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있는 사람은
2012-10-07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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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7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복 있는 사람은
(마5:1~6)
예수계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마5:1~6
■ 할렐루야, 박수로 영광 돌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당신은 참으로 행복자이십니다.
지난주는 추석이었죠. 추석 한 주간 여러분이 있는 현장에서 하나님 나라의 축복을 누리셨습니까? 예, 감사합니다.
추석을 지나 놓고 보면 그때그때 받는 응답들이 달라져요. 사실 예수 믿은 지 얼마 안 되는 사람들은 아마 주위에 믿지 않는 가족들로부터 많은 공격 을 당하게 될 겁니다. 조상도 제사도 모르는 상놈이라고 그런 욕들도 얻어먹는 사람들도 없지 않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가만 보면 그런 가운데서도 계속해서 약속 붙잡고 기도가 계속 진행되어지는 사람들은 또 다른 응답의 증거들이 하나하나 일어나요. 우리가 정말로 어떤 환경에 있든지 간에 하나님 주신 말씀 붙잡고 기도 속에 있다 보면 우리도 모르게 우리 주변에 하나님 주신 증거들이 나타나게 돼 있어요. 그래서 작년보다 올해는 또 달라질 것이고 올해 영적인 환경보다는 내년에 또 만나면 또 달라지는 이런 사실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가서는 어떻게 되느냐? 진짜 약속 붙잡고 기도하는 여러분 때문에 여러분의 가정과 가문이 다 살게 되는 축복을 주시게 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 했죠. 갈대아 우르, 우상 동네 아닙니까? 우상 충만한 그 도시에 있으면 망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갈대아 우르는 망했고 거기서 빠져나온 아브라함을 하나님이 축복하셔서 그 아브라함을 통해서 나중에는 다 살리는 축복된 증거의 응답을 주셨습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여러분 때문에 지금 여러분의 가정과 가문이 어떤 영적인 배경 가운데 있든지 상관없어요. 결국은 약속 붙잡고 계속 기도가 진행되는 가운데 있으면 여러분 때문에 여러분의 가정과 가문, 자녀, 후손들 다 살게 됩니다. 믿습니까? 그래서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이 말씀이 여러분 가정에 성취되는 그런 응답을 주실 것입니다. 이번 한 해도 우리를 승리 가운데 인도하신 주님께 정말 감사드리고 끝까지 영적 싸움을 싸움으로 가정과 가문 살리는 영적인 제사장으로서, 복의 근원으로서 승리하는 축복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난주에 우리가 마태복음 5장 3절에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의 그들이 것임이요’ 이 말씀을 가지고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사실 마태복음 3장에 보면 세례 요한이 등장하죠. 세례 요한은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난 자입니다. 그런데 이 세례 요한이 광야길을 걸어가면서 처음으로 천국에 대한 선포를 하게 됩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선포를 하게 되죠. 물론 그 당시 유대인들의 생각 속에, 사상 속에 메시아 왕국이 임할 것이라는 메시아사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천국에 대해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처음으로 선포한 것이 신약 성경에 와서는 세례 요한이죠. 그러고 나서 세례 요한이 예수님에게 세례를 주게 되고 세례를 받은 예수님의 머리 위에 성령이 임하게 되는 사건이 마태복음 3장에 나오고 마태복음 4장에 넘어가면 예수님께서 성령에 이끌린바 되어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 마귀의 시험을 말씀으로 물리치게 되죠. 이 말씀은 무슨 말이냐? 결국은 사단의 역사가 꺾이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도래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겁니다. 그래서 결국 예수님께서도 성경에 마태복음 4장 11절에 보면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바로 사단이 꺾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했다는, 흑암의 권세, 악한 사단의 권세가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말씀하면서 마태복음 4장 마지막 부분에 보면 예수님께서도 이제 전도하러 현장에 나가서 하신 말씀이 뭐냐 하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하고 선포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5장에 지난주에, 오늘도 본 마태복음 5장에 보면 결국은 천국백성된 자들이 이 땅에서 삶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천국백성으로서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 여기에 대한 부분을 말씀하고 있죠. 그게 마태복음 5장에, 6장에, 7장에서 산상보훈을 통해서, 특히 팔복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다시 말하면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의 방법과 다른 삶이 있다는 것, 다른 비밀이 있다는 거예요. 사실 여러분 이미 말씀을 들었지만 마태복음 5장, 6장, 7장 산상보훈을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데 그 당시 유대인의 생각, 사고를 완전히 뒤바꿔놓는 생각, 뒤바꿔놓는 말씀들이에요. 무슨 말입니까?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왔던 방법과 다른 비밀이 있는데 그 비밀을 알게 될 때 모든 현장을 변화시키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 천국의 축복을 누리게 되는 그 축복을 누리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그런 부분들 가운데 지난주에는 참된, 복된 빈곤이 있는데 그게 바로 심령이 빈곤한 것이다 이야기했어요. 복된 빈곤이 있는데 심령이 빈곤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심령이 빈곤한 가운데 살면서도 빈곤한 줄 모르고 실아가고 있고요 그런 가운데 우리에게 정말 참된 복된 빈곤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다른 것이 아니라 심령이 빈곤한 것이라 말씀했습니다. 이 말은 무슨 말입니까? 자신의 힘으로는 생명 얻을 수 있는 힘이 절대로 결핍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만이 내게 도움을 주고 하나님만이 내게 힘을 준다는 사실을 아는 심령, 그리고 정말로 내가 그분께만, 하나님께만 온전한 능력을 얻을 수 있단는 것을 아는 심령, 그게 바로 심령이 가난한 자라 말씀하시면서 이런 자에게 하나님 나라의 축복, 바로 천국의 축복을 누리게 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이후의 삶도 한 순간 한 순간, 한 걸음 한 걸음,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절대로 살아갈 수 없는 존재가 바로 저와 여러분의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 통해서 구원을 받았고 구원받은 이후에도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삶의 존재가 바로 우리의 삶의 존재예요. 이 말은 우리가 그냥 ‘그러니까 겸손하게 살자’ 그 말이 아닙니다. 정말로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고서는 절대 살 수 없는, 절대 빈곤 상태에 빠져 있는 것이 바로 우리인데 그게 바로 심령이 가난한 자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여러분 팔복에 대해서 말씀을 보면 창세기 3장, 또 그 창세기 3장의 문제를 해결한 그리스도, 그 비밀을 알면 알수록 팔복이 제대로 깨달아지고 제대로 이해가 되게 되어 있어요. 많은 경우 이 부분을 제대로 이해를 못해서 윤리적으로 설명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천국백성으로서 윤리적인 삶이 어떤 것인가?’ 그렇게 설명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전에 진짜 창세기 3장의 문제가 이 땅의 문제인 것을 알고 그 문제를 해결한 그리스도의 비밀을 알면 알수록 여덟 가지 복이 무엇을 말씀하는가 정확하게 알게 되어 있고 이해되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지난주에는 심령이 가난한 자, 진짜 복된 빈곤은 심령이 가난한 것이 복된 빈곤이라 말씀을 받았고요 오늘은 세 가지를 가지고 말씀드리겠습니다.
4절, 5절, 6절에 나와 있는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이 사람들이 복이 있다, 그래서 ‘복 있는 사람은’ 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을 나누면서 귀중한 제목을 붙잡기를 원합니다.
1. 애통한 자 - Those who Mourn
먼저 첫 번째입니다. 애통하는 자가 복 있다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애통하는 자는 우리가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는 말과 통하는 말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애통하는 자라는 말은 절대적인 슬픔을 가지고 있는 자를 말합니다. 절대 슬픔을 가지고 있는 자. 특별히 우리나라 사람들을 보면 정이 있는 민족인 것 같습니다. 많은 아주머니들도 드라마 보면서도 눈물 흘리고 은혜 받고 합니다. 연말이나 추석에도 방송이 되던데 어려운 가정들 후원해 주십사하고 방송 내 보내면 전화 한 통화 들면 자동적으로 천원이 기부되는. ARS 입니까?
이번 추석 때도 어떤 한 어려운 가정이 소개되는데 거기에 순식간에 백만 원, 천만 원씩 나오더라고요. 이것이 사람들 마음에 근본적으로 슬픔에 대한 정을 갖고 있다는 말이지요. 저도 그런 게 아주 강한 것 같습니다. 라디오 틀어놓고 좋은 훌륭한 것들이 소개되어지면 저도 모르게 마음속에서 울컥한 것이 튀어 나옵니다. 이성적인 것보다 감정적인 것이 강한 것이 한국 백성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들 하게 됩니다마는 여기에서 말하는 “애통한다”는 말은 그런 슬픔이 아닙니다. 성경의 예를 들면 창세기37장에 보면 요셉의 형제들이 요셉을 노예상인들에게 팔아버리고 아버지인 야곱에게 와서는 거짓말을 합니다. 요셉의 겉옷에 모든 짐승의 피를 묻혀 야곱에게 갖다 주면서 당신의 아들 요셉이 짐승에게 찢겨서 죽었다는 보고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야곱이 그 요셉의 핏덩이 묻은 옷을 끌어안고 심히 애통했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애통은 그 애통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일반적인 슬픔이 아니라 정말로 절대적인 애통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칫 속을 수 있는 것이 육신적으로 문제없으면 문제없는 줄 알고 웃으면서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실은 차라리 질병가운데 고난 받는 것이 더 나을 수가 있고, 차라리 아주 못나고 연약한 것이 더 나을 수가 있고, 때로는 우리도 감당치 못하는 영적인 문제 가운데 그 문제 해결하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그 부분들이 더 나을 수 있습니다. 왜냐? 그것 통해서 복음, 그리스도를 알고, 그것 통해서 참된 하나님의 구원의 비밀을 알아갈 수 있기 때문에 문제 있는 것이 더 나을 수가 있다 라는 사실입니다. 누가복음 16장에 보면 “부자와 거지 나사로” 의 비유 이야기가 나옵니다. 부자는 날마다 육신적으로 흥청망청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지옥에 갔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애통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진짜 애통함이 있는데 그 애통함을 모르는 사람이 부자였습니다. 바리새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이 나름대로 규모와 나름대로의 삶을 가지고 철저하게 살았습니다마는 자기들이 잘 사는 것으로 만족했지 진짜 바리새인들 중심에는 애통함이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나중에 그 후대에 가서 2차 대전에 유대인들이 육백만 명이 넘게 전 세계로 흩어져서 유리방황하는 민족이 되었고, 독일의 히틀러에 의해 독가스 실에 들어가서 육백만 명 이상이 숨진 사실을 역사를 통해 보게 됩니다.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자기 자신들은 잘 살았지만 진짜 애통해야 할 부분에 애통함을 몰랐기 때문에 후대에 가서는 그런 엄청난 비극들이 일어났던 사실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먼저 애통하는 마음들이 있어야 합니다. 세상을 보면 볼수록, 현장을 보면 볼수록 정말 복음 모르는 현장을 보면 볼수록, 우리 마음에 애통함이 일어나야 합니다. 영적인 문제 가운데 어찌할 바를 모르고 부모님들이 갖고 있는 영적문제를 자녀들이 고스란히 물려받아 거기에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면서 진짜 무엇 때문에 이런 문제들이 왔는가? 이 부분들을 놓고 애통하는 마음들이 있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정신적인 문제로, 우환, 질고로 열심히 노력해서 돈 벌어 놓았는데 어느 날 다 날아가 버리고, 이런 실패의 역사들을 보면서 우리의 마음속에 진짜 일어나야 할 부분들이 하나님 떠남과 죄와 사탄의 역사가 어떤 것인가를 알고 거기에 대한 애통하는 마음이 있지 않으면 참된 응답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전도하러 돌아다니기 이전에 가장 필요한 것이 현장을 바라보면서 애통하는 마음들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자녀들의 현장을 한번 보십시오. 지금 여지없이 무너지고 있는 자녀들의 현장들. 교회의 현장을 보십시오. 세상이 교회를 향해 이제는 막 함부로 말하고 있습니다. 반석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라 하나님께서 교회에 대한 축복을 허락하셨는데 교회가 전혀 세상을 향해 힘이 없습니다. 지난 금요전도학교 때 말씀 드렸습니다마는 한국의 장로교단만 해도 250여 교단이 넘습니다. 수많은 신앙의 고백들이 흘러져 내려왔고, 수많은 교회들, 교단들이 생겨졌지만 지금 세상 앞에 전혀 힘이 없는 교회들로, 세상 사람들이 마음껏 교회를 욕하고 있어요. 거기에 전혀 대꾸하지도 못할 정도로 그렇게 힘이 없는 그리고 교회 안에 일어나고 있는 자유주의 운동에, 다원론 등. 영적인 힘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 교회 현장입니다. 이런 현장을 바라보면서 애통하는 마음이 없다면 하나님의 축복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특별히 하나님은 능력 있고, 실력 있고, 수준 있는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세계 최고가는 갑부라 할지라도 오늘 저녁에라도 당장 불러 가시면 가야 되는 것이 생명입니다.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누구를 찾느냐? 진짜 이 땅과 현장과 가정과 자녀와 후대들을 바라보면서 애통하는 자를 찾으신다는 사실입니다.
모세 보십시오. 가만히 있으면 육신적으로는 성공하겠지요. 성공할 수밖에 없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그 자리를 포기했습니다. 진짜 애통해야 될 부분들이 무엇인지 알았기 때문입니다. 출32장에 보면 모세가 시내 산에 하나님의 언약궤를 받으러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시내산 밑에서는 아론을 중심으로 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론에게 원망하면서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어내라고 합니다. 모세는 산에서 내려오는 것이 늦어지고 그러니까 밑에 있는 아론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구했습니다. 그러니까 아론이 여자들과 네 자녀들에게 있는 금귀고리들을 다 가지고 나오라고 해서 그것으로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너희를 인도할 신이다고 하면서 여호와의 절일이라는 이름까지 붙였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모세에게 내 백성들이 목이 뻣뻣하여 타락했다. 내가 내 백성들을 완전히 멸하겠다고 하니까. 모세가 중보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죽일 것 같으면 애굽에 있을 때 죽이지 왜 불러내셔서 그러면 적들이 바라보면서 저들이 섬기는 신 하나님은 저들을 죽이기 위해서 광야로 인도해 낸 신이 아니냐고 할 것 아니냐며 중보기도를 합니다. 그러면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은 약속의 하나님 이신 것을 이야기 하면서 분명히 하나님은 우리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을 살리게 하겠다고 하셨는데 그러면 이 말씀이 없어지는 것 아닙니까. 그러자 하나님이 모세의 요구 앞에 그 진노 내리시는 것을 거두었다 했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시내 산에서 두 돌판을 가지고 내려오면서 밑에 들려오는 소리가 보니까 완전히 우상 앞에 춤추고 노래하는 소리가 들려지거든요. 그 현장을 보자마자 화가 나서 두 돌판을 던져버렸습니다. 그러면서 진노했는데, 그 다음에 마지막 32장 32절에 보면 모세가 중요한 기도를 합니다.
자기백성들의 죄를 위해서 기도하는데 내 이름을 하나님의 기록한 책에서 지워버릴지라도 내 백성들을 구원해 주옵소서.
이것이 무엇입니까? 자기 백성들의 죄를 끌어안고 애통하는 마음이 있었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 이름을 하나님의 생명록에서 지워버린다 할지라도 내 백성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애통하는 마음을 가진 모세를 하나님이 쓰실 수밖에 없었지요.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의 모든 것들을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그리스도를 만나고 보니까, 그리스도로 복음을 누리다 보니까 자기 안에 진짜 복음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대한 애통함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가진 이것들이 복음전하는 일에 방해가 된다면 내가 모든 것을 버리겠다는 그 중심에는 진짜 복음의 비밀을 알고 나니까 복음을 가지지 않는 현장을 바라보면서 거기에 대한 애통함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고전9:16절 바울의 고백을 보면 이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도리어 내게 화가 있으리로다. 했습니다. 분명히 그리스도! 복음을 전하면 살 것인데 이 복음을 전하지 않고 입을 다물고 있다면 화가 임할 것이 아닌가? 얼마만큼 하나님의 애통하는 마음, 복음을 향한 마음들이 그 중심에 있었던 것인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마태복음 9장에 보면 백성들의 삶속에 들어오셔서 현장을 보시면서 목자 없는 양같이 유리하는 현장을 보시면서 민망히 여기셨다 했습니다. 하나님의 복이 임하는 길이 있습니다. 진짜 여러분의 마음 중심에 현장을 바라보면서, 특별히 하나님 떠난 세상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마음인 애통하는 마음들이 있느냐? 하나님이 그때부터 참된 축복의 문들을 열어 가십니다. 여기에 대한 애통함이 있다면 그런 자를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게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전도하러 돌아다니지 않아도 여러분의 중심에 여기에 대한 애통함이 있다면 그런 자를 하나님이 축복하시게 되어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복음을 깨닫고, 그리스도 비밀, 십자가의 능력을 알면 알수록 현장을 보면 안타깝잖아요. 가족이라 할지라도 완전한 복음을 가지고 가족을 보니까 가족이라 할지라도 관심이 딴 데 있는 것, 이질감이 생기는 부분들 있잖아요. 어떤 분은 남편이 너무 잘해 주는데도 복음알고 누리다보니까 그 잘해주는 남편이 너무 불쌍하고 안타까워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남편을 위해 기도하는 분을 보았습니다. 또 어떤 분은 자기에게 잊을 수 없는 상처를 준 사람인데 그것 때문에 복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들으면서 자꾸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닫고 그리스도의 능력을 체험하다 보니까 하나님이 나를 너무나 사랑하시는구나 하는 것을 깨닫고 고백한 내용이 나에게 상처 준 그 사람이. 너무 그의 영혼이 불쌍하고 안타깝게 보인다고 고백했습니다. 정말 우리가 복음을 알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을 알고 누리면 누릴수록 현장 보면 복음만 받으면 살 것인데 여기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잖아요. 그러한 자를 하나님이 쓰신다는 것입니다.
죄송합니다. 저희 집 이야기를 해서 죄송합니다. 사실 목사가정도 많은 문제들이 있습니다. 그런 것을 아시고 위로 받으시면 됩니다. 우리 자녀들이 방황할 때가 있었습니다. 말도 안 듣고 그래서 학교에 저도 불려갔는데 사실 창피해서 고개를 못 들겠더라구요. 가니까 아들놈은 교무실에서 꿇어앉아서 반성문 쓰고 있고. 고개를 못 들겠더라구요. 화가 나다가도 그런 과정 속에서 한번은 우리 아들이 자는 모습을 봤는데 하나님이 은혜 주신 것이지요. 영적인 힘이 없어서 자기 자신을 다스릴 수 없어 방황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 보여지면서 오히려 자녀를 위해서 기도가 나왔습니다. 이때부터 자녀를 보는 눈이 달라졌습니다. 자신도 자기 환경들을 이기지 못해 방황하는 자녀를 복음을 가지고 보니까 어떻게 자녀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힘을 회복하도록 도울 것인가에 대한 기도가 나왔습니다. 죄송합니다. 팔불출이 되어도 좋습니다만 제가 자녀들 때문에 고민되어서 밤잠을 못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신경을 쓰는 부분을 보면서 저와 한 이불을 덮고 자는 사람이 저한테 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나는 자녀 문제 가지고 기도가 전혀 안됩니다. 자녀들을 위해 기도를 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당신의 모습을 보면서 기도가 되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급하고 답답했으면 자녀들을 통해서 무너지는 청소년 현장을 보도록 하시겠는가. 이 사건을 통해서 남편이 지금 무너지고 있는 청소년 현장을 보는 하나님의 한을 가슴에 담게 해달라고 기도가 되어집니다." 저는 이것을 듣고 메시지로 받았습니다. 놓치고 있었던 것들을 깨달았습니다. 현장가운데 자녀들이 무너지는데 거기에 대한 안타까움이 없는데 무슨 복을 받겠습니까.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무엇 하기 이전에 정말 하나님의 한을 가지고 현장과 세상을 보는 눈들이 열려지는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온유한 자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단순히 유순하고 따뜻한 성격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부분 온유하다고 하면 유순하고 따뜻한 사람, 말씀도 없이 조용한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목소리 큰 사람들은 보통 집안의 내력입니다. 또 성격도 외향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어디든지 끼어들고 나타냅니다. 반면에 내성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나서기를 싫어하고 조용한 사람이 있습니다. 성격 차이일 뿐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온유함은 자신의 무지함과 연약함과 궁핍함을 아는 겸손함을 가진 자입니다. 바로 자기 자신을 제대로 알고 자기 자신을 다스릴 줄 아는 자가 온유한 자입니다. 그런데 이 땅에 어느 누구도 자기 자신을 절제하고 다스릴 수 있는 자는 없습니다. 그것은 인간 밖의 일입니다. 분명히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문제가 오면 자기 자신을 다스릴 수 없는 것이 인간입니다. 원래 인간은 하나님의 뜻을 행할 때 행복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자유함이 있고, 하나님을 의지할 때 참된 축복을 누리게 되어있습니다. 인간 스스로는 자신을 다스리는 힘이 없습니다. 분명히 한계가 오게 됩니다. 자신을 다스릴 수 있는 비밀은 하나님의 다스림 속에 있을 때 가능해집니다. 내 자신을 다스릴 줄 알아야 세상을 다스릴 수 있고, 다른 사람을 다스릴 수 있습니다. 이 말이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는 말입니다. 대부분 자기 자신을 스스로 다스리려고 몸부림 치고 자신을 억누르는데 그것이 종교입니다. 10년 20년 30년 누르고 누르다가 어느 날 터지게 되면 다 날아가게 됩니다. 그 동안 마음도 상하고, 상처 받고, 영도 돌아버리게 됩니다. 이것이 종교생활의 결과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다스릴 수가 없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물고기는 물속에, 나무는 땅에 뿌리를 내리고, 새는 공중에 살아야 하는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 안에 있어야 우리 자신을 알게 되어있고 다스릴 수 있게 됩니다. 우리 자신을 다스리는 비밀이 있어야 다른 사람을 다스릴 수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 자신을 다스릴 수 있는 비밀들이 어디에서 나옵니까? 온유함의 원어를 보면 주인의 손에 잘 길들여진 말이라고 설명합니다. 하나님의 손에, 하나님의 말씀에 잘 길들여진 자를 보고 온유한 자라고 합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우리의 삶이 잘 움직여지는 자를 일컬어서 온유한 자라고 이야기 합니다. 우리가 정말 영적인 비밀, 그리스도의 비밀, 현장을 알면 알수록 순간순간 ‘하나님의 비밀을 몰라서 되겠느냐, 하나님의 말씀에 인도받지 못하면 못 살겠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실제로 육신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영적으로 하나님의 다스림 속에 있지 않기 때문에 자신도 망하게 되고, 시대도 나라도 어렵게 하는 것을 역사를 통해 볼 수 있습니다. 나폴레옹, 칭기즈 칸, 알렉산더를 보면 육신적으로는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지만 영적으로는 약했습니다. 자신들이 세상을 정복했다고 할지라도 결국 자신도 무너지고 세상도 더 어려움을 가져다준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말씀으로 길들여지지 않은 결과입니다. 북한도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3대 세습으로 육신적 힘 가지고 밀어붙였지만 결국 망하는 길인 것입니다. 육신적인 힘이 전부가 아닙니다. 순간순간 주의 말씀에 길들여지고 인도받아야 합니다. 그것이 안 되면 결국은 힘 있는 만큼 무너진다는 사실입니다. 청소년 렘넌트들 보세요. 요즘 신체가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잘 먹어서 그런지 음식이 그래서 그런지 몸집이 급격하게 커지고 있습니다. 제 아들도 언제 클까 싶었는데 이제는 저보다 더 큽니다. 그런데 청소년들 보면 마음, 영적으로는 완전히 약해져 있습니다. 잘못 가르친 것이 아니라 힘이 없으니까 문제 당하면 여지없이 무너지고 청소년 자살들이 일어납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영적으로 강해야 합니다. 영적으로 강할 수 있는 비밀은 얼마만큼 하나님의 말씀에 길들여져 있는가 입니다. 계시록 3:17을 보면 예수님께서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해서 하신 말씀이 나옵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못하는도다.” 너희가 육신적으로는 모든 것을 가진 강한 자인데 영적으로는 완전히 거지임을 지적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정말로 필요한 것이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간순간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인도받으며 주님의 역사를 따라가는 것이 온유한 자이며 강한 자입니다. 그리고 이 온유함의 비밀을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보고도 함부로 말하지 않습니다. 함부로 이렇다 저렇다 정죄해 버리지 않고 이 온유함의 비밀을 가진 진짜 강한 자는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지 않고 정죄하지 않고 또 자기 자신을 보고도 “난 할 수 없다, 내가 죽을 사람이다” 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왜냐? 순간순간 하나님 말씀의 인도 받는 일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에, 그 영적인 힘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런 비밀들을 누릴 수 있는 겁니다. 여러분 특별히 “나는 뭐든지 하는 것마다 안 된다” 는 분이 계십니까? 하나님은 여러분을 정말 사랑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길들여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 온유한 자로서 참된 축복, 땅을 기업으로 받는 축복을 받으시기 원하십니다.
온유한 자로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자신이 정복당해지고 또 다른 사람들을 정복하고 살리는 귀한 축복의 역사를 누리며 땅을 기업으로 받는 그 축복을 누리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마지막 세 번째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입니다.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들어온 지 130년 정도 됩니다. 1885년에 언더우드 선교사에 의해서 복음이 증거되어지고 약 130년 정도가 되어 가는데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학교나 병원, 고아원, 양로원 같은 사회사업에 많은 투자를 했습니다. 그래서 사실 기독교 대학교, 사회 운동도 교회 중심으로 많은 것이 일어났습니다. 참 잘한 일입니다. 대구에도 큰 대학들, 계명대학교나 대구대학교가 전부 다 기독교 재단으로 시작했고 동산병원의 병원 사업도 기독병원으로 시작 하였습니다. 참 잘한 일들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를 놓친 것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 영적인 비밀들. 왜 개인과 가정, 세상이 점점 발달함에도 불구하고 무너지고 있는가? 하는 이 비밀을 놓쳐 버렸어요. 이것이 모든 것의 실패 이유인데 이것을 놓쳐 버렸다는 사실. 정말 의에 주리고 목말라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놓쳐 버렸다는 겁니다. 교회가 많은 일을 하지만 이 비밀을 놓쳐 버렸다는 거예요.
바리새인들을 보세요. 그들이 얼마만큼 구제하고 봉사했는지 아시잖아요. 그들은 구제하고 봉사하는 것을 심지어 길거리에 서서 기도하면서 구제하고 봉사하는 것을 자랑했어요. 그런데 그 바리새인들이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사실은 예수님이 왜 필요한지를 몰랐어요. 의에 주리고 목말라야 될 이유를 몰랐던 겁니다. 그러니까 구원 받지 못한 민족이 되고, 구원 받지 못한 바리새인들이 되었어요.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사람들을 보니까 이상한 사람들이 따라 다닙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이상한 사람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또 수많은 병자들이나 귀신들린 자들이 나아서 예수님을 따라 다니는데 정말 영적으로 갈급한 자들이 따라 다닌 사실을 못 봤어요. 사실 바리새인들은 헛배가 부른 것이죠. 진짜 의에 주리고 목마름을 몰랐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구제하고 봉사해도 망할 수밖에 없었어요.
여러분 우리에게 있어 정말 눈이 열려야 될 부분이 있다면 다른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로마에 속국 되었잖아요. 영적으로 완전히 망했습니다. 또 후대들도 완전히 망할 역사입니다. 가정이 무너지고 후대가 무너지고 자녀들이 무너지는 그런 역사 속에 있는데도
그 사실을 몰랐어요. 왜냐? 의에 주리고 목마름의 비밀을 몰랐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이야기 합니다. 교회는 좋은 것을 하니까 교회에 보내야 된다. 그래서 교회에 가서 좋은 것을 배워 오라고 자기들은 교회에 안 나오지만 교회에 보내는 부모들이 있어요. 그 부모들은 의에 주리고 목마르다는 이 비밀을 모르는 겁니다. 그런데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의에 주리고 목마름이 있어야 된다는 사실입니다. 차라리 여러분의 집에 정신병자가 있다고 할지라도 또 여러분에게 해결 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 할지라도 오히려 그것 때문에 복음을 알고 그것 때문에 그리스도를 알고 그것 때문에 의에 주리고 목마름을 가질 수 있다면 그게 더 좋은 것입니다. 문제가 없는 것보다도. 그것 때문에 의에 주리고 목마름이 있다면.
1부 예배 때는 제가 설명을 한참 하다 보니까 실수로 다른 사람(크로즈비)을 설명했어요. ‘앤 설리번’이라는 사람을 아시죠. ‘헬렌 켈러’를 키운 인물입니다. 이 사람이 사실은 보호소에 있으면서 자기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알콜 중독자였어요. 그러니까 아버지로 말미암아 엄청난 상처를 가지고 있었어요. 보호소에 있는데 자기 동생도 보호소에 와 있다가 자기보다 먼저 죽게 됩니다. 그러니까 앤 설리번이 완전히 미치게 됩니다. 그리고 눈 까지도 멀어져 버렸어요. 실명하게 됩니다. 완전히 괴성을 지르고 해서 사람들이 도저히 회복 불가능하다고 판단해서 지하 독방에 쳐 넣어 버렸어요. 그런데 그 앤 설리번을 치료한 사람이 있어요. 노간 호사인 ‘라노’ 라는 여자인데 앤 설리번에게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치유를 합니다. 자살까지 시도했던 앤 설리번이 진짜 정신병에서 살아났어요. 완전히 치유 받았어요. 그 은혜를 아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신문에 시각, 청각, 말을 하지 못하는 삼중 불구자를 돌볼 사람을 구한다는 광고를 보게 됩니다. 이 앤 설리번에 내가 받은 사랑을 이 사람에게 전하겠습니다하고 나선 겁니다. 그래서 만난 사람이 헬렌 켈러입니다. 미국의 작가 겸 교육자로서 20세기 미국에 영향을 끼친 100명 중에 한 사람입니다. 사실, 헬렌 켈러도 생후 19개월 만에 수막염을 앓아서 시각, 청각을 잃어버리고 말도 못하게 되었어요. 장애인으로 20세에 하버드 대학에 들어가고 앤 설리번과 48년을 같이 있으면서 중요한 작품을 만들어 냈는데 그 앤 설리번이 헬렌 켈러를 돌보면서 ‘물’이라는 한 단어를 깨닫게 하기 위해 7년이 넘게 걸렸다고 합니다. 감각 밖에 없으니까 만져봄으로서 사물을 이해할 수 있게 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같으면 포기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끝까지 헬렌 켈러를 도왔어요. 왜냐? 자기가 영적인 문제 가운데 빠진 그 갈급함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끝까지 헬렌 켈러를 도왔는데 그 사람이 나중에 위대한 작가로서 20세기에 미국에 뉴욕타임지에 영향을 끼친 100인 중에 한 사람에 들 정도로 훌륭한 인물을 만들어 냈다는 사실입니다. 1부 예배 때는 한참 입에 침을 튀기면서 이야기를 했는데 크로즈비 이야기를 했어요. 크로스비가 아니고 헬렌 켈러였습니다. 앤 설리번이 자기에게 있는 영적인 갈급함, 그 부분을 알았기에 자기가 치유 받은 사실에 대한 체험이 있기 때문에 헬렌 켈러를 훌륭한 사람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정말 그렇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러 막 돌아다니기 전에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면 영적인 갈급함 의에 주리고 목마름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기도하세요. 딴 기도보다도 하나님 내게는 정말 딴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의에 주리고 목마름이 내게 필요합니다. 일평생 동안 나는 하나님의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되기를 기도합니다. 이 기도하면서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그런 자를 쓰십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르다고 했는데 이 ‘의’가 무엇을 말합니까? 이 땅에는 의가 없어요. 이 땅에 존재하는 것에는 그 어떤 것도 의가 없습니다. 오직 이 땅에 유일한 의는 예수그리스도 밖에 없어요. 창세기 3장에 하나님 떠남과 죄와 사탄의 문제를 해결하신 그리스도. 왕으로 사탄의 머리를 깨뜨리셨고 죄로 말미암아 재앙가운데 빠져 있는 우리들을 제사장으로서 모든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의롭다고 선언하시고 선지자로서 하나님 만나는 길을 여신 그리스도. 그 분만이 우리의 ‘의’가 되십니다. 여기에 대한 갈급함이 있다면, 그 사람이 성공하게 되어 있어요. 그런 사람에게 어떤 축복을 주시느냐? 배부름의 축복을 주시게 되어 있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마태복음5장 6절) 했어요. 배부름의 풍요한 축복을 주시게 되어 있어요.
여러분, 정말 현장을 한번 보세요. 지금 세계가 어렵습니다. 이 땅이, 이 민족이 어렵습니다. 이 현장을 보면서 왜 그런 어려움이 일어나는가? 영적인 갈급함 속에서 사람들이 이리저리 허덕이잖아요. 최고의 지성인이라고 하는 대학생들과 대학문화 속에는 전부 술판입니다. 지금 사회적으로 주폭(술 취해 휘두르는 폭력) 문제를 다루면서 대학 안에도 술에 대해 금지하자고 하니까 대학생들이 반대를 합니다. 왜 대학 안에 자율권까지 빼앗느냐! 하며 반대를 하고 나왔습니다. 실제로 대학 안에 신입생 환영회나 MT를 한번 보세요. 전부 술판입니다. 술 먹여서 죽이는 사람이 있고 술 먹어서 죽는 사람도 있습니다. 서울 대학교에서는 술 먹고 못에 빠져 죽은 사건도 있었습니다. 이게 무엇을 말합니까? 영적으로 갈급하니까. 최고의 지식인이지만 영적으로 갈급하니까 분별이 안 되는 것입니다. 오늘 주보 안에 보면 엘리트들의 고독함에 대해 설명해 놓았어요. 홍콩배우 장국영의 자살사건, 노무현 대통령의 유서나, 헤밍웨이에 대한 일들을 이야기 하며 이런 엘리트 일수록 영적인 갈급함 속에 빠져 있습니다. 전문인들, 의사들은 의사 나름대로, 법관은 법관 나름대로,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일수록 말 안하고 있어서 그렇지 전부 영적인 갈급함 속에 살아갑니다. 그러니까 폭음하고 사람이 없는 곳에서 이상한 행동들을 합니다. 나름대로 지명도가 있으니까 드러내 놓고 하지는 못하고 영적인 갈급함 속에 들어가고 있는 사실입니다. 바로 의에 주리고 목마름의 비밀들을 알지 못해서 영적인 갈급함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그렇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영적인 축복의 비밀들을 누리게 되면 우리의 삶의 현장까지도 풍성한 하나님의 축복된 증거가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것에 갈급해 하지 마시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예레미야 33장 3절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말씀했어요. 영적인 축복의 비밀을 받게 될 때 그 다음에 4절부터 9절까지를 보면 네 성읍을 고쳐 치유하겠고 포로에서 돌아오게 하겠고 모든 것들을 치유할 것을 말씀했어요. 다시 말해, 영적으로 부유한 자가 되면 육신의 삶의 현장까지도 부유해지는 축복을 누리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영적인 눈을 뜨기를 바랍니다. 정말 우리의 생명을 불러 가시는 이는 주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정말 우리의 가정과 가문을 놓고서 우리의 현장을 놓고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원하시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영적인 눈을 뜨길 원하십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름의 현장, 그 현장을 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 현장 보는 눈이 열려지는 그 순간부터 하나님이 우리에게 참된 축복의 역사를 시작하시게 되어 있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지금 전부 세상이 사탄의 전략 가운데 무너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만이 살아남을 수가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 종일토록 여러분이 예배드리는 가운데서 참된 복음의 비밀들을 누리시고 영적인 축복을 갈망하고 영적인 축복에 주리고 목마른 자 되기를 바랍니다. 이번 한 주간에 여러분 심령에 은혜를 갈망하고 그리스도의 능력만 갈망하는 한 주간이 되어짐으로 여러분의 걸음이 참된 응답으로 시작되는 축복의 승리의 걸음들이 되어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천국백성으로서 이 땅에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며 살아가야 될 비밀들을 알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특별히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 정말 애통하는 자로서 현장을 볼 것을 보는 눈을 열어 주옵시고 온유한 자로서 우리 자신들이 참 말씀에 길들여진 자되어 영적인 힘을 가지고 나를 정복하고 세상을 정복하는 자들 되게 하시며 또 무엇보다도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되어서 진짜 하나님의 의를 이 땅에 심어 나가는, 이루어 나가는 전도자의 생애가 될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특히 이번 한 주간에 우리의 모든 삶 속에서 그리스도의 능력만 갈망하는 또 정말 하나님의 은혜만을 갈망하는 한 주간 될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옵소서. 살아계신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2012년 10월 7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복 있는 사람은
(마5:1-6)
서론: 여러분의 가정과 가문이 어떤 영적 배경 가운데 있든지 아브라함처럼 가정과 가문을 다 살리는 응답을 주실 것입니다. 가정과 가문을 살리는 영적인 제사장으로 영적 싸움에 승리하십시오.
마태복음 5~7장은 천국백성 된 자들이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3장 문제와 그 문제를 해결한 그리스도 비밀을 알수록 팔복이 이해되어집니다.
1. 애통하는 자(4절)
(1) 절대적인 슬픔을 가지고 있는 자라는 의미입니다(창37:34에 나오는 슬픔).
(2) 진짜 애통을 알 수 있기에 문제 있는 것이 오히려 좋습니다.
(3) 우리는 먼저 애통해야 합니다.
1) 현장을 보고 애통한 자가 복을 받음(영적 힘 잃어버리고 조롱 받는 교회)
2) 하나님은 실력자를 찾는 것이 아니라 애통한 자를 찾고 계심(모세 출32:32. 바울 고전9:16)
2. 온유한 자
(1) 자신의 무지함과 연약함과 궁핍을 아는 겸손함을 가진 자를 의미합니다
1) 단순히 성품이 순하고 따뜻한 것을 말하는 게 아님
2) 자신을 제대로 알고 자신을 다스릴 줄 아는 자임
① 그러나 자신을 다스리는 일은 인간 밖의 일임
② 하나님 안에 있을 때만 자신을 알고 다스릴 수 있음
(2)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 자신을 길들이면 됩니다(자신을 잘 다스릴 수 있는 비밀).
1) 온유함의 원어: 주인의 손에 잘 길들여진 말
2) 하나님의 말씀에 인도받을 때 하나님의 손에 나 자신이 길들여짐
3. 의에 주리고 목 마른 자
(1) 기독교가 한국에 들어와서 잘한 부분들이 많지만 영적 문제가 무엇인지 놓쳤습니다.
(2) 6절은 영적으로 심각하게 갈급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1) '의'는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음
2) 하나님은 우리가 의에 주리고 목마른 현장을 보기를 원하심
결론: 사탄에 의해서 세상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예배 속에서 참된 복음의 비밀 누리고, 영적인 축복에 주리고 목마른 자 되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 그리스도의 능력만 갈망하며 한 주간 사십시오.
복 있는 사람은
(마5:1~6)
예수계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마5:1~6
■ 할렐루야, 박수로 영광 돌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당신은 참으로 행복자이십니다.
지난주는 추석이었죠. 추석 한 주간 여러분이 있는 현장에서 하나님 나라의 축복을 누리셨습니까? 예, 감사합니다.
추석을 지나 놓고 보면 그때그때 받는 응답들이 달라져요. 사실 예수 믿은 지 얼마 안 되는 사람들은 아마 주위에 믿지 않는 가족들로부터 많은 공격 을 당하게 될 겁니다. 조상도 제사도 모르는 상놈이라고 그런 욕들도 얻어먹는 사람들도 없지 않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가만 보면 그런 가운데서도 계속해서 약속 붙잡고 기도가 계속 진행되어지는 사람들은 또 다른 응답의 증거들이 하나하나 일어나요. 우리가 정말로 어떤 환경에 있든지 간에 하나님 주신 말씀 붙잡고 기도 속에 있다 보면 우리도 모르게 우리 주변에 하나님 주신 증거들이 나타나게 돼 있어요. 그래서 작년보다 올해는 또 달라질 것이고 올해 영적인 환경보다는 내년에 또 만나면 또 달라지는 이런 사실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가서는 어떻게 되느냐? 진짜 약속 붙잡고 기도하는 여러분 때문에 여러분의 가정과 가문이 다 살게 되는 축복을 주시게 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 했죠. 갈대아 우르, 우상 동네 아닙니까? 우상 충만한 그 도시에 있으면 망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갈대아 우르는 망했고 거기서 빠져나온 아브라함을 하나님이 축복하셔서 그 아브라함을 통해서 나중에는 다 살리는 축복된 증거의 응답을 주셨습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여러분 때문에 지금 여러분의 가정과 가문이 어떤 영적인 배경 가운데 있든지 상관없어요. 결국은 약속 붙잡고 계속 기도가 진행되는 가운데 있으면 여러분 때문에 여러분의 가정과 가문, 자녀, 후손들 다 살게 됩니다. 믿습니까? 그래서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이 말씀이 여러분 가정에 성취되는 그런 응답을 주실 것입니다. 이번 한 해도 우리를 승리 가운데 인도하신 주님께 정말 감사드리고 끝까지 영적 싸움을 싸움으로 가정과 가문 살리는 영적인 제사장으로서, 복의 근원으로서 승리하는 축복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난주에 우리가 마태복음 5장 3절에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의 그들이 것임이요’ 이 말씀을 가지고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사실 마태복음 3장에 보면 세례 요한이 등장하죠. 세례 요한은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난 자입니다. 그런데 이 세례 요한이 광야길을 걸어가면서 처음으로 천국에 대한 선포를 하게 됩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선포를 하게 되죠. 물론 그 당시 유대인들의 생각 속에, 사상 속에 메시아 왕국이 임할 것이라는 메시아사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천국에 대해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처음으로 선포한 것이 신약 성경에 와서는 세례 요한이죠. 그러고 나서 세례 요한이 예수님에게 세례를 주게 되고 세례를 받은 예수님의 머리 위에 성령이 임하게 되는 사건이 마태복음 3장에 나오고 마태복음 4장에 넘어가면 예수님께서 성령에 이끌린바 되어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 마귀의 시험을 말씀으로 물리치게 되죠. 이 말씀은 무슨 말이냐? 결국은 사단의 역사가 꺾이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도래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겁니다. 그래서 결국 예수님께서도 성경에 마태복음 4장 11절에 보면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바로 사단이 꺾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했다는, 흑암의 권세, 악한 사단의 권세가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말씀하면서 마태복음 4장 마지막 부분에 보면 예수님께서도 이제 전도하러 현장에 나가서 하신 말씀이 뭐냐 하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하고 선포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5장에 지난주에, 오늘도 본 마태복음 5장에 보면 결국은 천국백성된 자들이 이 땅에서 삶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천국백성으로서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 여기에 대한 부분을 말씀하고 있죠. 그게 마태복음 5장에, 6장에, 7장에서 산상보훈을 통해서, 특히 팔복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다시 말하면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의 방법과 다른 삶이 있다는 것, 다른 비밀이 있다는 거예요. 사실 여러분 이미 말씀을 들었지만 마태복음 5장, 6장, 7장 산상보훈을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데 그 당시 유대인의 생각, 사고를 완전히 뒤바꿔놓는 생각, 뒤바꿔놓는 말씀들이에요. 무슨 말입니까?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왔던 방법과 다른 비밀이 있는데 그 비밀을 알게 될 때 모든 현장을 변화시키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 천국의 축복을 누리게 되는 그 축복을 누리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그런 부분들 가운데 지난주에는 참된, 복된 빈곤이 있는데 그게 바로 심령이 빈곤한 것이다 이야기했어요. 복된 빈곤이 있는데 심령이 빈곤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심령이 빈곤한 가운데 살면서도 빈곤한 줄 모르고 실아가고 있고요 그런 가운데 우리에게 정말 참된 복된 빈곤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다른 것이 아니라 심령이 빈곤한 것이라 말씀했습니다. 이 말은 무슨 말입니까? 자신의 힘으로는 생명 얻을 수 있는 힘이 절대로 결핍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만이 내게 도움을 주고 하나님만이 내게 힘을 준다는 사실을 아는 심령, 그리고 정말로 내가 그분께만, 하나님께만 온전한 능력을 얻을 수 있단는 것을 아는 심령, 그게 바로 심령이 가난한 자라 말씀하시면서 이런 자에게 하나님 나라의 축복, 바로 천국의 축복을 누리게 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이후의 삶도 한 순간 한 순간, 한 걸음 한 걸음,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절대로 살아갈 수 없는 존재가 바로 저와 여러분의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 통해서 구원을 받았고 구원받은 이후에도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삶의 존재가 바로 우리의 삶의 존재예요. 이 말은 우리가 그냥 ‘그러니까 겸손하게 살자’ 그 말이 아닙니다. 정말로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고서는 절대 살 수 없는, 절대 빈곤 상태에 빠져 있는 것이 바로 우리인데 그게 바로 심령이 가난한 자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여러분 팔복에 대해서 말씀을 보면 창세기 3장, 또 그 창세기 3장의 문제를 해결한 그리스도, 그 비밀을 알면 알수록 팔복이 제대로 깨달아지고 제대로 이해가 되게 되어 있어요. 많은 경우 이 부분을 제대로 이해를 못해서 윤리적으로 설명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천국백성으로서 윤리적인 삶이 어떤 것인가?’ 그렇게 설명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전에 진짜 창세기 3장의 문제가 이 땅의 문제인 것을 알고 그 문제를 해결한 그리스도의 비밀을 알면 알수록 여덟 가지 복이 무엇을 말씀하는가 정확하게 알게 되어 있고 이해되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지난주에는 심령이 가난한 자, 진짜 복된 빈곤은 심령이 가난한 것이 복된 빈곤이라 말씀을 받았고요 오늘은 세 가지를 가지고 말씀드리겠습니다.
4절, 5절, 6절에 나와 있는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이 사람들이 복이 있다, 그래서 ‘복 있는 사람은’ 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을 나누면서 귀중한 제목을 붙잡기를 원합니다.
1. 애통한 자 - Those who Mourn
먼저 첫 번째입니다. 애통하는 자가 복 있다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애통하는 자는 우리가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는 말과 통하는 말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애통하는 자라는 말은 절대적인 슬픔을 가지고 있는 자를 말합니다. 절대 슬픔을 가지고 있는 자. 특별히 우리나라 사람들을 보면 정이 있는 민족인 것 같습니다. 많은 아주머니들도 드라마 보면서도 눈물 흘리고 은혜 받고 합니다. 연말이나 추석에도 방송이 되던데 어려운 가정들 후원해 주십사하고 방송 내 보내면 전화 한 통화 들면 자동적으로 천원이 기부되는. ARS 입니까?
이번 추석 때도 어떤 한 어려운 가정이 소개되는데 거기에 순식간에 백만 원, 천만 원씩 나오더라고요. 이것이 사람들 마음에 근본적으로 슬픔에 대한 정을 갖고 있다는 말이지요. 저도 그런 게 아주 강한 것 같습니다. 라디오 틀어놓고 좋은 훌륭한 것들이 소개되어지면 저도 모르게 마음속에서 울컥한 것이 튀어 나옵니다. 이성적인 것보다 감정적인 것이 강한 것이 한국 백성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들 하게 됩니다마는 여기에서 말하는 “애통한다”는 말은 그런 슬픔이 아닙니다. 성경의 예를 들면 창세기37장에 보면 요셉의 형제들이 요셉을 노예상인들에게 팔아버리고 아버지인 야곱에게 와서는 거짓말을 합니다. 요셉의 겉옷에 모든 짐승의 피를 묻혀 야곱에게 갖다 주면서 당신의 아들 요셉이 짐승에게 찢겨서 죽었다는 보고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야곱이 그 요셉의 핏덩이 묻은 옷을 끌어안고 심히 애통했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애통은 그 애통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일반적인 슬픔이 아니라 정말로 절대적인 애통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칫 속을 수 있는 것이 육신적으로 문제없으면 문제없는 줄 알고 웃으면서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실은 차라리 질병가운데 고난 받는 것이 더 나을 수가 있고, 차라리 아주 못나고 연약한 것이 더 나을 수가 있고, 때로는 우리도 감당치 못하는 영적인 문제 가운데 그 문제 해결하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그 부분들이 더 나을 수 있습니다. 왜냐? 그것 통해서 복음, 그리스도를 알고, 그것 통해서 참된 하나님의 구원의 비밀을 알아갈 수 있기 때문에 문제 있는 것이 더 나을 수가 있다 라는 사실입니다. 누가복음 16장에 보면 “부자와 거지 나사로” 의 비유 이야기가 나옵니다. 부자는 날마다 육신적으로 흥청망청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지옥에 갔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애통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진짜 애통함이 있는데 그 애통함을 모르는 사람이 부자였습니다. 바리새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이 나름대로 규모와 나름대로의 삶을 가지고 철저하게 살았습니다마는 자기들이 잘 사는 것으로 만족했지 진짜 바리새인들 중심에는 애통함이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나중에 그 후대에 가서 2차 대전에 유대인들이 육백만 명이 넘게 전 세계로 흩어져서 유리방황하는 민족이 되었고, 독일의 히틀러에 의해 독가스 실에 들어가서 육백만 명 이상이 숨진 사실을 역사를 통해 보게 됩니다.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자기 자신들은 잘 살았지만 진짜 애통해야 할 부분에 애통함을 몰랐기 때문에 후대에 가서는 그런 엄청난 비극들이 일어났던 사실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먼저 애통하는 마음들이 있어야 합니다. 세상을 보면 볼수록, 현장을 보면 볼수록 정말 복음 모르는 현장을 보면 볼수록, 우리 마음에 애통함이 일어나야 합니다. 영적인 문제 가운데 어찌할 바를 모르고 부모님들이 갖고 있는 영적문제를 자녀들이 고스란히 물려받아 거기에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면서 진짜 무엇 때문에 이런 문제들이 왔는가? 이 부분들을 놓고 애통하는 마음들이 있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정신적인 문제로, 우환, 질고로 열심히 노력해서 돈 벌어 놓았는데 어느 날 다 날아가 버리고, 이런 실패의 역사들을 보면서 우리의 마음속에 진짜 일어나야 할 부분들이 하나님 떠남과 죄와 사탄의 역사가 어떤 것인가를 알고 거기에 대한 애통하는 마음이 있지 않으면 참된 응답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전도하러 돌아다니기 이전에 가장 필요한 것이 현장을 바라보면서 애통하는 마음들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자녀들의 현장을 한번 보십시오. 지금 여지없이 무너지고 있는 자녀들의 현장들. 교회의 현장을 보십시오. 세상이 교회를 향해 이제는 막 함부로 말하고 있습니다. 반석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라 하나님께서 교회에 대한 축복을 허락하셨는데 교회가 전혀 세상을 향해 힘이 없습니다. 지난 금요전도학교 때 말씀 드렸습니다마는 한국의 장로교단만 해도 250여 교단이 넘습니다. 수많은 신앙의 고백들이 흘러져 내려왔고, 수많은 교회들, 교단들이 생겨졌지만 지금 세상 앞에 전혀 힘이 없는 교회들로, 세상 사람들이 마음껏 교회를 욕하고 있어요. 거기에 전혀 대꾸하지도 못할 정도로 그렇게 힘이 없는 그리고 교회 안에 일어나고 있는 자유주의 운동에, 다원론 등. 영적인 힘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 교회 현장입니다. 이런 현장을 바라보면서 애통하는 마음이 없다면 하나님의 축복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특별히 하나님은 능력 있고, 실력 있고, 수준 있는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세계 최고가는 갑부라 할지라도 오늘 저녁에라도 당장 불러 가시면 가야 되는 것이 생명입니다.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누구를 찾느냐? 진짜 이 땅과 현장과 가정과 자녀와 후대들을 바라보면서 애통하는 자를 찾으신다는 사실입니다.
모세 보십시오. 가만히 있으면 육신적으로는 성공하겠지요. 성공할 수밖에 없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그 자리를 포기했습니다. 진짜 애통해야 될 부분들이 무엇인지 알았기 때문입니다. 출32장에 보면 모세가 시내 산에 하나님의 언약궤를 받으러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시내산 밑에서는 아론을 중심으로 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론에게 원망하면서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어내라고 합니다. 모세는 산에서 내려오는 것이 늦어지고 그러니까 밑에 있는 아론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구했습니다. 그러니까 아론이 여자들과 네 자녀들에게 있는 금귀고리들을 다 가지고 나오라고 해서 그것으로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너희를 인도할 신이다고 하면서 여호와의 절일이라는 이름까지 붙였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모세에게 내 백성들이 목이 뻣뻣하여 타락했다. 내가 내 백성들을 완전히 멸하겠다고 하니까. 모세가 중보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죽일 것 같으면 애굽에 있을 때 죽이지 왜 불러내셔서 그러면 적들이 바라보면서 저들이 섬기는 신 하나님은 저들을 죽이기 위해서 광야로 인도해 낸 신이 아니냐고 할 것 아니냐며 중보기도를 합니다. 그러면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은 약속의 하나님 이신 것을 이야기 하면서 분명히 하나님은 우리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을 살리게 하겠다고 하셨는데 그러면 이 말씀이 없어지는 것 아닙니까. 그러자 하나님이 모세의 요구 앞에 그 진노 내리시는 것을 거두었다 했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시내 산에서 두 돌판을 가지고 내려오면서 밑에 들려오는 소리가 보니까 완전히 우상 앞에 춤추고 노래하는 소리가 들려지거든요. 그 현장을 보자마자 화가 나서 두 돌판을 던져버렸습니다. 그러면서 진노했는데, 그 다음에 마지막 32장 32절에 보면 모세가 중요한 기도를 합니다.
자기백성들의 죄를 위해서 기도하는데 내 이름을 하나님의 기록한 책에서 지워버릴지라도 내 백성들을 구원해 주옵소서.
이것이 무엇입니까? 자기 백성들의 죄를 끌어안고 애통하는 마음이 있었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 이름을 하나님의 생명록에서 지워버린다 할지라도 내 백성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애통하는 마음을 가진 모세를 하나님이 쓰실 수밖에 없었지요.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의 모든 것들을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그리스도를 만나고 보니까, 그리스도로 복음을 누리다 보니까 자기 안에 진짜 복음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대한 애통함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가진 이것들이 복음전하는 일에 방해가 된다면 내가 모든 것을 버리겠다는 그 중심에는 진짜 복음의 비밀을 알고 나니까 복음을 가지지 않는 현장을 바라보면서 거기에 대한 애통함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고전9:16절 바울의 고백을 보면 이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도리어 내게 화가 있으리로다. 했습니다. 분명히 그리스도! 복음을 전하면 살 것인데 이 복음을 전하지 않고 입을 다물고 있다면 화가 임할 것이 아닌가? 얼마만큼 하나님의 애통하는 마음, 복음을 향한 마음들이 그 중심에 있었던 것인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마태복음 9장에 보면 백성들의 삶속에 들어오셔서 현장을 보시면서 목자 없는 양같이 유리하는 현장을 보시면서 민망히 여기셨다 했습니다. 하나님의 복이 임하는 길이 있습니다. 진짜 여러분의 마음 중심에 현장을 바라보면서, 특별히 하나님 떠난 세상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마음인 애통하는 마음들이 있느냐? 하나님이 그때부터 참된 축복의 문들을 열어 가십니다. 여기에 대한 애통함이 있다면 그런 자를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게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전도하러 돌아다니지 않아도 여러분의 중심에 여기에 대한 애통함이 있다면 그런 자를 하나님이 축복하시게 되어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복음을 깨닫고, 그리스도 비밀, 십자가의 능력을 알면 알수록 현장을 보면 안타깝잖아요. 가족이라 할지라도 완전한 복음을 가지고 가족을 보니까 가족이라 할지라도 관심이 딴 데 있는 것, 이질감이 생기는 부분들 있잖아요. 어떤 분은 남편이 너무 잘해 주는데도 복음알고 누리다보니까 그 잘해주는 남편이 너무 불쌍하고 안타까워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남편을 위해 기도하는 분을 보았습니다. 또 어떤 분은 자기에게 잊을 수 없는 상처를 준 사람인데 그것 때문에 복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들으면서 자꾸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닫고 그리스도의 능력을 체험하다 보니까 하나님이 나를 너무나 사랑하시는구나 하는 것을 깨닫고 고백한 내용이 나에게 상처 준 그 사람이. 너무 그의 영혼이 불쌍하고 안타깝게 보인다고 고백했습니다. 정말 우리가 복음을 알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을 알고 누리면 누릴수록 현장 보면 복음만 받으면 살 것인데 여기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잖아요. 그러한 자를 하나님이 쓰신다는 것입니다.
죄송합니다. 저희 집 이야기를 해서 죄송합니다. 사실 목사가정도 많은 문제들이 있습니다. 그런 것을 아시고 위로 받으시면 됩니다. 우리 자녀들이 방황할 때가 있었습니다. 말도 안 듣고 그래서 학교에 저도 불려갔는데 사실 창피해서 고개를 못 들겠더라구요. 가니까 아들놈은 교무실에서 꿇어앉아서 반성문 쓰고 있고. 고개를 못 들겠더라구요. 화가 나다가도 그런 과정 속에서 한번은 우리 아들이 자는 모습을 봤는데 하나님이 은혜 주신 것이지요. 영적인 힘이 없어서 자기 자신을 다스릴 수 없어 방황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 보여지면서 오히려 자녀를 위해서 기도가 나왔습니다. 이때부터 자녀를 보는 눈이 달라졌습니다. 자신도 자기 환경들을 이기지 못해 방황하는 자녀를 복음을 가지고 보니까 어떻게 자녀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힘을 회복하도록 도울 것인가에 대한 기도가 나왔습니다. 죄송합니다. 팔불출이 되어도 좋습니다만 제가 자녀들 때문에 고민되어서 밤잠을 못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신경을 쓰는 부분을 보면서 저와 한 이불을 덮고 자는 사람이 저한테 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나는 자녀 문제 가지고 기도가 전혀 안됩니다. 자녀들을 위해 기도를 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당신의 모습을 보면서 기도가 되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급하고 답답했으면 자녀들을 통해서 무너지는 청소년 현장을 보도록 하시겠는가. 이 사건을 통해서 남편이 지금 무너지고 있는 청소년 현장을 보는 하나님의 한을 가슴에 담게 해달라고 기도가 되어집니다." 저는 이것을 듣고 메시지로 받았습니다. 놓치고 있었던 것들을 깨달았습니다. 현장가운데 자녀들이 무너지는데 거기에 대한 안타까움이 없는데 무슨 복을 받겠습니까.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무엇 하기 이전에 정말 하나님의 한을 가지고 현장과 세상을 보는 눈들이 열려지는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온유한 자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단순히 유순하고 따뜻한 성격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부분 온유하다고 하면 유순하고 따뜻한 사람, 말씀도 없이 조용한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목소리 큰 사람들은 보통 집안의 내력입니다. 또 성격도 외향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어디든지 끼어들고 나타냅니다. 반면에 내성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나서기를 싫어하고 조용한 사람이 있습니다. 성격 차이일 뿐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온유함은 자신의 무지함과 연약함과 궁핍함을 아는 겸손함을 가진 자입니다. 바로 자기 자신을 제대로 알고 자기 자신을 다스릴 줄 아는 자가 온유한 자입니다. 그런데 이 땅에 어느 누구도 자기 자신을 절제하고 다스릴 수 있는 자는 없습니다. 그것은 인간 밖의 일입니다. 분명히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문제가 오면 자기 자신을 다스릴 수 없는 것이 인간입니다. 원래 인간은 하나님의 뜻을 행할 때 행복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자유함이 있고, 하나님을 의지할 때 참된 축복을 누리게 되어있습니다. 인간 스스로는 자신을 다스리는 힘이 없습니다. 분명히 한계가 오게 됩니다. 자신을 다스릴 수 있는 비밀은 하나님의 다스림 속에 있을 때 가능해집니다. 내 자신을 다스릴 줄 알아야 세상을 다스릴 수 있고, 다른 사람을 다스릴 수 있습니다. 이 말이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는 말입니다. 대부분 자기 자신을 스스로 다스리려고 몸부림 치고 자신을 억누르는데 그것이 종교입니다. 10년 20년 30년 누르고 누르다가 어느 날 터지게 되면 다 날아가게 됩니다. 그 동안 마음도 상하고, 상처 받고, 영도 돌아버리게 됩니다. 이것이 종교생활의 결과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다스릴 수가 없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물고기는 물속에, 나무는 땅에 뿌리를 내리고, 새는 공중에 살아야 하는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 안에 있어야 우리 자신을 알게 되어있고 다스릴 수 있게 됩니다. 우리 자신을 다스리는 비밀이 있어야 다른 사람을 다스릴 수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 자신을 다스릴 수 있는 비밀들이 어디에서 나옵니까? 온유함의 원어를 보면 주인의 손에 잘 길들여진 말이라고 설명합니다. 하나님의 손에, 하나님의 말씀에 잘 길들여진 자를 보고 온유한 자라고 합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우리의 삶이 잘 움직여지는 자를 일컬어서 온유한 자라고 이야기 합니다. 우리가 정말 영적인 비밀, 그리스도의 비밀, 현장을 알면 알수록 순간순간 ‘하나님의 비밀을 몰라서 되겠느냐, 하나님의 말씀에 인도받지 못하면 못 살겠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실제로 육신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영적으로 하나님의 다스림 속에 있지 않기 때문에 자신도 망하게 되고, 시대도 나라도 어렵게 하는 것을 역사를 통해 볼 수 있습니다. 나폴레옹, 칭기즈 칸, 알렉산더를 보면 육신적으로는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지만 영적으로는 약했습니다. 자신들이 세상을 정복했다고 할지라도 결국 자신도 무너지고 세상도 더 어려움을 가져다준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말씀으로 길들여지지 않은 결과입니다. 북한도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3대 세습으로 육신적 힘 가지고 밀어붙였지만 결국 망하는 길인 것입니다. 육신적인 힘이 전부가 아닙니다. 순간순간 주의 말씀에 길들여지고 인도받아야 합니다. 그것이 안 되면 결국은 힘 있는 만큼 무너진다는 사실입니다. 청소년 렘넌트들 보세요. 요즘 신체가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잘 먹어서 그런지 음식이 그래서 그런지 몸집이 급격하게 커지고 있습니다. 제 아들도 언제 클까 싶었는데 이제는 저보다 더 큽니다. 그런데 청소년들 보면 마음, 영적으로는 완전히 약해져 있습니다. 잘못 가르친 것이 아니라 힘이 없으니까 문제 당하면 여지없이 무너지고 청소년 자살들이 일어납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영적으로 강해야 합니다. 영적으로 강할 수 있는 비밀은 얼마만큼 하나님의 말씀에 길들여져 있는가 입니다. 계시록 3:17을 보면 예수님께서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해서 하신 말씀이 나옵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못하는도다.” 너희가 육신적으로는 모든 것을 가진 강한 자인데 영적으로는 완전히 거지임을 지적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정말로 필요한 것이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간순간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인도받으며 주님의 역사를 따라가는 것이 온유한 자이며 강한 자입니다. 그리고 이 온유함의 비밀을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보고도 함부로 말하지 않습니다. 함부로 이렇다 저렇다 정죄해 버리지 않고 이 온유함의 비밀을 가진 진짜 강한 자는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지 않고 정죄하지 않고 또 자기 자신을 보고도 “난 할 수 없다, 내가 죽을 사람이다” 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왜냐? 순간순간 하나님 말씀의 인도 받는 일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에, 그 영적인 힘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런 비밀들을 누릴 수 있는 겁니다. 여러분 특별히 “나는 뭐든지 하는 것마다 안 된다” 는 분이 계십니까? 하나님은 여러분을 정말 사랑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길들여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 온유한 자로서 참된 축복, 땅을 기업으로 받는 축복을 받으시기 원하십니다.
온유한 자로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자신이 정복당해지고 또 다른 사람들을 정복하고 살리는 귀한 축복의 역사를 누리며 땅을 기업으로 받는 그 축복을 누리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마지막 세 번째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입니다.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들어온 지 130년 정도 됩니다. 1885년에 언더우드 선교사에 의해서 복음이 증거되어지고 약 130년 정도가 되어 가는데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학교나 병원, 고아원, 양로원 같은 사회사업에 많은 투자를 했습니다. 그래서 사실 기독교 대학교, 사회 운동도 교회 중심으로 많은 것이 일어났습니다. 참 잘한 일입니다. 대구에도 큰 대학들, 계명대학교나 대구대학교가 전부 다 기독교 재단으로 시작했고 동산병원의 병원 사업도 기독병원으로 시작 하였습니다. 참 잘한 일들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를 놓친 것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 영적인 비밀들. 왜 개인과 가정, 세상이 점점 발달함에도 불구하고 무너지고 있는가? 하는 이 비밀을 놓쳐 버렸어요. 이것이 모든 것의 실패 이유인데 이것을 놓쳐 버렸다는 사실. 정말 의에 주리고 목말라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놓쳐 버렸다는 겁니다. 교회가 많은 일을 하지만 이 비밀을 놓쳐 버렸다는 거예요.
바리새인들을 보세요. 그들이 얼마만큼 구제하고 봉사했는지 아시잖아요. 그들은 구제하고 봉사하는 것을 심지어 길거리에 서서 기도하면서 구제하고 봉사하는 것을 자랑했어요. 그런데 그 바리새인들이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사실은 예수님이 왜 필요한지를 몰랐어요. 의에 주리고 목말라야 될 이유를 몰랐던 겁니다. 그러니까 구원 받지 못한 민족이 되고, 구원 받지 못한 바리새인들이 되었어요.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사람들을 보니까 이상한 사람들이 따라 다닙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이상한 사람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또 수많은 병자들이나 귀신들린 자들이 나아서 예수님을 따라 다니는데 정말 영적으로 갈급한 자들이 따라 다닌 사실을 못 봤어요. 사실 바리새인들은 헛배가 부른 것이죠. 진짜 의에 주리고 목마름을 몰랐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구제하고 봉사해도 망할 수밖에 없었어요.
여러분 우리에게 있어 정말 눈이 열려야 될 부분이 있다면 다른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로마에 속국 되었잖아요. 영적으로 완전히 망했습니다. 또 후대들도 완전히 망할 역사입니다. 가정이 무너지고 후대가 무너지고 자녀들이 무너지는 그런 역사 속에 있는데도
그 사실을 몰랐어요. 왜냐? 의에 주리고 목마름의 비밀을 몰랐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이야기 합니다. 교회는 좋은 것을 하니까 교회에 보내야 된다. 그래서 교회에 가서 좋은 것을 배워 오라고 자기들은 교회에 안 나오지만 교회에 보내는 부모들이 있어요. 그 부모들은 의에 주리고 목마르다는 이 비밀을 모르는 겁니다. 그런데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의에 주리고 목마름이 있어야 된다는 사실입니다. 차라리 여러분의 집에 정신병자가 있다고 할지라도 또 여러분에게 해결 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 할지라도 오히려 그것 때문에 복음을 알고 그것 때문에 그리스도를 알고 그것 때문에 의에 주리고 목마름을 가질 수 있다면 그게 더 좋은 것입니다. 문제가 없는 것보다도. 그것 때문에 의에 주리고 목마름이 있다면.
1부 예배 때는 제가 설명을 한참 하다 보니까 실수로 다른 사람(크로즈비)을 설명했어요. ‘앤 설리번’이라는 사람을 아시죠. ‘헬렌 켈러’를 키운 인물입니다. 이 사람이 사실은 보호소에 있으면서 자기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알콜 중독자였어요. 그러니까 아버지로 말미암아 엄청난 상처를 가지고 있었어요. 보호소에 있는데 자기 동생도 보호소에 와 있다가 자기보다 먼저 죽게 됩니다. 그러니까 앤 설리번이 완전히 미치게 됩니다. 그리고 눈 까지도 멀어져 버렸어요. 실명하게 됩니다. 완전히 괴성을 지르고 해서 사람들이 도저히 회복 불가능하다고 판단해서 지하 독방에 쳐 넣어 버렸어요. 그런데 그 앤 설리번을 치료한 사람이 있어요. 노간 호사인 ‘라노’ 라는 여자인데 앤 설리번에게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치유를 합니다. 자살까지 시도했던 앤 설리번이 진짜 정신병에서 살아났어요. 완전히 치유 받았어요. 그 은혜를 아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신문에 시각, 청각, 말을 하지 못하는 삼중 불구자를 돌볼 사람을 구한다는 광고를 보게 됩니다. 이 앤 설리번에 내가 받은 사랑을 이 사람에게 전하겠습니다하고 나선 겁니다. 그래서 만난 사람이 헬렌 켈러입니다. 미국의 작가 겸 교육자로서 20세기 미국에 영향을 끼친 100명 중에 한 사람입니다. 사실, 헬렌 켈러도 생후 19개월 만에 수막염을 앓아서 시각, 청각을 잃어버리고 말도 못하게 되었어요. 장애인으로 20세에 하버드 대학에 들어가고 앤 설리번과 48년을 같이 있으면서 중요한 작품을 만들어 냈는데 그 앤 설리번이 헬렌 켈러를 돌보면서 ‘물’이라는 한 단어를 깨닫게 하기 위해 7년이 넘게 걸렸다고 합니다. 감각 밖에 없으니까 만져봄으로서 사물을 이해할 수 있게 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같으면 포기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끝까지 헬렌 켈러를 도왔어요. 왜냐? 자기가 영적인 문제 가운데 빠진 그 갈급함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끝까지 헬렌 켈러를 도왔는데 그 사람이 나중에 위대한 작가로서 20세기에 미국에 뉴욕타임지에 영향을 끼친 100인 중에 한 사람에 들 정도로 훌륭한 인물을 만들어 냈다는 사실입니다. 1부 예배 때는 한참 입에 침을 튀기면서 이야기를 했는데 크로즈비 이야기를 했어요. 크로스비가 아니고 헬렌 켈러였습니다. 앤 설리번이 자기에게 있는 영적인 갈급함, 그 부분을 알았기에 자기가 치유 받은 사실에 대한 체험이 있기 때문에 헬렌 켈러를 훌륭한 사람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정말 그렇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러 막 돌아다니기 전에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면 영적인 갈급함 의에 주리고 목마름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기도하세요. 딴 기도보다도 하나님 내게는 정말 딴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의에 주리고 목마름이 내게 필요합니다. 일평생 동안 나는 하나님의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되기를 기도합니다. 이 기도하면서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그런 자를 쓰십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르다고 했는데 이 ‘의’가 무엇을 말합니까? 이 땅에는 의가 없어요. 이 땅에 존재하는 것에는 그 어떤 것도 의가 없습니다. 오직 이 땅에 유일한 의는 예수그리스도 밖에 없어요. 창세기 3장에 하나님 떠남과 죄와 사탄의 문제를 해결하신 그리스도. 왕으로 사탄의 머리를 깨뜨리셨고 죄로 말미암아 재앙가운데 빠져 있는 우리들을 제사장으로서 모든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의롭다고 선언하시고 선지자로서 하나님 만나는 길을 여신 그리스도. 그 분만이 우리의 ‘의’가 되십니다. 여기에 대한 갈급함이 있다면, 그 사람이 성공하게 되어 있어요. 그런 사람에게 어떤 축복을 주시느냐? 배부름의 축복을 주시게 되어 있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마태복음5장 6절) 했어요. 배부름의 풍요한 축복을 주시게 되어 있어요.
여러분, 정말 현장을 한번 보세요. 지금 세계가 어렵습니다. 이 땅이, 이 민족이 어렵습니다. 이 현장을 보면서 왜 그런 어려움이 일어나는가? 영적인 갈급함 속에서 사람들이 이리저리 허덕이잖아요. 최고의 지성인이라고 하는 대학생들과 대학문화 속에는 전부 술판입니다. 지금 사회적으로 주폭(술 취해 휘두르는 폭력) 문제를 다루면서 대학 안에도 술에 대해 금지하자고 하니까 대학생들이 반대를 합니다. 왜 대학 안에 자율권까지 빼앗느냐! 하며 반대를 하고 나왔습니다. 실제로 대학 안에 신입생 환영회나 MT를 한번 보세요. 전부 술판입니다. 술 먹여서 죽이는 사람이 있고 술 먹어서 죽는 사람도 있습니다. 서울 대학교에서는 술 먹고 못에 빠져 죽은 사건도 있었습니다. 이게 무엇을 말합니까? 영적으로 갈급하니까. 최고의 지식인이지만 영적으로 갈급하니까 분별이 안 되는 것입니다. 오늘 주보 안에 보면 엘리트들의 고독함에 대해 설명해 놓았어요. 홍콩배우 장국영의 자살사건, 노무현 대통령의 유서나, 헤밍웨이에 대한 일들을 이야기 하며 이런 엘리트 일수록 영적인 갈급함 속에 빠져 있습니다. 전문인들, 의사들은 의사 나름대로, 법관은 법관 나름대로,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일수록 말 안하고 있어서 그렇지 전부 영적인 갈급함 속에 살아갑니다. 그러니까 폭음하고 사람이 없는 곳에서 이상한 행동들을 합니다. 나름대로 지명도가 있으니까 드러내 놓고 하지는 못하고 영적인 갈급함 속에 들어가고 있는 사실입니다. 바로 의에 주리고 목마름의 비밀들을 알지 못해서 영적인 갈급함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그렇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영적인 축복의 비밀들을 누리게 되면 우리의 삶의 현장까지도 풍성한 하나님의 축복된 증거가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것에 갈급해 하지 마시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예레미야 33장 3절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말씀했어요. 영적인 축복의 비밀을 받게 될 때 그 다음에 4절부터 9절까지를 보면 네 성읍을 고쳐 치유하겠고 포로에서 돌아오게 하겠고 모든 것들을 치유할 것을 말씀했어요. 다시 말해, 영적으로 부유한 자가 되면 육신의 삶의 현장까지도 부유해지는 축복을 누리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영적인 눈을 뜨기를 바랍니다. 정말 우리의 생명을 불러 가시는 이는 주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정말 우리의 가정과 가문을 놓고서 우리의 현장을 놓고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원하시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영적인 눈을 뜨길 원하십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름의 현장, 그 현장을 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 현장 보는 눈이 열려지는 그 순간부터 하나님이 우리에게 참된 축복의 역사를 시작하시게 되어 있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지금 전부 세상이 사탄의 전략 가운데 무너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만이 살아남을 수가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 종일토록 여러분이 예배드리는 가운데서 참된 복음의 비밀들을 누리시고 영적인 축복을 갈망하고 영적인 축복에 주리고 목마른 자 되기를 바랍니다. 이번 한 주간에 여러분 심령에 은혜를 갈망하고 그리스도의 능력만 갈망하는 한 주간이 되어짐으로 여러분의 걸음이 참된 응답으로 시작되는 축복의 승리의 걸음들이 되어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천국백성으로서 이 땅에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며 살아가야 될 비밀들을 알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특별히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 정말 애통하는 자로서 현장을 볼 것을 보는 눈을 열어 주옵시고 온유한 자로서 우리 자신들이 참 말씀에 길들여진 자되어 영적인 힘을 가지고 나를 정복하고 세상을 정복하는 자들 되게 하시며 또 무엇보다도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되어서 진짜 하나님의 의를 이 땅에 심어 나가는, 이루어 나가는 전도자의 생애가 될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특히 이번 한 주간에 우리의 모든 삶 속에서 그리스도의 능력만 갈망하는 또 정말 하나님의 은혜만을 갈망하는 한 주간 될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옵소서. 살아계신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2012년 10월 7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복 있는 사람은
(마5:1-6)
서론: 여러분의 가정과 가문이 어떤 영적 배경 가운데 있든지 아브라함처럼 가정과 가문을 다 살리는 응답을 주실 것입니다. 가정과 가문을 살리는 영적인 제사장으로 영적 싸움에 승리하십시오.
마태복음 5~7장은 천국백성 된 자들이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3장 문제와 그 문제를 해결한 그리스도 비밀을 알수록 팔복이 이해되어집니다.
1. 애통하는 자(4절)
(1) 절대적인 슬픔을 가지고 있는 자라는 의미입니다(창37:34에 나오는 슬픔).
(2) 진짜 애통을 알 수 있기에 문제 있는 것이 오히려 좋습니다.
(3) 우리는 먼저 애통해야 합니다.
1) 현장을 보고 애통한 자가 복을 받음(영적 힘 잃어버리고 조롱 받는 교회)
2) 하나님은 실력자를 찾는 것이 아니라 애통한 자를 찾고 계심(모세 출32:32. 바울 고전9:16)
2. 온유한 자
(1) 자신의 무지함과 연약함과 궁핍을 아는 겸손함을 가진 자를 의미합니다
1) 단순히 성품이 순하고 따뜻한 것을 말하는 게 아님
2) 자신을 제대로 알고 자신을 다스릴 줄 아는 자임
① 그러나 자신을 다스리는 일은 인간 밖의 일임
② 하나님 안에 있을 때만 자신을 알고 다스릴 수 있음
(2)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 자신을 길들이면 됩니다(자신을 잘 다스릴 수 있는 비밀).
1) 온유함의 원어: 주인의 손에 잘 길들여진 말
2) 하나님의 말씀에 인도받을 때 하나님의 손에 나 자신이 길들여짐
3. 의에 주리고 목 마른 자
(1) 기독교가 한국에 들어와서 잘한 부분들이 많지만 영적 문제가 무엇인지 놓쳤습니다.
(2) 6절은 영적으로 심각하게 갈급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1) '의'는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음
2) 하나님은 우리가 의에 주리고 목마른 현장을 보기를 원하심
결론: 사탄에 의해서 세상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예배 속에서 참된 복음의 비밀 누리고, 영적인 축복에 주리고 목마른 자 되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 그리스도의 능력만 갈망하며 한 주간 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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