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자유인과 종
2011-04-1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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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4월 10일 주일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자유인과 종
(출애굽기 21장 1~11절)

1네가 백성 앞에 세울 법규는 이러하니라 2네가 히브리 종을 사면 그는 여섯 해 동안 섬길 것이요 일곱째 해에는 몸값을 물지 않고 나가 자유인이 될 것이며 3만일 그가 단신으로 왔으면 단신으로 나갈 것이요 장가 들었으면 그의 아내도 그와 함께 나가려니와 4만일 상전이 그에게 아내를 주어 그의 아내가 아들이나 딸을 낳았으면 그의 아내와 그의 자식들은 상전에게 속할 것이요 그는 단신으로 나갈 것이로되 5만일 종이 분명히 말하기를 내가 상전과 내 처자를 사랑하니 나가서 자유인이 되지 않겠노라 하면 6상전이 그를 데리고 재판장에게로 갈 것이요 또 그를 문이나 문설주 앞으로 데리고 가서 그것에다가 송곳으로 그의 귀를 뚫을 것이라 그는 종신토록 그 상전을 섬기리라 7사람이 자기의 딸을 여종으로 팔았으면 그는 남종 같이 나오지 못할지며 8만일 상전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여 상관하지 아니하면 그를 속량하게 할 것이나 상전이 그 여자를 속인 것이 되었으니 외국인에게는 팔지 못할 것이요 9만일 그를 자기 아들에게 주기로 하였으면 그를 딸 같이 대우할 것이요 10만일 상전이 다른 여자에게 장가 들지라도 그 여자의 음식과 의복과 동침하는 것은 끊지 말 것이요 11그가 이 세 가지를 시행하지 아니하면, 여자는 속전을 내지 않고 거저 나가게 할 것이니라

 출21:1~11

■ 할렐루야! 언제나 나를 사랑하시고 언제나 나에게 생명을 주시는 주님 앞에 영광의 박수를 올려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전도자의 삶의 축복을 누리십시오. 감사합니다.
오늘 “자유인과 종”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인도를 받고자 합니다. 특별히 이번 한 주간 산업인들을 위해 집중해서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주시길 바랍니다. 이미 주보를 통해 광고를 드렸습니다만, 제14차 세계산업인대회가 내일과 모레간 이틀 동안 합숙중심으로 진행되고, 13일부터는 본대회로 메시지가 진행됩니다. 분명한 것은, 로마서 16장의 일꾼들이 받은 응답들이 산업인들이 받은 응답인데,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면 복음을 가진 자가 복음을 누리며 산업을 할 때에 복음 운동할 수 있는 산업의 축복을 주시게 되어 있습니다. 이 축복을 산업인들이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전도운동과 복음운동은 빈손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복음운동과 전도운동을 할 수 있도록 우리의 산업과 경제에 복을 주셔야 합니다. 이 축복의 응답을 받을 수 있도록 위해서 기도하시고 특히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귀중한 것이 있다면 복음이고 그 복음이 말씀과 함께 기도가 따라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든지간에 복음과 말씀과 기도가 연결되어지면 그 사람은 성공하게 되어 있습니다. 산업인들이 산업하는 부분에 있어서나 렘넌트 및 학생들은 학업 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음과 말씀과 기도가 연결되어지면 그것은 어떤 것이든 지간에 응답받게 되어 있고 성공하게 되어 있습니다. 단순히 복음과 말씀과 기도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힘을 얻어야 합니다. 산업인들이 이 힘을 얻을 수 있도록 기도해주시고 RUTC와 함께 후대들의 발판이 되어지며 복음 전하는 주의 종들과 모든 전도자들의 배경이 되어지는 축복된 응답을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해주시며 특별히 말씀증거하실 류광수 목사님께 오력으로 충만케 하셔서 모든 산업선교현장에 성취될 메시지가 증거되어지도록 기도해주시길 바랍니다.
지난주 말씀이 출애굽기 20장 24절 중심으로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계속해서 출애굽기를 살펴보는 가운데 21장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지난주 메시지는 출애굽기 20장 24절을 본문으로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모든 곳에서 네게 임하여 복을 주리라” 그리스도의 이름이 증거 되어지는 모든 곳에 성령께서 역사하실 것을 말씀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성령께서 역사하신 그 자체가 복입니다.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모든 곳에서 네게 임하여 복을 주리라”
여러분, 저는 지난주에 이 말씀을 붙잡고 의미 있는 현장을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주일 오후예배가 중고대청 헌신예배로 드려졌고 강사로 오신 장로님과 식사를 마치고 어느 가정에서 추도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제가 그 추도예배의 인도를 맡게 된 것입니다. 제가 “교구 담당교역자가 계신데 담당 교역자가 가는 것이 더 유익하지 않겠는지”를 말씀드렸더니, “아닙니다. 꼭 목사님이 오셔서 말씀을 전해주십시오”라고 거듭 부탁을 하셨습니다. 이어서 또 한 가지 요청이 있었습니다. “이 추도예배는 캠프가 되기를 원합니다” 며 친척들과 지인들이 모이는 중에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며 꼭 영접에 초청해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그래서 오후예배 후에 교구 담당 교역자들과 함께 참석했습니다. 이미 분위기는 만들어져있었고, 너무나 의미있고 귀중한 자리였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온 가족들이 하나 되어 추도예배를 복음 전할 기회로 삼을 것인가를 생각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친척과 살아생전의 알고 있던 지인들과 식사를 나누며 식사 후에는 그 가정의 딸과 또래 친구들이 피아노와 바이올린 그리고 플롯을 통해 작은 음악회를 30여분 진행한 후에 예배를 인도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음악회를 통해 참석한 사람들의 마음들을 열어놓았었고 그런 가운데 메시지를 전하면서 참석한 모든 분들에게 동시에 영접에 초청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얼마나 기쁘고 감사하던지요. 다른 어떤 예배들 보다 하나님이 주신 기쁨이 충만한 시간이었습니다.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모든 곳에서 네게 임하여 복을 주리라” 이 말씀들을 현장을 통해 성취된 것을 보게 되는 자리였습니다.

오늘 본문으로 들어가 출애굽기 21장과 22장에 보면 소주제로 종에 관한 법, 폭행에 관한 법, 임자에 관한 책임, 배상에 관한 법에 관하여 나열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하여 광야 길을 걸어가는 동안 하나님의 열 가지 계명을 주셨는데 바로 십계명입니다. 십계명과 함께 다른 법들을 주셨습니다. 그 법들 가운데 종에 관한 법과 폭행에 과한 법이 등장합니다. 제가 설교를 준비하기 위해 본문을 읽으며 묵상하는 가운데 12절부터 25절에 보면서 “한 순간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구나” 하는 사실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당시에 광야 길을 걸어가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일어날 일들에 관해 하나님께서 법으로 주신 말씀이지만,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 저와 여러분에게도 동일하게 더하면 더했지 엄청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라는 사실입니다. 12절에 보면 “사람을 쳐 죽인다”기록되어 있고, 15절에 보면“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16절에는 “사람을 납치한 자 ” 등 폭력과 인신매매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24절에는 “눈엔 눈으로 손엔 이에는 이로 발은 발로” 율법의 근본정신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건들이 지금도 중동지역 이슬람 지역에서는 그대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한번은 제가 TV를 시청하다가 보게 되었는데, 어느 아이 하나가 도둑질을 하다가 잡히게 되었습니다. 그 도둑질 하던 아이를 길에 눕혀서는 그 손 위로 트럭이 지나가는 벌을 내리는 장면이었습니다. 손으로 도둑질을 했으니 다시는 도둑질 못하도록 내린 처벌인 듯 했습니다. 지난주 일간지에 보도된 내용인데, 세계 인권 단체에서 “중동권 이슬람권의 여성들의 인권이 무자비하게 짓밟히고 있다, 그들에게도 참된 인권의 자유를 주어야 한다” 라며 연재로 보도된 글이 있었습니다. 중동지역 이슬람권에서는 여자들이 정절을 잃고 순결을 잃게 되면 그런 여자들을 합법적으로 처형하는 법이 있는데 “명예살인”이라 해서 돌로 쳐 죽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죽는 사람이 한 해 5,000건이 넘는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대로 우리 모두가 벌을 받는다면 저와 여러분 중에 한 사람도 성한 몸으로 앉아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아마 두 눈이 다 뽑혀 있거나 손등이 다 찍혀 있는 등 전부 그렇고 그런 사람만 이 자리에 앉아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것이 왠 은혜입니까?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처벌을 내린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서게 되겠습니까? 여러분, 이 자리에 앉아 있다는 것 자체가 은혜인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러면서 오늘 주된 내용은 21장 1-11절 말씀인데, 종 된 자에 대한 부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만큼 비참하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말씀하고 있으며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비참하게 살아가고 있으면서 앞으로도 비참하게 살아갈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종입니다. 같은 이스라엘 백성들로써 힘들고 어려우니 자청해서 종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길을 잃고 방황하다가 굶주리니까 종이 되는 것이죠. 그리고 종으로 살다가 7년이 지나면 자유를 주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자유가 싫고 종으로 남길 원하는 자에게는 종의 신분으로 계속 살게 되는 것입니다.
교도소에서 출소한 사람들이 나름대로 살아보려고 몸부림치지만 사회가 그렇지 않으니 자청하여 다시 범죄를 저질러 교도소로 들어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도저히 자신의 힘으로는 먹고 살기가 힘이 드니까 그런 것입니다. 교도소에 들어가면 입고, 먹는 문제 등이 해결이 되니까 다시 입소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너무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이 자청하여 종 된 부분에 대해 말씀하고 있는데, 우리가 언약으로 붙잡을 것은 많은 왜 사람들이 종으로 살아가는 것인가 입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종으로, 노예로 살아가는 것인가입니다. 거기에 대해 살펴보며서 정말 우리에게 있는 참된 자유함이 어떻게 우리들에게 주어졌는지를 깨닫는 시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자유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복음의 가치를 알아야 합니다.

1. 자유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복음이 무엇입니까?

먼저, 복음의 가치를 알기 이전에, 복음이 무엇인가에 대해 답을 내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복음이 무엇입니까? 복음은 어떤 것입니까? 여러 가지 대답이 나올 수 있습니다. 복음은 다른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러면, 왜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는가? 윤리, 도덕적인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오셨습니까? 아닙니다. 영적인 사실과 영적인 문제와 영적인 축복을 깨닫고 전달하기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여러분,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땅에서 가장 중요한 것중에 처음부터 끝까지 밝히고 있는 것이 있다면, 이 세상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사실에 대해 먼저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보이는 것 이전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사실에 대해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 1절에 보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나님과 영적인 사실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창세기 1장 2절에 보면 “흑암과 혼돈과 공허함이 있었다”고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의 영이 수면을 운행하시느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역시 영적인 사실에 대해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3절에 보면 “빛이 있으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빛과 어두움을 둘로 나누어서 빛을 낯이라, 어두움을 밤이라 정하셨습니다. 이로써 첫째 날 창조가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먼저 보이는 세계 이전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사실이 먼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시대가 가면 갈수록 보이지 않는 것을 믿지 않으려 하는 시대입니다. 그것만큼 어리석은 사람이 있을 수 없습니다. 히브리서 11장 3절에 보면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말씀했습니다. 이 땅, 눈앞에 보이는 것은 그 배후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배후가 있습니다. 그것에 의해 움직여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부정한다는 것은 그만큼 어리석은 자가 없는 것이죠.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서 보이는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창조하셨을 때, 모든 것을 완전하게, 풍성하게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창조된 모든 땅을 사람들로 말미암아 다스리도록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습니다. 함께 하게 될 때 얻는 축복이 창세기 1장 27절에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영적인 존재인 인간이 하나님과 함께 하게 될 때 누리게 되는 축복이 모든 천지만물, 세계를 정복하고 다스리도록 하나님께서 축복하셨다는 사실입니다(창세기 1장 28절).
여러분, 영적인 존재인 인간이 하나님과 함께 할 때, 어떤 행복을 누렸는가? 그것이 바로 창세기 2장에서 보여주는 에덴동산에서의 축복입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 참된 안식, 참된 행복, 물질적 번영과 축복이 에덴동산에서 이미 약속된 부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결국 인간은 이 축복을 모두 잃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창세기 3장사건”이라 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3장 사건으로부터 인간의 영적인 문제가 무엇인지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불신앙 하여 언약을 깨고 죄 가운데 빠졌습니다. 그 순간 죄의 본성 곧 죄의 저주가 아담 이후 모든 인간들에게 전가되어지고 있는데 그것을 “원죄”라 합니다. 중요한 것은, 교회사에 보면 지금까지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몸부림 쳐왔습니다. 그것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만 중요한 것은, 그 죄를 짓게 한 배후의 세력인 장본인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해결하려 하니 몸부림을 치게 되는데, 결국 죄라는 것은 스스로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그 배후에 연결된 것이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죄를 짓게 만든 장본인을 사탄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최초의 살인자인 가인이 아벨을 죽였습니다. 그 가인의 마음에 시기와 분함이 가득하도록 했는데, 그렇게 한 존재가 바로 눈에 보이지 않는 사탄이라는 존재입니다. 사실 창세기 3장의 원죄 사건은 사탄의 일입니다. 그 증거가 어디에 있습니까? 창세기 3장의 원죄 사건이 발생하자마다 하나님이 해결하실 답을 주셨는데 창세기 3장 15절에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여러분, 원죄 문제는 사탄의 일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설명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다른 말이 아니죠. 결국 인간은 사탄에게 이용당한 현행범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에게도 벌이 내려지고 뱀에게도 형벌이 내려진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악한 사탄은 지금도 모든 인류를 실패와 고통가운데 몰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악한 사탄의 정체를 가지고 성경은“이 세상의 어두움에 주관자”(에베소서6:12) 라 하는 것입니다. 모든 어두운 일들을 배후에서 사탄이 주관하고 있다 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이 땅의 문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단순히 가정, 개인, 사업, 자녀, 건강의 문제들, 이 문제들이 정말 문제입니까? 그 이전에 모든 인간은 멸망가운데 있는 것이고, 죄 가운데 빠진 것이며, 그 배후에 사탄의 문제 가운데 영적인 문제를 가지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요한복음 3장 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이 땅의 진정한 문제는 멸망가운데 있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 멸망은 죄로 말미암은 것이고 배후에는 사탄이 붙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인간은 영적인 존재입니다. 육신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영혼과 육신이 있습니다. 그런데 영혼의 주인이 누구냐? 하나님이냐? 사탄이냐? 영혼의 주인이 하나님일 때, 참된 평안과 기쁨과 즐거움과 유익과 즐거움이 있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반대로 어떤 영혼을 악한 사탄이 붙잡고 있다면, 괴로움과 온갖 문제들과 모든 고통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8장 44절에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사탄에게 붙잡힌 영혼들이 있다라는 사실입니다. 그 속에서 나오는 것은 괴로움이며 문제들이 계속되고 고통들이 계속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들이 우상숭배를 합니다. 그 이유는, 세상 풍속을 따라가기 때문 그 이상으로 사탄이 지배하고 있는 상태인 것입니다. 사탄에게 그 영이 붙잡히니 결국은 정신적으로도 건강할 수 없는 것이고, 육신의 질병까지 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다가 끝나면 다행입니다만, 성경에서는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에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대개 보이지 않는다고 안 믿는데 지금까지 말씀이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그 말씀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4장 9-11절에 보면 “지옥이 있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상숭배한 자들은 지옥에 가게 되어 있다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말씀하신바 중에 성취되지 않은 것이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런데 분명히 지옥이 있다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후대들에게 영적인 유산을 물려주게 되는데, 내가 당한 영적인 문제들을 자녀들에게 물려줄 때는 더 증가되어서 영적인 유산을 물려주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정말 우리가 싸워야 할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눈을 떠서 보면, 내가 잘못해서도 아니고 다른 사람이 잘못해서도 아니라, 본질적으로 그 배후에 흑암의 역사와 사탄의 역사가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사실을 알고 눈이 열리면 신앙생활에서 승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어느 분이 성공적으로 목회를 하시고 물러 선 목사님께 여쭈었습니다. “목사님 목회를 성공적으로 인도하셨는데 목회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에 목사님은 지체하지 않으시고 “목회는 사탄을 꺾은 것입니다” 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그리스도가 왜 오셨는가? 요한일서 3장 8절에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그 가운데 죄도 해결하셨습니다. 로마서 8장 1-2절에 보면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마귀를 꺾었을 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우리의 죄 문제도 해결하셨습니다. 그와 더불어 우리의 신분을 바꾸셨습니다. 로마서 8장 15절에 보면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했습니다. 양자의 영을 받음으로 신분을 바꾸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요한복음 1장 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로마서 10장 9-10절에 보면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했습니다. 이 시간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면 됩니다. 그 순간에 우리 안에 영적인 축복이 이뤄지는데 성령께서 역사하시고 걸음마다 하늘군대가 무너지며 흑암이 무너지는 어마 어마한 영적인 축복의 역사가 이뤄지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복음이란 것은 영적인 사실과 창세기 3장의 영적인 문제와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영적인 축복, 이 세 가지를 합한 것을 복음이라 하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비밀 즉 영적인 사실과 영적인 문제와 영적인 축복을 알면 알수록, 체험하면 체험할수록 그 속에서 비롯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자유함이 우리 가운데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축복에 눈이 열려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많은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이 이 사실을 모릅니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 모든 기준을 육신적인 기준으로 보며 행복의 기준도 육신적인 것으로 소유에 집착하고 있습니다만, 아닙니다. 영적인 사실과 영적인 문제가 무엇이며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영적인 축복을 알 때, 그 안에 참 행복과 참 자유함이 누려지는 것입니다.

2. 복음의 가치를 깨달은 한 사람 모든 역사를 바꾸어나감

두 번째입니다. 단순히 복음을 아는 정도가 아니라, 복음의 가치를 알아야 합니다. 복음의 가치를 알면 복음을 소유하게 됩니다. 복음을 소유하면 나와 관계된 모든 현장에 영향력이 나타납니다. 그 영향력이 어떤 역사로 나타나느냐 하면, 참된 자유함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복음의 가치를 알고 그 가치를 아는 만큼 소유합니다. 소유하면 결국 내게 있는 것을 주게 되어 있습니다. 사도행전 3장 6절에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40년간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앉은뱅이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가만히 보니 이 사람에게 은이나 금 등 육신적인 봉사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운명에 빠진 흑암가운데 빠진 문제임을 보게 됨으로써 “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정말 내가 복음을 소유하고 있으면, 내 모든 삶의 현장에 그것이 연결되어서 복음의 응답, 복음의 축복이 나타나게 됩니다.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이 사람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물질 주는 것, 육신적으로 성전 미문으로 이송하는 것, 그 이전에 복음이 필요한 것을 베드로와 요한이 본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4장 12절에 보면 베드로가 앉은뱅이를 일으킨 사건으로 인하여 종교법정에 서게 됩니다. 성경을 가만히 읽어보면 단순히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운 사건 때문에 종교법정에 선 것은 아닙니다. 40년간 고생했던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웠다는 것은 얼마나 자랑할 만한 일입니까? 그런데 그것 때문에 대제사장과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시비를 걸어온 것이 아니라, 그들의 시비의 이유는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네가 행하였느냐?”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의 증거로 인해 제사장들이 핍박을 해온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을 증거하는 일에 있어서 반드시 기억할 것은, 핍박이 반드시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앉은뱅이를 일으킨 사건이 아니라, “왜 예수 이름을 말하느냐?” 이것이 이유였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와 요한을 종교법정에서 풀어주면서도 “절대로 예수 이름을 이야기 하지 말라” 했습니다.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했습니다. 이것이 누가 하는 짓입니까? 사탄이 하는 짓입니다. 그 때 베드라고 무엇이라고 고백합니까? 사도행전 4장 12절에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말한 것입니다. 바리새인, 서기관, 들이 다 모여 “다른 것 다 해도 좋으니 예수 이름만 말하지 말라” 했는데, 베드로는 “아니다, 나는 다른 것 다 가지지 못한다 할지라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 이름만 말하겠다” 는 것입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이 말입니다. 절대적인 그리스도의 이름의 가치를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베드로의 걸음을 축복하실 수밖에 없는 것 아닙니까? 여러분, 정말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의 가치를 깨닫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바울을 하나님께서 왜 쓰셨고 걸음걸음마다 왜 하나님께서 응답의 역사로 인도 하셨는 줄 아십니까? 어떤 환경 속에서도 바울은 그 자리에서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증거하고 그리스도의 이름을 최고로 높였습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3장 1-21에 보면 바울이 똑똑한 사람입니다. 그 당시에 최고의 배경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그리스도를 만난 이후에 바울은 뭐라 했습니까?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이 배설물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내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최고의 고상한 지식이다, 그러면서 바울이 소원하는 바가 뭐냐? “내가 그리스도 손에 잡히기를 원한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역사하실 수밖에 없는 것 아닙니까?
우리는 전부 우리의 이익 중심으로 살아갑니다. 그냥 평상시에는 모릅니다만, 결정적인 순간에 전부 자기 이익 중심으로 해서 움직입니다. 조금만 내게 손해가 되면 밤잠을 못자고 마음에 많은 상처를 받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단순이 응답 받은 정도가 아니고 바울은 자기 자신이 그리스도 그 이름 때문에 고난당하는 것을 오히려 감사했습니다. 얼마만큼 그리스도 그 이름의 가치가 바울에게 자리 잡혀 있었던 것인가를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이죠. 로마서 9장 3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무슨 말입니까? 정말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 때문에 내 형제들이 구원 받는 것이라면 나는 거기서 끊어져도 좋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그리스도 그 이름이 가치가 얼마나 귀중하다는 것을 바울이 제대로 깨달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 깨달음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이 세상의 문제는 지금 다른 것이 아닙니다. 복음의 가치가 땅에 짓밟혀 지고 있기 때문에 모든 문제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18절에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왜 멸망이 일어나는 줄 아십니까? 왜 멸망을 당하는 줄 아십니까? "십자가의 도, 그리스도 그 이름"이 미련하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19장에 보면 소돔과 고모라가 왜 멸망 받은 줄 아십니까? 롯이 소돔과 고모라의 사람들에게 이야기 했습니다. 가장 가까이 있는 사위들에게도 이야기 했습니다. 그런데 롯의 사위들이 창세기 19장 14절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겼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멸망 받는 이유입니다. 그 가운데 있으면서 참된 행복도 다 놓쳐 버리고 거짓된 행복을 붙잡고 그것이 참된 행복인 줄 착각하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복음 안에, 그리스도 그 이름 안에, 참된 자유와 참된 행복이 있는데 이 사실을 맛보지 못하니까 복음의 능력들 가치를 다 놓쳐 버리고 거짓된 행복을 가지고 살아가요. 그것으로 살아가면 다행입니다만 거기에 점점 이유 없이 무너지는 영적인 문제 가운데 다 걸려들게 되어 있어요. 그 영적인 문제에 걸려들었다면 그 속에서 점점 모든 사람들이 영적인 문제에 걸려서 노예 되고 종살이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적인 문제에 걸려들었다면 그 속에서 나오는 삶이 노예고 종살이입니다. 여러분, 사람 죽이는 일이 기쁘다는 건 완전히 사단에 덮여씌인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런 사람이 있더라구요. 제가 한번은 방송을 보니까 3명을 죽이고 19명을 상해를 입혔는데 전혀 죄책감이 없이 사람 죽이는 것에 대한 자기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 싶을 정도로… 그러면서 보여지는 것이 “아… 정말 짐승, 동물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진짜 악한 것은 사람이구나!”
여러분, 영적 문제에 걸려들면 그렇게 종살이 합니다. 노예살이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그런 엄청난 축복을 받아놓고도 말입니다. 최고의 축복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받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 메시야가 오셨잖아요. 이 엄청난 축복을 받았는데 왜 역사 속에 2천년 동안 나라 없는 백성으로 유리방황하며, 지금도 전 세계에 흩어져서 그렇게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다른 것이 아닙니다. 최고의 가치인 복음의 가치를 놓쳐 버렸기 때문에 그런 결과들이 주어진 것입니다.
여러분, 바리새인들을 아시잖아요. 얼마나 삶이 철저했습니까? 얼마나 열심히 살았습니까? 정확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왜 멸망하는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복음보다 다른 것을 더 가치 있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저와 여러분, 또 우리 하나교회 성도님들, 저와 여러분을 통해 복음의 가치가 최고로 드러나는 그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왜 교회가 힘을 잃어가고 있고 지금 한국교회는 성장이 멈춘 것이 아니라 줄어들고 있습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왜 교회가 사회를 변화 시키지 못하고 힘이 없는 교회로 전락해 버린 줄 아십니까? 다른 것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 오직 그리스도 이름이 증거 되어야 하는데 그 이름이 시시하게 여겨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사실입니다.
교회 안에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복잡한 세상에 꼭 예수를 믿어야 되느냐?” 참 좋은 말 같죠! 그래서 교회가 사실은 문제가 오는 겁니다. 그래서 교회가 점점 힘을 잃고 재앙을 당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지금 종교다원주의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꼭 예수 믿을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너무 좋은 것이 많이 있다는 겁니다. 교회가 너무 좋은 것들, 딴 것 자꾸 한다고 복음을 놓쳐 버리니까 교회는 힘을 잃어가고 현장을 살릴 수 없는 교회로 빠져 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 우리 교회만큼은 진짜 “오직 그리스도 오직 복음” 만 붙잡고 그 이름만을 최고로 높여야 될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우리교회를 하나님은 축복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될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 올 때마다 다른 것이 아닙니다. 정말 복음을 이해하고 복음을 깨닫고 복음을 누리는 것이 전부 다 입니다. 교회에 와서 가장 중요한 일이 뭐냐? 복음을 깨닫고 복음을 누리고 이해하는 것, 또 우리 후대들에게 이 복음을 깨닫게 하고 이해하고 누리도록 하는 것 뿌리내리도록 하는 것, 이것이 전부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지금 내가 복음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 지금 나의 걸음만이 아니라, 앞으로의 미래를 결정짓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러분 지금 잘 되고 있고 잘 살고 있는데? 복음의 가치를 모르고 잘 되고 있고 잘 살고 있다면, 반드시 고통과 실패가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일이 잘 안 된다고 할지라도 그렇지 못하다고 할지라도 내가 복음의 가치를 알고 내 주어진 현장에서 복음을 누리고 있다면 그 인생은 반드시 성공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결론으로 말씀을 맺겠습니다. 이번 한 주간 현장 속에서 “나는 복음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분명히 출애굽기 20장 24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모든 곳에서 네게 임하여 복을 주리라” 그리스도 그 이름 높이고 그리스도 그 언약 붙잡고 기도하면서 나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축복하시겠다는 말입니다. 결단하시기를 바랍니다. 내 생애 동안에 그리스도 그 이름 때문에 감사하고 그 이름만 누리고 그 이름만 증거 하는 그리스도 그 이름의 증인 되어야 되겠다고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한복음 8장 32절).
참된 그리스도 그 이름 안에 참 자유함이 있습니다. 이 자유함을 가지고 종 된 자리에 있는 자들을 건져내는 증인된 삶이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감사와 영광을 주 앞에 드립니다. 참 복음의 비밀을 알게 하시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이 복음의 가치를 깨닫게 하셔서 이 복음에 우리의 생을 걸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오늘 이 자리에 앉은 주의 종들을 통해서, 이들의 모든 가정과 현장과 지역이 변화되어지고 민족과 세계를 살리는 귀한 축복된 응답이 있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분명히 시대시대마다 복음의 가치를 최고의 비밀로 붙잡은 주의 종들을 통해서 한 시대를 살려갔던 사실들을 우리가 보게 됩니다. 이 응답의 주역이 되어지는 귀한 교회가 되도록 주님 축복하여 주옵소서. 살아계신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2011년 4월 10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자유인과 종(출21:1-11)

서론: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경제적으로 너무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이 자청하여 종이 된 부분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종으로 노예로 살아갑니다. 사람들은 왜 종으로 살아가며, 우리에게 있는 참된 자유는 어떻게 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까? 이것을 언약으로 붙잡아야 하겠습니다. 자유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복음의 가치를 알아야 합니다.

1. 복음이 무엇입니까?
(1) 복음은 그리스도가 오신 것입니다.
(2) 그리스도는 영적인 사실, 영적인 문제, 영적인 축복을 전달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1) 영적인 사실
①성경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사실에 대해 먼저 말씀함(히11:3, 창1:14)
②눈에 보이는 세상을 창조(창1,2장), 영적존재인 인간 창조와 하나님의 축복(창1:27-28, 2:7)
③영적 존재인 인간이 하나님과 함께 할 때 받는 축복(창2장)
2) 영적인 문제
①“창세기 3장 사건”으로 모든 축복을 잃어버림
②이 땅의 진정한 문제: 멸망 가운데 있는 것(요3:16), 죄 가운데 빠진 것, 사탄에 붙잡혀 있는 것(엡6:12)
③사탄에 의한 지배, 우상숭배, 정신과 육신의 질병, 심판과 지옥, 영적인 유산
3) 영적인 축복
①영적인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오셨음(요일3:8, 롬8:1-2)
②영적인 신분을 바꾸심(롬8:15.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됨)
③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면 신분이 바뀜(요1:12, 롬10:9-10)
(3) 이 세 가지 비밀을 체험할수록 참된 자유함이 넘쳐나게 됩니다.
2. 복음의 가치를 깨달은 한사람이 모든 역사를 바꾸어 나갑니다.
(1) 복음의 가치를 알아야 복음을 소유하게 되고, 그러면 모든 현장에 영향력이 나타납니다.
1) 그리스도 이름의 절대적인 가치를 깨달은 베드로의 현장에 하나님의 역사 일어남(행3:6, 4:12)
2) 바울은 그리스도 이름 때문에 고난당하는 것에 감사할 정도로 그 가치를 깨달았음(빌3:1-21, 롬9:3)
(2) 이 땅의 문제는 복음의 가치가 땅에 짓밟혀 지고 있기 때문에 일어납니다(고전1:18).
1)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기다 멸망당한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창19장)
2) 영적인 문제에 걸려들어 노예 되고 종살이 하게 됨
(3) 이스라엘 민족은 복음의 가치를 놓쳐버리고 전세계에 흩어져 고통 받는 민족이 되었습니다.
1) 바리새인의 멸망 2) 힘을 잃어가고 있는 교회들
(4) 교회에 와서 먼저 우리가 힘을 얻고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1) 가장 중요한 교회의 일은 복음을 깨닫고 복음을 누리고 복음에 뿌리내리는 것
2) 지금 내가 복음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가 앞으로의 미래를 결정함
3) 복음의 가치를 알고 현장에서 누리고 있으면 반드시 성공하게 됨

결론: “나는 복음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현장에서 생각해보십시오. 출20:24의 약속을 붙잡으십시오. 그리스도 이름 때문에 감사하고, 그 이름만 누리고, 그 이름만 증거하는 증인되겠다고 결단하십시오. 참된 그리스도 그 이름 안에 참 자유함이 있습니다(요8:32). 이 자유함을 가지고 종 된 자리에 있는 자들을 건져내는 증인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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