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나의 구원이시여(신)
2009-04-26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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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렐루야! 축복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감사합니다. 지난 주간에는 제 12차 산업인 대회가 덕평 총신에서 진행이 되어졌습니다. 주일저녁부터 시작해서 수요일 저녁까지 총 1300여명의 목회자들과 산업인들이 참석해서 언약의 말씀을 붙잡고 인도받는 중요한 시간들이었습니다.
특별히, 이번 산업인 대회는 처음으로 중직자들과 산업인들 중심으로 해서 현장전도캠프가 현장에서 하루 동안 진행되었고 메시지 가운데 중간시간에는 지금까지 RUTC에서 기도해 왔습니다만 RUTC건립 부지를 기도하며 밟는 중요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우리 교회 산업인들이 많이 참석해서 감사드리고, 또한 교회에 속한 선교사님들이 참석하셨고 해외 지교회인 일본, 중국, 방글라데시에서 지교회를 담당하고 계시는 장로님들이 함께 참여하셔서 말씀으로 은혜 받는 축복된 시간이었습니다.
특별히 「산업인의 세 가지 응답」이란 제목으로 말씀으로 주셨습니다. 과거, 현재(오늘), 미래에 대해 세 가지 부분에서 말씀을 주셨습니다. 산업인들이 이 한해 붙잡고 기도하면서 응답받아야 할 부분이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산업인 아닙니까? 가정을 책임지는 산업인이고, 자녀들을 책임지는 산업이고, 그래서 우리 모두가 다 함께 인도받아야 할 메시지로 중요한 말씀들이 전달되었습니다. 「과거에서 벗어나라」, 「산업인의 오늘」, 「산업인의 미래」란 제목으로 말씀을 받았습니다.
혹여나 말씀을 받지 못한 분이 있다면 어떤 통로를 통해서든지 말씀을 정리하셔서 여러분 개인과 가정과 사업에 사실적인 하나님의 응답이 있기 위해 기도하면서 언약으로 잡게 되길 기도합니다. 특별히 산업인들로서 앞으로 하나님이 역사하실 것을 바라보면서, 준비해야 할 것이 어떤 것인가의 중요한 말씀들을 주셨습니다. 말씀을 나름대로 정리하시고 실제적인 응답들이 여러분의 산업 현장에 일어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을 따라 본문 마지막 절을 제목 삼았습니다. 22절을 보시면, “속히 나를 도우소서 주 나의 구원이시여” 이 부분을 가지고 함께 말씀에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다윗이 고난 중에 하나님만이 구원자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일생 중에서 가장 고통당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부분입니다. 본인이 범죄하고 죄악의 깊은 수렁에 빠져서 그것으로 인해 엄청난 육신적인 질병들이 찾아왔고, 가까이 있는 사람들과 친척들이 자기를 떠나는, 정신적인 고통이 찾아오게 되고, 그것으로도 끝나지 않고, 영적으로 흑암의 세력들이 총공격해오는, 어마 어마한 공격당하는 것을 본문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육신적인 질병과 또, 정신적인 고통, 거기에다가 흑암의 세력이 총 공격해오는 삼중고의 고통가운데서 다윗이 어떻게 이 사실들을 잘 감당했는가를 우리에게 오늘 본문을 통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앉은 저와 여러분이 당하는 문제는 다윗과 같은 문제가 아닐지라도, 각기 모양은 다르지만 문제와 사건과 여러 가지 사건이 있을 것입니다. 거기서 우리가 어떻게 승리할 것인가? 중요한 답들을 오늘 본문을 통해 잡아 나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앞으로 세계복음화를 위해 나가는 걸음 속에 세계복음화를 이루는 가정 속에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것을 많이 보게 하실 것이고 또, 체험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런 것들 가운데서 우리가 어떻게 승리할 것인가? 물론 우리에게는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윗이 당한 고난과 고통이 올 수도 있습니다. 창세기 3장 현장에 있기 때문에, 저와 여러분에게도 똑같은 고난과 고통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고난과 고통가운데 어떻게 승리할 것인가? 오늘 다윗이 승리한 부분들을 붙잡고 우리가 승리할 귀한 답을 얻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분명한 것은, 더 큰 어려움과 고난이 온다 할지라도 반드시 승리를 약속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저와 여러분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와 더불어 세계복음화의 일꾼으로 하나님이 문제와 사건을 통해 다듬으시고 만들어 가실 것을 확신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떻게 하면 문제와 사건 속에서 다윗처럼 승리할 수 있을 것인가? 이 축복을 붙잡아야 할 것입니다.
먼저 오늘 본문에 보면 다윗에게는 몇 가지 확실한 것이 있었습니다. 다윗은 자기가 지금 당하고 있는 고난과 고통의 모든 문제들이 주님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사실을 이야기 하면서 마침내 하나님을 완전히 바라보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로 서게 되는 것을 오늘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1절과 3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여 주의 노하심으로 나를 책망하지 마시고 주의 분노하심으로 나를 징계하지 마소서 주의 화살이 나를 찌르고 주의 손이 나를 심히 누르시나이다 주의 진노로 말미암아 내 살에 성한 곳이 없사오며”무슨 말입니까? 모든 것의 시작이 주의 손으로 시작된 것을 말씀하면서 마침내 완전히 하나님을 의지하고 바라보는 사람으로 세워지게 된 사실을 고백하게 되는데요. 22절에 “속히 나를 도우소서 주 나의 구원이시여”완전하게 하나님만 바라보게 되는 사실들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또, 그런 가운데서도 다윗은 내 기도와 내 고통과 내 호소를 반드시 하나님이 들어 주실 것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은혜죠. 구원 받은 자의 특징이고요. 정말 구원받은 자는 아무리 어려워도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주님이 이 상황을 아실 것이고, 주님이 이것에 대한 응답을 주실 것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이 이 은혜를 입었습니다.
오늘 본문 9절에 보면, “주여 나의 모든 소원이 주 앞에 있사오며 나의 탄식이 주 앞에 감추이지 아니하나이다”분명히 자기의 소원과 호소와 고통을 주님께서 들으실 것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다윗은 어떤 사단과 흑암의 공격 앞에서도 하나님만 바라보겠다는 결단을 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13절부터 15절에 설명하고 있습니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나는 못 듣는 자 같이 듣지 아니하고 말 못하는 자 같이 입을 열지 아니하오니 나는 듣지 못하는 자 같아서 내 입에는 반박할 말이 없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주를 바랐사오니 내 주 하나님이 내게 응답하시리이다” 아멘.
흑암과 사단의 공격 앞에서도 하나님만 바라보는 다윗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결국 다윗이 “하나님만이 나의 구원자가 되십니다” 고백하게 됩니다. 그 고통과 고난 속에서도 승리하는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저와 여러분이 어떻게 다윗처럼 문제와 사건과 고통 속에서 승리할 수 있을 것인가? 두 가지로 말씀을 생각하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완전복음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두 번째로 복음 가진 자가 당하는 문제와 사건과 고난과 고통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이 부분들이 되고 이 부분들을 찾아낸다면 저와 여러분도 문제 있음과 상관없이 다윗처럼 완전한 승리의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 축복을 누릴 것인가?
첫 번째입니다. 완전 복음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시편 38편에 있어서 많은 성경학자들은 다윗이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범한 사건 이후 그 죄로 인한 죄책감 때문에 지은 시다. 죄와 죄책감 가운데 고통 중에 지은 시로 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윗이 왕이 되어서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게 되는 실수의 자리에 들게 되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또 한 가지는 오늘 본문에 읽어보면, 다윗이 얼마나 죄책감에 눌려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 또한 우리게 주신 완전한 복음 누리지 못하고 그 속에 뿌리 내리지 못하면 동일하게 죄로 인한 죄책감 때문에 실패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순간에 구원받습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절대 지옥에 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았다 할지라도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완전 복음의 비밀을 누리지 못하고 거기에 뿌리 내리지 못하면, 오늘 본문에서 보여주는 것은 실패할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 속에서도 하나님의 엄청난 축복을 누리지 못하고 실패하는 인생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은 본문을 보며, 결단해야 합니다. “내가 완전복음 속에 들어가야 하겠다” 복음에 뿌리내리고 복음인 체질되어지도록 결단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모든 문제해결로 주신 것이 복음입니다. 완전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완전한 복음 주셨습니다. 이 복음을 누리게 되면 완전복음 속에 들어가서 누리게 되면 먼저 내가 살게 되고 나와 관계된 가정이 살게 되고 자손만대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과제는 신앙생활 속에서 어떻게 복음을 알고 누리며 복음에 뿌리내릴 것인가? 이것이 우리의 과제며 기도제목이기도 합니다. 다른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완전한 것으로 주신 이 복음의 비밀을 알고 누리고 체질되도록 뿌리내리느냐? 이것이 우리의 과제이며 기도제목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복음에 부리내리는 만큼 확신이 오게 됩니다. 지금 나의 삶을 다스리신다는 확신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결국 복음의 승리가 우리의 모든 걸음 속에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복음에 뿌리 내릴수록 확신가운데 서게 되고, 내 힘대로 사는 것 같지만, 하나님이 나를 완벽하게 성령을 통해 인도하시는 사실을 보는 눈이 열리면서 복음의 승리가 걸음마나 나타나게 되고 그로인해 영향력들이 모든 현장에 나타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어제, 우리 교회 학습, 세례, 유아세례 문답이 있었습니다. 장로님이 모여서 말씀 나누는 가운데서 이번 학습, 세례, 입교 문답에서 느낀 것은, “정말 개개인이 완전한 답을 얻는 다락방들이 현장에서 이뤄져야 하겠구나” 하는 것을 절실하게 깨닫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물론 주일 날 예배드리고 은혜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만, 실제로 여러분이 현장 속에서 모든 문제를 놓고 개개인이 거기에 대한 중요한 답을 얻지 못하면 신앙생활 한다 할지라도 확신 없이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개개인이 현장에서 말씀으로 답을 얻는, 복음에 완전 뿌리내리는 축복가운데 실제적인 복음의 승리가 나타나기에 무엇보다 우리 교회 전체가 다락방을 통해 개개인들이 확립되어지는 축복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게 되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진짜 복음의 확신들이 서지 않으면 실컷 신앙생활 해놓고 나중에 가서 실패하는 인생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보세요. 개개인이 복음에 서지 않으면 어떻게 이 세상을 이기고 살아 갈 것입니까? 세상은 마치 골리앗처럼 너무 크게 보이는 세상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세상은 보이지 않는 것은 전혀 인정치 않고, 보이는 것만 쫓아가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물질문화가 얼마나 발전하는지 모릅니다. 이런 현장 속에서 복음의 확신 없이 우리가 산다면, 축복을 다 놓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강대국은 복음을 놓치고 우상국가로 전락해 버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강대국들이 우상문화를 가지고 우리를 공격해오고 있습니다. 이런 현장에 선 여러분이 복음 없이 살아간다면, 복음의 뿌리 내리지 못하고 살아간다면, 승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들의 과거들, 과거의 상처들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복음은 가졌지만, 복음 가지기 전 과거의 체질들이 다 남아 있습니다. 우리 개개인에게도 영적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복음 충만하고 그리스도 충만할 때는 모르나 복음과 그리스도에 충만하지 못할 때는 우리도 모르게 영적문제에 발목을 잡힌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사단이 살아 존재하기에 이런 과거와 과거 상처들과 복음 가지기 전에 체질들을 통해 가지고 있는 영적 문제를 가지고 공격해오는 이런 현장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복음이 뿌리 내리지 않고 승리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다른 것이 아닙니다. 복음에 뿌리내리고 그 확신위에 서게 될 때, 참된 복음의 승리가 나오게 되는데, 이 축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완전복음 복음 속에 들어가 복음에 뿌리 내려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할 일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교회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복음 없는 현장에 정확히 복음 전해서 복음에 뿌리내리게 하는 것이 교회가 할 일이라는 사실입니다. 중직자는 중직자 나름대로 봉사하지만 복음에 뿌리내리지 못해서 나중에 가서 실패하는 인생이 된다면 그것만큼 억울한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성도님들이 신앙생활 한다며 복음을 놓쳐버리고 헌신하고 봉사합니다만, 결국 헌신한다고 헌신했는데 인간관계 문제와 모든 실패 속에서 그것만큼 억울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여러분, 모든 것 다 한다 할지라도 완전복음에 뿌리 내리지 못하면 결국은 실패하는 인생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매일 매일 생명 걸고 완전복음 속으로 들어가야 하고 복음 안에 깊이 뿌리 내려야 합니다. 왜 교회가 복음을 강조하고 복음에 뿌리내리라 강조하느냐? 인간에게는 반드시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3장 문제 곧 저주와 재앙, 지옥권세를 어떻게 우리가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절대 해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땅의 모든 지식을 총동원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떠난 인생에게는 하나님 만나는 길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 만나지 못해서 인생들이 사단과 운명 에 빠져서 원죄로 인한 자범죄와 우상숭배 죄들로 인해 저주가 계속 이 땅에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 롬3:10에 보면,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말씀하시면서, 롬3:23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말씀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단의 손에 완전 잡힌 것이 인생입니다. 원죄가운데 완전히 잡힌 것이 인생입니다. 사주팔자, 운명 가운데 완전 묶인 것이 인생입니다.
제가 신문을 보니까, “사주팔자는 해결할 수 없어도 운명은 해결할 수 있습니다” 라고 광고를 해놨더라고요. 그것은 점쟁이가 광고를 낸 거였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떠난 인생, 운명가운데 빠진 인생은 어떻게든 해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운명대로 살다 가면 안 됩니다. 운명대로 살아가면 이 땅의 삶이 지옥의 삶이 됩니다. 그러니까 운명이란 말을 합니다. 고통스러우니까 운명으로 여기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지옥의 삶이며 죽어서 반드시 지옥가게 되어있고, 영적 유산을 후대에게 물려주게 되는 것입니다. 운명 속에 묶여 있으면 안됩니다. 거기서 빠져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빠져나올 길이 없습니다. 운명을 잡고 있는 사단의 세력 이결 힘이 없기에 인간에게는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하나님의 능력인 복음을 우리게 주신 것입니다. 창3:15에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사단을 깨트려 버리실 것을 말씀했습니다. 마16:16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고백한 베드로에게 예수님은“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말씀하셨습니다. 복음가진 자는 반석 같은 축복 누릴 것을 말씀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악한 사단이 구원받은 자들을 멸망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땅 살아가는 동안, 하늘 보좌의 축복 누릴 수 있도록, 이 땅에 있는 우리에게 그 어떤 것도 문제 될 수 없도록 천국열쇠를 주신 것입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능력인 복음만이 사단의 역사를 이길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롬1:16에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복음은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만 사단의 세력을 꺾을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17절에“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그 의가 그리스도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말씀했습니다. 복음을 믿는 믿음, 그것으로 우리가 이 땅에서 승리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전1:18에는“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참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지혜가 누구입니까?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만이 사단 꺾을 수 있는 힘을 가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그리스도의 비밀을 계속 누릴 때 그 속에서 모든 응답과 축복이 나타나게 되어 있다는 사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여러분, 왜 복음을 강조합니까? 역사를 보세요. 러시아나 유럽이나 미국의 역사를 보면, 복음으로 시작했다가 지금은 완전히 복음이 없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정확한 복음이 전달되지 않았고, 지금은 복음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 이미 오래 된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강대국들마다 완전히 영적문제로 실패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무엇 때문에 복음에 뿌리 내려야 하는가? 중요한 답들을 역사를 통해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에 유럽 전도 캠프에 다녀오신 분이 캠퍼스에서 복음을 전했는데, 10명중 9명이 모슬렘권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왕따 시키면서 마치 짐승 보듯이 하기도 하고,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처럼 업신여긴다고 하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완전히 복음이 사라졌습니다.
성경에서도 보세요. 요셉 때의 그 찬란했던 하나님의 영광. 요셉이 죽은 후에 애굽이 400년 동안 애굽에 종살이 했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복음에 뿌리 내리지 못하고 완전복음 속에 들어가지 못했기에 요셉이후에 400년 동안 노예로서 살아가게 된 것을 보게 됩니다.
요셉 때는 바로 왕이 요셉을 보며 “아버지여” 할 만큼 모든 것을 다 위임했었습니다. 그러면서 온 땅위에 이스라엘과 애굽을 살리는 축복을 누렸지만, 이 복음에 뿌리 내리지 못하니 요셉 이후로 노예로 전락되게 된 것을 보게 됩니다.
뿐만 아니죠. 이스라엘 백성이 절대 빠져나오지 못하는 애굽에서 400년 동안 종살이 하고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함으로 빠져나왔습니다. 어떻게 애굽과 바로 왕의 손에서 해방될 수 있었습니까? 절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기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켜서 애굽의 역사 속에서 빠져나오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광야길 속에 영적문제가 그대로 드러난 사실을 보게 됩니다. 문제와 사건 당하면 원망하고 불평하고요. 그래서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함으로 광야에 매장된 사실을 보게 됩니다. 이 완전복음 속에 들어가지 못하고 복음에 뿌리내리지 못했습니다.
렘4:1-5에 보면, 절대 망할 수 없는 이스라엘이 망했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금이 빛을 잃고 정금이 변했다면서 이스라엘 성소의 돌들이 길거리에 나뒹굴고, 어린 아이들이 젖을 구하나 젖먹일 자가 없고 떡을 구하나 떼어줄 자가 없다고 했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완전히 실패한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축복된 복음을 주었지만, 복음의 비밀을 뿌리 내리지 못하고 누리지 못하니 후대에 가서 완전 실패한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완전복음 속에 들어가서 복음에 뿌리 내리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축복된 역사를 문제와 사건 속에서 승리하며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복음의 비밀을 누리지 못하니 개인문제에 잡혀 늘 그 문제 해결해 보려고 몸부림 치고, 해결되지도 않고 인간과 사람관계에서 실패하고 상처받고 넘어졌다 일어서는 것이 다른 이유가 아니라, 복음의 비밀 속에 복음에 뿌리 내리지 못해서 온 결과란 사실. 완전복음 속에 들어가는 축복이 있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복음 가진 자가 당하는 고통과 고난을 어떻게 해결 할 것인가?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 된 저와 여러분에게도 반드시 문제는 있고 고난도 있고 고통도 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기억할 것은 구원받은 자의 고난과 고통은 다릅니다. 다시 말하면, 복음 가진 사람은 고난당할수록 승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정체성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말입니다. 어떻게 고난당하는 사람이 승리하느냐? 그러나 분명한 것은 복음 가진 사람은 고난당할수록 반드시 승리의 축복을 누리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성경에 찾아보세요. 하나님의 백성들 곧 구원 받은 자들이 고난당했다가 멸망 받은 사람이 있는가 증거를 찾아보세요. 한 사람도 없습니다. 고난당할수록 더 큰 하나님의 축복된 역사들이 예비되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후12:10에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약할 그때가 곧 강함이라.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바울은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이것은 세상 사람들이 볼 때는 바보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렇지 않고 약할 그때가 곧 강할 때다 했는데, 어떻게 세상 사람들이 이 비밀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복음 가진 자는 그렇습니다. 약합니까? 고난당합니까? 고통 가운데 있습니까? 그때가 최고의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는 기회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초대교회를 보세요. 초대교회 내외부에 핍박과 고난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고난과 고통의 문제를 통해 초대교회가 없어졌습니까? 아닙니다. 고난당할수록 더욱 더 그리스도의 살아계신 증거가 나타난 사실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특별히 데살로니가 지역에서는 깡패를 동원해서 핍박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제일 큰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난 사실을 데살로니가전서 1장을 통해 보여주고 있잖아요. 얼 만큼 응답을 누렸느냐? 그들의 믿음의 역사 속에 선 사실이 각 처에 퍼졌다 했습니다. 여러분, 어려움 당할수록 우리에게는 축복이 예비 되어 있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다윗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윗의 생애를 보면, 2/3이상이 고난과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로 말미암아 다윗이 망하지 않았습니다. 귀중한 응답은 그 때 다 받았습니다.
자, 보십시오. 외부의 고통과 고난을 가지고 왔습니다. 블레셋과 골리앗 등 이런 사람들이 다윗에게 고통과 고난을 가지고 왔는데 그것이 오히려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만방에 증거하는 선교의 기회가 된 것을 보게 됩니다.
뿐만 아닙니다. 다윗은 내부에서의 고난과 고통도 있었습니다. 사울 왕의 공격해 왔고, 그의 신하들의 배반과 공격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것 때문에 망하지 않고 전도의 기회가 된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족 안에 일어난 일들도 전부 발판이 된 것이 다윗의 생애였습니다.
특별히 다윗의 걸음을 보면, 사실 다윗의 가까이 있었던 사람인 아히도벨은 친구이며 모사였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힘이 없게 되어 압살롬의 반역으로 인해 왕궁에서 피난길에 오르게 될 때, 오래된 친구 아히도벨이 압살롬과 동조해 압살롬에게 이익을 가져다줍니다. 그런데도 다윗은 전혀 불평치 않고 다윗은 그를 용납했습니다. 나중에는 아히도벨이 자기 계략이 실패함을 알고 자기 고향으로 가서 자살함으로 생애를 마감합니다만 다윗은 그를 용납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시므이를 아시죠?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인해 다윗이 피난길에 올랐을 때, 시므이가 다윗 왕에게 돌을 던지며 모함하길“이 비루한자여, 피 흘린자여 가거라 거거라” 온갖 모함의 말들을 내 뱉었습니다. 그때, 같이 다윗 주위에 있던 아비새 장군이“왕이여 내 당장 저 놈의 몸을 베겠습니다” 그때 다윗은 “가만두어라 하나님이 저 사람을 통해 저주하시는 것이 아니냐? 하나님이 이것을 선으로 바꾸실 것이 아니냐?” 고백한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나중에 왕궁에 자리에 다시 앉게 되는 것이 사무엘하 19장에 나옵니다. 다시 왕좌에 오르니 금방 시므이가 왕의 무릎 앞에 꿇어서 “왕이여 지난날의 나의 패역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빌게 되는 부분을 보게 됩니다. 그때 또한 아비새가 “왕이여, 저 사람은 당신을 욕하고 배반한 사람이 아닙니까? 저 사람을 죽입시다”했을 때, 다윗은 “가만히 두어라 내가 왕의 자리에 오른 것이 아니냐?”그러면서 중요한 말을 했습니다. 삼하19:23에 보면“왕이 시므이에게 이르되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 하고 그에게 맹세하니라”절대로 네가 죽지 않게 될 것이며 맹세까지 했습니다. 시므이를 용납했어요. 전부 발판이 되어진 것이죠.
여러분, 어떤 면에서 원수들의 공격해오는 그 공격 앞에 다윗이 말로 변박하지 않았다, 대꾸하지 않았다고 기록합니다. 그냥 대꾸하지 않은 것이 아니고 그냥 변박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 한 사람 한 사람을 놓고 기도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 기도 속에서 그 사람들을 용납한 사실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13~14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나는 못 듣는 자 같이 듣지 아니하고 말 못하는 자 같이 입을 열지 아니하오니 나는 듣지 못하는 자 같아서 내 입에는 반박할 말이 없나이다”
그냥 원수에 대해 그냥 반박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15절입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를 바랐사오니 내 주 하나님이 내게 응답하시리이다”원수들의 공격 앞에 그냥 참고 인내한 것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을 놓고 기도하면서 용납할 수 있는 은혜를 입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있는 모든 문제를 놓고 이 축복을 회복하는 역사가 있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세계복음화 할 사람입니다. 세계복음화는 사람을 살리는 것입니다. 어떻게 사람을 살릴 수 있습니까? 그 사람을 용납하고 수용하고 초월하는 힘이 있어야 사람을 살립니다. 여러분, 우리를 공격해오는 원수 앞에서 함께 더불어 대항해서 싸우라고 우리를 부리시지 않았습니다. 벧전3:8-12에 중요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말씀했습니다.
어떤 문제와 사건과 고난과 고통을 가져다주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 문제를 놓고 기도하는 가운데서 그 문제를 가져다 준 사람을 용납할 수 있는 은혜, 우리가 세계복음화의 축복된 역사를 놓고 나갈 때, 별 희한한 일들을 다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별스런 사람을 다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들을 어떻게 살릴 수 있습니까? 분명히 우리는 그 사람을 살려야 할 것인데, 어떻게 살릴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고난과 고통과 문제와 사건들 통해 우리의 그릇들을 그런 이들을 수용할 수 있도록 넓혀 가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다윗은 이 축복을 누렸습니다. 우리가 당하는 고통과 문제에서 반드시 승리할 뿐 아니라, 그 고난과 고통 속에서 사람을 용납하고 수용하며 초월할 수 있는 세계복음화의 그릇들로 하나님이 우리들을 인도해 나가신다는 사실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고후1:4-5을 보세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고난 가운데 있게 하신 것은 고난 가운데 하나님의 위로를 받음으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을 도와줄 수 있는 그릇들로 인도하신 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죠.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고난당해본 사람만이 고난을 이해할 수 있잖아요. 여러분에게 있는 문제들, 고난과 고통들 거기에 대한 하나님의 위로하심을 체험해 본 사람만이 그런 고난과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다는 사실.
그러면서 8~9절에 중요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같이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아멘. 여기에 왜 우리에게 고난이 있느냐? 바울에게 있었던 고난은 산 소망까지 끊어지는 고난이었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고난을 통해 자신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기 위함이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한번 받아 하겠습니다. “복음가진 나에게는 그 어떤 것도 문제될 것이 없다”믿습니까? 여기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복음만 누리고 있으면 내게 일어나는 모든 문제는 전부 응답의 과정입니다. 좋은 일이 있을 수도 있고 안 좋은 일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안 좋은 일을 수록 더욱 더 축복된 응답이 그 속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롬8:28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속지만 않으면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되고 사람을 살리는 축복과 함께 자신에게도 유익됨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문제와 고난과 고통 어떻게 할 것입니까? 복음 속에 깊이 들어가서 그 축복의 역사들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오늘 다윗은 고난을 통해 고백했습니다. “주 나의 구원이시여”죄로 인한 죄책감 속에서 “주 나의 구원이시여” 고백했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다윗은 그림자만 보고서도 이 구원의 축복의 비밀을 확인하고 고백한 사실을 보게 됩니다.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은 실체이신 그리스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어떤 것도 우리를 멸망시킬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문제가 있습니까? 고난이 있습니까? 고통이 있습니까? 중요한 응답의 기회입니다. 우리의 고난을 대신 모두 체휼하신 그리스도 그 이름 붙잡고 담대히 나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참된 승리의 축복이 나타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히4:14-16 말씀을 찾아보고 마치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그리스도 붙잡고 문제와 사건, 고통이 있다 할지라도, 죄와 죄책감 있다 할지라도, 뻔뻔스럽게 담대하게 우리 모든 문제 해결하신 대제사장되신 그리스도 앞에 나가심으로 참된 승리의 축복이 누려지는 한 주간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다윗이 고난 가운데서 주 나의 구원이시여 승리의 고백을 한 이 축복이 이번 한 주간 우리의 고백으로 누려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이를 위해 복음 속에 깊이 뿌리내리는 시간들 되게 역사하여 주옵시고, 문제와 사건과 고난과 고통의 역사들을 복음으로 볼 수 있는 눈이 열려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서론: 본문은 다윗이 고난 속에서 하나님만이 구원자 되심을 고백하는 내용입니다. 다윗은 죄악의 수렁에 빠져 육신적 질병이 찾아왔고,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떠나는 정신적 고통을 당했으며, 영적으로 흑암 세력의 총공격을 받았습니다. 삼중고를 겪으면서 다윗은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는 문제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였습니다(1-3, 22절). 그리고 고통스런 호소를 주님이 들어주실 것을 확신하였습니다(9절). 흑암과 사탄의 어떤 공격 앞에서도 하나님만 바랄 것을 결단하였습니다(13-15절). 우리가 당한 고통과 고난 속에서 어떻게 하면 다윗처럼 승리할 수 있겠습니까?
1. 완전복음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1) 완전복음 누리지 못한 다윗은 실수의 자리에 들었습니다.
1) 왕이 되고서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함
2) 죄로 인한 죄책감에 크게 눌림
(2) 완전복음 속으로 들어가겠다는 결단이 있어야합니다(복음 뿌리, 복음 체질).
1)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문제를 해결할 완전한 복음을 주셨음
2) 신앙생활 속에서 복음을 알고 누리며 복음에 뿌리 내려야 함
① 현장의 상황: 발전된 세상 물질문화와 강대국의 우상문화가 우리를 공격해옴
② 현장에서 다락방을 통해 완전한 답을 얻어야 함
③ 복음에 뿌리내려야 하는 이유:
•복음 충만치 않으면 자신도 모르게 과거 체질과 영적문제에 발목 잡힘(개인)
•복음으로 시작한 나라들조차 복음이 사라지고 현재 영적문제로 완전히 실패함(유럽, 러시아, 미국)
•요셉 이후 400년 간 애굽의 노예 / 백성 중 여호수아, 갈렙만 제외하고 전부 광야에 매장됨 / 렘4:1-5
(3) 완전복음만이 인간의 한계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롬1:16-18 / 롬3:10, 23).
1) 복음만이 인간의 한계를 해결할 수 있음(창세기 3장 문제-죄, 저주, 재앙, 지옥권세, 운명)
2) 하나님의 능력인 복음만이 사탄의 역사를 이길 수 있음
2. 복음 가진 자가 당하는 문제, 사건, 고난, 고통에 대한 바른 해석을 찾아내야 합니다.
(1) 복음 가진 자는 고난을 당할수록 승리하게 됩니다.
• 바울(고후12:10), 초대교회(살전1:1-10), 다윗(골리앗과의 일전, 사울왕의 공격, 압살롬의 반역)
(2) 고난 속에서 모든 사람을 수용하며 초월할 수 있는 세계복음화의 그릇이 됩니다(고후1:4-5).
(3) 고난을 통해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하게 됩니다(고후1:8-9).
결론: 고난과 고통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복음 속에 깊이 들어가서 그 속에 담긴 축복의 역사들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다윗이 죄로 인한 죄책감 속에서 “주 나의 구원이시여”라고 고백한 것처럼 누리십시오.
다윗은 그리스도의 그림자만 보고서도 이 구원의 축복과 비밀을 확인하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실체이신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습니다. 어떤 것도 우리를 멸망시킬 수 없습니다. 문제는 오히려 중요한 응답의 기회입니다. 고난을 대신 담당하신 그리스도 이름 붙잡고, 담대하게 대제사장 되신 그리스도 앞으로 나아가십시오(히4:14-16). 참된 승리의 축복이 나타날 것입니다.
특별히, 이번 산업인 대회는 처음으로 중직자들과 산업인들 중심으로 해서 현장전도캠프가 현장에서 하루 동안 진행되었고 메시지 가운데 중간시간에는 지금까지 RUTC에서 기도해 왔습니다만 RUTC건립 부지를 기도하며 밟는 중요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우리 교회 산업인들이 많이 참석해서 감사드리고, 또한 교회에 속한 선교사님들이 참석하셨고 해외 지교회인 일본, 중국, 방글라데시에서 지교회를 담당하고 계시는 장로님들이 함께 참여하셔서 말씀으로 은혜 받는 축복된 시간이었습니다.
특별히 「산업인의 세 가지 응답」이란 제목으로 말씀으로 주셨습니다. 과거, 현재(오늘), 미래에 대해 세 가지 부분에서 말씀을 주셨습니다. 산업인들이 이 한해 붙잡고 기도하면서 응답받아야 할 부분이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산업인 아닙니까? 가정을 책임지는 산업인이고, 자녀들을 책임지는 산업이고, 그래서 우리 모두가 다 함께 인도받아야 할 메시지로 중요한 말씀들이 전달되었습니다. 「과거에서 벗어나라」, 「산업인의 오늘」, 「산업인의 미래」란 제목으로 말씀을 받았습니다.
혹여나 말씀을 받지 못한 분이 있다면 어떤 통로를 통해서든지 말씀을 정리하셔서 여러분 개인과 가정과 사업에 사실적인 하나님의 응답이 있기 위해 기도하면서 언약으로 잡게 되길 기도합니다. 특별히 산업인들로서 앞으로 하나님이 역사하실 것을 바라보면서, 준비해야 할 것이 어떤 것인가의 중요한 말씀들을 주셨습니다. 말씀을 나름대로 정리하시고 실제적인 응답들이 여러분의 산업 현장에 일어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을 따라 본문 마지막 절을 제목 삼았습니다. 22절을 보시면, “속히 나를 도우소서 주 나의 구원이시여” 이 부분을 가지고 함께 말씀에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다윗이 고난 중에 하나님만이 구원자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일생 중에서 가장 고통당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부분입니다. 본인이 범죄하고 죄악의 깊은 수렁에 빠져서 그것으로 인해 엄청난 육신적인 질병들이 찾아왔고, 가까이 있는 사람들과 친척들이 자기를 떠나는, 정신적인 고통이 찾아오게 되고, 그것으로도 끝나지 않고, 영적으로 흑암의 세력들이 총공격해오는, 어마 어마한 공격당하는 것을 본문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육신적인 질병과 또, 정신적인 고통, 거기에다가 흑암의 세력이 총 공격해오는 삼중고의 고통가운데서 다윗이 어떻게 이 사실들을 잘 감당했는가를 우리에게 오늘 본문을 통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앉은 저와 여러분이 당하는 문제는 다윗과 같은 문제가 아닐지라도, 각기 모양은 다르지만 문제와 사건과 여러 가지 사건이 있을 것입니다. 거기서 우리가 어떻게 승리할 것인가? 중요한 답들을 오늘 본문을 통해 잡아 나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앞으로 세계복음화를 위해 나가는 걸음 속에 세계복음화를 이루는 가정 속에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것을 많이 보게 하실 것이고 또, 체험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런 것들 가운데서 우리가 어떻게 승리할 것인가? 물론 우리에게는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윗이 당한 고난과 고통이 올 수도 있습니다. 창세기 3장 현장에 있기 때문에, 저와 여러분에게도 똑같은 고난과 고통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고난과 고통가운데 어떻게 승리할 것인가? 오늘 다윗이 승리한 부분들을 붙잡고 우리가 승리할 귀한 답을 얻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분명한 것은, 더 큰 어려움과 고난이 온다 할지라도 반드시 승리를 약속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저와 여러분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와 더불어 세계복음화의 일꾼으로 하나님이 문제와 사건을 통해 다듬으시고 만들어 가실 것을 확신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떻게 하면 문제와 사건 속에서 다윗처럼 승리할 수 있을 것인가? 이 축복을 붙잡아야 할 것입니다.
먼저 오늘 본문에 보면 다윗에게는 몇 가지 확실한 것이 있었습니다. 다윗은 자기가 지금 당하고 있는 고난과 고통의 모든 문제들이 주님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사실을 이야기 하면서 마침내 하나님을 완전히 바라보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로 서게 되는 것을 오늘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1절과 3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여 주의 노하심으로 나를 책망하지 마시고 주의 분노하심으로 나를 징계하지 마소서 주의 화살이 나를 찌르고 주의 손이 나를 심히 누르시나이다 주의 진노로 말미암아 내 살에 성한 곳이 없사오며”무슨 말입니까? 모든 것의 시작이 주의 손으로 시작된 것을 말씀하면서 마침내 완전히 하나님을 의지하고 바라보는 사람으로 세워지게 된 사실을 고백하게 되는데요. 22절에 “속히 나를 도우소서 주 나의 구원이시여”완전하게 하나님만 바라보게 되는 사실들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또, 그런 가운데서도 다윗은 내 기도와 내 고통과 내 호소를 반드시 하나님이 들어 주실 것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은혜죠. 구원 받은 자의 특징이고요. 정말 구원받은 자는 아무리 어려워도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주님이 이 상황을 아실 것이고, 주님이 이것에 대한 응답을 주실 것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이 이 은혜를 입었습니다.
오늘 본문 9절에 보면, “주여 나의 모든 소원이 주 앞에 있사오며 나의 탄식이 주 앞에 감추이지 아니하나이다”분명히 자기의 소원과 호소와 고통을 주님께서 들으실 것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다윗은 어떤 사단과 흑암의 공격 앞에서도 하나님만 바라보겠다는 결단을 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13절부터 15절에 설명하고 있습니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나는 못 듣는 자 같이 듣지 아니하고 말 못하는 자 같이 입을 열지 아니하오니 나는 듣지 못하는 자 같아서 내 입에는 반박할 말이 없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주를 바랐사오니 내 주 하나님이 내게 응답하시리이다” 아멘.
흑암과 사단의 공격 앞에서도 하나님만 바라보는 다윗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결국 다윗이 “하나님만이 나의 구원자가 되십니다” 고백하게 됩니다. 그 고통과 고난 속에서도 승리하는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저와 여러분이 어떻게 다윗처럼 문제와 사건과 고통 속에서 승리할 수 있을 것인가? 두 가지로 말씀을 생각하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완전복음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두 번째로 복음 가진 자가 당하는 문제와 사건과 고난과 고통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이 부분들이 되고 이 부분들을 찾아낸다면 저와 여러분도 문제 있음과 상관없이 다윗처럼 완전한 승리의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 축복을 누릴 것인가?
첫 번째입니다. 완전 복음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시편 38편에 있어서 많은 성경학자들은 다윗이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범한 사건 이후 그 죄로 인한 죄책감 때문에 지은 시다. 죄와 죄책감 가운데 고통 중에 지은 시로 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윗이 왕이 되어서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게 되는 실수의 자리에 들게 되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또 한 가지는 오늘 본문에 읽어보면, 다윗이 얼마나 죄책감에 눌려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 또한 우리게 주신 완전한 복음 누리지 못하고 그 속에 뿌리 내리지 못하면 동일하게 죄로 인한 죄책감 때문에 실패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순간에 구원받습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절대 지옥에 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았다 할지라도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완전 복음의 비밀을 누리지 못하고 거기에 뿌리 내리지 못하면, 오늘 본문에서 보여주는 것은 실패할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 속에서도 하나님의 엄청난 축복을 누리지 못하고 실패하는 인생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은 본문을 보며, 결단해야 합니다. “내가 완전복음 속에 들어가야 하겠다” 복음에 뿌리내리고 복음인 체질되어지도록 결단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모든 문제해결로 주신 것이 복음입니다. 완전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완전한 복음 주셨습니다. 이 복음을 누리게 되면 완전복음 속에 들어가서 누리게 되면 먼저 내가 살게 되고 나와 관계된 가정이 살게 되고 자손만대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과제는 신앙생활 속에서 어떻게 복음을 알고 누리며 복음에 뿌리내릴 것인가? 이것이 우리의 과제며 기도제목이기도 합니다. 다른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완전한 것으로 주신 이 복음의 비밀을 알고 누리고 체질되도록 뿌리내리느냐? 이것이 우리의 과제이며 기도제목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복음에 부리내리는 만큼 확신이 오게 됩니다. 지금 나의 삶을 다스리신다는 확신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결국 복음의 승리가 우리의 모든 걸음 속에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복음에 뿌리 내릴수록 확신가운데 서게 되고, 내 힘대로 사는 것 같지만, 하나님이 나를 완벽하게 성령을 통해 인도하시는 사실을 보는 눈이 열리면서 복음의 승리가 걸음마나 나타나게 되고 그로인해 영향력들이 모든 현장에 나타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어제, 우리 교회 학습, 세례, 유아세례 문답이 있었습니다. 장로님이 모여서 말씀 나누는 가운데서 이번 학습, 세례, 입교 문답에서 느낀 것은, “정말 개개인이 완전한 답을 얻는 다락방들이 현장에서 이뤄져야 하겠구나” 하는 것을 절실하게 깨닫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물론 주일 날 예배드리고 은혜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만, 실제로 여러분이 현장 속에서 모든 문제를 놓고 개개인이 거기에 대한 중요한 답을 얻지 못하면 신앙생활 한다 할지라도 확신 없이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개개인이 현장에서 말씀으로 답을 얻는, 복음에 완전 뿌리내리는 축복가운데 실제적인 복음의 승리가 나타나기에 무엇보다 우리 교회 전체가 다락방을 통해 개개인들이 확립되어지는 축복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게 되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진짜 복음의 확신들이 서지 않으면 실컷 신앙생활 해놓고 나중에 가서 실패하는 인생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보세요. 개개인이 복음에 서지 않으면 어떻게 이 세상을 이기고 살아 갈 것입니까? 세상은 마치 골리앗처럼 너무 크게 보이는 세상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세상은 보이지 않는 것은 전혀 인정치 않고, 보이는 것만 쫓아가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물질문화가 얼마나 발전하는지 모릅니다. 이런 현장 속에서 복음의 확신 없이 우리가 산다면, 축복을 다 놓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강대국은 복음을 놓치고 우상국가로 전락해 버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강대국들이 우상문화를 가지고 우리를 공격해오고 있습니다. 이런 현장에 선 여러분이 복음 없이 살아간다면, 복음의 뿌리 내리지 못하고 살아간다면, 승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들의 과거들, 과거의 상처들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복음은 가졌지만, 복음 가지기 전 과거의 체질들이 다 남아 있습니다. 우리 개개인에게도 영적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복음 충만하고 그리스도 충만할 때는 모르나 복음과 그리스도에 충만하지 못할 때는 우리도 모르게 영적문제에 발목을 잡힌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사단이 살아 존재하기에 이런 과거와 과거 상처들과 복음 가지기 전에 체질들을 통해 가지고 있는 영적 문제를 가지고 공격해오는 이런 현장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복음이 뿌리 내리지 않고 승리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다른 것이 아닙니다. 복음에 뿌리내리고 그 확신위에 서게 될 때, 참된 복음의 승리가 나오게 되는데, 이 축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완전복음 복음 속에 들어가 복음에 뿌리 내려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할 일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교회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복음 없는 현장에 정확히 복음 전해서 복음에 뿌리내리게 하는 것이 교회가 할 일이라는 사실입니다. 중직자는 중직자 나름대로 봉사하지만 복음에 뿌리내리지 못해서 나중에 가서 실패하는 인생이 된다면 그것만큼 억울한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성도님들이 신앙생활 한다며 복음을 놓쳐버리고 헌신하고 봉사합니다만, 결국 헌신한다고 헌신했는데 인간관계 문제와 모든 실패 속에서 그것만큼 억울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여러분, 모든 것 다 한다 할지라도 완전복음에 뿌리 내리지 못하면 결국은 실패하는 인생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매일 매일 생명 걸고 완전복음 속으로 들어가야 하고 복음 안에 깊이 뿌리 내려야 합니다. 왜 교회가 복음을 강조하고 복음에 뿌리내리라 강조하느냐? 인간에게는 반드시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3장 문제 곧 저주와 재앙, 지옥권세를 어떻게 우리가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절대 해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땅의 모든 지식을 총동원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떠난 인생에게는 하나님 만나는 길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 만나지 못해서 인생들이 사단과 운명 에 빠져서 원죄로 인한 자범죄와 우상숭배 죄들로 인해 저주가 계속 이 땅에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 롬3:10에 보면,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말씀하시면서, 롬3:23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말씀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단의 손에 완전 잡힌 것이 인생입니다. 원죄가운데 완전히 잡힌 것이 인생입니다. 사주팔자, 운명 가운데 완전 묶인 것이 인생입니다.
제가 신문을 보니까, “사주팔자는 해결할 수 없어도 운명은 해결할 수 있습니다” 라고 광고를 해놨더라고요. 그것은 점쟁이가 광고를 낸 거였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떠난 인생, 운명가운데 빠진 인생은 어떻게든 해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운명대로 살다 가면 안 됩니다. 운명대로 살아가면 이 땅의 삶이 지옥의 삶이 됩니다. 그러니까 운명이란 말을 합니다. 고통스러우니까 운명으로 여기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지옥의 삶이며 죽어서 반드시 지옥가게 되어있고, 영적 유산을 후대에게 물려주게 되는 것입니다. 운명 속에 묶여 있으면 안됩니다. 거기서 빠져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빠져나올 길이 없습니다. 운명을 잡고 있는 사단의 세력 이결 힘이 없기에 인간에게는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하나님의 능력인 복음을 우리게 주신 것입니다. 창3:15에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사단을 깨트려 버리실 것을 말씀했습니다. 마16:16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고백한 베드로에게 예수님은“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말씀하셨습니다. 복음가진 자는 반석 같은 축복 누릴 것을 말씀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악한 사단이 구원받은 자들을 멸망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땅 살아가는 동안, 하늘 보좌의 축복 누릴 수 있도록, 이 땅에 있는 우리에게 그 어떤 것도 문제 될 수 없도록 천국열쇠를 주신 것입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능력인 복음만이 사단의 역사를 이길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롬1:16에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복음은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만 사단의 세력을 꺾을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17절에“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그 의가 그리스도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말씀했습니다. 복음을 믿는 믿음, 그것으로 우리가 이 땅에서 승리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전1:18에는“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참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지혜가 누구입니까?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만이 사단 꺾을 수 있는 힘을 가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그리스도의 비밀을 계속 누릴 때 그 속에서 모든 응답과 축복이 나타나게 되어 있다는 사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여러분, 왜 복음을 강조합니까? 역사를 보세요. 러시아나 유럽이나 미국의 역사를 보면, 복음으로 시작했다가 지금은 완전히 복음이 없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정확한 복음이 전달되지 않았고, 지금은 복음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 이미 오래 된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강대국들마다 완전히 영적문제로 실패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무엇 때문에 복음에 뿌리 내려야 하는가? 중요한 답들을 역사를 통해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에 유럽 전도 캠프에 다녀오신 분이 캠퍼스에서 복음을 전했는데, 10명중 9명이 모슬렘권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왕따 시키면서 마치 짐승 보듯이 하기도 하고,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처럼 업신여긴다고 하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완전히 복음이 사라졌습니다.
성경에서도 보세요. 요셉 때의 그 찬란했던 하나님의 영광. 요셉이 죽은 후에 애굽이 400년 동안 애굽에 종살이 했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복음에 뿌리 내리지 못하고 완전복음 속에 들어가지 못했기에 요셉이후에 400년 동안 노예로서 살아가게 된 것을 보게 됩니다.
요셉 때는 바로 왕이 요셉을 보며 “아버지여” 할 만큼 모든 것을 다 위임했었습니다. 그러면서 온 땅위에 이스라엘과 애굽을 살리는 축복을 누렸지만, 이 복음에 뿌리 내리지 못하니 요셉 이후로 노예로 전락되게 된 것을 보게 됩니다.
뿐만 아니죠. 이스라엘 백성이 절대 빠져나오지 못하는 애굽에서 400년 동안 종살이 하고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함으로 빠져나왔습니다. 어떻게 애굽과 바로 왕의 손에서 해방될 수 있었습니까? 절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기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켜서 애굽의 역사 속에서 빠져나오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광야길 속에 영적문제가 그대로 드러난 사실을 보게 됩니다. 문제와 사건 당하면 원망하고 불평하고요. 그래서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함으로 광야에 매장된 사실을 보게 됩니다. 이 완전복음 속에 들어가지 못하고 복음에 뿌리내리지 못했습니다.
렘4:1-5에 보면, 절대 망할 수 없는 이스라엘이 망했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금이 빛을 잃고 정금이 변했다면서 이스라엘 성소의 돌들이 길거리에 나뒹굴고, 어린 아이들이 젖을 구하나 젖먹일 자가 없고 떡을 구하나 떼어줄 자가 없다고 했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완전히 실패한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축복된 복음을 주었지만, 복음의 비밀을 뿌리 내리지 못하고 누리지 못하니 후대에 가서 완전 실패한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완전복음 속에 들어가서 복음에 뿌리 내리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축복된 역사를 문제와 사건 속에서 승리하며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복음의 비밀을 누리지 못하니 개인문제에 잡혀 늘 그 문제 해결해 보려고 몸부림 치고, 해결되지도 않고 인간과 사람관계에서 실패하고 상처받고 넘어졌다 일어서는 것이 다른 이유가 아니라, 복음의 비밀 속에 복음에 뿌리 내리지 못해서 온 결과란 사실. 완전복음 속에 들어가는 축복이 있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복음 가진 자가 당하는 고통과 고난을 어떻게 해결 할 것인가?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 된 저와 여러분에게도 반드시 문제는 있고 고난도 있고 고통도 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기억할 것은 구원받은 자의 고난과 고통은 다릅니다. 다시 말하면, 복음 가진 사람은 고난당할수록 승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정체성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말입니다. 어떻게 고난당하는 사람이 승리하느냐? 그러나 분명한 것은 복음 가진 사람은 고난당할수록 반드시 승리의 축복을 누리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성경에 찾아보세요. 하나님의 백성들 곧 구원 받은 자들이 고난당했다가 멸망 받은 사람이 있는가 증거를 찾아보세요. 한 사람도 없습니다. 고난당할수록 더 큰 하나님의 축복된 역사들이 예비되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후12:10에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약할 그때가 곧 강함이라.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바울은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이것은 세상 사람들이 볼 때는 바보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렇지 않고 약할 그때가 곧 강할 때다 했는데, 어떻게 세상 사람들이 이 비밀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복음 가진 자는 그렇습니다. 약합니까? 고난당합니까? 고통 가운데 있습니까? 그때가 최고의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는 기회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초대교회를 보세요. 초대교회 내외부에 핍박과 고난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고난과 고통의 문제를 통해 초대교회가 없어졌습니까? 아닙니다. 고난당할수록 더욱 더 그리스도의 살아계신 증거가 나타난 사실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특별히 데살로니가 지역에서는 깡패를 동원해서 핍박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제일 큰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난 사실을 데살로니가전서 1장을 통해 보여주고 있잖아요. 얼 만큼 응답을 누렸느냐? 그들의 믿음의 역사 속에 선 사실이 각 처에 퍼졌다 했습니다. 여러분, 어려움 당할수록 우리에게는 축복이 예비 되어 있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다윗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윗의 생애를 보면, 2/3이상이 고난과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로 말미암아 다윗이 망하지 않았습니다. 귀중한 응답은 그 때 다 받았습니다.
자, 보십시오. 외부의 고통과 고난을 가지고 왔습니다. 블레셋과 골리앗 등 이런 사람들이 다윗에게 고통과 고난을 가지고 왔는데 그것이 오히려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만방에 증거하는 선교의 기회가 된 것을 보게 됩니다.
뿐만 아닙니다. 다윗은 내부에서의 고난과 고통도 있었습니다. 사울 왕의 공격해 왔고, 그의 신하들의 배반과 공격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것 때문에 망하지 않고 전도의 기회가 된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족 안에 일어난 일들도 전부 발판이 된 것이 다윗의 생애였습니다.
특별히 다윗의 걸음을 보면, 사실 다윗의 가까이 있었던 사람인 아히도벨은 친구이며 모사였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힘이 없게 되어 압살롬의 반역으로 인해 왕궁에서 피난길에 오르게 될 때, 오래된 친구 아히도벨이 압살롬과 동조해 압살롬에게 이익을 가져다줍니다. 그런데도 다윗은 전혀 불평치 않고 다윗은 그를 용납했습니다. 나중에는 아히도벨이 자기 계략이 실패함을 알고 자기 고향으로 가서 자살함으로 생애를 마감합니다만 다윗은 그를 용납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시므이를 아시죠?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인해 다윗이 피난길에 올랐을 때, 시므이가 다윗 왕에게 돌을 던지며 모함하길“이 비루한자여, 피 흘린자여 가거라 거거라” 온갖 모함의 말들을 내 뱉었습니다. 그때, 같이 다윗 주위에 있던 아비새 장군이“왕이여 내 당장 저 놈의 몸을 베겠습니다” 그때 다윗은 “가만두어라 하나님이 저 사람을 통해 저주하시는 것이 아니냐? 하나님이 이것을 선으로 바꾸실 것이 아니냐?” 고백한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나중에 왕궁에 자리에 다시 앉게 되는 것이 사무엘하 19장에 나옵니다. 다시 왕좌에 오르니 금방 시므이가 왕의 무릎 앞에 꿇어서 “왕이여 지난날의 나의 패역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빌게 되는 부분을 보게 됩니다. 그때 또한 아비새가 “왕이여, 저 사람은 당신을 욕하고 배반한 사람이 아닙니까? 저 사람을 죽입시다”했을 때, 다윗은 “가만히 두어라 내가 왕의 자리에 오른 것이 아니냐?”그러면서 중요한 말을 했습니다. 삼하19:23에 보면“왕이 시므이에게 이르되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 하고 그에게 맹세하니라”절대로 네가 죽지 않게 될 것이며 맹세까지 했습니다. 시므이를 용납했어요. 전부 발판이 되어진 것이죠.
여러분, 어떤 면에서 원수들의 공격해오는 그 공격 앞에 다윗이 말로 변박하지 않았다, 대꾸하지 않았다고 기록합니다. 그냥 대꾸하지 않은 것이 아니고 그냥 변박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 한 사람 한 사람을 놓고 기도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 기도 속에서 그 사람들을 용납한 사실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13~14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나는 못 듣는 자 같이 듣지 아니하고 말 못하는 자 같이 입을 열지 아니하오니 나는 듣지 못하는 자 같아서 내 입에는 반박할 말이 없나이다”
그냥 원수에 대해 그냥 반박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15절입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를 바랐사오니 내 주 하나님이 내게 응답하시리이다”원수들의 공격 앞에 그냥 참고 인내한 것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을 놓고 기도하면서 용납할 수 있는 은혜를 입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있는 모든 문제를 놓고 이 축복을 회복하는 역사가 있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세계복음화 할 사람입니다. 세계복음화는 사람을 살리는 것입니다. 어떻게 사람을 살릴 수 있습니까? 그 사람을 용납하고 수용하고 초월하는 힘이 있어야 사람을 살립니다. 여러분, 우리를 공격해오는 원수 앞에서 함께 더불어 대항해서 싸우라고 우리를 부리시지 않았습니다. 벧전3:8-12에 중요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말씀했습니다.
어떤 문제와 사건과 고난과 고통을 가져다주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 문제를 놓고 기도하는 가운데서 그 문제를 가져다 준 사람을 용납할 수 있는 은혜, 우리가 세계복음화의 축복된 역사를 놓고 나갈 때, 별 희한한 일들을 다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별스런 사람을 다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들을 어떻게 살릴 수 있습니까? 분명히 우리는 그 사람을 살려야 할 것인데, 어떻게 살릴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고난과 고통과 문제와 사건들 통해 우리의 그릇들을 그런 이들을 수용할 수 있도록 넓혀 가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다윗은 이 축복을 누렸습니다. 우리가 당하는 고통과 문제에서 반드시 승리할 뿐 아니라, 그 고난과 고통 속에서 사람을 용납하고 수용하며 초월할 수 있는 세계복음화의 그릇들로 하나님이 우리들을 인도해 나가신다는 사실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고후1:4-5을 보세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고난 가운데 있게 하신 것은 고난 가운데 하나님의 위로를 받음으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을 도와줄 수 있는 그릇들로 인도하신 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죠.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고난당해본 사람만이 고난을 이해할 수 있잖아요. 여러분에게 있는 문제들, 고난과 고통들 거기에 대한 하나님의 위로하심을 체험해 본 사람만이 그런 고난과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다는 사실.
그러면서 8~9절에 중요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같이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아멘. 여기에 왜 우리에게 고난이 있느냐? 바울에게 있었던 고난은 산 소망까지 끊어지는 고난이었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고난을 통해 자신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기 위함이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한번 받아 하겠습니다. “복음가진 나에게는 그 어떤 것도 문제될 것이 없다”믿습니까? 여기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복음만 누리고 있으면 내게 일어나는 모든 문제는 전부 응답의 과정입니다. 좋은 일이 있을 수도 있고 안 좋은 일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안 좋은 일을 수록 더욱 더 축복된 응답이 그 속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롬8:28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속지만 않으면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되고 사람을 살리는 축복과 함께 자신에게도 유익됨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문제와 고난과 고통 어떻게 할 것입니까? 복음 속에 깊이 들어가서 그 축복의 역사들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오늘 다윗은 고난을 통해 고백했습니다. “주 나의 구원이시여”죄로 인한 죄책감 속에서 “주 나의 구원이시여” 고백했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다윗은 그림자만 보고서도 이 구원의 축복의 비밀을 확인하고 고백한 사실을 보게 됩니다.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은 실체이신 그리스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어떤 것도 우리를 멸망시킬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문제가 있습니까? 고난이 있습니까? 고통이 있습니까? 중요한 응답의 기회입니다. 우리의 고난을 대신 모두 체휼하신 그리스도 그 이름 붙잡고 담대히 나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참된 승리의 축복이 나타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히4:14-16 말씀을 찾아보고 마치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그리스도 붙잡고 문제와 사건, 고통이 있다 할지라도, 죄와 죄책감 있다 할지라도, 뻔뻔스럽게 담대하게 우리 모든 문제 해결하신 대제사장되신 그리스도 앞에 나가심으로 참된 승리의 축복이 누려지는 한 주간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다윗이 고난 가운데서 주 나의 구원이시여 승리의 고백을 한 이 축복이 이번 한 주간 우리의 고백으로 누려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이를 위해 복음 속에 깊이 뿌리내리는 시간들 되게 역사하여 주옵시고, 문제와 사건과 고난과 고통의 역사들을 복음으로 볼 수 있는 눈이 열려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서론: 본문은 다윗이 고난 속에서 하나님만이 구원자 되심을 고백하는 내용입니다. 다윗은 죄악의 수렁에 빠져 육신적 질병이 찾아왔고,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떠나는 정신적 고통을 당했으며, 영적으로 흑암 세력의 총공격을 받았습니다. 삼중고를 겪으면서 다윗은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는 문제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였습니다(1-3, 22절). 그리고 고통스런 호소를 주님이 들어주실 것을 확신하였습니다(9절). 흑암과 사탄의 어떤 공격 앞에서도 하나님만 바랄 것을 결단하였습니다(13-15절). 우리가 당한 고통과 고난 속에서 어떻게 하면 다윗처럼 승리할 수 있겠습니까?
1. 완전복음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1) 완전복음 누리지 못한 다윗은 실수의 자리에 들었습니다.
1) 왕이 되고서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함
2) 죄로 인한 죄책감에 크게 눌림
(2) 완전복음 속으로 들어가겠다는 결단이 있어야합니다(복음 뿌리, 복음 체질).
1)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문제를 해결할 완전한 복음을 주셨음
2) 신앙생활 속에서 복음을 알고 누리며 복음에 뿌리 내려야 함
① 현장의 상황: 발전된 세상 물질문화와 강대국의 우상문화가 우리를 공격해옴
② 현장에서 다락방을 통해 완전한 답을 얻어야 함
③ 복음에 뿌리내려야 하는 이유:
•복음 충만치 않으면 자신도 모르게 과거 체질과 영적문제에 발목 잡힘(개인)
•복음으로 시작한 나라들조차 복음이 사라지고 현재 영적문제로 완전히 실패함(유럽, 러시아, 미국)
•요셉 이후 400년 간 애굽의 노예 / 백성 중 여호수아, 갈렙만 제외하고 전부 광야에 매장됨 / 렘4:1-5
(3) 완전복음만이 인간의 한계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롬1:16-18 / 롬3:10, 23).
1) 복음만이 인간의 한계를 해결할 수 있음(창세기 3장 문제-죄, 저주, 재앙, 지옥권세, 운명)
2) 하나님의 능력인 복음만이 사탄의 역사를 이길 수 있음
2. 복음 가진 자가 당하는 문제, 사건, 고난, 고통에 대한 바른 해석을 찾아내야 합니다.
(1) 복음 가진 자는 고난을 당할수록 승리하게 됩니다.
• 바울(고후12:10), 초대교회(살전1:1-10), 다윗(골리앗과의 일전, 사울왕의 공격, 압살롬의 반역)
(2) 고난 속에서 모든 사람을 수용하며 초월할 수 있는 세계복음화의 그릇이 됩니다(고후1:4-5).
(3) 고난을 통해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하게 됩니다(고후1:8-9).
결론: 고난과 고통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복음 속에 깊이 들어가서 그 속에 담긴 축복의 역사들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다윗이 죄로 인한 죄책감 속에서 “주 나의 구원이시여”라고 고백한 것처럼 누리십시오.
다윗은 그리스도의 그림자만 보고서도 이 구원의 축복과 비밀을 확인하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실체이신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습니다. 어떤 것도 우리를 멸망시킬 수 없습니다. 문제는 오히려 중요한 응답의 기회입니다. 고난을 대신 담당하신 그리스도 이름 붙잡고, 담대하게 대제사장 되신 그리스도 앞으로 나아가십시오(히4:14-16). 참된 승리의 축복이 나타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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