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다 이루었다(3)(신봉준 목사)
2008-09-0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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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 할렐루야! 인사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2부 찬양대 은혜로운 찬양 감사합니다. 성도님들과 찬양대, 그리고 렘넌트들이 하나님의 소원에 눈이 열려지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 12차 선교대회가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삼일동안 경기도 일산 킨텍스를 비롯해서 총 4개 타운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총 45개국에서 선교사님들이 참석하셨고 전체 3700여명이 은혜가운데 말씀잡고 전 세계 현장으로 나가기위한 결단의 시간이었습니다. 교역자들이 전체 함께 참여하고 성도님들이 참여해서 귀중한 하나님의 선교를 향한 소원과 시간표를 보는 중요한 시간이었습니다. 특별히, 이번에 선교대회 때 전달되어진 메시지를 구입하셔서 나름대로 정리하시고 여러분 개인이 받아야할 응답이 거기 있는 것이고, 선교사님들을 파송해놓고 또한 위해서 기도할 제목들이 말씀 속에 있습니다. 여러분의 기도제목으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세 번의 강의를 주셨습니다. 첫 번째 강의가 「중직자 시대와 전도」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주셨고, 두 번째 강의가 「중직자 시대와 선교」 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주셨으며, 세 번째 강의가 「중직자 시대와 사명」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주셨습니다. 가장 핵심은, 바로 중직자들이 살아나야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야 전도도, 또한 선교도 되어지게 된다는 사살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살아나야 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힘을 얻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야 전도와 선교의 축복을 누릴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특별히 중직자 분들이 하나님의 역사를 봐야 하는데, 어떤 부분에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해야 하는가? ‘진짜 현장에는 전도할 사람이 있구나!’ 이 사실을 체험해야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눈이 열려질 부분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황금어장에 대한 눈이 열려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세계 보는 눈이 열려져야 할 것을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나름대로 교회 일을 한다고 합니다만, 하나님이 정말 원하시는 역사를 체험하지 못하면 열심히 하는 그것이 오히려 교회에 폐를 끼치게 되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어느 누가 교회를 어렵게 하고 교회에 폐를 끼치고자 하겠습니까? 나름대로 응답받으려 하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기위해 몸부림 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응답받고 인도받게 되느냐? 실제로 현장에는 ‘전도할 사람이 있고 전도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봐야 되는 것입니다. 현장에는 ‘예비 된 황금어장들이 있다’는 것을 봐야 하며, 그와 더불어 세계를 보는 눈이 열려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눈이 열려지고 체험되어지는 만큼 모든 것이 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 축복된 체험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으로 들어가서, 10장에 예수님이 마지막 하시는 말씀입니다. “다 이루었다” 선언하시고 나서, 완전한 죽으심이 나오고 있습니다. 죽었다면 아무 힘이 없고 끝나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죽음의 현장 속에서 사람들이 변화되어지는 역사가 예수님의 죽음의 그 현장 속에 나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다 이루었다」이라는 제목으로 두 가지를 살펴 보려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이길 수 있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두 번째로 죽음도 하나님의 역사를 막을 수 없다는 사실. 이 두 가지로 함께 말씀을 생각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면서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와 아무도 거부할 수 없는 문제 즉, 그 어떤 것으로도 손 쓸 수 없는 문제들이 인생에 있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운명과 영적인 문제라고 합니다.
영적인 문제란, 우리 인간이 어찌할 수 없고, 거부할 수 없으며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영적인 문제라 합니다. 하나님이 왜 예수를 보내셨나? 감기나 육신의 문제 해결을 위해서가 아니라, 절대 인생이 해결할 수없는 영적문제 해결하시기 위해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는 먼저, 영이 변화됩니다. 다시 말하자면, 악한 사단의 지배아래 있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순간에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지는 것이고 하나님의 성령께서 거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3:16에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순간에 하나님이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오시고 사단의 영에 인도받던 자들이 하나님의 영에 인도받는 자들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절대 해결할 수 없는 신분이 바뀌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내 안에 들어오심으로 말미암아 절대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조금만 눈을 열어서 현장을 살펴보십시오.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 있지만, 모든 인생들이 결국 사주와 팔자와 운명이라는 영적문제에 붙잡혀서 거기에서 결정하고 행동하고 생각하고 판단하며 모든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 운명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영이 내 안에 들어오심으로 가능합니다.

여러분, 점쟁이들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의 말이 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같은 날, 같은 시에 태어난 쌍둥이도 사주, 팔자, 운명이 다르다고 합니다. 분명히 우리 인생에는 운명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운명대로 살아가고 그 운명대로 어려움 당하고 실패하게 됩니다.
여러분, 이 어려움에서 빠져나갈 길이 있다면 그 길을 택해야 할 것 아닙니까? 하나님의 능력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신 역사는 절대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이게 이루신 역사는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절대 거부할 없는 운명의 문제를 그리스도가 해결하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고린도전서1:18에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어떤 능력이냐? 우리의 신분을 바꾸는 능력입니다. 신분을 가지고 흑암의 세력과 권세를 꺾을 수 있는 능력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에서 이루신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이 사실을 알지 못하니까 모든 인생들이 어려움 당하면 점쟁이 찾아 굿을 하고 제사 섬기고 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내 안에 들어오셔서 완전 자유케 하시고 하나님의 성령께서 인도하신다고 약속하셨는데,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니까, 미래를 알아 맞춰주는 무속에 속아서 멸망의 길을 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어려움 당하면 세상 사람들이 점쟁이 찾아가고 굿을 하고 그것이 해결책인양 모든 힘을 쏟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는 이 모든 마귀의 일을 멸할 수 있는 권세를 하나님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드렸다는 사실입니다. 제사 안드려도 됩니다. 추석을 앞두고 제사문제가 대두될 것입니다. 오늘 오후에 기도수첩을 돌아가실 때 받아 보시겠습니다만, ‘즐거운 명절, 피스 메이커가 될 것인가? 트러블 메이커가 될 것인가?’ 그리고 ‘제사와 추석에 관한 올바른 이해’ 라는 제목의 중직자 편지의 내용을 주간 기도수첩에 기재할 것을 출판국에 부탁을 했습니다.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제사 문제들, 제사 안 드려도 되는데 몰라서 멸망의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점보지 않고 굿하지 않아도 되는데 몰라서 하고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문제 해결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게 하심으로 우리의 운명의 문제를 끝내신 것입니다. “다 이루었다” 십자가에서 완전히 죽으심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새 길을 열어놓으신 것입니다.
어느 정도로 죽었느냐? 십자가에 달리는 것이 그 당시 최고의 형별이었습니다. 어떻게 사람을 고통스럽게 죽일 것인가? 의 연구 결론이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좌우편에 강도 두 사람이 함께 달리게 되었죠. 유대인들이 유월절 안식일이 가까왔음으로 안식일 저에 시체를 정리하기 위해 빌라도에게 시체를 정리해줄 것을 부탁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빌라도가 군인들을 시켜 시체를 정리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예수님 좌우편에 있던 자들은 다리 좌우의 뼈가 꺾여졌으나, 예수님은 다리뼈가 꺾이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성경을 응하게 하심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완전한 죽으셨기에 다리를 꺾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활절에 듣는 메시지입니다만, 제자들이 예수님에 대한 기대가 있었기에 환상설과 기절설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보면, 완전히 죽으신 것입니다. 군인이 예수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렸는데 물과 피를 다 쏟으셨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뼈를 꺾어 죽였지만, 예수님은 뼈가 꺾어지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었다 선언하시고 완전히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죄와 저주 재앙의 문제와 운명의 문제를 다 끝내버리신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의 축복입니다.
분명히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제사 안 지내도 되고, 굿 안 해도 되며 점쟁이 안 찾아가 가도됩니다. 악한 사단이 이것을 가지고 속이므로 우리 인생을 멸망의 길로 실패의 길로 끌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점하고 굿하는 것은 우리를 멸망시키기 위한 마귀의 일입니다. 고린도전서10:20에 조상에게 제사하는 것이 아니라, 귀신에게 하는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에 예수님이 오신 것 이유는 요한일서3:8에 “ ” 십자가에 완전히 죽으심으로 마귀의 일 곧, 점하고 굿하는 마귀의 일을 해결하셨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안의 축복입니다. 참된 자유한 축복을 누리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뿐만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름대로 자기 기준대로 살아간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나름대로 뭔가 계획한 대로 살아간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가만히 살펴보세요. 전부 과거 상처에 메여 있습니다. 거기에 묶여 있어요. 이미 지난 일인데, 과거 상처가 현재에 영향을 주고 미래까지 장악해버립니다. 얼마나 힘이 있는지, 이미 지나간 일임에도 우리의 현재와 미래도 그 상처 때문에 어려움 당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또, 많은 사람들이 현실적으로 고통이 있고 고난이 있습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미래에 대한 염려와 불안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래에 대한 염려들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을 다 가지고 살아가요.

여러분,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이 과거의 상처와 현재의 고난과 고통과 미래에 대한 염려, 불안 모든 것을 다 해결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분명히 기억하실 것은, 우리는 이 땅에 속한 자가 아닙니다. 이 땅에 발을 디디고 살아가고 있지만 하나님께 속한자요 하나님의 성령의 인도 받는 자입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 우리가 있기에 우리에게 어떤 일이 있어도, 어떤 과거의 상처도 우리를 실패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속지 마세요.
여러분, 미래에 염려와 불안이 있습니까?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어떤 현실적인 고난과 고통이 우리를 망하게 할 수 없어요. 로마서8:38-39 바울의 고백입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여러분, 현실적 고난과 고통 때문에 미래 대한 염려들과 불안들, 또 과거 상처들로 짓눌러 져 있습니까? 주님께서는 다 끝내버리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그 부분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이 우리 안에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 노예로 갔습니다, 언약을 주었지만 언약을 깨닫지 못하니 노예로 전락하게 되었습니다. 모세로 말미암아 다시 나오게 되는 내용이 성경에 나옵니다. 애굽에 종살이 할 때, 그 속에서 하나님이 축복하셨습니다. 그 축복하신 증거가 성경에 나와 있는데 출애굽기1:7에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하고 불어나 번성하고 매우 강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노예로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이 어떻게 축복하셨느냐? 환경 상관없이 축복하셨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생육하고 불어나 번성하고 매우 강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하나님의 축복이 자손들이 번성하여 온 땅에 가득하도록 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안 바로 왕 마음에 근심이 생겼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숫자가 많아지면 애굽과 전쟁을 벌여서 지게 된다면 이들은 통제할 수 없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말이죠.
그래서 대책을 세웠습니다. 애굽 왕이 산파들에게 “히브리인 여자가 낳은 아이 중 남자가 나면 모두 죽이라” 그 왕명을 가지고 산파들이 아이들을 받아내는데, 하나님께서 이 히브리 여인들을 두렵게 하셨고, 이 히브리 여인들에게 은혜를 주셨습니다. 결국, 산파들로 말미암아 히브리 여인들이 낳는 아이들을 보호하도록 하셨는데, 이것이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에게 주시는 축복입니다.
그 어떤 힘 있는 자도, 그 어떤 권세 있는 자도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들을 어찌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시면 그 축복을 막을 자가 없다는 사실이며 하나님의 능력을 막을 자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지금 앞에 것을 보면서, 현실의 것을 보면서 뒤에 엄청난 역사를 바라보지만 바라보지 못해서 속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세상과 세상의 힘을 이길 힘이 누구에게 있습니까?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이 축복을 회복하는 여러분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사실 우리 인생이 늘 어렵잖아요. 우리가 복음, 복음 이야기 하지만, 우리에게 문제는 늘 있잖아요. 그 문제와 어려움과 부분들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해야 이 땅에서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이름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연약하지만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할 때, 우리의 형편과 환경과 상황에 상관없이 현장 속에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도록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이름을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제일 힘든 것이 있다면, 집안에서 입니다. 복음, 복음 이야기 하지만 어려움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집안에서 제일 어렵습니다. 추석명절에 복음 안에서 하나 되어진 가정은 만남의 축복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가정도 많은 것을 보게 됩니다.
추석 때가 되면 같이 찾아뵙는 것 자체 부담을 가지고 있는 가정도 있습니다. 그래서 추석 지나고 나면 뭔가 모르게 눌려서 힘이 다 빠지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한마디로 추석은 오히려 전운이 감도는 현장이기도 합니다. 뭔가 말은 하지 않고 있지만 내면에는 전운이 가도는 현장으로 전락되기도 했습니다. 모두 가정 안에서의 문제 아닙니까?

여러분, 분명히 언약을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모든 환경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 라고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내게 응답 하실 수 있고 축복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이 자리에는 2부 예배 때마다 렘넌트들이 많이 참여합니다. 렘넌트들은 꼭 기억하세요. 렘넌트들이 가장 갈등하는 부분은, 부모와 맞지 않는 부분들에서 오는 갈등입니다. 여러분, 갈등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내게 있는 갈등들 때문에 많은 것을 놓치고 있고 응답들을 못 보는 것입니다. 렘넌트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부모와 맞지 않는 갈등들을 오늘 이 시간에 답을 얻어야 합니다. 갈등들을 회피하면 사실, 늘 그 부분에 빠지게 되고 그것 때문에 실패하게 됩니다.
갈등하는 그 부분을 여러분의 발판삼고, 갱신의 기회로 삼고, 하나님의 계획에 목표를 붙잡는 기회로 삼고 갈등하는 부분을 메시지를 붙잡고 응답받지 못하면, 그 부분들 때문에 오히려 부모보다 더 못한 사람이 될 수 있고 부모가 걸어간 걸음들을 그대로 걸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꼭 기억하세요. 렘넌트의 갈등은, 신앙 안에서 갈등인데, 부모님들이 복음을 강조해요. 저도 그렇지만 자녀에게 복음을 ‘강조’하지만 그 복음을 누리지 못하면 ‘눌림’이 됩니다. 이 속에서 갈등을 가지고 있고 뿐만 아니라 부모님들이 복음을 강조하는반면, 부모님들의 선택과 말하는 것 보면 율법입니다. 여기에 자녀들이 갈등을 느끼는 것입니다. 청소년기에는 가졌던 부분 아닙니까? 환경을 회피하고 싶고 그래서 어디론가 떠나가고 싶은 감정 말이죠. 사실, 그것이 속는 것입니다.
그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한다면 다른 것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축복의 통로가 되는데, 그 속에서 회피하면 문제 속에 빠져서 늘 사단의 통로가 열려져서 응답과 축복을 누리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부모님이 가지고 있는 율법적 부분 때문에 아이들이 갈등들을 하고 있습니다.
또, 규모에 대해 메세제와 성공자의 체질에 대한 메시지가 계속 나오는데 부모님들은 “잘 되었다” 하면서 자녀에게 규모를 강조하고 있지요. 그 자체도 복음의 누림이 안되어 있다면 자녀에게는 눌림이 되요. 어떤 면에서는 다락방의 청소년들이 보통 아이들 보다 더 눌려요. 복음 안되어서 눌리고 율법으로 눌리고 규모 때문에 눌려서 숨 쉴 틈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렘넌트들이 처한 환경입니다.

분명한 것은 렘넌트들이 먼저 이해하셔야 합니다. 렘넌트가 부모님들이 그렇게 될 수박에 없는 영적인 배경들을 이해하셔야 합니다. 부모님들이 살아온 영적인 배경, 역사적 배경, 종교적 배경을 이해해야 합니다. 이해하면 그것을 수용하게 되고 초월하게 됩니다. 그렇지 않는 한, 늘 그 부분 때문에 갈등하게 되고 그 갈등 때문에 모든 것을 놓치게 됩니다.
반면, 이해하고 수용하며 초월함으로 넘어서게 되어서 발판 삼아야 합니다. 응답과 성공의 발판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부모의 싫은 모습 그대로 시간이 지나보면 그렇게 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내 부모는 그렇게 살았을지라도 나는 그렇게 살지 않겠다’는 완전한 결단과 갱신이 필요합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것을 바라보고 위에 것을 목표삼고 살아야겠다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그 속에 응답과 승리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어떤 환경과 어려움과 갈등이 문제가 안된다든 사실입니다. 체험하게 되면 다른 부분에도 응답받게 되는 길이 열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도망치고 회피하게 되면 그 문제 때문에 어려움과 실패하게 됩니다. 여러분, 문제와 갈등 속에서 복음으로 도전하는 렘넌트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른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어려움과 문제 있다면 거기서 하나님을 체험해야 다른 곳에서도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되어 있습니다. 도망치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복음잡고 도전함으로 살아계신 역사를 체험해야 된다는 사실. 환경이 하나님의 복음의 역사를 막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힘으로 안되기에 그리스도의 이름을 주셨습니다. 그 이름으로 기도하며 나갈 때, 하나님이 역사하시며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분몬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었다” 하나님의 능력을 막을 그 어떤 것도 이 땅에는 없다는 사실입니다.

두 번째입니다. 죽음도 막을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은 죽음을 통해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고, 또한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는 것을 보게 되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하나님의 새로운 시작이요, 축복의 출발인 것을 보여지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상에 있었던 백부장의 고백을 보세요. 예수님의 죽음의 현장에 있었던 백부장의 고백이 마가복음15:39에 “예수를 향하여 섰던 백부장이 그렇게 숨지심을 보고 이르되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죽음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역사는 나타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23:47에 보면 “백부장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 죽음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되어 집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도 나오는 38절에 아리마대 사람 요셉에 대해 성경이 말씀하길, 예수님의 제자였으나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숨기는 자였다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였고 엘리트였으며 젊은 사람이었습니다. 또 어느 정도 경제력도 가지고 있었던 자였습니다. 본문에 보면 예수님의 무덤을 이 아리마대 요셉이 내놓게 되죠. 아리마대 요셉이 자신의 무덤으로 삼으려고 매입 했던 무덤에 예수님이 장사되었습니다.
어떤 면에서 자기 사회적 위치 곧 자리와 공회회원으로써의 가지고 있는 부를 잃어버릴까 해서 예수를 믿는 것과 제자임을 숨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죽음 앞에 숨기고 있던 것을 이 아리마대 요셉이 드러냈어요. 가만히 있어도 됩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의 죽음 앞에 드러냈습니다. 죽음도 하나님의 역사를 막을 수 없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며 조금 어려움당하고 손해되는 일이 있으면 안 믿는 척하고 교회도 안 나오는 것이 우리 신앙인데, 오늘 성경에는 예수님의 죽음 앞에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두려워서 숨은 것을 가지고 재산을 내놓았습니다. 죽음 앞에서도 하나님은 역사하시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39절에 니고데모가 나옵니다. 요한복음 3장에 니고데모가 밤에 예수님께 찾아왔죠. 이 니고데모도 처음에는 공회의 회원으로 젊고 깨끗한 사람이었으나 영적으로 갈급함이 잇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밤에 예수님께 왔죠.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을 향해 몰약과 침향을 내 놓았습니다. 돈으로 계산해보면 어마 어마한 것이고, 내용으로는 자기의 장례를 준비하기 위한 장례용품입니다. 이것을 예수님을 위해 내어놓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죽음도 하나님의 역사를 막을 수 없는 부분을 보게 됩니다. 진짜 복음의 역사가 나타나게 되면, 비굴하고 연약하며 나약한 사람이 자신을 나타내게 되고 주님을 위해 순교도 각오하게 되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한번 받아합시다. “죽음도 하나님의 역사를 막을 수 없다. 신약에 바울을 보세요. 물론, 모든 신약의 증인들이 같은 인물이 있지만, 예수님의 죽음 앞에 바뀌어진 인생이 되었습니다. 갈라디아서2:20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자기 자신이 십자가에 예수님과 함께 못 박혔다고 고백했습니다. 완전히 인생이 바뀌어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뀌어지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바뀌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예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저와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모든 저주와 사주 팔자 운명의 문제를 끝내버리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문제와 육신적인 문제로 고통당하지 않도록 다 끝내버리셨습니다. 내가 십자가에 못 박힌 사실을 알 때, 그 속에서 새로운 생명의 역사가 시작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특별히 이번 한 주간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는 그 어떤 것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체험하는 한 주간되길 바랍니다. 죽음도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를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가정의 형제를 만나는 중요한 만남들이 이뤄집니다. 여러 가지 환경들을 당면할 것입니다. 만남과 환경, 그 어떤 것도 복음의 역사와 하나님의 역사를 막을 수 없습니다. 그 능력이 저와 여러분 안에 있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체험함으로 이번 한 주간 현장 속에서 승리하는 여러분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은혜와 사랑을 감사함을 드립니다. 우리 안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뤄진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 그리스도 이름으로 나갈 때마다 흑암이 꺾여지고 하나님이 일하시는 이 역사는 그 어떤 것으로도 땅의 것, 운명의 것, 또 그 어떤 환경으로도 막을 수 없는 하나님의 역사인 것을 알게 하시고, 이 사실을 이번 한 주간 모든 현장 속에서 누릴 수 있는 축복이 있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특별히 우리에게 있는 문제와 어려움과 갈등들을 완전한 발판으로 삼게 하여 주시고, 완벽한 갱신의 기회로 삼게 하시고, 완벽한 하나님의 목표를 붙잡는 기회로 삼게 하시고 완벽한 감사를 회복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도록 주님이 축복하여 주옵소서. 특별히 이번 한 주간 오고가는 모든 걸음 속에 또 모든 만남 속에 ‘다 이루었다’ 선언하신 하신 말씀의 성취가 체험되어지는 귀중하고 복된 한 주가 되도록 축복하여 주옵소서.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서론: 본문에 예수님께서 “다 이루었다” 하시고 나서 완전히 죽은 것으로 나옵니다. 죽었다면 아무 힘이 없고 끝나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죽음의 현장에서 사람들이 변화되는 역사들이 일어났습니다. 본문 해 두 가지를 말씀 하려 합니다.

1. 어떤 것도 하나님을 이길 수 없다.
1) 이 땅에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보내셨습니다.
① 우리 인생에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있음 - 운명, 영적문제
② 인생이 절대 해결할 수 없는 이 문제를 해결하도록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음
③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자는 영이 변화됨(성령내주⟶신분변화, 고전3:16)
④ 마귀이 일을 멸하고 운명의 문제를 끝냈을 뿐 아니라(요일3:8), 우리에게도 그 권세 주심
⑤ 과거의 상처와 현재의 고난과 미래에 대한 염려, 불안을 모두 해결하시기 위해 오심
2)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자요 성령의 인도 받는 자들입니다.
① 우리에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 거하기에 그 어떤 것도 우리를 망하게 할 수 없음(롬8:35)
② 과거의 상처, 현실적 고난, 미래의 염려를 이길 수 있는 능력이 우리 안에 있음(출1:7)
③ 세상과 세상의 힘을 이길 힘이 하나님 안에 있음
④ 어떤 어려움과 문제 있어도 복음 붙잡고 도전할 때 하나님의 능력 역사 체험할 수 있음
⑤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승리를 주심

2. 죽음도 하나님의 역사를 막을 수 없다.
1)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하나님의 새로운 시작이며 축복의 출발입니다.
2) 죽음을 통해서도 새로운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① 백부장은 예수님의 숨지심을 보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함(막15:39, 눅23:47)
② 예수님의 죽음 앞에 두려워 숨던 아리마대 요셉이 자신을 드러냄(38절)
③ 영적 갈급함 때문에 예수님을 찾아왔었던 니고데모도 자신을 위한 장례용품을 내어놓음(39절)
④ 예수님의 죽음 앞에서 바울의 인생이 바뀜(갈2:20)
3) 죽음을 통해 모든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①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 개인의 인생이 바뀜
② 십자가 죽으심으로 인생의 모든 저주와 재앙, 사주팔자, 운명, 정신적‧육신적 문제를 모두 끝냄

결론: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는 그 어떤 것도 막을 수 없습니다. 이 사실을 체험하십시오. 죽음도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를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체험하십시오. 이번 주간 가문의 형제들을 만나는 중요한 만남이 이뤄집니다. 여러 가지 환경을 당면할 것입니다. 그러나 만남과 환경, 그 어떤 것도 복음의 역사와 하나님의 역사를 막을 수 없습니다. 그 능력이 우리 속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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