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자기를 낮추는 자(2)
2007-07-29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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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 할렐루야! 평강하십시오. 안녕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복음과 율법, 섞인 복음에 대한 설명이 나가면서 여러분도 모르게 오해할 수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것이 구분이 되면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세상에 나가도 상관없습니다. 지난주에 이어 렘넌트들에게 바른 복음관이 심어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무엇이 먼저 들어와 있는지가 참으로 중요합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잘하든 못하든 교회가 좋든 나쁘든 보수에서, 말씀을 믿는 곳에서 교육을 받았고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 교리 속에서 자랐습니다. 사회에 나가기 전에 제게 먼저 형성된 것이 이런 것이기에 많은 경우 저는 방황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렘넌트들에게 주일학교에서 말씀을 배우면서 복음이 먼저 자리 잡게 만드는 것은 더 없는 행복입니다. 그런데 이 복음은 하나님이 은혜 주셔야 확인이 되고 자리를 잡게 되는데 잘 알 것 같으나 헷갈리기도 합니다.
간단하게 복음에 대한 주제를 짚고 넘어가고자 합니다. 먼저 생각할 것은 복음과 종교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종교입니다. 그렇게 한다고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아닙니다. 결국 그렇게 해서 만나는 모든 신들은 귀신들입니다. 그 결과 우상숭배를 하게 됩니다. 이런 경우에는 복음 있는 것같이 열심히 했지만 결국 저주와 재앙으로 그 결과가 비참해지게 됩니다. 모든 종교는 우상 숭배하는 것이지 하나님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떻게 만납니까? 하나님은 여러분이 착하든지 선하든지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찾아오셔야 합니다. 이것을 두고 라 합니다. 하나님은 예정하신바대로 구원할 자에게 찾아오십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나타내시는 만큼만 볼 수가 있습니다. 열심히 노력하면 오히려 다른 것으로 빠지게 됩니다.
제일 첫 번째 훈련이 교회 와서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쉼, 평안을 얻는 것입니다. 마구 활동하는 것이 아니고 가만히 있는 것이 먼저 할 일입니다. 잘하려고 하다보면 오히려 점점 딴 곳으로 빠지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의 필요에 따라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이를 두고 계시의 종교라 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자신을 나타내주시지 않으면 볼 수도, 깨달을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창세전부터 자신을 나타내시기로 한 사람을 계획하셔서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나타내십니다. 이것을 복음이라고 합니다. 교회에 와서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가만히 있어야합니다. 열심히 기도해서 만나려하지 마십시오. 처음 다락방 운동 속에 들어와서 복음을 우선하고 깨닫게 될 때 제일 강조한 것이 가만히 있으라는 겁니다. 기도도 너무 많이 해서 탈이라 했습니다. 저는 매년 아무리 못해도 연초에 20일 금식을 하곤 했습니다. 한 끼에 건빵을 하나 먹고 물 한 컵을 마시고 했는데 건빵이 먹고 싶어서 때만 되면 건빵을 먹으려고 시간을 기다리다보니 준비도 안 됩니다. 그렇게 해야만 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참 복음을 깨닫고 보니 우리가 할 일이 없습니다. 그저 하나님만 바라보고 있으면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자신을 나타내 보이셔야 하나님을 깨닫습니다. 여러분이 몸부림을 쳐서 깨달을 수 있으면 별 짓을 다 해보겠지만 그렇게 되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참 복음으로 들어와서 제일 먼저 해야 하는 것이 가만히 있는 것입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 앞에 섰을 때 뒤에는 애굽 정예부대가 쳐들어오고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힌 현상과 같습니다. 어찌할 줄을 모를 때 모세가 한 말이 "가만히 있어 하나님이 하실 일을 보라"였습니다. 그것으로 끝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지팡이를 내밀게 하시고 홍해를 갈라놓았습니다. 그리고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갈라진 길을 가기만 하면 됐습니다. 뒤에서 애굽 정예부대가 마차를 타고 빨리 달려와도 상관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과 그 애굽 군대 사이에는 하나님의 영이, 불기둥 구름기둥이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애굽 군대의 수레바퀴를 뽑아서 혼란시키니까 따라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혼란한 틈에 이스라엘 백성은 다 건너갔습니다. 천천히 가도 되고 빨리 가도 되었습니다. 다 건너가고 나자 혼란스럽던 애굽 군대 위로 물이 합쳐졌습니다. 흑암의 세력은 멸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보호받는 것도, 인도받는 것도, 가는 것도, 오는 것도 은혜로 되는 것이지 개인 스스로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일단 처음으로 교회 오신 분이나 복음 깨닫기 원하시는 분들은 가만히 계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이 보이면 그때부터 열리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보이지도 않는데 하려고 욕심을 부리면 부릴수록 오히려 흑암이 틈타고 더 괴롭게 됩니다. 복음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여러분을 찾아오시기까지 기다리시면 됩니다.
오늘 새벽에 신봉준 목사님이 이어령씨에 관한 말을 했는데, 학교 다닐 때 이어령씨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그 말의 뜻을 다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언어가 풍부한 사람이며 기독교 자체를 인정 안 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 이 사람이 기독교로 개종해서 교회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 뒤에 자신이 신문에 광고를 하나 내었습니다. 손자가 의학으로는 치유가 안 된다고 했는데 교회에 가서 완치가 되었다 합니다. 그러나 신문에서는 "내가 절대자를 영접하고 모시게 된 것은 아이가 병에 나아서가 아니라, 문학 속에 깊이 몰입할수록 고독을 느꼈기 때문이다."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문학도 복음 없이 하면 할수록 죽게 됩니다. "그럴수록 절대자를 받아들이게 되어있다."고 했습니다. 고독할수록 절대자를 용납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깊이 문학 속에 들어간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말입니다. 이 사람이 이런 고백을 했을 때에 이 사람에 대해 알던 사람은 마치 김정일이 남쪽에 와서 자수하고 세례를 받는 것과 비슷하게 느낄만한 일이었습니다. 50년간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고독에서 떠날 수가 없었는데 예수를 영접하고 복음 속에 들어와서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그 사람도 처음부터 예수를 안 믿은 게 아니고 처음에는 예수를 믿으려고 찾았으나 아무리해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화가 나서 오히려 반대하게 되었습니다.
종교는 애를 쓰며 신을 찾으려 할수록 다른 신이 옵니다. 그래서 찾는 신은 우상숭배이며 귀신의 역사이지 하나님은 찾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본인이 직접 여러분에게 오셔서 자신을 나타내시면 그만큼 깨닫게 됩니다. 기독교의 특성은 한 마디로 계시의 종교입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복음과 율법이라는 문제입니다. 유교에서든 불교에서든 그 사람이 뭘 믿느냐에 따라 도덕이 따라옵니다. 그런데 원래 율법에는 도덕법이 있고 진짜 율법이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도덕법을 율법으로 알고 있습니다. 율법 때문에 바리새인들이 독사의 새끼들이라고 나무람을 당했습니다. 그 이유가 예수님이 오셔서 그 율법을 성취시키셨는데도 그 율법을 따라가고 복음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행동이 나쁘다는 말이 아닙니다.
율법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만나도록 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을 때에 하나님 백성에게는 이런 수준의 도덕이 따라와야 된다는 것이 도덕법입니다. 도덕법이 율법의 근본이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는 길을 주었는데 그게 율법입니다. 율법의 제일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인데 바로 제사, 피 흘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율법 외에 도덕법을 주었습니다.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지요. 그런데 예수님은 그 율법에서 오대 제사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데 이 땅에 예수님이 오시면서 하나님 만나는 길을 다 완성해버렸습니다.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심으로 구약에서 했듯이 짐승 잡을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 그 이름 한 분이면 다 끝나버립니다. 그래서 성경은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마5:17)고 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구약의 하나님을 만나는 율법의 본질을 완성하고 온전케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제 양을 붙잡고 교회 와서 양의 피를 흘리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만으로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예배의 중심 내용이 예수 그리스도, 피입니다. 이것으로 다 끝납니다. 바로 그 이야기가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마5:17의 배경입니다. 이걸 모르고 구약의 도덕을 지키는 것을 율법 지키는 것으로 생각하면 잘못입니다. 구약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자녀로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그 수준을 말한 것이 도덕적 율법입니다. 지금은 도덕적 율법이 예수 그리스도로 영접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세계를 바꿀 수 있는 자들의 인격이 복음에서 온 율법입니다.
율법에 매이지 말라는 말은 율법 수준의 도덕이 아니고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복음 속에 서게 된 우리는 저절로 세계복음화가 되게 되어있습니다. 그때부터 우리가 가는 모든 길에 성령이 인도해 주시니까 도덕적인 기준은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다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특별히 무얼 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율법입니다. 생명을 받게 되면 저절로 그 생명의 성장에 따라 모든 행동이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전도와 선교의 역사도 따라오게 되어있습니다. 이걸 억지로 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어느 순간 여러분이 복음 속으로 들어가서 누리게 되면 눈이 열리게 됩니다. 전도해야할 사람, 그리고 내가 세계복음화 위해 무얼 해야 되겠느냐 하는 눈이 열리게 됩니다. 이런 자연스러운 역사들이 복음입니다. 그래서 복음은 생명이고 생명운동이라 합니다. 아이를 낳아서 부부가 밤새도록 다리, 팔을 잡아당기면 금방 죽어버립니다. 가만히 두어도 이 아이는 생명이 있기에 성장합니다. 성장하는 만큼 머리와 행동이 자라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 금방 믿고 뭔가 행동을 잘 하려고 하는 것 자체가 무리입니다. 뭘 잘하려 말고 참 복음 붙잡고 생긴 대로 노시기 바랍니다. 잘 하려고 애를 쓰면 외식이 나오게 됩니다. 잘 하려고 붙잡을 게 아니고 참 생명의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고 누리면 저절로 전도와 선교도 되어지는 것이 체험이 됩니다.
그래서 일단 교회에 오면 참 평안을 먼저 누리십시오. 그리고 참 평안을 주신 주님을 누리십시오. 무얼 하려고 하는 것은 그 다음의 문제입니다. 그 다음에는 저절로 세계복음화 할 수 있는 생명이 자라면 인격, 행동은 절로 따라옵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인도하고 이끌어주십니다. 그러면 거기에 성공도 따라오고 축복도 같이 따라오게 됩니다.
예수 믿는 것이 너무 쉬운데 지금까지는 너무 어려웠던 배경이 내가 하려해서입니다. 예수를 믿고 성장하는 것은 스스로가 아닙니다. 내 안에 주어진 예수 생명과 예수 능력으로 모든 일 감당할 때 그 속에서 다 나옵니다. 먼저 여러분은 복음과 종교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율법과 복음의 다른 내용은 복음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생명입니다. 그 생명의 주체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율법은 예수님을 통해서 만나는 게 아니고 율법을 통해서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행하실 일을 하나의 그림자로, 양과 소를 잡아서 피를 흘려서 하나님을 만나는 방법을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이해가 잘 안되면 진짜로 복음 이해가 잘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실 것을 계시하고 예언하셨는데 그것을 못 깨닫고 옛날 것을 계속 고집하고 복음을 깨닫지 못하니까 예수님이 독사의 새끼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이방인의 집에 가서 할례 없는 자들과 함께 먹었다고 해서 초대교회가 얼마나 비방했습니까? 그러나 할례조차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 완성되었습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처럼 성기의 끝을 잘라서 피를 흘린다고 해서 할례이고 언약의 백성이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로 말미암아 다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이걸 자꾸 모르고 예수 그리스도 없이 하나님을 만나고 천국가려고 하니까 예수님께서 너무 화가 나서 독사의 새끼들아 라고 말을 했습니다. 이를 잘 못 이해하면 안 됩니다. 우리 옛날 조상들도 예수를 잘 믿고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구원의 반열 속에 들어간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옛날 예수 믿는 조상들이 하나도 구원 못 받은 것처럼 바리새인과 비교하면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복음을 받고 예수를 믿고 은혜 입으면 우리나 조상들이나 똑같이 구원 받습니다. 조상들이 구원을 못 받았다고 걱정되어 다른 제사를 지내고 하는데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 받음을 아는 사람들은 다 구원 받았습니다.
저는 부모님이 확실히 구원 받았다고 믿습니다. 아버지는 천식을 앓으셔서 아마 굉장히 어렵게 돌아가지 않겠나 걱정을 했습니다. 옆에서 혹시 흑암들이 틈탈까봐 돌아가실 무렵에 늘 자리를 지켰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보다도 오히려 아버지가 더 조용하게, 흑암 틈탈 여가도 없이 권사님인 큰 어머니가 가슴을 쓸어드리는 동안 고통 없이 가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마지막을 통해서 증거를 보여주셨습니다. 어머니는 야단스런 신비주의였습니다. 추운 겨울이라도 새벽기도에 나가셨습니다. 아버지는 논물 보러는 일찍부터 가셨는데 새벽기도 가시는 건 못 봤습니다. 그런데 본인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확실히 믿었으며 하나님이 모셔갔다 싶을 정도로 평안히 돌아가셨습니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합니까? 우리가 복음의 참 원리를 모르면 열심히 하는 사람은 천국에 가고 열심히 안하는 사람은 복음이 없어서 안하는가 보다 생각하는데 아닙니다. 복음이 들어갈면 갈수록 조용합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에 있는 것처럼 화닥닥 거리지 않습니다. "가만히 있어서 내가 지시하는 곳으로 가라." 그러면 다른 소리 할 것도 없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주님이 지시를 하시면 그리로 가면 됩니다. 가면 하나님이 모든 환경을 다 만들어주십니다. 내 환경, 더러운 성격 다 상관없습니다. 성격과 상관없이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그 길로 가면 됩니다. 그러면 다 됩니다.
그래서 복음을 잘못해서 율법과 오해하면 엉뚱한 짓을 하고 지옥 갑니다. 바리새인들에게 독사의 새끼들아 라고 하신 것은 지옥 밑바닥에나 가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복음관을 바로 가지고 율법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율법은 하나님을 만나는 방법입니다. 이 율법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시면서 완성을 했습니다. 그래서 신약에 교회 오면서 짐승을 데리고 오는 법이 없습니다. 수 천 명이 양 한 마리만 끌고 왔다 해도 돈이 얼마입니까? 그러나 지금은 필요가 없습니다. 십일조나 주일헌금 등은 감동해서 저절로 따라 오는 것이지 그것 때문에 힘들고 노력하고 애쓰는 것은 아닙니다. 저절로 하게 됩니다. 선교헌금 봉투를 꽂아놓으니 봉투를 빼면서 불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불평할 것도 없습니다. 축복과 은혜이므로 기쁨으로 합니다.
율법적이 된다는 것은 내가 예수를 믿으면서 뭔가 도덕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면 정말로 오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하신 마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오히려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했습니다. 예수님의 표상에서 예수님이 오심으로 구약의 하나님을 만나는 길을 완성했습니다. 우리는 그 예수님을 믿음으로 내 안에 영접함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일이 완성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하나님을 만나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누리며 삽니다. 이걸 가지고 복음이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성되었습니다. 그리고 율법을 지키면서 하나님의 자녀된 자들의 수준을 말해주는 것이 도덕법입니다. 구약의 하나님을 만나는 길을 주신 율법의 백성도 이런 수준의 백성으로 살아야 한다는 도덕법에 주신 것처럼 세계복음화의 역사를 이루기 위한 우리에게 하나님은 복음으로 사는 사람은 이런 수준에 살아야 된다는 것은 따라오는 대답입니다. 저절로 생기는 것입니다.
행동을 잘못 판단해서 율법이다 뭐다 하는 사람은 큰일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된 사람은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백성된 수준에 이르게 됩니다. 생명의 성장이요, 이걸 가지고 예수 능력이며 성령의 인도 받는 것이라 합니다. 그걸 자꾸 잘못생각해서 율법이라고 하면 다 죽이는 것입니다. 일단 예수를 믿는 사람은 이런 수준의 도덕은 지켜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런 것을 자꾸 잘 못 생각해서 술 먹어도 된다하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많이 먹어도 지옥에 가지는 않지만 참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계 복음화 할 수준은 아닙니다. 잘못 이해를 하면 엉뚱한 곳으로 빠지게 됩니다. 여러분 담배 피는 사람과 같이 있으면 진짜 더러워 못 봅니다. 차안에서 담배를 피우면 코가 막혀 죽을 지경입니다. 요즘엔 21세기 수준의 사람들도 택시 안에서는 담배를 못 피우는 게 아니라 안 피웁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고 세계 살릴 수준으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떻게 옛날 도덕적인 수준 속에서 삽니까? 구약의 도덕적인 수준은 다 완성되었기 때문에 그것이 저절로 없어진 겁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에서 못 박히심으로 구약의 제사제도도 없어진 겁니다. 그래서 구약의 도덕적 수준이나 하나님 만나는 방법인 제사에서 다 해방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들은 그것들이 필요 없이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자격자들입니다.
그래서 세계복음화 역사를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수준에서 세계를 품을 수 있는 사랑이 요구됩니다. 신약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랑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들어가서 복음 전파의 눈이 열리면 사랑은 저절로 되게 됩니다. 미움가지고 이웃을 전도할 수 없습니다. 이웃을 전도해 보면 저절로 사랑, 우정이 저절로 나가게 됩니다. 거기에 전도할 마음을 가지면 괜히 말도 붙여보고 집에 찾아가 보기도 하고 합니다. 그게 세계복음화의 도덕이며 수준입니다. 지금 교회 안에서 예수 믿지만 이상한 사람들도 어느 순간에 세계복음화의 수준이 그 사람에게서 나오게 됩니다.
그 다음에 또 중요한 것이 요즘 섞인 복음이라는 말씀이 많은데, 복음이 완성되지 않으면 섞인 복음이 됩니다. 복음이 유일성으로 확신이 없으면 제일 많이 나오는 것이 유교의 율법입니다. 교회 안에서 보면 복음을 통해서 나오는 전도, 선교의 율법보다도 어른들에게서 배웠던 그 율법을 자기도 모르게 강조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어린 아이가 어른 수염을 잡아당기는 것은 보통입니다. 어릴 때에는 오히려 귀엽다고 뺨도 맞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릴 때에 그걸 용납할 수 있었던 것은 어려서 모르기 때문입니다. 복음에 눈을 열게 되면 어른들에게 저절로 겸손해집니다. 저번 시간에 말한 것처럼 진짜 겸손은 복음이 먼저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나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게 되고 정말 나는 구원받을 자격이 없는데 하나님이 선택한 축복으로 구원 받았구나 감사하게 되면 인간의 겸손이 거기에서 나오게 됩니다. 그런데 보통은 복음이 들어가기 전에 유교문화, 제사문화가 먼저 들어갔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를 믿어도 교회에서 강조하는 모든 걸 들어보면 유교문화의 예의범절을 주로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렘넌트들에게 예수를 믿으면서 무슨 문화가 먼저 들어가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복음의 문화가 먼저 들어가면 다 된 것입니다.
갈1:7에 보면「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복음이 완전히 되지 않으면 예전의 종교적인 배경들이 다 섞이게 됩니다. 한국에서 복음이 신비주의로 발달을 한 이유는 예전에 귀신 섬기던 게 많이 남아서 그렇습니다. 신비주의는 시간이 갈수록 망합니다. 혹시라도 마음에 남아 있으면 뿌리 채 뽑아버려야 합니다. 이런 부분이 바로 이해가 되어야겠습니다.
이용하는 복음이 있습니다. 주로 천주교서 마리아를 강조하기 위해서 예수를 말합니다. 우리는 아예 마리아도 똑같이 예수로 말미암아 구원받을 피조물이지 신성시해서 천주교에서처럼 마리아 무죄설, 무태설 등으로 비화를 안 시킵니다. 송현동 밑에 있는 성당을 보면 땡볕아래서도 마리아 상 밑에 빙 둘러 앉아서 성경을 읽고 앉았더라고요. 자기들도 모르게 그렇게 됩니다. 마리아를 높이기 위해 예수를 이용합니다. 마리아에게 기도하며 숭배하면서도 예수님께 기도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기도하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한 번 들어보십시오. 요한복음에 혼인잔치의 비유에 어머니가 부탁을 하니까 예수님이 다 들어줬기 때문에 예수님께 직접 부탁하는 것보다 마리아에게 부탁하는 것이 효과적이기 때문에 마리아에게 기도를 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주님께 직접 기도할 수 있습니다. 어떨 때는 하나님 앞에 직접 나아갑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길인 예수가 바르게 이해되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 다른 복음입니다. 이는 완전히 복음이 아닙니다. 제가 장로교에서만 자라다가 목회자가 되어 처음 감리교 세미나와 연세대 세미나에 참석했습니다. 그 당시 한참 말이 나오던 변선환 교수가 갈릴리 바다에서 예수님이 물 위로 걸어간 것이 아니고 물가 둑을 걸어가니까 물 위로 걸어가는 것처럼 느껴서 그렇게 한 것이지 물 위로 걸어간 것은 아니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책으로만 봤는데 감리교에 가니까 목사님들이 그렇게 배웠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감리교 목사님은 신학 따로, 목회 따로 해야 한다고 합니다. 신학교에서 배운 것은 워낙 현실주의, 자유주의이니까 그게 목회에 적용이 안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시 나와서 목회를 위한 신학을 따로 해야 한다고 합니다. 자기 나름대로 신학을 정비를 해야 자신의 교회를 구축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 좋은 면도 나옵니다. 김홍도 목사님 같은 경우에는 워낙에 틀린 소리를 하니 변선환 교수를 신학교에서 쫓아내버렸습니다. 그러니까 신학생들이 데모를 하고 해서 지금도 고전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라도 보수주의를 고수하고 있는 목사님들이 계시기에 하나님이 그 교단을 축복을 하시고 큰 교회들이 감리교에서 많더라고요. 문제는 전혀 다른 복음을 이야기합니다. 변선환 교수는 예수 밖에도 구원이 있다,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고 합니다. 얼마 전에 천주교 교리와 이신득의 교리를 혼합해서 교리를 만들어 공포를 했습니다. 김홍도 목사님이 우리 교회 안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을 유감이라고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는 구원의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천하 인간에 구원을 주신 다른 이름은 없다고 베드로가 법정에서까지 확실하게 말했는데 지금 이런 분들이 자기 지식을 의지해서 예수 밖에도 구원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주장하던 철인이나 학자들이 얼마나 허무하게 나중에 정신병으로 잘 죽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목사 아들로 태어나 신앙생활 해야 될 사람이 복음을 떠나 공산주의자가 된 레닌 같은 경우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바울이 말한 것은 "다른 복음은 없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는 구원받을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오직 예수가 안 되면 자꾸 다른 게 나올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다시 확인할 것은 복음이 바로 이해가 되고 율법, 종교, 섞인 복음, 이용되는 복음, 다른 복음에 대해서 바른 이해를 바로 해야 합니다. 그래야 복음이 오해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디가든지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와 축복을 누리게 되어 있습니다.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을 드립니다.

기도) 전능하신 아버지여,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참 바른 복음 속에, 유일한 복음 속에 오직 복음 이외에는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복음에 확실하게 서서 승리하는 주의 종들이 되도록 이 한주간도 축복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1. 복음과 종교
1) 종교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사람이 노력하는 것입니다.
① 그러나 인간의 노력으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② 애를 쓰며 신을 찾을수록 다른 신, 귀신이 옵니다.
③ 이것은 결국 우상숭배입니다.
2) 복음은 창세전부터 자신을 나타내시기로 작정한 사람을 계획하시고 그에게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① 참복음 안에서 제일 먼저 할 것은 평안을 누리는 것입니다.
② 노력을 해도 하나님이 자신을 보여주시지 않으면 깨달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③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이 보이면 그 때부터 열리게(문제 보는 눈) 됩니다.

2. 복음과 율법
1) 율법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만나도록 주신 길입니다(구약의 오대 제사).
① 율법과 도덕법으로 나뉩니다(율법 ≠ 도덕법).
② 도덕법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따라와야 할 도덕적 수준입니다.
2) 복음은 생명이고 생명운동입니다.
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율법이 완성되었습니다(제사에서 해방).
② 하나님의 백성이 되면 자연스럽게 백성 된 수준에 이르게 됩니다(생명의 성장, 예수 능력, 성령 인도).
③ 예수 그리스도의 수준에서 세계를 품을 수 있는 사랑이 요구됩니다.

3. 섞인 복음 - 복음이 완성되지 않으면 나옵니다.
1) 전도․선교의 율법보다 유교의 율법을 강조하기도 합니다.
2) 종교적인 배경들이 섞이기도 합니다.
3) 이 있습니다(천주교).
4) 아예 복음이 아닌 이 있습니다.

복음이 바로 이해하고 종교, 율법, 섞인 볶음, 이용되는 복음, 다른 복음 등에 대해서도 이해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복음이 오해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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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본문 설교일
1477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삿2:6-10 2025-03-09
1476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삿1:1-7 2025-03-02
1475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단12:1-4 2025-02-23
1474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단11:28-39 2025-02-16
1473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단10:10-21 2025-02-09
1472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단9:20-24 2025-02-02
1471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단8:15-27 2025-01-26
1470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단7:9-14 2025-01-19
1469 자기의 하나님을 믿음이었더라 단6:16-28 2025-01-12
1468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단5:17-31 2025-01-05
1467 [2025 송구영신예배] 하나님의 유업을 이을 자 갈4:4-7 2024-12-31
1466 땅의 모든 사람을 다스리시는 하나님 단4:28-37 2024-12-29
1465 완전한 승리를 내 것으로 누리는 성탄 눅2:8-14 2024-12-22
1464 언약의 역사를 계속 이어가고 계시는 하나님 단3:8-18 2024-12-15
1463 손대지 아니한 돌 단2:25-35 2024-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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