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완전한 해방(1)
2004-05-07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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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마 5:21) 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마 5: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마 5:23)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이 있는줄 생각나거든
(마 5: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마 5:25) 너를 송사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송사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주고 재판관이 관예에게 내어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마 5:26)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오늘 본문 말씀에 제가 이렇게 메시지를, 이 마태복음 서를 특별히 5장을 말씀하면서 느끼는 것은 그 신학적인 배경으로도 그렇고 할말이 참 많아요. 그런데 그것을 한시간에 뭔가 이걸 한시간도 아니죠. 짧은 시간에 매듭을 지어 나갈려니까 이 잘 안될 뿐 아니고 참 어려워요. 그래서 자연적으로 나도 모르게 시리즈로 '1, 2, 3' 나가다가 뭐 사무실에서 들어보니까, '오늘은 3이라 2라!' 그러고 뭐 우리 카세트 테이프를 찾는 사람들은, '3을 주세요, 2를 주세요!' 이러면서 그런다 그래요.

그래서 오늘 또 이렇게 말씀을 들고 보면서 마태복음 이 5장의 '사상수훈!' 가장 귀중한 삶을 건드리는 겁니다. 삶을 이 삶에 대한 이야기를 쭉 하실 때에 자칫 우리가 받아드리면 뭐로 빠지느냐 하면, 율법으로 빠져요. 이 설명이 율법으로 빠져서, 이 설명이 하나하나 이렇게 시간을 두고 설명을 하자 그러면 또 뭔가 복음을 설명해 주어야 되고, 또 율법으로 이어지는 이 부분을 설명해야 되는데, 그것이 안 되기 때문에 개괄적으로 여러분들이 좀 마음을 담고 이해를 하셔야 될 것은, 오늘 여기에 나온 메시지는 뭐냐하면, 믿는 사람들은 이미 해방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해방을 받아도 그냥 해방이 아니고 완전한 해방을 이미 다 받았어요. 그래서 믿는 사람들은 이미 우리의 실존을, 존재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것이 성경에서 뭐라 그랬습니까? '너희는 소금이요! 너희는' 뭐라 그랬습니까? '빛이다!' 그랬죠. 그런데 이 소금과 빛으로 사는 삶은 살면서 이 땅에서 굉장한 영향을 발휘하게 되어 있습니다. 영향을 주도록 되어있어요. 그런데 그 영향을 주도록 되어 있는데, 그 영향은 내가 그 영향이 나가도록 만들어 내고 발버둥치면서 그렇게 뭔가 수단으로 내어놓는 것이 아니고, 그 영향은 되어지는 겁니다. 여러분 소금이 들어가는 곳마다 거기에는 짠맛이 나오게 되고, 부패가 방지되고, 되어지는 것이지, 소금이 뭔가 발버둥치면서 그렇게 어떤 영향을 주기 위해서 노력하고 애쓴다! 그런 배경이 아니거든요. 이미 여러분들에게 '너희는 소금이요. 너희는 빛이요!' 그러면 가는 곳마다 뭐가 되어야 됩니까? '빛이 비추어지고, 소금이 소금의 역할을 하도록 되어지는 것이다!' 하는 것이 성경에 나타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오늘 특별히 그 되어지는 속에서 제일 복잡한 것이 뭐냐하면, 사회성이다! 말하자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인간과 인간 문제, 이런 문제를 구체적으로 취급을 하는 문제에서 제일 먼저 뭐가 나오느냐 하면, '살인하지 말라!' 이게 나와요. 그런데 지금현재 이 마태복음서가 유대인들을 향해서 배경을 두고 말하잖아요. 그런데 인간과 인간 사이에 되어지는 문제, 이 문제가 그냥 겉으로 나오는 문제로 이해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겁니다. 되어지는 문제가 나올 수 있기 위해서는 원천적인 문제, 이것이 바로 통일이 되어야 되고, 이것이 바로 이루어 져야 됩니다.

예를 들어서 여러분 '신앙생활 되어진다!' 그럴 때에 간단하게 내 개인, 내 자신에게 기도응답이 실제로 안 오면, 신앙생활 내가 가는 곳마다 신앙생활은 되어진다기보다도 그것은 어렵고 어려운 일이 됩니다. 기도응답으로 내게 되어지고 내게 일이 이루어 지게되면 내가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역사가 저절로 나를 통해서 나오게 되어있고 그러면 다른 사람이 나를 볼 때에, '저 사람은 참 신기하네 뭔가 있다!' 이게 나와야 되거든요.

그렇게 되면 뭐가 나오느냐? 그것이 바로 뭐라 그러느냐? 전도라 그랬습니다. 전도라 그럴 때에 말 잘 해 가지고 설득해서 뭐 데려온다! 그 말이 아닙니다. 내가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역사가 나오게 되면 다른 사람이 볼 때에, '저 신기하다! 저 사람 뭐가 있다!' 되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 갔을 때에 요셉이 들어가는 곳마다 맡은 것마다 그대로 일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대로 형통하게 되었습니다. 그럴 때에 보디발이 보고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봤다!' 이게 전도라 그랬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전도가 잘못 이해되면 뭔가 내가 하려고 애를 쓰고 그러다 보니까 뭐냐? 잘못하면 외식이 나올 수 있습니다. 이것보다 더 어려운 것이 없죠. 그래서 바리새인들에게 남을 사랑하라 그러니까 막 다른 사람 붙들고 '헤∼' 웃고 그런다고 되는 게 아니거든요. 속으로는 '죽일 놈!' 이러면서 겉으로는 막 웃고 그걸로 되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이 뭐냐하면,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대표적으로 표현되는 것이 여러 가지 많은 말로 표현될 수 있지만, '살인하지 말라!' 는 그 말속에 다 표현이 되더라 구요. 그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배경이 안 될 때에 그게 뭐냐하면, 거기서 모든 것이 다 나오거든요. 대인관계가 다 무너지게 되는 겁니다. '살인하지 말라!' 고 하는 것은, 내가 저 사람의 인격을 무시하고 저 사람의 대해서 내가 미워하고 이렇게 되면 모든 게 대인관계가 다 무너지게 되는 것이죠. 인간관계 다 무너지고 진짜 삶의 관계가 무너지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 문제가 뭐냐하면, '살인하지 말라!' 그래서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예수께서 하신 말씀은 '살인하지 말라!' 겉으로 나오는 것으로 망하는 것이 아니고 "(마 5: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그랬습니다. 문제는 간단합니다. 뭐 살인하지 말고 남에게 잘 대해주고 뭐 이렇게... 그것은 문제가 아니고 근본적으로... 근본적으로 상대방을 향했을 때에 미워하지 않고, 상대방을 향해서 사랑하게 되면 대인관계가 다 이루어지는 겁니다.

여러분 가정에도 마찬가지거든요. '뭐 고부간에 어떻다! 또 부모자식간에 어떻다!' 사랑하게 되면 다 해결되는 것 아닙니까! 다 해결되는데, 이것이 바꾸어서 미워하게 되고 뭐 이상하게 되면 거기서 모든 문제가 생기거든요. 여기에 다른 말이 나오는데, 뭐 우리말이 아니고 '라가라' 하는 말은 이건 뭐 '골이 비었다!' 는 이야기입니다. 이걸 가지고 우리가 흔히 뭐냐하면, 골이 비면 골속에, 원래 이 머릿속에 골이 가득 차야 되는데 이게 비었다! 그러면 뭐가 찹니까? 이걸 가지고 우리는 '밥통이라!' 그러죠. 머릿속에 골이 차야 되는데, 밥으로 가득 차있다! 이겁니다. 이건 뭐 여러 가지 뜻이 있는 것이죠. '바보라!' 이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한 마디로 말해서 똑같은 이야기예요.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이런 말은 똑같은 하나의 그저 같은 말을 여러 모양으로 이렇게 변경을 시켜나가는 그런 언어가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뭐냐하면, 내가 상대방을 그러니까 '무시한다! 미련하게 생각한다!' 또 뭐라 할까, '멸시한다!' 이런 문제까지 다 들어가는 가는 겁니다. 그런데 정말로 내가 상대방을 사랑하고, 상대방을 존중하고, 상대방을 귀히 여기게 되는 그런 관계 속에서는 대인 관계가 저절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여기서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그러니 이것이 안 되게 될 때에 모든 문제가 무너지게 돼요.

그래서 그 자칫 우리 성도들에게 뭐가 올 수 있느냐 하면, 자꾸 '율법주의, 율법주의!' 하는 그런 배경이 뭐냐하면, 상대방에 대해서 판단하고 비판하는 것으로 가득 차 있으면, 이것이 저절로 율법주의 적인 삶이 되는 겁니다. 율법이 삶이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나도 모르게 상대방을 판단하고 상대방에 대해서 판단하게 되는 그런 과정에서 '아, 저래서 되느냐!' 멸시가 나오고 이렇게 되면, 그 삶에 있어서 축복이 안 나오고 저주가 나오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 이것이 바로 율법이다! 혹시 여러분들이 뭔가 사람을 만나고 인간을 대하고 그럴 때에 뭐냐하면, 그 사람의 못난 점, 못 된 점, 잘못 된 점이 먼저 눈에 들어오게 된다! 그러면 그것은 여러분 자신이 벌써 '잘못 되었다!' 이겁니다.

그래서 이것은 한 마디로 말해서, 치유의 배경에서는 '이런 사람은 이미 정신병이 심각하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비판하지 말라' 그런 말이 안 있습니까! 마태복음 7장에 나가면 그 말이 나오게 됩니다 만은, 이런 면에서 오늘 중요한 것은, 문제는 그렇게 상대방이 존경 스럽고, 상대방이 사랑스럽고, 상대방이 그렇게 귀하게 보여질 수 있는 배경은 인간 세상에 어떤 법으로도, 어떤 마음으로도, 어떤 것으로도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게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겁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간단하게 말씀했어요. 이 마태복음 5장 1절부터 나오는 것이 8복중에 중심으로 된 것입니다. 마음으로 애통하는 자! 그 다음에 긍휼이 여기는 자! 중심에서부터 이 변화가 오지 아니하면 다음 문제는 나올 수 없다! 그래서 사실상 어떤 문제가 있느냐 하면, 마태복음 5장 전체를 쭉 이해를 해 나가고 설명을 해 나갈 때에 13절 보면 그런 말씀이 있죠. '너희는 세상에 소금이다! 빛이다!' 그렇게 말씀하고 그 다음에 20절 말씀 보면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이 말씀이 그 다음에 나오는 모든 말씀을 다 해석을 합니다.

그 다음에 또 무슨 말씀이 있느냐! 44절에, 5장 44절 말씀에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그러니 '뭘 하지 마라! 어떻게 하라! 어떻게 하라!' 다 말하지만 이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이 말씀이 전체 다 해석을 합니다. 쉽게 말해서 너희 원수를 어떻게 하라 구요? 사랑하면 원수가 됩니까, 안됩니까? 될 수가 없어요. 사랑하면 원수가 될 수가 없는 겁니다. 그러면 사랑하게 되면 여기에 나오는 뭐 여러 가지로 많은 말씀이 있죠. 뭐 '라가라' 한다던가 이런 문제도 나오고, 그 다음에 뭐 송사 하는 자 어떻고, 그 다음에 오리를 가지 않는 사람 10리를 가고, 뭐 오른편 뺨을 때리면 왼편을 돌려대고, 그걸 뭐 여러 가지 설명을 할 것이 없어요. 이걸 자꾸 설명하려고 하다 보면 뭐가 옵니까? 율법적이 되어 버려요.

우리도 모르게 '뭐하지 마라! 뭐하지 마라!' 간단합니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라! 그런데 이 땅에 어떤 법으로도 원수를 사랑하는 법이 있어요? 세상에 없어요. 왜? 옆에 가면 소름이 끼치는데 무슨 사랑을 합니까? 아니 부부간도 이상합니다. 갑자기 미워질 때는, 좋다가도 미워질 때는 이상하게 되거든요. 그런데 그때는 사랑하는 감정이 없어요. 이 세상 살아가다 보면요 인간 마음은 변화 무쌍합니다. 여러분 여기 뭐 이렇게 앉아 있지만 어떻게 변할지도 몰라요. 그러니 사람 변화는 예측이 안됩니다. 그리고 특별히 여자들 변화는 더군다나 말할 것도 없고요. 그것은 뭐, 워낙 그랬으면 역사에 여자의 마음을 뭐, 여자를 뭐라 그랬습니까? '갈대다!' 그랬는데... 그런데 남자는 요즘 보니까 여자들 보다 더해...

왜 제가 이런 말씀을 하느냐? 어떤 사람의 마음도, 어떤 사람도 이게 성경이 지금 여기 말씀하는, 마태복음 5장에서 말씀하시는 이 황금 율을 지켜낼 수가 없어요. 이게 이루어 질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이것도 같다가 대어 놓으면요. 뭐가 나오느냐? 이 땅에 것으로는, 이 땅에 어떤 것으로도, 심지어 율법으로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 5장을 설명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뭘 설명을 하느냐 하면요, 인간의 행위로, 인간의 것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다는 것으로 자인하고, 율법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자인하고, 다시 어디로 돌아와 있느냐?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돌아오게 하는 역사가 5장의 역사다! 그렇게 설명을 합니다. 이 산상수훈에서 뭘 하라하라! 이 문제를 강조할 문제가 아닙니다.

이 사실을 우리가 바로 이해를 하게되면, 그 다음에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내 자신이 변화되고,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되고, 내가 용서를 받았고, 내가 과거 문제가 해결되었고, 내가 지금 현재 응답 받고 나면 무슨 문제가 오느냐? 그래서 예수께서 우리에게 친히 말씀하신 것이 있잖아요. 100 데나리온을 빚졌는데, 평생 갚아도 안 되는데, 주인이 불러 가지고 그 종에게 '100 데나리온을 내가 탕감해 주마!' 그랬단 말이죠. 그러다가 주인이 탕감해 주니까, 너무 기뻐서 돌아오다가 이 주인이 자기한테 50 데나리온 빚을 진 사람을 붙잡고 옥에 끌고 갔더라! 그러니까 다시 붙들고 그 종에게 '내가 너에게 이렇게 했는데 네가 그럴 수 있느냐!' 옥에 가두었다! 악한 종이다! 그런 표현이 성경에 안 나와 있습니까!

무슨 문제냐 하면요. 예수께서 나를 위해서 엄청난... 일평생 갚아도, 아니 두고두고 갚아도 해결될 수 없는 내 인간에 모든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해 버렸습니다. 과거, 현재, 미래의 문제를 해결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우리 힘으로는 상상도 못할 어디로? 구원의 축복을 주셨습니다. 그러면 뭐가 나옵니까? 감사가 나오죠. 감사가 나오잖아요. 그러면 구원받은 내가... 내가 옛날에 구원받지 못했을 때에 고통에 눌리면서 찌들렸던 사람을 보게 될 때에 그때에 어떤 생각이 드느냐? 그 사람이 내게 이상한 일을 하고, 내게 어떤 이상한 일을 할 때에, '저 사람 꼭 나 같다!' 이게 들어와야 될 것 아닙니까! '옛날에 나 같구나! 옛날에 내가 복음 없을 때에 꼭 저 짓 했는데...' 꼭 자기 같다! 이겁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큰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받았기 때문에, 저 사람도 구원받게 되면 해결되겠구나!

여러분 여기에 성경에서 오늘 말씀한 것은, '원수를 사랑한다!' 그럴 때에 구원받고 하나님의 큰사랑과 축복을 지금 내가 누려지지 않고, 누리지 못하면 나올 수 없는 문제입니다. 해결될 수 없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 예수그리스도 그 의로 말미암아 내가 해방을 받아도 조금만 받은 것이 아니고 완벽하게 해결되었습니다. 여러분 지금 그 대인관계에 있어서 나는 점점 시간이 가면서 뭘 느끼느냐 하면, 점점, 점점 시간이 가면서, '세상이 참 복잡하구나! 더 어렵구나! 더 힘들구나!' 하는 것을 많이 느껴요. 그리고 특별히 교회 안에는 하다하다 안된 사람이 교회에 들어오기 때문에 이상한 성격을 가진 분들이 교회 안에 많이 들어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교회 들어와 가지고 '아, 이 교회는 참 좋구나! 좋은 사람들만 모여 있구나!' 이런 것은 참 잘못입니다. 참 좋은 교회일수록 이상한 사람이 많이 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혹시 우리 송현교회 오신 여러분들이 '아, 송현교회 참 좋구나!' 그러다가 혹시 이상한 사람보고도, '좋으니까 저런 사람이 들어왔구나!' 여러분 좋으니까 여러분들 안 오셨습니까! 여러분도 좋으니까 안 오셨습니까! 이게 이해가 되어요. 그러면 뭘 말하느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저 사람이 꼭 내가 옛날에 그리스도 모를 때와 같구나! 이게 이해가 되어버리면 뭐가 나옵니까? 여기에서 참 용서가 나올 수 있습니다. 여기서 긍휼이 나갈 수 있는 겁니다. 여기서 자비가 나갈 수 있습니다.

흔히 그런 이야기를 안 합니까! '아픈 사람이 아픈 사람의 심정을 안다!' 그러는데 아파 보지 못하면 죽었다가 깨어도 아픈 사람의 심정을 모릅니다. 제가 이번에 호흡이 이렇게 좀 곤란해지면서 무슨 느낌이 드느냐 하면, 사람이 호흡이 이 곤란해지니까, 답답하니까, 이 폐쇄공포증이 오면서, 우울증도 여러 가지 아닙니까! 폐쇄 공포증도 일종의 우울증이 됩니다. 이런 것이 들어오더라 구요. 들어올 때에 내가 무슨 생각이 드느냐 하면, 우리 집 사람이 알레르기 철이 되면 목이 조여지니까, 호흡이 가파 가지고 심지어는 벌떡 일어날 정도로, 그렇게 고통을 당했거든요. 그럴 때 내 마음에 먼저 무슨 생각이 드느냐 하면, 내가 그런 증상을 조금 느껴보면서, '지금까지 멀쩡한 정신으로 살아 있다는 것이 기적이구나!' 싶더라 구요. 내가 그런 어떤 답답한 그런 증세를 못 느꼈다 그러면 이 생각이 안 올 겁니다.

여러분들이 이 말을 들을 때에 건강한 사람은 전혀 느낌이 없어요. 그러나 이 말을 들을 때에 좀 아파 본 사람은 대번 고개를 끄덕입니다. '진짜로 맞다!' 그럴 겁니다. 여러분 그 사람들은 이야기할 겁니다. 그때일수록 '예수 그리스도!' 속으로 불러서는 시원하지가 않아요. '주 예수 그리스도!' 답답하면 이게 저절로 튀어나옵니다. 그때는 신앙보다도 어떤 면에서 자기가 죽을 지경이니까, 신앙보다도... 그래서 류 목사님이 어떤 소리를 했느냐 하면, 아파 가지고 막 고통스러워서 주 예수 그리스도 하고 막 기도하는 것은, '그건 신음소리지 기도가 아니다!' 그러더라 구요.

하나님께 우리는 긍휼을 입어서 사는 존재이지, 우리 믿음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으로 말하면, 내가 믿음이 있기 때문에 산다는 그런 이야기가 아닙니다. 나는 아파 보면서 뭘 느끼느냐 하면, '아, 내가 박 목사 믿음이 있구나! 믿음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 사랑 받는구나!' 아닙니다. 무조건 적인 은혜입니다. 무조건 적인 긍휼입니다. 여러분 하는 일, 하는 짓 보면요, 은혜 받을 대상이 못 돼요. 뭐 교회 나오면서 꾸미고 나오니까 그럴듯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속 열어놓고 보면요 옆에 가면 냄새도 맡기 싫을 사람들이 다 모여있는 겁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겁니다. 이것이 은혜라는 것을 깨닫고 감사가 오기 시작하면 나를 알게 되고 비로소 상대방이 나에게 어떤 일을 하더라도 뭐가 보이느냐? '저게 꼭 옛날에 나 같네' 한번 받아합시다. "저것이 꼭 옛날에 나 같구나!" 해결 다 되는 겁니다. 이게! 여기서 마태복음 5장에 여러 가지 문제 해결이 다 나오게 됩니다. 이 문제 설명이 한마디로 뭐냐? 원수를 사랑하는 그 배경입니다. 그리고 '너희는 소금이다! 빛이다!' 한마디로! 그리고 '서기관과 바리새인 보다 더 낫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그 말이에요. 전부 다른 어떤 것으로도 도저히 해결될 수 없다!

그 다음에 이제는 여러분과 제가 전도자입니다. 그러기에 전도자로서 우리가 이제는 좀 마음을 넓혀야 되겠어요. 그래서 그런 이야기를 쭉 지금까지 많이 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뭐라고 했느냐 전문화, 또 세계화, 복음화! 그랬습니다. '전문화, 세계화, 복음화!' 나는 그 신앙생활하면서 뭘 느끼느냐 하면, 참 하나님께서 이렇게 내게, 우리에게 축복해 주셨다! 할 때마다 감사함을 드립니다 만은, 그러면서 느끼는 것은 내가 그렇게 복을 받을 수 있는 어떤 준비가 되어 있는데서 받는 게 아닙니다. 은혜로 받는 것이죠.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복을 주실 때에 뭘 보고 복을 주셨느냐? 다른 게 아니더라 구요. 딱 한가지뿐입니다. '내가 전문적으로 뭘 잘하기 때문에 복을 받았다!' 그 말도 아닙니다. 그러면 세계화! 그럴 때에 세계를 전부다 품는 어떤 너그러운 것, 그것가지고 복을 받는다! 그 말도 아니더라 구요.

그러면 뭐냐? 복음화라는 것이 바로 되어야 됩니다. 이 복음화라는 것이 이게 어떤 것이냐 하면, 나는 복음화! 그럴 때에 예수 잘 믿는다! 기도 많이 한다! 그런 배경보다도 한마디로 여러분 설명을 드린다면 한번 받아합시다. "삶에 복음이 뿌리를 내려야 한다!" 이게 복음화입니다. 그리고 자칫 이 복음화만 강조가 될 때에 뭐가 오느냐 하면, 외골수 되어 버립니다. 특별히 그 우리 종교인들이 저지를 수 있는 이런 문제 아닙니까? 외골수 돼요. 이것이 외골수가 되는 것도 그것이지만, 그 배경에는 여러 가지 심리적인 배경이 설명이 조금 나와야 됩니다 만은, 시간이 없어서 다 못하겠고 그 설명을 좀 든다 그러면, 이것도 정신적인 배경도 좀 나옵니다.

외골시 된다! 그럴 때에, 그런데 이것이 열심히 예수를 믿고 열심히 신앙 생활하는 사람들에게서 많이 나오는데, 한국교회가 열심히 하면서도 망하는 배경도 됩니다. 외골시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그런 설명을 내가 못 하겠고요, 뭘 말씀하고 싶으냐 하면, 전문화! 뭘 내가 막 잘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다음에 세계화! 그 다음에 복음화! 그런데 여러분 세계 적으로, 그 다음에 성경 역사에 복을 받은 사람, 하나님이 들어서 쓰신 일꾼들은 우리가 잘 아는 데로 이스라엘에 모세 같은 경우, 그 다음에 우리 요셉 같은 경우, 그 다음에 뭐 사무엘 같은 경우를, 들어서 볼 수 안 있습니까!

모세 같은 경우 여러분 그 왕궁에 들어가서 최고의 학문을 비롯해서, 무예를 비롯해서, 못하는 것이 없도록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학문을 통해서, 그 교육을 통해서 축복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 중요한 것이 모세가 어릴 때에 누구 손에 컸습니까? 자기의 친어머니에게 유모로, 그러니까 왕궁에 들어갔지만 친어머니인 유모가 모세를 길렀습니다. 여러분 모세를 키울 때에 유모가, 자기 어머니가 그냥 키웠겠어요? 자기 민족에 대해서 깊이 뿌리를 심었습니다. 그 다음에 여호와의 역사에 대해서, 어릴 때부터 젖을 먹이면서 한을 가지고, 이걸 한이라 그러면 좀 이상한데, 믿음으로 키웠습니다. 중요합니다. 요셉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무슨 이야기를 드리고 싶으냐 하면요, 오늘 기도할 때에 '예수 그리스도도...'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만...' 하나님의 방향을 딱 맞춘다! 그럴 때에 여러분 지금 어떤 사람이 뭘 하던지 하나님의 방향만 딱 맞추면 됩니다. 그런데 이 방향 맞춘다는 사실이 말은 쉽지만 잘 안 되어요. 힘들어요. 저는 어릴 때에 어머니를 통해서 나는 지독한 종교 교육을 받았습니다. 종교 교육이라고 그러면 뭐 종교교육이 되겠고, 우리 기독교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 교육 속에서 한가지 뭐냐하면, 지금도 나도 모르게 몸에 벤 것이 어느 자리에 딱 가면, 앉든지, 서든지, 어디 가든지 눈부터 먼저 감습니다. 일단 기도합니다. 자동차에 앉아도 기도합니다. 어디 집에 가서 앉아도 기도합니다.

그런데 기도를 안 하면 불안해 져요. 불안한 것 보다고 뭔가 다른 게 시작이 안됩니다. 바쁘면 잠시 눈을 잠깐이라도 감았다가 떠야 일이 진행이 됩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이게 내게 심어진 겁니다. 무슨 이야기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시고, 무슨 문제가 딱 생겼다. 하나님이 지금 이걸 인도하시고 지금 나를 이끌어 가신다.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역사가 어릴 때부터 딱 심어졌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많은 지식을 배웠다! 많은 일들을 감당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여러분 흔히 뭐냐? '내게 사상이 되게 하옵시고, 내게 뭐가 되게 하옵소서!' 그게 사상이 되게 하옵소서가 아니고, 벌써 그것이 내 안에 뿌리를 딱 내려놓는 이걸 가지고 '믿음의 뿌리라!' 그럽니다. 뿌리를 내려놓으면 어떤 사건이 딱 닥치면 '아, 하나님이 하시는구나!' 어떤 일이 딱 닥치면, '이렇게 되는 구나!' 뭐가 됩니까? 자기도 모르게 판단과 결정, 모든 것이 이 방향으로, 이 역사로 이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되어진 사람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셨더라! 이게 성령의 역사입니다.

간단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과 방향 맞춰라!' 뭐 방향은... 실컷 다른 짓 해놓고 '주여, 이 방향이 맞습니까!' 이런 게 아닙니다. 뭔가 뿌리를 딱 내려놓아야 돼요. 그래서 이 뿌리가 흔들려지지 안도록 하기 위해서 교회에 나와서 여러분 메시지를 매주 들을 때마다, 간단합니다. 혹시 여러분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딱 듣게 되면, 자기도 모르게 한 주간 기도제목이 딱 생겨졌다! 여러분 이 사람들은 어느 정도 뿌리가 내려져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말씀 딱 들을 때에 무슨 말을 했는지, 무슨 소리를 했는지, 뭔가 이 제목이 안 잡혀지게되면 한 주간 아무리 뭐 '방향 맞춘다!' 입으로 고함을 질러도 안됩니다. 돌아가지도 않게 되어 있어요. 여러분 뭐 '기도응답!' 제목이 잡혀지지도 안 했는데 무슨 기도응답이 나옵니까! 오늘 여러분 마음속에 꼭 기억하셔야 됩니다. 예배 시간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나도 모르게 딱 기도제목이 잡혀 있습니다. '아, 이것 기도해야 되겠구나! 아 이것이구나!' 그것도 뭐 막 잡기 위해서 연구해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딱 저절로 됩니다.

그 다음에 이렇게 되면, 그때부터 그 다음날 월요일부터 자기도 모르게 그 기도가 나가게 됩니다. 여러분 문제나 사건이 생기면, 자기도 모르게 그 기도가 나가는 그 방향을 따라서 결정이 되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생각도, 사상도, 결정이 되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때부터 뭘 깨닫게 되느냐? 하나님이 여러분과 저를 완벽하게 인도하신다는 사실이 이해가 되면서 해방도, 뭐 완전한 해방을 제가 말씀하는데, 이것이 되어지는 만큼 완전히 해방됩니다. 사람의 감정과 느낌이 얼마나 복잡합니까!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 속에 우리가 세워지게 되는 그런 순간, 순간 이루어지는 것! '전도를 잘한다! 못한다!' 이런 문제가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이것이 되어지게 될 때에, 하나님이 일을 이루시고 하나님이 역사 하시는 겁니다.

그러면서 또 한가지는 뭐냐하면요, 우리 성도들이 특별히 그 신앙 생활하다 보면 너무 기도만 하고, 그 다음에 너무 성경만 보고 이렇게 하다보면, 세상 사람들 속에 너무 섞이지를 못해요. 아는 게 그것뿐이니까! 그래서 좀 여러분 아실 것은 우리가 전도하는 그런 어떤 사실 속에서 좀 들어가게 될 때에, 뭔가 현재의 내가 놓여진 상황과 일들에 대해서 부단히 현실을, 현재를 파악하고 듣고, 깨닫고 하는 이런 실질적인 좀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아마 우리 오늘 그 한 주간 살면서... 남자들은 너무 또 이게 반대가 되어 있어요. 신문에 매어 달리는 수가 많아요. 남자들은 그 대신에 좀 열심 있는 성도들은, 여 성도들은 남자들이 신문 보는 게 그렇게 미워요. 눈만 떴다 그러면 신문 들고 앉았거든요. 이것을 여러분 잘 생각하셔야 됩니다. 기도하면서 믿음의 뿌리를 내려놓고, 그 다음에 여러분 이 땅에 돌아가는 현실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때에 그 이야기가 무엇인가?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그 요즘 그 정치 속에서 이념 논쟁이 일어나고, '색깔 논쟁이다!' 하면서 참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재미있는 그런 반응들을 많이 봐요. 목사님들 모여 가지고도 그렇고, 또 이런 어떤 평신도들 속에서도 보면서 뭘 느끼느냐 하면, 색깔논쟁을 하는데 반응을 따라서 반응이 다양하게 나와요. '야, 저렇게 세대에 따라서 젊은 세대하고 나이든 세대하고, 그 다음에 조금 더 노인 층하고 세대에 따라서 반응이 다르구나!' 젊은 사람들 세대는 색깔논쟁에서 별로 그렇게 이상하지는 않아요. 차라리 어떤 면에서 '좌경파다!' 그러면 오히려 좋아하는 것이죠. 나이가 들면 들수록 보수적인데, 여러분 보수세력이, '대구가 보수세력이다!' 그러는데, 아마 여러분들이 이게 잘 이해가 안 되면, 사회적인 이런 것이 잘 이해가 안 되면, 이런 뭔가 통용되는 언어조차도 잘 이해가 안 되죠.

그런데 문제는 그런 것으로 이해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고, 거기에 뭐가? 복음의 뿌리가 내려져 있어야 정확한 판단이 나올 수 있습니다. 정확한 이해가 나올 수 있어요. 여기에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다른 이웃이나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내가 아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런 어떤 이야기나 그런 사건 속에서 뿌리를 내릴 만큼, 복음의 뿌리를 내리는 만큼 그것이 전부 뭐냐? 전도화!

이런 놀라운 역사들이 나도 모르게 메시지를 통해서 나갈 수 있는 겁니다. 이런 의미에서 여러분과 제가 오늘 복음의 뿌리를 내리게 되면 받아합시다. "과거는 모두 메시지다!" 좋으면 좋은 만큼, 나쁘면 나쁜 만큼, 어려웠던 것은 어려운 것으로, 고통은 고통으로, 심지어 병은 병으로, 내 지난 과거는 전부 복음의 뿌리가 내려지는 만큼 뭐가 됩니까? 메시지화 되어서 나가게 됩니다. 이게 전부 사람 살리는 역사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전도한다. 전도한다. 이런 배경이 아닙니다. 내 자신이 완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해방 받고 확실하게 뿌리를 내리게 되고 이 바탕 속에서 조금만 하나님 앞에 기도 응답 받는 현실을 갖게 되면 여러분과 제가 가는 곳에 엄청난 축복과 은혜가 완벽한 해방정도가 아니고 이것은 날아다니고 싶은 아니 나는 지금 날아다니고 있습니다 할 정도로 이런 해방과 기쁨과 자유와 충만한 역사 속에 서게되어 있습니다. 이 축복으로 여러분 얼굴을 바꾸어 놓고 여러분 삶을 바꾸어 놓고 여러분 분위기와 환경을 바꾸어 놓습니다.

나는 그 지난번에 우리 그 주일 저녁입니까, 성가대 색깔... 그런 분들이 이제 앉아서, 나는 여기서 앉아서 이렇게 보면서, 옛날에 제가 뭘 느꼈느냐 하면, 나일루이에 갔을 때에 3,000명이 그런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상상을 해 보세요. 완전히 흑암 천지더라 구요. 표정도 잘 볼 수 없고, 오히려 뭐랄까 좀 그런 생각이 들더라 구요. 그러면서 참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제게 어쨌든, 색깔이 노랗든 간에 '이 은혜 주신 것 감사하구나!' 그 다음에 여러분 아실 것은 나도 모르게 복음을 통해서, 얼굴 표정이 어떻냐에 다라서 분위기와 환경과 심지어는 마음까지 달라져버리더라 구요. 그래서 아마 우리 교회 들어올 때에 새 신자들이 어떤 심정을 느낄지 모르겠습니다 만은, 그런데 별로 그렇게 희망적인 그런 어떤 이야기는 안 하더라 구요.

아마 그 배경에 있어서 '뭐가 어떻다, 어떻다!' 이전에 나는 한번 다시 뭘 말씀하고 싶으냐 하면, 복음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정말로 우리에게 자유가 만끽될 수 있다, 그러면 가정생활도 말할 것도 없지만 교회생활이라는 것도 말할 것도 없죠. 그러면 여기서 모든 나오는 부부생활이나, 그 다음에 이웃문제나, 사회생활이나 이런 모든 문제는 하나, 하나가 전부 완벽한 응답으로 역사 되고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요. 하나님이 여러분과 저를 그렇게 만들어 가시기로 작정해 놓았습니다. 하나님이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이 일에, 그래서 이 일로 통해서 세계복음화에 여러분과 제가 쓰임 받도록 하나님이 약속하셨습니다. 이 축복과 역사가 한 주간도 체험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우리는 이미 완전히 해방받은 빛과 소금입니다.

☞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완전히 해방을 받았고, 존재 자체가 완전히 바뀌어졌습니다. 즉, 우리는 빛과 소금이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게 되면, 이 땅에 큰 영향을 주게 됩니다. 그런데, 그 영향은 내가 노력해서 이루어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 우리가 빛과 소금으로 세상에서 살아가는 중에 가장 복잡한 것이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입니다. 이러한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는, 단순히 겉으로만 다루어져서는 안됩니다. 이 문제도, 원천적인 부분부터 해결되어져야 합니다.


[2] 은혜 위에서 축복된 인간 관계가 이루어집니다.

☞ 원수를 사랑하면 그는 더 이상 원수가 될 수 없습니다. 내가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을 미워하지 않고 사랑하게 되면, 인간 관계는 다 해결되어집니다. 마음 중심으로부터 상대방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상태에서는 대인 관계가 저절로 화목하게 이루어지고, 모든 일들이 축복되게 이루어집니다.

☞ 그러나, 이 땅에서는 원수를 사랑할만한 방법이 없으며, 다른 사람을 미워하지 않고 사랑할만한 방법이 없습니다. 사람으로서는 이러한 계명을 지킬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돌아오게 됩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의 은혜를 받고 나면, 감사가 나오게 됩니다. 그 때 구원받은 내가, 아직도 찌들려 있는 사람을 보게 되면 과거의 나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며, 그 사람도 구원받게 되면 해결되리라는 확신이 오게 됩니다. 즉, 지금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말미암아 은혜가 충만하면, 다른 사람에 대해서 진정한 용서와 긍휼과 자비와 사랑이 나갈 수 있습니다.


[3] 먼저 믿음의 뿌리가 내려져야 합니다.

☞ 하나님께서 들어 쓰신 사람인 모세는, 왕궁에서 배운 학문을 통해서 축복을 받은 것이 아니라, 어릴 때 친어머니의 손에서 믿음으로 양육받았기 때문입니다.

☞ 우리도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방향을 맞추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방향을 맞추는 것은 그렇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이것은 내 속에 믿음의 뿌리가 내려질 때 가능합니다. 이러한 믿음의 뿌리를 가지고 사건 속에서 하나님의 언약을 붙잡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방향에 맞추어 믿음으로 결단하는 과정을 통해 살아가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십니다.

☞ 한 가지 더 기억해야 할 일은, 기도와 말씀만으로는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세상을 제대로 알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현재의 내가 놓여진 상황에 대해서 파악하려는 실질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 때, 복음의 뿌리가 내려져 있어야 그러한 상황들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게 될 뿐만 아니라, 전도의 통로로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 언약 잡은 기도 ▣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완전히 해방하시고 빛과 소금으로 삼으심을 감사드립니다. 날마다 구원의 은혜로 충만하게 하시고, 내 속에 믿음의 뿌리가 깊이 내려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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