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하나님의 절대주권(Pak)
2010-02-21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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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 감사합니다. 감사한 말씀을 드리자면 시간이 길어질 것 같고 본문에 주신 말씀을 따라 말씀을 전달하겠습니다. 분량이 상당히 많아요. 한꺼번에 다 이야기 해야 하니까 간단히 하기엔 그렇고 절대주권이란 제목인데 들었던 이야기입니다. 또 한번 마음에 새기는 기회가 되시길 바랍니다.
저는 하나교회가 성장해가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 앞에 감사 정도가 아니라 너무 감사할 정도입니다. 목사님과 장로님, 모든 성도들이 어떻게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살아가는가를 생각할 때 너무 감사하고 그 감사를 이루다 말씀드리기가 없기에 생략을 하면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 주권이라 할 때 우리는 너무 잘 압니다. 그런데도 주권이란 말로 얼마나 강조하고 나 자신이 주권 속에 산다는 것을 믿으면서도 너무 안되는 부분이 주권속에 산다는 사실입니다. 사건만 생기면 주권은 어디가고 자기가 나오고 자기 생각이 나오게 되어 하나님의 주권은 온데 간데 없어요. 나를 중심으로 내 주권중심으로 살지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사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지 은혜주시지 아니하시면 절대 감당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다윗을 보더라도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이라 했을 때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다윗은 강조할 뿐 아니라 자기 생활 곧 삶이 그러했습니다. 그리고 성경의 모든 믿음의 사람들은 모두 확실하게 삶 자체가 주권 속에서 살았습니다. 이 주권 속에서 살면서 결론으로 무엇을 붙잡아야 할 것인가를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만, 이 주권 속에 사는 사람치고 승리하지 않은 사람이 없는 축복을 체험하게 된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의미에서 저도 그렇고 여러분도 그렇고 다시 한번 우리의 남은 생애 오늘의 말씀으로 붙잡고 오늘의 기도로, 오늘의 전도로 그 속에서 특별히 주권이란 단어를 확실하게 붙잡고 실제적인 기도응답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에베소서를 통해 몇 번 이 말씀을 전했습니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한 이야기가 이 이야기입니다만, 오늘 원로목사가 되어 처음으로 섰습니다. 아직 손이 회복이 되지 않아 타자가 안되지만 요즘은 글을 좀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신봉준 목사님이 부탁을 하시는데도 설교를 감당할 건강상의 여건이 안되어 강단에 서고자 하는 바램이 있었지만 참았습니다. 사정이 안되니까 참았으며 신봉준 목사님은 기다렸고 교인들도 어떤 면에서 혹시 기다렸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봅니다. 그래서 감사한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저는 구원이라는 말 속에 모든 것이 다 감추어져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구원 속에 과거 현재 미래 다 있습니다. 이것을 칼빈이 정리한 다섯 가지 기둥으로 이미 설명을 했습니다. 가정 먼저 말한 것이 “타락”입니다. 그것도 “완전타락”입니다. 간단한 말로 조금이라도 하나님을 알 수 있는 힘이 인간에게는 없습니다. 또 선악을 분별할 힘도 없습니다. 인간은 완전타락입니다. 왜냐? 사탄에게 붙잡히게 되면서부터 나면서 죽을 때까지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완전타락의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혹시 인간에게 예외가 있다고도 생각할 수 없습니다. 인간에게 무엇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범죄 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는 존재들이라 말씀했고, 두 번째로는 “선택”입니다. 이 선택이라는 부분에 할 말이 많습니다. 이 선택이 인간의 행위와 외모에 국한되지 않고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선택”입니다. 조건이 없습니다. 영세전 부터의 선택입니다. 그다음 세 번째로는 이 자리에서 예수를 믿게 된 부분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그런데 그 은혜 받은 것은 십자가의 속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다 이루셨다는 하나님의 은혜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여러분과 제게 임하는데 그 속죄가 완전타락 했으나 선택받은 사람들만 속죄를 받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것은 잘 기억하셔야 합니다. 어지간히 들어도 의미가 잘 이해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완전히 타락했습니다. 하나님을 볼 수도 느낄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완벽하게 저와 여러분을 선택하셨습니다. 이것은 키가 크고 적고, 건강하고 그렇지 않고에 상관없어요. 하나님이 원하신 뜻대로 무조건 선택했습니다. 선택한 사람을 완벽히 선택하고는 속죄하셨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사람만 속죄했다 해서 “제한된 속죄”라 합니다. 기독교 국가였음에도 교리적으로 참담하고 무수한 싸움을 했습니다. 심지어 알미니안 주의라고도 들었을 것입니다. 반대로 여기에서는 칼빈주의에서는 “아니다 하나님이 선택한 백성만 속죄해주신다” 우리가 장로교인이라 할 때, 그냥 장로교인이 된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이 장로교가 형성되기까지 죽고 사는엄청난 투쟁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속죄하는 일의 기준이 세워졌는데, 제한속죄는 엄청난 비밀이 이 속에 있습니다.
그다음 네 번째, 속제 받을 사람들 중 아직 하나님의 역사 속에 안 들어온 사람들이 있어요. 타락해있고 청소년들 같으면 정서적으로나 안정이 되지 않아서 세상에 떠돌아 다니고 어른들도 술먹고 갈곳 안 갈곳 다가는데 이 사람들은 모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제한속죄한를 할 사람들에 대해서는 불가항력적. 한번 받아합시다. “불가항력적” 이 말은 도저히 반대하고 대항할 수 없는 은혜 즉 불가항력적 은혜라고 합니다.
여러분, 여기에 오신 분들이 이 말하면 다 느낄 것입니다. “맞아 나도 여기오기까지 얼마나 헤메고 죽을 뻔한 고생하고 왔는가?” 어떤 사람은 죽다가 왔고 어떤 사람은 반죽다가 오게 된 것 등 은혜받지 않으면 안되도록 하나님이 몰아가십니다. 여러분 여기 오시기까지 참 수고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지만 참 수고했습니다. 이것은 보통일이 아닙니다. 청소년들이 완전히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오기는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진작 그렇지 않으면 참 축복중의 축복이죠. 렘넌트 교육을 한다고 계속 메시지가 나가는데 엄청난 계획입니다.
제가 지난 설에 세배하러 저희 집에 왔던데 김위홍 집사의 막내아들이었습니다. 아무리 주위에서 “세배하라”고 엄히 말해도 그 억압 속에서도 절대 세배를 안 해요. 돈을 안준다 하니 그래도 안되요. 그래서 세벳돈을 두 배로 준다고 해도 세베를 안한대요. 왜 않하는지 알아보니 “사람에게는 무릎을 안 꿇는다” 이겁니다. 그 이야기를 어디에서 들었느냐 하니까 하나렘 어린이 집에서 선생님께 들었나봐요. 사람에게 무릎에게 안 꿇는다는 그 말이 아이가 이해하기 하나님 외에는 절대 무릎을 않 꿇는다 고 이해한 것 같아요. 이것이 아이의 마음에 박혀 놓으니까 그렇게까지 해도 세배를 안해요. 나중에는 말을 안들어서 눈에 힘을 주면서 “할아버지 무섭다” 하면서 겁을 줘도 소용이 없어요. 기어코 세배안하고 가더라고요. 그 배경이 선생님이 그렇게 가르쳤다는 것이죠.
그래서 제가 새삼스럽게 렘넌트를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을 다시금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한번 사상화 되니까 절대로 동요가 없어요. 아마 아이가 장난치고 웃고 떠들다가 들은 내용지만 그렇게 들은 것이 심령에 박혔어요. 새삼스레 하나렘 교사들을 위해 기도해야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들은 정말 위대한 일꾼들입니다. 말로는 “렘넌트”하지만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교사들은 렘넌트 살리는 중요한 제자입니다. 하나렘 교사들을 위해 기도 많이 해야 하겠다고 생각하고 간절히 부탁합니다. 물론 부모님들도 있어요. 다른 형제들도 있어요. 그러나 부모가 이야기해도 안 듣고 형제가 이야기해도 안 듣고 심지어 목사 할아버지가 이야기 해도 안듣는데 교사 말은 들어요. 그래서 그 아이의 사상이 바뀌어질 수 있기는 교사가 수정해주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니 교사의 힘이 놀랍습니다.
어쨌든 오늘,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은혜주시되 도저히 내가 막을 수도 저항 할 수도 없는 불가항력적 은혜. 이를 위해 불가항력적 사건들이 이 은혜를 받기 까지 계속됩니다. 이 말을 알아들을 사람은 다 알아 들었을 것입니다. 이 은혜를 받은 사람에게 어떤 것이 이뤄지느냐? 완전히 책임지시는 “성도의 견인”이라 하는데, 하나님이 완벽한 책임을 지신다는 사실. 완벽한 계획 속에 세워주십니다.
그러면 축도할 때에 “지금으로 부터” 라고 하는 것은 참석한 현재입니다. 축도는 참석한 현재 그 인원들이 그 중심입니다. 그래서 축도할 때에 옛날 바울에게서 축도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라고 본론부터 시작하는데, 지금은 교회에 모인 현장에 있는 여러분에게 있는 축도이기에 “지금으로부터 영원토록” 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영원까지”가 아니라 “영원토록” 계속입니다. 끝이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영원토록 항상 함께 있을지어다” 할렐루야! 이것이 축도의 중요한 내용입니다.

제가 남문교회 부목사로 있을 때, 교회 바로 옆에 미국기지가 있었습니다. 어떨 때 보면 축도할 때만 미군 사람들이 들어와서 축도 받고 축도 받자마자 나가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역사와 은혜를 사모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 축도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중요할 뿐 아니라 여러분이 축도를 누릴 수 있는 기회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예배 때 말씀은 못 들었지만 축도의 비밀을 아니까, 목사가 손을 들고 축도할 때 그 축복이 올 줄 믿으니까 축도는 꼭 받고 가는 것을 보기도 했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무엇을 느꼈느냐 하면 한국말로 축도하고 한국말로 복을 비는 것이 목사의 축복이 목사 자신이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역사하시는 것이기에 그 축복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말씀 마치고 축도 안 받고 가는 사람은 중요한 것을 놓친 사람들입니다. 그것은 예배를 안 드리고 가는 사람과 마찬가지입니다. 어쨌든 축도는 꼭 받고 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완전한 책임 즉 전체를 말해서 구원이라고 합니다. 과거, 현재, 미래가 완벽한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여러분의 모든 축복과 은혜가 구원 속에 다 들어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했을 때 하나도 남기시지 않고 완벽하게 이루신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완전한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다섯 가지 기둥을 구체적으로 열 가지 삶(신앙)의 발판을 누릴 수 있는 중요한 내용이 무엇이냐? 다섯 가지 구원의 기둥들을 확실히 받쳐주고 있고 구원을 누리는 방법입니다. 그런데 확실히 누릴 수 있는 방법인 무엇이냐 이것입니다. 그 방법이 제가 늘 말하는 영원전 부터 영원토록 계속가는 것입니다. 창조후 타락했을 때부터 복음을 주셨습니다.

이제부터는 방법입니다. 어떻게 이 구원을 누립니까? 구원을 누리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이 다 이 안에 있음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모든 삶의 전부가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와 역사가 아닙니까? 구체적으로 이 안에 모두 약속했는데 그것을 누리는 것이 발판입니다. 그것을 누릴 때 제일 먼저 성부입니다. 저는 혈액 투석을 하며 묵상한 내용인데 시간이 여의치 않기 때문에 간단히 주제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성부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 할 때 이것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모든 일들, 계획, 인도, 섭리, 완벽하게 주권 속에 다 있습니다. 그래서 제목을 하나님의 주권이라 하려다가 하나님의 절대주권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다 할 때 보통주권이 아니라 절대주권을 믿는 것입니다. 내 계획과 내 뜻을 조금도 포함시킬 수 없는 완전한 절대주권입니다. 이것을 믿는 믿음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여러분이 예수 믿는다 했을 때, 잘되는 것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닙니다. 절대로 그것은 나중의 문제입니다. 무슨 일을 어떤 사건을 부닥쳐 와도 하나님의 주권으로 보는 것입니다. 모든 순간이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라고 보는 이것이 발판입니다. 성부는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것이 첫 번째 발판이고 그 다음에 오는 것이 이 주권 속에 들어가고 구원의 역사를 이루실 수 있기 위해서 어떤 과정과 역사가 있어야 하느냐?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알고 영접해야 하는 것입니다.
영접입니다.
그래서 제가 어떻게 기억을 하느냐 하면 ‘성부 주권, 성자 영접, 성령 인도’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하는 것 같아도 성령인도 안 받고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단 하나님의 손에 들어가면 내가 성령인도 받는다 안 받는다 상관없어요. 인도 안 받으면 죽는데요. 인도를 안 받을 수 없어요. 하나님의 자녀니까.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 말씀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믿음이 없어’라고 아무리 핑계대고 심지어 죽는 자리에 들어간다 할지라도 인도받고 있으면 되요. 성령이 그때부터 여러분과 저를 안 놓치는 겁니다. 완벽한 인도! 인도 받는 구체적인 사실이 기도입니다. 그래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
그다음에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설명이 말씀입니다. 오늘의 말씀입니다. 이것이 전제가 된 속에서 말씀이지, 이것이 전제가 안 되면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좋은 말 많습니다. 성경에는 잘 이해되지 않는 말씀으로 꽉 차있는데 이해되고 쉬운 말이 얼마나 많습니까? 공자왈 맹자왈도 그렇고 그런데 반드시 하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그 말씀은 영원전이나 영원까지 변치 않습니다. 능력과 권세로 여러분과 저를 인도하시는 오늘의 능력입니다. 이 말씀!

그 다음에 교회입니다. 이 말씀을 받는 사람들, 영접한 여러분과 저, 곧 말씀을 받는 여러분과 제가 곧 교회입니다. 교회란 곳은 안 보이는 교회도 있지만, 보이는 교회가 여러분 자신입니다. 여러분 자신! 받아 합시다. “내가 교회이다” 교인 이라고 하는 말이 엄청납니다. 그래서 우리가 교인, 교회라 할 때에 ‘거룩한 백성이다’는 것입니다. 거룩하다는 것은 성스럽다는 것이 아닙니다. 구별되었다는 세상 사람들과 불신앙자들과 구별되었다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자로 구별된 것이 교회입니다. 그래서 거룩한 존재입니다. 나는 도저히 거룩할 수가 없더라? 암만 애를 써도 행위뿐이지… 거룩하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외식이지 그것이 진짜가 안되요. 거룩한 교회입니다. 그래서 ‘에클레시아’는 헬라어로 ‘불러내었다’라는 것이지 거룩하게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교인들 속에 세상 사람들이 교인들을 욕하는 배경은 거룩하지 않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삶이 율법적으로 나무랄 때 없다는 것에 기준이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 참 안 좋더라 좋다’라고 하는 것은 전부 그것입니다. 여러분 자신들도 그렇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율법이라고 안 그렇습니까? 율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것을 우리 다락방에서 규모라고 하기도 하고, 더 넓혀서 말할 때는 기본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교인들 중에 기본이 안된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아마 불신자 보다 더 많을 겁니다. 교인들이요. 그리고 이상한 사람들이 구원받으려고 교회에 오니까요. 이상한 사람들과 상관없이 또 하나님이 불러주셨으니까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모일 때 교인들 때문에 실망한 사람들이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거의입니다. 사람, 사람 때문에 부딪혀서 넘어지고 오해라는 것이지… 거룩하기 때문에 그런 법은 없습니다. ‘거룩하다’라는 의미를 다시 새로이 이해해야 됩니다.

그다음에 교인인 내 자신이 가는 곳 마다 선교지입니다. 가는 곳마다 할 일이 무엇입니까? 오직 전도, 선교입니다. 외국에 나가는 것이 선교, 습관과 전통이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것이 선교, 그 다음에 나와 같은 습관과 풍습을 가진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 전도입니다. 그래서 보통 우리나라에서는 전도이고, 외국에서는 선교다 라고 말합니다. 외국 가는 사람은 선교사, 우리나라에서 목사는 전도자입니다. 그래서 여러분과 저도 똑같이 전도자입니다. 이들을 제자라 합니다. 궁극적인 하나님의 원하시는 계획은 마지막에 가서 제자의 축복입니다. 여러분이 천국에 간다는 그 정도가 아닙니다. 제자의 복을 받는 것이 궁극적인 축복입니다. 제자의 축복은 무엇입니까? 목사의 제자는 여러분들입니다. 그리고 나의 제자도 나를 통해서 선교를 받은 자, 전도를 받은 자가 나의 제자입니다. 곧 하나님의 제자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말할 때에 여러분을 바울이 전도한 사람들에게 “여러분이 나의 면류관이다”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상 받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내가 얼마나 잘 살았다’는 그 말이 아닙니다. ‘얼마나 내가 제자가 되어서 하나님이 원하는 생명구원의 축복을 받았느냐!’이것이 바로 제자의 축복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어느 자리에 서든지 어디를 가든지 할 일은 하나입니다. 전도입니다. 선교입니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자식들에게 말하든지, 남편에게 말하든지 아내에게 말하든지 중요한 하나님의 목적은 전도, 선교입니다. 이것이 이해되어야 됩니다. 그런데 이것이 의식적으로 ‘전도하러 가야겠다, 무엇을 하러 가야겠다’라고 이렇게 하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아! 참 그렇구나! 방법이 이것이구나! 이것이 전도 구나, 선교 구나!”그렇게 생각이 오고, 의식이 오는 것이, 의지가 오는 것입니다. “아 내가 전도해야 되겠다! 내가 선교해야 되겠다!”는 이런 의지가 마음에 오는 것을 사명감이라 합니다.
옛날에 사명감은 “주를 위해서 죽겠습니다, 주를 위해서 고생하겠습니다!” 목사가 되면 무조건 고생한다고 생각하고, 사모가 되면 무조건 고생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고생하겠습니다 라고 시작하는 것을 사명감이라고 그랬습니다. 제가 선볼 때 “십자가를 질 각오가 되어 있느냐?” 물었는데, 각오가 된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대답을 못합니다. 그런 식으로 선을 볼 때 가장 중요한 질문이라고 그런 질문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닙니다. 아내에게 하든지 남편에게 하든지 하나님의 주권의 배경이 되면 저절로 나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말하든지 글을 읽든지 무엇을 하든지 전도제자입니다. 전도입니다.
반드시 그 전도를 하는 동안에 나오는 것이 생사화복(生死禍福)입니다. 사는 것(생生), 죽는 것(사死), 벌 받는 것(화禍), 복(福)받는 것입니다. 생사화복도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는 믿음이 아니면 나올 수 없습니다. 내가 아프거나 문제가 생길 때마다 하나님의 주권으로부터 멀어지는 데서 문제가 생겨요. ‘하나님! 나는 왜 이럽니까? 나는 왜 아픕니까?’그것도 1년, 2년 아픈 것이 아니라 한 20년 아팠으니까 어지간히도 아팠죠. 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 속에 하나님의 계획이요, 섭리요, 계획이라는 것이 이해가 안 되었어요. 완전히 안되니까 생사화복의 영인줄 모르니까, 자꾸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든 성도들이 빠지는 함정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께서 이미 나에게 완벽하게 주신 구원을 누리는 축복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입니다.
이것이 확인되는 만큼 여러분의 생애, 생활, 사상과 뜻이 달라집니다. 자녀들이 잘한다, 못한다가 문제가 아닙니다. 렘넌트 어떻게 한다가 문제가 아닙니다. 이 주권안에서 다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죽고 사는 문제가 사실은 사람에게 가장 큰 문제죠. 그런데 반드시 육신을 가진 사람은 성경에 보니 한번은 죽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건강해도 한번은 죽어야 합니다. 그래서 급히 죽으나 천천히 죽으나 죽는 것은 영원에 대해서 손톱만큼의 차이입니다. 10살에 죽으나 100살에 죽으나 하나님의 영원 속에 볼 때는 불교 용어로 “찰나”라고 하죠 그건 순간입니다.
김위규 장로님의 아버님께서 새벽기도 가시다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고, 저희 맏형님도 그렇게 돌아가셨는데 나는 내가 그렇게 죽는다면 다른 사람이 어떻게 볼까 싶어서 딱 숨이 막혀 죽든지, 가슴이 막혀 죽든지 금방 죽으면 되는데 이런식으로 슬슬 아프다가 한 한달쯤 있다가 죽으면 그게 참 힘들거든요. 가족도 힘들고 자기도 힘들고… 저는 그래서 산소 마스크 다는 걸 별로 안 좋아합니다. 죽을 때는 하나님이 데려가실 때니까 그냥 놔두는 것이 좋아요. 그래서 저의 장모님이 돌아가실 때 저는 병원에도 갈 생각도 안했어요. 주일이기도 하지만, 왜 안했느냐면 형제들이 와서 원망한다 해도 나는 할 말이 있어요. 하나님이 데려가실 때 데려가시는 것이지, 그 산소마스크 안하고 병원 안 갔다고 해서 일찍 죽는 것은 아니다. 그냥 둬라. 그래서 3일 만에 가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드러누우셔서 한달쯤 옆에서 못 떠나게 되고 그러면 나도 고생이고, 집사람도 고생이고, 교인들도 고생이고 그런 고생이 없어요. 그런데 어떻게 잘 아셨는지 돌아가시기 전 3개월 간 계속해서 점심때 꼭 정시기도를 하층 본당에서 죽음을 위해 그렇게 기도하시더라고요. 딱 3일 누워계시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하든지.. 저희 형님 돌아가실 때도 그랬는데 새벽기도 나가시다가 딴 집에 가다가 그런게 아니고, 술집에 가다가 죽은게 아니고, 과자집에 가다가 죽은것이 아니고 새벽기도 나가시다가.. 자칫 잘못 생각하면 새벽기도 나가다가 죽을 수 있느냐? 그러는데 자동차 하고 박치기를 하고 형님이 얼마나 덩치가 컸는데도 한 10미터 이상 떨어져서 그 자리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김위규 장로님 부친께서도 역시 새벽기도 나가시다가 부딪히는 순간 순식간에 가버렸습니다. 떨어지는지 날아가는지도 모르게 쿵하고 떨어지는 순간에 천국이구나! 얼마나 복된지… 이건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돈도 없는 것도 아닌데 장례비는 나오더라구요. 술이 약간 들어간 사람이 술 취해서 과속해서 그런것 같은데.. 전혀 벌하지 말라고 했다는데 그냥 있겠어요. 일단은 장례비까지 다 받으면서 순식간에 천국으로…
나도 그렇게 갔으면 싶은 마음이 있는데 다른 보는 사람이 좀 그렇다 새벽기도 가다가 왜 그렇냐? 이러는 사람들이 더 많거든요. 그래서 그랬으면 좋겠는데 그렇다고 내가 운전하다가 그렇게 쿵 떨어질수도 없고 갔다 그러면 옛날에 맥개비 다리에서 떨어졌을 때 그때 가버렸어야 되는데 시간이 아직 안 되었는지 안 갔거든요. 이걸보면 완벽한 하나님의 계획안에 있다는 것이 믿어집니다. 그래서 죽음에 대해서도 겁이 없어요. 가는날, 부르시는 날, 부조를 얼마 받을 것인지 하나님이 다 작정해 놨습니다. 그러니까 걱정할 것이 없어요. 믿는 사람의 장례는 거의 다 장례비가 나오더라고요. 이번에도 우리 김장로님 장례비를 많이 드렸지요. 얼마나 사람이 많은지… 하관예배 하는데도 우리교인들이 갔지요 장례비가 엄청나게 들었다고 그래요. 그런데 장례비가 다 나왔다고 그래요. 주안에서 하나님의 계획 속에 죽는 사람은 장례비도 걱정할 것 없어요. 부조 얼마 나올지 그것도 걱정할 것 없어요. 하나님의 작정 속에서 다 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그러면 죽음으로 끝나는게 아니고 이게 문제거든요. 죽음 후에 뭐가 있습니까? 내세가 있어요. 여러분과 제게는 천국이 기다립니다. 이건 비교할 수 없는 축복의 나라 천국입니다.
저의 장모님 동생이 핍박을 얼마나 받았는지 산 순교자라고 별명을 붙일만큼… 남편이 결국은 예수믿고 돌아가셨습니다만, 얼마나 핍박을 했는지 나무에다가 목을 걸어 놓고 집에 태연스럽게 오셨어요. 둘이 밭에 나갔는데 혼자 오니까 아이들이 어머니는 물으니 거기 있다고 해서 뭔 분위기가 이상해서 뛰어가 보니까 목을 나무에 달아놓고 내려왔습니다. 곧 죽는 겁니다. 얼마 멀지 않은 모양인데 가니까 벌써 숨이 넘어가기 직전이예요. 그래서 오셨는데 나중에 너무 힘들게… 머리도 얻어맞고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았는데 살아있다는 말 뿐이지 사실 몸은 벌써 죽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돌아가시기 전에 치매가 왔어요. 치매가 오면 전혀 모릅니다. 형제도 남편도 못 알아봅니다.
그런데 천국 그러면 웃고 입이 벌어져요. 천국 얘기만 나오면 너무 좋아하셨어요. 여러분 정말 천국이 믿어집니까? 축복 중의 축복입니다. 여러분이 이땅에서 어떻게 살아도 상관없어요. 천국이 준비되어 있어요. 우리의 고생과 고통은 잠깐입니다. 천국은 영원토록, 그리고 만약에 복음이 없다, 내세가 있는 것을 알고 있지만 내세를 복음으로 준비하지 못했다면 영원토록 지옥입니다. 죽을래야 죽을 수도 없는 영원한 지옥, 이것은 말할 수 없는 저주입니다. 원수마귀와 영원토록 저주받는 것이 내세입니다. 여러분 내세 하나만 해도 다 끝입니다. 전세방에 살든지, 월세 방에 살든지, 길가에 노숙자로 살든지 상관없어요. 축복 중의 축복. 이것이 그냥 열리는게 아닙니다. 죽음과 함께 내세의 문이 열립니다. 이 사실을 구체적으로 누리고 있는 것이 하나님의 주권. 죽음도 상관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제자에게 찬물 한 그릇 주는 것도 제자의 상을 받습니다. 여러분 전도자에게 작은 헌신도 제자의 상급을 받습니다. 제자의 축복 이게 모든 축복중의 하나님이 결과적인 축복으로 제자의 축복. 우리가 누리는 모든 축복 중에 이게 마지막입니다. 하나님의 주권 속에 누리는 가장 축복된 축복이 제자의 축복입니다. 이 일이 모든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 역사 속에 가장 큰 축복의 열매가 여기에(제자)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마지막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를 삼아 내 이름으로… 류광수 목사님이 금년에 전도전문훈련. 제일 마지막 축복된 훈련으로 계획하고 전도전문훈련을 하려합니다. 이렇게 볼때 결국 뭘 말하냐면 우리 교인들 중에 하나님의 주권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다른 교회가 물론 다 똑같이 하나님의 은혜 받고 나갑니다만, 우리 교회가 왜 축복된 교회, 교인들이냐? 이것(하나님의 절대주권) 때문입니다. 주일학교 부터 장년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뭘 강조했느냐?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입니다. 이 주권을 믿게 되면 결과적으로 오늘 우리가 붙들어야 될 것이 다윗이 시므이가 “이 비루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하며 욕을 할 때 옆의 장군이 당장 그의 목을 치려했습니다. 그때 다윗이 한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저 사람을 시켜서 내게 하는 것이 아니냐? 이 일로 하나님이 내게 또 은혜 주실 수도 있다” 절대적인 주권입니다.
이 사실이 확실하게 붙잡혀 지면 제가 벌써 70세가 다 되어 가잖아요. 바로 죽음 직전에 있는데도 안 되는 것이 이것입니다. 내게 조금만 기분 나쁜 말을 하면 성이 더 납니다. 몸이 아플 때는 성이 더 나요. 우리 집사람이 항상 좋게 하려고 어떻게 든지 뭘 해보려고 그러는데 나는 그 속에 조금만 기분 나쁜 소리하면 감정이 극도로 올라요. 그게 사실은 정신병이예요. 영적인 병이 안 고쳐져서 그래요. 막 감정이 솟아올라요. 그래서 이게(하나님의 절대주권) 확실히 붙잡혀 지게 되면 욕해도 괜찮습니다. 욕 먹어도 괜찮습니다. 쓰러져도 괜찮습니다. 왜? 쓰려져도 하나님의 계획이 지금 이뤄지고 있습니다. 아파도 괜찮습니다. 제가 아파도 여러분 앞에 큰 소리 칠수 있는 배경이 바로 이겁니다(하나님의 절대주권). 아파도 괜찮습니다. 20년, 30년 병을 앓아도 괜찮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은 결국 축복하시는 주권이지, 멸망시키는 주권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어떤 사건이든지, 어떤 문제든지, 오해를 받아도 괜찮고 욕을 먹어도 괜찮고 이 모든 사실을 수용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주권의 믿음이 아니면 생겨질 수가 없어요. 이건 될 수가 없습니다. 이걸 강조하면서도 사건만 생기면 성내는 것이 인간입니다. 자존심이 조금만 상하면 눈이 새파래집니다. 이 말을 하는 나도 지금도 그러니까... 참 은혜 안 주시면 안되는 겁니다.
그런데 은혜 주셔도 자꾸 내가 나옵니다. 사건만 생기면.. 그래서 오늘 다시 한번 여러분이 어떻게 해야 이 땅에 축복된 삶이 되느냐? 구원은 완전히 이루어졌습니다. 구원은 부족함이 없지요. 그런데 삶에 대해서 뭐가 안되느냐? 하나님의 절대주권이 믿어지지 않기 때문에 사건만 생기면 내가 나오게 됩니다. 축복된 역사가 나오고 있는데도 다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김완식 목사님이 천사들 이야기를 하면서 축복을 다 준비해 놨는데 인간들이 안 받더라는 얘깁니다.
그래서 천사장이 너도 애먹었냐? 나도 애 먹은게 그거다고 하더랍니다. 그리고 창고에 문을 여는데 하늘창고에 축복이 쭉 이름을 다 써가지고 받을 사람이 받아야 하는데 받을 사람이 반품을 해가지고 전부 창고에 꽉 찼더래요. 그 중에서 김완식 자기 이름이 없어서 참 다행이다 싶더랍니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데, 우리가 고통도 넘어지는 것도 욕 먹는것도 오해도 하나님이 약속하신 축복 아래 있습니다. 모든 것이 변해서 축복으로, 받기만 하면 축복으로, 안 받으려고 하니까…

여러분이 지금 생각을 해 보세요. 그게 남의 말이 아닙니다. 안 받으려고 하니까.. 약간만 자존심 상하면 쌍심지를 해가지고… 잘 하다가도, 사랑합니다 하다가도 죽일 사람처럼…
요즘 제가 그때 “은퇴 목사할 때 사랑한다고 안 했나?” 그런데 사건만 생기면 요만큼 문제만 생기면… 그게 인간입니다. 모든 사건과 일들 속에서도 욕먹어도 그래 내거다. 오해를 받아도 다 수용하고 무슨 소리를 해도 자식이 어떻게 됐다. 누가 어떻게 됐다, 오해 받는 문제가 얼마나 괴롭습니까? 그래도 수용하고 받아들이면 축복입니다. 다 하나님이 준비해서 우리에게 축복으로 주실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할렐루야! 믿으면 끝났습니다. 안 믿어도 이 속에 들어있습니다. 그러나 현장에서 지금 내가 누리는 방법이 바로 축복받을 인생, 축복받을 인간이요, 축복받을 자식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의 주권 속에 확실하게 세워 주시고 주님께서 오늘 현장에서 내게 무슨 일을 당하든지 하나님이 은혜 주시고 축복 주실 하나님의 주권 속에 있음을 감사드립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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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21일 주일 2부 예배 박지온 목사
하나님의 절대주권
(엡1:3-14)


서론: 사건만 생기면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믿음은 온데간데 없습니다. 은혜가 아니고서는 절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할 수 없습니다. 다윗을 비롯한 성경의 모든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주권 속에 살았으며, 한 사람도 승리하지 않은 이가 없습니다. 오늘의 말씀, 오늘의 기도, 오늘의 전도를 붙잡고 남은 생애에 주권 속에서 실제적으로 기도가 응답 되어야 하겠습니다.
구원이라는 말 속에 모든 것이 다 담겨있습니다. 칼빈은 누구보다도 구원을 다섯 가지로 잘 정리하였습니다.

1. 구원에 대한 칼빈의 다섯 가지 교리(하나님의 주권을 설명함)
(1) 완전 타락: 인간에게는 조금도 하나님을 알 수 있는 힘, 선악을 분별할 수 있는 힘이 없습니다.
(2) 무조건 선택: 나의 행위나 외모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뜻대로 조건 없이 선택하셨습니다.
(3) 제한 속죄: 선택받은 사람들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속죄를 받을 수 있습니다.
(4) 불가항력적 은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막을 수 없습니다.
(5) 성도의 견인: 영원토록 하나님께서 성도와 항상 함께 계셔서 완전히 책임지십니다.

2. 삶에서 구원을 구체적으로 누릴 수 있는 방법 - 신앙의 열 가지 발판
(1) 성부(주권): 하나님께서 절대주권으로 역사하심을 믿습니다.
(2) 성자(영접): 구원 역사를 이루기 위해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알고 영접해야 합니다.
(3) 성령(인도): 성령께서 성도를 완벽히 인도하십니다(구체적 사실=기도).
(4) 말씀: 변치 않는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능력이 됩니다.
(5) 교회: 나는 구별된 거룩한 백성으로, 곧 교회입니다.
(6) 가는 곳마다 선교지: 가는 곳마다 오직 전도하고 선교해야 합니다(하나님의 목적).
(7) 생사화복: 하나님의 주권 믿는 가운데 생사화복이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합니다.
(8) 죽음: 누구나 한 번은 죽어야 하는데, 하나님의 작정 속에서 죽기에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9) 내세: 죽음 이후에 영원한 내세(신자에게는 천국, 불신자에게는 지옥)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10) 제자: 제자(전도자)에게 작은 헌신을 하여도 제자의 상급을 받습니다(가장 큰 축복의 열매).

결론: 하나님의 주권은 결국 축복하실 주권이지 멸망시키는 주권이 아닙니다. 그래서 오해 받고, 욕을 먹고, 문제 생겨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절대주권이 믿어지지 않기에 사건만 생기면 내가 나오게 됩니다. 참으로 은혜 주시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은혜 주셔야 믿어집니다.
우리에게 오는 고통도 오해도 전부 하나님의 약속하신 축복 아래 있습니다. 모든 것이 축복으로 변하게 됩니다. 주권을 믿고 받아들이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요, 축복받을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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