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왜 예수만이 길이 되는가?
2011-10-2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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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복음의 가치를 누리십시오. 오늘 이 한 날 예배 하는 가운데 복음의 가치를 확인함으로 말미암아 모든 염려와 불신앙 나와 내 생각조차도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 내 인생이 어떻게 헌신되어질 것인가를 결단하는 축복의 시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금 이 시간에 계속해서 복음편지로 말씀의 인도를 받고 있습니다. 왜 인간은 행복이 없는가? 모든 인생들이 모두 행복을 찾고 있지만 왜 인간이 행복이 없는가? 이 부분들을 여러분의 현장에서 스스로 질문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무엇을 가지고 있으면 행복할 줄로 알고 소유와 성취욕을 가지고 열심히 달려왔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또 너무 경쟁하고 소유하고 성취하다보니 이제는 “모두 버리자”며 버리면 행복할 줄로 알고 모든 것을 버리는 운동들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그것조차도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없는 것입니다. 요즘 시중에 나온 「공감의 시대」 라는 책이 있습니다. 펜실베이나 대학 교수가 지금 일어나고 있는 과학적 발전을 현실적인 상황들 속에서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를 담고 있는 내용인데, 지난날의 경쟁시대, 그래서 소유가 행복의 개념이었다면, 이제는 그 행복의 개념이 바뀌고 있다는 것입니다. 공감하고 나누어 주며 배려하는 것이 인간에게 행복을 가져다준다 라고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세계는 렌탈문화입니다. 인터넷 접속으로 인해 어느 곳에서도 엄청난 지식과 정보들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소유의 욕망과 집착에서 벗어나 유럽인과 같이 공감해주고 배려해주는 부분들 속에서 인생이 어느 곳에서도 맛볼 수 없는 행복을 맛보게 될 것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일리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도 우리나라에 보면, 요 근래에 많은 기업인들이 자신의 재산들을 내어놓고 기부의 문화들이 싹트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미국 월스트리트에서는 데모가 일어났습니다. “왜 가진 자들은 더 가지려고 하느냐” 인 것입니다. 이것이 세계적인 데모로 확산되어지고 있는 상황들입니다. 소유가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고, 또 버린다고 해서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도 아니며, 나누어주는 것도 좋은 것이지만 그것이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닙니다.
전도란 무엇이냐? 참된 인생의 행복한 길이 무엇인가를 현장에서 말하는 것이 바로 전도입니다. 참된 전도란 행복이 없이 방황하고 답이 없어 헤메이는 현장에 참 인생들에게 행복이 무엇인가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참된 행복은 왜 인생에게는 참된 행복이 없을까요?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면서 참된 행복을 놓치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 인간은 하나님을 만날 수 없는가’ 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신데 우리 인간은 영이 죽어버렸기 때문에 하나님을 만날 수 없는 것입니다. 지난주에는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가?’ 바로 하나님이 하나님 만나는 길을 제시하셨습니다. 그 길이 그리스도입니다. 그 이름이 예수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만나는 길을 같게 된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이 한 가지를 알지 못해서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인생을 살아갑니다만, 방황하는 인생을 살아갑니다. 마치 잠언 16장 25절의 말씀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저럼 바른 길을 간다고 가지만 필경은 사망의 길입니다. 열심히 나름대로 길을 가는데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올 자가 없느니라’ 이 한 가지를 몰라서 결국 열심히 달려가 보니까 사망의 길인 것입니다. 억울한 일 아닙니까?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 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유일한 길, 그리스도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유일한 길을 하나님이 내셨는데, 바로 그리스도 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제목은 ‘왜 예수만이 길이 되는가?’ 한번 받아합시다. “왜 예수만이 길이 되는가?” 이번 한 주간 정말 누려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를 붙잡음으로 참된 승리의 축복이 있는 그런 한 주간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금 현장의 사람들을 만나보면 하는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왜 꼭 예수만 믿어야 하느냐? 아무것이나 열심히, 바르게, 최선을 다해 믿으면 되지 않느냐? 너희는 다 좋은데 왜 예수만 믿어야 한다고 하느냐? 천주교도 기독교도 불교도 다 좋은 것 아니냐?”
지난주간 목요 일일전도캠프팀에서 지교회 중심으로 현장 사역을 하던 중에 만난 사람 중에 하시는 이야기가 “기독교, 천주교나 불교가 다 같은 것 아닙니까? 왜 꼭 예수만 믿어야 합니까?” 이런 질문들을 많이 받게 됩니다. 또 한 가지는 “나도 예수 믿어봤다” 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믿어봐도 별 소용이 없다” 라는 말들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 믿으니 오히려 더 일들이 꼬이고 안 되어지더라”는 것입니다. 세상과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교회를 향해 하는 소리들입니다. 왜냐하면, 교회가 왜 예수를 믿어야 하는지에 대한 그 이유와 답을 현장에서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더 안타까운 것은‘왜 예수만 길이 되어야 하는가?’ 세상 사람들의 질문이 아니라, 교회 다니는 사람들조차도 여기에 대한 질문들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있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여기에 대한 분명한 답을 가지게 될 때, 현장에 분명한 답을 말할 수 있는 것이고 현장에 길이 없어서 방황하는 자들, 참된 길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명상과 단전호흡, 뇌호흡 등 당장 응답을 주기 때문에 거기에 빠짐으로 더 큰 영적인 문제에 빠짐에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답을 주어야 할 것입니다. 많은 고급 엘리트들이 현장에서 명상이나 단전과 뇌호흡에 빠져 있습니다. 템플스테이를 통해 현장의 문화들을 그 흐름으로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왜 우리에게 예수만이 길이 되는지에 대한 답을 가짐으로 말미암아 현장에 정확한 답을 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1. 종교와 복음이 무엇인지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에게 ‘왜 예수만이 길이 되는가?’ 를 정리하기 위해 먼저 첫 번째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종교와 복음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들은 당연한 것이고, 심지어 교회 다니는 사람들조차도 종교와 복음이 무어인가에 대한 분명한 구분을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종교는 무엇입니까? 종교는 인간의 의를 드러내는 것이 종교입니다. 인간이 열심히 노력하고, 최선을 다하고, 경건하게 살고, 헌신하고, 봉사하고, 구제하고, 사회 정의를 추구하며, 여러 가지 신비를 추구하는 모든 것이 전부 종교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마태복음 16장 14~15절에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 본 시각들입니다. 어떤 사람은 세례 요한, 어떤 사람은 예레미야, 어떤 사람은 엘리야, 어떤 사람은 선지자 중 하나라 하나이다 라고 보았습니다. 모두 종교적인 관점에서 예수님을 바라본 것이죠. 무엇을 잘하고 못하기 때문에 이 땅에 문제가 일어나는 것이라고 본 것입니다만, 그것이 아닙니다. 또한 마태복음 17장 1~9절에 보면, 모세도 필요하고 엘리야도 필요하다는 것이 종교입니다. 예수면 되는데, 모세와 엘리야도 필요하다고 합니다.
모세는 율법을 대표하는 사람이고, 엘리야는 신비와 능력을 대표하는 사람입니다. “그래도 그렇지 율법도, 신비한 능력이 필요치 않느냐?” 라고 이야기 합니다. 복음을 제대로 깨닫지 못한 것이죠. 그런데 종교를 가만히 살펴보면, 굉장하게 아름답고 멋있습니다. 복음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데, 종교는 아주 훌륭한 것 같고 멋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종교생활 하는 사람들을 보면, 세상이 그들을 향해 박수를 보냅니다. 그런데 성경의 말씀 고린도전서 1장의 말씀처럼, 세상 사람들이 볼 때 복음을 붙잡았다는 것은 별 보잘 것 없는 시시한 것처럼 보이는데, 이것이 속는 것입니다. 세상의 종교생활 잘하는 사람들은 굉장히 멋있어 보이는데, 복음 붙잡은 사람들은 힘이 없어 보이고, 연약한 것 같고, 시시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장 18절에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그런데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 잘못 본 것입니다. 여러분, 혹이나 방송이나 매스컴을 보십시오. 참 어려운 삶 속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노록하고 최선을 다해 살아서 성공하고, 성공한 후에 자기 배만 채우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학교를 향해 기부하는 등 참 훌륭하다고 신문지상에서 칭찬하게 됩니다.
저도 한번은 차를 운행하면서 라디오에서 여성시대를 듣는 중에 앞뒤전후좌우 완전히 망한 사람이 그 속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서 자수성가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일에 헌신하는 내용을 들었는데, 제 마음 속에 “정말 훌륭하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눈물겨운 방송을 듣는 중에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습니다. 이것이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마음 심정일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인간의 의를 드러내는 종교적인 부분들이 우리에게 익숙해져있고 친숙해져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실을 보면 우리도 모르게 “대단하다” 라고 떠떠 높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없다면, 인간의 의가 이 땅에 최고이죠. 가장 좋은 것이죠. 그렇지만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하나님이 계시다면 이러한 것들로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 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열심히 노력하고, 윤리적인 삶을 살고 경건하게 사는 것은 다 좋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죄와 사탄의 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으로는 흑암이 꺾여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로 절대로 하나님 나라의 일들이 현장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라는 사실입니다. 나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원래 인간의 의는 박수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만 성경에서는 이사야 64장 6절에 보면 ‘인간의 의는 더러운 옷’과 같다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와 성경에서는 인간의 의가 누더기 옷과 같은 것입니다. 빌립보서 3장 9절에 보면 바리새인 중 바리새인이었고 율법으로는 흠이 없었던 바울이 위대한 발견을 했습니다. 자신이 율법으로 의롭게 된 것이 아니다 라는 고백을 했습니다. 율법에 흠이 없었던 사람, 율법을 지키기 위해 철저했고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었던 바울의 고백이었습니다. 자신이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된 것이 아니다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 인간의 의는 무엇입니까? 로마서 1장 16~17절의 말씀처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17절에 보면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 인간의 의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 부분을 모르니까 종교와 복음을 구분하지 못 하고 종교 속에서 못 빠져나가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종교 속에 있으면 아무리 열심히 신앙생활 해도 우리의 근본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것입니다. 결국은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데 한계를 가져옵니다. 왜냐하면 종교생활 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종교 속에 있으면 영적인 문제가 절대 해결 안 됩니다. 그리고 종교 속에 있으면 내가 멋있게 잘했는데도 불구하고 가문의 저주가 끊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악한 사탄이 어떻게 해서든지 믿는 자들을 속이는데 복음을 모르도록 하고, 종교생활 하도록 속입니다. 이 복음의 가치들을 모르고 종교생활 하도록 합니다. 종교생활 열심히 하면서“나는 신앙생활 잘하고 있다” 라고 착각하게 하는 것이 사탄의 일입니다. 여러분, 교회 안의 가장 큰 문제가 있다면 무엇인줄 아십니까? 사탄이 교회를 공격하는 공격가운데 큰 전략이 무엇인줄아십니까? 복음을 종교화 시키는 것입니다. 여기에 속아서 넘어지는 것입니다. 복음을 복음 되게 해야 하는데, 악한 사탄이 배후에 복음을 종교화 시켜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명상운동, 뇌운동, 단전호흡 등이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도 원불교가 명상운동을 위해 수만 평의 땅을 사들이고 있고 거기에 유대인들이나, 기독교인들이나, 천주교인들이나 불교인 등 아무나 와서 명상하도록 합니다. 모두 복음을 놓치고 종교화 시키는 일에 앞서고 있습니다. 심지어 미국에 100년이 넘은 교회당을 사이비 종교단체가 구매해서 교회 안에 불상을 앉혀 놓고는 명상할 수 있는 분위기와 장소까지 만들어 놓습니다. 교회의 본질을 놓치게 함으로써 오직 유일한 유일성의 복음을 놓치게 하여 종교화 시키는 일에 앞서고 있다 라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에 눈을 열지 못하고 교회가 오직 복음, 유일한 복음이 교회의 존재이유인데 이 사실을 놓치고는 교회조차도 눈이 어두워 종교화되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 증거가 무엇입니까? 여러분, 복음이 종교화되어지면 전혀 사회를 변화시킬 수 없고 현장을 바꿀 수 없고 현장을 살릴 수도 없으며 오히려 세상 앞에 손가락질 받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현장의 일어나는 일이 그것입니다. 복음의 유일성을 교회가 놓치니까 세상이 교회를 공격해오는데 교회가 땅 바닥을 치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교회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천주교는 4배 이상 부흥했고 불교도 부흥하고 있지만 기독교는 감소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기독교인들조차도 교회를 향해 고개를 흔드는 실정입니다.
여러분, 교회를 향한 사람들의 소리가 무엇입니까? 목사를 ‘먹사’라 하고 집사를 ‘잡사’라 하고 기독교를 ‘개독교’라 한 지가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교회가 놓치지 말아야 할 유일한 복음을 놓쳐버렸기 때문에, 지금 종교화 되어버렸기 때문에, 전혀 힘이 없는 교회를 향해 악한 사탄이 쥐고 흔들어 멸망 받게 하는 사실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시대 앞에서 저와 여러분, 우리 교회의 사명이 큰 줄로 믿습니다. 우리 교회에 왜 복음을 알게 하시고 왜 복음을 말하게 하시느냐? 다른 것이 아니라 모두 복음을 놓치고 종교화된 그 현장에 오직 그리스도 밖에 없다 라는 유일한 사실을 전달하기 위해서 저와 여러분을 축복하신 줄로 믿습니다.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저와 여러분은 정말 복음의 유일성, 그 사실만을 가지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 오직 그리스도 그 이름만이 인생의 근본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는 이 사실을 증거하면서 이 일에 증인되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초대교회를 보십시오. 복음의 유일성 가진 교회였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초대교회 성도들을 함부로 했습니까? 천만에요. 오히려 그리스도인이라 이야기 하며 복음의 유일성을 가지고 세상의 핍박과 어려움 가운데서도 그 현장을 바꾸는 역사가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복음의 유일성을 가진 초대교회가 종교화되어지지 아니하고 복음의 유일성을 가지고 승리했던 사실을 보게 됩니다. 왜 교회가 복음의 유일성을 놓치고 종교화되어지느냐? 이것은 사탄의 전략 중의 전략이지만 그 배후에는 이 땅의 문제가 무엇 때문인지를 제대로 진단하지 못해서 그런 것입니다.
왜 우리가 현장에서 그리스도만 이야기해야 하는가? 현장을 제대로 진단하게 되고 그리스도 이름의 비밀을 제대로 알게 될 때, 그리스도를 말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갖게 되어 있습니다. 왜 사람들이 윤리운동을 하는지 아십니까? 밥을 해 주는 것도 중요하고 좋은 일이며 전도를 위해 봉사도 하고 해야 합니다. 그런데 왜 윤리운동, 문화운동쪽으로 교회가 빠집니까? 세상을 그렇게 진단하기 때문입니다. 윤리가 부족해서 이 땅에 문제가 온다는 진단을 했기 때문에 윤리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진단을 잘못한 것입니다.
사도행전 3장 말씀에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앉은뱅이를 일으킨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미 베드로와 요한은 사도행전 1장과 2장을 거쳐 오면서 하나님이 주신 언약을 붙잡고 기도 속에 들어가서 예수가 그리스도 되심에 대한 체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가 그리스도 되신 답을 이미 베드로와 요한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성전 미문에 있는 앉은뱅이를 바라보니까 이 사람의 문제가 성전 앞에 데려다 주는 봉사하는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동전 몇 닢 던져 주는 구제하는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떠난 것이 문제이구나! 그래서 베드로와 요한은 사도행전 3장 6절에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한 것입니다. 현장을 제대로 본 것이죠. 진단을 제대로 한 것입니다.
정말 우리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알고 제대로 현장을 안다면 그리스도만 말해도 시간이 부족합니다. 현장을 제대로 안다면 그리스도를 듣기만 해도 은혜 받게 되어 있고 힘을 얻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비밀을 아는 사람이고 현장의 비밀을 아는 사람입니다. 이 사실을 알지 못해서 교회가 점점 종교화 되고, 복음의 비밀들이 희석되어져서 종교로 바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면에서 지금 사람들은 복음을 잘 모르는 것입니다. 선을 행하고 도를 닦고 열심히 사는 삶이 복음인줄 알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 앉은 여러분들은 이러한 생각들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을 행하고 도를 닦고 열심히 사는 것이 복음인줄 압니다. 그래서 기도도 빡세게 해서 응답 받고 신앙생활도 열심히 하고 그럽니다. 물론 신앙생활도 기도도 열심히 해야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것이 복음이 아니고 정말 중요한 하나님의 말씀, 언약을 제대로 붙잡고 방향만 잡아도 하나님이 우리 모든 삶을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말씀에 우리 모든 삶의 방향만 맞아도 열심히 하지 않아도, 쌔게 기도 안 해도 하나님은 우리 모든 삶을 책임지시고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태복음 6장 33절)’했습니다.
여러분, 종교가 무엇입니까? 사람이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사람이 만들었고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이고 그러니까 당연히 사람의 행위가 기준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려는 시도가 바로 종교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하나님이 나를 찾아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오신 것입니다.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죠? 맨 정신으로 보면 사람이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몸부림이 더 멋있어 보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오시는 것에는 감각이 없어요. 이것이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인데 모르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찾으려는 몸부림이 더 멋있어 보입니다. 이게 망하는 것이고 속는 것입니다. 복음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찾아오신 것이고,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가 기준이고 인간의 행위보다 하나님의 구원이 기준입니다. 이 복음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면, 왜 많은 사람들이 종교생활에서 못 빠져나오느냐? 왜 사람들이 지금 종교생활 하고 있으면서도 그 삶속에서 못 빠져나오느냐? 구원받은 자의 삶이 어떤 것인가를 알지 못하고 멸망 상태에 있는 삶이 어떤 것인가를 알지 못해서 종교 속에서 못 빠져 나오는 겁니다. 인간의 멸망 상태가 어떤 상태입니까? 왜 사람들은 종교 생활 속에 있습니까? 구원 받지 못한 상태는 원죄와 그 배후의 사탄과 하나님을 떠남으로 인한 영적인 사망 상태와 불신앙의 상태를 가지고 구원 받지 못한 상태라고 이야기 합니다. 이것을 가지고 우리는 한마디로 영적인 문제라고 하고 원죄, 배후에 있는 사탄의 역사, 죄로 말미암아 사탄의 속임수에 빠졌고 결국 하나님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영적인 사망상태에 이르렀고 그래서 우리가 불신앙에 빠집니다. 이것을 가지고 영적인 문제라고 이야기 합니다. 이 영적인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가? 이 사실을 우리가 제대로 눈을 열고 알아야 하는데 이 사실을 보지 못하니까 다른 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예수만 길이 되느냐?” 라고 다른 소리를 합니다. 영적인 문제의 심각성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악한 사탄이 붙잡고 있는 영적인 문제가 어느 정도입니까? 한 사람이 이 영적인 문제에 걸려들면 악한 사탄이 그 인생을 완전히 멸망시키는 것입니다. 사탄의 존재 목적이 그것입니다. 영적인 문제를 줘서 인생을 멸망시키는 것이 사탄의 존재 목적입니다.
제가 아는 어떤 분 중에 정말 양심도 곱고 바르게 사는 착한 사람입니다. 남에게 싫은 소리를 못하는 사람입니다. 결혼 후에 얼마 안 되서 영적인 문제에 걸려들었는데 해결해 보려고 병원도 가보고 몸부림을 쳤습니다만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의 마지막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저의 가까이에 있던 사람이었는데 그런 상황 속에 빠지는 것을 보면서 악한 사탄의 악랄함, 처절하게 영적인 문제를 가지고 인생을 멸망시키는 이 사실을 봤습니다. “이것이 사탄의 역사이구나” 영적인 문제를 가지고 악한 사탄이 멸망시키는 실제적인 현장을 제대로 본 다면 다른 소리를 하라고 해도 안 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제대로 못 보기 때문에 다른 소리를 하는 겁니다. 지금 하나님을 떠남과 죄와 사탄의 손에 있는 인생들이 어떻게 살아갑니까? 결국 악한 사탄이 그 인생을 붙잡고 있기 때문에 죽은 영이 된 것이고 자연히 우상숭배하게 되어 있습니다. 당연하게 오는 것이 우상숭배입니다. 그리고 마음에 참 평안이 없고 뭔가 모르게 정신적인 문제, 육신적인 문제, 미래의 문제, 후손의 문제들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 가운데 사람들이 뭐라 하느냐면, 사주팔자다, 운명이다 라고 생각합니다. 천만에요. 결국은 지옥까지 그 인생을 악한 사탄이 끌고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구원받지 못한 멸망의 상태가 어떤 상태인지 알지 못해서 종교생활하면서도 그 속에서 못 빠져 나옵니다. 거기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빠져나오는 길은 오직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하시려고, 사탄의 세력을 꺾어야 하고 인생이 절대 해결 할 수 없는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되고 하나님을 떠난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에 하나님이 인간의 노력과 방법으로는 안 되기 때문에 친히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야 하느냐? 죽어야 하고 피를 흘려야 하기 때문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겁니다. 영으로 오시면 안 되느냐? 안 됩니다. 천사로 오시면 안 되느냐? 안 됩니다. 영과 천사는 죽을 수 없고 피를 흘릴 수가 없어요. 분명히 죽고 피를 흘려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이 친히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친히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분은 죄가 없으신 분입니다. 죄 있는 사람이 죄인을 위해 대신 죽어도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죄가 없어야 합니다. 그래서 아담의 후손이 아니라 여자의 후손으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결혼해서 낳는 아이들, 전부 아담의 후손이요 남자의 후손입니다. 창세기 3장의 원죄를 그대로 고스란히 가지고 태어나는 후손입니다. 죄를 가지고 태어납니다. 죄가 없으신 분이 죄를 위해 죽어야 하는데, 아담의 후손이 아니라 여자의 후손으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이 신앙고백을 할 때도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남자를 알지 못하는 여자-동정녀의 몸에서 성령으로 잉태 되었다는 사실을 말씀합니다. 무엇을 이야기 합니까? 죄가 없으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3장 18절에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그 뿐만 아니라 죄의 댓가로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창세기 2장 17절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나님이 약속하신 말씀이기에 죄의 댓가로 분명히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왜 피를 흘리셨습니까? 죄의 댓가로 죽어야 되기 때문에 피를 훌리신 겁니다. 창세기 3장 1-6절에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로마서 3장 23절에는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6장 23절에는 그 죄의 값이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그 사망의 역사를 어떻게 생명으로 인도하느냐? 레위기 17장 11절에 보면 사람의 생명이 피에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9장 22절에 보면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다고 했습니다. 반드시 피를 흘려야 사함이 있고 피를 흘려야 생명을 얻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모든 사람이 하나도 빠짐없이 죄인이고 죄의 값은 죽는 것이고 사람의 생명은 피에 있고 피 흘림 없이는 사함이 없기 때문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피를 흘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계속해서 피 언약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반드시 피를 흘려야 되는 것입니다. 구약에는 짐승의 피를 흘렸고, 예수님에 대한 그림자와 모형이죠.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구약의 모든 언약을 성취하기 위해 피 흘려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단번에, 완전히, 영원히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구원의 길을 열어놓으신 것입니다. 그 분의 이름이 그리스도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피 흘리심으로 죽음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죽음으로 끝난다면 지옥의 권세, 사탄의 권세에게 지는 겁니다. 하나님이시라는 증거로, 그리스도라는 증거로 죽음과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다시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완전히 과학적입니다. 그분의 죽음과 부활은 그리스도의 일로서 죽음과 부활입니다. 단 한번도, 단 1초도 예수님은 그리스도의 일만 하셨습니다. 그러면, 오병이어의 기적, 기적을 행하고 병자를 고친 것은 뭡니까? 그것도 그리스도의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단 한번도, 단 1초도 그리스도 외의 일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과 우리 교회는 그리스도의 일만 해야 합니다. 오직 그리스도만 말해야 합니다. 왜냐? 주님을 믿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일을 할 수 있도록 주님이 그 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진짜 그리스도, 오직 그리스도, 완전하신 그리스도, 복음의 유일성, 완전성, 절대성을 붙잡고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구원은?

구원은 무엇입니까? 인간의 근본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구원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구원입니다. 죄 문제를 해결 받는 것이 구원입니다. 죄와 사탄은 권세를 가지고 있어요. 힘을 가지고 있어요. 그 죄의 권세, 사탄의 권세를 꺾는 것이 구원입니다. 그 구원자는 오직 예수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만이 길이 된다고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를 다니면서도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니까 갈등이 오고 어려운 것입니다.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니까 여전히 영적인 문제를 그대로 가지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면서도 내 마음과 중심에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한 사건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런 사람은 여전히 영적인 문제 가운데 있는 것이고 교회를 다니면서 그럴듯하게 폼을 잡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교회를 다니면 다닐수록 한계가 오고 갈등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구체적으로 영접한 사건이 없는 사람, 그러나 예수를 그리스도로 구체적으로 영접하게 될 때 그리스도께서 하신 그 일이 나의 일이 되는 것입니다. 영접하게 될 때(믿게 될 때) 먼저 내 마음에 평안이 임합니다. 마음과 생각이 바뀌어집니다. 빌립보서 4장 7절에 보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 계시다는 증거가 무엇입니까? 어떤 문제와 사건 속에서도 평안함이 있습니다. 내 마음과 생각이 하나님의 인도를 받게 됩니다. 그게 하나님의 사람, 그리스도의 사람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말씀을 들어도 지난날에는 못 깨달았는데 깨달아지고 믿어지는 은혜가 임합니다. 믿습니다해서 믿는 것이 아니라 이상하게 말씀을 듣는데 그것이 믿어집니다. 왜냐? 성령께서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지난날에는 말씀을 열심히 지키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계실 때에 말씀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말씀의 성취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리는데도 예배가 기쁘고 힘이 나고 예배가 기다려지는 것,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를 영접한 하나님 자녀에게 주신 축복입니다. 문제와 사건을 당했는데도 불구하고 그 문제와 사건 속에서 하나님이 하실 일들이 더 크게 보여집니다. 그래서 감사하게 됩니다. "아! 이것 때문에 하나님께서 문제를 주셨구나" 하고 문제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왜냐?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계시기 때문에.
여러분,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에게 문제가 없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문제와 어려움과 갈등들이 있을 수 있어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문제와 어려움과 갈등 속에서 하나님의 선한 계획을 가지고 계신데 그 계획은 증인될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그 문제와 어려움과 갈등을 통해서 하나님은 무엇을 깨닫기를 원하시느냐? 예수가 그리스도 되신다는 사실적인 믿음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사실적인 믿음이 있어야 초월할 수 있습니다. 환경을 초월하고 인간관계를 초월하고 물질을 초월할 수 있잖아요. 사실적인 믿음이 있어야 시대를 앞서가게 되고 모든 현장을 바꿀 수 있잖아요. 그래서 여러분에게 갈등을 하나님이 주시는 겁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문제를 하나님이 주시는 겁니다. 그것을 통해서 한 가지, "예수가 그리스도 맞구나!" 답을 내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 문제 앞에 하나님의 하실 일을 바라보면서 감사 회복하는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직 예수! 그러면 어떤 사람은“오직 예수 하면 너무 일방적이지 않느냐?”그렇다고 생각합니까? “오직 예수 하면 너무 치우치는 것 아니냐?” 그런 말들을 합니다. 아닙니다. 오직 예수해야 정상이 됩니다. 오직 예수해야 바르게 됩니다. 오직 예수해야 모든 삶에 균형이 있게 됩니다. 왜냐? 오늘 묵상기도 때 말씀을 읽었습니다. 그리스도 그 안에 모든 지혜와 지식과 보화가 있기 때문에 오직 예수해야 모든 삶이 바르게 되고 모든 삶의 균형이 이뤄지고 정상적으로 됩니다. 복음 없이 그리스도 모르는 사람이 "오직" 하면 치우치게 됩니다. 그러나 복음 가진 그리스도의 비밀을 아는 사람은 "오직" 해야 치우치지 않습니다. 바르게 되고 정상적으로 됩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있어서 성경은 이미 증거를 주고 있습니다. 믿음의 선진들을 보십시오. 이 사람들이 승리했던 것은 오직 예수 였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치우쳤습니까? 아니잖아요. 시대를 앞서가고 오히려 현장을 변화 시켰던 응답 누렸던 사람들이 오직 예수 했던 믿음의 선진들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왜 오직 예수만 길이 되는가?" 그렇다면, 우리가 한 주간 예수만 누려야 될 것 아닙니까? 예수를 누리는 귀한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서론: 하나님을 만나는 유일한 길을 하나님이 내셨는데,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현장에서 사람들을 만나면, “왜 꼭 예수만 믿어야 하느냐? 아무 것이나 열심히, 바르게, 최선을 다해 믿으면 되지 않느냐?”라고 질문합니다. 교회가 여기에 대한 답을 주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교회 다니는 사람들조차 이러한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참된 길이 무엇인지 몰라 현장에서 방황하다 더 큰 영적문제에 빠지는 사람들에게 정확한 답을 주어야 합니다. 왜 예수만이 우리에게 길이 됩니까?

1. 대부분 종교와 복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1) 종교는 인간의 의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1) 노력, 경건, 헌신, 봉사, 구제, 신비, 사회정의 등을 추구하는 것은 모두 종교적 배경을 가짐
2) 종교생활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인간의 근본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음
(2) 종교화 되는 이유는?
1) 이 땅의 문제가 무엇 때문인지 제대로 진단하지 못했기 때문임
2) 현장을 바르게 진단하고 그리스도 이름의 비밀을 제대로 안다면 그리스도만 말할 수밖에 없음(행3:1-6)
(3) 종교의 기준은?
1) 종교는 사람이 만들었으며 사람의 힘으로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
2) 반면에 복음은 하나님이 나를 찾아오신 것
(4) 종교속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1) 구원 받은 자의 삶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해서(원죄 상태, 영적 사망 상태, 불신앙 상태)
2) 멸망 상태의 삶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해서(우상숭배함. 정신과 육신, 미래와 후손에게 문제 일어남)
(5)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오직 그리스도(복음의 유일성, 완전성, 절대성)
1) 사탄의 세력을 꺾고, 인생이 해결할 수 없는 죄문제 해결하고, 하나님 떠난 문제를 해결해야 함
2) 그래서 피 흘려 죽으시기 위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심(요1:14)
3) 죄가 없어야 하기에 성령으로 잉태됨(창3:15, 벧전3:18)
4) 인간이 지은 죄에 대한 대가로 그리스도께서 피 흘려 죽으심(롬3:23, 6:23, 레17:11, 히9:22)
2. 구원이란 어떤 것인가?
(1) 인간의 근본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을 만나는 것
2) 죄 문제를 해결 받는 것
3) 사탄의 권세를 꺾는 것
(2) 구원 받은 자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1)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할 때 그리스도의 일이 나의 것이 됨
2) 어떤 문제와 사건 속에서도 평안케 되며 하나님의 인도를 받게 됨(빌4:7)
3) 말씀이 깨달아지고 믿어지며, 예배가 기다려짐
4) 문제, 어려움, 갈등 속에서 우리가 사실적인 믿음을 갖게 하시며 증인되게 하심


결론: 오직 예수! “오직 예수”여야 모든 삶이 바르게 됩니다(골2:3). 믿음의 선진들이 승리한 이유는 “오직 예수”였기 때문입니다. 오직 예수만이 길입니다! 한 주간 예수만 누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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