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할 일
2004-05-14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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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26:6) 예수께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
(마 26:7)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마 26:8) 제자들이 보고 분하여 가로되 무슨 의사로 이것을 허비하느뇨
(마 26:9) 이것을 많은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거늘
(마 26:10) 예수께서 아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마 26:11)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마 26:12)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사를 위하여 함이니라
(마 26:1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하시니라
본문 말씀을 통해서 “기념할 일”이라 그렇게 제목을 삼았습니다. 본문은 상당히 제자들과 그 옆에 함께 있는 사람들의 정당한 비판을 볼 수가 있고, 또 우리 예수님이 너무 일반적인 상식과는 상관없이 한 여자가 행하는 일에 대해서 엄청난 선언을 해 오신 것이 바로 본문에 내용입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 6절에 보면,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 (마 26:7)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그랬습니다. 이 향류는 엄청나게 값이 비싼 그런 향유죠.
그러니까 이제 제자들과 다른 사람들이 보고, ‘이 향유를 팔아가지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었으면 훨씬 좋겠는데, 왜 이걸 허비하느냐?’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허비하는 것이 아니고 내 장사를 기념하기 위해서 미리 이 여자가 준비를 했다! 이 여자가 하는 일이 이 복음이 증거 되는 곳마다 전파된다! 기념되리라!’ 그렇게 선언을 했습니다. 참으로 이 복음에 깊은 비밀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요즘 조용히 옥상에 올라가서 기도하면서 주로 무슨 기도를 하느냐 하면, ‘하나님, 건강을 회복하게 해 주옵소서! 병이 낫게 해 주옵소서!’ 이런 식으로 좀 이렇게 간절히 기도하다가 어떤 마음을 갖게 되느냐 하면, ‘병이 낫는다! 건강을 회복한다!’ 그게 복음이냐? 복음입니다. 복음일수도 있고 복음입니다. 그런데 아닐 수도 있다! 왜? 진짜 복음은 그런 수준으로만이 아니거든요.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뭐 감기 치료하고, 아니면 어떤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 지셨다! 그건 아니다! 옛날에 쭉 그런 메시지를 많이 들었거든요. 그러니까 뭔가 복음에 대해서 근본적인 것에 좀 눈이 열려야 되겠다! 그런 마음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처음 초기에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만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비유입니다. 눈이 먼 사람들이 몇이 와서, 코끼리가 어떻게 생겼느냐? 배를 만져보고는 ‘큰 배같이 생겼다!’ 그 다음에 코를 만져본 사람은 ‘뭔가 이 호스같이 생겼다!’ 다리를 만져본 소경은 ‘뭔가 기둥같이 생겼다!’ 그렇게 각각 다르게 말을 했다고 그러잖아요. 그런데 그 말이 다 맞는 말인데도 또 틀리는 말입니다. 코끼리를 전체로 보면 뭐 기둥같이 생기고, 호스같이 생기고, 그런 게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다 맞는 말이지만 눈을 감고 있으니까, 구체 적으로 그 모양을 볼 수 없어서 다른 진단을 하게 되는 모습들을 보게 됩니다.
오늘날 교회 다니는 많은 사람들도 ‘이게 복음이다! 저게 복음이다! 내가 은혜 받았다! 네가 은혜 받았다!’ 이렇게 시비하는 그런 경우가 참 많습니다. 어떤 면에서 오늘 여기 보면 예수님께 하신 이 여자의 일을, ‘잘 한다, 못 한다!’ 평가도 하고, 비평도 하고, 나무라기도 하고, 또 어떤 면에서 교회와가지고 지내다보면 삐치기도 하고, 또 어떤 경우에는 싸우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좀 마음이 이상해져가지고 이리저리... 그게 전부 사실은 복음과 상관이 없는 겁니다. 어떤 면에서 복음을 모르기 때문에 오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내 주장이나, 내 의견이나, 내 생각이 그 하나의 사건을 통해서 맞다! 맞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 틀립니다. 왜? 복음은 그런 사소한 것에 메여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느끼고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그런 것에 복음은 국한 되어있지 않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왜? 주님께서 십자가 지시고, 여러분과 저를 위해서 대속해 죽으신 것은 그런 작은 것을 해결하시기 위해서 오신분이 아니다! 성경은 그 이야기입니다. 많은 경우 우리가 이 근본적인 문제를 이해하고, 깨닫지 못했을 때 오는 것이 뭐냐 하면, 교회를 오해하고, 혹은 사람들을 오해하고, 또 믿음을 오해하고, 또 그래서 자기감정이나, 자기 느낌이나, 자기 생각에 빠질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아침에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어떻게 기도했느냐 하면, ‘하나님, 정말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도록 이제 내가 어떤 모양이다! 어떤 상황이다! 어떤 여건이다! 상관없이 정말 하나님 앞에 경배할 수 있도록,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을 수 있도록 믿음 회복시켜 달라고...’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어떤 면에서 여러분들이 ‘박 목사가 믿음 회복시켜 달라 기도했다!’ 그러면 ‘목사님이 믿음이 없는가!’ 그럴지 모르지만, 진짜 뭐가 하나님 앞에, 지금까지 새삼스럽게 이런 기도를 하나님 앞에 드릴수가 있었습니다. 저는 지금가지 교회생활해오면서 물론 ‘잘 한다, 못 한다!’ 평가받을 수 있고, 비평받을 수 있고 다 맞습니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에 대해서 확실히 보고 깨닫는 이 역사와 축복이 얼마나 위대하다! 이 사실이 교회 안에서 우선이라기보다도 전부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그건 복음의 기초다! 그러기보다도 이건 복음에 전부입니다. 그러니까 복음에 기초가 아니고 복음에 완성입니다. 여러분들이 오늘 예수님이 그리스도시다! 그것은 복음에 기초다! 전부다! 복음에 완성입니다. 이 사실이 이해되어야 됩니다. 그래서 바울에 경우를 보세요. 그렇게 다니면서 병중에 넘어지기도 하고, 쓰러지기도 하고, 그 다음에 비난 받기도 하고, 핍박받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복음을 깨닫고, 복음을 이해한 바울의 고백이 뭐냐하면, ‘내가 참 복음을 바로 알아야 되겠다!’ 그러면서 복음을 바로 알고, 깨닫고 있는 것 같지만 뭐라 그랬습니까? ‘높이와 또 길이와 넓이, 그 무한한 것을 깨닫고 싶다!’ 그렇게 고백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혹시 교회 와서 이것이 복음이다! ‘아, 내가 병이 낫고 내가 이랬으니까! 그건 복음이다! 내가 구원받았다!’ 그 문제가 아니라 이겁니다. 그래서 오늘 여기 성경에서 예수님이 뭐라고 그러셨냐 하면, 이렇게 나름대로 뭔가 제자들이, 이 한 여자가 행한 일에 대해서 평가하고 비평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게 아니다!’ 그러면서 한마디 뭐라고 말씀했습니까? 향유를 머리에 기름 부은 여자를 향해서 ‘얼마나 엄청난 비밀을 속였는데,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 여자의 행한 일도 같이 전파되리라!’
그래서 제가 이 주석에 머리에 기름을 붓고 하는 이 여자의 행위가 도대체 어떤 행위이기에 이렇게 칭찬을 받느냐? 그렇게 좀 생각을 하고 찾아보았더니만 무슨 이야기를 했느냐 하면, ‘이 여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깨달았다!’ 그랬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메시아로 깨달았다! 그래서 머리에 기름을 붓고 눈물로 씻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그리스도시다! 우리가 너무 잘 아는 일이지만, 이게 지금현재 우리에게 사실이 안 되는 부분입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시다! 말은 잘 하지만 이게 실제적으로 모든 문제 해결자라는 이 선언이 사실로 와 닿지 않고, 이것이 구체적으로 우리의 개인의 생각과 심령에 와 닿지 않는 이 부분이 바로 문제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데로 왕으로 오셨습니다. 제사장으로 오셨습니다. 선지자로 오셨습니다. 여러 왕으로 오셨다. 그럴 때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피 흘려서 여러분과 저의 죄를 씻고, 그 다음에 사단의 권세로부터 해방시켜 주시고, 그 뿐 아니라 하나님을 바로 알고 만날 수 있도록 만들어주신 길을 내셨습니다. 메시아! 이 축복과 역사를 우리가 간단하게 말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복음을 알면 모든 것이 열려지게 되어있다! 복음을 알면 모든 사업과 모든 일들이 열려지게 되어있다! 보이지 않는 부분이 보이도록 되어 있다! 문제는 소경이 잘못 진단한 것은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만물을 볼 수 있는 눈이 열린다! 그래서 우리에게 말씀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 안에 모든 지혜와 지식과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이 사실이 실제와 사실로 부닥쳐 와야 됩니다. 이것이 구체적으로 이루어 져야 되는 거죠. 그래서 어쩔 때는 뭔가 이 지엽적인 문제로 나한테 문제가 있고, 나한테 사건이 생겼다! 이래서 여기에 메여가지고 어떤 생각을 하느냐 하면, ‘왜? 예수님이 그리스도시라면, 모든 문제 해결자라면, 왜, 이게 해결이 안 됩니까?’ 이런 것에 빠져가지고 근본적인 것을 놓쳐 버릴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시다! 그 속에 삼직으로 이 땅에 오셨다! 여기서 죽음과 멸망에 있는 자들을 완전히 해방시켜 주셨다! 그럴 때에 왕으로 오셨다! 창세기 3장의 문제가 해결되었다! 이건 곧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었다! 사단에 메여서 영원히 종노릇하고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들을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시므로 사단의 일을 멸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 안에 믿어진다! 믿는다! 그런 정도가 아닙니다. 사실로 자리 잡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 믿는 순간에, 내 안에 영접하는 순간에, 사단의 권세가 완전히 박살났습니다. 깨졌습니다. 더 이상 우리는 사단의 종노릇할 필요가 없습니다. 종노릇 할 이유도 없습니다. 참으로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창세기 3장에 메여서 여전히 허덕거리고 있고, 벗어났다고 하면서도 역시 그 속에서 자기중심이 되어서, 자기 생각 속에서 못 빠져나오고, 자기 판단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부분들을 우리는 너무나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이런 면만 해결 된다 그러면, 교회에 인간관계에서, 혹은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왜? 구원보다 앞설 필요가 없습니다. 구원보다 내 감정이 앞설 수 없거든요. 그래서 교회 안에서 원수 맺고, 삐치고, 서로 뭔가 이상하게 되는 것! 이것은 한마디로 말하면 구원이 안 된 사람이 하는 일이지, 구원받은 사람에게는 이런 일이 나올 수 없다! 그게 바로 성경에 이야기거든요.
우리도 모르게 구원을 받았다고 해도 소홀히 하게 되면 이런 문제가 나옵니다. 그 문제뿐만이 아니죠. 십자가에서 피 흘리고 죽으셔서 여러분과 저에게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재앙과 저주를 완벽하게 해결하셨습니다. 여러분 ‘재앙에서부터 해결하셨다!’ 이게 간단한말 같지만, 엄청난 일 아닙니까! 여러분 지금 조금만 살펴보면 우리 개인이나 우리 가문을 통해서 윗대로부터 오는 흑암과 재앙의 사실들이 얼마나 공포스러운 일입니까? 적은 것 큰 것 말할 수 없이 공포스럽다는 정도가 아닙니다. 거기에 지금도 현실적으로 메여서, 노예에서 놓여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는 벗어났다!’고 그러면서도 벗어난 것이 아니라, 더 거기에 메이고 있습니다. 흔히 많이들은 이야기입니다 만은,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죠. 아들이 아버지를 비판하면서 ‘절대로 나는 아버지를 안 담는다고, 나는 아버지와 같이 안 된다고...’ 그러면서도 그 아들이 얼마 안 되어서 커가는 모습을 보면, 지아비하고 똑같습니다. 그게 영적인 문제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이 말이 조금 더 나아가서 어떤 문제가 있느냐 하면, 벗어났다고 하지만 재앙에 근본 사단의 모습을 닮아 가고 있는 것이 많은 경우 있습니다. 그래서 한번 받아합시다. “지 애비 모습과 똑같았다!”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 모습이에요. 우리가 놀라야 됩니다. 교회 생활하면서, 가정 생활하면서, 어떤 문제와 사건이 생길 때에 우리도 모르게, 우리 자신도 모르게 지아비를 닮아가 버립니다. 우리 참 아버지는 하나님이신데, 옛날 ‘아빠, 아버지!’ 그러고 따라다니던 그것이 체질이 되어가지고, 문제만 생겼다 그러면 뭡니까? 사단의 종노릇 하던 때로 돌아가 버립니다.
문제 안 생길 때는 그래도 좀 점잖고 괜찮아요. 뭐 그래도 체면도 차리고 그러는데, ‘문제만 생겼다!’ 그러면 본성이 어디로 가느냐? 옛날로 돌아가 버립니다. 창세기 3장에서 벗어났다! 저주와 재앙에서 벗어났다! 말로 하지만 이것이 사실로 뿌리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현실적으로 사단에게 속고 마는 모든 부분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우리는 근본 문제라고 말하지만 이건 근원적인 문제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이게 되었다! 저게 되었다! 이 문제 해결되었다! 저 문제 해결되었다! 모든 문제 해결되었다!’ 그런 부분이 아닙니다. 엄청난 비밀과 넓이와 높이와 무한한 하나님의 지혜와 그 역사가 그리스도 안에 포함되어 있는 겁니다. 이 사실이 누려지고 깨달아 진다! 그것은 시간 갈수록 ‘나날이 눈이 열린다!’ 그럴 때에 뭡니까? ‘모든 것이 열리도록 되어 있다!’ 그 이야기 아닙니까!
그래서 저는 시간이 가면서 무슨 확신보다도 마음에 들어오는 것이 뭐냐하면 모든 사업하는 사람들, 돈벌이 하는 사람들, 정치하는 사람들, 다른 게 아닙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말한 것이지만, ‘산업선교, 산업선교!’ 그렇게 말하고 있지만, 산업을 하는 분들이 제일 눈이 어두워진 것 같아요. 정말 복음 딱 붙들고 복음이 이해되는 만큼 뭐냐? 눈이 열려집니다. 그러니 열리게 되어있는 것이 바로 복음이다. 그 이야기입니다. 여러분들이 뭐 ‘전도가 되면 모든 것이 된다!’ 그런 것이 그냥 나오는 말이 아닙니다. ‘전도가 된다!’ 그럴 때에 복음이 자리 잡게 되는 그 순간에 모든 일상생활과 삶이 열려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응답받았다, 응답 못 받았다!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예수 그리스도 깨닫고 이해되는 순간에 응답받았다, 안 받았다! 상관없이 열려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거기에 뭡니까? 열매라는 것은 저절로 따라 나오게 되어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보게 됩니다. 사실은 지금 저주와 재앙이 완전히 해결되었다! 말이 그렇죠. 엄청난 문제 아닙니까? 궁극적으로 여러분과 저는 죽으면 어디로 가요? 천국으로 갑니다. 여러분 ‘죽으면 지옥자식들이 천국 간다!’ 엄청난 이야기 아닙니까! 이런 축복과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서도 이 사실을 우리는 인식이 안 되어요. 우리는 이게 누려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 와서도, 교회 와서 앉아 있는, 이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자리에 가치가 얼마나 크고 위대하다는 사실이 기쁨으로 나오는 겁니다. 이게 감사로 나오는 겁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뭐 헌금을 많이 했다, 적게 했다! 우리가 이제 건축헌금을 할 때에 건축헌금을 뭐 많이 냈다, 못 냈다! 혹시 그런 어떤 감정이 마음에 있을지 모르지만, 여러분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만약에 이것이 ‘이해되고 깨닫게 된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안에 모든 것이 있구나!’ 이렇게 될 때는 하나도... ‘내가 얼마 했다, 못했다! 어느 정도 어느 수준에 왔다, 못 왔다!’ 그런 부분이 아닙니다.
여러분 신분은 엄청난 신분입니다. 여러분 신분은 엄청난 신분정도가 아니고, 이건 도저히... 어쩌다가 내가 이런 축복과 이런 은혜 속에 세워졌는가 하는 이런 감격과 감탄이 나와야 되는 겁니다. 느낌으로 ‘아!’ 감상에 젖어서 한다! 그런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들 정말 내가 어쩌다가 이 자리에 왔지만, 이 자리에 나와 있는 감격과 감탄이 진짜 나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모든 문제 해결자구나! 사단의 왕권에서부터 완전히 해방하였습니다. 저주와 재앙 속에 도저히 벗어날 수 없었는데, 완벽하게 해결되었습니다.
여러분 안 믿는 사람들이 점치고, 안 믿는 사람들이 굿하고 하는 것! 그걸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안 믿는 사람들이 이상한 신을 받아가지고 무당이 되는 것! 그걸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잘 알잖아요. 예수 믿지 않는, 특별히 우리가 전도하면서 무당집을 찾았을 때에 하는 말이, ‘이 무당의 직업을 자식들에게도 넘겨주고 싶으냐?’ ‘아무도 넘겨주고 싶지 않다!’고 그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내가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교회까지 왔고, 어떤 사람은 신학교까지 갔지만 안 되더라!’ 이겁니다. 할 수 없어서 그런 속에 빠져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 바로 붙잡고 하나님 앞에 설 때에 엄청난 파워와 능력으로 그 속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해방되는 부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바꾸어져서 하나님의 그 영광스러운 역사에 서게 된 자녀의 감격이 이루어질 수 있음을 말씀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저는 어쩌다가 부모가 예수를 믿었고, 장로로서 자랐고, 그래서 교회 다녔고, 그러다가 또 한때는 좀 객기가 생겨가지고 뭐 ‘믿음이 뭐냐?’ 고민하면서 또 다른 데로 갔다가, 그래서 돌아와 가지고 또 목사가 되었습니다. 우연히 된 것처럼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어떤 때는 ‘주여, 어쩌다가 나 같은 사람이 목사가 되었습니까! 어쩌다가 나 같은 사람이 집사가 되었습니까! 어쩌다가 나 같은 사람이 송현 교회 성도가 되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나에게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사실이 보여 지게 되었습니까!’ 이걸 가지고 성경은 뭡니까? 은혜라 그랬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이 자리에 앉아서 한번 다시 확인해야 됩니다. ‘예수 믿고 이게 되었으니, 참 감사하구나! 예수 믿고 이렇게 되었으니, 참 좋구나! 예수 믿고 이 병이 치유되었으니, 참 좋구나! 예수 믿고 이 일이 해결되었으니, 좋구나!’ 예수 그리스도 그 적은 문제 때문에 십자가에 죽으시지 않았습니다. 그보다 더 큰 근본적인 인생의 문제, 인간의 모든 고민하는 문제,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흑암에 권세로부터 완벽하게 해방시켰습니다.
그래서 여러분과 저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았습니다. 누리는 만큼 눈이 열립니다. 사업에 눈이 열립니다. 직장에 눈이 열립니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나갈 때에 모든 생애를 하나님 앞에 드리고 싶습니다. 바울처럼 ‘병이 나았다, 안 나았다!’가 문제가 아니더라 구요. 나는 여기에 상당히 많은 비중을 가지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병이 나았다, 안 나았다!’ 문제가 아니더라 구요. 아침에 부은 발을 주무르며, ‘하나님 왜 또 부었습니까!’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아침에 이 마음이 들면서, ‘맞다! 구원 받았다! 문제가 아니다!’ 바울이 넘어지며 쓰러지면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는 다른 것은 생각도 안하려고 그랬습니다. 왜? 그 안에는 모든 것이 있기 때문에, 바울의 고백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예수를 조금 바로 이해를 못하게 될 때에, 제자들처럼 이 축복된, 기념할 수밖에 없는 한 여인의 신앙을 오해할 수 있습니다. 신앙의 사실자체를 오해할 수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항상 너희들과 함께 있으니까 언제든지 도와줄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너희와 함께 있지 않다!’ 비밀이죠.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고, 또 천국 올라가시고, 하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면서 성령으로 우리에 오실 사실을 미리 예언하신 겁니다. ‘이 축복된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 이 여자도 기념되리라! 이 여자의 모든 일이 기념되리라!’ 말씀했습니다.
오늘 강조합니다. 여러분의 신앙이 작은 것 해결한 신앙으로 끝나지 마시고, 이 여인처럼 참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 그래서 나와 여러분에게 길이 되시고, 생명 되시고, 진리 되는 예수 그리스도! 어떤 문제 때문에 넘어지고 쓰러지는, 감정에 메여서 허덕거리는 것이 아니라! 이것과 비교될 수 없는 엄청난 축복된 문제, 근본적인 모든 문제를 해결하신 예수 그리스도! 그래서 모든 해결자라는 것이 말로만 아니라, 사실로 오늘 여러분과 제게 누려지는 실제와 사실이 되고, 이 일이 어떤 감정에 메이는 적은 것이 아니라, 너무 엄청난 비밀로 와 있다는 사실을 보는 눈이 열려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사람들은 각자 나름대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① 제자들이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붓는 여자의 행동에 대해서 정당한 비판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② 예수님은 그 여자가 하는 일에 대해서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든 너무나도 엄청난 선언을 하셨습니다.
③ 예수님의 선언 속에는 복음에 대한 놀라운 깊이가 담겨져 있습니다.
④ 눈이 먼 사람들 몇 명이 코끼리를 만져보고, 코끼리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을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⑤ 각자 만지는 부위에 따라서 각각 코끼리에 대해서 서로 다르게 말을 했습니다.
⑥ 그들의 말은 각각 다 맞는 말이지만, 눈을 감고 있으니까 전체적인 모습을 볼 수 없어서 올바른 결론을 내릴 수 없었습니다.
⑦ 예수님께 행한 여자의 일에 대해서 제자들이 평가하는 것은 복음을 잘 모르고 자기들 나름대로 한 평가였습니다.
▣ 복음은 사소한 것에 매여 있지 않습니다.
① 복음은 사소한 것에 매여 있지 않습니다.
②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대속해서 죽으신 것은 사소한 것을 해결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③ 이러한 근본적인 사실을 잘 모를 때, 교회에서 많은 오해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④ 우리는 진실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을 수 있는 근본적인 믿음을 회복시켜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⑤ 교회 안에서는 복음에 대해서 확실히 보고 깨닫는 것이 전부입니다.
⑥ “예수님이 그리스도시다”라는 것은 복음의 전부입니다.
⑦ 바울은 그렇게 많이 다니면서 병중에 넘어지고, 쓰러지고, 비난받고, 핍박받으면서도 복음을 더욱 깨닫고자 했습니다.
⑧ 바울은 복음의 높이와 깊이와 넓이를 깨닫고 싶다고 고백했습니다.
▣ 여자의 행동은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고백한 것이었습니다.
① 예수님은 여자의 행동에 대한 제자들의 평가가 합당하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② 예수님은 여자의 행동의 깊은 의미를 아시고, 그 일을 영원토록 기념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③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부은 여자의 행동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시라는 것을 실제로 나타낸 것입니다.
▣ 예수 그리스도 안에 모든 것이 있음을 볼 수 있는 눈이 열려야 합니다.
① 예수님께서 하신 왕, 제사장, 선지자의 위대한 일을 간단한 말로 끝낼 것이 아닙니다.
② 복음을 진실로 안다면 모든 것이 열리게 되어 있습니다.
③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만물을 볼 수 있는 눈이 열립니다.
④ 예수 그리스도 안에 모든 보화와 보물이 감추어져 있다는 것이 실제와 사실로 와 닿아야 합니다.
⑤ 사소한 문제에 매여 근본적인 것을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구원하신 사실이 가장 앞서야 합니다.
①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으로 오셔서 창세기 3장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② 사단을 깨뜨리신 것이 내 안에 사실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③ 많은 경우 자신의 생각과 판단에 빠져 있어서 인간 관계에서 문제들이 생겨납니다.
④ 구원보다 나의 감정이 앞설 수 없습니다.
⑤ 구원을 받지 못했거나, 구원을 소홀히 하면 감정이 앞서는 문제가 생겨납니다.
▣ 죄된 본성으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① 윗대로부터 내려오는 흑암의 세력들이 공포스럽게 우리의 삶을 짓누르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② 아들이 아버지를 비판하면서 아버지를 절대로 닮지 않겠다고 하면서 결국은 아버지와 똑같게 됩니다.
③ 더 나아가 재앙의 근본인 사단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습니다.
④ 교회 생활과 가정 생활에서 문제가 생기면 본성적으로 사단의 모습을 쫓아갑니다.
⑤ 저주와 재앙에서 벗어났다고 하지만 실제적으로 죄된 본성적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⑥ 사업하는 사람의 눈이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도 어두워진 것 같습니다.
⑦ 복음은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⑧ 복음이 자리 잡게 되는 순간에 일상 생활과 삶이 열려집니다.
⑨ 복음이 자리 잡는 삶 속에서 열매가 따라옵니다.
▣ 구원의 축복을 실제로 누리는 눈이 열려야 합니다.
① 죽으면 천국 간다는 것은 놀라운 축복입니다.
② 구원의 축복을 말로는 하지만 사실적으로도 기쁨과 감사함으로 인식되어야 합니다.
③ 예수 그리스도 안에 모든 것이 있다고 확인될 때는 건축 헌금을 얼마나 했느냐가 문제 되지 않습니다.
④ 예배의 자리에 와 있다는 것에서 감사와 감격이 터져 나와야 합니다.
⑤ 어쩌다가 나같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믿을 수 있게 되었습니까?
⑥ 구원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의 고백이 참으로 감사할 일입니다.
⑦ 예수 그리스도는 사소한 문제 때문에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⑧ 인생이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죄와 흑암의 세력으로부터 해방시키는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⑨ 병이 나았다, 낫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⑩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모든 것이 있기 때문에 그분 한 분 만으로 행복할 수 있습니다.
⑪ 복음을 잘 몰라서 제자들이 여인의 행동을 잘못 평가한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⑫ 예수님은 자신을 그리스도로 고백한 여인의 행동을 영원히 기념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⑬ 나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실제로 누리는 눈이 열려지기를 축복합니다.
(마 26:7)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마 26:8) 제자들이 보고 분하여 가로되 무슨 의사로 이것을 허비하느뇨
(마 26:9) 이것을 많은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거늘
(마 26:10) 예수께서 아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마 26:11)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마 26:12)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사를 위하여 함이니라
(마 26:1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하시니라
본문 말씀을 통해서 “기념할 일”이라 그렇게 제목을 삼았습니다. 본문은 상당히 제자들과 그 옆에 함께 있는 사람들의 정당한 비판을 볼 수가 있고, 또 우리 예수님이 너무 일반적인 상식과는 상관없이 한 여자가 행하는 일에 대해서 엄청난 선언을 해 오신 것이 바로 본문에 내용입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 6절에 보면,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 (마 26:7)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그랬습니다. 이 향류는 엄청나게 값이 비싼 그런 향유죠.
그러니까 이제 제자들과 다른 사람들이 보고, ‘이 향유를 팔아가지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었으면 훨씬 좋겠는데, 왜 이걸 허비하느냐?’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허비하는 것이 아니고 내 장사를 기념하기 위해서 미리 이 여자가 준비를 했다! 이 여자가 하는 일이 이 복음이 증거 되는 곳마다 전파된다! 기념되리라!’ 그렇게 선언을 했습니다. 참으로 이 복음에 깊은 비밀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요즘 조용히 옥상에 올라가서 기도하면서 주로 무슨 기도를 하느냐 하면, ‘하나님, 건강을 회복하게 해 주옵소서! 병이 낫게 해 주옵소서!’ 이런 식으로 좀 이렇게 간절히 기도하다가 어떤 마음을 갖게 되느냐 하면, ‘병이 낫는다! 건강을 회복한다!’ 그게 복음이냐? 복음입니다. 복음일수도 있고 복음입니다. 그런데 아닐 수도 있다! 왜? 진짜 복음은 그런 수준으로만이 아니거든요.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뭐 감기 치료하고, 아니면 어떤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 지셨다! 그건 아니다! 옛날에 쭉 그런 메시지를 많이 들었거든요. 그러니까 뭔가 복음에 대해서 근본적인 것에 좀 눈이 열려야 되겠다! 그런 마음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처음 초기에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만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비유입니다. 눈이 먼 사람들이 몇이 와서, 코끼리가 어떻게 생겼느냐? 배를 만져보고는 ‘큰 배같이 생겼다!’ 그 다음에 코를 만져본 사람은 ‘뭔가 이 호스같이 생겼다!’ 다리를 만져본 소경은 ‘뭔가 기둥같이 생겼다!’ 그렇게 각각 다르게 말을 했다고 그러잖아요. 그런데 그 말이 다 맞는 말인데도 또 틀리는 말입니다. 코끼리를 전체로 보면 뭐 기둥같이 생기고, 호스같이 생기고, 그런 게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다 맞는 말이지만 눈을 감고 있으니까, 구체 적으로 그 모양을 볼 수 없어서 다른 진단을 하게 되는 모습들을 보게 됩니다.
오늘날 교회 다니는 많은 사람들도 ‘이게 복음이다! 저게 복음이다! 내가 은혜 받았다! 네가 은혜 받았다!’ 이렇게 시비하는 그런 경우가 참 많습니다. 어떤 면에서 오늘 여기 보면 예수님께 하신 이 여자의 일을, ‘잘 한다, 못 한다!’ 평가도 하고, 비평도 하고, 나무라기도 하고, 또 어떤 면에서 교회와가지고 지내다보면 삐치기도 하고, 또 어떤 경우에는 싸우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좀 마음이 이상해져가지고 이리저리... 그게 전부 사실은 복음과 상관이 없는 겁니다. 어떤 면에서 복음을 모르기 때문에 오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내 주장이나, 내 의견이나, 내 생각이 그 하나의 사건을 통해서 맞다! 맞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 틀립니다. 왜? 복음은 그런 사소한 것에 메여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느끼고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그런 것에 복음은 국한 되어있지 않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왜? 주님께서 십자가 지시고, 여러분과 저를 위해서 대속해 죽으신 것은 그런 작은 것을 해결하시기 위해서 오신분이 아니다! 성경은 그 이야기입니다. 많은 경우 우리가 이 근본적인 문제를 이해하고, 깨닫지 못했을 때 오는 것이 뭐냐 하면, 교회를 오해하고, 혹은 사람들을 오해하고, 또 믿음을 오해하고, 또 그래서 자기감정이나, 자기 느낌이나, 자기 생각에 빠질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아침에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어떻게 기도했느냐 하면, ‘하나님, 정말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도록 이제 내가 어떤 모양이다! 어떤 상황이다! 어떤 여건이다! 상관없이 정말 하나님 앞에 경배할 수 있도록,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을 수 있도록 믿음 회복시켜 달라고...’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어떤 면에서 여러분들이 ‘박 목사가 믿음 회복시켜 달라 기도했다!’ 그러면 ‘목사님이 믿음이 없는가!’ 그럴지 모르지만, 진짜 뭐가 하나님 앞에, 지금까지 새삼스럽게 이런 기도를 하나님 앞에 드릴수가 있었습니다. 저는 지금가지 교회생활해오면서 물론 ‘잘 한다, 못 한다!’ 평가받을 수 있고, 비평받을 수 있고 다 맞습니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에 대해서 확실히 보고 깨닫는 이 역사와 축복이 얼마나 위대하다! 이 사실이 교회 안에서 우선이라기보다도 전부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그건 복음의 기초다! 그러기보다도 이건 복음에 전부입니다. 그러니까 복음에 기초가 아니고 복음에 완성입니다. 여러분들이 오늘 예수님이 그리스도시다! 그것은 복음에 기초다! 전부다! 복음에 완성입니다. 이 사실이 이해되어야 됩니다. 그래서 바울에 경우를 보세요. 그렇게 다니면서 병중에 넘어지기도 하고, 쓰러지기도 하고, 그 다음에 비난 받기도 하고, 핍박받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복음을 깨닫고, 복음을 이해한 바울의 고백이 뭐냐하면, ‘내가 참 복음을 바로 알아야 되겠다!’ 그러면서 복음을 바로 알고, 깨닫고 있는 것 같지만 뭐라 그랬습니까? ‘높이와 또 길이와 넓이, 그 무한한 것을 깨닫고 싶다!’ 그렇게 고백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혹시 교회 와서 이것이 복음이다! ‘아, 내가 병이 낫고 내가 이랬으니까! 그건 복음이다! 내가 구원받았다!’ 그 문제가 아니라 이겁니다. 그래서 오늘 여기 성경에서 예수님이 뭐라고 그러셨냐 하면, 이렇게 나름대로 뭔가 제자들이, 이 한 여자가 행한 일에 대해서 평가하고 비평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게 아니다!’ 그러면서 한마디 뭐라고 말씀했습니까? 향유를 머리에 기름 부은 여자를 향해서 ‘얼마나 엄청난 비밀을 속였는데,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 여자의 행한 일도 같이 전파되리라!’
그래서 제가 이 주석에 머리에 기름을 붓고 하는 이 여자의 행위가 도대체 어떤 행위이기에 이렇게 칭찬을 받느냐? 그렇게 좀 생각을 하고 찾아보았더니만 무슨 이야기를 했느냐 하면, ‘이 여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깨달았다!’ 그랬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메시아로 깨달았다! 그래서 머리에 기름을 붓고 눈물로 씻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그리스도시다! 우리가 너무 잘 아는 일이지만, 이게 지금현재 우리에게 사실이 안 되는 부분입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시다! 말은 잘 하지만 이게 실제적으로 모든 문제 해결자라는 이 선언이 사실로 와 닿지 않고, 이것이 구체적으로 우리의 개인의 생각과 심령에 와 닿지 않는 이 부분이 바로 문제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데로 왕으로 오셨습니다. 제사장으로 오셨습니다. 선지자로 오셨습니다. 여러 왕으로 오셨다. 그럴 때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피 흘려서 여러분과 저의 죄를 씻고, 그 다음에 사단의 권세로부터 해방시켜 주시고, 그 뿐 아니라 하나님을 바로 알고 만날 수 있도록 만들어주신 길을 내셨습니다. 메시아! 이 축복과 역사를 우리가 간단하게 말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복음을 알면 모든 것이 열려지게 되어있다! 복음을 알면 모든 사업과 모든 일들이 열려지게 되어있다! 보이지 않는 부분이 보이도록 되어 있다! 문제는 소경이 잘못 진단한 것은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만물을 볼 수 있는 눈이 열린다! 그래서 우리에게 말씀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 안에 모든 지혜와 지식과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이 사실이 실제와 사실로 부닥쳐 와야 됩니다. 이것이 구체적으로 이루어 져야 되는 거죠. 그래서 어쩔 때는 뭔가 이 지엽적인 문제로 나한테 문제가 있고, 나한테 사건이 생겼다! 이래서 여기에 메여가지고 어떤 생각을 하느냐 하면, ‘왜? 예수님이 그리스도시라면, 모든 문제 해결자라면, 왜, 이게 해결이 안 됩니까?’ 이런 것에 빠져가지고 근본적인 것을 놓쳐 버릴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시다! 그 속에 삼직으로 이 땅에 오셨다! 여기서 죽음과 멸망에 있는 자들을 완전히 해방시켜 주셨다! 그럴 때에 왕으로 오셨다! 창세기 3장의 문제가 해결되었다! 이건 곧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었다! 사단에 메여서 영원히 종노릇하고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들을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시므로 사단의 일을 멸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 안에 믿어진다! 믿는다! 그런 정도가 아닙니다. 사실로 자리 잡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 믿는 순간에, 내 안에 영접하는 순간에, 사단의 권세가 완전히 박살났습니다. 깨졌습니다. 더 이상 우리는 사단의 종노릇할 필요가 없습니다. 종노릇 할 이유도 없습니다. 참으로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창세기 3장에 메여서 여전히 허덕거리고 있고, 벗어났다고 하면서도 역시 그 속에서 자기중심이 되어서, 자기 생각 속에서 못 빠져나오고, 자기 판단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부분들을 우리는 너무나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이런 면만 해결 된다 그러면, 교회에 인간관계에서, 혹은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왜? 구원보다 앞설 필요가 없습니다. 구원보다 내 감정이 앞설 수 없거든요. 그래서 교회 안에서 원수 맺고, 삐치고, 서로 뭔가 이상하게 되는 것! 이것은 한마디로 말하면 구원이 안 된 사람이 하는 일이지, 구원받은 사람에게는 이런 일이 나올 수 없다! 그게 바로 성경에 이야기거든요.
우리도 모르게 구원을 받았다고 해도 소홀히 하게 되면 이런 문제가 나옵니다. 그 문제뿐만이 아니죠. 십자가에서 피 흘리고 죽으셔서 여러분과 저에게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재앙과 저주를 완벽하게 해결하셨습니다. 여러분 ‘재앙에서부터 해결하셨다!’ 이게 간단한말 같지만, 엄청난 일 아닙니까! 여러분 지금 조금만 살펴보면 우리 개인이나 우리 가문을 통해서 윗대로부터 오는 흑암과 재앙의 사실들이 얼마나 공포스러운 일입니까? 적은 것 큰 것 말할 수 없이 공포스럽다는 정도가 아닙니다. 거기에 지금도 현실적으로 메여서, 노예에서 놓여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는 벗어났다!’고 그러면서도 벗어난 것이 아니라, 더 거기에 메이고 있습니다. 흔히 많이들은 이야기입니다 만은,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죠. 아들이 아버지를 비판하면서 ‘절대로 나는 아버지를 안 담는다고, 나는 아버지와 같이 안 된다고...’ 그러면서도 그 아들이 얼마 안 되어서 커가는 모습을 보면, 지아비하고 똑같습니다. 그게 영적인 문제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이 말이 조금 더 나아가서 어떤 문제가 있느냐 하면, 벗어났다고 하지만 재앙에 근본 사단의 모습을 닮아 가고 있는 것이 많은 경우 있습니다. 그래서 한번 받아합시다. “지 애비 모습과 똑같았다!”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 모습이에요. 우리가 놀라야 됩니다. 교회 생활하면서, 가정 생활하면서, 어떤 문제와 사건이 생길 때에 우리도 모르게, 우리 자신도 모르게 지아비를 닮아가 버립니다. 우리 참 아버지는 하나님이신데, 옛날 ‘아빠, 아버지!’ 그러고 따라다니던 그것이 체질이 되어가지고, 문제만 생겼다 그러면 뭡니까? 사단의 종노릇 하던 때로 돌아가 버립니다.
문제 안 생길 때는 그래도 좀 점잖고 괜찮아요. 뭐 그래도 체면도 차리고 그러는데, ‘문제만 생겼다!’ 그러면 본성이 어디로 가느냐? 옛날로 돌아가 버립니다. 창세기 3장에서 벗어났다! 저주와 재앙에서 벗어났다! 말로 하지만 이것이 사실로 뿌리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현실적으로 사단에게 속고 마는 모든 부분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우리는 근본 문제라고 말하지만 이건 근원적인 문제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이게 되었다! 저게 되었다! 이 문제 해결되었다! 저 문제 해결되었다! 모든 문제 해결되었다!’ 그런 부분이 아닙니다. 엄청난 비밀과 넓이와 높이와 무한한 하나님의 지혜와 그 역사가 그리스도 안에 포함되어 있는 겁니다. 이 사실이 누려지고 깨달아 진다! 그것은 시간 갈수록 ‘나날이 눈이 열린다!’ 그럴 때에 뭡니까? ‘모든 것이 열리도록 되어 있다!’ 그 이야기 아닙니까!
그래서 저는 시간이 가면서 무슨 확신보다도 마음에 들어오는 것이 뭐냐하면 모든 사업하는 사람들, 돈벌이 하는 사람들, 정치하는 사람들, 다른 게 아닙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말한 것이지만, ‘산업선교, 산업선교!’ 그렇게 말하고 있지만, 산업을 하는 분들이 제일 눈이 어두워진 것 같아요. 정말 복음 딱 붙들고 복음이 이해되는 만큼 뭐냐? 눈이 열려집니다. 그러니 열리게 되어있는 것이 바로 복음이다. 그 이야기입니다. 여러분들이 뭐 ‘전도가 되면 모든 것이 된다!’ 그런 것이 그냥 나오는 말이 아닙니다. ‘전도가 된다!’ 그럴 때에 복음이 자리 잡게 되는 그 순간에 모든 일상생활과 삶이 열려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응답받았다, 응답 못 받았다!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예수 그리스도 깨닫고 이해되는 순간에 응답받았다, 안 받았다! 상관없이 열려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거기에 뭡니까? 열매라는 것은 저절로 따라 나오게 되어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보게 됩니다. 사실은 지금 저주와 재앙이 완전히 해결되었다! 말이 그렇죠. 엄청난 문제 아닙니까? 궁극적으로 여러분과 저는 죽으면 어디로 가요? 천국으로 갑니다. 여러분 ‘죽으면 지옥자식들이 천국 간다!’ 엄청난 이야기 아닙니까! 이런 축복과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서도 이 사실을 우리는 인식이 안 되어요. 우리는 이게 누려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 와서도, 교회 와서 앉아 있는, 이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자리에 가치가 얼마나 크고 위대하다는 사실이 기쁨으로 나오는 겁니다. 이게 감사로 나오는 겁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뭐 헌금을 많이 했다, 적게 했다! 우리가 이제 건축헌금을 할 때에 건축헌금을 뭐 많이 냈다, 못 냈다! 혹시 그런 어떤 감정이 마음에 있을지 모르지만, 여러분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만약에 이것이 ‘이해되고 깨닫게 된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안에 모든 것이 있구나!’ 이렇게 될 때는 하나도... ‘내가 얼마 했다, 못했다! 어느 정도 어느 수준에 왔다, 못 왔다!’ 그런 부분이 아닙니다.
여러분 신분은 엄청난 신분입니다. 여러분 신분은 엄청난 신분정도가 아니고, 이건 도저히... 어쩌다가 내가 이런 축복과 이런 은혜 속에 세워졌는가 하는 이런 감격과 감탄이 나와야 되는 겁니다. 느낌으로 ‘아!’ 감상에 젖어서 한다! 그런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들 정말 내가 어쩌다가 이 자리에 왔지만, 이 자리에 나와 있는 감격과 감탄이 진짜 나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모든 문제 해결자구나! 사단의 왕권에서부터 완전히 해방하였습니다. 저주와 재앙 속에 도저히 벗어날 수 없었는데, 완벽하게 해결되었습니다.
여러분 안 믿는 사람들이 점치고, 안 믿는 사람들이 굿하고 하는 것! 그걸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안 믿는 사람들이 이상한 신을 받아가지고 무당이 되는 것! 그걸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잘 알잖아요. 예수 믿지 않는, 특별히 우리가 전도하면서 무당집을 찾았을 때에 하는 말이, ‘이 무당의 직업을 자식들에게도 넘겨주고 싶으냐?’ ‘아무도 넘겨주고 싶지 않다!’고 그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내가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교회까지 왔고, 어떤 사람은 신학교까지 갔지만 안 되더라!’ 이겁니다. 할 수 없어서 그런 속에 빠져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 바로 붙잡고 하나님 앞에 설 때에 엄청난 파워와 능력으로 그 속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해방되는 부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바꾸어져서 하나님의 그 영광스러운 역사에 서게 된 자녀의 감격이 이루어질 수 있음을 말씀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저는 어쩌다가 부모가 예수를 믿었고, 장로로서 자랐고, 그래서 교회 다녔고, 그러다가 또 한때는 좀 객기가 생겨가지고 뭐 ‘믿음이 뭐냐?’ 고민하면서 또 다른 데로 갔다가, 그래서 돌아와 가지고 또 목사가 되었습니다. 우연히 된 것처럼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어떤 때는 ‘주여, 어쩌다가 나 같은 사람이 목사가 되었습니까! 어쩌다가 나 같은 사람이 집사가 되었습니까! 어쩌다가 나 같은 사람이 송현 교회 성도가 되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나에게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사실이 보여 지게 되었습니까!’ 이걸 가지고 성경은 뭡니까? 은혜라 그랬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이 자리에 앉아서 한번 다시 확인해야 됩니다. ‘예수 믿고 이게 되었으니, 참 감사하구나! 예수 믿고 이렇게 되었으니, 참 좋구나! 예수 믿고 이 병이 치유되었으니, 참 좋구나! 예수 믿고 이 일이 해결되었으니, 좋구나!’ 예수 그리스도 그 적은 문제 때문에 십자가에 죽으시지 않았습니다. 그보다 더 큰 근본적인 인생의 문제, 인간의 모든 고민하는 문제,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흑암에 권세로부터 완벽하게 해방시켰습니다.
그래서 여러분과 저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았습니다. 누리는 만큼 눈이 열립니다. 사업에 눈이 열립니다. 직장에 눈이 열립니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나갈 때에 모든 생애를 하나님 앞에 드리고 싶습니다. 바울처럼 ‘병이 나았다, 안 나았다!’가 문제가 아니더라 구요. 나는 여기에 상당히 많은 비중을 가지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병이 나았다, 안 나았다!’ 문제가 아니더라 구요. 아침에 부은 발을 주무르며, ‘하나님 왜 또 부었습니까!’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아침에 이 마음이 들면서, ‘맞다! 구원 받았다! 문제가 아니다!’ 바울이 넘어지며 쓰러지면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는 다른 것은 생각도 안하려고 그랬습니다. 왜? 그 안에는 모든 것이 있기 때문에, 바울의 고백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예수를 조금 바로 이해를 못하게 될 때에, 제자들처럼 이 축복된, 기념할 수밖에 없는 한 여인의 신앙을 오해할 수 있습니다. 신앙의 사실자체를 오해할 수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항상 너희들과 함께 있으니까 언제든지 도와줄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너희와 함께 있지 않다!’ 비밀이죠.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고, 또 천국 올라가시고, 하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면서 성령으로 우리에 오실 사실을 미리 예언하신 겁니다. ‘이 축복된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 이 여자도 기념되리라! 이 여자의 모든 일이 기념되리라!’ 말씀했습니다.
오늘 강조합니다. 여러분의 신앙이 작은 것 해결한 신앙으로 끝나지 마시고, 이 여인처럼 참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 그래서 나와 여러분에게 길이 되시고, 생명 되시고, 진리 되는 예수 그리스도! 어떤 문제 때문에 넘어지고 쓰러지는, 감정에 메여서 허덕거리는 것이 아니라! 이것과 비교될 수 없는 엄청난 축복된 문제, 근본적인 모든 문제를 해결하신 예수 그리스도! 그래서 모든 해결자라는 것이 말로만 아니라, 사실로 오늘 여러분과 제게 누려지는 실제와 사실이 되고, 이 일이 어떤 감정에 메이는 적은 것이 아니라, 너무 엄청난 비밀로 와 있다는 사실을 보는 눈이 열려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사람들은 각자 나름대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① 제자들이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붓는 여자의 행동에 대해서 정당한 비판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② 예수님은 그 여자가 하는 일에 대해서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든 너무나도 엄청난 선언을 하셨습니다.
③ 예수님의 선언 속에는 복음에 대한 놀라운 깊이가 담겨져 있습니다.
④ 눈이 먼 사람들 몇 명이 코끼리를 만져보고, 코끼리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을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⑤ 각자 만지는 부위에 따라서 각각 코끼리에 대해서 서로 다르게 말을 했습니다.
⑥ 그들의 말은 각각 다 맞는 말이지만, 눈을 감고 있으니까 전체적인 모습을 볼 수 없어서 올바른 결론을 내릴 수 없었습니다.
⑦ 예수님께 행한 여자의 일에 대해서 제자들이 평가하는 것은 복음을 잘 모르고 자기들 나름대로 한 평가였습니다.
▣ 복음은 사소한 것에 매여 있지 않습니다.
① 복음은 사소한 것에 매여 있지 않습니다.
②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대속해서 죽으신 것은 사소한 것을 해결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③ 이러한 근본적인 사실을 잘 모를 때, 교회에서 많은 오해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④ 우리는 진실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을 수 있는 근본적인 믿음을 회복시켜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⑤ 교회 안에서는 복음에 대해서 확실히 보고 깨닫는 것이 전부입니다.
⑥ “예수님이 그리스도시다”라는 것은 복음의 전부입니다.
⑦ 바울은 그렇게 많이 다니면서 병중에 넘어지고, 쓰러지고, 비난받고, 핍박받으면서도 복음을 더욱 깨닫고자 했습니다.
⑧ 바울은 복음의 높이와 깊이와 넓이를 깨닫고 싶다고 고백했습니다.
▣ 여자의 행동은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고백한 것이었습니다.
① 예수님은 여자의 행동에 대한 제자들의 평가가 합당하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② 예수님은 여자의 행동의 깊은 의미를 아시고, 그 일을 영원토록 기념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③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부은 여자의 행동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시라는 것을 실제로 나타낸 것입니다.
▣ 예수 그리스도 안에 모든 것이 있음을 볼 수 있는 눈이 열려야 합니다.
① 예수님께서 하신 왕, 제사장, 선지자의 위대한 일을 간단한 말로 끝낼 것이 아닙니다.
② 복음을 진실로 안다면 모든 것이 열리게 되어 있습니다.
③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만물을 볼 수 있는 눈이 열립니다.
④ 예수 그리스도 안에 모든 보화와 보물이 감추어져 있다는 것이 실제와 사실로 와 닿아야 합니다.
⑤ 사소한 문제에 매여 근본적인 것을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구원하신 사실이 가장 앞서야 합니다.
①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으로 오셔서 창세기 3장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② 사단을 깨뜨리신 것이 내 안에 사실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③ 많은 경우 자신의 생각과 판단에 빠져 있어서 인간 관계에서 문제들이 생겨납니다.
④ 구원보다 나의 감정이 앞설 수 없습니다.
⑤ 구원을 받지 못했거나, 구원을 소홀히 하면 감정이 앞서는 문제가 생겨납니다.
▣ 죄된 본성으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① 윗대로부터 내려오는 흑암의 세력들이 공포스럽게 우리의 삶을 짓누르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② 아들이 아버지를 비판하면서 아버지를 절대로 닮지 않겠다고 하면서 결국은 아버지와 똑같게 됩니다.
③ 더 나아가 재앙의 근본인 사단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습니다.
④ 교회 생활과 가정 생활에서 문제가 생기면 본성적으로 사단의 모습을 쫓아갑니다.
⑤ 저주와 재앙에서 벗어났다고 하지만 실제적으로 죄된 본성적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⑥ 사업하는 사람의 눈이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도 어두워진 것 같습니다.
⑦ 복음은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⑧ 복음이 자리 잡게 되는 순간에 일상 생활과 삶이 열려집니다.
⑨ 복음이 자리 잡는 삶 속에서 열매가 따라옵니다.
▣ 구원의 축복을 실제로 누리는 눈이 열려야 합니다.
① 죽으면 천국 간다는 것은 놀라운 축복입니다.
② 구원의 축복을 말로는 하지만 사실적으로도 기쁨과 감사함으로 인식되어야 합니다.
③ 예수 그리스도 안에 모든 것이 있다고 확인될 때는 건축 헌금을 얼마나 했느냐가 문제 되지 않습니다.
④ 예배의 자리에 와 있다는 것에서 감사와 감격이 터져 나와야 합니다.
⑤ 어쩌다가 나같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믿을 수 있게 되었습니까?
⑥ 구원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의 고백이 참으로 감사할 일입니다.
⑦ 예수 그리스도는 사소한 문제 때문에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⑧ 인생이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죄와 흑암의 세력으로부터 해방시키는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⑨ 병이 나았다, 낫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⑩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모든 것이 있기 때문에 그분 한 분 만으로 행복할 수 있습니다.
⑪ 복음을 잘 몰라서 제자들이 여인의 행동을 잘못 평가한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⑫ 예수님은 자신을 그리스도로 고백한 여인의 행동을 영원히 기념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⑬ 나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실제로 누리는 눈이 열려지기를 축복합니다.
번호 | 제목 | 본문 | 설교일 | 첨부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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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7 |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 삿2:6-10 | 2025-03-09 | |
1476 |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 삿1:1-7 | 2025-03-02 | |
1475 |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 단12:1-4 | 2025-02-23 | |
1474 |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 단11:28-39 | 2025-02-16 | |
1473 |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 단10:10-21 | 2025-02-09 | |
1472 |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 단9:20-24 | 2025-02-02 | |
1471 |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 단8:15-27 | 2025-01-26 | |
1470 |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 단7:9-14 | 2025-01-19 | |
1469 | 자기의 하나님을 믿음이었더라 | 단6:16-28 | 2025-01-12 | |
1468 |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 단5:17-31 | 2025-01-05 | |
1467 | [2025 송구영신예배] 하나님의 유업을 이을 자 | 갈4:4-7 | 2024-12-31 | |
1466 | 땅의 모든 사람을 다스리시는 하나님 | 단4:28-37 | 2024-12-29 | |
1465 | 완전한 승리를 내 것으로 누리는 성탄 | 눅2:8-14 | 2024-12-22 | |
1464 | 언약의 역사를 계속 이어가고 계시는 하나님 | 단3:8-18 | 2024-12-15 | |
1463 | 손대지 아니한 돌 | 단2:25-35 | 2024-12-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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