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
2012-07-29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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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7월 29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 너희가 성경이 엘리야를 가리켜 말한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고발하되 주여 그들이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 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 하니 그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냐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 명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롬11:1-5
■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삽니다! 당신은 참으로 행복자이십니다! 할렐루야! 예, 감사합니다.
지난 주간에 우리 교회에서 세계 리더 수련회가 1200여 명 모인 가운데 진행이 되었습니다. 무더운 날씨였음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너무 시원한 가운데 렘넌트들이 많은 은혜를 입는 시간이었습니다. 특별히 리더들 위해서, 또 수련회 위해서 기도해 주신 여러분에게 감사를 드리고, 또 홈스테이를 통해서 렘넌트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시간 갖게 된 것을 감사드립니다. 이번 주에는 세계 렘넌트 대회가 대구 엑스코에서 진행이 됩니다. 장로님 기도하셨습니다만 28개국 8000여 명의 렘넌트들이 모여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세계선교를 향한 귀중한 비전을 가질 수 있는 시간입니다. 계속 집중해서 기도해 주시고, 렘넌트들이 진짜 영적인 써밋(summit)으로 전도제자로 세워질 귀중한 기회가 되도록, 그를 위해서 하나님 앞에서 나를 찾아 세우는 기회가 되도록 기도해 주시고, 렘넌트들 하나하나가, 한 명 한 명이 호렙산에서 모세가 하나님을 체험했던 것처럼 그런 하나님의 체험이 있는 귀중한 집회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고, 특별히 앞서서 말씀 증거하시는 류광수 목사님 위해서 여러분, 집중해서 기도해 주시고, 또 보이지 않지만 이 렘넌트 대회가 움직여지기 위해서는 많은 스텝들이 사역을 하게 됩니다. 정말 성령 충만한 가운데서 우리 스텝들이 인도받을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1. 성경의 역사는 하나님이 남기고 뽑아 놓으신 남은 자의 역사이다.
오늘 말씀은 로마서 11장 5절에 있는 말씀을 가지고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라는 제목으로 리더 수련회를 지나 함께 렘넌트 대회를 앞두고 함께 말씀을 정리하고 기도제목들을 붙잡기 원합니다.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 5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죠.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했습니다. 먼저 여러분이 아셔야 할 것은 성경의 역사는 하나님이 남기고 뽑아 놓으신 남은 자의 역사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남기고 뽑아 놓으신 남은 자의 역사가 성경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가장 많이 나오는 사상, 가장 중요하게 사용하고 있는 단어가 있다면 바로 남은 자의 사상이고 이것이 바로 그루터기요 렘넌트인 것입니다.
모세가 강가에서 건져져서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출생의 비밀을 감추고 살게 되었고 동족을 살리려다가 결국은 살인자가 되어서 광야로 도망쳤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모세를 부르신 것입니다. 남은 자로 부르셨어요. 또 제사장마저 영적으로 하나님과 교통함이 끊어진, 영적으로 완전히 어두워진 그 시대에 하나님은 사무엘을 부르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남은 자로 부르신 것입니다. 나라가 완전히 블레셋에 짓밟힌 상태에서 다윗을 부르시고, 포로로 끌려간 자리에서 다니엘과 에스더를 하나님께서 부르셨는데 하나같이, 전부 그 시대에 남은 자로 하나님께서 부르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는 일에 있어서 남은 자를 불러내신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 이 한 시대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왜 부르셨느냐? 남은 자로 저와 여러분을 이 자리에 부르셨습니다. 아멘. 여기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이 한 시대에 남은 자로 부르셨다는 사실. 그러면 언제 이들을 주로 하나님께서 불러내셨는가? 다시 말하면 성경에 보면 언제 이들을 어떤 사건 속에서 불러 냈는가, 그 단어를 살펴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온 세상에 타락과 고통과 저주가 가득차서 하나님의 백성들조차도 무너지고 낙심, 좌절에 빠져 있는 그 시간에 이 단어들을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조차도 무너지고 낙심, 좌절 가운데 빠져 있는 그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그때마다 남은 자를 부르셔서 귀한 하나님의 일들을 감당케 하신 사실을 보게 됩니다. 저와 여러분이 잘 아는 이사야 6장 13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죠. “그 중의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더라.” 다 무너지는 시간이 온다는 거에요. 그런데 그 중에서도 승리하는 증인 되어야 할 사람이 있는데 그들이 바로 거룩한 씨, 그루터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10장 21절에 보면 “남은 자 곧 야곱의 남은 자가 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 10장 20절에도 남은 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특별히 21절에 보면 “남은 자 곧 야곱의 남은 자가 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 했습니다. 전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인에게 포로로 끌려가지만 하나님은 구별해 놓으신 자들, 반드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약속한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말씀하고 있죠. 믿음 잃어버리고 우상에 빠져 나라와 교회와 성전이 짓밟히는 가운데, 그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로 택하심을 받은 남은 자들이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죠. 엘리야 시대에 전 이스라엘 백성들이 심지어 제사장들조차도 우상에 절하고 흑암에 짓밟히는 그런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오늘 1절, 2절에 보면 그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절대로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을 그냥 버려두지 않겠다는 말씀입니다. 1절에 그렇게 말씀하고 있죠. 11장 1절에 보면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2절에도 보면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 말씀했습니다. 분명히 버리지 않고 그냥 두지 않겠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5절에 보면 어두움과 고통이 계속되어도 상관없다는 사실이에요. 5절에 그렇게 말씀하고 있죠.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이 축복 가운데 부르셨습니다. 믿습니까? 그 증거가 뭐냐? 하나만 들겠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지금 이 말씀을 듣고 있다는 그 자체가 증거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 위해 일하시는데 그냥 일하시는 것이 아니라 분명히 하나님은 성취될 말씀을 주시고 말씀 따라 하나님의 자녀들을 인도해 나가고 계십니다. 이 자리에서 오늘 남은 자, 하나님의 은혜로 택하심을 받은 남은 자가 있다는 말씀을 받는 이 자체가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께서 이 시대의 남은 자로, 이 시대의 세계복음화의 주역으로, 이 시대의 하나님의 자존심으로 세워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어린 렘넌트도 렘넌트이지만 저와 여러분이 이 시대의 하나님의 남은 자, 마치 다윗이 남은 자였고, 사무엘이 남은 자였고, 다니엘과 에스더가 남은 자였던 것처럼 저와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이 시대의 남은 자로 세워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부분에 대한 사실을 가지고 다시 한 번 우리의 정체성을 깨닫는 축복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남은 자로서 하나님의 역사를 누리기 위해서는 그릇이 준비되어야 한다.
분명히 하나님은 남은 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갔는데 그러면 그 축복된 역사를 우리가 어떻게 누릴 것인가?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을 남은 자로 세우셔서 이 땅과 이 민족의 역사를 바꾸어 나가며 전세계에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나타낼 것인데 그 축복을 어떻게 누릴 것인가? 어떤 면에서 그릇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도 제자로 서서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들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세워지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숨은 상처들이 치유되어야 합니다. 지난 주간 ‘성령을 따라 행하라’라는 말씀 안에서 버릴 것에 대한 말씀을 이미 받았습니다만은, 저와 여러분 안에 있는 숨은 상처들, 이 숨은 상처들이 치유되어야 합니다. 이 숨은 상처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완벽한 축복을 준비해 놓고 우리를 인도해 나가고 계시는데 내가 상처에 묶이고 상처에 갇혀 있어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가 없고 하나님의 응답을 누릴 수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지난 주간에 우리 교회 리더 수련회에서 이 부분에 대한 메시지가 나왔어요. 첫 강의가 상처에 대한 부분이고, 두 번째 강의가 감정에 대한 치유이고, 또 세 번째 강의가 집중 치유입니다. 이번 주간에 진행되는 세계 렘넌트 대회도 이 말씀 가지고 전세계 렘넌트에게 선포되어집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 중 참여하는 분들도 계시겠습니다만 렘넌트들 위해 기도하고 렘넌트들과 함께 포럼하기 위해서는 같이 메시지의 흐름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지난 주간에 리더 수련회에서 전달된 메시지를 중심으로 해서 함께 말씀을 정리하고 우리 자신들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 치유받은 참된 전도제자로 서게 될 것인가 그런 언약들을 붙잡는 그런 시간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숨은 상처들이 치유되어져야 되는데 사실 누구나 다 가지고 있죠. 알고 있는 것도 있고 모르고 있는 것도 있는데 오히려 모르고 있는 것이 더 많을 수 있어요. 분명히 숨은 상처들이 우리 인생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 우리의 삶을 무너뜨리고 있다는 것. 큰 충격을 받게 되면, 큰 상처를 입게 되면 평생 상처에 사로잡혀 실패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도 봅니다. 우리가 문제와 사건과 일을 당할 때, 상처 입을 때 어떻게 대하는냐가 중요합니다. 제가 책을 읽다가 소개하고 싶은 글이 있어 준비했습니다. 시각장애인으로 미국 이민 역사가운데 한국 장애인으로서는 최고 정치현장에 있었던 사람이 있습니다. 이미 고인이 되셨는데 강영우 박사입니다. 작년에 췌장암으로 하나님앞에 부름을 받았죠. 이 분이 경기도 사람으로서 6.25끝나고 나서 너무 가난한 가운데 서울로 집안이 이사를 하게 되고 이사한지 1년 만에 아버지가 병으로 돌아가시게 되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강영우 박사는 동네에서 14살 때 축구를 하다가 공에 눈을 맞아서 망막 박리로 시각장애가 되었습니다. 아들이 평생을 앞을 보지 못하는 장님으로 살아간다는 이야기를 어머니가 듣고 충격을 받아서 뇌출혈로 쓰러져서 돌아가시게 되었습니다. 생계유지할 수 있는 큰누님마저도 너무 열심히 일을 해서 결국 2년 만에 젊은 나이에 죽게 되었습니다. 4년 안에 양 부모님이 죽게 되고 큰 누님마저 죽게 되었어요. 그 후로 맹인 학교 다니면서 자원봉사 나왔던 당시 숙명여자대학 분과 만나게 되었고 결국 결혼하게 되었고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그 분이 그러한 불우한 환경 속에 얼마나 상처되겠습니까. 그런데 마지막 유고집으로 남긴 책이 있습니다. 「내눈에는 희망만 보였다.」
"한 평생 주님만 보고 걸었습니다.
나를 보면 어둠인데 주님을 보니 빛이였습니다.
그래서 주님만 보았습니다.
사람들은 칠흙같은 어둠속에 살면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모르는 소리입니다.
나는 어둠속에 있지 않습니다.
늘 빛으로 가득 찼고 그 빛이 너무 눈부셔 짙은 선글라스를 쓰고 있을 뿐입니다.
선글라스를 쓰니 빛 속에 계신 이가 더 선명합니다.
손에 잡힐 듯 하고 보고 있으면 언제나 가슴이 뜁니다.
지난 한평생 그 분과 함께 걸어온 지난날들에 감사합니다.
또 그 길에서 만난 소중한 분들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
이 책은 나와 함께 육신의 선글라스를 쓰고 있지만 늘 빛 가운데 거하고자 했던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앞서 그 빛 가운데 들어가신 분도 있고 저와 같이 그 길을 걷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들의 삶을 통해 여러분들도 빛의 길로 들어서기를 바랍니다."
제가 책 선전하는 것은 아니고 이 시를 보면서 절망가운데 상처투성인 사람인데 어떻게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었느냐. 거기에 대한 답들이 여기 나옵니다. 늘 빛으로 가득 찼고 그 빛이 너무 눈부셔서 짙은 선글라스를 쓰고 있을 뿐입니다. 상처가 상처가 아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보면 많은 상처들 가운데 있습니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상처인데도 그 상처로 오늘을 실패시키고 미래를 보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그런 생각들을 해봤습니다. 사실 우리 자녀들 렘넌트들이 제일 많이 상처 받는 곳이 가정입니다. 가정의 불화 속에서 오는 상처들. 부모는 상처 준다고 하고 상처 주는 것은 아닙니다. 얘야 상처 줄게 상처 받아라 하면 상처 주는 것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부모의 삶을 보면서 뭔가 모르게 아이들이 상처받습니다. 저는 저희 아버님이 초등학생 6학년 때 돌아가셨는데 그 전에 딱 한번 본 것이 있습니다. 너무 황소고집이셨어요. 물론 당신에게 몸에 불편함이 있었기에 신경질적인 부분이 삶으로 나타났겠지만 한번은 어머니가 밥을 차려서 드렸는데 마당에 던지셨습니다. 그 뒤로 냉전싸움이 들어갔는데 부모님께서는 각자 방에 들어가셔서 문 잠그고 3일간 말씀도 안하시며 보내셨습니다. 제가 결혼하고 살면서 제 아내에게나 자녀들에게 저도 모르게 충동적으로 막말을 해버리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일부러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닌데 전부 그것을 상처로 가지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감사한 것은 상처로 전달된 부분이 영적문제로 드러나기 전까지 갔었는데 은혜가운데 하나님께서 치유하셔서 인도받았습니다. 화내놓고 무마하기 위해서 미안하니까 돈으로 푸는 식이었는데 왜 내 삶이 이러했는지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가문에 흐르는 고집 부분 아닌가. 여자를 (사람) 취급 안하는 모습이 저에게 있더라구요. 특별히 가정 안에서 많은 상처들을 가지고 있는데 상처를 준다고 해서 주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상처를 가지고 있으니까 상처 주는 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치유가 안 되니까 매사에 상처 있는 말이 나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그렇게 끝나는 게 아닙니다. 사실 상처를 가지고 있으면 거기서 온갖 문제들이 다 일어나잖아요. 잘 아시듯이, 우리나라에 지금 사형수가 제가 알기로는 한 60여 명입니다. 100명 안 넘습니다. 어느 날 통계에 보니까 59명 정도 되던데 그 동안에 더 생겼겠지요. 한 60명 정도 되는데 그들의 삶을, 가정환경을 보면 하나같이 전부 다 불우한 환경입니다. 좀 오래 되었습니다만, 신창원은 초등학교 1학년 때 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자기 아버지는 전혀 생활력이 없는 술주정뱅이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자라고, 학교 가서도 등록금을 제때 못 갖고 가서 선생님한테 무시당하고 외면당했습니다. 그런 부분이 다 상처가 되어서 결국 신창원 같은 인물이 나온겁니다. 그리고 유영철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부 하나같이 가정에서 받은 깊은 상처로 인해서 결국 그들이 사회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상처를 가지고 있으면 영적인 상태는 스톱이 됩니다. 상처 받는 그 순간에 영적인 상태는 스톱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영적인 존재가 인간이지 않습니까. 영적인 상태가 자라야 되는데 스톱되어지니까 거기서 문제들을 가져 오는 것입니다. 일단 메시지를 들어도 들려지지 않는 것이고, 그래서 계속 어려움이 오게 되는 것이고요. 누구나 다 상처를 가지고 있지만 이 상처들이 상한 감정이 되어지면, 여기서 나오는 것이 비뚤어진 감정으로 자리를 잡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 중요한 것을 선택하게 될 때 비뚤어진 감정을 가지고 선택하게 됩니다. 그 선택이 바를 리가 없습니다. 분별력, 판단력(을 가지지 못하고), 모든 것들을 비뚤어진 감정들 때문에 선입견으로 보게 됩니다.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닙니다. 결국은 비뚤어진 감정을 가지니까 사실을 보지 못합니다. 육신만 보고 영적인 사실을 보지 못하니까, 염려하게 되고 불안하게 되고 근심하게 되고 불신앙하게 되고. 진짜 문제 앞에 우리가 사실을 보면 염려할 이유가 없고 흔들릴 이유가 없습니다. 사실을 못보니까 염려하게 되고 흔들리게 되는 거 아닙니까. 결국 비뚤어진 감정들 때문에 온 부분입니다.
그런데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닙니다.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이상한 돌출적인 행동들이 거기서 나옵니다. 그래서 결국은 엉뚱한 것에 집착하게 되고, 중독에 빠지게 됩니다. 마약 중독, 도박 중독, 컴퓨터 게임 중독에 빠지게 됩니다. 이런 것도 중독입니다만, 어떤 면에서는 우리가 불신앙하고 염려하고 다투는 것도 중독이 됩니다. 어떤 사람을 보면 모임에만 들어가면 평화를 만드는 피스메이커(peace maker)가 되는 게 아니라 늘 분쟁을 만들어내고 다툼을 만들어내는데, 가만히 보면 그가 나름대로 갖고 있는 상처들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신앙이나 다툼, 분쟁, 이런 모든 것들도 중독입니다.
우리 몸에는 아드레날린이라는 호르몬이 있다고 합니다. 이 호르몬은 신경질을 내고 뭔가 모르게 다투고 불안하면 그것을 조절하는 호르몬입니다. 그런데 늘 불안하고 자꾸 다투고 하다보면 그것이 다 소진되어서 나중에는 절제할 수 있는 게 없어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늘 불안하고 늘 신경질내고 늘 다투게 된다고 합니다. 그게 중독에 빠져드는 것이지요. 결국은 상처들 때문입니다.
이런 상처들에 묶여서 오늘을 실패시키고 아예 미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현장의 사람들을 만나 보면은 거의 다 과거에 묶여 있고 갇혀 있습니다. 못 빠져 나왔습니다. 하나님은 엄청난 축복을 예비해 놓으시고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인 저와 여러분을 부르셨는데. 이 과거에 묶여, 상처에 묶여서 하나님의 축복을 못 누리고, 하나님의 응답을 못누리고 있다는 겁니다. 기도도 안 되고, 응답도 못 받고, 하나님이 가져온 모든 축복을 누리지 못하게 됩니다. 그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과거의 상처에 딱 붙잡혀서... 그래서 상처가 비뚤어진 감정을 만들어내고 그 비뚤어진 감정 속에서 집착하는, 그래서 중독에 빠지고 문제를 가져올 수밖에 없게 됩니다.
성경에도 상처 때문에 실패한 사람이 있습니다. 가인. 가인이 아벨과 함께 예배를 드렸는데, 하나님이 아벨의 예배는 받으시고 가인의 예배는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정상적인 사람 같으면 왜 아벨 예배는 받고 내 예배는 안 받았을까 하고 살펴보면서 받으시는 예배를 드려야 할 것 아닙니까. 그런데 화가 나가지고 아벨을 가인이 쳐죽였습니다. 죽인 행위가 문제가 아니라 그 마음 중심에 있는 상처가 사실 문제입니다. 사울왕, 성공한 사람이고, 출세한 사람입니다. 다윗이 전쟁에서 돌아오면서 (사람들이) 이야기했습니다.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로다.” 그 말을 듣고 훽 돌아버린 겁니다. 결국 다윗을 죽이기 위해서 끝까지 따라가잖아요. 이 상처, 이게 무서운 겁니다 사실. 엡1:3-5에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는데, 이 과거에 딱 묶여서 하나님의 축복을 못 누리는 것, 이거 억울한 일이 아닙니까. 진짜 치유 받는 은혜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어떻게 치유 받는가? 하나님은 가장 좋은 것을, 가장 필요한 것을 준비하셨다는 믿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치유 받는가? 하나님은 가장 좋은 것을, 가장 필요한 것을 준비하셨다는 믿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이 부분에 대한 믿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이 부분을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믿는 믿음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가장 좋은 것, 가장 필요한 것을 준비하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믿음 가지게 될 때, 여러분 가지고 있는 상처, 사람에 대한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들, 용서하게 됩니다.
예를 들겠습니다. 가장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에 대해서 높인 사람 중에 한 사람, 물론 모든 렘넌트들, 다윗도 그렇지만, 특별히 요셉 보십시오. 문제와 사건 앞에 설 때마다 그는 하나님을 드러내고 하나님을 나타냈습니다. 창39:9에 보면,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잘 알듯이 보디발 아내의 유혹이 자신의 가능성을 인정하는 일이었고 미래를 보장해주겠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좋은 절호의 찬스였습니다. 그런데 그 기회를 잃어버렸고 그것 때문에 누명쓰고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 때 보디발 아내의 유혹 앞에 요셉이 한 말을 보면, 39:9에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하나님 앞에 섰습니다. 창40:8에 보면 술 맡은 관원장과 떡 맡은 관원장이 꿈을 꾼 문제 때문에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 때 요셉이 뭐라 했느냐.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동일한 이야기를 바로에게도 했습니다. 바로도 꿈을 꾸고 나서 너무 머리가 아프고 혼란해서 요셉이라는 사람을 부르게 되지 않습니까. 그 때 요셉이 바로왕 앞에서 한 말이 창41:16에 보면, "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편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 창41:25에도 “요셉이 바로에게 아뢰되 바로의 꿈은 하나라 하나님이 그가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심이니이다.” 고통되고 이해안되는 문제 앞에서도 늘 항상 요셉은 하나님을 나타내고 하나님을 드러냈다는 사실입니다. 이게 뭡니까?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총리로 서서 형들을 만나게 됩니다. 총리인 요셉 앞에 서있는 형들은 벌벌 떨고 있었다. 보복이 두려워서. 그때 요셉이 창45:7-8에 중요한 말씀을 했습니다. 그 전에 사실 요셉의 마음 중심에는 늘 항상 형들이 자신을 팔았다는 분노와 불안한 마음들, 형들에 대한 미운 마음들이 있었지 않겠습니까? 그렇잖아요. 편안할 때는 모르지만, 잘 되면 모르는데 노예로 갔다가 누명 쓰고 감옥에 들어갔다가, 그런 어려운 환경을 만날 때마다 요셉은 어려움을 당하면 당할수록 형들이 자기를 판 것에 대한 분노와 원한들이 더욱 더 마음속에서 일어났을 겁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집에서 당한 형제들에 대한 그런 원한들이 언제 사라졌는가 하면 창41:51에 말하고 있습니다. 요셉이 자기의 아들들을 낳고 나서야 자기 아버지 집의 일을 잊어버렸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그전까지는 형들이 자기를 팔았던 일에 대한 분노들, 미움에 대한 원한들을 가지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자기의 아들들을 낳고 나서야 자기의 아버지집의 일을 잊어버렸다고 했습니다. 창41:51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자기 아들의 이름을 므낫세라고 지었는데 그 이름의 뜻이 무엇이냐면, ‘하나님이 내게 내 모든 고난과 내 아버지의 온 집 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 아들을 낳고서야 잊어버렸습니다. 그 전에는 마음에 항상 분노와 어떤 원한들이 마음에 상한 감정으로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이 형들 앞에서 “당신들이 나를 판 것이 아니라 당신들의 생명, 또 후대들의 생명을 이 땅에서 보존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나를 당신 앞서 보내셨다.”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 그게 형제들을 용서할 수 있었던 근거가 된 거예요.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믿는 믿음, 그 믿음이 형제들을 용서할 수 있었던 근거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고 나의 모든 일에 간섭하시고 내 걸음걸음마다 인도하시는 이 사실, 이것이 믿어지니까 그게 지난 모든 과거들, 과거를 과거로 돌려 보낼 수 있는 용서할 수 있는 근거가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진짜 우리 마음에 아픔을 주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생각하면 그렇고 그런 분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진짜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으면 그분들이 용서되게 되어 있어요.
하나님은 우리를 어떤 자리에서 구원하셨습니까? 로마서 5장에 보면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로마서 5장 8절 우리가 연약할 때에,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그리스도를 보내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확증하셨다고 했습니다. 저와 여러분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탄의 운명 가운데 죄와 저주와 재앙 지옥 권세 가운데서 빠져 나와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내가 잘 나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셔서 연약할 때에 죄인 되었을 때 원수되었을 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건져내셨다는 것.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용서 못할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요한 것은 진짜 용서는 과거를 과거로 보내는 힘인데 우리가 많은 시간 과거에 붙잡혀서 상처와 아픔 속에 갇혀서 진짜 미래를 보지 못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요셉은 과거를 과거로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삶속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다는 그 절대주권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신학적인 부분으로 이야기하면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떨어지지 않는다 했습니다. 또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털 하나까지도 다 세신바 되셨다고 말씀했습니다. 모든 것은 누구의 손에 있느냐? 하나님 손에 있습니다. 그래서 요셉이 고백한 것이 그것 아닙니까? 하나님이 나를 당신들의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서 당신들의 후대들의 생명을 이 땅에 나타내기 위해서 나를 당신 앞서 보냈습니다.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당하는 일이 아니고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이 하셨다”라는 거기에 우리 인생의 모든 의문이 풀려지게 되어 있어요.
그렇습니다. 저 사람이 나에게 비록 어렵게 한다 할지라도 저 사람이 어렵게 하는 그것이 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저 사람을 통해서 내게 어려움을 준다는 것. 왜냐? 나를 바른 길로 인도해 가고 올바른 길로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서 내게 필요한 부분들을 인도해 가기 위해서 하나님이 나를 인도해 가신다는 사실. 내가 지금은 이해 안 된다고 할지라도 분명히 하나님은 나를 가장 완전한 길로 가장 완벽한 축복 가운데 인도하시기 위해서 저 사람을 통해서 나를, 하나님이 저 사람을 사용하는 도구로 쓰실 뿐이지, 저 사람을 통한 나에게는 가장 좋은 걸음으로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믿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믿는 믿음. 이 믿음 가지면 문제 될것이 없습니다. 모든 성경에 렘넌트들 응답 받은 사람은 다 이 믿음 가졌어요.
여러분 다윗을 보세요. 왕의 자리에서 신발을 벗고 도망치는 그런 형편이 되었어요. 그때 자기 밑에 있던 시므이가 반대편에 서서 감히 왕을 저주합니다. 피 흘린 자라고 저주합니다. 그때 다윗에게 같이 있던 아비새라는 장군이 뭐라 했습니까? 왕이시여 내가 당장 가서 저놈의 목을 베어오겠습니다. 저놈이 감히 어떻게 왕에게 욕을 할 수 있습니까? 당장 가서 저놈의 목을 베어오리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때 다윗이 아비새 장군에게 한말은 삼하16:10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신 것이니... 11절에도 보면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고 하거든 하물며 여호와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그냥 그 저주하는 것을 내버려두라 라고 했습니다.
12절에 보면 혹시 그 저주 까닭에 여호와께서 내게 선으로 갚아주시지 않겠느냐! 하나님이 나의 원통함을 들어주사 내게 오히려 선으로 갚아주시지 않겠느냐! 저주하는 것은 하나님이 하신 것이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사람이 아닙니다. 일이 아닙니다. 여기에서 우리의 인생들의 의문들이 풀려져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을 공격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 사람을 미워하지 마세요. 그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 사람이 그렇게 쓰임 받도록 도구로 사용했을 뿐이지.. 문제는 나를 그 문제 속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가장 축복된 역사로 인도해 나가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 그 속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하나님은 나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가장 필요한 것으로 나를 인도해 나가신다는 지금은 이해가 안된다고 할지라도 분명히 하나님은 가장 좋은 것으로 인도해 나가신다는 이 사실을 믿는 믿음 가지게 될 때 나를 내려놓게 됩니다. 거기에 새로운 나를 찾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획을 붙잡게 되고 거기에 하나님과 이면계약이 확실하게 드러나게 되고 그 속에서 영적인 정상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상처, 비뚤어진 감정으로 나타나고 그것이 결국 영적인 문제 가운데 집착하게 되는 부분으로 나타나서 우리의 인생을 실패시키는데 해결되는 길이 있어요. 하나님은 내게 가장 좋은 것으로 가장 필요한 것으로 내가 이해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처음부터 분명히 가장 축복된 것으로 나를 인도해 나가신다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믿는 믿음, 그 믿음이 확실하게 붙잡혀 지는 만큼 나를 내려놓잖아요. 그것 아니면 나를 못 내려놓습니다. 안 내려 놓습니다. 그때 새로운 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획이 보여지고 거기에 작은 실천 속으로 들어가면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하나님께서 나를 영적인 정상에 세우셔서 한 시대를 살리는 전도자의 귀한 축복을 받아 누리게 하실 것입니다.
강영우 박사이야기를 했지만, 미국에 유학을 가서 공부하는 동안에 비자가 연장이 안 되고 만기가 되었어요. 그동안 받던 장학금도 끊어졌어요. 그 때 낙심해 있을 때에, 그 옆에 있던 아내가 “여보,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제까지 인도해 오셨는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준비시켜 놓고 계시지 않겠습니까? 좀 기다려 봅시다!” 본인은 낙심해서 힘빠져 있는데 옆에 있던 아내가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우리를 너무 좋은 축복으로 인도해 오셨는데 좋은 부분을 준비해 놓고 하나님께서 인도해 나갈 것이니까 기다려 봅시다. 그래서 조금 기다렸더니 하나님께서 그렇게 삶을 인도하셨어요. 그러면서 이분이 고백하는 것이 “하나님은 언제나 옳았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가장 좋은 곳으로 우리를 인도하셨습니다. 나는 눈 하나 보지 못했지만 하나님은 모든 것들을 누릴 수 있도록 가지게 하셨습니다.” 한번 받아 합시다. “하나님은 언제나 옳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믿음을 딱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가장 필요한 것으로 인도해 나가십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믿는 믿음가운데서 여러분의 모든 상처들이 치유되어지므로 이 한 시대를 살리는 전도제자로 영적인 정상에 서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2년 7월 29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
(롬11:1-5)
서론: 지난 주간 서밋(SUMMIT, 정상) 대회와 리더 수련회가 있었습니다. 이번 주간에는 대구에서 세계 렘넌트 대회가 열립니다. 28개국 8천여 명의 렘넌트가 모입니다. 렘넌트들이 영적인 써밋(summit)으로 전도제자로 세워지며, 모세처럼 하나님을 체험하고 하나님 앞에서 나를 찾아 세우는 귀중한 집회가 되도록 집중해서 기도해주십시오.
1. 성경의 역사는 하나님이 남기고 뽑아 놓으신 ‘남은 자’의 역사이다.
(1) 성경의 가장 중요한 단어, 가장 많이 나타나는 사상이 ‘남은 자’(렘넌트) 사상입니다.
(2) 언제 ‘남은 자’를 부르셨는가?
1) 온 세상에 타락과 고통과 저주가 가득차서 하나님의 백성들조차도 무너지고 낙심, 좌절에 빠져 있는 그 시간에 이 단어들을 사용하심
2) 사6:13, 10:20-21, 롬11:1-2, 5
(3) 하나님은 우리를 이 시대의 ‘남은 자’로 세워 주셨습니다.
2. 남은 자로서 하나님의 역사를 누리기 위해서는 그릇이 준비(상처 치유)되어야 한다.
(1) 숨은 상처가 하나님의 축복을 가로막습니다.
(2) 문제와 사건을 당하고, 상처를 받을 때 어떻게 임하느냐가 중요합니다(고 강영우 박사).
(3) 상처는 오늘을 실패시키고 미래를 보지 못하게 만듭니다.
1) 사회문제가 됨 2) 영적상태 스톱됨 3) 상한 감정, 비뚤어진 감정 4) 돌출행동, 집착, 중독
3. 어떻게 치유해야 합니까? 하나님은 가장 좋은 것을, 가장 필요한 것을 준비하셨다는 믿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1) 곧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믿는 믿음이며, 이 때 사람을 용서할 수 있게 됩니다(요셉, 다윗).
(2) 이 때 하나님의 계획을 알게 되고, 이면계약이 드러나며, 영적인 정상에 서게 됩니다.
결과: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믿는 믿음가운데서 여러분의 모든 상처들이 치유되어지므로 이 한 시대를 살리는 전도제자로 영적인 정상에 서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 너희가 성경이 엘리야를 가리켜 말한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고발하되 주여 그들이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 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 하니 그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냐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 명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롬11:1-5
■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삽니다! 당신은 참으로 행복자이십니다! 할렐루야! 예, 감사합니다.
지난 주간에 우리 교회에서 세계 리더 수련회가 1200여 명 모인 가운데 진행이 되었습니다. 무더운 날씨였음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너무 시원한 가운데 렘넌트들이 많은 은혜를 입는 시간이었습니다. 특별히 리더들 위해서, 또 수련회 위해서 기도해 주신 여러분에게 감사를 드리고, 또 홈스테이를 통해서 렘넌트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시간 갖게 된 것을 감사드립니다. 이번 주에는 세계 렘넌트 대회가 대구 엑스코에서 진행이 됩니다. 장로님 기도하셨습니다만 28개국 8000여 명의 렘넌트들이 모여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세계선교를 향한 귀중한 비전을 가질 수 있는 시간입니다. 계속 집중해서 기도해 주시고, 렘넌트들이 진짜 영적인 써밋(summit)으로 전도제자로 세워질 귀중한 기회가 되도록, 그를 위해서 하나님 앞에서 나를 찾아 세우는 기회가 되도록 기도해 주시고, 렘넌트들 하나하나가, 한 명 한 명이 호렙산에서 모세가 하나님을 체험했던 것처럼 그런 하나님의 체험이 있는 귀중한 집회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고, 특별히 앞서서 말씀 증거하시는 류광수 목사님 위해서 여러분, 집중해서 기도해 주시고, 또 보이지 않지만 이 렘넌트 대회가 움직여지기 위해서는 많은 스텝들이 사역을 하게 됩니다. 정말 성령 충만한 가운데서 우리 스텝들이 인도받을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1. 성경의 역사는 하나님이 남기고 뽑아 놓으신 남은 자의 역사이다.
오늘 말씀은 로마서 11장 5절에 있는 말씀을 가지고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라는 제목으로 리더 수련회를 지나 함께 렘넌트 대회를 앞두고 함께 말씀을 정리하고 기도제목들을 붙잡기 원합니다.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 5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죠.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했습니다. 먼저 여러분이 아셔야 할 것은 성경의 역사는 하나님이 남기고 뽑아 놓으신 남은 자의 역사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남기고 뽑아 놓으신 남은 자의 역사가 성경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가장 많이 나오는 사상, 가장 중요하게 사용하고 있는 단어가 있다면 바로 남은 자의 사상이고 이것이 바로 그루터기요 렘넌트인 것입니다.
모세가 강가에서 건져져서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출생의 비밀을 감추고 살게 되었고 동족을 살리려다가 결국은 살인자가 되어서 광야로 도망쳤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모세를 부르신 것입니다. 남은 자로 부르셨어요. 또 제사장마저 영적으로 하나님과 교통함이 끊어진, 영적으로 완전히 어두워진 그 시대에 하나님은 사무엘을 부르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남은 자로 부르신 것입니다. 나라가 완전히 블레셋에 짓밟힌 상태에서 다윗을 부르시고, 포로로 끌려간 자리에서 다니엘과 에스더를 하나님께서 부르셨는데 하나같이, 전부 그 시대에 남은 자로 하나님께서 부르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는 일에 있어서 남은 자를 불러내신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 이 한 시대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왜 부르셨느냐? 남은 자로 저와 여러분을 이 자리에 부르셨습니다. 아멘. 여기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이 한 시대에 남은 자로 부르셨다는 사실. 그러면 언제 이들을 주로 하나님께서 불러내셨는가? 다시 말하면 성경에 보면 언제 이들을 어떤 사건 속에서 불러 냈는가, 그 단어를 살펴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온 세상에 타락과 고통과 저주가 가득차서 하나님의 백성들조차도 무너지고 낙심, 좌절에 빠져 있는 그 시간에 이 단어들을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조차도 무너지고 낙심, 좌절 가운데 빠져 있는 그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그때마다 남은 자를 부르셔서 귀한 하나님의 일들을 감당케 하신 사실을 보게 됩니다. 저와 여러분이 잘 아는 이사야 6장 13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죠. “그 중의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더라.” 다 무너지는 시간이 온다는 거에요. 그런데 그 중에서도 승리하는 증인 되어야 할 사람이 있는데 그들이 바로 거룩한 씨, 그루터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10장 21절에 보면 “남은 자 곧 야곱의 남은 자가 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 10장 20절에도 남은 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특별히 21절에 보면 “남은 자 곧 야곱의 남은 자가 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 했습니다. 전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인에게 포로로 끌려가지만 하나님은 구별해 놓으신 자들, 반드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약속한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말씀하고 있죠. 믿음 잃어버리고 우상에 빠져 나라와 교회와 성전이 짓밟히는 가운데, 그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로 택하심을 받은 남은 자들이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죠. 엘리야 시대에 전 이스라엘 백성들이 심지어 제사장들조차도 우상에 절하고 흑암에 짓밟히는 그런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오늘 1절, 2절에 보면 그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절대로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을 그냥 버려두지 않겠다는 말씀입니다. 1절에 그렇게 말씀하고 있죠. 11장 1절에 보면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2절에도 보면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 말씀했습니다. 분명히 버리지 않고 그냥 두지 않겠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5절에 보면 어두움과 고통이 계속되어도 상관없다는 사실이에요. 5절에 그렇게 말씀하고 있죠.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이 축복 가운데 부르셨습니다. 믿습니까? 그 증거가 뭐냐? 하나만 들겠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지금 이 말씀을 듣고 있다는 그 자체가 증거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 위해 일하시는데 그냥 일하시는 것이 아니라 분명히 하나님은 성취될 말씀을 주시고 말씀 따라 하나님의 자녀들을 인도해 나가고 계십니다. 이 자리에서 오늘 남은 자, 하나님의 은혜로 택하심을 받은 남은 자가 있다는 말씀을 받는 이 자체가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께서 이 시대의 남은 자로, 이 시대의 세계복음화의 주역으로, 이 시대의 하나님의 자존심으로 세워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어린 렘넌트도 렘넌트이지만 저와 여러분이 이 시대의 하나님의 남은 자, 마치 다윗이 남은 자였고, 사무엘이 남은 자였고, 다니엘과 에스더가 남은 자였던 것처럼 저와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이 시대의 남은 자로 세워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부분에 대한 사실을 가지고 다시 한 번 우리의 정체성을 깨닫는 축복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남은 자로서 하나님의 역사를 누리기 위해서는 그릇이 준비되어야 한다.
분명히 하나님은 남은 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갔는데 그러면 그 축복된 역사를 우리가 어떻게 누릴 것인가?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을 남은 자로 세우셔서 이 땅과 이 민족의 역사를 바꾸어 나가며 전세계에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나타낼 것인데 그 축복을 어떻게 누릴 것인가? 어떤 면에서 그릇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도 제자로 서서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들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세워지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숨은 상처들이 치유되어야 합니다. 지난 주간 ‘성령을 따라 행하라’라는 말씀 안에서 버릴 것에 대한 말씀을 이미 받았습니다만은, 저와 여러분 안에 있는 숨은 상처들, 이 숨은 상처들이 치유되어야 합니다. 이 숨은 상처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완벽한 축복을 준비해 놓고 우리를 인도해 나가고 계시는데 내가 상처에 묶이고 상처에 갇혀 있어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가 없고 하나님의 응답을 누릴 수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지난 주간에 우리 교회 리더 수련회에서 이 부분에 대한 메시지가 나왔어요. 첫 강의가 상처에 대한 부분이고, 두 번째 강의가 감정에 대한 치유이고, 또 세 번째 강의가 집중 치유입니다. 이번 주간에 진행되는 세계 렘넌트 대회도 이 말씀 가지고 전세계 렘넌트에게 선포되어집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 중 참여하는 분들도 계시겠습니다만 렘넌트들 위해 기도하고 렘넌트들과 함께 포럼하기 위해서는 같이 메시지의 흐름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지난 주간에 리더 수련회에서 전달된 메시지를 중심으로 해서 함께 말씀을 정리하고 우리 자신들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 치유받은 참된 전도제자로 서게 될 것인가 그런 언약들을 붙잡는 그런 시간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숨은 상처들이 치유되어져야 되는데 사실 누구나 다 가지고 있죠. 알고 있는 것도 있고 모르고 있는 것도 있는데 오히려 모르고 있는 것이 더 많을 수 있어요. 분명히 숨은 상처들이 우리 인생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 우리의 삶을 무너뜨리고 있다는 것. 큰 충격을 받게 되면, 큰 상처를 입게 되면 평생 상처에 사로잡혀 실패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도 봅니다. 우리가 문제와 사건과 일을 당할 때, 상처 입을 때 어떻게 대하는냐가 중요합니다. 제가 책을 읽다가 소개하고 싶은 글이 있어 준비했습니다. 시각장애인으로 미국 이민 역사가운데 한국 장애인으로서는 최고 정치현장에 있었던 사람이 있습니다. 이미 고인이 되셨는데 강영우 박사입니다. 작년에 췌장암으로 하나님앞에 부름을 받았죠. 이 분이 경기도 사람으로서 6.25끝나고 나서 너무 가난한 가운데 서울로 집안이 이사를 하게 되고 이사한지 1년 만에 아버지가 병으로 돌아가시게 되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강영우 박사는 동네에서 14살 때 축구를 하다가 공에 눈을 맞아서 망막 박리로 시각장애가 되었습니다. 아들이 평생을 앞을 보지 못하는 장님으로 살아간다는 이야기를 어머니가 듣고 충격을 받아서 뇌출혈로 쓰러져서 돌아가시게 되었습니다. 생계유지할 수 있는 큰누님마저도 너무 열심히 일을 해서 결국 2년 만에 젊은 나이에 죽게 되었습니다. 4년 안에 양 부모님이 죽게 되고 큰 누님마저 죽게 되었어요. 그 후로 맹인 학교 다니면서 자원봉사 나왔던 당시 숙명여자대학 분과 만나게 되었고 결국 결혼하게 되었고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그 분이 그러한 불우한 환경 속에 얼마나 상처되겠습니까. 그런데 마지막 유고집으로 남긴 책이 있습니다. 「내눈에는 희망만 보였다.」
"한 평생 주님만 보고 걸었습니다.
나를 보면 어둠인데 주님을 보니 빛이였습니다.
그래서 주님만 보았습니다.
사람들은 칠흙같은 어둠속에 살면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모르는 소리입니다.
나는 어둠속에 있지 않습니다.
늘 빛으로 가득 찼고 그 빛이 너무 눈부셔 짙은 선글라스를 쓰고 있을 뿐입니다.
선글라스를 쓰니 빛 속에 계신 이가 더 선명합니다.
손에 잡힐 듯 하고 보고 있으면 언제나 가슴이 뜁니다.
지난 한평생 그 분과 함께 걸어온 지난날들에 감사합니다.
또 그 길에서 만난 소중한 분들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
이 책은 나와 함께 육신의 선글라스를 쓰고 있지만 늘 빛 가운데 거하고자 했던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앞서 그 빛 가운데 들어가신 분도 있고 저와 같이 그 길을 걷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들의 삶을 통해 여러분들도 빛의 길로 들어서기를 바랍니다."
제가 책 선전하는 것은 아니고 이 시를 보면서 절망가운데 상처투성인 사람인데 어떻게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었느냐. 거기에 대한 답들이 여기 나옵니다. 늘 빛으로 가득 찼고 그 빛이 너무 눈부셔서 짙은 선글라스를 쓰고 있을 뿐입니다. 상처가 상처가 아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보면 많은 상처들 가운데 있습니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상처인데도 그 상처로 오늘을 실패시키고 미래를 보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그런 생각들을 해봤습니다. 사실 우리 자녀들 렘넌트들이 제일 많이 상처 받는 곳이 가정입니다. 가정의 불화 속에서 오는 상처들. 부모는 상처 준다고 하고 상처 주는 것은 아닙니다. 얘야 상처 줄게 상처 받아라 하면 상처 주는 것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부모의 삶을 보면서 뭔가 모르게 아이들이 상처받습니다. 저는 저희 아버님이 초등학생 6학년 때 돌아가셨는데 그 전에 딱 한번 본 것이 있습니다. 너무 황소고집이셨어요. 물론 당신에게 몸에 불편함이 있었기에 신경질적인 부분이 삶으로 나타났겠지만 한번은 어머니가 밥을 차려서 드렸는데 마당에 던지셨습니다. 그 뒤로 냉전싸움이 들어갔는데 부모님께서는 각자 방에 들어가셔서 문 잠그고 3일간 말씀도 안하시며 보내셨습니다. 제가 결혼하고 살면서 제 아내에게나 자녀들에게 저도 모르게 충동적으로 막말을 해버리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일부러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닌데 전부 그것을 상처로 가지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감사한 것은 상처로 전달된 부분이 영적문제로 드러나기 전까지 갔었는데 은혜가운데 하나님께서 치유하셔서 인도받았습니다. 화내놓고 무마하기 위해서 미안하니까 돈으로 푸는 식이었는데 왜 내 삶이 이러했는지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가문에 흐르는 고집 부분 아닌가. 여자를 (사람) 취급 안하는 모습이 저에게 있더라구요. 특별히 가정 안에서 많은 상처들을 가지고 있는데 상처를 준다고 해서 주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상처를 가지고 있으니까 상처 주는 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치유가 안 되니까 매사에 상처 있는 말이 나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그렇게 끝나는 게 아닙니다. 사실 상처를 가지고 있으면 거기서 온갖 문제들이 다 일어나잖아요. 잘 아시듯이, 우리나라에 지금 사형수가 제가 알기로는 한 60여 명입니다. 100명 안 넘습니다. 어느 날 통계에 보니까 59명 정도 되던데 그 동안에 더 생겼겠지요. 한 60명 정도 되는데 그들의 삶을, 가정환경을 보면 하나같이 전부 다 불우한 환경입니다. 좀 오래 되었습니다만, 신창원은 초등학교 1학년 때 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자기 아버지는 전혀 생활력이 없는 술주정뱅이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자라고, 학교 가서도 등록금을 제때 못 갖고 가서 선생님한테 무시당하고 외면당했습니다. 그런 부분이 다 상처가 되어서 결국 신창원 같은 인물이 나온겁니다. 그리고 유영철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부 하나같이 가정에서 받은 깊은 상처로 인해서 결국 그들이 사회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상처를 가지고 있으면 영적인 상태는 스톱이 됩니다. 상처 받는 그 순간에 영적인 상태는 스톱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영적인 존재가 인간이지 않습니까. 영적인 상태가 자라야 되는데 스톱되어지니까 거기서 문제들을 가져 오는 것입니다. 일단 메시지를 들어도 들려지지 않는 것이고, 그래서 계속 어려움이 오게 되는 것이고요. 누구나 다 상처를 가지고 있지만 이 상처들이 상한 감정이 되어지면, 여기서 나오는 것이 비뚤어진 감정으로 자리를 잡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 중요한 것을 선택하게 될 때 비뚤어진 감정을 가지고 선택하게 됩니다. 그 선택이 바를 리가 없습니다. 분별력, 판단력(을 가지지 못하고), 모든 것들을 비뚤어진 감정들 때문에 선입견으로 보게 됩니다.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닙니다. 결국은 비뚤어진 감정을 가지니까 사실을 보지 못합니다. 육신만 보고 영적인 사실을 보지 못하니까, 염려하게 되고 불안하게 되고 근심하게 되고 불신앙하게 되고. 진짜 문제 앞에 우리가 사실을 보면 염려할 이유가 없고 흔들릴 이유가 없습니다. 사실을 못보니까 염려하게 되고 흔들리게 되는 거 아닙니까. 결국 비뚤어진 감정들 때문에 온 부분입니다.
그런데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닙니다.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이상한 돌출적인 행동들이 거기서 나옵니다. 그래서 결국은 엉뚱한 것에 집착하게 되고, 중독에 빠지게 됩니다. 마약 중독, 도박 중독, 컴퓨터 게임 중독에 빠지게 됩니다. 이런 것도 중독입니다만, 어떤 면에서는 우리가 불신앙하고 염려하고 다투는 것도 중독이 됩니다. 어떤 사람을 보면 모임에만 들어가면 평화를 만드는 피스메이커(peace maker)가 되는 게 아니라 늘 분쟁을 만들어내고 다툼을 만들어내는데, 가만히 보면 그가 나름대로 갖고 있는 상처들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신앙이나 다툼, 분쟁, 이런 모든 것들도 중독입니다.
우리 몸에는 아드레날린이라는 호르몬이 있다고 합니다. 이 호르몬은 신경질을 내고 뭔가 모르게 다투고 불안하면 그것을 조절하는 호르몬입니다. 그런데 늘 불안하고 자꾸 다투고 하다보면 그것이 다 소진되어서 나중에는 절제할 수 있는 게 없어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늘 불안하고 늘 신경질내고 늘 다투게 된다고 합니다. 그게 중독에 빠져드는 것이지요. 결국은 상처들 때문입니다.
이런 상처들에 묶여서 오늘을 실패시키고 아예 미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현장의 사람들을 만나 보면은 거의 다 과거에 묶여 있고 갇혀 있습니다. 못 빠져 나왔습니다. 하나님은 엄청난 축복을 예비해 놓으시고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인 저와 여러분을 부르셨는데. 이 과거에 묶여, 상처에 묶여서 하나님의 축복을 못 누리고, 하나님의 응답을 못누리고 있다는 겁니다. 기도도 안 되고, 응답도 못 받고, 하나님이 가져온 모든 축복을 누리지 못하게 됩니다. 그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과거의 상처에 딱 붙잡혀서... 그래서 상처가 비뚤어진 감정을 만들어내고 그 비뚤어진 감정 속에서 집착하는, 그래서 중독에 빠지고 문제를 가져올 수밖에 없게 됩니다.
성경에도 상처 때문에 실패한 사람이 있습니다. 가인. 가인이 아벨과 함께 예배를 드렸는데, 하나님이 아벨의 예배는 받으시고 가인의 예배는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정상적인 사람 같으면 왜 아벨 예배는 받고 내 예배는 안 받았을까 하고 살펴보면서 받으시는 예배를 드려야 할 것 아닙니까. 그런데 화가 나가지고 아벨을 가인이 쳐죽였습니다. 죽인 행위가 문제가 아니라 그 마음 중심에 있는 상처가 사실 문제입니다. 사울왕, 성공한 사람이고, 출세한 사람입니다. 다윗이 전쟁에서 돌아오면서 (사람들이) 이야기했습니다.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로다.” 그 말을 듣고 훽 돌아버린 겁니다. 결국 다윗을 죽이기 위해서 끝까지 따라가잖아요. 이 상처, 이게 무서운 겁니다 사실. 엡1:3-5에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는데, 이 과거에 딱 묶여서 하나님의 축복을 못 누리는 것, 이거 억울한 일이 아닙니까. 진짜 치유 받는 은혜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어떻게 치유 받는가? 하나님은 가장 좋은 것을, 가장 필요한 것을 준비하셨다는 믿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치유 받는가? 하나님은 가장 좋은 것을, 가장 필요한 것을 준비하셨다는 믿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이 부분에 대한 믿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이 부분을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믿는 믿음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가장 좋은 것, 가장 필요한 것을 준비하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믿음 가지게 될 때, 여러분 가지고 있는 상처, 사람에 대한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들, 용서하게 됩니다.
예를 들겠습니다. 가장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에 대해서 높인 사람 중에 한 사람, 물론 모든 렘넌트들, 다윗도 그렇지만, 특별히 요셉 보십시오. 문제와 사건 앞에 설 때마다 그는 하나님을 드러내고 하나님을 나타냈습니다. 창39:9에 보면,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잘 알듯이 보디발 아내의 유혹이 자신의 가능성을 인정하는 일이었고 미래를 보장해주겠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좋은 절호의 찬스였습니다. 그런데 그 기회를 잃어버렸고 그것 때문에 누명쓰고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 때 보디발 아내의 유혹 앞에 요셉이 한 말을 보면, 39:9에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하나님 앞에 섰습니다. 창40:8에 보면 술 맡은 관원장과 떡 맡은 관원장이 꿈을 꾼 문제 때문에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 때 요셉이 뭐라 했느냐.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동일한 이야기를 바로에게도 했습니다. 바로도 꿈을 꾸고 나서 너무 머리가 아프고 혼란해서 요셉이라는 사람을 부르게 되지 않습니까. 그 때 요셉이 바로왕 앞에서 한 말이 창41:16에 보면, "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편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 창41:25에도 “요셉이 바로에게 아뢰되 바로의 꿈은 하나라 하나님이 그가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심이니이다.” 고통되고 이해안되는 문제 앞에서도 늘 항상 요셉은 하나님을 나타내고 하나님을 드러냈다는 사실입니다. 이게 뭡니까?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총리로 서서 형들을 만나게 됩니다. 총리인 요셉 앞에 서있는 형들은 벌벌 떨고 있었다. 보복이 두려워서. 그때 요셉이 창45:7-8에 중요한 말씀을 했습니다. 그 전에 사실 요셉의 마음 중심에는 늘 항상 형들이 자신을 팔았다는 분노와 불안한 마음들, 형들에 대한 미운 마음들이 있었지 않겠습니까? 그렇잖아요. 편안할 때는 모르지만, 잘 되면 모르는데 노예로 갔다가 누명 쓰고 감옥에 들어갔다가, 그런 어려운 환경을 만날 때마다 요셉은 어려움을 당하면 당할수록 형들이 자기를 판 것에 대한 분노와 원한들이 더욱 더 마음속에서 일어났을 겁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집에서 당한 형제들에 대한 그런 원한들이 언제 사라졌는가 하면 창41:51에 말하고 있습니다. 요셉이 자기의 아들들을 낳고 나서야 자기 아버지 집의 일을 잊어버렸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그전까지는 형들이 자기를 팔았던 일에 대한 분노들, 미움에 대한 원한들을 가지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자기의 아들들을 낳고 나서야 자기의 아버지집의 일을 잊어버렸다고 했습니다. 창41:51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자기 아들의 이름을 므낫세라고 지었는데 그 이름의 뜻이 무엇이냐면, ‘하나님이 내게 내 모든 고난과 내 아버지의 온 집 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 아들을 낳고서야 잊어버렸습니다. 그 전에는 마음에 항상 분노와 어떤 원한들이 마음에 상한 감정으로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이 형들 앞에서 “당신들이 나를 판 것이 아니라 당신들의 생명, 또 후대들의 생명을 이 땅에서 보존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나를 당신 앞서 보내셨다.”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 그게 형제들을 용서할 수 있었던 근거가 된 거예요.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믿는 믿음, 그 믿음이 형제들을 용서할 수 있었던 근거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고 나의 모든 일에 간섭하시고 내 걸음걸음마다 인도하시는 이 사실, 이것이 믿어지니까 그게 지난 모든 과거들, 과거를 과거로 돌려 보낼 수 있는 용서할 수 있는 근거가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진짜 우리 마음에 아픔을 주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생각하면 그렇고 그런 분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진짜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으면 그분들이 용서되게 되어 있어요.
하나님은 우리를 어떤 자리에서 구원하셨습니까? 로마서 5장에 보면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로마서 5장 8절 우리가 연약할 때에,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그리스도를 보내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확증하셨다고 했습니다. 저와 여러분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탄의 운명 가운데 죄와 저주와 재앙 지옥 권세 가운데서 빠져 나와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내가 잘 나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셔서 연약할 때에 죄인 되었을 때 원수되었을 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건져내셨다는 것.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용서 못할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요한 것은 진짜 용서는 과거를 과거로 보내는 힘인데 우리가 많은 시간 과거에 붙잡혀서 상처와 아픔 속에 갇혀서 진짜 미래를 보지 못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요셉은 과거를 과거로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삶속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다는 그 절대주권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신학적인 부분으로 이야기하면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떨어지지 않는다 했습니다. 또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털 하나까지도 다 세신바 되셨다고 말씀했습니다. 모든 것은 누구의 손에 있느냐? 하나님 손에 있습니다. 그래서 요셉이 고백한 것이 그것 아닙니까? 하나님이 나를 당신들의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서 당신들의 후대들의 생명을 이 땅에 나타내기 위해서 나를 당신 앞서 보냈습니다.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당하는 일이 아니고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이 하셨다”라는 거기에 우리 인생의 모든 의문이 풀려지게 되어 있어요.
그렇습니다. 저 사람이 나에게 비록 어렵게 한다 할지라도 저 사람이 어렵게 하는 그것이 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저 사람을 통해서 내게 어려움을 준다는 것. 왜냐? 나를 바른 길로 인도해 가고 올바른 길로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서 내게 필요한 부분들을 인도해 가기 위해서 하나님이 나를 인도해 가신다는 사실. 내가 지금은 이해 안 된다고 할지라도 분명히 하나님은 나를 가장 완전한 길로 가장 완벽한 축복 가운데 인도하시기 위해서 저 사람을 통해서 나를, 하나님이 저 사람을 사용하는 도구로 쓰실 뿐이지, 저 사람을 통한 나에게는 가장 좋은 걸음으로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믿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믿는 믿음. 이 믿음 가지면 문제 될것이 없습니다. 모든 성경에 렘넌트들 응답 받은 사람은 다 이 믿음 가졌어요.
여러분 다윗을 보세요. 왕의 자리에서 신발을 벗고 도망치는 그런 형편이 되었어요. 그때 자기 밑에 있던 시므이가 반대편에 서서 감히 왕을 저주합니다. 피 흘린 자라고 저주합니다. 그때 다윗에게 같이 있던 아비새라는 장군이 뭐라 했습니까? 왕이시여 내가 당장 가서 저놈의 목을 베어오겠습니다. 저놈이 감히 어떻게 왕에게 욕을 할 수 있습니까? 당장 가서 저놈의 목을 베어오리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때 다윗이 아비새 장군에게 한말은 삼하16:10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신 것이니... 11절에도 보면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고 하거든 하물며 여호와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그냥 그 저주하는 것을 내버려두라 라고 했습니다.
12절에 보면 혹시 그 저주 까닭에 여호와께서 내게 선으로 갚아주시지 않겠느냐! 하나님이 나의 원통함을 들어주사 내게 오히려 선으로 갚아주시지 않겠느냐! 저주하는 것은 하나님이 하신 것이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사람이 아닙니다. 일이 아닙니다. 여기에서 우리의 인생들의 의문들이 풀려져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을 공격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 사람을 미워하지 마세요. 그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 사람이 그렇게 쓰임 받도록 도구로 사용했을 뿐이지.. 문제는 나를 그 문제 속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가장 축복된 역사로 인도해 나가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 그 속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하나님은 나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가장 필요한 것으로 나를 인도해 나가신다는 지금은 이해가 안된다고 할지라도 분명히 하나님은 가장 좋은 것으로 인도해 나가신다는 이 사실을 믿는 믿음 가지게 될 때 나를 내려놓게 됩니다. 거기에 새로운 나를 찾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획을 붙잡게 되고 거기에 하나님과 이면계약이 확실하게 드러나게 되고 그 속에서 영적인 정상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상처, 비뚤어진 감정으로 나타나고 그것이 결국 영적인 문제 가운데 집착하게 되는 부분으로 나타나서 우리의 인생을 실패시키는데 해결되는 길이 있어요. 하나님은 내게 가장 좋은 것으로 가장 필요한 것으로 내가 이해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처음부터 분명히 가장 축복된 것으로 나를 인도해 나가신다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믿는 믿음, 그 믿음이 확실하게 붙잡혀 지는 만큼 나를 내려놓잖아요. 그것 아니면 나를 못 내려놓습니다. 안 내려 놓습니다. 그때 새로운 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획이 보여지고 거기에 작은 실천 속으로 들어가면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하나님께서 나를 영적인 정상에 세우셔서 한 시대를 살리는 전도자의 귀한 축복을 받아 누리게 하실 것입니다.
강영우 박사이야기를 했지만, 미국에 유학을 가서 공부하는 동안에 비자가 연장이 안 되고 만기가 되었어요. 그동안 받던 장학금도 끊어졌어요. 그 때 낙심해 있을 때에, 그 옆에 있던 아내가 “여보,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제까지 인도해 오셨는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준비시켜 놓고 계시지 않겠습니까? 좀 기다려 봅시다!” 본인은 낙심해서 힘빠져 있는데 옆에 있던 아내가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우리를 너무 좋은 축복으로 인도해 오셨는데 좋은 부분을 준비해 놓고 하나님께서 인도해 나갈 것이니까 기다려 봅시다. 그래서 조금 기다렸더니 하나님께서 그렇게 삶을 인도하셨어요. 그러면서 이분이 고백하는 것이 “하나님은 언제나 옳았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가장 좋은 곳으로 우리를 인도하셨습니다. 나는 눈 하나 보지 못했지만 하나님은 모든 것들을 누릴 수 있도록 가지게 하셨습니다.” 한번 받아 합시다. “하나님은 언제나 옳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믿음을 딱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가장 필요한 것으로 인도해 나가십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믿는 믿음가운데서 여러분의 모든 상처들이 치유되어지므로 이 한 시대를 살리는 전도제자로 영적인 정상에 서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2년 7월 29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
(롬11:1-5)
서론: 지난 주간 서밋(SUMMIT, 정상) 대회와 리더 수련회가 있었습니다. 이번 주간에는 대구에서 세계 렘넌트 대회가 열립니다. 28개국 8천여 명의 렘넌트가 모입니다. 렘넌트들이 영적인 써밋(summit)으로 전도제자로 세워지며, 모세처럼 하나님을 체험하고 하나님 앞에서 나를 찾아 세우는 귀중한 집회가 되도록 집중해서 기도해주십시오.
1. 성경의 역사는 하나님이 남기고 뽑아 놓으신 ‘남은 자’의 역사이다.
(1) 성경의 가장 중요한 단어, 가장 많이 나타나는 사상이 ‘남은 자’(렘넌트) 사상입니다.
(2) 언제 ‘남은 자’를 부르셨는가?
1) 온 세상에 타락과 고통과 저주가 가득차서 하나님의 백성들조차도 무너지고 낙심, 좌절에 빠져 있는 그 시간에 이 단어들을 사용하심
2) 사6:13, 10:20-21, 롬11:1-2, 5
(3) 하나님은 우리를 이 시대의 ‘남은 자’로 세워 주셨습니다.
2. 남은 자로서 하나님의 역사를 누리기 위해서는 그릇이 준비(상처 치유)되어야 한다.
(1) 숨은 상처가 하나님의 축복을 가로막습니다.
(2) 문제와 사건을 당하고, 상처를 받을 때 어떻게 임하느냐가 중요합니다(고 강영우 박사).
(3) 상처는 오늘을 실패시키고 미래를 보지 못하게 만듭니다.
1) 사회문제가 됨 2) 영적상태 스톱됨 3) 상한 감정, 비뚤어진 감정 4) 돌출행동, 집착, 중독
3. 어떻게 치유해야 합니까? 하나님은 가장 좋은 것을, 가장 필요한 것을 준비하셨다는 믿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1) 곧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믿는 믿음이며, 이 때 사람을 용서할 수 있게 됩니다(요셉, 다윗).
(2) 이 때 하나님의 계획을 알게 되고, 이면계약이 드러나며, 영적인 정상에 서게 됩니다.
결과: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믿는 믿음가운데서 여러분의 모든 상처들이 치유되어지므로 이 한 시대를 살리는 전도제자로 영적인 정상에 서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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