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표
2004-05-07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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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26:36)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마 26:37)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마 26:38)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마 26: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마 26:40)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마 26: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마 26:42) 다시 두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
(마 26:43) 다시 오사 보신즉 저희가 자니 이는 저희 눈이 피곤함일러라
(마 26:44) 또 저희를 두시고 나아가 세번째 동일한 말씀으로 기도하신 후
(마 26:45) 이에 제자들에게 오사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왔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우느니라
(마 26:46)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한 7, 8년 전에 상인동에 도시 가스가 폭파되는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었습니다. 저는 그때 그 사건을 한번 돌이켜 보면서 '참, 아찔했다' 는 그런 생각을 해 봤습니다. 왜냐하면 그 날, 사건이 일어나는 그 날 아침에 제가 그 현장에 있었습니다.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한곳에 이제 다락방 인도할 곳이 있어 가지고 차를 몰고 쭉 진행을 했습니다. 송현 주공아파트 사거리를 지나서, 지금 대서 중학교입니다. 그 앞에 이제 막 도착하려는 그런 시점인데, 갑자기 앞에서 꽝하는 소리가 들리더라 구요. 그리고 난 후에 아주 검은 연기 있죠, 이 검은 연기가 막 하늘로 이제 치솟아 오르는데, 그런 광경을 본 많은 사람들이 너무 놀라 가지고 그렇게 급속도로 밟아 나가다가 차를, 이 급브레이크를 밟고 막 그 자리에 전부다 우뚝 섰습니다.
그리고 난 후에 이제 창문을 열어 보니까, 그 때부터 막 고함소리가 들리고 떠들썩한 그런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제 커브 길이었기 때문에 뭐 그때 그 앞에 상황은 자세히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분명히 '큰 사건이 생겼구나!' 뭐 그것은 모두 다가 실감하고 직감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화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막 갑자기 이제 U턴을 해 가지고, 회전을 해 가지고 각기 다른 길로 막 나가고 있었습니다. 이제 막 차가 얽히고 이래가지고 저도 이제 겨우 겨우 그 자리를 빠져 나와서, 집에 와서 한 몇 분 후에 소식을 들었는데요. 그 자리에서 가스가 폭파되었다. 그래서 끔찍한 인명피해가 일어났다는 그런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단 1분만 먼저 그 자리에 갔더라면, 뭐 저도 지금 천국에 있을 겁니다.
그리고 우리 이제 집사님 한 분 중에서는 그 사거리를 지나자마자 이게 터져 가지고, 그때! 이제 그런 위기를 모면했다는 그런 소식도 들었습니다. 저는 이제 그 사건을 쭉 돌이켜 보면서 좀 진지하게 한번 생각을 해봤습니다. 과연 내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시간표가 뭘까? 우리 모든 인생들에게는 이 '시간표' 라는 것이 있습니다. '때' 라는 것이 있죠. 살아야 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고, 또 고통받을 때가 있고 그 고통으로부터 해방될 때가 있습니다. 어쨌든 이런 하나님의 시간표 속에 내가 지금 얼마나 진행되고 있느냐? 그런 시간표에 대해서 한번 진지하게 한번 생각을 해 봤습니다.
전도서 3장에 보시면 솔로몬이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사람이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고,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고, 그리고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고, 그리고 사람을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전 3:1)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다" 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 모든 사람들에게는 시간표라는 것이 있습니다. 순수한 우리말로는 '때' 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간표를 얼마나 정확히 알고 행동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이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너무 안타까운 사실은 이 시간표를 보는 영적인 눈이 없어서 얼마나 많은 성도들이 갈등하고 넘어지고 실패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을 보십시오. 삼촌 아브라함과 땅을 차지하는 이 사건을 놓고 이 롯이 고도의 머리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인간적으로 봤을 때에 조카인 자기가 모든 것을 양보해야 되는 것이, 그게 순리입니다. 왜냐하면 아버지 없는 자기 자신을 지금까지 자식처럼 키워왔죠. 그러면서 많은 소와 양떼를 거느릴 수 있도록, 그렇게 성공시킨 그 장본인이 누구냐 하면? 삼촌 아브라함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응당히 모든 것을 그 삼촌에게 양보를 하고 자기가 나중에 선택을 해야 될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삼촌에게 받은 은혜는 둘째치고, 자기가 먼저 그 좋은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 뛰쳐나갔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해서 이 롯이 차지한 땅이 어디입니까? 성경에 보시면 '저 요단 들을 바라보니까 소알까지 물이 넉넉하다고 했습니다.' 그 땅 이름이 '소돔과 고모라!'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완전히 멸망했던 그 소돔과 고모라 땅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보십시오. 지금 이 롯의 모든 눈은 '어떻게 하면 내 욕심을 챙길까! 좀 물이 넉넉하고 농사도 잘 되고 땅도 넓고 평평하고...' 어쨌든 이런 좋은 땅!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모든 어떤 선택의 기준을 세우고 나갔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뭡니까? 성경에 보시면 '하나님께서 그 소돔과 고모라 땅을 멸하시기 전이었는 고로' 이런 말이 있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이 롯이 자기 자신의 욕심에 눈이 어두워져서 하나님의 시간표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만일 바로 뒤에 이 소돔과 고모라가 완전히 멸망한다는 사실을 만일 놓치지 안았다면, 그 소돔 고모라 땅을 선택을 했겠느냐? 절대로 그렇지가 않을 것입니다. 어쨌든 이 롯이 하나님의 시간표를 읽지 못했을 때에 엄청난 비극이 그 가정과 개인 속에 찾아 왔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시간표를 보는 영적인 눈이 없으면 실패하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의 삶이 하나님의 시간표와는 전혀 상관없고, 자꾸만 자기의 어떤 욕심이라든지, 육신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롯처럼 상황을 판단하는 지혜도 있습니다. 또 자기의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열심히 뛰고, 노력을 하고, 투자를 열심히 하는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뭡니까? 눈앞에 나타난 이익에는 급급한데, 과연 하나님이 기뻐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느냐? 지금 그게 되지 않고 있다는 데에 여기에 모든 문제가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 여기 계신 우리 성도 님들은 과연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삶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이냐? 그렇지 않으면 뭔가 내 욕심과 내 중심적인 그런 삶을 살아갔는지, 우리 자신들을 한번 돌아보는 그러한 중요한 시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오늘 이 제목을 "시간표" 라고 한번 잡아 봤습니다. 특별히 오늘 이 시간표라고 했을 때에 여러 시간표들이 있습니다 만은, 기도할 시간표! 저와 여러분들이 기도할 시간표가 되어 졌다는 것! 여기에 큰 초점을 두고 그렇게 잠깐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다가 보면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시험에 들 때가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가만히 보니까, 인간 관계가 안 되어서 참 시험에 드는 그런 분들이 많더라 구요. 하루는 어떤 분이 제게 무슨 말을 하느냐 하면, '목사님, 저 남편 저거 꼬락서니가 보기 싫어 죽겠습니다!' 심지어는 그 남편이 자기 옆에 가까이 오는 그 자체가 너무 징그럽답니다.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 오셨는지... 그 남편이 자기 가까이 온다는 그 자체가 소름이 끼친다고 하는 정도니까, 얼마나 지금 그 관계가 악화되어 있습니까! 어쨌든 이 남편 때문에, 또 아내 때문에 너무 지금 고통하고, 지금 시험에 드는 그런 성도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또 어떤 성도 님은 '아휴, 저놈에 자식 저게 너무 마음에 안 든다!' 는 것입니다. 얼마나 투자를 하고 그 자식을 위해서 일생을 투자했는데... 그런데요. 그 자식이 자기가 원하는 그런 데로 이제 성장되지 못하니까, 또 자꾸만 사고를 일으키고 말썽을 일으키니까, 그게 너무 싫다는 겁니다. 그래서 '저놈에 자식 저거 미워죽겠습니다!' 이런 고백을 하시더라 구요. 또 하나 심각한 것은, 우리 성도들끼리도 갈등이 있더라는 말입니다. '아, 저 김 집사 보기 싫어 가지고 교회 나가기 싫다. 또 박 집사 보기 싫어서 교회 나가기 싫다!' 이래가지고 지금 교회 안에서도 이 성도들끼리 인간관계가 되지 못해서 늘 고민하고, 그래서 심지어는 교회를 떠나가는 그런 사람들이 있더라 구요. 어쨌든 이런 인간관계 속에서 자꾸만 어려움을 당하고 시험에 드는 그런 성도들이 참 많습니다.
또 어떤 성도는 물질 때문에 시험을 당합니다. 여러분 돈을 빌려주고 빌려 받고, 교회 안에서는 절대로 이런 일들이 없어야 됩니다. 왜냐하면 돈을 빌려주고 받을 때는 좋을지 모르지만, 시간이 점점 지나서 이게 이제 사건이 여의치 않으면 빌려준 돈을 못 받을 수도 있고 또 그런 와중에 마음에 큰 상처를 받게 됩니다. 분명히 말씀을 드리는 것은 혹시 돈을 빌려줄 그런 능력이 되면, 그냥 준다는 생각을 하십시오. 이걸 빌려줬을 때에 내가 받지 못한다는 것을 먼저 전제를 해야 되죠. 만일 이게 안 되면, 가장 가까운 사람들끼리 원수가 되더라 구요.
저는 여러 교회들을 거쳐오면서, 또 여러 사람들의 관계를 보면서, 이 돈 때문에 고민하고 갈등하는 그런 사람들을 참 많이 봤습니다. 그렇게 신앙 좋은 사람도 이 돈 문제가 연결되니까, 이것 때문에 갈등하고 싸우고... 그래서 완전히 원수가 되는 이런 장면들을 참 많이 봐 왔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 안에서는 절대로 이런 물질 문제 때문에 서로 상처를 받고 입히고, 그래서 교회가 어지러워지지 않도록... 그렇게 우리가 인도를 좀 받아야 될 것입니다. 하여튼 이런 문제, 저런 문제로 시험에 들고 너무 힘들어하는 그런 분들이 계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런 여러 가지 시험들을 이길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한마디로 말씀을 드리면, 기도밖에는 이 시험을 이길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주님 가르쳐 주신 기도에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게 뭐하라 했습니까? '기도하라!'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시면 41절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시험에 들고나서 기도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시험에 들기 전에, 그 전에 기도하라 했는데 거의 대부분의 우리 성도들은 시험 당하고 난 후에 그렇게 지금 기도를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떻습니까? 지금 내 자신은 주로 시험에 들고 기도를 합니까? 아니면 시험에 들기 전에 성령 충만하시고, 막상 시험이 왔을 때에 이기고 지금 승리하고 있습니까? 제가 모르기는 몰라도 거의 대개는 시험에 들고... 그래서 고난은 고난대로 당하고, 시험은 시험대로 당하고, 다 어려움을 당하다가 그때서야 이제 기도합니다. 참 억울한 일입니다. 우리 주님의 말씀처럼, 시험에 들기 전에 기도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어떤 문제가 와도 성령 충만하게 되면 얼마든지 그 상황들을 이길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평소 때는 기도하지 못하고, 평소 때는 인도를 받지 못하다가 막상 큰 사건이 꽝하고 일어나면, 그때서야 이제 깨닫고 하나님 좀 봐주십시오. 그런 식으로 우리가 지금까지 기도를 해 왔다는 것입니다. 물론 고난을 통해서도 기도해야 되겠죠. 그렇지만 고난 당하기 전에 기도해서 응답 받는다면 그것처럼 좋은 것이 없을 것입니다. 오늘 이 본문에 보십시오. 제자들이 기도하지 않다가 시험에 빠지는 이런 장면들이 나옵니다. 오늘 이 본문에 내용이 뭐냐하면, 우리 예수님께서 이제 십자가 죽음을 앞두고 제자들을 데리고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갔습니다. 참 중요한 사건입니다. 인류를 구원하는, 인류를 살리는 너무나도 중 차대한 그런 일들이 지금 예수님 앞에 펼쳐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너무 답답하신 예수님께서 이 제자들을 데리고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서 열심히 기도했던 그 사건이 오늘 이 본문 속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어떻습니까? 이 시간표를 모르니까요. 잠에 곯아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예수님께서는 이 중대한 사건을 앞에 두고 기도하시는데, 그것도 그냥 기도한 것이 아니고 땀방울이 핏방울이 될 정도로 그렇게 열심히 하나님께 기도했는데, 그런데 가장 예수님을 이해하고 가장 예수님을 도와 줘야될 이 제자들은 그들의 육신의 피곤 때문에 잠에 곯아 떨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시간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잠에 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철저하게 육신 삶으로 그렇게 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40절에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책망하십니다. '한 시라도 깨어서 기도할 수 없더냐?' 얼마나 답답하신 이 예수님께서 수많은 제자들을 향해서 '너희들이 한시라도 깨어서 기도할 수 없느냐? 지금 내가 십자가를 지고 온 인류의 모든 죄악을 위해서 구속하려고 하는 이 중요한 시점에 너희들이 왜 잠을 자고 있느냐? 나와 같이 깨어서 기도할 수 없느냐?' 그러면서 이 제자들을 책망하는 장면이 오늘 이 본문 속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사건을 앞에 두고 전심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의 제자들은 그렇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혹시 지금 우리들의 모습이 그렇지 않습니까? 지금 문제가 오고 여러 가지 어려운 그런 사건들이 자꾸만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일이 내게 왜 찾아왔고, 왜 우리교회 속에 이런 문제가 왔을까? 이런 사실을 가만해 봤을 때 '야, 진짜 기도할 시간표가 되어졌구나!' 이게 느껴져야 됩니다. 그런데 이런 중요한 시간표를 읽지 못하면 결국에는 내 자신도 문제가 오고, 가정적으로, 교회 적으로 심각한 그런 고통 속에 빠져가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들에게 또 우리 교회에 이제는 기도할 시간표가 되어졌습니다. 창세기 35장에 보시면, 고난 속에 빠진 야곱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형 에서와의 관계가 회복이 되어졌습니다. 그때에 야곱의 마음이 달라졌습니다. 분명히 야곱이 하나님께 서원을 했습니다. '하나님 나를 형과의 모든 관계가 회복되어지면 내가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서 하나님께 단을 쌓겠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예배하고 기도하겠습니다!' 분명한 약속을 했거든요. 그런데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형과의 관계가 회복이 되어졌는데, 그만 이 야곱이 인간적인 마음이 들어서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벧엘로 올라 가야될 이 야곱이 벧엘로 올라가지 않고 어디로 갔습니까? 세상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세겜 땅으로 내려갔습니다. 거기서 참 어려운 일을 만났습니다. 딸 디나가 세겜 사람들을 보러 나갔다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강간을 당합니다. 여기에 울분을 느낀 이 형제들이 가만히 있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칼을 들고 나가서 그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을 완전히 찔러 죽이는, 그래서 피비린내 나는 이런 사건들이 그 가정과 가문 속에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이때에 야곱이 깨달았습니다. '하나님 내가 하나님과 서원한 하나님과 약속한 이 언약약속을 지키지 못했다가 지금 내 가정 속에 피비린내 나는 이런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 용서해 주옵소서.' 그러면서 창세기 35장에 보시면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리고 모든 자기 식구들을 불러 놓고 '이제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환란 날에 내게 응답하셨고 내게 축복하셨던 그 하나님께 내가 단을 쌓으려 하노라!' 이 야곱이 자기 가정에 밀어닥친 이 고난을 통해서 기도할 시간표를 찾았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세상 속에 머무르지 말고 하나님과 서원하고 하나님께 약속했던, 그 벧엘의 땅으로 올라가야 되겠다!' 그러면서 온 식구를 불러모으고, 우상을 정리하고, 한마음 한뜻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기도의 역사 속으로 야곱이 들어갔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여러분 속에 고난이 있습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지 못할 그런 안타까운 심정들이 있습니까? 여러분들에게 고난이 왔다는 말은 이제 기도할 시간표가 되어 졌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면, 여러분들에게 고난이 왔다는 것은 이제 내가 하나님께 정당히 서야될 그런 시간표가 되어졌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깨닫지 못하면 고난은 고난대로 당하고, 어려움은 어려움대로 당하고 자꾸만 갈등하게 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런 사건들을 가만히 보면서 한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육신이 편안해 지고 좀더 살기 좋아지니까, 뭔가 기도하려는 그런 마음들이 약해지고, 자꾸만 내 중심의 삶을 살아가게 되더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러한 우리의 체질을 하나님께서 잘 아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가장 즐겨 사용하시는 한 통로가 뭐냐하면, 그게 고난입니다. 우리는 고난 당하면 싫죠. '당장에 편하고 당장에 살기 좋으면 되지, 뭐 그렇게 어렵게, 어렵게 믿을 필요가 있느냐?' 이래가지고 고난 자체를 거부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 성도들을 정신 차리게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고난이라는 어떤 방법을 사용하시더라 구요. 반대로 말하면 이 고난 자체가 우리에게 주어진 은혜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너무 편안하고 안일한 삶을 살아가면 기도해야 되겠다는 그런 마음이 약해지게 되어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의 체질을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런 체질을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고난을 집어넣고 그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우리를 인도해 가시더라 구요. 그래서 '고난은 은혜다!' 여기에 답을 얻지 못하면, 고난이 와도 절대로 그 고난을 이길 수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삭의 일생을 잘 압니다. 네 족장 중에서 유일하게 가장 편안한 삶을 살았던 그 인물이 누구냐 하면, 이삭입니다. 이 아브라함은 참 많은 어려움을 겪었죠. 고향 땅 떠나고, 뭐 아내를 팔아먹고 그런 과정 속에서 이 아브라함도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어떻습니까? 그야말로 최고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야곱이 살았습니다. 그 많은 어려움을 당했죠. 또 요셉도 늘 팔려 다니고, 그리고 또 감옥에 들어가고, 누명쓰고 자꾸만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유일하게 별로 어려움을 당하지 않았던 인물이 누구냐? 그게 이삭입니다. 달리 말하면 별로 어려움이 없었던 이삭의 마음이 뭔가 기도라는 관점에서 좀 마음이 약간 약해질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이 됩니다.
그런데 참 놀라운 사실은 이런 이삭이 기도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아버지 아브라함을 잘 만나서 고생을 안 했습니다. 별 어려움 없이 땅을 정복했습니다. 농사를 하고 나니까, 백 배의 결실이 왔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뭔가 좀 안일한 삶을 살아 갈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이삭에게도 문제가 왔는데요. 창세기 26장에 보시면, '이삭이 아들이 없으므로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다' 는 이 말씀이 있습니다. 보십시오. 결혼을 했는데, 25년 동안 후사를 이어나갈 자식이 없었습니다. 이런 문제를 당한 이삭이 하나님께 기도했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문제를 주시고 고난을 주시면서 기도하게 하시고,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쭉 이렇게 우리 성도들의 인생을 이끌어 가신다는 사실입니다.
솔직히 저도 이런 문제 속에서 참 기도해야 되겠다는 그런 마음의 중심을 한번 잡아 봤습니다. 얼마 전에 저희 가정에도 뭐 말하지 못할 그런 어려운 문제가 지나갔었습니다. 그때 제 마음속에 '하나님 왜? 이런 문제를 내게, 또 내 가정에 주십니까!' 너무 괴롭더라 구요. 지금까지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그런 일이 저희 가문에 생기고 나니까, 첫째는 하나님이 원망스럽더라 구요. 그래도 내가 복음 위해서 살고 좀 그리스도 언약 붙잡고 기도하는데, 왜 하나님께서 내 가정과 내 생활 속에 이런 어려운 문제를 주십니까! 그러면서 얼마나 불평과 원망이 마음속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나면서 느껴지는 것이 뭐냐하면 '맞다!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기도 안 하는 나를, 하나님께서 기도라는 그런 시간표 속으로 몰아 가시는 구나!' 바쁘다는 핑계 때문에 사실은 기도의 중요성을 놓치고 살 때가 많았거든요. 뭐 조금 피곤하면 눕고 조금 바쁘면, 바쁘다는 그런 핑계 때문에 기도라는 이런 중심을 놓쳤습니다. 그런데 이런 나에게, 또 우리 가정에 어려운 문제와 사건을 주시면서 계속해서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그렇게 인도를 해 나가 시더라는 겁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에게 기도할 중요한 시간표가 왔습니다. 첫째로 우리 교회 건축을 위해서 이제 진짜 기도해야 될 때입니다. 지금 경제적 상황들이 좋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도 그렇고 세계 적으로도 그렇고, 자칫 잘못하면 참 어려운 와중으로 빠질 수 있는 그런 일들이 지금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때에 하나님의 역사와 하나님의 시간표를 봐야 됩니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벽을 쭉 쌓아 올려 나갈 때에 가장 먼저 했던 것이 뭐냐하면,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처음에는 이 느헤미야가 자기 고국으로 돌아올 때에, 예루살렘 성으로 돌아 올 때에 얼마나 벅찬 가슴을 가지고 왔습니다. '야, 이제 본국으로 가는 구나! 그 땅에 가면 이제 모든 좋은 환경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겠구나!' 좋은 뜻으로 들어왔는데, 막상 들어와서 보니까요. 이스라엘 전체는 완전히 폐허가 되어있죠. 예루살렘 성전도 무너졌죠. 예루살렘 성벽도 완전히 황폐화되어 있었습니다. 너무 답답하고 상심이 된 이 느헤미야가 수일동안 금식하고 울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우리가 왜 이렇습니까! 이스라엘 전체가 왜 이렇게 폐허가 되어있습니까!' 너무 답답해 가지고 상심하고 수일동안 금식하며 울었다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낙심만 하고 좌절만 하고 울었던 것만 하는 것이 아니고, 이 느헤미야가 그때부터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비록 상황은 어렵고 여러 가지 문제 속에 있지만 하나님께서 당신의 역사를 이끌어 나가실 줄 믿습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예루살렘 성벽을 쌓아 올라갔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교회가 '교회건축!'이라는 중요한 이러한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역사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셔야 될 약속입니다. 다만 저와 여러분들이 얼마나 우리의 중심을 두고 이 하나님의 역사를 위해서 쓰임 받느냐? 그 중심이 뭐냐하면, 기도입니다. 지금 당장 여러분들이 헌금을 많이 하고, 안 하고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 더 중요한 것은 이제는 온 성도들이 하나로 되어서, 한마음 한뜻이 되어서 얼마나 중심을 가지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역사로 인도를 받느냐? 이 사실이 되어져야 됩니다.
첫째는 우리가 교회를 위해서 기도할 시간표가 되어졌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우리 목사님을 위해서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사실 우리 교회가 기존교단에 그대로 남아 있었더라면 별로 어려움이 없습니다. 그 기존 교단들과 함께 뭐 같이 활동하고, 같이 호흡을 하고 뭐 쉽게, 쉽게 신앙 생활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딱 하나입니다. 세계복음화! 하나님께서 그토록 원하시는 이 전도의 사명! 이것하나 감당하려고 온 교회가 결의를 하고, 우리 목사님 면직 당하시고, 또 장로님들 여러 주의 종들이 면직을 당하는 그런 수준까지 들어왔습니다. 많은 또 다는 기존 교단들이 지금 '송현교회 어떻게 되나 보자!' 전부 다가 주시하고 있는 이런 너무나도 중요한 그런 시점입니다.
이런 시점 속에서 우리 목사님이 든든히 서셔야 됩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위해서, 세계복음화의 언약을 위해서 진짜 중심을 두고 우리 목사님 건강이 회복되어질 때에, 이때에 교회에 힘이 실리에 되어 있고, 모든 역사가 진정으로 진행이 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이 기도의 고삐를 절대로 늦추어서는 안 됩니다. 한 교회가 복음으로 무장한다는 것! 세계복음화의 언약을 위해서 그 중심에 선다는 것! 이것처럼 큰 축복이 없습니다. 이 중심 속에 우리 목사님 세워 주셨습니다. 너무 중요한 자리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목사님 건강하셔서 이제는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가는 그 시간표 속에 함께 서야 될 것입니다. 우리의 중심을 모으고 기도해야 될 이런 중요한 시간표가 왔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입니다. 여러분 개인들 가정들을 위해서 꼭 기도하십시오. 중간에도 말씀을 드렸습니다 만은, 우리의 체질 자체는 자꾸 안일하고 싶습니다. 뭔가 좀 편안하고 싶습니다. 먹기 살고 좋을만하면요, 기도하려는 마음이 자꾸만 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언젠가 모르게 급속도로 어떤 고난과 문제와 사건이 내 가정 속에 찾아왔을 때에, 그때에 여러분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기도로 준비하지 못하고 성령 충만하지 못하면, 내게 찾아온 그 고통스러운 문제! 전혀 이길 수가 없습니다.
오늘 본문 속에 제자들을 보십시오. 평상시 기도가 없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그렇게, 그렇게 기도하라고 당부하셨지만 이 제자들이 평상시 기도가 되지 못했을 때에, 큰 중요한 사건이 생겼을 때에 스승은 너무 고통스러워서 기도하는데, 그 제자들은 마음에 안중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께서 얼마나 답답했으면, '한시라도 깨어서 기도할 수 없더냐?' 주님께서 지금 저와 여러분들에게 '한시라도 깨어서 기도할 수 없더냐?' 이런 책망이 내린다면 어떻게 우리가 감당하겠습니까! 여러분, 여러분의 가정 속에 하나님의 역사가 충만할 수 있도록 그렇게 기도하시고 인도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 교회 속에, 또 가정 속에 문제가 왔다는 것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중요한 시간표가 되어 졌다는 말입니다. 이 40장 31절에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줄 것이요.' 전적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모든 알지 못하는 그런 힘과 능력으로 함께 하겠다 했습니다. 또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가 반드시 이 교회 속에 여러분의 자신 속에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이제는 다른 문제가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온 성도들이 함께 기도하는 시간표 속에 들어올 때에,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당신의 역사를 확실하게 이끌어 가실 것입니다. 오늘 이 언약 확실히 잡으시고, 온 성도들이 기도함으로 통해서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의 역사를 날마다 체험하시고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하나님의 시간표를 볼 줄 아는 영적인 눈이 있어야 지금 축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 롯은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멸망의 길로 달려가고 있는 소돔과 고모라 지역을 선택했습니다. 롯은 자신의 욕심에 눈이 어두워져서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시간표를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그와 그의 가정에 큰 비극이 찾아왔습니다.
☞ 지금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시간표와 전혀 관계 없이 육신의 욕망을 따라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눈 앞에 나타난 이익에는 급급하면서도, 과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에 대해서는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삽니까?
[1] 기도할 시간표가 되었습니다.
☞ 우리가 세상을 살다보면 배우자, 자녀, 경제 등의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시험에 들게 됩니다. 이러한 시험을 이길 수 있는 길은 기도 밖에 없습니다. 우리 주님은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처럼 시험에 들기 전에 기도하면, 성령 충만하여 시험이 닥쳐와도 능히 이겨나갈 수 있습니다.
[2] 우리가 기도할 시간표가 되었습니다.
☞ 나에게 왜 이런 일들이 찾아오고, 우리 교회에 왜 이런 사건이 일어나는가를 파악하고, 하나님 앞에서 기도해야 합니다. 지금은 우리 교회가 기도할 시간표가 되었습니다.
[3] 고난은 기도로 인도하는 은혜입니다.
☞ 우리에게 고난이 왔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정당히 서야할 시간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고난은 우리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며 기도할 수 있도록 인도하는 은혜입니다.
[4] 우리 교회가 함께 기도할 제목이 있습니다.
① 교회 건축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파괴된 예루살렘을 보고 안타까워하던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성전을 쌓아올리면서 철저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로 인도받기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② 목사님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세계 복음화를 위해서 많은 어려움을 무릎쓰고 목사님께서 지금까지 사역해 오셨습니다. 이 시점에서 목사님의 건강이 회복되는 것은 중대한 일입니다.
③ 우리 개인과 가정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자꾸만 편안한 생활을 하고 싶어지려는 우리 자신을 이기고 기도로 무장해야 되겠습니다.
▣ 하나님을 바라볼 때 새 힘을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온 성도가 함께 기도할 때,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의 역사를 체험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 언약 잡은 기도 ▣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삶을 철저히 인도하셔서 영광 받으시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세상의 욕망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지켜주시고, 모든 문제와 사건을 맞서 능히 성령의 인도로 이겨나갈 수 있도록 하루 하루 참 주인 되신 하나님께 기도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마 26:37)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마 26:38)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마 26: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마 26:40)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마 26: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마 26:42) 다시 두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
(마 26:43) 다시 오사 보신즉 저희가 자니 이는 저희 눈이 피곤함일러라
(마 26:44) 또 저희를 두시고 나아가 세번째 동일한 말씀으로 기도하신 후
(마 26:45) 이에 제자들에게 오사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왔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우느니라
(마 26:46)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한 7, 8년 전에 상인동에 도시 가스가 폭파되는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었습니다. 저는 그때 그 사건을 한번 돌이켜 보면서 '참, 아찔했다' 는 그런 생각을 해 봤습니다. 왜냐하면 그 날, 사건이 일어나는 그 날 아침에 제가 그 현장에 있었습니다.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한곳에 이제 다락방 인도할 곳이 있어 가지고 차를 몰고 쭉 진행을 했습니다. 송현 주공아파트 사거리를 지나서, 지금 대서 중학교입니다. 그 앞에 이제 막 도착하려는 그런 시점인데, 갑자기 앞에서 꽝하는 소리가 들리더라 구요. 그리고 난 후에 아주 검은 연기 있죠, 이 검은 연기가 막 하늘로 이제 치솟아 오르는데, 그런 광경을 본 많은 사람들이 너무 놀라 가지고 그렇게 급속도로 밟아 나가다가 차를, 이 급브레이크를 밟고 막 그 자리에 전부다 우뚝 섰습니다.
그리고 난 후에 이제 창문을 열어 보니까, 그 때부터 막 고함소리가 들리고 떠들썩한 그런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제 커브 길이었기 때문에 뭐 그때 그 앞에 상황은 자세히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분명히 '큰 사건이 생겼구나!' 뭐 그것은 모두 다가 실감하고 직감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화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막 갑자기 이제 U턴을 해 가지고, 회전을 해 가지고 각기 다른 길로 막 나가고 있었습니다. 이제 막 차가 얽히고 이래가지고 저도 이제 겨우 겨우 그 자리를 빠져 나와서, 집에 와서 한 몇 분 후에 소식을 들었는데요. 그 자리에서 가스가 폭파되었다. 그래서 끔찍한 인명피해가 일어났다는 그런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단 1분만 먼저 그 자리에 갔더라면, 뭐 저도 지금 천국에 있을 겁니다.
그리고 우리 이제 집사님 한 분 중에서는 그 사거리를 지나자마자 이게 터져 가지고, 그때! 이제 그런 위기를 모면했다는 그런 소식도 들었습니다. 저는 이제 그 사건을 쭉 돌이켜 보면서 좀 진지하게 한번 생각을 해봤습니다. 과연 내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시간표가 뭘까? 우리 모든 인생들에게는 이 '시간표' 라는 것이 있습니다. '때' 라는 것이 있죠. 살아야 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고, 또 고통받을 때가 있고 그 고통으로부터 해방될 때가 있습니다. 어쨌든 이런 하나님의 시간표 속에 내가 지금 얼마나 진행되고 있느냐? 그런 시간표에 대해서 한번 진지하게 한번 생각을 해 봤습니다.
전도서 3장에 보시면 솔로몬이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사람이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고,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고, 그리고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고, 그리고 사람을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전 3:1)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다" 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 모든 사람들에게는 시간표라는 것이 있습니다. 순수한 우리말로는 '때' 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간표를 얼마나 정확히 알고 행동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이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너무 안타까운 사실은 이 시간표를 보는 영적인 눈이 없어서 얼마나 많은 성도들이 갈등하고 넘어지고 실패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을 보십시오. 삼촌 아브라함과 땅을 차지하는 이 사건을 놓고 이 롯이 고도의 머리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인간적으로 봤을 때에 조카인 자기가 모든 것을 양보해야 되는 것이, 그게 순리입니다. 왜냐하면 아버지 없는 자기 자신을 지금까지 자식처럼 키워왔죠. 그러면서 많은 소와 양떼를 거느릴 수 있도록, 그렇게 성공시킨 그 장본인이 누구냐 하면? 삼촌 아브라함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응당히 모든 것을 그 삼촌에게 양보를 하고 자기가 나중에 선택을 해야 될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삼촌에게 받은 은혜는 둘째치고, 자기가 먼저 그 좋은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 뛰쳐나갔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해서 이 롯이 차지한 땅이 어디입니까? 성경에 보시면 '저 요단 들을 바라보니까 소알까지 물이 넉넉하다고 했습니다.' 그 땅 이름이 '소돔과 고모라!'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완전히 멸망했던 그 소돔과 고모라 땅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보십시오. 지금 이 롯의 모든 눈은 '어떻게 하면 내 욕심을 챙길까! 좀 물이 넉넉하고 농사도 잘 되고 땅도 넓고 평평하고...' 어쨌든 이런 좋은 땅!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모든 어떤 선택의 기준을 세우고 나갔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뭡니까? 성경에 보시면 '하나님께서 그 소돔과 고모라 땅을 멸하시기 전이었는 고로' 이런 말이 있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이 롯이 자기 자신의 욕심에 눈이 어두워져서 하나님의 시간표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만일 바로 뒤에 이 소돔과 고모라가 완전히 멸망한다는 사실을 만일 놓치지 안았다면, 그 소돔 고모라 땅을 선택을 했겠느냐? 절대로 그렇지가 않을 것입니다. 어쨌든 이 롯이 하나님의 시간표를 읽지 못했을 때에 엄청난 비극이 그 가정과 개인 속에 찾아 왔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시간표를 보는 영적인 눈이 없으면 실패하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의 삶이 하나님의 시간표와는 전혀 상관없고, 자꾸만 자기의 어떤 욕심이라든지, 육신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롯처럼 상황을 판단하는 지혜도 있습니다. 또 자기의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열심히 뛰고, 노력을 하고, 투자를 열심히 하는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뭡니까? 눈앞에 나타난 이익에는 급급한데, 과연 하나님이 기뻐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느냐? 지금 그게 되지 않고 있다는 데에 여기에 모든 문제가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 여기 계신 우리 성도 님들은 과연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삶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이냐? 그렇지 않으면 뭔가 내 욕심과 내 중심적인 그런 삶을 살아갔는지, 우리 자신들을 한번 돌아보는 그러한 중요한 시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오늘 이 제목을 "시간표" 라고 한번 잡아 봤습니다. 특별히 오늘 이 시간표라고 했을 때에 여러 시간표들이 있습니다 만은, 기도할 시간표! 저와 여러분들이 기도할 시간표가 되어 졌다는 것! 여기에 큰 초점을 두고 그렇게 잠깐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다가 보면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시험에 들 때가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가만히 보니까, 인간 관계가 안 되어서 참 시험에 드는 그런 분들이 많더라 구요. 하루는 어떤 분이 제게 무슨 말을 하느냐 하면, '목사님, 저 남편 저거 꼬락서니가 보기 싫어 죽겠습니다!' 심지어는 그 남편이 자기 옆에 가까이 오는 그 자체가 너무 징그럽답니다.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 오셨는지... 그 남편이 자기 가까이 온다는 그 자체가 소름이 끼친다고 하는 정도니까, 얼마나 지금 그 관계가 악화되어 있습니까! 어쨌든 이 남편 때문에, 또 아내 때문에 너무 지금 고통하고, 지금 시험에 드는 그런 성도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또 어떤 성도 님은 '아휴, 저놈에 자식 저게 너무 마음에 안 든다!' 는 것입니다. 얼마나 투자를 하고 그 자식을 위해서 일생을 투자했는데... 그런데요. 그 자식이 자기가 원하는 그런 데로 이제 성장되지 못하니까, 또 자꾸만 사고를 일으키고 말썽을 일으키니까, 그게 너무 싫다는 겁니다. 그래서 '저놈에 자식 저거 미워죽겠습니다!' 이런 고백을 하시더라 구요. 또 하나 심각한 것은, 우리 성도들끼리도 갈등이 있더라는 말입니다. '아, 저 김 집사 보기 싫어 가지고 교회 나가기 싫다. 또 박 집사 보기 싫어서 교회 나가기 싫다!' 이래가지고 지금 교회 안에서도 이 성도들끼리 인간관계가 되지 못해서 늘 고민하고, 그래서 심지어는 교회를 떠나가는 그런 사람들이 있더라 구요. 어쨌든 이런 인간관계 속에서 자꾸만 어려움을 당하고 시험에 드는 그런 성도들이 참 많습니다.
또 어떤 성도는 물질 때문에 시험을 당합니다. 여러분 돈을 빌려주고 빌려 받고, 교회 안에서는 절대로 이런 일들이 없어야 됩니다. 왜냐하면 돈을 빌려주고 받을 때는 좋을지 모르지만, 시간이 점점 지나서 이게 이제 사건이 여의치 않으면 빌려준 돈을 못 받을 수도 있고 또 그런 와중에 마음에 큰 상처를 받게 됩니다. 분명히 말씀을 드리는 것은 혹시 돈을 빌려줄 그런 능력이 되면, 그냥 준다는 생각을 하십시오. 이걸 빌려줬을 때에 내가 받지 못한다는 것을 먼저 전제를 해야 되죠. 만일 이게 안 되면, 가장 가까운 사람들끼리 원수가 되더라 구요.
저는 여러 교회들을 거쳐오면서, 또 여러 사람들의 관계를 보면서, 이 돈 때문에 고민하고 갈등하는 그런 사람들을 참 많이 봤습니다. 그렇게 신앙 좋은 사람도 이 돈 문제가 연결되니까, 이것 때문에 갈등하고 싸우고... 그래서 완전히 원수가 되는 이런 장면들을 참 많이 봐 왔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 안에서는 절대로 이런 물질 문제 때문에 서로 상처를 받고 입히고, 그래서 교회가 어지러워지지 않도록... 그렇게 우리가 인도를 좀 받아야 될 것입니다. 하여튼 이런 문제, 저런 문제로 시험에 들고 너무 힘들어하는 그런 분들이 계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런 여러 가지 시험들을 이길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한마디로 말씀을 드리면, 기도밖에는 이 시험을 이길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주님 가르쳐 주신 기도에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게 뭐하라 했습니까? '기도하라!'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시면 41절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시험에 들고나서 기도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시험에 들기 전에, 그 전에 기도하라 했는데 거의 대부분의 우리 성도들은 시험 당하고 난 후에 그렇게 지금 기도를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떻습니까? 지금 내 자신은 주로 시험에 들고 기도를 합니까? 아니면 시험에 들기 전에 성령 충만하시고, 막상 시험이 왔을 때에 이기고 지금 승리하고 있습니까? 제가 모르기는 몰라도 거의 대개는 시험에 들고... 그래서 고난은 고난대로 당하고, 시험은 시험대로 당하고, 다 어려움을 당하다가 그때서야 이제 기도합니다. 참 억울한 일입니다. 우리 주님의 말씀처럼, 시험에 들기 전에 기도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어떤 문제가 와도 성령 충만하게 되면 얼마든지 그 상황들을 이길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평소 때는 기도하지 못하고, 평소 때는 인도를 받지 못하다가 막상 큰 사건이 꽝하고 일어나면, 그때서야 이제 깨닫고 하나님 좀 봐주십시오. 그런 식으로 우리가 지금까지 기도를 해 왔다는 것입니다. 물론 고난을 통해서도 기도해야 되겠죠. 그렇지만 고난 당하기 전에 기도해서 응답 받는다면 그것처럼 좋은 것이 없을 것입니다. 오늘 이 본문에 보십시오. 제자들이 기도하지 않다가 시험에 빠지는 이런 장면들이 나옵니다. 오늘 이 본문에 내용이 뭐냐하면, 우리 예수님께서 이제 십자가 죽음을 앞두고 제자들을 데리고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갔습니다. 참 중요한 사건입니다. 인류를 구원하는, 인류를 살리는 너무나도 중 차대한 그런 일들이 지금 예수님 앞에 펼쳐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너무 답답하신 예수님께서 이 제자들을 데리고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서 열심히 기도했던 그 사건이 오늘 이 본문 속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어떻습니까? 이 시간표를 모르니까요. 잠에 곯아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예수님께서는 이 중대한 사건을 앞에 두고 기도하시는데, 그것도 그냥 기도한 것이 아니고 땀방울이 핏방울이 될 정도로 그렇게 열심히 하나님께 기도했는데, 그런데 가장 예수님을 이해하고 가장 예수님을 도와 줘야될 이 제자들은 그들의 육신의 피곤 때문에 잠에 곯아 떨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시간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잠에 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철저하게 육신 삶으로 그렇게 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40절에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책망하십니다. '한 시라도 깨어서 기도할 수 없더냐?' 얼마나 답답하신 이 예수님께서 수많은 제자들을 향해서 '너희들이 한시라도 깨어서 기도할 수 없느냐? 지금 내가 십자가를 지고 온 인류의 모든 죄악을 위해서 구속하려고 하는 이 중요한 시점에 너희들이 왜 잠을 자고 있느냐? 나와 같이 깨어서 기도할 수 없느냐?' 그러면서 이 제자들을 책망하는 장면이 오늘 이 본문 속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사건을 앞에 두고 전심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의 제자들은 그렇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혹시 지금 우리들의 모습이 그렇지 않습니까? 지금 문제가 오고 여러 가지 어려운 그런 사건들이 자꾸만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일이 내게 왜 찾아왔고, 왜 우리교회 속에 이런 문제가 왔을까? 이런 사실을 가만해 봤을 때 '야, 진짜 기도할 시간표가 되어졌구나!' 이게 느껴져야 됩니다. 그런데 이런 중요한 시간표를 읽지 못하면 결국에는 내 자신도 문제가 오고, 가정적으로, 교회 적으로 심각한 그런 고통 속에 빠져가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들에게 또 우리 교회에 이제는 기도할 시간표가 되어졌습니다. 창세기 35장에 보시면, 고난 속에 빠진 야곱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형 에서와의 관계가 회복이 되어졌습니다. 그때에 야곱의 마음이 달라졌습니다. 분명히 야곱이 하나님께 서원을 했습니다. '하나님 나를 형과의 모든 관계가 회복되어지면 내가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서 하나님께 단을 쌓겠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예배하고 기도하겠습니다!' 분명한 약속을 했거든요. 그런데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형과의 관계가 회복이 되어졌는데, 그만 이 야곱이 인간적인 마음이 들어서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벧엘로 올라 가야될 이 야곱이 벧엘로 올라가지 않고 어디로 갔습니까? 세상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세겜 땅으로 내려갔습니다. 거기서 참 어려운 일을 만났습니다. 딸 디나가 세겜 사람들을 보러 나갔다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강간을 당합니다. 여기에 울분을 느낀 이 형제들이 가만히 있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칼을 들고 나가서 그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을 완전히 찔러 죽이는, 그래서 피비린내 나는 이런 사건들이 그 가정과 가문 속에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이때에 야곱이 깨달았습니다. '하나님 내가 하나님과 서원한 하나님과 약속한 이 언약약속을 지키지 못했다가 지금 내 가정 속에 피비린내 나는 이런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 용서해 주옵소서.' 그러면서 창세기 35장에 보시면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리고 모든 자기 식구들을 불러 놓고 '이제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환란 날에 내게 응답하셨고 내게 축복하셨던 그 하나님께 내가 단을 쌓으려 하노라!' 이 야곱이 자기 가정에 밀어닥친 이 고난을 통해서 기도할 시간표를 찾았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세상 속에 머무르지 말고 하나님과 서원하고 하나님께 약속했던, 그 벧엘의 땅으로 올라가야 되겠다!' 그러면서 온 식구를 불러모으고, 우상을 정리하고, 한마음 한뜻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기도의 역사 속으로 야곱이 들어갔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여러분 속에 고난이 있습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지 못할 그런 안타까운 심정들이 있습니까? 여러분들에게 고난이 왔다는 말은 이제 기도할 시간표가 되어 졌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면, 여러분들에게 고난이 왔다는 것은 이제 내가 하나님께 정당히 서야될 그런 시간표가 되어졌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깨닫지 못하면 고난은 고난대로 당하고, 어려움은 어려움대로 당하고 자꾸만 갈등하게 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런 사건들을 가만히 보면서 한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육신이 편안해 지고 좀더 살기 좋아지니까, 뭔가 기도하려는 그런 마음들이 약해지고, 자꾸만 내 중심의 삶을 살아가게 되더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러한 우리의 체질을 하나님께서 잘 아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가장 즐겨 사용하시는 한 통로가 뭐냐하면, 그게 고난입니다. 우리는 고난 당하면 싫죠. '당장에 편하고 당장에 살기 좋으면 되지, 뭐 그렇게 어렵게, 어렵게 믿을 필요가 있느냐?' 이래가지고 고난 자체를 거부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 성도들을 정신 차리게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고난이라는 어떤 방법을 사용하시더라 구요. 반대로 말하면 이 고난 자체가 우리에게 주어진 은혜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너무 편안하고 안일한 삶을 살아가면 기도해야 되겠다는 그런 마음이 약해지게 되어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의 체질을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런 체질을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고난을 집어넣고 그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우리를 인도해 가시더라 구요. 그래서 '고난은 은혜다!' 여기에 답을 얻지 못하면, 고난이 와도 절대로 그 고난을 이길 수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삭의 일생을 잘 압니다. 네 족장 중에서 유일하게 가장 편안한 삶을 살았던 그 인물이 누구냐 하면, 이삭입니다. 이 아브라함은 참 많은 어려움을 겪었죠. 고향 땅 떠나고, 뭐 아내를 팔아먹고 그런 과정 속에서 이 아브라함도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어떻습니까? 그야말로 최고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야곱이 살았습니다. 그 많은 어려움을 당했죠. 또 요셉도 늘 팔려 다니고, 그리고 또 감옥에 들어가고, 누명쓰고 자꾸만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유일하게 별로 어려움을 당하지 않았던 인물이 누구냐? 그게 이삭입니다. 달리 말하면 별로 어려움이 없었던 이삭의 마음이 뭔가 기도라는 관점에서 좀 마음이 약간 약해질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이 됩니다.
그런데 참 놀라운 사실은 이런 이삭이 기도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아버지 아브라함을 잘 만나서 고생을 안 했습니다. 별 어려움 없이 땅을 정복했습니다. 농사를 하고 나니까, 백 배의 결실이 왔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뭔가 좀 안일한 삶을 살아 갈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이삭에게도 문제가 왔는데요. 창세기 26장에 보시면, '이삭이 아들이 없으므로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다' 는 이 말씀이 있습니다. 보십시오. 결혼을 했는데, 25년 동안 후사를 이어나갈 자식이 없었습니다. 이런 문제를 당한 이삭이 하나님께 기도했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문제를 주시고 고난을 주시면서 기도하게 하시고,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쭉 이렇게 우리 성도들의 인생을 이끌어 가신다는 사실입니다.
솔직히 저도 이런 문제 속에서 참 기도해야 되겠다는 그런 마음의 중심을 한번 잡아 봤습니다. 얼마 전에 저희 가정에도 뭐 말하지 못할 그런 어려운 문제가 지나갔었습니다. 그때 제 마음속에 '하나님 왜? 이런 문제를 내게, 또 내 가정에 주십니까!' 너무 괴롭더라 구요. 지금까지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그런 일이 저희 가문에 생기고 나니까, 첫째는 하나님이 원망스럽더라 구요. 그래도 내가 복음 위해서 살고 좀 그리스도 언약 붙잡고 기도하는데, 왜 하나님께서 내 가정과 내 생활 속에 이런 어려운 문제를 주십니까! 그러면서 얼마나 불평과 원망이 마음속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나면서 느껴지는 것이 뭐냐하면 '맞다!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기도 안 하는 나를, 하나님께서 기도라는 그런 시간표 속으로 몰아 가시는 구나!' 바쁘다는 핑계 때문에 사실은 기도의 중요성을 놓치고 살 때가 많았거든요. 뭐 조금 피곤하면 눕고 조금 바쁘면, 바쁘다는 그런 핑계 때문에 기도라는 이런 중심을 놓쳤습니다. 그런데 이런 나에게, 또 우리 가정에 어려운 문제와 사건을 주시면서 계속해서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그렇게 인도를 해 나가 시더라는 겁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에게 기도할 중요한 시간표가 왔습니다. 첫째로 우리 교회 건축을 위해서 이제 진짜 기도해야 될 때입니다. 지금 경제적 상황들이 좋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도 그렇고 세계 적으로도 그렇고, 자칫 잘못하면 참 어려운 와중으로 빠질 수 있는 그런 일들이 지금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때에 하나님의 역사와 하나님의 시간표를 봐야 됩니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벽을 쭉 쌓아 올려 나갈 때에 가장 먼저 했던 것이 뭐냐하면,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처음에는 이 느헤미야가 자기 고국으로 돌아올 때에, 예루살렘 성으로 돌아 올 때에 얼마나 벅찬 가슴을 가지고 왔습니다. '야, 이제 본국으로 가는 구나! 그 땅에 가면 이제 모든 좋은 환경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겠구나!' 좋은 뜻으로 들어왔는데, 막상 들어와서 보니까요. 이스라엘 전체는 완전히 폐허가 되어있죠. 예루살렘 성전도 무너졌죠. 예루살렘 성벽도 완전히 황폐화되어 있었습니다. 너무 답답하고 상심이 된 이 느헤미야가 수일동안 금식하고 울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우리가 왜 이렇습니까! 이스라엘 전체가 왜 이렇게 폐허가 되어있습니까!' 너무 답답해 가지고 상심하고 수일동안 금식하며 울었다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낙심만 하고 좌절만 하고 울었던 것만 하는 것이 아니고, 이 느헤미야가 그때부터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비록 상황은 어렵고 여러 가지 문제 속에 있지만 하나님께서 당신의 역사를 이끌어 나가실 줄 믿습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예루살렘 성벽을 쌓아 올라갔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교회가 '교회건축!'이라는 중요한 이러한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역사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셔야 될 약속입니다. 다만 저와 여러분들이 얼마나 우리의 중심을 두고 이 하나님의 역사를 위해서 쓰임 받느냐? 그 중심이 뭐냐하면, 기도입니다. 지금 당장 여러분들이 헌금을 많이 하고, 안 하고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 더 중요한 것은 이제는 온 성도들이 하나로 되어서, 한마음 한뜻이 되어서 얼마나 중심을 가지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역사로 인도를 받느냐? 이 사실이 되어져야 됩니다.
첫째는 우리가 교회를 위해서 기도할 시간표가 되어졌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우리 목사님을 위해서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사실 우리 교회가 기존교단에 그대로 남아 있었더라면 별로 어려움이 없습니다. 그 기존 교단들과 함께 뭐 같이 활동하고, 같이 호흡을 하고 뭐 쉽게, 쉽게 신앙 생활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딱 하나입니다. 세계복음화! 하나님께서 그토록 원하시는 이 전도의 사명! 이것하나 감당하려고 온 교회가 결의를 하고, 우리 목사님 면직 당하시고, 또 장로님들 여러 주의 종들이 면직을 당하는 그런 수준까지 들어왔습니다. 많은 또 다는 기존 교단들이 지금 '송현교회 어떻게 되나 보자!' 전부 다가 주시하고 있는 이런 너무나도 중요한 그런 시점입니다.
이런 시점 속에서 우리 목사님이 든든히 서셔야 됩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위해서, 세계복음화의 언약을 위해서 진짜 중심을 두고 우리 목사님 건강이 회복되어질 때에, 이때에 교회에 힘이 실리에 되어 있고, 모든 역사가 진정으로 진행이 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이 기도의 고삐를 절대로 늦추어서는 안 됩니다. 한 교회가 복음으로 무장한다는 것! 세계복음화의 언약을 위해서 그 중심에 선다는 것! 이것처럼 큰 축복이 없습니다. 이 중심 속에 우리 목사님 세워 주셨습니다. 너무 중요한 자리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목사님 건강하셔서 이제는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가는 그 시간표 속에 함께 서야 될 것입니다. 우리의 중심을 모으고 기도해야 될 이런 중요한 시간표가 왔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입니다. 여러분 개인들 가정들을 위해서 꼭 기도하십시오. 중간에도 말씀을 드렸습니다 만은, 우리의 체질 자체는 자꾸 안일하고 싶습니다. 뭔가 좀 편안하고 싶습니다. 먹기 살고 좋을만하면요, 기도하려는 마음이 자꾸만 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언젠가 모르게 급속도로 어떤 고난과 문제와 사건이 내 가정 속에 찾아왔을 때에, 그때에 여러분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기도로 준비하지 못하고 성령 충만하지 못하면, 내게 찾아온 그 고통스러운 문제! 전혀 이길 수가 없습니다.
오늘 본문 속에 제자들을 보십시오. 평상시 기도가 없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그렇게, 그렇게 기도하라고 당부하셨지만 이 제자들이 평상시 기도가 되지 못했을 때에, 큰 중요한 사건이 생겼을 때에 스승은 너무 고통스러워서 기도하는데, 그 제자들은 마음에 안중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께서 얼마나 답답했으면, '한시라도 깨어서 기도할 수 없더냐?' 주님께서 지금 저와 여러분들에게 '한시라도 깨어서 기도할 수 없더냐?' 이런 책망이 내린다면 어떻게 우리가 감당하겠습니까! 여러분, 여러분의 가정 속에 하나님의 역사가 충만할 수 있도록 그렇게 기도하시고 인도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 교회 속에, 또 가정 속에 문제가 왔다는 것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중요한 시간표가 되어 졌다는 말입니다. 이 40장 31절에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줄 것이요.' 전적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모든 알지 못하는 그런 힘과 능력으로 함께 하겠다 했습니다. 또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가 반드시 이 교회 속에 여러분의 자신 속에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이제는 다른 문제가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온 성도들이 함께 기도하는 시간표 속에 들어올 때에,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당신의 역사를 확실하게 이끌어 가실 것입니다. 오늘 이 언약 확실히 잡으시고, 온 성도들이 기도함으로 통해서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의 역사를 날마다 체험하시고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하나님의 시간표를 볼 줄 아는 영적인 눈이 있어야 지금 축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 롯은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멸망의 길로 달려가고 있는 소돔과 고모라 지역을 선택했습니다. 롯은 자신의 욕심에 눈이 어두워져서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시간표를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그와 그의 가정에 큰 비극이 찾아왔습니다.
☞ 지금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시간표와 전혀 관계 없이 육신의 욕망을 따라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눈 앞에 나타난 이익에는 급급하면서도, 과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에 대해서는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삽니까?
[1] 기도할 시간표가 되었습니다.
☞ 우리가 세상을 살다보면 배우자, 자녀, 경제 등의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시험에 들게 됩니다. 이러한 시험을 이길 수 있는 길은 기도 밖에 없습니다. 우리 주님은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처럼 시험에 들기 전에 기도하면, 성령 충만하여 시험이 닥쳐와도 능히 이겨나갈 수 있습니다.
[2] 우리가 기도할 시간표가 되었습니다.
☞ 나에게 왜 이런 일들이 찾아오고, 우리 교회에 왜 이런 사건이 일어나는가를 파악하고, 하나님 앞에서 기도해야 합니다. 지금은 우리 교회가 기도할 시간표가 되었습니다.
[3] 고난은 기도로 인도하는 은혜입니다.
☞ 우리에게 고난이 왔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정당히 서야할 시간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고난은 우리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며 기도할 수 있도록 인도하는 은혜입니다.
[4] 우리 교회가 함께 기도할 제목이 있습니다.
① 교회 건축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파괴된 예루살렘을 보고 안타까워하던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성전을 쌓아올리면서 철저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로 인도받기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② 목사님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세계 복음화를 위해서 많은 어려움을 무릎쓰고 목사님께서 지금까지 사역해 오셨습니다. 이 시점에서 목사님의 건강이 회복되는 것은 중대한 일입니다.
③ 우리 개인과 가정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자꾸만 편안한 생활을 하고 싶어지려는 우리 자신을 이기고 기도로 무장해야 되겠습니다.
▣ 하나님을 바라볼 때 새 힘을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온 성도가 함께 기도할 때,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의 역사를 체험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 언약 잡은 기도 ▣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삶을 철저히 인도하셔서 영광 받으시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세상의 욕망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지켜주시고, 모든 문제와 사건을 맞서 능히 성령의 인도로 이겨나갈 수 있도록 하루 하루 참 주인 되신 하나님께 기도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번호 | 제목 | 본문 | 설교일 | 첨부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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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4 | 전환점을 이룬 안디옥 선교 | 행11:19-30 | 2025-04-2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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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1 | 날마다 영적싸움에 승리하라 | 삿7:1-8 | 2025-04-06 | |
1480 | 이 시대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해답 | 삿4:1-10 | 2025-03-30 | |
1479 | 하나님이 쓰시는 기준 | 삿3:12-23 | 2025-03-23 | |
1478 |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 삿3:7-11 | 2025-03-16 | |
1477 |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 삿2:6-10 | 2025-03-0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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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5 |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 단12:1-4 | 2025-02-2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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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1 |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 단8:15-27 | 2025-01-2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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