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2005-05-15 00:00:00
관리자
조회수 29
유튜브 저화질 다운 MP3 녹취 요약 |
오늘 제목을 34절의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로 삼았습니다. 5월을 가정의 달이라고 해서 가정과 자녀들에게 잘하고 생각하고 행복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리스도의 역사를 누리지 못하면 행복할래야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지난 금요일에 전도학교를 마치고 집에 들어가서 잠시 TV를 켰는데, 부부 클리닉이라고 해서 부부간의 문제를 다루는 프로가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 프로를 보면서 전혀 말이 안되는 내용이라고 느꼈습니다.그러니 집사람이 저에게 ‘그래서 지난날에 내가 상처를 입은 것이 아니냐’ 라는 말을 하더군요. 제가 ‘시끄럽다 잔소리 하지 말라’ 고 하며 괜히 신경질이 나서 제방으로 가서 혼자 생각했습니다. 괜히 그 말을 듣고 마음에서 이상하게 분노가 일어나면서 풀리지 않는 것입니다. 어제 말씀을 들으면서 정말 연약한 인생 그리스도가 필요하구나.. 우리 가정이 아무리 행복하기를 몸부림 치지만, 그리스도가 없이는 날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순간의 은혜가 없이는 행복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제목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이 제목을 가지고 한주간에 모든 가정이 그리스도로 치유되어지는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가정 뿐 아니라 산업과 자녀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참된 치유함이 일어나는 한주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주일마다 모여서 예배드리고 찬양하며 그리스도의 비밀 가진 자들이 흩어지는 부분들이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여지고 흩어지며 움직이는 속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축복된 역사가 진행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현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말하고 복음 전하는 것이 얼마나 큰 역사인가라는 것은 생활을 하다가 모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증거할 때 일어나는 역사를 안다면, 믿지 않는 가정에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것이 최고의 축복된 역사를 증거하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모르고 지나갈 수도 있지만, 우리의 가정이 축복받는 길이 그리스도 밖에 없고, 참된 축복의 역사속에 들어갈 길도 그리스도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듣는 사람에게 어마어마한 영적인 역사가 지금도 진행됨을 알아야 합니다. 계속해서 믿지 않는 남편과 불신가정을 향해 그리스도를 이야기하는 것을 중단하시면 안됩니다.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증거할 때, 가장 큰 축복이 전달되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저희 교회의 성도분들 중에 정말로 어렵게 신앙생활하는 분들을 보게 됩니다. 너무 힘들고 어렵게 신앙생활을 하면서 믿음의 배경을 얻지 못하고 가정이 불신자의 배경속에서 어렵게 영적인 싸움을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분명히 언약으로 주의 말씀으로 붙잡기를 바랍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붙잡고 서게 될 때에, 분명한 것은 가정과 가문 자손대대로 하나님의 자녀의 축복을 얻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를때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우리 배후에 엄청난 하나님의 역사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복음이 증거되는 가운데 치유의 역사가 진행됨을 말하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복음을 전하면서 참된 치유함이 일어나고 주님께서 치유하시는 역사를 잘 감당했다는 내용이 본문의 내용입니다. 하나님이 치유하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셨다. 그냥 복음만 말하였는데 하나님께서 역사하심으로 치유함이 일어났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저희 교회가 지역을 향해서 복음운동할 때 사도행전의 역사가 그대로 우리에게도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사도행전의 엄청난 역사와 귀신의 내쫓김과 엄청난 기적의 역사들이 일어나는 것이 바로 사도행전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저와 여러분의 최고의 응답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나를 통해 생명과 성령의 일이 현장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나를 통해 현장이 살고 많은 영혼들이 주께 돌아오고 제자가 세워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지고 후대가 사는 역사가 사도행전의 역사요, 이 역사의 축복된 흐름속으로 저와 여러분을 부르셨다는 사실이며 여러분 신앙생활을 잘 한다는 것은 나로 말미암아 현장이 변화되고 제자가 세워지고 그 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면서 후대가 사는 것을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많은 사건과 훌륭한 인물을 대하게 됩니다. 많은 훌륭한 교훈을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교훈이 단지 교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가 지금도 있기 때문에 이 말씀이 지금도 내게 성령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특별히 무엇보다도 성경에 일어난 일이 나에게도 동일하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지금도 나의 발걸음에 그대로 성취됨을 보아야 합니다. 성경을 단순히 역사적인 사건이나 교훈과 좋은 말씀과 교훈으로 보면 실패합니다. 이 말씀은 분명히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히 4장의 말씀처럼 살았고 운동력이 있습니다. 옛날 이야기와 남의 이야기나 이스라엘의 역사가 아닙니다. 지금 동일하게 나의 걸음에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이 말씀이 내 사건이고 우리 가정과 교훈과 삶의 현장에 그대로 일어나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분명한 것은 복음이 정확하게 증거되어지면 하나님이 치유하시는 시간표가 오게 됩니다. 복음을 계속 전파하면 병자만 낫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몰라서 경제문제가 왔고 현장의 고통이 왔고 질병이 왔고 사람들이 이상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복음을 계속해서 말한다면 질병만 떠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회복된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성당을 다니는 분과 이야기를 하였는데, ‘목사님 너무 그리스도만 말하지 마십시오’ 왜냐고 이야기하니까 ‘그리스도를 너무 이야기하면 사단이 강하게 역사하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제가 알기는 잘 아네라고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어서 하는 말이 ‘사단이 너무 강하게 역사하면 우리 인간들이 파괴됩니다’ 무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증거할 때 하나님의 성령께서 역사하게 되는 것이고, 사단의 세력이 꺽이며 모든 축복이 회복됩니다. 믿습니까? 우리가정의 문제들 질병 때문에 기도하는 부분들 산업의 문제로 기도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그런 한부분 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든 삶에 전적으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어떤 문제가 있다면 문제를 두고 기도하십시오. 기도하면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체험하게되며 그때부터 참된 축복이 회복되게 됩니다. 복음이 증거되어지면 치유의 역사가 회복됩니다.
분명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행3장을 보면 베드로가 나면서 앉은뱅이가 된 자를 고쳤습니다. 그 광경을 본 많은 사람들이 베드로의 주위에 몰려 ‘이것이 어떻게 된 것인가’ 하고 놀라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실 기적입니다. 그때 베드로가 하는 말이 ‘왜 우리를 주목하는가.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렇게 한 것이 아니지 않는가. 하나님이 이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다.’ 라고 외칩니다. 다시 말해서 복음이 바르게 증거되어지면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치유가 일어남을 베드로가 알았기에 자기가 드러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낸 것입니다. 사람이 일어나는 엄청난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병든자가 치유되고 귀신이 떠나가는 엄청난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 광경을 본 사람들이 바울을 신으로 여기고 그 앞에 제사드리려고 했습니다. 그때 바울이 옷을 찢으며 가슴을 치며 말했습니다. ‘우리도 너희와 똑같은 성정을 지닌 사람이다. 왜 우리에게 제사를 지내고 주목하느냐. 이 사건을 통해서 많은 사람을 하나님께 돌아오게 함이 아니냐.
우리가 정확한 복음을 증거할 때 치유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 뿐 아니라 모든 삶의 현장에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베드로가 잘 알았고 복음이 증거되는 속에 하나님의 시간표를 알았기 때문에 그 사건 속에 베드로가 능력이 있어서 일으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하는 시간표를 보았다는 사실, 그래서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복음을 붙잡고 증거하면서 기도하게될 때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시간표를 보는 눈이 열려지게 됩니다.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로 영광이 돌려집니다.
본문으로 들어가 말씀을 잡기를 원합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엄청난 역사가 일어납니까? 34절에 ‘베드로가 가로되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이름입니까? 행 3:6에 베드로는 ‘은과금은 네가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했습니다. 많은 지식인들이 이해할 수 없는 말이요, 종교인이 들을 때는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베드로는 그 이름의 비밀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나면서 운명에 빠진 앉은뱅이를 향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도대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어떤 이름입니까.
예수는 ‘여호와의 구원’이란 이름입니다. 인간은 멸망상태에 있기 때문에 멸망이 아닌 구원의 이름이 예수의 이름입니다. 모든 인간은 죄로 멸망중에 있습니다. 하나님께 거하고 축복받아야 할 인간이 멸망에 빠진 상태가 하나님을 떠난 상태요, 하나님을 떠남으로 세상풍속을 쫒아가고 지금도 공중권세를 잡은자. 불순종의 악한 사단의 역사속에 있는 상태가 멸망받은 상태입니다. 그래서 행 10장 38절을 보면 모든 사람이 마귀에게 눌려있다고 했습니다. 자유와 진리를 가지고 해방을 가지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멸망받은 인간을 구원하는 이름이 예수의 이름입니다.
예수 이름이 ‘임마누엘’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임마누엘이라는 단어가 3군데가 나옵니다. 마 1장 23절에 나오고 사 7장 14절에 나오고, 사 8장 8절에 임마누엘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사실은 3군데에만 나오지만 성경전체가 보여주는 부분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부분입니다. 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셔야 합니까? 다른 것이 아니라 멸망의 세력에서 건지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셔야 합니다. 우리에게 새생명을 주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그를 위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예수 이름의 뜻이 임마누엘입니다.
예수 이름의 ‘여호와의 이름’입니다. 구원자라는 뜻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죄와 저주가운데 주지 않으시고 실패토록 하지 않으시고 그 이름을 부를 때 구원얻도록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를 때 운명과 불신앙과 재앙가운데 빠져나오게 됩니다. 그 이름이 증거되어지는 현장에 동일하게 축복된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가정을 향해서 남편을 향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중단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할 때 구원의 축복된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얼마나 위대한 이름입니까? 요 14장 14절 에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다시 말씀드려 하나님의 이름으로 주셨기에 하나님이 시행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요 15장 16절을 보면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 다 받게하려 하심이라’ 요 16장 24절을 보면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하지 않았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예수 그리스도의 그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하나님이 시행하시게 되어있고 하나님이 응답하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제일 싫어하는 이름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종교인이나 귀신들린자는 불신자들이 제일 싫어하는 이름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구원받을 능력이요 구원받을 지혜입니다. 그래서 고전 1장 18절에 ‘십자가의 도가 멸망받을 자에게는 미련하지만, 구원을 얻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여러분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들을 때 힘이 나고 행복해야 합니다. 10년 정도 그리스도를 들었는데 늘 새롭고 은혜를 받는다면 정상입니다. 한 3년정도 예수 그리스도를 들었는데 시시하고 또 그 이름을 말하는가. 그것은 병든 것입니다. 정말 우리가 행복할 길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만날 때 참된 평안과 행복이 나타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를때 우리안에 모든 영적인 문제가 해결되게 되어있습니다. 우리에게 남은 문제 평생 회복되어야 할 문제, 영적인 문제와 현실의 문제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이름을 누리고 깨달아지는 만큼 회복되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무언가 모르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시시해보이고 복음이 어설프게 들려진다면 망하는 시작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복음을 어설프게 알고 교회를 휘저었지만 교회는 망하지 않고 개인이 망했습니다. 개인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다른 것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낫게하시며 그리스도의 가치에 눈이 열리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 뿐 아닙니다. 35절에 보면 애니아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일어난 사건을 통해서 적은 사건이지만 큰 복음의 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35절을 보면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를 보고 주께로 돌아가니라.’ 중풍병자인 애니아가 고침받는 사건이 어떻게 보면 작은 사건일 수 있지만 지역 전체를 영향주는 복음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작은 사건에 하나님의 인도를 받게 되면 가정과 가문과 지역과 세계를 살리는 증거가 되어집니다. 이 사실을 바울이 알았기 때문에 바울이 감옥에 있을 때, 감옥에서 나오기 위해 교회를 향해 기도를 요청한 것이 아닙니다. 골 4장 3절에 보면 ‘또한 우리를 향해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열어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것을 위하여 이 일을 당하였노라.’ 감옥에 매인바 된 이 사건을 통해 바울은 놓여지기를 기도한 것이 아니라, 이것을 통해 전도할 문을 열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작은 문제 하나하나가 세계의 문을 여는 사건입니다. 혹시 이 자리에 앉은 여러분들 가운데 연세가 많으셔서 돌아다니면서 전도를 못하여 눌린 분이 있습니까. 막 돌아다니는 현장이 아니라, 앉아있는 그곳이 현장이요, 학생들은 학업에 있는 그곳이 현장입니다. 그 현장속에서 그리스도를 고백하고 체험하고 누리고 있으면 그것이 지역과 민족과 세계를 살리는 축복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교회를 향한 작은 헌신이 적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그 헌신을 통해서 지역과 민족과 세계를 살리는 축복된 역사로 인도하십니다. 본문에 나오는 애니아라는 한 사람에게 일어난 사건을 통해서 룻다와 사론의 사람들이 그를 보고 주께 돌아왔습니다. 작은 사건이었지만 그 작은 사건을 통해 지역전체를 살리고 변화시키는 축복된 문으로 사용하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역사를 진행하시든지 한 가지를 통해 지역에 큰 작업을 하시는 사실이 보여져야 합니다.
이번 한주간과 남은 생애에 그리스도를 통해 진정한 역사가 일어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난 금요일에 전도학교를 마치고 집에 들어가서 잠시 TV를 켰는데, 부부 클리닉이라고 해서 부부간의 문제를 다루는 프로가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 프로를 보면서 전혀 말이 안되는 내용이라고 느꼈습니다.그러니 집사람이 저에게 ‘그래서 지난날에 내가 상처를 입은 것이 아니냐’ 라는 말을 하더군요. 제가 ‘시끄럽다 잔소리 하지 말라’ 고 하며 괜히 신경질이 나서 제방으로 가서 혼자 생각했습니다. 괜히 그 말을 듣고 마음에서 이상하게 분노가 일어나면서 풀리지 않는 것입니다. 어제 말씀을 들으면서 정말 연약한 인생 그리스도가 필요하구나.. 우리 가정이 아무리 행복하기를 몸부림 치지만, 그리스도가 없이는 날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순간의 은혜가 없이는 행복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제목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이 제목을 가지고 한주간에 모든 가정이 그리스도로 치유되어지는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가정 뿐 아니라 산업과 자녀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참된 치유함이 일어나는 한주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주일마다 모여서 예배드리고 찬양하며 그리스도의 비밀 가진 자들이 흩어지는 부분들이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여지고 흩어지며 움직이는 속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축복된 역사가 진행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현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말하고 복음 전하는 것이 얼마나 큰 역사인가라는 것은 생활을 하다가 모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증거할 때 일어나는 역사를 안다면, 믿지 않는 가정에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것이 최고의 축복된 역사를 증거하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모르고 지나갈 수도 있지만, 우리의 가정이 축복받는 길이 그리스도 밖에 없고, 참된 축복의 역사속에 들어갈 길도 그리스도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듣는 사람에게 어마어마한 영적인 역사가 지금도 진행됨을 알아야 합니다. 계속해서 믿지 않는 남편과 불신가정을 향해 그리스도를 이야기하는 것을 중단하시면 안됩니다.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증거할 때, 가장 큰 축복이 전달되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저희 교회의 성도분들 중에 정말로 어렵게 신앙생활하는 분들을 보게 됩니다. 너무 힘들고 어렵게 신앙생활을 하면서 믿음의 배경을 얻지 못하고 가정이 불신자의 배경속에서 어렵게 영적인 싸움을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분명히 언약으로 주의 말씀으로 붙잡기를 바랍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붙잡고 서게 될 때에, 분명한 것은 가정과 가문 자손대대로 하나님의 자녀의 축복을 얻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를때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우리 배후에 엄청난 하나님의 역사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복음이 증거되는 가운데 치유의 역사가 진행됨을 말하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복음을 전하면서 참된 치유함이 일어나고 주님께서 치유하시는 역사를 잘 감당했다는 내용이 본문의 내용입니다. 하나님이 치유하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셨다. 그냥 복음만 말하였는데 하나님께서 역사하심으로 치유함이 일어났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저희 교회가 지역을 향해서 복음운동할 때 사도행전의 역사가 그대로 우리에게도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사도행전의 엄청난 역사와 귀신의 내쫓김과 엄청난 기적의 역사들이 일어나는 것이 바로 사도행전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저와 여러분의 최고의 응답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나를 통해 생명과 성령의 일이 현장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나를 통해 현장이 살고 많은 영혼들이 주께 돌아오고 제자가 세워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지고 후대가 사는 역사가 사도행전의 역사요, 이 역사의 축복된 흐름속으로 저와 여러분을 부르셨다는 사실이며 여러분 신앙생활을 잘 한다는 것은 나로 말미암아 현장이 변화되고 제자가 세워지고 그 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면서 후대가 사는 것을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많은 사건과 훌륭한 인물을 대하게 됩니다. 많은 훌륭한 교훈을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교훈이 단지 교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가 지금도 있기 때문에 이 말씀이 지금도 내게 성령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특별히 무엇보다도 성경에 일어난 일이 나에게도 동일하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지금도 나의 발걸음에 그대로 성취됨을 보아야 합니다. 성경을 단순히 역사적인 사건이나 교훈과 좋은 말씀과 교훈으로 보면 실패합니다. 이 말씀은 분명히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히 4장의 말씀처럼 살았고 운동력이 있습니다. 옛날 이야기와 남의 이야기나 이스라엘의 역사가 아닙니다. 지금 동일하게 나의 걸음에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이 말씀이 내 사건이고 우리 가정과 교훈과 삶의 현장에 그대로 일어나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분명한 것은 복음이 정확하게 증거되어지면 하나님이 치유하시는 시간표가 오게 됩니다. 복음을 계속 전파하면 병자만 낫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몰라서 경제문제가 왔고 현장의 고통이 왔고 질병이 왔고 사람들이 이상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복음을 계속해서 말한다면 질병만 떠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회복된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성당을 다니는 분과 이야기를 하였는데, ‘목사님 너무 그리스도만 말하지 마십시오’ 왜냐고 이야기하니까 ‘그리스도를 너무 이야기하면 사단이 강하게 역사하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제가 알기는 잘 아네라고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어서 하는 말이 ‘사단이 너무 강하게 역사하면 우리 인간들이 파괴됩니다’ 무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증거할 때 하나님의 성령께서 역사하게 되는 것이고, 사단의 세력이 꺽이며 모든 축복이 회복됩니다. 믿습니까? 우리가정의 문제들 질병 때문에 기도하는 부분들 산업의 문제로 기도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그런 한부분 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든 삶에 전적으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어떤 문제가 있다면 문제를 두고 기도하십시오. 기도하면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체험하게되며 그때부터 참된 축복이 회복되게 됩니다. 복음이 증거되어지면 치유의 역사가 회복됩니다.
분명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행3장을 보면 베드로가 나면서 앉은뱅이가 된 자를 고쳤습니다. 그 광경을 본 많은 사람들이 베드로의 주위에 몰려 ‘이것이 어떻게 된 것인가’ 하고 놀라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실 기적입니다. 그때 베드로가 하는 말이 ‘왜 우리를 주목하는가.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렇게 한 것이 아니지 않는가. 하나님이 이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다.’ 라고 외칩니다. 다시 말해서 복음이 바르게 증거되어지면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치유가 일어남을 베드로가 알았기에 자기가 드러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낸 것입니다. 사람이 일어나는 엄청난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병든자가 치유되고 귀신이 떠나가는 엄청난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 광경을 본 사람들이 바울을 신으로 여기고 그 앞에 제사드리려고 했습니다. 그때 바울이 옷을 찢으며 가슴을 치며 말했습니다. ‘우리도 너희와 똑같은 성정을 지닌 사람이다. 왜 우리에게 제사를 지내고 주목하느냐. 이 사건을 통해서 많은 사람을 하나님께 돌아오게 함이 아니냐.
우리가 정확한 복음을 증거할 때 치유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 뿐 아니라 모든 삶의 현장에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베드로가 잘 알았고 복음이 증거되는 속에 하나님의 시간표를 알았기 때문에 그 사건 속에 베드로가 능력이 있어서 일으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하는 시간표를 보았다는 사실, 그래서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복음을 붙잡고 증거하면서 기도하게될 때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시간표를 보는 눈이 열려지게 됩니다.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로 영광이 돌려집니다.
본문으로 들어가 말씀을 잡기를 원합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엄청난 역사가 일어납니까? 34절에 ‘베드로가 가로되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이름입니까? 행 3:6에 베드로는 ‘은과금은 네가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했습니다. 많은 지식인들이 이해할 수 없는 말이요, 종교인이 들을 때는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베드로는 그 이름의 비밀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나면서 운명에 빠진 앉은뱅이를 향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도대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어떤 이름입니까.
예수는 ‘여호와의 구원’이란 이름입니다. 인간은 멸망상태에 있기 때문에 멸망이 아닌 구원의 이름이 예수의 이름입니다. 모든 인간은 죄로 멸망중에 있습니다. 하나님께 거하고 축복받아야 할 인간이 멸망에 빠진 상태가 하나님을 떠난 상태요, 하나님을 떠남으로 세상풍속을 쫒아가고 지금도 공중권세를 잡은자. 불순종의 악한 사단의 역사속에 있는 상태가 멸망받은 상태입니다. 그래서 행 10장 38절을 보면 모든 사람이 마귀에게 눌려있다고 했습니다. 자유와 진리를 가지고 해방을 가지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멸망받은 인간을 구원하는 이름이 예수의 이름입니다.
예수 이름이 ‘임마누엘’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임마누엘이라는 단어가 3군데가 나옵니다. 마 1장 23절에 나오고 사 7장 14절에 나오고, 사 8장 8절에 임마누엘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사실은 3군데에만 나오지만 성경전체가 보여주는 부분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부분입니다. 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셔야 합니까? 다른 것이 아니라 멸망의 세력에서 건지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셔야 합니다. 우리에게 새생명을 주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그를 위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예수 이름의 뜻이 임마누엘입니다.
예수 이름의 ‘여호와의 이름’입니다. 구원자라는 뜻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죄와 저주가운데 주지 않으시고 실패토록 하지 않으시고 그 이름을 부를 때 구원얻도록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를 때 운명과 불신앙과 재앙가운데 빠져나오게 됩니다. 그 이름이 증거되어지는 현장에 동일하게 축복된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가정을 향해서 남편을 향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중단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할 때 구원의 축복된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얼마나 위대한 이름입니까? 요 14장 14절 에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다시 말씀드려 하나님의 이름으로 주셨기에 하나님이 시행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요 15장 16절을 보면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 다 받게하려 하심이라’ 요 16장 24절을 보면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하지 않았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예수 그리스도의 그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하나님이 시행하시게 되어있고 하나님이 응답하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제일 싫어하는 이름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종교인이나 귀신들린자는 불신자들이 제일 싫어하는 이름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구원받을 능력이요 구원받을 지혜입니다. 그래서 고전 1장 18절에 ‘십자가의 도가 멸망받을 자에게는 미련하지만, 구원을 얻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여러분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들을 때 힘이 나고 행복해야 합니다. 10년 정도 그리스도를 들었는데 늘 새롭고 은혜를 받는다면 정상입니다. 한 3년정도 예수 그리스도를 들었는데 시시하고 또 그 이름을 말하는가. 그것은 병든 것입니다. 정말 우리가 행복할 길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만날 때 참된 평안과 행복이 나타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를때 우리안에 모든 영적인 문제가 해결되게 되어있습니다. 우리에게 남은 문제 평생 회복되어야 할 문제, 영적인 문제와 현실의 문제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이름을 누리고 깨달아지는 만큼 회복되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무언가 모르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시시해보이고 복음이 어설프게 들려진다면 망하는 시작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복음을 어설프게 알고 교회를 휘저었지만 교회는 망하지 않고 개인이 망했습니다. 개인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다른 것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낫게하시며 그리스도의 가치에 눈이 열리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 뿐 아닙니다. 35절에 보면 애니아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일어난 사건을 통해서 적은 사건이지만 큰 복음의 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35절을 보면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를 보고 주께로 돌아가니라.’ 중풍병자인 애니아가 고침받는 사건이 어떻게 보면 작은 사건일 수 있지만 지역 전체를 영향주는 복음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작은 사건에 하나님의 인도를 받게 되면 가정과 가문과 지역과 세계를 살리는 증거가 되어집니다. 이 사실을 바울이 알았기 때문에 바울이 감옥에 있을 때, 감옥에서 나오기 위해 교회를 향해 기도를 요청한 것이 아닙니다. 골 4장 3절에 보면 ‘또한 우리를 향해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열어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것을 위하여 이 일을 당하였노라.’ 감옥에 매인바 된 이 사건을 통해 바울은 놓여지기를 기도한 것이 아니라, 이것을 통해 전도할 문을 열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작은 문제 하나하나가 세계의 문을 여는 사건입니다. 혹시 이 자리에 앉은 여러분들 가운데 연세가 많으셔서 돌아다니면서 전도를 못하여 눌린 분이 있습니까. 막 돌아다니는 현장이 아니라, 앉아있는 그곳이 현장이요, 학생들은 학업에 있는 그곳이 현장입니다. 그 현장속에서 그리스도를 고백하고 체험하고 누리고 있으면 그것이 지역과 민족과 세계를 살리는 축복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교회를 향한 작은 헌신이 적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그 헌신을 통해서 지역과 민족과 세계를 살리는 축복된 역사로 인도하십니다. 본문에 나오는 애니아라는 한 사람에게 일어난 사건을 통해서 룻다와 사론의 사람들이 그를 보고 주께 돌아왔습니다. 작은 사건이었지만 그 작은 사건을 통해 지역전체를 살리고 변화시키는 축복된 문으로 사용하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역사를 진행하시든지 한 가지를 통해 지역에 큰 작업을 하시는 사실이 보여져야 합니다.
이번 한주간과 남은 생애에 그리스도를 통해 진정한 역사가 일어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번호 | 제목 | 본문 | 설교일 | 첨부파일 |
---|---|---|---|---|
1484 | 전환점을 이룬 안디옥 선교 | 행11:19-30 | 2025-04-27 | |
1483 | 우리에게 주시는 영원한 메시지 | 고전15:1-11 | 2025-04-20 | |
1482 | 새로운 싸움을 위하여 | 삿7:9-18 | 2025-04-13 | |
1481 | 날마다 영적싸움에 승리하라 | 삿7:1-8 | 2025-04-06 | |
1480 | 이 시대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해답 | 삿4:1-10 | 2025-03-30 | |
1479 | 하나님이 쓰시는 기준 | 삿3:12-23 | 2025-03-23 | |
1478 |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 삿3:7-11 | 2025-03-16 | |
1477 |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 삿2:6-10 | 2025-03-09 | |
1476 |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 삿1:1-7 | 2025-03-02 | |
1475 |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 단12:1-4 | 2025-02-23 | |
1474 |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 단11:28-39 | 2025-02-16 | |
1473 |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 단10:10-21 | 2025-02-09 | |
1472 |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 단9:20-24 | 2025-02-02 | |
1471 |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 단8:15-27 | 2025-01-26 | |
1470 |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 단7:9-14 | 2025-01-19 |
1
2
3
4
5
6
7
8
9
10
...
99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