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워하더라(1)
2005-07-10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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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인사하겠습니다. 평강하십시오. 안녕하십시오. 당신은 세계살릴 선교자입니다. 아멘. 기도하겠습니다.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내가 생명 가지고 이 자리에 참석하게 된 것 하나님의 은혜요. 말씀들을 수 있도록 은혜주심을 감사를 드립니다 들을 때에 깨닫게 하시고 감사케하시고, 환희와 기쁨으로 인도해주시옵소서. 오늘 한 심령도 연약하지 않도록 주의 성령으로 역사하셔서 치료하시고 새 힘주시고 은혜주시기를 원합니다. 오늘도 주의 말씀 들을때에 주께서 역사하시며 신, 불신간에 아직까지 주님앞에 깨닫는 기한이 적고 연약하지만 주님이 은혜주시면 깨달을 수 있습니다. 주의 종들에게 확인과 확신으로 충만케 하옵소서. 오늘도 주의 종에게 흑판을 가지고 설명할 수 있는 은혜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이 시간에 주의 성령으로 종을 붙잡아 주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도록 역사해주시옵소서. 군문으로, 직장으로, 학창으로 나가 있는 사람들 멀리 외국에 나가있는 주의 종들에게도 같은 은혜주시고 오늘 이 시간 은혜주심을 통해서 새 힘을 주시고 역사하셔서 한 주간도 말씀이 성취되는 현장에 설 수 있도록 저들에게 복을 주시옵소서. 주께서 이 시간 이후에 모든 일을 감당하시고 축복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올리옵나이다 아멘.
아마 제가 흑판앞에 선 것은 몇 개월 된 것 같습니다. 계속 설 수 있는 힘도 없지만, 그림을 그리면서 설명할 수 있는 힘이 못 되었습니다. 저번 치유사명자 대회 갔을 때도 흑판을 해 놓아도 일어서지 못하고 앉아서 메시지 전하고 돌아왔습니다. 오늘 대단한 용기를 내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실 줄 믿습니다. 시간이 지나서 제가 힘들게 되면 어느때라도 마칠 생각을 하고 섰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진 않을 것 같습니다. 혹시 시간이 너무 길어지지 않을까? 염려가 되나 길어지면 여러분께서는 참 은혜로다! 그러면서 메시지를 들으시면 되겠습니다. 덜한 부분은 다음시간까지 이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새신자들도 많이 왔고 메시지 듣는 일이 처음인 사람도 많습니다. 늘 들어도 잊어버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것이 열가지 발판입니다. 열가지 발판을 들어도 모르는 사람이 너무나 많으니까 목사님 한번 흑판에다가 그려가면서 시각, 귀, 마음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해주시면 좋겠다고 해서 이런 시간을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열가지 발판이 이해가 될 때에 복음을 이해한다는 뜻이 됩니다. 지난 주 제목이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없는 것을 도와주소서’할때에 예수님께서 기적을 일으켜 주셨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불신앙의 시대입니다. 믿을래야 믿을 수 없는 지식으로 가득찬 시대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들을 때에 내게 맞느냐? 내 이성에 맞느냐? 산산히 조각내어 내 방향과 이성에 맞는 부분만 받아들이고 나머지는 걸러내니다. 예수님의 시대도 불신앙의 시대입니다. 예수님께서 믿음이 없음을 꾸짖어시고 믿어야 된다고 할 때에 그 아이의 아버지가 내가 믿나이다. 그러면서 그 아버지가 자기 위치와 문제를 알기에 ‘나의 믿음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생각만 바꾸어도 예수님께서 알았다. 네 아이를 데려오너라. 하시면서 벙어리되고 귀신들린 그 아이를 건져내시는 사건이 지난 주 사건이었습니다.
오늘 막 9: 19에 ‘대답하여 가라사대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오.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매 예수님의 기적으로 제자들이 할 수 없는 것은 믿음이 없기 때문에’라고 했습니다. 제자라고 되는 것도 아니고, 오래 예수믿었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중직자가 되었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믿음이 있어야 기적이 나올수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삶이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하나님의 기적이 역사하실 수 있다는 의미에서 나는 지금까지 목사가 제일 안 믿는 것 같습니다. 너무나 성경에 접해있었기에 하나의 형식과 매너리즘에 빠져서 하나님의 말씀을 단순히 못 받았습니다. 그런 배경에서 중직자일수록 더하고, 묵은 디 즉 오래 예수 믿는 사람일수록 더 문제가 있습니다. 차라리 전도 제자 삼으라고 할 때에 그런 사람 찾으려고 애쓰지 말고 새 사람을 찾으십시오. 현장에서 전도제자를 찾으십시오. 훨씬 처음 믿는 사람이 단순합니다. 처음 믿는 사람은 옛날 것을 듣지도 않았기에 믿기 시작하면 말씀을 그대로 받습니다. 묵은디, 오래된 사람은 말씀을 절대로 그대로 받지 않습니다. 이것이 맞는지 안 맞는지 이리저리 재어봅니다. 이것이 문제 중의 문제입니다. 말씀을 순진하게 받지 못하니, 복음의 기적이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어린아이처럼 받아라. 어린아이는 재는 것이 없는 어머니의 말씀을 단순하게 받습니다. 오늘도 하나님 앞에 어린아이가 되어서 정말 주님앞에 안된 자신을 알게 되거든. 주여! 내가 믿나이다!
그래서 오늘 제목을 ‘무서워하더라’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막 9:22 ‘귀신이 저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이때의 중요한 고백이 24절입니다. ‘아이의 아비가 소리질러 가로되 내가 믿나이다’ 이것은 거짓말입니다. 안 믿으면서도 믿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의지를 말합니다. 안 믿는 배경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나갈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순진한 고백이 필요합니다 ‘주여! 내가 믿나이다’ 그래놓으니 자신이 너무나 부끄럽기에 ‘나의 믿음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이것을 가지고 기도라고 합니다. 기도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유창학 말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위치에서 하나님 앞에 순진하게 나갈 수 있는 이것이 기도입니다. 그럴때에 예수님께서 엄청난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기적으로 완전히 살아났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지금 준비할 것이 첫 번째 무엇을 믿느냐? 이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믿습니다!’는 배경이 무엇인지 잘 살펴봐야 합니다. 복음이 아닌 엉뚱한 것을 가지고 믿습니다 하는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아이의 아버지가 무엇을 믿는 것도 모르고 믿으려는 의지만 보여도, 생각만 바꾸어도 기적이 일어났다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오늘날 내가 완전히 믿어서 무엇을 이룬다! 아닙니다. 여러분 스스로는 믿을 수 없습니다. 믿을 수 있는 지식이 아닙니다. 은혜 입어야 믿을 수 있습니다. 성도가 죽을 때까지 은혜없이는 한시도 못 삽니다. 은혜없이는 순간 불신앙으로 빠집니다. 도저히 회복이 안됩니다.
하나님이 그의 고백을 듣고 믿게 하셨고 바른 생각만 해도 하나님이 기적을 일으키셨다는 중요한 사실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지난 주에는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였습니다. 너희가 그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다고 하였습니다. 은혜없이는 믿음도 없습니다. 은혜주지 아니하시면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난 주에 믿어지는 은혜! 그것이 이해되어지는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제자들이 대답하기를 막9:28에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종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29절에 ‘기도외에는 다른 것으로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그래서 창3:15절을 믿게 하시는 근복적인 믿음 원색적인 믿음을 소개하였습니다. 예수그리스도께 질문하는 배경에는 예수님이 근본적인 믿음에 대한 기초를 두고 믿게 하셨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이를 알게 하신 이는 네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시니라. 은혜로 믿게 하십니다. 베드로의 엄청난 고백이 베드로가 훌륭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를 알게 하신 이는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시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지난 주에는 기도로 믿음이 자라게 하시고 구체적으로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진다고 말씀하였습니다. 가로되 네 믿음이 자라고 기적도 자라서 믿음에서 일어나게 될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 제가 믿음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9:31에 ‘이는 제자들을 가르치시며 또 인자가 사람의 손에 넘기워 죽임을 당하고 죽은지 삼일 만에 살아나리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연고더라’ 32절에 ‘그러나 제자들은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묻기도 무서워하더라’ 예수님께서 가장 중요한 비밀중의 비밀을 설명할 때에 믿음이 없는 바탕속에 자란 제자들이 그것을 믿을 수 없었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설명을 오랫동안 보류하시고 비밀로 덮어놓았습니다. 그러다가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고백할 때에 예수님께서 비로소 십자가의 도를 설명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유명한 고백을 한 베드로 조차도 그것이 이해가 되지 않아 ‘주여. 그리마옵소서’ 예수님의 옷자락을 붙잡고 절대로 그것은 안됩니다라고 할 때에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깨닫지 못하는 너는 사단의 배경이다. 당장 ‘사단아! 네 뒤로 물러가라’고 하였습니다. 깨닫지 못하며 못할수록 두려워지고 십자가의 도에 대해서 낙심하게 되고 어려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와서 십자가의 도에 대한 눈이 열리지 않으면 신앙은 헛것입니다. 오늘 복음! 복음하는 것도 그 중심이 십자가의 역사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 십자가의 도가 열려야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것이 이해가 됩니다. 제가 치유사명자 대회에 가면 하나님의 주권이 제 주특기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외에는 다른 설명도 없습니다. 시간따라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이것이 너무나 절실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것이 큰 줄기로 재림조차도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신앙의 발판 제일 첫 번째가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성부하나님의 주권이라고 나옵니다. 이 하나님의 주권이 실현되기 위해서 구체적인 성경적인 방편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주권을 이루시기 위해 자기의 자녀삼으시고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주권 속에 집어넣고 통치해 나가십니다. 이 사실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복음 자체 복음의 뿌리가 이해가 안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대상 29:10-14, 29:11절에 보면 ‘여호와여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이김과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유의 머리심이니이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유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자를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떠들어봐야 소용없습니다. 하나님 안에 다 있습니다. 잘한다고 자랑하는 것도 다 어리석은 짓입니다 신문에도 ‘다른 것이 없다. 복음이 깨달았다고 까불지 마라. 복음이 없다고 절망하지 말고 하나님의 주권 속에 은혜속에 있는 것이 네가 하는 것이 아니다’고 후배들에게 말을 남겼습니다. 혹시 이해가 되지 않고 들으며 보통있는 말이라고 할 수 있지만, 절실한 말입니다. 정말 복음 속에 들어가고 주권 속에 들어가면 떠들고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기도 백번, 천번해도 이것이 이해가 되지 않으면 다 허사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일을 이루기 위해서 사실은 10가지 기둥을 설명하였습니다만 9가지입니다. 왜? 하나님의 주권이 성경 이해의 기초입니다. 성경을 볼 때에 이것이 이해되지 않으면 절대로 이해되지 않습니다. 신앙 생활의 기초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사실을 확실하게 해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이것을 이루시기 위해서 어떤 성경적인 방법을 취하셨나? 이것이 처음 시작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것을 복음이라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복음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완전 복음입니다. 원색적인 복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영원한 멸망과 죽음으로 빠지게 된 배경이 원죄입니다. 원죄라는 것은 하나님을 떠났다는 것과 죄와 저주에 빠져서 고생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되고 거듭거듭 망하게 됩니다. 이 배경이 사단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손에 있다가 아담, 하와의 범죄 후에 사단에 빠져서 계속 저주와 고통과 아픔으로 인도를 받습니다. 그래도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삽니다. 이것을 가지고 원죄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롬8:2처럼 ‘생명과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하였음이니라’ 중요한 배경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복음으로 통해서 해방을 받는 것입니다. 창3:15절입니다. 내 힘과 능으로 안됩니다. 어떤 인간도 우리를 구원해 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배타적이라고 비난 받는 배경이 그렇습니다. 행4:12 ‘천하인간에 다른 이름으로 구원주신 적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외에는 다른 이름이 없습니다. 돈, 인물 잘나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착한 선행으로도 안됩니다. 이것이 기준이라면 우리들은 모두 부자격자입니다. 다른 종교, 공자의 이름으로도 못 갑니다. 석가도 안됩니다. 깊은 교리와 자비로도 안됩니다. 이것을 증명하려면 지독한 정신병자 속에서 ‘공자의 이름으로 내가 명하노니’ 해보십시오. 그날이 바로 제삿날이 됩니다. 오직 예수 이름으로 보기만 해도 벌벌 떱니다. 이것이 경험되지 않으면 점쟁이에게 가보십시오. 진짜 점쟁이는 벌벌 떱니다. 점괘가 다 막힙니다. 귀신이 들린 점쟁이라면 예수믿는 사람이라는 것을 대번 알아냅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순진하게도 어떤 권사님께서 점쟁이에게 찾아갔던 모양입니다. 예수 믿는데 불안하고 의심이 있었는데 점쟁이에게 가니 바로 알아 맞히더랍니다. 그래서 너무나 기분이 좋아서 뛰어나왔습니다. 복음 속에 들어갔다하면 잘한다 못한다 어떤 행동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조용히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을 붙잡으십시오. 이것을 가지고 언약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 오실 것을 예언한 것이 메시아 예언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가지고 옛날 언약이라고 하여서 구약이라고 합니다. 이미 오신 예수 그리스도! 메시아가 그리스도가 되셨다 이 말이 신약이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빠져나왔다. 이것이 그리스도입니다. 구원입니다.
구원받게 되면 당장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졌습니다. 지난 주에 전천년, 무천년을 설명하였습니다. 여러분과 저는 무천년설자들입니다. 천년왕국이 저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고, 약속대로 내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졌다. 천년왕국이 이루어졌습니다. 천당가는 사람들은 천년왕국이 내게 이루어져야 가는 것이지 바라보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전천년학자들과 무천년학자들 사이에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삶의 내용이 달라집니다. 다락방은 완전 무천년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흑암세력을 꺾을 수 있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셨습니다. 너를 이길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오늘 이땅을 살면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진 사람들에게는 당당함과 확신이 있습니다. 이 역사를 방해하는 흑암의 세력을 꺾을 수 있는 권세가 있습니다. 이 사실이 이해되면 신앙이 달라집니다. 기독교인은 실패해도 실패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구첵적으로 당신의 주권가운대로 인도하는 방법이 이 방법입니다. 제일 첫 번째 기둥이 예수 그리스도! 구원입니다. 이 구원은 백번천번 강조를 해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저지난주에 말한 것처럼 죽기처럼 구원안으로 들어가라!
이렇게 구원받은 자는 구원받은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구원의 증거를 주십니다. 성령의 내주입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을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자녀의 역사를 증거하기 위하여 성령님께서 오십니다. 이것이 현대교인에게는 참 희박합니다.
성령이 내 안에 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함께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령이 인도해주십니다. 요14:16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이 능히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시며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오늘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십니다. 하나님이 멀리 계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내 안에 계십니다. 이것을 믿는다는 정도가 아니라 믿어집니다. 그래야 인도를 받습니다. 여러분과 저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령이 인도해주십니다.
성령이 인도해주신다고 할 때에 말씀을 깨닫지못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장 비밀적인 최고의 구원의 극치인 십자가의 역사가 이해가 안됩니다. 두려움과 공포가 오게 되어있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게 되면 성령의 인도하심이 꿈, 이상한 것, 예언이 아닙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게 되면 성령이 인도하는 곳에 말씀이 따라갑니다. 말씀인도하시는 곳에 성령이 함께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으면 말씀과 성령의 인도는 누가 먼저랄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성령이 오셨다고 하면 말씀에 눈이 열립니다. 이 말씀을 들으면서 그렇다!고 하면 기적중의 기적입니다. 절대로 믿지 못할 이야기를 지금 하고 있습니다. 신학 중의 신학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어린아이, 노인들이 듣고 그렇구나!하면 위대한 신학자들입니다. 젊었다고 학식있다고 하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깨달았다고 할 때에 엄청난 역사로 말씀됩니다. 말씀이 성령받은 자에게 함께 따라 역사합니다. 말씀을 따라 인도받는 자에게 성령이 역사하십니다. 이 상관관계를 분명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성령이라고 할 때는 요14:16-17이 대표적인 것이고, 말씀이라고 할 때는 딤후 3:14-16입니다 14절에 보면 ‘그러나 너희는 배우고 확실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네가 어렸을 때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희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예수 그리스도 복음 안에 들어가서 말씀을 깨닫는 사실이 되지 않으면 깨닫고 성장하는 축복이 약화되는 것입니다. 16절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고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모든 성경은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여러분과 저는 성전입니다. 이 자리에 여러분과 하나교회를 향해서 성전이라고 합니다. 왜 성전이라고 합니까? 여기에 모인 사람들이 세상 사람들 같으면 성전이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어릴때가 기억납니다. 교회 문을 못을 박았습니다. 뒷문 하나만 열어놓고 공산당원들이 사용했습니다. 교회가 아니라 성전이 아니라 공산당 본부입니다. 각 개개인이 성전으로 있다가 이 자리 한 자리에 모여서 찬송과 영광을 높이 돌립니다. 이것이 성전입니다. 교회는 예수 믿기 위해 오는 곳이 아니라, 이미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된 성전으로 하나님이 허락하신 자들이 여기에 왔을때에 찬송과 감사가 나오게 되어있습니다. 혹시 이것이 확신되지 않는다면, 원색적인 복음으로 들어가지 않았구나. 그래서 교회에 가서 찬송과 기도가 안되는구나. 이것이 이해가 됩니다. 성령이 구체적으로 인도하시고 말씀이 구체적으로 인도하시니까 기도는 자연적인 현상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어딜 가던지 눈에 보이는대로 느끼는대로 병들면 병든대로 기도하게 되어있습니다. 기도가 안 나온다고 하는 것이 이상한 것입니다. 이 기도가 고함을 지른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진짜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그 역사속에 복음안에 들어가게 되면 우리 자신도 모르게 아바아버지라 부르짖습니다. 고전12:3에 ‘누구든지 성령이 아니고는 예수를 주시라 시인할 수 없느니라’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아버지여!’부르게 되면 하나님이 들으시는 것입니다. 아버지 앞에 나아가는 아들이 아버지가 잘 안들을 것이라고 해서 고함을 치면서 ‘아버지~!’라고 하면 ‘야이 미친놈아, 왜 이카노?’ 아버지가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 시급하면 시급한대로 ‘아버지 돈이 필요합니다’, ‘학용품이 필요합니다’ 하는대로 들으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얻기위해서 아예 안들어주실 것을 확신하면서 금식하고 기도하면서 밤새도록 아버지 내가 어젯밤에 철야했고 며칠동안 금식했습니다. 그 고무 한개 사 주세요. 그러면 아버지가 머라고 하겠습니까? ‘아무래도 이 놈이 이상하다 병원에 가자’ 그럴겁니다. 내가 잘하던 못하던 상관이 없습니다. 내게 필요한 것이 있다면 ‘아버지 지우개가 필요합니다’ 용돈주세요. 하면 아버지가 아무말 하지 않고 ‘오냐! 여기있다’ 사랑하는 자식에게 무엇이던지 못합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 너희가 하나님 앞에 간절히 구할 때에 다 들어주신다.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들어주시지 않겠냐? 아예 안 믿고 안 들어주실 것은 확신하고 기도안합니다. 문제와 사건이 생기면 이것을 어떻게 할까? 수단방법을 작은 머리를 돌립니다. 중요한 것이 성전이라고 할 때에 여러분과 제가 성전입니다. 고전3:16 하나님이 계신 곳이 성전입니다. 내 안에 성령으로 하나님이 계십니다. 성전입니다. 여기에 대한 가치의식, 자부심, 자존심이 여기에 필요합니다. 욥이 제일 고민한 것이 무엇입니까? 앞, 뒤, 옆을 봐도 하나님이 안 보입니다. 하나님 어디에 계십니까? 고함을 질러도 대답이 없었습니다. 고통과 고난 속에 조용히 하나님의 음성이 그를 찾아왔습니다. 욥이 깨달은 것이 여기에 있습니다. 엘리야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진과 폭풍이 나와도 그 곳에 하나님이 계신 것이 아닙니다. 조용히 세미한 음성으로 찾아왔더라. 산에서 하던 습관이 남아서 기도를 고함을 지르면서 하지 않으면 허전해서 자꾸 산에 가고 싶어졌습니다. 그것도 버렸습니다. 다른 교회에서 온 교인이 기도하는데 너무나 조용한 것을 보았습니다. 괜찮습니다. 부르짖으면서 기도해도 됩니다. 옛 습관으로 방언을 합니다. 괜찮습니다. 들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다른 분이 아닙니다. 자기도 모르게 이 교회왔다가 가면 어디에 가서 부르짖고 싶은 생각이 든다고 합니다. 조용히 하나님 앞에 나가도 응답하시리라는 믿음을 확실히 가지십시오. 급하면 아버지 부르십시오. 그러면 끝입니다. 더 급한 것을 아버지께서 아십니다. 그래서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 더하여 주시리라’ 이것이 안되면 불신앙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안되면 이방인이라고 하였습니다. 아버지께서 이미 있어야 할 것을 다 아십니다. 구할 때에 영적인 기도, 복음적인 기도. 구할 때에 이 은혜와 은총이 너무나 감사해서 주여 무엇을 주님 앞에 드릴까요? 헌신의 기도. 이것이 이루어지면 모든 하나님의 뜻과 일을 향해 나가는 일에 자기도 모르게 함께 나가게 될 것을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예수 그리스도 복음, 성령, 말씀, 성전, 성도까지 나와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다음으로 만남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사람을 만날때에 간증이 나오게 되어있습니다. 그 간증이 바로 전도입니다. 그 간증을 멀리에서 하면 행18:1-4처럼 선교지가 됩니다. 국내에서 아이를 보는 사람이 해외에 나가서 연수하고 준비할 수 없습니다. 국내에서 복음전파가 안되면 간증이 안되면 해외에서도 안됩니다. 그래서 선교사가 이 일을 알고 국내에서 훈련을 확실히 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새끼 못 낳는 양 일천마리 있는 것보다 새끼 낳는 양 두 마리만 있으면 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수천마리 될 수 있습니다. 중요하게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이 이런 과정을 통해서 제일 마지막에 재림오시기 직전에 상급과 연결이 됩니다. 이 상급을 전도와 연결시켰습니다. 전도하는 제자 한 사람에게 드리는 적은 물질도 물 한그릇도 하늘의 큰 상급이 약속되어있습니다.
그래서 특별히 한 시간만 더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조금 광고겸 메시지를 통해서 여러분들에게 장려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하나교회가 옛날부터 개인헌신을 잘 못했습니다. 어떤 돈 많은 장로님이 한 분 계셔서 자기 이름을 너무나 나타내어서 나도 모르게 알레르기 반응이 있어서 절대로 개인적인 무엇을 하지 말고 단체로 하나님께 헌금을 하고 장로님들도 단체로 무엇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여서 개인 헌신에 대한 것을 가르치는 것이 소홀하였습니다. 전도자를 위해서 작은 물질 드리는 것도 하나님께서 엄청난 상급으로 역사하십니다. 바울이 제일 자랑스럽게 여긴 것이 전도입니다. 너희들이 나의 면류관이라고 하였습니다. 전도의 열매가 그렇게 귀중하게 여겨졌습니다. 무언가 전도하는 일에 적은 물질을 함께 드리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 앞에 은혜를 입어서 전도자를 돕고 싶다는 분들은 개인적으로 도와도 좋습니다. 우리 교회 재정 때문에 손이 오므라져서 잘 내어놓지 않습니다. 복음 위해서 지출하는 것은 지출이 아니라 복입니다. 그런 과정에서 부교역자들이 일본 중고렘넌트 집회가는 것에 하나도 못가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마음이 아픕니다. 우리 교회에서도 그들을 키워야 아이들이 큽니다. 초등부 학생들은 50명 이상이 간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50명 이상이 가는데 지도자는 가지도 못하고 있다. 메시지를 가지고 말해야 하는데 그래가지고 무슨 일이 되겠느냐? 우리 아이를 키우기 위해선 교역자를 키워야 합니다. 메시지를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몸이 아프다보니까 자기만 생각하는 잘못된 습관이 됩니다. 부교역자들을 못 챙겼습니다. 지금도 할 수 있다면 필요합니다. 그렇다하면 전도자 하나에게 조금만 헌신하는 것이 하늘의 상이 크다고 하였습니다. 전도자에게 하나님 앞에 헌신하는 것 얼마나 귀중합니다. 개인적으로의 헌신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권고하니까 책 잡지 마시고 하나님의 말씀따라 헌신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교회가 주의 종들을 키우고 또 주의 종들이 전도하는 귀한 사역자를 키워나가는 것이 축복중의 축복임을 확인합니다. 주의 종들에게 동참하게 하시고 여름 성경학교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드리는 적고 큰 헌신들 속에 하나님이 축복하시되 그 나라의 큰 면류관으로, 영광으로 역사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올리옵나이다. 아멘.
아마 제가 흑판앞에 선 것은 몇 개월 된 것 같습니다. 계속 설 수 있는 힘도 없지만, 그림을 그리면서 설명할 수 있는 힘이 못 되었습니다. 저번 치유사명자 대회 갔을 때도 흑판을 해 놓아도 일어서지 못하고 앉아서 메시지 전하고 돌아왔습니다. 오늘 대단한 용기를 내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실 줄 믿습니다. 시간이 지나서 제가 힘들게 되면 어느때라도 마칠 생각을 하고 섰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진 않을 것 같습니다. 혹시 시간이 너무 길어지지 않을까? 염려가 되나 길어지면 여러분께서는 참 은혜로다! 그러면서 메시지를 들으시면 되겠습니다. 덜한 부분은 다음시간까지 이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새신자들도 많이 왔고 메시지 듣는 일이 처음인 사람도 많습니다. 늘 들어도 잊어버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것이 열가지 발판입니다. 열가지 발판을 들어도 모르는 사람이 너무나 많으니까 목사님 한번 흑판에다가 그려가면서 시각, 귀, 마음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해주시면 좋겠다고 해서 이런 시간을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열가지 발판이 이해가 될 때에 복음을 이해한다는 뜻이 됩니다. 지난 주 제목이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없는 것을 도와주소서’할때에 예수님께서 기적을 일으켜 주셨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불신앙의 시대입니다. 믿을래야 믿을 수 없는 지식으로 가득찬 시대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들을 때에 내게 맞느냐? 내 이성에 맞느냐? 산산히 조각내어 내 방향과 이성에 맞는 부분만 받아들이고 나머지는 걸러내니다. 예수님의 시대도 불신앙의 시대입니다. 예수님께서 믿음이 없음을 꾸짖어시고 믿어야 된다고 할 때에 그 아이의 아버지가 내가 믿나이다. 그러면서 그 아버지가 자기 위치와 문제를 알기에 ‘나의 믿음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생각만 바꾸어도 예수님께서 알았다. 네 아이를 데려오너라. 하시면서 벙어리되고 귀신들린 그 아이를 건져내시는 사건이 지난 주 사건이었습니다.
오늘 막 9: 19에 ‘대답하여 가라사대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오.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매 예수님의 기적으로 제자들이 할 수 없는 것은 믿음이 없기 때문에’라고 했습니다. 제자라고 되는 것도 아니고, 오래 예수믿었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중직자가 되었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믿음이 있어야 기적이 나올수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삶이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하나님의 기적이 역사하실 수 있다는 의미에서 나는 지금까지 목사가 제일 안 믿는 것 같습니다. 너무나 성경에 접해있었기에 하나의 형식과 매너리즘에 빠져서 하나님의 말씀을 단순히 못 받았습니다. 그런 배경에서 중직자일수록 더하고, 묵은 디 즉 오래 예수 믿는 사람일수록 더 문제가 있습니다. 차라리 전도 제자 삼으라고 할 때에 그런 사람 찾으려고 애쓰지 말고 새 사람을 찾으십시오. 현장에서 전도제자를 찾으십시오. 훨씬 처음 믿는 사람이 단순합니다. 처음 믿는 사람은 옛날 것을 듣지도 않았기에 믿기 시작하면 말씀을 그대로 받습니다. 묵은디, 오래된 사람은 말씀을 절대로 그대로 받지 않습니다. 이것이 맞는지 안 맞는지 이리저리 재어봅니다. 이것이 문제 중의 문제입니다. 말씀을 순진하게 받지 못하니, 복음의 기적이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어린아이처럼 받아라. 어린아이는 재는 것이 없는 어머니의 말씀을 단순하게 받습니다. 오늘도 하나님 앞에 어린아이가 되어서 정말 주님앞에 안된 자신을 알게 되거든. 주여! 내가 믿나이다!
그래서 오늘 제목을 ‘무서워하더라’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막 9:22 ‘귀신이 저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이때의 중요한 고백이 24절입니다. ‘아이의 아비가 소리질러 가로되 내가 믿나이다’ 이것은 거짓말입니다. 안 믿으면서도 믿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의지를 말합니다. 안 믿는 배경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나갈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순진한 고백이 필요합니다 ‘주여! 내가 믿나이다’ 그래놓으니 자신이 너무나 부끄럽기에 ‘나의 믿음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이것을 가지고 기도라고 합니다. 기도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유창학 말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위치에서 하나님 앞에 순진하게 나갈 수 있는 이것이 기도입니다. 그럴때에 예수님께서 엄청난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기적으로 완전히 살아났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지금 준비할 것이 첫 번째 무엇을 믿느냐? 이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믿습니다!’는 배경이 무엇인지 잘 살펴봐야 합니다. 복음이 아닌 엉뚱한 것을 가지고 믿습니다 하는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아이의 아버지가 무엇을 믿는 것도 모르고 믿으려는 의지만 보여도, 생각만 바꾸어도 기적이 일어났다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오늘날 내가 완전히 믿어서 무엇을 이룬다! 아닙니다. 여러분 스스로는 믿을 수 없습니다. 믿을 수 있는 지식이 아닙니다. 은혜 입어야 믿을 수 있습니다. 성도가 죽을 때까지 은혜없이는 한시도 못 삽니다. 은혜없이는 순간 불신앙으로 빠집니다. 도저히 회복이 안됩니다.
하나님이 그의 고백을 듣고 믿게 하셨고 바른 생각만 해도 하나님이 기적을 일으키셨다는 중요한 사실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지난 주에는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였습니다. 너희가 그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다고 하였습니다. 은혜없이는 믿음도 없습니다. 은혜주지 아니하시면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난 주에 믿어지는 은혜! 그것이 이해되어지는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제자들이 대답하기를 막9:28에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종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29절에 ‘기도외에는 다른 것으로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그래서 창3:15절을 믿게 하시는 근복적인 믿음 원색적인 믿음을 소개하였습니다. 예수그리스도께 질문하는 배경에는 예수님이 근본적인 믿음에 대한 기초를 두고 믿게 하셨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이를 알게 하신 이는 네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시니라. 은혜로 믿게 하십니다. 베드로의 엄청난 고백이 베드로가 훌륭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를 알게 하신 이는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시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지난 주에는 기도로 믿음이 자라게 하시고 구체적으로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진다고 말씀하였습니다. 가로되 네 믿음이 자라고 기적도 자라서 믿음에서 일어나게 될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 제가 믿음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9:31에 ‘이는 제자들을 가르치시며 또 인자가 사람의 손에 넘기워 죽임을 당하고 죽은지 삼일 만에 살아나리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연고더라’ 32절에 ‘그러나 제자들은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묻기도 무서워하더라’ 예수님께서 가장 중요한 비밀중의 비밀을 설명할 때에 믿음이 없는 바탕속에 자란 제자들이 그것을 믿을 수 없었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설명을 오랫동안 보류하시고 비밀로 덮어놓았습니다. 그러다가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고백할 때에 예수님께서 비로소 십자가의 도를 설명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유명한 고백을 한 베드로 조차도 그것이 이해가 되지 않아 ‘주여. 그리마옵소서’ 예수님의 옷자락을 붙잡고 절대로 그것은 안됩니다라고 할 때에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깨닫지 못하는 너는 사단의 배경이다. 당장 ‘사단아! 네 뒤로 물러가라’고 하였습니다. 깨닫지 못하며 못할수록 두려워지고 십자가의 도에 대해서 낙심하게 되고 어려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와서 십자가의 도에 대한 눈이 열리지 않으면 신앙은 헛것입니다. 오늘 복음! 복음하는 것도 그 중심이 십자가의 역사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 십자가의 도가 열려야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것이 이해가 됩니다. 제가 치유사명자 대회에 가면 하나님의 주권이 제 주특기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외에는 다른 설명도 없습니다. 시간따라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이것이 너무나 절실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것이 큰 줄기로 재림조차도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신앙의 발판 제일 첫 번째가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성부하나님의 주권이라고 나옵니다. 이 하나님의 주권이 실현되기 위해서 구체적인 성경적인 방편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주권을 이루시기 위해 자기의 자녀삼으시고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주권 속에 집어넣고 통치해 나가십니다. 이 사실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복음 자체 복음의 뿌리가 이해가 안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대상 29:10-14, 29:11절에 보면 ‘여호와여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이김과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유의 머리심이니이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유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자를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떠들어봐야 소용없습니다. 하나님 안에 다 있습니다. 잘한다고 자랑하는 것도 다 어리석은 짓입니다 신문에도 ‘다른 것이 없다. 복음이 깨달았다고 까불지 마라. 복음이 없다고 절망하지 말고 하나님의 주권 속에 은혜속에 있는 것이 네가 하는 것이 아니다’고 후배들에게 말을 남겼습니다. 혹시 이해가 되지 않고 들으며 보통있는 말이라고 할 수 있지만, 절실한 말입니다. 정말 복음 속에 들어가고 주권 속에 들어가면 떠들고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기도 백번, 천번해도 이것이 이해가 되지 않으면 다 허사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일을 이루기 위해서 사실은 10가지 기둥을 설명하였습니다만 9가지입니다. 왜? 하나님의 주권이 성경 이해의 기초입니다. 성경을 볼 때에 이것이 이해되지 않으면 절대로 이해되지 않습니다. 신앙 생활의 기초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사실을 확실하게 해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이것을 이루시기 위해서 어떤 성경적인 방법을 취하셨나? 이것이 처음 시작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것을 복음이라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복음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완전 복음입니다. 원색적인 복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영원한 멸망과 죽음으로 빠지게 된 배경이 원죄입니다. 원죄라는 것은 하나님을 떠났다는 것과 죄와 저주에 빠져서 고생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되고 거듭거듭 망하게 됩니다. 이 배경이 사단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손에 있다가 아담, 하와의 범죄 후에 사단에 빠져서 계속 저주와 고통과 아픔으로 인도를 받습니다. 그래도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삽니다. 이것을 가지고 원죄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롬8:2처럼 ‘생명과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하였음이니라’ 중요한 배경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복음으로 통해서 해방을 받는 것입니다. 창3:15절입니다. 내 힘과 능으로 안됩니다. 어떤 인간도 우리를 구원해 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배타적이라고 비난 받는 배경이 그렇습니다. 행4:12 ‘천하인간에 다른 이름으로 구원주신 적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외에는 다른 이름이 없습니다. 돈, 인물 잘나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착한 선행으로도 안됩니다. 이것이 기준이라면 우리들은 모두 부자격자입니다. 다른 종교, 공자의 이름으로도 못 갑니다. 석가도 안됩니다. 깊은 교리와 자비로도 안됩니다. 이것을 증명하려면 지독한 정신병자 속에서 ‘공자의 이름으로 내가 명하노니’ 해보십시오. 그날이 바로 제삿날이 됩니다. 오직 예수 이름으로 보기만 해도 벌벌 떱니다. 이것이 경험되지 않으면 점쟁이에게 가보십시오. 진짜 점쟁이는 벌벌 떱니다. 점괘가 다 막힙니다. 귀신이 들린 점쟁이라면 예수믿는 사람이라는 것을 대번 알아냅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순진하게도 어떤 권사님께서 점쟁이에게 찾아갔던 모양입니다. 예수 믿는데 불안하고 의심이 있었는데 점쟁이에게 가니 바로 알아 맞히더랍니다. 그래서 너무나 기분이 좋아서 뛰어나왔습니다. 복음 속에 들어갔다하면 잘한다 못한다 어떤 행동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조용히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을 붙잡으십시오. 이것을 가지고 언약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 오실 것을 예언한 것이 메시아 예언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가지고 옛날 언약이라고 하여서 구약이라고 합니다. 이미 오신 예수 그리스도! 메시아가 그리스도가 되셨다 이 말이 신약이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빠져나왔다. 이것이 그리스도입니다. 구원입니다.
구원받게 되면 당장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졌습니다. 지난 주에 전천년, 무천년을 설명하였습니다. 여러분과 저는 무천년설자들입니다. 천년왕국이 저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고, 약속대로 내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졌다. 천년왕국이 이루어졌습니다. 천당가는 사람들은 천년왕국이 내게 이루어져야 가는 것이지 바라보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전천년학자들과 무천년학자들 사이에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삶의 내용이 달라집니다. 다락방은 완전 무천년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흑암세력을 꺾을 수 있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셨습니다. 너를 이길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오늘 이땅을 살면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진 사람들에게는 당당함과 확신이 있습니다. 이 역사를 방해하는 흑암의 세력을 꺾을 수 있는 권세가 있습니다. 이 사실이 이해되면 신앙이 달라집니다. 기독교인은 실패해도 실패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구첵적으로 당신의 주권가운대로 인도하는 방법이 이 방법입니다. 제일 첫 번째 기둥이 예수 그리스도! 구원입니다. 이 구원은 백번천번 강조를 해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저지난주에 말한 것처럼 죽기처럼 구원안으로 들어가라!
이렇게 구원받은 자는 구원받은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구원의 증거를 주십니다. 성령의 내주입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을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자녀의 역사를 증거하기 위하여 성령님께서 오십니다. 이것이 현대교인에게는 참 희박합니다.
성령이 내 안에 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함께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령이 인도해주십니다. 요14:16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이 능히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시며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오늘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십니다. 하나님이 멀리 계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내 안에 계십니다. 이것을 믿는다는 정도가 아니라 믿어집니다. 그래야 인도를 받습니다. 여러분과 저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령이 인도해주십니다.
성령이 인도해주신다고 할 때에 말씀을 깨닫지못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장 비밀적인 최고의 구원의 극치인 십자가의 역사가 이해가 안됩니다. 두려움과 공포가 오게 되어있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게 되면 성령의 인도하심이 꿈, 이상한 것, 예언이 아닙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게 되면 성령이 인도하는 곳에 말씀이 따라갑니다. 말씀인도하시는 곳에 성령이 함께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으면 말씀과 성령의 인도는 누가 먼저랄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성령이 오셨다고 하면 말씀에 눈이 열립니다. 이 말씀을 들으면서 그렇다!고 하면 기적중의 기적입니다. 절대로 믿지 못할 이야기를 지금 하고 있습니다. 신학 중의 신학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어린아이, 노인들이 듣고 그렇구나!하면 위대한 신학자들입니다. 젊었다고 학식있다고 하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깨달았다고 할 때에 엄청난 역사로 말씀됩니다. 말씀이 성령받은 자에게 함께 따라 역사합니다. 말씀을 따라 인도받는 자에게 성령이 역사하십니다. 이 상관관계를 분명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성령이라고 할 때는 요14:16-17이 대표적인 것이고, 말씀이라고 할 때는 딤후 3:14-16입니다 14절에 보면 ‘그러나 너희는 배우고 확실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네가 어렸을 때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희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예수 그리스도 복음 안에 들어가서 말씀을 깨닫는 사실이 되지 않으면 깨닫고 성장하는 축복이 약화되는 것입니다. 16절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고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모든 성경은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여러분과 저는 성전입니다. 이 자리에 여러분과 하나교회를 향해서 성전이라고 합니다. 왜 성전이라고 합니까? 여기에 모인 사람들이 세상 사람들 같으면 성전이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어릴때가 기억납니다. 교회 문을 못을 박았습니다. 뒷문 하나만 열어놓고 공산당원들이 사용했습니다. 교회가 아니라 성전이 아니라 공산당 본부입니다. 각 개개인이 성전으로 있다가 이 자리 한 자리에 모여서 찬송과 영광을 높이 돌립니다. 이것이 성전입니다. 교회는 예수 믿기 위해 오는 곳이 아니라, 이미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된 성전으로 하나님이 허락하신 자들이 여기에 왔을때에 찬송과 감사가 나오게 되어있습니다. 혹시 이것이 확신되지 않는다면, 원색적인 복음으로 들어가지 않았구나. 그래서 교회에 가서 찬송과 기도가 안되는구나. 이것이 이해가 됩니다. 성령이 구체적으로 인도하시고 말씀이 구체적으로 인도하시니까 기도는 자연적인 현상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어딜 가던지 눈에 보이는대로 느끼는대로 병들면 병든대로 기도하게 되어있습니다. 기도가 안 나온다고 하는 것이 이상한 것입니다. 이 기도가 고함을 지른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진짜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그 역사속에 복음안에 들어가게 되면 우리 자신도 모르게 아바아버지라 부르짖습니다. 고전12:3에 ‘누구든지 성령이 아니고는 예수를 주시라 시인할 수 없느니라’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아버지여!’부르게 되면 하나님이 들으시는 것입니다. 아버지 앞에 나아가는 아들이 아버지가 잘 안들을 것이라고 해서 고함을 치면서 ‘아버지~!’라고 하면 ‘야이 미친놈아, 왜 이카노?’ 아버지가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 시급하면 시급한대로 ‘아버지 돈이 필요합니다’, ‘학용품이 필요합니다’ 하는대로 들으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얻기위해서 아예 안들어주실 것을 확신하면서 금식하고 기도하면서 밤새도록 아버지 내가 어젯밤에 철야했고 며칠동안 금식했습니다. 그 고무 한개 사 주세요. 그러면 아버지가 머라고 하겠습니까? ‘아무래도 이 놈이 이상하다 병원에 가자’ 그럴겁니다. 내가 잘하던 못하던 상관이 없습니다. 내게 필요한 것이 있다면 ‘아버지 지우개가 필요합니다’ 용돈주세요. 하면 아버지가 아무말 하지 않고 ‘오냐! 여기있다’ 사랑하는 자식에게 무엇이던지 못합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 너희가 하나님 앞에 간절히 구할 때에 다 들어주신다.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들어주시지 않겠냐? 아예 안 믿고 안 들어주실 것은 확신하고 기도안합니다. 문제와 사건이 생기면 이것을 어떻게 할까? 수단방법을 작은 머리를 돌립니다. 중요한 것이 성전이라고 할 때에 여러분과 제가 성전입니다. 고전3:16 하나님이 계신 곳이 성전입니다. 내 안에 성령으로 하나님이 계십니다. 성전입니다. 여기에 대한 가치의식, 자부심, 자존심이 여기에 필요합니다. 욥이 제일 고민한 것이 무엇입니까? 앞, 뒤, 옆을 봐도 하나님이 안 보입니다. 하나님 어디에 계십니까? 고함을 질러도 대답이 없었습니다. 고통과 고난 속에 조용히 하나님의 음성이 그를 찾아왔습니다. 욥이 깨달은 것이 여기에 있습니다. 엘리야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진과 폭풍이 나와도 그 곳에 하나님이 계신 것이 아닙니다. 조용히 세미한 음성으로 찾아왔더라. 산에서 하던 습관이 남아서 기도를 고함을 지르면서 하지 않으면 허전해서 자꾸 산에 가고 싶어졌습니다. 그것도 버렸습니다. 다른 교회에서 온 교인이 기도하는데 너무나 조용한 것을 보았습니다. 괜찮습니다. 부르짖으면서 기도해도 됩니다. 옛 습관으로 방언을 합니다. 괜찮습니다. 들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다른 분이 아닙니다. 자기도 모르게 이 교회왔다가 가면 어디에 가서 부르짖고 싶은 생각이 든다고 합니다. 조용히 하나님 앞에 나가도 응답하시리라는 믿음을 확실히 가지십시오. 급하면 아버지 부르십시오. 그러면 끝입니다. 더 급한 것을 아버지께서 아십니다. 그래서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 더하여 주시리라’ 이것이 안되면 불신앙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안되면 이방인이라고 하였습니다. 아버지께서 이미 있어야 할 것을 다 아십니다. 구할 때에 영적인 기도, 복음적인 기도. 구할 때에 이 은혜와 은총이 너무나 감사해서 주여 무엇을 주님 앞에 드릴까요? 헌신의 기도. 이것이 이루어지면 모든 하나님의 뜻과 일을 향해 나가는 일에 자기도 모르게 함께 나가게 될 것을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예수 그리스도 복음, 성령, 말씀, 성전, 성도까지 나와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다음으로 만남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사람을 만날때에 간증이 나오게 되어있습니다. 그 간증이 바로 전도입니다. 그 간증을 멀리에서 하면 행18:1-4처럼 선교지가 됩니다. 국내에서 아이를 보는 사람이 해외에 나가서 연수하고 준비할 수 없습니다. 국내에서 복음전파가 안되면 간증이 안되면 해외에서도 안됩니다. 그래서 선교사가 이 일을 알고 국내에서 훈련을 확실히 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새끼 못 낳는 양 일천마리 있는 것보다 새끼 낳는 양 두 마리만 있으면 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수천마리 될 수 있습니다. 중요하게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이 이런 과정을 통해서 제일 마지막에 재림오시기 직전에 상급과 연결이 됩니다. 이 상급을 전도와 연결시켰습니다. 전도하는 제자 한 사람에게 드리는 적은 물질도 물 한그릇도 하늘의 큰 상급이 약속되어있습니다.
그래서 특별히 한 시간만 더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조금 광고겸 메시지를 통해서 여러분들에게 장려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하나교회가 옛날부터 개인헌신을 잘 못했습니다. 어떤 돈 많은 장로님이 한 분 계셔서 자기 이름을 너무나 나타내어서 나도 모르게 알레르기 반응이 있어서 절대로 개인적인 무엇을 하지 말고 단체로 하나님께 헌금을 하고 장로님들도 단체로 무엇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여서 개인 헌신에 대한 것을 가르치는 것이 소홀하였습니다. 전도자를 위해서 작은 물질 드리는 것도 하나님께서 엄청난 상급으로 역사하십니다. 바울이 제일 자랑스럽게 여긴 것이 전도입니다. 너희들이 나의 면류관이라고 하였습니다. 전도의 열매가 그렇게 귀중하게 여겨졌습니다. 무언가 전도하는 일에 적은 물질을 함께 드리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 앞에 은혜를 입어서 전도자를 돕고 싶다는 분들은 개인적으로 도와도 좋습니다. 우리 교회 재정 때문에 손이 오므라져서 잘 내어놓지 않습니다. 복음 위해서 지출하는 것은 지출이 아니라 복입니다. 그런 과정에서 부교역자들이 일본 중고렘넌트 집회가는 것에 하나도 못가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마음이 아픕니다. 우리 교회에서도 그들을 키워야 아이들이 큽니다. 초등부 학생들은 50명 이상이 간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50명 이상이 가는데 지도자는 가지도 못하고 있다. 메시지를 가지고 말해야 하는데 그래가지고 무슨 일이 되겠느냐? 우리 아이를 키우기 위해선 교역자를 키워야 합니다. 메시지를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몸이 아프다보니까 자기만 생각하는 잘못된 습관이 됩니다. 부교역자들을 못 챙겼습니다. 지금도 할 수 있다면 필요합니다. 그렇다하면 전도자 하나에게 조금만 헌신하는 것이 하늘의 상이 크다고 하였습니다. 전도자에게 하나님 앞에 헌신하는 것 얼마나 귀중합니다. 개인적으로의 헌신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권고하니까 책 잡지 마시고 하나님의 말씀따라 헌신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교회가 주의 종들을 키우고 또 주의 종들이 전도하는 귀한 사역자를 키워나가는 것이 축복중의 축복임을 확인합니다. 주의 종들에게 동참하게 하시고 여름 성경학교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드리는 적고 큰 헌신들 속에 하나님이 축복하시되 그 나라의 큰 면류관으로, 영광으로 역사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올리옵나이다. 아멘.
번호 | 제목 | 본문 | 설교일 | 첨부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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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7 |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 삿2:6-10 | 2025-03-0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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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5 |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 단12:1-4 | 2025-02-2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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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1 |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 단8:15-27 | 2025-01-26 | |
1470 |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 단7:9-14 | 2025-01-19 | |
1469 | 자기의 하나님을 믿음이었더라 | 단6:16-28 | 2025-01-1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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