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예배
2004-05-07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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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5:23)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이 있는줄 생각나거든
(마 5: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마 5:25) 너를 송사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송사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주고 재판관이 관예에게 내어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마 5:26)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오늘 제목을 "진정한 예배" 라고 잡았습니다. 특별히 23절에 보면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이 있는줄 생각나거든 (마 5: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그랬습니다. 이 산상수훈이 5장, 6장, 7장에 쭉 이어지고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이 산상수훈이 바리새인들의 시대가 끝나고, 말하자면 율법시대가 끝나고 복음의 시대가 왔다! 복음의 시대가 시작이 된다고 하는 근원이 되기도 하고, 그 다음에 이 복음의 시대에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하는 삶에 대한 지침이다! 그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산상수훈은 어떤 면에서 상세하게 삶에 관련된 기록들이 계속해서 많이 취급이 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중에서 여기 여러 가지 많은 말씀을 드릴 수 있습니다 만은, 오늘 이 산상수훈에서 삶에 성공하고 승리할 수 있는 축복의 문이 무엇이냐? 축복의 역사가 무엇이냐? 예배다! 그렇게 한마디로 표현을 할 수가 있습니다. 산상수훈에 보면 한 3가지 정도로 '너희는 먼저 뭐해라! 먼저 뭐해라!' 하는 그 말씀이 나옵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마 5:23)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사과해라! 이렇게 말씀이 나오고, 그 다음 6장 33절에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다 주신다! 그러니까 먼저 하게 되면 그 다음에 나오는 문제를 좀 그 설명을 하면서 먼저, 먼저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 다음에 마태복음 7장 1절에서 5절에 보면, 먼저 내 눈에 뭘 보라 그랬습니까? 들보부터 먼저 봐라! 어떤 그 판단의 기준, 평가의 기준, 이런 것들이 먼저 되면 그 다음에 옳은 판단이 나오면 성공하고 또 축복 받을 수밖에 없는 그런 역사들이 나올 것을 말씀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먼저 여기에 중요한 것은 예배라 그럴 때에 우리가 예배를 드린다 그러면 교회 나와서 예배드리는 것만 드린다 생각하고 있고, 또 어떤 면에서 이 예배가 또 중요하죠. 주일 날 11시에 예배드린다! 12시에 예배드린다! 이럴 때에 이 예배가 사실은 모든 예배 중에 예배가 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원래 예배의 그 흐름을 쭉 우리가 이해가 되어야 될 것은, 예배라는 것이 어디서 나왔느냐 하면, 번제를 드리는 데서 예배가 나옵니다. 여러분 번제라 그러면 내 죄를 대신해서 짐승을 끌고 옵니다. 그러면 제사장이 그 짐승의 머리에다가 내가 지은 죄를 다 이관을 시키고 안수를 하죠. 그리고서 그 짐승을 내 대신을 해서 피를 흘립니다. 죽입니다. 그리고서는 내장을 다 꺼내고, 각을 다 뜨고, 그걸 불태워서 완전... 그래서 하나님이 이것을 향기라! 흠향 하셨다. 이것이 번제이고 바로 번제 의식이 오늘 뭐로? 예배의식으로 예배로 이어집니다.
그러면 예배에 중요한 내용이 뭐냐 하면, 여러분들이 진짜 예배가 될 수 있는 배경은, 쉽게 말해서 여러분 지금 들어올 때에 원래 이 예배를 잘 드리기 위해서는 뭐를 끌고 들어와야 돼요? 양을 끌고 들어와야 됩니다. 그러면 예배를 드리기 전에 각 사람이 양을 끌고 와서 양을 전부 다 목을 따고 잡아야 돼요. 그러고서는 이제 각을 뜨고 불태워 드려야 되는 것이 예배입니다. 예배! 그러면 중요한 것이 양을 대신해서, 오늘 여러분과 제게 이곳에 감히 올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입니다. 여러분들이 그리스도 없이 예배라는 것은 나올 수 없어요.
그러면 여러분 감히 번제를 드린다! 그럴 때에, 예배를 드릴 때에, 짐승을 끌고 와서 예배를 드린다! 그럴 때에 중요한 것은 그 예배의 대상이 누구냐? 누구입니까? 하나님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그래서 내 모든 죄를 대신해서 짐승을 죽이고, 그 짐승의 피를 흘리고, 그 다음에 짐승을 완전히 태워서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립니다. 이것이 번제고, 그 다음에 똑같이 그 짐승을 대신해서 말하자면 양과 소를 매번 드려야 되지만, 단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과 저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고, 여러분과 저에게 바로 그리스도로 십자가에서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하시고 다 이루었다! 그리고는 여러분과 제가 감히 죄 있는 몸으로, 죄인으로 하나님 앞에 나갈 수가 없는데, 이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왔습니다. 이 자리에 나온 것은 여러분 엄청난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에 그 결과로 이 자리에 나와 있는 겁니다.
그러면 예배드릴 수 있는 사람은 예수 안 믿는 사람, 그러니까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예수의 피가 흐르는 이런 사람들만이 이 자리에 와서 예배를 드릴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자녀들이 모이는 곳이 바로 예배의 장소이고 예배가 되죠. 이런 의미에서 지난 그 핵심에도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만은, 류 목사님이 그런 이야기를 안 했습니까! 율법에서 해방을 받지 못한 자는 절대로 예배가 될 수 없어요. 그러니 오늘 쉽게 말해서 여러분들이 말씀이 안 들린다! 하나님을 실제로 만나는 일이 안 된다! 예배가 잘 안 된다! 그 배경이 뭐냐하면 아직도 어디서 못 나왔어요? 율법에서 실질적으로 해방을 받지 못했습니다. 말은 그렇게 하고 있지만, '내가 해방 받았다!' 그렇게 하고 있지만 아직도 내 생각과 의식이 아직도 뭔가 율법 속에서 계속해서 헤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성경에 보면 로마서 8장 2절에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은 무엇입니까? 율법은 정죄! 죄와 사망의 법이라는 것은 원래 이것이 뭐냐하면, 사단의 역사 속에 있는 모든 사망의 법입니다. 이게 이 사실 아래 있는 자들을 말합니다. 그러면 여러분 율법이 뭐냐하면, 율법은 죄와 또 사망의 역사를 확인시켜 주는 정죄 하는 법이 바로 율법입니다. 그래서 이 율법 가지고는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율법 외에 뭐라 그랬어요? 한 의가 나타났는데, 곧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라!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해결하고, 말하자면 율법의 모든 문제를 완성시킬 수 있는 오직 한 분이 누구냐?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왜, 그러면 지금도 율법아래 있으면 왜 안 되느냐? 법 아래 있고 그러니까, 정죄 아래 있을 때는 그 배경이 사단의 배경입니다. 그 배경이 아직 창세기 3장의 배경이기 때문에 거기서 나오지 못하면 예배라는 자체가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여기에 여러분 나오셨을 때에 다른 거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내 인생 전체에 모든 문제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해결 받지 못할 것이 없다는 확신과 확증이 있는 만큼 예배라는, 예배가 사실적으로 여러분 생활 속에 말씀이 성취되는 체험들이 나오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예배가 이렇게 귀중한 예배고, 이 예배를 통해서 여러분과 제가 모든 인생의 문제가 해결되는 축복된 길이라는 사실을 오늘 말씀을 해 주시는데, 이 예배를 방해하는 것이 있다! 예배가 방해되는 것이 있다! 그 것이 오늘 본문에 내용입니다.
무슨 말이냐? 너희는 예배드리기 전에 먼저 사람과 사람사이, 인간과 인간사이 그리고 뭔가 갈등이 뭔가 있거든, 그런 문제가 있거든, 예배를 드리기 전에 그것부터 먼저 해결하고 예배를 드려라! 그럴 때에 이것이 해결한다! 갈등을 해결한다! 인간관계를 해결한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그런 문제보다도 여기에 강조하는 것은 예배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겁니다. 그 모든 것보다도 중요하다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배가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화목해야 되고, 예배 때문에, 여러분 예배가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예배를 바로 드리기 위해서 이웃 간에 걸리는 문제 해결하고, 예배가 너무 중요합니다! 예배가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혹시 장로님들과 혹시 우리 평신도들, 집사님들과 혹시 누구와 관계에 있어서 걸리는 문제가 있거든, 예배가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예배가 바로 되어져야 축복이 되기 때문에 그것부터 먼저 해결해라! 그것이 오늘 본문에 중요한 내용이 되겠죠.
그래서 예배의 걸림돌을 제거하는 것이 바로 오늘 중요한 내용의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이 사는 동안에 아무리 많은 투자를 하고, 아무리 생을 걸고 생명을 걸고 투자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못하면 다 헛일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다! 첫 번 은혜의 길이 뭡니까? 예배입니다. 여러분 이 자리에 나왔다!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갈지니라' 누구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게 다 여기서 해결되는 문제요. 여기서 모든 문제가 다 나오는 문제죠. 그래서 인생에 승리가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망할 수밖에 없고,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인생의 문제입니다.
여러분 성경에 보면 창조 이후에 '예배라!' 그럴 때에,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다!' 이럴 때에, 또 예배 그러면 그 상세한 내용이 쉽게 우리가 적용되어져야 되는데, 이것이 뭐냐하면 하나님을 만난다고 하는 것이 예배의 중요한 대시죠. 하나님을 만나서 뭐하느냐?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 바로 이런 예배입니다. 그래서 원래 소요리 문답에서 뭐라 그랬느냐? 인생의 참된 목적이 뭐냐?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다!'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예배가 깨어졌을 때에, 하나님과 만나는 사실이 깨어졌을 때에, 이것이 아담하와의 인간의 불행의 시초가 되는 것이고, 그 다음에 여러분들이 잘 안다시피 하나님과의 만남, 예배가 성공한 아벨은 하나님 앞에 복을 받았고, 예배가 실패된 가인은 저주를 받았다는 것이 성경의 내용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잘 알다시피 노아는 단 한가지입니다. 예배가 성공되어졌을 때에 다른 모든 사람은 다 홍수에 떠내려가고 물에 죽었지 만은, 오직 예배에 성공한 노아와 그 가족은 살아남았다! 이것이 성경이 내용이에요.
여러분이 지금 이 시간에 잘 알아야 될 것이요 주일날 왜 주일을 성수해야 되고, 주일을 예배드려야 되고, 주일을 예배드리기 위해서 우리가 모든 정성을, 한 주간에 모든 정성을 모아야 되느냐? 여러분 여기에 눈이 열려야 합니다. 예배에 성공하느냐? 그 다음에 성공은 열려지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은혜를 바라느냐? 축복이 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없이 아무리 투자하고, 아무리 생을 걸고 노력해도 실패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 어떤 사람은 놀면서 살아도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있어요. 어떤 사람은 지독히 고생을 하고 애를 써도 고생만 죽도록 하고 불행한 사람이 있습니다.
간단합니다. 은혜 받아야됩니다. 은혜 없이 산다는 것이 이렇게 안 된다는 내용을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배가 잘 안 된다!' 이 말은 뭐냐?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 안 된다! 그 말입니다. 하나님을 잘 못 만난다 그런 이야기거든요. 여러분이 임마누엘, 임마누엘! 그러는데 임마누엘이 바로 예배가 된다는 것에 가장 중심적인 그런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다! 하나님이 늘 나와 같이 계시다! 하나님 만난다! 하나님과 함께 산다! 이것이 예배에 가장 귀중한 초점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 말씀이 바로 여러분 예배드릴 때에,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어떤 것이냐? 하나님이 얼굴이 있느냐? 지금 여러분 아무리 둘러봐도 하나님 보입니까? 위로 쳐다보니 전구밖에 안 보이는데, 옆에 쳐다보니 아무 게 집사 얼굴밖에 안 보이는데, 앞으로 보니까 목사님 밖에 안 보이는데... 목사님이 하나님이시냐? 그 말이 아닙니다. 왜, 예배를 바로 드리기 위해서 목사님과의 관계도 바로 되어야 되느냐? 그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목사님을 통해서 뭐가 나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지고, 하나님의 말씀이 깨달아지고,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가 되어져야 되고, 그럴 때에 그 말씀이 여러분 생활과 삶에 성취가 됩니다.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그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아는 것으로 끝나지 말고 이 말씀을 들었을 때에 어디에? 가슴에 와 져야 돼요. 마음에 와져야 돼요. 그 다음에 뭐 마음에 와 졌다! 삶으로 이어져야 됩니다. 이것이 예배에 중요한 문제죠.
그래서 제가 좀 생각을 해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은혜주시는 데로 회복되는 데로 오후예배든지 안 그러면 이 예배시간에 흑판을 좀 걸었으면 안 좋겠나! 맨 날 듣고, 혼자 가만히 듣고 지나가니 이게 잘 안 되어요. 딱 가슴에 와서 마음에 남고, 삶이 되어야 말씀이 생활에 성취가 되는 것이 보여지게 됩니다. 그냥 듣고 깨달았다! 고개 끄덕여서 깨달았다! 머릿속에 깨달았다는 정도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이 여러분 삶에 보여져야 돼요. 이것이 되어져야 됩니다.
그래서 이번에 총신 학생들 앞에, 그 MT에 메시지 전할 때에 무슨 이야기를 하시느냐 하면, 말씀 속에서 내가 참 그 사람 약간 이단성이 있다고 그래가지고 좀 주의는 했지만, 부산에 그 백파에 있습니다. 주일학교 만 명 모인다는 그 교회 목사님, 놀란 것이 하나 있다고 하더라 구요. 뭐가 놀랐느냐? 주일날 딱 갔는데 출애굽기 20장 1절에서 5절을 읽더랍니다. 그 다음에 주일날 저녁에 갔는데, 또 출애굽기 20장 1절에서 5절을 읽더래요, 더 놀란 것은 수요일 날 갔는데 출애굽기 20장 1절에서 5절... 그게 뭐냐? 주일날은 원리 설명해주고, 또 주일날 저녁에는 그것을 마음에 남도록 담아주고, 수요일 날은 그것을 구체적으로 적용할 수 있도록, 말하자면 말씀을 하나 딱 붙들면 그 말씀을 완전히 생활 속에까지 가지고 갈 수 있도록 뿌리를 박는 겁니다. 이게 축복에 중요한 내용입니다.
여러분 우리 말씀을 읽을 때에, 말씀을 읽는다! 그 정도가 아니고 말씀이 마음에 머리에서 마음으로, 마음에서 어디로? 생활과 삶으로 이어져야 그 말씀이 성취가 되는 것을 보여지고 볼 수가 있는 것인데, 주일날 말씀 듣고 그냥 '아, 깨달았다! 오늘 말씀 좋네!' 이것으로는 백 번, 천 번들어도 이것은 안 되는 겁니다. 문고리잡고 딱 나가면 잊어버리는데, 심지어는 뭐 주일날 무슨 메시지를 했는지 제목조차도 모르고, 본문 자체도 모르는데, 이렇게 해 가지고는 말씀이 성취되는 사실을 못 보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말씀을 들을 때에 말씀이 잘 안 들려지게 되면, 뭔가 여러분 자신 자신들이 병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들을 때에 여러분 기도제목이 나온다는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이 말씀을 들을 때에 말씀이 내 삶 속에 들어갈 수 있는 뭡니까? 구체적인 내용이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기도제목이 나와야 된다고 하는 말이 그런 말입니다. 말씀이 뿌리를 내려야 됩니다. 그래야 그 말씀이 성취되는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받아합시다. "말씀은 일 점 일획도 틀림없이 성취된다!" 듣고 잊어버리는데 무슨 성취가 됩니까? 그 말씀을 붙잡고 계속해서 한 주간 기도한다는 사실이 우리가 얼마나 위대한 사실이냐! 이것이 우리가 예배에 성공했다는 중요한 개념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아셔야합니다. 특별히 공적 예배를 우습게 본다! 그것은 나도 모르게, 자기도 모르게 하나님을 우습게 보는 행위입니다. 왜, 예배가 우습게 여겨진다! 예를 들면 아주 뭐 그냥 이상하게 여겨진다! 그러면 하나님을 우습게 여기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정말 예배가 귀중하다 생각하면 뭐 주일 거룩하게 지키기 위해서 뭐 '일을 쉰다! 뭘 쉰다!' 이걸 따질 것도 없어요. 정말 예배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되겠다는 이것이 확실히 우리 앞에 이루어지게 된다면 모든 삶이 예배드리는 일에 예배드리기 위해서 그런 일에 장애 되지 않도록 준비하게 됩니다.
그래서 토요일 날도 한 주간 막 일하고 토요일 날 들어오게 되면, 자연적으로 토요일 날도 예배드릴 때에 말씀 듣게 되는 일에 내가 장애 되지 않기 위해서 모든 준비를 또 하게 되고 그래서 빨래를 뭐 오랜 동안 빨래하고 그러다가 주일날 와서 졸고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내가 말씀 듣고 예배드릴 때에, 전심을 다해서 하나님 앞에 예배드릴 수 있는 이런 준비들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 저절로 나오도록 되어 있습니다. 예배시간에 그렇게 보여지게되면 나오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안식일을 기억해서 그 날을 거룩하게 지켜라 이것이 안식일이 바로 주일로 변경된 것이 부활 이후에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입니다. 여러분들이 이 사실이 이해되어야 정말로 하나님 앞에 축복을 받는다! 저절로 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루어지도록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잘 아실 것은 요셉과 형들의 차이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쉽게 말해서 요셉과 형들의 차이는 예배에 대한 개념차이입니다. 그 다음에 야곱과 에서의 차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성공한 다윗 왕과 실패한 사울 왕의 차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지금 이 시간에 굳이 우리는 록펠러의 이야기를 말 안 해도 자기 어머니의 유언을 따라서 '꼭 예배드릴 때에 40분전에 와서 제일 앞에서 예배를 준비했다' 는 그가 지금까지도 록펠러 만한 재벌이 나오지를 않습니다. 일생토록 예배하나를 위해서 그렇게 준비했고, 그 준비한 예배의 성공이 그로 하여금 인생 전체를 성공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우리가 너무 잘 듣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살아가면서 뭘 느끼느냐 하면요. 중직자가 될수록, 교역자가 될수록 뭔가 이상하게 공적예배들이 오래 묵은 디이가 될수록 자꾸만 소홀하게됩니다. 나도 모르게 예배가 뭔가 이상하게 멸시되고 무시되는 이런 경향이 와요. 여러분 이것이 망하는 첫 번째 조건인 것을 알아야합니다. 정말 주일날이 기다려지고 예배시간이 기다려지고 예배시간에 하나님 앞에 전심을 다해서 말씀을 받고 그 말씀 붙잡고 정말 한 주간 기도할 수 있는 이런 축복과 역사가 현실 속에 일어나게 될 때에 그에게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고 인도하시는 사실적인 역사를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을 오늘 말씀을 통해서 꼭 기억을 해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복 받는다는 말은 간단합니다. 아무리 투자해도 하나님께 복을 받지 못하면 안 되게 되어 있다는 말을 제가 강조를 몇 번 자꾸 하고싶어요. 아무리 애를 써도 하나님께서 은혜주지 아니하시면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현재에 우리 신앙생활에 가장 성공해야 될 것이 있다 그러면 뭡니까? 예배에 성공입니다. 성공해야 될 것이 있다 그러면, 그래서 우리 그 여러분 주보를 받았습니다. 제일 첫 번에 표어에 이것은 교회가 송현 교회라는 이름으로 시작이 되면서 지금까지 표어 이것은 계속 이 되게 되어 있습니다. 표어에 보면 제일 첫 번째 뭡니까? 예배로 영육 성공! 예배로... 그 다음에 십일조로 영육 번영이라 그랬습니다. 여러분 경제 생활의 축복이, 예배가 성공이 되지 않으면 경제 생활의 축복이 십일조가 아니라 반을 내고, 다 내어도 안 되는 겁니다. 먼저 이것이 전제가 되어야 되는 겁니다.
쉽게 말해서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되고, 여러분 하나님을 만나야 되고, 어느 자리에 앉던지, 무엇을 하던지, 무슨 사업을 하던지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서 사업이 안 되면 안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십일조도 앞에 것이 전제가 되어야 성공이 됩니다. 축복이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 다음에 선교로 세계정복! 마찬가지입니다. 이것도 앞에 예배에 성공이 안 나오면 뒤에 선교 아무리 한다고 애를 써도 되어질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되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들이 뭔가 하나님 앞에서 이 말씀을 들을 때에 '아, 거룩한 주일이다!' 내가 하나님 앞에 거룩한 예배시간이다! 내가 이 시간 예배드리러 온다는 이 시간이 얼마나 큰 내 인생에 승패가 가로놓여 있는 중요한 시간이다. 바로 이해가 되어야 됩니다. 그리고 말씀을 들을 때에 정말 그 말씀이 내게 담아져야 되고, 예배를 드리러 왔다! 아무리 귀중하게 생각해도 말씀을 통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는데, 말씀이 깨달아지지 않고 말씀들을 때에 뭔가 존다 그러면 자기도 모르게 그는 조는 인생이 됩니다. 눈을 뜨는 인생이라도 잘 안 되는데, 졸고 있는 인생이 됐다! 그러면 가는 겁니다. 그래서 이 사실들이 바로 확실하게 이해가 되어야 되죠.
그런데 오늘 문제는 이런 축복된 예배가 방해되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입니다. 이 축복된 예배가 방해되는 그 방해가 뭐냐? 인간관계! 특별히 많은 경우 인간관계에 있어서 내가 아무 게 관계! 그래서 여러분 제일 예배에 방해되는 무서운 것이 뭐냐하면요. 목사와의 관계에 있어서 말씀 듣는 데에 거리끼는 문제가 있으면 이것은 제일 치명적인 문제입니다. 그래서 제가 늘 그런 말하죠. 이 목사와의 '어떤 오해관계에 있다!' 그러면, '어떤 관계에 있다!' 그러면 땡깡 부리더라도 목사와의 관계를 풀어야 됩니다. 왜? 안 그러면 생명이 죽어 버려요. 내가 죽는다는 그런 정도가 아니고 내 가정 모든 게 다 죽어버립니다. 그러니까 이건 뭐 가장 무서운 것이죠.
그 다음에 여러분 장로님들과의 관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어떤 방법으로 하던지 그 관계 풀어야 됩니다. 그리고 혹시라도 이웃과의 관계, 말하자면 우리 교인들과의 관계 이것도 풀어야 되는 거죠. 어떤 문제가 있더라도, 그런데 여기에서 가장 어려운 관계가 뭐냐? 가정에 관계더라는 겁니다. 가정의 관계! 저는 그 몸이 약하게 되니까 감정이 참 예리하게 되잖아요. 그리고 뭔가 내가 내 일을 못하고 있으니까, 내 일에 대해서 뭔가 비판한다 이러면 상당히 날카로워집니다.
그래서 제가 몇 번 그런 이야기도 했습니다 만은, 가정 예배를 드리려고 그러다가 내게 대해서 뭔가 질타가 나오면, 이상하게 뭐 항의가 나오면, 나도 모르게 예배가 안돼요.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이래가지고 기도를 시켜놓고는, 기도하고는 나는 기도가 안 나와서 가만히 입다물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기도 안 한다고 뛰쳐나갈 수도 없고... 그러다가 이제 기도가 다 끝나면 주기도문을 해야 되는데, 주기도문 하고싶음 마음조차도 안 생기더라 구요.
그래서 가정관계, 여러분 부부관계, 부모자식간의 관계, 가족들과의 관계 문제가 가로막히게 되면 뭐가 안 되느냐? 예배가 안 되어요. 예배가 되기 위해서라도 어떻게 됩니까? 혹시 가로막힌 사람들 있거든 오늘 회개하시고 아무리 해도 하나님 앞에 은혜를 받아야되니까! 밉다, 곱다, 슬프다, 나쁘다, 할 것 없이 상관없습니다. 손을 잡으시고 진짜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시기 위해서 기도해야 됩니다. 이것이 안 이루어지면 예배가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예배에 방해되는 문제가 여러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만은, 성도의 가정의 불화, 여러분이 가정불화가 사단의 아주 무서운 통로입니다. 예배를 못 드리게 하고 예배를 망치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그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제가 이 300미션 홈이라 그랬는데, 사실은 300다락방입니다. 뭐냐하면 내 가정에 다락방이 안 이루어지게 되면 여러분 자신이 성장이 안 되어요. 자신이 성장이 안 되는 것보다도 자신이 축복이 안 되는 겁니다. 뭔가 내 가정에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 사실이 증거가 되고 축복이 되면요. 이것은 뭐 자연적으로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내 자식들, 내 가정에, 부부관계 예배로 통해서 이것이 이루어지게 되면, 여러분 3000제자! 그래서 300다락방, 3000제자 그랬는데 여러분 3000제자는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 짓는 것도 그 다음에 모든 문제가 참된 축복으로 이어집니다.
제가 그 지난번에 노회를 했던 정인금 목사님 교회에 이야기를 좀 들어보니까, 거기는 뭐 전혀 교회를 지을 때에 교회 지을 수 있는 배경이 잘 안되었어요. 왜? 전부 뭐 그냥 젊은 사람들이고, 공장에 다니는 그런 배경이거든요. 그런데 교회를 짓기 시작하면서 어떤 사건이 생겼느냐 하면, 얼토당토않은 일인데도 돈 버는 일들이 가정 가정마다 생기더랍니다. 돈버는 일들이! 그래서 그 몇 억 돈을 해결을 해 내는 그런 일들을 잠깐 들었습니다. 여러분 뭐냐하면요. 먼저 하나님께서 하나님 앞에 내가 은혜를 입게 되면 하나님이 하시는 역사가 여러분 개인과 가정에 구체적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그 우리 교회 건축하는 이 문제 가지고서 첫 번째 제가 말씀한 것이 이겁니다. 교회 건축 이전에 개인 교회 건축입니다. 가정 교회 건축! 그 다음 사업에 사업건축! 이것 이 이루어지게 되면 그 다음에 따라오는 모든 문제입니다. 저절로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여러분이 실질적인 기도의 응답이 나오게 되면 뭐가 옵니까? 확신이 오게 됩니다. '아, 예수 그리스도 모든 문제해결이구나!' 정말 예배! 예배라는 것이 그리스도 없이는 예배가 안되니까, 예수 그리스도 내 인생 전체가 여기 달렸구나! 저절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때에 참된 평안과 안식으로 우리의 삶에 구체적으로 이루어지게 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내게 제일 중요한 이 문제가 가정이 화합하게 되고, 그 다음에 내가 개인, 개인 문제가 화합이 되고 그렇게 될 때에 제일 먼저 내게 축복되는 것이 뭐냐하면, 평화가 오면서 말씀이 꽂혀지게 됩니다. 여러분 절대로 마음속에 평화가 없으면 뭐가 안 되느냐? 말씀이 들어오지를 않아요. 혹시 여기 사업하는 사람들이요 마음에 평화가 없으면 교회 앉아 가지고 말씀이 안 들어옵니다. 전부 다른데... 아무리 사업이 어렵고 여러 가지 문제가 어렵다! 마음이 평화로우면요. 교회 딱 앉으면, 교회 들어오면 마음이 평안해! 그러면 뭐가 오느냐? 말씀이 들어옵니다. 말씀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말씀이 들어왔다! 그럴 때에 그 말씀이 내게 성취됩니다. 내게 성취되면 어떻게 됩니까? 사업과 직장과 일터에 전부 성취가 됩니다. 예배입니다. 바로 그 예배가 누구입니까? 오직 그리스도로 예배가 성취됩니다. 오직 그리스도로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구체적인 역사가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말씀했습니다. 율법 속에 있는 한 예배는 안 된다 그랬습니다. 여러분들이 율법이라는 것은 쉽게 말해서 오늘 나도 모르게 남을 평가하고 비판하는 눈으로 보여지고 있느냐? 그것은 나도 모르게 아직까지도 뭔가 창세기 3장에서부터 그런 다른 어떤 세력의 지배에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이런 문제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결론으로 좀 말씀을 맺고 싶은 것은 이 메시지가, 이 말씀이 복음으로 확실히 이루어지게 될 때에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 우리의 삶이 어떤 삶이냐? 이번 그 산업 선교회 하니까, 중요한 그런 결론적으로 말씀이 나오는 것이 있어요.
뭐냐하면 종교생활은 옛날에 우리 생활은 주로 어떤 사회냐? 경쟁사회 경쟁 생활이었습니다. 경쟁적인 생활이 되었을 때는 뭐가 되느냐? '나!'라는 사실이 주축이 됩니다. 내가 내 이익을 위해서, 내 이익을 위해서 경쟁하는 겁니다. 그럴 때에 오는 문제가 뭐냐? 모든 사람은 적이 되는 겁니다. 나 이외에 모든 대상은 적이 됩니다. 경쟁을 해야 되니까! 그런데 이렇게 되는 동안에는 참 평안과 안식이 있을 수 없고 구체적으로 성장되어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세계화! 그러고 복음화! 그럴 때에 이것이 안 깨어지게 되면 세계화라는 것이 나올 수 없어요.
여러분 우리가 단군의 자손이다! 뭐 단일 민족이다! 이것은 경쟁 사회 때에 이것이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지금현재 단군의 자손이 안 되는데, 여러분 홀로 뭘 다하겠다! 그러면 북한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세계 적으로 제일 안 되는데, 우리 주체사상! 우리끼리, 우리 뭐 한다! 이게 안 되는 겁니다. 이제는 뭐 해야 됩니까? 이제는 협력 사회입니다. 온 세계를 다 포용해야 됩니다. 온 세계를 다 안아야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 '세계화!' 그럴 때에 복음이 안 되면 세계화가 나올 수 없어요. 복음이 안되면... 그래서 어릴 때 우리 자녀들에게 이것이 안 되면 세계화가 나올 수 없어요. 간단하게 이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만은, 사실상 한 인간의 마음속에 온 세계를 품는 다는 사실 자체가 얼마나 어렵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이게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품기는커녕 내 아내도 못 품는데, 자기 자식들도 잘 못 품는데, 이게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제일 안 되는 것이 협력이 안 됩니다. 그래서 나는 미국에 그 사람들 속에서 가끔 뭘 보느냐 하면, 자기 아들이 아닌 다른 아이를 데려와서 키우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고아들을 어디다가 수출하느냐 하면, 미국으로 거의 수출 안 합니까!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게 안 되어요. 내가 낳았고 내 핏줄이 안 섞이면 절대로 안 받아들여요. 그래서 옛날에 그 뭔가 뭐 서모 그런 이야기들이 안 있습니까! 자기 핏줄이 아닌 그런 것 가지고 학대도 하고, 그렇게 때문에 많은 고통들이 있었죠. 그러니 그게 뭐냐 하면, 본래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이 뭐냐? 단일 민족! 그러고 혈통 하나! 이걸 이렇게 하면서 뭐가 안 되느냐? 다른 사람을 품지를 못해요. 우리가 어릴 때부터 이것이 잘 안되고 있습니다.
여러분 복음이 안 되면요. 복음이 안 되면 이게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정말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다 비로소 품을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사실적인 이름이 내게 역사가 되지 아니하면 다른 사람에 대해서 내가 마음 문을 열 수가 없어요. 그래서 협력사회! 협력한다! 이게 잘 안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붙잡고 먼저 협력해야 될 것이, 이것은 우리가 다락방! 그러고 복음! 이럴 때에 지금 가장 어렵고 힘든 것이 뭐냐하면, 협력이 잘 안됩니다. 그래서 목사님들이 협력이 잘 안 되는 것은 평신도를 품을 수 없어요. 이 협력이 잘 안되어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알다시피 평신도하고 목사님하고 같이 훈련받는 것이 처음에 그것이 참 어렵습니다. 잘 안됩니다. 그래서 지금도 뭐 미국에도 어려운 것이 평신도하고 목사님하고 같이 앉아있는 사실 자체가 안 되는 겁니다. 여러분 평신도하고 목사님 같이 앉아서 훈련받을 수 있다는 것은, 이건 혁명입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반드시 목사님은 따로 훈련받았습니다. 평신도 절대로 같이 안 했습니다. 그런데 다락방은 이게 뭡니까! 평신도와 완전히 섞여 가지고... 이것이 지금 이 시기에 복음이 바로 되면 뭐가 나오느냐? 협력이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나는 그 협력 속에서 뭘 말하고 싶으냐? 평신도들과 목사가 진정한 협력이 이루어 져야된다. 여러분 전도에 승리한다는 것은 이게 이루어 져야 합니다.
그래서 그런 생각을 요즘 좀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큰 교회를 건축한다 이전에 큰 교회 될 수 있는 큰그릇이 되어야 하는데 뭐가 되느냐? 평신도 복음화! 말하자면 평신도 제자화! 이게 지금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사역자가 아니다! 이래서 교구별로 좀 나누어 가지고, 이제는 뭐 지금까지는 어디 초상이 났다! 그러면 교역자들 10명이던지, 20명이던지 다 깡그리 쓸어 가지고 가는데, 이제 그래가지고 얼마나 인력이 낭비되거든요. 그래도 또 그 집안에 부담도 되고 뭐 돌 한다! 뭐 한다! 그러면 전부 또 교역자들이 다 가야 되는 겁니다. 하던 것도 다 놓고 가야돼요. 그래서 이 시간이 많이 낭비되죠.
또 그 집에서는 뭐 교역자들 한 둘 같으면 쉬운데, 뭐 열 몇이, 스물 몇이 와 놓으면 이게 먹는 것도 곤란한 겁니다. 그래서 각 교구별로 교역자, 그 다음에 장로, 그 다음에 우리 전도사님, 그 다음 평신도 사역자, 그 다음에 권찰 이래가지고 딱딱 좀 나누어 가지고 거기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집니다. 심방도 이루어지고, 그 다음 캠프도 이루어지고, 캠프도 여러분 우리 교인들이 다 합쳐 가지고 해 놓고 난 후에는 어떻게 했느냐? 그 교구에 일꾼들에게 구체적으로 맡겨지기까지가 캠프가 되어야 됩니다. 그러니까 지금 캠프를 많이 해 가지고 많이 했지만, 그 교구에 맡겨놓으면 숫자가 적어 가지고 감당을 못하는 겁니다. 그러니 막 잃어버리게 되고...
그래서 아예 그 교구에서부터 캠프부터 시작해서 전부 다 활동할 수 있도록 그렇게 좀 계획을 세워야 되겠다! 이렇게 해야 평신도가, 모든 평신도들이 협력해서 오직 복음 때문에 세계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 그렇게 좀 생각을 하고 이미 우리 교역자들은 작업을 좀 준비를 해 보라! 그랬습니다. 해 보라 그러고 다음 우리 당회 때에 구체적인 이야기가 나와 가지고 일이 이루어지고, 그래가지고 뭘 하느냐? 오직 복음에 완전 전 교회가 협력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 땅위에, 세계복음화에 놀라운 역사로 여러분과 제가 쓰여지도록 역사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될 때에 바로 뭐냐? '예배가 회복된다!' 그럴 때에 어떤 면에서 이 간단한 어떤 뭐 주일날 예배에 이것만한다! 아닙니다. 예배라는 자체가 뭡니까? 삶이 회복되는 겁니다. 예배라는 것은 삶 자체입니다. 그래서 제가 늘 그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만은, 하나의 그저 습관 속에서 중요한 습관이 뭐냐하면, 제가 앉자마자, 앉는 곳마다 저는 기도하는 습관이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앉자마자 만나자 말자 뭡니까? 하나님을 만나 가는 작업 전도입니다. 이것이 회복되었다! 하나님께서 그의 삶에 모든 축복을 주실 이유가 되는 겁니다. 그 역사가 되는 것이죠. 이것이 안 되고 난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엄청난 세계 적인 복을 내릴 수 있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간단한 말이라고 생각지 마시고 예배 회복이다! 모든 문제 회복이다! 그리고 그 예배라는 그 곳에 모든 초점을 맞추어서 우리 가정, 가족, 인간관계 모든 관계가 여기서 해결되어야 되는 겁니다. 이렇게 초점을 모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은혜 주시게 되어 있습니다. 그에게 은혜 주신다! 그가 가는 곳, 사업, 직장, 생활과 삶에 전부 은혜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성령께서 인도하시고 구체적으로 역사 하게 되어 있습니다. 한 주간 여러분 이 사실을 딱 붙잡고 예배회복! 바로 이 자리에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이 나와 같이 계십니다. 구체적인 예배회복! 예배의 자리! 예배의 승리! 그래서 여러분들이 말씀에 응답이사실적으로 역사 되는 축복과 은혜가 체험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진정한 예배의 배경
☞ 산상수훈은, 율법 시대가 끝나고 복음의 시대가 시작된다는 선언이며, 복음의 시대에 어떻게 살아가야할 것인가를 안내하는 지침입니다. 그래서 산상수훈은 삶에 관련된 기록들이 많이 언급됩니다. 그 중에서 오늘 본문에서는, 삶에 성공하고 승리할 수 있는 축복의 문이 '예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 예배는 번제를 드리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번제는 내 죄를 대신해서 짐승을 끌고 와서 짐승의 머리에 손을 얹어 나의 죄를 전가하면, 제사장이 그 짐승의 피를 흘려 죽인 후 번제단에서 태웠습니다. 이러한 번제 의식이 예배로 이어졌습니다.
☞ 그러므로, 진정한 예배가 될 수 있는 배경은, 어린 양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를 흘려 죽으신 것을 믿고 의지하여 여호와 하나님 앞에 나아오는 것입니다.
[2] 예배를 방해하는 것
☞ 인생에 아무리 많은 투자를 해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못하면 헛된 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첫 번째 방법은, 바로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나아와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도 예배를 드리기 전에 이웃간에 갈등이 있으면 먼저 가서 그것을 해결하고 오라고 말씀하실 정도로, 예배는 다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 그러므로 이렇게 중요한 예배를 방해하는 것이 있다면 제거해야 하는데, 예배를 방해하는 큰 걸림돌 중에 하나가 바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갈등입니다.
☞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바란다면, 주일 예배부터 성공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 특히 말씀을 선포하는 자와의 관계도 먼저 잘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깨닫고, 마음에 감동을 받고, 삶 속에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게 됩니다.
☞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가족들과의 관계입니다. 가족들과 가로막힌 사건들이 있으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위해서 서로 손을 잡고 사랑으로 기도하십시오. 이렇게 화합된 가족 관계 속에서 가정 다락방을 세우십시오. 예배를 통해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입을 때, 개인과 가정에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이 구체적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3] 삶으로까지 이어지는 진정한 예배의 회복
☞ 이제부터 우리의 삶은, 남을 짓누르고 일어서려는 경쟁이 아니라, 복음으로 세계를 품고 협력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차원에서, 우리 교회의 시스템도 복음을 위해서 교역자와 평신도들이 함께 협력할 수 있는 관계로 새롭게 변화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삶으로까지 이어지는 진정한 예배가 회복되어집니다.
▣ 언약 잡은 기도 ▣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어떤 인생도 가치없음을 깨닫게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께 은혜를 풍성히 받으며 삶이 변화되어지는 진정한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이웃들과 일그러진 모든 관계를 사랑으로 회복할 힘을 주시옵소서. 십자가의 사랑으로 나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마 5: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마 5:25) 너를 송사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송사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주고 재판관이 관예에게 내어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마 5:26)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오늘 제목을 "진정한 예배" 라고 잡았습니다. 특별히 23절에 보면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이 있는줄 생각나거든 (마 5: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그랬습니다. 이 산상수훈이 5장, 6장, 7장에 쭉 이어지고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이 산상수훈이 바리새인들의 시대가 끝나고, 말하자면 율법시대가 끝나고 복음의 시대가 왔다! 복음의 시대가 시작이 된다고 하는 근원이 되기도 하고, 그 다음에 이 복음의 시대에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하는 삶에 대한 지침이다! 그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산상수훈은 어떤 면에서 상세하게 삶에 관련된 기록들이 계속해서 많이 취급이 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중에서 여기 여러 가지 많은 말씀을 드릴 수 있습니다 만은, 오늘 이 산상수훈에서 삶에 성공하고 승리할 수 있는 축복의 문이 무엇이냐? 축복의 역사가 무엇이냐? 예배다! 그렇게 한마디로 표현을 할 수가 있습니다. 산상수훈에 보면 한 3가지 정도로 '너희는 먼저 뭐해라! 먼저 뭐해라!' 하는 그 말씀이 나옵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마 5:23)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사과해라! 이렇게 말씀이 나오고, 그 다음 6장 33절에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다 주신다! 그러니까 먼저 하게 되면 그 다음에 나오는 문제를 좀 그 설명을 하면서 먼저, 먼저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 다음에 마태복음 7장 1절에서 5절에 보면, 먼저 내 눈에 뭘 보라 그랬습니까? 들보부터 먼저 봐라! 어떤 그 판단의 기준, 평가의 기준, 이런 것들이 먼저 되면 그 다음에 옳은 판단이 나오면 성공하고 또 축복 받을 수밖에 없는 그런 역사들이 나올 것을 말씀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먼저 여기에 중요한 것은 예배라 그럴 때에 우리가 예배를 드린다 그러면 교회 나와서 예배드리는 것만 드린다 생각하고 있고, 또 어떤 면에서 이 예배가 또 중요하죠. 주일 날 11시에 예배드린다! 12시에 예배드린다! 이럴 때에 이 예배가 사실은 모든 예배 중에 예배가 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원래 예배의 그 흐름을 쭉 우리가 이해가 되어야 될 것은, 예배라는 것이 어디서 나왔느냐 하면, 번제를 드리는 데서 예배가 나옵니다. 여러분 번제라 그러면 내 죄를 대신해서 짐승을 끌고 옵니다. 그러면 제사장이 그 짐승의 머리에다가 내가 지은 죄를 다 이관을 시키고 안수를 하죠. 그리고서 그 짐승을 내 대신을 해서 피를 흘립니다. 죽입니다. 그리고서는 내장을 다 꺼내고, 각을 다 뜨고, 그걸 불태워서 완전... 그래서 하나님이 이것을 향기라! 흠향 하셨다. 이것이 번제이고 바로 번제 의식이 오늘 뭐로? 예배의식으로 예배로 이어집니다.
그러면 예배에 중요한 내용이 뭐냐 하면, 여러분들이 진짜 예배가 될 수 있는 배경은, 쉽게 말해서 여러분 지금 들어올 때에 원래 이 예배를 잘 드리기 위해서는 뭐를 끌고 들어와야 돼요? 양을 끌고 들어와야 됩니다. 그러면 예배를 드리기 전에 각 사람이 양을 끌고 와서 양을 전부 다 목을 따고 잡아야 돼요. 그러고서는 이제 각을 뜨고 불태워 드려야 되는 것이 예배입니다. 예배! 그러면 중요한 것이 양을 대신해서, 오늘 여러분과 제게 이곳에 감히 올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입니다. 여러분들이 그리스도 없이 예배라는 것은 나올 수 없어요.
그러면 여러분 감히 번제를 드린다! 그럴 때에, 예배를 드릴 때에, 짐승을 끌고 와서 예배를 드린다! 그럴 때에 중요한 것은 그 예배의 대상이 누구냐? 누구입니까? 하나님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그래서 내 모든 죄를 대신해서 짐승을 죽이고, 그 짐승의 피를 흘리고, 그 다음에 짐승을 완전히 태워서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립니다. 이것이 번제고, 그 다음에 똑같이 그 짐승을 대신해서 말하자면 양과 소를 매번 드려야 되지만, 단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과 저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고, 여러분과 저에게 바로 그리스도로 십자가에서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하시고 다 이루었다! 그리고는 여러분과 제가 감히 죄 있는 몸으로, 죄인으로 하나님 앞에 나갈 수가 없는데, 이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왔습니다. 이 자리에 나온 것은 여러분 엄청난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에 그 결과로 이 자리에 나와 있는 겁니다.
그러면 예배드릴 수 있는 사람은 예수 안 믿는 사람, 그러니까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예수의 피가 흐르는 이런 사람들만이 이 자리에 와서 예배를 드릴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자녀들이 모이는 곳이 바로 예배의 장소이고 예배가 되죠. 이런 의미에서 지난 그 핵심에도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만은, 류 목사님이 그런 이야기를 안 했습니까! 율법에서 해방을 받지 못한 자는 절대로 예배가 될 수 없어요. 그러니 오늘 쉽게 말해서 여러분들이 말씀이 안 들린다! 하나님을 실제로 만나는 일이 안 된다! 예배가 잘 안 된다! 그 배경이 뭐냐하면 아직도 어디서 못 나왔어요? 율법에서 실질적으로 해방을 받지 못했습니다. 말은 그렇게 하고 있지만, '내가 해방 받았다!' 그렇게 하고 있지만 아직도 내 생각과 의식이 아직도 뭔가 율법 속에서 계속해서 헤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성경에 보면 로마서 8장 2절에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은 무엇입니까? 율법은 정죄! 죄와 사망의 법이라는 것은 원래 이것이 뭐냐하면, 사단의 역사 속에 있는 모든 사망의 법입니다. 이게 이 사실 아래 있는 자들을 말합니다. 그러면 여러분 율법이 뭐냐하면, 율법은 죄와 또 사망의 역사를 확인시켜 주는 정죄 하는 법이 바로 율법입니다. 그래서 이 율법 가지고는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율법 외에 뭐라 그랬어요? 한 의가 나타났는데, 곧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라!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해결하고, 말하자면 율법의 모든 문제를 완성시킬 수 있는 오직 한 분이 누구냐?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왜, 그러면 지금도 율법아래 있으면 왜 안 되느냐? 법 아래 있고 그러니까, 정죄 아래 있을 때는 그 배경이 사단의 배경입니다. 그 배경이 아직 창세기 3장의 배경이기 때문에 거기서 나오지 못하면 예배라는 자체가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여기에 여러분 나오셨을 때에 다른 거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내 인생 전체에 모든 문제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해결 받지 못할 것이 없다는 확신과 확증이 있는 만큼 예배라는, 예배가 사실적으로 여러분 생활 속에 말씀이 성취되는 체험들이 나오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예배가 이렇게 귀중한 예배고, 이 예배를 통해서 여러분과 제가 모든 인생의 문제가 해결되는 축복된 길이라는 사실을 오늘 말씀을 해 주시는데, 이 예배를 방해하는 것이 있다! 예배가 방해되는 것이 있다! 그 것이 오늘 본문에 내용입니다.
무슨 말이냐? 너희는 예배드리기 전에 먼저 사람과 사람사이, 인간과 인간사이 그리고 뭔가 갈등이 뭔가 있거든, 그런 문제가 있거든, 예배를 드리기 전에 그것부터 먼저 해결하고 예배를 드려라! 그럴 때에 이것이 해결한다! 갈등을 해결한다! 인간관계를 해결한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그런 문제보다도 여기에 강조하는 것은 예배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겁니다. 그 모든 것보다도 중요하다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배가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화목해야 되고, 예배 때문에, 여러분 예배가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예배를 바로 드리기 위해서 이웃 간에 걸리는 문제 해결하고, 예배가 너무 중요합니다! 예배가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혹시 장로님들과 혹시 우리 평신도들, 집사님들과 혹시 누구와 관계에 있어서 걸리는 문제가 있거든, 예배가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예배가 바로 되어져야 축복이 되기 때문에 그것부터 먼저 해결해라! 그것이 오늘 본문에 중요한 내용이 되겠죠.
그래서 예배의 걸림돌을 제거하는 것이 바로 오늘 중요한 내용의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이 사는 동안에 아무리 많은 투자를 하고, 아무리 생을 걸고 생명을 걸고 투자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못하면 다 헛일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다! 첫 번 은혜의 길이 뭡니까? 예배입니다. 여러분 이 자리에 나왔다!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갈지니라' 누구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게 다 여기서 해결되는 문제요. 여기서 모든 문제가 다 나오는 문제죠. 그래서 인생에 승리가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망할 수밖에 없고,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인생의 문제입니다.
여러분 성경에 보면 창조 이후에 '예배라!' 그럴 때에,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다!' 이럴 때에, 또 예배 그러면 그 상세한 내용이 쉽게 우리가 적용되어져야 되는데, 이것이 뭐냐하면 하나님을 만난다고 하는 것이 예배의 중요한 대시죠. 하나님을 만나서 뭐하느냐?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 바로 이런 예배입니다. 그래서 원래 소요리 문답에서 뭐라 그랬느냐? 인생의 참된 목적이 뭐냐?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다!'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예배가 깨어졌을 때에, 하나님과 만나는 사실이 깨어졌을 때에, 이것이 아담하와의 인간의 불행의 시초가 되는 것이고, 그 다음에 여러분들이 잘 안다시피 하나님과의 만남, 예배가 성공한 아벨은 하나님 앞에 복을 받았고, 예배가 실패된 가인은 저주를 받았다는 것이 성경의 내용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잘 알다시피 노아는 단 한가지입니다. 예배가 성공되어졌을 때에 다른 모든 사람은 다 홍수에 떠내려가고 물에 죽었지 만은, 오직 예배에 성공한 노아와 그 가족은 살아남았다! 이것이 성경이 내용이에요.
여러분이 지금 이 시간에 잘 알아야 될 것이요 주일날 왜 주일을 성수해야 되고, 주일을 예배드려야 되고, 주일을 예배드리기 위해서 우리가 모든 정성을, 한 주간에 모든 정성을 모아야 되느냐? 여러분 여기에 눈이 열려야 합니다. 예배에 성공하느냐? 그 다음에 성공은 열려지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은혜를 바라느냐? 축복이 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없이 아무리 투자하고, 아무리 생을 걸고 노력해도 실패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 어떤 사람은 놀면서 살아도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있어요. 어떤 사람은 지독히 고생을 하고 애를 써도 고생만 죽도록 하고 불행한 사람이 있습니다.
간단합니다. 은혜 받아야됩니다. 은혜 없이 산다는 것이 이렇게 안 된다는 내용을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배가 잘 안 된다!' 이 말은 뭐냐?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 안 된다! 그 말입니다. 하나님을 잘 못 만난다 그런 이야기거든요. 여러분이 임마누엘, 임마누엘! 그러는데 임마누엘이 바로 예배가 된다는 것에 가장 중심적인 그런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다! 하나님이 늘 나와 같이 계시다! 하나님 만난다! 하나님과 함께 산다! 이것이 예배에 가장 귀중한 초점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 말씀이 바로 여러분 예배드릴 때에,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어떤 것이냐? 하나님이 얼굴이 있느냐? 지금 여러분 아무리 둘러봐도 하나님 보입니까? 위로 쳐다보니 전구밖에 안 보이는데, 옆에 쳐다보니 아무 게 집사 얼굴밖에 안 보이는데, 앞으로 보니까 목사님 밖에 안 보이는데... 목사님이 하나님이시냐? 그 말이 아닙니다. 왜, 예배를 바로 드리기 위해서 목사님과의 관계도 바로 되어야 되느냐? 그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목사님을 통해서 뭐가 나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지고, 하나님의 말씀이 깨달아지고,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가 되어져야 되고, 그럴 때에 그 말씀이 여러분 생활과 삶에 성취가 됩니다.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그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아는 것으로 끝나지 말고 이 말씀을 들었을 때에 어디에? 가슴에 와 져야 돼요. 마음에 와져야 돼요. 그 다음에 뭐 마음에 와 졌다! 삶으로 이어져야 됩니다. 이것이 예배에 중요한 문제죠.
그래서 제가 좀 생각을 해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은혜주시는 데로 회복되는 데로 오후예배든지 안 그러면 이 예배시간에 흑판을 좀 걸었으면 안 좋겠나! 맨 날 듣고, 혼자 가만히 듣고 지나가니 이게 잘 안 되어요. 딱 가슴에 와서 마음에 남고, 삶이 되어야 말씀이 생활에 성취가 되는 것이 보여지게 됩니다. 그냥 듣고 깨달았다! 고개 끄덕여서 깨달았다! 머릿속에 깨달았다는 정도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이 여러분 삶에 보여져야 돼요. 이것이 되어져야 됩니다.
그래서 이번에 총신 학생들 앞에, 그 MT에 메시지 전할 때에 무슨 이야기를 하시느냐 하면, 말씀 속에서 내가 참 그 사람 약간 이단성이 있다고 그래가지고 좀 주의는 했지만, 부산에 그 백파에 있습니다. 주일학교 만 명 모인다는 그 교회 목사님, 놀란 것이 하나 있다고 하더라 구요. 뭐가 놀랐느냐? 주일날 딱 갔는데 출애굽기 20장 1절에서 5절을 읽더랍니다. 그 다음에 주일날 저녁에 갔는데, 또 출애굽기 20장 1절에서 5절을 읽더래요, 더 놀란 것은 수요일 날 갔는데 출애굽기 20장 1절에서 5절... 그게 뭐냐? 주일날은 원리 설명해주고, 또 주일날 저녁에는 그것을 마음에 남도록 담아주고, 수요일 날은 그것을 구체적으로 적용할 수 있도록, 말하자면 말씀을 하나 딱 붙들면 그 말씀을 완전히 생활 속에까지 가지고 갈 수 있도록 뿌리를 박는 겁니다. 이게 축복에 중요한 내용입니다.
여러분 우리 말씀을 읽을 때에, 말씀을 읽는다! 그 정도가 아니고 말씀이 마음에 머리에서 마음으로, 마음에서 어디로? 생활과 삶으로 이어져야 그 말씀이 성취가 되는 것을 보여지고 볼 수가 있는 것인데, 주일날 말씀 듣고 그냥 '아, 깨달았다! 오늘 말씀 좋네!' 이것으로는 백 번, 천 번들어도 이것은 안 되는 겁니다. 문고리잡고 딱 나가면 잊어버리는데, 심지어는 뭐 주일날 무슨 메시지를 했는지 제목조차도 모르고, 본문 자체도 모르는데, 이렇게 해 가지고는 말씀이 성취되는 사실을 못 보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말씀을 들을 때에 말씀이 잘 안 들려지게 되면, 뭔가 여러분 자신 자신들이 병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들을 때에 여러분 기도제목이 나온다는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이 말씀을 들을 때에 말씀이 내 삶 속에 들어갈 수 있는 뭡니까? 구체적인 내용이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기도제목이 나와야 된다고 하는 말이 그런 말입니다. 말씀이 뿌리를 내려야 됩니다. 그래야 그 말씀이 성취되는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받아합시다. "말씀은 일 점 일획도 틀림없이 성취된다!" 듣고 잊어버리는데 무슨 성취가 됩니까? 그 말씀을 붙잡고 계속해서 한 주간 기도한다는 사실이 우리가 얼마나 위대한 사실이냐! 이것이 우리가 예배에 성공했다는 중요한 개념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아셔야합니다. 특별히 공적 예배를 우습게 본다! 그것은 나도 모르게, 자기도 모르게 하나님을 우습게 보는 행위입니다. 왜, 예배가 우습게 여겨진다! 예를 들면 아주 뭐 그냥 이상하게 여겨진다! 그러면 하나님을 우습게 여기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정말 예배가 귀중하다 생각하면 뭐 주일 거룩하게 지키기 위해서 뭐 '일을 쉰다! 뭘 쉰다!' 이걸 따질 것도 없어요. 정말 예배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되겠다는 이것이 확실히 우리 앞에 이루어지게 된다면 모든 삶이 예배드리는 일에 예배드리기 위해서 그런 일에 장애 되지 않도록 준비하게 됩니다.
그래서 토요일 날도 한 주간 막 일하고 토요일 날 들어오게 되면, 자연적으로 토요일 날도 예배드릴 때에 말씀 듣게 되는 일에 내가 장애 되지 않기 위해서 모든 준비를 또 하게 되고 그래서 빨래를 뭐 오랜 동안 빨래하고 그러다가 주일날 와서 졸고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내가 말씀 듣고 예배드릴 때에, 전심을 다해서 하나님 앞에 예배드릴 수 있는 이런 준비들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 저절로 나오도록 되어 있습니다. 예배시간에 그렇게 보여지게되면 나오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안식일을 기억해서 그 날을 거룩하게 지켜라 이것이 안식일이 바로 주일로 변경된 것이 부활 이후에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입니다. 여러분들이 이 사실이 이해되어야 정말로 하나님 앞에 축복을 받는다! 저절로 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루어지도록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잘 아실 것은 요셉과 형들의 차이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쉽게 말해서 요셉과 형들의 차이는 예배에 대한 개념차이입니다. 그 다음에 야곱과 에서의 차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성공한 다윗 왕과 실패한 사울 왕의 차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지금 이 시간에 굳이 우리는 록펠러의 이야기를 말 안 해도 자기 어머니의 유언을 따라서 '꼭 예배드릴 때에 40분전에 와서 제일 앞에서 예배를 준비했다' 는 그가 지금까지도 록펠러 만한 재벌이 나오지를 않습니다. 일생토록 예배하나를 위해서 그렇게 준비했고, 그 준비한 예배의 성공이 그로 하여금 인생 전체를 성공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우리가 너무 잘 듣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살아가면서 뭘 느끼느냐 하면요. 중직자가 될수록, 교역자가 될수록 뭔가 이상하게 공적예배들이 오래 묵은 디이가 될수록 자꾸만 소홀하게됩니다. 나도 모르게 예배가 뭔가 이상하게 멸시되고 무시되는 이런 경향이 와요. 여러분 이것이 망하는 첫 번째 조건인 것을 알아야합니다. 정말 주일날이 기다려지고 예배시간이 기다려지고 예배시간에 하나님 앞에 전심을 다해서 말씀을 받고 그 말씀 붙잡고 정말 한 주간 기도할 수 있는 이런 축복과 역사가 현실 속에 일어나게 될 때에 그에게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고 인도하시는 사실적인 역사를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을 오늘 말씀을 통해서 꼭 기억을 해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복 받는다는 말은 간단합니다. 아무리 투자해도 하나님께 복을 받지 못하면 안 되게 되어 있다는 말을 제가 강조를 몇 번 자꾸 하고싶어요. 아무리 애를 써도 하나님께서 은혜주지 아니하시면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현재에 우리 신앙생활에 가장 성공해야 될 것이 있다 그러면 뭡니까? 예배에 성공입니다. 성공해야 될 것이 있다 그러면, 그래서 우리 그 여러분 주보를 받았습니다. 제일 첫 번에 표어에 이것은 교회가 송현 교회라는 이름으로 시작이 되면서 지금까지 표어 이것은 계속 이 되게 되어 있습니다. 표어에 보면 제일 첫 번째 뭡니까? 예배로 영육 성공! 예배로... 그 다음에 십일조로 영육 번영이라 그랬습니다. 여러분 경제 생활의 축복이, 예배가 성공이 되지 않으면 경제 생활의 축복이 십일조가 아니라 반을 내고, 다 내어도 안 되는 겁니다. 먼저 이것이 전제가 되어야 되는 겁니다.
쉽게 말해서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되고, 여러분 하나님을 만나야 되고, 어느 자리에 앉던지, 무엇을 하던지, 무슨 사업을 하던지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서 사업이 안 되면 안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십일조도 앞에 것이 전제가 되어야 성공이 됩니다. 축복이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 다음에 선교로 세계정복! 마찬가지입니다. 이것도 앞에 예배에 성공이 안 나오면 뒤에 선교 아무리 한다고 애를 써도 되어질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되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들이 뭔가 하나님 앞에서 이 말씀을 들을 때에 '아, 거룩한 주일이다!' 내가 하나님 앞에 거룩한 예배시간이다! 내가 이 시간 예배드리러 온다는 이 시간이 얼마나 큰 내 인생에 승패가 가로놓여 있는 중요한 시간이다. 바로 이해가 되어야 됩니다. 그리고 말씀을 들을 때에 정말 그 말씀이 내게 담아져야 되고, 예배를 드리러 왔다! 아무리 귀중하게 생각해도 말씀을 통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는데, 말씀이 깨달아지지 않고 말씀들을 때에 뭔가 존다 그러면 자기도 모르게 그는 조는 인생이 됩니다. 눈을 뜨는 인생이라도 잘 안 되는데, 졸고 있는 인생이 됐다! 그러면 가는 겁니다. 그래서 이 사실들이 바로 확실하게 이해가 되어야 되죠.
그런데 오늘 문제는 이런 축복된 예배가 방해되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입니다. 이 축복된 예배가 방해되는 그 방해가 뭐냐? 인간관계! 특별히 많은 경우 인간관계에 있어서 내가 아무 게 관계! 그래서 여러분 제일 예배에 방해되는 무서운 것이 뭐냐하면요. 목사와의 관계에 있어서 말씀 듣는 데에 거리끼는 문제가 있으면 이것은 제일 치명적인 문제입니다. 그래서 제가 늘 그런 말하죠. 이 목사와의 '어떤 오해관계에 있다!' 그러면, '어떤 관계에 있다!' 그러면 땡깡 부리더라도 목사와의 관계를 풀어야 됩니다. 왜? 안 그러면 생명이 죽어 버려요. 내가 죽는다는 그런 정도가 아니고 내 가정 모든 게 다 죽어버립니다. 그러니까 이건 뭐 가장 무서운 것이죠.
그 다음에 여러분 장로님들과의 관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어떤 방법으로 하던지 그 관계 풀어야 됩니다. 그리고 혹시라도 이웃과의 관계, 말하자면 우리 교인들과의 관계 이것도 풀어야 되는 거죠. 어떤 문제가 있더라도, 그런데 여기에서 가장 어려운 관계가 뭐냐? 가정에 관계더라는 겁니다. 가정의 관계! 저는 그 몸이 약하게 되니까 감정이 참 예리하게 되잖아요. 그리고 뭔가 내가 내 일을 못하고 있으니까, 내 일에 대해서 뭔가 비판한다 이러면 상당히 날카로워집니다.
그래서 제가 몇 번 그런 이야기도 했습니다 만은, 가정 예배를 드리려고 그러다가 내게 대해서 뭔가 질타가 나오면, 이상하게 뭐 항의가 나오면, 나도 모르게 예배가 안돼요.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이래가지고 기도를 시켜놓고는, 기도하고는 나는 기도가 안 나와서 가만히 입다물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기도 안 한다고 뛰쳐나갈 수도 없고... 그러다가 이제 기도가 다 끝나면 주기도문을 해야 되는데, 주기도문 하고싶음 마음조차도 안 생기더라 구요.
그래서 가정관계, 여러분 부부관계, 부모자식간의 관계, 가족들과의 관계 문제가 가로막히게 되면 뭐가 안 되느냐? 예배가 안 되어요. 예배가 되기 위해서라도 어떻게 됩니까? 혹시 가로막힌 사람들 있거든 오늘 회개하시고 아무리 해도 하나님 앞에 은혜를 받아야되니까! 밉다, 곱다, 슬프다, 나쁘다, 할 것 없이 상관없습니다. 손을 잡으시고 진짜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시기 위해서 기도해야 됩니다. 이것이 안 이루어지면 예배가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예배에 방해되는 문제가 여러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만은, 성도의 가정의 불화, 여러분이 가정불화가 사단의 아주 무서운 통로입니다. 예배를 못 드리게 하고 예배를 망치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그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제가 이 300미션 홈이라 그랬는데, 사실은 300다락방입니다. 뭐냐하면 내 가정에 다락방이 안 이루어지게 되면 여러분 자신이 성장이 안 되어요. 자신이 성장이 안 되는 것보다도 자신이 축복이 안 되는 겁니다. 뭔가 내 가정에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 사실이 증거가 되고 축복이 되면요. 이것은 뭐 자연적으로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내 자식들, 내 가정에, 부부관계 예배로 통해서 이것이 이루어지게 되면, 여러분 3000제자! 그래서 300다락방, 3000제자 그랬는데 여러분 3000제자는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 짓는 것도 그 다음에 모든 문제가 참된 축복으로 이어집니다.
제가 그 지난번에 노회를 했던 정인금 목사님 교회에 이야기를 좀 들어보니까, 거기는 뭐 전혀 교회를 지을 때에 교회 지을 수 있는 배경이 잘 안되었어요. 왜? 전부 뭐 그냥 젊은 사람들이고, 공장에 다니는 그런 배경이거든요. 그런데 교회를 짓기 시작하면서 어떤 사건이 생겼느냐 하면, 얼토당토않은 일인데도 돈 버는 일들이 가정 가정마다 생기더랍니다. 돈버는 일들이! 그래서 그 몇 억 돈을 해결을 해 내는 그런 일들을 잠깐 들었습니다. 여러분 뭐냐하면요. 먼저 하나님께서 하나님 앞에 내가 은혜를 입게 되면 하나님이 하시는 역사가 여러분 개인과 가정에 구체적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그 우리 교회 건축하는 이 문제 가지고서 첫 번째 제가 말씀한 것이 이겁니다. 교회 건축 이전에 개인 교회 건축입니다. 가정 교회 건축! 그 다음 사업에 사업건축! 이것 이 이루어지게 되면 그 다음에 따라오는 모든 문제입니다. 저절로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여러분이 실질적인 기도의 응답이 나오게 되면 뭐가 옵니까? 확신이 오게 됩니다. '아, 예수 그리스도 모든 문제해결이구나!' 정말 예배! 예배라는 것이 그리스도 없이는 예배가 안되니까, 예수 그리스도 내 인생 전체가 여기 달렸구나! 저절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때에 참된 평안과 안식으로 우리의 삶에 구체적으로 이루어지게 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내게 제일 중요한 이 문제가 가정이 화합하게 되고, 그 다음에 내가 개인, 개인 문제가 화합이 되고 그렇게 될 때에 제일 먼저 내게 축복되는 것이 뭐냐하면, 평화가 오면서 말씀이 꽂혀지게 됩니다. 여러분 절대로 마음속에 평화가 없으면 뭐가 안 되느냐? 말씀이 들어오지를 않아요. 혹시 여기 사업하는 사람들이요 마음에 평화가 없으면 교회 앉아 가지고 말씀이 안 들어옵니다. 전부 다른데... 아무리 사업이 어렵고 여러 가지 문제가 어렵다! 마음이 평화로우면요. 교회 딱 앉으면, 교회 들어오면 마음이 평안해! 그러면 뭐가 오느냐? 말씀이 들어옵니다. 말씀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말씀이 들어왔다! 그럴 때에 그 말씀이 내게 성취됩니다. 내게 성취되면 어떻게 됩니까? 사업과 직장과 일터에 전부 성취가 됩니다. 예배입니다. 바로 그 예배가 누구입니까? 오직 그리스도로 예배가 성취됩니다. 오직 그리스도로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구체적인 역사가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말씀했습니다. 율법 속에 있는 한 예배는 안 된다 그랬습니다. 여러분들이 율법이라는 것은 쉽게 말해서 오늘 나도 모르게 남을 평가하고 비판하는 눈으로 보여지고 있느냐? 그것은 나도 모르게 아직까지도 뭔가 창세기 3장에서부터 그런 다른 어떤 세력의 지배에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이런 문제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결론으로 좀 말씀을 맺고 싶은 것은 이 메시지가, 이 말씀이 복음으로 확실히 이루어지게 될 때에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 우리의 삶이 어떤 삶이냐? 이번 그 산업 선교회 하니까, 중요한 그런 결론적으로 말씀이 나오는 것이 있어요.
뭐냐하면 종교생활은 옛날에 우리 생활은 주로 어떤 사회냐? 경쟁사회 경쟁 생활이었습니다. 경쟁적인 생활이 되었을 때는 뭐가 되느냐? '나!'라는 사실이 주축이 됩니다. 내가 내 이익을 위해서, 내 이익을 위해서 경쟁하는 겁니다. 그럴 때에 오는 문제가 뭐냐? 모든 사람은 적이 되는 겁니다. 나 이외에 모든 대상은 적이 됩니다. 경쟁을 해야 되니까! 그런데 이렇게 되는 동안에는 참 평안과 안식이 있을 수 없고 구체적으로 성장되어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세계화! 그러고 복음화! 그럴 때에 이것이 안 깨어지게 되면 세계화라는 것이 나올 수 없어요.
여러분 우리가 단군의 자손이다! 뭐 단일 민족이다! 이것은 경쟁 사회 때에 이것이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지금현재 단군의 자손이 안 되는데, 여러분 홀로 뭘 다하겠다! 그러면 북한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세계 적으로 제일 안 되는데, 우리 주체사상! 우리끼리, 우리 뭐 한다! 이게 안 되는 겁니다. 이제는 뭐 해야 됩니까? 이제는 협력 사회입니다. 온 세계를 다 포용해야 됩니다. 온 세계를 다 안아야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 '세계화!' 그럴 때에 복음이 안 되면 세계화가 나올 수 없어요. 복음이 안되면... 그래서 어릴 때 우리 자녀들에게 이것이 안 되면 세계화가 나올 수 없어요. 간단하게 이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만은, 사실상 한 인간의 마음속에 온 세계를 품는 다는 사실 자체가 얼마나 어렵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이게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품기는커녕 내 아내도 못 품는데, 자기 자식들도 잘 못 품는데, 이게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제일 안 되는 것이 협력이 안 됩니다. 그래서 나는 미국에 그 사람들 속에서 가끔 뭘 보느냐 하면, 자기 아들이 아닌 다른 아이를 데려와서 키우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고아들을 어디다가 수출하느냐 하면, 미국으로 거의 수출 안 합니까!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게 안 되어요. 내가 낳았고 내 핏줄이 안 섞이면 절대로 안 받아들여요. 그래서 옛날에 그 뭔가 뭐 서모 그런 이야기들이 안 있습니까! 자기 핏줄이 아닌 그런 것 가지고 학대도 하고, 그렇게 때문에 많은 고통들이 있었죠. 그러니 그게 뭐냐 하면, 본래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이 뭐냐? 단일 민족! 그러고 혈통 하나! 이걸 이렇게 하면서 뭐가 안 되느냐? 다른 사람을 품지를 못해요. 우리가 어릴 때부터 이것이 잘 안되고 있습니다.
여러분 복음이 안 되면요. 복음이 안 되면 이게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정말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다 비로소 품을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사실적인 이름이 내게 역사가 되지 아니하면 다른 사람에 대해서 내가 마음 문을 열 수가 없어요. 그래서 협력사회! 협력한다! 이게 잘 안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붙잡고 먼저 협력해야 될 것이, 이것은 우리가 다락방! 그러고 복음! 이럴 때에 지금 가장 어렵고 힘든 것이 뭐냐하면, 협력이 잘 안됩니다. 그래서 목사님들이 협력이 잘 안 되는 것은 평신도를 품을 수 없어요. 이 협력이 잘 안되어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알다시피 평신도하고 목사님하고 같이 훈련받는 것이 처음에 그것이 참 어렵습니다. 잘 안됩니다. 그래서 지금도 뭐 미국에도 어려운 것이 평신도하고 목사님하고 같이 앉아있는 사실 자체가 안 되는 겁니다. 여러분 평신도하고 목사님 같이 앉아서 훈련받을 수 있다는 것은, 이건 혁명입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반드시 목사님은 따로 훈련받았습니다. 평신도 절대로 같이 안 했습니다. 그런데 다락방은 이게 뭡니까! 평신도와 완전히 섞여 가지고... 이것이 지금 이 시기에 복음이 바로 되면 뭐가 나오느냐? 협력이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나는 그 협력 속에서 뭘 말하고 싶으냐? 평신도들과 목사가 진정한 협력이 이루어 져야된다. 여러분 전도에 승리한다는 것은 이게 이루어 져야 합니다.
그래서 그런 생각을 요즘 좀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큰 교회를 건축한다 이전에 큰 교회 될 수 있는 큰그릇이 되어야 하는데 뭐가 되느냐? 평신도 복음화! 말하자면 평신도 제자화! 이게 지금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사역자가 아니다! 이래서 교구별로 좀 나누어 가지고, 이제는 뭐 지금까지는 어디 초상이 났다! 그러면 교역자들 10명이던지, 20명이던지 다 깡그리 쓸어 가지고 가는데, 이제 그래가지고 얼마나 인력이 낭비되거든요. 그래도 또 그 집안에 부담도 되고 뭐 돌 한다! 뭐 한다! 그러면 전부 또 교역자들이 다 가야 되는 겁니다. 하던 것도 다 놓고 가야돼요. 그래서 이 시간이 많이 낭비되죠.
또 그 집에서는 뭐 교역자들 한 둘 같으면 쉬운데, 뭐 열 몇이, 스물 몇이 와 놓으면 이게 먹는 것도 곤란한 겁니다. 그래서 각 교구별로 교역자, 그 다음에 장로, 그 다음에 우리 전도사님, 그 다음 평신도 사역자, 그 다음에 권찰 이래가지고 딱딱 좀 나누어 가지고 거기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집니다. 심방도 이루어지고, 그 다음 캠프도 이루어지고, 캠프도 여러분 우리 교인들이 다 합쳐 가지고 해 놓고 난 후에는 어떻게 했느냐? 그 교구에 일꾼들에게 구체적으로 맡겨지기까지가 캠프가 되어야 됩니다. 그러니까 지금 캠프를 많이 해 가지고 많이 했지만, 그 교구에 맡겨놓으면 숫자가 적어 가지고 감당을 못하는 겁니다. 그러니 막 잃어버리게 되고...
그래서 아예 그 교구에서부터 캠프부터 시작해서 전부 다 활동할 수 있도록 그렇게 좀 계획을 세워야 되겠다! 이렇게 해야 평신도가, 모든 평신도들이 협력해서 오직 복음 때문에 세계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 그렇게 좀 생각을 하고 이미 우리 교역자들은 작업을 좀 준비를 해 보라! 그랬습니다. 해 보라 그러고 다음 우리 당회 때에 구체적인 이야기가 나와 가지고 일이 이루어지고, 그래가지고 뭘 하느냐? 오직 복음에 완전 전 교회가 협력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 땅위에, 세계복음화에 놀라운 역사로 여러분과 제가 쓰여지도록 역사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될 때에 바로 뭐냐? '예배가 회복된다!' 그럴 때에 어떤 면에서 이 간단한 어떤 뭐 주일날 예배에 이것만한다! 아닙니다. 예배라는 자체가 뭡니까? 삶이 회복되는 겁니다. 예배라는 것은 삶 자체입니다. 그래서 제가 늘 그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만은, 하나의 그저 습관 속에서 중요한 습관이 뭐냐하면, 제가 앉자마자, 앉는 곳마다 저는 기도하는 습관이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앉자마자 만나자 말자 뭡니까? 하나님을 만나 가는 작업 전도입니다. 이것이 회복되었다! 하나님께서 그의 삶에 모든 축복을 주실 이유가 되는 겁니다. 그 역사가 되는 것이죠. 이것이 안 되고 난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엄청난 세계 적인 복을 내릴 수 있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간단한 말이라고 생각지 마시고 예배 회복이다! 모든 문제 회복이다! 그리고 그 예배라는 그 곳에 모든 초점을 맞추어서 우리 가정, 가족, 인간관계 모든 관계가 여기서 해결되어야 되는 겁니다. 이렇게 초점을 모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은혜 주시게 되어 있습니다. 그에게 은혜 주신다! 그가 가는 곳, 사업, 직장, 생활과 삶에 전부 은혜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성령께서 인도하시고 구체적으로 역사 하게 되어 있습니다. 한 주간 여러분 이 사실을 딱 붙잡고 예배회복! 바로 이 자리에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이 나와 같이 계십니다. 구체적인 예배회복! 예배의 자리! 예배의 승리! 그래서 여러분들이 말씀에 응답이사실적으로 역사 되는 축복과 은혜가 체험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진정한 예배의 배경
☞ 산상수훈은, 율법 시대가 끝나고 복음의 시대가 시작된다는 선언이며, 복음의 시대에 어떻게 살아가야할 것인가를 안내하는 지침입니다. 그래서 산상수훈은 삶에 관련된 기록들이 많이 언급됩니다. 그 중에서 오늘 본문에서는, 삶에 성공하고 승리할 수 있는 축복의 문이 '예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 예배는 번제를 드리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번제는 내 죄를 대신해서 짐승을 끌고 와서 짐승의 머리에 손을 얹어 나의 죄를 전가하면, 제사장이 그 짐승의 피를 흘려 죽인 후 번제단에서 태웠습니다. 이러한 번제 의식이 예배로 이어졌습니다.
☞ 그러므로, 진정한 예배가 될 수 있는 배경은, 어린 양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를 흘려 죽으신 것을 믿고 의지하여 여호와 하나님 앞에 나아오는 것입니다.
[2] 예배를 방해하는 것
☞ 인생에 아무리 많은 투자를 해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못하면 헛된 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첫 번째 방법은, 바로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나아와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도 예배를 드리기 전에 이웃간에 갈등이 있으면 먼저 가서 그것을 해결하고 오라고 말씀하실 정도로, 예배는 다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 그러므로 이렇게 중요한 예배를 방해하는 것이 있다면 제거해야 하는데, 예배를 방해하는 큰 걸림돌 중에 하나가 바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갈등입니다.
☞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바란다면, 주일 예배부터 성공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 특히 말씀을 선포하는 자와의 관계도 먼저 잘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깨닫고, 마음에 감동을 받고, 삶 속에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게 됩니다.
☞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가족들과의 관계입니다. 가족들과 가로막힌 사건들이 있으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위해서 서로 손을 잡고 사랑으로 기도하십시오. 이렇게 화합된 가족 관계 속에서 가정 다락방을 세우십시오. 예배를 통해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입을 때, 개인과 가정에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이 구체적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3] 삶으로까지 이어지는 진정한 예배의 회복
☞ 이제부터 우리의 삶은, 남을 짓누르고 일어서려는 경쟁이 아니라, 복음으로 세계를 품고 협력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차원에서, 우리 교회의 시스템도 복음을 위해서 교역자와 평신도들이 함께 협력할 수 있는 관계로 새롭게 변화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삶으로까지 이어지는 진정한 예배가 회복되어집니다.
▣ 언약 잡은 기도 ▣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어떤 인생도 가치없음을 깨닫게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께 은혜를 풍성히 받으며 삶이 변화되어지는 진정한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이웃들과 일그러진 모든 관계를 사랑으로 회복할 힘을 주시옵소서. 십자가의 사랑으로 나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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