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에 감동하여
2004-05-07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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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바리새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시되 42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뉘 자손이냐 대답하되 다윗의 자손이니이다 43 가라사대 그러면 다윗이 성령에 감동하여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말하되 44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냐 45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 46 한 말도 능히 대답하는 자가 없고 그 날부터 감히 그에게 묻는 자도 없더라 (마22:41~46)
오늘 제목이 성령에 감동하여 이렇게 되어있다. 성령에 감동하여, 이것이 다이다. 문제는 여러분과 제가 이것하여 주옵소서. 저것하여 주옵소서. 이것이 문제가 아니라 성령의 감동받는 것이 다이다. 성령의 구체적인 인도와 감동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모든 것이 다 여기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누가 성령의 감동을 받았느냐? 오늘 다윗을 하나의 모형으로 해서 다윗을 예로 성령의 감동을 받았다라고 말씀하고 있다. 우리가 오늘 성경에서 보는바대로 하나님께서 다윗을 통해서 예수그리스도를 이땅에 보내시겠다고 약속을 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도 똑같은 약속의 배경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잘 아시다시피 오늘 성경에서 말씀한대로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질문을 했다. 뭐라고 질문을 했는가하면 본문 초기에 그렇게 말했다.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 뉘 자손이냐라고 했다. 이 말은 메시지야가 누구의 자손으로 올 것인가에 대해서 물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 유대의 모든 앞에 선 사람들이 똑같이 이걸 구체적으로 가르켰다. 다윗의 자손으로 온다라고 가르켰다. 그러니까 말할 것 없이 대답하기를 다윗의 자손이니다. 그렇게 말씀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43절에 가라사대 그러면 다윗이 성령에 감동하여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말하되 그러면서 구체적으로 말씀을 인용했다.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아래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였느니라 이 말씀으로 인용을 했다. 무슨 말씀인가하면 다윗의 후손으로 온다고 하면 어떻게 후손을 향해서 예를 들어서 아버지가 아들을 향해서 주여라고 합니까? 이렇게 하는 법이 어디있느냐고 질문을 했다. 이때부터 바리새인이나 서기관이나 다른 어떤 단체에서도 예수님께 질문하는 사람이 전혀없었다고 했다. 마지막부분에 보면 나온다. 46절에 한 말도 능히 대답하는자가 없고 그날부터 감히 그에게 묻는자도 없었더라. 그런데 예수그리스도 다윗의 후손으로 나셨는데 그 예수그리스도를 향해서 다윗이 주라 말했다. 그것은 성령으로 되는 것이지 인간지식으로는 안된다. 그런 이야기이다. 그래서 고전12:3에 보면 성령으로 아니고는 예수를 주라 시인할 수가 없다라고 했다. 이런 의미에서 역사속에서 가장 성령인도를 받았던 역사적인 인물을 꼽는다면 우리는 다윗이라 그렇게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이 다윗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엄청난 복음의 귀중한 조상으로 삼으시고 인도하신 그런부분을 볼 수 있다. 성경은 많은 경우 다윗의 씨로 인해서 메시야가 나올 것을 말씀하고 그리스도가 그로 통해서 나올 것을 말씀했다. 사11:1에 보면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했다. 이새는 누구의 아버지인가? 다윗의 아비이다. 다윗의 후손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이 땅에 영원한 축복과 영광으로 인도하실 것을 말씀을 해 주시고 있다.
그래서 성경은 다윗과 더불어 맺어진 왕위에 대한 언약은 그리스도와 더불어 맺어질 구속의 언약에 모형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다. 제말이 아마 여러분들이 금방 이해가 되어야 할 것이다. 처음오신 분들은 조금 역사적인 배경이 되기 때문에 다시 말한다. 다윗과 더불어 맺어진 왕위에 대한 언약이 그리스도와 더불어 맺어질 구속의 언약에 모형으로 말씀하고 있다. 다윗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통해서 엄청난 부와 왕권을 주셨다. 그 축복과 왕권의 부를 모형으로 주셨는데 뭔가하면 그리스도로 더불어 맺어질 구속의 역사의 모형으로 만드시고 삼으셨다는 내용이다. 그러면 성령의 인도를 받는 모형이 다윗이라고 했다. 그러면 다윗이 왕이며 어떤 믿음으로 살았기에 성령의 확실한 인도를 받는 모형이 되었느냐?
여러분들이 지금 또 다시 말씀을 정리한다고 하면 성령인도받으면 다 되는 것이다. 성령감동받으면 다 되는 것이다. 옛날에는 성령의 인도받는다는 말을 참 많이 오해를 했다. 그래서 어떻게 이해를 했는가하면 주로 기도할때에 요즘은 그런기도를 잘 안한다. 성령의 강권적으로 역사하사그런다. 성령의 역사를 내 의지와 내 인격과 상관없이 뭔가 강권적으로 역사 내 인품과 내 지식과 상관없이 그렇게 역사하는 것으로 생각을 했다. 여러분들이 이 자리에 온 것이 성령의 인도인가? 아니면 여러분 마음대로인가? 확실히 믿는가? 그러면 이것을 알아야 한다. 이 자리에 올때에 눈을 뜨자마자 이상한 힘에 의해서 코가 이상하게 당겨지든지 손이 이상하게 당겨지든지 끌려가지고 이 자리에 앉았는가? 안그러면 어제부터 준비하고 또 이 자리에 앉기전에 미리 일어나서 준비하고 세수하고 내가 교회가야겠다. 어떤 사람은 기쁨으로 어떤 사람은 할 수 없이 어떤 사람은 의무로 어쨌든 이 자리에 왔다. 그러나 의무로 오든지 할 수 없이 오든지 어쨌든 이 자리에 내가 여기에 와야 되겠다는 생각과 결단과 결정으로 이곳에 왔다. 그렇다. 나도 모르게 막 끌려서 앉았는데 교회더라. 이런 사람은 없다. 뭘 말하고 싶은가하면 성령의 인도를 받는다고 할때에 내가 사전에 내 인격을 통해서 내지식을 통해서 내 생각을 통해서 내 판단과 결정을 통해서 인도를 받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게 중요하다. 그러면 지금까지 우리가 그런 것을 다 빼버리고 성령인도받는다고 할때에 강권적으로 나의 인격과 의지와 결단과 아무런 상관없이 막 끌려오는 것처럼 생각을 했다. 그렇게 안한다. 하나님은 정말 이런 배경에서 참 신사이고 인격적이시다. 그래서 여러분이 남편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 하나님 저 남편을 바짝 꺽어서 어찌했든지 그냥 하나님 우찌하든지 그렇게 기도하지말고 하나님께 맡기도 하나님의 손에 맡기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느냐? 그의 인격과 마음과 생각과 판단을 바꾸셔서 오게 하신다. 그걸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격과 상관없이 그냥 막 들고 치고 때리고 패고 그렇게 하시는 분이 아니다. 그래서 여러분과 저를 하나님은 얼마든지 축복받을 수 없는 인격과 상관없이 막 만들어서 그렇게 하실 것 같은데 그게 아니라 기다리신다. 축복받을 수 있는 인격이 되도록 기다리신다.
그러면서 성경에 롬8:26 한없는 탄식으로 성령이 뭘 못하는가? 하나님의 영이신데 한없는 탄식으로 여러분들이 생각과 마음과 판단을 바꾸시기를 기다리신다. 여러분 잘 알아들어야 한다. 오늘도 이 자리에 앉아있지만 내 성령은 내 생각과 판단이 너무 틀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걸 바꾸어놓기 위해서 주의 성령께서 여러분의 인격에 호소하신다. 여러분의 판단에 호소하고 생각에 호소한다.
그래서 내가 어떤 판단과 어떤 생각과 어떤 인격에 바탕이 되었느냐? 성령의 인도의 강권이 되어있다. 이것이 많은 경우 우리가 오해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전도한다고 할 때에도 역시 마찬가지로 전도라는 것은 성령인도없이는 안되게 되어있다. 어느날 당장 전도하러 갔다고 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전도도 먼저 하나님께서 전도할 수 있는 판단과 생각과 인격과 마음을 만들어놓고 그다음에 나오는 것이다. 그게 열매가 전도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면에서 어떤 인격이기에 다윗에게 성령의 구체적인 인도를 받을 수 있었느냐? 제일 중요한 문제가 여기에 있다.
한주간 삶이 여러분의 생애에 삶이 바로 여기에 속하게 되면 다 되는 것이다. 여러분은 성령인도받기 전에 누구의 인도를 받았는가? 말하기 싫을 것이다. 엡2:3에 본질상 진노의 자녀로 태어난다. 본질상 진노의 자녀의 배경이 누구인가? 마귀,사단이다. 계12:9에 보면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 한다했다. 예수님께서는 그 현주소를 요8:44에 너희 아비 마귀라고 했다.
그러니까 내가 원하든 원치않든 마귀의 인도를 받으면 여러분도 우리 자신도 모르게 어디에 빠지는가하면 운명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마귀의 인도를 받을때에 내가 성령인도받는다는 생각이전에 마귀의 인도를 받을때에 내 마음대로 사는 것 같지만 절대로 내 마음대로 된 일이 없다.
그런데 마귀인도받는 특징이 뭔가하면 자기를 중심해서 살도록 만들어놓는다. 그래서 운명에 빠진 사람들의 가장 큰 특징이 뭔가하면 이기주의의 극치를 달리고 있다. 자기중심이다. 자기중심이 이것이 바로 마귀의 인도받는 하나의 가장 큰 표현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나오는 문제는 전부 여기서 저주와 재앙으로 역사된다. 다시말해서 세상에서 망하는 가장 큰 원인중에 하나가 뭔가하면 사단의 통로다 할때에 자존심,교만이 사단의 통로가 아니라 완전히 사단에게 잡힌 증거이다. 통로라는 것이 아니다. 여러분 그러면 그 결과는 저주가 그대로 따라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부부싸움을 했다면 자존심이 없으면 부부싸움이 될 리가 없다. 한번 살펴보라. 부부싸움하면서 왜 내가 싸우지 분석하여 보라. 그 꼴난 자존심 가지고 별것 아닌 것 가지고 서로 다툰다. 결과는 저주와 재앙으로 열매맺게 되어있다. 적은 예를 들어서 말했다.
그러면 여기에서 이 운명과 사단과 흑암의 세력에서부터 벗어나는 길이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것이다. 그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것이다. 그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길이 예수 그리스도다. 롬8:2에 생명과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했음이니라 할렐루야! 요5:24에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다.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래서 행4:12에 천하인간에 다른 이름으로 구원을 주신적이 없다고 했다.
왜 그런가하면 여러분 이 흑암에 사단의 손에 붙잡힌 여러분들을 사단의 손에서 빼앗아낼려고 하면 사단보다 강해야 하는가 약해야 하는가? 강해도 살짝 강해서는 안된다. 마12:29에 완전히 사단보다도 확실하게 강해야 한다. 그래서 어느집에 들어가서 그 세간을 늑탈하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집에 들어가서 주인을 꽁꽁 묶어놓고 세간을 마음대로 가져 올 수 있는 것이다. 그 주인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없으면 전에 주인이 소유하고 있던 세간을 가지고 나올 수가 없다. 이미 여러분은 사단의 소유, 그런데 이 사단은 엄청나게 힘이 있는 영적인 존재이다. 왜 그런가하면 감히 하나님을 대적한 존재이다. 여러분과 제가 이길 수 있다라는 것은 말이 안된다. 백번죽었다 깨어도 여러분 스스로 수단과 방법으로 권리로 이 세상것으로 이길 수 없다. 이것이 원리이다. 혹시 여러분들이 가정이 왜 망하느냐? 왜 어려움이 있느냐? 왜 사건이 터지느냐? 왜 일이 어렵느냐? 그럴때에 혹시 이것 때문에 그렇다. 저것 때문에 그렇다. 자꾸 이러는데 하나붙잡으라. 기본만 바로 이해하면 된다. 뭐냐하면 흑암이 나를 잡고 있기 때문에 나의 가정에 어려움이 들어오는 것이다. 내가 흑암에 붙잡혔기 때문에 오는 것이다. 이것이 해결안되면 그다음문제가 해결안된다.
그래서 이걸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예수그리스도이다. 그 예수그리스도가 해결할 수 있는 길이라는 배경이 뭔가하면 내가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라는 순간에 누구의 다스림을 받는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것이다. 이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주권의 역사라고 한다. 여러분 하나님의 주권이라고 할때에 다른 것이 아니다. "나의 인생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다스림속에 있다" 믿는가? 이것을 믿는 믿음이 중요한 믿음이다. 이것을 가지고 신앙의 발판이라고 했다.
저는 신학교다닐때에 이것을 믿는 믿음이 신구약 전체를 통해서 흐르는 발판이다. 이것이 무너지면 성경 어디에도 걸어놓을 근거가 없다. 다 무너진다. 저는 지금까지 이 사실을 많이 가르쳤다. 특별히 전도사시절에 부목사시절에 주로 학생들을 담당을 하니까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교리신학을 가르칠때에 제가 이 교리신학에 늘 가르치는 배경이 하나님의 주권바탕에서 신학을 성경을 정립해야 때문에 늘 가르쳤다. 그런데 그것을 늘 가르치면서 지금에 이르면서 느끼는 것이 뭔가하면 나는 지금 이순간에 그 어느때보다도 그 어느때보다도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믿는 믿음이 옛날 젊었을때에 그렇게 가르쳤지만 지금처럼 절감되는 것이 없다.
여러분 다윗이 성령의 인도를 받을 수 있는 믿음의 바탕이 바로 이부분이다. 하나님의 주권이다. 다윗의 신앙의 발판이다. 확실하게 그래서 다윗이 나이많고 하나님앞에 서게되는 그 직전에 성전건축을 하나님이 약속했으나 다윗자신은 지을 수 없고 아들 솔로문에게 물려 주기 위해서 모든 준비를 해 놓고 모든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앞에 찬송하면서 신앙고백한 것이 뭔가하면 하나님이 주권자이십니다. 이고백이다. 그것이 성경 대상29:10~11이다. 10 다윗이 온 회중 앞에서 여호와를 송축하여 가로되 우리 조상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영원히 송축을 받으시옵소서 11 여호와여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이김과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유의 머리심이니이다
이말 할때에 아니다. 내것이 내것이지 왜 주님의 것입니까? 이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젊을때에 청년때에 혹시 그럴 수도 있다. 주의 것입니다라고 해도 안믿어질 수 있다. 저는 나이가 들수록 또 그리고 병든 몸으로 지금까지 살아가는 과정속에서 느낀 것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있나이다. 너무 절실하다. 생명도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너무 절실하다. 사실 어떤의미에서 죽을고비를 몇 번넘겼다. 그런데 안갔다. 그래서 하나님앞에 어떨때에 하나님! 빨리 지금이라도 데리고 가십시오. 왜 이쯤해놓고 놓아둡니까? 이렇게 덤빌때도 있었지만 안갔다. 그렇게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있다. 죽고 싶다고 죽는 것이 아니다. 죽고싶다고 죽는다면 여기있는 사람들 죽을 사람많다. 사실은 어떤면에서 죽고싶다고 해도 속으로는 안죽고 싶을 것이다. 어쨌든 죽고 사는 문제가 전부 하나님의 손에 있다.
대상29:12부터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유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자를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이것이 배경이 되면 이 배경이 강해질수록 평안이 온다. 흔들리지 않는다.
대상29:13부터 보면 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14 나와 나의 백성이 무엇이관대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십일조 드리는 것 이 권세도 보통권세가 아니다. 아무나 드리는줄 아는가? 저는 늘 그렇게 생각한다. 전에는 헌금할때에 아깝다라고 생각하다가 야! 이 드릴 수 있는 권세가 아무나 되나? 엄청난 배경이 되어야 이것이 나온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뭔가하면 운명에 빠진사람은 지옥을 누리다가 지옥간다. 그것이 잘 이해가 되어야 한다. 여러분과 저는 천국을 누리다가 천국에 간다. 아예 이땅에서 지옥을 누리고 산다. 근심, 걱정, 염려, 그러니까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병들고 어렵고 그렇게 되는 것이다. 이땅에 살다가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천국을 누리다가 천국에 가는 그런축복과 역사속에 있다. 그리고 이 천국을 누릴 수 있기 위해서는 엄청난 구속의 대속의 역사가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졌다. 이일이 우리에게 이루어졌다. 이것은 엄청난 것이다. 그리고 가치가 천하보다 귀하다. 이것은 그냥 나오는 말이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이땅에 오셔서 하나님이 여러분과 저를 대신해서 죽으셨다. 예수그리스도! 그 가치가 그로 통해서 일어나는 가치가 엄청난 가치이다.
제가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늘 그런 이야기를 한다. 캐냐에 가서 보면서 캐나의 소똥집에 있는 곳에 가서 우리 아이들을 일주일만 살다오게 되면 여러분 가정에 잘살고 못살고가 아니라 한국에 사는 여러분 가정에 사는 여러분의 부모에게 매일 감사하다고 할 것이다. 왜 그런가하면 소똥집에 사는 것이 나는 잠깐도 못있겠더라. 연기를 계속 먹고 사는데 눈이 빨갛게 되어서 연기가 빠져나갈 수 없니까 소똥의 냄새도 요란하다. 거기에 일주일 이틀 삼일이 힘들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께서 생각해보라. 조금 문화생활누리던 우리가 그 문화생활 안되는 원주민들 가운데 들어가서 사는 것이 어렵다고 하는데 내가 생각할때에도 너무너무 어려울 것 같다. 어렵다. 못산다.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땅과 비교안되는 하늘나라에 계셨던 그분이 하늘영광을 비워두시고 이땅에 여러분과 저의 모든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죄속해 주시러 오셨다. 저는 늘 이말하면서 똥통속에 오셨다고 말한다. 여러분은 똥통속에 그러면 생각이 안난다.
나는 똥통속에 그러면 너무 절감하는게 있다. 초등학교때에 친구가 똥통속에 빠져서 그때에 수업을 하는데 옷을 벗겨서 말리고 하루종일 죽을 고생을 했다. 똥통이 얼마나 무섭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알게 되었다.
생각이 더럽지 성질이 더럽지 마음도 더럽지 온통 냄새나는 속에 우리 주님께서 내 안에 오셨다. 오셔서 안나가실려고 발버둥치는가? 영원토록 오셨다. 안나가신다. 내주하셨다고 했다. 여기에 가치가 나온다. 뭐 그래 가치가 있겠는가? 그래서 교회에 오신 여러분들은 이웃을 보면서 저 인간 이상하다. 아니다. 그 속에 예수그리스도가 계시기에 귀중하고 가치있다. 십자가 지시고 십자가에서 고통당했다. 이 고통이 나는 오히려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십자가보다 더 큰 똥통속에 계신 예수님! 나는 그게 더 큰 고통이다. 지금도 그분이 내안에 계신다. 내 추하고 더럽고 연약하고 이런 속에서 그래서 얼마나 고통스러우면 성경에 말씀하지 않았는가? 하도 생각도 이상하고 성격도 더럽고 하니까 한없는 탄식으로 그것도 쥐어박고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한없는 탄식으로 여러분과 저를 최고의 인격으로 대접하면서 여러분을 성령의 감동받도록 하나님의 인도받도록 하나님의 백성으로 딱 잡고 계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다스림이다.
여러분들이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 왜 나를 떠나십니까? 왜 있다가 없다가 그럽니까? 기도할때에 혹시 그렇게 오해하는 분이 있을 것이다. 어떨때는 하나님이 함께 계신 것 같고 어떨때는 하나님이 떠난 것 같고, 어떨때 기분좋을때에는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잘되는 것 같고 어떨때는 떠난 것 같고 그런데 한번 오셨다. 한번 하나님이 여러분을 다스리기 위해서 붙들어주셨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손에 붙잡혔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니다. 저는 내가 하나님을 붙잡고 있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밤마다 잘 붙잡을려고 얼마나 몸부림을 쳤는지 모른다.
한달에 한번씩 주암산에 갔다. 주암산에 간 것이 잘못이 아니다. 내 생각배경이 가서 꼭 일주일씩 기도하고 오는데 제가 단골 굴이 있었다. 바위굴에 들어가서 하는데 여름에는 그래도 괜찮다. 굴에 들어가면 엎드려야 되지 앉아있지도 못한다. 굴속이니까 일주일동안 엎드려 있는 것이다. 겨울에는 굴속에 들어가서 요 이불을 못핀다. 담요하나 덮어쓰고 굴속에서 엎드려 있다. 그러니까 밥을 마음대로 못해먹는다. 밥을 해 먹는 수단으로 건빵 한봉지를 한끼씩 먹는다. 건빵 한봉지를 먹을 때에 물 한컵 마시면 배가 부르다. 물은 바로 앞에 가면 있으니까 계속해서 붙잡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나를 붙잡아 주시고 나를 떠나지마시고 하나님 잘 믿으려고 했는데 그렇게 기도할때는 늘 갈급하다. 그래서 신비하는 사람들에게 그런 것은 기도할 수록 인간은 더 갈급하게 되어있다.
여러분과 저는 내가 기도하고 잘믿으려고 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붙들고 있는 것이 아니다. 여러분 오늘 여기에 오신 것은 하나님에게 이미 붙잡혀서 왔다. 여러분 마음대로 떠나가고 싶어도 안된다. 그래서 와이로 써도 지옥가기는 다 틀렸다. 이말이 뭔말인가 이해가 되는가? 저는 이 말할수록 기분이 좋다. 와이로 써도 안된다는데 얼마나 감사한가? 와이로 쓸일도 없지만 누가 지옥갈려고 와이로를 쓰겠는가? 와이로를 써도 안된다는데 그래서 지난 주일에도 말씀했지만 혹시 한달에 한번씩 나온분도 있는가? 믿기 바란다. 지옥가기는 다 틀렸다. 여기에 나왔다는 사실도 자기 마음대로는 안된다. 교회나오는것도 자기 마음대로 나오는가? 나도 모르게 이상하게 첫주일 안가면 마음이 불안해 진다. 두 번째 주일에 안가면 망할 것 같다. 셋째주일 안가면 다리가 뿌러질 것 같다. 약간 걷어차이거나 돌부리에 넘어가면 이러다가 내가 죽겠다는 생각이 드다. 그러면 할 수 없이 네 번째 주일에는 자기도 모르게 교회가야되겠다고 나오게 된다. 나왔는가? 그래도 나왔는가? "그래도 천국은 문제없다." 왜 그런가?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것에 붙잡혔기 때문이다. 내가 아니다. 내 힘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이 자리에 나온 여러분들이 어떤 생각으로 내가 이 자리에 나온다고 얼마나 고생했느냐? 착각하는데 이 자리에 나오게 된 것이 하나님의 손에 붙잡혔다는 증거중에 증거이다.
이 자리에 나오면서도 하나님을 믿으니 내 주먹을 믿으라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쉽게 말해서 주권을 안믿고 다스림을 안믿는 사람 많다. 제가 경상도 사투리로 톡 깨어넣고 말하자면 많다. 왜 그런가하면 사단이 본격적으로 방해하는 것이 이 믿음 못가지도록 만든다. 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느끼는 것이 본격적으로 공격하는 부분이 하나님이 내 모든 것을 다스린다. 하나님께 다 맡긴다. 이 믿음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사단은 공격을 한다.
문제만 생기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는가? 문제만 생기면 그걸 가지고 이렇게 표현한다. 문제가 생겼다. 먼저 하나님께 맡긴다기 보다도 머리부터 팽팽 돌아간다. 내가 한다. 이렇게 되지 안맞겨진다. 맞겨질 수 없다. 그러면서도 내가 한다고 되는가? 실컷 자기가 한다고 하면서 고생하다가 하다하다 안되면 그때되어서 하나님앞에 나가서 이래도 안되고 저래도 안되고 하나님 나하고 무슨 원수진 것이 있는가? 라고 하면서 덤비면서 그러면서 나중에는 하다하다 안되니까 나중에는 뭐라하는가하면 하나님 마음대로 하옵소서 찌지 먹든지 뽁아잡수든지 마음대로 하옵소서. 제가 예전에 그렇게 기도했다. 그래라도 완전히 맞겼다 싶으면 마음이 편안해 졌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렇게 하고 내려오니 다 되어있었다. 이런 경험이 한두번이 아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지나오면서 느끼는 것은 내가 할때는 아무리 많다 적다가 아니다. 갈등이 있어도 하나님이 인도하시고 하나님에게 잡혀있다. 실패했어도 하나님께 잡혀 있다. 병이 들어도 하나님앞에 잡혀 있다. 이말하기까지가 얼마나 힘들든지 하나님앞에 용납이 안되는데 나부터 이것이 용납이 안되는 것이다. 아버지 교회목사가 병이 들어있는데 교회목사가 부끄러워서 어떻게 섭니까? 내부터 병을 고쳐야 병고치라든지 믿어라하든지 그렇게 될건데 나는 매일 골골하면서 어떻게 합니까? 이랬더니만 바울의 기도가 생각났다. 한참 기도할때보다도 너무 갈등될때는 밤중에 올라가서 발악을 했다. 하나님 나를 안그러면 데리고 가시던지 안그러면 아예 하나님이 결단을 내어놓던지 해야지 살지도 않고 죽지도 않고 계속 이래서 어떻합니까? 그때에 대답이 하나님이 네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할말이 없었다.
바울이 자기에게 간질이라는 병이 있었다. 전도자로서 나가면서 자기의 병을 보고 다른 사람이 시험들 정도인데 어떻게 하겠는가? 간절히 기도안했겠는가? 나는 간질환자를 보면서 느끼는 것은 강단에 섰다가 넘어지니까 정말 어려웠다. 아마 바울이 간질로 있었다는 것은 학자들이 다 한목소리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너무 어려우니까 하나님앞에 세 번기도했다는 것은 계속해서 기도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고후12:9에 하나님이 네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그러면서 뒤에 뭐라고 했는가? 약할때가 곧 강함이라. 그랬다. 그때에 바울이 주여 감사합니다. 이일로 통해서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이루시니 죽든지 살든지 내가 주님께 영광돌립니다. 내가 골골하면서 살아도 살고있는 것이 주님께 영광이요 다른사람을 풍성하게 한다면 그래도 살겠습니다. 안그러면 데리고 가십시오. 이랬다. 바울이 이 믿음가지고 넘어지며 자빠지며 두들겨맞고 핍박속에서도 전세계로 유럽을 바꾸어놓았다. 세계를 바꾸어놓았다. 여기에 하나님이 붙잡고 계시고 하나님의 다스림과 인도하심이 계신다는 이속에 모든 것이 다 따라온다. 지금 어렵다. 힘들다. 지금 하나님이 날 잡고 인도하시는구나! 대답이 다 나와버렸다. 제가 어떤생각이 드는가하면 신비도 좀 하고 하니까 기도하면 낳고 그랬다. 어떤 생각이 드는가하면 기도해서 병도 낳고 하면 저절로 메시지가 강해진다. 병이 안낳았느냐? 안믿어서 그렇다고 하고 기도안해서 그렇다고 하고 만약에 건강해서 그렇다고 하면 그럴 가능성이 많다. 많은 경우 병들었다가 낳았으니까 그러면 여기에 병든사람은 우리교회에 오기가 힘들 것이다. 왜냐하면 기도안하는 사람이 되고 안믿는 사람이 되고 불신앙자가 되어서 오기가 힘들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렇게 안하셨다. 내가 이렇게 되니까 함부로 말을 못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교회는 그래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하나님께서 말세에 모든 종류의 사람을 다 보내고 있다. 어떻다 어떻다 상관없이 다 보내고 있다. 또 신기한 것은 제가 그런 것을 당하면서 비로서 그런 사람들에 대한 눈이 열리기 시작했다. 병이 오면 믿음이 약해진다. 제일문제가 불신앙이 오는 것이 제일 문제이다. 근데 문제는 병이 왔다는 그 병보다도 더 큰문제가 뭐가 오는가하면 정신적으로 오던지 마음으로 오던지 뭐가 오는가하면 불신앙이 생기는 것이 인생의 문제이다. 그러니까 신앙으로 돌아왔다고 하면 상관이 없다. 그래서 제 마음에 처음에 안 낳았다는 문제로 갈등하다가 뭐냐하면 그래도 주님께서 나를 지금 인도하신다. 이것이 들어오면서 뭐가오는가하면 아파도 슬퍼도 괴로워도 고통스러워도 주님이 인도하신다. 하나님이 역사하실 것이다. 비로서 큰 소리 칠 수 있게 되었다. 비로서 그 속에서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저를 보고 어떤이야기를 하는가하면 목사님 쉬십시오. 목사님 건강해야 합니다. 그러면 저는 어떤 생각을 하는가하면 쉰다고 되고 그렇게 해서 되는 것 같으면 건강온다고 된다는 것 같으면 다 된다.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서 여러분과 저를 함께 송현교회에 세우시고 인도하시며 나가게 될 때에 뭔가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대로 되어지는 사실을 보여주시기 위한 것이다. 우리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교회건축도 엄청난 역사이다. 저는 교회건축을 여러분이 보다시피 말도안되는 것을 시작해서 하고 있다. 원래 교회건축을 멀리두고 생각했다. 돈좀 많이 모아서 그래 나갈려고 했는데 교회땅사는문제는 변두리 홀쭉한데 돈 만원짜리 이래서 몇만평을 같다놓던지 기도하면서 생각했는 부분인데 하나님께서 상상도 하지 못할 곳에 땅을 준비하게 하시고 그다음에 상상도 못할 거액을 들여서 건축을 하게 되었다. 그런중에 오면서 얼마나 씨름을 했는지 모른다. 하나님앞에 어떤 기도를 했는가하면 목사가 건강치 못하니까 직접 개입도 못하고 이러니까 장로님들이 맡아서 고생을 많이 하는데 하나님 이래서 되겠습니까? 그러다가 어떤 생각이 드는가하면 하나님이 이런것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는 실제의 교회의 건축이 개개인에게 이루어진다. 저는 장로님들이 맡아있는 분들마다 혹시 본인들은 고생한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고생정도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복음위에 확실한 바탕이 깔리는데 그 바탕속에서 하나님이 하시고 있구나, 이 믿음이 깔리게 된다. 아마 저는 장로님을 보면서 이것이 확실히 깔리게 된다. 회복되는 만큼 하나님이 이루신다. 그래서 하나님의 교회를 키워나가는 과정속에서 지금까지 보면서 무엇을 느끼는가하면 항상 목사부터 두두려 뿌셔서 키워가지고 교회를 키웠다. 좀 이상한 말씀인 것 같지만 두두려 뿌셨다는 말이 이상한데 죽을 고비를 몇 번 넘겼으니까 그때마다 생각, 마음, 판단 이것들이 달라졌다. 어떤 것은 내 마음의 생각이 보통 나는 한번 푹 찔러서는 바꾸어지는게 아니다. 내 놓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생각이나 어떤 지식이나 내마음에 어떤 것은 반 죽여야 나오는 것도 있다. 여러분 다 반죽이면 곤란할 것이다. 여러분 아마도 평신도니까 목사는 안빠져나오는 생각이라도 하나님앞에 뭔가 만드시는 과정에서 혹독한 그런 것을 당했더라도 메시지받고 바꾸어지면 되니까 건드릴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교회를 커나가게 하는 과정속에서 엄청난 이런 변화들이 나왔다. 류목사님이 항상 전도의 한단계가 뛰어넘을때마다 혹독한 시련이나 시험들이 나오는 것을 봤다는 것을 늘 그런 말씀을 하셨다. 저는 그것을 충분히 이해를 한다. 다시말해서 여러분이 현장에서 사는 삶에서 혹독하구나 그러거든 확실하게 붙잡으면 된다. 그래도 하나님이 다스리시는구나! 끝이다. 하나님이 역사하실 것이다. 계속해서 역사하실 것이다.
그래서 다윗이 말년에 백발이 성성했을때에 그가 하나님앞에 신앙의 위대한 고백을 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할렐루야! 여기에 다윗이 고백한 것이 나를 부족함이 없게 하옵소서라고 안하고 내가 부족함이 없도다. 선언을 했다. 신앙고백은 진짜 확신오면 선언이 된다. 사단에 대해서 선언이다. 그래서 여러분 기도중에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흑암세력은 결박받을찌어다. 물러갈찌어다. 이렇게 기도하는 배경도 그런 배경이다. 다윗이 확실하게 어떤 상황과 여건속에서도 하나님이 다스린다는 사실이 확인되는 만큼 그 생각과 판단과 결정으로 통해서 성령이 역사하신다. 말이 조금 이상하게 되는데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물이 흐를때에 물길을 통해서 흐른다. 물이 흐를때에 산으로 안 흘러간다. 물길이 막히면 물길을 트고 물길을 만들면 흐른다. 그말씀이 무슨 말씀인가하면 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고 어떤 판단을 가지고 있고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느냐 성령의 역사의 통로가 되느냐 사단의 통로가 되느냐가 결정되게 된다. 그러면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님이 나를 다스리고 있구나! 하나님이 내 모든 것이구나! 이런 바탕위에 있는 사람의 생각도 판단도 마음도 다르다. 여러분 뭔가 이해되는가? 그 속에 성령께서 역사하시게 되어있다. 할렐루야! 어느날 기도했더니만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성령이 역사했다. 그거는 요나식 인도이다. 자기마음대로 생각해놓고 도망가야되겠다. 갈려고 나오니까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가 있더라. 타는 순간 풍랑이 일어나고 고래배속에 들어가게 되었다. 우리가 이런식으로 성령인도를 많이 이해하게 된다. 어느날 홀가닥 인도받았다. 악령인도일수가 많다. 하기는 악령의 역사도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손에 있다. "그래도 하나님이 인도하신다" 여러분 어떤 형편이나 상황도 상관이 없다. 그래서 다윗이 어떤 고백을 했는가하면 삼하16:8~12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 그 대신에 네가 왕이 되었으나 여호와께서 나라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붙이셨도다 보라 너는 피를 흘린 자인고로 화를 자취하였느니라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왕께 여짜오되 이 죽은 개가 어찌 내 주 왕을 저주하리이까 청컨대 나로 건너가서 저의 머리를 베게 하소서 왕이 가로되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저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저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 하고 또 아비새와 모든 신복에게 이르되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저에게 명하신 것이니 저로 저주하게 버려두라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날 그 저주 까닭에 선으로 내게 갚아주시리라 하고
전 이 구절이 다윗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신 하나님의 주권에 신앙고백에 정말 실제적으로 삶의 생활에 터져나온 고백이다. 아마 압살롬에게 쫓겨서 맨발벗고 도망가는 그런 왕이 다윗의 실정이다. 그러니까 지금 시몬이라는 사울의 후손이 저주하고 욕하고 그럴때에는 너무 확실히 다윗은 끝났다. 완전히 끝났다. 너무 확실하게 되었으니까 죽음도 겁 없이 그런소리를 했다. 그럴때에 다윗의 고백이다. 이렇게 하는것도 하나님이 그렇게 하라고 한 것이 아닌가? 여러분 남편문제,자식문제,혹은 일과 직장 사건문제 하나님이 이렇게 하시는구나 다 끝났는 것이다. 이게 거의 안된다. 집중적으로 사단의 공격을 받는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다. 뭘하기 위해서 여러분과 저를 다윗이 고백한 것처럼 하나님이 하신다면 하나남이 돌아오게도 하실 수 있지 않겠느냐? 믿음대로 될 수 있다. 여러분과 저에게 혹독한 문제와 사건이 일어났다. 그 문제속에 걱정하고 근심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간단하다. 하나님이 이렇게 하신 것이 아니냐? 이 믿음 이 바탕이 들어가면 누가 역사하는가? 성령이 역사한다. 그러면 그 열매가 무엇인가? 성령이 역사하시고 인도하시면 축복과 은혜로 열매맺게 되어있다. 여기에 많은 경우 실패하게 되어있다. 여기서 다 무너진다. 사단이 여기에 집중적으로 공격을 한다. 스므이가 그 평민이 더군다가 사울의 후손이 감히 대왕에게 왕에게 그 번쩍거리는 창날앞에서 저주할때에 이 비루한자여 가라하고 깡패같은 자야 가라하고 그럴때에 다윗이 하나님이 이렇게 하신 것이 아니냐? 이 믿음 위대한 것이다. 위대할 것도 없다. 당연한 것이다. 하나님의 다스림속에 정말 주어지는 것이 당연하다. 요셉 세계정복했다. 노예로 팔리고 감옥에 들어가고 할때에 그가 요셉에게 이런 축복과 역사가 일어날지 상상도 못할 어려울때에 그때에 요셉은 바로 이 믿음이다. 이 믿음에 대한 고백이 창45장에 나온다. 형님들이나를 판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나를 형님들 앞서 애굽에 보내신것입니다. 이 믿음이다. 그러니까 요셉이 감옥가고 뭐가고 그래도 아무런 동요없이 굿굿하게가 아니라 우리보기에는 굿굿하게라고 하지만 요셉처럼 된다는 것이 원이다. 그건 은혜받아야 한다. 창39장과 37장에도 그렇다. 요셉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순간에 하나님이 요셉을 잡으셨다. 요셉이 하나님을 잡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요셉을 잡았다. 그때부터 요셉은 비전을 가지고 나간다. 그 비전이 세계라는 비전이다. 모든 문제를 하나님이 하신다. 그래서 계속해서 말씀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씀을 드린다. 요셉처럼 되게 하옵소서하면 하나님이 요셉처럼 만들려고 하나님이 하신 일을 감옥에도 가고 노예로 팔리고 이러면 뭐라고 하는가하면 하나님 요셉처럼 해돌라고 하는데 왜 이렇게 어렵습니까? 요셉처럼 만들려니 어려워지지. 감옥도 가고 노예로 팔리고 이래야 되는데 조금만 하면 인간들이 이걸 못믿는다. 지금 하고 계시는데도 안한다고 고함을 지른다. 이걸 가지고 우리는 불신앙이라고 한다. 하나님은 참 답답할 것이다. 이런면에서 전능하시다싶다. 박지온목사가 만약 이런모습을 보았다면 당장 따귀를 올려야 한다. 해주는데도 잔소리가 많다. 지금 하고 있는데도 말인가!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지금 하고 있다. 하나님이 하고 있다. 여기에 누가 역사하는가? 성령께서 역사하신다. 이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말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신앙이다. 이것이 무너지면 다 무너진다. 하나님이 우리를 아신다. 어렵다. 힘들다. 문제도 있다. 그러면 하나님이 하신다. 우리를 천국까지 인도하실 것이다. 마지막가서 이 축복과 역사를 누리다가 가는것이지 지옥을 누리다가 가는 것이 아니다. 염려와 걱정이 있는가? 이미 잡혔다. 사단의 통로라고 말하는데 사단의 통로정도가 아니다. 염려와 걱정이 있으면 이미 잡혔다. 바로 이어서 오는 것이 불안이다. 염려,걱정에 이어서 오는 것이 불안이다.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완전히 하나님께 맡기라. 또 내게 그래서 아침에 맡기고 저녁에 찾고 저녁에 맡기고 아침에 찾고 매일 그런다. 제일 안되는 것이 이부분이라는 것을 오늘 붙잡고 저는 새삼스럽게 주여 이 축복된 것은 은혜로 되어지는것이지 노력으로 되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 오늘 제게 은혜주옵소서. 성령으로 오늘 나를 인도하실 은혜를 주옵소서. 그래서 오늘 송현교회에 오신 여러분들 처음오셨든지 오랜 무근듸든지 한가지만 붙들고 가면된다. 지금 성령께서 나를 인도하신다. 그 바탕이 하나님의 주권이다. 다 맡기라. 잘난지식가지고 자꾸 뺏지 말고 이상한 경험가지고 하지 말고 근본적으로 맡기라. 하나님이 하실 것이다.
저는 교회건축의 모든 일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서 많은 경우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확실히 드리고 싶은 말씀은 하나님이 하신다. 나는 양문건설에 대해서도 감사한다. 그분이 집사님이시기 때문에 교회를 맡아보니 너무 규모가 크니까 하기가 어렵다 싶었던지 본인이 못하겠다고 포기했다. 우리가 그걸 감사함으로 받았다. 미도에다가 건설을 약속한 것은 미도에서는 상당히 상류그룹이다. 많은 재정규모나 큰 회사이다. 돈을 좀 더 들더라도 그렇게 했다. 그래서 하다가 만약에 못하겠다면 곤란할 것이다. 집사님이기 때문에 하기전에 계산해보니 이것가지고는 안되겠다. 내 재력이나 내 수준가지고는 안되겠다. 그리고는 미리 교회건축이니까 안되겠다고 하신 것 같다. 그래서 우리가 받고 미도로 옮겨서 지난 수요일날 계약을 했다. 저는 그 과정을 보면서 그때 옆에 건축위원중에 한분이 목사님 건축회사가 약속했다가 새로 선정해서 한다고 하면 최소한 2~3개월이다. 당장 이어서 나올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역사라고 말하기보다도 그렇게 안되어도 하나님의 역사이다. 내가 하는 것 같지만 아니다. 심지어 내 개인도 하나님이 인도역사하시는데 교회건축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이다. 혹시 뭔가 마음이 들면 하나님이 하신다. 확실히 붙잡으시고 주의 성령께서 이 말세에 세계복음화라는 비전속에서 기어코 하나님이 이루실 것이다. 이모양 저모양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하실 것이다.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성령에 감동받는 것이 전부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다윗이 어떻게 그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아를 주라고 고백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 때 바리새인들은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다윗이 그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야를 주라고 고백한 것은 성령으로 된 것이지 인간의 지식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 다윗은 역사 속에서 가장 성령의 인도를 충만히 받았던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윗이 어떻게 하여 성령의 인도를 받는 모형이 될 수 있었겠습니까?
1. 성령의 인도에 대해서 바르게 이해해야 합니다.
(1) 예전에는 성령의 역사를 내 인격이나 지식과 관계없이 강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오해했습니다.
(2)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은 나의 인격, 지식, 생각, 판단, 결정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3) 인격적이신 하나님은 내가 축복받을 수 있는 인격이 되도록 기다리십니다.
(4) 성령님은 한없는 탄식으로 나의 인격, 지식, 생각, 판단, 의지가 바뀌도록 기다리십니다.
(5) 우리가 어떤 인격이 되느냐가 중요합니다.
2. 다윗은 어떤 인격이었기에 성령의 인도를 받을 수 있었습니까?
(1) 성령의 인도를 받기 전에는 사단의 배경 속에서 본질상 진노의 자녀로 태어나서 살아갑니다.
① 마귀의 인도를 받으면 자신도 모르게 운명에 빠지게 되어 자기 중심적으로 살아갑니다.
② 자존심과 교만은 사단에게 완전히 잡힌 증거이고, 그 결과로 저주와 재앙이 저절로 따라옵니다.
(2) 운명과 흑암의 세력에서 벗어나는 길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것입니다.
①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② 사단을 완전히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집니다.
③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될 때,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게 됩니다.
④ '나의 모든 인생이 하나님의 다스림 속에 있습니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 신앙의 발판입니다.
(3) 다윗이 성령의 인도를 받을 수 있었던 신앙의 발판은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주권 사상입니다.
① 성전 건축의 준비를 하며 다윗은 '하나님이 주권자이십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대상29:10-11).
② 죽고 사는 것도, 부귀하게 되는 것도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렸습니다(대상29:12).
③ 하나님 주권 사상이 확고할 때, 하나님께 감사의 예물도 드릴 수 있습니다(대상29:13-14).
④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고백이 강해질수록 평안이 오고 흔들리지 않습니다.
3. 하나님의 주권 속에 설 때 성령의 인도를 받습니다.
(1) 우리 주님께서 내 안에 오셔서 영원토록 함께하시는 것에서 나의 가치가 나옵니다.
① 이 땅과 비교가 되지 않는 하늘 나라의 영광 중에 계셨던 분이 그 모든 영광을 버리고 우리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② 똥통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을 건지러 똥통 속에 뛰어들어가는 것처럼 온갖 더러운 것들로 가득찬 우리 속에 성령께서 오신 것입니다.
③ 우리 속에 오신 성령은 우리를 최고의 인격으로 대접하시며 한없는 탄식으로 성령의 인도를 받을 수 있도록 하나님의 백성으로 굳게 붙잡고 계십니다.
④ 비록 보잘것 없고 문제 투성이인 것 같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시므로 우리는 귀중하고 가치있는 것입니다.
⑤ 하나님이 이미 우리를 붙잡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예배당에도 올 수 있는 것입니다.
(2) 주님은 한없는 탄식으로 우리가 성령의 감동을 받도록 하나님의 백성으로 굳게 잡고 계십니다.
① 사단이 본격적으로 방해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주권을 믿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② 우리는 문제만 생기면 먼저 하나님께 맡기기보다는 머리부터 돌아갑니다.
③ 내가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④ 결국은 지쳐서 하나님 앞에 나아와서 문제를 맡기게 됩니다.
⑤ 우리는 실패해도, 병이 들어도, 하나님께 잡혀있으므로 죽든지 살든지 주님께 영광을 돌리며 삽니다.
⑥ 처음부터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모든 일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3) 바울은 온갖 어려운 형편에서도 전 세계를 다니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① '하나님이 지금 나를 잡고 인도하신다'는 믿음에서 모든 것이 해결되었습니다.
② 병이 오면 믿음이 약해지고 불신앙이 생기는 문제가 있지만 '그래도 주님께서 지금 나를 인도하신다'라는 믿음으로 승리했습니다.
③ 현장에서 혹독하구나 싶을 때에 조차도,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4. 성령의 인도를 받았던 믿음의 선조들을 따라
(1) 다윗은 '어떠한 상황과 여건 속에서도 하나님이 다스린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만큼 그러한 그의 생각과 마음과 판단과 결정을 통해 성령께서 역사하심을 체험했습니다.
① 물이 흐를 때 물길을 타고 흐르는 것처럼 내가 어떤 생각과 판단과 마음을 가지느냐에 따라 성령의 역사의 통로가 되느냐 사단의 역사의 통로가 되느냐가 결정됩니다.
②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셔서 인도하신다는 마음과 생각을 가진 사람은 판단이 달라지고, 그것을 통해서 성령께서 역사하십니다.
③ 사무엘하 16장에서는 다윗이 모든 것에 대해서 하나님의 주권을 고백하는 신앙을 보여줍니다.
④ 남편, 아내, 자식, 일, 직장에 관한 모든 문제에 대해서 하나님이 하신다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⑤ 우리에게 혹독한 문제와 사건이 일어날 때에도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것이다'라는 신앙을 가지면 성령이 역사하시고, 축복과 열매가 맺혀집니다.
(2) 요셉이 세계 정복을 했습니다.
① 노예로 팔리고 감옥에 들어갔을 때에도 하나님이 나를 앞서 보내신 것이라는 믿음의 고백을 했습니다.
② 하나님이 요셉을 잡았을 때, 세계의 비전을 가지고 '모든 것을 하나님이 하십니다'라는 신앙으로 나아갔습니다.
5.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성령의 인도를 받으려면
(1)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①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입니다. ② 지금 하나님이 하고 있습니다.
(2) 하나님께 완전히 맡겨야 합니다.
① 염려와 걱정이 있다면, 이미 사단에게 잡혔으며 불안이 따라옵니다.
②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완전히 맡기십시오.
③ 아침에 맡기고 저녁에 찾고, 저녁에 맡기고 아침에 찾는 일을 버리십시오.
④ 이러한 축복은 은혜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지금 성령께서 나를 인도하고 계십니다. 모든 것을 맡기십시오. 근본적으로 맡기십시오. 하나님이 하실 것입니다. 주의 성령께서 세계 복음화를 이루실 것입니다.
오늘 제목이 성령에 감동하여 이렇게 되어있다. 성령에 감동하여, 이것이 다이다. 문제는 여러분과 제가 이것하여 주옵소서. 저것하여 주옵소서. 이것이 문제가 아니라 성령의 감동받는 것이 다이다. 성령의 구체적인 인도와 감동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모든 것이 다 여기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누가 성령의 감동을 받았느냐? 오늘 다윗을 하나의 모형으로 해서 다윗을 예로 성령의 감동을 받았다라고 말씀하고 있다. 우리가 오늘 성경에서 보는바대로 하나님께서 다윗을 통해서 예수그리스도를 이땅에 보내시겠다고 약속을 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도 똑같은 약속의 배경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잘 아시다시피 오늘 성경에서 말씀한대로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질문을 했다. 뭐라고 질문을 했는가하면 본문 초기에 그렇게 말했다.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 뉘 자손이냐라고 했다. 이 말은 메시지야가 누구의 자손으로 올 것인가에 대해서 물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 유대의 모든 앞에 선 사람들이 똑같이 이걸 구체적으로 가르켰다. 다윗의 자손으로 온다라고 가르켰다. 그러니까 말할 것 없이 대답하기를 다윗의 자손이니다. 그렇게 말씀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43절에 가라사대 그러면 다윗이 성령에 감동하여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말하되 그러면서 구체적으로 말씀을 인용했다.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아래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였느니라 이 말씀으로 인용을 했다. 무슨 말씀인가하면 다윗의 후손으로 온다고 하면 어떻게 후손을 향해서 예를 들어서 아버지가 아들을 향해서 주여라고 합니까? 이렇게 하는 법이 어디있느냐고 질문을 했다. 이때부터 바리새인이나 서기관이나 다른 어떤 단체에서도 예수님께 질문하는 사람이 전혀없었다고 했다. 마지막부분에 보면 나온다. 46절에 한 말도 능히 대답하는자가 없고 그날부터 감히 그에게 묻는자도 없었더라. 그런데 예수그리스도 다윗의 후손으로 나셨는데 그 예수그리스도를 향해서 다윗이 주라 말했다. 그것은 성령으로 되는 것이지 인간지식으로는 안된다. 그런 이야기이다. 그래서 고전12:3에 보면 성령으로 아니고는 예수를 주라 시인할 수가 없다라고 했다. 이런 의미에서 역사속에서 가장 성령인도를 받았던 역사적인 인물을 꼽는다면 우리는 다윗이라 그렇게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이 다윗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엄청난 복음의 귀중한 조상으로 삼으시고 인도하신 그런부분을 볼 수 있다. 성경은 많은 경우 다윗의 씨로 인해서 메시야가 나올 것을 말씀하고 그리스도가 그로 통해서 나올 것을 말씀했다. 사11:1에 보면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했다. 이새는 누구의 아버지인가? 다윗의 아비이다. 다윗의 후손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이 땅에 영원한 축복과 영광으로 인도하실 것을 말씀을 해 주시고 있다.
그래서 성경은 다윗과 더불어 맺어진 왕위에 대한 언약은 그리스도와 더불어 맺어질 구속의 언약에 모형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다. 제말이 아마 여러분들이 금방 이해가 되어야 할 것이다. 처음오신 분들은 조금 역사적인 배경이 되기 때문에 다시 말한다. 다윗과 더불어 맺어진 왕위에 대한 언약이 그리스도와 더불어 맺어질 구속의 언약에 모형으로 말씀하고 있다. 다윗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통해서 엄청난 부와 왕권을 주셨다. 그 축복과 왕권의 부를 모형으로 주셨는데 뭔가하면 그리스도로 더불어 맺어질 구속의 역사의 모형으로 만드시고 삼으셨다는 내용이다. 그러면 성령의 인도를 받는 모형이 다윗이라고 했다. 그러면 다윗이 왕이며 어떤 믿음으로 살았기에 성령의 확실한 인도를 받는 모형이 되었느냐?
여러분들이 지금 또 다시 말씀을 정리한다고 하면 성령인도받으면 다 되는 것이다. 성령감동받으면 다 되는 것이다. 옛날에는 성령의 인도받는다는 말을 참 많이 오해를 했다. 그래서 어떻게 이해를 했는가하면 주로 기도할때에 요즘은 그런기도를 잘 안한다. 성령의 강권적으로 역사하사그런다. 성령의 역사를 내 의지와 내 인격과 상관없이 뭔가 강권적으로 역사 내 인품과 내 지식과 상관없이 그렇게 역사하는 것으로 생각을 했다. 여러분들이 이 자리에 온 것이 성령의 인도인가? 아니면 여러분 마음대로인가? 확실히 믿는가? 그러면 이것을 알아야 한다. 이 자리에 올때에 눈을 뜨자마자 이상한 힘에 의해서 코가 이상하게 당겨지든지 손이 이상하게 당겨지든지 끌려가지고 이 자리에 앉았는가? 안그러면 어제부터 준비하고 또 이 자리에 앉기전에 미리 일어나서 준비하고 세수하고 내가 교회가야겠다. 어떤 사람은 기쁨으로 어떤 사람은 할 수 없이 어떤 사람은 의무로 어쨌든 이 자리에 왔다. 그러나 의무로 오든지 할 수 없이 오든지 어쨌든 이 자리에 내가 여기에 와야 되겠다는 생각과 결단과 결정으로 이곳에 왔다. 그렇다. 나도 모르게 막 끌려서 앉았는데 교회더라. 이런 사람은 없다. 뭘 말하고 싶은가하면 성령의 인도를 받는다고 할때에 내가 사전에 내 인격을 통해서 내지식을 통해서 내 생각을 통해서 내 판단과 결정을 통해서 인도를 받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게 중요하다. 그러면 지금까지 우리가 그런 것을 다 빼버리고 성령인도받는다고 할때에 강권적으로 나의 인격과 의지와 결단과 아무런 상관없이 막 끌려오는 것처럼 생각을 했다. 그렇게 안한다. 하나님은 정말 이런 배경에서 참 신사이고 인격적이시다. 그래서 여러분이 남편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 하나님 저 남편을 바짝 꺽어서 어찌했든지 그냥 하나님 우찌하든지 그렇게 기도하지말고 하나님께 맡기도 하나님의 손에 맡기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느냐? 그의 인격과 마음과 생각과 판단을 바꾸셔서 오게 하신다. 그걸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격과 상관없이 그냥 막 들고 치고 때리고 패고 그렇게 하시는 분이 아니다. 그래서 여러분과 저를 하나님은 얼마든지 축복받을 수 없는 인격과 상관없이 막 만들어서 그렇게 하실 것 같은데 그게 아니라 기다리신다. 축복받을 수 있는 인격이 되도록 기다리신다.
그러면서 성경에 롬8:26 한없는 탄식으로 성령이 뭘 못하는가? 하나님의 영이신데 한없는 탄식으로 여러분들이 생각과 마음과 판단을 바꾸시기를 기다리신다. 여러분 잘 알아들어야 한다. 오늘도 이 자리에 앉아있지만 내 성령은 내 생각과 판단이 너무 틀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걸 바꾸어놓기 위해서 주의 성령께서 여러분의 인격에 호소하신다. 여러분의 판단에 호소하고 생각에 호소한다.
그래서 내가 어떤 판단과 어떤 생각과 어떤 인격에 바탕이 되었느냐? 성령의 인도의 강권이 되어있다. 이것이 많은 경우 우리가 오해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전도한다고 할 때에도 역시 마찬가지로 전도라는 것은 성령인도없이는 안되게 되어있다. 어느날 당장 전도하러 갔다고 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전도도 먼저 하나님께서 전도할 수 있는 판단과 생각과 인격과 마음을 만들어놓고 그다음에 나오는 것이다. 그게 열매가 전도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면에서 어떤 인격이기에 다윗에게 성령의 구체적인 인도를 받을 수 있었느냐? 제일 중요한 문제가 여기에 있다.
한주간 삶이 여러분의 생애에 삶이 바로 여기에 속하게 되면 다 되는 것이다. 여러분은 성령인도받기 전에 누구의 인도를 받았는가? 말하기 싫을 것이다. 엡2:3에 본질상 진노의 자녀로 태어난다. 본질상 진노의 자녀의 배경이 누구인가? 마귀,사단이다. 계12:9에 보면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 한다했다. 예수님께서는 그 현주소를 요8:44에 너희 아비 마귀라고 했다.
그러니까 내가 원하든 원치않든 마귀의 인도를 받으면 여러분도 우리 자신도 모르게 어디에 빠지는가하면 운명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마귀의 인도를 받을때에 내가 성령인도받는다는 생각이전에 마귀의 인도를 받을때에 내 마음대로 사는 것 같지만 절대로 내 마음대로 된 일이 없다.
그런데 마귀인도받는 특징이 뭔가하면 자기를 중심해서 살도록 만들어놓는다. 그래서 운명에 빠진 사람들의 가장 큰 특징이 뭔가하면 이기주의의 극치를 달리고 있다. 자기중심이다. 자기중심이 이것이 바로 마귀의 인도받는 하나의 가장 큰 표현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나오는 문제는 전부 여기서 저주와 재앙으로 역사된다. 다시말해서 세상에서 망하는 가장 큰 원인중에 하나가 뭔가하면 사단의 통로다 할때에 자존심,교만이 사단의 통로가 아니라 완전히 사단에게 잡힌 증거이다. 통로라는 것이 아니다. 여러분 그러면 그 결과는 저주가 그대로 따라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부부싸움을 했다면 자존심이 없으면 부부싸움이 될 리가 없다. 한번 살펴보라. 부부싸움하면서 왜 내가 싸우지 분석하여 보라. 그 꼴난 자존심 가지고 별것 아닌 것 가지고 서로 다툰다. 결과는 저주와 재앙으로 열매맺게 되어있다. 적은 예를 들어서 말했다.
그러면 여기에서 이 운명과 사단과 흑암의 세력에서부터 벗어나는 길이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것이다. 그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것이다. 그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길이 예수 그리스도다. 롬8:2에 생명과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했음이니라 할렐루야! 요5:24에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다.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래서 행4:12에 천하인간에 다른 이름으로 구원을 주신적이 없다고 했다.
왜 그런가하면 여러분 이 흑암에 사단의 손에 붙잡힌 여러분들을 사단의 손에서 빼앗아낼려고 하면 사단보다 강해야 하는가 약해야 하는가? 강해도 살짝 강해서는 안된다. 마12:29에 완전히 사단보다도 확실하게 강해야 한다. 그래서 어느집에 들어가서 그 세간을 늑탈하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집에 들어가서 주인을 꽁꽁 묶어놓고 세간을 마음대로 가져 올 수 있는 것이다. 그 주인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없으면 전에 주인이 소유하고 있던 세간을 가지고 나올 수가 없다. 이미 여러분은 사단의 소유, 그런데 이 사단은 엄청나게 힘이 있는 영적인 존재이다. 왜 그런가하면 감히 하나님을 대적한 존재이다. 여러분과 제가 이길 수 있다라는 것은 말이 안된다. 백번죽었다 깨어도 여러분 스스로 수단과 방법으로 권리로 이 세상것으로 이길 수 없다. 이것이 원리이다. 혹시 여러분들이 가정이 왜 망하느냐? 왜 어려움이 있느냐? 왜 사건이 터지느냐? 왜 일이 어렵느냐? 그럴때에 혹시 이것 때문에 그렇다. 저것 때문에 그렇다. 자꾸 이러는데 하나붙잡으라. 기본만 바로 이해하면 된다. 뭐냐하면 흑암이 나를 잡고 있기 때문에 나의 가정에 어려움이 들어오는 것이다. 내가 흑암에 붙잡혔기 때문에 오는 것이다. 이것이 해결안되면 그다음문제가 해결안된다.
그래서 이걸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예수그리스도이다. 그 예수그리스도가 해결할 수 있는 길이라는 배경이 뭔가하면 내가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라는 순간에 누구의 다스림을 받는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것이다. 이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주권의 역사라고 한다. 여러분 하나님의 주권이라고 할때에 다른 것이 아니다. "나의 인생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다스림속에 있다" 믿는가? 이것을 믿는 믿음이 중요한 믿음이다. 이것을 가지고 신앙의 발판이라고 했다.
저는 신학교다닐때에 이것을 믿는 믿음이 신구약 전체를 통해서 흐르는 발판이다. 이것이 무너지면 성경 어디에도 걸어놓을 근거가 없다. 다 무너진다. 저는 지금까지 이 사실을 많이 가르쳤다. 특별히 전도사시절에 부목사시절에 주로 학생들을 담당을 하니까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교리신학을 가르칠때에 제가 이 교리신학에 늘 가르치는 배경이 하나님의 주권바탕에서 신학을 성경을 정립해야 때문에 늘 가르쳤다. 그런데 그것을 늘 가르치면서 지금에 이르면서 느끼는 것이 뭔가하면 나는 지금 이순간에 그 어느때보다도 그 어느때보다도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믿는 믿음이 옛날 젊었을때에 그렇게 가르쳤지만 지금처럼 절감되는 것이 없다.
여러분 다윗이 성령의 인도를 받을 수 있는 믿음의 바탕이 바로 이부분이다. 하나님의 주권이다. 다윗의 신앙의 발판이다. 확실하게 그래서 다윗이 나이많고 하나님앞에 서게되는 그 직전에 성전건축을 하나님이 약속했으나 다윗자신은 지을 수 없고 아들 솔로문에게 물려 주기 위해서 모든 준비를 해 놓고 모든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앞에 찬송하면서 신앙고백한 것이 뭔가하면 하나님이 주권자이십니다. 이고백이다. 그것이 성경 대상29:10~11이다. 10 다윗이 온 회중 앞에서 여호와를 송축하여 가로되 우리 조상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영원히 송축을 받으시옵소서 11 여호와여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이김과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유의 머리심이니이다
이말 할때에 아니다. 내것이 내것이지 왜 주님의 것입니까? 이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젊을때에 청년때에 혹시 그럴 수도 있다. 주의 것입니다라고 해도 안믿어질 수 있다. 저는 나이가 들수록 또 그리고 병든 몸으로 지금까지 살아가는 과정속에서 느낀 것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있나이다. 너무 절실하다. 생명도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너무 절실하다. 사실 어떤의미에서 죽을고비를 몇 번넘겼다. 그런데 안갔다. 그래서 하나님앞에 어떨때에 하나님! 빨리 지금이라도 데리고 가십시오. 왜 이쯤해놓고 놓아둡니까? 이렇게 덤빌때도 있었지만 안갔다. 그렇게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있다. 죽고 싶다고 죽는 것이 아니다. 죽고싶다고 죽는다면 여기있는 사람들 죽을 사람많다. 사실은 어떤면에서 죽고싶다고 해도 속으로는 안죽고 싶을 것이다. 어쨌든 죽고 사는 문제가 전부 하나님의 손에 있다.
대상29:12부터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유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자를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이것이 배경이 되면 이 배경이 강해질수록 평안이 온다. 흔들리지 않는다.
대상29:13부터 보면 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14 나와 나의 백성이 무엇이관대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십일조 드리는 것 이 권세도 보통권세가 아니다. 아무나 드리는줄 아는가? 저는 늘 그렇게 생각한다. 전에는 헌금할때에 아깝다라고 생각하다가 야! 이 드릴 수 있는 권세가 아무나 되나? 엄청난 배경이 되어야 이것이 나온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뭔가하면 운명에 빠진사람은 지옥을 누리다가 지옥간다. 그것이 잘 이해가 되어야 한다. 여러분과 저는 천국을 누리다가 천국에 간다. 아예 이땅에서 지옥을 누리고 산다. 근심, 걱정, 염려, 그러니까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병들고 어렵고 그렇게 되는 것이다. 이땅에 살다가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천국을 누리다가 천국에 가는 그런축복과 역사속에 있다. 그리고 이 천국을 누릴 수 있기 위해서는 엄청난 구속의 대속의 역사가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졌다. 이일이 우리에게 이루어졌다. 이것은 엄청난 것이다. 그리고 가치가 천하보다 귀하다. 이것은 그냥 나오는 말이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이땅에 오셔서 하나님이 여러분과 저를 대신해서 죽으셨다. 예수그리스도! 그 가치가 그로 통해서 일어나는 가치가 엄청난 가치이다.
제가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늘 그런 이야기를 한다. 캐냐에 가서 보면서 캐나의 소똥집에 있는 곳에 가서 우리 아이들을 일주일만 살다오게 되면 여러분 가정에 잘살고 못살고가 아니라 한국에 사는 여러분 가정에 사는 여러분의 부모에게 매일 감사하다고 할 것이다. 왜 그런가하면 소똥집에 사는 것이 나는 잠깐도 못있겠더라. 연기를 계속 먹고 사는데 눈이 빨갛게 되어서 연기가 빠져나갈 수 없니까 소똥의 냄새도 요란하다. 거기에 일주일 이틀 삼일이 힘들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께서 생각해보라. 조금 문화생활누리던 우리가 그 문화생활 안되는 원주민들 가운데 들어가서 사는 것이 어렵다고 하는데 내가 생각할때에도 너무너무 어려울 것 같다. 어렵다. 못산다.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땅과 비교안되는 하늘나라에 계셨던 그분이 하늘영광을 비워두시고 이땅에 여러분과 저의 모든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죄속해 주시러 오셨다. 저는 늘 이말하면서 똥통속에 오셨다고 말한다. 여러분은 똥통속에 그러면 생각이 안난다.
나는 똥통속에 그러면 너무 절감하는게 있다. 초등학교때에 친구가 똥통속에 빠져서 그때에 수업을 하는데 옷을 벗겨서 말리고 하루종일 죽을 고생을 했다. 똥통이 얼마나 무섭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알게 되었다.
생각이 더럽지 성질이 더럽지 마음도 더럽지 온통 냄새나는 속에 우리 주님께서 내 안에 오셨다. 오셔서 안나가실려고 발버둥치는가? 영원토록 오셨다. 안나가신다. 내주하셨다고 했다. 여기에 가치가 나온다. 뭐 그래 가치가 있겠는가? 그래서 교회에 오신 여러분들은 이웃을 보면서 저 인간 이상하다. 아니다. 그 속에 예수그리스도가 계시기에 귀중하고 가치있다. 십자가 지시고 십자가에서 고통당했다. 이 고통이 나는 오히려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십자가보다 더 큰 똥통속에 계신 예수님! 나는 그게 더 큰 고통이다. 지금도 그분이 내안에 계신다. 내 추하고 더럽고 연약하고 이런 속에서 그래서 얼마나 고통스러우면 성경에 말씀하지 않았는가? 하도 생각도 이상하고 성격도 더럽고 하니까 한없는 탄식으로 그것도 쥐어박고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한없는 탄식으로 여러분과 저를 최고의 인격으로 대접하면서 여러분을 성령의 감동받도록 하나님의 인도받도록 하나님의 백성으로 딱 잡고 계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다스림이다.
여러분들이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 왜 나를 떠나십니까? 왜 있다가 없다가 그럽니까? 기도할때에 혹시 그렇게 오해하는 분이 있을 것이다. 어떨때는 하나님이 함께 계신 것 같고 어떨때는 하나님이 떠난 것 같고, 어떨때 기분좋을때에는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잘되는 것 같고 어떨때는 떠난 것 같고 그런데 한번 오셨다. 한번 하나님이 여러분을 다스리기 위해서 붙들어주셨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손에 붙잡혔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니다. 저는 내가 하나님을 붙잡고 있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밤마다 잘 붙잡을려고 얼마나 몸부림을 쳤는지 모른다.
한달에 한번씩 주암산에 갔다. 주암산에 간 것이 잘못이 아니다. 내 생각배경이 가서 꼭 일주일씩 기도하고 오는데 제가 단골 굴이 있었다. 바위굴에 들어가서 하는데 여름에는 그래도 괜찮다. 굴에 들어가면 엎드려야 되지 앉아있지도 못한다. 굴속이니까 일주일동안 엎드려 있는 것이다. 겨울에는 굴속에 들어가서 요 이불을 못핀다. 담요하나 덮어쓰고 굴속에서 엎드려 있다. 그러니까 밥을 마음대로 못해먹는다. 밥을 해 먹는 수단으로 건빵 한봉지를 한끼씩 먹는다. 건빵 한봉지를 먹을 때에 물 한컵 마시면 배가 부르다. 물은 바로 앞에 가면 있으니까 계속해서 붙잡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나를 붙잡아 주시고 나를 떠나지마시고 하나님 잘 믿으려고 했는데 그렇게 기도할때는 늘 갈급하다. 그래서 신비하는 사람들에게 그런 것은 기도할 수록 인간은 더 갈급하게 되어있다.
여러분과 저는 내가 기도하고 잘믿으려고 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붙들고 있는 것이 아니다. 여러분 오늘 여기에 오신 것은 하나님에게 이미 붙잡혀서 왔다. 여러분 마음대로 떠나가고 싶어도 안된다. 그래서 와이로 써도 지옥가기는 다 틀렸다. 이말이 뭔말인가 이해가 되는가? 저는 이 말할수록 기분이 좋다. 와이로 써도 안된다는데 얼마나 감사한가? 와이로 쓸일도 없지만 누가 지옥갈려고 와이로를 쓰겠는가? 와이로를 써도 안된다는데 그래서 지난 주일에도 말씀했지만 혹시 한달에 한번씩 나온분도 있는가? 믿기 바란다. 지옥가기는 다 틀렸다. 여기에 나왔다는 사실도 자기 마음대로는 안된다. 교회나오는것도 자기 마음대로 나오는가? 나도 모르게 이상하게 첫주일 안가면 마음이 불안해 진다. 두 번째 주일에 안가면 망할 것 같다. 셋째주일 안가면 다리가 뿌러질 것 같다. 약간 걷어차이거나 돌부리에 넘어가면 이러다가 내가 죽겠다는 생각이 드다. 그러면 할 수 없이 네 번째 주일에는 자기도 모르게 교회가야되겠다고 나오게 된다. 나왔는가? 그래도 나왔는가? "그래도 천국은 문제없다." 왜 그런가?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것에 붙잡혔기 때문이다. 내가 아니다. 내 힘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이 자리에 나온 여러분들이 어떤 생각으로 내가 이 자리에 나온다고 얼마나 고생했느냐? 착각하는데 이 자리에 나오게 된 것이 하나님의 손에 붙잡혔다는 증거중에 증거이다.
이 자리에 나오면서도 하나님을 믿으니 내 주먹을 믿으라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쉽게 말해서 주권을 안믿고 다스림을 안믿는 사람 많다. 제가 경상도 사투리로 톡 깨어넣고 말하자면 많다. 왜 그런가하면 사단이 본격적으로 방해하는 것이 이 믿음 못가지도록 만든다. 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느끼는 것이 본격적으로 공격하는 부분이 하나님이 내 모든 것을 다스린다. 하나님께 다 맡긴다. 이 믿음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사단은 공격을 한다.
문제만 생기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는가? 문제만 생기면 그걸 가지고 이렇게 표현한다. 문제가 생겼다. 먼저 하나님께 맡긴다기 보다도 머리부터 팽팽 돌아간다. 내가 한다. 이렇게 되지 안맞겨진다. 맞겨질 수 없다. 그러면서도 내가 한다고 되는가? 실컷 자기가 한다고 하면서 고생하다가 하다하다 안되면 그때되어서 하나님앞에 나가서 이래도 안되고 저래도 안되고 하나님 나하고 무슨 원수진 것이 있는가? 라고 하면서 덤비면서 그러면서 나중에는 하다하다 안되니까 나중에는 뭐라하는가하면 하나님 마음대로 하옵소서 찌지 먹든지 뽁아잡수든지 마음대로 하옵소서. 제가 예전에 그렇게 기도했다. 그래라도 완전히 맞겼다 싶으면 마음이 편안해 졌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렇게 하고 내려오니 다 되어있었다. 이런 경험이 한두번이 아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지나오면서 느끼는 것은 내가 할때는 아무리 많다 적다가 아니다. 갈등이 있어도 하나님이 인도하시고 하나님에게 잡혀있다. 실패했어도 하나님께 잡혀 있다. 병이 들어도 하나님앞에 잡혀 있다. 이말하기까지가 얼마나 힘들든지 하나님앞에 용납이 안되는데 나부터 이것이 용납이 안되는 것이다. 아버지 교회목사가 병이 들어있는데 교회목사가 부끄러워서 어떻게 섭니까? 내부터 병을 고쳐야 병고치라든지 믿어라하든지 그렇게 될건데 나는 매일 골골하면서 어떻게 합니까? 이랬더니만 바울의 기도가 생각났다. 한참 기도할때보다도 너무 갈등될때는 밤중에 올라가서 발악을 했다. 하나님 나를 안그러면 데리고 가시던지 안그러면 아예 하나님이 결단을 내어놓던지 해야지 살지도 않고 죽지도 않고 계속 이래서 어떻합니까? 그때에 대답이 하나님이 네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할말이 없었다.
바울이 자기에게 간질이라는 병이 있었다. 전도자로서 나가면서 자기의 병을 보고 다른 사람이 시험들 정도인데 어떻게 하겠는가? 간절히 기도안했겠는가? 나는 간질환자를 보면서 느끼는 것은 강단에 섰다가 넘어지니까 정말 어려웠다. 아마 바울이 간질로 있었다는 것은 학자들이 다 한목소리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너무 어려우니까 하나님앞에 세 번기도했다는 것은 계속해서 기도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고후12:9에 하나님이 네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그러면서 뒤에 뭐라고 했는가? 약할때가 곧 강함이라. 그랬다. 그때에 바울이 주여 감사합니다. 이일로 통해서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이루시니 죽든지 살든지 내가 주님께 영광돌립니다. 내가 골골하면서 살아도 살고있는 것이 주님께 영광이요 다른사람을 풍성하게 한다면 그래도 살겠습니다. 안그러면 데리고 가십시오. 이랬다. 바울이 이 믿음가지고 넘어지며 자빠지며 두들겨맞고 핍박속에서도 전세계로 유럽을 바꾸어놓았다. 세계를 바꾸어놓았다. 여기에 하나님이 붙잡고 계시고 하나님의 다스림과 인도하심이 계신다는 이속에 모든 것이 다 따라온다. 지금 어렵다. 힘들다. 지금 하나님이 날 잡고 인도하시는구나! 대답이 다 나와버렸다. 제가 어떤생각이 드는가하면 신비도 좀 하고 하니까 기도하면 낳고 그랬다. 어떤 생각이 드는가하면 기도해서 병도 낳고 하면 저절로 메시지가 강해진다. 병이 안낳았느냐? 안믿어서 그렇다고 하고 기도안해서 그렇다고 하고 만약에 건강해서 그렇다고 하면 그럴 가능성이 많다. 많은 경우 병들었다가 낳았으니까 그러면 여기에 병든사람은 우리교회에 오기가 힘들 것이다. 왜냐하면 기도안하는 사람이 되고 안믿는 사람이 되고 불신앙자가 되어서 오기가 힘들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렇게 안하셨다. 내가 이렇게 되니까 함부로 말을 못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교회는 그래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하나님께서 말세에 모든 종류의 사람을 다 보내고 있다. 어떻다 어떻다 상관없이 다 보내고 있다. 또 신기한 것은 제가 그런 것을 당하면서 비로서 그런 사람들에 대한 눈이 열리기 시작했다. 병이 오면 믿음이 약해진다. 제일문제가 불신앙이 오는 것이 제일 문제이다. 근데 문제는 병이 왔다는 그 병보다도 더 큰문제가 뭐가 오는가하면 정신적으로 오던지 마음으로 오던지 뭐가 오는가하면 불신앙이 생기는 것이 인생의 문제이다. 그러니까 신앙으로 돌아왔다고 하면 상관이 없다. 그래서 제 마음에 처음에 안 낳았다는 문제로 갈등하다가 뭐냐하면 그래도 주님께서 나를 지금 인도하신다. 이것이 들어오면서 뭐가오는가하면 아파도 슬퍼도 괴로워도 고통스러워도 주님이 인도하신다. 하나님이 역사하실 것이다. 비로서 큰 소리 칠 수 있게 되었다. 비로서 그 속에서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저를 보고 어떤이야기를 하는가하면 목사님 쉬십시오. 목사님 건강해야 합니다. 그러면 저는 어떤 생각을 하는가하면 쉰다고 되고 그렇게 해서 되는 것 같으면 건강온다고 된다는 것 같으면 다 된다.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서 여러분과 저를 함께 송현교회에 세우시고 인도하시며 나가게 될 때에 뭔가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대로 되어지는 사실을 보여주시기 위한 것이다. 우리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교회건축도 엄청난 역사이다. 저는 교회건축을 여러분이 보다시피 말도안되는 것을 시작해서 하고 있다. 원래 교회건축을 멀리두고 생각했다. 돈좀 많이 모아서 그래 나갈려고 했는데 교회땅사는문제는 변두리 홀쭉한데 돈 만원짜리 이래서 몇만평을 같다놓던지 기도하면서 생각했는 부분인데 하나님께서 상상도 하지 못할 곳에 땅을 준비하게 하시고 그다음에 상상도 못할 거액을 들여서 건축을 하게 되었다. 그런중에 오면서 얼마나 씨름을 했는지 모른다. 하나님앞에 어떤 기도를 했는가하면 목사가 건강치 못하니까 직접 개입도 못하고 이러니까 장로님들이 맡아서 고생을 많이 하는데 하나님 이래서 되겠습니까? 그러다가 어떤 생각이 드는가하면 하나님이 이런것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는 실제의 교회의 건축이 개개인에게 이루어진다. 저는 장로님들이 맡아있는 분들마다 혹시 본인들은 고생한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고생정도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복음위에 확실한 바탕이 깔리는데 그 바탕속에서 하나님이 하시고 있구나, 이 믿음이 깔리게 된다. 아마 저는 장로님을 보면서 이것이 확실히 깔리게 된다. 회복되는 만큼 하나님이 이루신다. 그래서 하나님의 교회를 키워나가는 과정속에서 지금까지 보면서 무엇을 느끼는가하면 항상 목사부터 두두려 뿌셔서 키워가지고 교회를 키웠다. 좀 이상한 말씀인 것 같지만 두두려 뿌셨다는 말이 이상한데 죽을 고비를 몇 번 넘겼으니까 그때마다 생각, 마음, 판단 이것들이 달라졌다. 어떤 것은 내 마음의 생각이 보통 나는 한번 푹 찔러서는 바꾸어지는게 아니다. 내 놓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생각이나 어떤 지식이나 내마음에 어떤 것은 반 죽여야 나오는 것도 있다. 여러분 다 반죽이면 곤란할 것이다. 여러분 아마도 평신도니까 목사는 안빠져나오는 생각이라도 하나님앞에 뭔가 만드시는 과정에서 혹독한 그런 것을 당했더라도 메시지받고 바꾸어지면 되니까 건드릴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교회를 커나가게 하는 과정속에서 엄청난 이런 변화들이 나왔다. 류목사님이 항상 전도의 한단계가 뛰어넘을때마다 혹독한 시련이나 시험들이 나오는 것을 봤다는 것을 늘 그런 말씀을 하셨다. 저는 그것을 충분히 이해를 한다. 다시말해서 여러분이 현장에서 사는 삶에서 혹독하구나 그러거든 확실하게 붙잡으면 된다. 그래도 하나님이 다스리시는구나! 끝이다. 하나님이 역사하실 것이다. 계속해서 역사하실 것이다.
그래서 다윗이 말년에 백발이 성성했을때에 그가 하나님앞에 신앙의 위대한 고백을 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할렐루야! 여기에 다윗이 고백한 것이 나를 부족함이 없게 하옵소서라고 안하고 내가 부족함이 없도다. 선언을 했다. 신앙고백은 진짜 확신오면 선언이 된다. 사단에 대해서 선언이다. 그래서 여러분 기도중에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흑암세력은 결박받을찌어다. 물러갈찌어다. 이렇게 기도하는 배경도 그런 배경이다. 다윗이 확실하게 어떤 상황과 여건속에서도 하나님이 다스린다는 사실이 확인되는 만큼 그 생각과 판단과 결정으로 통해서 성령이 역사하신다. 말이 조금 이상하게 되는데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물이 흐를때에 물길을 통해서 흐른다. 물이 흐를때에 산으로 안 흘러간다. 물길이 막히면 물길을 트고 물길을 만들면 흐른다. 그말씀이 무슨 말씀인가하면 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고 어떤 판단을 가지고 있고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느냐 성령의 역사의 통로가 되느냐 사단의 통로가 되느냐가 결정되게 된다. 그러면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님이 나를 다스리고 있구나! 하나님이 내 모든 것이구나! 이런 바탕위에 있는 사람의 생각도 판단도 마음도 다르다. 여러분 뭔가 이해되는가? 그 속에 성령께서 역사하시게 되어있다. 할렐루야! 어느날 기도했더니만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성령이 역사했다. 그거는 요나식 인도이다. 자기마음대로 생각해놓고 도망가야되겠다. 갈려고 나오니까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가 있더라. 타는 순간 풍랑이 일어나고 고래배속에 들어가게 되었다. 우리가 이런식으로 성령인도를 많이 이해하게 된다. 어느날 홀가닥 인도받았다. 악령인도일수가 많다. 하기는 악령의 역사도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손에 있다. "그래도 하나님이 인도하신다" 여러분 어떤 형편이나 상황도 상관이 없다. 그래서 다윗이 어떤 고백을 했는가하면 삼하16:8~12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 그 대신에 네가 왕이 되었으나 여호와께서 나라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붙이셨도다 보라 너는 피를 흘린 자인고로 화를 자취하였느니라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왕께 여짜오되 이 죽은 개가 어찌 내 주 왕을 저주하리이까 청컨대 나로 건너가서 저의 머리를 베게 하소서 왕이 가로되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저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저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 하고 또 아비새와 모든 신복에게 이르되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저에게 명하신 것이니 저로 저주하게 버려두라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날 그 저주 까닭에 선으로 내게 갚아주시리라 하고
전 이 구절이 다윗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신 하나님의 주권에 신앙고백에 정말 실제적으로 삶의 생활에 터져나온 고백이다. 아마 압살롬에게 쫓겨서 맨발벗고 도망가는 그런 왕이 다윗의 실정이다. 그러니까 지금 시몬이라는 사울의 후손이 저주하고 욕하고 그럴때에는 너무 확실히 다윗은 끝났다. 완전히 끝났다. 너무 확실하게 되었으니까 죽음도 겁 없이 그런소리를 했다. 그럴때에 다윗의 고백이다. 이렇게 하는것도 하나님이 그렇게 하라고 한 것이 아닌가? 여러분 남편문제,자식문제,혹은 일과 직장 사건문제 하나님이 이렇게 하시는구나 다 끝났는 것이다. 이게 거의 안된다. 집중적으로 사단의 공격을 받는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다. 뭘하기 위해서 여러분과 저를 다윗이 고백한 것처럼 하나님이 하신다면 하나남이 돌아오게도 하실 수 있지 않겠느냐? 믿음대로 될 수 있다. 여러분과 저에게 혹독한 문제와 사건이 일어났다. 그 문제속에 걱정하고 근심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간단하다. 하나님이 이렇게 하신 것이 아니냐? 이 믿음 이 바탕이 들어가면 누가 역사하는가? 성령이 역사한다. 그러면 그 열매가 무엇인가? 성령이 역사하시고 인도하시면 축복과 은혜로 열매맺게 되어있다. 여기에 많은 경우 실패하게 되어있다. 여기서 다 무너진다. 사단이 여기에 집중적으로 공격을 한다. 스므이가 그 평민이 더군다가 사울의 후손이 감히 대왕에게 왕에게 그 번쩍거리는 창날앞에서 저주할때에 이 비루한자여 가라하고 깡패같은 자야 가라하고 그럴때에 다윗이 하나님이 이렇게 하신 것이 아니냐? 이 믿음 위대한 것이다. 위대할 것도 없다. 당연한 것이다. 하나님의 다스림속에 정말 주어지는 것이 당연하다. 요셉 세계정복했다. 노예로 팔리고 감옥에 들어가고 할때에 그가 요셉에게 이런 축복과 역사가 일어날지 상상도 못할 어려울때에 그때에 요셉은 바로 이 믿음이다. 이 믿음에 대한 고백이 창45장에 나온다. 형님들이나를 판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나를 형님들 앞서 애굽에 보내신것입니다. 이 믿음이다. 그러니까 요셉이 감옥가고 뭐가고 그래도 아무런 동요없이 굿굿하게가 아니라 우리보기에는 굿굿하게라고 하지만 요셉처럼 된다는 것이 원이다. 그건 은혜받아야 한다. 창39장과 37장에도 그렇다. 요셉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순간에 하나님이 요셉을 잡으셨다. 요셉이 하나님을 잡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요셉을 잡았다. 그때부터 요셉은 비전을 가지고 나간다. 그 비전이 세계라는 비전이다. 모든 문제를 하나님이 하신다. 그래서 계속해서 말씀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씀을 드린다. 요셉처럼 되게 하옵소서하면 하나님이 요셉처럼 만들려고 하나님이 하신 일을 감옥에도 가고 노예로 팔리고 이러면 뭐라고 하는가하면 하나님 요셉처럼 해돌라고 하는데 왜 이렇게 어렵습니까? 요셉처럼 만들려니 어려워지지. 감옥도 가고 노예로 팔리고 이래야 되는데 조금만 하면 인간들이 이걸 못믿는다. 지금 하고 계시는데도 안한다고 고함을 지른다. 이걸 가지고 우리는 불신앙이라고 한다. 하나님은 참 답답할 것이다. 이런면에서 전능하시다싶다. 박지온목사가 만약 이런모습을 보았다면 당장 따귀를 올려야 한다. 해주는데도 잔소리가 많다. 지금 하고 있는데도 말인가!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지금 하고 있다. 하나님이 하고 있다. 여기에 누가 역사하는가? 성령께서 역사하신다. 이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말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신앙이다. 이것이 무너지면 다 무너진다. 하나님이 우리를 아신다. 어렵다. 힘들다. 문제도 있다. 그러면 하나님이 하신다. 우리를 천국까지 인도하실 것이다. 마지막가서 이 축복과 역사를 누리다가 가는것이지 지옥을 누리다가 가는 것이 아니다. 염려와 걱정이 있는가? 이미 잡혔다. 사단의 통로라고 말하는데 사단의 통로정도가 아니다. 염려와 걱정이 있으면 이미 잡혔다. 바로 이어서 오는 것이 불안이다. 염려,걱정에 이어서 오는 것이 불안이다.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완전히 하나님께 맡기라. 또 내게 그래서 아침에 맡기고 저녁에 찾고 저녁에 맡기고 아침에 찾고 매일 그런다. 제일 안되는 것이 이부분이라는 것을 오늘 붙잡고 저는 새삼스럽게 주여 이 축복된 것은 은혜로 되어지는것이지 노력으로 되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 오늘 제게 은혜주옵소서. 성령으로 오늘 나를 인도하실 은혜를 주옵소서. 그래서 오늘 송현교회에 오신 여러분들 처음오셨든지 오랜 무근듸든지 한가지만 붙들고 가면된다. 지금 성령께서 나를 인도하신다. 그 바탕이 하나님의 주권이다. 다 맡기라. 잘난지식가지고 자꾸 뺏지 말고 이상한 경험가지고 하지 말고 근본적으로 맡기라. 하나님이 하실 것이다.
저는 교회건축의 모든 일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서 많은 경우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확실히 드리고 싶은 말씀은 하나님이 하신다. 나는 양문건설에 대해서도 감사한다. 그분이 집사님이시기 때문에 교회를 맡아보니 너무 규모가 크니까 하기가 어렵다 싶었던지 본인이 못하겠다고 포기했다. 우리가 그걸 감사함으로 받았다. 미도에다가 건설을 약속한 것은 미도에서는 상당히 상류그룹이다. 많은 재정규모나 큰 회사이다. 돈을 좀 더 들더라도 그렇게 했다. 그래서 하다가 만약에 못하겠다면 곤란할 것이다. 집사님이기 때문에 하기전에 계산해보니 이것가지고는 안되겠다. 내 재력이나 내 수준가지고는 안되겠다. 그리고는 미리 교회건축이니까 안되겠다고 하신 것 같다. 그래서 우리가 받고 미도로 옮겨서 지난 수요일날 계약을 했다. 저는 그 과정을 보면서 그때 옆에 건축위원중에 한분이 목사님 건축회사가 약속했다가 새로 선정해서 한다고 하면 최소한 2~3개월이다. 당장 이어서 나올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역사라고 말하기보다도 그렇게 안되어도 하나님의 역사이다. 내가 하는 것 같지만 아니다. 심지어 내 개인도 하나님이 인도역사하시는데 교회건축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이다. 혹시 뭔가 마음이 들면 하나님이 하신다. 확실히 붙잡으시고 주의 성령께서 이 말세에 세계복음화라는 비전속에서 기어코 하나님이 이루실 것이다. 이모양 저모양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하실 것이다.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성령에 감동받는 것이 전부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다윗이 어떻게 그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아를 주라고 고백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 때 바리새인들은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다윗이 그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야를 주라고 고백한 것은 성령으로 된 것이지 인간의 지식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 다윗은 역사 속에서 가장 성령의 인도를 충만히 받았던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윗이 어떻게 하여 성령의 인도를 받는 모형이 될 수 있었겠습니까?
1. 성령의 인도에 대해서 바르게 이해해야 합니다.
(1) 예전에는 성령의 역사를 내 인격이나 지식과 관계없이 강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오해했습니다.
(2)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은 나의 인격, 지식, 생각, 판단, 결정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3) 인격적이신 하나님은 내가 축복받을 수 있는 인격이 되도록 기다리십니다.
(4) 성령님은 한없는 탄식으로 나의 인격, 지식, 생각, 판단, 의지가 바뀌도록 기다리십니다.
(5) 우리가 어떤 인격이 되느냐가 중요합니다.
2. 다윗은 어떤 인격이었기에 성령의 인도를 받을 수 있었습니까?
(1) 성령의 인도를 받기 전에는 사단의 배경 속에서 본질상 진노의 자녀로 태어나서 살아갑니다.
① 마귀의 인도를 받으면 자신도 모르게 운명에 빠지게 되어 자기 중심적으로 살아갑니다.
② 자존심과 교만은 사단에게 완전히 잡힌 증거이고, 그 결과로 저주와 재앙이 저절로 따라옵니다.
(2) 운명과 흑암의 세력에서 벗어나는 길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것입니다.
①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② 사단을 완전히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집니다.
③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될 때,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게 됩니다.
④ '나의 모든 인생이 하나님의 다스림 속에 있습니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 신앙의 발판입니다.
(3) 다윗이 성령의 인도를 받을 수 있었던 신앙의 발판은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주권 사상입니다.
① 성전 건축의 준비를 하며 다윗은 '하나님이 주권자이십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대상29:10-11).
② 죽고 사는 것도, 부귀하게 되는 것도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렸습니다(대상29:12).
③ 하나님 주권 사상이 확고할 때, 하나님께 감사의 예물도 드릴 수 있습니다(대상29:13-14).
④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고백이 강해질수록 평안이 오고 흔들리지 않습니다.
3. 하나님의 주권 속에 설 때 성령의 인도를 받습니다.
(1) 우리 주님께서 내 안에 오셔서 영원토록 함께하시는 것에서 나의 가치가 나옵니다.
① 이 땅과 비교가 되지 않는 하늘 나라의 영광 중에 계셨던 분이 그 모든 영광을 버리고 우리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② 똥통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을 건지러 똥통 속에 뛰어들어가는 것처럼 온갖 더러운 것들로 가득찬 우리 속에 성령께서 오신 것입니다.
③ 우리 속에 오신 성령은 우리를 최고의 인격으로 대접하시며 한없는 탄식으로 성령의 인도를 받을 수 있도록 하나님의 백성으로 굳게 붙잡고 계십니다.
④ 비록 보잘것 없고 문제 투성이인 것 같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시므로 우리는 귀중하고 가치있는 것입니다.
⑤ 하나님이 이미 우리를 붙잡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예배당에도 올 수 있는 것입니다.
(2) 주님은 한없는 탄식으로 우리가 성령의 감동을 받도록 하나님의 백성으로 굳게 잡고 계십니다.
① 사단이 본격적으로 방해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주권을 믿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② 우리는 문제만 생기면 먼저 하나님께 맡기기보다는 머리부터 돌아갑니다.
③ 내가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④ 결국은 지쳐서 하나님 앞에 나아와서 문제를 맡기게 됩니다.
⑤ 우리는 실패해도, 병이 들어도, 하나님께 잡혀있으므로 죽든지 살든지 주님께 영광을 돌리며 삽니다.
⑥ 처음부터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모든 일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3) 바울은 온갖 어려운 형편에서도 전 세계를 다니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① '하나님이 지금 나를 잡고 인도하신다'는 믿음에서 모든 것이 해결되었습니다.
② 병이 오면 믿음이 약해지고 불신앙이 생기는 문제가 있지만 '그래도 주님께서 지금 나를 인도하신다'라는 믿음으로 승리했습니다.
③ 현장에서 혹독하구나 싶을 때에 조차도,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4. 성령의 인도를 받았던 믿음의 선조들을 따라
(1) 다윗은 '어떠한 상황과 여건 속에서도 하나님이 다스린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만큼 그러한 그의 생각과 마음과 판단과 결정을 통해 성령께서 역사하심을 체험했습니다.
① 물이 흐를 때 물길을 타고 흐르는 것처럼 내가 어떤 생각과 판단과 마음을 가지느냐에 따라 성령의 역사의 통로가 되느냐 사단의 역사의 통로가 되느냐가 결정됩니다.
②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셔서 인도하신다는 마음과 생각을 가진 사람은 판단이 달라지고, 그것을 통해서 성령께서 역사하십니다.
③ 사무엘하 16장에서는 다윗이 모든 것에 대해서 하나님의 주권을 고백하는 신앙을 보여줍니다.
④ 남편, 아내, 자식, 일, 직장에 관한 모든 문제에 대해서 하나님이 하신다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⑤ 우리에게 혹독한 문제와 사건이 일어날 때에도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것이다'라는 신앙을 가지면 성령이 역사하시고, 축복과 열매가 맺혀집니다.
(2) 요셉이 세계 정복을 했습니다.
① 노예로 팔리고 감옥에 들어갔을 때에도 하나님이 나를 앞서 보내신 것이라는 믿음의 고백을 했습니다.
② 하나님이 요셉을 잡았을 때, 세계의 비전을 가지고 '모든 것을 하나님이 하십니다'라는 신앙으로 나아갔습니다.
5.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성령의 인도를 받으려면
(1)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①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입니다. ② 지금 하나님이 하고 있습니다.
(2) 하나님께 완전히 맡겨야 합니다.
① 염려와 걱정이 있다면, 이미 사단에게 잡혔으며 불안이 따라옵니다.
②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완전히 맡기십시오.
③ 아침에 맡기고 저녁에 찾고, 저녁에 맡기고 아침에 찾는 일을 버리십시오.
④ 이러한 축복은 은혜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지금 성령께서 나를 인도하고 계십니다. 모든 것을 맡기십시오. 근본적으로 맡기십시오. 하나님이 하실 것입니다. 주의 성령께서 세계 복음화를 이루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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