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복음을 막는 올무들
2009-09-13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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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 할렐루야!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당신이 전도기획의 주역이십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찬양대에서 찬양 부른 것을 온 교인과 함께 같이 부르고 싶지만, 시간이 제한되어 있기에 다음 기회로 연기하겠습니다. 오늘 찬양의 가사인 "나의 기쁨 나의 소망되시며 나의 생명이 되신 주" 이번 한 주간 여러분이 현장에서 찬양을 통해 큰 힘을 회복하는 축복의 한주가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난 주 고린도전서 5장을 가지고 고린도 교회 안에 음행에 대한 문제들을 살펴보았습니다. 그 어느 교회보다 가장 많은 기도를 했고 가장 많은 은사를 체험한 교회였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삶에 있어서는 사단의 문화에 그대로 젖어 있었던 것이 고린도 교회의 영적인 현주소였습니다.
이 모습을 보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것이 고린도 교회만의 문제이겠습니까? 지금 오늘날 우리 교회 모습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많은 은혜를 받고 많은 은사들을 자랑하고 열심히 교회를 위해 일한다고 하지만 문화는 타락의 문화에 그대로 젖어 있는, 그래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분별하지 못하는 무감각에 빠져 있는 것이 오늘날 교회 모습이 아닌가 보게 됩니다.
특별히 이번 언약의 여정 뮤지컬, 세상에 복음으로 도전하는 시간표입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함께 인도받으시고 우리는 문화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문화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흑암과 타락의 문화로 자녀들이 어느 것이 옭고 그른지 분별하지 못 할 정도로 타락해버렸습니다. 이런 현장에 이제는 복음으로 도전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 기도하면서 참여하시고 특별히 문화를 가지고 초청하신 분들에게 쉽게 복음을 전달할 수 있는, 또 초청된 분들은 쉽게 복음을 접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입니다. 기도하시면서 응답받는 현장들이 되어지도록 인도받으시길 바랍니다.

특별히 고린도교회 안의 일어났던 음행의 문제를 살펴보면서 교회가 왜 복음을 말해야 하고 왜 복음을 계속 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그 이유들을 지난주 붙잡았을 것입니다. 오직예수 복음만 증거되지 않으면, 우리도 모르게 우리 안의 세속에 영향들이 그대로 들어와서 세속에 물들게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고린도 교회 안에 일어나는 문제를 보면서 우리는 이 땅에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언약을 붙잡아야 합니다. 지난 주 말씀을 붙잡은 바와 같이 우리는 오직예수, 오직복음, 오직전도만 붙잡아야 된다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기쁨이 있습니다. 이 기쁨을 맛보지 않고서는 사탄이 그릇된 기쁨, 왜곡된 쾌락으로 우리를 속이는 현장에서 승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기쁨 맛보게 되면 어느 것이 옳고 그른지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고 세상 속에 살고 있지만, 세상 속에 빠지지 않고 세상을 정복하는 비밀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렘넌트들이 어릴 때부터 하나님이 함께하시며 응답하시는 참된 기쁨을 맛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우리 후대와 렘넌트들이 이 땅을 살아가면서 현장 속에서 고린도 교회가 당한 것처럼 그대로 실패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땅에서 계속 복음을 말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이 땅에 모든 현장에 바울이 고백한 것처럼 화가 미쳐질 것이기에 우리는 계속 복음만 붙잡아야 하는 것이고 복음만 말해야 할 것입니다. 이 일에 증거 가지시는 여러분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으로 돌아가서 사도바울이 믿음의 형제들끼리 어떤 다툼이 있어서 결국은 세상의 법정에까지 가게 되는 것에 대한 분노하는 모습이 오늘 본문에 나옵니다. 어떤 문제로 인해 교회 내에 다툼이 일어났는지는 모르지만 교회 내에 형제와 형제의 싸움을 통해 교회 안에서 문제를 해결 받지 못하고 세상의 법정까지 가게 된 이 사실을 가지고 바울이 안타까워하며 책망하는 모습이 본문을 통해서 말씀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특별히 고전6:1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죠.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와 더불어 다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고발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 6절에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형제가 형제와 더불어 고발할 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
도대체 교회가 어떤 곳인지 알지 못하고 이런 문제를 해결치 못하고 결국 세상의 법정까지 가게 된 것을 바울이 책망하고 있는 모습이죠.
여러분, 이것은 바울이 믿는 사람은 법정에 가서는 안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와 더불어 세상 법정을 무시하는 말도 아닙니다. 우리가 세상 법정에 의뢰해야 할 부분들이 살아가다 보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업을 하다가 사기를 당했다면 법정에 소송해서 자기 권리를 찾아야 할 것 아닙니까. 우리가 살아가는 삶 속에서 많은 경우, 우리의 권리를 찾기 위해 법정에 의뢰해야 할 부분들이 많은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문제는 교회 안의 주도권 싸움 때문에 부끄럽게도 그것을 세상 법정에 까지 가지고 가게 된 부분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부분 교회 안에서의 싸움이 어떤 싸움입니까? 주도권 싸움 아닙니까? 양 파가 갈라짐으로 누가 주도권을 잡느냐? 이 싸움이 오늘날 부끄럽게도 교회 안의 싸움입니다. 그런데 이런 교회 안의 싸움을 통해 그래서는 안 됨에도 불구하고 폭력이 행사되기까지 하니 경찰까지 동원되어지고 그래서 결국은 법정에 의뢰해서 시시비비를 가리는 비참한 일들이 지금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얼마전만해도 큰 교회에서 예배도 서로 못 드리도록 양 파가 나뉘어져 서로 예배당을 차지하기 위해서 예배당에 경찰까지 동원되어짐으로 결국 세상 범정으로 넘겨져 판단케 되어지는, 있어서는 안 될 일들이 지금 교회 안에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특별히 우리 교회 내에도 법조계에서 일하시는 분들을 있습니다. 여기서 종사하시는 분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가장 어려운 판결이 교회내부의 싸움이 일어났을 때 조정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합니다. 교회 안에 싸움이 일어나면 분명한 것을 가려내기 위해서 모든 것을 투자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야기만 해도 잘 통합니다. 그런데 교회싸움에는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기도하면서 싸우거든요. 20일 특별 새벽기도 하고 소송을 걸어 싸웁니다. 그러니까 소송을 거는 쪽은 하나님 편이고 당연히 상대방은 마귀 편인 것입니다. 그래서 절대 지면 안 되는 것입니다. 소송에서 지게 되면 마귀에게서 지는 것이라 여기기 때문에 절대 양보도 없습니다. 아예 통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결과들로 말미암아 오늘 제목같이 「복음을 막는 올무들」이란 제목으로 삼았습니다만 결국 악한 사단이 노리는 것은 복음을 다 막아 버린다는 사실입니다. 복음운동, 생명운동, 전도운동들을 다 막아버린다는 사실입니다. 전도와 선교를 방해하는 악한 사단의 궤계에 완전히 교회가 걸려드는 부분이죠. 교회내부 싸움은 결국 주도권 싸움입니다. 그 주도권 싸움에서 밀리다 보니 세상 법정에까지 가게 되는 것입니다.
얼마 전 신문에 보도되었는데, 북한에서 넘어온 할머니 권사님입니다. 북한 선교를 하는 〇〇단체가 좋은 취지를 가지고 북한선교를 위해 일하는 사실을 알고는 이 분이 평생 모은 재산과 부동산 700억 원을 그 단체에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그 단체가 할머니가 생각했던 방향과 단체의 방향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는 선교단체에 대해 이런저런 요구를 하며 재산을 반환을 해달라고 요구 했는데 그렇게 되지 않으니 세상 법정에 까지 가게 된 것을 신문을 통해 보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 안의 많은 싸움이 일어나는 문제가 주도권 싸움입니다. 이 부분을 통해 결국 사탄이 전도하지 못하도록, 선교하지 못하도록 궤계를 쓰는 것에 한국교회가 걸려 있는 부분들을 보게 됩니다. 사실 한국교회 전체가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현장에서 사람을 만나보면 압니다. "나는 죽어도 교회 안 나가겠다" 교회 다니는 사람을 향해 이를 갈고 있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또 어떤 사람은 교회중직자에게 사기를 당해 상처를 가지고 교회에 대해 원한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기도 합니다. 결국 사단이 전도와 선교를 하지 못하도록 궤계를 쓰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눈을 떠서 먼저 복음을 막는 올무들이 우리 가까이에 있습니다. 이런 부분들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첫 번째로 우리에게 있는 복음을 막는 올무가 어떤 것인가를 살펴보고 두 번째로 모든 문제를 개인과 가정과 교회의 모든 문제의 해결책은 무엇인가? 이 두 가지를 살펴봄으로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참된 답을 붙잡아야 할 것입니다.

먼저 첫 번째입니다. 복음을 막는 올무들. 어떤 것이 있습니까? 악한 사단이 전도하지 못하도록 하는것, 선교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 그것이 무엇입니까? 중요한 것은 먼저 악한 사탄이 일을 통해서 분주하도록 만듭니다. 여러분, 일도 중요합니다만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부터 받아야 합니다. 특별히 우리 교회에 오시면 다른 교회에서 충성, 봉사, 헌신 하셨다 하시더라도 당장 일을 맡기지 않습니다. 왜 인줄 아십니까? 은혜부터 받으라는 의미입니다. 은혜부터 받아야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일을 시켜주지 않는다고 왜 일 시켜주지 않느냐고 섭섭해 하는 분들이 있는데, 여러분, 일에 빠지고 은혜 받지 못하면 내가 죽는 것입니다. 은혜 받고 그 속에서 일이 되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를 일하기 위해 부리신 것이 아니도 막3:13에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함께 있게 하시고" 마찬가지로 마4:19에 제자들을 부르실 때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는 그 다음입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는 사실을 누리는 것이 우선이며,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열심히 하는 것 보다 바르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 우리가 눈을 떠서 봐야 할 것은 악한 사탄이 어떻게 하든지 일을 만들어 분주하도록 하고 참된 축복을 놓치도록 한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에 속지 않는 여러분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교회서 일을 시키지 않을 때는 "은혜 받으라는 것이구나" 하고 기다리시면 됩니다. 시간되면 하나님이 하시게 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주일학교나 여전도회와 남전도회 기관 사역을 보면, 한 분이 여러 가지 일을 맡으니까 사실 정말 은혜 받아야 하는데, 일에 빠져서 힘들게 신앙생활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일이 아닙니다. 은혜 받고 은혜 안에서 되는 일.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디모데에게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하라!" 했습니다. 은혜 속에서 일이 되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악한 사탄이 전도와 선교를 막는 올무들이 무엇인가? 우선순위를 바꾸는 것입니다. 가장 귀중한 것을 귀중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하는데 사탄이 우선순위를 바꿈으로 말미암아 참된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어떤 분과 만나서 이야기를 하는 가운데 이런 이야기를 해보았습니다. "할머니, 지금까지 생을 살아오시며 할머니에게 가장 중요한 시간과 가장 큰 응답이 무엇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여쭈어 보았더니, 한 마디 서슴지도 지체하지도 않으시고 하시는 대답이 "목사님, 제가 창세기 3장 저주가운데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 속에서 빠져나와서 구원받은 것, 하나님의 자녀된 것만큼 내 생애 있어서 축복된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이 고백을 하시더라고요. 그 말에 제 마음에 "그렇구나"

그렇습니다. 정말 우리가 우리 생애를 보면, 저와 여러분이 언제 어느 것이 참된 응답이고 중요한 시간이었습니까? 다른 것이 아니잖아요. 세상 가운데 죄에 종노릇하며 저주가운데 죽었던 저와 여러분이 어떻게 감히 창세기 3장 문제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까? 거기서 빠져나와서 하나님의 자녀됨으로 구원받았다는 이것만큼 가치 있고 이것만큼 중요한 일, 이것만큼 가장 축복된 역사가 어디 있습니까? 그렇다면 교회의 우선순위ㅏ가 무엇이 되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이 내려지는 것입니다. 다른 것이 아닙니다. 복음운동, 생명운동이 교회의 주 사역입니다. 그래서 이 일을 위해 저와 여러분을 부르셨는데 이 사실을 놓쳐버리고 우선순위를 놓쳐버리고 그렇게 살아가니 참된 응답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복음을 막는 올무가 있다면, 관심입니다. 여러분의 지금 관심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여러분의 미래를 결정짓고 큰 결과를 가져 옵니다. 다시 말해서 여러분 마음에 시선을 두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여러분만이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관심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큰 결과를 가져 옵니다. 평상시는 모르는데 문제가 닥치면 그 문제 앞에서는 반드시 관심 있는 것과 연결되어지게 됩니다.
예를 들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빠져나와 홍해 앞에 이르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관심은 "어떻게 살 것인가?" 사는 것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홍해라는 문제가 앞에 놓여 있으니 "애굽에 매장지가 없느냐? 왜 이곳에서 우리를 죽게 하느냐?" 사는 것에 관심이 있었기에 그랬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의 약속인 언약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너희는 가만히 서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여호와의 구원을 보라"
문제를 당하면 문제는 관심과 연결되어집니다. 가나안 땅을 정탐하기 위해 12명을 보냈습니다. 그중 10명의 정탐꾼은 세상의 것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도저히 우리는 그 땅을 취하지 못할 것이고 우리는 메뚜기 같다"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의 관심은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의 언약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보호자는 떠났고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우리가 올라가서 그들을 취하자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 관심이 어디에 있느냐, 그것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어 있다는 것입니다.
사탄은 관심을 세상적인 것으로, 육신적인 것으로 자꾸 바꿉니다. 그래서 참된 영적인 축복을 누리지 못하고 진정한 축복인 전도와 선교를 누리지 못하도록 궤계를 부린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네 번째로 복음을 막는 올무들, 인본주의입니다. 특별히 고린도 교회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죠. 인본주의를 쓰니까 거기에 시기와 분쟁이 일어나죠. 그리고 또한 세속주의가 고린도 교회 안에 들어왔습니다. 이것이 지난 주 살펴보았던 고린도전서 5장의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에, 성도간의 송사문제와 싸움문제가 일어났습니다. 이런 것들이 결국 하나님의 가장 큰 축복인 전도와 선교 즉 참된 복음운동과 생명운동을 막는 역할을 감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도간의 싸움이 일어난다. 그것이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입니까? 사탄의 역사입니까? 교회 간에, 부부간에 싸운다면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입니까? 그렇지 않다면 무엇입니까? 여러분, 악한 사탄은 하는 짓이 분리시키는 짓을 합니다. 그래서 이간자, 대적자가 사탄의 이름입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분리시켰고 이간질 하며 분리시키는 일을 하는 것이 사탄입니다. 죄의 성향은 조화를 이루지 못하도록 부조화를 이루는 것입니다.
로마서 7장을 보면 바울이 복음을 가지고 자기 안에 있는 죄에 대한 한탄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자기 마음으로는 선을 행하는 마음이 있지만 자기도 모르게 자꾸 악에게, 죄에 이끌려가는 것을 고백합니다. 이것이 바로 죄의 성향입니다.
여러분, 사탄이란 말과 죄는 결국 하나입니다. 왜 싸움이 일어나느냐? 중요한 답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는 아닙니다.

한번은 원로 목사님께서 다락방운동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 교회가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하는 시점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것이 성경적 전도운동인데 하나님 말씀이기에 이것을 해야 하는데 이것 때문에 혹이나 파가 나눠어지고 싸움이 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이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교회를 조용히 나두고 갈 것이다" 교회 안에 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며 교회 안에 싸움이 일어나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와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정말 교회 안의 싸움은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가 아닙니다. 그런데 여기에 많은 교회들이 속아 넘어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왜 싸움과 분쟁이 일어나느냐? 복음을 가졌지만 내 안에 복음의 사탄의 통로가 열려져 있어서 그 부분이 잡혀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은혜 못 받는 것이고 은혜 받지 못하니 신경질 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들의 모습 아닙니까? 얼마나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는지 모릅니다. 왜 그러냐? 은혜 받지 못하니까. 복음을 가졌지만 나도 모르는 내 상처가 내안의 모든 욕심이 그대로 있기에 사탄의 통로가 되어서 결국 그것 때문에 싸움이 일어난다는 사실입니다. 갈2:20에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시면 될 것인데 결국 그것 때문에 싸움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복음을 막는 올무들을 하나하나 찾아내어 정리하고 참된 응답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혹여나 이번 한 주간 우리 자신을 살펴보면서 내가 무엇 때문에 참된 응답을 누리지 못하는지 살펴보십시오.

두 번째로, 내 개인이나 교회, 특히 교회 안 분쟁의 문제들을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느냐? 중요한 것은 한 가지, 그 속에 모든 것이 다 있습니다. 마6:33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시리라" 했습니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다시 말해서 참된 전도운동, 복음운동, 생명운동만 붙잡게 될 때에 그 속에서 모든 것은 해결되게 되어 있습니다. 전도운동이 안 일어나면 모든 것에 문제가 옵니다. 반대로 전도운동이 일어나면 과거, 현재, 미래, 다 해결됩니다. 전도운동이 일어난다는 말은 성령의 역사하심이 있다는 말입니다. 성령의 역사하심이 교회 속에 있다면 아무리 무능한 자도 문제되지 않고, 아무리 문제를 가지고 있다할지라도 그 문제가 문제되지 않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에 문제가 없었습니까? 아닙니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가 있는 현장이었기에 문제가 문제 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큰 발판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전도에 대해서 진짜 고민해야 합니다. 내 개인이 전도가 되고 있느냐? 진짜 우리 교회가 생명운동, 복음운동 일어나고 있느냐하는 전도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합니다. 다른 고민은 우리를 멸망시키는 것이지만, 전도에 대한 고민은 그것자체가 성령의 인도를 받는 길입니다. 고후7:10에 보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근심은 구원을 이루게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말로 전도에 대한 고민을 하시되, 특별히 무엇보다 먼저 이 한 시대에 전도운동을 위해서 우리를 전도자로 부르셨다는 확신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시대 시대마다 시대의 전도운동을 일으키기 위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들을 부르셨습니다. 그 자리에 오늘 저와 여러분이 서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한 확실한 답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진짜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이 오늘부터라도 실제로 전도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전도만, 억지로라도 전도만 생각할 때 거기에 모든 장애물도 다 해결되게 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24장과 25장에 복음이 간증되며 일어나는 핍박들과 교회와 현장의 여러 가지 문제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두 장의 가장 중요한 말씀으로 마24:14에 "천국복음이 땅 끝까지 증거된 후에야 끝이 오리라" 고 예수님이 직접 하였습니다. 무슨 말씀이냐? 아무리 이 땅에 장애물들이 있지만, 여러 장애물들이 나와 내가 맺는 사람관계, 주위 환경, 교회 안에도 있지만 전도운동에 방향 맞추게 될 때 그런 장애물들이 모두 해결된다는 언약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수 천 년 동안 예언되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분이 십자가를 지시고 승리하시면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 마28:18-20입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 고 했습니다. 수천 년 동안 예언되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지시고 승리하셔서 제자들에게 마지막 하신 말씀이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 받고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되리라입니다. 헛소리 하신 게 아닙니다. 진짜 전도와 선교, 복음운동, 생명운동 그 속에 모든 것 다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왜 자꾸 어려움이 옵니까? 전도자로 우리를 부르셨는데 이 방향을 안 맞추고 자꾸 엉뚱한 짓을 하니까 뭔가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도자로 우리를 쓰시기 위해서 부르셨습니다. 방향만 맞추면 될 것인데 뭔가 자꾸 열심히 다른 것을 하니까 하나님이 건드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오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된 역사로 이끌어 가시기 위한 하나님의 손길입니다. 문제를 당했다면 빨리 깨닫기를 바랍니다. 전도와 선교로, 복음운동, 생명운동으로 관심을 빨리 바꾸라는 것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깨닫기만 해도 하나님은 성령으로 여러분 걸음마다 인도하시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이 참된 복음운동, 생명운동을 위해서 가져야 할 핵심적인 내용입니다. 초대교회가 붙잡았던 것을 붙잡아야 합니다. 초대교회가 세계를 붙잡은 비밀은 (그리스도입니다) 행1:1에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이라고 했는데, 그 먼저 쓴 글은 그리스도에 관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초대교회는 "예수가 그리스도 되신다" 는 이 사실 붙잡고 승리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모든 영적문제 해결하는 유일한 단어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 과거가 어떻게 해결됩니까? 다른 것으로는 절대 해결되지 않습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시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에 과거는 해결됩니다. 저주는 해결됩니다. 우리가 어떻게 세상과 죄와 사탄의 손에서 빠져나와 상관없는 자가 될 수 있습니까? "예수가 그리스도시라" 고 고백하는 순간에 죄와 사탄과 세상 속에서 건짐 받게 됩니다. 그래서 날마다 확인할 것은 "예수가 그리스도시라"는 것입니다. 문제 있어도요? 그렇습니다. 문제가 있기에 더욱 더 예수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사실 붙잡고 승리하는 귀한 축복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행1:3에 진짜 전도만 생각하고 있으면 우리의 현장에 하나님의 시간표가 이루어집니다. 약속을 붙잡고 기도하고 있으면, 우리 가정에, 우리 자녀들에게, 우리의 현장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언제 움직이고 활동하느냐? 하나님의 시간표가 이뤄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뤄질 때에…. 초대교회가 붙잡은 하나님의 나라를 붙잡게 될 때에 참된 전도운동이 우리 현장과 교회에 일어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성령의 충만함을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그냥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언약 붙잡고 기다리고 있으면 능력이 나타나는데, 어떤 능력이냐? 그 어떤 장애물도 장애가 되지 않는 능력이 나타난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그 능력가지고 증거 가진 증인되어진다고 행1:8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행1:1의 예수가 그리스도시다는 사실, 그리스도 이름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사실, 그 안에서 성령의 충만함을 주시는 사실을 굳게 붙잡게 될 때에 그 때부터 전도운동, 생명운동, 복음운동이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이 생명운동, 복음운동이 일어나게 될 때에 개인과 가정과 산업과 교회의 모든 문제들이 거기에서 해결되게 되어 있습니다. 성령을 보십시오. 언제 재앙이 임하였습니까? 큰 재앙의 역사들은 전도와 선교의 축복을 놓쳐버렸을 때에 노예, 포로, 속국이 되고 후대들은 상관없이 끌려갔습니다. 그러면 언제 교회 문제가 해결되느냐? 우리는 언약을 잡아야 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복음을 막는 올무들! 특별히 어떻게 우리 개인과 가정과 교회 문제들을 해결할 것인가? 한 가지 잡으면 됩니다. 오직 복음운동, 생명운동, 전도운동입니다. 그 역사가 일어나면 거기에 성령께서 역사하기 때문에 그 속에서 모든 것이 해결되게 되어 있습니다. 이 일을 위해서 모든 성도님들은 전도만 생각하시되, 이 일을 위해서 여러분이 있는 현장에서 "오늘의 말씀"과 "오늘의 응답"과 "오늘의 전도"를 붙잡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복음을 막는 올무들이 해결됩니다. 가정의 문제들이 해결됩니다.
특별히 중직자들은 복음운동, 전도운동, 생명운동만을 위해서 300지교회의 그림을 그리면서, 전 지역에 지교회 세우는 이 일에 중심으로 쓰임받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중직자 한 분 한 분이 지역마다 지교회를 진행해 나가야 합니다. 또 중직자분들은 지교회 속에 제자 일어나는 그림과 지역마다 경제가 회복되는 그림을 가지셔야 합니다. 이것이 전도만 생각하는 중직자입니다. 전도만 생각하는 평신도들은 오늘의 응답과 오늘의 말씀과 오늘의 전도가 무엇인가 붙잡는 것입니다. 전도만 생각하는 중직자들은 지교회와 지교회 속의 제자와 지역에 회복될 경제에 관해 그림을 그리는 것입니다. 이 사실이 우리 개인에게 붙잡혀 짐으로 말미암아 개인과 가정과 교회의 문제들이 해결되어 지고, 복음을 막는 모든 올무들이 해결되어지고, 참된 역사 속에 쓰임 받는 교회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직 예수 그리스도, 그 안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와 성령의 충만함 속으로 들어가서 참된 생명운동, 복음운동, 전도운동만 교회에 가장 주가 되게 하시고, 또 우리 모든 사역 속에 생명운동, 복음운동이 일어남으로 말미암아 그것 때문에 바쁜 교회가 되게 하시고, 그것 때문에 행정이 이루어지는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정말 우리가 놓쳐버렸던 언약을 다시 회복함으로 말미암아, 참된 언약 가진 주의 종들과 교회들을 통하여서 정말 이 땅의 모든 문제들을 회복시킬 하나님의 역사들을 바라볼 수 있도록 영안의 눈을 종들에게 열어주시옵소서. 교회가 세상의 판단 받는 것이 아니고, 교회가 세상을 판단하며 영적인 것까지 판단하는 곳인 것을 알게 하옵소서. 바른 축복이 교회의 생명운동, 복음운동 속에 있음을 알게 하시고 이 시대에 이 역사를 회복하는 교회로 설 수 있도록 축복하옵소서.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감사하며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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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9월 13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복음을 막는 올무들
(고전6:1-11)

서론: 본문에서 바울은 믿음의 형제들끼리 어떤 다툼이 있어서 그 문제를 세상 법정까지 가져간 것에 대해 분노하고 있습니다(5-7절). 믿는 사람이 법정에 가면 안 되거나, 세상 법정을 무시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부끄럽게도 교회 안의 주도권 싸움 때문에 세상 법정에 선 것에 대한 분노입니다. 이 문제는 복음과 전도 운동을 막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우리 가까이에 있는 복음을 막는 올무들을 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1. 복음을 막는 (악한 사탄의) 올무들이 어떤 것인가?
(1) 일 때문에 분주하도록 만듭니다.
1) 일도 중요하나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부터 받아야 함
2)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실을 누리는 것이 우선임((막3;13, 마4:19)
3) 은혜 안에서 일이 되어져야 하나님의 역사를 이룸(딤후2:1)
(2) 우선순위를 바꾸어 버립니다.
1) 우선순위를 바꾸어 참된 하나님의 복을 받지 못하게 함
2) 구원 보다 가치 있는 일이 없기에 복음·생명운동이 교회의 주된 사역임
(3) 관심을 복음 외에 다른 곳에 두게 합니다.
1) 육신적인 것에 관심을 갖게 하여 참된 복을 누리지 못하게 함
2) 문제가 닥칠 때 평상시 나의 관심에 따라 결과가 달라짐
(4) 인본주의를 쓰게 합니다.
1) 인본주의를 쓰게 해서 시기와 분쟁이 일어나고 복음운동이 막히게 함(고린도교회의 송사문제)
2) 내 안에 열려있는 사탄의 통로(상처, 욕심 등)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 받지 못해 분쟁 일어남
2. 해결책은 무엇인가?
(1) 참전도를 붙잡고 고민할 때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것이 해결됩니다.
1)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하였음(마6:33. 참된 전도·복음·생명 운동)
2) 전도에 대해 진짜 고민하며, 나를 전도자로 부르셨다는 확신 가져야 함(고후7:10)
3) 오늘부터 억지로라도 전도만 생각해야 함(마24-25장, 행1:8) → 모든 장애가 해결됨
4) 전도·복음·생명 운동에 관심을 돌리도록 문제를 주심
(2) 참된 복음운동, 생명운동 위해서 가져야 할 핵심 내용
1)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며, 모든 영적문제 해결한다는 사실 붙잡아야 합(행1:1)
☞ 모든 과거는 이 사실을 깨달을 때 해결됨(죄, 사탄, 세상에서 해방됨)
2) 진짜로 전도만 생각하고 있으면 하나님의 나라(시간표)가 임하게 됨
☞ 약속 붙잡고 기도하고 있으면 우리의 모든 현장에 하나님 나라 이루어짐
3) 성령의 충만함을 기다리고 있으면 됩니다.
☞ 어떤 장애물도 장애되지 않는 능력이 나타남, 전도운동, 생명운동, 복음운동이 일어나게 됨
결론: 복음을 막는 올무는 오직 생명운동, 복음운동, 전도운동 일어날 때 해결됩니다. 이 때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이 일을 위해서 여러분은 전도만 생각하십시오. 오늘의 말씀과 오늘의 기도와 오늘의 전도를 붙잡으십시오. 특히 중직자는 전 지역에 300 지교회 세우는 일에 쓰임 받아야 합니다. 지교회에 제자 일어나고, 지역의 경제가 회복되는 그림을 그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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