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인 힘을 회복하라
2004-05-17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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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한 성도가 맞고 또 양심이 있는 성도라면 한번쯤 고민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신앙 생활를 잘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믿음의 생활을 잘 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들은 아마도 한번쯤은 여러분들이 해 보셨을 겁니다. 그런 말을 하지 않습니까! '내가 하나님 앞에서 한번 떳떳하게 살아보고 싶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한번 멋지게 살아보고 싶다!' 주로 그런 고백들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을 잘 해보고 싶은 것이 모든 성도들의 한결같은 바램이요, 소망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여러분들이 마음먹은 데로 이 신앙생활, 믿음의 생활이 잘되고 있습니까? 잘되고 있다면 그 보다 더 좋은 일이 없겠죠. 그런데 생각보다는 우리가 마음먹은 데로, 우리가 생각했던 데로, 이 신앙생활이 잘 안 된다는데 여기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보통 연초에 보시면, 결단도 하시고 결심을 하시죠. '내가 지난해에는 참 믿음대로 제대로 살아보지 못했는데, 이번 한해에는 내가 멋지게 살아보겠다! 한번 하나님 앞에서 떳떳하게 신앙생활을 한번 해보겠다!' 그런 결단과 결심들을 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내 자신도 모르게 자꾸만 세상 적으로, 육신 적으로 또 그렇게 흘러갑니다. 그러다 보면, '내가 왜 이런 자리에 있느냐? 참 내가 그때는 그렇게 결심하고 결단했는데, 왜 지금 내 모습이 이러냐?' 또 후회가 되는 거죠. 심지어는 그렇게 뜨겁던 신앙에 사람들이 어느 날 보면 전혀 불신자처럼, 불신자 비슷하게 살아가는 그런 사람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을 보고 우리가 무엇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까? 잘 믿던 성도가 어느 날 갑자기 신앙이 떨어지고,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기고 막히는 이런 사건들을 보고 우리는 무엇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까? 한마디로 말하면, '영적인 침체다!' 이렇게 말씀을 드릴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왜 우리 성도들이 이런 영적인 침체가 오느냐? 더 나아가서는 이런 영적인 침체현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여기에 대한 말씀을 좀 드리려고 합니다. 물론 그럴 일은 없겠습니다 만은, 지금 않아 계신 이 자리에서 떠나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신앙의 자리에서 절대로 떠나지 마십시오. 서울로 이사를 가신다거나, 아니면 저 멀리 외국으로 이사를 가신다면 그것은 괜찮습니다. 그렇지만 그렇지 않는 경우에는 절대로 이 자리에서 떠나가지 마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한번씩 충격 되는 일이 있습니다. 평소에 그렇게 믿음이 좋던 분들이 갑자기 보이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심방을 가서, '왜, 이렇게 보이지 않습니까? 무슨 일이 있습니까?' 이렇게 쭉 확인을 해 보면, 물론 그분 나름대로는 이유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희들이 들어봤을 때는 참 별것도 아닌데, 아무것도 아닌 일에 상처를 받고 마음이 낙심되어 가지고, 그래서 전혀 교회를 나오지 않는 그런 성도들이 간혹 있습니다. 그분에게 신앙에 문제가 왔다는 말이죠.
여러분 영적인 침체가 무엇입니까? 영적인 침체! '침'이라는 말은 한자말로 가라앉았다는 말이죠. 배가 침몰되었다는 말은 배가 가라앉았다는 말입니다. 또 '체'라는 말은 막혔다는 말입니다. 여러분들이 음식을 잡수시다가 중간에 딱 막히는 현상을 보고 뭐라고 하죠. 체했다는 말을 합니다. 그리고 교통들이 쭉 흐름을 타지 못하고 딱 막히는 현상을 보고, 교통체증이 일어났다는 말을 하죠. 그래서 '체'라는 말은 막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영적인 침체라는 말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막히고 가라앉았다는 말이죠. 이것처럼 심각한 위기가 없다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우리 성도들에게 있어서 가장 고통스러운 일이 무엇입니까? 물론 여러분의 직장에서 어려움을 당하는 것,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여러분들이 자녀들에게 문제가 생기는 것, 엄청난 고통이겠죠. 또 여러분들의 사업이 무너지는 것 참 괴롭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런 사업이 무너지고, 직장에서 쫓겨나고, 여러분들의 자녀들에게 문제가 오는 것보다도 훨씬 더 큰 고통이 있습니다. 그 고통이 뭐냐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고 막혀지는 것입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이 다윗이 평소에는 참 믿음이 좋았습니다. 순간, 순간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향해서 기도했고, 심지어는 고난이 찾아왔을 때도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이런 다윗에게 문제가 왔습니다. 밧세바와 범죄를 했습니다. 간통사건이 일어났죠. 그 간통사건을 계기로 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무너졌습니다. 그때부터 이 다윗은 처절한 삶 속에 들어갑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던지, 얼마나 괴로웠던지!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옵소서!' 다른 건 몰라도 차라리 재앙을 받고 징계를 받는 것은 괜찮은데, 그런데 이 다윗에게 있어서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얼마나 괴로웠던지 침상이 젖도록 기도를 합니다. 밤새도록 하나님께 기도를 합니다.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옵소서!' 그만큼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졌을 때에 고통스러웠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성도들에게 있어서 최고의 고통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고 '영적인 침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면 여러분들의 신앙생활은 큰 슬럼프에 그렇게 빠져들게 되는 것입니다. 간혹 운동선수들을 보면 이런 슬럼프에 빠지는 경우를 종종 볼 수가 있습니다. 이 컨디션이 참 좋을 때는 골도 잘 들어갑니다. 안타도 잘 칩니다. 그리고 홈런도 날립니다. 이 컨디션이 좋을 때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컨디션이 떨어지고 슬럼프에 빠져드는 그런 운동선수들을 보면 자꾸만 헛발질을 합니다. 헛 방망이질을 하는 거죠. 그래서 상당히 선수 생활에 위기가 오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이승엽이라는 야구선수가 있습니다. 지금 일본으로 진출해서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일어나는 현상이 뭐냐하면, 이 이승엽 선수에게 슬럼프가 왔습니다. 심지어는 2군으로 강등되는 그런 수모까지 겪고 있습니다. 제가 신문을 보니까 이 이승엽 선수가 국내에서 활동할 때는 한번도 2군으로 강등되는 일이 없었답니다. 계속해서 차고 올라갔고, 그러면서 한국 최고의 타자가 되어졌습니다. 그런데 이런 선수에게 극심한 슬럼프가 왔습니다. 그러면서 아무리 쳐도 되지 않고, 스트라이크 아웃을 당하고, 심지어는 밀려나고 결국에는 2군으로 떨어지는 이런 수모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걸 보고 우리는 슬럼프라고 하죠.
여러분 육체적 슬럼프가 와도 힘들고 괴롭습니다. 여러분들이 감기만 조금 들어보십시오. 조금 육체적인 질병만 와 보십시오. 극심한 슬럼프에 빠져듭니다. 하물며 영적인 슬럼프가 왔다! 영적인 침체현상이 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저와 여러분들에게 있어서 이것처럼 고통스러운 일들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영적인 침체 현상이 옵니까? 이런 현상이 오지 않으면 얼마나 좋습니까? 우리 찬송가사처럼 '올라가, 올라가 독수리 같이...' 저와 여러분들의 신앙이 늘 창공을 향해서 치솟아 올라간다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때로는 한번씩 저와 여러분의 삶 속에, 신앙의 삶 속에 이런 슬럼프가 찾아온다는 것이죠.
그러면 왜, 이런 침체현상이 찾아오느냐는 것입니다. 첫째입니다. 여러 가지 어려운 환경들이 저와 여러분들을 영적인 침체 현상으로 몰아갈 수가 있습니다. 어려운 환경들입니다. 열왕기상 19장에 보십시오. 거기 보시면 모든 환경이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야를 고통 속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아합 왕을 위시해서 이세벨 왕후,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 더 나아가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이스라엘 선지자를 죽음 속으로 몰아 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환경 속에서 엘리야 자신도 얼마나 괴로웠던지 하나님께 엎드려서 죽기를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열왕기상 19장 4절에 보십시오. "스스로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행하고 한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얼마나, 얼마나 하나님께 엎드려 죽기를 간구하는 이런 엘리야의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이 엘리야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그가 하나님께 기도했을 때에 하늘에서 비가 멎었습니다. 그가 하나님께 기도했을 때에 하늘에서 비가 내렸습니다. 그리고 죽었던 사람을 살려냈습니다. 엄청난 기적과 능력을 행했던 그런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엘리야에게 극심한 영적인 침체가 왔다는 것입니다. 그때에 이 엘리야는 하나님께 엎드려서 '하나님, 죽여주옵소서! 나는 내 열조 보다 못하니이다!' 심각한 현상에 그가 빠져 갔다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지금 여러분들에게는 이런 현상이 없습니까? 여러분 직장에서 내몰릴 그런 현상이 찾아오지 않았습니까? 지금 여러분들의 불신 가정에 식구들이 자꾸만 여러분들을 공격하지 않습니까? 모임에 들어가면 여러분들을 무시하고, 여러분들을 그렇게 왕따 시키고, 매장시키는 일들이 없습니까? 여러분들이 지금 조용히 앉아 계셔도 지금 여러분의 삶 속에 이런 영적으로 크게 힘들고, 어려운 문제들이 얼마든지 찾아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칫하면 이런 영적인 침체 현상에 걸려서 내 자신의 정체성조차도 놓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심각한 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입니다. 첫 번째는 여러 가지 어려운 환경을 통해서 우리가 영적인 침체현상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가 뭐냐하면, 인간관계속에서도 얼마든지 이런 현상들이 찾아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오늘 이 본문에 내용이 뭐냐하면, 다윗이 사울 왕의 눈을 피해서 어디까지 도망을 가느냐 하면, 원수나라였던 블레셋 나라까지 도망을 갑니다. 27장 1절에 보십시오. "다윗이 그 마음에 생각하기를 내가 후일에는 사울의 손에 망하리니 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피하여 들어가는 것이 상책이로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기고 예루살렘 성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때에 수많은 백성들의 입에서 칭송의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그런데 백성들의 이 말 한마디가 사울 왕과 다윗의 모든 사이를 급격하게 어렵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결국에는 이 사울 왕이 다윗을 죽이려고 이제 솔선수범하고, 다윗은 죽지 않으려고 도망을 가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런 다윗이 어디까지 도망을 갔습니까? 오늘 본문에 나타난 데로 블레셋 나라, 원수나라였던 블레셋까지 도망을 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다윗이 블레셋까지 들어갔다는 말은, 더 이상 갈 때가 없다는 말입니다. 오죽했으면 여기에 들어갑니까?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데로 이 블레셋 나라는 골리앗의 고향입니다. 원수나라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도망가다가 더 이상 갈 때가 없으니까, 심지어는 이 블레셋 나라까지 치고 들어갔다는 것이죠. 이런 와중에서 그의 심신은 지치고 고단해졌습니다. 큰 위기 속에 직면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쫓겨다니는 것처럼 불안한 일이 없고, 도망 다니는 일처럼 위험스러운 일들이 없습니다. 얼마나 도망할 때가 없었으면 원수나라인 블레셋까지 도망갔겠느냐? 여러분 그때 그 상황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이런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여자 분인데 시집을 가려고 이렇게 저렇게 많이 시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전부다 관계가 다 막히고 결국에는 체념하는 상태에 들어갑니다. 그때에 어떤 분이, '결혼 안 합니까?' 물어봤습니다. 그때에 이 여자 분이 하는 말이, '이제 뭐 혼자 살아야 되겠죠!' 그런데 그 혼자 살아야 되겠다는 말속에는 진짜로 혼자 살고 싶어서 그런 것입니까? 사실은 그게 아니고 하다가하다가 안되니까, 이제는 체념하는 마음으로, '혼자 살아야 되겠죠!' 그 말을 합니다. 오늘 본문에 정황이 바로 그 상황입니다.
지금 이 다윗이 어디까지 차고 들어갑니까? 사실은 그 블레셋이 좋아서 들어갔습니까? 더 이상 도망갈 때가 없으니까! 더 이상 사울의 눈을 피할 때가 없으니까 그래서 블레셋까지 들어갑니다. 그런데 블레셋까지 들어가는 정도가 아니고 8절, 9절에 보시면, "(삼상 27:8)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올라가서 그술 사람과 기르스 사람과 아말렉 사람을 침로하였으니 그들은 옛적부터 술과 애굽 땅으로 지나가는 지방의 거민이라 (삼상 27:9)다윗이 그 땅을 쳐서 남녀를 살려두지 아니하고 양과 소와 나귀와 약대와 의복을 취하고 돌아와서 아기스에게 이르매" 여러분 이 상황이 어떤 상황이죠. 다윗이 블레셋까지 숨어든 것까지는 좋았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어떤 행동을 하느냐 하,면 수많은 사람들을 도륙합니다. 쉽게 말하면 사람들을 죽이고, 더 나아가서는 양과 소와 약대, 의복 이런 모든 것을 다 빼앗습니다.
어찌된 일입니까? 다윗같이 성실하고, 믿음이 좋은 사람! 이런 다윗이 왜 이렇게 사람을 죽이고, 노략을 하고 그렇게 자기의 엉뚱한 모습들이 그렇게 터져 나옵니까? 원래 다윗은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잘 신뢰하는 믿음의 사람이죠. 그런데 사람까지 죽이는 이런 자리까지 왔다는 것이죠. 한마디로 살아남기 위해서! 더 이상 길이 없습니다. 살아남기 위해서 엉뚱한 행동까지 그가 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무슨 말입니까? 다윗의 신앙상태가 완전히 지쳤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그런 막다른 골목까지 내어 몰렸다는 것이죠. 이게 영적인 침체 현상으로 나타나는 모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여러분들은 무엇에 쫓기고 있습니까? 어떤 분들은 물질에 쫓깁니다. 먹고살아야 되는데, 제대로 벌여 지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아이들, 자녀 교육을 시켜야 되는데, 그렇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늘 물질에 쫓기는 분들! 어떤 분들은 자리나 위치에 쫓깁니다. 그 자리를 좀 지켜야 되겠는데, 오랜 동안 좀 머물러 있어야 되는데, 밑에서는 차고 올라오죠, 더 이상 차고 올라갈 때는 없죠. 그래서 늘 자리나 위치에서 내어쫓기는 그런 분들도 계십니다. 어떤 분들은 사람에게 쫓깁니다. 그래서 너무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지난주에도 말씀을 드렸습니다. 시험이 계속해서 몰아 닥치면 정신을 차릴 수 없죠. 마찬가지로 여러분의 삶에 자꾸만 내어쫓기다 보면, 더 이상 일어설 자리와 힘이 없습니다. 그래서 너무 큰 고통이 우리의 삶 속에 찾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게 큰 위기죠.
그리고 세 번째입니다. 무엇 때문에 영적인 침체가 옵니까? 자신의 영적 문제와 상처를 극복하지 못할 때에, 반드시 영적인 침체 현상이 오게 되어있습니다. 여러분 유독 영적인 침체에 잘 빠져드는 그런 체질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상처가 와도 잘 극복할 수가 없습니다. 주로 이런 분들이 하는 말이 뭐냐하면, '나는 왜 이렇게 안 되느냐?' 심지어는 '나는 죽어도 안 된다!' 심각한 열등감, 자격지심에 늘 시달리는 이런 분들이 계십니다.
한번씩 좀 화가 날 때가 있더라 구요. 언제냐 하면, 어려운 일을 당한 어떤 분이 계시는데 찾아가서 예배도 드리고, 찬송도 하고, 기도도 하고, 실컷 그렇게 위로를 했습니다. 일어서는데 그분 하는 말씀이, '목사님 나는 안됩니다!' 실컷 위로하고, 같이 기도하자고 약속을 했고 은혜도 받았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는 고개도 끄덕였습니다. 그런데 실컷 하고 일어서는데, '그래도 목사님, 나는 안됩니다!' 여러분 이런 체질이 아니십니까? 그런 사람들이 있더라 구요. 실컷 은혜 받아도 돌아서면 안되고, 돌아서면 죽고 싶고, 이런 분들이 상당히 많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분들은 영적인 침체 현상이 오면 잘 벗어나지 못합니다. 아예 체질적으로, 심지어는 기도하면서 염려하시는 분들! 상당히 이런 분들이 많다는 것이죠.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입니다. 왜 영적인 침체가 옵니까? 하나님 앞에 범죄 할 때에, 여러분 죄라고 했을 때에 우리는 보통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죄를 말하고 있습니다. 사기를 쳤다든지, 간음을 했다든지, 거짓말을 했다든지! 물론 맞습니다. 그런데 지금 제가 말하는 이 죄는 바로 하나님을 떠난 근원적인 죄를 말합니다. 그래서 이 죄가 제일 무서운 것이 뭐냐하면, 하나님과의 단절이 이루어졌다는 것이죠. 이게 가장 고통스러운 사건입니다.
로마서 3장 23절을 보십시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여기서 말하는 이 죄는 어떤 죄를 말합니까? 근원적으로 하나님을 떠난 죄를 말합니다. 그래서 이 하나님을 떠난 죄 때문에, 하나님과의 모든 관계 자체가 완전히 막혔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심각한 고통이 찾아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아담과 하와가 범죄 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기 위해서! 그런데 그 범죄를 통해서 나타났던 중요한 결과가 하나 있습니다. 그게 뭐냐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어졌다는 것이죠. 첫째는 육체적 단절이 왔습니다. 둘째는 영적인 단절이 왔습니다.
육체적 단절이 왔다는 말은 에덴동산에서 내어 쫓겼다는 말입니다. 영적인 단절이 왔다는 말은 하나님과의 모든 교통, 영교가 끊어졌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이것보다 무서운 일이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것보다 더 무서운 일이 있습니까? 여러분들이 아무리 많은 돈을 벌지라도, 아무리 좋은 자리에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성도, 그 인생은 반드시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제가 서두에서 잠깐 말씀들 드렸습니다. 하나님과의 교통이 끊어진 다윗을 보십시오. 얼마나, 얼마나 괴로웠던지 밤새도록 웁니다. 침상이 젖도록 울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옵소서!' 다른 것은 내가 다 참겠는데, 심지어는 '내게 재앙이 찾아와도 하나님 감사히 참겠습니다! 그러나 주의 성령만은 거두지 마옵소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는 것이 그만큼 고통스러웠다는 말입니다. 어쨌든 영적인 침체 현상이 이런 저런 모양으로 나타납니다. 때로는 환경을 통해서, 때로는 인간 관계를 통해서, 때로는 여러분 자신들의 영적 문제를 통해서,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짐으로 통해서 엄청난 고통들이 저와 여러분 속에 밀려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러한 영적인 침체가 오면 중요한 결과들이 있습니다. 침체현상이 끝난다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반드시 그에 따르는 결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첫 번째가 뭐냐하면, 구원의 감격이 사라집니다. 그렇게 기쁘고, 그렇게 평안하고, 그렇게 좋았던 여러분들의 마음들 속에 얼마나 불안한 마음과, 답답하고 힘들고 어려운 고통이 찾아오게 된다는 겁니다. 이게 제일 큰 문제입니다. 구원의 감격이 사라집니다. 여러분들의 상황들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심지어는 물질적으로, 여러 가지로 내몰려도, 그런 속에서도 '나는 하나님이 자녀다! 나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언약에 백성이다!' 이 사실만 여러분 속에 중심으로 딱 붙잡고 있으면, 아무리 어려움이 와도 괜찮습니다. 왜? 내가 하나님의 자녀인데요. 하나님께서 내 삶을 완전히 책임지시게 되어 있습니다. 거기에 따르는 확신도 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여러분 속에 이런 영적인 침체 현상이 오면, 제일 먼저 사라지는 것이 뭡니까? 구원의 감격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때부터는 저 밑에 수렁을 향해서 계속해서 떨어지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보십시오. 이런 구원의 감격이 사라지고 나면 제일 먼저 안 되는 것이 뭐냐하면, 절대로 예배가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구원의 감격을 가지고 이 자리에 앉아 계시는 것하고, 구원의 감격이 전혀 없이 그냥 맹숭맹숭하게 이 자리에 앉아 계신 것하고 차이가 무엇입니까? 제일 중요한 것은, '예배가 되느냐? 안 되느냐?' 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여러분들이 진정으로 구원의 감격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을 가지고 이 자리에 나오셨습니까? 그러면 이 예배 자체가 기쁘고 즐거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구원의 감격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 된 확신도 없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맹숭맹숭하게 앉아 계셔보십시오. 얼마나 지겹습니다. 설교자가 그날따라 5분, 10분 정도 더 길어지면 그때는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릅니다. '무슨 설교를 저렇게 오래 하느냐? 좀 빨리 마치지, 빨리 가야되는데...' 절대로 예배가 될 수 없죠.
예배가 안 된다는 말은 그와 동시에 찬송도 안됩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찬송을 부르실 때에 얼마나 벅찬 감격을 가지고 하나님께 찬송을 드렸습니까? 구원의 감격이 있는 성도는 그 입술에서, 그 마음의 중심에서 진정한 찬송이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찬송을 오래 불러도 그 속에 참 기쁨이 찾아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여러분 속에 구원의 감격이 사라지고 나면, 찬송 한 장, 한 장 부르는 것이 그렇게 또 지겹습니다.
저의 동기 목사님 중에서 중국에 선교사 한 분이 계십니다. 이번에 그런 이야기를 해요. 지금도 중국에서는 마음대로 예배를 드릴 수 없습니다. 어쩌다가 같이 모여서 찬송을 부르고 예배를 드리잖아요. 그러면 3시간, 4시간, 5시간... 계속해서 찬송 부르고 기도하고 말씀을 듣는답니다. 그런데 그분들이 한번 찬송을 부르면 어느 정도까지 부르느냐 하면, 찬송 한 곡이 100절까지 있답니다. 100절까지! 그리고 그 100절까지 다 부르면 1시간이 지나간답니다. 그래도 그분들이 그렇게 뜨거운 감격으로 하나님께 찬송을 합니다. 그러면 사회자가 하는 말이, '한번 더 부릅시다!' 그런 답니다. 그러면 2시간입니다. 저도 이 자리에서 100절까지 있는 곡을 두 번 부르고 나면 아무도 앉아 계시지 않을 겁니다.
여러분 속에 구원의 감격이 있습니까? 진정한 마음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오셨습니까? 여러분 예배 속에 여러분 자신들을 한번 세워 보십시오. 우리 성도들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축복이 뭡니까?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과의 모든 관계는 예배를 통해서, 지금 드리고 있는 이 예배를 통해서 모든 관계가 회복되어 진다는 겁니다. 그래서 구원의 감격이 사라지면 예배도 안됩니다. 찬송도 사라집니다. 더군다나 기도는 됩니까? 아무리 기도하려고 애를 써도 영적인 침체 현상이 일어나면 기도도 제대로 나오지 않습니다. 여기다가 감사는 사라지고 결국에는 영적인 마비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이것처럼 고통스러운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됩니까? 이런 영적인 침체 현상이오면 이런 저런 여러 가지 결과들이 찾아오는데, 그러면 이런 속에서 결국에는 저와 여러분들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운동선수들은 그들에게 슬럼프가 오면 그 슬럼프를 벗어나기 위해서 열심히 훈련합니다. 뛰기도 하고, 몸을 단련하기도 하고, 밤에 잠을 자지도 않고, 어쨌든 이런 슬럼프를 극복하기 위해서 열심히 훈련을 합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영적인 슬럼프, 영적인 침체가 오면 노력해서도 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여러분들이 이빨을 깨물고 열심히 수고하고 노력한들 이런 영적인 침체가 물러갑니까? 그렇다면 이런 영적인 침체 현상이 왔을 때에 과연 어떻게 해야 됩니까? 간혹 저희들에게 이런 영적인 문제가 왔을 때에, 심각한 문제가 왔을 때에, 빨리 이 영적 침체에서 일어나야 될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영적인 침체에서 일어나기 위해서는 우리가 과연 어떻게 해야 되느냐? 시편 42편 5절입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아멘.
보십시오. 지금 시편 기자가 얼마나 영적으로 침체되어 있습니다.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심지어 그 앞에 4절에 보시면, '내 마음이 상했다!'고 했습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 시편 기자는 완전히 영적으로 침체가 되어서 낙심도 되고, 불안하기도 하고, 심각하게 지금 마음이 상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태 속에 하나님께서 시편기자에게 말씀을 합니다. 뭐라고 했습니까?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렇습니다. 여러분 다른 길이 없습니다.
여러분들에게 심각한 영적인 문제가 왔을 때에, 심각한 이런 침체 현상이 왔을 때에, 과연 내가 거기에서 살아나는 유일한 길이 무엇입니까?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언약에 주인이신 그리스도, 우리의 영원한 인생에 주인이신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에 여기에 모든 영적인 침체 현상이 떠나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낙심과 절망과 한숨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까? 이런 분들은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이사야 40장 31절에 "오직 여호와를 앙망 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힘들고 어려우십니까? 답답한 일을 만났습니까? 여러분들의 영적 상태가 지금 저 밑으로 치닫고 있습니까? 그 속에서도 하나님 바라 보십시오.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때에 진정한 찬송과 기쁨과 축복의 역사들이 여러분의 삶 속에 찾아오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 왜, 영적인 침체 현상이 찾아옵니까?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저와 여러분들이 은혜 받지 못하고 이 하나님의 은혜가 지속되지 못하면, 반드시 세상으로, 육신으로 빠져갑니다. 그 결과로 영적인 침체 현상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여러분들에게 중요한 한가지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런 영적인 침체에서 일어나느냐? 오늘 본문에 제목이 무엇입니까? "영적인 힘을 회복하라!" 어떻게 하면 영적인 힘을 회복할 수 있습니까? 은혜 받으십시오. 다른 길이 없습니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아무리 좋은 곳에 합격을 해도 이것은 잠시 지나가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살아나는 가장 중요한 그 회복의 길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하면,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느냐? 고린도후서 6장 2절에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구원의 날이로다!' 히브리서 4장 16절에 보십시오. 거기에 보시면,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오라!'고 했습니다. 다른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얼마나 실제적으로 체험하느냐? 여기에 여러분의 모든 영역이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두 가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느냐? 이번 한 주간 꼭 이 두 가지를 잡고 한번 기도해 보십시오. '어떻게 하면 영적인 힘을 회복하느냐?'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느냐?' 첫째입니다. 교회 건축의 현장에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한번 다 싫어보십시오. 물론 지금까지도 교회 건축을 위해 기도해 오셨고 헌신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자칫하면 어떤 생각을 하느냐 하면, 이 교회 건축을 하면 내가 뭔가 헌신을 해야 되고, 내가 뭔가 해야 되는 걸로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여러분 잘 기억하십시오. 교회 건축을 허락하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입니다.
여러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내가 교회 건축을 하고 싶다고 되어집니까? 또 내가 아무리 많이 드리고 싶어도 없으면 드릴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온 교회 속에, 또 저와 여러분 속에 교회 건축이라는 이런 모든 축복을 은혜로 허락하셨다는 겁니다. 그래서 여기에 모든 중심을 담고 함께 기도하실 때에, 여기에 진정한 응답들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은혜를 체험하는 길이 있습니다. 특별새벽기도회! 여러분 교회가 방향을 정하고 중요한 행사를 준비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이 속으로 다 들어오십시오. 다 함께 참석하셔서, 여러분들의 진정한 소원들이 있습니까?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마음을 여러분들이 아십니다. 그러면 이런 중요한 기도 제목을 두고 여러분의 마음을 싫고 한번 기도해 보십시오. 그러면 여기에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가 어떻게 임하는지를 여러분들이 실제적으로 체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건축은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신 최고의 은혜다! 두 번째는 우리가 특별 새벽기도 속으로 들어갈 때에, 여기에 진정한 은혜를 체험할 수 있다. 그래서 이 두 가지를 잡고 이번 한 주간 기도해 보십시오. 얼마나 큰 축복이 여러분의 삶 속에 임하는지를 새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한 주간 영적으로 침체된 내 자신을 다시 세우십시오.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사명으로 완전히 무장하십시오. 최고의 은혜를 누리시고 이번 한 주간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양심있는 성도는 어떻게 하면 신앙생활을 잘할까 고민을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신앙이 좋던 사람들이 어느날 불신자처럼 살아갑니다. 이것을 보고 우리는 영적인 침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 영적인 침체가 왜 일어나고 어떻게 승리하느냐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신앙의 자리에서 떠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1. 영적인 침체
① 평소에 믿음이 좋던 사람들이 갑자기 교회에 나오지를 않습니다.
② ‘침’ - 가라앉는다는 의미, ‘체’- 막힌다는 의미입니다. 영적인 침체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막히고 가라앉는 의미
입니다.
③ 성도의 삶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것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막힐 때입니다.
④ 믿음이 좋던 다윗이 밧세바 사건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겼습니다. 그때 침상이 젖도록 울면서 하나님
께 매달렸습니다.
⑤ 그때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옵소서. 탄식을 했습니다.
⑥ 운동 선수들이 힘이 좋을 때는 잘하지만, 한번 슬럼프에 걸리면 모든 성적이 부진하게 나오게 됩니다.
⑦ 믿음이 항상 올라가기만 하면 좋겠지만, 한번씩 영적인 침체가 닥치게 됩니다.
2. 영적인 침체가 오는 이유
① 첫째로, 우리에게 여러 가지 환경이 오기 때문입니다.
② 엘리야 선지자를 왕과 모든 백성이 죽음으로 오는 환경에 닥쳤습니다. 그때 엘리야는 하나님께 죽음을 구했
습니다. (왕하 14장)
③ 직장과 가정에 우리를 매장시키는 문제가 없습니까? 그중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신앙의 중심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④ 둘째로, 인간 관계 속에서 영적인 문제가 올 수 있습니다.
⑤ 다윗이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왕을 피하여, 원수의 땅인 블레셋 땅으로 도망갑니다.
⑥ 어떤 여자분이 항상 혼사가 깨어지고 안 되어지면, 체념된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⑦ 다윗도 체념하는 마음으로 블레셋까지 들어갑니다. 그곳에서 다른 사람들을 죽이고, 재산을 빼앗고 물건을 블
레셋 왕에게 상납합니다.
⑧ 원래 그렇게 어진, 다윗의 신앙이 지치고 쓰러지는 지경에 처한 것입니다.
⑨ 우리도 물질에 위치에 환경에 쫓기고 있지 않습니까? 정말 고통스러운 환경에서는 기도조차도 제대로 나오지
않습니다.
⑩ 셋째로, 자신의 영적 문제와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⑪ 유독 상처가 올 때 극복하지 못하는 영적인 문제가 많은 체질이 있습니다.
⑫ 이런 체질이 여러분에게 깊이 자리잡히면 늘 열등감과 자격지심에 빠지게 됩니다.
⑬ 넷째로, 하나님 앞에서의 범죄입니다.
⑭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함의 결과가 하나님과의 단절입니다. (롬 3:23)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육체와 영적인 단
절이 왔습니다.
⑮ 항상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찬양했던 다윗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단절이 되었기에 괴로움 속에 있게 되었습
니다.
3. 영적인 침체의 결과
① 가장 힘든 것이 구원의 감격이 떨어지는 것입니다.
②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이 있으면, 항상 누리고 감사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에서 떨어지면 모든 불안과 고
통이 찾아옵니다.
③ 그때부터 예배가 되어지지 않습니다. 구원의 감격이 없으면 예배가 그렇게 지겨울 수가 없습니다.
④ 둘째로 여러분의 입술에서 찬송이 사라집니다.
⑤ 우리의 상태가 좋으면 우리의 입에서 기쁜 찬송이 나옵니다. 그러나 영적인 침체에 있으면 찬송조차 신경질
이 납니다.
⑥ 중국은 신앙의 자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어쩌다가 한번 모이면 세네시간 찬송을 부르고 감사가 나온
다고 합니다.
⑦ 심지어는 기도조차도 사라집니다. 궁극적으로 영적인 마비 현상까지 오게 됩니다.
4. 하나님을 바라라
① 시편 기자에게 영적인 침체 현상이 왔습니다. (시 42:5) 그때 하나님이 말씀하시길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
의 도우심을 인하여 찬송하리로다.’
②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독수리가 날개 치듯이 힘을 주실 것입니다. (사 40:31)
은혜가 지속되지 못하면 세상과 육신에 빠지고 영적인 침체에 빠지게 됩니다. 은혜받으십시오. 저와 여러분이 사는 길입니다. 고후 6:2(보라 지금은 은혜받을 때요 구원의 날). 4:6 (은혜받을 보좌로 담대히 나아가라) 영적인 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첫째로 교회 건축의 현장에 마음을 실어보십시오. 교회 건축은 하나님께서 주신 최고의 축복의 기회입니다. 물질과 여러분의 중심이 드려질 때 은혜를 받는 유일한 길이 됩니다. 둘째로 특별 새벽기도입니다. 이 특별 새벽기도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중심을 바랄 기회입니다. 교회가 방향을 정하고 기도하는 중에 여러분이 함께 기도할 때 최고의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여러분의 모든 삶까지도 하나님이 책임지실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여러분들이 마음먹은 데로 이 신앙생활, 믿음의 생활이 잘되고 있습니까? 잘되고 있다면 그 보다 더 좋은 일이 없겠죠. 그런데 생각보다는 우리가 마음먹은 데로, 우리가 생각했던 데로, 이 신앙생활이 잘 안 된다는데 여기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보통 연초에 보시면, 결단도 하시고 결심을 하시죠. '내가 지난해에는 참 믿음대로 제대로 살아보지 못했는데, 이번 한해에는 내가 멋지게 살아보겠다! 한번 하나님 앞에서 떳떳하게 신앙생활을 한번 해보겠다!' 그런 결단과 결심들을 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내 자신도 모르게 자꾸만 세상 적으로, 육신 적으로 또 그렇게 흘러갑니다. 그러다 보면, '내가 왜 이런 자리에 있느냐? 참 내가 그때는 그렇게 결심하고 결단했는데, 왜 지금 내 모습이 이러냐?' 또 후회가 되는 거죠. 심지어는 그렇게 뜨겁던 신앙에 사람들이 어느 날 보면 전혀 불신자처럼, 불신자 비슷하게 살아가는 그런 사람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을 보고 우리가 무엇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까? 잘 믿던 성도가 어느 날 갑자기 신앙이 떨어지고,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기고 막히는 이런 사건들을 보고 우리는 무엇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까? 한마디로 말하면, '영적인 침체다!' 이렇게 말씀을 드릴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왜 우리 성도들이 이런 영적인 침체가 오느냐? 더 나아가서는 이런 영적인 침체현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여기에 대한 말씀을 좀 드리려고 합니다. 물론 그럴 일은 없겠습니다 만은, 지금 않아 계신 이 자리에서 떠나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신앙의 자리에서 절대로 떠나지 마십시오. 서울로 이사를 가신다거나, 아니면 저 멀리 외국으로 이사를 가신다면 그것은 괜찮습니다. 그렇지만 그렇지 않는 경우에는 절대로 이 자리에서 떠나가지 마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한번씩 충격 되는 일이 있습니다. 평소에 그렇게 믿음이 좋던 분들이 갑자기 보이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심방을 가서, '왜, 이렇게 보이지 않습니까? 무슨 일이 있습니까?' 이렇게 쭉 확인을 해 보면, 물론 그분 나름대로는 이유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희들이 들어봤을 때는 참 별것도 아닌데, 아무것도 아닌 일에 상처를 받고 마음이 낙심되어 가지고, 그래서 전혀 교회를 나오지 않는 그런 성도들이 간혹 있습니다. 그분에게 신앙에 문제가 왔다는 말이죠.
여러분 영적인 침체가 무엇입니까? 영적인 침체! '침'이라는 말은 한자말로 가라앉았다는 말이죠. 배가 침몰되었다는 말은 배가 가라앉았다는 말입니다. 또 '체'라는 말은 막혔다는 말입니다. 여러분들이 음식을 잡수시다가 중간에 딱 막히는 현상을 보고 뭐라고 하죠. 체했다는 말을 합니다. 그리고 교통들이 쭉 흐름을 타지 못하고 딱 막히는 현상을 보고, 교통체증이 일어났다는 말을 하죠. 그래서 '체'라는 말은 막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영적인 침체라는 말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막히고 가라앉았다는 말이죠. 이것처럼 심각한 위기가 없다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우리 성도들에게 있어서 가장 고통스러운 일이 무엇입니까? 물론 여러분의 직장에서 어려움을 당하는 것,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여러분들이 자녀들에게 문제가 생기는 것, 엄청난 고통이겠죠. 또 여러분들의 사업이 무너지는 것 참 괴롭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런 사업이 무너지고, 직장에서 쫓겨나고, 여러분들의 자녀들에게 문제가 오는 것보다도 훨씬 더 큰 고통이 있습니다. 그 고통이 뭐냐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고 막혀지는 것입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이 다윗이 평소에는 참 믿음이 좋았습니다. 순간, 순간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향해서 기도했고, 심지어는 고난이 찾아왔을 때도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이런 다윗에게 문제가 왔습니다. 밧세바와 범죄를 했습니다. 간통사건이 일어났죠. 그 간통사건을 계기로 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무너졌습니다. 그때부터 이 다윗은 처절한 삶 속에 들어갑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던지, 얼마나 괴로웠던지!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옵소서!' 다른 건 몰라도 차라리 재앙을 받고 징계를 받는 것은 괜찮은데, 그런데 이 다윗에게 있어서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얼마나 괴로웠던지 침상이 젖도록 기도를 합니다. 밤새도록 하나님께 기도를 합니다.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옵소서!' 그만큼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졌을 때에 고통스러웠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성도들에게 있어서 최고의 고통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고 '영적인 침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면 여러분들의 신앙생활은 큰 슬럼프에 그렇게 빠져들게 되는 것입니다. 간혹 운동선수들을 보면 이런 슬럼프에 빠지는 경우를 종종 볼 수가 있습니다. 이 컨디션이 참 좋을 때는 골도 잘 들어갑니다. 안타도 잘 칩니다. 그리고 홈런도 날립니다. 이 컨디션이 좋을 때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컨디션이 떨어지고 슬럼프에 빠져드는 그런 운동선수들을 보면 자꾸만 헛발질을 합니다. 헛 방망이질을 하는 거죠. 그래서 상당히 선수 생활에 위기가 오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이승엽이라는 야구선수가 있습니다. 지금 일본으로 진출해서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일어나는 현상이 뭐냐하면, 이 이승엽 선수에게 슬럼프가 왔습니다. 심지어는 2군으로 강등되는 그런 수모까지 겪고 있습니다. 제가 신문을 보니까 이 이승엽 선수가 국내에서 활동할 때는 한번도 2군으로 강등되는 일이 없었답니다. 계속해서 차고 올라갔고, 그러면서 한국 최고의 타자가 되어졌습니다. 그런데 이런 선수에게 극심한 슬럼프가 왔습니다. 그러면서 아무리 쳐도 되지 않고, 스트라이크 아웃을 당하고, 심지어는 밀려나고 결국에는 2군으로 떨어지는 이런 수모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걸 보고 우리는 슬럼프라고 하죠.
여러분 육체적 슬럼프가 와도 힘들고 괴롭습니다. 여러분들이 감기만 조금 들어보십시오. 조금 육체적인 질병만 와 보십시오. 극심한 슬럼프에 빠져듭니다. 하물며 영적인 슬럼프가 왔다! 영적인 침체현상이 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저와 여러분들에게 있어서 이것처럼 고통스러운 일들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영적인 침체 현상이 옵니까? 이런 현상이 오지 않으면 얼마나 좋습니까? 우리 찬송가사처럼 '올라가, 올라가 독수리 같이...' 저와 여러분들의 신앙이 늘 창공을 향해서 치솟아 올라간다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때로는 한번씩 저와 여러분의 삶 속에, 신앙의 삶 속에 이런 슬럼프가 찾아온다는 것이죠.
그러면 왜, 이런 침체현상이 찾아오느냐는 것입니다. 첫째입니다. 여러 가지 어려운 환경들이 저와 여러분들을 영적인 침체 현상으로 몰아갈 수가 있습니다. 어려운 환경들입니다. 열왕기상 19장에 보십시오. 거기 보시면 모든 환경이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야를 고통 속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아합 왕을 위시해서 이세벨 왕후,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 더 나아가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이스라엘 선지자를 죽음 속으로 몰아 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환경 속에서 엘리야 자신도 얼마나 괴로웠던지 하나님께 엎드려서 죽기를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열왕기상 19장 4절에 보십시오. "스스로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행하고 한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얼마나, 얼마나 하나님께 엎드려 죽기를 간구하는 이런 엘리야의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이 엘리야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그가 하나님께 기도했을 때에 하늘에서 비가 멎었습니다. 그가 하나님께 기도했을 때에 하늘에서 비가 내렸습니다. 그리고 죽었던 사람을 살려냈습니다. 엄청난 기적과 능력을 행했던 그런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엘리야에게 극심한 영적인 침체가 왔다는 것입니다. 그때에 이 엘리야는 하나님께 엎드려서 '하나님, 죽여주옵소서! 나는 내 열조 보다 못하니이다!' 심각한 현상에 그가 빠져 갔다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지금 여러분들에게는 이런 현상이 없습니까? 여러분 직장에서 내몰릴 그런 현상이 찾아오지 않았습니까? 지금 여러분들의 불신 가정에 식구들이 자꾸만 여러분들을 공격하지 않습니까? 모임에 들어가면 여러분들을 무시하고, 여러분들을 그렇게 왕따 시키고, 매장시키는 일들이 없습니까? 여러분들이 지금 조용히 앉아 계셔도 지금 여러분의 삶 속에 이런 영적으로 크게 힘들고, 어려운 문제들이 얼마든지 찾아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칫하면 이런 영적인 침체 현상에 걸려서 내 자신의 정체성조차도 놓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심각한 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입니다. 첫 번째는 여러 가지 어려운 환경을 통해서 우리가 영적인 침체현상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가 뭐냐하면, 인간관계속에서도 얼마든지 이런 현상들이 찾아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오늘 이 본문에 내용이 뭐냐하면, 다윗이 사울 왕의 눈을 피해서 어디까지 도망을 가느냐 하면, 원수나라였던 블레셋 나라까지 도망을 갑니다. 27장 1절에 보십시오. "다윗이 그 마음에 생각하기를 내가 후일에는 사울의 손에 망하리니 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피하여 들어가는 것이 상책이로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기고 예루살렘 성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때에 수많은 백성들의 입에서 칭송의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그런데 백성들의 이 말 한마디가 사울 왕과 다윗의 모든 사이를 급격하게 어렵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결국에는 이 사울 왕이 다윗을 죽이려고 이제 솔선수범하고, 다윗은 죽지 않으려고 도망을 가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런 다윗이 어디까지 도망을 갔습니까? 오늘 본문에 나타난 데로 블레셋 나라, 원수나라였던 블레셋까지 도망을 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다윗이 블레셋까지 들어갔다는 말은, 더 이상 갈 때가 없다는 말입니다. 오죽했으면 여기에 들어갑니까?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데로 이 블레셋 나라는 골리앗의 고향입니다. 원수나라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도망가다가 더 이상 갈 때가 없으니까, 심지어는 이 블레셋 나라까지 치고 들어갔다는 것이죠. 이런 와중에서 그의 심신은 지치고 고단해졌습니다. 큰 위기 속에 직면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쫓겨다니는 것처럼 불안한 일이 없고, 도망 다니는 일처럼 위험스러운 일들이 없습니다. 얼마나 도망할 때가 없었으면 원수나라인 블레셋까지 도망갔겠느냐? 여러분 그때 그 상황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이런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여자 분인데 시집을 가려고 이렇게 저렇게 많이 시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전부다 관계가 다 막히고 결국에는 체념하는 상태에 들어갑니다. 그때에 어떤 분이, '결혼 안 합니까?' 물어봤습니다. 그때에 이 여자 분이 하는 말이, '이제 뭐 혼자 살아야 되겠죠!' 그런데 그 혼자 살아야 되겠다는 말속에는 진짜로 혼자 살고 싶어서 그런 것입니까? 사실은 그게 아니고 하다가하다가 안되니까, 이제는 체념하는 마음으로, '혼자 살아야 되겠죠!' 그 말을 합니다. 오늘 본문에 정황이 바로 그 상황입니다.
지금 이 다윗이 어디까지 차고 들어갑니까? 사실은 그 블레셋이 좋아서 들어갔습니까? 더 이상 도망갈 때가 없으니까! 더 이상 사울의 눈을 피할 때가 없으니까 그래서 블레셋까지 들어갑니다. 그런데 블레셋까지 들어가는 정도가 아니고 8절, 9절에 보시면, "(삼상 27:8)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올라가서 그술 사람과 기르스 사람과 아말렉 사람을 침로하였으니 그들은 옛적부터 술과 애굽 땅으로 지나가는 지방의 거민이라 (삼상 27:9)다윗이 그 땅을 쳐서 남녀를 살려두지 아니하고 양과 소와 나귀와 약대와 의복을 취하고 돌아와서 아기스에게 이르매" 여러분 이 상황이 어떤 상황이죠. 다윗이 블레셋까지 숨어든 것까지는 좋았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어떤 행동을 하느냐 하,면 수많은 사람들을 도륙합니다. 쉽게 말하면 사람들을 죽이고, 더 나아가서는 양과 소와 약대, 의복 이런 모든 것을 다 빼앗습니다.
어찌된 일입니까? 다윗같이 성실하고, 믿음이 좋은 사람! 이런 다윗이 왜 이렇게 사람을 죽이고, 노략을 하고 그렇게 자기의 엉뚱한 모습들이 그렇게 터져 나옵니까? 원래 다윗은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잘 신뢰하는 믿음의 사람이죠. 그런데 사람까지 죽이는 이런 자리까지 왔다는 것이죠. 한마디로 살아남기 위해서! 더 이상 길이 없습니다. 살아남기 위해서 엉뚱한 행동까지 그가 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무슨 말입니까? 다윗의 신앙상태가 완전히 지쳤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그런 막다른 골목까지 내어 몰렸다는 것이죠. 이게 영적인 침체 현상으로 나타나는 모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여러분들은 무엇에 쫓기고 있습니까? 어떤 분들은 물질에 쫓깁니다. 먹고살아야 되는데, 제대로 벌여 지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아이들, 자녀 교육을 시켜야 되는데, 그렇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늘 물질에 쫓기는 분들! 어떤 분들은 자리나 위치에 쫓깁니다. 그 자리를 좀 지켜야 되겠는데, 오랜 동안 좀 머물러 있어야 되는데, 밑에서는 차고 올라오죠, 더 이상 차고 올라갈 때는 없죠. 그래서 늘 자리나 위치에서 내어쫓기는 그런 분들도 계십니다. 어떤 분들은 사람에게 쫓깁니다. 그래서 너무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지난주에도 말씀을 드렸습니다. 시험이 계속해서 몰아 닥치면 정신을 차릴 수 없죠. 마찬가지로 여러분의 삶에 자꾸만 내어쫓기다 보면, 더 이상 일어설 자리와 힘이 없습니다. 그래서 너무 큰 고통이 우리의 삶 속에 찾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게 큰 위기죠.
그리고 세 번째입니다. 무엇 때문에 영적인 침체가 옵니까? 자신의 영적 문제와 상처를 극복하지 못할 때에, 반드시 영적인 침체 현상이 오게 되어있습니다. 여러분 유독 영적인 침체에 잘 빠져드는 그런 체질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상처가 와도 잘 극복할 수가 없습니다. 주로 이런 분들이 하는 말이 뭐냐하면, '나는 왜 이렇게 안 되느냐?' 심지어는 '나는 죽어도 안 된다!' 심각한 열등감, 자격지심에 늘 시달리는 이런 분들이 계십니다.
한번씩 좀 화가 날 때가 있더라 구요. 언제냐 하면, 어려운 일을 당한 어떤 분이 계시는데 찾아가서 예배도 드리고, 찬송도 하고, 기도도 하고, 실컷 그렇게 위로를 했습니다. 일어서는데 그분 하는 말씀이, '목사님 나는 안됩니다!' 실컷 위로하고, 같이 기도하자고 약속을 했고 은혜도 받았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는 고개도 끄덕였습니다. 그런데 실컷 하고 일어서는데, '그래도 목사님, 나는 안됩니다!' 여러분 이런 체질이 아니십니까? 그런 사람들이 있더라 구요. 실컷 은혜 받아도 돌아서면 안되고, 돌아서면 죽고 싶고, 이런 분들이 상당히 많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분들은 영적인 침체 현상이 오면 잘 벗어나지 못합니다. 아예 체질적으로, 심지어는 기도하면서 염려하시는 분들! 상당히 이런 분들이 많다는 것이죠.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입니다. 왜 영적인 침체가 옵니까? 하나님 앞에 범죄 할 때에, 여러분 죄라고 했을 때에 우리는 보통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죄를 말하고 있습니다. 사기를 쳤다든지, 간음을 했다든지, 거짓말을 했다든지! 물론 맞습니다. 그런데 지금 제가 말하는 이 죄는 바로 하나님을 떠난 근원적인 죄를 말합니다. 그래서 이 죄가 제일 무서운 것이 뭐냐하면, 하나님과의 단절이 이루어졌다는 것이죠. 이게 가장 고통스러운 사건입니다.
로마서 3장 23절을 보십시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여기서 말하는 이 죄는 어떤 죄를 말합니까? 근원적으로 하나님을 떠난 죄를 말합니다. 그래서 이 하나님을 떠난 죄 때문에, 하나님과의 모든 관계 자체가 완전히 막혔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심각한 고통이 찾아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아담과 하와가 범죄 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기 위해서! 그런데 그 범죄를 통해서 나타났던 중요한 결과가 하나 있습니다. 그게 뭐냐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어졌다는 것이죠. 첫째는 육체적 단절이 왔습니다. 둘째는 영적인 단절이 왔습니다.
육체적 단절이 왔다는 말은 에덴동산에서 내어 쫓겼다는 말입니다. 영적인 단절이 왔다는 말은 하나님과의 모든 교통, 영교가 끊어졌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이것보다 무서운 일이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것보다 더 무서운 일이 있습니까? 여러분들이 아무리 많은 돈을 벌지라도, 아무리 좋은 자리에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성도, 그 인생은 반드시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제가 서두에서 잠깐 말씀들 드렸습니다. 하나님과의 교통이 끊어진 다윗을 보십시오. 얼마나, 얼마나 괴로웠던지 밤새도록 웁니다. 침상이 젖도록 울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옵소서!' 다른 것은 내가 다 참겠는데, 심지어는 '내게 재앙이 찾아와도 하나님 감사히 참겠습니다! 그러나 주의 성령만은 거두지 마옵소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는 것이 그만큼 고통스러웠다는 말입니다. 어쨌든 영적인 침체 현상이 이런 저런 모양으로 나타납니다. 때로는 환경을 통해서, 때로는 인간 관계를 통해서, 때로는 여러분 자신들의 영적 문제를 통해서,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짐으로 통해서 엄청난 고통들이 저와 여러분 속에 밀려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러한 영적인 침체가 오면 중요한 결과들이 있습니다. 침체현상이 끝난다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반드시 그에 따르는 결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첫 번째가 뭐냐하면, 구원의 감격이 사라집니다. 그렇게 기쁘고, 그렇게 평안하고, 그렇게 좋았던 여러분들의 마음들 속에 얼마나 불안한 마음과, 답답하고 힘들고 어려운 고통이 찾아오게 된다는 겁니다. 이게 제일 큰 문제입니다. 구원의 감격이 사라집니다. 여러분들의 상황들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심지어는 물질적으로, 여러 가지로 내몰려도, 그런 속에서도 '나는 하나님이 자녀다! 나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언약에 백성이다!' 이 사실만 여러분 속에 중심으로 딱 붙잡고 있으면, 아무리 어려움이 와도 괜찮습니다. 왜? 내가 하나님의 자녀인데요. 하나님께서 내 삶을 완전히 책임지시게 되어 있습니다. 거기에 따르는 확신도 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여러분 속에 이런 영적인 침체 현상이 오면, 제일 먼저 사라지는 것이 뭡니까? 구원의 감격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때부터는 저 밑에 수렁을 향해서 계속해서 떨어지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보십시오. 이런 구원의 감격이 사라지고 나면 제일 먼저 안 되는 것이 뭐냐하면, 절대로 예배가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구원의 감격을 가지고 이 자리에 앉아 계시는 것하고, 구원의 감격이 전혀 없이 그냥 맹숭맹숭하게 이 자리에 앉아 계신 것하고 차이가 무엇입니까? 제일 중요한 것은, '예배가 되느냐? 안 되느냐?' 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여러분들이 진정으로 구원의 감격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을 가지고 이 자리에 나오셨습니까? 그러면 이 예배 자체가 기쁘고 즐거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구원의 감격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 된 확신도 없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맹숭맹숭하게 앉아 계셔보십시오. 얼마나 지겹습니다. 설교자가 그날따라 5분, 10분 정도 더 길어지면 그때는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릅니다. '무슨 설교를 저렇게 오래 하느냐? 좀 빨리 마치지, 빨리 가야되는데...' 절대로 예배가 될 수 없죠.
예배가 안 된다는 말은 그와 동시에 찬송도 안됩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찬송을 부르실 때에 얼마나 벅찬 감격을 가지고 하나님께 찬송을 드렸습니까? 구원의 감격이 있는 성도는 그 입술에서, 그 마음의 중심에서 진정한 찬송이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찬송을 오래 불러도 그 속에 참 기쁨이 찾아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여러분 속에 구원의 감격이 사라지고 나면, 찬송 한 장, 한 장 부르는 것이 그렇게 또 지겹습니다.
저의 동기 목사님 중에서 중국에 선교사 한 분이 계십니다. 이번에 그런 이야기를 해요. 지금도 중국에서는 마음대로 예배를 드릴 수 없습니다. 어쩌다가 같이 모여서 찬송을 부르고 예배를 드리잖아요. 그러면 3시간, 4시간, 5시간... 계속해서 찬송 부르고 기도하고 말씀을 듣는답니다. 그런데 그분들이 한번 찬송을 부르면 어느 정도까지 부르느냐 하면, 찬송 한 곡이 100절까지 있답니다. 100절까지! 그리고 그 100절까지 다 부르면 1시간이 지나간답니다. 그래도 그분들이 그렇게 뜨거운 감격으로 하나님께 찬송을 합니다. 그러면 사회자가 하는 말이, '한번 더 부릅시다!' 그런 답니다. 그러면 2시간입니다. 저도 이 자리에서 100절까지 있는 곡을 두 번 부르고 나면 아무도 앉아 계시지 않을 겁니다.
여러분 속에 구원의 감격이 있습니까? 진정한 마음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오셨습니까? 여러분 예배 속에 여러분 자신들을 한번 세워 보십시오. 우리 성도들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축복이 뭡니까?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과의 모든 관계는 예배를 통해서, 지금 드리고 있는 이 예배를 통해서 모든 관계가 회복되어 진다는 겁니다. 그래서 구원의 감격이 사라지면 예배도 안됩니다. 찬송도 사라집니다. 더군다나 기도는 됩니까? 아무리 기도하려고 애를 써도 영적인 침체 현상이 일어나면 기도도 제대로 나오지 않습니다. 여기다가 감사는 사라지고 결국에는 영적인 마비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이것처럼 고통스러운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됩니까? 이런 영적인 침체 현상이오면 이런 저런 여러 가지 결과들이 찾아오는데, 그러면 이런 속에서 결국에는 저와 여러분들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운동선수들은 그들에게 슬럼프가 오면 그 슬럼프를 벗어나기 위해서 열심히 훈련합니다. 뛰기도 하고, 몸을 단련하기도 하고, 밤에 잠을 자지도 않고, 어쨌든 이런 슬럼프를 극복하기 위해서 열심히 훈련을 합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영적인 슬럼프, 영적인 침체가 오면 노력해서도 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여러분들이 이빨을 깨물고 열심히 수고하고 노력한들 이런 영적인 침체가 물러갑니까? 그렇다면 이런 영적인 침체 현상이 왔을 때에 과연 어떻게 해야 됩니까? 간혹 저희들에게 이런 영적인 문제가 왔을 때에, 심각한 문제가 왔을 때에, 빨리 이 영적 침체에서 일어나야 될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영적인 침체에서 일어나기 위해서는 우리가 과연 어떻게 해야 되느냐? 시편 42편 5절입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아멘.
보십시오. 지금 시편 기자가 얼마나 영적으로 침체되어 있습니다.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심지어 그 앞에 4절에 보시면, '내 마음이 상했다!'고 했습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 시편 기자는 완전히 영적으로 침체가 되어서 낙심도 되고, 불안하기도 하고, 심각하게 지금 마음이 상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태 속에 하나님께서 시편기자에게 말씀을 합니다. 뭐라고 했습니까?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렇습니다. 여러분 다른 길이 없습니다.
여러분들에게 심각한 영적인 문제가 왔을 때에, 심각한 이런 침체 현상이 왔을 때에, 과연 내가 거기에서 살아나는 유일한 길이 무엇입니까?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언약에 주인이신 그리스도, 우리의 영원한 인생에 주인이신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에 여기에 모든 영적인 침체 현상이 떠나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낙심과 절망과 한숨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까? 이런 분들은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이사야 40장 31절에 "오직 여호와를 앙망 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힘들고 어려우십니까? 답답한 일을 만났습니까? 여러분들의 영적 상태가 지금 저 밑으로 치닫고 있습니까? 그 속에서도 하나님 바라 보십시오.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때에 진정한 찬송과 기쁨과 축복의 역사들이 여러분의 삶 속에 찾아오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 왜, 영적인 침체 현상이 찾아옵니까?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저와 여러분들이 은혜 받지 못하고 이 하나님의 은혜가 지속되지 못하면, 반드시 세상으로, 육신으로 빠져갑니다. 그 결과로 영적인 침체 현상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여러분들에게 중요한 한가지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런 영적인 침체에서 일어나느냐? 오늘 본문에 제목이 무엇입니까? "영적인 힘을 회복하라!" 어떻게 하면 영적인 힘을 회복할 수 있습니까? 은혜 받으십시오. 다른 길이 없습니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아무리 좋은 곳에 합격을 해도 이것은 잠시 지나가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살아나는 가장 중요한 그 회복의 길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하면,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느냐? 고린도후서 6장 2절에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구원의 날이로다!' 히브리서 4장 16절에 보십시오. 거기에 보시면,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오라!'고 했습니다. 다른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얼마나 실제적으로 체험하느냐? 여기에 여러분의 모든 영역이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두 가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느냐? 이번 한 주간 꼭 이 두 가지를 잡고 한번 기도해 보십시오. '어떻게 하면 영적인 힘을 회복하느냐?'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느냐?' 첫째입니다. 교회 건축의 현장에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한번 다 싫어보십시오. 물론 지금까지도 교회 건축을 위해 기도해 오셨고 헌신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자칫하면 어떤 생각을 하느냐 하면, 이 교회 건축을 하면 내가 뭔가 헌신을 해야 되고, 내가 뭔가 해야 되는 걸로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여러분 잘 기억하십시오. 교회 건축을 허락하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입니다.
여러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내가 교회 건축을 하고 싶다고 되어집니까? 또 내가 아무리 많이 드리고 싶어도 없으면 드릴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온 교회 속에, 또 저와 여러분 속에 교회 건축이라는 이런 모든 축복을 은혜로 허락하셨다는 겁니다. 그래서 여기에 모든 중심을 담고 함께 기도하실 때에, 여기에 진정한 응답들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은혜를 체험하는 길이 있습니다. 특별새벽기도회! 여러분 교회가 방향을 정하고 중요한 행사를 준비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이 속으로 다 들어오십시오. 다 함께 참석하셔서, 여러분들의 진정한 소원들이 있습니까?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마음을 여러분들이 아십니다. 그러면 이런 중요한 기도 제목을 두고 여러분의 마음을 싫고 한번 기도해 보십시오. 그러면 여기에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가 어떻게 임하는지를 여러분들이 실제적으로 체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건축은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신 최고의 은혜다! 두 번째는 우리가 특별 새벽기도 속으로 들어갈 때에, 여기에 진정한 은혜를 체험할 수 있다. 그래서 이 두 가지를 잡고 이번 한 주간 기도해 보십시오. 얼마나 큰 축복이 여러분의 삶 속에 임하는지를 새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한 주간 영적으로 침체된 내 자신을 다시 세우십시오.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사명으로 완전히 무장하십시오. 최고의 은혜를 누리시고 이번 한 주간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양심있는 성도는 어떻게 하면 신앙생활을 잘할까 고민을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신앙이 좋던 사람들이 어느날 불신자처럼 살아갑니다. 이것을 보고 우리는 영적인 침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 영적인 침체가 왜 일어나고 어떻게 승리하느냐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신앙의 자리에서 떠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1. 영적인 침체
① 평소에 믿음이 좋던 사람들이 갑자기 교회에 나오지를 않습니다.
② ‘침’ - 가라앉는다는 의미, ‘체’- 막힌다는 의미입니다. 영적인 침체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막히고 가라앉는 의미
입니다.
③ 성도의 삶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것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막힐 때입니다.
④ 믿음이 좋던 다윗이 밧세바 사건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겼습니다. 그때 침상이 젖도록 울면서 하나님
께 매달렸습니다.
⑤ 그때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옵소서. 탄식을 했습니다.
⑥ 운동 선수들이 힘이 좋을 때는 잘하지만, 한번 슬럼프에 걸리면 모든 성적이 부진하게 나오게 됩니다.
⑦ 믿음이 항상 올라가기만 하면 좋겠지만, 한번씩 영적인 침체가 닥치게 됩니다.
2. 영적인 침체가 오는 이유
① 첫째로, 우리에게 여러 가지 환경이 오기 때문입니다.
② 엘리야 선지자를 왕과 모든 백성이 죽음으로 오는 환경에 닥쳤습니다. 그때 엘리야는 하나님께 죽음을 구했
습니다. (왕하 14장)
③ 직장과 가정에 우리를 매장시키는 문제가 없습니까? 그중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신앙의 중심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④ 둘째로, 인간 관계 속에서 영적인 문제가 올 수 있습니다.
⑤ 다윗이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왕을 피하여, 원수의 땅인 블레셋 땅으로 도망갑니다.
⑥ 어떤 여자분이 항상 혼사가 깨어지고 안 되어지면, 체념된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⑦ 다윗도 체념하는 마음으로 블레셋까지 들어갑니다. 그곳에서 다른 사람들을 죽이고, 재산을 빼앗고 물건을 블
레셋 왕에게 상납합니다.
⑧ 원래 그렇게 어진, 다윗의 신앙이 지치고 쓰러지는 지경에 처한 것입니다.
⑨ 우리도 물질에 위치에 환경에 쫓기고 있지 않습니까? 정말 고통스러운 환경에서는 기도조차도 제대로 나오지
않습니다.
⑩ 셋째로, 자신의 영적 문제와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⑪ 유독 상처가 올 때 극복하지 못하는 영적인 문제가 많은 체질이 있습니다.
⑫ 이런 체질이 여러분에게 깊이 자리잡히면 늘 열등감과 자격지심에 빠지게 됩니다.
⑬ 넷째로, 하나님 앞에서의 범죄입니다.
⑭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함의 결과가 하나님과의 단절입니다. (롬 3:23)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육체와 영적인 단
절이 왔습니다.
⑮ 항상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찬양했던 다윗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단절이 되었기에 괴로움 속에 있게 되었습
니다.
3. 영적인 침체의 결과
① 가장 힘든 것이 구원의 감격이 떨어지는 것입니다.
②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이 있으면, 항상 누리고 감사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에서 떨어지면 모든 불안과 고
통이 찾아옵니다.
③ 그때부터 예배가 되어지지 않습니다. 구원의 감격이 없으면 예배가 그렇게 지겨울 수가 없습니다.
④ 둘째로 여러분의 입술에서 찬송이 사라집니다.
⑤ 우리의 상태가 좋으면 우리의 입에서 기쁜 찬송이 나옵니다. 그러나 영적인 침체에 있으면 찬송조차 신경질
이 납니다.
⑥ 중국은 신앙의 자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어쩌다가 한번 모이면 세네시간 찬송을 부르고 감사가 나온
다고 합니다.
⑦ 심지어는 기도조차도 사라집니다. 궁극적으로 영적인 마비 현상까지 오게 됩니다.
4. 하나님을 바라라
① 시편 기자에게 영적인 침체 현상이 왔습니다. (시 42:5) 그때 하나님이 말씀하시길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
의 도우심을 인하여 찬송하리로다.’
②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독수리가 날개 치듯이 힘을 주실 것입니다. (사 40:31)
은혜가 지속되지 못하면 세상과 육신에 빠지고 영적인 침체에 빠지게 됩니다. 은혜받으십시오. 저와 여러분이 사는 길입니다. 고후 6:2(보라 지금은 은혜받을 때요 구원의 날). 4:6 (은혜받을 보좌로 담대히 나아가라) 영적인 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첫째로 교회 건축의 현장에 마음을 실어보십시오. 교회 건축은 하나님께서 주신 최고의 축복의 기회입니다. 물질과 여러분의 중심이 드려질 때 은혜를 받는 유일한 길이 됩니다. 둘째로 특별 새벽기도입니다. 이 특별 새벽기도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중심을 바랄 기회입니다. 교회가 방향을 정하고 기도하는 중에 여러분이 함께 기도할 때 최고의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여러분의 모든 삶까지도 하나님이 책임지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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