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가서 보니
2005-09-11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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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말씀에 들어가기 전에 이 학위를 받으면서 감정이 나오는 마음이 생겼어요. 여러분도 알다시피 6-7년간 죽을 고비를 몇 번 넘기고 오늘을 있게 하신 하나님께 먼저 진정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내 힘이 아니고 궁극적으로 여러분의 힘보다도 하나님의 은혜가 생각이 됩니다. 제가 답사를 하면서 무언가 감격스러운 마음이 생겼습니다. 어쩌다가 죽어서 공동묘지에 들어갈 내가 살아서 공동묘지를 면하고 살아나 큰 영광스러운 자리에 세우신 것을 감사하는 진실한 감사가 나오더라고요. 명예 목회학 박사라는 것은 어떤 면에서 목사로서는 최고의 영광입니다. 논문박사는 논문을 써야 박사 학위를 받고, 목회학 박사라는 것은 교단 안에서 누가 보더라도 목회에 성공했다라는 것을 두고 여러 가지 심사를 합니다. 다락방에선 제일 먼저 앞장 서서 나왔다는 의미에서 목회학 박사를 허락한 것 같습니다. 목회자로서는 논문박사보다도 가장 영광스러운 것이 명예입니다. 누구도 이 명예는 따라할 수 없습니다. 논문은 글 잘 쓰면 되지만 목회학 박사는 교회와 목사와 모든 것이 구비되어야 박사 학위를 받을 수 있는 자리입니다. 너무나 영예스럽고 죽기 전에 살려서 박사 학위를 주셨다는 사실에 감사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살려둔 것은 영광만 받으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구체적으로 사용받는 곳에 쓰여지기를 원하시는 것이다라고 생각을 하고 하나님께서 은혜주시는 대로 목회에 전념할 것을 다짐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목회학 박사 배경에는 물론 전 세계적인 기도도 있었습니다만 여러분의 적극적인 기도의 응답입니다. 사람이 살고 죽는 것은 하나님의 손에 있지만, 여러분이 철야, 금식, 50일, 특별 새벽기도하시는 기도의 응답이라고 생각이 되어 여러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당회에 감사드리는 것은 얼굴 찌푸리지 않으시고 6-7년간 투병 생활하는 중에서도 살아만 계십시오 하시면서 지금까지 당회가 보호해주고 위로해주셨다는 것에 너무나 감사합니다. 7년동안 아팠다고 하면 목사는 벌써 떠나야 합니다. 7년동안 아팠다는 정도가 아니라 건축을 하면서도 건축에 참여할 수 있는 힘이 없어서 건축도 장로님들이 다 짊어지고 해왔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중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장로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강단에서 성격상 모진 소리를 한 일들이 있습니다. 앞으로도 그러한 것을 할 것입니다. 문제는 여러분들이 잘 받으시면 약이 되고 못 받으면 악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메시지 속에서 나갈 때에는 무언가 하나님께서 고치셔야 할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박목사의 개인 감정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으로 이해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혹시 그런 분이 있더라도 지금 이 자리에서 다 수용하시고 앞으로 박사까지 받았다고 해서 사람이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 옷을 벗으면 똑같습니다. 목회, 특별히 말씀에 같이 순종하면서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일에 우리 교회가 세계 복음화에 정말 쓰임받는 은혜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서 인사를 대신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합니다. 오늘을 있게 하신 하나님! 성령의 역사 속에서 세우심을 감사드리고 교회와 당회와 모든 기관들이 복음의 역사를 위해서 도우고 같이 인도함을 받게 하신 것을 찬양을 드립니다. 앞으로 남은 생애 사람이 달라지는 것보다도 하나님의 뜻에 씌여짐을 받는 은혜의 축복으로 덧입혀주시되 교회와 모든 가정이 이 축복의 역사 속에 세워주시옵소서. 군문으로 직장으로 학창으로 나가있는 자들! 얼마나 복음이 그립고 주일이 기다려지는 시간입니다. 주의 종들이 하나님 앞에 같은 은혜받게 하시고 인터넷으로 보는 주의 종들에게 같은 성령의 역사로 인도받도록 축복해주시옵소서. 오늘도 부족한 종이 섰사오니 주의 장중에 붙들어 주시고 성취될 말씀으로 인도해주시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의 거룩하신 역사가 우리 김성화 선교사님으로 유럽에 파송됩니다. 가장 어렵고 힘든 지역입니다. 주의 성령으로 인도하셔서 이 복음 통해서 간증거리가 날마다 일어날 수 있도록 축복해 주시옵소서. 되어지는 선교에 하나님의 역사가 항상 하시는 거룩하신 긍휼로 날마다 축복해 주시옵소서. 자녀들에게 주께서 함께 하시고 어려운 지역에서 적응하고 또 함께 하는 모든 일에 부족함이 없도록 빨리 주의 종들이 현지에 적응되도록 주께서 축복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올리옵나이다. 아멘.

오늘 말씀을 통해서 4절에 보면 ‘제자들이 가서 본즉 나귀 새끼가 문 앞 거리에 메여있는지라. 그것을 푸니’ 이것은 예수님께서 마지막 성찬을 준비하는 시간인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직전에 성찬을 준비하시기 위해서 먼저 장소를 예비하고 또 그 장소를 예비한 이후에 예루살렘 입성이 오늘 성경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 예루살렘 입성 직전에 해야할 일들이 좀 있기 때문에 먼저 마지막 성찬이 이루어지고 그 이후에 감람산 벳바게와 베다니에 있어서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시점에서 먼저 성경에서 예언하신 대로 어린 나귀를 타고 들어가십니다. 원래 나귀는 평화를 상징하는 뜻입니다. 어린 나귀를 타야하시는데 제자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기에 끌고 와야 합니다. 이렇게 이렇게 하면 이렇게 이렇게 질문을 할 것이다 라는 것이 본문에 나와있는 것입니다. ‘만일에 누가 너희에게 왜 이리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그래서 제자들이 말씀을 붙잡고 현장에 부닥혔습니다. 가서 본즉 나귀 새끼가 문 앞 거리에 메여있는지라. 그것을 푸니 역시 예수님의 말씀대로 거기 서 있는 사람 중 어떤 이들이 가로되 나귀 새끼를 풀어 무엇을 하려느냐? 하매 또 예수님의 말씀대로 제자들이 예수의 이르신대로 말하되 이에 허락하신지라. 나귀 새끼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걸쳐두매 예수께서 타시니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면서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예수살렘에 입성하는 영광스런 입성을 오늘 기록해두셨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4절에 ‘제자들이 가서 본즉’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한마디로 말하면 현장에서 응답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현장에서 실제로 부딪히는 사건 속에 말씀이 이해됩니다. 깨달아지게 됩니다. 현장에서 응답받는 역사를 오늘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성도들이 응답받는다 하면서 현장이 없습니다. 현장이 없다는 배경이 무엇입니까? 현장은 자기가 처해있는 장소입니다. 내가 회사에 처해있든지, 가정에 처해있든지, 그것이 바로 우리 현장입니다. 여러분들은 신앙 생활하는 곳에서 멀리 교회에 와서 신앙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 들어가서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복을 주시는 것을 찾아야 합니다. 현장에 가서 본 즉 찾아야 합니다. 이미 우리가 복을 받고 응답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찾지 못해서 응답이 없는 줄 알고 낙심하고 있습니다. 가서 본 즉 말씀대로 성취되어있습니다. 말씀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가정의 주부들도 가정이 현장입니다. 그 가정에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를 구체적인 응답을 찾아야 합니다. 가서 봐야 합니다. 본다는 것은 이미 말씀대로 응답하신 주님의 응답을 찾아야하고 그것을 찾아서 발견해야 합니다. 이것이 참 중요한 문제입니다. 직장에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직장에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한대로 응답하시고 말씀대로 그 응답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가서 찾아야 합니다. 가서 봐야 합니다. 이것이 신앙 생활의 전부입니다. 여기에서 가서 본즉이라고해서 전도캠프가서 본다. 또 어떤 전도 현장에 뛰어들어가서 본다는 것보다도 먼저 내게 현장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미 성취되어있구나! 이것을 찾아야 합니다. 오늘부터 여러분이 이 눈을 떠야 합니다. 내 가정에 또 자녀들에게, 내 모든 환경에 하나님이 말씀대로 어떤 응답이 와있느냐? 찾아야 합니다. 한번 자세히 찾아보세요. 많습니다. 모르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정말 하나님의 말씀대로 다 이루어졌구나. 하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오늘 학위를 받으면서, 특히 학위가 명예이기에 저는 더 감사합니다. 조금 눈을 떠서 보니까 우리 가정에 엄청난 축복을 받았다는 것이 이해가 됩니다. 자녀에게도 아내에게도 그렇습니다. 일부러 찾는다는 생각을 조금만 하니까 전부다 응답입니다. 하나 더 응답이라고 하면 이 시절과 계절에 제 아내가 마음대로 뛰어다닐 수 있다는 것이 보통 응답이 아닙니다. 물론 그 동안 많이 했습니다만, 제일 안되는 것이 이것이었습니다. 왜 내 아내의 건강 문제는 들어주시기 않느냐? 그랬는데, 눈을 뜨고 보니 벌써 다 들어주셨습니다. 자녀들 문제도 그렇습니다. 가서 본 즉 내가 처해있는 좁은 환경이라고 하면 내 가정입니다. 하나님이 이미 벌써 다 성취해 놓았습니다. 가서 보면 됩니다. 가서 찾으면 됩니다. 내 현장에 서서 찾아보면 나오게 되어있습니다. 여러분 그렇게 되면 저절로 감사가 나옵니다. 옛날의 어려운 고비들이 감사가 됩니다. 제 아내가 처음 다락방 접하고 한두번 다락방을 한다고 뛰어다녔다가 두 번째인가? 세 번째인가? 그렇게 힘들던 천식이 떠났습니다. 그러한 증거들이 내게 믿음이 되었습니다. 산증거가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작은 것이지만 하나님이 하셨다는 눈이 열리면 믿음이 생깁니다. 그 믿음을 통해서 더 큰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지난 주간에 말했듯이 믿음 없이는 못 받습니다. 그 믿는다는 것도 은혜로 믿습니다.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내 환경과 사건 속에서 이미 응답하셨습니다. 왜 안됩니까? 할 것 없이 조금만 찾아보십시오. 벌써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도 아직도 왜 안됩니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닙니다. 벌써 하나님이 응답하셨습니다. 오늘 조용히 거룩한 성일 동안에 묵상하시면서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낮에 안 찾아지면 저녁에 누워서 생각하면서 찾아보십시오. 반드시 말씀이 성취되는 현장에 세우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이 현장을 구체적으로 누릴 수 있는 길이 무엇입니까? 간단하게 여러분들이 계속 들었습니다. 이 일이 이루어지면 계속해서 현장의 응답을 확인하는 믿음이 되겠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구원의 확인입니다. 구원의 확신입니다. 구원의 확신이 나오면 저절로 감사가 나옵니다. 구원이라고 할 때에 칼빈의 5대 강령까지 설명을 하였습니다. 높이와 넓이와 깊이가 무한합니다. 그래서 조금만 누려도 구원에 대한 감사가 엄청나게 나오는데 점점 깊이 들어갈 수록 어마어마한 축복이 구원 속에 있습니다. 구원에 대해서 이해되고 체험이 되는 만큼 은혜를 받았다는 것보다 믿음이 생깁니다. 은혜받는 것도 구원속에서 은혜로 구원을 받는 것이지만, 그 모든 일들을 조금만 누리게 되면 정말 믿음과 확신이 생깁니다. 그러면 여러분 가는 곳에 저절로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었구나! 증거거리가 생깁니다. 증거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된다고 하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여러분의 생애에 기도라는 것은 되어지는 것입니다. 억지로 기도하려고 하면 안됩니다.
기도가 되어지면 첫 번째 기도 속에서 명심해야할 것이 변하지 않는 기도의 제목입니다. 내게 있어서, 내 가정에 있어서 교회와 신앙 생활에 있어서 절대 변하지 않는 기도 제목이 나오게 되어있습니다. 이 기도제목으로 기도를 계속하다보면 수정되고 보완되고 이것이 구체적으로 향상되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말씀에 나오는 것이 그것입니다. 구원의 깊은 은혜와 넓이와 높이와 깊이를 확인하고 그 속에 점점 들어가게 될수록 하나님이 여러분을 세우셔서 영광받으실 모든 계획이 보여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구원속에 들어가게 되면 제일 먼저 우리가 누려지게 됩니다. 일곱가지 축복이 구원 속에 있는 것입니다. 내가 신분이 바뀌어졌다는 것도 구원 속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조금만 이해되고 기도하면 저절로 제목이 나오게 되어있습니다. 기도제목은 첫 번째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기도제목이 나옵니다. 우리가 우리 마음대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작정 속에 나와 여러분을 세우신 기도가 나옵니다. 그러면 그때부터 응답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내 마음, 욕심대로 기도하는 것은 응답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내가 하나님의 계획 속에 세워진 것을 발견하고 아무리 어렵고 힘든 것이라도 그것은 발판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하나님께 지금 나를 향하신 기도의 제목이 붙잡혀집니다. 내가 어떻게 기도해야합니까?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것 이전에 기도 제목이 저절로 붙잡혀 집니다. 하나님이 나를 이곳에, 이 환경에, 이 형편에 이 어려움 속에 세워 놓은 것이 하나님이 도대체 나에게 무엇을 원하십니까? 무슨 뜻입니까? 그러면 그 자체가 문제는 해결되고 답이 나오지만, 문제가 아닌데 걱정하면서 기도했다고 그러면 그것은 저절로 없어집니다. 그래서 문제가 왔다고 하면 그것이 발판이 됩니다. 진짜 문제가 왔다고 하면 응답이 됩니다. 정당한 문제는 반드시 해답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잘못된 문제는 아무런 답도 없습니다. 문제는 그런 실질적인 문제를 붙잡지 못하고 늘 문제가 아닌 것들을 계속 문제로 삼고 있습니다.
그래서 류목사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자기 미래를 미리 걱정하고 문제가 안되는 것을 문제로 여기는 것 각각 30%, 그 다음에 하나님께서 계획 속에 세우셨는데 정말 문제가 왔다면 그 문제의 해답은 그 다음 40%. 이것이 무엇이냐 하면 우리가 문제가 아닌 것을 문제로 삼고 붙잡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다락방에서 문제는 문제 될 것이 없다, 진짜 문제는 발판이다. 하나님이 승리하고 축복하신 발판이다. 그래서 제가 지난 날에 제게 있었던 문제 어려운 문제들이 많았는데 그 문제들이 해결되고 나면 믿음이 생깁니다. 특별히 투병생활을 하면서 문제가 해결되면 믿음이 생깁니다. 참 중요한 것 같습니다.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문제는 참 은혜의 발판입니다.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여러분이 문제삼고 있는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쓸데없는 걱정입니다. 가만히 놔두면 지나가는 일입니다. 그 지나가는 일의 다리를 붙잡고 있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이것이 조금만 이해가 되어도 정말 누린다는 사실이 실감납니다. 그리고 절대로 신앙생활을 하면서 근심, 걱정, 염려가 없습니다. 조금만 눈을 뜨고 지금 하나님께서 문제를 주셨다면 이 문제를 주신 것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원하십니까 무엇을 작정하시길 원하십니까. 하나님이 절대로 나쁜 것으로 응답하지 않습니다. 무응답이라고 해도 나쁜 것으로 응답하지 않습니다. 전혀 없다고 하더라도 나쁜 것으로 응답하시지 않습니다. 눈을 떠서 내 현장에 가서 찾으면 말씀대로 다 응답이 되어있습니다. 말씀대로 다 이미 내게 응답이 되어 있습니다. 이제는 눈을 떠서 이 축복된 응답을 찾으면 됩니다. 찾으면 돼요. 이것이 얼마나 귀중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약속입니까. 그래서 7가지 구원의 역사 속에 붙잡고 기도를 하시고 여기에서 말씀대로 성취된다는 것을 개인적으로 가져야 하겠습니다. 내가 말씀을 붙잡고 그 말씀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기도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요즘 말씀 포럼하는 것인데 정말 좋은 습관입니다. 그 말씀 포럼은 다 이루어집니다. 그 다음에 말씀 포럼을 하고나서 내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감사하는 7가지 축복.
그 다음에 여기서 오는 구체적인 기도제목. 오늘 하나님께서 이 환경과 이 사건에서 무엇을 원하십니까? 하나님의 작정속에서 나를 볼 수 있도록 이 훈련이 되면 구질구질한 성도가 되지 않습니다. 내 인격도 내 생각도 언제 바뀌어졌는지 바뀌어져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늘 모양은 같지만 처음 다락방을 시작할 때와 한 10여년 됐는데 많이 바뀌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보면서 저렇게 바뀌어질 수 있는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한두사람이 아닙니다. 엄청나게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본인은 잘 모르고 있습니다. 바뀌어졌는데 이제는 찾아야될 문제들이 이미 응답한 문제들이 너무나 많은 응답을 받고 있는데도 못찾고 있기 때문에 많은 것을 놓칠 수 있습니다. 오늘부터 부지런히 찾으시기 바랍니다. 부지런히 내 현장에서 하나님께서 지금 하시는 역사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직장이면 직장, 다른 어떠한 일들, 가정에서 조금만 눈을 뜨면 구원의 축복을 함께 깊이 누릴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누린다 누린다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되어야 여기에서부터 구원과 말씀과 기도, 이렇게 계속 내가 누리게 되면 거기서 나오는 모든 말씀은 응답이 됩니다. 그 기도 속에서 그 어떤 역사속에서 나오는 내 생애의 모든 것이 내 미래에 모두 축복이 됩니다. 그래서 교회의 봉사나 모든 사건에서 이 사실을 마음에 두고 첫 번부터 구원의 감사가 나오지 않으면 되지 않습니다. 조금만 생각하면 얼마나 구원에 대해서 감사합니까. 지금 죽는 현장에서도 우리가 고백할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태연하게 하나님 내게 하늘나라를 준비하시고 이 축복을 누릴 수 있도록 은혜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죽음 앞에서 이러한 고백이 나와야 합니다. 근데 제가 막상 당해보니까 제일 힘든 것이 이것이 아니더라고요. 죽음앞에서는 하나님 왜 그러십니까. 날 살려주시기 왜 이렇게 힘들게 하십니까. 다른 사람들이 무슨 욕을 하겠습니까. 이런 식으로 나왔습니다. 그래서 다시 정신을 차리고 아버지 그래도 하나님의 뜻대로 하옵소서. 여러분 만약에 내가 죽음 직전에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구원주시고 나를 데리고 가시니 너무 감사합니다. 이런 식으로 하면 다 되는데 막상 이런 계획 속에서 하나님께서 이루신다는 것을 내 입으로 말하면서도 막상 순간적으로 욕심이 생깁니다. 내 자신의 동기가 생깁니다.
그래서 이 구원과 말씀과 기도보다도 많은 사람들이 다른 것을 붙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다른 것을 붙입니다. 다른 것을 붙인다는 것만으로도 안되는데 그 붙인것에 이 구원과 말씀과 기도를 이용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신비주의를 할때에 우리가 엄청나게 기도하고 하던 때에 우리가 신비주의 하면서 이 구원과 말씀과 기도를 구체적으로 다락방에서 말씀하는 이 것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비주의에서 이것을 이용하면 역사가 일어납니다. 아주 처음에는 그런 것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신비주의는 영적인 눈이 조금 열려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영적인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조인이 되면 엄청난 역사가 일어납니다. 초대에 그런 역사를 가지고 얼마나 미혹했던 충청도 아줌마가 있습니다. 지금 완전히 가정파괴가 다 되고 미국에 가셨는데 참 안타깝습니다. 그때 제가 총회의 총회장으로 있을때에 당장 제 성격으로는 지금 다른 영으로 넘어가면 안되니까 이런 영적인 문제가 와있다고 하면 단호하게 저는 그렇게 목회를 했었습니다. 그래서 류목사님께 단호하게 처리를 해야된다고 하니까 류목사님의 성격은 또 저와 달랐습니다. 놔둬보라고 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 사람이 그 사역을 하도록 놔준 일 속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미움을 받았습니까. 그곳에 지금 300명인가 구체적으로 따라다니는 사람이 있었고 해외에서 오는 사람들은 먼저 그 사람들이 채 가서 그 이야기를 하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받았거든요. 어쨌든 가만히 두고 있었는데 구체적으로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은것이니까 원하지 않는데 계속 나가니까 징계를 주셨다고 보죠. 가정 완전히 파괴되고.. 목사님은 이혼하고 다른여자와 다시 결혼하고 자기는 발 붙일때가 없으니까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소식도 없어요.
무슨말을 하고 싶은가 하니 구원과 결합시켜서 처음에는 잘 될 수 있습니다. 특별히 신비주의와 구원의 역사와 말씀의 역사, 기도의 역사가 플러스가 되면 엄청난 역사가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초기에 거기에 가서 진짜 말씀듣고, 목사님들도 우리 대구노회도 많이 갔어요. 수백명씩 서울까지 가서 말씀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은 것 결단코 용납하지 않습니다. 언젠가 그 문제가 해결되고 자기는 자기대로 실패하게 됩니다. 문제는 이것이 우리 교우들에게도 똑같이 해당됩니다. 복음과 말씀과 기도 여기에 완전히 우리 자신이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그래야 거기서부터 나오는 일마다 축복이 되는거죠. 다른 것을 붙이지 마세요.
그 다음에 심지어 가지고 와서 조금 플러스 하다가 완전히 자기 것으로 내어 놓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가 하나님이 약속하신 축복에 설수 없습니다. 그래서 대표적인 축복, 시대적인 축복 우리가 이미 받았습니다. 하나만 하면 됩니다. 구원의 감사와 말씀이 성취된 눈이 그리고 기도가 구체적으로 말씀안에서 성취되고 이루어지는 이 눈만 떠지면 여러분 가는 길 어려워도 상관없습니다. 여러분 발판이 됩니다. 여러분 가는길 어떤 상황에서도 실패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승리하게 되어있습니다. 잠깐은 실패하는 것처럼 보일수 있지만 상관없습니다. 그 자리에 뿌리내리시고 흔들리지 마세요. 흔들리지 않는 사람치고 성공하지 않는 사람 없습니다. 요셉이나 다윗이나 아무리 어려운 것이 있어도 절대로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다윗은 그랬거든요. 죽음속에 몇 번이나 들어갔지만 하나님이 하시고 있구나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승리정도가 아니고 왕이 되었죠. 요셉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곳에 가든지 창세기 37장 1절부터 보여진 그 언약을 붙잡고 흔들리지 않았어요. 노예로 팔려가도 흔들리지 않고 감옥에 들어가도 흔들리지 않고 어디가든지 요셉이 이 약속을 잡고 가는곳에는 어려운곳에 가는 것 같아도 하나님이 그 자리에 함께 하셨습니다. 요셉과 함께 하시매. 이것이 요셉의 성공의 비결입니다. 비결이 다른 것 없어요. 그래서 결국은 하나님께서 요셉을 통해서 세계복음화. 하나님의 목적이 여기 있으니까. 세계복음화 여기에 눈이 열려서 그때 당시 문화가 걺어지고 가는것이니까 나귀가지고 가져가고. 쌀을 팔면서 구체적으로 팔면서 보내는 모든사건속에서 복음화의 역사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요셉을 통해서 결단코 흔들리지 않는 그 사역속에서 승리하게 되는 축복을 보았습니다. 그 승리가 엄청난 승리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교회에서 다른 일이 없습니다. 구원과 말씀과 기도, 그것이 하나가 되어 그 속에 우리가 뿌리내리고 조금만 지나면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사실이 날마다 내 현장에서 찾아질 것입니다. 승리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승리하는 참된 비결이 이제는 말씀으로 내 안에 다 이루어진 축복을 찾는것입니다. 현장에서 반드시 승리할 말씀으로 성취될 것을 보는것입니다. 주의 종들에게 구원과 말씀과 기도의 뿌리를 내리고 이 축복과 역사를 날마다 찾고 찾아지는 감사와 기쁨이 넘치도록 역사하여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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