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나를 따르라!(2)
2004-05-14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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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막 1:16)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막 1: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막 1:18) 곧 그물을 버려 두고 따르니라

오늘 마가복음서에서 지난주와 같이 "나를 따르라!"고 그대로 제목을 잡았습니다. 복음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내게 찾아오신 것이다!'고 그랬습니다. 종교라는 것은, 인간이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이죠. 인간이 하나님을 찾아갈 수가 전혀 없기에 찾아가는 노력을 하면 할수록 더 어려워지게 됩니다. 철학으로, 혹은 우상으로, 혹은 자기정성으로 하나님을 찾으려고 애를 쓰면 애를 쓸 수록, 또 지식으로 찾으려고 애를 쓸 수록 하나님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 성경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이 찾는다고 찾아지는 것이 아니기에, 하나님께서 자기를 우리에게 보이시고 찾아오셨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계시라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일반적인 계시를 자연계시라는 것으로, 삼라만상에, 또 인간의 양심 속에 하나님이 있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을 계시라고 합니다. 그리고 성경에 일반 계시로는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지식이 나올 수 없기에, 특별계시라고 해서 성령께서, 직접 하나님이 성령으로 우리 인간을 찾아오신 것! 그래서 이 특별계시가 바로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다!' 그렇게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알아도 계시된 만큼 밖에는 더 알지 못한다!

예를 들어서 하나님이 '나를 봐라! 이만큼 봐라!' 보여주시는 그 수준밖에 인간은 하나님을 더 만나고 더 볼 수가 없습니다. 그 하나님이 바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분이 그리스도!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또 하나님이 그분을 통해서 성령으로 내 안에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함께 계시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인간을 찾아오시는데, 그 다음부터는 우리가 그저 하나님이 찾아오셨다는 것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찾아오시고 난 후에는 내가 하나님을 어떻게 한다 구요? 따라 가야 합니다. 그것이 신앙 생활이라고 그랬습니다. 내가 노력해서 믿는 게 아니라 내가 하나님을 따라가는 겁니다.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이다!

특별히 따라가는 것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지난주에 하나님을 바로 따라가고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따라갈 수 있기 위해서는 문화권이 바로 형성이 되어야 됩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의식구조들이 순종적인 의식구조가 되어야 되고, 말씀 앞에 순종적인, 그 다음에 말씀을 믿는 문화! 말씀을 믿는 믿음의 문화! 그래서 제가 문화의 배경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좀 설명을 하면서 어른세대와 또 요즘 젊은이의 세대가 어떻게 다른가 하는 것을 좀 설명을 드렸습니다.

옛날에 우리가 어릴 때도 그렇고, 지금도 많은 경우 우리세대는 하나님 그러면 순종하려 합니다. 또 어른들이라면 공경하려고 하고, 그리고 권위라고 하면 그 권위에 순복하려고 그러죠. 그런데 이상하게 세대가 지나가면서, 자기중심이 되면서 문화 자체가 이상하게... 이건 문화라기보다도 뭔가 성향들이 그렇게 되어지고 있습니다. 체질들이 이것을 치료받아야 된다. 그러니 이제 치유라는 것은, 이런 면에서 치유 받는 것이다! 그래서 렘넌트를 키워야 된다는 것은, 렘넌트가 어릴 때부터 믿음의 문화가 세워지지 않으면, 믿고 싶어도 '체질이 안되니까 어렵다!' 그렇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제 이 시점에서 따른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따르는 것이냐? 일단은 우리가 뭘 인정해야 되느냐하면, 믿음이라고 그럴 때에 늘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제일 안 되는 것이 이 부분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하나님의 주권! 그러니까 성경에 말씀이 하나님의 주권으로 볼 때에 풀어집니다. 쭉 해결이 되지, 그게 안되면 너무 어렵죠. 그리고 이 말씀이, 특별히 장로교에서 특징이 뭐냐하면, 다른 교단과 다른 것이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서 성경을 해석하고 성경을 풀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조금 심한 말로 한다면 주권을 안 믿으면 이단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요즘 세대에 와서 그 주권을 안 믿는 반발 세력이 나왔던 것이, 자유주의 신 신학! 인본주의! 말하자면 자기중심적인 어떤 해석 같은 이런 것들이 많이 있었는데, 사실은 성경에서 이단이 가장 중요한 것이, 성경을 성경대로 해석하지 않는 것이 이단 중에 이단이거든요.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으로 성경을 해석해야 되는데, 이 해석이 안되니까 이단 아닌 이단이 많죠.

그래서 특별히 교단을 들어서 이상합니다 만은, 장로교의 입장에서 본다 그러면 성령주권을 믿지 않는 교단은 이단이라고 합니다. 그게 진짜 이단이다! 이렇게 되어 있는데, 그런데 그게 지금은 성경을 오히려 잘 믿으려고 하면 이단이 되는 이상한 세상이 되어 있는 것이 지금 현실적인 세상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주권으로 이해가 되어야 되는데, 그런데 그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문제가 이해가 될 때에 뭐가 이해가 되느냐하면, '하나님을 따르라! 그리스도를 따르라!'고 그럴 때에 하나님의 주권이 이해가 되어야 뭐가 나오느냐 하면, 기도라는 것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장로교에서의 특징이 뭐냐하면, 여러분들이 요즘 그렇게 교리를 많이 이야기를 안 해도 가장 중요하게 설득이 되는 거죠. 장로교 교리가 예정교리라고 그러잖아요. 예정교리! 그런데 알미니안에서는 예지, 예정! 그게 뭐냐하면, '저 사람이 잘 믿을 줄 알고 하나님이 선택했다!' 그러면 결국은 누가 주인이 되어 있어요? 잘 믿을 줄 아는 그 사람에게 주권이 있는 것이죠. 그 말이 아니고 하나님은 우리를 뽑으실 때에 예정입니다. 예정이면, '하나님이 계획하셨다!' 그런 것으로 이해가 되어야 되죠.

그래서 우리가 잘 아는 데로, 성경에서 창세 전에 우리를 불렀습니다. 여러분이 나기도 전에, 창조되기도 전에 불렀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하나님이 작정하셨다!' 그럽니다. 이걸 계획하셨다! 작정하셨다! 그 다음에 불러서 우리를 나게 하시고, 현실적인 삶의 시간 속에 들어서게 되는 것을 섭리라 그러죠. 내가 나기도 전에 예정을 받았다가 나서, 그 다음에 어떤 시점에서 예수 믿고 영접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구체적인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게 될 때에는, '섭리 속에 들어갔다!' 그렇게 이해를 하게 됩니다.

그러면 작정과 섭리! 이 모든 것이 어디로 합쳐졌느냐? 하나님이 여러분과 저를, 시작하신 이도 하나님이시요 그 시작을 완성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일단 우리를 선택하실 때에, 작정 하셔서 여러분 섭리 속에 불렀을 때에, 반드시 하나님은 어느 목적을 향해서 가느냐? 반드시 영광의 목적, 축복과 은혜의 목적을 향해서 가게 됩니다. 그 하나님은 선택한 백성들을 기어코 인도해 주시죠. 이것이 여러분과 제가 믿는 믿음의 특징입니다.

그러면 이 믿음의 특징들을 자칫 우리는 잘못하면 이걸 바꾸어서 힘을 빼는 것으로 나갈 수 있거든요. 이 문제가 굉장히 안 믿어지니까! 자꾸만 부정하려고 애를 쓰는 것이 사람의 생각들입니다. 바울이 이 교리를 특별히 기록할 때에, 여러분과 저의 믿음에 힘을 빼려고 기록한 게 아니거든요. 강한 힘을 주시기 위해서 기록한 겁니다. '하나님이 절대적으로 선택하셨다! 그래서 끝까지 보장하신다!' 여기에 중요한 역점이 있는 것이죠. 그렇게 이 중요한 섭리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나가며,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에 의지하면 할수록 나오는 것이 기도라는 것입니다. 이걸 가지고 우리는 누림이라 그랬습니다. 기도는 누림입니다.

여러분들이 기도할 때에 지금까지는 뭘 '얻어낸다! 뺏어 낸다!'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나와 여러분을 행복하게 만드실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을 이루어 가심에 지금 그 계획이 실현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믿는 누림이 기도입니다. 기도를 하면 할수록 뭐냐하면, 뭘 얻어내는 것이 아니고, 내가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서 하나님이 나를 행복하게 이끌어 가고 계신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그러니까 그 기도하는 과정, 특별히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오늘의 어렵다! 힘들다! 문제 있다! 그것은 문제가 안되죠. 이걸 알게 되면...

여러분들을 불렀다! 하나님의 교회에 세웠다! 그럴 때에 기어코 어디까지? 행복의 목적으로 이루어 가십니다. 그 이끌어 가는 과정 속에서 슬픈 일도 있고, 괴로운 일도 있고, 믿음의 연단과정 속에서 그런 일이 있을 때에, 이것은 행복한 과정이지, 그게 저주로 어려운 것은 아니거든요. 그래서 히브리서는 그런 어려움 속에 있을 때를 징계라 그랬습니다.(히12:11) 징계는 저주가 아닙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걸 놓쳐버리면 저주로 알게 됩니다. 그래서 지금도 하나님은 성령으로 이 불행한 것 같은 순간도 함께 계십니다. 기도입니다. 그것이 임마누엘이에요.

그래서 성도들은 뭘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이것이 이해가 되면 뭐든지 감사가 나옵니다. 뭐든지 감사가 나오고, 찬송이 나오고... 그래서 감사찬송! 감사찬송에 뭘 해야 되느냐?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것이 감사찬송입니다. 그러면서 감사 찬송할 때는 가만히 있어서 되는 것이 아니고, '노력하라! 애를 써라!' 그래서 바울이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라(살전5:16-18)'는 그 속에는 노력이 따라와야 합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노력이 내 안에 연결되어야 그 사건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죠.

이건 기존에 우리가 많이 들었기 때문에 그 정도로 짚고 넘어가고 더 중요한 것이 뭐냐하면, 전도라는 것이 주님이 따라오라고 그럴 때에 가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나를 따라 오너라' 그러면 내가 너를 어떻게 한다고 했습니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전도입니다. 그런데 이 전도라는 것은 노력해서, 내가 설득해서 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많은 경우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우리가 전도캠프를 나가게 되면, 막 가서 영접시키면 기분 좋고, 영접 못시키면 힘이 쭉 빠져 가지고 낙심이 되고 그런 것이 되는데, 그게 하나님의 주권을 못 믿으면, 그게 믿어지지 않으면 전도라는 것이 안되고, 전도 자체의 의미가 벌써 없어지게 됩니다.

사도행전 13장 48절에 하나님을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그랬습니다. 작정된 자는 아직 교회에 안나왔지만, 우리가 보기에 예수 안 믿는 것 같아 보여도 그 중에 하나님이 믿기로 작정된 자가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전도는 뭐냐? 믿기로 작정된 자를 찾아내면 되는 겁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기로 작정되지 않고, 하나님을 믿기로 계획되지 않은 그 사람에게는 아무리 가도 소용이 없어요. 그러니까 완전히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하나님의 작정된 자를 믿게 하는 것이 전도인데, 하나님께서 나와 여러분에게, 예수께서 '나를 따라 오라!' 그러고, 따라오게 될 때에, '내가 너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그 길이 바로 전도의 길입니다. 전도의 길은 전도를 많이 한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작정된 자를 찾아내면 됩니다. 또 찾아내는 것조차도 누가 해야 됩니까? 하나님이 하셔야 돼요.

그래서 성경에 믿음을 선물이라고 했습니다.(엡2:8) 믿음을 선물이라고 그랬는데, 믿음도 선물이지만, 그 믿음을 주시는 분도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하십니다. 완전히 전부 하나님의 손에 다 있습니다. 그래서 '전도를 한다!' 혹은 '전도를 하기 위해서 노력한다!' 그러나 우리가 한가지 꼭 알아야 될 것은, 내가 전도를 하는 것이 아니고 주님을 따라가기만 하면 주님께서 만나게 하시고, 주님이 만나게 해 주시는 그 사람을 만날 때에 주님이 감동시켜주시고, 주님이 믿게 하시고 그렇게 하시는 것이죠. 이것이 안되면 전도가 잘해도 문제고, 못해도 문제고, 안 해도 문제고, 또 해도 문제로 늘 불안하게 되고...

그런데 이 하나님에 주권의 역사가 이해되고, 하나님이 내게 찾아 주시고 보여 주시는 사람, 만나게 하시는 사람에게 전도하게 되면 잘하던지 못하던지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의 작정된 자는 하나님이 찾아내실 것입니다. 일단 전도를 해도 행복해야 되고, 전도를 안 해도 행복해야 되고... 여러분 뭔가 신앙생활하면서 '전도 안 해도 행복하다!' 그러면 안 해도 돼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전도 해야될 사람을 만나게 해 주셨을 때에 안 하게 되면 이상하잖아요. 그래서 그 모든 과정이 하나님이 하신다! 하나님이 역사 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의 주권이 이해가 되면 우리가 전도캠프를 나가거나, 전도하거나, 전도 시스템을 짜거나, 그저 가만히 있어도 된다는 배경의 내용이 그냥 낮잠 자는 배경이 아니고, 이런 하나님의 주권에다가 중점을 둔 내용이다! 그걸 이해를 하셔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되면 더 우리 인간 삶에서 중요한 것은, 늘 우리가 듣는 이야기 아닙니까! '인간에게 일어나는 90%이상의 시험을 가만히 두면 그냥 지나가는 것이다!' 여러분이 어려움 당하고 가정에 시험을 만났을 때에 시간이 되면 지나가요. 그런데 그게 심리학적으로, 철학적으로 한 90%라고 그랬는데, 복음 안에서는 99.9% 가만히 두면 된다! 그럽니다. 전혀 괴로워 할 필요가 없다! 그냥 여러분 주변에 일어나는 사건과 일들은 그냥 가만히 두면 지나가고 해결이 되도록 되어 있어요.

뭐 예를 들어서 어린아이가 똥, 오줌을 싸지만 가만히 두면 큽니다. 그러면 해결되는 겁니다. 우리 주변에는 그런 문제들이 너무 많죠. 그런데 그것 가지고 '걱정을 한다!' 그러면 그게 이제 정신문제가 되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뭐 치유 받고, 치유한다는 것도 미리 당겨서 걱정하는 것이 전부 정신문제거든요. 거의!

그러니까 이상하게 사람의 마음에 평안을 잃게 되면, 1년 후의 될 일을 당겨서 걱정하거든요. 내일 할 일을 오늘밤에 잠도 못 자고 염려하거든요. 그래서 성경에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날의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그랬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주권에 딱 방향이 맞추어지고 그걸 믿게되면 걱정할 이유가 없어요. 하나님이 하시는 역사니까!

그런데 이 일이 일단은 이해가 되어야 현장을 본다고 하고, 현장을 보는 눈이 열려야 된다는 것을 여러 가지 시각으로 이야기하겠지만, 중요한 것이 시험이라고 그럴 때에 어려운 문제와 어려운 사건이라고 그럴 때에, 우리가 왜 그걸 미리미리 걱정하고 괴로워하느냐 하면 볼 것을 못 보기 때문입니다. 시험에 중요한 것이, 제1원인이 있고 제2원인이 있습니다. 제1원인은 시험의, 고통의 제1원인은 사단의 배경입니다. 이것은 안 보입니다. 보이지 않습니다.

그 다음에 제2원인은 뭐냐하면, 사단이 역사 하지만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고 사건을 통해서 역사하고 문제를 통해서 역사 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보통 뭘 보느냐 하면, 제1원인을 거의 못 봅니다. 거의 안보죠. 또 볼 수 있는 눈이 없으니까! 우리는 이걸 가지고 영적 문제라고 그러죠. 그러니까 뭘 가지고 염려하느냐 하면, 사실상 제1원인이 오는 것을 이걸 가지고 성경은 근본적 문제라 그랬습니다. 제2원인은 사단을 통해서 터져 나오는 사건을 가지고 걱정하게 됩니다. 이건 백 번 걱정해봐도 소용없어요. 해결되는 게 아닙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건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제1원인인 거기서 나오는 문제인데...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제1원인으로 통해서 사람을 통해서 나오고, 사건을 통해서 나오고, 일을 통해서 나오고 그렇게 나오게 됩니다. 이렇게 될 때에, 교인들도 마찬가지이지만 교인이 아닌 모든 사람들은 어디에다가 초점을 맞추느냐? '이것 때문에 문제가 생겼구나! 저 사람 때문에 문제가 생겼구나! 남편 때문에 문제가 생겼구나! 아내 때문에 문제가 생겼구나! 이 일 때문에 문제가 생겼구나!' 그렇지만 우리가 뭘 봐야돼요? 그 남편과 아내와 그 일과 사건 이전에 누구입니까? 사단의 역사입니다. 성경에 전부 제1원인이 여기서 나옵니다. 이것이 보여지지 않으면 아무리 노력하고 애를 써도 해결이 안 되는 거죠.

그런데 더 문제가 뭐냐하면, 제1원인을 알고 제2원인을 안다할지라도 더 중요한 것은, 사단의 역사와 인간에게 일어나는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못 보면 불안한 겁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사단의 역사 속에 빠져 가지고, 걸핏하면 사단이라고 그러고, 사단에게 눌려 가지고 걸핏하면... 그래서 옛날에 걸핏하면 '주여' 그러면, '사단은 물러가라!' 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눌리는 겁니다. 이 복음 받고 난 후에 너무 사단을 강조해서 강조하기보다도 이게 제1원인이 이해가 되니까! 그 다음에는 사단, 사단 하다가 이게 또 뭔가 불안해 지는 겁니다. 너무 '사단!' 그러다가 사단 자체에 눌려요.

그래서 그런 이야기를 들었었습니다. 우리 헌신예배에 온 사람이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처음에는 율법으로 교인들을 눌렀는데, 복음을 깨닫고 난 후에는 복음으로 교인들을 눌렸다고 그러더라 구요. 충분히 이해가 가죠. 복음으로 해방을 받아야 되는데, 그것이 왜 그러냐 하면, 하나님의 주권이 이해가 안 되어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사단의 역사와 사건과 일을 주관하시는 누가 보여야 됩니까? 하나님의 주권이 보이게 되면 평안이 오는 겁니다. 하나님이 그것도 컨트롤 못하신다면 여러분과 저의 인생을 컨트롤 할 수 없잖아요.

그래서 어떤 학자는 뭔가 시카고에서 말의 뒷발에 채여서 큰불이 났을 때의 비유를 들면서 하나님이 말의 뒷다리를 제어 못하면 큰불이 제어가 안 되잖아요. 그러니까 적은 문제도 하나님은 주권자이십니다. 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가정에 사건과 일과 문제가 생길 때에, 제1원인자를 알면 알수록 거기에 다 눌리게 됩니다. 그런데 그 제1원인자인 사단도 어거할 수 있는 누가 보여야 됩니까? 하나님의 주권이 보이게 될 때에 평안이 옵니다. 거기에 우리가 맡길 수 있거든요.

이것이 안되니까 뭐냐하면, 불안해 지는 겁니다. 어려워지게 되고, 여러분이 지금 일어나는 모든 사건과 모든 일들의 배후에 보이지 않는 흑암의 세력이죠. 사실은 나타나는 부분은 별 문제가 아닙니다. 저는 우리 가정을 가만히 보면서 내가 우리 가정에서 하는 일이나 집안에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꼭 어디다가 초점을 맞추는가하면, '저 사람 때문에... 그래 또 저짓 한다! 또 저런 일이 생긴다!' 이렇게 되지 그렇게 하는 배경이 먼저 눈에 잘 안 들어옵니다. 문제는 그렇게 된 배경이 문제거든요. 그렇게 되는 배경이 바로 흑암에 세력입니다.

그런데 그 흑암의 세력을 또 어거 할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이 보여야,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가 보일 때에 비로소 참 평안과 안식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죠. 그러니까 우리에게 진정한 하나님의 은혜로 인도 받는다는 사실이 하나님께로부터 모든 것이 온다는 사실이 이해가 되면 뭐가 이해가 되느냐? '은혜 없이는 살 수 없구나!' 그때부터 '정말 하나님뿐이구나!' 그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누구라 그랬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그러니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그럴 때에, 그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그러면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절대적인 다스림이 이해가 되어야 돼요.

예수 그리스도 그러면서 자기 마음대로 하거든요. 예수 그리스도 그러면서 잘 믿는 것처럼 보이지만, 주 예수 그리스도 그래놓고는 자기 고집대로 생각하고, 전혀 주권에 대한 인식이 없어요. 그건 불 신앙입니다. 지금 현재 모든 교인들이 여기에 다 빠져있는 겁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말은 잘하죠. 기도도 '주 예수 그리스도!' 얼마나 잘 합니까! 아니 밤새도록 기도한다고 해도 소용없습니다. 그분의 주권이 인식이 되어야 됩니다. 이해가 되어야 됩니다. 그리고 그 주권에 내 자신을 맡길 수 있어야 하나님의 진짜 다스림에 대한 역사가 나오게 되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럴 때에 예수께서 나를 따라오라고 할 때에 간단합니다. 임마누엘입니다. 임마누엘이라고 그럴 때에 일단 '주권을 누려라!' 그걸 가지고 기도라 그랬습니다. 여러분과 저를 하나님께서 행복할 목적으로 세우시고 이걸 가지고 칼빈은 성도의 견인, 빌립보서 1장 6절에 나오는 말씀 있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루신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완전히 하나님이 이루실 것입니다. 넉넉히 이루실 것입니다. 그건 주님이 하고 계세요. 그 손에 완전히 붙잡혔습니다. 그러면 주님의 주권을 믿고, 주님의 주권을 누리는 것이 기도입니다. 뭘 달라는 것이 아니고...

그래서 우리가 기도는 내 뜻대로가 아니고, '하나님, 이렇게 해 주십시오, 저렇게 해 주십시오!' 가 아니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옵소서!' 제일 힘있는 기도입니다. 왜? 하나님의 뜻이 내게 가장 좋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는 것이 내게 가장 행복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게 기도입니다.

그 다음에 전도라고 그럴 때에 하나님의 계획된 자를 찾아내면 되는 겁니다. 그 다음에 전도 속에서 내 생활이 되는데, 우리 생활 모두가 뭐 시험이 있고, 환란이 있고, 핍박이 있고, 어려움이 있고 문제가 있다는 것을 하나님이 모르는 게 아닙니다. 다 아십니다. 또 고통이 있다! 때에 따라서는 개인적으로 특별한 어려움이 있다! 다 아시는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어떤 상황에 있던지 문제가 아닙니다. 여러분과 제게 있는 사건을 모르시는 것이 아니라 아십니다.

그러면 왜 그런 과정을 주셨느냐? 하나님이 주셨느냐? 사단이 줬느냐? 좋습니다. 어떤 면에서 어렵고 이상한 짖은 사단이 합니다. 그러나 그 사단을 컨트롤하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시면서 하나님은 여러분과 저에게 뭘 향해서 나가게 하시느냐? 행복한 목적으로,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그 목적을 향해서 계속해서 인도해 나가고 계십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작년보다 올해가 행복하십니까? 행복해야 되는데, 행복하지 않다고 믿는 그 순간도 하나님은 함께 하십니다.

이 기도 속에서 그리고 그때부터 여러분과 제게 일어나는 모든 사건 속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체적으로 믿는 주권적인 믿음이 이해가 되고, 이런 시각으로 사람을 보기 시작하게 되면 그때부터 만나게 해 주시고, 인도하시는 모든 것이 전도로 연결이 되게 되어 있습니다. 억지로 뭘 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가 전도라고 그럴 때에, 전도하라는 것보다도 자꾸 시스템을 깔라는 겁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역사입니다.

그래서 99.9%는 아무리 어렵고 문제가 와도 시험은 다 지나갑니다. 그런데 그 속에서 우리가 보는 것이 뭐냐하면, 늘 당황하고 불안해하고 하는 이유가 뭐냐하면, 제1원인자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문제가 오는 겁니다. 지금 무슨 문제가 생겼다! '근본문제로 돌아가라!'그 이야기입니다. 사건이 생기면 근본문제로 돌아가라! 그리고 그 근본문제 조차도 하나님이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적인 눈이 열렸다!' '영적'이라고 하는데, 영적이라는 이 말이 굉장한 말입니다. 이걸 모르잖아요. 이건 성도들도 잘 모르고 있습니다. 또 말을 하면서도 잘 모르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제1원인자! 그 원인자를 컨트롤하시는 분은 또 역시 누구입니까? 하나님이십니다. 이 일이 확인될수록 평안이 오게 되어있습니다. 염려할 필요가 없죠. 만약에 하나님이 그 세력을 컨트롤 할 힘이 없다! 그러면 보통문제가 아니죠. 그래서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셨느니라!(눅10:19)' 그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이 사실이 이해가 된다면 우리에게 보여지는 사건 때문에 불안해하고, 고통 해야 할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시면 순간에 바꾸어지는 문제입니다.

저는 우리 교인들의 간증 속에서 가끔 그런 이야기를 들어요. '180도로 사람이 달라진다!' 이 부분이 따라 와야 됩니다.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사람의 성격이 잘 바꾸어지는 게 아닙니다. 죽어도 안 바꾸어져요. 죽으면 바꾸어질지 모르지만, 죽어서 귀신 되어도 안 바꾸어져요. 천당 못 간다면... 제가 이렇게 겪어보니까 내 옛날버릇이 안 바뀌어져요. 이제는 됐다! 싶고 바꾸어졌다 싶은데, 사건이 하나 생기니까 똑같은 발작이 나오더라 구요. 이게 안 바꾸어집니다. 성령의 역사로 하나님이 하시면 순간입니다.

그래서 '렘넌트 체질 바꾸어라! 어릴 때 문화 바꾸어라!' 이것이 중요합니다. 믿을 수 있는 순종의 믿음! 권위의 믿음! 그것은 금방 오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어릴 때부터 바꾸어놓아야 됩니다. 그래서 어떤 교회에서 자라느냐? 어떤 가정에서 자라느냐? 중요합니다. 싸움하는 교회에서 자라느냐? 성질이 남아있어요. 자기도 모르게! 싸움하는 가정에서 자라느냐? 아이들이 자기 아버지처럼 절대로 되지 않겠다고 맹세 맹세했는데, 커가니까 똑같더라는 겁니다. 왜? 거기서 자랐어요. 체질이 그렇게 된 겁니다. 여러분 지금 왜 렘넌트가 중요하냐? 그런 이야기예요.

그래서 어느 교회에서 성장하느냐? 중요합니다. 말씀을 그대로 믿는 곳에서 자라느냐? 믿는 믿음에 문화가 형성되는 겁니다. 범사에 말씀이 떨어지면 꼬깃꼬깃 파고들고 분석하느냐?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되게 되어 있어요. 그러면 믿기가 힘들고 어려워요. 여러분 순종 안 하는 사람들이 순종 안 하고 싶어서 안 합니까? 체질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요즘 젊은 세대들도 마찬가지예요. 순종하는 체질에, 훈련배경이 안되니까! 뭐든지 일단 따지고 봐야 돼요.

그리고 자연적으로 뭐냐하면, 옛날에는 저희 형제만 해도 12명중에 몇몇은 죽고 자라기를 8명이 컸는데 요즘처럼 아이에게 맞추고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어려서 성장할 때에만 생각해도 아이들에게 주고 할게 없었어요. 자기가 찾아먹어야 되지! 저희 아버님이 천식을 앓고 계셨기에 벽장에 조청을 넣어두면 벽장에서 내가 꺼내먹어야 먹을 수 있지, 안 그러면 먹지도 못해요. 그래서 몰래 올라가서 꺼내먹다가 창문을 딛고 올라가서 창문이 부서지기도 하고, 그 다음에 어머니가 홍씨나 감 같은 걸 보리단지에 넣어두면 먹을까봐 손자국 만들어 놓고, 그러면 내가 꺼내먹어야 내가 먹는 것이지! 안 그러면 얻어먹지도 못해요.

또 그때는 어린아이들한테 주지도 않았어요. 뭐든지 있으면 '이건 아버지 드려야 된다고...' 딱 선반 위에 놔두고, 어디 모셔놓아 두고... 그리고 뒤에 감나무가 많아서 감을 저장해 놨는데, 그것도 안 줘요. 내가 내어서 먹어야지 뭐! 그러면 몰래 꺼내어 가지고, 추운 겨울에 뒷마당에 아무도 안 보는데 가서 얼른 추운데 먹고, 또 들어가서 홍시 파내고 덮어서 손자국 딱 만들어 놓고... 유달리 잘 들키는 형들이 있더라 구요. 나는 한번도 안 들켰어요.

왜 이런 말을 하느냐? 요즘처럼 그렇게 못해줍니다. 못해주니까 자기가 알아서 먹고 그래야 되죠. 그러니까 무슨 중심이 되느냐 하면, 자연적으로 뭔가 자기 이기적인 중심이 안 되더라 구요. 옛날에는 그렇게 될 수가 없어요. 늘 보는 게 '아버지부터' 그러고, '형들먼저!' 그러고, 먹는 거는 자기혼자 뒤에서 몰래 먹어도 말이나 생각만큼이라도 그렇게 돌아가야 되는 겁니다.

요즘은 어떻습니까? 아이 한둘 가지고 그냥... 자기 안 먹고 자기 남편도 안줍니다. 딱 오면 아이부터 먼저 줍니다. 그러니 아이들이 자기밖에 생각이 안 되요. 그러니 커가면서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게 잘 안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무슨 문제가 생길 때에 이기적인 생각을 갖게 되고, 오늘날 문제생기면 거의 그런 문제 아닙니까! 그리고 자기 하는 일에 고집이 꺾이게 되면 너무 크게 좌절하니까, 자살하려고 하고, 아이들이 빗나가게 되고, 어렵게 되고, 옛날에는 그런 게 어디 있습니까? 옛날에는 쫓겨 나와도 집에 기어 들어가야 하는 판에... 요즘은 아이들이 집에서 나간다 그러면 절절 맵니다.

왜 이런 말씀을 드리느냐? 세대가 달라져 버렸어요. 어떤 세대에서 자라느냐? 뭔가 의식구조가 달라져 버립니다. 생각하는 문화가 달라집니다. 어떤 가정에서 자라느냐? 의식구조와 생각이 바로 체질이 달라져 버립니다. 이것이 '말씀에 순종한다! 성경에 순종한다! 하나님 앞에 순종한다! 권위에 순종한다!' 그렇게 생각만이라도 갖고, 의식이라도 되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는 여러분이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보배입니다.

제가 지금도 뭘 느끼느냐 하면, '교단이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내가 말씀의 절대 권위 앞에서 신앙생활 했다는 것이 행복 중에 행복입니다. 여러분 교회에서도 뭔가 조직교회! 저는 우리교회를 자랑한다는 그런 마음보다도 어떤 앞뒤 순서가 맞고, 아래위 순서가 있고, 양옆에 질서가 있고, 이런 곳에서 자라나는 사람하고 그렇지 못한 교회 교인하고는 다릅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교회 교역자들을 보면서 뭘 느끼느냐하면, 제가 교역자들을 직접 뭐 다스리고 할 시간도 없잖아요. 그런데 부교역자가 여럿이 있으니까, 자기들끼리 위계질서가 있어 가지고 저절로 군기가 서요. 옛날에 형들이 많으면 자기들끼리 기합 주고 그렇잖아요. 그런데 그 중에 딱 질서가 서요.

그래서 늘 미국에 들어 갔다오면 미국에 김 목사님이 늘 부러워하는 것이, '참, 송현교회 부 목사님들 진짜 참 목사다! 그렇게 훈련을 잘 시켰느냐고...' 나는 시킨 적이 없어요. 여럿이니까 저절로 순서가 될 거 아닙니까! 자기들끼리 뭔가 순서를 정해서 위계 질서가 저절로 생기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되지 못한 다른 교회 교역자들이나 교인들을 대할 때하고, 우리 교회에서 잠깐 사역하러 갔다왔는데도, 너무 좋다 그러면서 '참, 진짜 목사다!' 그렇게 입이 달토록 칭찬을 하더라 구요. 그래서 자꾸 지금 압력을 주고 있는데, '부 목사 보내라!' 부 목사를 보내 달래요. '그런 부 목사 같으면 좋겠다!' 아무데나 갔다놓아도 괜찮습니다. 여러분 어느 교회에서 자랐느냐? 어떤 분위기 속에서 자랐느냐? 어떤 문화권 속에서 자랐느냐? 참 중요한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지금 말씀을 들을 때에, 일단 말씀을 들으면서, '맞아, 하나님의 말씀이야!' 그래서 말씀을 받아 적고, 말씀을 따라서 묵상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된다! 이건 행복 중에 행복입니다. 옛날에는 그런 분위기가 안됐거든요. 그냥 듣고 '맞으면 하고, 안 그러면 안 한다!' 그런 분위기였어요. 오늘 이 말씀인데, '이 말씀대로 하나님 성취될 줄 믿습니다!' 다 받아 적고, 기도제목가지고 기도하고, 응답 받고... 이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몰라요. 별 다른 게 없어요. 이게 안되면 뭐냐? 안되면 교인들 갈등도 많습니다.

'나를 따라오너라!' 단순하게 여기에 잡된 생각 없이, '오늘도 하나님의 계획이 가장 행복하게 하는 계획이구나!' 기도입니다. 여러분 뭘 해 놓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걸 누리는 것이 기도입니다. 오늘도 여러분과 제게 뭐가 성취되는 것이 행복이에요? 하나님의 계획이 성취되는 것이 행복입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작정된 자를 어떻게 해요? 찾아내는 것이 전도입니다. 그 전도는 내가 만나는 것이 아니고, 만나지게 되어있습니다. 저절로 된다는 것은, 여기에 '시스템을 깔아라!'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게 되면 조용히... 여기는 노력이 따라오는 것도 있고, 또 노력도 뭔가 방향 따라서 조금 다르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배경에 절대적인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여러분과 저를 행복하게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목표를 세우고 인도해 가십니다. 그 목표 속에서 나를 이끌어 가십니다. '좋다, 나쁘다!' 상관없이 하나님은 어제보다도 오늘, 오늘보다도 내일을 행복하게 하실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천국의 영원한 행복으로 인도해 가십니다. "(빌1:6)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할렐루야! 주의 이름으로 이 축복과 은혜가 한 주간도 체험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을 얻은 우리는 하나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 복음은 주님이 내게 찾아오신 것입니다.
- 종교는 인간이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 인간이 하나님을 찾아갈 수 없기에 노력할수록 더욱 어려워집니다.
- 하나님은 사람이 찾는다고 찾아지는 분이 아니기에 하나님이 사람에게 보이시고 찾아오셨습니다.
- 하나님께서 자신을 우리에게 보이신 것을 계시라고 합니다.
- 자연을 통해서 보이신 것을 일반 계시라고 합니다.
- 성령으로 특별히 알 수 있도록 하신 성경을 특별 계시라고 합니다.
-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수준만큼만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 이 땅에 나타나서 우리에게 보이신 하나님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 하나님이 나에게 찾아오신 후에는, 내가 하나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 하나님을 따라가는 것이 신앙 생활입니다.
- 하나님을 바르게 따라가기 위해서는 문화권이 바로 형성되어야 합니다.
- 어려서부터 말씀을 믿고 말씀에 순종적인 의식 구조가 되어야 합니다.
- 현재 나이가 든 세대는 일반적으로 권위에 대해서 순종적이지만, 젊은 세대는 문화적으로 순종적이지 않습니다.
- 렘넌트들이 어릴 때부터 믿음의 문화 위에서 자라야 합니다.

■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하나님을 따라갑시다.
- 하나님을 따를 때 가장 먼저 하나님의 주권을 믿어야 합니다.
- 성경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주권 위에서 해석해야 합니다.
- 하나님의 주권을 이해되어야 기도가 나올 수 있습니다.
- 장로교에는 하나님이 계획하셨다는 예정 교리가 있습니다.
- 하나님께서 우리가 창조되기 전에 우리를 부르신 것을 작정하셨다고 말합니다.
- 작정하신 시간 속에 들어서는 것을 섭리라고 합니다.
- 작정과 섭리가 모두 영광의 목적을 향해서 가게 됩니다.
- 하나님은 선택하신 백성들을 기어코 인도해 주십니다.
- 우리는 이러한 믿음의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 하나님의 주권을 믿으며 기도를 누립시다.
-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가는 속에서 기도를 누리게 됩니다.
- 하나님께서 나를 행복하게 만드실 계획을 세우고 이루어가시는 것을 믿고 누리는 것이 기도입니다.
- 내가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서 영광의 행복으로 이끌려가고 있음을 확인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 내가 영광의 행복으로 나아가는 중에 어려움이 있지만 그것은 저주가 아니라 과정입니다.
- 내가 힘들고 어려운 상황 속에 있지만 지금도 성령께서 함께 하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감사 찬송이 흘러나와야 합니다.
- 감사 찬송을 위해서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 하나님의 주권을 믿으며 전도를 누립시다.
-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가는 속에서 전도를 누리게 됩니다.
- 사도행전 13장에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전도는 믿기로 작정된 자를 찾아내면 되는 것입니다.
- 전도는 완전히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 하나님께서 작정된 자를 믿게 하는 방법이 전도입니다.
-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그 길이 바로 전도의 길입니다.
- 하나님께서 작정한 사람을 찾아내는 것이 전도인데, 그 사람을 찾는 것도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 내가 전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따라가기만 하면 주님께서 만나게 하시고, 주님께서 감동하게 하시고 믿게 하십니다.
- 전도에 대해서 이러한 이해가 없으면 해도 하지 않아도 늘 문제가 됩니다.
- 하나님께서 만나게 한 사람에게 전도를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누림이 됩니다.

■ 하나님의 주권을 믿으며 시험을 이겨나갑시다.
-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가는 속에서 시험을 이기게 됩니다.
- 우리에게 다가오는 대부분의 문제는 가만히 두면 시간이 지나면서 해결됩니다.
- 우리는 대부분 미리 당겨서 걱정을 하는데, 그것은 정신 문제입니다.
- 성경은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일은 그 날에 족하다고 했습니다.
- 하나님의 주권을 믿으면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 어려운 문제나 사건을 미리 걱정하는 이유는 볼 것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 시험에는 제 1 원인이 있고, 제 2 원인이 있습니다.
- 시험의 제 1 원인은 사단의 배경입니다.
- 시험의 제 2 원인은 사람, 사건, 일입니다.
- 사람들은 제 1 원인을 보지 못합니다.
- 사람들은 제 1 원인으로 말미암아 터져나오는 제 2 원인만을 봅니다.
- 제 1 원인으로 통해서 사람이나 사건이나 일이 터질 때, 대부분 사람이나 사건이나 일에 초점을 맞춥니다.
- 우리는 사람이나 사건이나 일 이전에 그 배경에 있는 사단을 보아야 합니다.
- 사단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아무리 노력해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 제 1 원인을 알고, 제 2 원인을 알더라도 더 중요한 것은, 인간의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못 보면 불안합니다.
- 제 1 원인에 눌려서 늘 ‘사단, 사단’ 하다가 오히려 더욱 눌리는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 사단의 역사와 사건과 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이 보이면 평안이 옵니다.
- 하나님은 큰 문제뿐만 아니라 작은 문제에서도 주권자이십니다.
- 우리의 가정과 문제와 사건이 생길 때, 제 1 원인인 사단도 제어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바라보아야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귀한 가정과 교회가 되어 렘넌트를 살립시다.
- 하나님께로부터 모든 것이 온다는 사실을 이해하면, 하나님을 바라보며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게 됩니다.
- 예수 그리스도를 부를 때, 우리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합니다.
- 하나님의 주권을 인식하고 나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길 때, 참된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 하나님께서 우리를 행복에 이르도록 이끌어 가시는 것을 견인이라고 합니다.
-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맡기는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 전도는 하나님께서 계획한 사람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 우리 생활의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계속해서 행복으로 인도하심을 믿으십시오.
- 이러한 시각으로 모든 만남을 바라보게 되면, 전도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집니다.
- 아무리 어렵고 힘든 시험도 대부분 지나가는데, 사단을 보지 못하고 하나님을 믿지 못하면 불안과 염려 속에 빠지게 됩니다.
- 어떤 문제와 사건 속에서도 원수의 모든 권세를 제어할 권세를 주신 하나님께로 나아갑시다.
- 사람은 자라는 문화에 따라서 의식 구조가 달라집니다.
- 사랑하는 렘넌트들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는 가정과 교회의 문화 속에서 자라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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