, 얼른 생각하면, '저 사람 참 열심이다!' 열심히 아니라 죽을 지경이라서 그러는 겁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 여러분 혹시 오셔서 예배드릴 때에 예배드리면 편안해야되는데, 그래서 더러 졸기도 하고 이렇게 되어야 되는데, 예배드리는 것도 막 오만상을 찡그려 가지고 예배드린다! 이게 문제가 되거든요. '존다!' 그러니까 이상하게 생각하고, '아, 조는 게 정상인가 보다!' 정상입니다. 문제는 이 속죄의 은혜가, 속죄의 기쁨이 오게 되면 뭐가 옵니까? 말씀이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이 속죄해주신 은혜에 대한 기쁨과 감사가 오면서 하나님의 말씀도, 이 말씀이 들어오는 사실을 우리는 '하나님 만난다!' 그렇게 하는 것 아닙니까! 여러분 여기에 근본 적인 평안이 옵니다. 안식이 옵니다.
제가 늘 미국가면 느끼는 것이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만은, 일단 '미국 갔다!' 그러면 미국 가서 다니는 동안에 이상하게 뭔가 압력을 받아요. 뭔가에 꽉 눌려 있는 것 같고, 조금만 문제 있으면 신경이 바짝 쓰여지고, 공항에 딱 가면, 공항에서 내가 여기서 저쪽으로 옮겨지게 되면, 뭐 다 거기서 안내도 해주고 다 안 합니까! 공항에 딱 가면 그 공항에 내리는 순간에 바로 딱 나오면 또 사람이 기다리고 안 합니까! 그런데 딱 나오면, 사람이 딱 보이면 그런 데로 괜찮은데, 딱 나오는데 사람이 안 나온다! 불안한 겁니다. 돌아다니는 동안에 계속 뭔가에 눌립니다. 요만한 문제 있으면 신경 쓰입니다.
어떤 면에서 여러분 지금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을 잘 이해하셔야 합니다. 그러다가 집에 간다고 생각하면 그 날밤 편안합니다. 벌써... 그런데 언제 부지런히 아침에 일찍부터 일어나 가지고, 뛰어와 가지고 수속하고, 다른 비행기를 타 가지고는 잘 몰라요. 일단 KAL기를 딱 타면 안내원이 '안녕하십니까!' 편안해 집니다. 여러분 무슨 말인지 이해하셔야합니다. 근본 적으로, 속죄로 말미암아, 말하자면 사단의 역사를 통해서 죄 때문에 마태복음 11장 28절에 뭔가 눌려 있습니다. 뭔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 전부 짐입니다.
말 못하는 것도 짐이죠. 이상한 사람 보는 것도 짐이고, 전부 짐입니다. 그러다가 거기 다 해방 받고, 그리고 한국말을 드는 순간에 편안해 집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 말미암아 속죄함을 받았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구원의 축복을 받았다!' 여기에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여기서 기도 응답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비로소 여기서 다 나옵니다. '당신의 나라가 이루어지고, 당신의 계획 속에 들어왔습니다! 다스림 속에 들어왔습니다!' 인정할수록, 사실이 확인될수록, '평안과 안식이 온다!' 그 정도가 아니고, 여기서 모든 기도응답이 다 나옵니다.
그래서 여러분 기도응답이 나오고, 기도할 때에 뭐냐하면요? '이것을 이루어 주옵소서!' 그런 동안에는 기도하면 기도할수록 조급해집니다. 옛날에 우리가 기도 많이 안 했습니까! 기도 많이 할 때에, 기도 많이 하면 기도 많이 할수록 더 조급해집니다. 1시간 기도하면 1시간 조급해지고, 2시간 기도하면 2시간 조급해지고, 그런데 그 조급해 지는 배경이 뭐냐? 내어놓으라는 겁니다. 1시간쯤 기도해서 안 내어놓으면 조급해지는데, 2시간 기도해서 안 내어놓으면 더 조급해 지거든요. 그러다가 '주여, 마음대로 하옵소서!' 이렇게만 되어도 조금 편안해 집니다.
그래서 여러분 기도 응답이 언제 하는 줄 압니까? 달라고, 달라고 조르다가 안주니까, '에라, 마음대로 해버려라!' 이상하게 그렇게 돌아가면 다 이루어지더라 구요. 그게 하나님의 뜻에 맞게,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합니다. 기도는 '응답이 하나님의 주권 속에 있다!' 오늘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그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기도할 때에 무슨 기도입니까? '하나님, 이걸 이루어 주옵시고, 내 욕심을 이루어 주옵소서!' 그게 아니고, '내 뜻이 하나님이 뜻과 같이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계획처럼 내 마음과 생각을 바꾸어 주옵소서!' 이것이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기도가 되어져야 되죠.
그 다음에 두 번째로 좀 말하고 싶은 것은, 하나님이 나라가 이루어졌다는 것에 대한 기쁨입니다. 구원받으면 이게 먼저 와야되죠. 잠언서 14장 13절에, "웃을 때에도 마음에 슬픔이 있고 즐거움의 끝에도 근심이 있느니라" 사람이 진자 근심이 있으면 웃다가도 얼굴이 이상해집니다. 진짜 근심이 있으면 여러분 막 웃다가도 근심을 딱 깔고 있으면 그게 딱 튀어나옵니다. 이야기하다가도 딱 튀어나옵니다. 뭘 일하다가도 딱 튀어나옵니다. 늘 뭔가 그런 진짜 근심이 있다면 딱 튀어나옵니다.
저는 상담을 하거나 뭘 이야기 할 때에, 어렵다고 하고 고통스럽다고 하고, 이렇게 그냥 이야기하는 중에서, 눈물 흘리거나 이렇게 하면, 제가 이럽니다. 좀 경상도 말로, '울지 마라! 운 짐이 덜 따라서 울지, 진짜 어려워 봐라 눈물이 어디 나오느냐? 눈물 흘리는 것 보니 괜찮다! 가라!' 여러분 진짜 고통스러운 문제 있으면 눈물 안 나옵니다. 전 생각이 사로 잡혀 버립니다. 눈물나올 여유가 없어요.
전에 우리 대학부가 안개 쪽에 가서 대학 학생이 한 명 죽었죠. 물에 빠져 가지고, 그 가족들이 와서 야단 치고 그럴 때에, 완전히 우리 교회가 들어오지 못하니까, 윤번제로 해 가지고 밥도 해주고, 거기서 그 해결까지 해야 되니까! 시체도 못 찾고 있는 상황에, 큰비가 왔을 때인데, 그때에 지나가는 사람들 막 이야기하고, 웃고 지나가면, '내가 저런 때가 언제 오겠나...' 싶더라 구요. 온 생각이, 전체 생각도, 느낌도 전부 거기에 사로잡혀요. 그래서 내 얼굴이 완전히 죽상이 되더라 구요. 웃는 사람은, 한번도 웃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여러분 사망이라는, 지옥이라는 엄청난 이런 궁극적인 저주와 죽음에 공포가 내 안에 자리잡고 있으면, 이것이 순간, 순간 나온다! 아닙니다. 전 생애를 지배해 버립니다. 불신자의 삶이 전적으로 웃으면서도, 찡그려가면서 웃는 것이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성도들도 비슷하게 웃더라 구요. 웃으면서 찡그려가면서 웃는 사람이 있어요. 우리가 아직까지 이게 안되었다! 그러면 좀 근본 소속이 어디에 있는가? 한번 살펴봐야 할겁니다.
그런데 이 문제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이 암아,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순간에 사망에서 어디로? '생명으로 옮겼고...' 그랬습니다. 이것은 뭐 더 이상 성경이, 하나님이 말씀했습니다. 죽음과 멸망에서 옮겨버렸습니다. 누구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러면 근본적으로 뭐가 없어져 버립니까? 근심과 염려가 사라져 버립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이 근본적으로 사라져 버립니다. 여러분 간단한 말 같지만, 마태복음 11장 28절이 내 생애 속에 우리도 모르게 나오거든요. 그러니까 정신병이라든지, 아니면 모든 이런 병의 근원이 이 11장 28절입니다. 뭐 돌고 이게 문제가 아니거든요.
하나님의 나라가 내 안에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내 안에 이루어진 기쁨! 이것이 근본적으로 내 안에 있을 때에, 생각도 기쁘고, 이것을 기쁘다는 말보다도 생각 자체가 평안해지고, 무슨 일이 있어도 감사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찬송이 나오고, 전부 그렇게 이어지는 겁니다. 이것이 안되면 무슨 일이 조금만 있으면 신경질 나고 무슨 일 조금만 나오면 이상하게 성격이 괴팍해지고, 여러분 '성격이 더럽다! 괴팍하다!' 진짜 한번 신분을 밝혀봐야 돼요. 성격이 괴팍해질 이유가 없거든요. 그런데 괴팍한 사람 많더라 구요. 우리 하나님 앞에서 오늘 기도의 응답 받는다 안 받는다 역기서 다 나오는 겁니다.
그 다음에 중요한 것은 받아합시다. "변화 받은 존재로서 기쁨이다!" 여러분과 제가 변화 받은 존재로서 기뻐져야 합니다. 돼지는 먹이를 줄 때에 기뻐합니다. 기쁨이 오죠. 상인들은 이익을 남길 때에 많이 남으면 많이 남을수록 기쁨이 옵니다. 기뻐하죠.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탐욕이 이루어지면 기뻐합니다. 여러분 제가 이 말씀을 드릴 때에 잘 이해하셔야합니다. 여러분들이 교회 오면서 교회 다닌다고 하면서 뭔가 이익이 나올 때 기뻐하고 뭔가 먹을 것이 생기면 기뻐한다. 그러면 여러분 신분 확인해봐야 됩니다. 이상하게 밥 먹을 때만 기쁩니까! 신분 확인해봐야 됩니다. 그걸 꼭 굳이 내 입으로 내가 여기서 말해야 됩니까! 돼지입니다.
고린도 전서 15장 10절 말씀에 그랬습니다.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할렐루야! 나의 나된 것을 기뻐했습니다. 바울이 최고의 고통 속에서 이 말이 나왔거든요. 인간적인 고통과 괴로움이 바울에게 없었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 받은,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 변화된 나 자신을 보고, 변화된 나를 볼 때에 기뻐했다!' 그랬습니다.
여러분 아프기 때문에 슬픕니까! 가난하기 때문에 슬픕니까! 실패했기 때문에 슬픕니까! 바울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아프다, 실패했다, 가난하다!' 어떤 환경에도, 어떤 사건에도,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 그랬습니다. 다만 그가 뭐라 그랬습니까? '나의 나된 것 하나님의 은혜로다!' '내가 변하게 되고,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기뻐하게 되고, 내가 하늘에 그 영광스러운 역사로 말미암아, 하늘에 시민권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게 되고, 변화된 바울의 모습, 자신의 모습을 보고 기뻐했다!'고 그랬습니다.
받아합시다. "내가 진리로 기뻐하노라!" 여러분 기뻐할 것이, 진리로 기뻐했습니다. '변화된 자신을 보고, 변화된 그 인격 속에서 기뻐했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받아합시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때에 기뻐했다!" 나로 말미암아, 내 가정으로 말미암아, 내 자녀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때에... 바울은 다 잃었습니다. 이 일을 위해서, 그래서 '내 모든 자랑하고, 내 모든 옛날에 기뻐하던 것 이제는 배설물로 여겼다!' 그랬습니다.
여러분 지금 현재 기뻐하는 것이 뭡니까? 나의 나 된 것이 기쁩니까! 변화된 내가 기쁩니까! 정말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서, 모든 세상의 소망과 기쁨으로 가득 찼던 것이 배설물로 여겨진 인격이 기쁩니까! 이 축복이 기뻐야 돼요. 이것이 오기 시작하면, 여러분 응답이라는 것은 생각할 때마다, 느낄 때마다, 가는 곳마다 벌써 다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받아합시다. "다 받았다!" 엄청난 변화요, 여기에 모든 기쁨과 감사가 나오게 되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받아합시다. "내일이 보장될 때에 기쁘다!" 내 일이 아니고 내일입니다. 미래가 보장될 때에 기쁘다! 그랬습니다. 미래가 보장되지 못했기 때문에 세상은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뭐 '점을 친다!' 전부 이 문제 아닙니까! 여러분과 저는 너무 확실하게 미래가 보장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거듭거듭 요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만은, 마태복음 24장 14절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확실하게 미래를 약속해 놓고 있습니다. 그게 뭡니까? 세계 복음화입니다. 이 세상을 완전히 복음화 시키지 않고서는 우리 예수님이 안 오십니다. 복음화 시키기 위해서, 잘났던 못났던 상관없습니다. 어떻게 되었던지, 늙었던지 젊었던지, 아이든지 나이 적든지, 아이나 나이 적은 사람이나... 어떤 사람을 막론하고 여러분과 저를 뭐하기 위해서? 마태복음 24장 14절을 위해서 불러 주었습니다. 이 일을 위해서 뭐가 옵니까? 보장해 주십니다.
그래서 여러분 교회 적으로 '건축한다!' 그럴 때에 제가 그랬습니다. '부담이 옵니까? 기도하십시오!' 여러분 기도하실 때에, '하나님 교회를 건축하는 자들에게 성경대로 복을 주옵소서. 성경대로 하나님 보장해 주옵소서!' 저 교회가 세계 복음화 할 교회입니다. 이 교회가 이 나라와 민족과 세계를 살릴 교회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해 주셨습니다. 보장해 주실 것입니다. 이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이라크 전쟁 열 번 터져도 괜찮습니다. 하나님이 하실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에 하나님의 모든 보장이 약속이 되어 있는 것이죠.
빌립보서 3장 20절에, '시민권을 주신 하나님!' 기뻐하는 것이죠. 사도행전 2장 38절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뭐라 그랬습니까? '성령을 부어주마!' 미래를 완전히 약속하신 하나님의 다스림 속에, 오늘 성령으로 인도하심을 기뻐해야 됩니다. 감사해야 됩니다. 여기에 모든 것이 열리게 돼요, 여기 모든 축복과 역사가 약속이 되어져 있습니다. 혹시 마음에 불안할 수 있습니다. 염려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 시간을 통해서 확실히 붙잡기를 원합니다. 받아합시다. "세계 복음화 할 때까지 절대적으로 나를, 우리를, 너를 보장해 주마!" 할렐루야!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서론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대속물로 죽으시기 위해 오신 예수님은 우리가 신앙 생활 잘 하는 것을 가장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내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보다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는 것에 더욱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참된 축복입니다. 이를 위해 내가 죽어야 하는데, 나의 동기를 버리는 것이 곧 내가 죽는 것이고 예수님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갈2:2). 이렇게 되어지기 위한 과정을 하나씩 자세히 살펴 봅시다.
● 본론
1. 구원의 기쁨
(1) 대속물로 피흘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사람은 속죄의 기쁨을 얻게 되고, 죄 때문에 눌렸던 고통과 재앙들로부터도 완전히 해방되어 평안과 안식을 얻게 됩니다.
(2) 속죄의 기쁨 속에서 조급함이 사라지고 평안한 가운데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기도의 응답이 이루어집니다.
2.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짐에 대한 기쁨
(1) 눈물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극심한 근심이 있더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말미암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사람에게는 근본적으로 근심이 사라집니다.
(2) 하나님의 나라가 내 안에 이루어진 기쁨이 내게 근본적으로 있을 때, 생각이 평안을 누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감사하게 됩니다.
3. 변화받은 존재로서 기쁨
(1)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로 변화된 자신의 모습을 보고 기뻐했던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변화된 자신의 모습 때문에 기뻐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2) 나와 자녀와 가정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짐으로 기뻐할 수 있을 때 모든 일과 사건 속에서 기도 응답을 받습니다.
4. 내일이 보장된 기쁨
(1) 우리는 세계 복음화라는 보장된 미래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2) 하나님께서 세상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우리를 부르셨고, 이 일을 위해 우리를 보장해 주셨으므로 믿음으로 담대히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 결론
세계 복음화의 놀라운 역사 속에 우리를 세우셨으므로, 헛되이 욕심으로 구하지 않도록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야 되겠습니다.
● 기도제목
◎ 헛된 욕심으로 구하지 않도록
◎ 세계 복음화의 확실한 약속 위에서 살아가도록
번호 | 제목 | 본문 | 설교일 | 첨부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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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7 |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 삿2:6-10 | 2025-03-0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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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2 |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 단9:20-24 | 2025-02-02 | |
1471 |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 단8:15-27 | 2025-01-26 | |
1470 |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 단7:9-14 | 2025-01-1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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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6 | 땅의 모든 사람을 다스리시는 하나님 | 단4:28-37 | 2024-12-2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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