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신봉준 목사)
2008-03-09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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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 할렐루야! 인사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오늘 제목을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12절에 보시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이번 한 주간 여러분의 걸음걸음마다 생명의 빛이 넘쳐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생명의 빛이 넘쳐나는 현장들 마다 살아나는 역사가 있고 회복되어지는 역사가 있게 되어 집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면 허상을 봐서 그렇지 실상을 바라보면 모든 사람들이 멀쩡하게 살아가는 것 같고, 멀쩡하게 돌아다니는 것 같지만, 모두가 어두움 가운데 방황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아는 순간에 모든 어두움은 물러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그리스도를 모르면 어두움에 다니는 것입니다. 빛 되신 그리스도가 함께 계시면 어둠에 다니지 않을 뿐 아니라 삶의 의미를 발견하게 되고 살아야 할 하나님의 계획과 인생의 이유들이 나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보다 우리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그리스도께로 오는 것입니다. 이것을 구원의 축복이라 하며 생명의 빛을 얻으라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은 유명한 말씀입니다. 여러분, 열왕기상 3장에 보면 솔로몬 왕이 어린 아이를 칼로 둘을 나누라는 재판하는 모습이 나오는 가운데 또 예수님께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쳐야 할지 말아야 할지에 대한 답변과 더불어 오늘 본문의 말씀은 불신자들도 알 수 있는 유명한 말씀 중 한 가지입니다. 성경에서 참 된 지혜를 예시하고 있는 내용을 보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한 여자가 예수님께 끌려왔습니다. 현장범이지요. 예수님께 끌려와서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님께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5절에 보면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하는 말을 보게 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 그 말씀을 하시니까 저희가 그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받아서 어른부터 젊은이까지 다 물러났다 했습니다. 오직 예수님과 여인만 가운데 서게 되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여자에게 물었습니다.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하는 자가 없느냐?” 그렇게 물으시면서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마라” 생명의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서 12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죠.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한 번 받아합시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이제 그만 방황하고 나를 따르라는 말이죠. 그렇게 될 때, 생명의 빛을 비추겠다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두 가지로 살펴보려 합니다. 첫 번째로 현장에서 체포된 간음한 여인에 대해 살펴보고 두 번째로 율법이냐 복음이냐에 대한 내용들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 번째입니다. 현장에서 체포된 간음한 여인입니다. 바리세인과 서기관들이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자를 예수님께 끌고 왔습니다. 많은 학자들이 이 상황을 더러 이렇게 말합니다. “이 상황은 우연히 일어난 상황이 아니다”합니다. 본문에도 나옵니다만 “예수님을 시험·고발할 계획을 가지고 바리새인들이 만들어낸 상황일 것이다” 그렇게 이야기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에는 없는 것이 있는데, 창녀가 없습니다. 창녀가 있다면 돌에 맞아 죽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창녀가 없습니다. 그리고 무당들도 없습니다. 무당도 돌에 맞아 죽습니다. 또 간음한 여자들이 간음하다가 들통 나면 가문에서 내어 쫓김을 당합니다. 그런데 오늘,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혀왔고 함께 간음한 남자도 같이 잡혀야 하는데 남자는 없어요. 이 현장을 보면 미심쩍은 부분이 발견됩니다. 이 사람들이 율법을 지키는 바리새인들이라면, 당장 그 자리에서 돌로 쳐 죽여야 하는데 예수님께 데려 왔습니다. 공개적으로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하는 것을 보게 되어 집니다.

우리가 본문을 통해 중요한 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요, 사실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현장에서 잡힌 이 현장범을 예수님께 데려와서 예수님이 빠져나갈 수 없도록 곤경에 빠트리는 부분이 오늘 본문에 나옵니다. 5절에 보면 이렇게 되어 있죠.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빠져나갈 수 없도록 교묘하게 곤란에 빠트리는 것을 봅니다. 여기서 이 사람을 살려 주라 하면 모세의 율법을 어기는 것이 되고, 돌로 치라 하면, 로마의 법을 어기는 격이 되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사람은 로마인만이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사람을 돌로 쳐 죽이게 되면 로마법을 어기는 것입니다. 이렇게도 또 저렇게도 못하게 교묘히 만들어서 예수님을 시험하는 모습인데, 이 부분을 통해서 우리가 무엇을 볼 수 있냐하면 롬16:19에 보면 전도제자들에게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악(惡)한데 미련하고 선(善)한데 지혜로와라”고 말씀하시는데, 오늘 본문에 보면 악한 사람들이 그 악한 지혜를 가지고 사람들을 얼마나 어렵게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마귀도 우리에게 지혜를 줍니다. 망하는 지혜를 줘서 그렇지요. 경찰들이 찾아내지 못하는 돈들을 도둑들은 기가 막히게 찾아냅니다. 마귀가 주는 것이죠. 어떤 면에서 망하는 사람들은 악한 데는 대단히 지혜롭습니다만, 선한 데는 미련합니다. 그것이 망하는 길인데 사단이 조종하는 것들을 보게 됩니다. 그런 현장 속에서 예수님이 처음에는 아무 말씀 안하시고 땅바닥에 글을 쓰셨습니다. 그러자 주위 사람들이 왜 대답을 안 하느냐고 보챕니다. 7절에 보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그때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그런데 땅에 썼는데 그 현장 속에서 하나 둘, 늙은이로부터 어른까지 물러갔다고 했습니다. 뭐라고 썼기에 거기 모였던 사람들이 물러갔겠습니까?

성경학자들은 이렇게 추축하기도 합니다. 아마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마음을 다 아시고 그 지은 죄들을 다 아시니까 한 사람씩 쳐다보시고는 “너 음욕을 품었지?”라고 쓰셨고 “너 누구 집에 물건 훔쳤지?”라고 쓰셨지 않았겠나 라고 성경해석을 합기도 합니다. 오늘 성경에 보니까 하나하나씩 물러갔다 했거든요. 그래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물러갔지 않았나 라고 성경해석을 한 것을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본문에 보면 중요한 것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돌을 치라”한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하나하나 물러갔습니다. 무엇을 쓴지는 모르지만, 일단“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돌을 치라”는 말씀을 듣고 하나하나 물러갔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을 보여주는 것을 보게 됩니다. 똑같은 문제와 사람과 사건을 놓고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이용해 죽여야 한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들조차도 곤란하게 하는 부분을 봅니다. 하나님이 율법을 주심은 사람을 살리라고 주신 것인데, 그것을 깨닫지 못하니까 율법을 가지고 사람을 죽이는 일에 쓰임 받고 있는 것들을 보게 됩니다. 수술하도록 칼을 주었는데, 수술은커녕 사람을 찔러 죽이는 데 칼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리새인의 모습이죠. 사실은 율법을 이용해 죽여야 한다, 다른 사람을 곤란하게 만드는 부분을 보는데, 예수님은 그 사람을 죽이고자 하시지 않고 살리려고 하시고 죽이고자 했던 악한 사람들까지도 살리려고 하는 예수님의 마음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문제와 사건과 일들을 당할 때에 복음으로 서느냐? 율법으로 서느냐? 너무 중요한 것들을 보게 됩니다. 우리 자신들이 복음을 이해하고 복음을 누리면, 먼저 내가 살고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남을 살리게 되고 나와 관계된 모든 현장들을 살리게 되어 있습니다. 반대로 그렇지 못하고 복음을 누리지 못하고 복음을 깨닫지 못하면 가장 먼저 내가 힘들고 내가 괴롭습니다. 그와 더불어 나와 관계된 다른 사람들이 힘들게 만들고, 주변의 모든 관계들을 망하게 한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여러분, 율법 속에 있으면 우리도 모르게 우리가 한 말에 우리가 얽히게 되고, 쉽게 상처를 주고 또 상처를 받고 그 한 말 때문에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결국은 내가 먼저 죽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자녀들을 바라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부모 마음에 드는 자녀가 사실 열 명 중에 몇 있겠습니까만은, 우리가 복음으로 봐야 하는데, 그것이 안 되더라고요. 조금만 문제 있으면 “저 놈이 누구를 닮아서 저렇누?” 가만히 생각해보면 결국 부모 자신을 닮았는데 말이죠. 저는 제 아이를 보며 느끼는 것은 절 닮았다는 것입니다. 어떨 때는 자녀문제 때문에 화가 치밀어 오르다가도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그렇지” 라고 다시 생각을 바꾸곤 합니다. 절 닮았는데 그 부분을 보지 못하니 일단 제가 죽겠더라고요. 그렇습니다. 여러분, 자녀를 바라보면서 문제와 사건을 바라 볼 때, 복음으로 보면 그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니까 내가 힘들어지는 것이고 다른 주변에 있는 사람도 힘들게 하고 관계된 모든 현장을 망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제가 아는 훌륭한 목사님이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하세요. 아주 설교도 잘하시고 인격도 대단하신 분입니다. 존경스런 분입니다. 그런데 말씀을 나눌 수 있을 기회가 되어 말씀을 나누는데, 나름대로 중심을 가지고 목회를 해오신다고 해오셨는데 시간 지날수록 목회가 어렵고 힘들고, 또 목사님 당신만 힘드시면 괜찮은데, 교인들이 너무 힘들어 하는 것을 봤다는 고백을 하셨습니다, 늦게나마 복음을 깨닫고 누리고 나니 목회생활 속에서 내가 편하고 이상하게 성도들이 나가든 말든 성도들이 말씀을 통해 힘을 얻고 은혜 입는 것을 보게 된다진다 라는 고백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어떤 사건과 일들 속에서 복음으로 대하느냐 그렇지 않냐는 것은, 사망이냐 생명이냐를 결정 짖는 것을 보게 되어 집니다.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신 여러분은 복음에 뿌리 내리고 복음으로 보는 눈이 열려지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에 이렇게 나옵니다. 예수님 앞에 끌려온 여인을 향해 예수님이 묻습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 여러분, 이 땅에서 죄 없는 자가 이 세상에 있습니까? 성경에서는 죄 없는 자가 없다고 기록합니다. 롬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말씀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다. 저도 죄 범한 죄인이고 여러분도 죄 범한 죄인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그 결과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했습니다. 하나님 영광을 원래는 누릴 수 있는 존재로 창조하셨는데,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모든 천국의 축복을 빼앗기고 잃어버렸습니다. 상실되어 버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란 말씀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저주와 재앙과 고통과 고난이 찾아왔고 그로 말미암아 육신적인 문제와 정신적 문제들 곧 이 땅의 모든 문제들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함으로 나타나는 문제들이란 말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다는 말은 무슨 죄를 만합니까? 한 주간 살아가면 저와 여러분이 죄를 짓는데 그것을 말합니까? 그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무서운 죄 곧 가장 큰 죄가 있는데 하나님을 떠난 ‘원죄’ 입니다. 마귀에게 속아서 하나님 안에 있어야할 인간이 마귀의 말을 듣고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이것이 바로 원죄, 하나님을 떠난 죄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개인은 물론이고 가정과 가문과 관계된 모든 현장에 악한 사단이 원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들을 점점 멸망의 길로 끌고 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죄를 짓는 것은 근본적인 죄인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죄를 짓기에 죄인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떠난 사람이기에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 죄의 결과는 롬6:23에 분명히 말씀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다 했습니다. 단순한 육신적 사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사망을 말하는 것이고 지옥까지 가는 사망을 말합니다. 그와 관계된 모든 것이 멸망에 빠져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죄인 된 우리를 의인으로 바꾸시기 위해서 주님이 대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 십자가를 지심으로 말미암아 저와 여러분의 모든 죄를 완전히 도말하셨습니다. 막10:45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여러분, 물고기가 물을 떠났습니다. 나무가 땅에서 뿌리가 뽑혔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그것이 바로 죄인 것입니다. 그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서 주님이 십자가 지심으로 우리 모든 죄를 대신 지셨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을 아는 자는 참된 감사와 참된 축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이고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내가 용서 받은 사실을 알기에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용서는 내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될 때, 용서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든 죄의 문제가 그리스도 십자가에서 해결된 사실이 믿어지는 축복된 은혜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입니다. 복음이냐 율법이냐 입니다. 모든 사람을 사릴 수 있는 것은 복음입니다. 여러분, 율법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율법은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고 비난한고 시기하고 질투 하는 모든 것들이 율법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 결과는 멸망이지요. 율법은 무엇을 못 보느냐? 자기만 못보고 남을 보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자기를 못보고 남을 보는 것이 율법입니다. 남의 잘못을 찾아내고 다른 사람의 잘못을 비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7:5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자기 눈에 있는 큰 대들보는 보지 못하고 형제 눈 속에 있는 작은 티를 보면서 이렇다 저렇다 하며 판단하는 바리새인들을 지적하는 모습입니다. 바로 이것이 율법의 특징입니다. 자기는 절대 못 봅니다. 다른 사람을 봅니다. 자기를 못 보니 내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4절에 보면 그렇게 말씀하시죠. “내 증언이 참되니 나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거니와 너희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율법에 있으면 자기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면 복음은 무엇이냐? 사실 복음은 아무도 판단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15절 “너희는 육체를 따라 판단하나 나는 아무도 판단하지 아니하노라” 11절에도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여러분 복음은 판단·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자기 자신을 보는 것입니다. 자꾸 남만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보고 나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바울을 보십시오. 복음을 깨닫기 전 율법아래 있을 때에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며 잡아 죽이는 것이 하나님을 잘 믿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의 바울의 고백이 무엇입니까?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로다, 만삭되지 못한 자 같은 나에게, 나에게 죄인 중에 가장 괴수인 죄인이다” 자신을 본 것입니다. 사실은 나를 보는 그때부터 내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게 되고 은혜를 받으면 받을수록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축복을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나 같은 인생에게 하나님이 이 엄청난 축복을 주셨구나 하는 사실에 대한 눈들이 열려지게 되면서 모든 것들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은 간단한 길입니다. 내 눈이 어떤 눈으로 보고 있느냐입니다. 바리새인들처럼 하나님 말씀을 악용해서 율법으로 다른 사람을 망하게 하느냐? “나도 너를 정죄·판단하지 아니하노니”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살리는 눈으로 보느냐, 복음의 눈으로 보느냐 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금방 행복해 질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를 볼 때 복음의 눈으로 보고 복음으로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볼 때도 복음의 눈으로 보는 것입니다.

우리 특별히 이 땅을 살아가면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는 가운데, 어제 핵심에서도 그렇게 메시지가 있었습니다만, 엄청난 축복 받았음에도 그 축복을 놓치는 이유 세 가지는 문제를 당할 때, 하나님이 함께 하심에도 불구하고 불신자처럼 돌아간다는 것, 두 번째가 사람관계 때문에 모든 축복을 놓치는 것, 세 번째가 나의 대한 부분인데 나의 무능을 넘어서지 못해서 하나님의 축복을 놓친다 했습니다. 특별히 신앙생활 중 걸림돌이 있다면, 사람관계입니다. 정말 복음을 알면 축복임에도 깨닫지 못하면 걸림돌이 됩니다. 얼마나 많은 성도들이 사람관계에 얽히고설켜서 상처를 주고 시험주고 시험을 받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결국은 신앙생활조차 어렵게 하는 부분도 보게 됩니다.

지난 주 어떤 분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이 분이 하시는 말씀이“목사님 너무 힘듭니다. 사람관계 속에서 뭔가 마음을 가지고 잘 해주려하는데 계산적으로 나오니까 시간 지날수록 이들을 위해 시간을 투자할 필요가 있는가하는 회의감도 들고 배신감이 오면서 완전 계산적이 되어지고 너무 힘들고 어렵습니다.”하는 고백을 들었습니다. 여러분 진짜 우리가 인간관계 속에서 참된 축복이 되기 위해선 복음의 눈으로 봐 져야 그 관계가 축복된 관계로 되어집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우리에게 살 길인 복음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믿습니까? 우리를 멸망시키는 율법을 먼저 주신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살길인 복음을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멸망에 빠진 인생을 건지시기 위해서 창세기 3장의 아담이 하나님을 떠나자마자 하나님은 살길을 주셨는데, 창3:15에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라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 하실 것이란 예언입니다.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여러분, 그 예언대로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저와 여러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우리가 죄와 멸망가운데 완전히 망했는데, 예수님이 오셔서 부활·승천함으로 메시아와 그리스도 되셨습니다. 우리 인간들이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데,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우리에게 은혜로 구원 주시기로 계획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일방적인 사건인 십자가 사건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원의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롬5:8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일방적으로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일방적으로 구원의 계획을 세우시고 일방적인 십자가 사건을 통해 우리의 의논하시지 않고 저와 여러분의 모든 문제들을 십자가애서 해결하셨습니다.

그래서 복음에는 인간의 어떤 의(義)도 더 있지 않는 것입니다. 복음에는 오직 하나님의 의(義)만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그 어떤 노력과 공로로도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이며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요 거저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은혜를 받은 자가 저와 여러분입니다. 이 사실을 정말 알 때부터 복음의 능력이 나에게서 나타납니다. 이 사실을 정말 깨닫고 알고 누리면 그때부터 참된 평안과 안식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참된 기쁨과 감사가 터져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이 힘들고 어렵고 피곤한 것이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쉬운 것이고 참 평안한 것이며 참 자유함을 얻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말씀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 평안과 안식을 얻으면 여유가 생기고 힘이 생기며 다른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것이고 다른 사람을 품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이해하고 누리는 사람만이 사람을 살리고 현장을 변화시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그 축복의 주역으로 부르신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 제목이「생명의 빛을 얻으리라」한 번 받아합시다.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여러분, 이 세상의 문제는 생명 되신 하나님과 단절되어진 부분들 속에서 결국 창세기 3장의 저주가운데 빠져서 문제의 어두움의 문제입니다. 영적인 사망상태에 이르렀고 어두움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로 오셨는데, 그리스도로 오셨다는 말은 생명으로 빛으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생명으로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충만히 누리게 될 때, 우리의 모든 걸음 속에 사람이 살아나게 되고 현장이 변화되게 되게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받아합시다. “복음을 누리며 복음으로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 됩시다.”

베드로전서 3장을 오늘 묵상기도 때에 읽었습니다만, 하나님이 왜 우리를 부르셨느냐의 이유는 복을 주기 위함이라 했습니다. 이 땅은 여러분이 가진 복이 필요합니다. 이번 한 주간, 여러분 안에 있는 복음의 비밀을 누림으로 말미암아 복음으로 사람을 살리는 축복된 한 주간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복음으로 세상을 살릴 수 있도록 축복해 주심을 감사함을 드립니다. 이 복음 안에 있는 축복을 풍성하게 누림으로 내가 살 뿐만 아니라 나와 관계된 모든 현장과 모든 사람을 살리는 축복을 주옵소서. 살아계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서론: 생명의 빛이 넘쳐나는 현장마다 살아나는 역사와 회복되는 역사가 있습니다. 실상을 바라보면 이 땅의 사람들이 어두운 가운데서 방황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그리스도께로 오는 것입니다.
1. 현장에서 체포된 간음한 여인
1)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이용해 사람을 죽이고 다른 사람들을 곤란케 합니다.
① 바리새인들이 현장에서 간음하던 여자를 예수님께 끌고 왔음
② 악한 자는 악한 지혜로 사람들을 어렵게 만듦(롬16:19, 마귀가 주는 악한 지혜)
③ 율법은 사람을 살리라고 주셨는데 바리새인들은 율법으로 사람을 죽임
2) 예수님은 간음한 여인을 살리려 하고, 그 여인을 죽이려는 악한 사람들까지도 살립니다.
① 내가 복음을 이해하고 누리면 나 자신과 남과 나와 관계된 모든 현장을 살리게 됨
② 복음을 누리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면 내가 먼저 괴롭고 다른 사람들도 힘들게 만듦
③ 자녀와 문제와 사건을 복음의 눈으로 봐야 함
3) 이 땅에는 죄 없는 자가 없습니다(7절).
① 성경에는 죄 없는 자가 없다고 기록됨(롬3:23. ‘모든 사람이 범한 죄’는 하나님 떠난 원죄)
② 원래 하나님 영광을 누리도록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됐으나 죄로 인해 그 축복을 상실함
③ 죄로 말미암아 저주, 재앙, 실패, 고통이 찾아왔고, 이 땅의 모든 문제들이 나타남
④ 개인, 가정, 가문, 관계된 모든 현장에서 악한 사탄이 사람을 멸망의 길로 끌고 감
⑤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짓는 것이며, 그 죄의 결과는 사망임(롬6:23, 영혼의 사망)
4)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완전히 도말하심(막10:45)
① 죄인 된 우리를 의인으로 바꾸시기 위해 주님이 대신 십자가를 지셨음(막10:45)
② 이 사실을 아는 자는 참된 감사와 축복을 누릴 수 있으며 남을 용서할 수 있음
2. 율법이냐? 복음이냐?
1) 율법은 남을 판단‧정죄‧비난‧시기‧질투하는 것으로 그 결과는 멸망입니다.
① 율법은 자기만 보지 못하고 남을 보는 것임(마5:7. 예수님의 지적)
② 율법 안에 있으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함(14절)
2) 모든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것은 복음입니다.
① 복음은 아무도 판단하지 않고 정죄하지 않는 것(11, 15절)
② 복음은 자신을 보고 자신을 발견하는 것(고전15:8-9, 딤전1:15. 바울의 고백)
③ 복음의 눈으로 보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문제, 사람관계, 무능)
3) 하나님은 처음부터 우리에게 살 길인 복음을 주셨습니다.
① 창3:15의 복음 -여자의 후손
② 하나님은 일방적으로 구원의 계획 세우시고 십자가 사건 통해 길을 여심(롬5:8)
③ 복음에는 인간의 의가 전혀 없고 오직 하나님의 의만 있음(엡1:6, 2:8)
4) 하나님은 복음을 누리고 사람과 현장을 살리는 축복의 주역으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① 신앙생활은 쉽고 참으로 평안하며 자유한 것임(8:32)
② 복음을 이해하고 누리는 사람만이 사람을 살리고 현장을 변화시키게 됨
결론: 이 세상의 문제는 생명 되신 하나님과 단절 된 속에서 나옵니다. 창3장 저주에 빠져서 어두움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로, 생명과 빛으로 오셨습니다. 그 분을 충만히 누리게 될 때 사람이 살고 현장이 변화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 복을 주기 위해 우리를 부르셨습니다(벧전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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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본문 설교일
1490 영적 혼란 시대에 하나님 회복 운동을! 삿17:1-13 2025-06-08
1489 자기를 이기는 비밀 삿15:14-20 2025-06-01
1488 지속적인 은혜를 누려라 삿13:1-5 2025-05-25
1487 우리의 삶이 다음 세대의 열매로! 삿11:1-11 2025-05-18
1486 하루도 중단되면 안되는 복음화의 역사 삿9:1-6 2025-05-11
1485 후대까지 전달되는 언약 삿8:22-28 2025-05-04
1484 전환점을 이룬 안디옥 선교 행11:19-30 2025-04-27
1483 우리에게 주시는 영원한 메시지 고전15:1-11 2025-04-20
1482 새로운 싸움을 위하여 삿7:9-18 2025-04-13
1481 날마다 영적싸움에 승리하라 삿7:1-8 2025-04-06
1480 이 시대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해답 삿4:1-10 2025-03-30
1479 하나님이 쓰시는 기준 삿3:12-23 2025-03-23
1478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삿3:7-11 2025-03-16
1477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삿2:6-10 2025-03-09
1476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삿1:1-7 2025-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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