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리(신봉준 목사)
2008-06-29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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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렐루야! 인사하겠습니다. 평강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자신을 향해서도 선언하겠습니다. 내 영혼아 평안할 지어다!
오늘 예배 참여하는 여러분들 한 주간 영적인 힘을 회복하는 시간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제목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라고 정했습니다. 7절에 보시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이 부분을 가지고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히브리서11:1에 보면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그러면서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또, 중요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땅에 모든 세계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3절에 더 중요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이 땅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중요한 것입니다만, 그 보이는 모든 것들이 보이지 않는 영적인 것에 의해서 되어졌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실상이 무엇이고 또 허상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을 구분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 가운데 허상을 붙잡고 신앙생활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결국은 끝에 가서는 억울하게도 헛된 삶을 살게 되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저와 여러분, 다른 것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실상을 붙잡아야 되는 것입니다. 허상을 붙잡게 되면, 붙잡는 그 순간부터 모든 판단들도 흐트러지게 되는 것입니다. 실상을 붙잡으면 붙잡는 그 순간에 이미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특별히 이 한 시대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세상 속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특별히 어렵고 힘든 세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실상을 붙잡아야 합니다. 오늘 그 실상을 붙잡는 축복의 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이미 우리에게 주신 실상 중에 실상이 있습니다. 바로 그 실상 중에 실상은 “예수가 그리스도 되심” 이 실상입니다. 우리 인간을 보며 이 땅을 바라보면서 정말로 우리에게 실상으로 주어진 부분은 예수가 그리스도시라는 것과 또한, 그리스도 이름으로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곧 실상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 이름으로만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이뤄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누리는 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이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뤄져야 흑암이 꺾이어지게 되는 것이고 그곳에 하나님의 계획이 성취되어지고 하나님의 말씀이 이뤄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이름으로 임하는 하나님 나라의 축복이 곧 실상입니다.
또한, 실상 중에 실상이 있습니다. 바로 그리스도만으로 임하는 성령의 충만함. 주님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마지막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죠,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몇 날이 못 되어 약속하신 것을 받았는데, 그 약속하신 것이 무엇이냐면, 사도행전1:8에 기록되어 있는 말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지니라” 우리에게 실상 중 실상이 예수가 그리스도시라는 사실과 그리스도 이름으로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와 모든 한계를 뛰어 넘을 수 있는 성령의 충만함. 이것이 실상입니다. 이 실상을 붙잡게 될 때에, 모든 것은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으로 들어가서 본문에도 실상에 대한 중요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에게 주님이 주시는 실상을 본문을 통해 볼 수 있는데, 오늘 본문의 내용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시기 전에 집중적으로 메시지 주신 부분 중에 한 부분입니다.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요한복음 14~17장 예수님이 십자가 지실 것을 앞두고 가장 중요한 말씀을 제자들에게 전달하셨습니다. 14장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근심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말씀하셨고, 15장에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를 통해서 참된 생명적인 관계가 어떤 관계인지 말씀하셨고, 오늘 16장에도 중요한 비밀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16장에 나오는 이 배경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시기 전, 9시간 전에 하신 말씀이라는 것으로 보게 됩니다. 가장 중요한 말씀이 전달 되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께서 십자가 지심을 알고 계셨습니다. 16절부터 보시면 반복되어 나오는 부분과 단어가 있습니다.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또, “조금만” 등으로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십자가 지시고 부활하실 것을 하나님이시기에 이미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에게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조금 있으면 다시 보리라”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실 것과 또,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그러면서 오늘 중요한 부분을 설명하게 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미, 미리 일어날 일들을 다 아시고 말씀을 통해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대비할 수 있도록 한 부분을 보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의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믿습니까? 여러분의 과거를 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이 어떻게 살아왔는데, 왜 그렇게 살아왔는지 다 아십니다. 하나님 앞에 벌거벗은 몸처럼 다 드러나게 되어 있고요. 드러나는 그날 우리의 모든 과거·현재·미래가 하나님 앞에 다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 과거를 하나님이 다 아십니다. 차마 다른 사람에게 말 못할 실패의 과거들도 하나님이 아시고 상처 진 과거들도 하나님이 아십니다.
그런데 그 실패와 그 상처 그리고 우리의 과거를 묻지 아니하시고 복음으로 우리를 덮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뿐 아니라 하나님은 지금의 걸음을 아십니다. 우리는 한치 앞도 바라 볼 수 없습니다. 오늘 예배드리다가 나가는 길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늘 있어왔던 일들이니” 라고 그냥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은 5분 앞의 일을 알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걸음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정확하게 아시고 세밀하게 우리의 걸음들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모든 것들을 미래조차도 완벽하게 아시고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시길 원하십니다.
어제 핵심집회 메시지에서도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에게 복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 축복된 역사를 두시고 오늘, 우리의 인생을 이끌어가고 계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우리 인생에 미리에 대한 축복된 계획을 세우시고 우리 오늘의 걸음들을 인도하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께서 오늘 본문을 보시면 미리 제자들에게 말씀을 주십니다. 왜냐? 대비하도록 말씀을 주십니다. 4절에 보면, “오직 너희에게 이 말을 한 것은 너희로 그 때를 당하면 내가 너희에게 말한 이것을 기억나게 하려 함이요” 기억나게 하기 위해, 일과 문제를 당하면 미리 대비토록 하시기 위해 말씀을 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말씀을 주시는 이유를 16:1에서 보면,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하지 않게 하려 함이니”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제자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 줄을 미리 아시고, 실족해서 넘어지지 않도록, 실족해서 망하지 않도록 실족해서 속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미리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을 말씀하셨느냐? 2절에 보면 중요한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출교할 뿐 아니라” 출교를 당한다 했습니다. 이 말의 뜻은, 유대공동체 속에서 추방되어 진다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이들이 말 안들을 때, 쉽게 하는 말로 “족보에서 빼 버리겠다” 라는 말과 똑같은 말인데, 그 당시에는 어마 어마한 말입니다. 유대사회와 이스라엘 공동체 속에서 추방되는 어마 어마한 일입니다. 그런 출교를 당할 것을 말씀하셨고, 더 엄청난 일이 일어나는데 2절에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죽임을 당한다는 사실입니다. 엄청난 고난과 고통의 역사가 일어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나느냐? 중요한 답을 3절에서 말하고 있는데 “그들이 이런 일을 할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
여러분, 바울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바울이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섬기는 것이, 예수 믿는 자를 핍박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와 예수님을 알지 못하니까요. 그래서 사도행전 9장에 나오듯,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믿는 사람을 법적으로 구속하기 위해 왕의 도장을 받아서 다메섹 도상에 가다가 거기서 예수님을 만났던 것 아닙니까?
사실 바울은, 하나님 앞에 잘 하는 것이,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잡아 죽이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잘 알지 못해서 그랬습니다. 이것이 지금, 우리 현장에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알지 못해서 핍박하고, 알지 못해서 예수 믿는 것을 방해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서 중요한 부분들을 계속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 보면, 주님께서 미리 아시고 이길 수 있는 실상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원래 본문이 16:1-24까지인데, 14절까지만 읽었습니다. 본문 24절까지 있는 내용들을 중심으로 해서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이 마지막 시대를 이길 수 있는 실상을 말씀하셨는데, 그 실상이 무엇인지를 오늘 말씀을 통해 붙잡아야 하겠습니다.
그 첫 번째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모든 것들을 말씀하시고 실상을 말씀하셨는데, 보혜사 성령을 주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7절입니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약속이 있다면, 메시야 곧 여자의 후손을 보내겠다는 약속, 즉 구약입니다. 구약에는 하나님이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여자의 후손 메시야를 보내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이 구약 전체의 내용입니다.
우리 인생의 문제가 창세기 3장의 문제이기에 하나님을 떠남과 죄와 사단의 권세를 해결하기 위해서, 다른 것으로 안 되기에 여자의 후손을 보내겠다 메시야를 보내겠다. 창세기3:15에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바로 메시야, 그리스도께서 여자의 후손으로 오셔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한다는 것은, 사단의 세력을 박살낸다는 말이며 사단의 머리를 깨트린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여의 후손 곧 메시야의 언약입니다.
이 약속을 붙잡은 사람에게 출애굽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출애굽의 역사가 일어나는 과정가운데 애굽에서 일어났던 10가지 재앙의 역사들이 10가지 문화와 우상으로부터 손 한번 안대고 빠져나온 역사가 바로, 여자의 후손의 언약을 붙잡는 사람에게 일어났고, 이 약속을 붙잡은 사람은 홍해를 건넜고 요단을 건너고 여리고 성을 무너트렸습니다.
그리고 이 여자의 후손, 메시야의 언약을 붙잡은 사람은 출 바벨론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던 것을 성경을 통해 보게 됩니다. 우리에게 주신 구약 최고의 약속 중에 약속이 있다면, 우리 인생의 창세기 3장 문제를 해결하실 여자의 후손, 메시야를 보내시겠다는 사실입니다. 또, 우리에게 주신 축복 중에 축복이 있습니다. 여자의 후손인 메시야가 신약에 그리스도로 오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로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것들을 다 해결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예수가 그리스도시라는 말은, 나의 모든 문제를 완전히 끝내 버리셨다는 말입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시라는 말은, 여러분의 인생의 모든 문제를 십자가에서 모두 못 박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가 내개 그리스도가 되어지고, 그리스도가 그리스도 되어지고 그리스도가 주인 될 때에 기적이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 그리스도 그분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저주와 재앙의 문제를 십자가에서 해결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축복의 이름이 뭐냐? 예수가 그리스도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메시야, 여자의 후손이 오셨는데 그 이름이 예수고, 그분이 오셔서 하신 일이 그리스도의 일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약시대에 주신 축복 중 축복입니다. 그와 더불어 그리스도 이름으로 말세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에게 또 한 가지의 최고의 약속을 주셨는데 바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사도행전1:4-5에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너희가 몇 날이 못 되어서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말씀하시면서 사도행전1:8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말세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에게 주신 최고의 약속 중 약속이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예수의 영이신 성령이 내게 거한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이 땅에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이것을 성육신이라고 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을 몸을 입고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성육신 하신 날이 바로 성탄절입니다. 우리 인류역사상 가장 중요한 날이기도 합니다. 우리 개개인에게도 가장 중요한 날입니다. 그러나 그것 못지않게 더 중요한 날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이신, 하나님의 영이신 그분이 우리 안에 성령으로 임한다는 사실.
그래서 통합 측에서는 절기에 따라서 절기예배가 많습니다. 특별히 성령강림주일이라 해서 아주 중요하게 여깁니다. 실제로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그것 못지않게 중요한 날이, 성령이 임하신 사건입니다. 성령이 임하시지 않으면 2000년 전에 돌아가신 예수님의 죽음이 나와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성령이 내게 임함으로 내게 이뤄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게 성령이 임했다는 것은 엄청난 축복이고 이 사실 그자체가 구원받았다는 것입니다. 내 안에 성령이 임했다는 자체가 구원받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가 없이는 구원의 역사와 생명의 역사가 일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특별히 전도 현장에 있을 때 왜 성령인도를 받기를 간절히 기도합니까? 성령인도를 받지 않고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한 사람이 믿고 예수님께 나옵니까? 내가 개인적으로 믿은 것 같지만 아닙니다. 그 속에는 이미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그 마음을 움직이셔서 예수 그리스도 영접하게 하고 주님 앞에 나오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성령이 아니고서는 예수를 주시라고 시인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야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고 참된 구원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성령이 내안에 거하시는 것을 가지고 내가 구원받았다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 누가 거하신다고요? 성령이 거하십니다. 이 성령은 떠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히 떠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14:16 다른 보혜사를 주실 것을 말씀하시면서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겠고” 17절에 “너희 속에 거하심이라” 구원은 미안하지만 무를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생명 받았습니까? 그 생명은 영원한 것입니다. 바뀌어 질 수 없습니다. 이 엄청난 축복을 받은 자가 저와 여러분입니다.
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되면 내 능력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는데, 우리의 삶이 사도행전의 역사 속에 들어갑니다. 사도행전을 가지고 성령의 역사라 합니다. 전혀 인간의 노력과 열심히 되어진 역사가 아닙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일어난 일이 사도행전의 역사입니다. 진짜 내게 성령이 임하고 성령 충만함을 받아 성령인도를 받으면, 내 삶에 사도행전적인 역사가 일어나는데 환경과 물질에 노예 되지 않고 그 현장을 정복하게 되고 나가는 걸음마다 실제로 사람들이 살아나고 흑암들이 꺾이어지고 문화가 개혁되어지고 미래가 준비되어지고 후대를 살리는 축복, 이것이 사도행전의 축복입니다. 사도행전의 축복은 성령이 임함으로 이뤄지는 축복입니다.
여러분, 초대교회를 보세요.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 성령이 임했습니다. 어떤 역사가 임했습니까? 막을 수 없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바람 같은 불 같은”, 이 말은 무슨 말입니까? 그 어떤 것으로도 막을 수 없는 하나님의 역사, 우리의 무능함과 상관없는 하나님의 역사가 성령이 임하게 될 때에 나타났어요. 뿐만 아니라 나가는 걸음 속에 전에 보지 못했던 영안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사도행전 3장에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에 앉은뱅이를 늘 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성령이 임하니 제대로 보여진 것입니다. 앉은뱅이에게 중요한 것은, 도와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운명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중요한 것임을 본 것입니다. 진짜 볼 것을 본 것입니다. 거기에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볼 것을 본 거예요. 그러면서 성령이 임하니 담대함과 확신이 생긴 것입니다.
여러분, 베드로의 생을 보세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 잡히셨을 때 예수님을 모른다고 3번이나 부인했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4장에서는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게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일이 없음이니라” 이 확신과 담대함이 성령이 임하시니 가능해진 것입니다. 모든 제자들의 가치기준도 달라졌어요. 오히려 예수 이름 때문에 핍박받는 것이 즐거울 정도로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는 조금만 어려운 일이 일어나면, “하나님 내게 왜 이러십니까?” 라고 하기 쉬운데, 제자들은 예수 이름 때문에 오히려 핍박받는 것을 즐거워했다 했습니다. 나가는 곳 마다 현장이 변화되고 제자들이 세워지는 것이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임한 성령은 다른 성령이 아닙니다. 바울과 베드로에게 임했던 성령이 우리 안에도 계신 것입니다. 사실적인 성령의 인도를 받고 성령 충만을 누리면 되는데 이것이 안되는 것입니다. 거의 다 내 생각과 내 기준으로 내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역사할 틈도 없습니다. 문제 왔을 때, 조금만 기다리고 성령인도 받으면 되는데, 그리스도가 그리스도 될 틈이 없는 것입니다. 내 마음대로, 성질대로, 체질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일이 안 되는 것입니다. 분명히 성령이 임하시면 진리 가운데 인도받게 되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것인데, 인도받지 못하니 영광이 나타나는 삶이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령의 인도받는 삶이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류 목사님이 이렇게 지난 주 오후 위성 메시지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정시 기도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내린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정시기도시간 만큼이라도 내 생각, 내 성질, 내 마음대로, 내 체질대로 살아가지 않는 그 시간이 정시기도시간이다”
우리의 생각과 체질과 우리 마음대로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인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살아갑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면 “우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그 실상은 보혜사 성령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할 때 어떤 역사가 일어나는가? 오늘 본문에 보세요. 8절에 보면,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성령이 임하니까 세상을 책망하는데 죄에 대하여 라고 했는데, 죄란 무엇입니까? 거짓말 도둑질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그 자체가 죄입니다. 본문 9절에 설명하고 있습니다.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성령이 임하게 될 때 드러나고 깨닫게 되어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10절에 보면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여러분 의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의가 있습니다. 그 의가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당해야 하는 저주 재앙을 우리의 의 되신 그리스도께서 다 해결하셨습니다. 그런데 성령이 임하게 될 때, 하나님께 가는 길, 의가 되는 이 그리스도 이 부분이 드러나고 이 사실에 성령이 임하게 될 때 심판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11절에 보면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세상임금 마귀는 이미 심판받은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이 임할 때, 드러나게 된다고 말씀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성령이 임하면 세상에는 심판이 이뤄지지만, 하나님의 자녀인 저와 여러분에게는 망하지 않도록 진리 가운데로 우리를 인도하신다 했습니다. 13절입니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여기 보면, 세상을 심판하시고 우리를 대해서는 망하지 않도록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를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습니다. 구원받는 순간 천국 가는 것이 아닙니다. 육신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이 세상 속에서 인도받으며 살도록 진리의 성령으로 인도하시겠다 약속하셨습니다. 세상에는 심판하시지만, 구원받은 저와 여러분은 망하지 않도록 진리의 성령을 주셔서 그 진리 가운데 자유함을 얻고 참된 행복과 평안을 누리도록 인도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결과로 14절입니다.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결국은 영광을 받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이죠. 저와 여러분이 존재케 하시는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음으로 우리 모든 삶에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저와 여러분을 세우셨다는 사실입니다. 직장과 가문 속에 여러분을 왜 세우셨습니까? 다른 것이 아니라, 여러분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보도록 모델로 세우셨습니다. 여러분을 통해 불신자가 보도록, 이 일에 성령의 인도하심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7절에 “실상을 말하노니” 그 실상은 바로 보혜사 성령을 통해서 너희와 함께 하겠다는 것입니다. 사단 마귀의 권세가 이 세상을 지배하는 가운데 우리가 승리하기 위해서는 이 성령의 사실적인 실제성을 붙잡는 여러분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밀하게 인도하시는 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붙잡길 바랍니다.
두 번째 실상입니다. 예수 믿는 것 때문에 어려움을 당합니다. 그러나 여기에 대한 답을 주셨는데, 이것을 붙잡아야합니다. 왜 예수 믿는데 어렵게 되느냐? 예수 믿기에 어려움과 핍박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 믿는 다고 어려움과 핍박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너희가 세상에서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려움과 고난이 있지만, 답을 주셨어요. 잠시 잠깐이라는 사실입니다. 20절 ~22절 말씀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기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여기에 무엇에 대한 이야기 입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에 못 박히심을 가지고 세상은 기뻐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도 잠시 잠깐이라고 했습니다. 잠시 잠깐입니다. 마치 임신한 어머님이 아이를 해산함을 통해 오는 고통인데 그 고통도 잠시지 않습니까. 해산하면 거기에 대한 기쁨을 아이를 낳아본 사람만이 안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런 기쁨에 관련한 이야기를 예수님의 십자가 달리심과 부활에 대해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 우리가 예수 때문에 어려움과 핍박을 당하는 것은 잠시 잠깐이라는 사실입니다. 잠시 잠깐 후면, 너희에게 기쁨을 주시겠다. 했습니다. 그 기쁨을 빼앗아 갈 자가 없다 했습니다. 요한복음 6장에 나오는 것처럼, 우리의 배에서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는 생수의 강같이 흘러넘치는 축복된 은혜를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아무도 빼앗아 갈 수 없는 참 기쁨을 우리에게 주시겠다는 사실입니다.
어려움을 당하고 계십니까? 그 어려움을 보지 마시고 그 이후에 주실 하나님의 축복된 역사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아무도 빼앗아 갈 수 없는 참된 기쁨을 주시겠다 했습니다. 잠시 잠간 후면 주님께서 모든 기쁨을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현장에서 현상으로 인해 속지 마세요. 남편의 핍박에 속지 마세요. 관심 있어서 핍박하는 것이니까, 핍박하면 할수록 “돌아올 시간표가 얼마남지 않았구나” 알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자녀도 마찬가지입니다.
분명히 기억하세요. 잠시 잠깐 이후에는 기쁨이 올 것이기에, 문제에 당면했을 때에, 올바른 복음적인 선택하십시오. 그렇게 될 때 영원한 응답과 축복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잠시 잠깐후면 기쁨이 회복될 것인데, 복음적인 선택을 하지 않으면 결국, 영원한 후회로 빠집니다. 문제와 사건과 일을 당할 때는, 잠시 잠깐 이후에는 기쁨이 회복될 것이기에 복음적인 선택을 하시기 바랍니다.
어제 핵심에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1장에 보면 예루살렘 교회가 베드로가 고넬료 집에 들어가서 식사한 것을 가지고, “어떻게 할례 받은 유대인이 무할례자 집에서 식사를 같이 할 수 있느냐?” 이것이 예루살렘 교회가 가지고 있는 그릇입니다. 문제당하니까 결국 율법으로 돌아가는 것 아닙니까? 거기에 복음으로 시작한 안디옥 교회를 보게 됩니다.
문제와 사건 앞에서 여러분은 복음을 선택하십시오. 그것이 영원한 응답과 축복으로 여러분에게 잠시 잠깐 후에 결론이 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때, 부끄럼 당하지 마시고 복음 선택함으로 참된 축복을 받기를 원합니다. 사도행전 15:36부터 보시면 마가 요한을 전도현장을 데려가는 문제 때문에 바나바와 바울이 심한 다툼을 합니다. 마가 요한이 같이 전도사역을 하다가 중도하차해 버렸습니다. 바울은 이런 사람을 데려갈 수 없다 했는데 바나바는 끝까지 데려가길 바랐습니다. 바로 인본주의·인맥중심 아닙니까?
여러분,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바라봐야 하는데 인본주의 쓰는 것만큼 추한 일이 없습니다. 그것도 모르고 씁니다. 복음적인 선택으로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사도행전16:6-10에 보면 바울이 아사에 가서 복음 전하길 원했는데, 하나님께서 응답하시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 응답이 안 왔을 때, 어떻게 결정하느냐에 따라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가 결정됩니다. 대부분 응답이 오지 않으면 기다리면 되는데 기다리지 못하고 내가 인본주의 쓰고 내 방법대로 나갑니다. 그것이 실패의 요소가 됩니다.
바울은 응답 안 왔을 때, 복음가지고 언약 붙잡고 기도했습니다. 결국 그 걸음이 교회사와 세계사를 바꿔놓는 엄청난 응답으로 주어지 사실을 보게 됩니다. 문제와 사건과 일들 앞에 잠시 잠깐 후면 다 드러나기 때문에 복음을 선택해야 합니다.
사도행전19:8-20에 보면 바울에게 에베소 지역에 엄청난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응답받으면 들뜨지만 바울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 응답 속에서 하나님의 더 큰 계획을 보았습니다. 사도행전19:21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여러분 어떤 문제와 사건을 당하든지 복음적인 선택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분명히 어려움 당하고 문제가 있습니다. 거기에 대한 답을 주셨습니다. 잠시 잠깐 후라 했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신 실상입니다. 잠시 잠깐 후면 하나님께서 그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근원적인 기쁨을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그래서 문제가 오면 웃으시기 바랍니다. 야고보서의 말씀처럼 그 문제가 우리를 온전케 할 것입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축복이 고난이란 가면을 쓰고 오는데, 우리는 고난만 보지 축복은 못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어려움 당할 수 있으나, 잠시 잠깐입니다. 그 후에는 찬된 기쁨, 빼앗아 갈 수 없는 기쁨을 주시게 되어 있습니다.
롬8:28에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했잖아요. 그것이 우리에게 주시는 축복입니다. 지금 안 되는 것 같아도 안 되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 안에 있는 자는 실패도, 실수도,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룸으로 승리하게 됩니다.
마지막 세 번째입니다. 우리에게 실상은, 구원받은 저와 여러분이 기도하면 하나님이 응답하게 되어 있습니다. 마지막 23~24입니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아멘. 하나님의 모든 축복을 누릴 수 있는 비밀이 있습니다. 그 비밀의 이름은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본문에, “너희가 지금까지는 내 이름으로 구하지 않았으나” 지금까지는 우리 욕심으로 기도했지만, 지금부터는 누구이름으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할 때, 엄청난 영적인 역사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하지 않았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내 이름으로” 오늘 이 시간 이후로 예수 그리스도의 그 이름의 비밀을 누리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불신자도 기도해서 응답 받습니다. 결과는 망해서 그렇죠. 불신자도 응답받는데 하나님의 자녀인 저와 여러분이 응답을 못 받는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겠죠. 그래서 오늘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실상을 말씀하시고 있는데, 구원받은 저와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주셨습니다. 그 이름으로 기도 응답받을 수 있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마16:19에 땅에서 메면 하늘에서도 메일 것이고 땅에서 푸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했습니다. 금요전도학교에서도 말씀을 전했습니다만, 그리스도 이름으로 금요전도학교시간에도 말씀드렸지만, “악한 사단 결박 될지어다” 하고 결박만 하지 말고 푸는 기도도 권세 누리시기 바랍니다.
다니엘서 6장에 보면 묶였던 것을 다니엘이 기도해서 풀었잖아요. 결박하는 권세 뿐 아니라, 푸는 권세도 우리에게 그리스도 이름으로 주셨습니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하지 않았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여러분, 자녀가 부모에게 떡을 달라하는데 돌을 줄 자가 있으며, 생선을 달라하는데 뱀을 줄 자가 있습니까? “부모가 악할지라도 자녀에게 좋은 것을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좋은 것,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말씀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 사용하시길 바랍니다. 그 이름 붙잡을 때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고, 하늘 군대가 동원되어지고, 흑암이 꺾여지고 거기에 하나님의 계획과 말씀이 성취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실상입니다.
세상 속에 살아가고 있는 저와 여러분에게 세상 속에서 승리할 수 있는 실상 세 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첫 번째가 성령의 내주·인도·역사하심입니다. 두 번째가 그 어떤 어려움과 문제 앞에서도 흔들리지 마시고, 당황하지 마시고, 방황하지 마시고, 속지 마시고 잠시 잠깐 후면 참된 기쁨을 주실 것입니다. 이 실상 붙잡으시고, 그래서 그 기쁨을 가지고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어지고요, 믿지 않는 자들이게는 증거가 될 것이고 그것이 우리에게는 유익함이 되어질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실상 중에 실상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응답 받을 수 있는 특권입니다. 이것이 실상입니다. 이 마지막 시대, 어려움을 당하는 시대에 우리가 승리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주신 실상 붙잡고, 이번 주간에 여러분의 모든 현장 속에서 도전하시고 승리하는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실상 붙잡고 참된 신앙생활의 축복 가운데 하나님의 역사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도록 세워 주심을 감사함을 드립니다. 주님 오시는 그날 까지 성령의 내주·인도·역사하심을 누릴 수 있도록 도와 주옵시고, 문제와 사건 앞에서 복음적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시며, 예수 이름으로 참된 기도의 응답을 누릴 수 있도록 주의 백성들을 축복하여 주옵소서. 이번 한 주간에도 주신 실상 가지고 현장에서 도전하며 승리케 되어지는 온 성도들이 되도록 축복해 주시옵소서.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서론: 이 땅에 보이는 모든 것이 참 중요하나 보이지 않는 영적인 것에 의해 되어졌습니다(히11:1-3). 신앙생활 하면서 실상과 허상을 알고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허상을 잡고 신앙생활 하다 결국 헛된 삶을 살게 됩니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실상을 붙잡는 것이며, 이것이 세상에서 승리하는 비결입니다. 실상 중 실상은 예수가 그리스도시라는 사실, 그리스도 이름으로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 그리스도로만 임하는 성령의 충만함입니다. 본문에도 중요한 실상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믿는 자들이 출교 당하고 죽임 당할 것을 다 아시고 예수님은 이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는 실상(세 가지)을 말씀하셨습니다.
1. 성령의 내주, 인도, 역사
1) 보혜사 성령을 우리에게 주실 것을 말씀했습니다(7절).
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약속은 메시아를 보내시겠다는 것(구약 전체 내용)
② 우리에게 주신 축복 중 축복은 메시아가 신약시대에 그리스도로 오셔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신 것
③ 말세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성령이 충만히 임하는 것(행1:4-5, 8)
2) 성령충만함 받은 자는 성령의 인도 받습니다.
①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 없이는 생명 얻는 구원의 역사가 일어날 수 없음(고전12:3)
② 성령은 영원히 떠나지 아니하시며 생명의 역사는 영원함(요14:16-17)
③ 삶이 사도행전의 역사(현장 정복, 인생 구원, 흑암 결박, 문화 개혁, 미래 준비, 후대 구원) 속에 들어감
④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삶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남
3) 보혜사 성령이 임할 때 역사가 일어납니다.
① 성령 임하면 세상에는 심판이 이루어지지만, 의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하나님 자녀는 망하지 않도록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심(8-11, 13절)
② 세상에서 사는 동안 진리의 성령으로 인도하셔서 평안 누리게 하시고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심(14절)
2. 예수 믿는 것 때문에 어려움 당하지만 잠시, 잠깐 후에 참된 기쁨을 주십니다.
1) 잠시, 잠깐 당하는 어려움입니다.
① 예수 믿기 때문에 환란을 당하나 잠시, 잠깐 후에 기쁨을 주실 것이며 뺏을 자 없음(20-22, 33절, 요7:38)
② 현상 앞에서 속지 마시고, 잠시 후면 전부 드러나기에 문제와 사건 앞에서 복음적인 선택을 하시기 바람
2) 어떤 문제가 있어도 잠깐 후에 아무도 뺏을 수 없는 근원적인 기쁨을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① 문제(시험)가 우리를 온전케 함(약1:2-4)
② 복음 안에 있는 자에게는 실패, 실수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심(롬8:28)
3. 구원 받은 자가 기도하면 하나님이 기도에 응답하게 되어 있습니다(23-24절).
1) 하나님의 모든 축복을 누릴 수 있는 비밀이 그리스도입니다(24절, 마16:19, 단6장, 마7:9-11).
2) 그리스도 이름 부를 때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고 하늘 군대가 동원되며 흑암이 꺾이고 하나님의 계획이 성취되게 됩니다.
결론: 세상 속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주신 실상 세 가지 증 첫 번째는 성령의 내주, 인도, 역사입니다. 두 번째는 어떤 문제를 만나도 잠시, 잠깐 후면 참된 기쁨을 주실 것이라는 겁니다. 이 기쁨은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고, 믿지 않는 자에게는 증거가 되고, 우리에게는 유익함이 될 것입니다. 세 번째는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응답 받을 수 있는 특권입니다. 이 실상들을 붙잡고 모든 현장 속에서 도전하시고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예배 참여하는 여러분들 한 주간 영적인 힘을 회복하는 시간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제목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라고 정했습니다. 7절에 보시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이 부분을 가지고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히브리서11:1에 보면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그러면서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또, 중요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땅에 모든 세계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3절에 더 중요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이 땅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중요한 것입니다만, 그 보이는 모든 것들이 보이지 않는 영적인 것에 의해서 되어졌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실상이 무엇이고 또 허상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을 구분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 가운데 허상을 붙잡고 신앙생활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결국은 끝에 가서는 억울하게도 헛된 삶을 살게 되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저와 여러분, 다른 것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실상을 붙잡아야 되는 것입니다. 허상을 붙잡게 되면, 붙잡는 그 순간부터 모든 판단들도 흐트러지게 되는 것입니다. 실상을 붙잡으면 붙잡는 그 순간에 이미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특별히 이 한 시대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세상 속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특별히 어렵고 힘든 세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실상을 붙잡아야 합니다. 오늘 그 실상을 붙잡는 축복의 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이미 우리에게 주신 실상 중에 실상이 있습니다. 바로 그 실상 중에 실상은 “예수가 그리스도 되심” 이 실상입니다. 우리 인간을 보며 이 땅을 바라보면서 정말로 우리에게 실상으로 주어진 부분은 예수가 그리스도시라는 것과 또한, 그리스도 이름으로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곧 실상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 이름으로만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이뤄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누리는 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이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뤄져야 흑암이 꺾이어지게 되는 것이고 그곳에 하나님의 계획이 성취되어지고 하나님의 말씀이 이뤄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이름으로 임하는 하나님 나라의 축복이 곧 실상입니다.
또한, 실상 중에 실상이 있습니다. 바로 그리스도만으로 임하는 성령의 충만함. 주님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마지막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죠,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몇 날이 못 되어 약속하신 것을 받았는데, 그 약속하신 것이 무엇이냐면, 사도행전1:8에 기록되어 있는 말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지니라” 우리에게 실상 중 실상이 예수가 그리스도시라는 사실과 그리스도 이름으로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와 모든 한계를 뛰어 넘을 수 있는 성령의 충만함. 이것이 실상입니다. 이 실상을 붙잡게 될 때에, 모든 것은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으로 들어가서 본문에도 실상에 대한 중요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에게 주님이 주시는 실상을 본문을 통해 볼 수 있는데, 오늘 본문의 내용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시기 전에 집중적으로 메시지 주신 부분 중에 한 부분입니다.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요한복음 14~17장 예수님이 십자가 지실 것을 앞두고 가장 중요한 말씀을 제자들에게 전달하셨습니다. 14장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근심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말씀하셨고, 15장에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를 통해서 참된 생명적인 관계가 어떤 관계인지 말씀하셨고, 오늘 16장에도 중요한 비밀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16장에 나오는 이 배경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시기 전, 9시간 전에 하신 말씀이라는 것으로 보게 됩니다. 가장 중요한 말씀이 전달 되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께서 십자가 지심을 알고 계셨습니다. 16절부터 보시면 반복되어 나오는 부분과 단어가 있습니다.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또, “조금만” 등으로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십자가 지시고 부활하실 것을 하나님이시기에 이미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에게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조금 있으면 다시 보리라”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실 것과 또,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그러면서 오늘 중요한 부분을 설명하게 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미, 미리 일어날 일들을 다 아시고 말씀을 통해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대비할 수 있도록 한 부분을 보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의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믿습니까? 여러분의 과거를 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이 어떻게 살아왔는데, 왜 그렇게 살아왔는지 다 아십니다. 하나님 앞에 벌거벗은 몸처럼 다 드러나게 되어 있고요. 드러나는 그날 우리의 모든 과거·현재·미래가 하나님 앞에 다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 과거를 하나님이 다 아십니다. 차마 다른 사람에게 말 못할 실패의 과거들도 하나님이 아시고 상처 진 과거들도 하나님이 아십니다.
그런데 그 실패와 그 상처 그리고 우리의 과거를 묻지 아니하시고 복음으로 우리를 덮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뿐 아니라 하나님은 지금의 걸음을 아십니다. 우리는 한치 앞도 바라 볼 수 없습니다. 오늘 예배드리다가 나가는 길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늘 있어왔던 일들이니” 라고 그냥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은 5분 앞의 일을 알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걸음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정확하게 아시고 세밀하게 우리의 걸음들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모든 것들을 미래조차도 완벽하게 아시고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시길 원하십니다.
어제 핵심집회 메시지에서도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에게 복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 축복된 역사를 두시고 오늘, 우리의 인생을 이끌어가고 계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우리 인생에 미리에 대한 축복된 계획을 세우시고 우리 오늘의 걸음들을 인도하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께서 오늘 본문을 보시면 미리 제자들에게 말씀을 주십니다. 왜냐? 대비하도록 말씀을 주십니다. 4절에 보면, “오직 너희에게 이 말을 한 것은 너희로 그 때를 당하면 내가 너희에게 말한 이것을 기억나게 하려 함이요” 기억나게 하기 위해, 일과 문제를 당하면 미리 대비토록 하시기 위해 말씀을 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말씀을 주시는 이유를 16:1에서 보면,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하지 않게 하려 함이니”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제자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 줄을 미리 아시고, 실족해서 넘어지지 않도록, 실족해서 망하지 않도록 실족해서 속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미리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을 말씀하셨느냐? 2절에 보면 중요한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출교할 뿐 아니라” 출교를 당한다 했습니다. 이 말의 뜻은, 유대공동체 속에서 추방되어 진다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이들이 말 안들을 때, 쉽게 하는 말로 “족보에서 빼 버리겠다” 라는 말과 똑같은 말인데, 그 당시에는 어마 어마한 말입니다. 유대사회와 이스라엘 공동체 속에서 추방되는 어마 어마한 일입니다. 그런 출교를 당할 것을 말씀하셨고, 더 엄청난 일이 일어나는데 2절에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죽임을 당한다는 사실입니다. 엄청난 고난과 고통의 역사가 일어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나느냐? 중요한 답을 3절에서 말하고 있는데 “그들이 이런 일을 할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
여러분, 바울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바울이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섬기는 것이, 예수 믿는 자를 핍박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와 예수님을 알지 못하니까요. 그래서 사도행전 9장에 나오듯,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믿는 사람을 법적으로 구속하기 위해 왕의 도장을 받아서 다메섹 도상에 가다가 거기서 예수님을 만났던 것 아닙니까?
사실 바울은, 하나님 앞에 잘 하는 것이,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잡아 죽이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잘 알지 못해서 그랬습니다. 이것이 지금, 우리 현장에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알지 못해서 핍박하고, 알지 못해서 예수 믿는 것을 방해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서 중요한 부분들을 계속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 보면, 주님께서 미리 아시고 이길 수 있는 실상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원래 본문이 16:1-24까지인데, 14절까지만 읽었습니다. 본문 24절까지 있는 내용들을 중심으로 해서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이 마지막 시대를 이길 수 있는 실상을 말씀하셨는데, 그 실상이 무엇인지를 오늘 말씀을 통해 붙잡아야 하겠습니다.
그 첫 번째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모든 것들을 말씀하시고 실상을 말씀하셨는데, 보혜사 성령을 주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7절입니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약속이 있다면, 메시야 곧 여자의 후손을 보내겠다는 약속, 즉 구약입니다. 구약에는 하나님이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여자의 후손 메시야를 보내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이 구약 전체의 내용입니다.
우리 인생의 문제가 창세기 3장의 문제이기에 하나님을 떠남과 죄와 사단의 권세를 해결하기 위해서, 다른 것으로 안 되기에 여자의 후손을 보내겠다 메시야를 보내겠다. 창세기3:15에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바로 메시야, 그리스도께서 여자의 후손으로 오셔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한다는 것은, 사단의 세력을 박살낸다는 말이며 사단의 머리를 깨트린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여의 후손 곧 메시야의 언약입니다.
이 약속을 붙잡은 사람에게 출애굽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출애굽의 역사가 일어나는 과정가운데 애굽에서 일어났던 10가지 재앙의 역사들이 10가지 문화와 우상으로부터 손 한번 안대고 빠져나온 역사가 바로, 여자의 후손의 언약을 붙잡는 사람에게 일어났고, 이 약속을 붙잡은 사람은 홍해를 건넜고 요단을 건너고 여리고 성을 무너트렸습니다.
그리고 이 여자의 후손, 메시야의 언약을 붙잡은 사람은 출 바벨론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던 것을 성경을 통해 보게 됩니다. 우리에게 주신 구약 최고의 약속 중에 약속이 있다면, 우리 인생의 창세기 3장 문제를 해결하실 여자의 후손, 메시야를 보내시겠다는 사실입니다. 또, 우리에게 주신 축복 중에 축복이 있습니다. 여자의 후손인 메시야가 신약에 그리스도로 오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로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것들을 다 해결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예수가 그리스도시라는 말은, 나의 모든 문제를 완전히 끝내 버리셨다는 말입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시라는 말은, 여러분의 인생의 모든 문제를 십자가에서 모두 못 박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가 내개 그리스도가 되어지고, 그리스도가 그리스도 되어지고 그리스도가 주인 될 때에 기적이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 그리스도 그분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저주와 재앙의 문제를 십자가에서 해결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축복의 이름이 뭐냐? 예수가 그리스도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메시야, 여자의 후손이 오셨는데 그 이름이 예수고, 그분이 오셔서 하신 일이 그리스도의 일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약시대에 주신 축복 중 축복입니다. 그와 더불어 그리스도 이름으로 말세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에게 또 한 가지의 최고의 약속을 주셨는데 바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사도행전1:4-5에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너희가 몇 날이 못 되어서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말씀하시면서 사도행전1:8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말세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에게 주신 최고의 약속 중 약속이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예수의 영이신 성령이 내게 거한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이 땅에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이것을 성육신이라고 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을 몸을 입고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성육신 하신 날이 바로 성탄절입니다. 우리 인류역사상 가장 중요한 날이기도 합니다. 우리 개개인에게도 가장 중요한 날입니다. 그러나 그것 못지않게 더 중요한 날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이신, 하나님의 영이신 그분이 우리 안에 성령으로 임한다는 사실.
그래서 통합 측에서는 절기에 따라서 절기예배가 많습니다. 특별히 성령강림주일이라 해서 아주 중요하게 여깁니다. 실제로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그것 못지않게 중요한 날이, 성령이 임하신 사건입니다. 성령이 임하시지 않으면 2000년 전에 돌아가신 예수님의 죽음이 나와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성령이 내게 임함으로 내게 이뤄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게 성령이 임했다는 것은 엄청난 축복이고 이 사실 그자체가 구원받았다는 것입니다. 내 안에 성령이 임했다는 자체가 구원받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가 없이는 구원의 역사와 생명의 역사가 일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특별히 전도 현장에 있을 때 왜 성령인도를 받기를 간절히 기도합니까? 성령인도를 받지 않고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한 사람이 믿고 예수님께 나옵니까? 내가 개인적으로 믿은 것 같지만 아닙니다. 그 속에는 이미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그 마음을 움직이셔서 예수 그리스도 영접하게 하고 주님 앞에 나오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성령이 아니고서는 예수를 주시라고 시인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야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고 참된 구원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성령이 내안에 거하시는 것을 가지고 내가 구원받았다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 누가 거하신다고요? 성령이 거하십니다. 이 성령은 떠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히 떠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14:16 다른 보혜사를 주실 것을 말씀하시면서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겠고” 17절에 “너희 속에 거하심이라” 구원은 미안하지만 무를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생명 받았습니까? 그 생명은 영원한 것입니다. 바뀌어 질 수 없습니다. 이 엄청난 축복을 받은 자가 저와 여러분입니다.
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되면 내 능력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는데, 우리의 삶이 사도행전의 역사 속에 들어갑니다. 사도행전을 가지고 성령의 역사라 합니다. 전혀 인간의 노력과 열심히 되어진 역사가 아닙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일어난 일이 사도행전의 역사입니다. 진짜 내게 성령이 임하고 성령 충만함을 받아 성령인도를 받으면, 내 삶에 사도행전적인 역사가 일어나는데 환경과 물질에 노예 되지 않고 그 현장을 정복하게 되고 나가는 걸음마다 실제로 사람들이 살아나고 흑암들이 꺾이어지고 문화가 개혁되어지고 미래가 준비되어지고 후대를 살리는 축복, 이것이 사도행전의 축복입니다. 사도행전의 축복은 성령이 임함으로 이뤄지는 축복입니다.
여러분, 초대교회를 보세요.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 성령이 임했습니다. 어떤 역사가 임했습니까? 막을 수 없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바람 같은 불 같은”, 이 말은 무슨 말입니까? 그 어떤 것으로도 막을 수 없는 하나님의 역사, 우리의 무능함과 상관없는 하나님의 역사가 성령이 임하게 될 때에 나타났어요. 뿐만 아니라 나가는 걸음 속에 전에 보지 못했던 영안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사도행전 3장에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에 앉은뱅이를 늘 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성령이 임하니 제대로 보여진 것입니다. 앉은뱅이에게 중요한 것은, 도와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운명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중요한 것임을 본 것입니다. 진짜 볼 것을 본 것입니다. 거기에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볼 것을 본 거예요. 그러면서 성령이 임하니 담대함과 확신이 생긴 것입니다.
여러분, 베드로의 생을 보세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 잡히셨을 때 예수님을 모른다고 3번이나 부인했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4장에서는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게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일이 없음이니라” 이 확신과 담대함이 성령이 임하시니 가능해진 것입니다. 모든 제자들의 가치기준도 달라졌어요. 오히려 예수 이름 때문에 핍박받는 것이 즐거울 정도로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는 조금만 어려운 일이 일어나면, “하나님 내게 왜 이러십니까?” 라고 하기 쉬운데, 제자들은 예수 이름 때문에 오히려 핍박받는 것을 즐거워했다 했습니다. 나가는 곳 마다 현장이 변화되고 제자들이 세워지는 것이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임한 성령은 다른 성령이 아닙니다. 바울과 베드로에게 임했던 성령이 우리 안에도 계신 것입니다. 사실적인 성령의 인도를 받고 성령 충만을 누리면 되는데 이것이 안되는 것입니다. 거의 다 내 생각과 내 기준으로 내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역사할 틈도 없습니다. 문제 왔을 때, 조금만 기다리고 성령인도 받으면 되는데, 그리스도가 그리스도 될 틈이 없는 것입니다. 내 마음대로, 성질대로, 체질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일이 안 되는 것입니다. 분명히 성령이 임하시면 진리 가운데 인도받게 되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것인데, 인도받지 못하니 영광이 나타나는 삶이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령의 인도받는 삶이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류 목사님이 이렇게 지난 주 오후 위성 메시지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정시 기도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내린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정시기도시간 만큼이라도 내 생각, 내 성질, 내 마음대로, 내 체질대로 살아가지 않는 그 시간이 정시기도시간이다”
우리의 생각과 체질과 우리 마음대로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인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살아갑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면 “우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그 실상은 보혜사 성령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할 때 어떤 역사가 일어나는가? 오늘 본문에 보세요. 8절에 보면,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성령이 임하니까 세상을 책망하는데 죄에 대하여 라고 했는데, 죄란 무엇입니까? 거짓말 도둑질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그 자체가 죄입니다. 본문 9절에 설명하고 있습니다.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성령이 임하게 될 때 드러나고 깨닫게 되어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10절에 보면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여러분 의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의가 있습니다. 그 의가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당해야 하는 저주 재앙을 우리의 의 되신 그리스도께서 다 해결하셨습니다. 그런데 성령이 임하게 될 때, 하나님께 가는 길, 의가 되는 이 그리스도 이 부분이 드러나고 이 사실에 성령이 임하게 될 때 심판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11절에 보면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세상임금 마귀는 이미 심판받은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이 임할 때, 드러나게 된다고 말씀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성령이 임하면 세상에는 심판이 이뤄지지만, 하나님의 자녀인 저와 여러분에게는 망하지 않도록 진리 가운데로 우리를 인도하신다 했습니다. 13절입니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여기 보면, 세상을 심판하시고 우리를 대해서는 망하지 않도록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를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습니다. 구원받는 순간 천국 가는 것이 아닙니다. 육신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이 세상 속에서 인도받으며 살도록 진리의 성령으로 인도하시겠다 약속하셨습니다. 세상에는 심판하시지만, 구원받은 저와 여러분은 망하지 않도록 진리의 성령을 주셔서 그 진리 가운데 자유함을 얻고 참된 행복과 평안을 누리도록 인도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결과로 14절입니다.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결국은 영광을 받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이죠. 저와 여러분이 존재케 하시는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음으로 우리 모든 삶에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저와 여러분을 세우셨다는 사실입니다. 직장과 가문 속에 여러분을 왜 세우셨습니까? 다른 것이 아니라, 여러분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보도록 모델로 세우셨습니다. 여러분을 통해 불신자가 보도록, 이 일에 성령의 인도하심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7절에 “실상을 말하노니” 그 실상은 바로 보혜사 성령을 통해서 너희와 함께 하겠다는 것입니다. 사단 마귀의 권세가 이 세상을 지배하는 가운데 우리가 승리하기 위해서는 이 성령의 사실적인 실제성을 붙잡는 여러분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밀하게 인도하시는 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붙잡길 바랍니다.
두 번째 실상입니다. 예수 믿는 것 때문에 어려움을 당합니다. 그러나 여기에 대한 답을 주셨는데, 이것을 붙잡아야합니다. 왜 예수 믿는데 어렵게 되느냐? 예수 믿기에 어려움과 핍박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 믿는 다고 어려움과 핍박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너희가 세상에서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려움과 고난이 있지만, 답을 주셨어요. 잠시 잠깐이라는 사실입니다. 20절 ~22절 말씀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기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여기에 무엇에 대한 이야기 입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에 못 박히심을 가지고 세상은 기뻐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도 잠시 잠깐이라고 했습니다. 잠시 잠깐입니다. 마치 임신한 어머님이 아이를 해산함을 통해 오는 고통인데 그 고통도 잠시지 않습니까. 해산하면 거기에 대한 기쁨을 아이를 낳아본 사람만이 안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런 기쁨에 관련한 이야기를 예수님의 십자가 달리심과 부활에 대해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 우리가 예수 때문에 어려움과 핍박을 당하는 것은 잠시 잠깐이라는 사실입니다. 잠시 잠깐 후면, 너희에게 기쁨을 주시겠다. 했습니다. 그 기쁨을 빼앗아 갈 자가 없다 했습니다. 요한복음 6장에 나오는 것처럼, 우리의 배에서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는 생수의 강같이 흘러넘치는 축복된 은혜를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아무도 빼앗아 갈 수 없는 참 기쁨을 우리에게 주시겠다는 사실입니다.
어려움을 당하고 계십니까? 그 어려움을 보지 마시고 그 이후에 주실 하나님의 축복된 역사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아무도 빼앗아 갈 수 없는 참된 기쁨을 주시겠다 했습니다. 잠시 잠간 후면 주님께서 모든 기쁨을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현장에서 현상으로 인해 속지 마세요. 남편의 핍박에 속지 마세요. 관심 있어서 핍박하는 것이니까, 핍박하면 할수록 “돌아올 시간표가 얼마남지 않았구나” 알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자녀도 마찬가지입니다.
분명히 기억하세요. 잠시 잠깐 이후에는 기쁨이 올 것이기에, 문제에 당면했을 때에, 올바른 복음적인 선택하십시오. 그렇게 될 때 영원한 응답과 축복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잠시 잠깐후면 기쁨이 회복될 것인데, 복음적인 선택을 하지 않으면 결국, 영원한 후회로 빠집니다. 문제와 사건과 일을 당할 때는, 잠시 잠깐 이후에는 기쁨이 회복될 것이기에 복음적인 선택을 하시기 바랍니다.
어제 핵심에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1장에 보면 예루살렘 교회가 베드로가 고넬료 집에 들어가서 식사한 것을 가지고, “어떻게 할례 받은 유대인이 무할례자 집에서 식사를 같이 할 수 있느냐?” 이것이 예루살렘 교회가 가지고 있는 그릇입니다. 문제당하니까 결국 율법으로 돌아가는 것 아닙니까? 거기에 복음으로 시작한 안디옥 교회를 보게 됩니다.
문제와 사건 앞에서 여러분은 복음을 선택하십시오. 그것이 영원한 응답과 축복으로 여러분에게 잠시 잠깐 후에 결론이 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때, 부끄럼 당하지 마시고 복음 선택함으로 참된 축복을 받기를 원합니다. 사도행전 15:36부터 보시면 마가 요한을 전도현장을 데려가는 문제 때문에 바나바와 바울이 심한 다툼을 합니다. 마가 요한이 같이 전도사역을 하다가 중도하차해 버렸습니다. 바울은 이런 사람을 데려갈 수 없다 했는데 바나바는 끝까지 데려가길 바랐습니다. 바로 인본주의·인맥중심 아닙니까?
여러분,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바라봐야 하는데 인본주의 쓰는 것만큼 추한 일이 없습니다. 그것도 모르고 씁니다. 복음적인 선택으로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사도행전16:6-10에 보면 바울이 아사에 가서 복음 전하길 원했는데, 하나님께서 응답하시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 응답이 안 왔을 때, 어떻게 결정하느냐에 따라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가 결정됩니다. 대부분 응답이 오지 않으면 기다리면 되는데 기다리지 못하고 내가 인본주의 쓰고 내 방법대로 나갑니다. 그것이 실패의 요소가 됩니다.
바울은 응답 안 왔을 때, 복음가지고 언약 붙잡고 기도했습니다. 결국 그 걸음이 교회사와 세계사를 바꿔놓는 엄청난 응답으로 주어지 사실을 보게 됩니다. 문제와 사건과 일들 앞에 잠시 잠깐 후면 다 드러나기 때문에 복음을 선택해야 합니다.
사도행전19:8-20에 보면 바울에게 에베소 지역에 엄청난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응답받으면 들뜨지만 바울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 응답 속에서 하나님의 더 큰 계획을 보았습니다. 사도행전19:21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여러분 어떤 문제와 사건을 당하든지 복음적인 선택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분명히 어려움 당하고 문제가 있습니다. 거기에 대한 답을 주셨습니다. 잠시 잠깐 후라 했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신 실상입니다. 잠시 잠깐 후면 하나님께서 그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근원적인 기쁨을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그래서 문제가 오면 웃으시기 바랍니다. 야고보서의 말씀처럼 그 문제가 우리를 온전케 할 것입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축복이 고난이란 가면을 쓰고 오는데, 우리는 고난만 보지 축복은 못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어려움 당할 수 있으나, 잠시 잠깐입니다. 그 후에는 찬된 기쁨, 빼앗아 갈 수 없는 기쁨을 주시게 되어 있습니다.
롬8:28에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했잖아요. 그것이 우리에게 주시는 축복입니다. 지금 안 되는 것 같아도 안 되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 안에 있는 자는 실패도, 실수도,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룸으로 승리하게 됩니다.
마지막 세 번째입니다. 우리에게 실상은, 구원받은 저와 여러분이 기도하면 하나님이 응답하게 되어 있습니다. 마지막 23~24입니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아멘. 하나님의 모든 축복을 누릴 수 있는 비밀이 있습니다. 그 비밀의 이름은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본문에, “너희가 지금까지는 내 이름으로 구하지 않았으나” 지금까지는 우리 욕심으로 기도했지만, 지금부터는 누구이름으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할 때, 엄청난 영적인 역사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하지 않았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내 이름으로” 오늘 이 시간 이후로 예수 그리스도의 그 이름의 비밀을 누리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불신자도 기도해서 응답 받습니다. 결과는 망해서 그렇죠. 불신자도 응답받는데 하나님의 자녀인 저와 여러분이 응답을 못 받는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겠죠. 그래서 오늘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실상을 말씀하시고 있는데, 구원받은 저와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주셨습니다. 그 이름으로 기도 응답받을 수 있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마16:19에 땅에서 메면 하늘에서도 메일 것이고 땅에서 푸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했습니다. 금요전도학교에서도 말씀을 전했습니다만, 그리스도 이름으로 금요전도학교시간에도 말씀드렸지만, “악한 사단 결박 될지어다” 하고 결박만 하지 말고 푸는 기도도 권세 누리시기 바랍니다.
다니엘서 6장에 보면 묶였던 것을 다니엘이 기도해서 풀었잖아요. 결박하는 권세 뿐 아니라, 푸는 권세도 우리에게 그리스도 이름으로 주셨습니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하지 않았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여러분, 자녀가 부모에게 떡을 달라하는데 돌을 줄 자가 있으며, 생선을 달라하는데 뱀을 줄 자가 있습니까? “부모가 악할지라도 자녀에게 좋은 것을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좋은 것,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말씀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 사용하시길 바랍니다. 그 이름 붙잡을 때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고, 하늘 군대가 동원되어지고, 흑암이 꺾여지고 거기에 하나님의 계획과 말씀이 성취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실상입니다.
세상 속에 살아가고 있는 저와 여러분에게 세상 속에서 승리할 수 있는 실상 세 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첫 번째가 성령의 내주·인도·역사하심입니다. 두 번째가 그 어떤 어려움과 문제 앞에서도 흔들리지 마시고, 당황하지 마시고, 방황하지 마시고, 속지 마시고 잠시 잠깐 후면 참된 기쁨을 주실 것입니다. 이 실상 붙잡으시고, 그래서 그 기쁨을 가지고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어지고요, 믿지 않는 자들이게는 증거가 될 것이고 그것이 우리에게는 유익함이 되어질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실상 중에 실상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응답 받을 수 있는 특권입니다. 이것이 실상입니다. 이 마지막 시대, 어려움을 당하는 시대에 우리가 승리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주신 실상 붙잡고, 이번 주간에 여러분의 모든 현장 속에서 도전하시고 승리하는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실상 붙잡고 참된 신앙생활의 축복 가운데 하나님의 역사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도록 세워 주심을 감사함을 드립니다. 주님 오시는 그날 까지 성령의 내주·인도·역사하심을 누릴 수 있도록 도와 주옵시고, 문제와 사건 앞에서 복음적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시며, 예수 이름으로 참된 기도의 응답을 누릴 수 있도록 주의 백성들을 축복하여 주옵소서. 이번 한 주간에도 주신 실상 가지고 현장에서 도전하며 승리케 되어지는 온 성도들이 되도록 축복해 주시옵소서.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서론: 이 땅에 보이는 모든 것이 참 중요하나 보이지 않는 영적인 것에 의해 되어졌습니다(히11:1-3). 신앙생활 하면서 실상과 허상을 알고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허상을 잡고 신앙생활 하다 결국 헛된 삶을 살게 됩니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실상을 붙잡는 것이며, 이것이 세상에서 승리하는 비결입니다. 실상 중 실상은 예수가 그리스도시라는 사실, 그리스도 이름으로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 그리스도로만 임하는 성령의 충만함입니다. 본문에도 중요한 실상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믿는 자들이 출교 당하고 죽임 당할 것을 다 아시고 예수님은 이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는 실상(세 가지)을 말씀하셨습니다.
1. 성령의 내주, 인도, 역사
1) 보혜사 성령을 우리에게 주실 것을 말씀했습니다(7절).
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약속은 메시아를 보내시겠다는 것(구약 전체 내용)
② 우리에게 주신 축복 중 축복은 메시아가 신약시대에 그리스도로 오셔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신 것
③ 말세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성령이 충만히 임하는 것(행1:4-5, 8)
2) 성령충만함 받은 자는 성령의 인도 받습니다.
①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 없이는 생명 얻는 구원의 역사가 일어날 수 없음(고전12:3)
② 성령은 영원히 떠나지 아니하시며 생명의 역사는 영원함(요14:16-17)
③ 삶이 사도행전의 역사(현장 정복, 인생 구원, 흑암 결박, 문화 개혁, 미래 준비, 후대 구원) 속에 들어감
④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삶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남
3) 보혜사 성령이 임할 때 역사가 일어납니다.
① 성령 임하면 세상에는 심판이 이루어지지만, 의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하나님 자녀는 망하지 않도록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심(8-11, 13절)
② 세상에서 사는 동안 진리의 성령으로 인도하셔서 평안 누리게 하시고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심(14절)
2. 예수 믿는 것 때문에 어려움 당하지만 잠시, 잠깐 후에 참된 기쁨을 주십니다.
1) 잠시, 잠깐 당하는 어려움입니다.
① 예수 믿기 때문에 환란을 당하나 잠시, 잠깐 후에 기쁨을 주실 것이며 뺏을 자 없음(20-22, 33절, 요7:38)
② 현상 앞에서 속지 마시고, 잠시 후면 전부 드러나기에 문제와 사건 앞에서 복음적인 선택을 하시기 바람
2) 어떤 문제가 있어도 잠깐 후에 아무도 뺏을 수 없는 근원적인 기쁨을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① 문제(시험)가 우리를 온전케 함(약1:2-4)
② 복음 안에 있는 자에게는 실패, 실수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심(롬8:28)
3. 구원 받은 자가 기도하면 하나님이 기도에 응답하게 되어 있습니다(23-24절).
1) 하나님의 모든 축복을 누릴 수 있는 비밀이 그리스도입니다(24절, 마16:19, 단6장, 마7:9-11).
2) 그리스도 이름 부를 때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고 하늘 군대가 동원되며 흑암이 꺾이고 하나님의 계획이 성취되게 됩니다.
결론: 세상 속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주신 실상 세 가지 증 첫 번째는 성령의 내주, 인도, 역사입니다. 두 번째는 어떤 문제를 만나도 잠시, 잠깐 후면 참된 기쁨을 주실 것이라는 겁니다. 이 기쁨은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고, 믿지 않는 자에게는 증거가 되고, 우리에게는 유익함이 될 것입니다. 세 번째는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응답 받을 수 있는 특권입니다. 이 실상들을 붙잡고 모든 현장 속에서 도전하시고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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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7 | [2025 송구영신예배] 하나님의 유업을 이을 자 | 갈4:4-7 | 2024-12-31 | |
1466 | 땅의 모든 사람을 다스리시는 하나님 | 단4:28-37 | 2024-12-29 | |
1465 | 완전한 승리를 내 것으로 누리는 성탄 | 눅2:8-14 | 2024-12-22 | |
1464 | 언약의 역사를 계속 이어가고 계시는 하나님 | 단3:8-18 | 2024-12-15 | |
1463 | 손대지 아니한 돌 | 단2:25-35 | 2024-12-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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