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누가 아비의 뜻대로!
2004-05-07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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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마 21:28) 그러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뇨 한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마 21:29) 대답하여 가로되 아버지여 가겠소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마 21:30)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이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가로되 싫소이다 하더니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마 21:31) 그 둘 중에 누가 아비의 뜻대로 하였느뇨 가로되 둘째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기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마 21:32)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저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와 창기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종시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제목을 "누가 아비의 뜻대로" 라는 제목으로 삼았습니다. 29절 말씀에 보면, "대답하여 가로되 아버지여 가겠소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마 21:30)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이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가로되 싫소이다 하더니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마 21:31) 그 둘 중에 누가 아비의 뜻대로 하였느뇨" 그렇게 본문은 묻고 있습니다. 오늘 이 말씀 속에서 우리 개개인에게 '누가 아버지의 뜻을 행하고 있는가? 누가 아버지의 뜻을 이루고 있느냐?' 질문하면서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본문에 배경은 대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하나님의 뜻은 세상 구원!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을 먼저 구원하시고, 또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구원의 주이신 메시아를 보내셔서 먼저 제사장 나라를 삼고, 이스라엘을 통해서 이 땅을 구원하게 하실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는 일에 메시아를 보내셨으나, 이 메시아를 받아야 될 서기관과 제사장 또 먼저 지도계급에 있는 사람들이 메시아를 보내신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뜻을 받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들로부터 멸시받는 세리와 창기들이 먼저 받았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어떤 면에서 이것이 '예수 믿는다!' 그러면서도 오랜 어떤 신앙생활에 빠질 수 있는 함정입니다. 좋은 고백, 헌신의 고백, 헌신의 찬양, 때에 따라서는 좋은 선행들! 그런 것들로 인해서 오히려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을 잊어버릴 수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특별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얼마나 좋은 헌신을 했고, 얼마나 착하고 율법적으로 정말 그들의 혼신의 힘을 다해서 살았습니다 만은, 하나님의 뜻을 놓치니까, 이것은 엄청난 위선이 되고, 이것은 전혀 다른 열매로 나왔던 부분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정말 생명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붙잡지 아니하면, 우리도 모르게 종교에 빠져있습니다. 우리도 모르게 좋은 헌신의 고백들이 있고, 늘 찬양의 어떤 아름다움이 있을지라도 사실적으로는 메시아를 무시하고,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는 이런 엄청난 역작용에 빠지게 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위선자들은 악한 죄인보다 더 죄를 깨닫거나 회개하기가 어렵습니다. 오늘 본문에 바로 그런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종교나 위선에 빠지게 되면 사실적인 생명이 없이, 복음 복음하면서도 생명 없이, 어떤 이런 의문에 빠지게 되면 차라리 불신자보다도 더 악하게 됩니다. 이게 위선이 되고, 이런 부분이 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시점에서 먼저 우리가 중요하게 좀 붙잡아야 될 것이 있습니다. 뭐냐하면 먼저 여러분과 제게, 중요하게 뭔가 확실히 붙잡아야 될 신앙의 바탕을 먼저 확인해야 되겠어요. 그것이 뭐냐하면 받아합시다.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여러분의 뜻이 이루어지고, 욕심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기어코 성취되게 되어 있습니다. 이 사실을 기어코 붙잡아야 되겠습니다.

제가 시간이 가면서 특별히 뭔가 이 목회 말년에 '깨달았다!' 그러면 깨달은 바가 되겠습니다 만은, 사실은 너무나 이 사실이 절실하게 와서 부닥치는 겁니다. 믿음이라는 것이 뭐냐? 믿음의 발판이라! 그래서 10가지 발판 중에 제일 먼저 말하는 것이,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 이 배경이거든요. 그런데 사실 우리가 '믿는다!' 그럴 때에 뭘 믿느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 것을 믿습니다.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믿습니다. 그게 하나님의 주권 아닙니까! 제가 이 사실을 목회 말년에, 초기에도 늘 깨닫고 뭐 가르치고 그랬습니다 만은, 절실하게 부닥치는 것이, '그렇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구나! 하나님의 주권이 성취되는 구나!' 그게 너무 와서...

우리가 특별히 다락방에 들어오면서, 제가 처음 초기에 설교를 할 때에 흑판 가지고, 설교를 안 했습니까! 흑판을 가지고 설교할 때에 아마 여러분 '흑판' 그러고, '설교' 그러면, 기억에 남는 게 하나 있을 겁니다. 뭔가를 쭉 그어나가요. 굵직한 선을 그어나가요. 그러면서 뭐라 그랬습니까? '하나님의 주권!' 그랬습니다. 아마 이게 지워지지 않을 겁니다. 여러분들이 지워지지 않는 것처럼, 여러분 신앙에 고백이 되어야 됩니다. 내가 하고, 내가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겁니다.

저는 이 목회하면서 물론 목사가 교회를 축복하고, 교인들을 축복한다! 그러지 만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내 뜻이 안 이루어지는데 대해서 참 감사할 때가 많아요. 만약에 내 뜻이 이루어졌다! 여기에 성한 사람으로 와 앉아 있을 사람이 없을 것 같아요. 다 두들겨 맞아 가지고 이상하게 안 되어 있겠습니까! 왜? 뭔가 이 인간 감정이 사람은 먼저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뭔가 이 갈등이 오고 이럴 때에, 또 그런 대상이 올 때에, '하나님, 손 좀 봐 주십시오!' 이게 먼저 나가지! '하나님, 진짜 축복해 주옵소서!' 이게 안되더라 구요.

그래서 절대로 그게 하나님의 뜻이 여러분과 저를 축복하시기 위해서 세웠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목사라고 해서 내가 욕심내는 내 뜻이 이루어지는 게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여러분 개개인이 하나님 앞에 왔습니다. 참 감사해야 될 것이 교회나 가정이나 이 땅이 여러분의 소원대로 이루어졌다면 세상은 벌써 몇 번 망해도 망했을 겁니다. 교회도 몇 번 이상해져도 이상해 졌을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때에 따라서는 내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는데서 불평이 나올 수 있어요. '하나님, 왜 안 이루어줍니까!' 그러나 돌이켜 생각하면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그래서 하나님의 뜻은 어떤 면에서 여러분의 욕심이 안 이루어질 때에 오히려 더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하,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구나!' 내 욕심을 위해서 기도하다가도 안 이루어지면, '하나님 아버지, 너무 감사합니다!' 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역사!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하나님의 뜻이라 그럴 때에, 때에 따라 많은 경우 내가 하기 싫고, 내가 하고싶지 않는 것! 찾아하는 것이 어떤 면에서 많은 경우 하나님의 뜻일 수가 있는 것이 너무 많아요. 내가 하고싶어서 하는 것, '하나님의 뜻이다!' 그건 재고해봐야 됩니다.

요나처럼 막 도망을 칠 때에, 마침 뭐가 나왔어요?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다!?' 탔습니다. 홀랑 빠져버렸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얼마나 이런 문제를 많이 보는지 몰라요. 기어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이 성취합니다. 그러면서 기어코 하나님의 뜻은 여러분과 저에게 이루어지는 순간, 순간 뭐가 됩니까? 힘드는 것 같고, 안 되는 것 같으나 축복과 은혜로 임하게 되어 있습니다. 확실히 붙잡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다윗도 어떤 면에서 많은 경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주권이 이루어지는 것을 알았지 만은, 그 어떤 때보다도 다윗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고 고백한 때가 언제냐 하면, 물론 그의 모든 기록 속에서 다 그런 배경이 되어 있지만 절실하게 고백한 것이 있어요. 그것이 뭐냐하면 역대상 29장 10절부터 쭉 나와있는 말씀이 있습니다. '부귀와 명예와 높게 하심과 낮게 하심, 권위 힘 등 모든 것이 여호와의 손에 달렸습니다!' 심지어는 뭐라 그랬느냐? 우리 같으면 헌금조차도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내 생명도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여러분 정말 이걸 붙잡아야 됩니다.

바울도 유명한 바울의 생애 속에서 교리를 쭉 설명하고, 그 교리 마지막 부분에 가서 너무 감격스러움 말로,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습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세세토록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찬양을 하나님께 돌렸습니다. 여러분과 제게 바로 이 부분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 교회를 건축하는 과정에 있어서 보면서 느끼는 것이, 뭐 '이렇다, 저렇다!' 때에 따라서 우리가 교회건축 할 때에 여러분들이 이런 말 듣고, 저런 말 듣고, 그런 중에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혹시 우리 마음에 '이 사람이 좋다, 나쁘다! 이건 잘못되었다, 못 되었다!' 판단하게 될지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뭘 깨닫게 되느냐 하면, 모든 과정 속에서 좋게 하든지, 나쁘게 하든지, 좋은 사람인 것 같던지, 나쁜 사람인 것 같던지, 결국 뭘 이룹니까? 하나님의 뜻을 이룹니다.

여러분 저기 3500평까지 된 게 쉽게 된 것이 아닙니다. 속된말로 몇 번 디비 넘겨쳐서 되었어요. 그런데도 하나님은 뜻을 이루시는 겁니다. 나는 그 이 착공예배를 드리면서, '참, 하나님은 선하시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지 인간이... 그래서 우리가 아무리 뭘 한다 그래도 하나님의 손에 있는 것이지, 우리 스스로 되는 게 아닙니다. 진짜 이것을 알 필요가 있어요. 진작! 이것이 너무 귀중하고 복된 역사임을 우리가 알게 됩니다. 그래서 사울은 이것을 몰라 가지고 일평생 고생하다가 죽었어요. 다윗은 이 사실을 진작 알았을 때에 얼마나 평안했습니까! 도망치면서도 평안했어요.

그리고 이 축복된 역사를 알았을 때에 다윗은 이 사실을 알게 될 때에 도망치며 어려운 때에 다윗 왕국을 건설해서, 다윗 왕국을 정말 하나님의 위대한 왕국으로 이끌어 간 것이 좋은 일꾼을 어려울 때 다 붙였습니다. 그 사람들이 결국은 다윗을 중심해서 다윗 왕국에 귀하고 위대한 일꾼들로 세우심을 받았던 것을 우리가 너무나 잘 볼 수 있습니다. '어렵다, 힘들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좋은 것을 다 붙이시는 기회가 되는 겁니다. 이게 전부 하나님을 진작 안다! 얼마나 행복입니다. 이걸 몰라서 아브라함도 반평생을 고생했거든요. 어느덧 하나님의 뜻, 그 영광스러운 역사를 바로 붙잡고 이삭을 바치고 난 후에 여호와 이레! 아브라함의 가는 곳곳마다 다 준비해놓은 사실을 보게 된 것을 우리가 잘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몰랐던, 우리가 잘 아는 데로 나폴레옹은 젊을 때에, '내 사전에는 불가능이 없다!' 이렇게 큰 소리 치다가 말년에 세인트헬레나 섬에 유배되어 한탄하면서, '예수 그리스도, 사랑을 말했는데도 전 세계를 다 정복했는데, 나는 오늘날 이 모양이구나!' 늦게 철들어 가지고, 철들자 말자 또 죽어버렸어요. 여러분 하나님의 뜻을 모르면 철들자 말자 죽습니다. 예수 믿고 진작에 이걸 모르면, 깨닫는 순간에 벌써 늦어요. 가기 바빠요. 받아합시다. "진작 깨닫고 살아가자!" 아니면 철들자마자 어떻게 되어요? 죽는다! 철들자 말자 죽습니다. 진작에 이것을 깨닫고 나가는 길이, 얼마나 크고 복된 축복인 것을 말씀을 해주시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이 또 뭐냐하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 늘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말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말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안 합니까! 그러면서 뭐라 그러느냐? 바로 이 말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입니다. 이것 깨닫게 될 때에, 얼마나 평안하다는 것이 아니고 축복과 성공이 여기 있습니다. 이 사실을 깨달았던 역사의 위대한 음악가들도 헨델이라든가, 그 다음에 유명한 그림 그렸던 다빈치라든가, 이런 사람들이 이 사실을 깨닫고 엄청난 축복의 걸작들을 남긴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이 위대하심, 하나님의 역사 하심, 하나님의 축복하심,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역사 속에 있는 것을 깨닫게 되고, 이 사실을 알게 될 때에 얼마나 엄청난 축복과 역사를 우리가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뭘 깨달아야 되느냐? 여기서 중요한 것을 깨달아야 됩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아는 만큼, 깨닫는 만큼, 확인하는 만큼 뭐가 나오느냐? 역사가 나옵니다. 사람들도 서로 서로 아는 만큼 도와줍니다. 내가 저 사람을 알고, 저 사람이나를 아는 만큼 도와줍니다. 아는 만큼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부와 귀를 하나님이 하실 수 있고, 하나님이 여러분 인생을 담당하시고, 죽고 사는 문제도 하나님이 하실 수 있고,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축복하실 수도 있고, 저주하실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런 하나님을 내가 모른다! 이게 인간의 불행 아닙니까! 5분 후의 일을 모르는 내가, 5분뿐만 아니라 영원히 나를 아시는 그 하나님을 모르게 될 때에, 그게 인간의 불행이요, 인간의 괴로움입니다. 어려움입니다. 이것을 깨닫는 만큼 모든 것이 거기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 축복과 역사를 누리게 되는 것을 우리가 잘 말씀합니다. 그래서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을 아는 만큼, 역사가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만큼, 그 하나님의 뜻을 아는 만큼,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가 나오도록 그렇게 계획이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은행에 볼일이 있어서 갔어요. 우리 집사님이 지점장으로 계시기 때문에 집사님께 가니까, '목사님이 어떻게 오셨습니까!' 그러면서 이제 조용한 지점장 실에 가서 앉게 합니다. 그러더니만 '이렇게, 이렇게 왔습니다!' 하니까, 뭐라 그러느냐 하면, '목사님, 가만히 계십시오!' 그러더니만 집사님이 가서 다해요. 다 해 가지고, 그것도 금방 뭐 해 가지고, '목사님, 되었습니다!' 여러분 제가 이 비유를 들 때에, 뭔가 오해하지 마시고 잘 들어야 됩니다. 그 은행 안에는 지점장이 최고입니다. 마음대로 할 수 있더라 구요. 하물며 역사의 주인이시오. 지구의 주인이신 주님께서, 그분을 내가 아는 만큼, 그래서 주님 앞에 나갈 때에, '아, 왔냐! 가만히 있거라! 내가 다 해주마!' 이 사실을 아는 만큼 하나님이 역사 하시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 사실을 아는 모세가 뭐라 그랬습니까? 위기 속에 있을 때에, 너무 위급할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신이 없어졌을 때에, '너희는 가만히 있어라! 오늘날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해서 구원하시는 것을 보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해서 싸우시리라!' 신나는 일 아닙니까! 이래도 모를 겁니까? 이래도 외면할 겁니까? 이래도 '내가 하겠다!' 그러고, 이래도 '내가 뭘 이루겠다'고... 이것보다 더 미련한 것이 없어요. 여러분 미련하다는 것이 뭡니까? 여호와를 없다고 하는 사람,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사람을 성경은 미련하다! 그랬습니다. 여호와를 인정하는 자는 뭐라 그랬습니까? 지혜의 근본이라 그랬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아느냐? 이게 중요한 문제 아닙니까! 여러분과 제가 어떻게 하나님을 아느냐? 하나님을 안다는 것이 뭐 간단한 겁니다. 이것을 우리가 구체적으로 조금만 붙잡고 하나님 앞에 나가면 여러분들이 한 주간 동안 승리한다 정도가 아닙니다. 이것을 모르게 될 때에 어떤 역사가 나오느냐 하면, 이런 또 문제가 나오더라 구요. 모든 것이 하나님의 능력의 손에 있고, 하나님이 하실 때에 역사가 나오는데, 이것을 모르게 될 때에, '하나님을 믿는다!' 그러면서 '뭐든지 된다!' 그러는 그 사건 속에서, '믿음' 그럴 때에, 믿음에 본질이 이상해져 버리더라 구요.

내가 많이 구하고, 많이 믿고, 내 신념이 있어야 되는 줄로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한때에 이것이 심리적인 배경이 되어 가지고, '하면 된다!' 그래가지고 신앙의 본질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몰라요. 우리나라가 그래서 신앙이 얼마나 희박해져 버렸습니다. 교회가 이상해져버렸어요. '하면 된다!' 그랬습니다. 하나님이 없이 하면 되는 것은 망하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은 뭐라 말씀했습니까?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여러분도, 나도 하면 되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도 나도 할 수 없지만, 누가? 하나님을 붙잡고 있는, 하나님이 이 일을 이루시고, 이 역사를 이루시는 것을 믿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이루실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뭘 해야 됩니까? 구원받아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하나님이 내 안에 오셔야 합니다. 내가 죽고 하나님의 생명이 내 안에 오셔야 됩니다. 이걸 가지고 '구원'이라 그랬습니다. 나는 시간이 갈수록 뭘 생각하느냐 하면, 정말 구원이 너무 귀중하다! 그리고 구원의 축복과 역사가 너무나 귀중하다!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이 여러분과 저에게 원하시는 뜻이 뭡니까? 이 땅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메시아를 보냈습니다. 하나님의 뜻입니다. 아비의 뜻입니다. 아버지의 뜻입니다. 이것을 붙잡는 만큼,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되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뭐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하나님 창조주의 능력을 믿고, 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역사를 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게 구원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에, 이 사실은 나와 무관하게 됩니다. 구원의 역사!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에게 새 힘을 주시나니' 우리가 이 해에 첫 번 메시지죠. '여호와를 앙망하기만 하면 새 힘을 주시나니' 구원의 축복! 그리고 그 구원의 축복을 누리는 만큼 새 힘을 주십니다.

저희 집 사람이 몸이 건강치 못할 때에는 범사에 '일하는 것이 힘들다!' 그래요. 그러다가 몸이 어떻게 좀 회복이 되고, 건강해 지면, 그래서 눈을 뜨면, '뭘 할까!' 싶어서 정신이 없다 그래요. 뭐 하고싶은 의욕이 나가지고 이것저것... 아마 다 그럴 겁니다. 저도 이 건강하지 못할 때는 하고싶은 마음이 없어요. 그때는 아무것도... 앞이 캄캄해요. 아무것도 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요. 그러나 조금 뭔가 이 회복이 되고, 그 다음에 건강이 회복되면, 막 미래가 보여요. 희망이 막 생겨요. 여러분 왜 이 구원의 축복과 역사가 여러분 모든 삶에 중심이요, 모든 것의 해결이냐? 예수 생명을 통해서 여러분 기쁨과 감사가 나왔다! 미래가 보입니다. 뭘 하고싶어서, '전도한다! 선교한다!' 이게 문제가 아닙니다. 여기에 모든 것이 다 오게 되어 있습니다.

조금 건강해도 뭔가 하고싶은 의욕이 생기고 벌떡 일어나서 설치는데, 예수 생명으로 영원한 생명이 내 안에 힘이 될 때에, 여러분 여기에서 모든 문제 해결입니다. 다 나옵니다. '하고싶다!' 정도가 아닙니다. 여러분 하고싶어질 때에 뭘 하게되고, 그 다음에 뭐 건강해서 뭔가 딱 계획이 세워질 때에 뭔가 움직이고, 뭐 결과가 나오지! 그게 아니면 안 되게 되어 있어요. 여러분들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왜, 위대하냐? 왜 귀중하냐? 바로 그 부분이거든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내 안에 예수 생명의 역사와 감격이 충만하게 되고, 그 생명의 역사를 확인하는 만큼 뭐가 나옵니까? 내게서 힘이 나갑니다. 내게는 능력이 나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직장에서, 우리의 일이, 우리의 삶이 성공하게 되는 거죠. 그리고 여기서 뭐냐? 지혜도 나오고, 총명도 나오고 그렇잖아요. 뭐 '하기 싫은데...' 딱 닫혀있으면 아무 지혜도 나오지 않아요. 내가 하고 싶어서, 뭔가 일어나서 살피고 움직일 때에 거기에 번뜩이는 지혜도 나오고, 총명도 나오고, 그렇게 되는 겁니다. 예수 생명으로 내게 정말 영원한 의욕이 생기고, 천하를 덮을 수 있는 그런 위대한 힘이 생긴다! 여기에 모든 힘이 나오는 것 아닙니까! 제가 지난주에도 말씀했습니다 만은, 처음 생명의 역사를 받고 눈을 딱 뜨니까, 모든 지구가 나를 위해 있는 것 같아요. 그때에 힘이 나오더라 구요. 모든 지구가 나를 보고 외면했다! 그것은 자기도 모르게 힘이 나기는커녕 다 넘어지게 됩니다.

여러분 오늘 여러분과 제가 바로 붙잡아야 됩니다.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그 뜻을 붙잡는 것!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그 역사를 여러분 누려야합니다. 그리고 확인해야 합니다. 이 역사가 확인될 때에 미리암을 통해서,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넌 후에 강가에서 춤을 춘 것처럼 여러분 우리의 삶에 활력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찬양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 놀라운 축복과 역사가 날마다 여러분에게 사실이 되는 것! 요한복음 1장 12절...

이 일을 위해서 힘이 없고, 연약하고, 우리가 부족할 때에 내 마음속에 구원의 생명과 역사가 희미해지게 될 때에 다른 게 없습니다. 조용히 하나님 앞에 엎드려서, '주여, 이 시간 내게 오시옵소서!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 권세를 받았을 때에, 그때에 우리는 주변에 다가오는 흑암에 세력을 꺾는 힘이 생깁니다. 원수의 능력을 제어할 뭘 주었습니까? 권세를 주셨나니! 그때부터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우리는 영적 투쟁이 가능하게 되죠. 죽었는데 뭐 영적 투쟁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가 흑암을 향해서 나가게 될 때에, 다른 문제가 아닙니다. '전도한다! 선교한다!' 이것은 영적 투쟁이거든요.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내 안에 생명의 역사가 힘있게 발동할 때에, 우리에게는 영적 투쟁이 저절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모든 문제가 여기서 해결됩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5장 11절에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 여러분 내가 기쁘면, 기쁘지 않는 사람이 이해가 안되어요. 내가 좋으면,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이 이해가 안되어요.

그래서 바울은 가는 곳마다 '감사합니다!' 그랬거든요.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은 이해가 안되어요. 내가 너무 즐거우면 교회 와서 불평하는 사람 이해가 안됩니다. 왜? 불평하는 사람은, 그 사람이 이해도 안 되지만 불평하는 사람들의 심리도 몰라요. 안 그렀습니까! '주인이 배가 부르면 종이 배고픈지 모른다!' 안 그럽니까!

여러분 오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충만하면, 여러분 돌아가면, '내 가정에 누가 불평하고, 내 가정에 뭐 어려운 문제 있고, 내 가정에 문제 있다!' 하나도 몰라요. 그게 뭐 불평 스러운 줄도 모르고, 왜? 그럴수록 뭐가 나옵니까? 감사밖에 안 나오는데, 내가 배부르면 돼요. '하나님이 이루어주신다!' 그랬습니다. 뭐로? 구원받은 자로, 그때에, 위기가 올 때에, '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역사를 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바로 기도로 이 사실을 누릴 수 가 있습니다. 문제나 사건이 있을 때에, 이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감사하며 나갈 수 있습니다.

하나 더 말씀합니다. 그걸로 끝나는 것이 아니죠. 마태복음 28장 20절에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나님을 아는 것도 그렇게 위대한데 뭐라 그랬습니까? 그 하나님이, 이게 나는 맨 날 알다가도 모를 일이 뭐냐? '함께 하마!' 그랬습니다. 이 말할 때마다 스펄젼이 한 말이, '우주를 조각배에 담는 기적이다!' 그랬습니다. 나는 지금도 잘 모르겠어요.

이게 뭐냐하면 너무 위대한 역사입니다. 그 하나님을 만나고 아는 것만 해도 이런 역사가 나오는데, 그 하나님을 만나고 아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언제 한번 만나자! 언제한번 만나서 이야기하자!' 그런 정도가 아니고, '여러분과 저와' 뭐라 그랬어요? '세상 끝 날까지!' 그것도 주일날만? '영원토록!' 뭐라 그랬어요?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할렐루야! 바로 성령으로 함께 하십니다. 여러분 이 사실을 오늘 모든 것이 여기서 다 해결됩니다. 하나님의 뜻은 여러분과 저와 함께 있기를 원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여러분과 저에게 성령으로 함께 역사하기를 원하십니다. 날마다 이 사실을 기도로...

그래서 무시기도가 힘이 있다는 것이 그 이야기입니다. 기도로 확인하면 됩니다. 함께 있기 때문에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함께 있기 때문에, 항상 함께 있기 때문에 무시로 하나님 앞에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항상 함께 있습니다.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 속에 이 일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을 깨닫고, 확인하는 순간 순간마다, 우리가 생각하는 정도가 아닙니다. 엄청난 하나님의 축복과 역사가 여러분과 저의 수준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집니다. 뭘 하기 위해서 세계 복음화를 향해서!

그래서 저는 교회를 건축하면서 새삼 느끼는 것이 뭐냐하면, 이 교회 지을 때도 제가 건축에 '바라시'가 뭔지, 그때는 뭐 용어도 몰랐거든요. 그러면서 그냥 이 뛰어다니면서, 뭔가 이 시멘트를 부어 가지고 있다가 마르고 난 후에 같이 거들고, 하지도 못하면서도 오히려 걸거치지만 그렇게 했거든요. 그러다가 얼마나 방해가 되었던지, 못을 잘못 밟아 가지고, 발에 찔려 가지고 피가 나기도 하고, 그러면서 그때 제가 느꼈던 것이 뭐냐하면, 그렇게 일하다가 '내가 한번도 이런 일을 해보지도 못했고, 한번도 교회건축이라는 이런 것을 생각지도 못했는데, 어쩌다가 이 자리에 섰는가!' 싶은 생각이 들더라 구요.

감사라기 보다는 그때는 너무 그러니까, 멍멍한 것이 감사도 잘 모르겠고, 그냥 '참, 은혜다!' 이런 정도밖에 생각이 안되어요. 그러다가 교회를 또 건축한다고, 이렇게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마음속에, '다시는 내 생애에 교회 건축할 시간이 있겠냐!' 왜? 겁나기도 하고 고생을 좀 했기 때문에, 또 좋기도 하고, 그런데 '교회를 건축한다!' 이래서 지금 이 자리에 나와 섰습니다. 이제 기공예배를 드리게 되고 마음에 뭐냐? '하나님 내가 어쩌다가 또 이런 자리에 섰습니까!'

대답은 하나뿐이에요. 하나님이 하신다! 왜?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하나님이 역사 하십니다. 그것도 조그마한 변소를 짖는 것이 아니고, 지금까지 계획하지 못했던, 내 수준과 내 능력과 상관없이 3500평이라는 엄청난 이런 교회를 지어라! 또 그것뿐만 아니고 후대를 살리는 렘넌트! 뭐 지금 말은 해도 막상 렘넌트 그러면 없어요. 가슴에 렘넌트 말뿐이지, 가슴이 별로 나오지도 않아요. 그런데도 여러분과 저를 이 자격이 있어 세운 것이 아닙니다. 세워 가지고 세계를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드는 것!

받아합시다. "하나님이 계획하신 것이다!" 전적인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 사실을 붙잡고 섰다! 누가 이룰 것입니까? 빌립보서 1장 6절이 생각나더라 구요.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뭐라 그랬어요? "확신하노라!" 다만 뭐만 회복하면 됩니까? 믿음회복 하십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런 믿음을 회복하고 섰는 자들에게 성경대로 역사의 약속한 축복을 주실 것입니다. 이 엄청난 축복과 역사 속에 여러분과 저를 세웠습니다. 이것은 아무에게나 주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한번 다윗이 엄청난 하나님의 축복을 깨달았지 만은, 자기에게 성전건축을 허락지 않았어요.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 다윗에게도 허락지 않았던 성전건축에 나는 두 번이나 참여했다! 이겁니다. 하나님의 축복 중에 축복이에요. 하나님의 뜻입니다. 여러분 겨우 어쩌다가 한번 참여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여러분 이 자리에서 정말 하나님이 주신 이 축복을 놓치지 마시고 우리가 누려야 됩니다. 누리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여기에 참여했다 정도가 아니거든요.

다윗에게 성전 건축에 마음만 먹어도 후손만대까지 복을 주었는데, 참여도 못했어요. 계획만 세웠는데, 여러분 하나님 앞에 헌신하고, 참여까지 해서 이 축복 속에 섰을 때에 약속한 것이, 성경이 자손만대에 하나님의 축복이 임할 것입니다. 세계복음화의 역사 속에 여러분과 저를 세워서 일할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이 축복 속에서 오늘 약속하신 말씀! 누가 아비의 뜻을 행했습니까? 여러분과 제가 확실하게 대답해야 됩니다. '주여, 내가 하겠습니다!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포도원에 가서 실제로 일해야 됩니다. 진실하게 신앙 고백보다도 더 좋은 헌신이 여러분과 제게 계속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서론
하나님의 뜻은 세상 구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세상을 구원할 메시야를 보내셨으나, 메시야를 받아들여야 할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그들에게서 멸시받는 세리와 창기들이 먼저 받아들였습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하는 사람들이 좋은 헌신의 모습들에만 매여 있다가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놓치는 위선에 빠질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아버지가 두 아들에게 포도원 일을 시켰는데, 큰 아들은 가겠다고 해놓고는 가지 않는 위선을 보였습니다.

● 본론
1. 우리가 확실히 붙잡아야 할 신앙의 바탕은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1) 내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에 대해 불평할 수 있으나, 돌이켜 보면 내 소원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참으로 감사할 일입니다.
(2) 내가 하고 싶은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찾아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 수 있습니다.
(3) 다윗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짐을 고백했고(대상29장), 바울도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고 하나님께로 돌아간다고 감격하며 고백했습니다.
(4) 다윗이 성전을 지으려고 했을 때도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진 것처럼, 우리 교회의 건축 과정에서도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2.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만큼 역사가 나온다'는 사실을 반드시 깨달아야 합니다.
(1)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모르고 산다는 것이 인간의 불행입니다.
(2)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아는 만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가 따라 나옵니다.
(3)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는 내가 죽고 하나님의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오는 구원의 사실이 있어야 하고, 그것을 누려야 합니다.
(4) 예수 생명 안에서 만족과 기쁨과 감격이 넘쳐나게 되면, 우리의 현장에서 새 힘을 얻어서 하나님의 뜻이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역사를 체험할 수 있게 됩니다.
(5) 혹시 구원의 사실이 희미해지면, 먼저 조용히 하나님 앞에 엎드려서 기도하며 자신의 신분과 권세를 확인하십시오.

● 결론
성령으로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고, '주여 내가 가겠습니다'라고 고백하며 실제로 헌신할 때, 하나님이 뜻하신 세계 복음화가 성취되는 자리에 서게 되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기쁨과 감사가 넘치게 될 것입니다.

● 기도제목
◎ 날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살아가도록
◎ 예수 생명 안에서 하나님을 더욱 잘 알아가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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