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2012-10-21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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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21일 주일 2부 예배 노동휘 목사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Lord, if it's you
저물매 제자들이 바다에 내려가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는데 이미 어두웠고 예수는 아직 그들에게 오시지 아니하셨더니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더라 제자들이 노를 저어 십여 리쯤 가다가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심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이르시되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신대 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배는 곧 그들이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요6:16~21(John6:16~21)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주와 함께 길 가는 것, 즐거운 일 아닌가. 정말 우리에게 즐거운 일이고, 감사의 일이고 행복한 일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 인사합시다. 행복하십시오! 성령충만하십시오! 정말 행복한 하루 되시고 또 성령 충만한 하루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오늘 본문을 가지고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이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세상에 있어서 가장 안 되는 것, 또 성도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 그게 무엇이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고 성도에게는 그리스도로 답이 나는 것입니다. 이게 안 되기 때문에 불신자에게는 문제가 오는 것이고 성도에게는 갈등과 어려움이 계속되는 것이죠. 신앙생활이 되어지면 되어질수록 그리스도가 행복이고 그리스도로 답이 나고 그리스도가 모든 문제의 해결이구나하는 사실에 확신이 들어와야 하는 것입니다. 연세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또 경험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걱정이 많아지기도 합니다만 복음 안에 있으면,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참된 행복이 오고 그 속에 하나님에 대한 확신으로 더 넘쳐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처음 하는 일, 또 서투를 때에는 몸에 힘이 들어갑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할 때는 힘이 들어가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하나님의 계획 때문에 내 계획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능력 때문에 내 동기 내려놓고, 내 수준 내려놓고 모든 것 맡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가 아빠의 목을 타고, 목마를 태운다고 그러죠. 아빠가 아이의 목마를 태울 때가 있습니다. 어릴 때는 그것을 재미있게 즐기죠. 그런데 조금씩 철이 들어가면서 무거워지기도 하지만 아이가 자기 스스로 균형을 잡으려 하고 방향을 잡으려 할 때, 그 때 위험해 지는 것입니다. 그렇죠. 넘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애가 자기가 균형 잡으려 하고 방향 잡으려 하고 그러면 안 되는 것입니다. 아빠에게 모든 걸 맡겨야 합니다. 그리고 그냥 그 위에서 즐겨야 하는 것이죠. 그래야 아빠가 그 아이를 받쳐 줄 수 있고 움직일 수 있는 것입니다.
모든 운동이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수영을 해도 몸에 힘을 빼야 한다고 해요. 바다에 나가면 더더욱 그렇다고 합니다. 파도에 몸을 맡기고, 물에 몸을 맡기고 힘을 빼지 않으면 물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죠. 골프도 그렇다고 해요. 골프도 고수가 될수록 몸에 힘을 빼고 공을 친다고 그래요. 저는 이해가 안 되요. 어떻게 물에 들어가서 힘이 안 들어가는지. 그리고 그 긴 막대를 들고 어떻게 힘 빼고 때릴 수가 있는지. 저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고수들은 다 그렇게 말씀하시더라구요. 모든 운동에 다, 고수들은, “몸에 힘을 빼야 된다. 힘 빼십시오.”라고 말을 해요.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신앙의 경험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내 계획 없어지고 내 동기 없어지고, 내 욕심 없어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강해지고 더 풍요로워지고 더 행복해지는 것이죠.
이스라엘이 광야길을 가는데 구름 따라 갔습니다. 하나님이 구름으로 인도했습니다. 말이 됩니까? 구름 따라 간다는 게? 낮이 되면 구름기둥으로 그들을 인도하셨습니다. 밤이 되면 불기둥으로 그들을 보호하셨습니다. 아침이 되면 만나로, 또 고기 없다 해서 메추라기로 그들을 먹이셨습니다. 말이 됩니까? 농사도 안 짓는데, 사냥도 안 하는데 어떻게 이게 계속될 수 있습니까? 제가 학교 다닐 때 어떤 교수님이 이런 질문을 하시더라구요. 교수님이 “내일 아침에 일어났을 때 네가 살아있을 확률이 높냐? 내가 살아 있을 확률이 높냐?” 이렇게 물으시더라구요. 경험을 이야기하시면서. 제가 하마터면 교수님이 살아 있을 확률이 높다고 말할 뻔했어요. 교수님이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하시다가, ‘내가 더 오래 살았기 때문에 내가 내일 살아 있을 확률이 더 높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하시는 것 같았어요. “아닙니다. 내가 젊기 때문에 내가 더 오래 삽니다,”라고 말씀 드렸는데, ‘우리 신앙생활은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 계획을 내려놓아도 되는구나. 내일 저 구름 기둥이 없더라도 하나님이 인도하실 것이고 저 불기둥이 없더라도 우리를 보호하실 것이구나.’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죠.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오늘 내가 돈이 없는데, 오늘 내가 꼭 필요한 뭔가가 있는데. 그것에 응답을 얻었어요. 그 응답을 받으면서 무얼 느낍니까? ‘돈, 그러면 망하는 것입니다. 권력, 이러면 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채우고 계시는구나. 하나님이 내 부족을 채우고 계시는구나.’ 그래서 말씀하시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마라. 그것은 이방인이 구하는 것이다.”
혹시 정글의 법칙 보셨습니까? 김병만이라는 사람이 나와서 정글에도 가고 사막에도 가서 살아남아요. 연예인들 같이 갔는데 딴 사람들은 서툰데 김병만 이 사람은 뭐든 못하는 게 없어요. 다 해요. 그런데 하룻밤은 자고 났더니만 전부 다 추워서 벌벌 떨었어요. 아침부터 어디에서 따뜻하게 잘까, 그걸 연구하더라고요. 그런데 정말 잘 하더라고요. 다음날 밤은 따뜻하게 자고. 또 하루종일 먹을 걸 찾아다니고. 하는 일이 그것밖에 없어요. 어디서 잘까, 무얼 먹을까, 그것만 계속하더라고요. 제가 그걸 보면서 ‘우리 문명인들은 다를까, 저 사람들이 저 정글에 사는 저것과 다를까?’라는 질문이 나오더라고요. 똑같아요. 뭐 더 맛있는 게 있을까, 두 시간 차타고 가서 맛있는 거 먹고 맛있다면서 이빨 쑤시고 오고. 그 비싼 걸 먹어도 저녁에 또 먹어야 되요. 그런데 그 비싼 거 먹으러 가더라고요. 그래도 조금 더 넓은 집에 살려고 하고 편안한 데 살려고 하고. 똑같더라고요. ‘이방인이 구하는 것이다.’ 너희는 먼저, 뭐라고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러면 이 모든 것 더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우리의 계획, 동기 내려놓고 하나님 바라보면 되는 것입니다. 오늘 풍랑을 만난 제자들이 있습니다. 이 본문을 통해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성도는 왜 문제를 당하는가?’에 대한 답을 같이 찾는 시간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1. 성도(제자)에게도 풍랑이 불어 닥치는가?
Do the Believers Also Face Violent Storms in Life?
첫 번째입니다. 성도들에게도, 제자들에게도 풍랑이 불어닥치는가? 불어닥쳤습니다. 오늘 이 제자들에게 풍랑이 불어닥쳤습니다. 그렇죠? 이 본문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켰어요, 예수님이. 예수님이 많은 무리를 모아 놓으시고 설교를 하셨습니다. 그 말씀에 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받고 몰려와서 은혜를 받았어요. 그런데 해가 지려고 합니다. 저녁을 먹어야 되죠. 어떡해야 됩니까? 예수님이 빌립에게 질문하십니다. “어떻게 이 많은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겠느냐?” 그 뒤에 뭐라고 그러시냐 하면 어떻게 친히 아시고 이 말씀을 하셨다고 되어 있어요. 빌립이 당황했겠죠, 황당했겠죠. “왜요? 내려 가서 먹을 것을 먹고 오라고 하십시오. 돈을 모으더라도 이백 데나리온이 모자라겠습니다.” 너무 돈이 많이 든다는 거죠. 계산기 두드려 보니까 돈으로 계산이 안 됩니다. 다 못합니다. “내려 가서 먹고 올라오든지 먹고 자든지, 가라고 하십시오. 왜 우리가 이 사람들 먹을 것을 생각해야 되고 걱정해야 됩니까?”라는 말이죠. 예수님이 그러고 계실 때 어린 아이 하나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져옵니다. 그것을 가지고 다 앉히시고 난 다음에 나누어 주시죠. 먹으라고. 그리고 “버리지 말고 남은 것을 모아라.” 열두 광주리가 남았어요. 굶을 줄 알았는데. 사실 이 당시 사람들은 도시락이 그렇게 있지 않습니다. 먹을 것이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 많은 사람들, 오천 명이라고 하죠. 오천 명이라는 숫자는 사실 남자의 숫자입니다. 아이들, 여자들, 노인들, 합치면 어마어마한 숫자죠. 다 먹었어요. 다 먹고 나니까 사람들이 배부르고 나니까 예수님에게 몰려왔어요. 그리고 그들이 정치행위를 하기 시작했어요. 왕을 삼자. 예수님을 우리의 왕으로 삼자. 우리의 왕이 되어 주십시오. 위험한 말이기도 하지요. 로마가 지금 지배하고 있는데 얼마나 위험한 말입니까? 이제 먹을 것 해결해 주시는 당신이 우리의 왕이다 합니다. 예수님이 그 말을 뒤로 하고, 그 인기를 뒤로하고 기도하러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가버나움으로 제자들을 보냈습니다. 가버나움이 예수님의 사역의 중심지였습니다. 그래서 먼저 제자들을 배를 태워 보내고 예수님은 기도하러 갔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배를 태워 보내는 그 시간에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갈릴리 바다인데 내해이지요. 육지 안에 있는 바다입니다. 호수인지 바다인지 모를 만큼 큰 내해입니다. 거기에 풍랑도 일고 그랬습니다. 내해이기 때문에 산으로 둘러싸여 컵처럼 오목하게 되어 있습니다. 내륙 중심에 있는데 바다수면보다 210미터 정도 낮은 곳에 있는 그래서 밤이 되면 기온이 떨어지고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서쪽에서 바람이 부는데 찬 공기가 산 아래를 타고 풍랑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들로 하여금 예상치 못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지요. 없는 일은 아니지만, 가끔씩은 있는 일이지만, 오늘 이 밤에 그들에게 풍랑이 칠 줄은 몰랐다는 것이지요. 역풍인 것입니다. 그들이 가려고 하던 가버나움과는 반대방향으로 바람이 불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서풍이 바로 반대 방향으로 불고 있었던 것입니다. 두 배의 힘이 들게 된 것입니다. 제자들에게 일어 닥친 풍랑, 이들에게 고난, 문제, 도전.. 예수님의 제자가 되면 문제가 없을 줄 알았는데, 고난이 없을 줄 알았는데, 갈등이 없을 줄 알았는데 예수님의 기적을 보고 바로 그 밤에 이들에게 닥친 것은 큰 풍랑이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 왜 성도에게 문제가 생기고, 아픔이 생기고 어려움이 생깁니까? 예수이름 가지고 사업시작하면 다 성공할 줄 알았는데 왜 문제 생깁니까? 우리에게 던져질 수 있는 질문인 것이지요. 예수님과 함께 있지 않은 것도 아닌데 풍랑이 닥쳤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불신자에게는, 세상에서는 그것이 재앙이고 완전히 죽음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 불신자 상태에 놓여져 있는 것이지요. 불신자 시간표 속에 빠져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성도에게는 계획이 있는 문제요 사건이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처음 만나는 날도 그랬습니다. 예수님이 오셨어요. 새벽이었던 것 같습니다. 베드로가 밤새도록 물고기를 잡고 그물의 찢어진 부분을 꿰매고 거기에 걸려있는 여러 가지 쓰레기들을, 해물들을 건져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잠깐 뭍에서 떼어라 하십니다. 그리고 설교를 하셨습니다. 말씀을 주셨습니다. 베드로에게 말씀 하셨지요.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던져라 합니다. 베드로는 바다의 전문가입니다. 어느 때에 어느 장소에 그물을 던져야 할지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사람이었습니다. 전업한 사람이 아닙니다. 농사짓다가 전업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말씀을 주시고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져라 했습니다. 내가 밤새도록 헛수고 했지만 말씀에 의지해서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순종해서 그물을 내렸습니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고기가 잡혔습니다. 만선의 기쁨! 그 전날 밤은 무능한 어부였어요.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한 어부였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물을 던졌는데 그는 만선의 기쁨을 얻었습니다. 그물 한번 던졌는데 더 이상 물고기를 실을 수 없을 만큼 많이 잡히는 기쁨을 베드로는 누렸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그 물고기를 제쳐놓고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나를 떠나소서.” 무엇을 발견한 것입니까? 배에 가득 담긴 물고기를 발견한 것이 아니라 이분이 하나님이시구나! 이 분이 우리에게 보내주신 그리스도시구나 하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이지요. 물고기 한 마리 못 잡은 무능한 어부였던 그날 밤. 그리고 그날 새벽. 그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귀중한 축복을 누렸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이 본문이 있기 전 요한복음 앞에 나오는 포도주 사건, 오병이어의 사건, 38년 된 병자를 일으킨 모든 사건들이 문제를 주시고 난 이후에 그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만나고 그 예수님이 누군가라는 사실이 발견되어지는 축복된 사건이 일어나는 그 순간이 되어졌다는 것입니다. 이 제자들에게 풍랑이 왜 일어났습니까? 실수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죄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이었고, 예수님을 만나게 하고자 하시는 치밀한 계획 속에 일어난 것입니다. 조금 전에 말씀 드렸던 베드로가 예수님을 처음 만나는 그 사건이 있던 날 밤에 하나님은 베드로의 그물에 물고기 한 마리 걸리지 않도록 하나님이 작업하셨습니다. 물고기가 실수로 그물에 들어오려고 하면 하나님이 야 가지마라 거기 가면 안 된다고 하나님이 하셨지요. 어떻게 자연 법칙에 의해서 물고기가 한 마리도 잡히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잡히지 않도록 하셨어요. 왜 그렇습니까? 무능한 어부로 만들어서 그날 아침에 하나님을 만나도록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메시야를 만나게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성도에게 무능함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병이, 실패가 찾아올 수 있습니다. 큰 풍랑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갈려고 하는 그 길에 역풍이 밀려올 수 있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강하다고 생각하는 그 착각들을 내리 부셔버리는 그런 사건들이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습니다. 나는 건강해! 나는 강해! 나는 능력자야! 그 생각을 산산이 무너뜨리는 사건들이 우리에게 일어난다는 것이지요. 예수님을 만나도록 하는 사건, 예수님을 경험하도록 하는 사건, 단순히 내가 내 통장에 넣어둔 몇 백 만원, 몇 천 만원, 몇 억에 거기에 만족하며 그 통장 들여다보고 희열을 느끼도록 만든 인생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들이 우리에게 일어나야 되는 것입니다.
정글의 법칙이라는 프로그램 속에 나오는 그 김병만씨는 너무너무 잘하는 사람이었어요. 어떤 장소에 던져놔도, 사막한가운데 던져놔도, 정글 한가운데에 던져놔도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 그런데 그 사람은 할 수 있는 것이 뭐지요? 집을 짓는 것, 먹을 것 찾는 것, 안전하게 사는 것, 그래서 하루를 더 살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 배부를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그 일을 하고 있었어요. 대단한 사람인데, 대단한 능력자인데 결국 그 사람이 하는 것은 먹는 것 찾고, 안 춥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인생이 그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세기 1장에 아담과 하와를 만드실 때에 그것 하라고 만드신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예수님이 베드로를 찾아 오셨어요. 베드로의 배에 한가득 물고기를 담아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포도주가 떨어진 그 잔치 집에 포도주를 가득 채워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38년 된 병자에게 그 냄새나는 그 현장에 치유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이 무엇을 기도하고, 무엇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은혜로 우리에게 주신 것들을 알게 하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성령을 주시는데 그 은혜로 주신 것들, 사람이 먹고 살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안 춥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신 그 창조의 계획,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그 구원의 계획이 무엇인지 발견하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적을 주시는 이유이고 계획이다는 것입니다.
오늘 제자들에게 풍랑이 일어났습니다. 죄를 지은 것도, 잘못한 것도 아닌데 풍랑이 일어났습니다. 이 풍랑은 제자기 때문에, 성도이기 때문에 당하는 풍랑인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가면서 역풍을 만났겠지만, 이 제자들의 배는 제자기 때문에, 성도이기 때문에 당하는 역풍이라는 것입니다. 그 속에서 하나님을 경험하도록,,, 마가복음 2:17절에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가 없고 병든 자에게 쓸데 있는데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고 죄인을 부르러 온 것이라. 그런데 바리새인들, 서기관들, 똑똑한 사람들은 자기들이 죄인인줄, 병자인 줄 몰랐어요. 예수님이 오셔서 하는 그 치유의 행위를 몰랐습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던지시는 그 구원의 메시지를 알아듣지 못했어요. 나는 의인인데, 나는 완전한 사람인데, 나는 능력자인데, 나는 모든 율법을 다 행했는데....저 로마를 정복할 능력자가 필요하지 우리에게는 예수가 필요치 않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그렇지요. 그리스도를 못 만나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그렇습니다. 그리스도로 답이 나지 않는 것이지요. 뭔가 모르게 계속 배고프고, 갈급하고, 목마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가져도 가져도 채워지지 않는 목마름, 먹어도 먹어도 배부르지 않는 그 배고픔에 굶주리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야 채워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만나야 채워지는데 채워지지 않는 것이지요.
진짜 하나님을 경험하면 경험할수록 부드러워 집니다. 진짜 무술하는 사람들은 부드럽게 합니다. 택견을 보셨습니까? 저게 무술인가 싶으시지요? 태권도는 어릴 때부터 익숙해져 있고 군대를 가도 태권도를 배웁니다. 얍 얍 찌르기, 발차기 뭐 이런 것을 합니다. 각이 나와야 하잖아요. 그런데 택견이라는 무술은 춤을 추는 듯 흔들흔들하면서 무술을 합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까 태권도든, 택견이든, 합기도든 모든 무술의 고수들은 부드러움을 지향합니다. 정말 강한 것은 부드러움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성도가 뭔가 강한 것 같은 데 부러질 것 같아요. 확신이 없어서 고함을 지르고 있는데, 확신이 없어서 막 애타해요. 정말 강한 것은 힘을 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것을 주장하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잡는 것입니다. 싸움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지난주 기도수첩을 보니까 기도는 나의 계획을 하나님께 알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향하신 계획을 찾는 것이 기도라고 합니다. 기도합시다. 내 계획, 내 동기, 내 욕심 이루려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합시다. 하나님이 나를 향하신 그 계획을 찾으면 되니까요. 예레미야33장에는 말하고 있습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어라. 예레미야가 할 일이 많아요. 기울어져 가는 이스라엘에 친 바벨론자라는 그런 누명을 쓰고 그가 감옥에 갇혀 있어요. 억울하기도 하지요. 그런데 그는 정치적으로, 국가적으로 할 일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어라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하십니다. 그렇지요.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우리에게 새로운 계획이 보이고, 새로운 능력이 보이고, 새 힘이 나오는 것입니다. 성도에게 풍랑이 불어 닥칩니까? 네 불어 닥쳐야 됩니다. 불어 닥치게 되어있습니다.
2. 이전에 역사하신 하나님을 확인하라.(믿음의 확인)
Look Back to God of the Past who was at Work.
두 번째입니다. 그러면 이제 이전에 역사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확인하는 것이 남아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4:22~33절까지 같은 본문이 나옵니다. 조금 더 자세하게 나옵니다. 마14:25절입니다.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새벽 3~6시 사이에 예수님이 그들에게 오신 것이지요. 배가 한 대 남아 있었는데 배를 타지 않고 걸어오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계획이 있는 것입니다. 그 밤에 그들에게 풍랑이 밀어닥쳤고, 예수님이 걸어가셨습니다. 26절에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시는 것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며 소리를 지르거니와 했습니다. 제자들에게 두려움이 밀어닥치기 시작했어요. 예수님이 그 풍랑 속으로 걸어오고 계시고, 그 풍랑 속에 계시는데 제자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해야 될 일들은 두렵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문제 뒤에 있는 알 수 없는 뭔가가 우리를 두렵게 만드는 ..우리가 두려워질 때, 우울해질 때,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심리적으로 어려워질 때 우리는 더 힘들어지고 우리를 내리누르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도에게 그 풍랑 속에 계신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십니다. 안심하라는 것입니다.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염려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 풍랑 속에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 풍랑을 타고 예수님이 오시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그 말을 듣고 질문합니다.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다 두려워하고 무서워하고 있는데, 역시 베드로입니다. 주여 라는 말은 그냥 부르는 말입니다. 당신이 만일 주님이시거든...그 말은 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바로 그 당신이라면, 38년 된 그 더럽고 냄새나는 그 환자를 일으키신 바로 당신이시라면,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신 그 분 바로 당신이시라면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우리가 외쳐야 될 말입니다. 문제를 향해서 던져야 될 말인 것입니다.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이스라엘을 인도하신 그 하나님이시라면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이 맞으시다면, 시간이 지나가고 나면 보여요. 하나님이 그때 인도하셨구나! 하나님이 나를 보호하셨구나! 하나님이 그때 나에게 응답하셨구나! 어리석지만 성도는 발견하게 됩니다. 아 하나님이 하셨구나! 그 하나님이시라면 ...뭐지요? 우리는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역사하셨던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항상 그랬지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이스라엘은 위기 때마다 하나님은 그것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언약의 하나님이심을..나는 이스라엘을 그 종 되었던 땅, 애굽에서 이끌어낸 여호와다...그것을 항상 확인 시켜 주었어요.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그 분이 우리 앞에 닥치고 있는 역풍 속에 계시는 것입니다. 그 풍랑 속에 계시는 것입니다. 내게 닥치고 있는 병마 속에 예수님은 계시고, 어려움 속에 계시고, 사건 속에, 갈등과 어려움 속에 그 예수님이, 그 주님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38년 된 병자를 고치신 그 주님이 이 병마 속에 계시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신 그 주님이 우리의 회사 속에 계시다는 것이지요. 내 인생의 문제 속에 그 예수님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것을 확인하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합니다. 물위로 오라 하소서. 최초의 물위를 걷는 사람이 됩니다. 그 이후에도, 이전에도 아무도 그런 사람이 없었어요. 물을 가르는 이는 있어도. 물위를 걷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홍해사건은 물을 갈랐지요. 나로 물위로 오라 하소서. 새로운 기적이 우리 앞에 열려질 것입니다. 바로 그 주님을 확인하는 그 순간, 그 능력의 하나님을 확인하는 그 순간, 그 병마와 그 문제와 그 사건과 우리 집에, 가문에 밀어닥치는 그 사건과 문제 속에 주님이 계신다는 사실이 발견되어지는 그 순간 새로운 기적이 시작되어지는 것이지요. 나로 걷게 하소서. 나로 오라 하소서. 예수님이 오라 하십니다.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우리 사업에, 내 일에, 내 환경에 새로운 일들이 시작될 수 있는 기적의 역사가 시작되어지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이 일을 베푸실 것입니다. 100배의 축복을 받지 않으면, 샘의 근원을 발견하지 않으면 이 시대를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이삭에게 100배의 축복과 샘의 근원을 발견하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영악한 야곱에게 하나님은 그가 얼룩진 것을 선택하면 얼룩진 것을 축복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천하 만민이 너 때문에 복을 받을 것이다, 너는 복이다, 큰 민족의 아비가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큰 복 받기 위해 산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열심히 달렸던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완벽한 계획 속에 어느 날 부름 받은 사람입니다. 바울의 인생의 목표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다메섹 도상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영원부터 영원까지 있는 하나님의 계획 속에 부름 받게 된 것입니다. 공무원은 대통령의 일을 위해서, 회사직원은 사장의 계획과 목표를 위해 부름 받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부름 받은 자들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를 위해서 부름 받은 자들이 아니라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도록 부름 받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언약을 확인하라는 것입니다. 물 위를 걸어야 되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풍랑 속으로 부르신 것입니다. 풍랑을 그들에게 주시고 풍랑 속으로 오신 것입니다. 계획 속에 없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셋팅 된 시나리오 속에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3. 계속 언약을 확인하라.(예수님께 시선 고정)
Continue to Confirm the Covenant - Focus on Jesus Alone.
세 번째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계속 언약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시선을 고정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물 위를 걸어가는데 갑자기 급하게 치는 파도를 보면서 겁이 나서 물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을 지켜보던 제자들에게 그 일은 우스웠을 것입니다. 갑자기 예수님께 고함을 치면서 물 위를 걷는 것을 봤는데 갑자기 빠지니까 얼마나 우스웠을까요. 하지만 그 뒤에 제자들은 물 위를 걸었던 베드로를 봤을 것입니다. 예수님께 시선을 고정해야 합니다. 가다가 빠질 수 있고, 불신앙 할 수 있고, 염려할 수 있지만 예수님께 시선을 고정하는 것입니다. 언약을 붙잡는 것입니다. 우리는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물 위, 풍랑 위라는 사실을 부정할 필요 없습니다. 괜찮다고 강한 척하는데 괜찮은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 풍랑 위를 예수님께서 함께하고 계시고 메시지를 주고 계시고 부르시고 계심을 붙잡는 것입니다. 말씀을 잡을 때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예수님께 우리의 시선을 고정해야 합니다. 말씀에 의지하고 말씀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를 사로잡게 되고,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사로잡게 되어져있는 것입니다.
말씀 맺겠습니다. 신앙생활 처음 시작하면 그 때는 뜨거운데 갈수록 냉랭해집니다. 신앙생활은 하면 할수록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문제를 경험하면 할수록 예수 그리스도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 속에 찾아오시는 예수님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계획과 동기와 욕심을 내려놓고 힘을 빼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내 계획을 알리는 것이 아닙니다. 내 목표를 확고히 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내 목표와 동기를 내려놓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계획을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크고 기이한 것들을 보는 것이 기도입니다. 말을 많이 할 필요도, 내 생각을 강화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 축복이 오늘 예배 속에서, 말씀 속에서, 오후동안도 계속 기도하다가 이 축복을 누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응답있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를 부르셔서 하나님의 축복 속에 세우시고 풍랑, 어려움, ,병마가 찾아오지만 그 속에 계신 예수님을 보게 하시고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하게 하옵소서. 오늘 하루 예배, 기도, 찬양하다가 하나님을 경험하는 축복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12년 10월 21일 주일 2부 예배 노동휘 목사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요6:16-21)
서론: 세상에 있어서 가장 안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고, 성도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문제는 그리스도로 답이 나는 것입니다. 이게 안 되기 때문에 불신자에게는 문제가 오고 성도에게는 갈등과 어려움이 계속됩니다. 신앙생활이 될수록 그리스도가 행복이고 답이며 모든 문제의 해결이구나 하는 사실에 확신이 들어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내 계획, 동기 내려놓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것입니다.
본문을 통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성도는 왜 문제를 당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으려 합니다.
1. 성도(제자)에게도 풍랑이 불어닥치는가?
(1) 예수님과 함께 있고 예수님의 기적을 체험하였는데도 풍랑이 불어닥쳤습니다.
1) 갈릴리 바다 위의 제자들에게 풍랑이 불어닥침
2) 베드로가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함
(2) 하나님의 계획 - 문제 속에서 하나님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의 계획이 무엇인지 발견하도록 하는 것
(3) 기도할 때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하게 됩니다.
2. 이전에 역사하신 하나님을 확인하라(믿음 확인).
(1) 풍랑을 타고 예수님이 오시기 때문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2) 성경 속의 예수님을 내 인생 문제 속에서 확인해야 합니다.
(3) 베드로가 물 위로 걷는 새로운 기적을 위해 예수님께서는 풍랑 속으로 걸어오셨습니다.
3. 언약을 계속 확인하라 - 예수님께 시선 고정
(1) 풍랑 속에서도 예수님께 시선을 고정하십시오.
(2) 말씀에 의지하고 말씀 속으로 들어가면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가 우리를 사로잡게 됩니다.
결론: 신앙생활은 하면 할수록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문제를 경험할수록 문제 속에 찾아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경험하게 됩니다. 내 목표와 동기를 내려놓고 문제 속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Lord, if it's you
저물매 제자들이 바다에 내려가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는데 이미 어두웠고 예수는 아직 그들에게 오시지 아니하셨더니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더라 제자들이 노를 저어 십여 리쯤 가다가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심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이르시되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신대 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배는 곧 그들이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요6:16~21(John6:16~21)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주와 함께 길 가는 것, 즐거운 일 아닌가. 정말 우리에게 즐거운 일이고, 감사의 일이고 행복한 일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 인사합시다. 행복하십시오! 성령충만하십시오! 정말 행복한 하루 되시고 또 성령 충만한 하루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오늘 본문을 가지고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이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세상에 있어서 가장 안 되는 것, 또 성도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 그게 무엇이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고 성도에게는 그리스도로 답이 나는 것입니다. 이게 안 되기 때문에 불신자에게는 문제가 오는 것이고 성도에게는 갈등과 어려움이 계속되는 것이죠. 신앙생활이 되어지면 되어질수록 그리스도가 행복이고 그리스도로 답이 나고 그리스도가 모든 문제의 해결이구나하는 사실에 확신이 들어와야 하는 것입니다. 연세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또 경험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걱정이 많아지기도 합니다만 복음 안에 있으면,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참된 행복이 오고 그 속에 하나님에 대한 확신으로 더 넘쳐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처음 하는 일, 또 서투를 때에는 몸에 힘이 들어갑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할 때는 힘이 들어가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하나님의 계획 때문에 내 계획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능력 때문에 내 동기 내려놓고, 내 수준 내려놓고 모든 것 맡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가 아빠의 목을 타고, 목마를 태운다고 그러죠. 아빠가 아이의 목마를 태울 때가 있습니다. 어릴 때는 그것을 재미있게 즐기죠. 그런데 조금씩 철이 들어가면서 무거워지기도 하지만 아이가 자기 스스로 균형을 잡으려 하고 방향을 잡으려 할 때, 그 때 위험해 지는 것입니다. 그렇죠. 넘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애가 자기가 균형 잡으려 하고 방향 잡으려 하고 그러면 안 되는 것입니다. 아빠에게 모든 걸 맡겨야 합니다. 그리고 그냥 그 위에서 즐겨야 하는 것이죠. 그래야 아빠가 그 아이를 받쳐 줄 수 있고 움직일 수 있는 것입니다.
모든 운동이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수영을 해도 몸에 힘을 빼야 한다고 해요. 바다에 나가면 더더욱 그렇다고 합니다. 파도에 몸을 맡기고, 물에 몸을 맡기고 힘을 빼지 않으면 물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죠. 골프도 그렇다고 해요. 골프도 고수가 될수록 몸에 힘을 빼고 공을 친다고 그래요. 저는 이해가 안 되요. 어떻게 물에 들어가서 힘이 안 들어가는지. 그리고 그 긴 막대를 들고 어떻게 힘 빼고 때릴 수가 있는지. 저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고수들은 다 그렇게 말씀하시더라구요. 모든 운동에 다, 고수들은, “몸에 힘을 빼야 된다. 힘 빼십시오.”라고 말을 해요.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신앙의 경험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내 계획 없어지고 내 동기 없어지고, 내 욕심 없어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강해지고 더 풍요로워지고 더 행복해지는 것이죠.
이스라엘이 광야길을 가는데 구름 따라 갔습니다. 하나님이 구름으로 인도했습니다. 말이 됩니까? 구름 따라 간다는 게? 낮이 되면 구름기둥으로 그들을 인도하셨습니다. 밤이 되면 불기둥으로 그들을 보호하셨습니다. 아침이 되면 만나로, 또 고기 없다 해서 메추라기로 그들을 먹이셨습니다. 말이 됩니까? 농사도 안 짓는데, 사냥도 안 하는데 어떻게 이게 계속될 수 있습니까? 제가 학교 다닐 때 어떤 교수님이 이런 질문을 하시더라구요. 교수님이 “내일 아침에 일어났을 때 네가 살아있을 확률이 높냐? 내가 살아 있을 확률이 높냐?” 이렇게 물으시더라구요. 경험을 이야기하시면서. 제가 하마터면 교수님이 살아 있을 확률이 높다고 말할 뻔했어요. 교수님이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하시다가, ‘내가 더 오래 살았기 때문에 내가 내일 살아 있을 확률이 더 높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하시는 것 같았어요. “아닙니다. 내가 젊기 때문에 내가 더 오래 삽니다,”라고 말씀 드렸는데, ‘우리 신앙생활은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 계획을 내려놓아도 되는구나. 내일 저 구름 기둥이 없더라도 하나님이 인도하실 것이고 저 불기둥이 없더라도 우리를 보호하실 것이구나.’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죠.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오늘 내가 돈이 없는데, 오늘 내가 꼭 필요한 뭔가가 있는데. 그것에 응답을 얻었어요. 그 응답을 받으면서 무얼 느낍니까? ‘돈, 그러면 망하는 것입니다. 권력, 이러면 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채우고 계시는구나. 하나님이 내 부족을 채우고 계시는구나.’ 그래서 말씀하시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마라. 그것은 이방인이 구하는 것이다.”
혹시 정글의 법칙 보셨습니까? 김병만이라는 사람이 나와서 정글에도 가고 사막에도 가서 살아남아요. 연예인들 같이 갔는데 딴 사람들은 서툰데 김병만 이 사람은 뭐든 못하는 게 없어요. 다 해요. 그런데 하룻밤은 자고 났더니만 전부 다 추워서 벌벌 떨었어요. 아침부터 어디에서 따뜻하게 잘까, 그걸 연구하더라고요. 그런데 정말 잘 하더라고요. 다음날 밤은 따뜻하게 자고. 또 하루종일 먹을 걸 찾아다니고. 하는 일이 그것밖에 없어요. 어디서 잘까, 무얼 먹을까, 그것만 계속하더라고요. 제가 그걸 보면서 ‘우리 문명인들은 다를까, 저 사람들이 저 정글에 사는 저것과 다를까?’라는 질문이 나오더라고요. 똑같아요. 뭐 더 맛있는 게 있을까, 두 시간 차타고 가서 맛있는 거 먹고 맛있다면서 이빨 쑤시고 오고. 그 비싼 걸 먹어도 저녁에 또 먹어야 되요. 그런데 그 비싼 거 먹으러 가더라고요. 그래도 조금 더 넓은 집에 살려고 하고 편안한 데 살려고 하고. 똑같더라고요. ‘이방인이 구하는 것이다.’ 너희는 먼저, 뭐라고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러면 이 모든 것 더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우리의 계획, 동기 내려놓고 하나님 바라보면 되는 것입니다. 오늘 풍랑을 만난 제자들이 있습니다. 이 본문을 통해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성도는 왜 문제를 당하는가?’에 대한 답을 같이 찾는 시간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1. 성도(제자)에게도 풍랑이 불어 닥치는가?
Do the Believers Also Face Violent Storms in Life?
첫 번째입니다. 성도들에게도, 제자들에게도 풍랑이 불어닥치는가? 불어닥쳤습니다. 오늘 이 제자들에게 풍랑이 불어닥쳤습니다. 그렇죠? 이 본문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켰어요, 예수님이. 예수님이 많은 무리를 모아 놓으시고 설교를 하셨습니다. 그 말씀에 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받고 몰려와서 은혜를 받았어요. 그런데 해가 지려고 합니다. 저녁을 먹어야 되죠. 어떡해야 됩니까? 예수님이 빌립에게 질문하십니다. “어떻게 이 많은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겠느냐?” 그 뒤에 뭐라고 그러시냐 하면 어떻게 친히 아시고 이 말씀을 하셨다고 되어 있어요. 빌립이 당황했겠죠, 황당했겠죠. “왜요? 내려 가서 먹을 것을 먹고 오라고 하십시오. 돈을 모으더라도 이백 데나리온이 모자라겠습니다.” 너무 돈이 많이 든다는 거죠. 계산기 두드려 보니까 돈으로 계산이 안 됩니다. 다 못합니다. “내려 가서 먹고 올라오든지 먹고 자든지, 가라고 하십시오. 왜 우리가 이 사람들 먹을 것을 생각해야 되고 걱정해야 됩니까?”라는 말이죠. 예수님이 그러고 계실 때 어린 아이 하나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져옵니다. 그것을 가지고 다 앉히시고 난 다음에 나누어 주시죠. 먹으라고. 그리고 “버리지 말고 남은 것을 모아라.” 열두 광주리가 남았어요. 굶을 줄 알았는데. 사실 이 당시 사람들은 도시락이 그렇게 있지 않습니다. 먹을 것이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 많은 사람들, 오천 명이라고 하죠. 오천 명이라는 숫자는 사실 남자의 숫자입니다. 아이들, 여자들, 노인들, 합치면 어마어마한 숫자죠. 다 먹었어요. 다 먹고 나니까 사람들이 배부르고 나니까 예수님에게 몰려왔어요. 그리고 그들이 정치행위를 하기 시작했어요. 왕을 삼자. 예수님을 우리의 왕으로 삼자. 우리의 왕이 되어 주십시오. 위험한 말이기도 하지요. 로마가 지금 지배하고 있는데 얼마나 위험한 말입니까? 이제 먹을 것 해결해 주시는 당신이 우리의 왕이다 합니다. 예수님이 그 말을 뒤로 하고, 그 인기를 뒤로하고 기도하러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가버나움으로 제자들을 보냈습니다. 가버나움이 예수님의 사역의 중심지였습니다. 그래서 먼저 제자들을 배를 태워 보내고 예수님은 기도하러 갔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배를 태워 보내는 그 시간에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갈릴리 바다인데 내해이지요. 육지 안에 있는 바다입니다. 호수인지 바다인지 모를 만큼 큰 내해입니다. 거기에 풍랑도 일고 그랬습니다. 내해이기 때문에 산으로 둘러싸여 컵처럼 오목하게 되어 있습니다. 내륙 중심에 있는데 바다수면보다 210미터 정도 낮은 곳에 있는 그래서 밤이 되면 기온이 떨어지고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서쪽에서 바람이 부는데 찬 공기가 산 아래를 타고 풍랑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들로 하여금 예상치 못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지요. 없는 일은 아니지만, 가끔씩은 있는 일이지만, 오늘 이 밤에 그들에게 풍랑이 칠 줄은 몰랐다는 것이지요. 역풍인 것입니다. 그들이 가려고 하던 가버나움과는 반대방향으로 바람이 불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서풍이 바로 반대 방향으로 불고 있었던 것입니다. 두 배의 힘이 들게 된 것입니다. 제자들에게 일어 닥친 풍랑, 이들에게 고난, 문제, 도전.. 예수님의 제자가 되면 문제가 없을 줄 알았는데, 고난이 없을 줄 알았는데, 갈등이 없을 줄 알았는데 예수님의 기적을 보고 바로 그 밤에 이들에게 닥친 것은 큰 풍랑이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 왜 성도에게 문제가 생기고, 아픔이 생기고 어려움이 생깁니까? 예수이름 가지고 사업시작하면 다 성공할 줄 알았는데 왜 문제 생깁니까? 우리에게 던져질 수 있는 질문인 것이지요. 예수님과 함께 있지 않은 것도 아닌데 풍랑이 닥쳤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불신자에게는, 세상에서는 그것이 재앙이고 완전히 죽음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 불신자 상태에 놓여져 있는 것이지요. 불신자 시간표 속에 빠져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성도에게는 계획이 있는 문제요 사건이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처음 만나는 날도 그랬습니다. 예수님이 오셨어요. 새벽이었던 것 같습니다. 베드로가 밤새도록 물고기를 잡고 그물의 찢어진 부분을 꿰매고 거기에 걸려있는 여러 가지 쓰레기들을, 해물들을 건져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잠깐 뭍에서 떼어라 하십니다. 그리고 설교를 하셨습니다. 말씀을 주셨습니다. 베드로에게 말씀 하셨지요.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던져라 합니다. 베드로는 바다의 전문가입니다. 어느 때에 어느 장소에 그물을 던져야 할지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사람이었습니다. 전업한 사람이 아닙니다. 농사짓다가 전업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말씀을 주시고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져라 했습니다. 내가 밤새도록 헛수고 했지만 말씀에 의지해서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순종해서 그물을 내렸습니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고기가 잡혔습니다. 만선의 기쁨! 그 전날 밤은 무능한 어부였어요.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한 어부였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물을 던졌는데 그는 만선의 기쁨을 얻었습니다. 그물 한번 던졌는데 더 이상 물고기를 실을 수 없을 만큼 많이 잡히는 기쁨을 베드로는 누렸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그 물고기를 제쳐놓고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나를 떠나소서.” 무엇을 발견한 것입니까? 배에 가득 담긴 물고기를 발견한 것이 아니라 이분이 하나님이시구나! 이 분이 우리에게 보내주신 그리스도시구나 하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이지요. 물고기 한 마리 못 잡은 무능한 어부였던 그날 밤. 그리고 그날 새벽. 그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귀중한 축복을 누렸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이 본문이 있기 전 요한복음 앞에 나오는 포도주 사건, 오병이어의 사건, 38년 된 병자를 일으킨 모든 사건들이 문제를 주시고 난 이후에 그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만나고 그 예수님이 누군가라는 사실이 발견되어지는 축복된 사건이 일어나는 그 순간이 되어졌다는 것입니다. 이 제자들에게 풍랑이 왜 일어났습니까? 실수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죄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이었고, 예수님을 만나게 하고자 하시는 치밀한 계획 속에 일어난 것입니다. 조금 전에 말씀 드렸던 베드로가 예수님을 처음 만나는 그 사건이 있던 날 밤에 하나님은 베드로의 그물에 물고기 한 마리 걸리지 않도록 하나님이 작업하셨습니다. 물고기가 실수로 그물에 들어오려고 하면 하나님이 야 가지마라 거기 가면 안 된다고 하나님이 하셨지요. 어떻게 자연 법칙에 의해서 물고기가 한 마리도 잡히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잡히지 않도록 하셨어요. 왜 그렇습니까? 무능한 어부로 만들어서 그날 아침에 하나님을 만나도록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메시야를 만나게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성도에게 무능함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병이, 실패가 찾아올 수 있습니다. 큰 풍랑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갈려고 하는 그 길에 역풍이 밀려올 수 있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강하다고 생각하는 그 착각들을 내리 부셔버리는 그런 사건들이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습니다. 나는 건강해! 나는 강해! 나는 능력자야! 그 생각을 산산이 무너뜨리는 사건들이 우리에게 일어난다는 것이지요. 예수님을 만나도록 하는 사건, 예수님을 경험하도록 하는 사건, 단순히 내가 내 통장에 넣어둔 몇 백 만원, 몇 천 만원, 몇 억에 거기에 만족하며 그 통장 들여다보고 희열을 느끼도록 만든 인생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들이 우리에게 일어나야 되는 것입니다.
정글의 법칙이라는 프로그램 속에 나오는 그 김병만씨는 너무너무 잘하는 사람이었어요. 어떤 장소에 던져놔도, 사막한가운데 던져놔도, 정글 한가운데에 던져놔도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 그런데 그 사람은 할 수 있는 것이 뭐지요? 집을 짓는 것, 먹을 것 찾는 것, 안전하게 사는 것, 그래서 하루를 더 살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 배부를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그 일을 하고 있었어요. 대단한 사람인데, 대단한 능력자인데 결국 그 사람이 하는 것은 먹는 것 찾고, 안 춥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인생이 그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세기 1장에 아담과 하와를 만드실 때에 그것 하라고 만드신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예수님이 베드로를 찾아 오셨어요. 베드로의 배에 한가득 물고기를 담아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포도주가 떨어진 그 잔치 집에 포도주를 가득 채워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38년 된 병자에게 그 냄새나는 그 현장에 치유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이 무엇을 기도하고, 무엇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은혜로 우리에게 주신 것들을 알게 하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성령을 주시는데 그 은혜로 주신 것들, 사람이 먹고 살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안 춥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신 그 창조의 계획,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그 구원의 계획이 무엇인지 발견하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적을 주시는 이유이고 계획이다는 것입니다.
오늘 제자들에게 풍랑이 일어났습니다. 죄를 지은 것도, 잘못한 것도 아닌데 풍랑이 일어났습니다. 이 풍랑은 제자기 때문에, 성도이기 때문에 당하는 풍랑인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가면서 역풍을 만났겠지만, 이 제자들의 배는 제자기 때문에, 성도이기 때문에 당하는 역풍이라는 것입니다. 그 속에서 하나님을 경험하도록,,, 마가복음 2:17절에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가 없고 병든 자에게 쓸데 있는데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고 죄인을 부르러 온 것이라. 그런데 바리새인들, 서기관들, 똑똑한 사람들은 자기들이 죄인인줄, 병자인 줄 몰랐어요. 예수님이 오셔서 하는 그 치유의 행위를 몰랐습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던지시는 그 구원의 메시지를 알아듣지 못했어요. 나는 의인인데, 나는 완전한 사람인데, 나는 능력자인데, 나는 모든 율법을 다 행했는데....저 로마를 정복할 능력자가 필요하지 우리에게는 예수가 필요치 않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그렇지요. 그리스도를 못 만나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그렇습니다. 그리스도로 답이 나지 않는 것이지요. 뭔가 모르게 계속 배고프고, 갈급하고, 목마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가져도 가져도 채워지지 않는 목마름, 먹어도 먹어도 배부르지 않는 그 배고픔에 굶주리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야 채워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만나야 채워지는데 채워지지 않는 것이지요.
진짜 하나님을 경험하면 경험할수록 부드러워 집니다. 진짜 무술하는 사람들은 부드럽게 합니다. 택견을 보셨습니까? 저게 무술인가 싶으시지요? 태권도는 어릴 때부터 익숙해져 있고 군대를 가도 태권도를 배웁니다. 얍 얍 찌르기, 발차기 뭐 이런 것을 합니다. 각이 나와야 하잖아요. 그런데 택견이라는 무술은 춤을 추는 듯 흔들흔들하면서 무술을 합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까 태권도든, 택견이든, 합기도든 모든 무술의 고수들은 부드러움을 지향합니다. 정말 강한 것은 부드러움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성도가 뭔가 강한 것 같은 데 부러질 것 같아요. 확신이 없어서 고함을 지르고 있는데, 확신이 없어서 막 애타해요. 정말 강한 것은 힘을 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것을 주장하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잡는 것입니다. 싸움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지난주 기도수첩을 보니까 기도는 나의 계획을 하나님께 알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향하신 계획을 찾는 것이 기도라고 합니다. 기도합시다. 내 계획, 내 동기, 내 욕심 이루려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합시다. 하나님이 나를 향하신 그 계획을 찾으면 되니까요. 예레미야33장에는 말하고 있습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어라. 예레미야가 할 일이 많아요. 기울어져 가는 이스라엘에 친 바벨론자라는 그런 누명을 쓰고 그가 감옥에 갇혀 있어요. 억울하기도 하지요. 그런데 그는 정치적으로, 국가적으로 할 일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어라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하십니다. 그렇지요.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우리에게 새로운 계획이 보이고, 새로운 능력이 보이고, 새 힘이 나오는 것입니다. 성도에게 풍랑이 불어 닥칩니까? 네 불어 닥쳐야 됩니다. 불어 닥치게 되어있습니다.
2. 이전에 역사하신 하나님을 확인하라.(믿음의 확인)
Look Back to God of the Past who was at Work.
두 번째입니다. 그러면 이제 이전에 역사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확인하는 것이 남아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4:22~33절까지 같은 본문이 나옵니다. 조금 더 자세하게 나옵니다. 마14:25절입니다.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새벽 3~6시 사이에 예수님이 그들에게 오신 것이지요. 배가 한 대 남아 있었는데 배를 타지 않고 걸어오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계획이 있는 것입니다. 그 밤에 그들에게 풍랑이 밀어닥쳤고, 예수님이 걸어가셨습니다. 26절에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시는 것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며 소리를 지르거니와 했습니다. 제자들에게 두려움이 밀어닥치기 시작했어요. 예수님이 그 풍랑 속으로 걸어오고 계시고, 그 풍랑 속에 계시는데 제자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해야 될 일들은 두렵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문제 뒤에 있는 알 수 없는 뭔가가 우리를 두렵게 만드는 ..우리가 두려워질 때, 우울해질 때,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심리적으로 어려워질 때 우리는 더 힘들어지고 우리를 내리누르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도에게 그 풍랑 속에 계신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십니다. 안심하라는 것입니다.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염려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 풍랑 속에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 풍랑을 타고 예수님이 오시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그 말을 듣고 질문합니다.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다 두려워하고 무서워하고 있는데, 역시 베드로입니다. 주여 라는 말은 그냥 부르는 말입니다. 당신이 만일 주님이시거든...그 말은 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바로 그 당신이라면, 38년 된 그 더럽고 냄새나는 그 환자를 일으키신 바로 당신이시라면,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신 그 분 바로 당신이시라면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우리가 외쳐야 될 말입니다. 문제를 향해서 던져야 될 말인 것입니다.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이스라엘을 인도하신 그 하나님이시라면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이 맞으시다면, 시간이 지나가고 나면 보여요. 하나님이 그때 인도하셨구나! 하나님이 나를 보호하셨구나! 하나님이 그때 나에게 응답하셨구나! 어리석지만 성도는 발견하게 됩니다. 아 하나님이 하셨구나! 그 하나님이시라면 ...뭐지요? 우리는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역사하셨던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항상 그랬지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이스라엘은 위기 때마다 하나님은 그것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언약의 하나님이심을..나는 이스라엘을 그 종 되었던 땅, 애굽에서 이끌어낸 여호와다...그것을 항상 확인 시켜 주었어요.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그 분이 우리 앞에 닥치고 있는 역풍 속에 계시는 것입니다. 그 풍랑 속에 계시는 것입니다. 내게 닥치고 있는 병마 속에 예수님은 계시고, 어려움 속에 계시고, 사건 속에, 갈등과 어려움 속에 그 예수님이, 그 주님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38년 된 병자를 고치신 그 주님이 이 병마 속에 계시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신 그 주님이 우리의 회사 속에 계시다는 것이지요. 내 인생의 문제 속에 그 예수님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것을 확인하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합니다. 물위로 오라 하소서. 최초의 물위를 걷는 사람이 됩니다. 그 이후에도, 이전에도 아무도 그런 사람이 없었어요. 물을 가르는 이는 있어도. 물위를 걷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홍해사건은 물을 갈랐지요. 나로 물위로 오라 하소서. 새로운 기적이 우리 앞에 열려질 것입니다. 바로 그 주님을 확인하는 그 순간, 그 능력의 하나님을 확인하는 그 순간, 그 병마와 그 문제와 그 사건과 우리 집에, 가문에 밀어닥치는 그 사건과 문제 속에 주님이 계신다는 사실이 발견되어지는 그 순간 새로운 기적이 시작되어지는 것이지요. 나로 걷게 하소서. 나로 오라 하소서. 예수님이 오라 하십니다.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우리 사업에, 내 일에, 내 환경에 새로운 일들이 시작될 수 있는 기적의 역사가 시작되어지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이 일을 베푸실 것입니다. 100배의 축복을 받지 않으면, 샘의 근원을 발견하지 않으면 이 시대를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이삭에게 100배의 축복과 샘의 근원을 발견하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영악한 야곱에게 하나님은 그가 얼룩진 것을 선택하면 얼룩진 것을 축복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천하 만민이 너 때문에 복을 받을 것이다, 너는 복이다, 큰 민족의 아비가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큰 복 받기 위해 산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열심히 달렸던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완벽한 계획 속에 어느 날 부름 받은 사람입니다. 바울의 인생의 목표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다메섹 도상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영원부터 영원까지 있는 하나님의 계획 속에 부름 받게 된 것입니다. 공무원은 대통령의 일을 위해서, 회사직원은 사장의 계획과 목표를 위해 부름 받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부름 받은 자들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를 위해서 부름 받은 자들이 아니라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도록 부름 받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언약을 확인하라는 것입니다. 물 위를 걸어야 되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풍랑 속으로 부르신 것입니다. 풍랑을 그들에게 주시고 풍랑 속으로 오신 것입니다. 계획 속에 없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셋팅 된 시나리오 속에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3. 계속 언약을 확인하라.(예수님께 시선 고정)
Continue to Confirm the Covenant - Focus on Jesus Alone.
세 번째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계속 언약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시선을 고정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물 위를 걸어가는데 갑자기 급하게 치는 파도를 보면서 겁이 나서 물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을 지켜보던 제자들에게 그 일은 우스웠을 것입니다. 갑자기 예수님께 고함을 치면서 물 위를 걷는 것을 봤는데 갑자기 빠지니까 얼마나 우스웠을까요. 하지만 그 뒤에 제자들은 물 위를 걸었던 베드로를 봤을 것입니다. 예수님께 시선을 고정해야 합니다. 가다가 빠질 수 있고, 불신앙 할 수 있고, 염려할 수 있지만 예수님께 시선을 고정하는 것입니다. 언약을 붙잡는 것입니다. 우리는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물 위, 풍랑 위라는 사실을 부정할 필요 없습니다. 괜찮다고 강한 척하는데 괜찮은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 풍랑 위를 예수님께서 함께하고 계시고 메시지를 주고 계시고 부르시고 계심을 붙잡는 것입니다. 말씀을 잡을 때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예수님께 우리의 시선을 고정해야 합니다. 말씀에 의지하고 말씀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를 사로잡게 되고,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사로잡게 되어져있는 것입니다.
말씀 맺겠습니다. 신앙생활 처음 시작하면 그 때는 뜨거운데 갈수록 냉랭해집니다. 신앙생활은 하면 할수록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문제를 경험하면 할수록 예수 그리스도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 속에 찾아오시는 예수님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계획과 동기와 욕심을 내려놓고 힘을 빼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내 계획을 알리는 것이 아닙니다. 내 목표를 확고히 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내 목표와 동기를 내려놓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계획을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크고 기이한 것들을 보는 것이 기도입니다. 말을 많이 할 필요도, 내 생각을 강화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 축복이 오늘 예배 속에서, 말씀 속에서, 오후동안도 계속 기도하다가 이 축복을 누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응답있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를 부르셔서 하나님의 축복 속에 세우시고 풍랑, 어려움, ,병마가 찾아오지만 그 속에 계신 예수님을 보게 하시고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하게 하옵소서. 오늘 하루 예배, 기도, 찬양하다가 하나님을 경험하는 축복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12년 10월 21일 주일 2부 예배 노동휘 목사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요6:16-21)
서론: 세상에 있어서 가장 안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고, 성도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문제는 그리스도로 답이 나는 것입니다. 이게 안 되기 때문에 불신자에게는 문제가 오고 성도에게는 갈등과 어려움이 계속됩니다. 신앙생활이 될수록 그리스도가 행복이고 답이며 모든 문제의 해결이구나 하는 사실에 확신이 들어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내 계획, 동기 내려놓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것입니다.
본문을 통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성도는 왜 문제를 당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으려 합니다.
1. 성도(제자)에게도 풍랑이 불어닥치는가?
(1) 예수님과 함께 있고 예수님의 기적을 체험하였는데도 풍랑이 불어닥쳤습니다.
1) 갈릴리 바다 위의 제자들에게 풍랑이 불어닥침
2) 베드로가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함
(2) 하나님의 계획 - 문제 속에서 하나님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의 계획이 무엇인지 발견하도록 하는 것
(3) 기도할 때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하게 됩니다.
2. 이전에 역사하신 하나님을 확인하라(믿음 확인).
(1) 풍랑을 타고 예수님이 오시기 때문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2) 성경 속의 예수님을 내 인생 문제 속에서 확인해야 합니다.
(3) 베드로가 물 위로 걷는 새로운 기적을 위해 예수님께서는 풍랑 속으로 걸어오셨습니다.
3. 언약을 계속 확인하라 - 예수님께 시선 고정
(1) 풍랑 속에서도 예수님께 시선을 고정하십시오.
(2) 말씀에 의지하고 말씀 속으로 들어가면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가 우리를 사로잡게 됩니다.
결론: 신앙생활은 하면 할수록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문제를 경험할수록 문제 속에 찾아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경험하게 됩니다. 내 목표와 동기를 내려놓고 문제 속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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