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주의 구원을 본 자의 눈
2006-04-16 00:00:00
관리자
조회수   29

유튜브

저화질

다운

MP3

녹취

요약

할렐루야!
인사하겠습니다. 평강하십시오. 안녕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서론 : 복음 안에서 보낸 고난주간과 부활절
오늘 부활절입니다. 예전 같으면 지난주간이 고난주간이 되어서 금식하고 울기도 하는 주간이 되었을 것이지만, 지금 복음을 붙잡고 해방의 순간, 감격의 순간, 기쁨의 순간이 되어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편안히 밥 잘 먹고 지냈습니다. 여러분도 그리 했을 것입니다. 옛날 생각하면서 너무 편안해서 한편으로는 이상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합니다.
기독교계에서 나오는 신문을 보니까 고난주간이라고 각종행사를 하는데 십자가를 지는 행사를 하는 겁니다. 인간이 백번 천 번 십자가를 져도 구속하는 십자가는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의 고난을 체험한다고 십자가를 지고 행사를 하면서 교회가 통곡을 했다고 했습니다. 통곡할 이는 사단, 마귀이지 우리 성도는 아닙니다. 우리 성도는 십자가로 나음을 얻었고 축복의 역사 속에 서게 되었습니다. 믿습니까?
옛날 같으면 금식을 삼일은 했을 겁니다. 그래서 배고파서 짜장면 생각도 했을 것인데, 너무 감사한 생각이 듭니다. 십자가로 인해서 자유와 평화와 감사로 축복해 주셨는데, 우리가 사단이 통곡해야 할 통곡을 왜 합니까? 우리는 십자가를 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로 인해서 자유와 평안과 축복을 받을 뿐 다른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부활절을 맞이하면서 새삼스러운 감사도 있고 미안함도 있고 그렇습니다. 이런 감사가 없다면 구원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이 사실을 알면 미안하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본론 : 어떤 눈으로 세상을 보며 살 것인가?(인생의 기준, 잣대)
1. 본문배경 : 아기예수를 구원자로 보고 예언하는 선지자들
오늘 제목을 구원받은 자의 눈이라고 했습니다. 어떤 눈으로 세상을 보며 살아갈 것인가 배경입니다.
예수님의 부모들이 율법 따라 행하려고 성전에 들어갈 때에 예수님을 기다리는 두 명이 있었습니다. 첫 해에 첫 번째 낳은 아들을 하나님께 드리는 율법적인 배경이 있어서 그 율법을 따라서 예수님을 하나님께 드리는 의식을 행하려고 성전에 들어갔을 때의 일입니다.
⑴ 시므온(눅2:28~34)
그때에 한사람은 시므온이었습니다. 그 시므온이 예수님을 안고 축복을 하는데 28절에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그 부모가 그 아기에 대한 말들을 기이히 여기더라. 시므온이 저희에게 축복하고 그 모친 마리아에게 일러 가로되 보라 이 아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의 패하고 흥함을 위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 되기 위하여 세움을 입었고
⑵ 안나(눅2:36~39)
그 다음에 또 한분은 안나라는 여선지자입니다. 36절에 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 매우 늙었더라 그가 출가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과부 된지 팔십 사년이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구속됨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하니라 주의 율법을 좇아 모든 일을 필하고 갈릴리로 돌아가 본 동네 나사렛에 이르니라, 예수님이 원래 베들레헴에 출생했지만 성장은 촌구석에 들어가서 나사렛에서 자랐다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 시므온을 통해 축복하신 후에 어머니 마리아를 통해서 하신 말씀을 생각해 봐야 하겠습니다. 34절에 시므온이 저희에게 축복하고 그 모친 마리아에게 일러 가로되 보라 이 아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의 패하고 흥함을 위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 되기 위하여 세움을 입었다고 했습니다.
구원받는 자의 눈,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을 어떻게 보며 내 인생을 어떻게 보느냐? 잣대가 예수그리스도,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 이것이 우리 삶의 잣대입니다.

2.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의 눈으로 세상과 현실을 봅시다.
오늘은 부활절입니다. 예수님이 원수의 머리를 깨뜨리고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흑암과 죄악의 원조인 사단의 머리가 깨어졌습니다. 우리는 이제 그 앞에서 떨거나 지배당할 이유가 없습니다. 사단은 이것을 모르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구원받은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현실을 볼 때에 이 사실을 확실히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⑴ 부활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여인과 제자들)
예수님이 부활 후에 이 사실을 제자들에게 전하기 위해서 40일간 말씀을 전했음이 사도행전에 나오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제자들이 예수님이 살아나셨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보고 귀신을 본 것처럼, 다른 영을 본 것처럼, 안 믿었기에 그랬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인간이 죽었다가 살아난 자가 없습니다. 이게 제자들조차 이해가 안 되는 겁니다. 마리아와 예수님을 따르던 여자들이 예수님의 살아나심을 천사로 통해 듣고도 안 믿었습니다. 한번도 나타난 적이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성지순례 때에 이스라엘의 무덤을 보니까 성경의 말씀처럼 여자들이 굴리기 힘들 정도로 장정 5~6명은 있어야 굴릴 수 있는 돌이였습니다. 옛날에 소가 끌고 다녔던 연자 맷돌도 크지만, 이스라엘의 무덤을 막았던 굴이 얼마나 큰지, 무덤 안에는 침대와 안방도 있었습니다. 이게 유대인의 장례 풍습이었습니다.
연약한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부활하셔서, 예수님 혼자서 그 돌을 옮겼다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시체가 썩지 않도록 향수를 바르기 위해서 가면서 누가 이 돌을 옮길 수 있을까 걱정했습니다. 그런데, 벌써 천사들이 예수님의 돌을 옮겨놓고, 옷을 정리해 놓고 여자들이 왔을 때에 너희들보다 앞서 갈릴리로 가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자들이 절대로 안 믿는 겁니다.
절대로 믿을 수 없는 것이 사람이 죽었다가 살아났다는 이야기입니다. 냉동권사 이야기도 완전 죽었다가 살아났다고 뉴스가 나왔지만 전부 거짓이었습니다. 혹시 기절했다가 살아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몸에 창을 찔러 물과 피가 다 흘러나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죽었다는 사실은 군대들이 다 인정을 했습니다. 십자가에서 안 죽으면 끌어내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요셉이 죽었다는 것을 확인하고 예수그리스도를 장사했습니다.
그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무덤에서 살아나시면서 천사가 돌을 옮기고 무덤을 찾은 여자들에게 살아나셔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에 가셨다고 했습니다. 우리수준의 믿음은 죽은 무덤에 찾아가는 수준의 믿음밖에 안됩니다. 그 당시의 인간으로서는 상상이 안 되는 부분입니다.
⑵ 부활이 믿어진다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보면, 이 예수그리스도 죽었다가 성경대로 살아나셨다. 이 사실이 믿어진다. 기적중의 기적입니다. 어떻게 그걸 믿을 수 있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이 사실을 믿고 찬양을 드린다. 부활절예배인데, 얼마나 위대한 역사요 축복중의 축복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하기에 우리를 엄청난 자리에 앉히셨습니다. 초대교회 사도들도 못 믿는 것을 성령으로 우리에게 믿게 하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이 사실을 안 믿는 분들이 이 자리에는 없습니다. 그래야, 그분이 구원주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복음과 종교에 대한 바른 기준으로 보며 승리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복음을 시작할 때에 바로 시작해야 합니다. 죽음과 부활의 예수그리스도 바로 믿고 붙잡는 것을 복음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때부터 일곱 가지 축복이 우리의 기도 속에서 계속되고 그 기도가 우리의 현실이 됩니다.
이게 안 되면 자기도 모르게 잘못하면 열심히 믿는다고 하는 이것 때문에 종교에 빠질 수 있습니다. 시작이 바로 안 되면 오는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종교를 바로 이해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복음과 종교를 구분 못합니다. 그래서 옛날에 신학원에 가서 율법과 은혜냐? 이 책을 사보라고 권면합니다. 완전 복음으로 붙잡고 서게 될 때에 시간이 갈수록 형통해 지고 길이 열리게 되고 축복의 문이 열리며 연약한 부분이 치료되고 강건하게 하나님의 인도받는 문이 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복음과 종교를 구분 못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우리 속에 이런 분위기가 있습니다.
⑴ 모든 사람이 복음을 잘못 이해하고 있습니다.
① 모든 종교가 같다고 생각 합니다
② 종교는 선을 행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을 행하는 것이 기독교의 목적으로 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하면서 조금만 연약해서 실수하면 불신자들이 예수 믿는 사람이 그러냐? 그러면 기가 꺾입니다. 복음을 바로 알면 그런 소리를 들어도 당당할 수 있는데, 예수 믿으면 선한 일을 해야 한다는 여기에 잡혀서 할일도 못하고 할말도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사회에서 복음과 종교가 혼돈이 되어서 종교 선한일 그러면 아무것도 못하고, 사단에게 붙잡혀서 흑암에서 못 빠져나오게 됩니다.
옛날에 걸핏하면 거짓말하면 지옥 간다고 합니다.
우리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과거사입니다. 끝났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복음 속에 서게 될 때에 종교와 상관없이 우리는 이미 구원받았습니다. 구원받은 자의 눈으로 모든 사물을 보게 되고, 축복과 저주가 어떻게 나오는지 알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공을 쌓고 덕을 행하는 것이 구원의 길이라고 착각합니다.
③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라 생명입니다(롬8:2).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배경이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과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했습니다. 저주 속에서 종교로 사단의 운명에 빠진 자들이 아닙니다.
④ 종교는 사람이 만들었고 복음은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종교는 사람이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첫 번부터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도저히 사람이 하나님을 찾아갈 수 없기에 복음은 하나님이 사람을 찾아오셨습니다. 이것이 성육신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봅니다. 이것을 확실하게 구분해야 합니다.
ⓐ 원죄로 인해 인간의 그 어떤 노력도 하나님을 만나지 못합니다
우리는 도저히 하나님을 찾을 수 없습니다. 철학과 모든 노력으로도 안 되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구원 못받고 이 축복과 은혜를 모르면 사단의 손에 빠졌습니다. 이것을 원죄라 하고 운명에 빠졌다고 하는 겁니다. 이것은 축복의 인도받는 것과 다릅니다. 우리는 주권 속에 하나님의 인도받습니다. 하나님의 계획 속에 세워졌습니다. 이것이 안 되었다는 것은 사단의 계획 속에 세워진 것입니다. 이 땅에서 저주받고 영원한 재앙 속에 살게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사단의 계획 속에서 빠져나와서 하나님의 계획 속에 들어왔습니다.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빠져나오는 길이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붙잡을 때에 즉시 사단의 손에서 해방 받고 흑암과 혼돈과 공허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 여기에서 빠져나오려 몸부림치는 것이 미신, 우상숭배입니다.
살려고 애를 쓰고 몸부림치는 것이 종교입니다. 열심히 노력합니다. 신비주의입니다. 참 복음으로 시작을 안 했을 때에 누구든지 여기에 빠져 들어가게 되어있습니다.
그렇다면 지난날을 볼 때에 나도 모르게 우상숭배를 안 하는데도 우리는 미신에 빠지게 됩니다. 나도 모르게 미신, 굿 안하는데 신비주의로 빠집니다. 자기도 모르게 미신으로 빠지는 것을 봅니다. 나도 모르게 성경을 보면서 성령인도 받는다면서 손가락으로 구절을 찍어서 그게 나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이라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떤 분들은 자기도 모르게 신문의 사주팔자를 봅니다.
지금도 옛날사람들은 내 앞에 나타나지를 않고 피합니다. 왜냐하면 목사님은 기도하면 내 속을 다 들다보는 줄로 압니다. 젊은 사람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나도 모르게 복음 없이 열심히 하다보면 종교로 신비로 빠지게 됩니다.
오늘 교회현상을 보시기 바랍니다. 어쩌다가 이 자리에 앉았습니까? 모든 저주와 재앙에서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벽하게 해방 받았습니다. 이 축복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 열심히 할수록 3~4대까지 망합니다. (출3:4~5)
부모가 했던 실패를 자기도 그대로 대물림합니다. 조상부터 내려오는 모든 저주와 재앙에서부터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해방 받을지어다. 조상의 실수를 더 이상 반복하지 않는 눈,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비밀을 반드시 붙잡아야 합니다.
⑵ 복음과 종교를 구분 못하는 배경에는 유일성에 대한 불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종교와 복음이 잘 구분되지 않는 배경 속에 반드시 예수그리스도만이 구원주시라는 것이 확실히 뿌리내리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① 사단이 최초인류인 아담과 하와를 넘어뜨리고, 역사 속에 사람들을 넘어뜨린 전략은 인간의 정체성에 혼란을 주어서 자신이 구원자인 것 같은 혼란에 빠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게 안되니 빠지는 게 뉴에이지에 네가 구원자다, 모든 구원을 나로부터, 그래서 나온 것이 바벨탑의 역사입니다. 네가 할 수 있다. 인간이 할 수 있다. 그게 바벨탑의 역사입니다. 승리할수록 허망해지고, 성공할수록 실패하고 공허해지는 겁니다. 네가 하나님이 될 수 있다. 이게 아담, 하와를 꼬인 방법입니다.
네가 하나님이다, 그래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그것은 속임수입니다. 너는 하나님의 자녀이다. 모든 것을 내게 능력주시는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할 수 있다는 것이 우리의 고백입니다. 여기서 흑암의 역사가 뚫고 들어올 수 없는 축복의 열쇠가 됩니다.
② 반드시 예수그리스도만이 구원자가 될 수 있습니다.
ⓐ 십자가 :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지만, 죄 없으신 분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인간의 모든 고통을 체험하셨고, 십자가에서 대속물로 죽으심으로 모든 인류를 대표하여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케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사단권세를 이길 분이 오직 하나님 한분뿐입니다. 사단이 하나님을 대적했지만, 하나님이 인간을 죄악에서 건지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분이 성육신하신 예수님이십니다. 그래서 이 예수님의 축복과 은혜의 역사를 혼돈해서, 오늘 부활절 십자가지신 예수를 영지주의자들은 예수님은 하나님이기에 고통이 없다고 이해합니다.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완전 인간의 몸을 입고 하나님이 직접 이 땅에 오셔서 인간이 당하는 모든 고통을 다 당하셨습니다. 그래서 너무 고통스러워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너무 고통스러워서 쓴 포도주를 진통제로 마지막 단계에서 먹고, 그 다음에 다 이루었다 선언하시고 운명하셨다고 했습니다.
바로, 예수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지만, 그분은 사단의 권세를 깨뜨릴 수 있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육체를 입으셨습니다. 우리는 그 육체를 입으신 하나님의 붙잡는 순간에 예수 그리스도 사단의 권세를 깨뜨리셨습니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 이외에는 이 땅에 구속주로 오신 분이 없습니다. 베드로가 말한 것처럼 행4:12에 예수그리스도이외에 구속할 자가 없다는 것을 잡아야 합니다.
전혀 죄가 없어야 합니다. 죄 있는 자는 대속물로 죽을 수 없습니다.
아담의 후손으로는 안 됩니다. 한사람도 죄 없이 태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그 분은 이 땅에 오셔서 죽으셔야 합니다. 그래야, 이 축복을 구체적으로 회복할 수 있습니다. 창2:17에 선악과를 따먹으면 정녕 죽으리라 그 선언이 율법 속에서 하나님의 공의를 구체적으로 이루시는 일에 예수그리스도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우리가 안 죽어도 되도록 하였습니다.
ⓑ 부활 : 죽으셨다가 성경대로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해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리고 죽는 것으로 끝나면 정말 허망합니다. 그런데, 죽으셨다가 성경대로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해서 살아나셨습니다. 할렐루야! 이게 부활절입니다. 그래서 부활절 정말 기뻐해야 합니다. 이 말을 들을 때에 입이 귀에 걸려야 합니다. 너무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하면서 미안하고 그래야 합니다.
반드시 부활하셔야 하는데 고전15:3에 보면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 그분이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도행전의 전도내용 그대로입니다.
이때부터 예수그리스도를 붙잡고 하나님께 나아갈 때마다 시작부터 사단과 흑암의 권세는 떠나가게 됩니다. 시작부터 흑암권세는 가까이 할 수 없고, 예수그리스도 붙잡고 기도하는 속에 모든 것이 성취되고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 모든 문제 해결자라는 것이 여기서부터 이루어지는 겁니다.
ⓒ 성령 :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을 때에 성령이 영원히 함께 하십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이 사실을 믿을 때에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이 내게 임재하십니다. 성령이십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부활하신 주님을 영접하고 붙잡는 순간에 성령이 내주하셨다 엄청난 역사입니다. 구원받는 순간에 성령이 오시라가 아니라 이미 와 있습니다. 이 성령이 와 계시는 것을 확신하기만 해도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흑암세력은 꺾이게 됩니다.
성령이 우리의 삶 속에 어떤 사건과 환경 속에서도 평안을 주십니다. 내가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다르다고 했습니다.
ⓓ 성도의 삶 : 올바른 예배회복으로 유일성을 회복 합시다
바로 우리에게 예배의 승리입니다. 교회에서 예배하는 것, 예배가 예수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겁니다. 피 없이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는데 예수그리스도 영원한 피 흘림으로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갈 길을 여셨습니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양과 소의 피가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가서 기도하기만 하면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역사, 이때부터 ‘오직예수’라는 말이 이때부터 실감이 납니다. 모든 문제 부딪힐 때마다 인본주의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게 되어있습니다. 우리의 체질이 예배체질이 아닌데,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정말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의 체질이 사단이 틈타는 체질이 많습니다. 그래서 사단에게 속지만 않으면 됩니다. 요8:44에 이 거짓말쟁이 사단에게 속는 체질만 해결하면, 모든 곳에서 제사 드리는 심정, 어느 곳에 가든지 기도부터 하고 하나님의 목적과 방향으로 인도받게 해 주옵소서. 지속해서 인도받으면 승리하게 되어있습니다.
결론 : 복음의 눈으로 세상을 보며 승리 합시다
성령의 인도받아 승리하는 한 주간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댓글

댓글쓰기 권한이 없습니다.
번호 제목 본문 설교일
1484 전환점을 이룬 안디옥 선교 행11:19-30 2025-04-27
1483 우리에게 주시는 영원한 메시지 고전15:1-11 2025-04-20
1482 새로운 싸움을 위하여 삿7:9-18 2025-04-13
1481 날마다 영적싸움에 승리하라 삿7:1-8 2025-04-06
1480 이 시대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해답 삿4:1-10 2025-03-30
1479 하나님이 쓰시는 기준 삿3:12-23 2025-03-23
1478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삿3:7-11 2025-03-16
1477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삿2:6-10 2025-03-09
1476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삿1:1-7 2025-03-02
1475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단12:1-4 2025-02-23
1474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단11:28-39 2025-02-16
1473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단10:10-21 2025-02-09
1472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단9:20-24 2025-02-02
1471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단8:15-27 2025-01-26
1470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단7:9-14 2025-01-19
1 2 3 4 5 6 7 8 9 10 ... 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