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성찬과 그 이후
2004-12-12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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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1월 달에 들어가면 입당 준비도 해야 되는데, 입당을 언제 할 것이냐? 그것도 급하게 할 필요 없어요. 왜냐하면, 우리가 일찍 들어가서 예배는 드리면 되고, 입당예배는 따뜻할 때, 3월 달에 드려도 되고, 2월 달에 드려도 되고 그런 겁니다. 입당예배는 좋을 때에... 제가 오늘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 우리가 준비하는 일에 하나만 붙잡으면 돼요. 예수 그리스도! 정말 저기 가서, '나를 통해서, 내게 붙여주신 예수 그리스도 확실히 전할 수 있는 제자가 되자!' 이것이 중요한 하나님의 계획이요, 목표입니다. 하나 교회에 가게 되면 모든 게 달라집니다. 달라지는 게 아니고 달라져야 돼요.

그게 세계를 보는 일에 달라져야 되고, 우리가 지금 조금 조금씩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습니다 만은, 저쪽에 가서 은혜 주시면 온 만방에 다 보내야 돼요. 하나님이 은혜 주시는 데로 이렇게 인도 받기를 원합니다. 뭐 형편이 안되고, 어려우면 할 수 없죠. 빗 내어서는 못 가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시면 그 모든 일도 뛰어넘게 하실 것을 믿고, 그렇게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아시고 여기에 있는 동안에 미리 교역자들은, 아마 교구마다 조금 강조할겁니다. 문제는 전도캠프! 한 교구, 한 지역, 또 개인 개인이 구체적으로 몸에 익어 버려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세계 복음화에 귀한 길이고, 또 그 하나만 해결되면 그 뒤에 모든 것이 따라온다! 그게 성경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더한다는 것은 있는 위에 더 보태는 것이거든요. 뭐 있는 위에, 세계복음화의 약속을 확실히 잡은 위에 더해 주신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저는 점점 이렇게 뭔가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아픈 고통 중에서 하나 얻은 것이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구나!' 그리고 '내가 영육 간에 해결 받을 길, 영육 간에 축복 받을 길이 이길밖에 없구나!' 이것이 너무 절실하게 내 주변에 몸이 아파서 들어오는 환자들을 보면서 더욱 절감합니다. 실컷 축복 받고, 뭔가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이 누려도 복음이 안되어서 마지막에는 허무에 빠져 버립니다. 절망과 고통과 영원한 멸망에 빠져버립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아무리 고통스러운 것 같고, 현실이 괴로운 것 같고, 또 어려운 것 같아도 하나만 붙잡으면 돼요. 왜? 그 위에 모든 것을 더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인도하실 것입니다. 세계 복음화! 그것이 이제는 우리의 구호가 아니고, 인사가 아니고, 사실이 될 것입니다.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을 성찬과 그 이후라고 그랬는데, 사실은 뭔가 여기에 좀 하나 이해를 돕기 위해서 말을 붙인다면, 성찬이라는 것도 이게 바로 구원이거든요. 구원과 그 이후라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구원받았는데, 모든 것이 왜 안 되느냐? 구원받았는데, 왜 이 문제가 해결 안 되느냐?' 성경 적으로 해석을 좀 가질 필요가 있어요. 여러분 구원받았다고 다 되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베드로의 입장을 조금 보면서, 구원받았는데 사실은 그때부터 문제가 터집니다. 그전에는 문제 터지면 돌아서고 낙심하고 깨져 버리니까, 터져 봐야 안되거든요.

그런데 성경에서 베드로의 예를 보더라도 우리가 그 예를 적용시켜 본다면, 구원받은 후에 베드로에게는 모든 문제가 터졌습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후에 예수님이 깊은 비밀을 말씀해 주시면 주시는 것만큼, 더 어려운 문제가 생기더라 구요. 나중에는 십자가 비밀도 보고, 그 사건을 실제로 경험하면서도 그 후에 뭐라고 그랬습니까?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그 명령을 붙잡고 나갔다고 하지만, 그 후에 '애들아, 갈릴리로 가자!' 그래가지고 다 낙심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그 후에 또 다시 돌아와서 어디에서 비로소 본 괴도에 올라서게 되느냐? 그것이 오순절 이후입니다. 그래서 새삼스럽게 강조하고 싶은 것은, 여러분들이 '구원받았다!' 아무리 떠들고 뭐 해도 역시 구원받았다는 것 하나 가지고는 구체적인 힘이 안돼요. 지식으로도 하고, 또 지능으로, 감사로, 감정으로 하지만 그러나 구원받으면 사실적인 문제는 더 터지게 됩니다. 예수님의 비밀을 알면 알수록 더 어려워 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낙심도 하고, 괴로워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흔히 사람들이, '내가 예수 믿는데, 왜 어려움 당하느냐?' 그렇게 오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디까지 가야 되느냐? 정말 언약을 잡고, 위기를 안고, 예수님의 마지막 순간에 말씀하시던 그 약속을 붙잡고,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도하라!' 그 말씀을 붙잡고 집중해서 기도하는 동안에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그때 당시에 예수 알고, 구원 알고 그랬던 모든 제자들에게 모든 해답을 실제로 해결해 주었습니다. 성령의 임재입니다. 성령의 역사!

그래서 우리가 예수도 알고, 그리스도도 알고, 영접을 했다고 하지만 왜 이런 문제가 오느냐? 여러분 한가지 과제가 남아 있어요. 성령의 실제를 확인하십시오. 이게 지금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때부터 베드로도 그의 사역을 감당했고, 모든 제자들을 감당했습니다. 그때부터 어려움이 왔다! 순교해서 다 죽었더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붙잡고 그들이 성취될 메시지로 승리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남은 시간 사실상 어려운 세대에 남아 있습니다. 뭐 희미하게 예수 그리스도 붙잡고 '된다, 된다!' 그래서 되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미리 우리 예수님께서 그 언약을 잡고, 구원의 그 역사를 붙잡고, 뭔가 몸부림치다가 정말 실제로 이 사실이 해결되는 그런 순간 성령의 임재! 그것이 구체적인 사실로 내가 인식이 되고... 이 정도로 되는 정도가 아닙니다. 내 것으로 와지게 될 때에, 내 힘으로 아닙니다. 내 수준과 상관없이 하나님이 하시는 역사 속에 서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들을 훈련시킬 때도 반드시 구원의 확인을 먼저 시켜주셨고, 또 싸움을 이길 수 있는 길도 바로 이 문제이고, 그 다음에 큰 축복을 누릴 수 있는, 누리고 지탱할 수 있는 힘도 이 구원의 역사에 확인입니다. 이것이 안되면 큰 축복을 받았어도 누리지를 못해요. 다 쏟아버리고, 낙심해 버리고, 그런 경우입니다. 그래서 구체적인 이 축복과 역사를 누리는 그 사건 속에서도 다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내 생애 모든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구원 속에 다 있습니다. 여기에서 축복도 있고, 누림도 있고, 또 여기서 번영도 있고, 번창도 있습니다. 이것이 안 되는 한 중간 중간에 낙심하면서 고향으로 다 돌아갑니다. 여러분 고향이 어디입니까? 옛날 율법으로, 종교로, 문제 생기면 '우향 우' 해서 돌아가 버리고, 문제 생기면 또 때에 따라서는 '좌향 좌' 해서 돌아가 버리고, 문제 생기면 '뒤돌아 가' 해서 가버리고, 이게 지금 인간의 역사입니다. 알고 있다는 문제가 아니더라 구요. 그래서 제가 주변에 보면서 느끼는 것은, 잘 알고 열심히 하던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뒤로 돌아가!' 해서 가버리고... 그게 결국 뭐냐? 성령의 구체적인 사실이 확인이 안되어서, 그래서 구원에 역사를 알고 있다지만 그게 안 되는 겁니다.

오늘 여러분 여기에 계시는 분들 중에, '구원에 확신이 있습니다!' 하고 고백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습니다. 아마 내가 보기에 거의 없을 것 같아요. 그러면 '나는 구원에 확신이 없습니다!' 하는 확신은 분명히 모두 갖고 있어요. 손들라고 하면 이편이 더 많아요. 그게 지금 현실적인 문제입니다. 그것이 어디서 오느냐? 이제 말씀드린 것처럼, 내 구원에 확신이 있다는 정도가 아니고, 그 사실이 내게 사실로 와 져야 되는데, 성령에 확인입니다. 이것이 구체적으로 있어야 되죠.

그래서 마태복음 16장 21절에 보면,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그랬습니다. 예수님께서 중요하게 깨닫게 하신 말씀도 오래도록 제자들에게 하고 싶었지 만은 말을 못했어요. 그래서 비로소 가르치실 때가 언제 입니까? 베드로의 고백! 구원의 역사를 확인하는 그때에 비로소 말씀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구원에 확인을 가졌다고 해서 된 것이 아니거든요. 바로 예수님께서 이때다 싶어서 말씀했는데, 뭐라고 그랬느냐? 3일만에 부활할 것을 이미 암시도 주시고 이야기를 했지만, 죽는다는데 대해서 베드로는 소화가 안 되는 겁니다. 그게 이해가 안돼요.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 듣고, 이해하고, 깨닫게 되는 것! 그게 보통 일이 아닙니다. 구원의 확신과 구원의 은혜가 있으면 깨닫게 돼요. 그런데 이것이 사실로 정착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이 왜 그러냐? 그렇게 분명한 고백을 한 베드로에게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해서 비로소 이야기를 했어요. 오랫동안 감추었던 비밀이기 때문에, 그리고 구약 속에 감추었던 비밀인데 이야기를 하니까, 마태복음 16장 22절에 보면, 그 잘나가던 베드로가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붙들고 늘어졌어요. '주여, 그리 마옵소서!' 원문에는 '그리 마옵소서!' 하는 말이 아주 강조되어서, '예수님이 하는 사건과 일을 멸시하며 무시하는 뜻'으로 이야기가 나온다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뭐라고 그랬느냐 하면, 마태복음 16장 23절에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 알고, 깨닫고, 믿고, 확인하고, 간증하고 그렇게 돌아다녀도 정말 중요한 문제에 부닥치게 되면, 사람은 자기를 생각하고, 하나님을 생각지 않는다고 그랬습니다.

나는 이 말이 너무 공감이 돼요. 왜냐? 교회 모든 문제나 사건이 내게 부닥칩니다. 거의 어디로 돌아가느냐? 내 이익과 연결되지, 정말 복음 위해서 내가 희생할 수 있고, 복음 위해서 내가 내어놓겠다! 이게 잘 안되더라 구요. 그게 교인들만 안 되느냐? 그걸 가만히 보면 나도 잘 안되더라 구요. 이게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대로 두셔서는 안되니까, 결국은 어디서 기도하고 기다리라! 그래서 성령으로 내 수준과 생각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역사에 지배를 받은 겁니다. 이게 이루어져야 되는 거죠. 그게 바로 성령의 임재 하심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수준까지 말하느냐 하면, 자기의 이익과 연결된 베드로에게 24절에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죽었다가 깨도 안 되는 것이 자기 부인이 안돼요. 지금 열심히 예수 그리스도 그러지만 문제 생기면 자기 부인이 되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더욱 부각이 됩니다. 그래가지고 어떻게 하느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을 것이니라!' 이 제일 안 되는 부분을 예수님께서 정말 결정적인 순간에 지적을 해 주시고 이야기 한 것입니다.

그 다음에 25절에 보면,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죽어도 안 되는 것이 또 이겁니다. 어디에 친구를 위해서 제 목숨을 버리겠다고 덤비는 사람은 없습니다. 지금 송현교회 교인들에게 '박 목사가 다 죽어가니까 생명 내어놓아라!' 아마 거의 다 달아나지 싶어요. 모르긴 하지만... 그래도 좋다고 덤빌 수 있는 사람들이 한 두 명만 생겨도 성공합니다. 그런걸 가지고 제자라 그랬습니다.

제가 한번 인용했던 이야기가 생각나는데, 윤성주 목사님이 치유 사명자 대회에서, '목사가 훔치면 나도 훔치고, 목사가 교도소 가면 내가 대신 가고...' 그런데 그걸 웃으면서 넘겼지만 이게 자기를 부인하고, 완전히 정말 그리스도 위해서 내 생애를 놓치지 않으면 이게 안되게 되어 있습니다. 바울을 위해서 생명을 주겠다! 그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거의 망보는 사람이에요. '목사님은 훔치러 들어가십시오. 내가 망볼께요!' 이건 결국은 뭐냐? 망보면 증인이 됩니다. '내가 보니까, 목사님이 훔치고 그러더라고... 다른 사람은 못 봤고 내가 망봤습니다!' 결국 더 나쁜 사람이 된다 이겁니다.

그래서 오늘 뭔가 시시한 예를 들었지만, 우리로 이야기한다면 그런 이야기입니다. 정말 우리가 복음 위해서 뭔가 내가 희생하면서, 또 어렵고 힘든 일은 내가 뒤집어쓰면서, '정말 복음 위해서 내 인생을 던지리라!' 이게 안되어 있어요. 오직 복음이 되어도 성령의 사실적인 인도가 안되면... 왜? 내 힘과 내 수준과 내 지식과 상관없이 뛰어난 성령의 지배와 인도를 못 받으면, '인간으로서는 이게 불가능하다!' 이겁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에 계속해서 강조하는 것이, 어디 가든지, 뭘 하든지 성령 충만 주옵소서. 그 이야기입니다. 지금 성령 충만 달라고 하니까, 뭔가 성령 충만 받아서 펄펄뛰고 능력이 나가고, 이런 것이 아닙니다. 적은 일에도 이것이 지금 사실적으로 안되니까, 하신 말씀이죠.

그래서 어려운 말을 아무 때나 한 것이 아니거든요. 16장 16절에 보면,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17절)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결국 깨닫고 아는 것도, '하나님이 하셨다!' 그랬습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신앙생활 하는 것! 깨달았다! 뭔가 내가 해놓고 보니 엄청난 일을 했다! '하나님의 은혜로다!' 인간 지성과 이성으로는 안되게 되어 있습니다. 인간 지성과 본성으로는 자기를 챙기게 되어 있어요. 이게 뭔가 우리의 본성이고 사단의 본성입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사단의 본성인지도 모르고 자꾸 챙기고 있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빠져 들어가는 문제죠. 그래서 아무리 가르쳐도 사람은 스스로 깨달을 수 없습니다. 베드로가 십자가 지심을 보고 깨닫지 못했고, 베드로가 십자가 앞에서 분명한 사실을 보고서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뭡니까? 더 강퍅해져서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절대로 안 그러겠다고 약속해놓고도, 자기 지성과 인성으로는 안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인간적으로 아무리 결단해보세요. 복음 위해서 살고 그렇게 나갈 수 있는 것이 안되게 되어 있습니다. 순간 문제 생기면 자기도 모르게 얼굴 한번 안 붉히고 태연하게 예수님 부정합니다. 자기 이익 챙기고 나갑니다. 이게 교인들의 생활과 삶이에요. 성경이 베드로를 통해서 분명히 보여 주었습니다.

그래서 말씀 따라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도하고, 성령이 임하기까지 기다리라! 그렇게 분명한 말씀을 했죠. '성령이 임하기까지 기다리라! 약속하신 것이 임하도록 기다리라!' 이때 사도행전 1장 8절이 성취가 됩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수준과 지식과 감정과 상관없이 성령에 인도를 받을 때에, 그러면 능력과 권능을 주셔서 세계를 정복해 나갈 것이다! 그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하나교회 간다! 아무리 감정 폭발시켜봐야 인간의 것으로 안됩니다. 여러분 지금부터 우리가 준비할 것은, '주여, 성령 충만 주옵소서. 내 가정과 내 생애에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옵소서!' 이미 우리가 알았습니다. 지성으로 안되고, 감성으로도 안되고, 호기심으로도 안되고, 오기가지고도 안됩니다. 오직 할 수 있는 것은, '여러분과 제게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옵소서!' 이길 이외에 다른 길이 없다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조금 전에 말씀했습니다 만은, 교인 중에 '나는 확신이 없습니다!' 괜찮습니다. 이제는... 그리고 어떤 면에서 어떤 사람은 나는 확신 있습니다! 괜찮습니다. 뭐 있다고 하든지 없다고 하든지 상관없습니다. 오직 성령의 임재를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구원이라는 것이 무엇인가?'라고 하는 근본문제를 한번 살펴봐야 되겠어요. 그러면 성령에 역사를 통해서 내가 구원받았다! 그래서 성령에 역사를 통해서 구원받았다! 이 사실이 확실히 인지되어야 되거든요.

여러분 '구원받았다!' 그러면 그냥 구원받았는가 보다! '아, 내가 예수 믿어서 구원받았는가 보다!' 그런 생각을 많이 합니다. 에베소서에서 말씀한 것처럼,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라 그랬습니다. 그 은혜로 주신 하나님의 선물 속에 중요하게 역사하고 작용하는 구체적인 역사와 능력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바로 말하면 성령이 임재 하셔서 하나님의 생명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이걸 알아야 돼요. 여러분이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지만 내 생명이 아닙니다. 누구의 생명? 하나님에 생명입니다. 받아합시다. "이래봬도 나는 하나님의 생명이다!" 알만합니까? 뭐 이상하게 느껴지고, 나는 안 된다 싶고, 별생각이 다 있어도, '이래봬도 나는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자다!'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배경을 바로 깔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지식으로, 마음으로, 입술로, 인격으로 영접한 사람이 바로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이때부터 자신의 능력과 관계없이 성령이 그 속에 실제로 역사 합니다. 이게 인지가 되어야 돼요. 내 능력과 내 수준과 내 생각과 상관없이 성령이 내 안에 역사하고 계신다! 여러분들이 이걸 잊어버릴 때가 많아요. 어떤 시간과 순간에 거의 욱하고 나오는 것이 내가 나오지 성령이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어쩔 때는 웃옷도 확 벗어제쳐 놓고, '성령이여, 하나님이여, 가만히 계십시오! 내가 일해놓고 말겠습니다!' 이런 식이지! 진짜 여러분 그 순간, 순간 '성령이여 지금 인도해 주옵소서!' 이게 잘 안되고 있습니다.

로마서 8장 2절에 보면,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여러분이 갖고 있는 생명은 해방해주신 성령에 생명입니다. 성령의 역사입니다. 바로 그 성령에 역사가 얼마나 귀하냐?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이렇게 되면 우리 능력과 수준과 상관없이 지혜도 나오고 고백도 나옵니다.

고린도 전서 12장 3절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그냥 예수 그리스도가 주라고 믿어지고, '주님!' 그러고 부르는 것이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이 축복과 은혜가 내 생각, 내 뜻이 아닙니다. 누구라 구요? 성령에 임재입니다. 성령으로 아니고는 간단한 말이지만, 우리 입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주여!'하고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어떤 경우에 기도하자 그러고, 열심히 한번 주여 힘껏 부르짖자 그래서 '주여!' 그러면 옛날에는 잘했는데, 요즘은 그게 잘 안 되는지 '주여!' 소리가 잘 안나와요. 성령으로 아닌지! 여러분 정말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성령으로 아니고는 우리가 담대하게 예수를 주라 시인할 수가 없습니다. 시인하는 자체가 우리에게 성령에 임재와 역사인 것을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의미에서 안 믿는 사람과 믿는 사람이 너무 다른 것이 있어요. 믿는 사람은 성령에 인도를 받습니다. 믿습니까? 그런데 지금까지 악령에 인도를 받아왔거든요. 이게 문제입니다. 그리고 안 믿는 사람은 사단에 인도를 받습니다. 귀신에 인도를 받습니다. 이게 믿는 자와 안 믿는 자의 너무 엄청난 차이입니다. 여기에서 엄청난 결과와 그리고 후손만대에 문제가 여기서 다 갈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없는 사람의 상태는 아담과 하와의 상태입니다. 말하자면 타락하고 난 후에 상태와 똑같습니다. 구원 이전의 상태와 똑같이 가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바로 그런 상태는 무슨 상태냐? 여러분들이 성령의 인도 안 받고 살면, 간단하게 그런 것이다! 내가 나오면 그런 것이다! 그렇게 생각할 수가 있는데, 여러분 아셔야 합니다. 성령의 인도 안 받는 그때부터 뭐냐? 그 배경이 뭐냐? 받아합시다. "그때부터 사단에 인도를 받는다!" 이게 무서운 사단의 지배와 인도를 받아요.

그래서 요한복음 8장 44절에 사단의 지배와 인도를 받는 것이 아니라, 친구라! 너무 고통스러운 그런 답이 나오죠. 받아합시다. "너희아비 마귀!" 마귀를 '아버지!' 그러고 따라다닙니다. 뭐 마귀를 '아저씨!' 그래도 못한데, 마귀를 '아빠, 아빠!' 그러고 따라 다닙니다. 이렇게 되면 그렇게 '아빠, 아빠!' 그러고 따라 다니는 마귀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고 난 후에 어느 날 이걸 원수로 대하려고 하니까, 이게 훈련이 잘 안돼요.

그때에 EBS에 가장 핵심 중에 하나가 뭐냐하면, 예수 믿고 나면 새로운 원수가 생겨요. 그게 뭐냐하면, '아빠!' 그러고, '친구!' 그러고, 따라 다니던 그 사단에 역사가 완전히 대 원수로 바꾸어져 버립니다. 이게 인식이 잘 안돼요. 그래서 내가 놓여진 위치와 내가 놓여진 축복에 자리가 인식이 잘 안돼요. 이 이야기를 할 때에 초기에 많이 강조한 것이 있습니다. 일하던 종업원이 어느 날 사장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장이 사장 자리에 앉아서 사장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인지가 안돼요. 그러니까 사장실에 들어가자 말자 뭐부터 하느냐 하면, 청소부터 먼저 하는 겁니다. 청소원들이 다 있고 그런데도 그러는 겁니다. 그리고 과장하고 들어오니까, 사장 밑에 사람인데 옛날 인식이 아직까지 남아있어서 벌떡 일어나 가지고 인사부터 하는 겁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가 꼭 그 꼴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엄연한 축복의 자리에 앉아 있지만 사단이 들어오면 벌떡 일어나서 인사부터 합니다. 자기도 모르게 거기에 지배와 인도를 받습니다. 이게 지금 구원받은 자들이 구원이 후에 빨리 해결이 안 되는 겁니다.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옛날체질, 옛날습관 그대로 따라가고 있습니다. 사단이 뭐 그러면 거기에 매여 가지고 절절매고 앉았습니다. 그러다가 정신이 조금 들면, '아, 내가 하나님의 자녀인데, 이래서 되겠냐...' 그래서 입술을 깨물고, '사단아 물러가라!' 백 번, 천 번 그래도 진짜 이 사실이 인지가 안되면 말로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 충만 받으십시오. 그래서 늘 사도행전 전체의 성령 충만 받아야 돼요. 잠시라도 여기서 끊어지게 되면 우리도 모르게 어디로 갑니까? 사단의 종으로 전락하게 되는 겁니다. 모르죠. 죽을 때 구원받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이 땅에 사는 동안에 계속 사단에 종노릇하고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을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니까 뭐가 나옵니까? 그 마음속에 평안이 없어요. 혹시 여기오신 분들 중에 마음에 참 평안이 없습니까? 구원받았지만 조금 전에 말씀한 내용이 그겁니다. 평안이 없어요. 늘 불안하고 답답합니다. 사장자리에 느긋하게 앉아 있으면 되는데, 늘 평안이 없어요. 과장이 와도 벌떡 일어나고, 계장이 와도 벌떡 일어나고, 늘 불안합니다. 심지어는 청소부가 와도 벌떡 일어나고 불안합니다. 내가 놓여진 자리, 이 축복된 자리가 인지가 안됩니다. 그래서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듣죠. 우리가 어떤 장소와 어떤 사건 속에 나가든지, 꼭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외치고 나가라고... 이게 너무 안되니까, 그렇게 까지도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성취할수록 끝없는 불안이 계속됩니다. 높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점점 더 불안해 져요.

그리고 분쟁이 계속됩니다. 영적으로 마음과 생각 속에서... 그래서 마태복음 12장 29절에 보면, "예수께서 저희생각을 아시고 가라사대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질 것이요 스스로 분쟁하는 동네나 집마다 서지 못하리라" 이게 하나님의 백성으로, 참 주님을 모시고 평안하지 못한 자들에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열심히 노력해서 올라간들, 성취한들 점점 더 허무해지고 해결이 안 되는 그 속에 문제가 따라오게 되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자신도 모르게 누구에 종이 돼요? 사단에 제자가 됩니다. 사단에 종이 돼요. 하나님의 자녀로 서 있으면서도 사단에 종으로 살아간다! 이것만큼 억울하고 통탄할 일이 없잖아요.

실제적으로 현실이 그렇거든요. 분명히 구원받았는데, 엉뚱한 것에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변화가 안되어서 어디서 종노릇하느냐? 변화가 안되니까, 옛날 삶으로 율법에 종노릇하고, 그 다음에 좀더 나가서 미신에 종노릇하고, 그래서 늘 그런 이야기를 안 합니까! 우리 자신도 이 몸에 베여있는 그런 어떤 미신과 귀신의 역사에 얽매여 가지고 벗어나지를 못하는 겁니다. 그게 내가 너무 인상에 남아있던 것이기 때문에 말할 때마다 그게 튀어나오는데, 부흥회 하는 동안에 딸꾹질 난다고 짚으로 목을 감고 있으니까!

이게 어떤 면에서 일반적인 문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만은, 부모가 자식을 교육시킬 때도 꼭 그와 같은 배경을 가지게 됩니다. 이빨이 빠졌습니다. 그런데 부엌에다가 집어넣을 때에 그렇게 열심히 기도하고 잘 믿던 어머님이, '헌 이 가져가고 새 이 주시오 그러던가...' 그것도 또 굴뚝에 집어넣기도 하고, 우리 자신도 모르게 구원받았지만 사단에 종노릇합니다. 운명에 매여서 운명에 절절매고, 운명에 눌려서 고통과 괴로움에서 헤어나지를 못합니다.

여러분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순간에 재난과 저주에서 완전 해방입니다. 할렐루야! 이 사실이 성령이 아니고는 생각과 수준이 안되더라 이겁니다. 나도 모르게 거기에 빠져 가지고 해결이 안돼요. 이러니까 때가 오면 어느 순간 육신이 병들게 되고, 또 정신과 마음도 시달리게 되고, 이 땅을 떠나게 될 때 그래도 구원받았으면 다행인데, 구원 못 받고 이 땅에 이렇게 매여 살다가 영원한 멸망으로 빠집니다. 그런데 끝까지 죽을 때까지 안 바뀌었다! 그러면 이건 본 주소가 달라요. 결국은 뭡니까? 구원 못 받은 자로 인식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구원 못 받아서 이렇게 사단에 종노릇하며 벌벌 떨면서 살다가 결국은 사단이 가는 지옥에 영원한 멸망으로 빠져 버리는 것입니다. 이게 무서운 문제죠.

그래서 오늘 여러분들에게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은 것은, 구원받으면 어떻게 되느냐? 구원받으면 받아합시다. "재앙과 저주와 모든 죄에서 해방 받는다!" 할렐루야! 이걸 건성으로 알고 있어요. 정말 모든 죄 감과 죄 책에서 완전 해방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원죄에서 해방 받습니다. 이것은 도저히 복음 아니고서는 해결할 수 없는 거죠. 원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단의 손에서 해방 받았다!' 원죄입니다. 이걸 가지고 근본적인 영적 문제라 그럽니다.

여러분 지금 영적 문제는 다른 게 아닙니다. 뭐 이상하다 영적 문제 있다! 아닙니다. 진짜 영적 문제는 이상하다는 그런 행동을 통해서 뭐냐? 저게 아직까지 사단에 매여 있구나! 이게 영적 문제예요. 아무나 붙들고 영적 문제 있다 이 소리하지 마세요. 그때는 귀떼기 맞을 각오해야돼요... 그러면서 뭐냐? 원죄가 해결되었다. 자범 죄가 해결 된 겁니다. 이미 여러분 내가 짖는 죄도 해결되었지만, 앞으로 지을 모든 죄도 해결되었습니다. 왜? 성령에 인도 받고, 하나님의 성령으로 인도 받으면 자범 죄에서 해방 받아 버렸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조상의 죄에서 이건 대대로 영적 문제 아닙니까! 조상의 죄에서 행방 받았다! 할렐루야! 이 사실이 참 인식이 안되고 어려운 일이 많아요.

저는 거의 잊어버렸는데, 한번은 우리 집에서 누가 '머리 아프다!' 그러더라 구요. 그런데 내가 마음에 '아, 너무 감사하구나! 내가 이 머리 아픈 이 흑암에 세력에서 해결 받았구나!' 우리 부모를 통해서 받은 게 우리 형제들이 거의 다 그래요. 처음에는 '쪽 머리 아프다!' 그러더라 구요. 머리 아픈 것! 나는 어릴 때부터 오후가 되면 머리 아픈 게 있었거든요. 이 머리 아픈 것이 해결이 안돼요. 어떤 병을 앓았던 것이 아닙니다. 그냥 오후만 되면 아파요. 그것도 머리 아프기 시작하면 아무것도 하기 싫어요.

그래서 처음에 머리 아프다고 늘 형님이 잡수던 '명랑 뇌심'을 많이 먹었습니다. 그걸 먹으면 감쪽같이 났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그걸 먹다가 목사 되어 가지고 여기 개척교회에 와서도 한참 머리 아픈 건 해결이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뭘 먹었느냐? 그때는 '펜잘' 많이 먹고 지냈습니다. 하나 먹으면 좀 쎈 것 같아서 반쪽으로 나누어서 먹었습니다. 그러면 적당해요. 그런데 이게 언제 해결되었느냐? 나도 그걸 몰랐어요. '예수는 그리스도시다!' 그러고 돌아다니면서 백목 다 부러뜨렸잖아요. 처음에 막 감격해서 그냥 흑판을 찍고, '예수는 그리스도다!' 강의 한번하고 나면 백목 하나 옳은 것 없이 다 부러졌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에 머리 아픈 증세가 사라져버렸습니다.

나는 그게 혈압 때문에 오는 증세인줄 알았는데, 혈압과 상관없이, 또 혈압으로 오는 뒷통수 땡기는 것도 없어져 버렸어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내가 너무 감사한 것은, '아, 이게 없어졌구나!' 그래서 '이게 없어졌구나!' 하고 깨닫는 것도 오랜 후에 얼마 안 되어 가지고, '맞다! 그게 나한테서 없어졌구나!' 요즘은 머리 아픈 게 없거든요. 머리 아픈 이야기해도 절대로 머리 안 아픕니다. 이게 '조상적부터 오는 나의 영적 문제가 완전히 해결 받았구나!' 나는 그 머리 아픈 것이 나만 아픈 줄 알았는데, 우리 형제 자매가 다 그래요.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우리 어머님도 머리 아팠어요. 아버지는 말할 것도 없고... 이것이 언제부터 왔는지도 모르지만 가정을 완전히 잡고 있어요.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 이 사실을 확신하고 확인하는 순간에 이게 없어져 버렸어요.

나는 혈압으로 오는 후유증이 뒷통수 땡기는 게 없어졌다고 알았는데, 그때 당하던 이런 문제가 완전 해결되어 버렸습니다. 지금은 절대로 머리 아픈 게 없어요.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이걸 깨닫게 되는 순간에, '아, 너무 감사하구나! 내가 이 쪽 머리 아픈 걸, 여러분 혹시 앓아 보신 분들은 압니다. 아무것도 하기 싫습니다. 오후만 되면 그랬으니까! 그래서 나는 책상에 앉아서 공부 열심히 한다! 그게 꿈같은 일이에요. 그래도 재주는 있었던가 봐 오전만 공부하고 오후에 공부 안 해도 되니까... 어쨌든 그런 문제들이 예수 그리스도! 정말 영원한 이름 붙잡는 순간에, 구원받는 순간에 조상의 죄에서도 완전 해방되었습니다. 말로만 듣지 마시고, 여러분 진짜 가슴에 담아야 합니다.

오늘 왜 이런 말씀을 하느냐? 조상 때부터 오는 그런 저주나 재앙이나 이런 고통에 빠진 자들이 이 땅에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영적 문제를 비롯해서 이제 말한 것처럼, 그게 증상으로 나타나는 이런 역사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예수 그리스도 확실히 붙잡는 조상 때부터 물려받은 재난까지도 해결되어 버립니다. 이게 그리스도의 영이에요. '구원받은 자의 축복 중에 축복이다!' 그렇게 보죠.

이렇게 되니까 뭐냐? 세상에 짐, 사단의 권세에서 완전 해방되었습니다. 누가? 구원받은 자입니다. 구원받는 자! 예수를 그리스도로, 하나님의 자녀로 확인하고, 확신되는 순간만큼, 아니 그만큼 확인되는 순간에 내 수준과 상관없이, 그렇게 모든 것에서 해방시킬 수 있는 실질적인 역사가 누구입니까? 성령에 임재입니다.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니라!' 내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역사와 능력으로 이 일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해결되는 것이 지옥의 권세에서 해결되어 졌습니다. 죽어도 지옥 안 갑니다. 물론 살아서도 지옥 안 갑니다. 우리가 가는 길이 어디입니까? 이미 죽든지 살든지, 우리가 이 길을 성령으로 인도 받다가 때가 되면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축복과 안식에 들어가게 되어 있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이때부터 성경에 약속한 것이 뭐냐? 이때부터 증거거리 주셔서 우리가 주님 앞에 가는 그 날까지 증인이 되게 하시리라! 세계 복음화입니다. 세계 복음화! 증거거리 없으면 안되게 되어 있습니다. 개인적인 증거가 없으면 안되게 되어 있어요. 반드시 성령이 임하시면 개인적으로도 증거거리 주십니다. 가정적으로도 주십니다. 가문에도 주십니다. 교회에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왜? 세계 복음화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계획이고 역사입니다.

에베소서 2장 7절에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여러분을 세워서 이 축복과 역사를 주님이 부르시는 그 날까지 세계 복음화에 정말 증인이 될 수 있도록 증거거리 주시고 나타나게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이 있습니다. 이 축복의 역사에 확신가지고, 우리가 오늘부터 정말 다시 한번 복음 확인하게 하시고, 다시 한번 하나님에 자녀 된 축복을 확인하게 하시고, 주 앞에 나갈 때에 주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고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어려운 때에 이 축복에 메시지 잡고 성취하는 귀한 축복으로 인도 받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찬과 그 이후를 다르게 표현하면 ‘구원과 그 이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구원받았는데 왜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가?’라는 궁금증에 대해서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베드로의 경우도 구원받은 후에 모든 문제들이 터졌습니다. 예수님께서 깊은 비밀을 말씀해주실수록 더 어려운 문제들이 생겨났습니다. 십자가의 사건을 절정으로 해서 더욱 큰 어려움에 빠졌습니다. 그 후에 오순절의 성령 역사를 통해서 베드로는 본 궤도에 올랐습니다.
구원받은 때부터 예수님의 비밀을 알수록 더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마지막 약속을 붙잡고 집중해서 기도할 때 성령으로 말미암아 모든 해답을 실제로 얻을 수 있게 됩니다. 우리에게는 성령의 실제를 확인하는 한 가지 숙제가 남아 있습니다.


1. 성령의 실제를 구체적으로 체험할 때,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사실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1) 큰 축복을 누리고 지탱할 수 있는 힘도 구원의 축복인 성령의 실제를 구체적으로 체험할 때 얻을 수 있습니다.
(2) 구원의 축복을 구체적으로 체험하지 못하면, 문제가 생길 때마다 되돌아가게 됩니다.
(3) 예수님은 베드로가 위대한 신앙을 고백한 후에 비로소 십자가의 비밀을 말씀하셨습니다.
(4) 십자가의 비밀을 깨닫지 못한 베드로는 깜짝 놀라서 예수님을 막으려고 했습니다.
(5)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말씀하시며, ‘사람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라’고 하셨습니다.
(6) 자신의 이익에 매여 있던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쫓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7) 예수님은 ‘복음을 위해 자기의 목숨을 버리면, 생명을 얻는다’고 덧붙여 말씀하셨습니다.
(8) 지금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어디를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성령 충만을 받는 것입니다.

2.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갑시다.
(1) 구원은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2) 구원받은 사람은 성령이 그 안에 역사하고 계십니다.
(3) 구원받은 사람에게는 자신의 능력과 지혜와는 상관 없이 성령의 능력과 지혜가 나옵니다.
(4) 믿는 사람은 성령의 인도를 받으나, 믿지 않는 사람은 귀신의 인도를 받습니다.
(5) 성령의 인도를 받느냐 악령의 인도를 받느냐에서 삶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6) 구원받은 후에 이전에 아비로 따르던 귀신을 원수로 대적하려니 여러 가지 황당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7)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축복을 분명하게 깨닫지 못하면, 평안을 누리지 못하는 일들이 많이 발생합니다.
(8) 하나님의 자녀이면서도 사단의 종처럼 살아가는 비참한 생활을 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9) 구원받은 후에 옛 습관을 버리고 성령의 충만하신 능력으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신분에 걸맞는 삶을 가꾸어야 합니다.

3.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사람은, 재앙과 저주와 죄에서 완전히 해방받았습니다.
(1)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사람은 원죄와 조상의 죄와 자범죄가 모두 해결되었습니다.
(2)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사람은 사단의 저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었습니다.
(3)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사람은 증거를 가지고 세계 복음화의 축복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4)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축복을 확인하고 담대히 나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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